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 *성경진리* 낙태는 자유?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소돔죄, 유아 대학살, 언약의 씨앗 구원 상위 288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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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에 대한 찬반이 크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낙태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살펴 보았습니다.
* 왕의 대로King’s Highway 사역 후원 *
한국/ 예금주(김정환), 국민은행, 371101-04-082927
미국/ Jeong Hwan Kim, Bank of America,
Routing Number: 121000358
Account Number: 000797620295
– 참조: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2975
https://ko.wikipedia.org/wiki/%EB%A1%9C_%EB%8C%80_%EC%9B%A8%EC%9D%B4%EB%93%9C_%EC%82%AC%EA%B1%B4
– 왕의 대로 King’s Highway 미니스트리는 End Time과 히브리 관점 성경 강해, 이스라엘 신학 연구, 이스라엘 현지 투어 등의 사역으로 왕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역 단체입니다.
– 비전 트립과 강의와 집회에 대한 문의:
김정환John Kim 목사(버지니아 사랑과 진리 교회, 왕의 대로 미니스트리)
이메일: [email protected]
카톡 ID: newgalilean
미국 전화: 1-626-200-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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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낙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 GotQuestions.org

그러나 성경에는 낙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수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태에 짓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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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5/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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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관점에서 본 낙태 – 뉴스윈 코리아

만일 낙태가 성경적 관점에 어긋나는 죄라면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 이 표현 안에 영혼이 신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작점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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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winkorea.com

Date Published: 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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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낙태를 벌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 한국일보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죄’라는 주장이 성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전했다. 오늘날 임신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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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kookilbo.com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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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 마가의 다락방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 의학적인 정의의 변화 ·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 · 1. 성경은 이미 임신 초기에 있는 여자를 아이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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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ateredgarden.tistory.com

Date Published: 5/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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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관련 경험 있는데… “회개하고 생명 교육의 길로 나아가라”

그러나 기독교 성가치관 훈육을 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낙태가 성경적 관점에서 명백히 죄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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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3/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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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성경적 과학적 고찰 | 갓피플몰

신성자 | 도서출판 그리심 | ○ 인간 생명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태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서 볼 때 한국교회와 신학이 낙태에 대해 무관심해 왔을 뿐 아니라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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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godpeople.com

Date Published: 5/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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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윤리적 고찰 -기독교적 관점에서- – RISS

그리고 낙태 찬성자들이 제시하는 성경의 근거로 폰 라드. (Gerhard Von Rad)가 주장하는 신적 생명력이 질료적인 신체에 들어감. 으로 비로소 인격화되고 개별화되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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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mgsvr.riss4u.net

Date Published: 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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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낙태죄 폐지했지만 하나님은 “낙태가 죄”라고 하신다

낙태에 대한 성경적 입장. 성경적 가르침에 따르면 낙태는 태아를 떼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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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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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와 낙태의 성경적 관점에 대한 성명서

성경은 하나님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신다고 말하며, 장래의 부모, 의료인, 교회, 모든 신자에게 믿음, 교리, 윤리적 행동, 생활 방식에 대한 지침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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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dventistworld.kr

Date Published: 4/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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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무엇인가? – 매일일보

이전 특강에는 공지 이틀 만에 정원의 80%(28명)가 등록했다. 이 소장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지식의 목마름이 큰 것 같다”며 “신학이 무너지면 신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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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i.kr

Date Published: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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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진리* 낙태는 자유?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소돔죄, 유아 대학살, 언약의 씨앗 구원
*성경진리* 낙태는 자유?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소돔죄, 유아 대학살, 언약의 씨앗 구원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 Author: 왕의대로Jeong H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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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eG_zciqJUU

