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 편 주석 | [하루 한 장] 시편119편_여호와의 율법을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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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5 [하루 한 장]\”여호와의 율법을\” (시119편)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시119편은 가장 긴 시편이자
철저한 답관체 시편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개 순서대로
한 개에 8절씩 모두 176절이
철저하게 구성된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교하며 넓고 깊은지
말씀의 다양성과 정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그래서 176절 각각 모두에
하나님의 말씀이란 단어가
여러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그중 첫 번째 단락인 8절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누리는
행복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지식이나 문자가 아니라
우리가 삶으로 살아낼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삶의 지침입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살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가슴 벅찬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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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해설 – 옥스퍼드 주석 : 네이버 블로그

시편 119편은 독일어역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과 사랑 및 그 말씀의 능력과 활용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황금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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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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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시편 119편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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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시편 1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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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기쁨(시편 119편 강해) – 두란노몰

말씀의 기쁨(시편 119편 강해). 크리스토퍼 애쉬(Christopher Ash) 지음;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Scriputure Union)|;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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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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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119 편 주석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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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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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해설 – 옥스퍼드 주석

시편 119편은 독일어역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과 사랑 및 그 말씀의 능력과 활용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황금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러한 본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잘 표출되어 있는 시이며 시편 분류상 지혜시에 속한다.

그런데 본시의 저자가 누군지, 그리고 언제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본시의 저자와 저작 시기에 대하여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혹자는 본시 가운데서 발견되는 탁월한 문체와 말씀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긴 내용 등으로 보아 시편의 대표적 저자인 다윗이 지은 것으로 본다. 그리고 본시 가운데 다윗의 인생 가운데 처한 위기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19, 23, 46, 141, 161 절)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받을 때나 압살롬의 반역시 지은 것으로 그 저작 시기나 배경을 구체화시키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본시 전반에 흐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시인의 애절한 열정을 근거로 하여 포로기 이후 시대에 활동했으며 율법에 능통하였던 학사 에스라의 저작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경건한 신앙 회복 운동이 일어났던 마카비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본시에는 저자나 저작 시기와 관련된 결정적 내용이 제시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모든 견해는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한편 이러한 본시는 분량이나 중요성, 그리고 그 구성 등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1. 먼저 본시는 그 길이가 성경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 전체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

이러한 본시는 이 땅에서의 인생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둔 것임을 다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집대성인 성경 전체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본시가 신구약 성경 전체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 다음으로 본시는 비록 지혜시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시편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문학적 형식 곧 찬양, 애가, 기도 및 간구, 지혜, 호소 등의 요소가 나타나는 종합시라는 점에서와 인간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비애락(喜悲哀樂)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3.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구성된 답관체시라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

답관체(踏冠體, acrostic)란 문자적으로 ‘머리를 밟아가는 체’라는 뜻으로, 한 시의 행(行)이나 연(聯)의 첫 머리에 알파벳 순서로 된 단어가 규칙적으로 등장하도록 시를 지어 결국 시의 각 행이나 연의 첫 머리가 모든 알파벳을 순서대로 망라하게 되는 정형시(定型詩)의 한 형식을 말한다. 이러한 답관체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알파벳을 규칙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시를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시어들이 정형에 맞도록 절제되고 조화됨으로써 균제미도 수반한 시문학 형식이다. 특히 이러한 답관체시는 알파벳이 연속하여 나오는 것과 관련해 자연적으로 규칙적인 운율, 특히 두운이 형성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시를 쉽게 외우고 또 노래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시편에는 이러한 답관체시가 본시를 포함하여 모두 아홉 편 등장한다(9, 10, 25, 34, 37, 111, 112, 145편). 이들 아홉 편의 답관체 시들 가운데 본시를 제외한 다른 시들은 알파뱃 전체를 망라하지 않거나 일부가 중복되는 불완전한 답관체시이다. 이에 반하여 본시는 매우 정교한 짜임새를 보여주는 완벽한 답관체시이다.

즉 본시는 총 176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덟 절을 한 연(聯)으로 하여 팔진법(Octonary)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전체 22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연으로부터 마지막 22연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뱃의 순서를 따르고 있고, 한 연에 속하는 여덟 절 곧 한 연의 각 행의 초성(初聲)은 모두 해당 연의 알파벳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짜임새 있는 본시의 구성은 그야말로 답관체시의 전형이 무엇이며 그 극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시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혹자는 “오랫동안 조용한 시간에 한뜸한뜸 수를 놓듯이, 마치 숙련된 장인이 여가를 즐기면서 만든 작품과 같다”라고 평하였는데(C.S. Lewis) 이는 본시가 얼마나 탁월하고도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4. 이외에도 119편은 전체 176절 가운데 84.90.122.132절 단 네 절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절에서 ‘율법’과 관련된 단어가 사용된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전체의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일 주제로 관통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본시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을 지칭하는 표현을 시인은 여덟 개의 용어를 빌어 사용한다. ‘법’, ‘법도’, ‘율례’, ‘계명’, ‘말씀(따바르)’, ‘규례’, ‘말씀(이므라)’, ‘증거’가 그것이다. 혹자들은 이 단어들의 의미를 예리하게 구분해 내고 각 단어 사용의 패턴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인이 이들 각 용어를 구분해서 썼음을 보여주는 특별한 패턴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저자가 히브리 알파벳을 모두 사용하는 답관체 형식에 덧붙여서 히브리어 가운데 ‘말씀’을 가리키는 모든 단어를 망라하여 사용함으로써 본시의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한층 더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히 이렇게 여덟 개의 용어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본시에서 단지 개념적인 것이나 특정한 규칙, 규정 등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본시에서는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순종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바른 관계와 관련되어 이러한 내용이 제시된다(40:6 ; 50:23 ; 51:16,17 ; 141:2). 즉 본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후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을 속박하고 옭아매는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 깊이 뿌리를 내린 것으로 사람의 삶이나 신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사랑, 신뢰, 의지함, 순종함과 같은 인격적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소개되고 강조되는 것이다.

5. 아울러 본시는 그 기본 내용 구조면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119편은 하나님의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향한 찬탄과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복의 열정(Enthusiasm) 토로 및 말씀에 의지한 구원의 간구(Petition)를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 22중으로 열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를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대로 22중으로 열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하고도 전적인 순복의 열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119편은 매연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향한 찬탄과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복의 열정 토로 및 말씀에 의지한 구원의 간구를 반복 열거하고 있지만 그 강조의 주안점에 따라 다시 여덟 문단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16절 : 복과 행실의 기준인 말씀을 향한 사모와 순복의 열정

17-48절 :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말씀에 의지하여 올리는 간구들

49-72절 : 나그네 길의 고난 중에도 변치 않는 말씀 사랑의 열정

73-96절 : 말씀을 신뢰하는 자가 올리는 말씀의 실현으로서의 구원 간구

97-120절 : 명철과 희락의 원천이요 심판의 기준인 말씀 사랑의 열정

121-136절 : 말씀을 지키는 자로서 올리는 구원과 훈육의 간구

137-160절 : 상황을 초극하는 말씀 사모의 열정 토로와 말씀에 의지한 소성의 간구

161-176절 : 말씀을 경애하는 자로서의 열정과 확신 및 말씀을 통한 구원과 인도의 간구

이상에서 보듯이 본시는 말씀에 대한 열정과 구원의 간구가 반복 순환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1-136절까지의 여섯 문단에서는 말씀에 대한 열정과 구원의 간구가 한 문단 씩 교차적으로 삼중 반복 순환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137-176절의 두 문단에서는 말씀에 대한 열정과 구원의 간구가 각 문단 안에서 반복 순환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본시는 그 형식과 구조,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탁월하여 히브리 시문학의 백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경건하고 열심 있는 갈망과 영혼의 내면적 울림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에 적극 순종하고자하는 헌신의 마음을 갖게 한다. 결국 본시는 언약 백성에게 참다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총체인 율법에 순종할 때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모든 구약 지혜 문학과 일맥 상통한다. 특히 본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일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잠언과 유사한 형태의 지혜 문학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시 역시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요 역사의 주권자이신 바 그분과 그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 여부가 선악의 기준이라는 도덕론 또는 인식론은 물론 여호와께 대한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인 인간의 자세가 전인격의 영복과 영벌을 역사적으로 또는 존재론적으로 결정하는 절대 유일의 기준이라는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119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 계시의 총체이자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보고라는 사실과 모든 세대 모든 성도들의 인생 행로에 있어서 걸어가는 발의 등불이요 그 길을 비쳐주는 절대 유일의 빛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

출처 ; 옥스퍼드 주석, pp. 389-392.

시편 119편 & 성경주석

<시편 119편 서론>

시 119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자신의 고문과 인도자로 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쁨과 행복을 설명한다. 이 시는 각각 8절씩을 포함한,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를 나타내는 22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답관체 시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첫째 부분의 모든 절이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 알레프(’alep)로 시작되고, 둘째 부분의 모든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둘째 글자 베트(bet)로 시작되고…하는 식이다. 시 119편을 다윗이 지었다는 것에 관해서는 시대의 소망, 398; 복음 교역자, 257; 교회증언 4권, 534을 참조하라. 첫째 절은 진실로 이 시의 나머지 부분이 그것을 기초로 하나의 설교가 되게 하는 내용이다. 122절을 제외한 이 시의 모든 절은 사람에게 드러낸 하나님의 계시를 어느 정도 언급하고 있다. 다음의 것들이 알레프(’alep) 부분에 나타나는데, 곧 “법”, “증거”, “도”, “법도”, “율례”, “계명”이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다른 측면들을 가리킨다(참조 시 19:7 주석). 이런 다양성은 이 시에 더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같은 낱말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것을 막아 준다.

<시편 119편 개역한글>

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3.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38.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 없이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46.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47.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79.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

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좇지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95.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4.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찌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121. 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122.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29.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33.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134. 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135.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138.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139.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147.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0. 악을 좇는 자가 가까이 왔사오니 저희는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나를 구속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5. 구원이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저희가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크오니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7.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신 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161.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와 증거를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찌니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찌니이다

173.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편 119편 성경주석>

119:1 완전하여.

히브리어 트미밈(temimim), “완벽한”, “비난할 점이 없는.” 창 6:9에는 “완전한”으로 번역되었지만, “비난할 점이 없는”이라는 번역이 더 낫다.

119:1 법.

히브리어 토라(torah), “가르침”, “교훈”(참조 신 31:9; 시 19:7; 잠 3:1 주석).

119:1 행하는.

거룩한 생애는 율법 안에서 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119:1 복이 있음이여.

히브리어 아쉬레(’as∨re). 참조 시 1:1 주석. 시편은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함으로써 시작한다.

119:2 증거.

참조 시 19:7 주석.

119:2 전심.

여호와를 섬기는 데 분리된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참조 신 6:5; 마 6:24; 12:30; 눅 16:13).

119:3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즉 그들의 온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119:4 법도.

히브리어 픽쿠딤(piqqudim), “명령”, “교훈.”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지적하는 명확한 명령들을 가리킨다(참조 시 19:8 주석). 하나님의 법도는 주의 깊은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지 나라들에 대한 것이든지 간에 범하면 반드시 손해가 따른다.

119:5 율례.

히브리어 훅킴(h.uqqim), “규정된 것들”, “법규들.” 하카크(h.aqaq), “조각하다”, “새기다”에서 유래되었다.

119:6 계명.

히브리어 미츠보트(mis.wot), “지시”, “명령”(참조 시 19:8 주석).

119:7 판단.

히브리어 미쉬파팀(mis∨pat.im), “결정”, “판결”(참조 시 19:9 주석). 미쉬파팀은 “하나님의 사법적인 결의”라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119:7 배울.

시인은 자기 자신을 율법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으로 나타낸다.

119:8 나를…버리지 마옵소서.

사람이나 나라가 율법을 버리기로 고집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그들을 버려 둘 수밖에 없다(참조 호 4:17). 그는 그의 율법을 버리지 않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119:9 주의 말씀.

시험에서의 승리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은 주께서 사단의 교묘한 유혹을 대항하는 수단이었다(참조 마 4:4, 7, 10).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동일한 영적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심령은 끊임없이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의 방호벽은 무너지고, 사단이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것이다. 단 하루라도 말씀을 연구하고 명상하기를 등한히 하면 심각한 손실이 초래된다.

119:10 떠나지 말게 하소서.

우리는 죄를 대적하는 싸움에서 영혼의 온 힘을 발휘해야 하는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죄는 신성의 제3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참조 시대의 소망, 671).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同意)와 협력 없이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참조 시대의 소망, 668). 우리는 너무도 쉽게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 산기슭의 양떼처럼 우리는 너무도 흔히 길을 잃어버린다(참조 사 53:6).

119:11 두었나이다.

이 절은 진실한 그리스도인 삶의 비결을 간직하고 있다. 말씀에 대해 그저 지식으로만 그치는 것은 우리를 범죄에서 지켜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마음속에 저장될 때 우리는 교활한 원수에 맞서 그를 정복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참조 욥 23:12; 잠 2:1, 9; 렘 31:33).

119:12 찬송을 받으실.

참조 시 63:4 주석.

119:12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들이 될 필요가 있다. 거룩한 교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그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참조 요 14:26; 16:13).

119:13 선포하였으며.

모든 성실한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그의 큰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고 이 복된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그들을 초청할 것이다(참조 신 6:7; 마 12:35).

119:14 모든 재물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신자는 재물을 가진 자가 세상 재물에서 만족을 찾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을 말씀의 보화 안에서 발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금이나 보석들보다 훨씬 더 큰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보화들은 사라지지만 하늘의 보화들은 영원히 존속한다(참조 마 6:19~21).

119:15 내가…묵상하며.

영혼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들을 묵상할 때 이 진리들은 생애의 한 부분이 된다. 숙고하지 않고 빨리 읽으면 별로 유익이 없다. 조용한 명상은 성령께서 일반적인 원칙의 말씀들을 개인적인 경험에 적절히 적용하도록 해 준다. “좀 더 진지한 경건과 신앙적 열성이 없는 한 가지 이유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져 있으므로 명상하거나 성경을 연구하거나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복음 교역자, 125).

명상은 유혹을 방어하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의 교훈으로 충만한 마음은 값싸고 저급한 생각들을 용납할 여지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채운 젊은이는 순결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119:16 즐거워하며.

즐거움은 명상의 결과로서 저절로 생기며, 그것의 결과 혹은 열매가 된다. 율법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고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된다.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페이지들을 읽을 때 즐거움으로 감격한다. 참된 종교는 사람의 능력을 억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지평을 열어 준다.

119:17 후대하여.

참조 시 13:3, 6. 생명과 순종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참조 눅 10:28).

119:18 열어서.

히브리어 갈라(galah), “덮개를 벗기다”, “드러내다.” 시인은 그의 눈을 덮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제거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오한 일들을 우리 육신의 지력(智力)으로 꿰뚫어 볼 수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고전 2:14).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영혼에서 우둔함을 제거해 주고, 오직 홀로 우리에게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계시하실 수 있는 성령을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고전 2:10).

119:19 객.

히브리어 게르(ger), “체재자”, 즉 완전한 시민권이 없이 어떤 장소에 임시로 머무르는 자. 이곳 지상에서의 우리의 체재는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하늘이 우리의 본향이다(참조 히 11:13, 14).

119:19 주의 계명을…숨기지 마소서.

시인은 외국 땅에 있기 때문에 그를 지도할 안내도가 필요하다. 이것을 그는 하나님의 계명에서 발견한다.

119:20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판단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갈망으로 압도당했다. 하나님은 그런 열망을 채워 주기를 기뻐하신다(참조 마 5:7).

119:21 교만하여…꾸짖으셨나이다.

교만한 자들은 오만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자 하지 않는다. 겸손한 자들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다는 것을 안다(렘 10:23). 그들은 그들의 발이 곁길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19:23 방백들.

참조 161절 주석.

119:24 모사.

그의 행위를 비평하고 있는 “방백들”의 권면을 따르는 대신에(23절), 시인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뜻을 표준으로 삼아 그의 생애를 지도하기를 택했다.

119:25 진토에 붙었사오니.

깊은 번민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참조 시 22:29; 44:25).

119:25 소성케 하소서.

곧 “회복케 하소서.”

119:26 나의 행위를 고하매.

시인은 그의 생애의 비밀들을 하나님께 공개했다.

119:27 깨닫게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를 더 깊이 깨닫고자 열망했다. 그는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순종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그것들의 원대한 요구들을 지적으로 파악하기를 갈망했다.

119:28 녹사오니.

히브리어 달라프(dalap). 세 차례만 나타나는 낱말이다. 전 10:18에서는 이 말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로 사용되었고, 욥 16:20에서는 아마도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사용된 것 같다. 「70인역」과 「불가타역」에는 “잠자다”로 되어 있다.

완고함으로 굳어지는 것보다 슬픔으로 녹는 것이 더 낫다. 주께서는 찢겨진 영혼의 상처들을 싸매기를 기뻐하신다. 기도는 그런 슬픔의 시간에 놀라운 축복이 된다.

119:29 거짓 행위.

하나님의 순결한 자녀는 모든 거짓을 외면하고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한다(참조 시 15:2).

119:30 택하고.

시인은 “거짓 행위”(29절)보다는 오히려 성실과 진실의 길을 택했다. 오직 두 길, 즉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만이 있는데, 각 사람은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다.

119:31 밀접하였사오니.

히브리어 다바크(dabaq), “고수하다”, “착 달라붙다.” 다윗의 선택은 변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확고부동하게 남아 있고자 굳게 결심했다.

119:32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아마도 걱정과 압박하고 있는 두려움의 제한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한 말일 것이다. 걱정과 의심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은 완전한 하늘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

119:33 가르치소서.

히브리어 야라(yarah), “가르치다”, “지시하다”, “교육하다.” 명사 토라(torah), 율법은 이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참조 1절 주석). 하나님과 같은 교사는 없다(참조 욥 36:22).

119:33 지키리이다.

신앙적인 경험에서의 불변성에 관한 서약(참조 마 24:13; 빌 1:6).

119:34 나로 깨닫게 하소서.

참조 잠 1:1, 20 주석.

119:34 전심으로.

참조 2절 주석.

119:35 내가…즐거워함이니이다.

참조 시 40:8 주석.

119:36 탐욕.

히브리어 베차(bes.a’), “소득”, “이익.” 잠 1:19; 삿 5:19; 욥 22:3 등에서 이 단어는 “이익”으로 번역되었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 이익을 위한 터무니없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다(참조 골 3:5).

119:37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만일 눈이 쳐다보지 않는다면 마음은 아마 덜 탐하게 될 것이다.

119:38 경외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확증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애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몰두한 자들은 다른 두려움에서 구제된다.

119:38 주의 말씀을…세우소서.

즉 “주의 말씀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확신케 하소서”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할수록 아마도 그들은 더욱 더 그 말씀의 진실성과 영속성(永續性)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참조 시 19:9; 잠 1:7 주석).

119:39 나의…훼방.

만약 시인이 자신의 신앙고백대로 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나타낼 모멸을 말하거나, 그가 곁길로 나갈 때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실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절에서 말한 두려움(히브리어 야가르[yagar])은 시인이 38절에서 말하는 거룩한 두려움(히브리어 이르아[yir’ah])과는 사뭇 다르다.

119:39 선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규례는 선하다. 그러므로 그 규례로 생활을 규제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측에 있는 어떤 비행 때문에 규례의 평판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119:40 주의 의에.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은 자들은 하늘과 동맹을 맺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육체적 및 정신적 능력을 새롭게 받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27).

119:40 나를 소성케 하소서.

시인은 새로운 비상사태를 맞이하기 위하여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소생시키는 힘을 요구했다(참조 37절).

119:41 주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의 길이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오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혼의 구원에 영향을 주는 모든 주제에 관하여 가장 분명한 언어로 말씀하셨다”(Ellen G. White, RH, Feb. 5, 1901).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그 특성들이 작용할 때 죄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주석이다.

119:41 인자하심.

히브리어 헤세드(h.esed), “하나님의 사랑”(참조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신 사랑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데 있다(요일 4:9, 10).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없다면 어떤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119:42 대답할.

참조 벧전 3:15.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참된 경건을 변호하는 가장 큰 논증이 자신 안에 있다(참조 복음 교역자, 122).

119:43 말씀이…떠나지 말게 하소서.

이 절은 42절에 연결된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말할 때, 자유로이 그리고 고상한 신앙고백에 합당한 방법으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119:45 자유롭게.

문자적으로 “넓은 장소에서.” 제한된 것이나 좁아서 답답한 것이 전혀 없다. 율법을 순종하면 자유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참된 거룩함에는 아무런 속박이 없다(참조 잠 3:1 주석).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끊임없는 구속이요 하나님의 품성이 “너희는 하지 말지어다”라는 표현처럼 보인다.

119:46 열왕 앞에.

만왕의 왕과 함께 사는 사람은 세상 통치자의 어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다니엘(단 5:17)과 느헤미야(느 2:1~7)와 바울(행 26:27)의 경험을 비교하라.

119:47 스스로 즐거워하며.

참조 시 40:8 주석. 사람들은 종종 명령을 기쁨과는 반대되는 것을 야기시키기 위하여 계산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그렇지 않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는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되는지를 아신다.

119:48 들고.

아마도 기도하면서 손을 드는 것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참조 시 28:2).

119:49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망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견고한 기초이다(참조 마 7:24~27).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 복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소망을 심으셨다.

119:50 …셨음이니이다(for).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련의 때에 위안이 된다. 위로가 필요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진장한 공급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가 고통을 제거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은 고난당하는 자들로 하여금 고통을 초월하도록 향상시켜 줄 것이다.

119:51 교만한.

히브리어 제딤(zedim), “거만한”, “주제넘은.” 이 불경한 자들은 시인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를 모욕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일에서 벗어나기를 거절했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조롱하는 일을 기뻐하지만, 그 조롱은 전혀 낙담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의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자 하는 결심을 굳게 해 주는 일을 할 것이다.

119:52 옛.

히브리어 올람(‘olam), 반드시 영원에 대한 어떤 언급이 아니고 오래 계속되는 어떤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119:52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과거에 여호와께서 당신의 성도들을 취급하신 일을 회상해 보는 것은 영속적인 위안과 끊임없는 위로의 근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거의 경험에서 주께서 섭리로 지도하신 바를 때때로 회고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것은 지금 필요한 용기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줄 것이다.

119:53 맹렬한 노.

히브리어 잘라파(zal‘apah), “의분.” 시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악인들을 생각할 때, 그는 의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사람들이 그처럼 무감각하고 부주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악인들이 그를 조롱했다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만큼 그에게 그렇게 큰 염려나 놀라움이 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는 결국 그들이 이것 때문에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19:54 나의 나그네.

순례자의 노래들은 외로운 여행자를 즐겁게 한다(참조 교육, 167, 교육, 168). 시인은 그런 찬미가들을 많이 지었고 그것들을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자들이다. 우리의 참본향은 하늘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그 좋은 곳에 대한 노래들을 부를 수 있다. 우리 노래의 주제는 시인의 주제, 즉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놀라운 품성이 되어야 한다.

