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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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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 주일 설교 –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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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 주일 설교 -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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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안성진 – 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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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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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 합 3:16-19) Updating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학과 설교와 상담 자료를 모아 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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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합 316-19)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합 316-19)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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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찬양의 은혜 | 하늘품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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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 – mission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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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다니엘 3장 13~18절, 28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1.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그 사람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아 보려면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제법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당하면 그만

낙심해 떨어지고 결국,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더욱이 고난과 실패를 당하면 형식적인 신자는‘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될까’하고 회의에 빠져

고민하다가 낙심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가운데“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라고 한 말씀대로,하나님의 말씀

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금방 수지 맞는 일이 생

기는 것이 아니라,도리어 생명의 말씀 때문에 시험이 오고 핍

박을 받게 됩니다.그것을 견딘 후에야 때가 되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신앙의 최고봉에 우뚝 서 있는 세

젊은이를 볼 수 있는데,그들이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이들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용사

들입니다.

바벨론 나라와 느부갓네살 왕이 전에 꾸었던 큰 신상의 꿈

때문인지,아니면 종교를 표방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계책

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각양 악기

를 불어댈 때 모든 백성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을 내

렸습니다.이 명령을 어기면 누구를 막론하고 극렬히 타는 풀

무불에 집어 넣어서 태워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때에 신앙이 독실한 유대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 온 사드락

과 메삭과 아벳느고는“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

라”고 하는 계명 때문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습니다.이 젊은이

들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왕에게 고해 바쳤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고 분했지만 이들을 사랑하기 때

문에 세 청년을 불러다가“사드락,메삭,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

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

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

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 하고 협

박과 유화책을 함께 쓰며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 청년의 한 말을 들어 보십시요.“느부갓네살

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

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

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대답하고,그 다음엔 너무나 기막

히게 멋이 있게“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

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라고 하늘을 찌를 듯한 용

감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난 왕은 평상시보다 풀무불을 칠 배나 더 뜨겁게 한 다

음,세 청년의 손을 묶어 집어 넣었는데 얼마나 뜨거운지 집어

넣던 사람들은 불에 타 죽었지만 이 청년들은 털끝 하나 타지

않은 채 그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까?이상한

것은“인자같은 이”또 한 사람이 같이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

니다.

결박한 끈은 다 타버리고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걸어 다

니는 것을 본 왕은 그들을 불렀습니다.“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의 종 사드락,메삭,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하니까,

다시 세 청년이 나왔습니다.

그들을 보니“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

도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은“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믿

음의 절개를 지켰더니,하나님께서 그 극렬한 불도 태우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특히,이들이 대답한 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신앙의 표현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하는 이 말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도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실 줄 믿습니다.그렇지만“그

리 아니 하실지라도”즉,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지 않고

타 죽을지라도 우리의 신앙의 절개는 굽힐 수가 없고,또 우상

앞에 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풀무불보다 더 뜨거운 신앙 때문에 풀무불에 타지 않고

구원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그 불이 머리털도 그슬리지 못했

고 그 불의 연기가 그들을 질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

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

니…”(사 43:2)라고 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몸이 탈지라도 그 영혼이 낙원에 거할 것을 알기 때문에,그

리고 어차피 육신은 조만간 죽어 흙이 될 것이고 마지막 날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을 믿는다면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

가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청년은 은혜와 선한 양심을 지킬 수 없는 궁전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한 양심을 지키면서 극렬한 풀무불에 들어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믿음의 용기를 나

타냈던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

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

음이 크면 큰 만큼 핍박과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일수록 큰 시련과 환난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서“왕이여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

할 수도 없고 죄와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하는 신앙을 가져야

만 합니다.

