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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계시록 7장에서 단 지파가 생략된 이유는 계시록이 매우 경계하는 우상숭배 및 황제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실 유 다 지파단 지파가 분배 받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했으며, 유다와 레위를 강조하면서 을 생략하는 구약 본문(대상 4-8)의 영향을 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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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Q&A] 요한계시록 7장 열두 지파에 ‘단’지파가 빠진 이유는 …

두번째 질문인 단 지파가 빠진 이유도 영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 볼 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지파에 대해서는 창 49장에 이렇게 예언 되어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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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8/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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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진 이유 – Daum 블로그

성경인물 강해대전 – 단 ; 단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신 33:22) 3. 단 지파의 선택| 일하는 두손 ysong777 | 조회 47 |추천 0 |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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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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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사라진 두 지파 >에 대한 고찰 – 네이버 블로그

단 지파에게는 거친 미래가 전개되는데, 창세기 49:17에서 “뱀”으로 불리고 신명기 33:22에서는 … 단”이 요한계시록에서 빠져야 했던 분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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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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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7장에서 택한 백성의 수와 삽입장과 단 지파가 빠진 이유

계7장과 계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의 수가 하나님께서 인을 쳐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택한 받은 백성들의 수라는 것에는 예수 믿는 성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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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nhd.net

Date Published: 1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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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파의 영광과 수치- 잃어버린 10지파? – Glory be to Lord

계시록에 등장하는 영적 12지파 계보에서 에브라임과 단 지파가 빠진 이유가 궁금해 찾아봤더니, 유다로 예배드리러 가지 않게 하려고 여로보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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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loryb2lord.org

Date Published: 3/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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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 에브라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진 이유 단과… – 하동매실촌

단과 에브라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진 이유 단과 에브라함이 빠져 있는 문제. 성경에는 12지파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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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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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요한 계시록 7장에서 12지파를 소개할 때 ‘단’ 지파가 빠진 …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첫번째 질문인 장자 르우벤 지파 대신에 유다 지파가 맨 먼저 등장한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육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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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ahope.net

Date Published: 1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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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파 – 나무위키:대문

단 지파가 묵시록에서 빠진 것은 기독교의 오랜 떡밥 중 하나이다. … 단 지파가 제명된 이유가 후술될 땅을 분배받은 이후, 아론의 후손을 데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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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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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서 단과 에브라임지파가 빠진 이유
요한계시록에서 단과 에브라임지파가 빠진 이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단 지파가 빠진 이유

  • Author: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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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9.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LeJKNwa1z8

144,000명(계 7:3-8)에서 단 지파가 생략된 이유

요한이 보았던 144,000명에 대한 환상(계 7)은 여섯째 인의 개봉(계 6:12-17) 과 일곱째 인의 개봉(계 8:1) 사이에 끼어든 내용으로서, 성부와 성자의 진노 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계 6:17)에 답을 준다(참고. 계 9:4). 그런데 여기서 오래된 질문,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종들인 144,000명에 단 지파는 왜 생략되었는가?”를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충분한 해답을 제공하기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이 글에서 는 계시록 7장의 외적 상호텍스트(extratext; 이하 ‘간본문’)에 해당하는 교부 들의 증언과 유대문헌(예. 단의 유언), 구약 간본문(intertext), 요한계시록 안의 내적 간본문(intratext)을 차례로 연구하고, 요한 당시의 단과 관련된 사 회문화적 간본문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단 지파가 144,000명에서 생략된 이 유를 요한계시록의 기록 목적에 비추어 연구한다. 이 글은 계시록 7장에서 단 지파가 생략된 이유는 계시록이 매우 경계하는 우상숭배 및 황제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실 유 다 지파는 단 지파가 분배 받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했으며, 유다와 레위를 강조하면서 단을 생략하는 구약 본문(대상 4-8)의 영향을 반영하며, 요한은 창세기 49:16-17의 뱀을 계시록의 용(사탄)과 연결하여 부정적으로 해석했을수 있다. 그리고 계시록 7장의 12지파 목록에 나타난 기독론적이며 반(反) 단 지파적 해석은 속사도 시대 이후에 벌어진 기독교의 반 유대주의적인 메시아 논의에 영향을 미쳤음을 논증한다.

The vision of 144,000 people (Rev. 7) in between the opening vision of the 6th seal of the scroll (Rev. 6:12-17) and the 7th seal (Rev.8:1) gives the answer to the question of Revelation 6:17: “Who will endure the wrath of the One who sits on the throne and the Lamb?”(cf. Rev. 9:4). Here, an old question, “Why is the tribe of Dan omitted from Revelation 7:5-8?”, requires fresh research to give an answer. Until now, the proposed solutions to this question are not sufficient or convincing. The aim of this paper is to solve this problem by investigating (1) extratexts from the church fathers and the Jewish literature in the 2nd Temple period, (2) OT intertexts, (3) intratexts, and (4) socio-cultural intertexts. Finally, (5) the reason for the omission of Dan from Revelation 7 is discovered by the written purpose of Revelation. This study concludes that the tribe Dan is omitted by John, because (1) its intimate connection with idolatry and emperor worship, (2) the tribe of Judah from which Christ was born conquered the allotted territory for Dan, (3) the influence on the Apostle John of the genealogy in 1 Chronicles 4-8 which focuses on the tribes of Judah and Levi instead of Dan, and (4) John’s christological and messianic interpretation of Genesis 49:8-9, 16-17. The anti-Danites interpretation of Revelation 7 would have influenced the anti-Jewish messianic polemic of the church fathers from the 2nd century onwards.

