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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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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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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나무위키

김해 김씨가 김(金)자를 성씨 글자로 삼은 이유는 삼국유사에서 개황력을 인용해, 시조 수로왕이 금으로 된 알(金卵)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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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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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인지, 혹시라도 가야의 왕족 성씨인 …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설화에 따른 특징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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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1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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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해김씨는 정말 ‘그곳’에 점이 있어? [브레이크 고장 난 …

[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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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morningcc.com

Date Published: 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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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 김(金)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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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unnibege.co

Date Published: 5/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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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여주시사

여주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참판공파(參判公派)와 안경공파(安敬公派)로 나뉜다. 참판공파와 안경공파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51세 김녕군(金寧君) 목경(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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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oju.go.kr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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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친구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 인사이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대한민국 최대의 성씨 집단, 김해 김(金)씨.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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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nsight.co.kr

Date Published: 5/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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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점 있는 이야기 – 지역N문화

들어보니까 거기 맞겠더라구. 왜 그러냐면 저 우리나라에 저기 옛날에 단군, 기자 천년 단군 천년 그건 저기 [청취불능] 삼황오제라는게 생겨가지구 이제 그때부터는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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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cms.nculture.org

Date Published: 9/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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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등재 안내 – 김해김씨 삼현파 대동보 편찬위원회

… 족보 등재”는 각 문중마다 정한 일정한 형식에 의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절차와 방법에 의하여 그 문중 족보의 해당 선조 밑에 기록 관리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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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amhyeonpa.org

Date Published: 3/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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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해 김씨 특징

  • Author: STB 상생방송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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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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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역사 [ 편집 ]

가락국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아홉 명의 촌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주색 밧줄에 붉은 보자기에 쌓인 금합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여섯개 황금 알 중에 제일 먼저 나온 아이를 수로(首露)라 하고 가락국의 왕이 되니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관가야는 5세기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 귀족이 된 가락국의 마지막 왕으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되는 구형왕(仇衡王)은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상등의 작위를 받고, 금관국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그의 세 아들 중 차남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최고의 관등인 각간(角干)을 지냈고, 신라의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백제와 여려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고,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고 각간(角干)으로 제수 받았으며, 김서현의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김씨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해 왔다. 이런 신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의 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1][2]

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에 속하며,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3][4]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본관 [ 편집 ]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 일대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 梁山)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고, 1918년에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으로 통합되었다. 1931년에는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김해군의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 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과 통합하여 김해시가 되었다.

세계도 [ 편집 ]

분파 [ 편집 ]

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항렬자 [ 편집 ]

경파(京派, 중시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67세 18세

68세 19세

69세 20세

70세 21세

71세 22세

72세 23세

73세 24세

74세 25세

75세 26세

76세 27세

77세 28세

78세 29세

79세 30세

80세 31세

81세 32세

82세 33세

83세 口현(鉉) 제(濟) 口식(植) 현(顯) 口배(培) 종(鍾)

석(錫) 口태(泰)

口수(洙) 영(榮)

동(東) 口겸(謙)

口섭(燮) 재(載)

재(在) 口진(鎭) 호(浩) 口근(根) 병(炳)

성(性) 口곤(坤)

口용(用) 호(鎬) 口순(淳)

사군파(四君派, 중시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67세 18세

68세 19세

69세 20세

70세 21세

71세 22세

72세 23세

73세 24세

74세 25세

75세 26세

76세 27세

77세 28세

78세 29세

79세 30세

80세 31세

81세 32세

82세 33세

83세 34세

84세 35세

85세 36세

86세 37세

87세 38세

88세 석(錫) 口태(泰) 상(相) 口현(炫) 재(在) 口호(鎬) 영(永) 口식(植) 형(炯) 口규(奎) 용(鎔) 口순(淳) 동(東) 口훈(勳) 중(重) 口회(會) 원(源) 口주(柱) 찬(燦) 口기(基) 종(鍾) 口섭(涉)

삼현파(三賢派, 중시조로 1세, 시조로 1세)

16세

64세 17세

65세 18세

66세 19세

67세 20세

68세 21세

69세 22세

70세 23세

71세 24세

72세 25세

73세 26세

74세 27세

75세 28세

76세 29세

77세 30세

78세 31세

79세 32세

80세 33세

81세 34세

82세 35세

83세 36세

84세 현(顯) 재(再) 국(國)

