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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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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coram Deo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에 있는 산으로 ‘세겜’성을 가운데로 북으로는 해발 854.7m의 에발산이, 남으로는 해발 919.5m의 그리심산이 위치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coram Deo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에 있는 산으로 ‘세겜’성을 가운데로 북으로는 해발 854.7m의 에발산이, 남으로는 해발 919.5m의 그리심산이 위치 … 그리심 산과 에발 산 Mount Gerizim and Mount Ebal 세겜(이 블로그 “세겜” 참고)의 남북에 있는 산들로서, 그리심 산은 세겜의 남쪽에, 에발 산은 세겜의 북쪽에 있으며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를 세겜 골짜..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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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교훈 – 올랜도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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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교훈 – 올랜도 새길교회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교훈. 2014년 8월 9일 by 이 중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교훈.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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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산과 에발산 (신 11:26-32)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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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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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GT 에발산은 세겜이라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그리심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모세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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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3) – 에발산과 그리심산 – 사랑 나눔터 – 지방교회 교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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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이스라엘 탐방(3) – 에발산과 그리심산 – 사랑 나눔터 – 지방교회 교회자료 이스라엘 탐방(3) – 에발산과 그리심산 (신 11:29-3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 지방교회,교회자료,신학자료,변증자료,연구자료,워치만니,위트니스리,한국복음서원,회복역,찬송가,주의회복,지방교회들,교회들,웟치만니,윗트니스리,회복교회,최삼경목사,교회와신앙,현대종교,이인규권사,김홍기목사,정동섭목사,이단변호이스라엘 탐방(3) – 에발산과 그리심산 (신 11:29-3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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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산이냐 에발산이냐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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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그리심산이냐 에발산이냐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그리심산이냐 에발산이냐 ...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 최근 일본 교회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집과 교회가 너무 간결하고 단정하다는 것이다. 가식이 없고 오히려 정결한 모습이다. 화려한 꽃도 장식하지 않았고 거대한 십자가도 걸리지 않았고 설교단상 역시 조촐한 작은 탁자이다. 이에 비하여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그 누구라도 오늘날 한국교회 모습을 보면 이건 교회가 아니라 화려한 궁전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너무 지나친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 웅장하고 더욱 화려하게 더욱 고품격으로 다듬으려고 애를 쓴다. 너무 외형적인 것에 치장을 하려 한다. 개뿔도 없으면서 명품은 꼭 갖는 것과 같고 된장녀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브랜드 커피를 마신다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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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사람이 도전해야 할 영원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한 중심부에서 선포된 바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아닐 것인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끊임없이 직면할 이 딜레마의 중심에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복! 불순종하면 저주!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이 능력은 발휘됩니다.
갱신되는 율법
40년 광야 길을 마치고 모압평지에서 모세는 유언과 같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다 죽었기에 이제 가나안 행군을 앞두고 2세들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이때의 설교내용은 율법을 되새겨 보는 십계명과 레위기에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물질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이 법을 주신 이유는 번영과 장수이지, 규제가 아닙니다.(5:33) 레위기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제사에 관한 것, 음식물, 십일조, 사회관습, 경제행위, 구제행위, 절기, 재판, 상도덕 등을 2세들에게 알아 듣게 말하였습니다.
특별한 당부
이 설교들을 마치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하나님의 명령을 큰 돌에 석회를 바르고 적어 에발산에 세워 놓으라는 것입니다. 시기는 요단강을 건너 에발산에 들어 간 후입니다. 그 때 다듬지 않는 돌 제단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7:1-5)
돌을 다듬으면 사람들이 다듬은 아름다운 제단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함을 우려한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율법을 돌에 기록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쉬이 잊지 말고 볼 때마다 명심하라는 뜻뿐만 아니라 그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특이한 주문
그런 후 모세는 백성들에게 더 특이한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12지파를 양쪽으로 나누어 그리심과 에발산에 세우게 하고,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27:11-13)
복의 내용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게 하실 것이며, 성읍이나 들에서나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자녀나 가축이나 떡 반죽에도 복을 받고, 적군이 한 길로 공격해와도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세계 만민이 두려워하게 되며 머리고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복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8:1-14)
저주의 내용
한편 저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는 자, 소경의 길을 잃게 하는 자, 경제적 약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 계모와 짐승과 상관하는 자, 근친상간 하는 자, 이웃을 암살하는 자,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자, 기타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27:15-26)
소경의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잘못 인도하여 길을 잃게 하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장애우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파렴치한 자들에게 혹독한 저주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에 있는 산으로 ‘세겜’성을 가운데로 북으로는 해발 854.7m의 에발산이, 남으로는 해발 919.5m의 그리심산이 위치에 있습니다. 모세가 이 2개의 산을 중심으로 저주와 축복을 선포한 의도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다 축복과 저주를 리얼하게 교육하기 위한 조치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시는 훗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주도하에 실제로 실행되었습니다. (수 8:30-35).
