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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 브런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말씀 구절이 떠오르기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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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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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 – Daum 블로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 ​ 성경: 롬5:8, 찬송가 304장 (통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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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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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성경 구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요한1서 4:9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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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knowing-jesus.com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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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성경 구절 – Also see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 께서 그 애정을 어떻게 보여 주시는 지에 대한 모범으로 가득합니다. 다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에 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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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eferrit.com

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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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미 참된 것, 즉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온 인류를 향한 아버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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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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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 Author: 미완성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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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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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7월 7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말씀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요, 사랑 그 자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전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첫째, 인정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 때문에 인정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의인으로, 천국 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31절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3절과 34절에도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모든 것에 방패가 돼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집 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탕자를 아들로 인정해 주고 용서해 줍니다. 끝까지 감싸줍니다. 아들의 허물을 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둘째, 공급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으시고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펼쳐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나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셋째, 보호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5~37절)바울 당시에 성도들은 많은 핍박과 시련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을 충분히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답답한 일과 낙심의 일과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보호하십니다. 이 사랑을 체험하는 가족 되기를 바랍니다.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족들이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인정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마다 이웃과 세상을 향해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주기도문이원태 목사(안동옥동교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의 나는, 하나님께 질문이 참 많았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당시에는 특히 모르는 것 투성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내 질문에 많은 경우 답을 주시고는 하셨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 물어보고는 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강의를 들으러 갈 준비를 하다가도 ‘하나님, oooo는 왜 그래요?’라고 묻고, 길을 걷다가도 ‘하나님, oooo를 알려주세요’라고 묻고, 자려고 누워서도 ‘하나님, oooo가 궁금해요’라고 묻고…

그러던 어느 날엔가, 나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제가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무언가 증거가 있나요?

그러자 문득, 말씀 구절이 떠올랐다. 바로 이 구절이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말씀 구절이 떠오르기 전, 나는 내가 이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었기도 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하셨을 때, 나는 내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죽으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임을, 그때까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내 마음속에서 이 구절을 떠오르게 하셨을 때, 이 구절의 의미를 새롭게 와닿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내 안의 성령님을 통해)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나는 너희가 아직 죄인일 때에,

너희로부터 아무 약속도 받지 않고

나의 독생자를 보냈다.

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나는 사실 큰 모험을 했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변화될 것에 대한 믿음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는 모험을 했다.

나는 내 아들의 생명을

아무 대가도 약속도 없이,

먼저 내어주었다.

그렇기에,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너희 중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이 음성이, 이 깨달음이 내 안에 와닿았을 때, 나는 너무 놀랐다. 말씀에 대한 나의 무지에 놀랐고, 이 말씀에 담긴 의미에 놀랐다. 그리고 성령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눈으로 보고 지식으로는 알아도, 그 진정한 의미와 정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나님께서 밝혀주시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눈 뜬 장님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진정으로, 한 사람이 평생을 걸려도 다 깨달을 수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고도 완전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경의 의미를 다 깨달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완전한 소경 인지도 모른다고…)

그 후 나는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나도 했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부조리들은 왜 존재하나요?

왜 자신의 탓이 아닌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수많은 불공평이 존재하나요?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납득하게 하셨는데, 이번에는 말씀 구절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역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이 말씀에 반문하지 못하고 납득하고야 말았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안타까워하지만,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더라도

나의 사랑이 언제나 너희의 사랑보다 크다.

단지 너희가 그 방식과 크기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너희의 삶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그 후의 삶이 다 합해지고 나면,

너희는 나의 공의로움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아라.

이 이후로 나는, 내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이 (어쭙잖은) 내 마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음을 떠올리면서, 감히 그분의 행하심을 판단하고자 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남들을 걱정해봤자 나는 (의인도 아닌)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한) 죄인과 악인들을 위해 ‘먼저’ ‘뉘우침이나 회개나 그 밖의 어떠한 대가나 약속도 없이’ 나의 목숨을 내어주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그러니, 그분께서 (스스로의 잘못이 없이 피해와 고통을 받는) 모든 약자들과 의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은 얼마나 크겠는가?

