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비판 | [팀 켈러]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풀버전)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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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에 대다수 교회(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파등)이 죄와 대속교리를 약화시키며 진보적 정치에 함몰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또한 복음주의가 공화당과 연합체인 것을 또한 비판한다. 또한, 기독교가 더 세계적인 운동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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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동문들, “팀 켈러를 수상자에서 철회하라” – NEWS M

프린스턴신학교는 오는 4월 6일 팀 켈러 목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 … 이번 결정을 철회함으로 학교의 체신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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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m.com

Date Published: 7/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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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C. S. 루이스’ 팀 켈러 목사 “동성애 옹호자들, 사랑 …

… 담임목사이며 ’21세기의 C. S. 루이스’로 불리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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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1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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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 설교에 대한 오해들 – 복음과 도시

특히 팀 켈러의 설교가 극단적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라고 비판하는 논문들도 등장하고, 행동이 강조되지 않아 적용이 없는 설교라는 비판들도 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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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gckorea.org

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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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김상일)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가 요즘 화제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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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emk.org

Date Published: 12/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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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2 팀 켈러 비판 The 55 Top Answers – Chewathai27

담임이며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M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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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ewathai27.com

Date Published: 8/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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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팀 켈러 목사의 6가지 동성애 논박 – 크리스천투데이

… 담임이며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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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6/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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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읽기 (6) 후기 – 몇몇 반론에 답하며

먼저, 팀 켈러가 톰 라이트나 선교적 교회, 하나님 나라 개념을 … 를 위에서 뉴비긴이 말한 ‘번역된 성경/번역된 기독교’의 ‘비판’과 그 결과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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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jdwkqtk.tistory.com

Date Published: 12/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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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팀 켈러의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 … 봄) 이라고 부르는 서구의 문화적 성향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과 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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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ikeellul.com

Date Published: 8/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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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죽음 앞에서 더 깊어지는 신앙’ – 아멘넷

나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숱한 비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믿음은 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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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usaamen.net

Date Published: 2/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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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풀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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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교회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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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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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년 9월 23일 – )는 미국의 목사, 신학자 및 기독교 변증가이다. 그는 뉴욕시 리디머 장로 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 목사이다. 펜실베이아 알렌타운에서 태어난 켈러는 버크넬 대학, 고든 콘웰 신학교,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한국에서도 선교사와 교수를 했던 하비 콘(Harvie M. Conn)이었다. 후에 이 학교에서 교수도 하였다. [1] 뉴욕타임지 베스트셀링 북 <마르지 않는 사랑>(The Prodigal God: Recovering the Heart of the Christian Faith , 2008)의 저자이다. [2] 그는 1989년 아내 케시 사모와 3명의 아이들과 함께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20년 동안 다양한 젋은 직장인들을 지도하며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는 여러 도시에 교회들을 개척하고, 도시문화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나 자료들을 출판하는 ‘리디머시티투시티’(Redeemer City to City)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48개 도시에서 250개 교회를 개척했다.[3] 복음연합을 2005년에 D. A. 카슨과 세워 현재와 차세대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존 파이퍼와 더불어서 현재 가장 영향력있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천적 변증론의 관점에서 목회 철학을 세워가고 있다.

한국교회 [ 편집 ]

2018년 3월 한국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교회가 커지고 권력이 강해지면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과 부에 무릎을 꿇고 부패하게 됩니다. 이는 서양교회에서도 이미 경험한 문제죠. 유혹과 권력의 문제에 직면할 만큼 힘을 갖게 된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감추지 말고 어떻게 회개하고 권력남용을 다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4]

신학 [ 편집 ]

켈러는 ‘복음주의’라는 칭호를 피하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 단어가 주는 정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상징성 때문이다. 그 이유로, 그는 자기 자신을 정통파라고 부르라고 권하는 데, 그것은 그가 개인의 회심또는 중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보이지만, 그의 개혁주의 교리해석이 현대적으로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리에 충실한 이머징 목사’ 또는 ‘신 칼뱅주의자’라고 불린다.

복음과 종교의 관계 [ 편집 ]

켈러 사역의 핵심에는 전적인 부패, 오직 은혜, 대속적 속죄에 있다. 그는 이것을 ‘복음 중심의 접근방식’으로 부른다.

변증학 [ 편집 ]

그는 그의 저서 < 하나님을 위한 이성>에서 수천명의 회의적인 뉴욕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얻은 경험을 말한다. 그는 미국에서 과거 서양의 기독교 문화가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세속화되고, 반종교적인 문화환경을 문맥화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창조론에 관하여 그는 문자주의를 옹호하지 않고, 바이오로고스 단체의 주장인 진화론적 창조론을 따른다.

우상에 관하여 [ 편집 ]

그는 우상에 관한 글을 썼는 데, 주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입장을 따르며 십계명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들이 가진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중독이 하나님보다 더 인생에 만족을 주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사회정의 와 정치 [ 편집 ]

그는 미국에 대다수 교회(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파등)이 죄와 대속교리를 약화시키며 진보적 정치에 함몰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또한 복음주의가 공화당과 연합체인 것을 또한 비판한다. 또한, 기독교가 더 세계적인 운동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인이 가난한 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하여 사회운동을 펼치는 것을 옹호하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하여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문화적인 참여 [ 편집 ]

그는 미국 맨하탄 북부에서 비즈니스, 예술, 사업등의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성과 젠더 [ 편집 ]

그는 젠더에 대하여 상호보완론 (신학)을 주장하면서도, 각 젠더의 역할은 성경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동성애가 성경에 맞지 않다고 말하며, 맨하탄 선언에 서명을 하였다.

팀 켈러 “포스트모던 시대, 복음 전하는 7가지 방법 [ 편집 ]

팀 켈러 목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을 제시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5]

비기독교인들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쓰라.

비기독교인들도 존경하는 인물의 말을 인용하라.

비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의문을 이해하라.

비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

신앙은 절대 강요로 인해 생기는 게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닌 그 동기에 주목하라.

율법이 아닌 복음을 전하라.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과 작품 [ 편집 ]

저서 [ 편집 ]

Resources for Deacons: Love Expressed through Mercy Ministries (Christian Education and Publications, 1985) ISBN 0-9703541-6-9

(Christian Education and Publications, 1985) ISBN 0-9703541-6-9 Ministries of Mercy: The Call of the Jericho Road (P&R Publishing, 1997) ISBN 0-87552-217-3

(P&R Publishing, 1997) ISBN 0-87552-217-3 Church Planter Manual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2002)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2002) The Reason for God: Belief in an Age of Skepticism (Dutton Adult, February 2008) ISBN 0-525-95049-4

(Dutton Adult, February 2008) ISBN 0-525-95049-4 The Prodigal God: Recovering the Heart of the Christian Faith (Dutton Adult, November 2008) ISBN 0-525-95079-6

(Dutton Adult, November 2008) ISBN 0-525-95079-6 Counterfeit Gods: The Empty Promises of Money, Sex, and Power, and the Only Hope that Matters (Dutton Adult, October 2009) ISBN 0-525-95136-9

(Dutton Adult, October 2009) ISBN 0-525-95136-9 Generous Justice: How God’s Grace Makes Us Just (Dutton Adult, November 2010) ISBN 0-525-95190-3

(Dutton Adult, November 2010) ISBN 0-525-95190-3 King’s Cross: The Story of the World in the Life of Jesus (Dutton Adult, February 2011) ISBN 0-525-95210-1

(Dutton Adult, February 2011) ISBN 0-525-95210-1 The Meaning of Marriage: Facing the Complexities of Commitment with the Wisdom of God (Dutton Adult, November 2011) ISBN 0-525-95247-0

(Dutton Adult, November 2011) ISBN 0-525-95247-0 The Freedom of Self Forgetfulness: The Path to True Christian Joy (10Publishing, March 2012) ISBN 978-1906173418