2.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사드락,메삭,아벳느고와 비슷한 믿음의 표현을 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욥기 13장 15절의 난 아래 주 ①번을 보면“그가 나를 죽이

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그가 나를 죽이시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

에서 자신을 변백해 보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지

만 본문의 난 아래 주대로“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고 한 그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

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좋고 순전하고 정직한 이 사람에게 큰 복을

주셔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참소하기를“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복

을 많이 주셨기 때문입니다.만일 그에게서 모든 복을 거두어

가시고 큰 고통을 주어 보십시요.분명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설 것입니다”할 때에,하나님께서 허락하기를“그의 생명

만은 건드리지 말고 그를 시험해 볼테면 봐라”하니까,하나님

의 허락을 받은 사단은 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중에 종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보고하기를“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소와 나귀들을 다 빼앗아 가고 종들을 다 죽였는

데 나흘로 살아 왔나이다”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종

이 와서 보고하기를“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많은 양들과 종

들을 태워 버렸나이다”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종이 달려오더니“갈대아 사람

들이 세 떼로 달려들어 약대들을 다 빼앗아 가고 종들을 다 죽

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나이다”했는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종이 뛰어오더니“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던 10남매가 다 깔

려 죽었습니다”하고 보고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재난입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이 때에 웬만한 사람 같으면‘하나님 믿어 봐야 소

용없다.하나님이 없길래 내가 이런 고통을 받지 하나님이 계

시면 이럴 수가 있겠느냐’했을 텐데,욥의 말을 들어 보십시

오.

욥기 1장 20~22절에 그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

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요 취하신 자

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

면서,“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재난과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

나님을 원망하지도 배반하지도 않고 도리어 주신 분도 하나님

이고 거두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찬송할 것 밖에 없다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때,하나님이 사단을 불러 이르시기를“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

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

게 지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단이“하나님이 물질만 치고 자식들만 치니까

그렇죠.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분명히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또 허락했습니다.“생명만은 건드리지 말

고 몸을 쳐 보아라.”

욥이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하나님도 욥을 신뢰하니까 사단

과 내기를 한 셈입니다.

사단이 욥의 몸을 치기 시작하므로 온 몸에 악창이 나서 피

고름이 줄줄 흐르고 구더기들이 버글버글해서 기왓장으로 몸

을 긁어대니 욥의 얼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그의

친구들이 와서 네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재난을 당하느

냐고 다그쳐 댑니다.도무지 까닭 없는 재난을 당하는데도 변

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

았습니다.도리어 그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욥의 신앙은 축복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조건적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까닭 없는 고통과 환난을 당하는데도

하나님을 욕하거나 하지 않은 것입니다.욥의 신앙과 인내가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사단이 지고 도망갔습니다.하나님께서 재산을 그 전

보다 갑절로 주셨고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는데 특히,

욥의 세 딸은 당대에 가장 아름다운 미녀들이었습니다.

왜 자녀들은 갑절로 주시지 않았는가 하면, 10자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가 있기 때문에 10자녀만 다시 주신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하는 조건 없는 신앙이 가장 좋

은 믿음입니다.

3. 해로울지라도(시 15:4)

시편 15편에 주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과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말하는 가운데,“…그 마

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who keeps

his oath when it hurts)”(시 15: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보장해 주시는 사람의 자격은

진실무망해서 그 마음 속으로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약속한

것은 어떤 손해가 와도 꼭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한나입니다.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여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고 첩 브닌나의 멸시를 받을 때에 남편

을 원망하거나 브닌나를 미워하는 대신에“하나님께 바치겠나

이다”고 했을 때,하나님이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안아 보는 어린 아들이지만 젖 떨어지자마자 하나

님의 성전에 갖다 바쳤습니다.얼마나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이 있겠습니까마는,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이행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

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1:27~28) 하

고 성전에 드리고 돌아섰습니다.

이런 진실한 믿음의 여인이기에 그런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고,그런 믿음의 어머니의 아들이기에 그 나라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영적으로 큰 부흥을 일으키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

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민 30:2) 했고,“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

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

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

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1~23)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가 진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반대로 마귀의 속성은 거짓말쟁이요,변덕이 많은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고 하나님의 신임과

축복을 받으려면 진실해서 마음에 서원한 것은 무슨 손해를

보면서라도 그것을 갚아야 됩니다.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

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시 66:13~14)라고 말했습니다.