한태완 목사님 설교자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

성경: 롬5:8, 찬송가 304장 (통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을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해방 후 첫 선교사로 기록되어 있는 최찬영 목사님이 태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인 마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저주 받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저도 믿을 수 있나요?” 곳곳에서 하나님을 믿겠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최찬영 목사님은 국내의 사정도 여의치 않을 때에 먼 태국까지 찾아가 가장 낮은 사람들을 찾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곳마다 일어나는 뜨거운 반응에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한 마디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눈이 먼 사람, 코가 떨어진 사람,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한 뒤에 콧노래로 주님을 찬송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놀라운 반응을 통해 낮은 자를 통해 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랑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벅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십시오.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호세아란 이름의 뜻은 ‘구원’ 또는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호세아는 12 소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잇사갈의 21대 손이며 브에리의 아들입니다. 구약 호세아서는 그의 저서입니다. 호세아는 주전 750년경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여 백성들이 사치하고 향락을 즐기던 시대라서 종교,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였었습니다. 백성들은 괴상한 석조전을 지어 놓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했습니다.(암3:15) 다메섹 비단 방석을 깔아 놓고 상아 침상에 몸을 비벼대며, 식탁에서는 살진 어린 양과 어린 송아지의 진미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거문고를 타며 헛된 노래를 부르고 대접으로 술을 마시고 거문고에 맞추어 야비한 노래를 부르며, 곳곳마다 제단 옆에 전당잡은 옷을 펴고 그 위에 누워 행음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고멜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고멜은 이스라엘에서도 유명한 방탕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상종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래도 호세아는 고멜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고멜은 자녀를 버리고 정부를 따라 도망가 살다가 불행하게도 정부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창부가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이 버리고 간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멜을 찾아 전과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서 그녀가 팔린 창부의 대금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습니다. 호세아는 참으로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그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한 자였습니다.(요일3:18)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으며 가정의 비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이해하였습니다. 즉 고멜이 자신의 정부를 좇아간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도 바알과 다른 가나안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 우상과 짝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선포하고 음란한 이스라엘의 무절제한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호소하였고 돌아오는 자의 축복을 선포했습니다.(호14:1-9) 호세아는 사랑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 고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즉 가정을 버리고 간부와 놀아나는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심정을 깨닫게 되었고 이 사실을 온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불쌍히 여길 수 없는 사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여 주신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할 수 없이 크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8:7)

어느 간호사가 쓴 수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모녀가 정형외과를 찾았습니다. 60이 넘어 보이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며 자신의 왼손을 내놓고 넷째 손가락을 잘라 달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끌려온 듯한 어린 딸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딸의 왼손을 잡고 원장에게 애원했습니다. “제 딸이 초등학교 때 농기구에 다쳐서 왼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잘렸습니다. 다행히 네 손가락은 접합 수술에 성공했는데 하필이면 네 번째 손가락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딸이 이번에 시집을 갑니다. 못생긴 제 손가락을 딸에게 줘 가락지를 끼워 주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딸은 말도 안 된다며 펄펄 뛰었지만 의사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처지가 바뀐 모녀는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술을 도왔던 간호사는 이 모녀의 ‘손가락 사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큰 사랑을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손가락 하나의 사랑도 이럴진대 온몸을 다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마르틴 루터의 명저 ‘탁상어록’에 등장하는 ‘고학생과 자선의 손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고학생이 길에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큼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고학생은 남자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나온 줄 알고 겁에 질렸습니다. 남자가 다가가자 학생은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도망쳤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흔들며 학생에게 소리쳤습니다. “멈춰라. 이것은 너를 위해 마련한 빵이란다.” 학생은 더 멀리 도망쳤습니다. 그 남자는 불쌍한 학생을 위해 커다란 빵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몰랐던 학생은 남자의 인자한 표정과 손에 들린 빵을 보지 못한 채 계속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며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소견과 이해가 부족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마12:20)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이 마음에 채워질 때 비로소 영혼구원에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사랑은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 35- 39)

미국의 한 아파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화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주검들 가운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유독 안타깝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그 집에 아기와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소방대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길을 다 잡고 난 소방대원들은 다시 그 집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아기와 엄마는 화장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기를 변기 속에 집어넣고 엄마 자신이 아기의 방패막이가 되어 타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위나 학력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계십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 6백만 명이 학살당하였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아들 둘을 둔 어떤 일가족도 그렇게 수용소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수용소에 들어가서는 노동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먼저 처형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 중 하나는 어리고 매우 병약하였습니다. 부모는 그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저 아이는 몸이 약해서 틀림없이 가스실로 끌려갈 텐데 어떻게 하나….”

강제노역에서 돌아온 일가족은 밤마다 서로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저녁에 아들의 얼굴을 보면 그날은 생명을 부지한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둘러보니 몸이 약한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는 이미 가스실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끌려갈 때 함께 있던 이들이 모자가 끌려가던 당시의 애끓는 모습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리고 약한 아들은 감시원이 끌고 가려 하자 마구 울며 발버둥쳤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참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울지 마라. 이 어미가 같이 간다.”