口규(圭) 창(昌) 口두(斗) 용(容) 口곤(坤) 종(鍾)

진(鎭) 口수(洙)

口태(泰) 상(相)

동(東) 口희(熙)

口환(煥)

정(廷)

재(在) 口호(鎬)

口진(鎭) 영(永)

문(汶) 口근(根)

口표(杓) 병(炳)

경(炅) 口채(埰)

口기(基) 석(錫)

명(銘) 홍(洪)

순(淳) 주(柱)

계(桂) 口하(夏)

口열(烈) 한림공파(翰林公派) 19세

72세 20세

73세 21세

74세 22세

75세 23세

76세 24세

77세 25세

78세 26세

79세 27세

80세 28세

81세 29세

82세 30세

83세 31세

84세 32세

85세 口원(源) 봉(鳳) 口병(炳) 녕(寧) 口성(成) 범(範) 口강(康) 재(宰) 口정(廷) 규(揆) 口만(萬) 원(元) 口병(柄) 口정(汀)

문경공파(文敬公派, 중시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71세 18세

72세 19세

73세 20세

74세 21세

75세 22세

76세 23세

77세 24세

78세 25세

79세 26세

80세 27세

81세 28세

82세 29세

83세 30세

84세 31세

85세 32세

86세 항(抗) 口후(厚) 하(夏) 口관(寬) 영(永) 口모(模) 희(熙) 口재(載) 용(鏞) 口태(泰) 래(來) 口섭(燮) 규(奎) 口련(鍊) 홍(洪) 口표(杓)

과거 급제자 [ 편집 ]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인물 [ 편집 ]

신라 [ 편집 ]

고려 [ 편집 ]

김상좌(金商佐) :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김관(金管) :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키는 등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다. 충혜왕의 시신과 함께 고려로 귀국하였다.

: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키는 등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다. 충혜왕의 시신과 함께 고려로 귀국하였다. 김목경(金牧卿) : 충혜왕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 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습니다.

: 충혜왕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 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습니다. 김보(金普) :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김유(金庾) :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김저(金佇) :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김진문(金振門) :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께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께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김만희(金萬希): 조선 개국에 반대한 이유로 제주에 유배되었는데, 스스로 고려유민이라 칭하며 절의 지켰다. 제주 삼절신(三節臣)이라 불린다.

조선 [ 편집 ]

일제강점기 [ 편집 ]

김두봉(金枓奉) : 광문회(光文會)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 사업에도 참여한 한글학자.

: 광문회(光文會)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 사업에도 참여한 한글학자. 김원봉(金元鳳) :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광복군 부사령관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 위원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광복군 부사령관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 위원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 : 1920년에 상하이(上海)로 망명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 자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에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격전 끝에 자결한 독립운동가

: 1920년에 상하이(上海)로 망명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 자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에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격전 끝에 자결한 독립운동가 김시범(金時範) : 조천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동지를 규합해 1919년 3월 21일 조천 미밋동산(현 조천만세동산)에서 1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 조천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동지를 규합해 1919년 3월 21일 조천 미밋동산(현 조천만세동산)에서 1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 투옥되었다. 김영랑(金永郞): 일제강점기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독을 차고」 등을 저술한 시인.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 편집 ]

사당 [ 편집 ]

숭선전(崇善殿) : 시조 수로왕·보주태후 휘 황옥 배향

숭안전(崇安殿) : 가락 2대 ~ 9대 왕과 왕후 배향

덕양전(德讓殿) : 양왕·계화왕후 배향

숭무전(崇武殿) : 흥무왕 김유신·지소부인 배향

왕실과의 인척 관계 [ 편집 ]

신라 [ 편집 ]

신라 태종무열왕 왕비 문명왕후

신라 태종무열왕 후궁 영창부인

신라 태종무열왕 부마 김유신

신라 문무왕 후궁 신광부인

신라 신무왕 부마 김경주

조선 [ 편집 ]

인구 [ 편집 ]

2000년 1,295,080가구 4,124,934명

2015년 4,456,700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구분 [ 편집 ]

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라고 한다.