119:55 밤에.

잠 못 이루는 밤 시간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을 명상함으로써 보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명상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119: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문자적으로 “이것은 내게 속한 것이니.” 즉 “이것이 나에게 왔다”, “이것이 나에게 생겼다.” 시인은 이 위로, 이 용기, 노래할 이 능력, 이 희망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축복은 순종의 길에서 온다.

119:57 나의 분깃.

참조 시 16:5; 73:26.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유는 그의 하나님이다.

119:58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참조 시 45:12.

119:59 내 행위를 생각하고.

자기반성은 그리스도인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형성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엄격하게 비평하고 하나의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도 바로잡지 않은 채 지나가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참조 실물교훈, 331). 많은 사람이 그처럼 쉽게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들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119:60 신속히 하고.

시인은 그의 과거를 살펴보고(참조 59절) 전속력을 다해서 그 자신의 악한 길에서 의의 길로 돌이켰다. 죄의 자각이 우리에게 생길 때 신속하게 순종하는 것이 좋다. 지체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연은 시간에 대해서뿐 아니라 영원에 대해서도 도둑질하는 것이다.

119:61 두루 얽혔을지라도.

문자적으로 “에워쌌을지라도.” 악인들이 함께 단결하여 그를 둘러쌌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시게 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그에게서 떠나가게 할 수도 없었다. 율법에 대한 그의 성실을 의식할 때 그는 원수들의 면전에서 용기를 가졌다.

119:62 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모두가 평화롭고 조용한 동안, 시인은 한밤중 흑암의 시간들을 찬양과 헌신으로 바쳤다(참조 55절 주석).

119:63 동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을 발견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므로 사람은 그가 택하는 친구에 의하여 알려진다.

119:64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하나님의 인자가 발견되지 않는 곳은 없다. 우리는 가정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세력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에서 추방할 수는 없다.

119:65 선대하셨나이다.

시인이 그의 생애를 회고할 때,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좋으셨다고 느낀다. 비록 때때로 그가 어려움과 힘든 경험들을 겪었을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그의 곁에 계셨다.

119:66 명철.

다윗은 인생의 모든 업무에서 예민한 도덕적 분별력과 훌륭한 취향을 원했다. 이 특성들은 그들의 생애를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완전히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들이다.

119:67 고난당하기.

우리의 가장 큰 영적 교훈들과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경험들 중 많은 것은 고난의 골짜기에서 발견된다.

“겨울의 돌풍을 견딘 나무는

더욱 빨리 뿌리를 내린다!”

119:67 그릇 행하였더니.

시인이 통과한 고난은 그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했다(참조 시 38:3 주석).

119:68 선하사.

고난 중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갈 수 있다. 까다로운 불평은 죄되고 부당한 것이다(참조 교회증언 5권, 313~314).

119:69 지어.

문자적으로 “중상하여”, “더럽히어.”

119:70 살쪄 지방 같으나.

이 말은 아마도 악인들의 마음이 영적 생애의 더 훌륭한 것들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관능적 쾌락에 빠졌을지라도 시인은 율법을 명상하는 데서 그의 기쁨을 발견했다.

119:71 내게 유익이라.

비록 악인들이 때때로 고통을 유발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유익한 것으로 바꾸신다(참조 시 38:3 주석). 비록 슬픔과 고난이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경험에서 배운 교훈들은 그리스도인의 품성 계발에 매우 귀중하다.

119:72 금은.

진리의 가치는 돈의 가치와 비교될 수 없다. 세속적인 소유물들은 때때로 사라지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데에서 오는 축복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119:73 세우셨사오니.

참조 신 32:6. 하나님이 그의 육체를 조성해 주셨으므로 다윗은 그의 영적 깨달음을 완성해 달라고 여호와께 구한다.

119:74 기뻐할 것은.

의인들은 하나님이 시인에게 이루어 주신 놀라운 변화를 볼 때 기뻐할 것이다. 희망의 빛을 발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의 근원이 된다.

119:75 의로우시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의의 표준과 완전히 일치한다.

119:75 성실하심.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그는 자비를 베풀려는 목적으로 고난을 통할하신다(참조 애 3:33). 그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견디도록 우리에게 결코 요구하지 않으신다(참조 고전 10:13).

119:76 위안.

참조 50절 주석.

119:77 살게 하소서.

참조 행 17:28.

119:78 교만한.

히브리어 제딤(zedim). 참조 51절 주석.

119:80 완전케 하사.

히브리어 타밈(tamim), “완전한”, “비난할 점이 없는”(참조 1절 주석). 비난할 점이 없는 마음은 친구들의 호평보다 더 중요하다. 경험의 “완전”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온다(롬 8:1~4). 더러움에서부터 마음이 정결해진 자들만이 마지막 날들의 시련에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20). 외적인 고백은 그리스도의 영을 내적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전혀 쓸모가 없다.

119:81 피곤하오나.

히브리어 칼라(kalah), 문자적으로 “끝장나다.” 영혼과 관련시켜 사용될 때 이 표현은 “열망으로 소모되어 버린다”라는 뜻이다.

119:82 피곤하니이다.

히브리어 칼라(kalah). 참조 81절 주석. 기다리는 희망이 늦어지므로 눈도 열망으로 야위어 버렸다.

119:83 가죽 병.

어떤 물그릇들은 고대에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다윗은 자신을 쭈글쭈글하거나 연기에 뒤틀린 가죽 병에 비유한다.

119:84 얼마나.

참조 시 90:10, 12.

119:85 주의 법을 좇지.

즉 주의 법을 따르다.

119:85 웅덩이.

이 비유적 표현은 사냥꾼들이 그들의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용한 웅덩이에서 온 것이다. 원수는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노력하고 있었다(참조 렘 18:20, 22).

119:86 신실하니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의 품성처럼 신실하다(참조 75절 주석).

119:87 거의 멸하였으나.

시인은 사람들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도를 순종하려는 그의 목적에서 그를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고 작심했다. 하나님은 바른 길에서 일탈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존중하신다.

119:88 나로 소성케 하소서.

곧 “나로 소생하게 하소서.”

119:89 굳게 섰사오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구히 굳게 서 있고 변함이 없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을 초월하여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굳게 서 있다. 말씀에 관한 사람들의 가르침은 변할 수 있을지라도 그 말씀은 확고하다.

119:90 땅이 항상 있사오니.

자연의 불변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취급하시는 일에 나타난 그의 성실성의 보증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때에나, 어느 장소에서나 그의 약속에 성실하시다.

119:91 규례.

히브리어 미쉬파팀(mis∨pat.im), “결정”, “판단”(참조 7절 주석). 하늘과 땅은 그것들의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한다. 가장 큰 피조물에서 가장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태양에서 가장 작은 원자(原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한다.

119:92 멸망하였으리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다윗은 그의 쇠해져 가는 정신을 소성시켜 준 새 희망과 새 용기를 받았다. 하늘과 땅을 보존하는 동일한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큰 시련과 가장 깊은 비탄에 잠겨있을 때 그들을 지켜 주고 지탱해 줄 것이다.

119:93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우리가 일단 하나님의 소생시키는 말씀의 능력을 느낀 후에 우리는 결코 우리의 경험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도 낙심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을 잊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119: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참조 요일 3:1.

119:95 생각하겠나이다.

말씀 속에 있는 능력이 시인을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음모에서 승리하게 했다. 만일 영혼들의 원수가 우리의 마음을 거룩한 말씀을 생각하고 명상하는 데서 딴 데로 돌리게 할 수가 없으면 그는 우리와의 싸움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119:96 완전한 것.

히브리어 티클라(tiklah). 여기에만 나오는 말이며, 또한 의미상으로 의심할 여지가 있는 말이다. 티클라는 어근 칼라(kalah), “끝마치다”, “완성하다”, “끝내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경계”, “한계”를 가리킬 수 있는데, 페라스(peras)를 사용하는 「70인역」이 정확하게 이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시인은 모든 인간적인 일에서 한계를 보았으나,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119:96 심히 넓으니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내포되어 있는 위대한 진리들을 명상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보화들은 끝이 없다. 우리는 그 주제를 결코 고갈시킬 수 없다. 그것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완전한 묘사이며, 그 고귀한 표준에 의하여 우리의 생애를 판단할 때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

119:97 내가…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하여 읽고, 듣고, 말하고, 설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교훈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율법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사랑이 거하는 마음에서만 하나님의 율법은 진정으로 존중되고 순종이 이루어질 수 있다.

119:98 보다 지혜롭게.

하나님의 법도로써 생애를 지도하는 자는 진정으로 지혜롭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어떤 진리의 원수도 겨룰 수 없는 실제적인 지혜를 갖게 된다.

119:100 노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 진지하게 전념하는 자들은, 모든 참지혜의 근원에서 마시기 위하여 몸을 굽히지 않는 노(老) 철학자보다 더욱 실제적인 지식을 갖게 된다(참조 98절 주석).

119:101 금하여.

다윗은 그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죄악으로 빠지는 샛길은 막힘이 없고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유혹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다.

119:103 단지요.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먹고 자랐다. 그것은 그에게 꿀보다 더 달았다(참조 시 19:10).

119:104 명철.

진정으로 명철한 사람은 죄와 거짓을 몹시 싫어하고 의와 진리를 사랑한다.

119:105 등.

하나님의 말씀이 길을 비춰 주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영적 암흑 속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 이 빛을 따르는 자는 그의 길이 악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참조 벧후 1:19).

119:106 굳게 정하였나이다.

시인은 율법에 순종하기로 서약했고, 이 서약을 이행하는 데 크게 유의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과 협력하고 모든 가치 있는 마음의 결정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한다.

119:107 고난이 막심하오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난관이나 고난에서의 해방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빌 1:29). 시련은 고상한 품성을 계발한다.

119:108 내 입.

분명히 감사와 기도의 제물. 시인은 그가 그것들을 자원해서 드릴 때 이것들을 받아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물을 기뻐하신다.

119:109 위경에(in my hand).

위험에 대한 비유적 표현(참조 삼상 19:5). 시인은 죄악 가운데서 안전을 찾기 위하여 곁길로 가지 않도록, 그리고 곁길로 나가서 율법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의 결심을 표현한다. 그는 만일 필요하다면 율법을 위하여 그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119:112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참조 시 66:18 주석.

119:114 은신처.

우리가 유혹으로 둘러싸일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다. 원수의 창이 우리에게 던져질 때 우리는 “믿음의 방패”(엡 6:16)로 그것들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침울과 낙담으로 고통받을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119:115 나를 떠날지어다.

참조 고전 5:9; 살후 3:14. 다윗은 악인들의 무리 속에 있게 될까 염려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감화가 영성을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켜 주는 자들과의 우정을 계발하는 것이 좋다.

119:116 나를…살게 하시고.

시인은 하나님의 부양하는 능력에 너무도 의존했기 때문에 그것이 없이는 그가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119:116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우리는 결코 우리의 소망을 부끄럽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소망이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기초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참조 롬 5:5; 빌 1:20; 요일 2:28).

119:117 항상.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온다(참조 유 24절).

119:118 멸시하셨으니.

곧 “거절하셨으니”, “내던져 버리셨으니.” 악인들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멸망시킨다(호 13:9).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119:119 찌끼같이.

지금은 찌끼와 귀금속이 함께 섞여 있다. 그러나 곧 분리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 연단하시는 분이 당신의 정결사업을 이루실 것이다(말 3:3; 참조 마 13:30).

119:120 두려워하나이다.

참조 시 19:9; 잠 1:7 주석.

119:121 공과 의.

다윗은 비난받은 문제에 있어서 그의 양심이 깨끗했다. 그는 동료들을 대할 때 공의롭고자 노력해 왔다.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으로 자신 있게 기대했다. 그는 압제자들의 불의에서 건져내 달라고 위대한 심판자에게 호소했다.

119:122 보증하사.

참조 창 43:9.

119:123 주의 의로운 말씀.

시인은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듣기를 갈망했다. 원수들은 그의 품성을 중상하고 그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공정하게 말씀해 주실 것을 알았다.

119:125 주의 종.

시인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기를 기뻐했다(참조 시 19:11, 13; 27:9; 69:17 등).

119:126 일하실.

악인들이 불순종하는 데 너무도 깊이 빠졌기 때문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에게 신속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고 누구도 멸망시키기를 더디 하신다. 그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를 갈망하신다(참조 겔 33:11; 벧후 3:9).

119:127 정금.

지상의 소유물들 중 가장 좋은 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와는 비교될 수 없다.

119:128 모든 거짓 행위.

진리에 대한 사랑은 거짓에 대한 미움을 동반한다. 진리와 거짓은 서로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오류를 미워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을 때 우리는 죄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Ellen G. White, RH, Mar. 18, 1890).

119:129 기이하므로.

히브리어 플라오트(pela’ot), 기적적인 행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의 계시에 대하여 빈번하게 사용된 말(참조 출 15:11; 시 77:11, 14).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19:130 우둔한 자.

참조 시 19:7. 교훈이 필요한 자들, 자신의 부족을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식별력을 얻는다(참조 잠 1:4 주석).

119:132 베푸시던 대로.

문자적으로 “판단에 따라”, 아마도 “그 권리에 따라”라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께 호소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탄원을 그분께 제시하고 그분의 약속을 주장할 때 기뻐하신다.

119:134 압박.

다윗은 압박이 무엇인지를 경험을 통하여 알았다. 초기 생애 동안에 그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그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을 방해할 어떤 것에서도 구출될 수 있도록 기도했다.

119:135 얼굴로…비취시고.

참조 민 6:25 주석.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를 쳐다볼 정도로 복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침울과 슬픔에서 벗어나 높임을 받을 것이다(참조 고후 3:18).

119:136 시냇물.

하염없는 눈물에 대한 동방의 과장법. 악인들의 죄 때문에 생긴 다윗의 의분(118, 119절)은 눈먼 상태가 되어 있는 그들에 대한 긍휼과 동정으로 바뀌었다.

119:138 명하신.

하나님의 권위가 증거들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들의 창시자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고귀한 명령들은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선포하신 여호와처럼 의롭고 성실하다.

119:139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참조 시 69:9 주석.

119:140 심히 정미하므로.

문자적으로 “대단히 세련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의 혼합이 없다.

119:141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다윗은 기꺼이 자신을 미천하게 여겼다. 위대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평가할 때 결코 관대하지 않다.

119:142 진리.

하나님의 율법은 진실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이고, 진리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 진리이다. 이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은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지만 불순종하는 자들은 오류와 거짓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119:143 나의 즐거움.

시인의 기쁨은 외부환경에 의존해서가 아니고 마음속의 평화, 즉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생긴 평화에서 나온 것이었다.

119:144 영원히.

사람들은 변하는 표준들을 승인하기 위하여 그들의 법을 바꾸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변하지 않는다.

119:144 나로 깨닫게 하사.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어 살 때에만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참조 요 7:17).

119:145 전심으로.

다윗의 열렬한 기도는 그의 온 존재를 열중시킨 갈망에서 나왔다(참조 교회증언, Ⅳ, 534). 마음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하지만 입술의 봉사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119:147 내가 새벽 전에.

즉 “내가 새벽보다 선행(先行)하여.” 새벽녘 이전에 시인은 도움을 구하는 호소를 하나님께 드렸다(참조 막 1:35).

119:148 깨었나이다.

곧 “좀 더 먼저 일어났나이다”(참조 147절 주석). 밤은 보통 삼경(三更)으로 나누어졌다(애 2:19; 참조 삿 7:19; 삼상 11:11 주석). 시인은 스스로를 이 야경(夜更) 동안의 의무를 위해 징집된 자에 비유한다. 그가 정한 시간 전에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했다.

119:149 따라.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따라서가 아니라 완전히 현명한 그분의 섭리의 빛에 따라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119:151 가까이 계시오니.

일종의 반명제(反命題). 악인들은 그들의 유혹과 함께 가까이 다가오고(150절), 하나님도 가까이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돕기 위하여 가까이 계신다.

119: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다윗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었고, 그의 사정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고통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어떤 자녀도 여호와께 헛되이 부르짖은 적이 없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고 바라던 구원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제공하실 것이다(참조 고후 12:7~9).

119:154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시인과 그의 원수들은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옹호자가 되어 논쟁에서 그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19:155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죄인이 악의 길을 따라서 내딛는 매 걸음은 그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부터 더 멀리 옮겨놓는다. 그가 그 길을 바꾸지 않으면, 그는 마침내 자비가 더 이상 머물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된다.

119:156 긍휼.

곧 “동정.”

119:158 슬퍼하였나이다.

히브리어 쿠트(qut.), “혐오감을 느끼다.” 시인이 악인들의 길을 관찰할 때 그는 그들의 행동 때문에 불쾌해졌다.

119:160 강령(beginning).

히브리어 로쉬(ro’s∨), 문자적으로 “선두”, 여기서는 아마도 로쉬가 시 139:17에서 번역된 것처럼 “sum”(총화, 합계. 「개역한글판」에는 “수”(數)로 번역되었다-역자 주)이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119:161 방백들.

참조 23절. 다윗을 동정했어야 할 사람들이 그의 가장 지독한 반대자들 가운데 속했다. 이 존귀한 지도자들은 압제받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고 무력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은 의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그들의 시간을 보냈다.

119:162 많은 탈취물.

참조 사 9:3.

119:164 일곱 번씩.

일곱이란 수는 완전을 의미한다. 시인이 하나님께 드린 찬양은 그의 감정이나 그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았다. 시련을 당할 때나 슬픔 중에서나 기쁠 때나 그의 음성은 감사의 찬양으로 상달되었다.

119:165 큰 평안.

비록 바깥에는 소동과 분쟁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다.

119:165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문자적으로 “그들에게는 거친 돌이 없으리라.”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은 비틀거릴 기회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똑바른 길을 따라 튼튼하고 안정된 발걸음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죄의 샛길로 길을 잘못 들지 않는다.

119:166 내가…바라며.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희망을 고정했다. 그는 구원을 위하여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계명들을 순종하기 위하여 열렬히 노력했다.

119:168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하나님의 눈에 감춰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히 4:13). 우리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께 알려져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119:170 간구.

히브리어 트힌나(teh.innah), “은혜를 위한 간구.”

119:171 발할지니이다.

히브리어 나바(naba’), “거품이 일어 넘치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다.” 시인은 그의 생애와 입술에서 감사의 찬송들이 언제나 나오기를 바란다.

119:172 의로우므로.

계명들은 그 자체가 의로울 뿐 아니라 그것들은 의의 본질이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롬 7:12). 이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의 사본이다. 우리는 그 교훈에 따라 우리의 생애를 꼴지어야 한다.

119:173 택하였사오니.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참조 신 30:19). 다윗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그들의 지침으로 택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119:175 주를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어떤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에 그의 날들을 보내기 위하여 하나님께 장수(長壽)를 구하고 있다.

119:176 잃은 양.

참조 사 53:6. 양이 우리에서 곁길로 빠져나가면 도움 없이는 돌아오는 길을 좀처럼 찾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시인은 금지된 길로 잘못 들어갔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찾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119:176 주의 종을 찾으소서.

선한 목자는 수색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정은 지루하고 힘들고, 길은 거칠고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자는 그의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마 18:12~14; 눅 15:4~7).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메튜 헨리 주석, 시편 119장

119:1 하나님의 백성의 축복(시편 119:1-3)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이 행복한 백성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복이 있으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모두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표현된 것은 우리가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 충분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나 바른 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여기서 올바른 길을 우리 앞에 제시하셨다. 우리는 그 길이 좁고 협착하지만, 행복에 이른다고 확신한다. 축복은 의로운 자들에게 있다. 이제 행복한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해 보자. 1. 하나님의 뜻을 모든 행동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칙에 따라서 모든 생활을 다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들이다(1절). 하나님의 말씀은 일부의 어떤 일이 아니다. 저들의 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의 법이다. 그들은 파괴할 수 없는 그러한 법의 울타리 안에서 행한다. 그들은 그 법의 길을 따라 행하며, 경시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킨다.” 규범에 따라 걸으며, 결코 함부로 걷지 아니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3절)이다. 그는 그 길을 우리에게 증거로 표시해 주었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를 따라 행하도록 제시하였다. 신앙은 결코 토론의 주제로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의 규범이 되게 하려고 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도를 따라 행하지 말고 “주의 도”를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의 도를 따라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욥 23:10, 11; 31:7).

2. 자기들의 신앙에 바르고 성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 실제적인 죄의 오염들로부터 자신을 순수하게 지키며, “그 길에 순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저희의 의도에 진지하고 “그 정신 안에 교활한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실제로 보이는 그대로 선해야 하며, 보이는 그대로 순수해야 한다.

3.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들에게 기초한 신뢰에 진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하나님의 신탁(神託)이 수여된” 사실이 유대인들의 영광이었다. 신탁을 순수하게 보존하며, “그의 증거”를 헤아릴 수 없이 가치 있는 보화로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신탁을 눈동자로 삼고저 세상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들 뒤에 올 자들에게 그것에 관한 지식과 고백을 남겨 두기 위해서 그 신탁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주의 도를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증거” 곧 그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선한 규범을 고수하지 않는 자들은 선한 행실을 오래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든 행동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칙에 따라서 모든 생활을 다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들이다(1절). 하나님의 말씀은 일부의 어떤 일이 아니다. 저들의 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의 법이다. 그들은 파괴할 수 없는 그러한 법의 울타리 안에서 행한다. 그들은 그 법의 길을 따라 행하며, 경시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킨다.” 규범에 따라 걸으며, 결코 함부로 걷지 아니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3절)이다. 그는 그 길을 우리에게 증거로 표시해 주었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를 따라 행하도록 제시하였다. 신앙은 결코 토론의 주제로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의 규범이 되게 하려고 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도를 따라 행하지 말고 “주의 도”를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의 도를 따라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욥 23:10, 11; 31:7).자기들의 신앙에 바르고 성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 실제적인 죄의 오염들로부터 자신을 순수하게 지키며, “그 길에 순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저희의 의도에 진지하고 “그 정신 안에 교활한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실제로 보이는 그대로 선해야 하며, 보이는 그대로 순수해야 한다.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들에게 기초한 신뢰에 진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하나님의 신탁(神託)이 수여된” 사실이 유대인들의 영광이었다. 신탁을 순수하게 보존하며, “그의 증거”를 헤아릴 수 없이 가치 있는 보화로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신탁을 눈동자로 삼고저 세상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들 뒤에 올 자들에게 그것에 관한 지식과 고백을 남겨 두기 위해서 그 신탁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주의 도를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증거” 곧 그의 진리를 지켜야 한다. 선한 규범을 고수하지 않는 자들은 선한 행실을 오래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또는 “여호와의 증거”는 그의 계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언약궤는 “증거의 궤”라고 불리워졌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4.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지고선(至高善)과 최상의 목표로 여기는 자들은 복이 있다. 저희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한다”(2절).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들 자신이나, 그들 자신의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복종에서 영광받으실 수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 전심으로 그를 구하는 자”들의 응답자이며 응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며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으로 분열되었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이다.