원어에‘믿음’이란 단어는‘진실’이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 항상 진실하여 약속을 잘 지키고 서

원을 갚아야 합니다.

가령,십일조를 하기로 결심했으면 깎아 먹지도 말고 거르지

도 말며 정확히 해야 합니다.빚을 지고 손해를 봐도 변함 없

이 실행해 나갈 때,그 중심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셨다가

연단 후에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 앞에서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외

상 값도 잘 떼어 먹고 꾼 돈도 갚지 않고 철석같이 하나님 앞

에 약속하고 결혼한 아내를 헌 고무신짝 버리듯이 이혼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진실치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그리 아니 하실지라도”,“그가 나를 죽이실지라

도”,“내게 해로울지라도”하는 세 가지 말씀을 지켜 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봉의 신앙의 사람이요,하나님 마

음에 꼭 드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한 마디로 조건 없는 신앙을 의미합니다.어떤

수지 맞는 조건이 충족되면 하나님 섬기고,그렇지 않으면 그

만 두는 따위의 신앙은 언제 배반할지 모르는 신앙입니다.

‘병 고쳐 주면 믿겠다.’한다면 유치한 신앙입니다.분명히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마는,‘병이 낫지 않고 죽을지

라도 끝까지 예수 믿겠습니다.’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

니다.또,죽어도 천국갑니다.

십일조를 잘하면 틀림 없이 축복을 받습니다마는‘축복을

못 받을지라도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요,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는 일이며 이 나라가 복 받는 일이니 손해를 볼지라도 끝까지

십일조하겠습니다.’할 때 연단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복을 받

습니다.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고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무조건적

인 신앙을 가져야 높은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할렐루야!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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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수치를 당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그것에 절하게 하여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때 유다 백성들은 절대 숭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오게 된 이유가 우상숭배의 죄이었는데 여기 와서까지 금 신앙에 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대 금 신앙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사람은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백성들의 대표입니다. 그 당시 유다인들이 죽으면 죽었지 절대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 상황은 이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단 3:8-18 / 합 3:16-19)

단 3: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단 3: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단 3: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단 3:1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니

단 3: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 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단 3: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단 3: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단 3: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단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단 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서론>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낙심하지 않거나 삶에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환경 가운데서 태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돌봐줌을 받는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낙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을 하게 되면 그 책임을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시지 않아서 이와 같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 때문이야. 우리 형님 때문이야. 사회 때문이냐. 국가 때문이야.’ 유명한 싱싱 형무소 소장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장으로서 사형집행에 입회했을 때 사형수 중에서 자기 죄 때문에 사형을 받는다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낭패를 당하고 좌절을 만나게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중에 나타난 다니엘의 신실한 믿음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낭패와 실망밖에 할 수 없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는 바벨론이 세계를 제패한 시대였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시대였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을 자랑하는 바벨론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그 권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때였습니다. 바벨론은 오늘날 이라크 땅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은 극에 달하여 자신을 상징하는 금 신상을 세워 그 금신상에 예배하고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 명령이 어떤 명령인데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여기에 항거한 세 사람의 신앙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니엘의 신실한 신앙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으로서는 도저히 우상 앞에 절 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우상숭배 거절이 자신들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분명히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는 이들에게 사형이 찾아오다니 참으로 한이 서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조금도 불평함이나 억울함이나,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배반치 않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극한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들을 포박하여 풀무 속으로 던졌던 군인들이 오히려 그 열기에 감당 못하여 즉사하였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만 현재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죽을 수도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죽음과 같은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절대 감사 신앙을 가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그렇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성도의 바른 신앙입니다.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것은 더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 범사에 승리하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같은 신앙이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져다주는 범사에 감사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구속)의 감사를 철저히 깨닫는 데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많이 감사해야 할 것은 바로 구원받은 사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지옥 형벌을 면치 못했을 나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천국 백성을 삼으셨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사의 진정한 출발은 엄청난 구원에 대한 감격에 있습니다. 이 구원의 감사 구속의 감사는 조건부 감사일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의 감사를 잊어버린 감사는 뿌리 없는 겉치레 감사이며, 외식적인 감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정확히 정립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지적해 낸다면 우리는 모두 다 멸망의 자식이요, 흑암의 백성이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쫓는 마귀의 종이요, 금수와 버러지 형상을 하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는 데 내어 주신 그 위대한 사랑을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요, 의무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와 핍박을 받으면서까지 참고 인내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의 감사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감사의 표를 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은 자요, 짐승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눅 17:11-19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 불치의 병이며 천벌로 여기는 문둥병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갑자기 기적적으로 고침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 만이 주님을 찾아와 그 은혜를 감사하며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병 고침 받았다는 사실에 취하여 고쳐주신 분에 대한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9명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느 교회에서의 일입니다. 한 청년이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달리고 뛰어야 할 청년이 관절염으로 고생하니 그 처지야 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처량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부흥회 기간이 돌아와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그 부흥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그 청년의 관절염이 온데간데없이 감쪽같이 낫고 말았습니다.