성경은 낙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질문

성경은 낙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답변

성경은 낙태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낙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수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태에 짓기 전부터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139장 13-16절은 우리를 지으시고 태에서 만드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할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21장 22-25절은 태내에 있는 아기의 죽음을 초래한 자는 살인한 자와 똑같은 처벌, 곧 죽음을 지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태내에 있는 아기를 다 성장한 사람으로 간주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창 1:26-27; 9:6)기독교인의 낙태에 대해 항상 제기되는 첫 번째 반박은, “강간 및 근친상간의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 입니다. 강간 및 근친상간의 결과로서 임신한 것이 끔찍하기 때문에 그 해결로서 아기를 죽이는 것이 답이 되겠습니까? 죄를 덮기 위한 죄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강간 및 근친상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가정에 입양될 수도 있고, 또는 아이의 어머니에 의해 양육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면, 아기는 전혀 죄가 없으며 아이 아버지의 악한 행위 때문에 처벌을 받아서는 안됩니다.낙태에 대한 기독교인 입장에 반대하는 두 번째 반박은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낙태에 대한 문제를 답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첫째, 이런 상황은 오늘날 세계에서 행해지는 낙태의 1%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경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훨씬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낙태를 하기보다는 편의상 낙태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상황에 반하는 모든 의료적 역경이 있다 할지라도 어머니와 아이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으십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오직 남편, 아내,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서 결정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접한 어느 부부라도 주께서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지혜를 구하는(약 1:5)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오늘날 수행되는 낙태의 95% 이상이 단지 아기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강간, 근친상간, 또는 임산부 건강의 위험하기 때문에 낙태를 하는 경우는 5% 미만입니다. 이러한 5%의 경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태가 결코 첫 번째 선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태내에 있는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합니다.낙태의 경험이 있는 분들은 기억하십시오. 낙태는, 다른 죄들과 마찬가지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모든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요 3:16; 롬 8:1; 골 1:14). 낙태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나, 낙태를 권한 남성, 심지어 낙태를 시술한 의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본 낙태

이 상 원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형법에 잔존해 있던 낙태죄 처벌조항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올라가고 이 청원에 대하여 청와대가 입장표명을 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낙태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형법은 제269조에서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하위법률인 모자보건법은 광범위하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낙태를 행할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제14조).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는 첫째로, 낙태 허용기간을 임신한 날로부터 28주일 이내에 있는 자에 한하여 낙태를 시행할 수 있다고 특정하고 있으며(제1항),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으로서 유전성 정신분열증,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혈우병,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현저한 질환을 특정하고 있으며(제2항), 전염성 질환으로서는 풍진, 수두, 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 등을 특정하고 있다(제3항). 결국 낙태죄 폐지청원은 하위법률에 맞추어서 상위 법률을 개정하고자 하는 시도다.

기독교인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 기독교인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낙태가 기독교윤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당한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만일 낙태가 성경적 관점에 어긋나는 죄라면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낙태가 죄가 아니라면 낙태죄 폐지에 동의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낙태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바로미터는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낙태를 살인죄로 판단하는 바, 그 이유는 기독교생명윤리는 수정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영혼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 생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생물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인간의 시작점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a.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시작되는 조건은 자양분이 공급되는 경우에 자기복제와 단백질생성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수정란이 형성되는 바로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수정란이 형성되기 이전에 정자가 정자 혼자 있을 때, 그리고 난자가 난자 혼자 있을 때는 이 두 가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정란은 자양분만 공급되면 자기복제와 단백질생성을 시작한다.

b.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한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결정하는 유전자 구성이 완성되는 시점이 바로 수정란이 형성되는 시점이다.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형성된 유전자 구성은 향후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연속적으로 지속된다.

c. 인간으로서 출발한다는 말은 영혼이 신체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없이 신체만 가지고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영혼이 수정란 형성 시점에 신체 안에 들어온다는 생각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성경은 잉태의 시점부터 출산할 때까지의 전 기간에 걸쳐서 자궁 속에 있는 태아를 이 기간 중의 어떤 특정한 시점도 명시하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인격체로 다룬다.

성경은 특별히 자궁 속에 있는 태아를 인칭대명사인 “나” 또는 “너”로 호칭함으로써 자궁 속의 태아가 영혼을 가진 인격체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욥은 태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나”라고 호칭하고 있으며(욥 31:15), 이사야도 자궁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너”라고 호칭한다(사 44:24).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궁 속에 있는 예레미야 자신을 하나님이 구별하셔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는데(렘 1:5), 태 안의 예레미야가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구별한다든지, 선지자로 세운다는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영혼이 신체 안에 들어오는 시점

호세아서 12장 3절에 보면 태중에 있는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자궁 속에 있는 야곱이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면 야곱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누가복음 1장 15절을 읽으면 자궁 속의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자궁 속의 세례요한이 영혼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가 있을까? 또한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가 문안차 찾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세례요한이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되어 있는데(눅 1:41),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가 아니면 이런 반응을 보일 수가 없다.