[신앙 Q&A] 요한계시록 7장 열두 지파에 ‘단’지파가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질문: 요한계시록 7장에서 열두 지파를 설명하면서 ‘단’지파가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인 맞은 자들인 십사만 사천을 지파 별로 나누어 소개 하는데, 특이한 것은 장자인 르우벤 지파부터 나오지 않고, 유다 지파부터 소개 되며, 단 지파가 빠져 있고, 에브라임 지파 대신에 요셉 지파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첫번째 질문인 장자 르우벤 지파 대신에 유다 지파가 맨 먼저 등장한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육적인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메시야 계보 중심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유다 지파를 맨 먼저 기록한 것은 더 올바른

순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민 2:3; 34:19; 수 21:4; 대상 12:23-37 등에서는 유다 지파를 맨 먼저 나열되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야를 중심으로 계보를 보는 것 입니다.

두번째 질문인 단 지파가 빠진 이유도 영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 볼 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지파에 대해서는 창 49장에 이렇게 예언 되어 있습니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창 49:17) 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길의 뱀’이 의미하는 바는, 단 지파를 통해서 사단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단 지파는 자기를 위하여 신상을 세우고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삿 18:31)

그래서 단 지파는 저주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14만 4천명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후 3년 반 동안에 감람산으로 도망가는 무리 중에는 포함될 것입니다. 에스겔의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보면 단 지파도 새 땅을 분

배 받는다고 되어있기 때문입니다(겔 48장).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단 지파를 뺀 이유는 단 지파 자체를 영원한 형벌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영적 계보, 즉 이스라엘의 온전한 구원을 의미하는 12지파 전체를 선포하기 위해서 11지파도 아

니고, 13지파도 아닌, 12지파로 표기를 했어야 했고, 그에 따라 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셉을 한 지파의 족장으로 생각하고 에브라임 대신에 요셉을 넣었던 것입니다. 즉, 에브라임은 요셉의 후손으로 표기된 적이 있음을 볼 때(민 1:32-34) 에

브라임 지파를 나타내는 또 다른 형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들을 12지파에 넣은 것은 요셉의 참된 섬김과 인내, 헌신이 그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 즉 12지파에 해당하는 신약의 12제자(사도), 그 제자(사도)들에 의해서 시작되는 교회의 완전성을 설명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본문에서 단 지파가 빠진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됩

니다.

[출처: 앤아버 소망교회 배헌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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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열어가는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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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9. 19:31

***민병석: 질의와 응답 1376번. 12지파에 대한 질문 / 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진 이유. 2006-11-01. 창49, 계7

존경하는 목사님!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신대원생입니다. 목사님의 귀하신 자료에 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질문드리려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12지파에 관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레아에게서 출생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과 빌하의 소생인 단, 납달리, 실바의 소생인 갓, 아셀, 라헬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이고, 창49장에 야곱의 축복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7장에는 단 지파가 빠지고 대신 므낫세 지파로 기록되어 있는데, 왜 단 지파가 제외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단 지파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형제입니다. 목사님의 영육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셔서 늘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응 답>

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진 이유.

* 계7장에 나오는 12지파의 의미

이 문제의 설명에는 약간 많은 서론과 본론이 따른 후에 결론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문장이 좀 길어집니다.

구약의 12지파는 구약교회를 상징합니다.

신약의 12사도는 신약교회를 상징합니다. 구약교회나 신약교회나 믿음이 교회의 기초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자녀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합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실 메시야 탄생을 위해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으로 거대한 구약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믿음을 통해서 구약교회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고 메시야를 그들의 혈통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으로 구약교회의 사명을 완수케 하셨습니다.

12 이란 수는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의 절대수효로 예정해 놓으셨으므로 야곱에게 12명의 아들을 주심으로 그 12명을 통해서 12지파를 형성하신 것입니다. 12지파는 야곱의 혈통적인 자녀들을 통해 만드셨으므로 그들 중에는 약속의 자녀에 들지 못하는(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자녀들만이 약속의 자녀들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의 출현으로 12지파의 구약교회는 12사도의 신약교회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약의 복음은 오실 약속의 메시야에 대한 메시지며 신약의 복음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으로 구약교회는 신약교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2사도의 신앙고백의 토대위에 세워진 신약교회는 실인즉 그 12사도의 신앙고백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고 있으므로 믿음으로는 12사도는 구약의 12지파와 한 맥을 잇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메시야를 탄생시킨 구약교회의 12지파에 속한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을 말함이 아니요 약속의 자녀들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7장의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신약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2지파는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서 구원 받는 완전 수를 의미합니다. 신약적인 의미에서 12지파란 혈통이 아닌 믿음을 따라 구성된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7장에서 12사도들을 다루지 않고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12지파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총칭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일컫는 표현으로는 대단히 성경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 지파 중에서 1만2천씩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선발하여 그 이마에 인친 것은 이들 종말의 사명자들이 전 세계교회 성도들 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 12지파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9절 이하에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란 말씀에서 이들 12지파의 속한 자들이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구약에 나와 있는대로 12지파의 이름이 나와 있어야 할 것인데 왜 단 지파의 이름이 빠지고 므낫세 지파의 이름이 들어가 있느냐는 문제가 의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12지파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메시야의 조상의 혈통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12지파는 곧 오실 메시야를 탄생시킬 구약교회이므로 12지파를 이룰 조상들의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는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들려준 예언기도를 통해서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후 단의 자손들의 행적을 보면 우상을 섬기며 단 족속의 고장인 단을 우상의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 안에는 므낫세나 에브라임 같은 믿음이 좋은 족속이 있었습니다. 단 지파는 신약시대의 복음으로 세운 교회를 이룰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는 메시야 이전의 시대로 단 지파가 존재할 수 있었지만 신약시대의 교회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신부가 될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므낫세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마치 12사도 중에 길의 뱀이 된 가룟 유다의 이름이 삭제되고 그 대신(단 대신 므낫세이듯) 12사도의 이름에 맛디아가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 성경에서 사라진 두 지파 >에 대한 고찰



