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사도 신경 | 사도 신경 .50회 반복 듣기 낭독 낭송. 자막 (The Apostles’ Creed Korean Narration) By Lee 244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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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나무위키:대문

사도신경(使徒信經), 사도신조(使徒信條) 또는 종도신경(從徒信經)은 서방교회의 주요 기독교 교파가 사용하는 신앙 고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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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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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도신경(使徒信經, 라틴어: Symbolum Apostolicum) 또는 사도신조는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신앙고백의 하나로 주로 서방교회에서 기도문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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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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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 GoodSaram

따라서 교회와 그리고 세례 받을 때 얻게되는 죄의 용서, 또 기독교의 희망이 성령 하나님의 항목에 귀속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은 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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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odsaram.tistory.com

Date Published: 7/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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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가 왜 사도신경을 고백하나? – 네이버 블로그

사도신경에 따르면 교회는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이와 동시에 성삼위 하나님을 믿습니다. [즉 삼위일체] 이런 내용을 고백한 신조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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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8/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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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 현재의 사도신경을 그대로 수용해도 되는가?

[질문] 얼마 전 저희 어머님께서 지금 사도신경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의 … 개신교의 뿌리는 분명히 천주교이고 개신교 개혁교리를 확정시킨 교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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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12/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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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리브레 위키

일반적인 개신교 교회의 경우 주일 낮 예배(흔히 대예배라 표현하는 예배)에서 신앙고백으로 예배의 첫머리에 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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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ibrewiki.net

Date Published: 3/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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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해서는 아니 되는가?(마16 …

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면 아니 되는가? 어떤 분은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이 만든 것으로서, “마귀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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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ongtanms.kr

Date Published: 1/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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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 – 다음블로그 – Daum

사도신경이 “일찍이 만들어진 것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최선의 대중적인 요약 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교리의 기준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구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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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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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의 중요성 – 개혁신앙

사도신경의 중요성 ·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 3) 이는 성령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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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truthlighthouse.org

Date Published: 1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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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 사도신경 | KRCNED l 화란한인교회

사도신경은 오늘날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앙 … 사도신경은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 공동 전례문으로 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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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oreanchurchnl.org

Date Published: 8/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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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신경 .50회 반복 듣기   낭독 낭송. 자막 (The Apostles' Creed Korean Narration) B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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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개신교 사도 신경

  • Author: 갓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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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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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도신경(使徒信經, 라틴어: Symbolum Apostolicum) 또는 사도신조는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신앙고백의 하나로 주로 서방교회에서 기도문으로 활용한다. ‘로마신조’에서 유래한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문으로 주기도문(마태복음 6 : 9 ~ 13)과 달리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역사 [ 편집 ]

초대교회 즉, 2세기 교회에서 정리한 세례의 믿음 고백 형식이 3세기 이래로 발전하여 사도신경의 기본이 되었다[1]. 4세기가 되어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사도적 기원과 설화가 나타났다. 5세기 들어서야 현재 형태를 갖추었으며, 10세기 완결된 형태로 오토 대제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함께 서방교회에서 공식 사용하기 시작했다[2].

활용 [ 편집 ]

11세기 이후 동방교회와의 분리 이후 서방교회에서 신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지금도 서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천주교회, 개신교회는 이를 예식에 사용한다.

서방교회의 종파별 활용 [ 편집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전례에 포함시켜 각종 예식이나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며, 성공회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을 되새기는 세례 계약을 다짐할 때와 만도 즉, 저녁 기도를 할 때 사도신경으로 믿음을 고백한다. 개신교에서는 예배 시작시 신앙을 고백하며, 세례와 기도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대에 들어서 찬양예배에 의한 예배 순서 변경이나, 교리적 선언 등 다른 신앙 고백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전히 주요 신앙고백문이다. 루터교에서는 예전적 예배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해진 예식에 따라 예배시에 사도신조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역사적인 유래와 내용의 비성경성, 그리고 성경에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반(反)로마 가톨릭교회 경향이 강한 침례교, 재림교, 그리스도의 교회 등의 개신교 종파들은 사도신경의 유효성을 부인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종파별 활용 [ 편집 ]

서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천주교와 개신교회는 대한민국에서도 동일하게 공식적인 고백문으로 활용한다. 대한민국 천주교회에서는 각종 예식이나 미사에서 고백한다. 대한민국 개신교회는 대부분 종파에서 이를 예배와 예식, 기도회에서도 고백한다. 국내 개신교 주요 교단인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구세군교회, 성공회교회, 루터교회는 예배와 예식에서 공식적으로 고백하지만, 침례교회, 재림교회, 플리머스 형제단, 그리스도의 교회 등의 재건주의 성향 교단에서는 고백하지 않는다.

교파별 견해 [ 편집 ]

음부강하 [ 편집 ]

사도신경 라틴어 최종본을 보면 ‘지옥으로 내려가시고’(라틴어: descendit ad inferos, 영어: He descended into hell)라는 말이 제 9행에 나타난다.

이 문구는 종교개혁 시에도 거론된 부분이고, 다양한 신학적 의견이 제시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드로의 첫째 편지(베드로전서) 3장 18~22절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이들의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하며, 그리스도가 음간에 내려갔음을 주장한다.

한스 큉은 근거한 성경구절인 베드로의 첫째 편지의 성서구절은 도리어 부활후 승천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주장하며[3], 3장 19절 “갇혀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4]일 뿐 지옥이나 저승의 개념은 없다고 주장한다. (단, 이어지는 베드로전서 4장 6절에서는 좀 더 명시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더군다나 니케아 신경에서는 이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이러한 신앙 고백 경향은 4세기 후반에야 등장하기 시작하므로 초기신앙고백으로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사도신경의 음부강하 부분이 7~8세기 경에 부활의 표상인 “죽음의 나라”를 묘사한 비잔틴 성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5] 대한민국의 개신교에서는 원문에서 이 부분을 시신을 매장한 이후, 저승에 내려 가도록 장례를 치르는 과정으로 보고, 이 부분과 매장 부분을 합쳐 ‘장사(葬事)되어’로 번역하였다. 다만, 성공회의 사도신경에서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라고 고백하고 있다.[6]

교회론 [ 편집 ]

사도신경 라틴 원문을 보면 ‘거룩한 보편교회’(라틴어: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영어: Holy Catholic Church)라는 말이 제 14행에 나타난다. 이는 온 교회가 성령께서 계신 거룩한 교회요,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될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열린 보편교회임을 말해준다.[7]

한국에서는 사도신경의 ‘거룩한 보편교회’(Holy Catholic Church)를 개신교에서는 거룩한 공회(公會) 또는 거룩한 공교회(公敎會)라고 번역하며, 대한성공회는 거룩한 보편교회, 천주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학자인 이성덕 배재대학교 교수는 개신교에서 쓰는 한글 사도신조의 “공회”를 ‘보편적 교회’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공회”가 보편 교회(Catholic Church)를 옮긴 말임을 모르는 일부 평신도들이 자칫 공회를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자칭한 자라며 단죄한 산헤드린 의회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Catholic’ 이 ‘보편적, 세계적’이란 뜻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원래 ‘로마교회 구신조’에는 “거룩한 교회를 믿사오며”라고 되어있었는데, 8세기 경에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믿사오며”란 구절이 추가되었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이 땅 위에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며, 거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가혹하게 핍박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부분이 추가 삽입된 점을 감안하면, 여기서 ‘Catholic’ 이란 단어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볼 수 있다.[8] 그러나 이와 같이 추가되었다는 주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채택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이미 ‘catholic’이라는 표현이 나타남으로 부정확한 주장이다. 또한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가 되는 참고 문헌[8]은 공인된 학자의 글이 아니다.

라틴어 원문 (Credo) [ 편집 ]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9]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Amen.

한국어 번역 [ 편집 ]

천주교회와 성공회, 개신교가 사용하는 한국어로 된 사도신경에는 번역 상의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천주교 [ 편집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 believe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He was conceive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born of the Virgin Mary. He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10] 성공회 기도서(2004) [ 편집 ]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모든 성도의 상통[11]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믿나이다. 아멘. Book of Common Prayer (1662, 성공회 기도서 [ 편집 ]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k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Common Worship (2000, 영국 성공회 기도서) [ 편집 ]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 believe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he ascended into heaven, he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개신교의 사도신경은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각자 재번역한 시도가 있으나, 이 번역들은 현재 어느 교단에서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사도신경 번역문이 대부분의 교단에서 사용되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새 번역이 장로교 일부에서 사용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예장통합 새 사도신조 [ 편집 ]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universal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교회일치를 위한 영어 예전문서 [ 편집 ]

Ecumenical version of the English Language Liturgical Consultation(교회일치를 위한 영어 예전문서)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 believe in Jesus Christ, God’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to the dea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he ascended into heaven, he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같이 보기 [ 편집 ]

사도신경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1. (가톨릭)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개신교)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2. (가톨릭)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개신교)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3. 개신교가 유독 가톨릭에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유

(단, 일부 개신교는 가톨릭에 호의적인 교단도 있습니다.)

