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 [C채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26927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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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채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설교 본문 ::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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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 양의문교회

마태복음 11 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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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sheep.org

Date Published: 9/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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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는 주님의 부드럽고 사랑에 가득찬 초청을 바로 이해하는 것도 또한 <마. 11장> 전체를 살펴볼때 가능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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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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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교 –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한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공동번역,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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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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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기도 – [기획]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5~30절. Ⅰ. 본문의 상황 및 내용.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태복음 11장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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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stsi.org

Date Published: 9/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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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되는 성경구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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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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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한겨레

그런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석수로서의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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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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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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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마태복음 11 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설교요약 —-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세상에서 여러 면으로 고통들을 받고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수고와 무거운 짐에서 놓여나 쉼과 평안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마다 평안을 구하고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다소간 평안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참된 평안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평안인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을 식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예수님 앞에 오라고 말씀합니다. 몇 사람이 오든지, 어떤 수고 어떤 짐을 인해 고통과 곤란 중에 있든지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주님이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얻을 수 있으려면, 주님이 내게 메어주신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고와 무거운 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인류 시조가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와 타락의 결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 앞에 서서 약속과 명령을 받았습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수고로운 것이 아니고 쉼과 평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인간과 인간이 그 가운데 살면서 다스려야 하는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인간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대적하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짐승들도 사나운 성질을 가져 약육강식을 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오게 된 인간의 고생과 무거운 짐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타락의 결과로 받는 고생과 무거운 짐은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어리석어 자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돈을 사랑하다가 많은 근심으로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과실로 인해 고생하게 된 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되는데, 그것은 주님이 메어주신 십자가는 아닙니다.

거짓 평안과 참된 평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사람의 죄와 타락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가 수고와 무거운 짐의 원인인 것입니다. 죄의 부패와 우리를 사로잡아 끌고 가려는 죄의 권세의 지배가 우리를 곤고하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수고와 무거운 짐을 피할 수 없고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이 합해서 하나의 사람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삶에서 받는 육신의 고통도 있고 심령이 받는 괴로움들도 있습니다. 영혼이 받는 고통과 육신이 받는 고통이 전연 별개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오는 수고와 무거운 짐도 있고, 질병과, 경제 문제로 인한 수고와 고통도 있습니다. 이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이 사람의 죄 때문에 오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죄가 개인과 사회 전반에 작용한 결과로 사람이 암매하게 되어 이런 고통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자기의 방법대로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고 평안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고 하는 것도 고통을 잊어보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다 마음과 생활의 안정을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추구하는 그 평안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평안인지, 아니면 마취제와 같은 거짓된 평안인지를 식별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정신적 안정, 육체적 생리적 안정, 경제적 안정, 사회적 안정, 가정적 안정, 교회적 안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정을 얻지 못하면 항상 불안과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으로 필요한 안정을 가지기 위해서 늘 주의해야 하고,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쓸데없이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아야 하고,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도 고통을 당하지 않고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평안을 얻어 누립니다.

그러나 그 평안이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평안인가, 아니면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인가 하는 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평안은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만이 참된 평안입니다.

참된 평안의 출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불신자의 평안 추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나는 어떤 평안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안인지, 이 세상의 평안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구속의 은혜와 보호로 말미암은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이 된 것과,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영육 간에 필요를 채워주심을 믿고 바라는 가운데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갈 수 도 없는 평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믿는다고 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자라고 하면서 이 세상의 평안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자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속죄와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으신 그 큰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그리스도의 평안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고 할 때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려 해야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 항상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내가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주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은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의 생명을 받은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종이요 신부인 것을 알고 주님을 위해서 살면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의 완벽한 보호 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아가면 참된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9-2-18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의 시간 가지길 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초청의 말씀 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에 참석한 우리 각자는 처해 있는 상황은 서로 다른 삶을 산다 할찌라도, 제가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우리 각자는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무거운 멍에를 벗고 마음의 쉼을 얻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길 원한다는 사실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가운데 지쳐있는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사랑과 소망으로 초청하시는 우리 주님의 평화와 안식의 말씀은 더욱 귀중한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을 영접하심으로 주님과 언제나 동행하시는 안식의 삶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본 론>