 < 성경에서 사라진 두 지파 >에 대한 고찰

1. 들어가는 말

성경에서 단 지파에 대한 첫 언급은 창세기 14장 14절이다. 즉 『아브람이 자기 형제가 사로잡혀갔음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난 훈련받은 종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켜, 그들을 추격하여 단까지 가서,』라는 구절에서 단 도성의 위치가 나온다.

【 창세기 14:14은 모세가 창세기의 저자임을 의심케 하는 구절 중 하나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때애나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한다. 따라서 모세는 단 위치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창세기 14:14에서 보면 단 도성의 위치는 팔레스타인 북쪽인 디메섹 근처이다. 학자들은 모세가 그 위치를 몰랐을 것이기에 창세기의 저자가 아닐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를 간과한 것이다. (1) 여호수아는 모세의 사역을 계승한 자로 그와 같은 성령이 임했고, 모세가 했던 일을 지속하도록 같은 임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2) 모세가 죽기 전에 요단 동쪽에 있는 비스가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모두 보았는데 그 땅은 “단 지경까지”였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모압 평지로부터 느보 산에 올라 여리코 맞은편 피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니, 주께서 그에게 길르앗의 온 땅을 단까지 보여 주시고,』(신 34:1). 그러므로 모세는 단의 위치를 알았던 것이다. 그다음에 제기되는 문제라면 그가 창세기 14:14을 하나님이 비스가산에서 그에게 보여준 후 기록했느냐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가 죽기 직전에 쓴 것이다. 모세의 저작임이 창세기의 구절 하나 하나까지 다 포함하는냐 마느냐 할지라도 모세는 분명 창세기의 저자인데 첨가사항들은 여호수아가 세심하게 살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같은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명기 34:9에서 그의 사역이 인수되는 것을 보면 여호수아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2. 전개되는 말

성경에서 사라진 두 지파는 어째서 사라지고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 본다.

1. 단의 출생과 거짓 미래 전개

1) 단의 출생에 대하여서는 창세기 30:6에 언급되어 있다.

창세기 30장,〔4 그녀가 그에게 자기의 몸종 빌하를 아내로 주었더니 야곱이 그녀에게로 들어갔더라.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았더니, 6 라헬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시고 내 목소리도 들으시어 내게 아들을 주셨도다.” 하고,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단이라 불렀더라.〕(4-6절)

단은 라헬이 “대리모”를 통해 얻은 첫 아들이다. 그녀는 몸종을 통해서 이 아들을 얻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단은 “심판”을 뜻한다.

단에 대한 첫 번째 예언은 야곱이 죽을 때인데, 말하기를『단은 이스라엘 지파의 하나로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라』(창 49:16)고 했다. “그가 지파 중 하나로서 심판하리라” 고 했다. 『단은 길가에 뱀이 되고 작은 길에 독사가 되어 말의 뒷굽을 물어서 말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 단 지파에게는 거친 미래가 전개되는데, 창세기 49:17에서 “뱀”으로 불리고 신명기 33:22에서는 “사자”로 불린다. 성경에서 사자와 뱀으로 불리는 존재는 사탄이다(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지만, 요한복음 3:14에서 그 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신 것 외에 결코 뱀같은 분은 아니셨다). 사탄은 베드로전서 5:8에서 “울부 짖는 사자”로 또 요한계시록 12:9에서는 “뱀”으로 불린다. 단 지파는 사탄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을 모독해서 정죄받는 단 지파 사람들

㉠ 레위기는 제사장의 의식과 규례를 기록한 것인데 부수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해서 정죄받는 어떤 사람의 일이 언급되어진다. 『10 그때 아비가 이집트인인, 어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로 나갔는데, 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과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진영 안에서 싸워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니 그들이 그를 모세에게로 데려가니라. ( 그의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으로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더라. ) 』(레 24:10-11)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모세의 율법 아래서 하나님을 저주한 첫 번째 사람은 단지파 사람이었던 것이다,( 계시록 13장에는 적그리스도가 하늘에 거하는 이들을 “모독한다”).