목사님도 기뻐하고 신기해서 다음 주일 낮 예배 때 모든 교인들 앞에서 광고도 하고 간증도 하게 하기 위해서 벅찬 기대를 가지고 주보에 까지 그 내용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 낮 예배 시간이 다 되어도 그 청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한 나머지 다음날 그 청년을 찾아가 왜 지난주 예배에 출석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 청년이 하는 말이 ‘목사님, 너무도 오랜만에 걸어보는 건강한 다리라서 도봉산에 등산 갔다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으로 건강보다 더 중요한 영생을 가졌음을 감사할 줄 아는 성숙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믿는 믿음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가 나옵니다.(롬 8:28-30)

우리의 다함이 없는 감사는 롬 8: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절망이 없습니다. 마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신앙과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내일을 소망 있게 만듭니다. 이 같은 우리의 신앙은 불교의 비관주의와 무신론자의 염세 사상을 배격합니다. 인생을 무가치하게 버려진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성취시키는 꼭 필요한 존재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믿음은 인생을 바라볼 때 현재의 사실만 바라보지 않고 폭넓고 길게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이 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죽도록 매를 맞고 쇠고랑에 차여 어둡고 침침한 감옥에 던져졌어도 절망하지 않고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 같은 신앙으로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라고 적극적인 감사 신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느니라”(마 12: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앞섰다고 끝까지 앞서는 것이 아닙니다. 앞섰다가도 뒤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도중에 낙심하지 말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 달리시기 바랍니다!

롬 8:28절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지는 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낙관적인 신앙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둘째,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집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함을 받은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셋째, 모든 것이 합력하는 것을 믿음으로 낙관적인 신앙을 가집니다. 다시 말해 생활 속에서 당하는 성공과 실패, 기쁜 일과 슬픈 일, 합격과 낙방, 가난과 부귀, 질병과 건강, 온갖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위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결과를 위해서 그렇게 아프고, 괴롭고, 슬프고, 쓰리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넷째, 모두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은 구원을 성취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영생을 얻게 된다, 승리한다, 축복을 받는다 행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요셉은 모든 것이 합력할 줄을 믿고 살아갔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형들로부터 부당한 미움을 받고 아버지 모르게 애굽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어린 나이에 아무런 희망의 기미도 없는 가운데 짐승처럼 천대받아가며 고생을 하였습니다. 또한, 잘못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않으려고 한 것 밖에 없었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죄수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행에서 불행으로, 절망에서 절망으로 이어지는 기구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한토막 한토막의 사건이 요셉을 점점 더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과정이 아니라, 보다 큰 영광과 행복을 찾아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깨달은 요셉은 나중에 천추에 원한 맺혔어야 할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형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애굽에 형들이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나를 애굽으로 일찍 보내신 것이라”라고 하면서 미워하고 복수해야 할 형들을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볼 때는 불행자요, 낙오자 같았으나 그 모든 고통과 환란과 불행이 종합되었을 때에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역설적입니다. 참 진리는 합리적인 것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고, 섬김을 받는 자 보다 섬기는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이 생명력 있는 희망입니다. 작은 불행은 큰 불행의 씨앗이 되고, 뜨거운 눈물은 만족한 웃음의 바탕이 됩니다.

