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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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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하나님(엘샤다이)(악보/영상/가사)- 윤주형 목사님 (G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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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하나님(엘샤다이)(악보영상가사)- 윤주형 목사님 (G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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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하나님(엘샤다이)(악보/영상/가사)- 윤주형 목사님 (G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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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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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샤다이(El Shaddai)는 히브리어로 어떤 의미인가요?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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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5)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 주일예배 | 하늘품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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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5)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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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8)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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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8)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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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설교)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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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설교)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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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샤다이(El Shaddai)는 히브리어로 어떤 의미인가요?

엘 샤다이(El Shaddai)는 히브리어로 어떤 의미인가요?



엘 샤다이(El Shaddai)는 하나님의 히브리어 이름 중 하나입니다.



구약에서 등장되는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한데요,

주로 야훼(Yhwh)와 엘로힘(Elohim)이 사용되는데,

야훼가 약 6700회, 엘로힘이 약 2500회 정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엘 샤다이 (El Shaddai) – 창 17:1, 출 6:3

엘 엘리욘 (El Elyon) – 창14:19

엘 로이 (El Roi) – 창 16:13

등의 엘(El)이 들어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출처 : www.zazzle.com>



오늘은 이 중에, 엘 샤다이(El Shaddai)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엘(El)은 유일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샤다이(Shaddai)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의 El Shaddai는 주로 “전능하신 하나님(God Almighty)”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 샤다이(ShaDai)가 ‘파괴하다’, ‘압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리슈도드(leShDoD)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도둑,강도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데드-ShodDeD 역시 같은 어근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 샤다이(El Shdai)의 ShaDai는 문법적으로 봤을 때

“가슴”을 뜻하는 ShaD와 더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히브리어에서는 어미에 “i”나 “ai”가 오게 되면

대부분 “나의”라는 의미가 됩니다.

위와 같이 해석했을 때, 엘샤다이는 “하나님은 나의 가슴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가신다구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머니의 가슴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사랑, 헌신, 따뜻함..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젖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엘 샤다이는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원어의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원어로 읽고 싶으셨다면, 더이상 미루지 말고 시작해보세요!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8)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8)

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3) 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75세였고, 그의 아내 사래는 65세인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사실상 자녀 생산이 불가능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여서 이내 자식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속절없이 가는 세월에 점점 늙어만 가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람이 후손에 대한 기대가 점점 희미해져갈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키고 너에게 큰 상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에게 주의 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았으므로 내 집안의 종이 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고 말씀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창15:1-6)

이후 10년이 지난 아브람 나이 85세 때에, 사래가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자 남편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창16:2) 여호와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시니 당신은 내 여종과 함께 잠자리에 드세요. 아마 그녀를 통해서 자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사래가 자기 몸종을 첩으로 내준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내의 이러한 요구가 분명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어긋나는 것으로 철저히 인간적인 방법임을 알고서도 아내에게 한 마디 반대도 없이 아내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과 잔꾀로 성취해보려는 아내와 그 뜻을 같이 한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인격체인 여종 하갈을 생산의 도구로 이용한 죄악,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일부일처제를 파괴한 죄를 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스스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섣부르게 행동하므로 장차 큰 비극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의 기대와는 달리 아브람 가정은 하갈의 몸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로 인해 긴장과 불화가 생겨났고,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 이 세 사람 모두 심각한 갈등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잉태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16: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이 말씀대로 훗날 첩의 소생 이스마엘은 오늘날 아랍 민족의 시조가 됨으로 해서 중동 전쟁의 뿌리 깊은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인간의 얄팍한 지혜로 이뤄보고자 하는 것은 교만일 뿐 아니라 이웃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악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고 약속한 자식은 아브람과 한 몸인 사래에게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첩의 자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래가 낳은 자식과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자식을 분명히 분별해서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22-23을 보겠습니다.

(갈4:22-23)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9:7-8)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사래의 뜻을 따라 하갈이 낳은 자식은 ‘육체를 따라 낳은 자식’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사래가 낳은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 ‘약속의 자녀’입니다. 아브람의 상속자는 ‘약속의 자녀’라야만 합니다.

2.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종의 자식을 낳은 후 13년이 지난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새롭게 확신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후손에 대한 약속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자 끝까지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조급하게 하갈과 동침하여 가정 분란의 갈등과 고통을 초래했던 아브람에게, 그의 나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17:1-2)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아브람은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문제아로 자라가는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믿음 없었던 행동에 대해 후회되기도 했지만 지난 13년 동안, 즉 나이 100세가 다 되어가는데도 하나님께서 후손에 대해 한 마디 말씀이 없었던 것이 불안했습니다. 몸은 날로 노쇠해져 가고 마음 역시 가정 갈등으로 인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 그리고 아내 사래의 뜻에 따라 종의 자식을 낳은 일 등으로 하나님께서 혹시 자신을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으로 좌절하고 낙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후손에 대한 모든 소망을 접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백수(白壽)의 나이 99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el shad·dai)으로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언약을 다시 한 번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제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며 절망할 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며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창12:3)는 언약을 확실하게 이루시겠다는 뜻으로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창17:4-5)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한 가정의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 곧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으로 개명(改名)하신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을 단순히 한 가문의 존경받는 조상이 아니라, ‘모든 믿음을 가진 사람의 조상’,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갈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도 언약에 걸맞는 이름, 즉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로 개명하셨습니다. 분명히 90세의 할머니 사라의 몸을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7:15-16을 보겠습니다.