그 밖에도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아이”라고 호칭한다든지(눅 1:41,44), 예수님을 가리켜서 “구주”라고 호칭한다는 것(눅 1:46,47)은 태중의 세례요한이나 아기 예수가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임을 지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문은 다윗이 자궁 속의 자기 자신을 묘사한 본문들인 시편 51편 5절과 시편 139편 13절 말씀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이 두 본문에서 다윗은 “잉태 → 장부지음/조직 → 출생”까지의 전 과정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나”로 호칭함으로써 태아 자신이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임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잉태”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 안에 영혼이 신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작점에 대한 실마리가 있다. 히브리원어로 “잉태”는 “성교를 갖다”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신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수정란의 형성시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자궁 속에 “내”가 존재하기 시작하는 시점인 “성교를 갖다”는 표현과 수정란 형성 시점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수정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때 형성되며,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 위한 선결조건은 남성이 사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남자가 사정을 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성교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교 시에 사정된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시점은 각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아무리 빨리 만난다 하더라도 성교를 갖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교를 갖는 시점”인 잉태의 시점은 가장 빨리 수정란이 형성되는 시점까지를 확실하게 포괄한다. 곧 시편은 수정란이 형성되는 모든 시점을 그 안에 다 포괄한다. 따라서 이 두 본문에 근거하여 수정란이 형성되는 시점에 영혼이 들어와서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인 “나”로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결론은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본문을 통하여 수정란이 형성되는 다양한 시점들 가운데 어느 한 시점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시면서 “잉태”의 시점부터 영혼을 가진 인격적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성경적 근거에 의거하여 안전하게 수정란이 형성되는 바로 그 시점부터 인간은 영혼을 가진 살아 움직이는 인격적 주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d. 어떤 사람들은 수정란은 인간으로 봐주기에는 너무 작지 않느냐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은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원래 크다든지, 작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수정란에 비 교해 볼 때 성인의 몸은 어마어마하게 큰 실체다. 그러나 성인의 몸은 지구에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미세한 존재일 뿐이다. 비행기를 타고 1킬로미터만 올라가도 인간은 아예 보이지 조차 않는다.

수정란이 성인에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미세한 존재이지만, 수정란 안에 있는 핵, 그 핵 안에 인이 들어 있고 인과 핵막 사이의 작은 공간에 실타래처럼 꼬인 모습으로 들어 있는 염색체 안에는 5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 5000권에 해당하는 30억 개 가량의 엄청난 분량의 유전인자(nucleotide)들이 들어 있으며, 이 유전인자들 안에 성인의 신체구성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다.

이 유전자들의 세계는 이미 하나의 소우주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크다거나 작다는 개념은 그다지 중요한 개념들이 아니다.

e.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실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데도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그렇다. 유실여부가 인간이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자궁에 착상된 후에도 유산되는 태아들이 많다. 유실여부에 근거하여 인간여부를 따진다면 한해 200만 건이나 되는 낙태에 의하여 유실되는 태아들은 모두 인간이 아닌가?

출산 후에 죽은 신생아도 있고, 성인이 된 후에 전쟁, 교통사고, 질병 등으로 죽어서 유실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만일 유실 여부가 인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인간이 아닌 존재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것은 말이 안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영혼을 가진 인간의 일생이 시작된다.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인간임을 전제하는 이상 모든 형태의 낙태는 살인행위이며, 낙태가 합법화되는 경우는 생명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뿐이다.