(10Publishing, March 2012) ISBN 978-1906173418 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 (Zondervan, September 2012) ISBN 0-310-494184

(Zondervan, September 2012) ISBN 0-310-494184 Every Good Endeavor: Connecting Your Work to God’s Work (Dutton, November 2012) ISBN 978-0-525-95270-1

(Dutton, November 2012) ISBN 978-0-525-95270-1 Galatians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3) ISBN 978-1908762573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3) ISBN 978-1908762573 Judges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August 2013) ISBN 978-1908762900

(The Good Book Company, August 2013) ISBN 978-1908762900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 (Dutton, October 2013) ISBN 978-0-525-95245-9

(Dutton, October 2013) ISBN 978-0-525-95245-9 Encounters with Jesus: Unexpected Answers to Life’s Biggest Questions (Dutton, 2013) ISBN 978-0-525-95435-4

(Dutton, 2013) ISBN 978-0-525-95435-4 Romans 1-7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4) ISBN 978-1908762917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4) ISBN 978-1908762917 Prayer: Experiencing Awe and Intimacy with God (Dutton, 2014) ISBN 978-0-525-95414-9

(Dutton, 2014) ISBN 978-0-525-95414-9 Center Church Europe (Wijnen, Uitgeverij Van, 2014) Contributors are José de Segovia, Leonardo De Chirico, Michael Herbst, Frank Hinkelmann, Martin de Jong, Jens Bruun Kofoed, Daniel Liechti, András Lovas, David Novak, Stefan Paas and Martin Reppenhagen. ISBN 978-9-051-94480-8

(Wijnen, Uitgeverij Van, 2014) Contributors are José de Segovia, Leonardo De Chirico, Michael Herbst, Frank Hinkelmann, Martin de Jong, Jens Bruun Kofoed, Daniel Liechti, András Lovas, David Novak, Stefan Paas and Martin Reppenhagen. ISBN 978-9-051-94480-8 Romans 8-16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5) ISBN 978-1910307298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5) ISBN 978-1910307298 Preaching: 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 (Viking, June 2015) ISBN 978-0-525-95303-6

(Viking, June 2015) ISBN 978-0-525-95303-6 The Songs of Jesus: A Year of Daily Devotionals in the Psalms (Viking, November 2015) ISBN 978-0-525-95514-6

(Viking, November 2015) ISBN 978-0-525-95514-6 Making Sense of GOD: An Invitation to the Skeptical[7] Viking ISBN 9780525954156 ebk. ISBN 9780698194366

번역된 저서 [ 편집 ]

팀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를 정의롭게 만드는가 ( 최종훈 옮김, 두란노서원, 2012)[1] : 켈러는 이 책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정의를 포함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프린스턴 동문들, “팀 켈러를 수상자에서 철회하라”

여성안수, LGBT 문제로 프린스턴신학교 논쟁중

[미주뉴스앤조이=양재영 기자] 리디어장로교회 팀 켈러 목사가 ‘개혁신학과 공적 생활’에 대한 기여로 2017년 프린스턴신학교 카이퍼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팀 켈러 목사의 수상 소식에 프린스턴 동문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프린스턴신학교는 오는 4월 6일 팀 켈러 목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상’(Abraham Kuyper Prize)을 시상할 것이며, 교회 개척과 관련한 강연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이퍼상은 매년 다양한 사회와 정치, 문화의 영역에서 신칼비니즘의 종교적 특수성의 이해와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한 학자나 지도자에게 주는 상으로, 수상자는 아브라함 카이퍼 센터의 공적신학의 목적에 어울리는 주제의 강연을 전하는 전통을 유지해왔다.

“여성안수, LGBT 문제 논란”

문제는 프린스턴 동문들이 팀 켈러 목사 수상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면서 시작됐다.

동문들중 한 명인 트레이시 스미스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분명, 팀 켈러 목사는 훌륭한 종교 지도자이자 신앙인이다. 하지만, 여성안수와 동성애(LGBT) 개인에 대한 그와 (리디머장로)교회의 입장 때문에 이번 수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적었다.

스미스는 “팀 켈러 목사는 교단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목회자 중 하나로, ‘여성의 목사 안수를 명백히 반대하고 있으며, 그와 그가 속한 교단은 동성애자에 대한 배제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녀는 “남녀 모두 수업을 듣고 있는 학교는 학생들의 절반만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상을 줘서는 안된다. 이건 명백히 폭력적인 결정이다”고 지적했다.

프린스턴신학교 동문이자 미주리주 린든우드대학교의 종교학 부교수인 트래비스 맥메이큰은 이번 결정에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맥메이큰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거부하는 팀 켈러 목사가 카이퍼상을 받는다는 소식에 매우 실망했다. 학교 당국의 이번 결정은 학생들의 등록을 늘리기 위해 보수주의를 받아들이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학교가 이번 결정을 철회함으로 학교의 체신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비판했다.

“다양성 인정 학풍 이어가자”

팀 켈러 목사의 카이퍼상에 대한 동문들의 부정적 반응이 고조되자 학교 측은 진화에 나섰다.

프린스턴신학교의 크레이그 반스 총장은 팀 켈러 목사 선임과 관련해 “설령 의견이 달라도 우리는 학교기구(아브라함 카이퍼 센터)의 결정을 검열한 적이 없다”라며 “논쟁이 되는 강사라 하더라도 다양한 신학적 생각과 입장을 허용해온 우리 학교의 전통에 따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반스 총장은 “학교 캠퍼스 안에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고 동성애 개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들이 모여 있다. 바라기는 은혜와 학문적 자유라는 관점에서 팀 켈러 목사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한 팀 켈러 목사와 리디머장로교회 측은 특별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팀 켈러 목사가 소속된 미국장로교(PCA)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 장로교단으로 여성목사안수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팀 켈러 목사 역시 2015년 교회 홈페이지에 ‘성경과 동성관계’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반박함으로 그동안 지지를 밝혀왔던 성소수자 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동성간 성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역사의 발전을 막으려는 헛된 시도이며, 노예제도에 잘못 대처했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도 동성애에 대해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때로 세상의 문화에 대해 공격적이며,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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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C. S. 루이스’ 팀 켈러 목사 “동성애 옹호자들, 사랑스럽고 똑똑해 보이지만… “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맨해튼 리디머 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 담임목사이며 ’21세기의 C. S. 루이스’로 불리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팀 켈러 목사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회중’으로 불리는 뉴욕 리디머 장로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회자 겸 저술가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철저히 의지하는 보수적인 목회자인데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젊은 화이트칼라들이 그의 목소리에 열광하고 있다. 대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들, 미국 문화계와 그 아이디어를 주도하는 청년들이 그를 삶의 멘토로 가슴에 안고 있다. 철학자 댈러스 윌러드가 그를 “이 시대에 가장 주목할 목회자”로 꼽았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도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인정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최근 교회 웹사이트에 매튜 바인스(Matthew Vines)의 책 ‘하나님 그리고 게이 크리스천(God and the Gay Christian)’과 켄 윌슨(Ken Wilson)의 책 “나의 회중들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to My Congregation)에 대한 리뷰를 게재했다. 두 책은 모두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은 오늘날의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계속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고 밝혔다.