천천히 하나씩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사도신경(Credo)에 대해 짧게 설명하려 합니다.

제가 과거에 사도신경에 대해서 짧은 논문을 적은 적있는데, 그 논문을 요약하여 설명합니다.

1. 사도신경의 역사

사도신경은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만에 열 두 사도들이 작성한 것이라고 하나,

오늘날 전승에 동의하는 학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

“사도들에게 연원되는 사신을 총괄적으로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사도적이다.”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사도신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메시지가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는 것이죠.

사도신경은 실제로는 일찍부터 현재의 내용과 문장대로는 아니지만 세례문답으로 사용되고 고백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200년경 로마에서 사용한 문답례의 한 실례가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사도신경의 원시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로마신경'(Symbolum Romanum, The Old Roman Creed)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사도신경(Apostles’ Creed)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AD 390년 암브로시우스의 글이었으며,

현재의 사도신경 본문은 3-4세기에 로마에서 사용한 세례신조와 비슷하며,

그 최종적인 형식은 6세기말 또는 7세기초 프랑스 남서부지방에서 확립되었죠.

이것은 점차 세례신조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것을 범교회적으로,

범국가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은 샤르망(Charlemagne, 742-814)대제 때라고 볼 수 있으며,

이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서방 로마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 진술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조라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역사에 있어서도 사도신경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

루터는 1529년 대소요리문답(The Small & Large Catechism)을 작성할 때

사도신경, 주기도, 십계명의 순서로 풀이하였으며,

칼빈의 기독교강요도 구조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랐는데 곧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교회의 순서를 취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칼 바르트, 판넨베르크 등도 사도신경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사도신경을 해석함으로서 기독교의 신앙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 사도신경의 이해

이렇게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개신교 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 및 동방정교회가 모두 인정하고 있는

고대 에큐메니칼 신조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신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것들을 단순한 성서적 용어를 사용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인 하나님과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부활과 영생으로 끝맺고 있죠.

또한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적인 구성으로 되어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즉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그의 독생자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교회에 대한 고백이 그 뒤를 잇고 있으나,

오늘의 사도신경 형태로 발전된 3세기 로마공동체의 세례고백은 그것들을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병렬시켰습니다.

즉,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근원적으로 신앙고백의 전승에서 삼위일체적인 세 주제가 핵심이며,

따라서 교회와 그리고 세례 받을 때 얻게되는 죄의 용서,

또 기독교의 희망이 성령 하나님의 항목에 귀속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은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모든 시대와 모든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띠와 같으며,

이러한 사도신경이 2천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신앙의 모든 것을 바로 조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사도신경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개신교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 세상의 모든 교회를 부정하는 것과 같죠. 3. 사도신경의 구조(라틴어, 가톨릭와 개신교 번역부분)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가톨릭)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개신교)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j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ferna; ter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oelos; sed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가톨릭)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개신교)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vitam oeteram. Amen.

가톨릭)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개신교)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1. 가톨릭 사도신경이 정확히 맞는지.. 제가 확신이 없네요. 조금 틀렸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2. 제가 라틴어 본문에 진한 색으로 칠한 부분이 질의 1과 2의 내용부분입니다. 참조해주세요. 질의 1. (가톨릭)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개신교)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에 대해

‘저승’이라는 부분이 개신교 사도신경에 빠져있는 것에 대한 답변.

우선, 이 부분은 사실 역사적으로 사도신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2세기로 소급되는 로마 공동체의 세례고백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옥행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지 않죠.

그러나 분명히 4세기의 신앙 고백문에는

예수의 묻히심과 부활 사이에 음부에 내려갔었다는 암시가 확실하게 언급되어 있고,

이 고백문은 이런 진술을 통해서

예수 죽음의 운명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 판넨베르트의 사도신경해설 인용. 즉, 이 당시의 그리스도교는 기독론 논쟁이 중점이었죠(즉,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냐? 인간이냐? 반신이냐? 에 대한..) 우리가 위에서 보듯, 사도신경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2/3이 예수에 대한 부분인 것을 보면 확실하지요. 질문하신 '장사되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에 대한 부분이 왜 빠져있냐면, 공인된 원문(Forma Recepta)에는 이 부분이 있으나, 공인전 당시 많은 본문에는 이 부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어에는 있으나, 한글에는 없는 이유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서 가르칠 당시 우리말로 번역된 저승이란 단어자체가 가지는 어감때문에 임의삭제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이 부분으로 사실 역사적으로 여러 오해들이 있어왔었죠(삼위일체론적 문제 등). 이 여러가지 이유가 함께 이해되어야 한국 개신교에서 이 부분이 빠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신학적으로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 부분은 우주론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즉, 구원문제는 하나님의 배타적 권한임으로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지요. 질의 2. (가톨릭)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개신교)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에 대한 부분의 오해문제에 대한 답변. 이 부분은 라틴어로 보면 이해가 쉬울 거 같습니다. 바르트에 의하면(칼 바르트는 개신교의 신학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때 참석요청을 받고 공의회를 도운 신학자입니다)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즉, 가톨릭에서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란 부분 그리고 개신교에서 '거룩한 공교회, 성도의 교제를 믿으며'란 부분이죠.) 우선,sanctam ecclesiam catholicam의 부분은 예수를 머리로 한 이 세상의 모든 교회를 뜻합니다. 과거 가톨릭에서 가톨릭만을 추구했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하나님 안의 형제된 모든 교회를 말하죠. sanctorum communionem; 이 부분은 물론 가톨릭에서는 통공의 교리가 있고, 개신교는 그러한 부분이 우상숭배의 오해가 될 수 있기에 없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칼 바르트는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즉, 거룩한 공교회 혹은 거룩한 보편된 교회를 설명하는 '성도의 교제'라고 말합니다. 교회란 우리의 눈에 보인 것만 다가 아니죠. 우리 눈에는 과거와 현재의 교회, 가시적 교회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비가시적인 성도의 교제'가 있기 마련이고, 교회공동체란 교회라는 단어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일때 성서적인 머리된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로서 교회일 수 있겠지요. 공동체성 없는 교회는 교회로서 부족함을 말합니다. 이 글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이 부분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은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모두 앞의 구절인 '성령'에 교회와 그리고 세례 받을 때 얻게되는 죄의 용서, 또 기독교의 희망이 귀속됨을 이해할 때, 진정으로 교회의 의미와, 성도의 부분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질의 3. 개신교가 유독 가톨릭에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유 (단, 일부 개신교는 가톨릭에 호의적인 교단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은 정말 단호히 말하고 싶습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의 뿌리이며, 한 형제이며, 머리된 그리스도의 한 지체입니다. 물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부분과, 교황무오설 같은 부분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즉, 삼위일체되신 절대자에 대한 부분은 같다는 겁니다. 만약 가톨릭을 근거없이 부정한다면, 그것은 개신교를 근거없이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대형교회들과, 몇몇의 개념없는 보수교단과 이단들이 가톨릭을 부정하고 헐띁느냐면, 그건 마치 이 시대에 기득권들이 '반공'만을 외치며 기득권을 가지는 것과 비슷한거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것입니다. 더이상 신학이 없고, 제대로된 성경해석도 없고, 기복주의만이 넘쳐흐르는 곳에서 의지할 것이란 적을 만드는 것 뿐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목회자로서 정말 가톨릭의 형제들에게 머리숙여 죄송함을 전합니다.

개신교가 왜 사도신경을 고백하나?

사도신경은 세례[원어는 침례] 문답등에 내용이 점점 더 추가되어 만들어진 교회의 신앙고백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원어는 침례] 받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는지…등을 물어보는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당시부터 유대교나 영지주의등의 여러 이단들로부터 교회를 구별하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사도신경이란 사도들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이 아니고 교회가 믿는 성경의 교리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서 정의하고, 신자들이 믿는 대상과 그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따르면 교회는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이와 동시에 성삼위 하나님을 믿습니다. [즉 삼위일체] 이런 내용을 고백한 신조로는 사도신경 외에도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타노플 신경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점차 정비되어 4세기[주후 300년경] 나 늦어도 5세기[주후 400년경] 경에는 현재의 상태로 굳어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회가 크게 갈라진 것은 주후 11세기에 와서 카톨릭과 정교회가 갈라졌고, 16세기에 들어와서 카톨릭에서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나왔으므로,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등, 그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신경들은 카톨릭이나 정교회등의 개념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바로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그 핵심되는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사도신경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부분을 이와 다르게 믿거나 가르치면 이단으로, 구원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삼위[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데는 100% 이단들입니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현재의 사도신경을 그대로 수용해도 되는가?