5. 모든 죄를 조심스럽게 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3절).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아니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 가운데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의 종이 된 자들처럼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를 행하지도 않고 그것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불의가 하나님의 법을 방해하게 하며, 불의는 결코 하나님의 법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허물을 피하는 양심을 항상 갖도록” 훈련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지고선(至高善)과 최상의 목표로 여기는 자들은 복이 있다. 저희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한다”(2절).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들 자신이나, 그들 자신의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복종에서 영광받으실 수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 전심으로 그를 구하는 자”들의 응답자이며 응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며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으로 분열되었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이다.모든 죄를 조심스럽게 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3절).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아니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 가운데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의 종이 된 자들처럼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를 행하지도 않고 그것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불의가 하나님의 법을 방해하게 하며, 불의는 결코 하나님의 법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허물을 피하는 양심을 항상 갖도록” 훈련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

119:4 주의 율법에 대한 결단(시편 119:4-6) 1. 여기에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가장 높은 의무 아래에 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유혹하는 사탄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든지 말든지 자유대로 하라는 생각과 그것이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믿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으로 인간을 홀린다. 그는 우리의 처음 조상에게 계명을 의심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에서 든든히 서도록 할 것이다. 즉 종교를 우리의 규범으로 삼기 위해서, 그것을 근실히 지키게 하기 위해서, 종교를 우리의 일과로 하고 그것을 주의깊고도 부단하게 상기하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주의 법도를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다”(4절)는 점이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5절). “내 길을 곧게 정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처리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어떠한 일도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법도를 바로 향하게 될 것이다. 선한 사람의 갈망과 기도가 인자하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라. “주께서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를 지키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여 내가 기쁘게 율례를 지키겠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성화의 길도 된다.”

3. 우리가 발견하게 될 위로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의무를 지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6절). 다음을 명심하자.

(1)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것이, 모든 선한 사람의 명백한 성격이다. 그는 계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그것을 그 본으로 삼아, 그것을 따르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하여 지키지 못할 때에는 부끄러워한다. 그는 계명에 견실한 주의를 기울여 경건을 행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계명에 주의한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권위를 지니고 주어졌기 때문이며(약 2:10, 11), 같은 목적,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데에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계명에도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모든 계명에 보편적인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즉 약속과 법전, 금지와 율례의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속 사람과 겉 사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며, 머리와 마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즐겁고 소득있는 일이라도 죄를 금하며,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도 의무를 찾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자들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렇게 행함으로써 저희의 수치를 변경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그의 은총의 보좌에 접근할 담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요일 3:21).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신용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성실은 그들의 명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들의 영혼 안에 깨끗함과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은둔하도록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자기를 성찰하도록 수치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그러한 것들을 저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말한다. 정직한 자들은 그들의 정직함의 위로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사악하다면 내게 괴로움이 닥치듯이 내가 진실하다면 내게 만족이 올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가장 높은 의무 아래에 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유혹하는 사탄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든지 말든지 자유대로 하라는 생각과 그것이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믿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으로 인간을 홀린다. 그는 우리의 처음 조상에게 계명을 의심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에서 든든히 서도록 할 것이다. 즉 종교를 우리의 규범으로 삼기 위해서, 그것을 근실히 지키게 하기 위해서, 종교를 우리의 일과로 하고 그것을 주의깊고도 부단하게 상기하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주의 법도를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다”(4절)는 점이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렇게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5절). “내 길을 곧게 정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처리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어떠한 일도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법도를 바로 향하게 될 것이다. 선한 사람의 갈망과 기도가 인자하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라. “주께서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를 지키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여 내가 기쁘게 율례를 지키겠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성화의 길도 된다.”우리가 발견하게 될 위로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의무를 지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6절). 다음을 명심하자.”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것이, 모든 선한 사람의 명백한 성격이다. 그는 계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그것을 그 본으로 삼아, 그것을 따르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하여 지키지 못할 때에는 부끄러워한다. 그는 계명에 견실한 주의를 기울여 경건을 행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계명에 주의한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권위를 지니고 주어졌기 때문이며(약 2:10, 11), 같은 목적,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데에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계명에도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모든 계명에 보편적인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즉 약속과 법전, 금지와 율례의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속 사람과 겉 사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며, 머리와 마음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즐겁고 소득있는 일이라도 죄를 금하며,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도 의무를 찾는 자들이다.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자들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렇게 행함으로써 저희의 수치를 변경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그의 은총의 보좌에 접근할 담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요일 3:21).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신용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성실은 그들의 명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들의 영혼 안에 깨끗함과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은둔하도록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자기를 성찰하도록 수치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그러한 것들을 저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말한다. 정직한 자들은 그들의 정직함의 위로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사악하다면 내게 괴로움이 닥치듯이 내가 진실하다면 내게 만족이 올 것이다.

119:7 율법을 배우고 지키기를 감사함(시편 119:7,8) Ⅰ. 다윗이 그의 종교에서 자신을 완전케 하려는 노력과 자기의 사업을 잘 경영하려는 노력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그는 많은 것을 알았지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을 알고서 앞으로 나아가 더욱 더 알기를 갈망했다. 완전함이 이 생애 가운데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그것을 향해 도달하려 했다. 그러나 간단히 붙잡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며, 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자가 되기를 목표해야 하며 가장 높은 형태로 올라가기를 계획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모두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성서 안에 있는 능력”을 배우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Ⅱ. 그가 그의 하나님을 배우기로 한 결심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기를 몹시 바랐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에게서 어떤 이익을 보자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즐거운 명상으로 그 자신의 머리를 채우고자 함도 아니었다. 1. 그는 하나님께 그의 배움에 대해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시기 않으면 그가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지도가 특별한 축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이유를 갖는다. 즉 그리스도는 무상 학교를 경영하시면서 돈없이, 대가 없이 가르치시지만, 그는 그의 학도들이 그에게 그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대한 감사를 드릴 것을 기대한다. 확실히 종교와 같이 유익한 천직을 배우는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는 자비인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좋은 과목을 배운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천사들의 과목이요, 하늘의 과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언어와 혀로 찬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찬양하기를 배운 자들만이 이러한 신비를 잘 배운 자들이다. 그리고 그를 마음 속에 모시고 신실하게 예배의 실행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생활 과정에서도 그의 영광을 목표로 삼는 자들도 역 시 그러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정직한자들의 찬양만을 받으신다.

2. 그는 자신을 그러한 배움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였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다.” 우리는 그것들을 배우지 않는 한 지킬 수 없다. 그의 은총에 힘 입어 굳은 결심을 하고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그의 배움에 대해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시기 않으면 그가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지도가 특별한 축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이유를 갖는다. 즉 그리스도는 무상 학교를 경영하시면서 돈없이, 대가 없이 가르치시지만, 그는 그의 학도들이 그에게 그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대한 감사를 드릴 것을 기대한다. 확실히 종교와 같이 유익한 천직을 배우는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는 자비인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좋은 과목을 배운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천사들의 과목이요, 하늘의 과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언어와 혀로 찬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찬양하기를 배운 자들만이 이러한 신비를 잘 배운 자들이다. 그리고 그를 마음 속에 모시고 신실하게 예배의 실행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생활 과정에서도 그의 영광을 목표로 삼는 자들도 역 시 그러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정직한자들의 찬양만을 받으신다.그는 자신을 그러한 배움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였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다.” 우리는 그것들을 배우지 않는 한 지킬 수 없다. 그의 은총에 힘 입어 굳은 결심을 하고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Ⅲ. 자기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가 있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내게서 떠나지 마옵시고 주의 성령과 은총을 내게서 떠나게 하지 마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킬 수 없나이다.”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다면 파멸이 온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면 유혹하는 사탄이 그들을 곤경에 몰아 넣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를 버리시며 나를 버리시려고 위협하시고 잠시 내게서 떠나신다고 하더라도 버리심이 완전하고 결정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 왜냐하면 그것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시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9:9 율법을 따르는 청년의 행실(시편 119:9) 1. 중요한 질문이 여기에서 제기되었다. 다음 세대가 어떤 방법으로 이 세대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깨끗케 한다는 것은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우리 모두가 날 때부터 세상에 지니고 온 원죄(原罪) 이외에도(오늘날까지 우리가 깨끗케 되지 못한 것이지만) 젊은이들이 물들어 있는 많은 특수한 죄들이 있다.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행실을 더럽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청년의 정욕”(딤후 2:22)이라 하겠다. 이것들은 그들의 행실을 하나님께 대적케 하며, 그들 자신들에게도 불명예가 되게 한다. 청년들은 그들의 행실을 깨끗게 하는 데에 관심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들의 생명이 개혁되고 “정욕으로 가득찬 세상에 있는 부패함”으로부터 깨끗케 되고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한 양심과 좋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중요한 질문이 여기에서 제기되었다. 다음 세대가 어떤 방법으로 이 세대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깨끗케 한다는 것은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우리 모두가 날 때부터 세상에 지니고 온 원죄(原罪) 이외에도(오늘날까지 우리가 깨끗케 되지 못한 것이지만) 젊은이들이 물들어 있는 많은 특수한 죄들이 있다.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행실을 더럽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청년의 정욕”(딤후 2:22)이라 하겠다. 이것들은 그들의 행실을 하나님께 대적케 하며, 그들 자신들에게도 불명예가 되게 한다. 청년들은 그들의 행실을 깨끗게 하는 데에 관심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들의 생명이 개혁되고 “정욕으로 가득찬 세상에 있는 부패함”으로부터 깨끗케 되고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한 양심과 좋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거의 극소수의 청년들이 그들의 순결을 회복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들을 찾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을 위해서 질문을 하고 있다. 2.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만족할 만한 대답이 주어졌다. 젊은이들은 효과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 그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의 덕분으로 행복을 누리는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사용될 수 있는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이다.

(1)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아야 하고 거기에 친숙해져 있어야 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굳은 결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방백들의 법이나 철학자들의 도덕보다 그것이 더 젊은이들을 깨끗케 하는 대로 향하게 할 것이다.

(2) 그들은 주의 깊게 그 규칙들을 적용하며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과 시금석으로 삼아 행실을 삼가고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행실 가운데서 틀린 것은 원칙과 표준에 의해서 범례와 범주에 의해서 교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무관심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주의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주목과 우리의 행실에 대한 관찰을 함께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의 파멸은 목표없는 삶이며(또는 전혀 규범이 없는 생활) 거짓된 규범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저희의 발자취를 골몰히 생각하고 성서의 규칙에 따라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저희의 행실이 깨끗케 될 것이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와 영원토록 까지 위로와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만족할 만한 대답이 주어졌다. 젊은이들은 효과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 그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의 덕분으로 행복을 누리는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사용될 수 있는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이다.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아야 하고 거기에 친숙해져 있어야 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굳은 결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방백들의 법이나 철학자들의 도덕보다 그것이 더 젊은이들을 깨끗케 하는 대로 향하게 할 것이다.그들은 주의 깊게 그 규칙들을 적용하며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과 시금석으로 삼아 행실을 삼가고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행실 가운데서 틀린 것은 원칙과 표준에 의해서 범례와 범주에 의해서 교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무관심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주의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주목과 우리의 행실에 대한 관찰을 함께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의 파멸은 목표없는 삶이며(또는 전혀 규범이 없는 생활) 거짓된 규범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저희의 발자취를 골몰히 생각하고 성서의 규칙에 따라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저희의 행실이 깨끗케 될 것이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와 영원토록 까지 위로와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119:10 계명에서 주를 찾는 마음(시편 119:10) 1.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선한 역사에 대한 그의 경험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위로를 취하고, 그에게 간구한다. “내가 주를 찾았나이다. 내가 주를 나의 신탁(神託)으로 찾았고, 주를 나의 행복으로, 나의 하나님으로서 찾았나이다. 백성들은 저희의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직 주를 찾지 못하였다면, 내가 주를 찾겠나이다. 주는 주를 찾는 것이 쓸 데 없다고 내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나이다. 오직 주만을 찾았고 부지런히 주를 찾았나이다.”

2. 그 행사를 보존하기 위한 그의 기도가 있다. “주의 율례를 찾기 위해 나를 향해 오신 주는 내가 그것들을 찾아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가장 선한 자들은 방탕하기 쉬운 성격을 인식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 기쁨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그 계명에서 떨어져 방황하게 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며 우리의 방황을 막아 주는 그의 은총을 하나님께 더욱 진지하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선한 역사에 대한 그의 경험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위로를 취하고, 그에게 간구한다. “내가 주를 찾았나이다. 내가 주를 나의 신탁(神託)으로 찾았고, 주를 나의 행복으로, 나의 하나님으로서 찾았나이다. 백성들은 저희의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직 주를 찾지 못하였다면, 내가 주를 찾겠나이다. 주는 주를 찾는 것이 쓸 데 없다고 내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나이다. 오직 주만을 찾았고 부지런히 주를 찾았나이다.”그 행사를 보존하기 위한 그의 기도가 있다. “주의 율례를 찾기 위해 나를 향해 오신 주는 내가 그것들을 찾아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가장 선한 자들은 방탕하기 쉬운 성격을 인식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 기쁨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그 계명에서 떨어져 방황하게 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며 우리의 방황을 막아 주는 그의 은총을 하나님께 더욱 진지하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119:11 마음에 율법을 정함(시편 119:11) 1. 다윗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한 마지막 본보기가 제시되어 있다. “주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것을 거기에 쌓아 둔 것은 그가 언제라도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경우를 위해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두었으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잃거나 도난당할 두려움을 배제하고자 한다. 만약 그것을 단지 우리들의 집과 손에만 둔다면, 적들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의 머리에만 둔다면 우리의 기억이 잊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가져다 두고 그 표현을 우리의 영혼 속에 남겨 둔다면 그것은 안전하게 될 것이다.

2. 그가 선한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려고 계획한 것이 나타나 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함이라.” 선한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며 그것을 막기 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모든 시험에 “성서에 기록된 바”라는 말로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죄의 지배에 대한 하나님의 율례를 제시하며 그 유혹에 대한 그의 약속과 위협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한 마지막 본보기가 제시되어 있다. “주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것을 거기에 쌓아 둔 것은 그가 언제라도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경우를 위해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두었으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잃거나 도난당할 두려움을 배제하고자 한다. 만약 그것을 단지 우리들의 집과 손에만 둔다면, 적들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의 머리에만 둔다면 우리의 기억이 잊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가져다 두고 그 표현을 우리의 영혼 속에 남겨 둔다면 그것은 안전하게 될 것이다.그가 선한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려고 계획한 것이 나타나 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함이라.” 선한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며 그것을 막기 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모든 시험에 “성서에 기록된 바”라는 말로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죄의 지배에 대한 하나님의 율례를 제시하며 그 유혹에 대한 그의 약속과 위협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19:12 주의 율례를 찬양함(시편 119:12) 1.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는 스스로 무한하게 기쁨 가운데서 행복하시며 나와 나의 예배를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는 저희에 의해서 주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알고 기뻐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나를 도와 주소서. 그리고 나를 용납해 주소서.” 우리는 모든 기도 가운데서 찬양을 곁들여야 할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간구한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를 찬송할 방법을 알게 되고 주가 찬양받으실 분임을 알게 되며 나는 주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는 스스로 무한하게 기쁨 가운데서 행복하시며 나와 나의 예배를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는 저희에 의해서 주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알고 기뻐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나를 도와 주소서. 그리고 나를 용납해 주소서.” 우리는 모든 기도 가운데서 찬양을 곁들여야 할 것이다.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간구한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를 찬송할 방법을 알게 되고 주가 찬양받으실 분임을 알게 되며 나는 주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19:13 하나님의 법도를 즐거워함(시편 119:13-16) Ⅰ. 다윗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표한 존경에서 얻은 위로를 회고한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었다. 1.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교화했다(13절).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나이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명령을 내리고 심판을 하는 왕으로서만, 또는 그의 시편에 의한 예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 담화에서도 그리 행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것을 익숙함으로써 취하는 거룩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주었다. 왜냐하면 “입이 말하는 것은 마음의 충만한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그는 지식으로 선을 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막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두었다. 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 오듯이 “그의 마음의 좋은 보화”로부터 “선한 것을 가져 온다.” 생명의 떡으로 마음이 배불리 먹여진 자들은 그들의 입술로도 많은 것을 먹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교화했다(13절).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나이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명령을 내리고 심판을 하는 왕으로서만, 또는 그의 시편에 의한 예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 담화에서도 그리 행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것을 익숙함으로써 취하는 거룩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주었다. 왜냐하면 “입이 말하는 것은 마음의 충만한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그는 지식으로 선을 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막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두었다. 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 오듯이 “그의 마음의 좋은 보화”로부터 “선한 것을 가져 온다.” 생명의 떡으로 마음이 배불리 먹여진 자들은 그들의 입술로도 많은 것을 먹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것을 간구한다(1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고자 노력하오니 지식을 더하소서.” 그러므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다.” 2. 그는 주의 율례와 더불어 기뻐한다.”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율례를 알고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음을 깨닫고 구하나이다(14절). 내가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의 명상과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그 교훈에 있어서도 그리고 그들이 조롱하고 있는 진정한 경건의 길에서도 주께 부단한 복종을 통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이것을 즐거워하였나이다. 부요함을 증가시키는 세상적인 기쁨보다 더욱 더 즐거워하였나이다. 부요함을 증가시키는 세상적인 기쁨보다 더욱 더 즐거워하였나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도에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아 편히 쉬라.” 참된 종교에 무한한 풍부가 있고,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이 있다. 그는 주의 율례와 더불어 기뻐한다.”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율례를 알고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음을 깨닫고 구하나이다(14절). 내가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의 명상과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그 교훈에 있어서도 그리고 그들이 조롱하고 있는 진정한 경건의 길에서도 주께 부단한 복종을 통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이것을 즐거워하였나이다. 부요함을 증가시키는 세상적인 기쁨보다 더욱 더 즐거워하였나이다. 부요함을 증가시키는 세상적인 기쁨보다 더욱 더 즐거워하였나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도에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아 편히 쉬라.” 참된 종교에 무한한 풍부가 있고,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이 있다. Ⅱ. 거룩한 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애정이 결코 식어지지 않기를 결심하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라”(고후 11:12). 하나님의 도 가운데서 기쁨을 발견한 자들은 그리로 나아가며 지킬 것이다. 1. 다윗은 하나님의 길을 생각하기를 원한다(15절).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라.” 그는 법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뿐만 아니라(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과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한다), 다른 사람들에 선포해야 하는 것을 그 자신의 생각에 소화시키는 고통을 감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사상의 주제이어야 한다.

2. 그는 그것들을 항상 그의 안중에 두기를 원한다. ‘내가 주의 도를 주의하리이다.” 마치 여행자처럼 실수하지 않고 항상 목표를 향해 노력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우리의 규범과 선한 생각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선한 행실과 의도를 산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주의하지 않는 한 선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묵상할 수 없다.

3. 다윗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서 영원한 기쁨을 취하기를 원한다. 그가 이러한 빛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을 잠시뿐이 아니라, “내가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되, 영원히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하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기쁨으로 그것을 행하기를 원한다”(16절). 다윗은 하나님의 율례를 그의 궁정이나 그의 진영의 명예의 기쁨보다도, 그의 칼이나 수금보다도 더욱 즐거워하였다. 율법이 마음에 씌어지면 의무는 즐거움이 된다.

4. 그는 하나님의 것에 대해 배운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것을 전혀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상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쁨을 거기서 누리는 자들은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없다. 다윗은 하나님의 길을 생각하기를 원한다(15절).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라.” 그는 법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뿐만 아니라(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과 권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한다), 다른 사람들에 선포해야 하는 것을 그 자신의 생각에 소화시키는 고통을 감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사상의 주제이어야 한다.그는 그것들을 항상 그의 안중에 두기를 원한다. ‘내가 주의 도를 주의하리이다.” 마치 여행자처럼 실수하지 않고 항상 목표를 향해 노력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우리의 규범과 선한 생각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선한 행실과 의도를 산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주의하지 않는 한 선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묵상할 수 없다.다윗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서 영원한 기쁨을 취하기를 원한다. 그가 이러한 빛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을 잠시뿐이 아니라, “내가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되, 영원히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하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기쁨으로 그것을 행하기를 원한다”(16절). 다윗은 하나님의 율례를 그의 궁정이나 그의 진영의 명예의 기쁨보다도, 그의 칼이나 수금보다도 더욱 즐거워하였다. 율법이 마음에 씌어지면 의무는 즐거움이 된다.그는 하나님의 것에 대해 배운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것을 전혀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상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쁨을 거기서 누리는 자들은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없다.

119:17 하나님의 관대하심(시편 119:17) 1.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다윗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지속시키며 모든 부양물을 주고 그 위로를 얻게 하는 것도 같이 관대함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보류된다면 우리는 죽게 되거나 그의 유사하게 되고 우리의 생명은 몹시 상하여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정의로 대하신다면 우리는 죽게 된다. 아니 우리는 멸망하고 우리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박탈당한 생명이 보존되고 연장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의 자비를 따라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가장 가치있는 삶의 지속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그 관대하심에 끊임없이 의존해야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된 자비이기 때문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종할 기회이며 세상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거의 없어도 그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계기를 갖게 된다. 다윗은 이것을 그의 안중에 두고 있다. “살게 하소서.” 부자가 되어 살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그것을 내 자신에게 오고 오는 자들에게도 전수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더 잘 지키리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다윗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지속시키며 모든 부양물을 주고 그 위로를 얻게 하는 것도 같이 관대함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보류된다면 우리는 죽게 되거나 그의 유사하게 되고 우리의 생명은 몹시 상하여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정의로 대하신다면 우리는 죽게 된다. 아니 우리는 멸망하고 우리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박탈당한 생명이 보존되고 연장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의 자비를 따라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가장 가치있는 삶의 지속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그 관대하심에 끊임없이 의존해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된 자비이기 때문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종할 기회이며 세상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거의 없어도 그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계기를 갖게 된다. 다윗은 이것을 그의 안중에 두고 있다. “살게 하소서.” 부자가 되어 살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그것을 내 자신에게 오고 오는 자들에게도 전수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더 잘 지키리이다.

119:18 하나님의 기이한 것을 간구함(시편 119:18) 1.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 속에 있는 “기이한 것”을 관찰해 보자. 매우 놀랍고 예기치 않았던 일, 그러나 높이 평가되고 가치있는 것이요, 오랫 동안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유아에게도 계시된” 그것을 우리는 모두 보고 싶어하고 있다. 복음에는 물론이요, 율법 안에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한 자”이다. 천사들도 보기를 원했던(벧전 1:12) 것이니,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보고 싶어하더라도 당연하다.