1) 동성애자들을 만나 대화하면 동성애 옹호자 된다고 동성애가 옳은 것인가?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책에서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아가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동성애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은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랑스럽고 똑똑하기까지 한 동성애자들과 만난 후 그들의 (동성애가 죄라는) 오랜 믿음을 폐기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신학적·윤리적 입장이나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사람들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경이 동성애를 결코 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 본문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동성애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니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들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동성 간의 성관계(합의와 사랑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라 남색(어른과 아이 간의 동성 성관계), 매춘, 강간 등 성적 착취라고 주장한다”면서 “바인스와 윌슨은 바울과 다른 성경의 저자들은 선천적 동성애 성향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착취적인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상호간의 사랑에 의해 이뤄지는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세의 동성애자 기독교인인 바인스는 앞서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동성애가 죄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동성간의 사랑에 의한 동성 성관계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도 기독교인들이 정죄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켈러 목사는 “이러한 주장들은 1980년대부터 존 보스웰(John Boswell)과 로빈 스크록스(Robin Scroggs)이 주장해왔던 것인데, 바인스와 윌슨과 같은 사람들이 이를 재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 이후로 보수적 연구가들과 진보적 연구가들의 연구를 모두 포함해 가장 우세한 의견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사례를 제시했다.

먼저 켈러 목사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로 나누는 제우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이것은 고대에도 선천적으로 이성보다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고대에도 선천적(타고난) 동성애자가 있었고, 착취적인 동성 간의 성관계가 아닌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관계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성경은 동성애를 금했다는 것.

켈러 목사는 또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7)고 말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분명히 강간이나 매춘, 남색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대 사람들은 선천적 동성애자들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바울도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 성관계에 알고 있었다면서 “바울은 착취적인 동성 성관계가 아니라 모든 동성간의 성관계를 정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 동성애 정죄하는 성경,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은 옹호?

켈리 목사는 또 많은 교회에서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있는데 이전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성경에 근거해 옹호하다가 지금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변증했다.

바인스는 자신의 책에서 “성경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있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이 노예제도를 용납하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제는 노예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면서 “기독교인들이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지지하기 위해 한 때 성경을 이용했다가 지금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동성애에 대핸 입장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켈러 목사는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19세기 성경이 흑인노예제도를 용인하고 있다고 주장한 일부 사람들이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고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캐나다와 영국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 그리고 미국 북부 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제도가 성경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라고 철저히 반대하고 정죄했으며, 가톨릭도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대해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성경에 노예와 노예제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노예제도를 지지하고 옹호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인간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셨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성경이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노예제도와 동성애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최근까지 모든 교회와 신학자들이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정죄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성경이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단 한 번도 교회에서 지지와 동의를 얻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년 내에 성경 본문에 근거해 성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이것은 동성애를 정죄하는 성경본문에 대한 해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무력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윌슨은 동성애를 이혼이나 재혼, 기독교인의 전쟁 참여, 시험관 아기,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세례, 은사 등과 같은 이슈와 동일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켈러 목사는 이에 대해 “동성애는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면서 “다른 주제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찬반이 엇갈린 문제들이지만, 동성애는 모든 세기, 모든 문화, 모든 기독교 종파(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에서 아주 아주 최근까지도 만장일치였던 문제로,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4)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데도 하는 것 있지 않나?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믿지만 성경이 모든 동성 성관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구약의 율법을 모두 지키느냐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내놨다.

그는 “바인스는 레위기 저자가 18장 22절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고 11장 9-12절에서는 갑각류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지금은 갑각류를 먹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왜 생각을 바꾸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면서 “바인스는 모세의 제사법 중 제사의식과 정결의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돼 더 이상 여기에 구속되지 않지만 구약성경의 도덕법은 여전히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약성경의 이해는 가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히브리서 10장 16절에서 “내 법을 너희 마음에 두고”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구약의 의식들이 더 이상 우리를 구속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도덕법의 구속 속에 있으며, 이는 모든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성애 금지는 (구약에서 언급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6장, 디모데전서 1장에도 다시 언급되고 있지만, 신약성경은 물론 예수 자신께서도 정결법과 정결의식은 더이상 구속력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막 7장)”고 말했다.

5) 세상의 대세를 막지 말라?

켈러 목사는 “바인스의 책보다 윌슨의 책에서 더 노골적으로 역사가 개인이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도록 변화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면서 “윌슨은 동성 간 성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막으려는 헛된 시도이며, 노예제도에 대해 잘못 대처했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는 동성애에 대해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때로 세상의 문화에 대해 공격적이며,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켈러 목사는 또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조사가 있다”면서 “이세상이 세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6)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나?

켈러 목사는 “가장 슬픈 것은 바인스와 윌슨이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는 성경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온갖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성경이 성에 대해 두고 있는 높고도 영광스러운 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두 저자는 성경은 결혼에 있어서 상호 간의 사랑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올바로 말했다”면서 “하지만 성경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있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등 서로 다른, 그러나 상호보완적인 피조물들을 한 쌍 씩 만드셔서 동역하게 하셨다”면서 “다양하면서도 다른 피조물들이 서로 연합해 다이내믹한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찬란함이며, 이들의 상호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성과 여성의 창조와 결합은 이것의 클라이막스”라면서 “남성과 여성은 독특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상대방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며 서로 바꿀 수 없는 영광을 뽐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은 결혼이라는 영원한 계약을 통해 이들의 능력과 영광이 하나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통로이며, 결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결합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동역하며 새로운 존재로 빚어진다”고 성과 결혼의 신비를 설명했다.

켈러 목사는 마지막으로 “동성애는 성의 놀랍도록 풍부한 다양성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배우자는 물론 자녀들에게도 이를 맛보게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바인스는 켈러 목사의 리뷰 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잘못 이해했고 잘못 표현했다”고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말했다.

그러면서 “켈러 목사가 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침례신학대학의 윤리학 교수인 에반 레노우 박사(Dr. Evan Lenow) “바인스의 주장은 새로울 것이 없으며, 기독교 공동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팀 켈러 목사의 리뷰글 원문입니다 – http://www.redeemer.com/redeemer-report/article/the_bible_and_same_sex_relationships_a_review_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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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도시, TGC코리아의 새 이름

“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교를 할 때 성자와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말은 성경을 문맥에 맞게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 ”

최근 팀 켈러의 책들이 번역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도 함께 있는 것 같다. 특히 팀 켈러의 설교가 극단적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라고 비판하는 논문들도 등장하고, 행동이 강조되지 않아 적용이 없는 설교라는 비판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필자가 팀 켈러는 아니지만, 팀 켈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그 비판이 팀 켈러의 설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 번째 오해: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삼위일체 중심 설교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성경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할 때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일원론 설교’란 삼위 하나님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만을 별도로 강조하는 설교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분리가 되어서 청중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체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극단적 그리스도 일원론적 설교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팀 켈러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만을 따로 떼어서 설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는 그의 책 ‘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레서원)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가장 많이 혼동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설교함’이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구속사의 전 영역이라는 문맥에서 전파하는 것을 의미했다. … 바울에게 있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모든 설교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만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그 이상의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큼이나 광범위하다. …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나사렛 예수님의 인성과 사역, 그리고 그의 가르침의 여러 국면들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그리스도 일원론’으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오해한 결과일 것이다. 프레드 샌더스(Fred Sanders)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복음이다’(부흥과개혁사)라는 책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와 삼위일체 중심적 설교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동시에 삼위일체 중심적인 좋은 소식에 대한 단일한 선포가 존재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동일한 하나의 실제를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중심적이 될수록 그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 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것은 성부를 방각하는 것도, 성령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를 할 때 성자와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말은 성경을 문맥에 맞게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사도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마무리한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결코 하나님과 분리된 설교가 아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들의 논란이 있었을 때 니사의 그레고리우스(Saint Gregorius of Nyssa)가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 “삼위일체의 바깥으로 사역은 나눠지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공부할 때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누어서 내재적 삼위일체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해를 위해서이지 사실 삼위일체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독자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시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 16:13~15)

신구약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그리스도 일원론적 설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삼위일체적 설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반대해서 극단적으로 ‘삼위일체적 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침한다.