[질문]

얼마 전 저희 어머님께서 지금 사도신경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어디서 들으시고는 많이 혼란스러워 하십니다. 현재의 사도신경을 우리가 그대로 수용해도 되는 건가요?

[답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을 신학적으로 즉, 첫째 그 작성과 변천 과정의 역사를, 둘째 원문의 뜻을 세밀히 따지다보면 몇 가지 문제들이 노정되긴 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세밀히 따지지 않으면 현재의 한글번역본 내용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시비가 있는 부분만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째 천주교가 만든 것이라 개신교는 고백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너무 무리하고 불합리한 요구입니다. 개신교의 뿌리는 분명히 천주교이고 개신교 개혁교리를 확정시킨 교부들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나눠지기 전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천주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중지되어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구원을 교회가 독점하려고 교리를 왜곡시킨 이후입니다. 만약 초기기독교의 전통과 교리마저 부인하려들면 예컨대 어거스틴의 신학도 부인해야 하고 크리스마스 절기도 절대 지켜선 안 된다는 억지에 이릅니다.

사도신경은 2-3 세기 초대교회에서 행하던 세례의식 중에 믿음을 고백한 내용을 기본으로 4세기경에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발전하다가 5세기 들어서 현재의 신조 형태를 갖추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서방교회에서 10세기경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의 기본은 천주교의 교리가 성경이 말하는 바와 달라지기 전에 작성된 것이라 천주교적인 배경을 구태여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둘째로 같은 맥락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마리아 숭배사상을 대변한다고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순히 주님이 성령으로 성육신했다고 진술하고 있기에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셋째,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를 두고 그가 예수를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니 성경이 말하는 바와 다르므로 이 구절을 수정하거나 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빌라도가 그렇게 노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권한으로 얼마든지 예수를 방면해 줄 수 있는데도 나중에 황제에게 밉게 보일까 걱정하여서 즉, 순전히 자기 직분의 안위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었습니다.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 하속들이 주님을 핍박한 것도 그렇게 허락한 최고직위의 그에게 그 책임이 돌아갑니다. 나아가 주님의 처형에 이방인도 큰 몫을 하였기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진리를 입증합니다. 말하자면 현재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 성경을 더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넷째, “거룩한 공회”에서 공회의 원문이 “Catholic Church”이기에 고백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catholic이라는 영어는 일반형용사로써 ‘전반적인’, ‘보편적인’(universal)이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부들이 이 신조를 작성했을 당시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분리되기 전이라 신자들의 모임인 눈에 안 보이는 우주적 교회라는 의미로 작성된 것입니다. ‘가톨릭’(천주교)이라는 고유명사적 의미로 사용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습니다. 한글번역도 ‘공회’이지 ‘천주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해를 막기 위해 최근 장로교통합교단에선 원래 의미를 살려 ‘공교회’라고 수정했습니다. 일반신자들은 이런 논란이 있기 전에 공회의 원어가 가톨릭인지 또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현재 고백하는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의 영어 원문 “The Communion of Saints”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Saints가 자칫 천주교의 성자숭배 사상을 대변하고, 또 communion이 죽은 자와 교제가 가능한 것처럼 오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자를 Saint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롬1:7, 고전1:2, 고후1:1 등등) 그래서 말 그대로 교인들끼리 교통하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통합교단에선 “성도의 교제”로 수정했습니다.

여섯째, 영어 원문에 있는 “He descended into hell”(그가 지옥으로 내려가시고)에 대한 논란입니다. 이는 벧전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와 연결해서 신학적 시시비비가 많습니다. 영어판에 그 구절이 있는 것은 로마교회의 최종판에 그 구절이 있어서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초기 기독교에는 없었던 것을 로마교회가 후대에 추가한 것으로 봅니다.

경위가 어찌 되었던 현재 한국교회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이런 복잡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그 구절을 없앴으므로 새삼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설령 영어 신경에 그런 구절이 있다고 해도 그 근거가 되는 벧전3:19의 의미가 십자가 죽음 후에 예수님의 영이 지옥에까지 내려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자체가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또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선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의 한글 사도신경의 내용은 개신교의 중요교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상기에서 설명 드린 대로 천주교를 무조건 배격하려는 무리한 해석을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내용 자체가 기독교 정통주의와 상충되는 부분이 없기에 순전한 믿음으로 이해하여서 그대로 고백하면 됩니다. 어머님이 출석하는 교회가 계속 고백하고 있다면 담임목사님의 생각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교단에 따라서 주일예배 중에 고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진술하는 내용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첫째 성경이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바가 아니라는 이유로, 둘째 예배 중에 모두에게 고백시키면 그런 믿음을 온전히 갖고 있지 않는 자마저 주문처럼 형식적으로 외울 수 있음을 염려한 까닭일 뿐입니다.

7/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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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편집 ]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신앙고백이며 기도문이다. 통상 가톨릭에서는 미사 중 강론이 끝난 후에 바치며, 묵주기도를 시작할 때 시작기도로 바친다. 일반적인 개신교 교회의 경우 주일 낮 예배(흔히 대예배라 표현하는 예배)에서 신앙고백으로 예배의 첫머리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개신교 예배라는 것이 어차피 전통같은게 딱히 존재하지 않는지라 아예 이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 교회들도 꽤 된다.

(정교회는 추가바람)

2 역사 [ 편집 ]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만에 열 두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하나 기도문의 전체적인 내용은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의 제 21장에 있는 세례 후 신앙고백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사도신경과 거의 내용이 흡사하며, 공식적으로 미사에 도입 된 것은 동방교회와 분리된 이후인 11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 도입되었다.

3 한국어 역본 [ 편집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성공회 기도서의 사도신경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모든 성도의 상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믿나이다.

아멘.

3.3.1 구버전 [ 편집 ]

개역성경과 같이 붙어있는 버전이다.

사도신경(개신교-구버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1]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 아멘

3.3.2 신버전 [ 편집 ]

개역성경을 개역개정판으로 바꿀 당시에 이것도 개정작업을 하였는데 거의 개악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거기다 쓰는 교회도 찾아보기 힘들다. 새 사도신경이라고도 한다. 절대로 사도신경을 새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새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2]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 아멘

4 라틴어 역본 [ 편집 ]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Et in I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Amen.

5 개신교 사도신경 한국어 역본의 문제점 [ 편집 ]

라틴어 역본을 보면 한국어 번역 사도신경의 세 지점에서 천주교측과 개신교측의 번역 차이가 분명하게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passus sub Pontio Pilato, : 직역하면 “본시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아…”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고난받은 상황을 천주교측은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개신교측은 “본디오 빌라도에게”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번역을 하면 예수의 처형 책임이 본시오 빌라도의 통치체제를 만든 세상(로마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빌라도 본인에게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어버린다.

Pontio Pilato, : 직역하면 “본시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아…”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고난받은 상황을 천주교측은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개신교측은 “본디오 빌라도에게”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번역을 하면 예수의 처형 책임이 본시오 빌라도의 통치체제를 만든 세상(로마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빌라도 본인에게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어버린다. descendit ad inferos, : 직역하면 지옥에 내려가사… 정도로 볼 수 있다. 천주교측은 이를 “저승에 가시어”라고 번역하였으며, 개신교측은 아예 이 부분을 삭제해버렸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음부강하 교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없애버린 부분. 정작 영어권의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He descended into hell으로 버젓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 음부강하 교리 문제가 상당한 키배거리라는 것. 다만 성공회측에서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라고 번역을 해 놓았다.