언제나 그러하듯 성경본문의 말씀을 옳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 본문만을 따로 떼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문에서 그 본문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 가를 살펴보는 것 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는 주님의 부드럽고 사랑에 가득찬 초청을 바로 이해하는 것도 또한 <마. 11장> 전체를 살펴볼때 가능하게 되는 것 입니다. <마. 11장> 은 주님의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떠나는 장면 (v.1)에서 시작하여, 침례요한의 질문과 주님의 답변 그리고 침례요한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이어 집니다 (v.2~19). 그리고 나서, 주님은 회개치 않는 마을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v.20~24). 주님의 많은 권능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인 것 입니다. 그리고나서, 주님은 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v.28) 는 초청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지막 단락 (v.25~30) 에서 주님은 바로 앞 문장에서 회개치 않는 고라신과 베세다와 가버나움에 대한 무거운 심판의 메세지에서 돌연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v.25).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앞선 문장의 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 입니다. 먼저,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v.25). 주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심에 의해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메튜헨리는 <이것이란 ‘평화에 관한 일’ (눅. 19:42)> 이라고 주석 하였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평화에 관한 일’을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우리 인간의 행위 이전에 전적인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주님은 밝히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될때, 주님의 다음의 말씀을 또한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v.27) 는 말씀을. 말씀은 오늘 본문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평화에 관한 일’ (the things which belong unto this peace) 을 세상의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부족하고 지혜롭지 못한자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바로 오늘 본문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핵심단어가 될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평화를 누리지 못함으로 언제나 피곤과 무거운 짐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깨닫고 누릴수 있는 자는 ‘오직 아들과 아들의 소원데로 계시를 받음으로 아버지를 아는 자’라고 주님은 그 영적 진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구체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무게 아래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초청을 통하여, 왜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 하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 왜 우리는 주님의 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 (Why do we have to come Jesus?);

첫째, ‘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이기 때문 (Because we are weary and burdened): ‘오스왈드 챔버스’는 오늘 본문말씀 <마. 11:28> 을 묵상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 했습니다.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무겁다. 다들 힘들어 한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인생이 힘들고 또한 사회에 깔려 있는 죄로 인하여 무겁다. 오류와 분쟁과 미움과 거짓이 사회에 가득하다. 또한 죄로 인한 저주가 언제나 인류 역사와 인생 가운데 있으니 그 아픔과 피곤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 지친 영혼들이 교회에 나간다. 그러나 오히려 더 상처를 받고 온다. 그 심령은 위로와 쉼이 아닌 멍에를 메고 돌아온다. ~ 이 시대 가운데 복음이 없는 교회들마다 사람들에게 참된 쉼이 아닌 종교적인 멍에를 씌우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복음을 통하여 참된 자유와 평안을 제시하신다. 평안은 십자가 안에 있다.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다. 아무리 무겁고 힘든 멍에를 지더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마음이 평안하여진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셨다.” 라고.

그렇다면, 누가 과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 일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힘 가운데 고통하는 자들 인것 입니다. 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세상권력과 도덕적이고 철학적으로 뛰어난 삶을 살아가는 자라 하더라도 죄의 힘에서 자유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말 입니다. 이점을 우리 주님은 이렇게 잘 밝혀 주셨습니다. “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4,36) 고.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입니까? 그들은 죄의 힘 아래 고통하는 자들 입니다. 그들은 죄의 막강한 힘에 의해 죄를 범할수 밖에 없는 자들 입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아들에 의해 죄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이들은 불신자들이요, 아직까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주님은 이렇듯 죄 아래 고통받고 심음하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향해 초청의 메세지를 선언 하십니다. “수고하고무서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v.28b) 라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모두 오직 아들만이 주실수 있는 ‘죄로 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그로말미암아, 그분이 주시는 쉼을 지금 맛보고 있습니까?