“모든 설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에 대해 증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설교자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신약의 서신들은 처음에 시작되는 인사말과 끝에 나오는 축도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11개의 신약의 서신서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라고 언급한다. 이런 신약의 언급이 ‘성령님’을 뺀 잘못된 설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오해 : 은혜를 적용함으로 실천과 행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단순히 사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강조하지 못하게 되는 약점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인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는 팀 켈러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들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하게 되면 “~을 하지 말라” 또는 “~을 하라”는 적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팀 켈러의 설교를 비평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팀 켈러의 설교를 처음 배워서 적용하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다.

팀 켈러는 그의 책 ‘설교’(두란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교의 마지막을 ‘이렇게 살라’는 문장으로 끝내지 마라, 대신 ‘우리는 이렇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도 이런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로 마무리하라.”

이 말은 인간의 의지를 말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살라’라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할 경우 의지적 행위를 촉구하지 않는 형태의 설교라고 오해할 수 있다. 박현신 교수는 ‘가스펠 프리칭’에서 팀 켈러 설교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성화의 열매인 율법의 제3용법과 언약적 충성의 차원에서 은혜언약에 근거한 윤리적 적용과 실천에 대한 강조가 약화된 측면은 없는가?” 라고 물었다. 김창훈 교수는 위의 팀 켈러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브라이언 채플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팀 켈러와 브라이언 채플이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면 ‘비구속적 메시지’가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팀 켈러의 변증설교’의 저자인 박용기 목사도 팀 켈러의 설교의 약점 중의 하나는 ‘의지적 훈련을 약화시키는 설교’라고 지적하면서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기 의지적 훈련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했다. 자기부인이라는 의지적 결단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행위와 의지를 약화시키는 잘못된 은혜 중심적 설교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팀 켈러가 ‘센터처치’(두란노)에서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의 책을 언급한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제임스 스미스는 ‘습관이 영성이다’와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라는 책등을 통해 인간의 몸의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팀 켈러는 전반적으로 제임스 스미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점은 지나치게 마음을 주장하거나, 지나치게 행동을 강조하는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팀 켈러는 제임스 스미스가 지나치게 몸과 습관을 강조한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는 행동하는 대로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이나 행동을 열쇠로 숭상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적 견해는 강의나 설교가 삶을 바꾸는 주요 통로라고 본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는 예전과 성찬을 주된 방법으로 본다. 그러나 열쇠는 마음에 있다. 마음의 헌신은 회개를 통해 바뀌게 된다.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는 기도를 가르칠 때 ‘우리의 마음과 옹 몸이 세상적이고 육적인 모든 욕망들에 대해 죽게 하시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서 당신의 복된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팀 켈러는 은혜를 강조하면서 행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을 플라톤적 견해라고 말한다. 또 행위를 먼저 강조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라고 비판한다. 그럼 팀 켈러의 견해는 무엇인가? 토마스 크랜머의 기도처럼 마음의 회개가 일어난 뒤 하나님의 복된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팀 켈러가 말하는 복음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인데 ’복음과 복음의 결과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은혜만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닌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은혜만을 강조하면 반율법주의자가 된다. 또 행위만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이 둘을 피하면서 복음을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바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혜택을 분리하지 않는 즉,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팀 켈러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기 전에,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선포하기 전에 바로 의지적 적용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타락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FCF, The Fallen condition focus)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절망을 경험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우리 대신 행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나서 그 은혜를 동기로 해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Buchanan Ferguson)은 ‘온전한 그리스도’(디모데)에서 팀 켈러가 말한 ’복음과 복음의 결과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받은 혜택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가 분리될 때 “~하라”, “~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는 인간의 의지적 행위만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율법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지 않을 때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가 대신 행해주셨다는 그 은혜의 동기로서 순종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감사일뿐이다. 만약 은혜와 선행이 분리된다면 그 선행은 결국 자기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팀 켈러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설교가 아니다. 칭의의 은혜를 먼저 선포한 후에 성화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팀 켈러는 좋은 설교자지만 완벽한 설교자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팀 켈러의 설교에 어떤 오류도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팀 켈러의 설교를 비평할 때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계몽주의 이후의 학문은 통합하기 보다는 분석하고 나누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논문이나 서평을 쓸 때도 반드시 아쉬운 점을 쓰는 것이 더 비평적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운 점은 비평을 위한 비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가 삼위일체적이지 않다거나, 의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은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부분에 대한 오해이기에 팀 켈러의 설교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삼위일체 중심적 설교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설교이다. 또한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적용은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이기에 인간의 회개와 은혜의 반응으로서의 순종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팀 켈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①: 팀 켈러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김상일)

켈러는 목회자로서는 드물게 학자의 면모 또한 갖춘 인물이며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을 모두 언급하려면 아마도 수십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이 인물들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켈러가 그들에게 받은 영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본문 중)

김상일(Boston University, 실천신학 박사과정)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가 요즘 화제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올랐던 켈러는, 올해 초(2018년 3월)에는 방한해서 한국의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켈러는 작가이기 전에 목회자이며 설교자입니다. 그는 30년 전인 1989년 기독교 복음의 불모지라고 여겨지는 뉴욕 맨해튼에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날까지 상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따라서 팀 켈러의 사역 내용과 그 이면에 깔린 그의 신학과 복음∙도시∙현대 문화에 관한 이해가 한국의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켈러의 저술에 나타난 신학과 사역에 관한 중요한 통찰들을 살펴보고 그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국교회의 상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1]

앞으로 필자는 켈러의 저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각 책이 우리의 삶과 사역에 주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글에서는, 책 소개로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켈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세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데 그가 ‘스승’으로 삼은 인물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켈러가 영향을 받았다고 자주 언급하는 인물 중에서 세 사람, 즉,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 1917-2005), 리처드 러블레이스(Richard F. Lovelace, 1930-), 그리고 하비 콘(Harvie M. Conn, 1933-1999)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켈러 자신은 이 세 인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켈러 사상의 궤적을 살펴보는 데는 이 인물들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켈러는 목회자로서는 드물게 학자의 면모 또한 갖춘 인물이며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을 모두 언급하려면 아마도 수십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이 인물들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켈러가 그들에게 받은 영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에드먼드 클라우니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총장과 실천신학 교수로 일했던 인물인데, 켈러의 복음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켈러는 그의 책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 서문에서, 자신이 청년 시절 클라우니의 탕자의 비유(눅 15:1-3, 11-32)에 관한 설교를 듣고 기독교 복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설교가 켈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의 대표작 『탕부 하나님』또한 같은 본문을 다루고 있다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현대인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을 때 전형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대표한다는 켈러의 해석틀(interpretive grid)은 클라우니의 설교를 들으면서 켈러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틀은 이후 성경을 쉽게 풀어낸 책, 『당신을 위한 로마서』(Romans for You)와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Galatians for You)에서도 켈러가 성경을 읽는 틀로 나타납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의 기초가 됩니다. 켈러는 그의 사역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센터 처치』(Center Church)에서도 자신의 사역에 원동력을 제공해 준 세 가지 축 중 복음이 가장 중요한 축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복음을 명제적인 방식으로 상당히 자세하게 풀어냅니다(Part 1).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내가 이해하는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처드 러블레이스

리처드 러블레이스는 미국 교회사를 전공한 역사 신학자로서, 켈러의 고든-콘웰 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시절 스승입니다. 켈러는 러블레이스가 가르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에드워즈의 『신앙 정서론』(Religious Affections)을 접하게 되었고, 에드워즈에게서 처음으로 자신의 인간 이해의 핵심이 될 마음(the heart)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정서(affection)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비록 러블레이스 교수로부터 정서(affection)가 감정(emotion)이 아니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지만, 그리고 에드워즈의 『신앙 정서론』을 무려 5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지만, 여전히 켈러는 정서와 감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후 여러 계기를 통해서 켈러는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하게 되며, 켈러의 설교와 상담, 교육은 모두 바뀌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켈러에게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변화를 일으키는 소통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까? 그 답을 발견하기 위해 추구해 나감으로써 신앙 성장에 대한 좀더 명료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비 콘