2.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것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내 눈을 열어 달라고” 그리고 이해를 하게 해 달라고 그에게 간청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은총이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길 때까지는 본질상 하나님의 일에 맹목적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자들에게도 여전히 더욱 밝아질 필요를 가지고 있으므로 저희의 눈을 열어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사람들을 나무가 걸어가는 것으로 보았던 자들도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주실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가운데서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기이한 것들을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 속에 있는 “기이한 것”을 관찰해 보자. 매우 놀랍고 예기치 않았던 일, 그러나 높이 평가되고 가치있는 것이요, 오랫 동안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유아에게도 계시된” 그것을 우리는 모두 보고 싶어하고 있다. 복음에는 물론이요, 율법 안에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한 자”이다. 천사들도 보기를 원했던(벧전 1:12) 것이니,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보고 싶어하더라도 당연하다.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것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내 눈을 열어 달라고” 그리고 이해를 하게 해 달라고 그에게 간청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은총이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길 때까지는 본질상 하나님의 일에 맹목적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자들에게도 여전히 더욱 밝아질 필요를 가지고 있으므로 저희의 눈을 열어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사람들을 나무가 걸어가는 것으로 보았던 자들도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주실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가운데서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기이한 것들을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이다.

119:19 나그네 같은 인생의 고백(시편 119:19) 1.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그 자신의 여건을 인식하는 것을 본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나이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선한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하늘이 그들의 본향이며, 세상은 그들이 잠간 기거하는 주막집이나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세상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았던 사람이었고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써 그것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집을 지어 주셨고 그의 보좌를 설정하셨다. 이방인들이 그에게 복종했고 그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를 섬겼다. 그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들과 같이 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자신을 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두 객이며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불러야 할 것이다.

2. 그가 하나님께 드린 요청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그는 더욱 더 나타내려고 했다. “여호와여 내게 주의 계명을 보여 주소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알지 않게 하시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게 그것과 친숙하게 성장하도록 해 주소서. 나는 객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와 지도자와 동료와 위로자의 필요를 항상 느끼게 됩니다. 주의 계명을 내 시야 가운데 두소서. 왜냐하면 이것들이 내게 전부이며 가련한 객이 갈구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객입니다. 이 땅에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주의 계명에 의해서 내가 곧 이사갈(줄을) 준비를 하게 하소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그 자신의 여건을 인식하는 것을 본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나이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선한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하늘이 그들의 본향이며, 세상은 그들이 잠간 기거하는 주막집이나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세상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았던 사람이었고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써 그것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집을 지어 주셨고 그의 보좌를 설정하셨다. 이방인들이 그에게 복종했고 그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를 섬겼다. 그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들과 같이 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자신을 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두 객이며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불러야 할 것이다.그가 하나님께 드린 요청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그는 더욱 더 나타내려고 했다. “여호와여 내게 주의 계명을 보여 주소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알지 않게 하시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게 그것과 친숙하게 성장하도록 해 주소서. 나는 객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와 지도자와 동료와 위로자의 필요를 항상 느끼게 됩니다. 주의 계명을 내 시야 가운데 두소서. 왜냐하면 이것들이 내게 전부이며 가련한 객이 갈구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객입니다. 이 땅에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주의 계명에 의해서 내가 곧 이사갈(줄을) 준비를 하게 하소서.”

119:20 상한 마음(시편 119:20) 다윗은 자기 눈을 열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고(18절), 율법을 열어 줄 것을 간구했다. 이제는 여기에서 지식과 은총에 대한 그의 갈망의 진지한 모습이 나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당히 뜨거운 기도이기 때문이다. 1. 그의 간구는 조르는 것이었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또는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하는 바와 같이)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사로잡히고, 완전히 진하였나이다. 그 갈망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통로로 흘러 내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과 그 방향과 변화와 위로를 원한다면 나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고 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그것은 끊임없다 – “항상” 사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잠간 동안 있어질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일용할 양식처럼 바람은 모든 성화된 영혼의 습관적 기질인 것이다. 그의 간구는 조르는 것이었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또는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하는 바와 같이)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사로잡히고, 완전히 진하였나이다. 그 갈망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통로로 흘러 내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과 그 방향과 변화와 위로를 원한다면 나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고 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그것은 끊임없다 – “항상” 사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잠간 동안 있어질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일용할 양식처럼 바람은 모든 성화된 영혼의 습관적 기질인 것이다.

119:21 사악한 자들의 마음(시편 119:21) 1. 여기에 사악한 자들의 야비한 성격이 나타나 있다. 저희의 마음의 기질은 악하다. 그들은 “교만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자랑하며 마치 그들의 마음과 혀와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뜻을 설정한다. 모든 의도적인 죄의 밑바닥에는 교만한 어떤 것이 있으며, 그들의 삶의 방침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항상 저희의 마음에 잘못을 행한 것”처럼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들이다.” 그들은 판단을 그리치고 주의 계명에 반대되는 원칙들을 채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실제로 그르치며 선한 행실에서 고의적으로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섬겨야 할 전능자가 무엇이냐?” 바로와 같이,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한다.

2. 여기에 그런 자들의 불행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명령을 던져 버리는 자들은 자신들을 저주 아래 두게된다.(갈 3:10).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멀리 떨어진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가라, 너희는 저주받았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찬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신다. 이러한 저주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저 세상에서 나타날 것이지만, 그들은 종종 이 세상에서도 혹독한 책망을 받기도 한다. 섭리는 그들을 방해하며 괴롭게 한다. 그들이 교만하게 대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들 위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러한 질책은 더욱 악화될 징조이다. 다윗은 질책이 교만한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도록 진지하게 기도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더욱 선해질 것이다. 여기에 사악한 자들의 야비한 성격이 나타나 있다. 저희의 마음의 기질은 악하다. 그들은 “교만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자랑하며 마치 그들의 마음과 혀와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뜻을 설정한다. 모든 의도적인 죄의 밑바닥에는 교만한 어떤 것이 있으며, 그들의 삶의 방침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항상 저희의 마음에 잘못을 행한 것”처럼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들이다.” 그들은 판단을 그리치고 주의 계명에 반대되는 원칙들을 채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실제로 그르치며 선한 행실에서 고의적으로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섬겨야 할 전능자가 무엇이냐?” 바로와 같이,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한다.여기에 그런 자들의 불행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명령을 던져 버리는 자들은 자신들을 저주 아래 두게된다.(갈 3:10).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멀리 떨어진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가라, 너희는 저주받았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찬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신다. 이러한 저주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저 세상에서 나타날 것이지만, 그들은 종종 이 세상에서도 혹독한 책망을 받기도 한다. 섭리는 그들을 방해하며 괴롭게 한다. 그들이 교만하게 대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들 위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러한 질책은 더욱 악화될 징조이다. 다윗은 질책이 교만한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도록 진지하게 기도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더욱 선해질 것이다.

119:22 악에서 떠날 것을 간구함(시편 119:22) 1. 다윗은 여기에서 인간의 비난과 멸시가 “그에게서 떠나가게.” 또는 “물러가고 지나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것은 그들이 다윗을 공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위대함도 그의 선함도 그가 모욕을 받고 비방받는데서 구제할 수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경멸했고 그를 비천하게 만들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훼방했고 그를 증오거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선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비방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인간의 비난과 멸시가 “그에게서 떠나가게.” 또는 “물러가고 지나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것은 그들이 다윗을 공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위대함도 그의 선함도 그가 모욕을 받고 비방받는데서 구제할 수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경멸했고 그를 비천하게 만들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훼방했고 그를 증오거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선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비방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또 이것은 그들이 그를 무섭게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섭고 더러운 언어들이 어떠한 뼈도 부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드럽고 슬기로운 정신을 크게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다윗은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들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의무와 그것에 대한 용기를 멀리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그의 안에 두시며 거짓을 말하는 입술을 침묵하실 수 있으며, 굴욕 속에 짓밟힌 선한 이름을 들어 올리신다. 우리는 그에게 정의의 옹호자로서, 악의 심판자로서 임하실 것을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약속에 의거하여 그는 우리의 의를 빛같아”(37:6)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훼방과 멸시는 우리를 겸하게 하고,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리고는 결국 떠나게 될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의 끊임없는 고수(固守)를 호소한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그는 자기의 무죄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비난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나서,

(1) 그가 선한 행실로 인해 조롱받았다고 호소한다. 그는 그의 종교에 대한 철저성과 정열 때문에 경멸되고 모욕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실 것을 더욱 큰 확신으로 간청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훼방은 – 그것이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 갑자기 큰 영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2) 또한 그는 선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조롱받았다고 탄식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우리가 심판날에 우리의 성실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의 끊임없는 고수(固守)를 호소한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그는 자기의 무죄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비난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나서,그가 선한 행실로 인해 조롱받았다고 호소한다. 그는 그의 종교에 대한 철저성과 정열 때문에 경멸되고 모욕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실 것을 더욱 큰 확신으로 간청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훼방은 – 그것이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 갑자기 큰 영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또한 그는 선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조롱받았다고 탄식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우리가 심판날에 우리의 성실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

119:23 높은 자들이 주는 비난(시편 119:23)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1. 다윗의 성격과 처지를 잘 알고, 더 대했어야 했을 높은 사람들에게서까지 다윗은 비방받았음을 보여 준다. “방백들도 앉아,” 의회에 앉아 심판대에 앉아서, “나를 훼방하였사옵니다.” 비록 방백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판이 이렇게 고민으로 변하고, 무죄한 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저희의 반역자가 될 때에는 슬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고전 2:8) 비방한 이 세상의 방백들이기 때문이다.

2. 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조롱 아래서 자신을 편하게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고,” 그의 의무를 계속 수행했으며,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마치 귀 먹은 사람처럼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들이 비방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에게 말할 것과 자신을 위로할 것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것들 중 아무 것도 그를 요동치 못했다.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기쁨을 갖는 자들은 쉽게 사람들의 훼방을, 심지어는 방백들의 훼방일지라도 쉽게 경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의 성격과 처지를 잘 알고, 더 대했어야 했을 높은 사람들에게서까지 다윗은 비방받았음을 보여 준다. “방백들도 앉아,” 의회에 앉아 심판대에 앉아서, “나를 훼방하였사옵니다.” 비록 방백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판이 이렇게 고민으로 변하고, 무죄한 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저희의 반역자가 될 때에는 슬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고전 2:8) 비방한 이 세상의 방백들이기 때문이다.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조롱 아래서 자신을 편하게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고,” 그의 의무를 계속 수행했으며,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마치 귀 먹은 사람처럼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들이 비방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에게 말할 것과 자신을 위로할 것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것들 중 아무 것도 그를 요동치 못했다.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기쁨을 갖는 자들은 쉽게 사람들의 훼방을, 심지어는 방백들의 훼방일지라도 쉽게 경시할 수 있을 것이다.

119:24 하나님의 율례를 즐거이 묵상함(시편 119:24) 여기에서 다윗은 방백들이 앉아서 그를 비방할 때 자신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그의 묵상(23절)을 설명해 주고 있다. 1. 그 고난이 그를 슬프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위로했고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궁성이나 진영, 도성이나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떠한 기쁨보다도 더 큰 그의 기쁨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위로들이 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가 은혜로운 영에게 가장 즐거운 것이 된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

2. 그것이 그를 당케 하였는가? 방백들이 그를 비방할 때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몰랐는가? 하나님의 율례가 그의 “모사”였다. 모사들은 그가 그러한 역경을 인내로써 참을 것을 조언해 주었으며, 그의 모든 분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의 “증거”는 방백에게나 개인에게나 모두에게 가장 좋은 모사가 될 것이다. 원문의 뜻은 “저희는 내 뜻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많은 모사에게 의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맡기고 뜻을 묻는 것에서 더욱 좋은 안정감과 만족을 찾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증거를 기쁨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든 문제를 그들의 모사에게 가서 그들에 의해 충고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가지고 모사에게 가는 자들은 결국 위로를 찾은 걸음으로 저희의 기쁨을 찾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야 할 것이다. 그 고난이 그를 슬프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위로했고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궁성이나 진영, 도성이나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떠한 기쁨보다도 더 큰 그의 기쁨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위로들이 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가 은혜로운 영에게 가장 즐거운 것이 된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그것이 그를 당케 하였는가? 방백들이 그를 비방할 때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몰랐는가? 하나님의 율례가 그의 “모사”였다. 모사들은 그가 그러한 역경을 인내로써 참을 것을 조언해 주었으며, 그의 모든 분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의 “증거”는 방백에게나 개인에게나 모두에게 가장 좋은 모사가 될 것이다. 원문의 뜻은 “저희는 내 뜻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많은 모사에게 의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맡기고 뜻을 묻는 것에서 더욱 좋은 안정감과 만족을 찾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증거를 기쁨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든 문제를 그들의 모사에게 가서 그들에 의해 충고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가지고 모사에게 가는 자들은 결국 위로를 찾은 걸음으로 저희의 기쁨을 찾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야 할 것이다.

119:25 구원을 향한 다윗의 탄식(시편 119:25) Ⅰ. 여기에 다윗의 탄식이 있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의 영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내 영혼이” 진토에 구를 뿐만 아니라 “진토에 붙었사옵나이다”라고 탄식한다. 1. 그것은 그의 타락에 대한 탄식이다. 그의 세상과 육체에 대한 경향성(세상과 육체는 진토이다)이 거룩한 의무들에 대해 죽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는 “선을 행하고 싶었으나 악이 그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라”(창 3:19)고 말씀했을 때, 그것은 아담이 죽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죄로 가득찬 존재임을 나타냈다. 여기에 나타난 다윗의 탄식은 바울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몸에 대한 탄식과 유사하다. 안에 거하는 타락의 잔재들은 은혜로운 영혼을 크게 해치는 짐이 된다.

2. 아니면 이것은 마음의 고난이나 외적인 고난이건 간에, 그의 곤고한 상태에 대한 탄식이다. “투쟁이” 없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를 심지어는 “사망의 진토”(22:15)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거기에 꽉붙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타락에 대한 탄식이다. 그의 세상과 육체에 대한 경향성(세상과 육체는 진토이다)이 거룩한 의무들에 대해 죽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는 “선을 행하고 싶었으나 악이 그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라”(창 3:19)고 말씀했을 때, 그것은 아담이 죽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죄로 가득찬 존재임을 나타냈다. 여기에 나타난 다윗의 탄식은 바울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몸에 대한 탄식과 유사하다. 안에 거하는 타락의 잔재들은 은혜로운 영혼을 크게 해치는 짐이 된다.아니면 이것은 마음의 고난이나 외적인 고난이건 간에, 그의 곤고한 상태에 대한 탄식이다. “투쟁이” 없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를 심지어는 “사망의 진토”(22:15)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거기에 꽉붙게 되었다. Ⅱ. 여기에는 또한 소생을 위한 그의 간구와 그 간구를 강하게 하는 그의 호소가 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섭리로 나의 역경을 생명을 주시고 주의 은총으로 나의 고난에 생명을 주소서. 나를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치료하시며, 나로 하여금 생동력있게 예배에 참여케 하소서.” 우리가 스스로 미련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그에게 우리를 소생케 해달라고 간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생의 수단으로 보고(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그를 소생시켜 줄 희망에의 격려라고 보았다. 그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약속받고 특히 다윗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스스로 취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내자이며 일상 기도에서의 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119:26 주의 율례와 법도를 배움(시편 119:26,27) 1.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그의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친밀성과 자유를 본다. 다윗은 그의 처지를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그의 진실한 마음을 열어 놓았다. “나의 행위를 고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주께 감사했고 나의 모든 계획고 기도(企圖) 가운데서 내가 행한 것을 주께 고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그의 말을 모두 고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서”펴고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나의 행위를, 나의 행위에서 당하는 무거운 짐과 고난을, 나의 소원을 또는 나의 죄들을 나의 곁길을 고하였다”(나는 그것들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하였다). 그래서 “주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참고 들으시며, 내 처지를 인식하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그의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친밀성과 자유를 본다. 다윗은 그의 처지를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그의 진실한 마음을 열어 놓았다. “나의 행위를 고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주께 감사했고 나의 모든 계획고 기도(企圖) 가운데서 내가 행한 것을 주께 고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그의 말을 모두 고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서”펴고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나의 행위를, 나의 행위에서 당하는 무거운 짐과 고난을, 나의 소원을 또는 나의 죄들을 나의 곁길을 고하였다”(나는 그것들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하였다). 그래서 “주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참고 들으시며, 내 처지를 인식하셨다.” 모든 탄식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용납된다는 그 인자를 생각하는 것은 은혜로운 영혼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요일 5:14, 15). 2.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하늘로부터의 환상이나 음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방법으로 주어진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그러한 친밀성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다윗의 진지한 간구를 본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즉, “나로 하여금 주의 교훈의 법도를 이해하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그의 행실에 대한 그의 선포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호와여 내게 나의 운명을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여 내게 나의 의무를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내가 처한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모든 행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은 그가 올바른 행실로 그 길을 가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 가운데서 간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율례를 배우고 “주의 법도의 길’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길밖에 없다(요일 1:6, 7 참조).

3.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교화(敎化)를 위해서 좋은 방법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의 길을 잘 이해하게 하소서. 내게 하나님의 일들을 분명하고 명백하며 방법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확실한 증거로 보다 더 적절하게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의 은총과 섭리의 기적과 특히 구속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묵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의 길을 이해하며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하늘로부터의 환상이나 음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방법으로 주어진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그러한 친밀성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다윗의 진지한 간구를 본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즉, “나로 하여금 주의 교훈의 법도를 이해하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그의 행실에 대한 그의 선포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호와여 내게 나의 운명을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여 내게 나의 의무를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내가 처한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모든 행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은 그가 올바른 행실로 그 길을 가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 가운데서 간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율례를 배우고 “주의 법도의 길’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길밖에 없다(요일 1:6, 7 참조).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교화(敎化)를 위해서 좋은 방법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의 길을 잘 이해하게 하소서. 내게 하나님의 일들을 분명하고 명백하며 방법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확실한 증거로 보다 더 적절하게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의 은총과 섭리의 기적과 특히 구속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묵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의 길을 이해하며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119:28 다윗의 슬픈 탄식(시편 119:28,29) 1. 여기에 다윗의 슬픔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25절의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옵니다”란 고백과 같은 의미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옵니다”라고 탄식한다. 인간의 마음의 눌림은 마음을 녹여 소모되는 양초처럼 녹여 없앤다. 회개하는 영혼은 죄로 인한 슬픔을 녹이며, 인내하는 영혼은 고난의 감정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탄원을 토로하는 것은 그러한 관심에서 되는 것이겠다.

2. 여기에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그의 요청이 있다.

(1) 하나님께, 그를 그의 고난에서 잘 참아 낼 수 있게 하고 고난 중에서도 자기를 지탱할 수 있게 힘 주실 것을 간청한다. 나의 영혼에 힘을 주시어 “주의 말씀대로 내게 힘을 주소서. 생명의 떡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견딜 수 있도록 강하게 하소서. 내게 힘을 주시어 의무들을 행하게 하시며 유혹에 항거하게 하시고 고난의 상태에서 주어지는 짐들을 견디게 하시어 영혼이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라는 말씀을 따라서 나를 강하게 하소서.”

(2) 그가 자기의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비합법적인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막 아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다(29절).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곤궁에 빠졌을 때 아히멜렉(삼상 21:2)을 속였고, 아기스에게 두 번씩이나 속였다(삼상 2:13; 27:10). 중대한 곤란은 경건한 기만과 필요한 자기 방어라는 핑계로써 거짓을 정당화해 주는 유혹을 준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러한 죄에 더 이상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그러한 행실에 정주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과 위장하는 일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하는 데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3) 그는 항상 하나님의 지배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에 있기를 위해 간구한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거짓 행위에서 나를 은혜로이 지 켜주소서. 다윗은 그 자신의 손으로 쓴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왕은 자기가 사용할 목적으로 그 사본을 베껴 둬야 했다(신 17:18).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마음에 씌어지기를 간구했다. 그런데 율법책을 정말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을 그때에만 우리는 좋은 목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게 더욱 더 베푸소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그것을 사랑하기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징표로써 간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하나의 베푸심으로, 선물로, 그 가치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로 인식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간구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율례에 관한 하나님의 법전은 실로 특권의 헌장(憲章)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게 만드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

여기에 다윗의 슬픔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25절의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옵니다”란 고백과 같은 의미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옵니다”라고 탄식한다. 인간의 마음의 눌림은 마음을 녹여 소모되는 양초처럼 녹여 없앤다. 회개하는 영혼은 죄로 인한 슬픔을 녹이며, 인내하는 영혼은 고난의 감정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탄원을 토로하는 것은 그러한 관심에서 되는 것이겠다.여기에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그의 요청이 있다.하나님께, 그를 그의 고난에서 잘 참아 낼 수 있게 하고 고난 중에서도 자기를 지탱할 수 있게 힘 주실 것을 간청한다. 나의 영혼에 힘을 주시어 “주의 말씀대로 내게 힘을 주소서. 생명의 떡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견딜 수 있도록 강하게 하소서. 내게 힘을 주시어 의무들을 행하게 하시며 유혹에 항거하게 하시고 고난의 상태에서 주어지는 짐들을 견디게 하시어 영혼이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라는 말씀을 따라서 나를 강하게 하소서.”그가 자기의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비합법적인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막 아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다(29절).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곤궁에 빠졌을 때 아히멜렉(삼상 21:2)을 속였고, 아기스에게 두 번씩이나 속였다(삼상 2:13; 27:10). 중대한 곤란은 경건한 기만과 필요한 자기 방어라는 핑계로써 거짓을 정당화해 주는 유혹을 준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러한 죄에 더 이상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그러한 행실에 정주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과 위장하는 일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하는 데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그는 항상 하나님의 지배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에 있기를 위해 간구한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거짓 행위에서 나를 은혜로이 지 켜주소서. 다윗은 그 자신의 손으로 쓴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왕은 자기가 사용할 목적으로 그 사본을 베껴 둬야 했다(신 17:18).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마음에 씌어지기를 간구했다. 그런데 율법책을 정말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을 그때에만 우리는 좋은 목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게 더욱 더 베푸소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그것을 사랑하기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징표로써 간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하나의 베푸심으로, 선물로, 그 가치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로 인식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간구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율례에 관한 하나님의 법전은 실로 특권의 헌장(憲章)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게 만드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

119:30 진리의 길을 택함(시편 119:30-32)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Ⅰ. 자신들의 종교의 목적에 관한 어떤 것을 하려고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진지하고도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그렇게 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했다.” 1. 거룩한 길은 진리의 길이다. 그것이 기초한 원칙들은 영원한 원칙들이며,그것이 유일하게 행복으로 이르는 진실한 것이다.