에발산에 돌비가 있는 이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한 돌비를 저주의 상징인 에발산에 세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듬지 않은 돌 제단을 바로 그곳 에발산에 두게 한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이 죄와 저주가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속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번제와 화목제를 이 제단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이스라엘 중심부에 있는 이유
세겜성을 가운데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자연적인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을 교육하기에 안성맞춤인 이 장소는 영적인 의미 다분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약 700년 전 가나안으로 이주해와 최초로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창 12:6, 7)
양자택일 오직 하나를 선택, 보류는 없다
이 2개의 산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위치해 있듯이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 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은 오직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양자택일 시 보류는 없습니다. 중간지대 물론 없습니다. 오직 선택할 뿐입니다.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시는 하나님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닌 좀비 같은 상태는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 순종과 불순종! 그것이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과 결단을 기다립니다. 그 부분에서 하나님은 개입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교훈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교훈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여호수아 8:33).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전에 길갈에서 요단 강 도강을 기념하고 기념석을 세우며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아이 성을 점령한 후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작전을 중단하고 온 백성을 그리심 산과 에발 산으로 집결시켰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율법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간의 범죄로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7:11, 15) 하나님과의 언약의 의무를 온 백성 앞에서 다시 확인시키기 위해서 모세가 명령한 장소로 모였습니다. 언약은 구약에서 여러 번 갱신되었습니다. 언약의 내용 자체가 변경된다는 의미의 갱신이 아니고 언약 백성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겠다는 결의를 거듭 다짐한다는 의미에서의 갱신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낭독되면 “모든 백성은 아멘” (신 27:15-26)으로 응답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패배를 설욕한 후에 충천한 사기를 몰아 나머지 땅들을 점령하고픈 유혹을 물리치고 모세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습니다. 요즘은 사라져가는 전통이지만 교회마다 헌신 예배가 절기마다 들어간 때가 있었습니다. 새 언약 백성의 믿음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헌신을 때때로 거듭 다짐하는 것은 영적 갱신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신자들이 영적으로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말씀의 우선권을 제쳐놓기 때문입니다. 전투 후에 전열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먼저 경배하고 말씀의 양식을 먹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아이 성의 북쪽에서 약 20 마일을 행군하여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는 세겜 땅으로 가서 특별 예배를 올렸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주는 의미]왜 이 장소를 택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가나안에 들어갈 세대에게 사전 지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신 27:1-8). 세겜 땅은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겜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야곱은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친 밭을 매입하였고 아브라함처럼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창 33:18-20). 그는 이곳에서 자기 권속들이 소유한 이방 신상과 장식품들을 땅에 파묻고 그들을 하나님께 재헌신시켰습니다(창 35:4). 나중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집결시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엄숙한 의식을 가진 곳도 세겜이었습니다(수 24:1).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곳도 세겜의 수가라는 동네에 있던 야곱의 우물가였습니다(요 4:5-6).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세겜 지역에 있는 가나안의 지리적 중심입니다. 두 산의 산정에서 가나안 땅 대부분을 조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족장들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에서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실제로 밟고서 언약의 말씀을 읽고 돌에 기록하는 의식은 매우 뜻 깊고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이 두 산 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분지가 형성되어 음향 효과가 탁월하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 산 위에서 내는 소리를 다른 편 산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처음 받았을 때처럼 번제와 화목제를 올리고 큰 돌들에 석회를 발라 율법을 새겼습니다(신 27:2, 8). 그리심 산 위에서는 율법에 기록된 축복을 낭독하고 에발 산 위에서는 저주를 낭독하였는데 백성이 모세의 지시대로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신 11:29; 27:12-26).