하비 콘은 선교사로 한국에도 와서 총회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는데(1960-1972) 한국식 이름은 ‘간하배’입니다. 콘은 켈러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그의 논문 지도교수였으며, 켈러에게 도시 사역과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인물입니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센터 처치』(Center Church)에서 켈러는 자신의 상황화에 대한 관점과 지식은 거의 모두가 콘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밝힙니다. 필자는 켈러를 다른 보수적인 목회자들과 명백하게 구별되게 하며, 그가 개척한 뉴욕 맨하탄의 리디머 교회 사역이 열매를 맺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상황화의 필요성과 긴급성에 대한 켈러의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진보적 신학에서 상황화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보수 교회의 목회자들은 ‘상황’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계하는 경향이 있지만, 켈러는 건전한 상황화는 항상 필요하며 복음은 언제나 상황에 알맞은 모양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만 진정으로 소통하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켈러가 주는 도전은 ‘우리는 과연 복음을 우리가 섬기는, 문화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만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가?’입니다. 켈러는 그저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민감해지라거나, 설교에 유행어를 한두 마디 섞어보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과연 현대 문화가 가진 근본 구조를 꿰뚫어보고 있는가?’, 그리고 ‘복음 메시지를 소통 가능하게, 그러나 본질을 살리면서 전하고, 청중에게 복음의 도전을 날것 그대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가?’입니다.

이외에도 글의 분량 제한 때문에 다루지 못하지만, 켈러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정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는 존 스토트 (John Stott),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in Lloyd-Jones), 씨 에스 루이스(C.S. Lewis),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을 넣었어야지”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켈러가 받은 영향도 적지 않겠지만, 이 글에서는 앞으로 켈러 사상의 주요 궤적을 살펴보겠다는 의도에 맞게 필자가 임의로 선택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구체적으로 켈러의 저서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좀 더 자세히 켈러의 사상과 사역이 제시하는 주요 시사점을 탐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다루게 될 책은 『탕부 하나님』입니다.

[1] 필자는 2019년 초 팀 켈러의 복음 이해, 인간 이해, 현대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 시사점들이 어떻게 신앙 성장과 기독교 사역에 도움이 될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인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 연결과 소통』(가제)을 출간할 계획이니, 그 책도 참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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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풀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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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편집]

신학[편집]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과 작품[편집]

저서[편집]

각주[편집] 팀 켈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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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년 9월 23일 – )는 미국의 목사, 신학자 및 기독교 변증가이다. 그는 뉴욕시 리디머 장로 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 목사이다. 펜실베이아 알렌타운에서 태어난 켈러는 버크넬 대학, 고든 콘웰 신학교,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한국에서도 선교사와 교수를 했던 하비 콘(Harvie M. Conn)이었다. 후에 이 학교에서 교수도 하였다. [1] 뉴욕타임지 베스트셀링 북 (The Prodigal God: Recovering the Heart of the Christian Faith , 2008)의 저자이다. [2] 그는 1989년 아내 케시 사모와 3명의 아이들과 함께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20년 동안 다양한 젋은 직장인들을 지도하며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는 여러 도시에 교회들을 개척하고, 도시문화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나 자료들을 출판하는 ‘리디머시티투시티’(Redeemer City to City)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48개 도시에서 250개 교회를 개척했다.[3] 복음연합을 2005년에 D. A. 카슨과 세워 현재와 차세대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존 파이퍼와 더불어서 현재 가장 영향력있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천적 변증론의 관점에서 목회 철학을 세워가고 있다.

한국교회 [ 편집 ]

2018년 3월 한국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교회가 커지고 권력이 강해지면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과 부에 무릎을 꿇고 부패하게 됩니다. 이는 서양교회에서도 이미 경험한 문제죠. 유혹과 권력의 문제에 직면할 만큼 힘을 갖게 된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감추지 말고 어떻게 회개하고 권력남용을 다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4]

신학 [ 편집 ]

켈러는 ‘복음주의’라는 칭호를 피하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 단어가 주는 정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상징성 때문이다. 그 이유로, 그는 자기 자신을 정통파라고 부르라고 권하는 데, 그것은 그가 개인의 회심또는 중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보이지만, 그의 개혁주의 교리해석이 현대적으로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리에 충실한 이머징 목사’ 또는 ‘신 칼뱅주의자’라고 불린다.

복음과 종교의 관계 [ 편집 ]

켈러 사역의 핵심에는 전적인 부패, 오직 은혜, 대속적 속죄에 있다. 그는 이것을 ‘복음 중심의 접근방식’으로 부른다.

변증학 [ 편집 ]

그는 그의 저서 < 하나님을 위한 이성>에서 수천명의 회의적인 뉴욕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얻은 경험을 말한다. 그는 미국에서 과거 서양의 기독교 문화가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세속화되고, 반종교적인 문화환경을 문맥화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창조론에 관하여 그는 문자주의를 옹호하지 않고, 바이오로고스 단체의 주장인 진화론적 창조론을 따른다.

우상에 관하여 [ 편집 ]

그는 우상에 관한 글을 썼는 데, 주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입장을 따르며 십계명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들이 가진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중독이 하나님보다 더 인생에 만족을 주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사회정의 와 정치 [ 편집 ]

그는 미국에 대다수 교회(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파등)이 죄와 대속교리를 약화시키며 진보적 정치에 함몰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또한 복음주의가 공화당과 연합체인 것을 또한 비판한다. 또한, 기독교가 더 세계적인 운동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인이 가난한 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하여 사회운동을 펼치는 것을 옹호하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하여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문화적인 참여 [ 편집 ]

그는 미국 맨하탄 북부에서 비즈니스, 예술, 사업등의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성과 젠더 [ 편집 ]

그는 젠더에 대하여 상호보완론 (신학)을 주장하면서도, 각 젠더의 역할은 성경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동성애가 성경에 맞지 않다고 말하며, 맨하탄 선언에 서명을 하였다.

팀 켈러 “포스트모던 시대, 복음 전하는 7가지 방법 [ 편집 ]

팀 켈러 목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을 제시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5]

비기독교인들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쓰라.

비기독교인들도 존경하는 인물의 말을 인용하라.

비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의문을 이해하라.

비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

신앙은 절대 강요로 인해 생기는 게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닌 그 동기에 주목하라.

율법이 아닌 복음을 전하라.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과 작품 [ 편집 ]

저서 [ 편집 ]

Resources for Deacons: Love Expressed through Mercy Ministries (Christian Education and Publications, 1985) ISBN 0-9703541-6-9

(Christian Education and Publications, 1985) ISBN 0-9703541-6-9 Ministries of Mercy: The Call of the Jericho Road (P&R Publishing, 1997) ISBN 0-87552-217-3

(P&R Publishing, 1997) ISBN 0-87552-217-3 Church Planter Manual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2002)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2002) The Reason for God: Belief in an Age of Skepticism (Dutton Adult, February 2008) ISBN 0-525-95049-4

(Dutton Adult, February 2008) ISBN 0-525-95049-4 The Prodigal God: Recovering the Heart of the Christian Faith (Dutton Adult, November 2008) ISBN 0-525-95079-6

(Dutton Adult, November 2008) ISBN 0-525-95079-6 Counterfeit Gods: The Empty Promises of Money, Sex, and Power, and the Only Hope that Matters (Dutton Adult, October 2009) ISBN 0-525-95136-9

(Dutton Adult, October 2009) ISBN 0-525-95136-9 Generous Justice: How God’s Grace Makes Us Just (Dutton Adult, November 2010) ISBN 0-525-95190-3