2. 우리는 다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걷기로 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밖에 다른 어떤 선하고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비록 좁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걸어야 할 우리의 길을 위해 그 길을 선택하도록 하자. 거룩한 길은 진리의 길이다. 그것이 기초한 원칙들은 영원한 원칙들이며,그것이 유일하게 행복으로 이르는 진실한 것이다.우리는 다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걷기로 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밖에 다른 어떤 선하고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비록 좁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걸어야 할 우리의 길을 위해 그 길을 선택하도록 하자. Ⅱ. 성실한 길을 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행실의 규범으로 삼고 부단히 지시해야 한다.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자가 자기 앞에 사본을 두는 것은 그것을 따라 쓰고자 함이요, 직공이 모형과 강령을 앞에 두는 것은 그것을 따라 쓰고자 함이요, 직공이 모형과 강령을 앞에 두는 것은 정확하게 일을 수행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습관적인 말씀에 대한 일치에 의해서 우리 마음 속에 말씀을 두는 것과 같이 모든 경우에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주시에 의해서 말씀을 우리의 눈 속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는 정확히 규칙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종교를 자기들의 선택과 규범으로 삼는 자들은 신실하게 그것을 고수하려고 한다. “내가 불변하는 사랑과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옵고, 어느 때나, 모든 시험가운데서도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옵고, 어느 때나, 모든 시험 가운데서도 주의 증거에 밀착하였나이다. 내가 그 길을 택하였으므로 거기에 밀접하였사옵니다.”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견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우연을 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이 부는 데 따라 방침을 바꾸게 될 것이다. Ⅳ.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실 것을 신앙 가운데서 기대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간구할 때 바로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호와여 나로 수치로 당케 마소서. 즉 내가 수치를 당하도록 행하는 것을 버려두지 마시고, 내가 가장 큰 혼동에 빠지지 H 나의 예배를 주께서 거부하지 마소서.” 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실수록 그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의무가 더 많다(32절).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무를 발견한다. 1. 의욕적으로 그의 경건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결의.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하늘을 행해 가려고 하는 자들은 저쪽으로 서둘러 가야 하며 계속 앞을 향하여 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구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기쁨으로 우리의 과제들을 계속 행하는 것에 관심하도록 한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의무의 길로 달려가며 만방의 준비를 갖추고 거기서 기쁨을 갖게 되며, “무거운 것을 벗어 내리게 된다”(히 12:1).

2.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것.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주의 일을 풍부케 하리이다.”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서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넓히시며, 그들에게 지혜를 주신다(그러므로 그것은 “넓은 마음”이라고 불리워졌다. 왕상 4:29). 그 때에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넓게 펼치며 거기에 즐거움을 둔다. 우리 여호와의 즐거움은 우리의 복종에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의욕적으로 그의 경건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결의.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하늘을 행해 가려고 하는 자들은 저쪽으로 서둘러 가야 하며 계속 앞을 향하여 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구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기쁨으로 우리의 과제들을 계속 행하는 것에 관심하도록 한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의무의 길로 달려가며 만방의 준비를 갖추고 거기서 기쁨을 갖게 되며, “무거운 것을 벗어 내리게 된다”(히 12:1).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것.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주의 일을 풍부케 하리이다.”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서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넓히시며, 그들에게 지혜를 주신다(그러므로 그것은 “넓은 마음”이라고 불리워졌다. 왕상 4:29). 그 때에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넓게 펼치며 거기에 즐거움을 둔다. 우리 여호와의 즐거움은 우리의 복종에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119:33 하나님이 도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시편 119:33,34) Ⅰ.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가르치는 자가 되어 주실 것을 진지하게 기도한다. 그 주위에는 예언자들과 현자(賢者)들과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잘 배운 자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한다. 그는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욥 36:22)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개념이나 언어가 아니라 “율례의 도”를 배우고자 갈망했다. 즉 율례의 도를 정복하는 방법과 그것에 의해 자신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고 싶어했다. “주의 율례가 가르쳐 주는 나의 의무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모든 의심스러운 경우에 나로 하여금 주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며 나로 하여금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 30:21)는 주의 말씀에 가까이 하게 하소서.”

2. 어떤 사람도 그러한 길을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는데, 어떻게 그가 여기에서 가르침을 받기를 갈망하였는지를 살펴 보자. “여호와여 나로 깨닫게 하소서.” 자연의 하나님이신 그는 우리에게 지적인 능력과 재능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기도할 것은 은총의 하나님이신 그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평화에 속한 많은 것들에 대해 그러한 능력과 재능을 사용하도록 깨닫게 해 주실 것에 관한 것이다. 본성의 타락 때문에 우리는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게 계몽된 이해를 주소서.” 우리가 마음 속에 지혜의 영을 갖지 않는 한 말씀 속에 있는 계시의 영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덕택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다”(요일 5:20).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개념이나 언어가 아니라 “율례의 도”를 배우고자 갈망했다. 즉 율례의 도를 정복하는 방법과 그것에 의해 자신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고 싶어했다. “주의 율례가 가르쳐 주는 나의 의무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모든 의심스러운 경우에 나로 하여금 주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며 나로 하여금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 30:21)는 주의 말씀에 가까이 하게 하소서.”어떤 사람도 그러한 길을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는데, 어떻게 그가 여기에서 가르침을 받기를 갈망하였는지를 살펴 보자. “여호와여 나로 깨닫게 하소서.” 자연의 하나님이신 그는 우리에게 지적인 능력과 재능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기도할 것은 은총의 하나님이신 그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평화에 속한 많은 것들에 대해 그러한 능력과 재능을 사용하도록 깨닫게 해 주실 것에 관한 것이다. 본성의 타락 때문에 우리는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게 계몽된 이해를 주소서.” 우리가 마음 속에 지혜의 영을 갖지 않는 한 말씀 속에 있는 계시의 영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덕택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다”(요일 5:20). Ⅱ. 그는 신실하게 자기가 좋은 학도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가르치신다면 그는 좋은 목적으로 배울 것을 확신하고 있다.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리이다. 내가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결코 행할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배우기를 진지하게 갈망하나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에 의해서 우리에게 올바르고 선한 이해를 주신다면, 1. 우리는 복종 가운데 곧게 서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끝까지, 나의 생의 마지막까지 지키리이다. 그것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됨이라.” 만일 여행자가 여행의 목적지까지 그 길을 지킬 수 없다면 잠간 동안 그 길을 지킨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2. 성심 성의를 기울여 복종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전심으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힘차고 결단성 있게 지키리이다.’ 전심이 기울여지는 길은 전인(全人)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길이 틀림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전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종 가운데 곧게 서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끝까지, 나의 생의 마지막까지 지키리이다. 그것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됨이라.” 만일 여행자가 여행의 목적지까지 그 길을 지킬 수 없다면 잠간 동안 그 길을 지킨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성심 성의를 기울여 복종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전심으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힘차고 결단성 있게 지키리이다.’ 전심이 기울여지는 길은 전인(全人)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길이 틀림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전심이기 때문이다.

119:35 은총과 죄(시편 119:35,36) 앞에서 다윗은 의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실수하지 않도록 깨우쳐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그의 의무를 행하기 위하여 그의 뜻을 굽히고 그의 영혼의 활동적인 능력을 빠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뜻을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빌 2:13)이시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것은 물론 선한 것을 행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선한 이성(理性)과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선하신 은총으로부터 유래하며,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모든 선한 활동에 필요한 것이다. Ⅰ. 그가 간구하는 은총을 보자. 1. 하나님께서 그에게 의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나로 행케 하소서. 모든 선한 행실을 위해 내게 힘을 주소서.” 우리 스스로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우리의 모든 풍족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율례를 행하게”(겔 36:27)하신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여기에서 간구한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기꺼이 하게끔 해 주실 것과 그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가 본성적으로 역행하려는 것을 극복하게 해 주실 것으로 간구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주의 증거가 가르친 것들로 향하게 하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나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게 하시어 내가 반드시 행하고 최선을 다해 관심하게 하소서. 그 뿐만 아니라 나의 의무에 대해 열심히 행하게 하시어 내게 새로운 자연과 실로 모험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하소서. “그러므로 의무는 마음이 거기로 향할 때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 자신이 의무에서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 은총을 진지하게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의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나로 행케 하소서. 모든 선한 행실을 위해 내게 힘을 주소서.” 우리 스스로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우리의 모든 풍족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율례를 행하게”(겔 36:27)하신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여기에서 간구한 것이다.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기꺼이 하게끔 해 주실 것과 그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가 본성적으로 역행하려는 것을 극복하게 해 주실 것으로 간구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주의 증거가 가르친 것들로 향하게 하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나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게 하시어 내가 반드시 행하고 최선을 다해 관심하게 하소서. 그 뿐만 아니라 나의 의무에 대해 열심히 행하게 하시어 내게 새로운 자연과 실로 모험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하소서. “그러므로 의무는 마음이 거기로 향할 때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 자신이 의무에서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 은총을 진지하게 갈망해야 한다. Ⅱ. 그는 죄 곧 탐욕 때문에 기도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내 안에 탐욕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제어하시며, 극복하게 하소서.”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증거를 반대하여 서 있는 죄이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죄는 보다 더 큰 죄, 모든 예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려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사랑에 뿌리를 내린 것을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과 짝하는 것이 하나님과 적”이 되 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을 보라. 그것은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속박으로부터 이끌어 내시며 그들 안에 활동하사 선한 것으로 향하게 하시고 악한 것을 꺼꾸러뜨리게 하신다. Ⅲ. 이러한 기도를 강화해 주는 그의 탄원을 보자. “여호와여 내게 오소서. 나를 지키소서.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그길을 걸을 수 있는 은총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나이다. 주께서 주의 계명의 길을 따라 이러한 즐거움을 내 안에 행하소서. 주께서 내게 주의 계명을 행할 능력을 주시지 않으며 주의 행사를 그렇게 장식하시지 않으시겠나이까?”

119:37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자의 허탄함(시편 119:37) 1. 다윗은 여기에서 억제하는 은총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억제하고 유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속한 명예와 즐거움과 이익은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속한 명예와 즐거움과 이익은 허탄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전망은 많은 자들을 경건과 거룩함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것들에 눈이 고정되었을 때, 마음은 그들에게 속한 사랑으로 감염되며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로부터 소외(疎外)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과 더불어 계약을 맺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책임을 부과하여, 방황하거나 위험한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해야 한다(욥 31:1).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로 우리의 시야로부터 공허한 것을 물리치시며, 그의 은총으로 우리가 눈으로 보아 매혹되는 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

2. 그는 속박하는 은총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하늘로 향하는 그의 과정을 막는 모든 것에서 지킴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를 앞으로 향하게 하는 데에 필수적인 은총을 가지려는 것이다. “주의 도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로 하여금 때를 회복케 하며, 기회를 증진시키며, 앞으로 달려 나가, 생동적으로 영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의무를 행하게 하소서.” 허탄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죽게 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늦춘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을 응시하며 서 있는 여행자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이 우리를 다른 대상으로 향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억제하는 은총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억제하고 유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속한 명예와 즐거움과 이익은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속한 명예와 즐거움과 이익은 허탄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전망은 많은 자들을 경건과 거룩함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것들에 눈이 고정되었을 때, 마음은 그들에게 속한 사랑으로 감염되며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로부터 소외(疎外)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과 더불어 계약을 맺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책임을 부과하여, 방황하거나 위험한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해야 한다(욥 31:1).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로 우리의 시야로부터 공허한 것을 물리치시며, 그의 은총으로 우리가 눈으로 보아 매혹되는 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그는 속박하는 은총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하늘로 향하는 그의 과정을 막는 모든 것에서 지킴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를 앞으로 향하게 하는 데에 필수적인 은총을 가지려는 것이다. “주의 도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로 하여금 때를 회복케 하며, 기회를 증진시키며, 앞으로 달려 나가, 생동적으로 영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의무를 행하게 하소서.” 허탄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죽게 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늦춘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을 응시하며 서 있는 여행자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이 우리를 다른 대상으로 향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이다.

119:38 선한 사람의 마음(시편 119:38) 1.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는 선한 사람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의 범에 복종하며 그의 일을 하는 데에 쓰여진다. 즉 “그를 경외하는 것에 헌신한다.” 하나님의 방향과 계획에 굴복하며, 그의 높으신 생각을 취하고 모든 예배의 행위가 그의 영광으로 향한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헌신하는” 자들과 그 경외로써 모든 감정과 행동을 다스리는 자들은, 비록 약하고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된 하나님의 종이라 하겠다. 그들은 경건에 전념하며 거기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다.

2. 선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향한다는 확신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종이 된 자들은 믿음 안에서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실 것”을 간구한다. 즉, 하나님께서 적당한 시기에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며, 그동안에는 그들에게 성취되리라는 보증을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이상 구할 필요도, 그 이하의 것을 구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는 선한 사람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의 범에 복종하며 그의 일을 하는 데에 쓰여진다. 즉 “그를 경외하는 것에 헌신한다.” 하나님의 방향과 계획에 굴복하며, 그의 높으신 생각을 취하고 모든 예배의 행위가 그의 영광으로 향한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헌신하는” 자들과 그 경외로써 모든 감정과 행동을 다스리는 자들은, 비록 약하고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된 하나님의 종이라 하겠다. 그들은 경건에 전념하며 거기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다.선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향한다는 확신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종이 된 자들은 믿음 안에서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실 것”을 간구한다. 즉, 하나님께서 적당한 시기에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며, 그동안에는 그들에게 성취되리라는 보증을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이상 구할 필요도, 그 이하의 것을 구할 필요도 없다.

119:39 훼방하는 자에 대한 선한 심판(시편 119:39) 1. 다윗은 여기에서 앞서 나온 22절과 같이 “훼방”에 대해서 기도한다. 다윗은 스스로 그가 여호와의 적대자들에게 모독을 줄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그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며 그의 가족을 불명예로 몰아 넣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그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장악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아 주시며,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도록”(39:8) 그가 두려워하는 훼방에서 떠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혹은 그의 적들이 그에게 부당하게 씌운 훼방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저희의 “거짓을 말하는 입술을 침묵케 하소서.”

2.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인자하심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당신은 보좌에 앉으셨나이다.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주의 규례는 올바르고 의롭고 친절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께 인간의 부당하고 불친절한 비난을 호소하나이다. 인간의 심판이 다스리는 것은 적은 것이지만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시다. 주의 말씀과 길과 주의 거룩한 종교는 아주 선합니다. 내게 떨어지는 훼방은 그것들 앞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나로 인하여 종교가 상하지 않게 하소서. 다윗은 여기에서 앞서 나온 22절과 같이 “훼방”에 대해서 기도한다. 다윗은 스스로 그가 여호와의 적대자들에게 모독을 줄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그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며 그의 가족을 불명예로 몰아 넣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그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장악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아 주시며,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도록”(39:8) 그가 두려워하는 훼방에서 떠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혹은 그의 적들이 그에게 부당하게 씌운 훼방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저희의 “거짓을 말하는 입술을 침묵케 하소서.”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인자하심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당신은 보좌에 앉으셨나이다.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주의 규례는 올바르고 의롭고 친절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께 인간의 부당하고 불친절한 비난을 호소하나이다. 인간의 심판이 다스리는 것은 적은 것이지만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시다. 주의 말씀과 길과 주의 거룩한 종교는 아주 선합니다. 내게 떨어지는 훼방은 그것들 앞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나로 인하여 종교가 상하지 않게 하소서.

119:40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시편 119:40) 1.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취했던 불타는 정열을 고백한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랑하고 내가 이미 수행한 것을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주의 법도를 더욱 알기를 진심으로 갈망하며 더욱 잘 행하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을 향하여 달리고 있나이다. 주의 말씀의 아름다운 향취는 더욱 말씀에 친근한 익숙함을 향해 사모하는 데에 있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고자 하는 열정적인 갈망에 관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보소서 내가 이같이 사랑하고 이처럼 사모하였나이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께서 내가 이같이 사모하였다는 것을 아십니다.”

2. 그는 이러한 고백을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한다 ‘주께서 내게 이렇게 오래 가는 열망을 주셨으며 내게 생명을 주사 나로 그것을 수행케 하심이라.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의로운 약속을 따라서 주의 의로운 길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곳에서 하실 일을 행할 것이며 그가 갈망하시는 곳에서 그가 가망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취했던 불타는 정열을 고백한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랑하고 내가 이미 수행한 것을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주의 법도를 더욱 알기를 진심으로 갈망하며 더욱 잘 행하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을 향하여 달리고 있나이다. 주의 말씀의 아름다운 향취는 더욱 말씀에 친근한 익숙함을 향해 사모하는 데에 있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고자 하는 열정적인 갈망에 관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보소서 내가 이같이 사랑하고 이처럼 사모하였나이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께서 내가 이같이 사모하였다는 것을 아십니다.”그는 이러한 고백을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한다 ‘주께서 내게 이렇게 오래 가는 열망을 주셨으며 내게 생명을 주사 나로 그것을 수행케 하심이라.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의로운 약속을 따라서 주의 의로운 길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곳에서 하실 일을 행할 것이며 그가 갈망하시는 곳에서 그가 가망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119:43 겸손한 자의 결심(시편 119:43,44) 1.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의 영공을 위하여, “때에 따라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하여, 학식 있는 자의 혀를 위해 겸손하게 간청한다. “진리의 말을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이런 뜻이다. “여호와여, 내 입에 항상 진리의 말씀을 두소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의 지식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나로 하여금 갖게 하소서. 선한 집주인과 같이 나의 창고에서 새로운 것과 옛 것을 꺼내게 하시며, 내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나의 신앙을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는 그의 진리와 법도를 소유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부끄럽게 말고 사람들 앞에서 그를 부인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그까지 때때로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 충분히 준비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완전히 취하여 가지 마소서. 나로 하여금 항상 그것을 손에 갖게 하시며 나의 의무의 합당한 이행에 꼭 필요한 것이 되게 하소서.”

2. 정직한 자의 마음에 대한 고백이 나타나 있다. 학식 있는 자의 혀가 없이는 정직 한자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봉사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1)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내게 성서를 준비케 하시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주의 입의 규례를 바랐음이니다. 만일 주의 규례가 가까이 없다면 나의 지탱과 방어는 나를 멀리할 것입니다.”

(2)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려는 그의 결심을 고백한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만일 내가 주의 말씀을 나의 마음 속에만이 아니라 나의 입에 두었다면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주의 모든 뜻을 견고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7, 골 3:16).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의 영공을 위하여, “때에 따라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하여, 학식 있는 자의 혀를 위해 겸손하게 간청한다. “진리의 말을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이런 뜻이다. “여호와여, 내 입에 항상 진리의 말씀을 두소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의 지식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나로 하여금 갖게 하소서. 선한 집주인과 같이 나의 창고에서 새로운 것과 옛 것을 꺼내게 하시며, 내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나의 신앙을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는 그의 진리와 법도를 소유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부끄럽게 말고 사람들 앞에서 그를 부인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그까지 때때로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 충분히 준비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완전히 취하여 가지 마소서. 나로 하여금 항상 그것을 손에 갖게 하시며 나의 의무의 합당한 이행에 꼭 필요한 것이 되게 하소서.”정직한 자의 마음에 대한 고백이 나타나 있다. 학식 있는 자의 혀가 없이는 정직 한자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봉사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내게 성서를 준비케 하시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주의 입의 규례를 바랐음이니다. 만일 주의 규례가 가까이 없다면 나의 지탱과 방어는 나를 멀리할 것입니다.”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려는 그의 결심을 고백한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만일 내가 주의 말씀을 나의 마음 속에만이 아니라 나의 입에 두었다면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주의 모든 뜻을 견고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7, 골 3:16).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로 결심했는지를 관찰해 보자.

[1] 경시함이 없이 계속적으로 지키기로 결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부단한 복종의 과정 속에서 섬김을 받으셔야 한다.

[2] 뒷걸음질함이 없이 “영영히” 지킬 것을 결심하고 있다. 우리는 “선행을 하다가 지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다. 만일 우리가 지상에서 우리의 생애가 다하도록 그를 섬긴다면 우리는 하늘에서도 영원히 끊임없이 그를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의 율법을 영영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경시함이 없이 계속적으로 지키기로 결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부단한 복종의 과정 속에서 섬김을 받으셔야 한다.뒷걸음질함이 없이 “영영히” 지킬 것을 결심하고 있다. 우리는 “선행을 하다가 지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다. 만일 우리가 지상에서 우리의 생애가 다하도록 그를 섬긴다면 우리는 하늘에서도 영원히 끊임없이 그를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의 율법을 영영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겠다. “여호와여 나의 입’에 진리의 말씀을 두시어 나로 하여금 오는 다음 세대에게 거룩한 기탁(寄託)을 하게 하소서(딤후 2:2).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그것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의 율법은 “영영히 지켜지리이다.” 즉 그 약속에 따라(사 59:21)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전해 질 것이다.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119:45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구할 것(시편 119:45-48) 우리는 이 구절을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1.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을 경험한 것. “내구 주의 법도를 구하였나이다(45절). 나는 나의 의무를 알기를 원하고 행가리를 갈망하며 따라서 주의 말씀을 찾았나이다. 나는 내가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그의 손의 암시를 발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의 계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47, 48절). 나는 기꺼이 주의 법도와 계명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기꺼이 그것들 안에서 만족을 취하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는 그의 지배를 사랑하며 따라서 그의 모든 계명들을 사랑한다.

2. 그가 이로부터 기대하는 것.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는 여기에서 스스로 다섯 가지의 사항들을 약속한다.

(1) 그는 그의 의무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자유롭게 행보할 것입니다.” 악한 것에서부터 자유하게 되어 나 자신의 타락의 속박으로 괴로움을 받지 않고 선한 것에 자유하여 속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행할 것이다. 죄의 예배는 완전한 노예이다. 하나님의 예배는 완전한 자유이다. 방종은 가장 악독한 폭군에의 속박이다. 성실성은 가장 비천한 죄수들에게 자유를 준다(요 8:32, 36; 눅 1:74, 75).

(2) 그는 그의 의무에서 담대하고 용기가 있게 되리라는 것은 “내가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하겠나이다.” 다윗의 왕관을 쓰기 전에 열왕들은 때때로 사울과 아기스 같은 자들이 그의 재판관들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에게 있는 희망이 사유를 말하라고 그들을 앞에 불리워 왔다면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말하였을 것이고” 그의 희망을 그 위에 세우리라고 고하며 그것들은 그의 뜻으로, 그의 보호자로, 그의 왕관으로, 그의 모든 것으로 삼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왕들의 진노에 위험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종교를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느부갓네살왕 앞에 선 세 청년과 같이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죽을 것처럼 말해야 할 것이다.(단 3:16; 행 4:20).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열왕들은 때때로 그의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그를 방문했고 그는 그들의 방문에 보답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종교 이외에는 어떤 것이라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욕을 주지는 않았으나 그의 대화는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아니다. 하나님의 증거들이 열왕들와의 담화의 주요 주제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것을 가르쳤고 그들을 개종시키려 하였다. 하나님의 증거들을 왕들이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방백들의 대화를 아름답게 해 줄 것이다.

(3) 그가 그의 의에서 기쁘고 즐겁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나이다(47절). 내가 주의 계명과 대화하여 그것을 따르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행할 때보다 더 큰 즐거움을 스스로 갖지 못했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서 취하는 기쁨이 많을수록 우리가 향하고 있는 완전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4) 그가 그의 의무에서 부지런하며 의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겠나이다.” 그것은 주의 계명을 향한 열렬한 갈망을 나타내 주고 있다(시 143:6). “내가 주의 계명을 잊을까 두려워하며, 지나칠까 두려워하는 자세로써 주의 계명을 붙들겠나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은 주의 계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최종적인 성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명령에 손을 펴고 그것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겠나이다. 아니, 내가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내가 해야 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이겠나이다.” 나태와 실망으로 인하여 밑으로 내려진 손이 들려질 것이다(히 12:12).