: 직역하면 지옥에 내려가사… 정도로 볼 수 있다. 천주교측은 이를 “저승에 가시어”라고 번역하였으며, 개신교측은 아예 이 부분을 삭제해버렸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음부강하 교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없애버린 부분. 정작 영어권의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He descended into hell으로 버젓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 음부강하 교리 문제가 상당한 키배거리라는 것. 다만 성공회측에서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라고 번역을 해 놓았다.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 개신교 사도신경에서는 거룩한 공회(공교회)로 번역된 부분이다. 본래 이 부분의 의미는 원래의 뜻만 생각하면 전 우주적인 보편교회라는 의미가 되는데 개신교에서는 이 부분이 천주교만을 의미한다고 곡해하여 공교회라는 요상한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이 부분은 대문자냐 소문자냐의 차이로 구분되는데 Catholic으로 쓸 경우는 천주교가 맞지만 소문자인 catholic으로 쓸 경우에는 그냥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다. 거기다 앞쪽에 Ecclesiam(교회)을 적고 이쪽에 대문자를 두었으니 그냥 보편교회로 직역되는 부분이지 절대로 천주교를 의미할 수는 없는 부분임에도 개신교측에서는 이 부분이 영어로 적으면 catholic church가 되니까 천주교측에서 왜곡한 부분이라고 억지로 주장하는 부분

6 각주

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해서는 아니 되는가?(마16:16과28:19)_2019-10-06(주일)

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면 아니 되는가? 어떤 분은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이 만든 것으로서, “마귀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이것을 신앙고백하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로마카톨릭의 음흉한 교리가 숨겨져 있기에, 이것을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침례교를 제외하고는 “사도신경”을 주일낮예배 시간에 신앙고백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 사도신경의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사도신경에는 어떤 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오늘은 사도신경의 역사와 흠과 보완책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오늘날에 들어와서 어떤 분들은 개신교인들은 왜 카톨릭에서 만든 사도신경을 가져다 쓰느냐 면서 사도신경이 얼마나 잘못된 신앙고백인지 알기나 알고 고백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 중에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은 마귀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카톨릭의 음흉한 속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폐기하고 자기들이 만든 신앙고백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는 큰 일 날일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다음 주일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꺼림찍하게 느껴져서,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정말 사도신경은 카톨릭의 것이며, 정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면 우상숭배행위가 되어 잘못되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신앙고백이 되는가?

2. 사도신경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가?

어떤 분은 사도신경을 두고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 왜냐하면 카톨릭의 시작을 언제부터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사도신경을 로마카톨릭교회가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A.D.750년경 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으로 본다면, 현재의 사도신경은 중세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A.D.150년경에 거의 모든 교회들이 현재와 비슷한 틀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었으며, A.D.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때에도 완성단계의 사도신경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을 로마카톨릭의 신앙고백이라고 볼 는 없다. 만약 로마카톨릭의 시작을 A.D.325년 니케아종교회 때부터 본다고 할지라도, 그때 처음으로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로마카톨릭의 신조로 볼 수는 없다. 다만, 동방기독교가 A.D.325년에 나온 니케아신조를 따라가며, 서방기독교가 사도신경을 따라갔기에, 보통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로마카톨릭으로 신앙고백으로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A.D.150년경 사도신경은 어떻게 해서 교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었던 것인가 ?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 이었다. 첫째는 새로 들어온 신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에 그들이 지녀야 할 신앙이 필요했는데, 그때에 문답식으로 물었던 것을 정리한 것들이 여러 교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 이다. 둘째는 A.D.80년이후 교회 안에 영지주의와 마르키온과 같은 이단들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4세기경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말을 함에 따라, 바른 신앙 고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 이다. 그리하여 4세기말에 자연스럽게 현재의 형태와 비슷한 사도신경이 교회들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것이다.

3. 사도신경은 어떻게 변천되었는가?

사실 개신교회(개혁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앙고백은 중세로마카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던 사도신경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 이다. 다만, 중세로마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사도신조와는 단 한 개의 문구에서만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부분에서 “장시된 지”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의 사이에 “음부에 내려가사”는 말이 로마카톨릭에는 들어 있고, 우리 개신교회에는 없다는 것 뿐 이다(참고로, 이 문구는 처음부터 있지는 않았으며, A.D.360년 아리안의 신앙고백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A.D.750년에 공식적으로 삽입되어 들어가게 됨).

그렇다면, 왜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문장이 빠지게 되었는가? 2가지가 그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음부에 내려가사”는 문구가 로마카톨릭의 교리 가운데 하나인 “연옥교리”와 맞물려 있어서, 개신교회가 연옥설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것을 빼버렸을 가능성이 있으며, 또 하나는 비록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칼빈은 이 문구를 삭제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개혁교회의 전통은 칼빈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인지라,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문구가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은 어떤 변천사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사도신경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1세기부터 이미 사도신경와 비슷한 신앙고백들이 교회들 사이에 세례줄 때 사용되다가, 점차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첨가하여 오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점차적으로 추가된 문장들 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성부에 대한 신앙고백 중에서 “천지를 만드신”은 후대에 추가되었다. 둘째, 성자에 대한 신앙고백 중에서 “잉태하사”, “죽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 ]”,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거룩한 공교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영원히 사는 것” 등 이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천지를 만드신”이라는 문구는 A.D.360년경에 추가되었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는 A.D.381년경에,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영원히 사는 것”은 A.D.650년경에 추가된 것들이다.

4.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어디가 잘못 되어 있는가?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개신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 가운데 내용상 잘못된 것 은 무엇인가?(여기서는 번역상의 잘못은 생략한다). 어떤 분들은 “외아들(독생자)”이나 “동정녀 [마리아에게]”가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도한 판단 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먼저, “그(하나님)의” “외아들”은 헬라어 “모노게네스”를 번역한 말로서,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요, 둘째로 “동정녀”는 처녀를 뜻하는 말이기에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예수님의 신분이 부활후에는 “외아들(독생자)”에서 “맏아들”로 승격 하셨으며, 마리아도 “동정녀(처녀)”에서 “여인”(자식을 낳은 여자)으로 바꾸어졌다는 것 을 기억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하면, 마리아를 “동정녀”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은 결국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한 로마카톨릭의 음흉한 속셈을 용인하게 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낳을 때 마리아의 신분은 분명 “동정녀(처녀)”였기 때문에, 이러한 신앙고백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승천 후에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하여 로마카톨릭이 마리아에 대하여 얼마나 가짜 이론(교리)를 만들어내었는지를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마리아의 평생동정설, 마리아의 무염시태설, 마리아의 평생무자범죄설, 마리아의 승천설, 마리아의 은총의 중재자설은 다 가짜 이론(교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만 예수님에게 자신의 태를 빌려주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마리마의 태중에 잉태되어 태어나신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카톨릭처럼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신앙고백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5. 장차 기독교회가 만들어야 할 바른 신앙고백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장차 기독교회가 고백해야 할 바른 신앙고백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여러가지가 많이 있지만, 적어도 2가지만큼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본다. 하나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신앙고백 이 꼭 들어갔으면 한다. 왜냐하면 사도신경만을 가지고 늘 신앙고백하다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신경은 마28:19에 나온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고백만을 계속 고백하다보면, 성도들은 삼신론으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라. 천국에 가보면, 하나님의 보좌는 한 개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계신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성령으로 존재할 때가 있었고, 아들과 아버지로 동시에 존재할 때도 있었으며,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으로도 동시에 존재할 때도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에는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나는 성령을 믿으며”라는 문구가 계속됨에 따라 성도들은 하나님을 세 분으로 잘못 생각할 확률이 많아보인다. 물론 하나님이 한 분인 줄 알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한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도들의 믿음과 회개에 따라 사람이 부활체를 입고 곧바로 천국과 지옥에 들어간다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신앙고백 속에 집어넣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믿음만 있으면 들어간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까지 다 포함시켰으면 좋겠다(마4:17, 눅24:47, 행2:38,20:21).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한 자는 결국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계21:8,3:5).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부활체를 입고 곧바로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이라는 실재하는 장소로 이동한다는 것도 집어넣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냥 천국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통치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공간적인 실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신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사도신조)은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A.D.325년에 동서방교회가 공히 고백했던 니케아신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니케아신조는 사실상 성경과 어긋난다든지 틀렸다고 할 내용은 거의 없다. 하지만 부족은 것이 있다.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자로 나타나셨고 존재하셨지만, 한 분이라고 하는 고백”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6. 나오며

어떻게 사도신경(사도신조)가 생겨났는지 역사적인 고찰을 하지 않은 분들은 사도신경이 중세로마카톨릭의 신조라고 정의하고는 무조건 이것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하지만 사도신조는 그리 나쁜 신앙고백이 아니다. 교회가 생성된 이후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이기 때문이요, 그것을 믿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A.D.381년 그리고 590년 이후 교회가 로마카톨릭이 되어감에 따라, 원래 신조에는 없던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로마카톨릭의 중요핵심교리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 같아 보인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개신교회(개혁교회)에서는 이러한 사도신경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잘못 번역한 곳은 바로 잡으며, 추가된 것 중에서 비성경적인 것은 빼고, 부족한 것은 추가하여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되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속히 그러한 날이 오도록 기도하자. 그렇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는 부족하지만 사도신경이나마 신앙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은 표현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19년 10월 06(주일)

정병진목사

올바른 나침판

오늘날 대체로 기독교인들은 예배 드릴 때마다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예수님의 12제자였던 12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내려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치 않습니다.