둘째, ‘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 ’하기 때문 (Because Jesus is gentle and humble in heart): 만약 성도 여러분이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인가?” 에 대한 오늘 저의 성경해석을 잘 귀 담아 듣으셨다면, 그는 바로 불신자 임을 이해하실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중에 곧바로 생기는 한가지 질문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질문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게서 해방되고 자유케 되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 ‘왜 주께서 약속한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라고 느끼지는 않습니까? 다시말해, 주님을 영접함으로 그의 제자가 되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데 ‘왜 여전히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에서 찾을수 있을 것 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비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v.29) 라고 주님은 주께로 나아온 제자들에게 참된 스승으로서 지도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순서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먼저, 주께 나아와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 입니다. 바로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고 영원한 구세주로 영접함을 통해서 말 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구원을 누리는 성도가 되는 조건이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조건일 것 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동안 우리 성도들에게 거듭하여 강조했드시 ‘거듭남으로 영적 출생을 했다는 것이 끝이 아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라나야 한다’는 것 입니다. 어린 아기가 이 땅에 태어났다고 그것이 다자란 것이 아니듯이 영적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태어 났다면 이제 한걸음 한걸음 자라나가야 하는 영적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말 입니다. 왜 수많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거듭난 성도들에게 여전히 평화와 쉼이 없는 것일까요? 왜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 눌려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 주님께 배우지 않고 있기 때문’ 입니다.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빌. 2:5) 라고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라고 도전 합니다.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순종하신 마음을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움으로 점점 더 풍성한 쉼을 누려가고 있습니까?

셋째, ‘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 ’기 때문 (Because His yoke is easy and His burden is light): 맞습니다. 내가 비록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날마다 주께서 격려하시고 명령하신 것처럼 ‘ ~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눅. 9:23) 주님을 따르지 못하면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제자의 신분이 되었다는 말과 제자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산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 입니다. 이것이 제가 앞에서 언급한 ‘영적 출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나님의 자녀가 됨/ 성도의 신분) 을 했다는 사실과 ‘영적 성장’ (=영적 성숙/ 성도의 영적 상태) 을 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라는 것 입니다. 이런 영적 순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마치 내가 갑자기 완벽한 영적 상태가 되었다든가, 아니면 나의 인격적 (지.정.의) 결단과 순종없이 자동적으로 영적 성숙이 된다고 은연중에 착각하는 크리스챤들이 얼마나 많을찌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저의 청년시절 되돌아 볼때,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난 이후 제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음을 저는 고백 입니다. 이것은 “왜 나는 예수님 믿고 거듭났는데, 내 삶은 아직도 무거운 짐 아래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솔직히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이 오늘 약속하신 평화와 쉼을 누리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정직히 그렇치 못하다고 인정한다면, 그 원인을 우리는 직시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인은 ‘주님께 배우지 못한 것’ 입니다. 이제 내가 그분께 배우고자 결심했다면, 우리가 첫번째 주님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 는 사실 입니다.