(5) 그가 그의 의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숙고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48절). 주의 율례를 명상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또한 내가 주의 율례를 최선의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고안해 내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손에 적용한다면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을 경험한 것. “내구 주의 법도를 구하였나이다(45절). 나는 나의 의무를 알기를 원하고 행가리를 갈망하며 따라서 주의 말씀을 찾았나이다. 나는 내가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그의 손의 암시를 발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의 계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47, 48절). 나는 기꺼이 주의 법도와 계명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기꺼이 그것들 안에서 만족을 취하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는 그의 지배를 사랑하며 따라서 그의 모든 계명들을 사랑한다.그가 이로부터 기대하는 것.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는 여기에서 스스로 다섯 가지의 사항들을 약속한다.그는 그의 의무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자유롭게 행보할 것입니다.” 악한 것에서부터 자유하게 되어 나 자신의 타락의 속박으로 괴로움을 받지 않고 선한 것에 자유하여 속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행할 것이다. 죄의 예배는 완전한 노예이다. 하나님의 예배는 완전한 자유이다. 방종은 가장 악독한 폭군에의 속박이다. 성실성은 가장 비천한 죄수들에게 자유를 준다(요 8:32, 36; 눅 1:74, 75).그는 그의 의무에서 담대하고 용기가 있게 되리라는 것은 “내가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하겠나이다.” 다윗의 왕관을 쓰기 전에 열왕들은 때때로 사울과 아기스 같은 자들이 그의 재판관들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에게 있는 희망이 사유를 말하라고 그들을 앞에 불리워 왔다면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말하였을 것이고” 그의 희망을 그 위에 세우리라고 고하며 그것들은 그의 뜻으로, 그의 보호자로, 그의 왕관으로, 그의 모든 것으로 삼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왕들의 진노에 위험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종교를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느부갓네살왕 앞에 선 세 청년과 같이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죽을 것처럼 말해야 할 것이다.(단 3:16; 행 4:20).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열왕들은 때때로 그의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그를 방문했고 그는 그들의 방문에 보답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종교 이외에는 어떤 것이라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욕을 주지는 않았으나 그의 대화는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아니다. 하나님의 증거들이 열왕들와의 담화의 주요 주제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것을 가르쳤고 그들을 개종시키려 하였다. 하나님의 증거들을 왕들이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방백들의 대화를 아름답게 해 줄 것이다.그가 그의 의에서 기쁘고 즐겁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나이다(47절). 내가 주의 계명과 대화하여 그것을 따르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행할 때보다 더 큰 즐거움을 스스로 갖지 못했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서 취하는 기쁨이 많을수록 우리가 향하고 있는 완전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그가 그의 의무에서 부지런하며 의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겠나이다.” 그것은 주의 계명을 향한 열렬한 갈망을 나타내 주고 있다(시 143:6). “내가 주의 계명을 잊을까 두려워하며, 지나칠까 두려워하는 자세로써 주의 계명을 붙들겠나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은 주의 계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최종적인 성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명령에 손을 펴고 그것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겠나이다. 아니, 내가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내가 해야 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이겠나이다.” 나태와 실망으로 인하여 밑으로 내려진 손이 들려질 것이다(히 12:12).그가 그의 의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숙고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48절). 주의 율례를 명상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또한 내가 주의 율례를 최선의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고안해 내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손에 적용한다면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119:49 희망과 약속(시편 119:49)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희망했던 자비와 은총에 대해서 기도로써 하나님께 두 가지 사항을 호소한다. 요구는 말씀에 따라서 인도되었다. 1.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희망했던 약속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소서(대상 17:23 참조). 주는 지혜로우심으로 당신께서 목적하신 것을 변경하지 않고 완전케 하실 것입니다. 주는 신실하시므로 당신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파기하지 않고 수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자기들의 몫으로 삼는 자들은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그 약속들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주께서는 그것을 선히 이루시려는 것이 아닙니까?(창 32:9) (출 33:12)

2. 말씀으로 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 가운데 있는 희망을 그에게 행하셨으며 그로 하여금 그것을 의지하도록 하신 그 하나님이 위대한 것들을 기대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세속적인 좋은 것들보다 영적인 축복을 향하여 갈망이 타오르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갈망들을 만족케 하시기 위하여 친절하시지 않았는가? 그가 우리에게 그러한 축복들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케 하셨으며 이러한 희망들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공평하시지 않았는가? 그의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 신앙을 주신 자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우리를 위해 활동하시며 우리를 실망에 빠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희망했던 약속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소서(대상 17:23 참조). 주는 지혜로우심으로 당신께서 목적하신 것을 변경하지 않고 완전케 하실 것입니다. 주는 신실하시므로 당신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파기하지 않고 수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자기들의 몫으로 삼는 자들은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그 약속들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주께서는 그것을 선히 이루시려는 것이 아닙니까?(창 32:9) (출 33:12)말씀으로 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 가운데 있는 희망을 그에게 행하셨으며 그로 하여금 그것을 의지하도록 하신 그 하나님이 위대한 것들을 기대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세속적인 좋은 것들보다 영적인 축복을 향하여 갈망이 타오르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갈망들을 만족케 하시기 위하여 친절하시지 않았는가? 그가 우리에게 그러한 축복들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케 하셨으며 이러한 희망들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공평하시지 않았는가? 그의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 신앙을 주신 자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우리를 위해 활동하시며 우리를 실망에 빠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119:50 고난 중의 위로(시편 119:50) 여기에서 다윗은 말씀에 의한 은택을 다음과 같이 경험하고 있다. 1. 그의 성화(聖化)의 수단으로서이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죄 가운데서 죽어 있었을 때에 나를 살게 했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가 의무에 대해 죽어 있었을 때 여러 번 나를 살게 했나이다. 그것은 내가 뒤로 물러서고 역행할 때 나를 선한 것으로 소생시켰나이다. 그것은 내가 냉담하고 무관심할 때 선한 것으로 나를 소생시켰나이다.”

2. 그러므로 그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자기를 붙들어 줄 어떤 것을 필요로 할 때, 그의 위로의 수단으로서 말씀에 의한 은택을 경험하였다. “주의 말씀이 평소에 나를 살리셨으므로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은 나를 위로해 주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곤란 중에 위로라”고 말하는 풍부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말씀을 살리는 능력을 경험한 자들만이 그것을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은총을 통해서 주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건 하에서 우리를 편안케 해 주는 것이 충분히 있다. 그의 성화(聖化)의 수단으로서이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죄 가운데서 죽어 있었을 때에 나를 살게 했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가 의무에 대해 죽어 있었을 때 여러 번 나를 살게 했나이다. 그것은 내가 뒤로 물러서고 역행할 때 나를 선한 것으로 소생시켰나이다. 그것은 내가 냉담하고 무관심할 때 선한 것으로 나를 소생시켰나이다.”그러므로 그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자기를 붙들어 줄 어떤 것을 필요로 할 때, 그의 위로의 수단으로서 말씀에 의한 은택을 경험하였다. “주의 말씀이 평소에 나를 살리셨으므로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은 나를 위로해 주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곤란 중에 위로라”고 말하는 풍부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말씀을 살리는 능력을 경험한 자들만이 그것을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은총을 통해서 주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건 하에서 우리를 편안케 해 주는 것이 충분히 있다.

119:51 조롱 속에서도 법도를 지킴(시편 119:51)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1. 그가 그의 종교로 인하여 조롱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명예있는 사람이요, 가장 신중한 사람이요, 자기 나라에 유명한 업적들을 남긴 사람이지만, 경건한 양심인이었기 때문에 “교만한 자가 그를 심히 조롱하였다.” 그들은 그를 비웃고 희롱하였으며, 그들이 그를 경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행했다. 그들은 그의 기도를 조롱하여 그것을 “위선적인 말투”라고 불렀고, 그의 엄격성을 조롱하여 “필요 없는 꼼꼼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경멸하는 자의 자리에 앉아서 그들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한 자들이었다.

2. 그러나 그는 신앙이 없다고 하여 조롱받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떠나 수치를 당하게 하려는 모든 것을 행하였으나, 이러한 것들 중 어떠한 것도 나를 요동케 할 수 없었나이다. 나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이같이 그에게 크게 조롱했을 때 말한 것과 같이), 나는 더욱 수치를 당하리라.” 그는 율법을 전혀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더욱 더 고수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의 훼방이나 그들의 욕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떠한 의무에서도 움추려서는 아니 되며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도 아니 된다. 여행자는 개들이 그를 향해 짖더라도 자기의 길을 간다. 자신을 향한 괴로운 말을 참을 수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도 거의 참을 수 없는 자들이다. 그가 그의 종교로 인하여 조롱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명예있는 사람이요, 가장 신중한 사람이요, 자기 나라에 유명한 업적들을 남긴 사람이지만, 경건한 양심인이었기 때문에 “교만한 자가 그를 심히 조롱하였다.” 그들은 그를 비웃고 희롱하였으며, 그들이 그를 경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행했다. 그들은 그의 기도를 조롱하여 그것을 “위선적인 말투”라고 불렀고, 그의 엄격성을 조롱하여 “필요 없는 꼼꼼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경멸하는 자의 자리에 앉아서 그들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한 자들이었다.그러나 그는 신앙이 없다고 하여 조롱받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떠나 수치를 당하게 하려는 모든 것을 행하였으나, 이러한 것들 중 어떠한 것도 나를 요동케 할 수 없었나이다. 나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이같이 그에게 크게 조롱했을 때 말한 것과 같이), 나는 더욱 수치를 당하리라.” 그는 율법을 전혀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더욱 더 고수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의 훼방이나 그들의 욕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떠한 의무에서도 움추려서는 아니 되며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도 아니 된다. 여행자는 개들이 그를 향해 짖더라도 자기의 길을 간다. 자신을 향한 괴로운 말을 참을 수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도 거의 참을 수 없는 자들이다.

119:52 주의 규례를 기억하고 위로함(시편 119:52) 다윗이 그의 경건 때문에 조롱당했을 때 그의 성실을 더욱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1. 그는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훼방을 참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거이 참았다. 그것은 그의 평화를 해치지 못했고, 하나님안에서의 그의 영혼의 안식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가 훼방을 참은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그의 가장 무서운 대적자들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틈을 얻지 못하는 것”(단 6:5)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기 때문에 조롱받는 자들은 이와 같이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조롱은 애굽에서의 보화보다” 그들에게 결국 ‘훨씬 더 큰 부(富)”가 되리라는 것이다.

2. 그가 자신을 위로한 것은 하나님의 “옛 규례”를 기억함으로써 가능했다. 즉 그 옛 규례는 그의 백성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로써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저희의 박해자에겐 정의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우리 조상들의 시절에 하나님의 옛 규례는 우리의 위로와 격려를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우리에 의해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같으신 변함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훼방을 참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거이 참았다. 그것은 그의 평화를 해치지 못했고, 하나님안에서의 그의 영혼의 안식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가 훼방을 참은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그의 가장 무서운 대적자들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틈을 얻지 못하는 것”(단 6:5)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기 때문에 조롱받는 자들은 이와 같이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조롱은 애굽에서의 보화보다” 그들에게 결국 ‘훨씬 더 큰 부(富)”가 되리라는 것이다.그가 자신을 위로한 것은 하나님의 “옛 규례”를 기억함으로써 가능했다. 즉 그 옛 규례는 그의 백성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로써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저희의 박해자에겐 정의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우리 조상들의 시절에 하나님의 옛 규례는 우리의 위로와 격려를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우리에 의해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같으신 변함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119:53 사악한 자들의 죄(시편 119:53) 1. 여기에 악인들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는 공공연히 크게 사악한 자들을 말하고자 한다. “그들은 주의 율법을 버렸다.” 모든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지만 고의적이고도 공공연하게 인정된 죄 의과정과 그 길은 율법을 노골적으로 버리는 것이며 던져 버리는 것이다.

2. 다윗은 여기에서 사악한 자의 사악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그를 놀라게 했고, 그를 큰 노여움으로 잡히게 했다. 그는 하나님께 모독하며 사탄에게 만족감을 주고 인간의 영혼에게는 불행을 자초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떨었다. 그는 죄인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 결과를 무서워했다. 그리고 외쳤다. “죄인들과 함께 내 영혼을 거두지 마소서! 내 대적자는 사악한 자로 있나이다.”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하는 자는 그렇게 침몰하고 파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나에 대한 저희의 잔악한 획책 때문에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해서 행한 경멸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죄는 성화된 모든 자의 관점에서 볼 때 끔찍하게 무서운 것이다.(렘 2:12; 5:30; 호 6:10) 여기에 악인들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는 공공연히 크게 사악한 자들을 말하고자 한다. “그들은 주의 율법을 버렸다.” 모든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지만 고의적이고도 공공연하게 인정된 죄 의과정과 그 길은 율법을 노골적으로 버리는 것이며 던져 버리는 것이다.다윗은 여기에서 사악한 자의 사악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그를 놀라게 했고, 그를 큰 노여움으로 잡히게 했다. 그는 하나님께 모독하며 사탄에게 만족감을 주고 인간의 영혼에게는 불행을 자초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떨었다. 그는 죄인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 결과를 무서워했다. 그리고 외쳤다. “죄인들과 함께 내 영혼을 거두지 마소서! 내 대적자는 사악한 자로 있나이다.”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하는 자는 그렇게 침몰하고 파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나에 대한 저희의 잔악한 획책 때문에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해서 행한 경멸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죄는 성화된 모든 자의 관점에서 볼 때 끔찍하게 무서운 것이다.(렘 2:12; 5:30; 호 6:10)

119:54 나그네된 인생(시편 119:54) 1. 여기에 다윗의 상황과 여건이 나타나 있다. 그는 “나그네 된 집에” 있었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곤고로써 이해되거나(그는 종종 괴로웠고 황급했고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것과 같이 그의 궁핍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나그네된 집이며 우리가 순례하는 집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장막이다. 그것은 우리의 여인숙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이 세상에 집도 없고 오래 머무르지도 않을 “세상의 손님 또는 나그네’로 고백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다윗의 궁성도 그의 나그네된 집에 지나지 않았다.

2. 이러한 상황에서의 그의 위로가 나타나 있다.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내가 기쁨으로 주의 율례를 맞이하나이다.” 여행자들이 계속 틈을 내어 즐거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들의 지친 생각을 변경하고 여행 중에 겪은 지루한 어떤 것을 벗어 버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가수였다.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그의 노래의 소재를 찾는지를 알게 된다. 그 노래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례는 인간이 노래하기에 익숙한 노래들처럼 친숙했다. 그리고 그는 나그네의 고독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그것들은 노래와 같이 그에게 즐거운 것이었으며,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암 6:5) 자들보다 “그의 마음 속에 더 큰 기쁨을 갖는다.” 그러면 “고당하는 자가 있는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례를 노래하게 하라.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슬픔을 노래하도록”(138:5 참조) 하라. 여기에 다윗의 상황과 여건이 나타나 있다. 그는 “나그네 된 집에” 있었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곤고로써 이해되거나(그는 종종 괴로웠고 황급했고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것과 같이 그의 궁핍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나그네된 집이며 우리가 순례하는 집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장막이다. 그것은 우리의 여인숙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이 세상에 집도 없고 오래 머무르지도 않을 “세상의 손님 또는 나그네’로 고백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다윗의 궁성도 그의 나그네된 집에 지나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에서의 그의 위로가 나타나 있다.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내가 기쁨으로 주의 율례를 맞이하나이다.” 여행자들이 계속 틈을 내어 즐거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들의 지친 생각을 변경하고 여행 중에 겪은 지루한 어떤 것을 벗어 버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가수였다.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그의 노래의 소재를 찾는지를 알게 된다. 그 노래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례는 인간이 노래하기에 익숙한 노래들처럼 친숙했다. 그리고 그는 나그네의 고독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그것들은 노래와 같이 그에게 즐거운 것이었으며,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암 6:5) 자들보다 “그의 마음 속에 더 큰 기쁨을 갖는다.” 그러면 “고당하는 자가 있는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례를 노래하게 하라.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슬픔을 노래하도록”(138:5 참조) 하라.

119:55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시편 119:55,56) 1.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한 대화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상기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말씀 가운데서, 그의 말씀에 의해서 발견한 것이다. “이는 모든 세대에 이르는 그의 기억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것을 기억 속에 보존하며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교제하기 위하여 자려 갈 때 즉 “밤에” 그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었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주의 말씀을 암송하고 친숙하게 함으로써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난의 밤에도 이것을 상기했다.

2. 그가 주의 말씀에 따르고자 했던 양심이 나타나 있다. 그의 율법 앞에 표제로 붙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적절하게 기억하는 것을 우리가 율법을 연구할 때 커다란 감화를 줄 것이다.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고 하루 종일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율법을 지켰노라고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 증거할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나타날 것인가!

3. 그가 그로부터 얻은 소유를 보자(50절). “내 소유는 이것이니”(그것은 내가 나를 만족케 한 것이다. 내가 얻은 위로하는 모든 것이다)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종교를 과제로 삼은 모든 자들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오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얻는 자가 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즉시 앞에 행해진 것에 대해 언급한다. “내가 주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위로를 받았나이다.” 하나님의 업적은 그 자체가 응보(應報)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더욱 하도록 허락받으며 더욱 더 예배하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는 나뭇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요 15:2)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한 대화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상기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말씀 가운데서, 그의 말씀에 의해서 발견한 것이다. “이는 모든 세대에 이르는 그의 기억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것을 기억 속에 보존하며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교제하기 위하여 자려 갈 때 즉 “밤에” 그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었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주의 말씀을 암송하고 친숙하게 함으로써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난의 밤에도 이것을 상기했다.그가 주의 말씀에 따르고자 했던 양심이 나타나 있다. 그의 율법 앞에 표제로 붙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적절하게 기억하는 것을 우리가 율법을 연구할 때 커다란 감화를 줄 것이다.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고 하루 종일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율법을 지켰노라고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 증거할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나타날 것인가!그가 그로부터 얻은 소유를 보자(50절). “내 소유는 이것이니”(그것은 내가 나를 만족케 한 것이다. 내가 얻은 위로하는 모든 것이다)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종교를 과제로 삼은 모든 자들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오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얻는 자가 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즉시 앞에 행해진 것에 대해 언급한다. “내가 주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위로를 받았나이다.” 하나님의 업적은 그 자체가 응보(應報)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더욱 하도록 허락받으며 더욱 더 예배하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는 나뭇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요 15:2)

119:57 거룩한 사람의 성품(시편 119:57) 우리는 여기에서 거룩한 사람의 성품을 추측할 수 있겠다. 1.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의 지복(至福)으로 삼는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이다.” 다른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을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에 두고있다. 그들은 더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은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지 못한다. 이것들이 “네 좋은 것(눅 16:21)들이다. 그러나 성화된 모든 자들은 여호와의 유업과 저희의 잔의 분깃으로 삼는다. 그밖의 어떠한 것들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문제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의 지복(至福)으로 삼는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이다.” 다른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을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에 두고있다. 그들은 더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은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지 못한다. 이것들이 “네 좋은 것(눅 16:21)들이다. 그러나 성화된 모든 자들은 여호와의 유업과 저희의 잔의 분깃으로 삼는다. 그밖의 어떠한 것들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문제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내가 주를 나의 분깃으로 택한 줄을 아시나이다. 주를 의지하오니 나를 행복하게 하소서.” 2.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그의 규범으로 삼았다.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말한 것은 주의 은총으로 내가 행하며 끝까지 그것을 따라 살겠나이다.” 하나님을 자기들의 분깃으로 삼는 자들은 그를 저희의 왕으로 삼으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그의 규범으로 삼았다.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말한 것은 주의 은총으로 내가 행하며 끝까지 그것을 따라 살겠나이다.” 하나님을 자기들의 분깃으로 삼는 자들은 그를 저희의 왕으로 삼으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지키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의 약속을 자주 상기하여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다(39:1).

119:58 전심으로 은혜를 구함(시편 119:58) 다윗은 앞에 나온 구절들에서 하나님과의 그의 계약을 반영하고서 여기에서 그의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반영하고 그의 간구를 새롭게 하고 있다. 다음의 사항들을 연구해 보자. 1. 그가 무엇을 간구하였는가. 하나님을 그의 분깃으로 삼고서 “주의 은혜를 구하였다.” 그는 자신을 은혜를 충만히 받은 자로 알고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라고 느꼈지만, 주의 은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주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빛을 독촉하는 것처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겸손하게 간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화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향해 미소하신 그는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죄 가운데 행한 것을 사해 주시며 내게 은총을 주사 앞으로 더 좋은 것을 행하게 하소서.”

2. 그는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는 축복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았다. 은혜로운 영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앉아서 그것을 위해 조른다. “주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는다면 주를 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3. 그가 청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약속된 자비를 갈망하며 그것을 위해 약속을 의지하나이다.” 말씀의 율례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한 자들은(57절) 말씀의 약속들을 간청할 수 있으며 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간구하였는가. 하나님을 그의 분깃으로 삼고서 “주의 은혜를 구하였다.” 그는 자신을 은혜를 충만히 받은 자로 알고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라고 느꼈지만, 주의 은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주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빛을 독촉하는 것처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겸손하게 간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화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향해 미소하신 그는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죄 가운데 행한 것을 사해 주시며 내게 은총을 주사 앞으로 더 좋은 것을 행하게 하소서.”그는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는 축복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았다. 은혜로운 영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앉아서 그것을 위해 조른다. “주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는다면 주를 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그가 청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약속된 자비를 갈망하며 그것을 위해 약속을 의지하나이다.” 말씀의 율례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한 자들은(57절) 말씀의 약속들을 간청할 수 있으며 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19:59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함(시편 119:59,60) 다윗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리라(57절)”고 말했다. 그것은 잘 말한 것이었다. 이제 여기에서 그는 우리에게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그러한 결심을 추구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1. 그는 그의 “행위를 생각하였다” 그는 그의 발의 행할 첩경을 골똘히 생각하면서(잠 4:26) 그가 행해야 할 것을 미리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가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며 전혀 모험적인 길은 아니다. 그는 과거의 그의 생애를 반성하고 그가 걸었던 행로와 그가 걸어왔던 발걸음을 회상하면서 무엇을 행했는지를 생각하며 추구했다. 그 말은 고정된 변치않는 생각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수품을 만들며 최소한의 결점도 남기지 않고 매우 정확하고 주의 깊게 행하는 자들이나 저희들이 계산을 합계해 보며, 내가 얼마를 갚아야 하며, 내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를 주시하는 자들에 대한 암시라고 본다. 내가 나의 부요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욕심 많은 사람과 같이, 19:11) 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관해서, “내 행위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나게 될 때 저 세상에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우리가 행한 바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실을 검토하기를 관심하고 있지 않다.”

2. 그는 “주의 증거로 그의 발을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범에 따라 행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그가 곁길로 갔던 다른 길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증거로 돌이켰다. 그는 주의 증거로 그 눈을 돌이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발도 돌이켰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실행하도록 하는 그의 말씀에로 돌아왔다.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증거와 말씀을 향하여 굽혀지고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것들에 의해서 다스려지게 되었다. 참회하는 반성은 결국 경건한 결심을 창출한다.