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강령이며 가나안의 새 삶을 이끄는 신정법임을 천명하고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심 산은 순종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대변하고 에발 산은 불순종으로 오는 하나님의 저주를 대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두 산 중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그리심 산의 축복과 에발 산의 저주를 시식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랐을 때 여리고 성에서 승리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 아이 성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읽은 것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기본 원칙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에 대한 자세한 지시도 나옵니다. 제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용서와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대속의 제사가 필요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속죄제를 드릴 아론도 함께 주셨습니다.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내다본 구약 시대의 예표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제사 제도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십자가 대속의 그림자며 화살표였습니다(갈 3:13).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가 서로 번갈아 가며 울렸습니다. 양 편이 서로 자기들이 속한 산의 축복과 저주를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심 산의 백성은 에발 산의 백성에게 자기들 쪽으로 오면 축복을 받는다고 외치고,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은 그리심 산의 백성에게 자기들 쪽으로 오면 저주를 받는다고 외친 셈이었습니다.그 날의 이벤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잊을 수 없는 의식으로 각자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일일이 다 낭독하였습니다(수 8:34; 비교. 행 20:27). 이제 이스라엘은 유업으로 쟁취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빠짐없이 모두 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다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고 이에 모두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써 신정 국가로서의 틀을 공적으로 선포한 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우리들의 과거의 삶은 에발 산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실패와 저주의 어둠에서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가 없습니다. 에발 산에서 그리심 산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롬 8:1-2). 예수님이 오셔서 에발 산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받으시고 우리를 데리고 그리심 산으로 가셨습니다(골 1:13-14). 아직도 에발 산의 저주가 들리는 곳에 서 있는 자들에게 그리심 산의 축복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삶은 황충과 메뚜기가 다 갉아먹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에발 산을 떠나 축복의 그리심 산으로 가면 두려워하거나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와 불의로 잃어버린 땅은 나로 하여금 에발 산의 어두운 그늘 아래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들은 그리심 산의 축복으로 옮겨져서 소망의 삶을 회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여호수아는 에발 산 위에 제단을 쌓았고 에발 산에서 율법을 돌에 복사하였으며 율법의 저주가 에발 산에서 선포되게 하였습니다(수 8:30-35; 신 11:29). 그럼 왜 에발 산에서 제단을 쌓고 저주를 낭송해야 했을까요? 에발 산은 저주를 대변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율법의 모든 저주가 에발 산의 제단 위에서 사라지도록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올렸습니다. 번제는 죄의 속죄를 위한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화평한 관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단은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기에 에발 산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에발 산의 제단에 바쳐질 희생 제사의 원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한 몸에 다 받으시고 우리들을 구속하셨습니다(갈 3:13). 비유컨대 갈보리 십자가는 저주의 에발 산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제단은 곧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우리들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겨지도록 예수님이 제단이 되시고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제단입니다.
‘여호수아’는 ‘주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서 ‘예수’와 동일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히브리식이고 ‘예수’는 헬라식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예표는 실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림자로서 윤곽을 드러내고 실체를 가리킵니다.
♣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제단을 세웠습니다(30-31절).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돌에 새겼습니다(32절).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모세법을 대치하고 성취시켰습니다(마 5:17-48). 또한 그의 성령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셨습니다.
♣ 여호수아는 율법을 백성에게 들려 주었습니다(34-35절).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시고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들에게 들려 주십니다.