분가 [ 편집 ]

분적설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 김유신의 적손인 김윤중(金允中)이 성덕왕 때 일반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김유신의 현손 김장청(金長淸) 역시,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郞)을 지냈을 뿐이다. 김융(金融)의 난과 관련 있어 보인다. ↑ 김웅원(金雄元)이 이사도 의 난을 진압하고 이어 김헌창 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신무왕 의 사돈이 된 것으로 보아 몰락하였던 김유신 의 가계가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 (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 연산조의 학자 성현 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 고려 충정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 (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 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다. ↑ 조선 세조 즉위시에 좌익원종공신 (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1471년 (성종 2) 전통례원상례(前通禮院相禮)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여러 읍의 실농(失農)을 살펴 흉년을 구제하고 도둑들의 유무와 농민들의 질병을 보살폈다. ↑ 고려 시대의 무신이다. 충혜왕 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호종한 공신이며, 역적을 꾀하는 조일신을 잡아 목을 베어 죽이는 등 조정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 예조참의(禮曹參議), 호조참의(戶曹參議)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의 벼슬을 지냈다. 호남백충청감사(湖南伯忠淸監司), 병조참판가의대부(兵曹參判嘉義大夫), 한성부 좌윤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동지의금부사(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副摠管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 파의 이름부터가 후덜덜한데, 2002년에 복자 김진후 비오를 시조로 하여 분파하였다. 복자 김진후 비오의 증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해 성인 3명, 복자 2명을 배출하고 십수명의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 1362년(공민왕 11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로 서북면병마사가 되고, 이듬해 홍건적 을 물리친 공으로 인하여 이등공신이 되었다. 신돈 의 장인이므로 신돈이 처형된뒤 공민왕 20년 7월에 처형되었다. ↑ 조선 세종 때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할 때 장영실 (蔣英實)과 함께 간의대(簡儀臺), 자격루(自擊漏), 혼천의(渾天儀)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한다. ↑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켰다. 1289년 안향 과 함께 충선왕 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가서 안향 과 함께 『주자 전서(朱子全書)』를 수록하여 유학(儒學)을 보급하였다. ↑ 광해군 때 폐모론에 불참하여 면직되자 청빈하게 여생을 마쳤으며,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 조선 전기 문신. 평안도 도사, 고령현감 등의 외관직으로 나갔다가 좌익원종공신 3등에 책록된 뒤 의금부 진무에 오르고 이어 오위도총부 경력을 역임했다. 벼슬을 마다하고 부모의 봉양에만 정성을 쏟았으며 성품이 단아, 청렴했다. ↑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내사문하성에 소속된 종2품), 문하시랑,대제학을 역임하면서 목은 이색 , 포은 정몽주 등과 교류하며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을 세웠으며, 최영 (崔瑩)과 함께 기철 일당과 결탁한 최유 일당의 군사를 괴멸 시켰다. 이로 인해 일등공신이 되고 왕은 주석신(柱石臣)이라 칭했다. ↑ 무장 김씨(茂長金氏)의 시조. 고려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졌고, 1375년 공민왕이 서거한 뒤 벼슬을 버리고 장사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 세종·문종·단종에 이르기까지 집현전의 학사로 있었으며, 단종이 폐위되고 의성 봉강리에 내려와 은거하였다. 단종을 향한 충의를 지켰으며,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으로 여생을 마쳤다. ↑ 1375년 이첨 (李詹), 전녹생(田祿生), 정몽주 (鄭夢周) 등과 이인임 (李仁任)의 친원 정책을 반대하다가 김해 퇴은에 유배되었다. 1388년(창왕 1) 위화도 회군 이성계 (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후에 김해 퇴은으로 낙향하였다. ↑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지평 · 의성현령 등을 역임하고, 집현전권지학유를 지냈다. 문장 · 행의로 이름이 높았으며, 사림에서 사당을 세워 제향하였다. ↑ 승문원교리로서 조운사종사관이 되어 경상도 군량미 10만 석을 함경도로 운송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어 홍문관부교리로서《세조실록》,《예종실록》 편찬에 기주관으로 참여하였고, 장령 · 응교 등을 역임한 뒤 외직으로 나가 뛰어난 치적을 올렸으며, 사표로 추천되었다. ↑ 전리총랑(典理總郞)·보문각직제학지교를 거쳐 서해도안무사·성균좨주겸의랑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 이존오(李存吾)가 1366년(공민왕 15) 신돈 배척 상소를 올릴 때 함께 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후 신돈이 제거되자 복직되어 찬성사를 역임하고 삼중대광 도첨의좌정승까지 올랐으나 사임하고 낙향하여 후진을 가르쳤다. 그는 새로운 왕조 조선 에 협력하지 않고 신정권을 끝까지 반대하자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기획] 김해김씨는 정말 ‘그곳’에 점이 있어? [브레이크 고장 난 박기자]

[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하고자 이등병 때 육군 인사 참모에게 전화해 원활히 처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주제들을 깊이 파고드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김해김씨’는 그곳에 점이 있어?”