㉡ 삼손은 이스라엘의 열세 번째 재판관으로 그 행위가 “방탕하나” 나중에 자살하는데. 그도 단 지파였다(판 13:2).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재판관기 17:1에서 에브리임 지파가 갑자기 나타난다(요한계시록 7장에서 에브라임이 요셉으로 대치되고 단이 레위로 대치된 것을 기억하라). 재판관기 17:,18장에 보면 레위, 에브라임, 단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 『 에프라임 산지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미카더라. 그가 그의 어미에게 말하기를 “어머니께로부터 취해 간 은 일천일백 세켈에 대하여 어머니께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는데,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네가 주께 복받기를 원하노라.” 하더라』(판 17:1). 그의 어미는 그가 한 서원을 저주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3절에서 돈을 바쳐 “숭배 도구”로 “우상들”을 만든다. 따라서 미가의 집은 “신들의 집”이 되는데, 【 7 유다 족속에 속하는 베들레헴유다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레위인으로 거기에 기거하더라. 8 그 사람이 기거할 곳을 찾으려고 베들레헴유다로부터 그 성읍을 떠나 여행하다가 에프라임 산지 미카의 집에 이르렀더라. 9 미카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디서 오느냐?” 하니 그가 미카에게 말하기를 “나는 베들레헴유다의 레위인으로 내가 기거할 장소를 찾으러 가노라.” 하니 10 미카가 그에게 말하기를 “나와 함께 있어 내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그리하면 내가 해마다 은 열 세켈과 옷 한 벌과 네 양식을 주리라.” 하니 그 레위인이 들어가더라】(판 17:7-10).

그리스도가 초림하기 1200년 훨씬 전에 갑자기 로마 카톨릭 체제가 나타난다. 재판관기 17:10에서 미가는 “나와 함께 거하여 내게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고 말한다. 말씀이 분명 그렇게 기록되었는가? 그렇다.

이런 일은 성경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데, 단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마 23:9).

㉣ 더 살펴보자!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잠잠하라. 네 손을 네 입에 대고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에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 제사장이 되느니 이스라엘 한 지파와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하자,』(판 18:9).

단 지파 사람들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미가의 집을 지나간다. 그들은 “아버지”라 하는 그 제사장과 이야기하고 계속 길을 가다가 시돈 지경에 이른다(판 18:7). 그들이 돌아가서(판 18:11) 싸울 준비를 갖추고(18:13) 다시 올라갈 때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 제사장을 다시 만나는데, 그들은 그에게 그들과 함께 가서 자신들의 아비와 제사장이 돼 달라고 한다. 결과 한 사람 집의 제사장이 되느니 이스라엘 한 지파와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었다(판 18:19).

그래서 그 제사장은 단 지파를 따라간다. 즉 18장에서는 단 지파가 그 레위인을 빼앗아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는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율법의 무지로 인해 한 가정의 우상숭배가 한 지파의 우상숭배로 발전하고, 이것이 또한 전체 나라의 우상숭배로 발전하는 것이다. 레위인의 기본 임무는 율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레위인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또한 단 지파는 왜 그 제사장을 빼앗아갔는가? 자기 지파에는 레위인이 없었는가? 레위인들은 모든 지파에 골고루 분포되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율법이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라이스”라는 도성에 거하는데(18:27), “단”으로 그 이름을 바뀐다(18:29). 단 지파는 이 때부터(B.C 1300)북 이스라엘이 앗수르 포로가 되는 B.C 800까지 완전히 배교한다. 400년이상 단 지파는 배교하여 시돈의 바알 숭배자들과 연합하면서 “미가 종교”를 행하는 것이다.『미카가 말하기를 “너희는 내가 만든 내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멀리 갔으니 내게 무엇이 남아 있느냐? 그런데 너희가 ‘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느냐?’고 함이 어쩐 일이냐?” 하더라』(판 18:24).

재판관기 18장에서 단 지파는 시돈 부근으로 오라가서 페니키아의 바알 숭배자들 주위를 배회한다. 열왕기상에 보면 실제로 그들은 그 때 영광의 전성기에 있었다.

2. “단”이 요한계시록에서 빠져야 했던 분명한 이유

1) 【 29 유다의 아사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을 치리하기 시작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이십이 년 간 치리하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주의 목전에서 자기 앞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 더 악을 행하였더라.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을 행하는 것이 그에게는 마치 가벼운 것 같았으니 그가 시돈인들의 엣바알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가서 바알을 섬기고 그에게 경배하였으며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에 바알을 위하여 한 제단을 쌓았고 33 또 아합이 아세라를 만들었더라. 아합이 자기 앞에 있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더욱 격노케 하였더라.】(왕상 16:29-33)

이전에는 열 개 북쪽 지파 중 단 지파만 바알 숭배를 채택했던 것이 이 구절에 나타난 것처럼 그것은 모든 이스라엘에 확산된다. 이스라엘은 시돈의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과 결혼한 바알 숭배자 왕과 한 패가 된다. 바알 숭배는 성경 전체에서 경게하고 있다. 아합이 만든 “신당”을 주목하라. 이것은 신명기 16:21-22에서 금하였던 것이다. 이 바알 숭배의 특징은 특히 작은 조상(彫像)들을 숲가지들과 관목들 주변에 쌓아 두는 것이다.