예컨대 자궁 외 임신의 경우는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임신3개월이 되면 난관이 터져 태아는 어차피 죽게 되고 임산부는 복부출혈 때문에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는 임산부를 살리기 위하여 낙태시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치명적인 자궁암이 발병되었을 경우에 자궁암을 그대로 두고 출산을 시도하면 태아는 살릴 수 있으나 임산부는 죽을 가능성이 있고, 자궁암 수술을 하는 경우에는 임산부는 살릴 수 있으나 태아는 죽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 태아의 생명과 임산부의 생명 중에서 불가피하게 어느 한 생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행복추구권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낙태가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은 낙태허용사유가 될 수 없다. 이런 사유들로 인하여 임신이 되는 경우에 태아에게는 아무런 도덕적인 잘못이 없으며, 태아도 보호받아야 할 희생자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아무 잘못도 없는 아기에게 벌을 뒤집어씌움으로써 또 하나의 악을 첨가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임산부가 아이를 키우기를 부담스러워 한다면 입양을 보내는 방법 등을 통해서라도 아기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정하는 것은 곤경에 처한 아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거룩한 사랑의 실천이다.

산전 진단 등을 통하여 태아가 기형아임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오진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형아임이 틀림없다 하더라도 기형아를 인간으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낙태는 허용될 수 없다. 기형아를 포함한 모든 아기들은 살아 있기를 원한다. 기형아가 불행할 것이며, 죽고 싶어 할 것이라는 판단은 기형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낙태를 원하는 자,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이때 낙태를 원하는 자는 만일 자신이 기형을 가진 태아라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가 임신했을 경우에도 낙태는 허용될 수 없다. 덜 자란 아이일수록 자궁경부를 팽창시키기가 더 어려우며, 자궁이 손상 받을 경우에 자궁이 무기력해져서 불임의 원인이 된다. 자라고 있는 아이의 경우에는 뼈대가 부드러워 골반이 성장한 여성 보다 산고를 더 잘 견딜 수 있다.

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을 사전에 예방하고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피임법이 있다.

로마 카톨릭교에서는 피임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법적인 질서를 거스른다고 보고 자연적 주기법을 이용하는 피임법 이외의 모든 피임법을 부당한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세기 1장 28절 말씀에 근거하여 피임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도 훌륭한 신앙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정복하고 경작해야 할 땅은 무한히 널려 있고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 뿐인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고, 오늘날은 이미 인구가 온 지구상에 충만하고 넘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적절한 선에서 자녀를 가진 후에 책임 있는 태도로 피임이라는 방편을 사용한다고 해서 비신앙적인 태도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성교 직후에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은 수정란에 손상을 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낙태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되고 따라서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피임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낙태건수 중에서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부낙태의 경우는 남성이 받는 간단한 정관수술로 쉽게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경은 ‘낙태를 벌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 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린 이후 남자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친구의 부탁으로 들어선 낡은 수술실은 유난히 추워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김신애 목사(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게 ‘낙태’는 이처럼 서늘한 기억이다. 의지할 곳 하나 없던 그 날의 냉기를 아직도 기억하는 김 목사는 “종교의 이름으로 성경을 들이대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건 교회의 수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임신 자체만으로 삶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교회가 나서 여성을 핍박할 순 없다”라고 강조했다.

혼자만의 주장은 아니다. 김 목사와 김하나 섬돌향린교회 전도사, 대한성공회 노승훈·자캐오(민김종훈) 신부, 개신교 신자인 ‘믿는 페미’ 활동가 달밤 등이 함께하는 ‘성과 재생산 크리스천 포럼(성과재생산포럼)’은 신앙의 언어로 낙태죄 없는 세상을 그리는 유별난 이들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성과재생산포럼 회원들은 통념과 달리 한국 교회에 임신 중단을 죄악시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교회의 낙태 반대 목소리는 일부일 뿐 ”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고 있어요. 기독교에서 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보수 성향을 지닌 남성 어른이죠. 그러나 실제로 교회를 이루고 있는 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여성들도 많고요. 과연 그들이 삶 속에서 낙태를 반드시 반대할까요.” (달밤 활동가)

“사실 교인들은 그동안 낙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공론화 과정은 당연히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는 반대해야 할 것 같은데, 교회 밖으로 나가면 나 자신, 혹은 주위의 일이니 무조건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는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김하나 전도사)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죄’라는 주장이 성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전했다. 오늘날 임신중단(낙태) 반대의 근거로 주로 읽히는 성서 구절은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1:28)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국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는 적게 낳아 잘 키우며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번성이라고 가르쳤고, 출산이 장려될 시기에는 많이 낳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 전달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낙태에 관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아요. 그렇기에 성서가 일관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비춰 이 문제를 봐야 하는 거죠. 성서는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른바 정상 가정에서 벗어난 존재를 처벌하는데 강력하게 반대하는 거죠. 그런데 왜 임신 중단을 하게 된 여성들만 교회에서 내쫓겨야 하나요.” (김신애 목사)