(창17:15-16)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 나이 99세에 찾아오셔서 언약을 재확인하시고 그 이름을 ‘아브라함’, 즉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고 개명해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았습니다. 로마서 4:19-22을 보겠습니다.

(롬4:19-22)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엘”(EL)은 ‘전능하신 하나님’(The Strong One)이란 뜻이고, “샤다이”(Shadday)는 ‘어머니의 젖가슴’(the breast)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엘 샤다이”는 ‘어머니 젖가슴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기적을 행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 먼저, “샤다이”(Shadday)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든지 풍족하게 양육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따라 나왔던 이방인들이 광야에서 날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음에도 애굽에서 살던 때 먹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괜히 나왔다며 이렇게 원망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애굽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도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이같은 원망불평이 금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영양 실조되어 죽어가는 것처럼 소리쳐 울며 모세에게 대들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견디다 못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는 주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이 모든 백성을 제가 잉태하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민11:1-14)

이러한 모세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백성들을 돌보는 짐을 너 혼자 지도록 하지 않고 장로들 중 70명을 세워 함께 지도록 하겠노라.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니라. 그리고 또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라. 내일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니라. 하루만 먹고 그치지는 아니할 것이니라. 이틀만도 아니고, 닷새만도 아니고, 열흘만도 아니고, 스무 날 동안만도 아니라, 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줄곧 그것을 먹게 될 것이니라.’

그러자 모세가 되물었습니다. ‘장정만 60만명입니다. 애들과 노인들, 여자들을 모두 하면 200만명이 넘습니다. 그들을 먹이려고 애굽에서 나올 때 끌고 나온 양과 소를 다 잡는다 해도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바다에 있는 고기를 모두 잡은들,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이제 너는 내가 말한 것이 너에게 사실로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볼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일으켜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을 빙 둘러 이쪽으로 하룻길 될 만한 지역에 떨어뜨리시어, 땅 위로 두 자쯤 쌓이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왠 떡이냐며 정신없이 주워 먹는데 씹지도 않고 삼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원망불평을 일삼았던 무리들을 진노하시자 그들이 고기를 입에 문채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땅에 묻고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습니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원망불평하다 식탐(食貪)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양육하시되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시고자 때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면 부족함이 없이 양육하시는 분이십니다. 신명기8:1-10을 보겠습니다.

(신8:1-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들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엘 샤다이”, 모든 인생들의 ‘양육자’이심을 믿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샤다이”(Shadday)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우리 인생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베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 유명한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힘의 상징인 머리털이 밀리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쳐 삼손을 결박하자 과연 힘을 전혀 쓸 수 없었습니다.

삼손은 그 길로 블레셋에 끌려가 감옥에서 멧돌을 돌리는 비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마치고 축제를 시작할 때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하기 우상숭배 신전에 세웠습니다. 삼손이 믿는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숭배하는 우상 ‘다곤’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삼손이 신전 기둥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그 신전에는 블레셋의 모든 지도자들과 수많은 백성들로 가득했는데 신전 지붕에만 3천명이 있었습니다.

이때 삼손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리고 신전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자 신전이 한 순간에 무너져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전부 압사당했습니다. 그 때 죽은 자들이 삼손이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습니다.(삿16:1-31)

삼손은 자기 민족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힘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새 힘’을 주십니다. 이사야 40:28-31을 보겠습니다.

(사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전능하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에게 베푸시는 ‘새 힘’이 날마다 충만하여 모든 일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샤다이”(Shadday)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우리 인생들을 만족케 하신다는 것입니다.(He is the Satisfier, who pours himself into believing lives). ‘만족케 하신다.’는 것은 ‘풍족하게 하신다’(sufficiency), ‘충만하게 하신다’, ‘부요하게 하신다’(enrich),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신다’(fruitful) 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16-18을 보겠습니다.

(창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히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처럼 ‘엘 샤다이’는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더 차고 넘치도록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에베소서 3:19-21을 보겠습니다.