김해김씨 남자들의 그곳에 점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사진=’웃긴대학’ 갈무리/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웃긴대학’의 게시판에 ‘진짜 이상한 말 들었는데 진위 여부 확인 가능해?’ 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에서 작성자 만만*** 씨는 “김해김씨인 남자들은 그곳(순화된 표현)에 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인지 궁금해”라고 의문을 표했다.

자신이 김해김씨라고 밝힌 맥** 씨는 댓글에 “김해김씨인데 진짜로 점이 있다”며 “나는 그냥 애교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전적인 요인일 수도 있다니 웃기다”라고 적었다.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조사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실마리는 김해김씨의 시초인 김수로왕의 설화였다.

이 설화는 ‘가야의 김수로왕이 폭우로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노인을 위해 남근을 세워 강을 건너게 해 주었고, 강을 건넌 노인이 담뱃대를 수로왕의 남근에 톡 쳐서 상처가 남았는데 이 상처가 점이 되어 김해김씨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라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전에는 해당 설화가 없었다. 사진=한국민족대백과 제공/굿모닝충청=박종혁 수습기자

이 설화의 출처 확인을 위해 삼국유사의 가락국(가야)전을 찾아봤으나 유사하거나 같은 내용은 없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제공한 가락국전 구지가의 해석 중에서 남근과 관련된 표현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라는 문구에서 ‘머리’는 남근(男根)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었다.

김수로왕의 담뱃대 관련 설화가 사실이 아닌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금관가야는 532년, 대가야는 562년에 각각 멸망했으나, 우리나라의 첫 흡연자는 1587년생 태어난 ‘장유’ 씨로 가야의 건국 시기와 담배도입 시기는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설화를 통한 탐색 실패에 굴하지 않고 “김해김씨가 정말로 그곳에 점이 많다면 통계적으로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생겨 소규모 연구를 해 보기로 했다.

연구 설계 관련 도움을 준 익명의 심리학 석사는 “표본집단의 수가 적어서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점을 주의해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구글 드라이브 설문조사 예시. 사진=제공/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조사를 위해 구글 드라이브 설문 기능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빅데이터(이하 딕데이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딕데이터 취합은 ‘블라인드’, ‘뽐뿌’, ‘웃긴대학’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으며, 총 130여 명의 성인 남녀가 참여했다.

여담으로 ‘김해김씨’ 종친회에 협조를 구하려고 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상관분석 결과 김해김씨는 다른 성씨보다 생식기에 점이 있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딕데이터 분석결과 ‘김해김씨’ 중 87.3%가 생식기에 점이 있었고, 그 외 다른 성씨들은 68.6%가 점이 있었다.

상관관계 분석 결과 이 조사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으며, ‘김해김씨’와 ‘그 외 다른 성씨’는 ‘생식기의 점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통계적으로 ’김해김씨는 다른 성씨보다 생식기에 점이 있을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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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 김(金)씨이다.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 한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모두가 가야 수로왕의 진짜 후손일까?

많은 연구가들은 구한말 등 사회가 혼란하던 시대에 사고판 성씨와 족보일거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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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인지, 혹시라도 가야의 왕족 성씨인 김해 김씨 족보를 산 하층 계급의 후손인지 알 수 있는 간단하고 재밌는 방법이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설화에 따른 특징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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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재미로 한 번쯤 확인 해 볼 만하다.

바로 생식기에 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김해 김씨 후손은 모두 생식기에 점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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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덧붙는다.

그 옛날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야의 수로왕은 남근이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수로왕이 여행을 떠난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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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수로왕은 남근을 세워 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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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넌 노인은 “고놈 참 용하네” 하며 들고 있던 담뱃대로 수로왕의 남근을 살짝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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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의 불똥이 떨어져 상처가 돼 점으로 남았다.