사도신경 곧 사도들의 신조(the Apostles, Creed)라는 것은 그 이름과는 달리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준 신조도 아니고, 사도들에 의하여 고백되어지고 쓰여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권위나 정통성에 있어서 십계명이나 주의 기도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

사도신경이 “일찍이 만들어진 것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최선의 대중적인 요약 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교리의 기준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구절이 여러 있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여진 것은 390년의 암브로우스와 404년 루피누스가 작성한 문서에서 부터입니다.

이들이 작성한 문서에서 기독교의 신조를 12개항목으로 소개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기 전에 신앙의 요체를 한 항목씩 고백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 붙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12사도가 모여서 우리가 믿고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한 사도가 한 가지씩 말해서 모아 논 것이 바로 이 12신조라고 주장하면서 이 신조에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의 저자(著者)들이 작성한 12신조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이지 그것이 실상이 아닌 것입니다 .

아시는 대로 사도 야고보는 일찍 순교해서 거기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그 외 다른 사도들도 대체로 일찍부터 여려 곳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12 사도가 한 자리에 모여서 신조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위의 저자들이 작성한 12신조가 사도들이 고백한 최초의 신경이라는 거짓된 기원에 대한 설명은 그 이전 325년에 이미 이와 거의 같은 니케아 신조가 발표되었고 그 이전에도 이미 이와 비슷한 다양한 종류의 신조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B.C. 2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칠십명의 유대인들이 번역했다고 주장되는 칠십인역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A.D 240년경에 오리겐이 변개시켜 번역한 헬라어 구약성경이 소위 ‘칠십인역’ 이었듯이, 사도신경 역시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니라 7세기 후대의 로마카톨릭교가 문구의 첨가를 반복하여 만든 “로마카톨릭교회의 신조” 인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발전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세례식 때 문답형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된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삼천명도 받고, 오천명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만 하면 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핍박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세례 받은 사람들 가운데 배교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제는 함부로 세례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세례를 줄 때 문답형으로 고백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당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느뇨?”하는 물음에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 문답형 고백을 거쳐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문답형 신앙고백이 자기 신앙고백형 신경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세례를 집례하는 자가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하고 물으면, 세례받는 자가 “예” 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했습니다. 그래서 각자 표준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외우도록 하고, 그 내용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교회 역사가 계속 이어지면서, 이단의 공격으로부터도 교회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과 싸우는 과정에서도 이 신앙고백의 내용이 점차 보완되고 추가되고 개정되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부합되게 정형화 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위의 과정들을 통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사도신경으로 발전되고 정리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8세기 초의 피르미니우스에 의해서입니다.

8세기에 피르미니우스에 의해 정리된 사도신경이 중세초기에 서방의 모든 교회들의 세례의식때 수례자 문답용으로 사용하였으며 9세기에 이르러서는 초신자들의 교육내용으로도 보편화되었습니다.결국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이 신경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신조가 되어 모든 공적인 예배(미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고백하는 신조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어진 것이 오늘날의 사도신경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엄밀히 따져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의 신앙고백서인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탄생한 이후에 있어 개신교회의 예배에서의 신앙고백도 변화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도신경에서 사도들의 신앙이라고 볼수 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수정하여 만든 개신교 사도신경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사도신경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세부분입니다

그 첫째 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저승에 가시었다가”로 번역) 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문구는 8세기 이전의 신조에는 없던 표현이 첨가된 것입니다.

즉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고 지옥(hell)에 내려가셨다가”(hedescended into hell) 라는 삽입구가 첨가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구의 첨가는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희한한 이야기가 됩니다.

이 문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치 않음으로써 이단이 된 아리우스파의 신조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359년), 그것은 예수님도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도 죽어서 일단 지옥으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점차로 퍼져 나가다가 결국 8세기에 개정된 사도신경에 정식으로 삽입된 것입니다.(Ibid., 21.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95.)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지옥에 가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에 어긋나는 표현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연옥교리에 부합되기 때문에 첨가 되고 계승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 지옥을 연옥으로 보고, 예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시던 삼일 동안에 그의 영혼이 연옥의 한 부분인 림보(Lim bus)에 내려가 구약시대의 의인의 영혼들을 구속(救贖)했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London: The Banner of Truth 1966, 687)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는 이 성경에 없는 부분을 빼 버리고 8세기 이전의 사도신경으로 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로 수정한 것입니다.

둘째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 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믿사오며“ 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영어의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공교회)를 번역한 것입니다. Catholic이란 뜻은 보편적 혹은 세계적인, 우주적인 이라는 뜻으로서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될 경우 별 문제가 없습니다. 현재의 개신교도 catholic church(보편적인 교회)라고 해서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세계의 모든 교회 공동체를 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믿는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이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이 쓰여진 배경을 살펴보면 그때에는 교회가 분열이 안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이 당연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후 동서교회로 갈라지고 또한 서방교회가 다시 로마교회와 개신교로 갈라진 형편에서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이 가톨릭교회라는 표현을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땅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주류, 이단으로 정죄하는 무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보편적인 교회(Catholic Church)” 라는 단어가 분열된 로마가톨릭교회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잘못 쓰여지고 있는 마당에 있어서 이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곧 로마 가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잘못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 시켜서 개신교에서는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로 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도 5세기의 [로마교회 구 신조]에는 그냥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Schaff, 16. 23. 28.)

그러나 8세기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가톨릭을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표현된 것입니다.(E E. Carims, Chirstianity Throughout the Crnturies(Grand Rapids: Zondervan Publ. House, 1981, 159.)

이제 말씀드린 대로 “카톨릭”(catholic) 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universal) 이란 뜻이어서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구태여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공언하고 나선 로마교회의 감독이 전 세계의 머리로서 땅위의 모든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교회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실제로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것”과 “거룩하고 보편적인 가톨릭교회를 믿는다”는 말의 뉘앙스(音調)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 서방 로마교회와 지상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던 동방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자신을 “거룩하고 정통적이며 세계적(카톨릭. catholic)인 사도직의 동방 교회”로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1014.) 부르고 있던 때라 서방의 로마교회가 이 “카톨릭” 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하자 자기 이름을 도적맞은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방교회는 로마교회의 권위주의적인 독선(獨善)을 드러낸 사도신경을 배척하고, 내용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동방교회의 영역에서 제정된 유서 깊은 니케아신조(the Niece Creed)를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고집하고 지금도 쓰고있는 것입니다.(Schaff, 16, 23, 28.)

아울러 역사적 뒷받침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도신경을 굳이 사도들의 직접적인 작품이라고 무리하게 주장하는 이유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Authur Devive, Creed Explained(New York: Benziger Brothers, 1892, 43~48.)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회가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이 “거룩한 카톨릭 교회”의 표현을 8세기 전의 사도신경으로 환원시켜 “거룩한 공회를 믿으며” 라고 하므로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 다른 점은 “성도들의 교통을 믿는다” 는 고백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 문구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 라고 수정했습니다.

그 수정이유는 가톨릭에서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신조는 죽은 성인들과 교통하며 그들의 공적을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 있어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보속과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자들과의 교통과 기도를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있는 성도들의 교통과 협력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모든 지상의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만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사도신경의 성도들의 교통은 세상의 믿는 성도들만의 교통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죽은 성도들과의 교통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주교인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의미의 ‘성자’ 또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들(고전 1:2)을 가리키지만, 로마 카톨릭교의 사도신경에서의 ‘성인’은 죽은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에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 되는 복자, 성자 즉 죽은 성인들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산 성도들과 죽은 성도들과의 교통을 신약성경은 전혀 말씀하지 않음으로서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구약성경에서 책망하고 있는 강신술을 권장하는 것과 같은 미신에 속한 것입니다.[신 18:11. 사 8:19-20] 이러한 신앙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고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의 이교의 신앙이 기독교에 접합된 것이며 이러한 신앙에 의하여 1546년의 트리엔트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실제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크리스마스에 싼타크로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허구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이생과 저생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분리해서 운영하시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구절이 삽입된 것도 8세기 이후입니다.