2) 왕상 18장에서 바알 숭배의 다른 특징을 살펴보자.

㉠ 왕상 18:18에서 바알 선지자들인 “아버지”라고 불리는 검은 제의의 제사장들이 왕과 여왕과 밀접한 관게에 있음을 주목하라. 그들은 근본적으로 정치집단이다(반면 엘리야는 참된 선지자였을 뿐 당시의 정치세력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이렇게 바알 숭배자들은 왕, 여왕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제사장이 근본적으로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단지 “파멸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바알을 숭배하며(왕상 18:25)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참된 교회”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알은 “불의 신”으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태양신으로 일컬어진다. “바알”(Baal)의 영어 단어는 “황소”(Bull)이다.

열왕기상 18:16에서 바알 숭배자들의 숭배의식은 정오 12시까지 계속된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며 고해하고, 몸의 일부를 절단한다.(이것은 오늘날까지 필리핀, 스페인, 이태리에서 흔히 행해지고 있으며 마가복음 5:1-5의 귀신들린 자의 특징이기도 하다).

㉡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바알 숭배자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아버지”라 불리는 제사장들로서 일요일에 태양신을 정오 12시까지 숭배하며 “제의”라는 특별한 옷을 입는다(왕하 10:22).

『네게 응답해 줄 자가 있으면 지금 불러 보라. 네가 성도들 가운데 누구에게로 돌이키겠느냐?』(욥 5:1)

위의 구절은 고대 사람들이 이미 죽은 거룩한 자들에게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카톨릭신자들 또한 “거룩한 자들”에게 기도한다.

『 보라, 그분은 그의 성도들을 신뢰하지 아니하시나니 정녕, 하늘들도 그분 보시기에는 깨끗하지 아니하거늘,』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에게 전혀 신뢰를 두지 않으신다(15절). 이 성도들이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요한(마 16:23, 요 2:25)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성경 대신 성도들에게 신뢰를 두게 하거나, 성경 대신 정서적 경험에 신뢰를 두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항상 찾아볼 수 있다(고후 10:12). 이들은 성경적 사실을 다루는 대신 항상 어떤 사람이 추천한 거짓이나 어떤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에 호소한다. 『그분은 그의 성도들을 신뢰하지 아니하시나니』(15절). 주께서 바울을 신뢰하시고 그가 예루살렘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셨다면(행 21-27장) 분명히 실망하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겠는가?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의심하지 않고 복종하리라고 신뢰하셨다면(행 10:14) 분명히 주님은 낙담하셨을 것이다! 요나가 처음에 설교를 하리라고 주께서 신뢰하셨다면, 혹은 모세가 처음에 메시지를 바르게 전하리라고 신뢰하셨다면, 발라암이 메시지의 2/3를 전하리라고 신뢰하셨다면 주님은 분명히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으셨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처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나 사역을 위임하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100%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6장, 갈라디아서 5장에 시간을 좀 더 들여야 한다.

『하늘들도 그분 보시기에는 깨끗하지 아니하거늘』(15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창 1:1) 분은 케플러(Kepler, 1571-1630)나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 1543)가 돋보기 유리와 거울용 유리의 차이도 알지 못할 때 “먼지 구름,” “태양 점,” “검은 성운”에 대한 모든 것을 아셨다. 한편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셨을 때(창 1:8) “좋다”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하늘들에게 뭔가 더러운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엡 6:9-12).

3. 구약성경은 바알 숭배를 다루는 수 십개의 구절들을 담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되었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으로 해석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아무도 더 이상 구약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카톨릭”교회의 시작은 구약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1) 바알 의식은 예레미아 10:1-5에도 나타나 있다.

여기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수 있다.【 매 12월 25일에 선물을 주는 것은 물론 로마 교회의 의식인 “농신제”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그 해의 첫 수학을 기념하여 진탕 마시며 법석대는 의식이었다.】 드루이족은 크리스마스에 사용되는 나뭇가지를 들고 “히틀러 만세”나 “시이저를 환호하라”같은 “만세”를 외치고 “환호”를 불렀다. 성 프란시스는 1223년 첫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아일랜드의 한 카톨릭 주교로서 “성 니콜라스”로 명명되었던 “산트 클라스”(Sante Klass)는 12월 25일 경에 가난한 자들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이 날짜를 태양신 탄생일에 맞추기 위해 12월 25일로 옮겼다.

2) 이 바알 숭배는 남신 뿐만 아니라 여신도 포함한다.

예레미아 44:18,19,25에서 이 여신은 “하늘의 여왕”이라 불린다. 로마인들은 그녀를 비너스라 부른다. 희랍인들은 “다이아나”로 부른다. 페니키아인들은 “아스다롯”으로 부른다. 앗시리아인들은 “아스타르트”로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녀를 “미네르바”, “쥬노”, 또는 “허마”로 부르는데, 성경은 그녀를 “창녀”,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부른다(계 17장). 로마 “교황들”은 그녀를 “마리아”로 부르며 계시록 12:1,2의 여인과 동일시하는데, 사실상 그 여인은 전혀 마리아와는 상관이 없고, 단지 이스라엘인 것이다.