이후 김해 김씨의 후손은 거진 국부에 점을 달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설화도 있다.

어느 날 가야에 큰불이 나 모든 백성이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불길은 거세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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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로왕이 불이 난 자리에 오줌발을 쏘자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했지만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효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도 치마폭을 걷어붙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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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불이 난 곳을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왕과 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이후 왕과 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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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식이 태어나면 김씨 식구들이 모두 몰려와 갓난아기의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주부들의 경험담도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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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김해 김씨라면 재미삼아 자신이 왕족의 후손인지 확인해 보자.

김해 김씨

여주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참판공파(參判公派)와 안경공파(安敬公派)로 나뉜다. 참판공파와 안경공파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51세 김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6세손인 56세 진손(震孫)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소위 경사파(京四派)의 하나다. 네 아들의 이름은 영견(永堅), 영서(永瑞), 영정(永貞), 영순(永純)으로 각기 참판공파(參判公派), 횡성공파(橫城公派), 안경공파(安敬公派), 그리고 서윤공파(庶尹公派, 또는 석성공파)의 파조가 된다.

참판공 영견의 6세손 62세 덕승(德承)의 세 아들은 홍경(洪慶), 홍명(洪命), 홍복(洪福)인데 홍경의 둘째아들이 충정공(忠靖公) 우항(宇杭, 1649~1723, 호는 甲峯)으로 우의정을 지냈다. 여주로의 입향은 17세기 후반으로 셋째 김홍복(1649~1698, 호는 東園)에서 시작된다. 원래는 장단(長湍)이 이들의 터전으로 그가 여주목사를 지낸 것이 입향의 계기가 된 듯하다. 그러나 족보를 보면 그의 증손인 66세 형조(亨祚) 때부터 주내면, 즉 여주시 점봉동 웅곡(雄谷)에 묘를 썼다.

안경공파의 경우는 안경공 영정(1437~1509, 묘는 長湍 梅峴里)의 7세손 63세 대민(大敏, 1684~1745)이 용인에서 강천면 적금리(赤今里) 신대촌(新垈村)에 입향하면서 후손이 퍼졌다. 강천면 이호리에 선영이 있고, 가남읍 태평리와 북내면 등에도 분포한다.

『조선의 성』에 나온 자료를 참고하면 김해 김씨는 강천면 적금리에 24호가 산다고 되어 있다.

“‘김해 김씨’ 친구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가야 김수로 왕과 허황옥 왕비 / 경남관광협회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대한민국 최대의 성씨 집단, 김해 김(金)씨.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서울 시내에서 돌을 던지면 십중팔구 김해 김씨가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출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당신이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인지, 혹시라도 가야의 왕족 성씨인 김해 김씨 족보를 산 하층 계급의 후손인지 알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방법이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재미로 한 번쯤 체크해보자. 딱 하나 필요한 준비물은 당신의 생식기다.

일설에 따르면 김해 김씨 후손은 생식기에 점이 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SNL 코리아’

그 옛날 가야의 수로왕은 남근이 크기로 유명했다. 커도 너무 컸다. 커다란 수로왕이 여행을 떠난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모습을 본 수로왕은 남근을 세워 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다리를 건넌 노인은 “고놈 참 용하네” 하며 들고 있던 담뱃대를 수로왕의 남근에 톡 쳤는데, 이때 불똥이 떨어져 상처가 돼 점으로 남았다. 이후 김해 김씨의 후손은 거진 국부에 점을 달게 됐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은 물론 수로왕이다.

어느 날 가야에 큰불이 났다. 모든 백성이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수로왕이 오줌발을 불이 난 자리에 쏘자 그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했지만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효력이 있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도 치마폭을 걷어붙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불을 꺼뜨렸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ole.com

부부는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왕과 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이후 왕과 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에 관한 전설이다.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증거는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설을 믿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자식이 태어나면 김씨 식구들이 모두 몰려와 갓난아기의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주부들의 경험담도 있다.

또 속설은 지금까지도 유효해서 확인해 본 김씨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점이 있는 경우가 의외로 꽤 많다고.

부계 쪽이든, 모계 쪽이든 당신이 김해 김씨의 핏줄이라면 한 번 은근슬쩍 확인해보자. 재미 삼아 말이다. 점이 있다면, 당신은 그 옛날 왕족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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