그 전의 신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구절을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구절로 수정한 것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본래 신앙으로의 환원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천주교의 사도신경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사도들의 신경이 될수 없으며 다만 로마가톨릭교의 신경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은 성경의 내용에 위배됨이 없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에 가장 부합된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진리의파수꾼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영심이 원글보기 : 영심이

메모 :

사도신경의 중요성

개혁교회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중요성

이단성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요즘 인터넷을 통해 은밀히 사도신경(신조)에 대한 거짓된 주장을 유포하여 많은 성도들에게 영적 혼란을 주고 있다. 그들은 사도신경의 역사성과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신앙을 뿌리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참고, 본문에서는 ‘신경’과 ‘신조’를 혼용함)

그 대표적 이단이 바로 말씀보존학회의 피터 러크만(Peter S. Ruckman)이다. 피터 러크만은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해부터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조직신학에 의하면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을 인간의 영혼육(靈魂肉)에 비유하는 양태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부는 인간의 혼, 성자는 인간의 육체, 성령은 인간의 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이단적이며 비성경적인 이해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의 죽음에 대해서도 지극히 비성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즉 불신자가 죽으면 그의 육은 무덤에, 혼은 지옥에, 영은 하나님의 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신학적 오류로 가득한 사람이 2000여년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 거인들이 다 인정해온 사도신경의 정통 신앙고백을 부정하고 나온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염두에 두고 신조학(信條學) 박사 신원균 박사가 정확한 비판의 글을 온라인에 게재함으로써 혼란에 빠진 성도들을 돕고자 한다. 피터 러크만의 신학적 오류에 대하여 좀 더 알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holyhoon71.blog.me/80043754344 < 편집자 >

시작하는 말

요즘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의 주장을 빌어 한국에서도 사도신경이 마치 로마 가톨릭의 주된 신앙고백이며 개신교를 가톨릭화 시키는 위험한 교리처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와 정교회 및 개혁교회 모두가 받아들이는 정통적이며 공통적인 고대 신조이다. 특히 루터, 츠빙글리,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 그리고 정통 개혁교회의 신학자들 모두가 인정하고 수용한 성경적 신앙고백이다. 사도신경에 대한 비판자들의 잘못된 주장과 그들이 언급하는 각 본문의 번역에 대한 오류들을 소개하여 사도신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사도신경의 번역들

(1) 주후 750년 공인 된 사도신경(신조)

1)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장사 지낸 바 되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으며,

5)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것을 믿는다.

8) 나는 믿기를 성령과

9) 거룩한 공(公) 교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몸(육체)이 부활하는 것과

12) 영생을 믿는다. 아멘

(2) 한국 개신교회의 사도신경(신조)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5) 정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8) 성령을 믿사오며,

9)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몸이 다시 사는 것과

12)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3) 한국 개신교회의 새 번역 사도신경(신조)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5)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6)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7) 거기로 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8) 나는 성령을 믿으며,

9) 거룩한 공(公) 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10) 죄를 용서 받는 것과

11) 몸의 부활과

12)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4) 한국 천주교회의 사도신경(신조)

1)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3)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4)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5)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6)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7)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8)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9) 성령을 믿으며,

10) 거룩하고 보편 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을 믿으며,

11)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12)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5) 한국 성공회의 기도서(사도신경, 2004년)

1)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 나이다.

2)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3)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4) 본티오 빌라도 치하(治下)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5)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6)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7)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며,

8)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 믿나이다.

9) 성령을 믿으며,

10) 거룩한 공교회와 모든 성도의 상통을 믿으며,

11) 죄의 용서와

12)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믿나이다. 아멘.

(6) 라틴어 원문 사도신경(신조, Credo)

1)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2) Et in I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3)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4)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na,

5)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6)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7)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8) Credo in Spiritum Sanctum,

9)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10) remissionem peccatorum,

11) carnis resurrectionem,

12) et vitam aeternam. Amen.

(7) 영어 번역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1)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2)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3)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4)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descended to hell,

5) on the third day rose again from the dead,

6) ascended to heaven,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7)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8)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9)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10) the forgiveness of sins,

11)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12) and eternal life. Amen.

(8) 헬라어 번역 사도신경(신조)

Πιστεύω εις Θεον Πατε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οιητην ουρανου και γης. Και (εις) `Ιησουν Χριστον, υί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τον κύριον ήμων, τον συλληφθέντα εκ πνεύματοσ άγίου, γεννηθέντα εκ Μαρίασ της παρθένου, παθόντα επι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σταυρωθέντα, θανόντα, και ταφέντα, κατελθόντα εις τα κατώτατα, τη τρίτη `ημέρα `αναστάντα `απο των νεκρων, `ανελθόντα εις τοθσ ουρανούσ, καθεζόμενον εν δεξια θεου πατροσ παντο δυνάμου, εκειθεν ερχόμενον κρϊναι ζωντας και νεκρούς. Πιστεύω εις το Πνυμα το `Αγιον, αγίαν καθολικην εκκλησίαν, αγίων κοινωνίαν, άφεσιν αμαρτιων, σαρκος ανάστασιν, ξωήν αιώνιον. Αμήν.

2. 사도신경의 역사

최초의 신조는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가 주후 107년에 작성한 것이며, 중요한 신조로서는 동방교회를 중심으로 니케아 신조(주후 325), 아타나시우스 신조(주후 359), 칼케톤 신조(주후 451) 등이 있다.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고백한 사도신조의 원형으로 가장 중시되는 것은 4세기 말 루피누스(Lufinus)가 작성한 라틴어 본문이다. 그 동안 교회들은 서로 다른 세례 고백문을 사용해 왔지만 주후 390년경에 루피누스에 의해 작성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고백은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비록 그 후에도 어느 정도의 첨가와 변화(예수의 음부 행, 공적인 교회, 성도의 교제)가 있었지만 최종 본문이 750년에 형성된 이후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거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확장된 이유는 로마 가톨릭이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좀 더 세밀한 고백이 추가된 것뿐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시대는 동방교회를 중심으로 니케아 신조가 서방교회에서는 사도 신조가 대표적으로 공인된 교회신조로 인정되었다.

사도신경은 초창기에 12사도가 한 구절씩 나눠 작성한 것처럼 생각됐지만 후대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저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신경의 각 내용이 정통교회의 신앙을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교회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교파에서는 고대 신조의 한 부분으로 사도신경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

칼빈은 사도신조가 오늘날도 얼마나 커다란 가치가 있으며 그 내용이 성경과 어느 정도나 일치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도신조는 우리의 구속의 중요한 점들을 간단히 요약하며,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분명히 보여 주는 일람표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나는 신경이라고 부르지만 그 저자 문제는 전연 고려하지 않는다. 고대 저술가들은 신경을 사도들에게 돌리는 점에서 상당히 의견이 일치했다. 사도들이 공동으로 써서 발표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전한 가르침을 충실히 수집하며 요약한 것이므로 넉넉히 사도들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도신조가 어디서 유래 되었든 교회의 바로 초창기 즉 사도 시대에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그것을 공적 고백서로 인정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느 한 개인이 사적으로 쓴 것 같지 않고 사람들이 회상할 수 있는 가장 오랜 옛날부터 확실히 모든 경건한 자들이 그것을 신성한 권위로 인정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유일한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즉 우리의 믿음의 역사 전체가 신경에 간명하고 질서 정연하게 요약되었으며, 성경의 순수한 증언에서 보증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저자 문제로 불안을 느끼거나 남과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물론 성령의 진리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누가 그것을 말했다거나 썼다는 것까지 알지 못하면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다르다.”

특히 칼빈은 사도신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536년판 기독교 강요 초판의 구조에 담았다. 초판은 본문을 크게 6장으로 구성했는데 각 장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장 : 율법-십계명 해설포함,

2장 : 믿음-사도신경 해설포함,

3장 : 기도-주기도문 해설포함,

4장 : 성례,

5장 : 거짓 성례,

6장 : 기독교인의 자유, 교회의 권능과 정치 조직

이 중에 칼빈은 사도신경을 십계명이나 주기도문과 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소개하는 성격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빙크(Herman Bavinck)도 사도신조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는 줄의 역할을 했다고 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 가르쳐 주고 있다. “사도신조는 가장 오래된 신조다. 그것은 사도들 자신들이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일찍이 2세기 초에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주신 삼위일체적인 세례 명령으로부터 발전되었던 것이다.(마 28:19) 근원에 있어서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짧지만 기초 형태는 같았다. 즉 그것은 기독교가 의존하고 있는 그 큰 사실들의 짧은 요약이었고 그와 같이 계속해서 그것은 공동체적인 근원이 되어 왔고 모든 그리스도 왕국의 통일의 끊을 수 없는 줄이 되고 있다.”

바빙크는 사도신조의 처음 논쟁이 되었던 주제는 “당신은 그리스도를 누구라 하느냐?”였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의 말씀 자체로부터 모든 세계에 대하여 대답해야할 전 지배적인 물음이었다. 현대의 대표적인 개혁파 신학자인 하지(A.A. Hodge)도 영국에서 소요리문답을 처음 출판했을 때 주기도와 십계명과 사도신조를 첨가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사도들이 작성했다거나 성경의 일부분으로 여길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의 요약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그리스도의 고대 교회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을 첨부하였다.