“종교 규범으로서의 성서와 사회의 법에 대한 논의는 다른 층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성서를 인용한다면 안에 담긴 정신을 이야기해야죠. 억울한 자를 억울하지 않게 하옵시고, 묶인 자를 풀어주시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가는 게 진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정신을 따르는 게 중요하지 성서의 구절을 현행법에 적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승훈 신부)

“우리 중 누구도 ‘낙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과재생산포럼은 정부가 임신 주 수와 사유에 따라 낙태죄를 존치하는 입법 예고안을 내놓은 올해 10월 청와대 앞에서 이를 전면 폐지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 안에서 임신 중단은 입에 담는 것조차 터부시되는 일이다. 아예 존재를 지워버리는 일도 흔하다. “현장에서 청년들과 관련 토론을 시도했는데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 왜 이 얘기를 해야 하느냐, 입에 담기도 싫다는 저항감이 느껴졌어요.” (노승훈 신부)

“낙태를 설명하는 기독교적 언어가 우리에게 전혀 없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정책이나 법으로서의 임신 중단은 배우거나 말할 수 있는 게 많은데 교회의 언어로는 낙태에 대해서 이야기해본 적도 없는 거죠. 여성들의 경험, 맞닥뜨리는 삶에 대해서는 교회가 말하지 않아 왔다고 깨닫게 됐죠.” (김신애 목사)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월경이 늦어지면 혹시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일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여성의 ‘사소한’ 경험은 그 상대자인 남성에게까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자캐오 신부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의 어머니 역시도 임신중단을 고민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젊은 나이에 이혼한 어머니가 결국 저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후에 겪게 된 일들···. 저는 어머니의 꿈과 수많은 것들을 밟고 일어서서 살아가던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머니께 ‘만약 저를 낳지 못하고 낙태하셨어도 다른 식으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을 거다, 그게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죠.” (자캐오 신부)

“처녀가 애를 가져서 낙태를 한다는 프레임이 있지만 실제로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여성들이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여성들도 그냥 교회 다 다니고 있거든요.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여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처음부터 임신 중단에 대해서는 죄책감부터 느끼게하는 분위기가 있죠.” (달밤 활동가)

“낙태죄 폐지, 그 이후가 중요”

헌재의 결정으로 새해부터 낙태죄는 자동 폐지된다. 국회는 올해 안에 대체 입법에 나설 계획이 없다. 임신 중단이 더 이상 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그 새로운 세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입법 공백 속에서 낙태는 죄가 아니게 됐지만,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정책 또한 공백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성도 생명이잖아요. 저도 과거 20대에 친구를 위해 임신중단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마치 쥐가 궁지에 몰린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으로 종교가 여성들을 몰아가고 있는 것은 생명 존중이라고 할 수 없죠.” (김하나 전도사)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해 책임질 의지가 없는 정부나 사회가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여성과 태아를 대립 구도에 놓는 것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종교는 과학이나 의학적 사실과 더불어 세상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을 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임신 중단을 생각할 때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들이 더 안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자캐오 신부)

“사실 지금쯤이면 임신 중단 시술에 보험 적용 여부를 의논해도 늦은 시점이죠. 낙태죄 폐지 이후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었어야 하는 세상을 되찾아 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한국 여성들의 당연한 권리와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또 이 권리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게끔 만들어 두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김신애 목사)

전혼잎 기자 [email protected]

이은기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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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률에서 낙태라는 용어는 유산을 조장하는 범죄임을 암시하였다. 낙태 시술자는 낙태죄를 시행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낙태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말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죽이는 합법적인 시술로 즉각 떠오른다. 요구에 의한 낙태가 합법화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여전히 부도덕한 것이며 죄이다.

의학적인 정의의 변화

친 태주의자들은 요구에 따라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그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낙태시술을 묘사할 때 그 시술이 흉하지 않게 보이는 표현을 채용하였다.