♣ 여호수아는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킬 때처럼, 여기서도 모세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서 새 언약 백성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한편, 에발 산에 쌓았던 제단은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수 8:31)이었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자연석 제단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방 종교처럼 사람의 손으로 다듬고 인간의 아이디어로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사상에서 나온 것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제단은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구속의 제단 위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만이 죄인들을 정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심 산의 축복은 생명을 의미하고, 에발 산의 저주는 죽음을 의미합니다(신 30:19). 죽음 대신 생명을 택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믿으십시오. 우리들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겨지도록 예수님이 용서의 제단이 되시고 에발 산의 저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 생명을 그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모든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의 세상에 태어나서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사망합니다(롬 3:9, 23).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류는 사망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사망의 저주 아래 있는 속절없는 인생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나 대신 저주를 받으신 주님의 제단인 십자가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주 예수를 자신의 구속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십시오. 이것이 죄와 사망의 정죄로부터 구출되는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조되기 보다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적인 세속 복음이 십자가 복음을 대치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손으로 장식된 제단들이 교회당을 채우고 있습니다. 말로는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은혜 구원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세속주의가 강대상과 신자들의 심령에 에발 산의 저주로 울리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그리심 산으로 옮겨가서 살지 않으면 에발 산의 저주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여호수아서는 바알 종교로 타락해버린 사사기 시대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온 백성이 모여서 가졌던 언약 갱신의 예배를 내버리고 바알 경배의 축제로 몰려갔습니다.
기독교 사상과 신앙으로 세워진 서구 사회는 급속히 퇴락하고 있습니다. 한때 교회 성장의 세계적 모델로 자랑삼던 우리나라 교회들도 엄청난 부패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적 갱신이 필요한 때는 없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여호수아 시대에 이루어놓은 것을 뒤집는 영적 아간입니다. 에발 산의 저주는 아간의 망령들을 처단할 때까지는 우리들의 사회와 교회를 죽음으로 계속 인도하며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시대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영적 갱신을 위해 각자가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주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무덤에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죽음의 땅에 뿌리는 부활 생명의 전사(戰士)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전사들의 무리에 속하고 싶지 않습니까?
코리아 위클리 06.25.2014
그리심산과 에발산 (신 11:26-32)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광주의 한 복권판매점에서 한 달 새 로또 복권 1등 짜리가 14억, 22억 이렇게 두 번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게에서 3등짜리도 무려 14번이나 나왔습니다. 희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그 가게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는데, 상여가 나가면서 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소문을 듣고 원근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러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는 아예 우편으로 주문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무지하구나!” 그렇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학력도 높아지고 유식해진 것 같은데, 인생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무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학식이 많아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한 것입니다. 롬1:21~23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입니다. “ …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사람,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그 죄로 인해 영안이 가려집니다. 그래서 무지한 가운데 헛된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복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정해 놓으신 공식대로 살 때 비로소 진정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법대로 열심히 산다고 해서 무조건 복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무조건 열심히 산다고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헛된 우상을 섬기고 근거 없는 미신을 따라 간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오직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축복의 공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가능하지만, 인생의 현장에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축복의 공식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이 ‘축복의 공식’을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공식대로 살아서 정말 축복의 인생, 승리의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거행할 의식 : 축복의 공식 체득본문은 모세가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해도 진정 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가나안을 가리켜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복지(福地)’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부르지만, 무조건 축복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순종’이라는 ‘축복의 공식’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주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당부하고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꼭 새겨지도록 아예 실습을 시킵니다. 이런 교육 방법을 흔히 ‘역할연기’(Role Playing)라고 부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선 26절~28절에서 축복의 공식을 다시 언급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그리고 나서 무엇을 당부합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한 가지 의식(Ceremony)을 꼭 거행하라는 것입니다.
29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보다 자세한 내용이 신명기 2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때는 모세는 없고 여호수아의 지도 하에 이 의식을 거행했는데, 그 기록이 여호수아 8장에 나옵니다. 이 구절들을 모두 읽고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가나안 중심부(Center)인 세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산들입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창12:6~7) 말하자면 세겜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리심 산은 해발 850미터, 에발 산은 해발 940 미터로 엇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두 산은 골짜기를 두고 마주하는데 거리가 아주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각각 서 있으면 서로 마주 보고 말소리도 잘 들립니다. 그런데 두 산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리심 산은 북쪽, 에발산은 남쪽입니다. 그리심 산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이고, 에발 산은 그늘이 진 음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에는 숲이 울창하고, 에발 산은 초목도 없는 바위산입니다. 그리심 산은 태양을 바라볼 때 오른 쪽이고, 에발산은 왼쪽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에게 오른 쪽은 축복을, 왼쪽은 저주를 상징합니다. 요컨대, 그리심 산은 축복의 산이요 에발 산은 저주의 산인 것입니다.