패배 뒤에 오는 승리는 패배의 쓰라림까지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신앙의 길은 순풍에 항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폭풍우와 싸워가며 바다를 건너가는 용기 있는 사공입니다. 역경과, 시험, 유혹과 실패, 가난과 질병 등은 보다 더 연단된 믿음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은 수고와 희생들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에 낙방하고 나면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내일을 포기하고 비관에 빠집니다.

낙방 자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낙방을 인생의 낙방으로 여기는 마음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낙방은 패배가 아닙니다. 한 때의 패배가 결코 불행이 아닙니다. 불행이란 불청객은 결코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낙방 뒤에 자기 발견이 있고, 패배 뒤에 새 출발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지나가버린 어제보다 다가오는 내일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에 사는 인생보다 미래에 사는 인생이 적극적이고, 희망적이고, 신앙적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실패나 성공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보고 내일을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때문에 내일을 비관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행복의 문은 성공의 열쇠로만 여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열쇠로 더 큰 행복의 문을 열기도 합니다. 불행은 마음 약한 자의 것이요, 실패는 믿음 약한 자의 것입니다. 넘어지면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 행동은 멍청한 자의 행동입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룰 줄을 믿는 참 신앙인에게는 불행을 모릅니다. 불행이 가까이 오는 동안에 모두 교훈으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는 불행이 없습니다. 믿음 앞에서의 불행은 고양이 앞에서의 쥐입니다. 지금,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됩니까? 스스로 고통스럽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불행이 변하여 교훈이 되고,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3.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은 결코 후회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한번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백성은 결코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지켜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살아가는 앞길에는 성도라 할지라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분명히 다른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섭리와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시련의 길일지라도 나에게 꼭 필요한 인내와 연단을 이루시려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자상하신 계획의 일부인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역경과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역경의 의미를 다 모를 따름이지 결국은 이 역경이 나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믿는 것이 축복입니다. 지금 이 어려운 중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되는 지를 잘 모르지만 이것으로 인해 결국, 내가 하나님 앞에서 크게 감사할 일이 있을 줄을 믿고 감사하는 이 감사야 말로 성숙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구원하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순교자 브래드 포드는 개신교도들을 핍박했던 메리 여왕 앞에서 말하기를; ‘왕이 나를 놓아주어도 감사하겠고, 나를 태워 죽여도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놓아주면 놓임 받아서 감사하고, 죽으면 순교해서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감사의 신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 앞에는 오직 감사와 찬양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불행과 시련과 환란은 우리에게 다가오자마자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훌륭한 교훈으로 변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성숙된 신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나의 환란과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진리의 빛이 내 안에 있으니 악한 어둠들은 떠나게 됩니다.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여 어려움과 환란과 고통의 날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떠나가고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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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3:1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3:13-18)

아프리카에 가면 비서새가 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하늘을 곧잘 날으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하고 또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위기를 만나게 되면 날개가 꽁꽁 얼어붙고 온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된다고 합니다.

믿음 생활하는데 꼭 비서새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감사도 하고 찬양도 하고 곧잘 예배도 합니다. 그러나 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면 신앙생활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운 때를 만나곤 합니다. 우선 삶이 너무 평안할 때, 우리는 영적인 무관심과 영성 마비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도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등반가의 진가는 야산을 오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험산 계곡을 지날때에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뱃사공이 능숙한 사공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고요한 바다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 흉흉할 때 비로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탄할 때는 그 신앙의 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극심한 환란과 시련 그리고 도전에 부딪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면 많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지금 셀교회 시스템을 갖추고 그런날을 오히려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저를 격려한다고 찾아온 어떤 목사님이 능곡은 개척이 안된다는 겁니다. 개척이 안되는데 이유 10가지를 말하더라구요.