3. 그는 이것을 즉시 이의 없이 행했다(60절). “내가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있을 때 우리는 펠릭스(Felix)가 행한 것처럼 “더 편안한 시기”로 그것을 미루지 말고, 쇠가 달았을 때 때려야 하듯이 신속히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때 지체하지 말고 “오늘 부르심을 받았다면 오늘에” 그것을 착수해야 한다. 그는 그의 “행위를 생각하였다” 그는 그의 발의 행할 첩경을 골똘히 생각하면서(잠 4:26) 그가 행해야 할 것을 미리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가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며 전혀 모험적인 길은 아니다. 그는 과거의 그의 생애를 반성하고 그가 걸었던 행로와 그가 걸어왔던 발걸음을 회상하면서 무엇을 행했는지를 생각하며 추구했다. 그 말은 고정된 변치않는 생각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수품을 만들며 최소한의 결점도 남기지 않고 매우 정확하고 주의 깊게 행하는 자들이나 저희들이 계산을 합계해 보며, 내가 얼마를 갚아야 하며, 내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를 주시하는 자들에 대한 암시라고 본다. 내가 나의 부요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욕심 많은 사람과 같이, 19:11) 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관해서, “내 행위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나게 될 때 저 세상에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우리가 행한 바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실을 검토하기를 관심하고 있지 않다.”그는 “주의 증거로 그의 발을 돌이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범에 따라 행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그가 곁길로 갔던 다른 길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증거로 돌이켰다. 그는 주의 증거로 그 눈을 돌이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발도 돌이켰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실행하도록 하는 그의 말씀에로 돌아왔다.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증거와 말씀을 향하여 굽혀지고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것들에 의해서 다스려지게 되었다. 참회하는 반성은 결국 경건한 결심을 창출한다.그는 이것을 즉시 이의 없이 행했다(60절). “내가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있을 때 우리는 펠릭스(Felix)가 행한 것처럼 “더 편안한 시기”로 그것을 미루지 말고, 쇠가 달았을 때 때려야 하듯이 신속히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때 지체하지 말고 “오늘 부르심을 받았다면 오늘에” 그것을 착수해야 한다. 다윗이 여기에서 그 자신에게 행한 이러한 결심은 그의 매일매일의 부단한 실행에 대한 언급일 수 있거나(그는 밤에 그의 행실을 반성하고 아침에 주의 증거에로 그의 발걸음을 향하고 그의 손이 선한 것을 행하기 위해 찾은 것은 연기하지 않고 즉시 행했다) 그가 어린 시절과 젊은이의 공허함을 버리고 그의 창조자를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과 종교에 친숙했던 것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겠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저 축북받은 자는 변화되어 이와 같이 행하였다.

(1) 회개는 진지한 숙고에서 시작된다(겔 18:28; 눅 15:17).

(2) 숙고는 완전한 회개로 끝나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전 속력으로 하나님의 증거에로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우리의 행실을 생각했는가?

회개는 진지한 숙고에서 시작된다(겔 18:28; 눅 15:17).숙고는 완전한 회개로 끝나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전 속력으로 하나님의 증거에로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우리의 행실을 생각했는가?

119:61 잃어서는 아니 될 주의 법(시편 119:61) 1. 다윗의 적들이 그에 대해 품은 적의(敵意)가 있다. 그들은 그의 경건 때문에 그를 증오한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에게 대항하여 동맹을 맺은 무리와 군대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해를 그에게 끼쳤다. 그들은 그의 좋은 명성을 떨어뜨리려고 노력하면서 전시(戰時)의 약탈에 의해서, 또는 법이라는 구실로 벌금과 몰수에 의해서 그의 좋은 물품들을 공략하고 파괴시켰다. 사울도(그와 같이) 동산물건(動産物件)들을 취했고, 압살롬은 그의 궁성을, 아멜렉 사람들은 시글락을 약탈하였다. 세상적인 재산은 약탈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다윗은 전사(戰士)였지만 자신의 소유물을 보존할 수 없었다. “도독들이 꿰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2. 욥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약탈당했을 때와 같이 다윗도 그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그의 종교를 굳게 잡은 자신의 양심의 증거가 나타나 있다.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날까봐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를 위로하는 향취가 사라지고 그것을 거스르는 경우를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환난에도 하나님의 도가 나빠진다고 생각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지금 잃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종교에 의해서 결국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윗의 적들이 그에 대해 품은 적의(敵意)가 있다. 그들은 그의 경건 때문에 그를 증오한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에게 대항하여 동맹을 맺은 무리와 군대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해를 그에게 끼쳤다. 그들은 그의 좋은 명성을 떨어뜨리려고 노력하면서 전시(戰時)의 약탈에 의해서, 또는 법이라는 구실로 벌금과 몰수에 의해서 그의 좋은 물품들을 공략하고 파괴시켰다. 사울도(그와 같이) 동산물건(動産物件)들을 취했고, 압살롬은 그의 궁성을, 아멜렉 사람들은 시글락을 약탈하였다. 세상적인 재산은 약탈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다윗은 전사(戰士)였지만 자신의 소유물을 보존할 수 없었다. “도독들이 꿰뚫고 들어와 훔쳐간다.”욥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약탈당했을 때와 같이 다윗도 그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그의 종교를 굳게 잡은 자신의 양심의 증거가 나타나 있다.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날까봐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를 위로하는 향취가 사라지고 그것을 거스르는 경우를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환난에도 하나님의 도가 나빠진다고 생각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지금 잃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종교에 의해서 결국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9:62 감사의 의무(시편 119:62) 다윗이 이 시편에서 비록 기도를 많이 드리고 있지만, 감사의 의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자들은 감사드려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1. 그의 감사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보여졌는가를 살펴보자. 그는 자기에게 주신 주의 은총을 인하여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영광 받으실 지혜와 공평하심에 나타난 모든 주의 섭리의 계획, 즉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데서 나타나는 그의 영광의 드러남과 그의 말씀의 성취됨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것이다.

2. 다윗의 마음이 그의 감사로 얼마나 정해졌는지를 관찰해 보자. 그는 하나님께 “밤중에 일어나 감사하리라”고 하였다. 깊은 잠 대신에 위대하고 선한 생각들이 그를 깨어나게 했으며 그를 소생시켰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심히 사모하여 다른 사람이 잠들어 있을때에도 그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무릎을 끓었다. 그는 그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생각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시는 곳에서 감사를 드렸다. 그는 “여호와의 집의 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그의 침상에서도 그렇게 행하기를 원했다. 공중 예배는 우리에게 개인 예배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다윗이 하나님의 규례에 자기의 마음이 감동되었음을 발견했을 때 그는 냉담해지지 않기 위해서 지체하지 않고 즉시 실제적인 칭송으로 하나님께 그러한 감동들을 제사로 드렸다. 그의 감사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보여졌는가를 살펴보자. 그는 자기에게 주신 주의 은총을 인하여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영광 받으실 지혜와 공평하심에 나타난 모든 주의 섭리의 계획, 즉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데서 나타나는 그의 영광의 드러남과 그의 말씀의 성취됨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것이다.다윗의 마음이 그의 감사로 얼마나 정해졌는지를 관찰해 보자. 그는 하나님께 “밤중에 일어나 감사하리라”고 하였다. 깊은 잠 대신에 위대하고 선한 생각들이 그를 깨어나게 했으며 그를 소생시켰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심히 사모하여 다른 사람이 잠들어 있을때에도 그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무릎을 끓었다. 그는 그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생각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시는 곳에서 감사를 드렸다. 그는 “여호와의 집의 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그의 침상에서도 그렇게 행하기를 원했다. 공중 예배는 우리에게 개인 예배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다윗이 하나님의 규례에 자기의 마음이 감동되었음을 발견했을 때 그는 냉담해지지 않기 위해서 지체하지 않고 즉시 실제적인 칭송으로 하나님께 그러한 감동들을 제사로 드렸다. 이제 그의 경외심을 살펴 보자. 그는 계속 누워 있지 않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감사를 드리고, 춥고 어두울지라도 더욱 엄숙하게 감사를 드렸다. 그가 당대에 있어서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었는지는 보라. 그는 누워 잠들 수도 없을 때에, 일어나서 기도하기를 원했다.

119:63 성도들과의 친교(시편 119:63) 다윗은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졌던 커다란 사랑을 종종 표현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자기가 가졌던 커다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1. 왜 그가 저들을 사랑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이 그의 절친한 친구이거나 그의 이익을 도모해 주고 그를 도와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영예를 얻도록 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나라를 지탱하도록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진실해야 하며, 우리는 저희들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2. 그가 어떻게 그의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었는가? 그는 “그들의 친구”였다. 그는 같은 믿음과 희망 가운데서 그들과 영적인 고통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방백과 농부와 함께 만나는 여호와의 궁성에서 거룩한 예식으로 그들과 함께 연합했다. 그는 그들과 가족적으로 대화하였으며 그들에게 그의 경험을 전하고 그들의 경험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그의 친구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과 만나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렇게 행하는 모두를 어떠한 자라고 할지라도 자신과 친구가 될 것을 허용했다. 그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의 신민 중에 가장 가난한 자일지라도 그와 교제하기를 원했다(15:4; 약 2:1) 왜 그가 저들을 사랑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이 그의 절친한 친구이거나 그의 이익을 도모해 주고 그를 도와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영예를 얻도록 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나라를 지탱하도록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진실해야 하며, 우리는 저희들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그가 어떻게 그의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었는가? 그는 “그들의 친구”였다. 그는 같은 믿음과 희망 가운데서 그들과 영적인 고통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방백과 농부와 함께 만나는 여호와의 궁성에서 거룩한 예식으로 그들과 함께 연합했다. 그는 그들과 가족적으로 대화하였으며 그들에게 그의 경험을 전하고 그들의 경험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그의 친구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과 만나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렇게 행하는 모두를 어떠한 자라고 할지라도 자신과 친구가 될 것을 허용했다. 그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의 신민 중에 가장 가난한 자일지라도 그와 교제하기를 원했다(15:4; 약 2:1)

119:64 땅에 충만한 주의 인자하심(시편 119:64) 1. 여기에서 다윗은 모든 피조물에게 저희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선대하실 것을 간구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것같이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며” 그의 긍휼과 관대하심의 증거들이 충만하다. 지상에 있는 인간의 자녀들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경외를 표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는 전세계에도 그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다. 지상에 있는 인간의 자녀들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열등한 피조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다. “그의 긍휼히 여기는 인자하심이 그의 모든 업적에 나타나 있다.”

2.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대하실 것을 기도한다.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는 울부짖는 어린 까마귀들에게도 합당한 양식을 먹이신다. 그런데 주께서 나의 영혼이 필요로 하고 갈구하는, 그것 어이는 살 수 없는 영의 양식과 생명의 떡으로 나를 먹이시지 않겠는가?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 주께서 내게 거룩한 곳에서 영적인 축복을 내게 주시지 않겠는가? 은혜로운 심령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논거(論據)를 가져 온다. 확실히 자기의 새들을 먹이시는 자는 자녀들도 가르치시려 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모든 피조물에게 저희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선대하실 것을 간구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것같이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며” 그의 긍휼과 관대하심의 증거들이 충만하다. 지상에 있는 인간의 자녀들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경외를 표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는 전세계에도 그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다. 지상에 있는 인간의 자녀들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열등한 피조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다. “그의 긍휼히 여기는 인자하심이 그의 모든 업적에 나타나 있다.”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대하실 것을 기도한다.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는 울부짖는 어린 까마귀들에게도 합당한 양식을 먹이신다. 그런데 주께서 나의 영혼이 필요로 하고 갈구하는, 그것 어이는 살 수 없는 영의 양식과 생명의 떡으로 나를 먹이시지 않겠는가?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 주께서 내게 거룩한 곳에서 영적인 축복을 내게 주시지 않겠는가? 은혜로운 심령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논거(論據)를 가져 온다. 확실히 자기의 새들을 먹이시는 자는 자녀들도 가르치시려 하실 것이다.

119:65 주의 자비에 대한 경험(시편 119:65,66) 1. 다윗은 모든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롭게 대하신 것을 감사의 고백으로 답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든, 우리는 그가 우리를 “선대하셨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행하실 목적으로 우리가 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도 그보다 더욱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신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 우리를 선대하셨다. 그는 그의 모든 종들을 위해서 선대하셨다. 그들중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혹독하게 대하셨다고 불평하는 일이 전혀 없다 주는 주의 자비를 따라서 만이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다.” 하나님의 은총은 약속과 비교하여 볼 때 가장 잘 드러나며, 마치 샘물에서 흘러 나오는 것처럼 보여진다

2. 그는 이러한 경험들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위해 간청한다. “주의 은총으로, 곧 내게 행하신 은택에 따라서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게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며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취향(그 말의 뜻은 이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과 좋은 미각을 가르치소서. 왜냐하면 입이 고기를 맛보는 것과 같이 귀는 말씀을 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각을 사용하기 위하여(히 5:14), 견실한 마음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명철 없는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명철과 지식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은 사탄의 올무에 대해서도 방비를 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저희의 세대를 위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게 된다.

3. 이러한 간청은 하나의 호소로써 지원되고 있다.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옵나이다. 주의 계명을 영접했고 승락하여 그 지배에 복종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께서 선한 마음을 주신 곳에서 선한 이성(理性)은 믿음으로 더욱 많이 간구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모든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롭게 대하신 것을 감사의 고백으로 답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든, 우리는 그가 우리를 “선대하셨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행하실 목적으로 우리가 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도 그보다 더욱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신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 우리를 선대하셨다. 그는 그의 모든 종들을 위해서 선대하셨다. 그들중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혹독하게 대하셨다고 불평하는 일이 전혀 없다 주는 주의 자비를 따라서 만이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다.” 하나님의 은총은 약속과 비교하여 볼 때 가장 잘 드러나며, 마치 샘물에서 흘러 나오는 것처럼 보여진다그는 이러한 경험들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위해 간청한다. “주의 은총으로, 곧 내게 행하신 은택에 따라서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게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며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취향(그 말의 뜻은 이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과 좋은 미각을 가르치소서. 왜냐하면 입이 고기를 맛보는 것과 같이 귀는 말씀을 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각을 사용하기 위하여(히 5:14), 견실한 마음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명철 없는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명철과 지식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은 사탄의 올무에 대해서도 방비를 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저희의 세대를 위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간청은 하나의 호소로써 지원되고 있다.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옵나이다. 주의 계명을 영접했고 승락하여 그 지배에 복종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께서 선한 마음을 주신 곳에서 선한 이성(理性)은 믿음으로 더욱 많이 간구해야 할 것이다.

119:67 번영과 고난 가운데서의 신앙의 차이(시편 119:67) 여기에서 다윗은 그가 경험한 것을 말해 주고 있다. 1. 번영된 상황의 유혹에 대해서. “고난 당하기 전, 내가 평화와 풍요함 속에 살 때, 그리고 아무런 슬픔도 모르고 살았을 때에는 하나님과 나의 의무에 대해서 그릇 행하였나이다(곁길로 갔나이다).” 죄는 곁길로 가는 것이다. 편하고 안락할 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가장 쉽다. 번영은 많은 죄가 생기는 불행한 경우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속이게 하며 육에 탐닉하게 하고 하나님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게 하고 말씀의 책망에 귀를 막아 버리게 한다(30:5 참조).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는 “고난 당하기 전에”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그릇 행하였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고난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2. 고난받은 상태의 유익에 대해서.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렇게 행함으로써 나의 방황을 회복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종종 고난을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는 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신다. 성화된 고난은 위로 하여금 죄를 천대히 여기게 하며, 세상의 허탄함을 보게 한다. 그 고난들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귀를 훈련하도록 개방시킨다. 타아의 고난은 결국 그를 그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게끔 해 주었다. 번영된 상황의 유혹에 대해서. “고난 당하기 전, 내가 평화와 풍요함 속에 살 때, 그리고 아무런 슬픔도 모르고 살았을 때에는 하나님과 나의 의무에 대해서 그릇 행하였나이다(곁길로 갔나이다).” 죄는 곁길로 가는 것이다. 편하고 안락할 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가장 쉽다. 번영은 많은 죄가 생기는 불행한 경우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속이게 하며 육에 탐닉하게 하고 하나님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게 하고 말씀의 책망에 귀를 막아 버리게 한다(30:5 참조).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는 “고난 당하기 전에”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그릇 행하였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고난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고난받은 상태의 유익에 대해서.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렇게 행함으로써 나의 방황을 회복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종종 고난을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는 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신다. 성화된 고난은 위로 하여금 죄를 천대히 여기게 하며, 세상의 허탄함을 보게 한다. 그 고난들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귀를 훈련하도록 개방시킨다. 타아의 고난은 결국 그를 그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게끔 해 주었다.

119:68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함(시편 119:68) 1.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모든 자는 그가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며 결국 그는 선하시다고 결론짓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시냇물은 모든 피조물에게 창대하고 강하고 충만하게 흘러서 우리는 그것을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라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위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매일 행하시는 것이 얼마나 선한지를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선한지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찬양과 경애(敬愛)와 감사로써 인정해야 할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고 그 지도와 영향 아래 있게 되기를 청원한다.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주는 모두에게 선을 행하시며 모든 피조물의 관대하신 은혜자이십니다. 내가 간구하는 것은 주께서 내게 선을 행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나의 의무로 나를 가르치시며 나로 거기에 기울이게 하시며, 그것을 행할 수 있게 내게 힘 주소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리하여 내가 선해지며 선을 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생활로 살아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선하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에”(25:8) “그 도로 그들을 교훈하실 것을” 희망하는 것은 연약한 죄인들에게 하나의 격려가 된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모든 자는 그가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며 결국 그는 선하시다고 결론짓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시냇물은 모든 피조물에게 창대하고 강하고 충만하게 흘러서 우리는 그것을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라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위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매일 행하시는 것이 얼마나 선한지를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선한지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찬양과 경애(敬愛)와 감사로써 인정해야 할 것이다.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고 그 지도와 영향 아래 있게 되기를 청원한다.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주는 모두에게 선을 행하시며 모든 피조물의 관대하신 은혜자이십니다. 내가 간구하는 것은 주께서 내게 선을 행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나의 의무로 나를 가르치시며 나로 거기에 기울이게 하시며, 그것을 행할 수 있게 내게 힘 주소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리하여 내가 선해지며 선을 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생활로 살아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선하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에”(25:8) “그 도로 그들을 교훈하실 것을” 희망하는 것은 연약한 죄인들에게 하나의 격려가 된다.

119:69 교만한 자들의 훼방(시편 119:69,70) 다윗은 여기에서 그를 둘러싼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1. 그는 그들의 악의(惡意)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그의 의무를 단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거짓을 지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의 선한 이름을 해치려고 노렸다. 아니, 우리가 세상에서 갖는 모든 것, 심지어는 삶 자체라도 거짓을 지어내는 양심없는 자들에 의해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교만한 자들은 다윗의 명성을 시기하였다. 그것이 그들을 무색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그를 더럽히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를 유린함으로써 교만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의적인 거짓을 말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자처하였다. 그것은 그를 경멸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희의 사악한 재치는 거짓을 지어내었고, 전혀 비슷한 내용도 아닌 이야기를 고안하여 저희의 사악한 계략에 사용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들의 악의(惡意)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그의 의무를 단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거짓을 지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의 선한 이름을 해치려고 노렸다. 아니, 우리가 세상에서 갖는 모든 것, 심지어는 삶 자체라도 거짓을 지어내는 양심없는 자들에 의해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교만한 자들은 다윗의 명성을 시기하였다. 그것이 그들을 무색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그를 더럽히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를 유린함으로써 교만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의적인 거짓을 말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자처하였다. 그것은 그를 경멸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희의 사악한 재치는 거짓을 지어내었고, 전혀 비슷한 내용도 아닌 이야기를 고안하여 저희의 사악한 계략에 사용하려고 하였다. 다윗이 이와 같이 거짓을 당했을 때 그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는 그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참으려 하였다. 그는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는 교훈을 지키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의 전심을 대해 조용히 앉아 있기를 원했다. 그는 계속적으로 변함없이 결심을 가지고, 그의 의무를 계속하기를 원했다. “저희가 하고자 하는 대로 말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저희의 훼방을 전혀 무서워 아니하리이다.” 2. 그는 저희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그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저희의 마음은 살지 지방 같나이다.” 교만한 자들은 “편안한 자”(123:4)들이다. 그들은 세상으로 가득차 있으며, 세상의 부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는 저희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그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저희의 마음은 살지 지방 같나이다.” 교만한 자들은 “편안한 자”(123:4)들이다. 그들은 세상으로 가득차 있으며, 세상의 부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 그들을

(1) 무감각하고 어둡게 하고 둔하게 만든다. 그들은 감각을 잃었다. 그 구절은 이와 같이 사용되었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한다”(사 6:10).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의 지팡이가 맞닿아도 깨닫지 못한다.

(2) 감정적이 되게 하며 육욕에 빠지게 한다.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난다”(73:7). 그들은 자신들을 감각의 쾌락에 맡기며 그것을 저희들의 지고선(至高善)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저희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그들과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들 위에 나의 안전(安全)을 세우며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기쁨을 취하고, 그들의 모든 즐거움보다 무한하게 좋은 것으로 삼겠나이다.” 영적인 즐거움을 친숙하게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의 자녀들의 저희의 육에 속한 즐거움을 취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무감각하고 어둡게 하고 둔하게 만든다. 그들은 감각을 잃었다. 그 구절은 이와 같이 사용되었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한다”(사 6:10).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의 지팡이가 맞닿아도 깨닫지 못한다.감정적이 되게 하며 육욕에 빠지게 한다.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난다”(73:7). 그들은 자신들을 감각의 쾌락에 맡기며 그것을 저희들의 지고선(至高善)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저희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그들과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들 위에 나의 안전(安全)을 세우며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기쁨을 취하고, 그들의 모든 즐거움보다 무한하게 좋은 것으로 삼겠나이다.” 영적인 즐거움을 친숙하게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의 자녀들의 저희의 육에 속한 즐거움을 취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119:71 고난 중에 주의 율례를 배움(시편 119:71)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본다. 1. 많은 지극히 선한 성도들의 고난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교만한 자들과 사악한 자들은 허용과 쾌락 가운데서 살았고, 반면에 다윗은 그가 하나님과 그의 의무를 고수했지만 여전히 고난 중에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셨다.”(73:10).

2.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받는 데에도 유익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경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는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많은 좋은 교훈을 배웠고,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었고 행할 수 없었던 많은 좋은 의무를 배웠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그를 만나 주셨고,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향이 응답되었다. 고난은 그의 지식과 은총을 증진시키는 데에 공헌하였다. 그를 벌한 자는 그를 가르쳤다. 채찍과 견책이 지혜를 가져다 주었다. 많은 지극히 선한 성도들의 고난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교만한 자들과 사악한 자들은 허용과 쾌락 가운데서 살았고, 반면에 다윗은 그가 하나님과 그의 의무를 고수했지만 여전히 고난 중에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셨다.”(73:10).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받는 데에도 유익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경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는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많은 좋은 교훈을 배웠고,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었고 행할 수 없었던 많은 좋은 의무를 배웠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그를 만나 주셨고,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향이 응답되었다. 고난은 그의 지식과 은총을 증진시키는 데에 공헌하였다. 그를 벌한 자는 그를 가르쳤다. 채찍과 견책이 지혜를 가져다 주었다.