뉴욕 78공원가 벤싱어 형제회에서 1931년에 펴낸 로마 카톨릭 신부인 콘즈(A.B. Koonz)의 <마리아의 위엄>에서 저자는 32페이지에 “모든 은혜는 마리아가 베푸신다. 그녀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의 중보자이다. 죄인들은 오직 마리아의 중보로 용서받는다. 마리아의 명령에 모든 이가, 심지어 하나님까지 복종한다. 마리아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으며 그녀는 천국에 이르는 문이다.”라고 썼다(pp.169, 160, 83, 81). 그러나 마리아는 구세주가 필요했던 여인으로(눅 1:47) 제물을 드려야 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죄를 정결케 했던 여인일 뿐이다(눅 2:32).

3. 마치는 글

지금까지 단 지파가 계시록 7장의 환란 때에 인장으로 표시받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 보았다. 이제 그 명단을 다시 읽어보면, 단과 에브라임을 제외한 모든 지파가 다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셉이 에브라임을 대신하며, 레위가 단을 대신한다. 그러나 에스겔 37:15-17을 보면, 『15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16 너 인자야, 또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라고 쓰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막대기를 취하여 그 위에 “요셉, 즉 에프라임의 막대기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하여.”라고 써서 17 그들을 서로 결합하여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 그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이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리라는 것이고, 세분해서 보면 남쪽의 유다와 유다의 동반자인 북쪽의 이스라엘의 자손, 그리고 요셉 지파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 온 집, 외형상으로는 이렇게 모두 네 그룹이 모여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인데, 실제로 유다와 이스라엘 자손 및 별도의 그룹인 요셉 지파, 이렇게 세 그룹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11장을 살펴보면 11절에『그 날에는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남아 있는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켜 앗시리아와 이집트와 파드로스와 쿠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섬들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하시고, 그리고 16절에는 『남게 될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위해 앗시리아로부터 대로가 있게 하시리니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던 그 날에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과 같게 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의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아닌가! 멀지 않은 장래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명이 인장으로 표시를 받았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144.000명이 나온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계시록 7:4-8의 사람들이 기명된 문자적인 열두 지파인 144.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제칠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아니며 여호와의 증인들도 아니고, 말일성도들도 아니며 몰몬이나 그리스도인들도 아니다.

역대기하를 자세히 공부해 보면 오늘날 유대인들은 열 두 지파의 대표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하 11:5, 13-17, 35:17,18)-(참조 렘 3:18).



계7장에서 택한 백성의 수와 삽입장과 단 지파가 빠진 이유

<십사만사천과 셀 수 없는 무리>

계7장과 계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의 수가 하나님께서 인을 쳐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택한 받은 백성들의 수라는 것에는 예수 믿는 성도들 중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계7:4, 계14:1-3)

십사만 사천은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성령)을 맞아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다. 그리고 이들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배워 하나님을 찬양한다. 중요한 것은 십사만 사천은 땅에 살면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고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계14:3-5)

계7:4절에서 십사만 사천의 인 맞은 자와 계14:1절에서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과는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고후1:22절과 엡1: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인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지만 이 수가 택한 백성의 상징적인 수인지 문자 그대로 십사만 사천 명인지 묻는다면 누구도 쉽게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7:4절과 계14:1절과 3절에서 택함 받은 성도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성경 적으로 말할 때 분명히 십사만 사천 명이다. 이 십사만 사천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고(계20:15,계21:27),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자들이고 예복을 입은 자들이고(계19:9), 예수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사람들이고(계7:14), 계14:4-6절에 의하면 이들은 여자로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 정절이 있는 사람이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고,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고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갈 십사만 사천이 상징적이든 문자 적이든 이들의 신앙은 이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예수의 종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어놓기까지 한다(계6:9-11).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은 과연 상징적인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의 수인가? 문자 그대로 십사만 사천의 수인가? 계7:4절에 의하면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숫자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하나님께 인 맞은 자들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가 각 지파에 일만 이천 명씩 합해서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했는데(계7:5-8),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계7장에서의 십사만 사천은 구약의 택함 받은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7:9절에서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어린양을 찬양하고 있는데 여기서 셀 수 없는 무리는 누구라고 할 수 있는가? 흰옷을 입은 자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구원받은 자들이다.(계7:13-14) 문제는 계7:4절에서 구원받은 자가 십사만 사천 명과 계7:9절에서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이다.

십사만 사천 명과 셀 수 없는 무리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구약에서 하나님이 열두 지파를 선택하신 것은 야곱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신 언약 때문이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숫자이다. 그렇다면 십 사만 사천이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과 동일한 사람들인가? 동일하다면 왜 따로 분리해서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고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하는가? 한꺼번에 셀 수 없는 무리들이라고 하든지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든지 하지 않고 왜 나누어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도들을 설명하고 있는가?