이 두 산에 이스라엘 12 지파를 여섯씩 두 파트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레위인 제사장들이 법궤(하나님의 임재 상징)를 메고 섭니다. 이것은 백성들 앞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의미합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향해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양쪽에서 백성들이 “아멘!”하며 화답합니다. 이런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축복과 저주의 공식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동일한 죄인으로서 말씀대로 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축복의 공식대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삶의 3 단계 : 말씀 사모, 말씀 경청, 말씀 실천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면 다음의 3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① 말씀 사모 :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기계적으로 순종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고 맹종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맹종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격적인 존재로 스스로 자진해서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자유 의지입니다. 이것이 다른 피조물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요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열대야로 고생했던 적이 바로 몇 시간 전 같은데,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코스모스도 여기저기 피기 시작합니다. 절기를 따라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 순종하는구나!
반면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말씀에 지겹도록 불순종합니다. 죄성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은 더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변화된 인간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죠.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돈으로 권력으로 강제로 데려옵니다. 복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죠.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화초가 좋아도 마음을 주는 인간보다는 못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주지 못하는 피조물보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인간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혹시라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말씀이 너무 흔해서 그런가요? 그 가치를 소홀히 여깁니다. 오히려 멀리 합니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부족한 기갈 현상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말씀을 사모합 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중국인 윈 형제의 체험담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예수를 믿고 지하 교회 중심을 활동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수없이 핍박 받고 투옥되다가 결국 서방 세계로 탈출했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 성경에 관한 것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그가 예수 믿게 되니까 무엇보다 성경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먼 마을에 성경 갖고 있는 사람의 소문을 듣고 밤새 달려갑니다. 보여 달라고 통사정합니다. 멀리서 보기만 하겠다며. 그런데 무엇이 아까운지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성경을 갖고 싶으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실망한 그는 돌아와서 금식 기도를 합니다. 그러던 중 천사가 와서 성경을 한 권 전해줍니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런 기적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성경을 잃어버릴까봐 아예 통째로 암송합니다. 그리고 지하교회에 초청받아 가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설교도 하지 않고 그냥 암송한 성경 구절을 줄줄 외웁니다. 그런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뜨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 경청 :
그 다음으로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씀을 잘못 들으면 실천해도 그것은 불순종이요 오히려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얘, 이 꽃병 좀 부셔 와라!” 순진한 아이는 이 말을 부숴 오라는 뜻으로 잘못 알아듣고 꽃병을 깨드려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한 결과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본래 쉬운 말로 기록되었지만, 지금은 시대의 차이, 문화와 언어의 차이 등으로 인해 꽤 어렵습니다. 단순히 읽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교회의 성경 강좌와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순종을 위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③ 말씀 실천 :
말씀을 경청하고 잘 깨달아도 아직은 완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깨달은 말씀을 그 뜻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손해볼까봐 그런 겁니다. 잘못될까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그분이 말씀하시는 건데 어떻게 잘못되고, 손해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전적인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이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손해 봤나요? 아닙니다. 이삭을 돌려받고, 아브라함 자신은 물론이고 자손 대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오히려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입니다.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원주민에게 성경을 번역해서 가르치는 번역선교사입니다. 누가복음을 처음부터 몇 절씩 번역해서 가르치는데, 눅6:30에 이르러 고민에 빠졌습니다.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 이 말씀을 가르치면 분명히 그들의 모습으로 보건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요구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고 슬쩍 건너뜁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계속 양심의 가책을 줍니다. 결국 다시 돌아가 그 구절을 번역해서 가르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기적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감동을 받고 가져갔던 물건을 자시 갖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은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당신은 정말 하나님이 보낸 분이십니다. 당신을 보니까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손해 볼 것 같았으나 오히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의무가 아닙니다. 사실은 특권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을 위한 보호 장치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거하는 것, 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성경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할 때, 특별히 말씀에 순종할 때 성취됩니다. 금광이 있는데 캐지 않으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마치 그것과 같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합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마음속에 잘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심 산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합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공식대로 살아 그 공식대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말씀을 사모하시고, 경청하시고, 아멘 하며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처럼 충성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 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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