(Dutton Adult, November 2010) ISBN 0-525-95190-3 King’s Cross: The Story of the World in the Life of Jesus (Dutton Adult, February 2011) ISBN 0-525-95210-1

(Dutton Adult, February 2011) ISBN 0-525-95210-1 The Meaning of Marriage: Facing the Complexities of Commitment with the Wisdom of God (Dutton Adult, November 2011) ISBN 0-525-95247-0

(Dutton Adult, November 2011) ISBN 0-525-95247-0 The Freedom of Self Forgetfulness: The Path to True Christian Joy (10Publishing, March 2012) ISBN 978-1906173418

(10Publishing, March 2012) ISBN 978-1906173418 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 (Zondervan, September 2012) ISBN 0-310-494184

(Zondervan, September 2012) ISBN 0-310-494184 Every Good Endeavor: Connecting Your Work to God’s Work (Dutton, November 2012) ISBN 978-0-525-95270-1

(Dutton, November 2012) ISBN 978-0-525-95270-1 Galatians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3) ISBN 978-1908762573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3) ISBN 978-1908762573 Judges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August 2013) ISBN 978-1908762900

(The Good Book Company, August 2013) ISBN 978-1908762900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 (Dutton, October 2013) ISBN 978-0-525-95245-9

(Dutton, October 2013) ISBN 978-0-525-95245-9 Encounters with Jesus: Unexpected Answers to Life’s Biggest Questions (Dutton, 2013) ISBN 978-0-525-95435-4

(Dutton, 2013) ISBN 978-0-525-95435-4 Romans 1-7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4) ISBN 978-1908762917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4) ISBN 978-1908762917 Prayer: Experiencing Awe and Intimacy with God (Dutton, 2014) ISBN 978-0-525-95414-9

(Dutton, 2014) ISBN 978-0-525-95414-9 Center Church Europe (Wijnen, Uitgeverij Van, 2014) Contributors are José de Segovia, Leonardo De Chirico, Michael Herbst, Frank Hinkelmann, Martin de Jong, Jens Bruun Kofoed, Daniel Liechti, András Lovas, David Novak, Stefan Paas and Martin Reppenhagen. ISBN 978-9-051-94480-8

(Wijnen, Uitgeverij Van, 2014) Contributors are José de Segovia, Leonardo De Chirico, Michael Herbst, Frank Hinkelmann, Martin de Jong, Jens Bruun Kofoed, Daniel Liechti, András Lovas, David Novak, Stefan Paas and Martin Reppenhagen. ISBN 978-9-051-94480-8 Romans 8-16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5) ISBN 978-1910307298

(The Good Book Company, February 2015) ISBN 978-1910307298 Preaching: 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 (Viking, June 2015) ISBN 978-0-525-95303-6

(Viking, June 2015) ISBN 978-0-525-95303-6 The Songs of Jesus: A Year of Daily Devotionals in the Psalms (Viking, November 2015) ISBN 978-0-525-95514-6

(Viking, November 2015) ISBN 978-0-525-95514-6 Making Sense of GOD: An Invitation to the Skeptical[7] Viking ISBN 9780525954156 ebk. ISBN 9780698194366

번역된 저서 [ 편집 ]

팀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를 정의롭게 만드는가 ( 최종훈 옮김, 두란노서원, 2012)[1] : 켈러는 이 책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정의를 포함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팀 켈러 읽기 (6) 후기 – 몇몇 반론에 답하며

팀 켈러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에 많은 분들이 여러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중 한 분께서는 자세한 비평글도 달아 주셨고요. 3주전 이름 빼고 거의 알지 못했던 켈러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항상 그래왔듯이 페북에 이런저런 단상을 쏟아놓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잘 몰랐을 뿐 그만큼 핫한 저자였다는 뜻이겠지요. 어자피 원글이 전문적인 신학적 분석이 아닌 감상평이고 논쟁을 일으킬 의도로 쓴 것도 아니었으니 이 반론글을 굳이 페이스북에 올리지는 않을 생각입니다만, 원글에 대한 이러저러한 반응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원글에 쓰려다가 지나치게 공격적일 것 같아 올리지 않았던 내용들을 모아 한번 정리해 놓을 필요는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제 켈러와는 이별하는 것으로!

먼저, 팀 켈러가 톰 라이트나 선교적 교회, 하나님 나라 개념을 나름대로 소화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이거니와 사실은 그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왜 켈러는 본인이 ‘실질적’으로는 빌어 쓰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본문이나 각주에 굳이 습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족을 붙이는 것일까요? 저는 켈러의 이런 모습을 보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이 미국판 홍길동은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혹은 부르지 ‘않는’ 것일까요? 물론 팀 켈러의 입장에서는 여성안수조차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인 PCA 교단에 속한 대형교회 목회자라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런 그를 ‘답답하다’고 평가하거나, ‘학’이나 ‘아웃복서’에 비유한 것이 불공평하거나 지나친 일이었을까요?

두번째로 ‘반성의 부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센터처치에 나오는 ‘상황화’를 언급하셨습니다. 여기서 저는 레슬리 뉴비긴의 <오픈 시크릿>에 나오는 흥미로운 구절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뉴비긴에 따르면 복음전도자가 성경을 수용자 공동체의 언어로 번역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주게 되면 그 때부터 성경이 그 부족의 전통문화와 선교사들이 전해 준 기독교 모두를 겨냥한 독자적인 비판의 근거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전통문화와 선교사의 기독교 모두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격랑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켈러는 위험을 무릅쓰고 ‘정통교리의 옷을 입은 서구 기독교’를 위에서 뉴비긴이 말한 ‘번역된 성경/번역된 기독교’의 ‘비판’과 그 결과 따라올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앞에 노출시킬 용기를 가진 분일까요? 켈러가 말하는 ‘상황화’란 혹시 그가 시공을 초월한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고전적 개혁주의의 교리 체계를 21세기 뉴욕의 다문화적 상황 속으로 세련되게 번역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반성’이라는 말은 마크 놀의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를 인용하자면, “내가 품었던 기독교(즉 서구기독교)가 일개 지역의 문화적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자, “이신칭의’와 ‘만인제사설’같은 전통적인 루터파 공식이 21세기 아프리카(여기서 ‘아프리카’는 세속화된 도시인 뉴욕이나, 다신교 사회인 일본, 힌두교 국가인 인도, 이슬람 사회인 파키스탄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에서 16세기 독일에서만큼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 진지하게 재고할 수 있을 정도의 결기를 품는 일입니다. 저는 그분이 ‘반성의 부재’라는 제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읽기를 권유했던 <센터처치>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책에서 켈러가 말하는 ‘상황화’가 제가 위에서 언급한 ‘반성’과 같지 않으리라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재 제 관심은 ‘세계기독교’입니다. 저는 켈러가 보수적인 신앙을 유지하며 뉴욕의 다문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훌륭한 목회자이자 신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교리의 체계에 잘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신학적 개념이나 운동들을 여러 모양으로 인용하고 활용하면서도 굳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족을 붙이거나, 모든 ‘새로움’을 자신이 믿고 있는 ‘개혁-보수-정통 교리체계’의 언어로 환원하고 그 질서 안에서 위계를 부여한 후에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정통교리 강박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저는 팀 켈러가 “세계기독교인”이라고 불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켈러가 독자로서의 제게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닌 이유이자, 그가 제가 떠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세계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두 저자의 말을 옮겨 보겠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회적 ‧ 신학적 ‧ 도덕적 범주는 역사적이고 상황적이지만 동시에 참다운 기독교 진리에 온전히 참여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역사는 모든 시대의 족속과 민족 그리고 교회를 포함하는 “세계기독교”의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는 복음주의 역사신학자 마크 놀의 말과, “나는 이제 나 자신의 교회 내에서만, 나 자신의 땅 위에서만 신학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신학하기를 시작했다. 나의 뿌리는 개혁교회이지만, 나의 미래는 하나의 교회다”라는 거장 위르겐 몰트만의 말입니다. 과연 이곳에 팀 켈러가 낄 자리는 있을까요?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 LIKEELLUL-서평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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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죽음 앞에서 더 깊어지는 신앙’ > 뉴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 중 하나는 위기를 만났을 때 신앙이 자동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자동적인 위로와 실존적인 능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글은 지난 3월 7일 미국 The Atlantic지에 실린 팀 켈러 목사의 기고문이다.