계7장에서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무리들을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른가? 십사만 사천은 구약의 택함 받은 무리들이라고 할 수 있고, 셀 수 없는 무리는 계7:4-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 사천을 포함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무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십사만 사천은 구약적 표현으로서 계7:4-8절 말씀 그대로 열두 지파의 택한 받은 백성들이고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은 창15:5절에 나오는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는 차원에서 셀 수 없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이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수이다. 즉, 계7장에서의 구약에서의 택함 받은 수가 십사만 사천 문자 그대로의 수가 아니라 택함 받은 무리들의 수로 표현하여 상징적으로 십사만 사천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계7장의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를 동일하게 보는 관점도 있는데 여기서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제자를 곱하고 거기다가 천을 곱해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를 만드는데 의도는 좋지만, 계7장의 십사만 사천은 분명히 구약의 열두 지파에 속한 택함 받은 성도 일만 이천 명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가 구약의 성도와 동일한 인물들이라는 것은 성경 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14장에서의 십사만 사천도 구약의 이스라엘 택한 백성인가?

그렇지 않다. 계14장에서의 십사만 사천은 땅 위의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계21:11-17절에 보면 천사가 성곽을 척량 할 때 십사만 사천 규빗이 나오는데 이 십사만 사천 규빗의 의미는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구약 모든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천사가 성곽을 척량 하는 일은 계11장과 슥2장과 겔40장에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척량 하는 것이다.

그리고 롬11:25-26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나오는데 25절의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고 26절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포함한 새로운 이스라엘 즉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오신 후에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유대인을 구원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드린 제사도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히8:5-7,히9:9-10, 히10:4-5) 예수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고 예수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요14:6) 할례도 무 할례도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다(갈6:15) 그러므로 롬11:26절의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닌 예수 안에서 선택된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십사만 사천은 분명히 상징적인 수이기는 하지만 계7장에서의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와는 같은 무리들이 아니라 구별되었다고 볼 수 있고, 계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과 계21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 규빗은 땅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7장에서의 십사만 사천을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과 동일하게 보는 것을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십사만 사천이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라고 하는 간접적인 성경적 근거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동일한 택함 받은 백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고 해서 성경해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해석을 위해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좋기 때문에 계7장의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와 계14장에서의 십사만 사천을 구분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수와 같은 단어라고 해서 무조건 같지는 않다. 단어와 문자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십사만 사천이 시온 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다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무리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시온 산 즉 새 예루살렘에 서 있는 이유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는 이유는 현재 땅에서 고난 받고 있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의 결국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섯 천사의 등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 질 수 있다. 즉 승리한 십사만 사천의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 주기 위해 등장하는 천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땅 위에서 하나님 앞에서 왕과 제사장 노릇을 하는 자들만이 십사만 사천의 대열에 들어가 있는 택함 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삽입장>

어린양이 여섯째 인까지 떼고 난 이후에 일곱째 인을 떼셔야 하는데, 일곱째 인은 계8장에 나오고 일곱째 인을 떼기 전에 계7장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중간장 또는 삽입장이라고 한다. 삽입장은 계7장과 계10장과 계11장과 계12장과 계13장과 계14장이 삽입장인데 삽입장이 왜 들어가 있는가?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한꺼번에 나오고 삽입장 같은 것은 후렴부에 넣어도 되는데 왜 인과 나팔 중간 중간에 집어넣어 놓았는가?

계8:13절에 의하면 일곱째 나팔재앙인 대접 재앙은 세 번째 화로서 마지막 재앙이다. 그러나 첫째 화와 둘째 화는 일곱 나팔 재앙 중에서 다섯째 여섯째에 해당하는 재앙으로서 경고성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앙들은 가공할 만큼 엄청난 재앙들이다.

그러니까 여섯째 인 재앙부터 불신자들에게 내리는 큰 재앙들인데 중요한 것은 신자가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 강한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과 불신자들이 두렵지만 결국 그들이 멸망하고 재앙을 받는 것을 보여 주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신자가 승리한다는 확신과 믿음을 줌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 싸울 것을 당부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런 삽입장을 넣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신자의 위치와 믿음과 신분과 능력과 권세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계7:1-8절까지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먼저는 십사만 사천이 나오고 계7:9-12절까지는 구원받은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나오고 계7:13-17절까지는 이들이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서 승리하였고 마침내 영광에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계9장에서는 첫째 화와 둘째 화가 나오지만 그들의 결국은 불과 유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계10장에서는 바다와 땅을 밟고 있는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고

계11장에서는 두 증인 나오는데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남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12장에서는 용이 패배하는 모습이 나오고

계13장에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나오지만 계14장과 15장에서 승리한 성도들과 어린양을 보여주면서 성도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삽입장을 통하여 신자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됨의 확신 즉, 악한 마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마침내 승리한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죽어도 이기는 승리, 이것이 신자의 승리이다. 롬8:31절 이하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을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받을 재앙의 말씀들을 보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안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이다. 이것을 놓치면 엉뚱한데 가서 벌벌 떨고 있게 된다. 성령을 받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어 내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놓치는 순간 마귀는 달려든다. 그들의 멸망을 두려워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한은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구원 두 가지 환상을 동시에 보고 있다.