김영규 교수는 기독교 강요와 사도신경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참된 신앙의 구성요소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notitia)이 포함하고 있다. 즉 사도신경이 기독교 강요 전체 내용의 지변(池邊)을 이루면서 ‘ 우리가 믿는다.’(credimus), ‘나는 믿는다.’(credo)는 것을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처럼 사도신경의 시작 역사와 작성자는 비록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이 성경과 정확히 일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초대교회 이후로 모든 교파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종교개혁자들과 개혁교회에서는 제네바 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중심으로 사도신조 해설을 시도하여 기독교 교육의 기초내용으로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전통적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이다.

3. 사도신경 본문의 신학적 의의

사도신경의 본문과 관련해서는 번역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많다. 물론 어떤 부분은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 좋지만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처럼 기존의 번역 자체가 마치 로마 가톨릭의 신앙형태로 변질 된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사도신경의 역사와 신학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다. 각각의 본문을 피터 럭크만의 비판과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부분에 대해서 럭크만은 두 가지를 비판한다.

첫째, 삼위일체를 고백해야 하는 데 본문은 창조를 마치 ‘하나님 아버지 (성부, 聖父)’만 한 것처럼 고백하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한다.

이 비판은 사도신조 전체의 신학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비판이다.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에서 사도신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18문 : 사도신경은 어떤 것들입니까?

답 :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님께 대한 것입니다.

넷째로 교회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우신 행위들에 관한 것입니다.

칼빈이 언급한 것처럼 사도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조화 있게 드러내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 교회라는 4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삼위일체는 신적 본질(본체)에 있어서 동일하시지만 삼위의 신격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따라서 사역에 있어서 창조는 성부에게, 구속은 성자에게, 구원의 성취와 적용은 성령에게 돌리는 것이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이다. 바로 사도신조는 각 삼위의 위격이 갖는 고유한 사역을 구분해 주고 있는 것이지 창조에서 성자와 성령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말한다.

26문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 는 신앙고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버지 곧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 조하시고 영원한 경륜과 섭리로 그것들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 아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둘째, 럭크만은 ‘천지를 만드신’이란 부분이 절대창조인 히브리어 ‘빠라’ 의 표현이 아니라 재료를 이미 가지고 시작한 ‘아솨’의 표현이라 고 비판한다.

이 지적은 그럴듯하지만 히브리어의 고유한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적이다. 물론 구약학자들은 ‘빠라’와 ‘아솨’의 단어적 특징을 구분하여 창세기 1장의 절대창조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히브리어 대한 적절한 영어나 한글 표현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히브리어는 하나님을 전제로 한 언어적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에 이런 단어의 신학적 구분이 가능하지만 다른 언어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 없이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창조의 특징을 구별할 수 있는 단어 자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하신(빠라)’이나 ‘만드신(아솨)’ 모두 언어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표현을 고백하던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창조의 의미를 잘 교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 부분에서는 럭크만이 ‘외아들’이란 번역을 문제 삼는다. 성경은 외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독생자(獨生子)’라고만 말했기 때문에 ‘외아들’의 번역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기독론에 대한 오해이다. 정통 기독론에서는 독생자에 해당되는 ‘The only begotten Son’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이 표현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Special Son’에 대한 첨가 주장이 많이 있어 왔다. 즉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한 분 아들이시기도 하지만 특별하고 위대한 아들임을 드러내려고 했다. 특히 한글 표현으로서 외아들이나 독생자(獨生子)의 번역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기독론을 번역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통적 기독론의 문제는 ‘신성과 인성의 균형문제’였지 ‘독생자’(Filium eius unicum, 獨生子)라는 번역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에게 나시고”

이 부분에서는 신조가 동정녀 마리에 대한 부분을 로마 가톨릭적으로 변질시켰다고 럭크만은 비판한다. 즉 영어로 ‘He was conceive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born of the Virgin Mary.’라고 고백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이 마리아 숭배를 강조하기 위해서 특정한 마리아를 지명하듯이 관사를 사용하여 ‘the Virgin Mary’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인 마리아에 대한 고백이 되려면 ‘a Virgin Mary’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적은 영어의 관사에 대한 오해에서 발생된 생각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일반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때로는 ‘a Virgin Mary’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마리의 동정녀 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학적으로 표현할 때는 ‘the Virgin Mary’를 즐겨 사용해 왔다. ‘a’와 ‘the’의 차이는 신학적 차이라기보다는 영어권의 예수님 탄생에 대한 설명방식의 특징을 구분한 것뿐이다. 오히려 라틴어나 헬라어 판은 관사 없이 무관사로 ‘ex Maria Virgine’, ‘εκ Μαρίασ’라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런 비판을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한국어 새 번역에서는 관사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현재 번역대로 ‘마리아’라고 고백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 부분에서는 럭크만은 빌라도가 고난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으로 고난을 받으사”라고 고쳐야 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죄론에 대한 오해이며 하이델베르 요리문답은 이렇게 답한다.

38문 :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재판관인 본디오 빌라도 치하(治下)에서 고 난당하셨습니까?

답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비록 죄가 없을지라도 지상의 재판관에 의해 서 유죄 판결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 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설명을 보면 누가 예수님께 고난을 가했는가에 대한 주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기 위한 신적 법정을 대변하는 성격으로써 인간 법정인 빌라도의 법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신적(神的) 공의(公儀)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심판하셨고, 이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당시 이 땅의 최고 법정인 로마법정의 형식을 빌어서 자신의 죄 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 형벌을 받는다고 하는 대속의 의미를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빌라도에 대한 고백부분은 하나님의 신적 법정을 대리하여 죄와 무죄에 대한 선언을 고백한 것이지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고난을 가한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다만 번역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에게’보다는 ‘아래서, 치하(治下)에서’ 등의 단어를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칼빈은 이와 같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네바 교리문답을 통해서 드러내주고 있다.

56문 : 왜 당신은 한 마디로, ‘그분이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본디오 빌라도에 관하여 말하며 또한 그에게서 고난을 받았다고 말합 니까?

답 : 그것은 단순히 이 이야기의 확실성(객관성)을 우리에게 증명하기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의 죽음이 정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57문 : 어떻게 해서 그렇습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을 스스 로 담당하시고 이를 통해 우리를 이 징벌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악행자로서 죄를 가지 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지상의 심판자 앞에 출두하여 그분의 입을 통해 정죄 받기를 원하셨는데 이는 하늘에 계신 재판관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죄 없다’라고 해 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이 고백은 연옥에 대한 로마 가톨릭 신앙으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피터 럭크만은 오히려 이 부분이 삭제된 것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내용도 실제로 예수님이 지옥을 방문한 것처럼 해석한다.

이 주장 중에 복원되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교리문답과 개혁교회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들어있지만 한글 번역에는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감리교와 선교하면서 감리교가 교리적 논쟁이 될 부분을 빼자는 주장을 수용하여 삭제되었다. 또한 개혁교회는 그 뜻을 로마 가톨릭이나 루터파처럼 실제로 지옥에 내려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의 깊이를 강조한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을 칼빈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65문 : ‘음부에 내려가셨다가’라는 말이 가르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과 육체의 분리를 뜻하는 자연적인 죽음의 고통만을 겪으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영혼이 베드로가 ‘죽음의 고 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상상하기 힘든 괴로움 속에 갇혀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제네바 교리문답)

44문 : 왜 사도신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셨다가’라는 귀절이 덧붙여져 있습니까?

답 : 내가 개인적인 유혹과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주 그리스도께서 그 삶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상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혼의 슬 픔과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지옥의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나를 구 원하셨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원문에는 이 부분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Dei Patris omnipotentis)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넣어야 한다고 락크만은 말한다.

이것은 사소한 번역의 차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굳이 넣고자 하면 아버지를 넣으면 되고 혹 넣지 않더라도 사도신조에서는 삼위의 각 위를 구분하여 아버지 하나님은 보통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번역도 무난하다.

다음은 ‘앉아 계시다가’라는 부분이다. 앉아 있는 것은 일을 쉬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우편에서 일하시다가’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기독론 부분에서 승귀에 대한 오해이다. 우편에 앉으심은 중보사역의 지속성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승귀의 가장 높은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예수님께 세상에 대한 주권적 통치와 심판의 권한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부분이 성취된 것을 선언하는 고백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서 새롭게 높아지셔서 온 세상의 주인이며 통치자며 심판주로 높아지시는 최고의 승귀를 얻으셨다. 이 승귀의 영광을 초대교회는 권위를 상징하는 왕의 보자를 빌어서 표현한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이렇게 고백한다.

50문 : 왜 그다음 구절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입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그곳 은 그분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성부께서 그를 통하여 만물을 다스 리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저리로서’는 의미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곳으로부터’라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의 차이일 뿐 신학적인 의미는 없다. ‘저리로서’는 고어적(古語的) 번역일 뿐이다. 오히려 ‘그 곳으로부터’라고 번역해도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두 표현 다 신학적 의미를 바르게 설명해 주지 않고 단지 표현적으로만 이해하면 문제가 된다.