에버트 쿱(Everett Koop) 박사는 미국 공중 위생국 장관이다. 그가 펜실베니아 어린이 병원 의과 과장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의과대학 소아과 및 소아외과 교수로 있을 때 “한 인간으로서 낙태가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한 살인이라고 알았던 우리는 ‘수태의 산물’이나 ‘태아’의 파괴가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죽이는 것과 같지 않다고 믿도록 세뇌되었다. 전통적인 의학적 정의는 낙태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불쾌감을 없애기 위하여 신중하게 변질 되었다.ⓐ 고 썼다.

친 낙태주의자들은 낙태과정을 임신을 종결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궁의 내용물을 제거하는 것” 혹은 “임신부 생식력 내용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출생 전에 사람의 기관을 갖추고 있고 살아 있을 때에도 “잠정적인 인간 생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서 새로운 살아있는 인간을 형성하기 전에만 잠정적인 것이다.

크리스찬은 부정확하고 거짓된 의학용어에 의해서 속아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신자들은 반드시 성경적 원리의 가르침에 의해서 인도받아야 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

어떤 사람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자궁 밖에서 생명을 지속할 수 있기 전에 행하는 낙태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성경 생명의 과정에서 그러한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 “생존할 수 있는 태아”라는 용어가 과학적인 사실로서 생명이 자궁 밖에서 지속될 수 잇는 시간을 적절하게 지시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생명이 그 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시켜 주지는 못한다. 초기 단계에 행하는 합법적이라고 선언되었기 때문에 초기에 낙태를 하도록 유혹을 받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성경적인 진리를 고려함으로써 도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성경은 이미 임신 초기에 있는 여자를 아이와 함께 있다고 인정한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로 선택되었을 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는 말이 드려왔다.(눅 1:31) 그리고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의 사촌 엘리사벳도 임신하였다고 알려 주었다.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눅 1:36) 여기서 사용된 말을 보면 성경은 태어나기 3 개월 전임에도 불구하고 태중에 있는 세례 요한을 아들로 이정하였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눅 1:41,44 에서 요한은 출생 전에 아이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은 출생 전과 출생 후의 아이에 대한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다.(행 7:19) 마리아가 아들을 배었다는 말은 마리아가 비록 임친 초기에 있지만 예수를 아들로 인정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성경은 항상 출생하기 전의 생명의 상태를 의미없는 수태의 산물로서가 아닌 한 아이의 생명으로 이정한다. 거기에서 태어난 아이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 사이의 생명에 대한 가치의 구분이 없다.

성경 시대의 임신이 불법적인 관계에 의한 것일 경우일지라도 그 생명에 대한 가치는 의문시 되지 않았다. 롯의 딸들은 근친상간에 의해서 임신되었지만(창 19:36) 이것은 낙태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밧세바는 간음에 의해서 임신된 것을 알았지만(삼하 11:5) 이것을 여자의 자궁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단순한 부가물의 골칫거리로 보지 않았다.

요한 칼빈은 출 21:22,23 에 대한 주해에서 낙태에 대하여 매우 의미있는 관찰을 하였다. “태아는 비록 어미의 자궁 안에 싸여 있지만 이미 인간이다. 그리고 그 태아가 즐기기를 시작도 아니한 생명을 빼앗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사람의 집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에서 죽이는 것보다 자기의 집 안에서 죽이는 것이 더 끔찍한 일이라면 태아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자궁 안에서 죽이는 것은 확실히 더 잔악한 일로 생각된다.”ⓑ

2. 성경은 하나님이 새 생명을 형성하는 창조적인 과정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인정한다. 임신을 유산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을 유산시키는 것이다.

야곱의 아내인 레아에 관하여 성경은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창 29:31,32)라고 가르키고 있다.

욥이 자신을 그의 종들과 비교할 때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배 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욥 31:15) 하나님의 공정성을 지적할 때 욥은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욥 34:19)고 말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리로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사 44:2)고 기록했다. 그리고 또 다시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사44:24)고 하였다.

다윗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우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기록이 다 되었나이다.(시 139:13-16)라고 기록하여 그것을 잘 요약하였다.