여러분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안다면 이제 악인의 멸망에 두려워하지 말고 신자의 마땅히 할 일에 대해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싸워 이겨 나가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단 지파와 에브라임 자파가 빠지고 요셉이 들어간 이유>

구약성경의 역사는 야곱의 열두 아들인 열두 지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두 지파는 구약성경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열두 지파의 형성과정은 일괄적이지 않고 수시로 변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창49장의 야곱의 열두 지파 예언 속에 있는 단 지파가 계7장에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은 택함 받은 십사만 사천의 무리 속에서는 빠져 있다 대신 요셉의 아들 므낫세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로 하나님께 선택됨에 따라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열두지파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창48:5-6,민3:12-13)

그렇다면 에브라임 지파가 계시록의 택함 받은 무리 속에서 빠지는 이유는 요셉이 다시 들어갔기 때문이다. 요셉은 두 아들 대신 빠졌다가 왜 다시 들어갔는가? 그리고 요셉이 들어갔는데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는 왜 빠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열두 지파의 형성과정의 역사는 창49장과 신33:22절에 있는 야곱과 모세의 예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언의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예언 성취는 빈틈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구약성경에 나타난 열두 지파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야곱은 개인적으로 자식들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영감으로 예언했기 때문이다(딤후3:16-16) 그러므로 말씀의 원칙에 의해 야곱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볼 수 있다.(민23:19)

야곱이 단에게 어떤 예언을 하였기에 요한 계시록에서 단 지파가 빠졌는가? 창49:16-18절에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신33:22절에서는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고 했다.

단 지파의 멸망 예언은 삿18:30절에서는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니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고 했다.

이러한 단 지파의 멸망 예언은 솔로몬 왕을 떠나 북쪽으로 열 지파를 이끌고 간 여로보암 왕이 단이라고 이름하는 곳에 두 금송아지 신상을 세워서 우상숭배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왕상12:28-30) 단이라고 이름하는 장소는 본래 라이스라는 곳인데 단 지파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했다.(삿18:29) 단에서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새긴 신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했다.(삿18:30) 이렇게 단이 야곱 예언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의 발꿈치를 물게 됨으로 열두 지파에서 탈락이 되는데 그 대신에 므낫세가 들어간다.

에브라임이 빠진 이유는 삿8:1절 이하에서 에브라임은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워 이기고 왔을 때 기도온에게 자기들을 싸움에 나갈 때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했었다. 그때 기드온이 시시한 우리들이 나가서 싸우는데 꼭 당신들과 같이 힘이 있는 사람들을 부를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기드온의 겸손 때문에 넘어갔다. 그러나 삿12장에서 입다가 암몬 자손들을 쳐부수고 돌아왔을 때 전쟁이 겁이나 나가지 않았던 자들이 기드온에게 했던 짓을 입다에게 하다가, 입다가 에브라임을 쳐서 에브라임을 므낫세 중에 있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삿12:4)

그러므로 요셉이 다시 열두 지파 대열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에브라임 대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두지파 형성과정은 행1장에서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가룟유다 대신 맛디아를 넣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심어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언약의 말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2지파의 영광과 수치- 잃어버린 10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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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 관련 질문이나 코멘트는 [email protected]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I am a diligent student of the Word. Please reach out to me with any bible related questions or comments via the email address above View more posts

[Q&A] 요한 계시록 7장에서 12지파를 소개할 때 ‘단’ 지파가 빠진 이유는?

질문: 요한계시록 7장에서 열두 지파를 설명하면서 ‘단’지파가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인 맞은 자들인 십사만 사천을 지파 별로 나누어 소개 하는데, 특이한 것은 장자인 르우벤 지파부터 나오지 않고, 유다 지파부터 소개 되며, 단 지파가 빠져 있고, 에브라임 지파 대신에 요셉 지파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첫번째 질문인 장자 르우벤 지파 대신에 유다 지파가 맨 먼저 등장한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육적인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메시야 계보 중심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유다 지파를 맨 먼저 기록한 것은 더 올바른 순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민 2:3; 34:19; 수 21:4; 대상 12:23-37 등에서는 유다 지파를 맨 먼저 나열되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야를 중심으로 계보를 보는 것입니다.

두번째 질문인 단 지파가 빠진 이유도 영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 볼 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지파에 대해서는 창 49장에 이렇게 예언 되어 있습니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창 49:17)

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길의 뱀’이 의미하는 바는, 단 지파를 통해서 사단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단 지파는 자기를 위하여 신상을 세우고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삿 18:31)

그래서 단 지파는 저주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14만 4천명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후 3년 반 동안에 감람산으로 도망가는 무리 중에는 포함될 것입니다. 에스겔의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보면 단 지파도 새 땅을 분배 받는다고 되어있기 때문입니다(겔 48장).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단 지파를 뺀 이유는 단 지파 자체를 영원한 형벌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영적 계보, 즉 이스라엘의 온전한 구원을 의미하는 12지파 전체를 선포하기 위해서 11지파도 아니고, 13지파도 아닌, 12지파로 표기를 했어야 했고, 그에 따라 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셉을 한 지파의 족장으로 생각하고 에브라임 대신에 요셉을 넣었던 것입니다. 즉, 에브라임은 요셉의 후손으로 표기된 적이 있음을 볼 때(민 1:32-34) 에브라임 지파를 나타내는 또 다른 형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들을 12지파에 넣은 것은 요셉의 참된 섬김과 인내, 헌신이 그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 즉 12지파에 해당하는 신약의 12제자(사도), 그 제자(사도)들에 의해서 시작되는 교회의 완전성을 설명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본문에서 단 지파가 빠진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앤아버 소망교회 / www.aahope.net / 배헌석 목사 / [email protected] / twitter:@hunsukbae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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