119:72 주의 말씀의 고귀함(시편 119:72) 이리하여 그는 그의 고난에 의해서 하나님의 율례를 배웠고, 잃은 것보다 이익을 훨씬 더 얻었을 때, 그는 실제로 고난에 의해서 얻은 자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고난에 의해서 친숙해진 하나님의 “법이” 그에게는 고난으로 잃었던 모든 “금은보다 승하였기” 때문이다. 1. 다윗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적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나 그것을 높이 평가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을 완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낯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변명하기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높이 평가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입의 법”이며 그의 뜻의 계시이며 그의 권위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우리가 가진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얼마나 낮게 평가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의 부(富)가 증가되었지만 그는 그의 마음을 그것들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다. 그에게 승했던 것이 그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부화보다 그에게 더 좋은 즐거움과 더 좋은 보존과 더 좋은 상속을 가져다 주었다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잠언을 읽고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윗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적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나 그것을 높이 평가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을 완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낯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변명하기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높이 평가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입의 법”이며 그의 뜻의 계시이며 그의 권위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우리가 가진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얼마나 낮게 평가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의 부(富)가 증가되었지만 그는 그의 마음을 그것들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다. 그에게 승했던 것이 그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부화보다 그에게 더 좋은 즐거움과 더 좋은 보존과 더 좋은 상속을 가져다 주었다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잠언을 읽고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19:73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배움(시편 119:73) 1.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자연의 하나님과 그의 존재를 지으신 분으로 숭상한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나이다”(욥 10:8). 모든 사람은 실로 처음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손이 지으신 됨과 같다(139:15, 16). “주의 손이 나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내게 생명을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를 세우셨고, 내게 이러한 생명을 주시고 이러한 고상하고 우수한 생명을 주시고 이러한 권세와 능력으로 입히셨다.” 그리고 우리는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2. 그는 하나님을 은총의 하나님으로 자백하고, 그의 새롭고 더 좋은 존재를 지으시는 분이 되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에게 경배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서 지으셨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그를 예배할 수 없게끔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허한 인간의 본성을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와 같이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권능으로 나를 지으셨으므로, 주의 은총으로 나를 새롭게 하시사 나로 하여금 창조의 목적에 응답하게 하시며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로 깨닫게 하시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의 관심을 회복하시고 찾으시는 길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분을 통해서 영혼 안에 들어가시며, 영혼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자연의 하나님과 그의 존재를 지으신 분으로 숭상한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나이다”(욥 10:8). 모든 사람은 실로 처음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손이 지으신 됨과 같다(139:15, 16). “주의 손이 나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내게 생명을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를 세우셨고, 내게 이러한 생명을 주시고 이러한 고상하고 우수한 생명을 주시고 이러한 권세와 능력으로 입히셨다.” 그리고 우리는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그는 하나님을 은총의 하나님으로 자백하고, 그의 새롭고 더 좋은 존재를 지으시는 분이 되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에게 경배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서 지으셨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그를 예배할 수 없게끔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허한 인간의 본성을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와 같이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권능으로 나를 지으셨으므로, 주의 은총으로 나를 새롭게 하시사 나로 하여금 창조의 목적에 응답하게 하시며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로 깨닫게 하시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의 관심을 회복하시고 찾으시는 길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분을 통해서 영혼 안에 들어가시며, 영혼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119:74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시편 119:74) 1.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러한 선한 사람의 확신이 나타나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는 쓸 데 없이 그것을 찾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것을 기대함으로 실망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것은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이며, 현재의 만족이며, 중국에는 실현의 기쁨이 됩니다.

2. 다른 선한 사람들이 그와 함께 그 구원의 기쁨에 일치하여 모인다.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의 희망을 소성케 하시며 나의 희망에 따라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저희가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서 취하는 위로와 그들이 그로부터 받은 은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감사가 표시되기를 원하는 희망을 종종 표현하고 있다(고후 1:11; 4:15).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보다 더 보편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서로를 보고서 즐거워한다. 그들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희망을 뛰어 나게 가진 자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눈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러한 선한 사람의 확신이 나타나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는 쓸 데 없이 그것을 찾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것을 기대함으로 실망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것은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이며, 현재의 만족이며, 중국에는 실현의 기쁨이 됩니다.다른 선한 사람들이 그와 함께 그 구원의 기쁨에 일치하여 모인다.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의 희망을 소성케 하시며 나의 희망에 따라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저희가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서 취하는 위로와 그들이 그로부터 받은 은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감사가 표시되기를 원하는 희망을 종종 표현하고 있다(고후 1:11; 4:15).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보다 더 보편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서로를 보고서 즐거워한다. 그들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희망을 뛰어 나게 가진 자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눈다.

119:75 고난의 은총(시편 119:75) 다윗은 여전히 고난 중에 있으면서 1. 그의 죄가 올바르게 징계받았음을 자백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그 자체가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쾌히 고난에로 이끄시지만 그는 아무런 잘못도 우리에게 행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그에게 어떤 죄과로도 책임을 지울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덜 받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본성에서 거룩하시며 그의 모든 지배의 행위에서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한 일에 우리가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보편적으로 그의 “판단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

2. 하나님의 약속이 은혜롭게 수행되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다. 전자(前者)는 우리를 고난 속에 침묵케 하며 불평을 금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를 만족케 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준다. 고난들은 계약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의 상함을 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그것은 나의 구원을 위한 큰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에서 고백하는 것보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이 의로우시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에 간청을 하고 있다. “나의 고난까지라도 의롭고 친절하나이다.” 그의 죄가 올바르게 징계받았음을 자백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그 자체가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쾌히 고난에로 이끄시지만 그는 아무런 잘못도 우리에게 행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그에게 어떤 죄과로도 책임을 지울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덜 받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본성에서 거룩하시며 그의 모든 지배의 행위에서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한 일에 우리가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보편적으로 그의 “판단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약속이 은혜롭게 수행되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다. 전자(前者)는 우리를 고난 속에 침묵케 하며 불평을 금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를 만족케 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준다. 고난들은 계약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의 상함을 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그것은 나의 구원을 위한 큰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에서 고백하는 것보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이 의로우시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에 간청을 하고 있다. “나의 고난까지라도 의롭고 친절하나이다.”

119:76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함(시편 119:76,77) 1. 은총을 위하여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청한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정의를 고백하는 자들은(다윗의 행한 것과 같아. 75절) 믿음으로 그리고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징조와 고난 중에서도 그러한 자비의 징표와 열매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76절)과 그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하고 있다(77절). 그는 마땅히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었지만, 그의 고난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불행한 자와 궁핍한 자에 대한 단순한 자비와 긍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내게 임하게 하소서.” 즉 그 증거(내게 주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많은 자비를 베푸신 것을 명백하게 하소서)와 그 결과가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것들로 말미암아 나의 소생과 구원을 행하소서.

2. 그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부터 기대했던 은혜, “구하오니 나의 위안이 되게 하소서(76절). 그것은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을 때 나를 위로해 줍니다.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었이든지 나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은혜로운 영혼들은 저희의 모든 위로를 모든 행복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로부터 가져 온다.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즉 나로 소성케 하시며 내 생활이 내게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러지게 하소서.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을 때 그러한 기쁨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그의 은총 안에 있다.r 음은 그의 불쾌한 표정에 있다. 선한 사람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어떤 표징을 갖지 않고서는 어떤 만족으로도 살아 갈 수 있다.

3. 하나님의 은총의 은택을 위한 그의 간구.

(1)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청원한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내게 주의 인자하심을 베푸시며, 주께서 약속하신 인자를 베푸소서. 주께서 그것을 약속하심이라.” 우리의 주님은 그의 모든 종들에게 그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그들은 그와 함께 그것을 기뻐할 것이다.

(2) 그 약속에 대한 그의 확신과 만족을 진술한다.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며 그 희망을 즐거워하나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확실히 행복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은총을 위하여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청한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정의를 고백하는 자들은(다윗의 행한 것과 같아. 75절) 믿음으로 그리고 겸손한 담대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징조와 고난 중에서도 그러한 자비의 징표와 열매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76절)과 그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하고 있다(77절). 그는 마땅히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었지만, 그의 고난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불행한 자와 궁핍한 자에 대한 단순한 자비와 긍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내게 임하게 하소서.” 즉 그 증거(내게 주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많은 자비를 베푸신 것을 명백하게 하소서)와 그 결과가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것들로 말미암아 나의 소생과 구원을 행하소서.그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부터 기대했던 은혜, “구하오니 나의 위안이 되게 하소서(76절). 그것은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을 때 나를 위로해 줍니다.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었이든지 나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은혜로운 영혼들은 저희의 모든 위로를 모든 행복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로부터 가져 온다.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즉 나로 소성케 하시며 내 생활이 내게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러지게 하소서.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을 때 그러한 기쁨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그의 은총 안에 있다.r 음은 그의 불쾌한 표정에 있다. 선한 사람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어떤 표징을 갖지 않고서는 어떤 만족으로도 살아 갈 수 있다.하나님의 은총의 은택을 위한 그의 간구.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청원한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내게 주의 인자하심을 베푸시며, 주께서 약속하신 인자를 베푸소서. 주께서 그것을 약속하심이라.” 우리의 주님은 그의 모든 종들에게 그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그들은 그와 함께 그것을 기뻐할 것이다.그 약속에 대한 그의 확신과 만족을 진술한다.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며 그 희망을 즐거워하나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확실히 행복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119:78 악한 뜻과 선한 뜻을 평가함(시편 119:78,79) Ⅰ.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죄인들의 악한 뜻을 얼마나 낮게 평가하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를 심술?게 대하며 그를 향해 투정부리며 나쁘게 대한 자들이 있었으며, 그를 해하려 하고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을 곡해시키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잘 대하는 자들도 나쁘게 대하는 자들과 함께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주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 그는 그것이 “무고히”라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의 적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훼방은 이유없는 저주와 마찬가지로 쉽게 경시되어질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요동치게 할 수 없다.

2. 그가 믿음으로 저희가 “수치를 당케”해 주실 것을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롭게 대하신 것이 저희로 하여금 그들이 그를 나쁘게 대한 것으로 생각하고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저희로 회개케 하시든지 파멸에 빠지게 하소서.”

3. 그가 계속 그의 의무의 길을 걷고 거기에서 위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나를 어찌 대하든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그리고 주의 법도를 간직하리이다.” 그는 그것이 “무고히”라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의 적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훼방은 이유없는 저주와 마찬가지로 쉽게 경시되어질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요동치게 할 수 없다.그가 믿음으로 저희가 “수치를 당케”해 주실 것을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롭게 대하신 것이 저희로 하여금 그들이 그를 나쁘게 대한 것으로 생각하고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저희로 회개케 하시든지 파멸에 빠지게 하소서.”그가 계속 그의 의무의 길을 걷고 거기에서 위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나를 어찌 대하든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그리고 주의 법도를 간직하리이다.” Ⅱ. 그가 성도들의 선한 뜻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였으며, 저희의 입장에 얼마나 열심히 올바르게 서고자 했으며, 그의 관심을 저희에게 두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는 그들이 그에게 가담하여 제휴하고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와 교제하려는 것은 비천하게 여기지 않았다. 선한 사람들은 선한 자들의 우정과 교제를 갈망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다윗이 우리야를 살해하는 더러운 죄를 범했을 때, 그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그에게서 멀리 떠나고 그를 수치로 여겼기 때문에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므로 그는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들을 다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는 특히 정직하곡”주의 증거를 아는” 지혜로운 자들의 무리가 선한 마음과 마찬가지로 선한 이성(理性)을 갖고 저희의 대화가 교화(敎化)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한 교분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119:80 완전한 마음을 간구함(시편 119:80) 1. 진실성을 향한 다윗의 기도. 그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율례”에로 인도되기를 바라며 주의 율례 안에서 타락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으며 “완전케” 되기를 원했다. 그는 경건의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경건의 능력에 친숙해지며 거기에 예속되기를 원했다. 즉 그는 종교에 진실하고 끊임없게 되려 했으며, 그의 영혼이 건강해지기를 바랐다.

2. 위선의 결과에 대한 공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수치는 위선자들이 당할 운명이다. 그것은 지금 회개하며 뉘우쳐도 회개하지 않아도 수치는 위선자들의 운명인 것이다. “내 마음으로 완전케 하사, 나로 창피하기 짝이 없는 죄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하나님의 법도에서 멀리 떠나지 말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완전케 하사 나로 은총의 보좌에 담대하게 나아오게 하시며, 심판 날에 흠없이 얼굴을 들 수 있게 하소서.” 진실성을 향한 다윗의 기도. 그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율례”에로 인도되기를 바라며 주의 율례 안에서 타락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으며 “완전케” 되기를 원했다. 그는 경건의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경건의 능력에 친숙해지며 거기에 예속되기를 원했다. 즉 그는 종교에 진실하고 끊임없게 되려 했으며, 그의 영혼이 건강해지기를 바랐다.위선의 결과에 대한 공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수치는 위선자들이 당할 운명이다. 그것은 지금 회개하며 뉘우쳐도 회개하지 않아도 수치는 위선자들의 운명인 것이다. “내 마음으로 완전케 하사, 나로 창피하기 짝이 없는 죄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하나님의 법도에서 멀리 떠나지 말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완전케 하사 나로 은총의 보좌에 담대하게 나아오게 하시며, 심판 날에 흠없이 얼굴을 들 수 있게 하소서.”

119:81 끝까지 간구하는 구원과 위로(시편 119:81,82)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Ⅰ.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갈망하고 있다. “내 영혼이 피곤하옵니다.” “내 눈이 피곤하니이다.” 그는 “주의 구원”과 “주의 말씀”을 바라고 있다. 그는 공상의 피조물에 이와 같이 열심히 구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에게, 현재 그가 탄식하고 있는 재난으로부터의 구원과 그가 억압받고 있는 의심과 공포로부터의 구원을 열심히 구하고 있다. 이것은 메시야의 내림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약 교회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심지어는 신실한 자들의 영혼도 예언자들이 연구하고 살피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였다”(벧전 1:10). 저희의 눈은 그것에 바라기에 피곤하였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멀리서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저희의 눈이 그렇게 멀리서 보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확실하게 볼 수 없었다. 다윗은 이제 큰 낙담에 빠져서 그의 눈이 오래 사모하여 외쳤다.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주의 구원으로 나를 위로하시며 주의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소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위로는 말씀에 의해서 저희에게 주어지며 그것은 확실히 합당한 시기에 성취되어질 것이다.

2. 약속된 구원과 위로는 그들이 지칠 정도로, 그리고 그 기대에서 절망할 정도로 오랫 동안 지연될 수도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3. 약속된 구원과 위로가 성취되기 전에는 그 시간이 길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구원을 향해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하며, 부족함이 없이 지키기로 결심해야 할 것이다. “주의 구원과 주의 말씀과 주의 위로에 내 마음이 정해졌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위로는 말씀에 의해서 저희에게 주어지며 그것은 확실히 합당한 시기에 성취되어질 것이다.약속된 구원과 위로는 그들이 지칠 정도로, 그리고 그 기대에서 절망할 정도로 오랫 동안 지연될 수도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약속된 구원과 위로가 성취되기 전에는 그 시간이 길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구원을 향해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하며, 부족함이 없이 지키기로 결심해야 할 것이다. “주의 구원과 주의 말씀과 주의 위로에 내 마음이 정해졌나이다.” Ⅱ. 그것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것이 올 때까지 체재하면서 그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그러나 희망 때문에 마음이 부숴지려고 한다” 눈이 피곤할 때”에도 신앙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상이 정한 때를 가리키며, 마침내 희망은 말할 것이며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119:83 고난이 와도 의무를 지킴(시편 119:83) 다윗은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그를 위로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1. 그의 고난이 컸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었다. “여호와여 나를 빨리 도우소서.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나이다.” 그 가죽병은 매연(煤煙)으로 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싹 말라서 오그라들었다. 다윗은 연로하여 병과 슬픔으로 시약해 졌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자도 고난이 어떻게 망치는가를 보라! 다윗은 장미와 같이 불그스레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시들었고, 혈색이 없어지고, 두 볼은 주름살로 가득찼다. 이와 같이 인간의 아름다움은 좀벌레가 옷을 갉아 먹어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책망으로 소모되어 버린다. 가죽병은 이와 같이 연기로 주름이 잡혀 버리면 버려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다. 누가 그렇게 낡아빠진 병에 포도주를 넣어 둘 것인가? 다윗은 이와 같이 낮은 상태에 있었고 “마치 멸시받는 깨어진 그릇처럼 아무런 기쁨이 없는 그릇처럼” 여겨졌다. 선한 사람들은 약해지고 슬퍼지면 종종 자신들을 실제로 처해 있은 상황 이상으로 더 멸시하여 생각한다.

2. 비록 그의 고난이 컸지만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의무에서 떠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경내에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의적인 조건들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 한우리의 애정을 식게 해서는 아니 되며,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서 떠나게 해서도 아니 된다. 어떠한 염려나 슬픔도 그것을 떠밀어 낼 수 없어야 난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잠 31:5), 울다가 법을 잊어버리지만 우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번영에 처하거나 역경에 처해도 하나님의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잠간 동안 그가 우리를 잊으신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슬픔을 기억해 주시리라고 기도하며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고난이 컸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었다. “여호와여 나를 빨리 도우소서.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나이다.” 그 가죽병은 매연(煤煙)으로 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싹 말라서 오그라들었다. 다윗은 연로하여 병과 슬픔으로 시약해 졌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자도 고난이 어떻게 망치는가를 보라! 다윗은 장미와 같이 불그스레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시들었고, 혈색이 없어지고, 두 볼은 주름살로 가득찼다. 이와 같이 인간의 아름다움은 좀벌레가 옷을 갉아 먹어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책망으로 소모되어 버린다. 가죽병은 이와 같이 연기로 주름이 잡혀 버리면 버려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다. 누가 그렇게 낡아빠진 병에 포도주를 넣어 둘 것인가? 다윗은 이와 같이 낮은 상태에 있었고 “마치 멸시받는 깨어진 그릇처럼 아무런 기쁨이 없는 그릇처럼” 여겨졌다. 선한 사람들은 약해지고 슬퍼지면 종종 자신들을 실제로 처해 있은 상황 이상으로 더 멸시하여 생각한다.비록 그의 고난이 컸지만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의무에서 떠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경내에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의적인 조건들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 한우리의 애정을 식게 해서는 아니 되며,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서 떠나게 해서도 아니 된다. 어떠한 염려나 슬픔도 그것을 떠밀어 낼 수 없어야 난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잠 31:5), 울다가 법을 잊어버리지만 우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번영에 처하거나 역경에 처해도 하나님의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잠간 동안 그가 우리를 잊으신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슬픔을 기억해 주시리라고 기도하며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119:84 고난과 심판의 날(시편 119:84) 1.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신속히 수행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복수할 힘을 주실 것을 기도하지 않고(그는 어떠한 자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속한 원한을 갚아 주시며 “의를 판단하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롬 12:19) 간구하고 있다. 심판 날이 오고, 크고 무서운 날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박해하는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실 것이며,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시련을 주실 것이다 다윗이 여기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을 에녹은 미리 예언하였었다”(유14). 우리는 그 날이 빨리 올 것을 찾고 구해야 할 것이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2. 다윗은 오래 지속된 고난을 탄식한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의 생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이다(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 모두를 슬프게 하지 마옵시고 나를 위해 나의 대적자들에게 속히 나타나소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때가 오기 전에 내게 나타나소서.’ 그렇지 않으면 이런 뜻을 나타낸다. “나의 고난의 날이 많사옵니다 .여호와여 보소서. 주는 고난이 얼마나 많은지 보소서. 그 때에 주께서 내게 자비로 돌아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때때로 선택받은 자를 위해서 “고난의 날이 짧아진다.” “오 내 고난의 날이 단축되게 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그러므로 종의 눈이 그 의주인의 손에 있는 것같이 주께서 내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 내 것은 주께 속해 있나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신속히 수행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복수할 힘을 주실 것을 기도하지 않고(그는 어떠한 자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속한 원한을 갚아 주시며 “의를 판단하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롬 12:19) 간구하고 있다. 심판 날이 오고, 크고 무서운 날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박해하는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실 것이며,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시련을 주실 것이다 다윗이 여기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을 에녹은 미리 예언하였었다”(유14). 우리는 그 날이 빨리 올 것을 찾고 구해야 할 것이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다윗은 오래 지속된 고난을 탄식한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의 생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이다(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 모두를 슬프게 하지 마옵시고 나를 위해 나의 대적자들에게 속히 나타나소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때가 오기 전에 내게 나타나소서.’ 그렇지 않으면 이런 뜻을 나타낸다. “나의 고난의 날이 많사옵니다 .여호와여 보소서. 주는 고난이 얼마나 많은지 보소서. 그 때에 주께서 내게 자비로 돌아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때때로 선택받은 자를 위해서 “고난의 날이 짧아진다.” “오 내 고난의 날이 단축되게 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그러므로 종의 눈이 그 의주인의 손에 있는 것같이 주께서 내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 내 것은 주께 속해 있나이다.”

119:85 핍박받는 자의 신앙(시편 119:85-87) 다윗의 처지는 이 점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처지에 대한 상징이요 예행이었다. 그는 가혹하게 박해를 받았다. 그의 많은 시편에서와 같이 이 시편의 많은 구절에서도 이것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해 보자. Ⅰ. 그가 박해자들과 그에 대한 그들의 악의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보자. 1. 그들은 “교만한 자”들이었고 그 교만으로 “그를 핍박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들은 울부짖는 자를 유린하고 그의 파멸 위에 자신들을 치켜 세우기를 희망했다.

2. 그들은 부정한 자들이었다. “저희는 무고히 그를 핍박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도전을 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의 적대자가 되었다.”

3. 그들은 악의에 찬 자들이었다. “저희는 그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다.” 이것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에 대해 행한 것이며, 가해(加害)할 의사를 가지고 행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이 교활하고 악독하며 뱀의 독액(毒液)은 물론 뱀의 머리를 가졌으며 그를 해치려는 데에 부지런했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대해 비밀리에 덫을 놓음으로써 사냥군들이 야수에게 놓는 것과 같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35:7). 그와 같이 여자의 후손에 대해 뱀의 후손의 적개심은 길러져 왔다.

4.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적개심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그를 해하려고 팠던” 웅덩이는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그의 율법, 죽 우리의 이웃에 대한 악을 궁리하는 것을 금하며 특히 ‘나의 정한 자를 해하지 말라”는 그 율법을 크게 범하였다는 것을 표현한다. 만일 사람이 어떤 해를 끼치는 웅덩이를 팠다면, 그는 그 손해에 대해 보상해야 할 것을 법이 정했다(출 21:33, 34). 구덩이가 해를 끼칠 계획으로 파졌다면 더욱 더 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5. 그들은 계획적으로 그를 대적하여 일을 벌였으며, 심지어는 “저희가 그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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