시 139-13-16 에 관하여 슈메이커(Donald Shoemaker)는 “이 구절은 탄생하지 않은 생명에 대한 거룩한 경고와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것을 볼 때에 우리는 경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신적 기원에 대한 이와같은 존경심을 친 낙태주의자들 가운데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의 것은 복스러운 창조자의 창조물을 훼방하고 파괴하려고 하나님의 실험실로 뛰어든 부정한 침입이다. 하나님은 태아를 사랑하신다. 이 시편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잊지 못하게 할 것이다.” ⓒ

사람들이 출생한 후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은 또한 출생 전에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또한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출생과정에서 창조적으로 활동하신다. 그리고 임신을 종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다. 낙태는 전능자에 대한 악한 사람의 반항이다. 그것은 한 사회의 타락한 정도에 대한 표시이다.

3. 성경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대한 계획을 하나님이 갖고 계심을 인정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새 생명의 잠재력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그의 예언사역으로 부르셨을 때 그 구별이 그가 탄생하기 전이었음을 지적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제사장 스가랴가 향단에서 심기로 있었을 때 한 천사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요한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아이에 대하여 분명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보여주셨다. 요한은 예수의 앞길을 준비하는 자가 될 예정이었다.(눅 1:11-17)

태어나지 아니한 아이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그 생명에 대하여 하나님이 갖고 계신 계획을 극악무도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태어나지 아니한 인간에게서 하나님 계획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선택의 특권을 빼앗는 것이다.

4. 성경은 하나님의 태어나지 아니한 아이의 생명의 가치를 포함한 모든 것의 주권

자임을 인정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할 때 결국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상대적으로 만든다. 어떤 생명은 가치가 있고 어떤 생명은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5. 관심있는 크리스찬들은 낙태를 했거나 낙태하는 일에 참여했던 일 때문에 무거운 후회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주 안에서 강한 자들의 기도와 도덕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 C. Everett Koop, “A Physician Looks at Abortion, in Thou Shall Not Kill,

ed. Richard L. Ganz (New York: Cor 주 Publishiers, Inc., 1978)

ⓑ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our Last Books of Moses, Trans,

Charies Willian Bingham, 4 vols, (Grnad Rd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50) 3:42

ⓒ Donald Shoemaker, Abortion, the Bible and the Christian (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76)

ⓓ Frnacis Schaeffer and C. Everett Koop, 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d Race? (Old Tappan, NJ:Flemming H. Revell co., 1979)

ⓔ Thomans J. Bliley. Jr., of Vlirginia, Congressional Rdcords, Extension of

Remarks (Washington, D, C., House of Representative, July 25 1987)