암 진단이 닥치기 전까지, 나는 평생 동안 다른 이들을 상담하던 목사였다. 이제 내가 했던 그 조언을 내가 들어야 한다.

인생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임박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에게 믿음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설명했다. 1975년 장로교 목사가 된 이후, 나는 수없이 많은 병상 옆에서 환자를 상담했고 때로는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에 함께하기도 했다. 최근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를 기록한 소책자, ‘죽음에 관해서(On Death)’를 출간했다. 그 책을 출간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2020년 2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 기독교인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장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캔 검사 결과, 복부 림프절이 꽤 비대해져 있긴 했지만 별로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고, 세 달이 지난 후 점검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즈음 내 책이 출판되었고 또 당시 뉴욕에 사는 우리 모두는 다 COVID-19 때문에 한창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내 몸 속에는 죽음의 사자가 단단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온라인에서 췌장암의 희박한 생존 통계를 보며 몇 분 동안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바로 옆에는 내가 쓴 ‘죽음에 관해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쓴 그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닥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나와 아내 캐시는 많은 시간을 눈물 속에서 보냈다. 우리는 둘 다 일흔을 지나고 있었지만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말짱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오십 년간 해오던 사역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캐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보, 난 일흔이 되면 정말로 노인처럼 느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계획이 있었고 또한 자녀와 손주라는 큰 기쁨이 있었다. 병이라는 건, ‘내가 정말로 엄청 늙었구나’라고 스스로 느낄 때나 찾아오는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이라고? 아직은 아니지.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지. 하나님, 지금 나한테 뭘 하시는 건가요? 성경 중에서도 특히 시편은 이런 우리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주님, 왜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오 주님, 일어나십시오. 왜 주무십니까?” “오 주님? 나를 영원히 잊으신 겁니까?”

죽음 앞에서, 그것도 자기가 생각하기에 부당한 이유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흔들리거나 또는 아예 믿음을 잃어버리는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몇 년 전 암에 걸린 한 여성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신자가 아닙니다. 믿음은 내게 아무런 힘이 되지 않습니다. 내게 이런 병을 주는 사랑의 하나님(personal God)을 나는 더 이상 믿을 수 없습니다.” 정작 암이 죽인 것은 그녀가 믿던 하나님이었다.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갑자기 나는 내가 수술대에 누운 외과 의사처럼 느껴졌다. 내가 환자들에게 하던 그 조언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 중 하나는 위기를 만났을 때 신앙이 자동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자동적인 위로와 실존적인 능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관한 합리적이고 또 의식적인 인정에도 불구하고 불치병 진단은 당장 내 속에서 무척이나 강력한 심리적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꺼져가는 빛을 항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라는 딜란 토마스(Dylan Thomas)의 조언에 따르는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도 안 돼, 난 죽을 수 없어. 이건 다른 사람들한테나 생기는 일이지 나한테는 아니야.” 이런 터무니 없는 말을 소리내서 말했을 때, 나는 바로 이 착각이야말로 그때까지 내 마음 속에서 나를 움직이던 실질적인 작동 원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화 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는 죽음에 대한 부정이 우리 문화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삶이 이러한 부정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그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죽음에 대한 부정이 우리 곁을 떠난 적은 없다. 16세기 개신교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 것처럼 일을 벌이면서 살고 있다. 죽은 시체를 볼 때면 아주 잠시 덧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하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순간 우리 마음은 다시금 내 자신의 영속성이라는 생각으로 고정된다.” 죽음은 우리에게 추상적인 무엇일 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죽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현실 속에서 죽음은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하나님과 내세에 대한 우리의 믿음 또한 종종 추상적인 차원에 머문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굳이 믿음이 우리에게 정신적 동의 내지 수긍, 그 이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연극이나 영화 속 전투에는 무대 소품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내 마음에서 비로소 현실이 되는 순간, 나는 나의 믿음 또한 내 마음에서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 나는 하루를 견딜 자신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에 대한 이론적 생각은 이제 내 생명을 붙잡는 진리가 되거나 아니면 폐기 처분할 쓰레기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나는 단지 종교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현실을 거부하는 가운데, 평생 가졌던 신념마저 사라지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나는 또한 목사로서 단지 명목상에 불과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나 또는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우주에 대한 일련의 믿음을 가지고 산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은연 중의 믿음은 물질 세계가 저절로 생겨 났고 또한 우리가 죽은 후에 갈 초자연적인 세계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작가 줄리안 반스(Julian Barnes)가 주장했듯이 죽음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의 항목이며, 사람들은 반스가 가졌던 생각을 활용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차단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세속적인 믿음이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비종교인들조차 종종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유한성과 죽음이 주는 확신이 마침내 당신이라는 존재를 관통할 때, 우리를 무너뜨리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그 현실을 대면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더 큰 은혜와 사랑과 지혜로 보낼 방법은 없는 걸까? 나는 분명히 있다고 믿지만, 거기에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즉, 머리와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내가 지금 머리와 마음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각각 추론과 느낌을 의미하는 이 두 단어의 기능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현대적 관점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은 마음이 생각과 의지 그리고 감정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본다. 잠언은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대로다”라고 말한다. 즉, 합리적인 신념과 경험이 내 생각을 바꿀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결코 내 속에 일어나는 변화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신념을 재검토함으로써 내 신앙을 강화하기로 했다. 과연 신앙이라는 게 죽음을 상대할 수 있는지 말이다.

정형외과 의사인 폴 브랜드(Paul Brand)는 의사 인생 전반부를 인도에서 그리고 나머지를 미국에서 보냈다. 최근에 낸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통을 피하려는 사회를 만났습니다. 환자들은 내가 이전에 치료했던 환경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안락한 수준에서 살고 있었지만 고통을 처리하는 그들의 능력은 훨씬 취약하고 고통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훨씬 더 심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풍족한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악의 존재와 고통 그리고 죽음 때문에 더 고통받는 것처럼 보일까?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그의 책 ‘세속 시대(A Secular Age)’에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의 방법과 정의라는 문제 때문에 고민했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고통이 하나님의 존재를 말이 안 되게 한다고는 결론 내리지 못했다고 썼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부적절함이나 죄성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다 편안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식의 현대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 인간은 자신의 논리적인 능력에 너무도 자신감을 갖게 된 나머지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다면 아예 고통이란 없다는 식으로 가정한다고 테일러는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이 목격하거나 인내하는 고통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처리할 정도로 위대한 신이 있다면, 당신이 결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해도 그런 고통을 허용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진 위대한 신도 있기 마련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가 행하시는 선과 악의 모든 이유를 다 알 수 있다고 확신하거나 또는 그 하나님이 항상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물을 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테일러의 요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갖고 있는 지나친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혼란을 자아낼 뿐이라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역사적 개신교의 정통과 일치하는 공개된 나의 믿음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내가 실제로 갖고 있던 지식까지도 함께 살펴보아야만 했다. 내 믿음이 사실은 내가 사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행여 무의식적으로나마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가정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삶은 다 내 중심으로 잘 돌아가야 하고, 이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였다. 내가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받아들이면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내 직관에 반하는 것이지만, 심오한 차원에서는 해방감을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만큼 작고 유한하다고 가정하는 것이 맘이 편할지는 몰라도, 그것은 결코 분노에 대한 치료법이 될 수 없다.