이 고백은 권위의 문제와 예수님의 몸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기독론을 드러낸다. ‘저리로서’는 하나님보좌 우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장소로부터 심판을 위해서 오신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심판 주와 재판장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승천의 마지막 내용으로서 예수님의 몸을 재림 전에는 다시 볼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고백이다. 즉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46문 : ‘하늘에 오르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올 라가셨으며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때 까지 우리를 위해 그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리로서’는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된 연결 고백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몸은 승천을 통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이라는 장소로 옮겨 가셨고 그곳으로부터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거기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을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는 신비주의자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된다. 제네바 교리문답은 이렇게 말한다.

83문 : 다음을 말해 보십시오.

답 :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이 말은 그리 스도께서 언젠가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나 실 것인데 이 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승천 시 본 모 습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어떤 이들은 이 부분에서 성령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영접의 대상이기 때문에 ‘성령을 모셔드리오며’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주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신론과 구원론에 대한 무지이다. 사도신조는 초대교회의 핵심적 이단이었던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를 배격하기 위해서 삼위의 각 위를 자세히 균형 있게 드러냈다. 특히 삼위는 모두 믿음의 대상이며, 영접의 대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믿는다.”(Credo)라는 고백 뒤에 삼위 각각에 대해서 ‘in Deum’(성부), ‘in Iesum Christum’(성자), ‘Credo in Spiritum Sanctum’(성령)이라고 동일하게 고백했다.

오히려 초대교회 때는 어느 한 위(位)를 분리해서 한 위만을 믿음의 대상이나 영접의 대상처럼 생각하여 삼위일체를 파괴하려는 많은 이단들의 주장이 있었다. 이처럼 성령을 믿음의 대상과 영접의 대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는 자체는 초대교회 이단들이 삼위를 분리하여 생각하려고 했던 주장과 유사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거룩한 공회”

피터 럭크만이 사도신조를 비판하는 내용 중 가장 비중이 큰 부분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연상케 한다는 ‘공회(公會)’에 대한 지적이다. 원문은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로 되어 있는데 로마 가톨릭에 의해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형태로 변질되어 로마 가톨릭을 믿는 고백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론에 대한 오해이다. 오히려 ‘catholic Church’(sanctam Ecclesiam catholicam, αγίαν καθολικην εκκλησίαν)라는 표현은 로마 가톨릭이 신부들을 중심으로 한 유형 교회만을 참된 교회로 주장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정통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사용했던 표현이다. 즉 이 표현은 교회 본질은 불가시적이며 전 세계 모든 곳에 흩어져 있는 그리고 모든 시대를 통해서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를 포함하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하나인 신앙공동체를 나타내는 중요한 고백이다. 다만 언어의 혼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Roman-Catholic Church’라고 했으며 정통교회는 ‘Catholic Church’라고 분리해서 사용했다.

특히 한글로 ‘Catholic Church’를 번역할 때도 선교사들과 신학자들은 위의 의미를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성도들이 주관적으로 단순히 모여서 교제한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는 ‘공회’(共會)라는 한문표현을 제거했다.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공적(公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는 특별한 사명을 받아 선택되고 부름 받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신앙공동체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서 공적(公的) 교회라는 ‘공회’(公會, catholicam)로 표현했다. 제네바 교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93문 : 공동적 교회(Catholic Church)란 무엇입니까?

답 : 공동적 교회(Catholic Church)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 정하시고 선택하신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97문 : ‘공동적’(Catholic)이란 무슨 뜻입니까?

답 : 성도들의 머리는 오직 한 분뿐이시라는 것과 모든 사람들은 이 한 몸 안에서 연합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교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단 하나의 교 회가 있을 뿐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이 부분에서 피터 럭크만은 ‘교통(交通)’은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죽은 성도들(성인숭배)과 교제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성도들과의 친교를 나타내는 ‘교제(交際)’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 말은 본래 ‘성인(聖人)의 통공(通功)을 믿으며’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성자숭배의 근거로 삼고 있고 또한 산 자와 죽은 자가 교통하는 교리적 근거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교회론에 대한 오해이다. 원문에서 말하는 ‘교통’(the communion of saints, sanctorum communionem)의 의미는 오히려 이 부분은 로마 가톨릭이 죽은 자와의 교통을 말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고백이다. ‘교통(交通)’을 의미하는 ‘communionem’는 초대교회 때에 라틴어나 헬라어 모두 살아있는 성도들의 영적 교통과 물질적인 삶의 나눔을 모두 포함한 살아 있는 자들의 교제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말한다.

55문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첫째, 신자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들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각 신자들은 자신의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덕을 위하여 감사함으로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이 부분에서 럭크만의 비판은 예수님의 죄 사함은 이미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처럼 진행형으로 번역해서는 안 되고 과거적 표현으로 ‘죄를 용서하신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이것은 구원론의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못한 오해이다. 본 고백은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용서되어 의롭게 되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자범 죄의 계속적인 용서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고백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56문 :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에 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나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 죄와 나를 미혹 하는 죄성에 대하여 정죄치 아니하심을 믿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께서는 은혜로 말미암아 내게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셔서 심 판으로부터 나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

이 부분에서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고 애매하게 고백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아니라 ‘몸이 예수님처럼 다시 사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종말론에 대한 오해이다. 물론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첫 부활로서 모든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모범이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은 육체의 부활이 어떤 형식과 형태인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 성도들의 부활체 모두는 동일하게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본질적 성격은 예수님의 부활체를 닮으면서도 성도 각각은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현재와 완전히 다른 몸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개인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예전의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는 신령한 몸이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위의 주장은 자칫 성도들 모두가 개인의 육체의 부활을 무시하고 예수님과 동일체가 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 부분에서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장소가 선명하지 않아서 로마 가톨릭의 연옥도 생각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천국에서’를 꼭 넣어야 한다고 럭크만은 비판한다.

성경에서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옥(地獄)보다는 천국(天國)에 대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방향을 사도신경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아서 지옥에 대한 경고보다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더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고백에는 이미 성도의 부활은 천국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넣어도 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개혁교회의 종말론은 천국의 장소적 개념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성도들이 예배하는 천국의 상태에 대해서도 강조하기 때문에 장소적 의미가 강하게 드러날 수 있는 표현은 오히려 종말론의 균형을 파괴할 수 있다.

결 론

지금까지 사도신경 비판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사도신경은 지난 2000여년을 기독교회가 지켜 온 소중한 보물이다. 특히 어거스틴뿐만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은 이 사도신경의 구조와 내용을 따라 자신들의 신학체계를 확립할 정도로 매우 귀한 것이다.

단지 오해가 있는 표현은 좀 더 좋은 번역으로 수정하면 되는 것이지 비판자들처럼 사도신경 자체가 마치 로마 가톨릭의 유산물인 것처럼 주장하면 안 된다. 오히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사도신조를 버리거나 강하게 비판했던 분파는 주로 이단들이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또 다시 사도신조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는 그가 믿는 믿음의 대상과 내용이 정확해야한다. 내가 누구 를 믿으며 무엇을 믿는지 믿음의 대상과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 외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해 놓은 사도신경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둘째, 사도신경은 이단 침투를 막고 기독교의 진리 수호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해석은 워낙 다양하고 여러 주장들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을 통한 바른 믿음인지 거짓된 믿음인지는 개인과 공 동체의 객관적 신앙고백을 통해 명확히 분별된다.(*) 글쓴 이 / 신원균 박사(조직신학, Ph. D.)

KRCNED l 화란한인교회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사도신경은 오늘날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앙 고백 입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초대교회 세례문답의 기본 골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215년경 히포크라테스의 질문 중에 들어 있고, 340년경 마르셀루스(Marcellus)도 이 신앙 고백을 하였으며, 4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아프리카 교회들도 사도신경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훨씬 후대의 일이지만 710-724년에

보급된 공인본문(Textus Receptus)에서도 이 신앙 고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100년경에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조로 채택하여 사용했다는 증거들이 있어서, 사도신경은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 공동 전례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재의 형태로 처음 쓰인 것은 8세기 초 피르미니우스에 의해서였는데,

이는 2세기경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대 로마신조(Old Roman Creed)의 요약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세 초기에는 서방의 모든 교회들이 세례 예식 때 사도신경을 사용했고, 7-9세기에 이르러서는 초신자 교육 내용으로 보편화되었으며, 12세기에는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공식 신조로 정착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신자나 개종자들이 신앙의 핵심을 배우는 데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 교회는 니케아 신경과 네덜란드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개신교 사도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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