낙태 관련 경험 있는데… “회개하고 생명 교육의 길로 나아가라”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가 26일 대전 금산장로교회에서 열린 ‘대전 CE(전국기독청장년면려회) 평등법 반대 세미나’에서 종교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평등법안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 소재 교회에서 열린 학부모 대상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10대 자녀들에게 낙태가 죄라는 사실을 말해본 적이 있습니까.” 단 한 번도 그런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는 부모가 90% 이상이었다.기독 양육자들이 성가치관 교육을 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주제중 하나가 바로 ‘낙태’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양육자 스스로 낙태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 통찰이 부족하거나 낙태의 문제점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또한 이미 자신이 낙태한 경험이 있거나 낙태하라고 허락·종용을 한 경험이 있거나, 낙태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 경험이 있어서 낙태 교육을 하기가 어렵다는 양육자가 많다. 특히 60대 이상의 어르신 세대에선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아제한 정책의 주요 방법이 낙태였기에 낙태죄를 교회에서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그러나 기독교 성가치관 훈육을 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낙태가 성경적 관점에서 명백히 죄라는 사실이다.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보호할 것을 명하셨다. 즉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살인자는 사형으로 다스리게 하시기도 했다.(창 9:6, 출 20:13) 야고보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저주하지도 말 것을 명하고 있다.(약 3:9) 이런 말씀만으로도 살인이 죄라는 내용을 자녀들에게 교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그다음 과정에서 많은 양육자가 혼돈을 겪는다. 바로 태아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라고 교육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태아는 아직 온전한 인간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의심이 기독 양육자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인간이 수정 당시부터 인간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마술적 순간을 지나 생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수정란이 어떻게 생명체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다.모든 분별의 기준은 세상의 허탄한 논리들이 아니다. 선악의 분별 기준이 온전한 성경 말씀임을 고백하는 기독교인이라면 태아가 사람인가 단순한 폴립 덩어리같은 세포조직인가 하는 것에 대한 분별 역시 성경에서 얻어야 한다.기독 양육자들은 자녀와 함께 성경을 펼쳐 놓고 태아를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 44:2)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시 71:6)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15)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모태에 지음 받을 당시부터 생명이며 사람임을 말씀하는 성경 구절이다. 일부는 성경에 있는 이런 표현이 그저 메타포일 뿐이기에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은유라고 하기엔 성경에서 너무나 많은 구절이 인간이 태중에서부터 생명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모태를 벗어나는 시점 즉 출생 시점부터 생명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된 때 모태에 조성된 그때부터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결국 살인은 죄라는 사실과 태아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합한다면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의 일종이며 명백한 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낙태가 살인 행위임을 명백하게 인식한 상황에서도 많은 기독교인은 낙태가 죄임을 자녀에게 교육하기 어려움을 호소한다. 바로 본인이 ’낙태 행위 관련자’라는 이유를 들며 고심하고 있다.보건사회연구소가 발표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임신을 경험한 여성의 약 20%가 낙태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는 15~44세 기혼여성의 44%가 한 번 이상 낙태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도 가족보건복지협의회 조사에서 나타난 기혼 여성의 낙태 경험률은 39%에 이른다. 여기에 낙태 시술의 30%를 차지하는 미혼 여성까지 고려하면 전체 가임여성의 낙태건수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일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그러나 양육자 자신이 과거에 낙태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생명주의 교육을 포기한다면 이는 또 다른 과오를 범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온전하기에 양육자로 세움 받은 것이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양육자로 세워진 것이다.회개할 낙태죄가 있다면 하나님께 자백하고 온전히 돌이켜 용서함 받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사람의 생명을 천하 만물보다 귀하게 여기도록 교육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무엇인가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그 문제를 해결하며 바른 생명 교육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대표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무엇인가?

이상원 교수 ‘프란시스 쉐퍼 특강’ 통해 해답 제시

“눈 앞을 가린 안개 걷히는 시간 될 것”

10월 16일 시작해 매달 주제별 특강 진행

[매일일보 송상원 기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이명진)에서 이상원 교수의 ‘프란시스 쉐퍼 특강’을 진행한다. 이번 특강은 낙태와 안락사, 동성애 문제 등에 기독교인들이 제대로 알고 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특강은 10월 16일 시작돼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총 5차례 진행되며 온라인 강의와 병행해 진행된다.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만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AREX4)에서 대면강의를 한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월 16일 제1강 ‘프란시스 쉐퍼 약전: 사상과 실천이 함께 하는 삶’ △11월 20일 제2강 ‘프란시스 쉐퍼의 서구 지성사 분석과 기독교 철학’ △12월 18일 제3강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윤리 사상과 교회관’ △2022년 1월 15일 제4강 ‘프란시스 쉐퍼의 정치관과 환경윤리’ △2022년 2월 19일 제5강 ‘낸시 피어시: 프란시스 쉐퍼의 현대적 적용’.

이번 특강을 기획한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지난해에도 이상원 교수를 초빙해 4강에 걸쳐 기독교 생명윤리 특강을 진행한 바 있다. 올해 초 진행된 ‘프란시스 쉐퍼 2기 특강’부터 범위를 넓혀 정치, 사회, 경제, 철학, 신학, 윤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란시스 쉐퍼를 통해 답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전 특강에는 공지 이틀 만에 정원의 80%(28명)가 등록했다. 이 소장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지식의 목마름이 큰 것 같다”며 “신학이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는 사회현상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절감하고 있다. 어둡고 혼돈된 대한민국과 교회에 빛이 되고, 눈앞을 가린 안개가 걷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특강 주강사인 이상원 교수는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5월 총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서 동성애 문제점에 대해 강의하다 해임된 이 교수는 올해 8월 29일 복직 소송에서 승소했다.

강의 내용은 이상원 교수의 저작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이 책자로 출판되어, 수강자들에게는 1부씩 증정될 예정이다. 수강료는 5만원이며, 재수강자는 1만원에 수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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