① 100년된 교회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새로운 교회들이 안된다는 겁니다. 제 마음속에 아니다. 오히려 신선한 교회도 필요하겠구나. ② 이 도시 사람들은 곧 신도시로 들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음을 안 준다는 것입니다. 좋다. 너희들이 마음 안주면 내가 마음 준다. ③ 이 도시 사람들은 이 교회, 저 교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교회가 안정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씨구나 좋다. 그러면 우리교회도 와 보겠구나. 한번만 오면 나는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의 제목으로 삼고 기쁨으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때 보다도 도전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도전입니다. 신앙생활은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병정 놀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영원한 신혼의 밀월 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신앙생활은 곧 전투요, 목숨을 건 전쟁이란 말입니다. 지금은 영적전쟁의 때입니다. 한 번의 실패에 포기해서도 안되고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해서도 안되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한 가지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도전이 와도 그대는 그대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가? 어떤 유혹이 와도 그대는 그대의 신앙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 모두 이 주님의 커다란 질문 앞에 분명한 응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II. 말씀 속으로

본문을 살펴 보십시다. 유대나라 여호야 김 왕때에 유대나라는 국운이 분리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나라 왕족과 귀족, 학문있고 재주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로잡아다가 바벨론 문화를 가르치고 동화정책을 썼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혼합주의에 절대로 말려들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킨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다니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네 사람에게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탁월했던 이들은 지배국에 들어가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출세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에게 모진 시련의 바람이 휘몰아쳐 옵니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축복과 시련을 함께 주실 때가 있습니다. 가끔 축복은 시련이라는 보자기에 쌓여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련이 올 때 당황하지 마십시오.

사울 임금은 골리앗 앞에 섰을 때에 골리앗은 덩치가 너무 커 무찌를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물맷돌을 돌리며 골리앗은 덩치가 너무 커 내가 적당히 던져도 맞겠구나. 그래서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패자는 문제가 너무 크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성공자는 문제가 클수록 성공도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느브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권위와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바벨론 성 남쪽 약 10km 지점에 있는 두라 평지에다가 약 7층 높이에 달하는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제막식날부터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 금 신상 앞에 절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왕명을 어기면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에 넣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드디어 제막식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악기소리에 맞추어 왕명에 따라 금 신상 앞에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하늘을 찌르며 위용있게 서 있는 바벨론 우상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타협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임금의 명령을 거부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전승국 대군주의 무서운 권위 앞에 서 있는 패전국의 젖비린내 나는 청년 포로들이 감히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 청년은 눈에 보이는 바벨론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 두려워 할 줄 알았고, 느브갓네살의 왕좌보다 하나님의 보좌를 더 존귀히 여길줄 알았습니다.

① 큰 재목은 큰 연장으로 다듬는 법입니다. ② 열매없는 나무엔 아이들이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③ 열매가 많은 나무일수록 많은 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④ 큰 신앙인 일수록 큰 시련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큰 시련, 큰 도전이 찾아올 때 – 야,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시려나 보다. 기뻐하며 시련을 맞이해 보십시오. 야, 사탄도 나를 알아보는 구나! 오히려 기뻐해 보십시오. 문제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회피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이 세 청년의 선택의 기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갈등과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좌도 잃지 않고 바벨론의 왕좌도 버리지 않는 회색지대가 없을까? 눈치를 살피곤 합니다. 이에 대해 「라블레」라는 신앙인은 “두 의자 사이에 함께 앉으려 하다가 땅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고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세 주인공은 우상 앞에 경배하는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이글거리는 풀무불 앞에 서게 됩니다. 오늘 잘못된 물질주의 문화의 유혹 앞에 쉽사리 굴복해 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그 절개가 다른 이 얼마나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까?