머리가 필요한 또 하나의 영역은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미 부활절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한 상태였다. 암 진단을 받기 이전까지만 해도 부활은 내게 사실상 상당 부분 이론적인 문제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숱한 비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믿음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Flying Spaghetti Monster, 기독교를 패러디한 종교의 숭배 대상물 – 역자 주)을 믿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를 제시한 영국의 성경학자 톰 라이트(N. T. Wright)의 작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제 나는 과거와 비교할 때 훨씬 큰 회의론적 생각을 가지고 톰 라이트가 연구한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는 쉽게 설득되고 싶진 않았지만, 그의 글을 다시 읽어 가면서 그가 내세우는 주장이 오히려 과거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공정하게 보였다. 그의 책은 내가 발을 디딜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그럼에도 내게는 부활을 믿는 데 단지 정신적 동의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했다.

추상적인 믿음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념 사이의 틈을 메우려 애를 쓰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역할이다. 초기의 미국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주장했듯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증거하는 꿀의 달콤함을 믿는 것과 실제로 꿀을 먹고 그 달콤함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꿀의 단맛을 혀로 느끼는 것은 꿀이 달다는 그 어떤 합리적인 추론보다 꿀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져다 준다. 마찬가지로 사랑과 능력 그리고 지혜와 같은 속성을 가진 하나님을 믿는 것과 마음 속에서 그런 하나님의 실재를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성경은 감각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한다고 시편 기자는 말한다.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에베소서는 말한다.

1273년 12월 6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그의 기념비적인 책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저술을 중단했다. 친구 레지날드가 왜 그런지 물었을 때, 아퀴나스는 그가 쓰고 있던 모든 신학을 “짚처럼 초라하게 보이게” 만드는 하나님에 관한 경이로운 체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신학 자체를 부인하려고 아퀴나스가 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에 관한 지도를 그리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경험하는 것의 심오한 차이를 경험했던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하나님에 대한 나의 체험이 “황홀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과거와 비교할 때 분명히 더 깊고 더 달콤했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내게는 세 가지의 훈련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 내가 만든 하나님을 더 이상 만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시편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은 당연히 더 인자하고 덜 공격적이지만, 내 마음이 너는 희망이 없다거나 또는 내가 무가치한 존재라고 말할 때 내가 만든 그런 착한 하나님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시편이 드러내는 하나님은 너무도 복잡하지만, 그렇기에 어려운 그 하나님은 감히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시편을 통해 나는 점점 더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바로 그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 훈련은 에드워즈와 같은 초기 작가들이 영으로 ‘혼자 소리내어 말하기(soliloquy)’라고 부르던 것이다. 시편 42편과 103편에서 우리는 그런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 저자가 말하는 대상은 하나님도 또 독자도 아닌 자신의 영혼, 자기 자신이다. 그들은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마음을 향해 말했다. 그들은 마음을 샅샅이 살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을 새롭게 했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로 인해 불이 붙을 때까지 마음을 향해 진리를 선포했다.

나는 내가 가장 굳건하게 믿고 있는 믿음을, 또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사랑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다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야만 했다. 그러면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은 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가 쓴 것처럼 “일종의 조율 … 부드러움, 평화, 기쁨, 사랑, 행복, 고귀한 만나(manna) … 평범함 속의 천국”으로 나를 이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리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영적 독백을 하고 기도를 해도 이런 음악이 내 속에서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이라는 현실과 그분의 약속은 내 속에서 점점 더 커져갔다. 나의 상상력은 점점 더 선명하게 부활을 시각화했고, 내 마음은 그 속에서 안식을 찾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게 특히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단지 내가 믿고 한 켠에 제껴두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나를 지탱하는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를 했다. 때로는 기도할 때 짜릿한 전기가 통하기도 하지만 그 마지막은 언제나 평안이다.

“오늘 밤 잠이 들고 내일 아침 당신의 은혜로 인해 눈을 뜰 때 내게 기쁨을 주는 생생한 사실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그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고 또한 나의 의를 위해 다시 부활하셨기에 내게도 최종적인 부활이 임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 사실이 내 안에서 커짐에 따라 내가 사는 방식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내가 느끼는 기쁨과 두려움에 관해서다. 암 진단을 받은 이후로 캐시와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그러니까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편안함과 안정을 더 뿌리내리려고 노력할수록, 우리는 그 천국을 오히려 더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캐시는 우리가 휴가를 보내는 친숙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깊은 위안과 휴식을 찾는다. 그중 어떤 곳은 전선에 전등만 달린 오두막이지만, 그곳은 캐시에게 일종의 향수를 부르는 곳(Sehnsucht)이고 그녀가 갈망하는 장소다. 내게 있어서 가짜 구원은 직업적인 목표와 성취, 즉 새로운 책, 또 다른 사역 프로젝트, 교회가 이루는 또 하나의 업적이다. 그러다 보니 해변에서의 휴가가 끝나갈 때가 되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서로 정반대이면서도 또 이상하게도 똑같았다.

휴양지에 도착하자마자 캐시는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평을 하곤 했고,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그녀는 휴가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녀는 오두막 현관의 난간에 자신을 수갑으로 채워서라도 그곳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서 사역에 복귀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곤 했다. 자연스럽게 해변에 앉아서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역에 관한 브레인스토밍 내지 계획표 작성으로 보냈다. 그렇게 온전히 휴가를 즐기는 법을 모르던 우리 두 사람은 휴가가 끝나도 재충전이 되어서 집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초록색의 키 작은 제다이 마스터가 했던 말이다. “그는 평생 동안 먼 미래인 지평선만을 바라보았다. 단 한 순간도 그는 현재 있는 그 자리에 마음을 둔 적이 없었다.” 캐시와 나는 좀 더 현명했어야 했다. 아니,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뭔가 좋은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기대할 때, 그래서 그 속에서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찾을 때, 그것이 뭐가 되었든지 결국은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결코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18세기 찬송가 작가 존 뉴튼(John Newton)은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묘사했다. “자존심과 자아라는 내적 시련을 통해서 내가 너를 해방시키고 이 땅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너의 모든 시도를 다 깨뜨리는 이유는 바로 네가 오로지 나를 통해서만 네 자신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와 캐시는 놀랍게도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을수록 이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이 세상에게 내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아주 단순한 것들에서 기쁨을 찾는다. 물 위에 뜬 태양과 꽃병 속의 꽃에서부터 서로를 포옹하고 섹스를 나누며 대화를 하는 것 등등.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준다. 이런 사실에 우리는 많이 놀랐다.

이런 변화가 단 하룻밤에 일어난 혁명은 아니다. 하나님이라는 실재가 내 마음을 더 많이 채울수록, 비록 느리고 고통스럽고 또 많은 눈물이 따라왔지만,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단순한 기쁨이 내 하루하루를 채우는 행복의 원천이 되어갔다. 더 나은 용어가 없기에 나는 이런 내가 천국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나는 이 물질 세계 속에도 실로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넘친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지나친 감상에 빠져서 또는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인생에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은 없었고,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위로로 가득했던 날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요즘처럼 슬픔에 가득한 날을 보낸 적도 없었다. 우리 부부의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 육 년 전에 남편을 암으로 잃었다. 평소에는 괜찮아 보이는 그녀지만 지금도 갑자기 떠오르는 어떤 기억이나 생각 하나에 그녀는 쓰러질 것처럼 휘청대고 또한 슬픔에 허우적거린다.

맞다. 그건 조금도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휘청거림에도 감사한다. 그런 슬픔과 아픔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방향을 조정해서 머리가 주는 확신과 마음 속 과정을 재정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했고 또한 어떻게 기쁨을 누렸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위안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달콤하다.

원제: Growing My Faith in the Face of Death

출처: www.theatlant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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