오늘 본문 의 ‘멍에’ (yoke) 라는 단어는 ‘두마리의 소나 가축의 머리에 함께 씌우는 농사기구’ 입니다. 주로 땅을 갈거나 뒤엎을때 가축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두마리의 머리에 그것을 씌워서 그들이 발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 가도록 만든 도구가 ‘멍에’ 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두마리 가축의 머리에 씌웠던 멍에라는 그 당시 농사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 제자들이 어떻게 주께서 주시는 평화와 쉼을 얻을수 있는지를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v.29) 는 것 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나의 멍에를 메(라)” 는 의미를 “만일 너희가 나에 의해 구원 받기 원한다면, 나를 너의 주인으로 모시고 너희 자신을 나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치 않으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해석 했습니다. 사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멍에란 고된 어떤 일을 나타내기 때문 입니다. 사실, 우리 크리스도인들이 ‘자기 십자가’ 만큼 배우기 어려운 것이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 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v.30) 고. 물론 처음에는 그 멍에는 어려울 것 입니다. 이것은 ‘댓가지불’ (paying the cost) 의 과정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께서 직접 그 멍에를 이끄시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주의 영,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그 멍에를 이끄시기 때문 입니다. 주님께서 명절 끝날 서서 외치신 말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요. 7:37,38) 는 성령충만의 약속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넘쳐나기를 기대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주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 그분을 따르기를 소원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에서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 될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것 입니다” (고후. 4:17) 라고. 사도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설명하면서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이 결코 별것 아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두번째 편지를 시작하면서 “ ~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고후. 1:8) 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놀랍게도 바울은 그 고난을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라고 선언하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이 크면 큰 만큼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그의 능력을 통하여 도리어 소망과 감사가 넘치기 때문이라고 사도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고후. 1:3~11). 지금 이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하여 사랑의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v.28) 고. 이 초청은 평화에 관한 초청 입니다. 세상의 지혜롭고 똑똑한 자가 깨닫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연약하고 지혜없는 자가 도리어 깨닫는 ‘참된 평화’의 초청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평화의 초청 입니다.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수 있는 평화 입니다. 그의 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평화 입니다. 갈라진 담을 허물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케 하는 평화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그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고, 그분의 멍에를 두려워 하지 않고 순종하여 메고 나아감으로서 가볍고 쉬운 그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참된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더욱 풍성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개역한글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공동번역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새번역 ” 수고 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원문보기

현대인의성경 ‘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원문보기

新共同譯 疲れた 者, 重荷を 負う 者は, だれでもわたしのもとに 來なさい. 休ませてあげよう. 원문보기

NIV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KJV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NASB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y-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新改譯 すべて, 疲れた 人, 重荷を 負っている 人は, わたしのところに 來なさい. 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 休ませてあげます. 원문보기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스라엘에는 산에 나무를 하러 올라가는 일이 없다. 이스라엘 산은 거의 다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다고 하니 정말 목수였다면 예수님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나무가 없는데 무슨 목수를 한단 말인가?

이스라엘의 건축물들은 99% 다 돌로 짓는다. 예수님이 “목수”였다고 번역한 헬라어는 테크톤(tekton)인데 이 단어는 돌이나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목수도 되고 석수도 된다. 옛날에는 목수, 석수의 구분이 없었다. 한 사람이 목수일도 하고 석수일도 했다. 예수님은 목수일보다는 석수일을 훨씬 더 많이 했다. 그렇다고 할 때 목수보다는 석수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권에서는 석수보다 목수가 익숙한지라 목수라고 번역했던 것 같다.

목수 일보다는 석수 일이 훨씬 더 힘드는 일이다. 석수로 돌을 캐는 일, 운반하는 일, 쪼개는 일, 들어 올…리는 일 등등… 나무로 집을 짓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돌을 캐고 쪼개고 운반하고 다듬고 들어 올리고 하시는 모습의 예수님, 그의 손은 굳은 살이 박혀 있을 것이며 손가락 여기 저기 멍이 들었을 것이다. 매일 망치질하던 그의 팔뚝은 근육질이었을 것이다. 그런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석수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일 것이다.

“수고하고”는 그냥 수고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노동, 특별히 육체적 노동을 말한다. 석수로서 거친 노동을 하셨던 그분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다.”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산에서 돌을 캐서 운반하던 때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무거운 짐은 무게가 나가는 보따리 정도가 아니라 무거운 돌 덩어리였던 것이다. 여덟 식구의 가장으로 산에 올라가 돌을 떼내서 짊어지고 내려오셨던 그분이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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