III. 자유하는 신앙

현대 인간들을 굴복시킨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돈의 힘이요. 둘째는 권력의 힘이요. 셋째는 죽음의 힘입니다. 현대인들은 돈의 힘 앞에, 권력의 힘 앞에 절하고 고개를 숙여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리기에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들은 우선 황금우상 앞에 자유했습니다. 두라 평지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황금우상! 그 앞에 임금과 모든 대신들이 절하고 있을 때 그 앞에 황금을 비웃듯 당당히 서 있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족도, 대권력자도, 외국 대사도, 계급 높은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포로병에 불과했던 이들 세 사람 – 그들은 돈의 힘 앞에 굽실거리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산업사회는 누가 물질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 누가 물질을 많이 소유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물질에 굴하지 아니하고 초연히 물질 앞에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 세 사람은 권력 앞에 자유했습니다. 전승국의 대군주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신앙입니다.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을 수 있는 내 인생의 진정한 주권자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비록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진리가 아니면, 정의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 세 사람은 죽음 앞에서 자유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살기위해 몸을 더럽히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꺾고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나는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도대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가졌던 신앙이 어떠한 신앙이었길래 이토록 당당히 자유할 수 있었으며 오늘 우리를 이토록 부끄럽게 만들고 이처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단 말입니까?

IV. 첫째, 그들의 신앙은 타협하지 않는 신앙, 굴곡되지 않은 신앙이었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회유하며 말하기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에 대한 청년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16절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 말의 뜻은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말로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갈 때가 있고 행동으로 말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여, 이것은 탁상공론을 하거나 타협해야할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 대답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양심과 신앙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의 결의는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큰 교회 목사님들의 정신을 먹고 산 것이 아닙니다. 부자 장로님들의 양식을 먹고 산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총칼에 굴복하지 않았던 손양원 목사와 그 아들 동인이 동신이의 피를 먹고 산 것입니다. 일제 신사 앞에 절하지 아니하고 대못이 박힌 송판길을 당당히 걸어갔던 주기철 목사님의 피를 먹고 자라온 것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넓은 길을 가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좁은 길 가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오늘 우리는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고 당연히 양보하지 않아야 할 것은 너무나 쉽게 양보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자주 보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질과 자존심을 죽이지 못하여 우리자신을 쏟아내는가 하면, 반대로 도무지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순결, 하나님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둔감해질 데로 둔감해진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을 봅니다.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 때에, 우리를 타협의 광장으로 몰아갈 때에, 우리는 여기 세 청년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일만은 양보할 수가 없소. 그 문제에 대해선 대답할 필요조차 없소. 나는 행동으로 말하겠소. 내 양심이 말을 하고 있소.”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예수 잘 믿었더니 눈먼 아파트 한채 굴러 들어와서 복을 받았다. 이것은 축복이고, 예수 잘 믿었더니 아파트가 그냥 굴러 들어오는데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저주더란 말입니까?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축복관을 새롭게 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2.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고싶은 사람은 고난 받는 것 손해보는 일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V. 둘째, 세 청년의 신앙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입니다.

17절에서 이들은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라는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건지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며 또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왕십리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목사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시내 어느 음식점에 민어찜을 잘한다고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데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 신호등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특징이 신호등에 걸렸을 때에 1번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양반입니다. 파란신호등이 켜지기 직전에 자동차 유리에 새가 날아가다 새 똥을 쐈습니다. 이놈의 자식이 새 똥을 싸네. 잠깐 쳐다보는 사이에 불이 켜졌고 옆에 차가 가니까 이 목사님도 앞도 보지 않고 붕~ 엑셀을 밟았는데 남산 터널에서 120km로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파란불인데도 달려내려오는 것입니다. 저희 차 앞에서 10cm 남겨놓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습니다. 호텔에 돌아와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이 자동차가 얼마만큼만 늦게 달려나왔으면, 우리 자동차가 몇 초만 빨리 출발했으면, 어떤 사고가 났을까? 생각해 보았더니 0.01초만 우리가 먼저 출발하거나 0.001초만 자동차가 늦게 내려왔더라면 정확히 내 앞을 치고 지나갈 뻔 했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새똥을 통해서도 나를 건져주시는 분이시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생활을 주장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질병을 치료하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의 능력을 신뢰하십시오.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도 능히 건지시고 악마의 손에서도 능히 건져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은 우리가 당하는 시련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사랑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손길은 우리를 해치려는 악마의 손길보다 빠릅니다.