그러자 아들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당당하게 가스실로 걸어갔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의 길을, 자식 홀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함께 간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애통함에 함께 한 사랑입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몸이 약해 폐병에 걸렸었고, 늘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약국도 드물고 병원에도 쉽게 갈 수 없던 가난한 시절, 몸이 아파 오면 밤새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저를 등에 업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품에 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아이고 네가 아플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 어미가 아파야 하는데, 이 못난 어미 만나 네가 고생하는구나!” 어머니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저의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몸이 아파서 고통스런 중에도 어머니의 그 말씀과 눈물로 위로를 받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내가 아파야 하는데 네가 아프니 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대신 아파 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어머니의 이 음성이 제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머니의 참 사랑은 아들의 아픔을 대신하려는 것이요, 아들의 죽음에 함께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토록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을 사랑하듯 그렇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어느 가난한 부부가 여섯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절친한 부자 친구가 한 아이를 자기에게 양자로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간 다음에 아내와 그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 그들은 첫째 아이인 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이번에 역시 첫 딸이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아이는 장모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부인이 거절했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아버님과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애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애기, 귀여운 것 남 줄 수 없어요”하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그 하나라도 기꺼이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 하나의 독생자밖에 없었으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세계를 일주한 사람이 모든 나라에서 체험한 것들을 5분 만에 설명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기에 19세기 찰스 스펄전이나 4세기 황금의 입이라 불리는 요한 크리소스톰과 같은 설교의 대가들이 나서서 온갖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더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14세기 영국 놀위치의 줄리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그 사랑은 모든 피조물의 이해력을 초월할 정도로 특별하다. 창조주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감미롭고 부드럽게 사랑하시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매우 크기에 스랍들, 그룹들, 천사장, 정사와 권세, 우주의 모든 존재가 나선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배운 사람에게 세상이 어떻게 하겠는가? 대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하나님 사랑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에게 세상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에게 마귀가, 죄가 어떻게 하겠는가? 오,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그 엄청난 사랑을 얼마나 알겠는가? 그 사랑을 안다고 해도 그것에 근거해 얼마나 행동하겠는가?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2)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더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영원한 천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아무리 사랑해도 부모가 자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자녀대신 아파하거나 아픔을 덜어 줄 수 없으며 더욱이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서 죽을 생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생명이 위급할 때 부모를 대신해서 죽을 자녀가 없으며, 서로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남녀의 사랑도 죽음 앞에서는 갈라지기도 하고, 죽음이 아니더라도 변하는 것이며 인간적인 모든 사랑은 기대하는 자로 하여금 실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나를 위해 값을 치르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거역한 자를 참고 무궁한 사랑으로 용서하신 은혜를 깨닫고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남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성도로 거듭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 http://blog.naver.com/jesuskorea , http://blog.naver.com/allcome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

복음 – 우리에 대한 사랑의 선언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거절하고, 더 나아가서 이미 그들을 거절하신 것을 걱정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똑같은 겁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걱정한다고 생각합니까? 대답은 단순히 그들이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그들의 실패, 그들의 실수, 그들의 허물, 즉 그들의 죄를 고통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까지도 하느님 께 얼마나 순종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가르침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용서를 구하는 것을 얼마나 불쌍히 여깁니다. 하나님 께서 용서해 주시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셰익스피어의 희곡 인 햄릿을 생각 나게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햄릿 왕자는 그의 삼촌 클루 디우스가 햄릿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왕좌를 장악 한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따라서 햄릿은 비밀리에 복수의 행위로 삼촌 / 계부를 죽일 계획입니다. 완전한 기회가 발생하지만 왕이기도하고 있으므로 햄릿은 공격을 연기합니다. 내가 자백하는 동안 그를 죽이면, 그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햄릿은 결론 지었다. 그가 다시 죄를 지은 후에 그를 기다리고 죽이면, 그러나 그가 그것을 발표하기 전에, 그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인간의 죄에 대한 햄릿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그들이 믿음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 전까지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을 위해 일할 것이고 또 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오류에 대한 믿음은 그들을 또 다른 오류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죄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실 것이고 그리스도의 피가 더 이상 그들을 덮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정직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셨는지 궁금해하는 이유입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당신과 나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골로새서 1,19-20)이 조정되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장벽이나 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허시고 자기 존재 안에서 인류를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1. 요하네스 2,1; 요한복음 1장2,32). 유일한 장벽은 상상의 장벽입니다(골로새서 1,21)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 두려움 및 독립을 통해 확립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상태를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랑받는 상태로 바꾸도록 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믿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미 참된 것, 즉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온 인류를 향한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회개하거나 아무것도 믿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셨고, 당신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그 어떤 일도 그것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로마서 5,8; 8,31-39).

복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현실이 된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일련의 요구 사항이나 일련의 종교적 또는 성경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지적 수용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서셨을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를 그 자신으로 끌어 들였고, 우리와 그분과 함께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우리를 나타내 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이는 다름 아닌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또한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원하고 행하게 하십니다(빌립보서). 4,13; 에베소서 2,8-10). 우리는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그분이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그분을 따르도록 자신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신이 아니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니 너희와 모든 사람이 그 안에 거하고 짜고 있느니라(행 1장)7,28).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에 관계없이 그분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인간의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 그분은 당신을 소외, 당신의 두려움을 사랑하십니다. , 당신의 죄를 없애시고 구원하시는 은혜로 당신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는 당신과 그 사이의 모든 장벽을 제거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한 교제, 우정, 완전하고 사랑이 많은 부성의 삶을 사는 것에서 오는 기쁨과 평온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막은 모든 것을 없애줍니다. 하나님 께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메시지!

Joseph Tkach 저

복음 – 우리에 대한 사랑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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