VI. 셋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세 청년이 가진 신앙의 클라이 막스는 그 다음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8절을 함께 보십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나는 분명히 성경의 모든 풍성한 약속들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나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한다는 신유의 능력을 믿습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넉넉한 재물을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은 영원히 우리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저기 이글거리는 풀무불 속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왕이여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가 풀무불 속에서 우리가 그대로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상앞에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감사하며 죽어갈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부르짖었던 주님의 절규가 바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고백이 아니었습니까? “내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내게서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이 풀무불 속에서 내 몸이 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일찍이 칼빈처럼 “내가 지옥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지옥을 내려가는 길목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지옥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넉넉한 재물로 늘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가 이 가난 중에 살면서도 낙심치 않고 감사하며 고결한 신앙을 사는 여유있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부자되기를 탐하지 아니하고 이 가난한 중에 주를 섬기겠나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여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침상에서 병으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병상생활의 투병중에서 내가 신앙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SBS 방송초기 코미디 전망대 진행자 김경태 장로님은 말년에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죽기전날 가족예배를 드렸던 기도는 제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터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리이까? 하오나 이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술로 범죄할까 두렵습니다. 못나도 장로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두렵습니다. 지난 몇 개월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시간마다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까 두렵사오니 이 고통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이 고통 가운데도 당당히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사랑스런 내 자녀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그토록 처절한 고통 가운데서도 당당히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하며 갈수 있었다는 기억을 남기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고통이 제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님앞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싶습니다.?

VII.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에 대한 보상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인 신뢰를 보냈던 이 세 청년을 하나님은 외면하셨나요? 세 청년이 풀무불에 던져지자마자 불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껴안고 구원하신 분이 계십니다. 나를 살리려 그분이 십자가 불속에 뛰어들어 우리의 채찍을, 무거운 죄의 짐을 가슴에 끌어 안고 활활 타 가셨던 성자 예수님!

세 청년은 머리털 하나 상처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이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 청년의 신앙이 가져온 축복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마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28절 말씀 이하에 보면 이방 왕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드디어 왕은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우선 금 신상에 절하라고 한 첫 번째 조서를 폐지하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공포합니다.

29절과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더욱 높이니라” 할렐루야!

VIII. 결 론

마지막으로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세 청년을 풀무불 속에서 끄집어 내지 아니하셨더라면 그들이 어떻게 했을까? 그러나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기쁘게 순종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물어 보십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이지선이라는 젊은 자매(78년생,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졸업)가 2000년 7월 30일 주일 오빠가 모는 마티즈 승용차를 타고 가다 용산 어느 지점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갤로퍼 승용차에 치어 6중 추돌사고후 차가 불이 붙는 바람에 화상을 입고 새까만 몸으로 중환자실에서 생명을 넘다들다 겨우 살아 개설한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보는 순간 속을 뱉어 내는 한 마디가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저러고도 정말 살 수 있을까?’ 이지만 정작 본인은 당당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써내려 가는 감사의 글 중 극히 적은 일부입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온전히 남은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며, 글을 쓰며, 엄지손가락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막대기 같아져버린 오른팔을 쓰며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귀바퀴 덕분에 귀바퀴란 것이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 주신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였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 절뚝 걸으면서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였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놀랍게 만드신 것인지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100만분의 1만큼 공감할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초라한 사람으로 대해지는 그 기분 또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테니깐요.

“저러고도 살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해주시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립니다.

“네. 저는 이러고도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한 몸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출처/류영모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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