(엡3:19-21)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B.C.853년경 모압과 암몬, 마온이 연합군을 만들어 유다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즉시 전 백성에게 금식명령을 내려 기도에 동참하도록 하고 성전에 나가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주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세계 만민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아니십니까? 권세와 능력이 주께 있으니, 아무도 주께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이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지 아니하셨습니까? 이 땅에 주의 이름을 위해 주의 성전을 건축하고 만일 전쟁이나 전염병이나 기근과 같은 재난이 닥쳐온다면, 하나님 앞, 곧 주의 이름을 빛내는 이 성전 앞에 모여 서서, 재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겠고, 그러면 주께서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이제, 암몬과 모압과 마온이 우리를 저렇게 공격하려고 하나이다. 우리를 치러 온 저 큰 대군을 대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고, 어찌할 바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이같은 기도에 즉각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찬양드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가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그리고 거룩한 찬양대를 만들어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소리높여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며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연합군으로 하여금 서로를 공격하도록 만들어 전멸시켜버렸습니다. 연합군 중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을 데리고 가서 전리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전리품 가운데는 상당히 많은 재물과 옷과 보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마음껏 탈취했는데, 전리품이 너무 많아서 운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리품이 이처럼 많아서, 그것을 다 거두어들이는 데만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그들은 그 골짜기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불렀습니다. ‘찬양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적군을 이기심으로 유다 백성을 기쁘게 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연합대군을 치셨다는 소문을 주변 국가들이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태평성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구하는 것 이상으로 축복하셔서 전승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전리품을 거두게 하시고 나라의 태평성세를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뜻대로 잘 통치할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을 구했을 때,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까지 베풀어주시되 전무후무할 정도로 축복하셨습니다.(대하1:9-12)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에게 ‘엘 샤다이’의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므로 온갖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안석수목사

*본문/ 룻 1:20-21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귀환했습니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자신을 반기는 고향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자신을 ‘나의 즐거움’이란 뜻을 지닌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란 뜻의 ‘마라’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형편이 여호와의 징벌로 괴롭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에 걸쳐 반복되는 ‘전능자’란 단어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전능자는 원어로 ‘샤다이’인데, ‘샤다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에 창세기 17장1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99세 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예전에 주신 약속, 즉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대한 확증의 말씀을 주시면서 자신을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을 로마서 4장 19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즉, 절대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첫 고백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입술에서 엘 샤다이‘가 선포된 것이 왜 의미가 있을까요? 나오미는 지금 모압에서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함으로써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엘 샤다이‘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오미의 처해진 상황을 보면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압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려운 사정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다니고, 특별집회에 참석하고, 주일예배도 열심히 드려서 은혜 받고 회개하고 영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할지라도, 집에 돌아와 정신 차리고 보면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가 달라졌단 말입니까?

나오미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비장한 각오와 발빠른 결단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변한 것이 없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혀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끼니가 걱정되고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나오미가 가장 먼저 선포한 것이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다 보면 영적으로 충만해졌을지 몰라도 현실은 여전히 실패한 인생이고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들 입술로 먼저 선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베푸시는가를 보고 난 이후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쳐야 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귀환하고 회복의 첫걸음을 시작한 직후 첫 번째 고백으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선포한 것처럼 말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입술에서 선포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고백이 갖는 또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는 인생의 놀라운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의 상황이 어떠합니까? 가장의 실수와 착오로 가정이 완전히 몰락했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이 가정을 향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반전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만약 엘리멜렉이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현실 도피하고 궤도 이탈하여 모압으로 가지 않았다면 룻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 계보를 통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수 있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엘리멜렉의 치명적 실수가 오히려 다윗의 계보를 연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놀라운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의 관문, 그 첫 시작이 바로 나오미가 외쳤던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역사의 관문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문이 바뀌고, 우리의 교회가 바뀌고, 우리의 인생이 바뀌는 그 관문 앞에서 먼저 ’엘 샤다이‘를 선포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될 때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20년 뒤에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십시다. 그때 우리는 정말 놀랍게 역사하시는 대반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미국 칼빈신학교의 루이스 벌코프 교수는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입니다.

“엘 샤다이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엘 샤다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 그분의 주권 가운데 있다. 창조와 보전이, 선택과 혹은 유기가, 만물의 운행과 통치가 엘 샤다이 그분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우리 인식 속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면 ‘엘 샤다이’이고,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느라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시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베푸시는 것만이 ‘엘 샤다이’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우리 한계 안에 가두어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디베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의 일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 어부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는데도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프로 어부의 손에 물고기가 잡히는 것이 기적일까요? 아니면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이 기적일까요?

베드로는 그날 밤, 밤새 그물질을 하면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깊은 절망과 무력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그 절망의 밤은 다음날 그의 생애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벅찬 만남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 베드로가 만선의 포만감에 사로잡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면 다음 날 하루 종일 기뻤을지 몰라도 평생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벅찬 만남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도 ‘엘 샤다이’의 역사이지만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것도 ‘엘 샤다이’의 역사인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밤새 베드로가 던지는 그물 주변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우습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밤새도록 우리 인생의 물고기를 쫓아내시는 하나님도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셔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며, 우리 삶에 물고기가 마구 몰려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전체를 바라보는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환경은 전혀 바뀐 것 없는 중에도 ’엘 샤다이‘를 선포한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상황과 상관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저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역개정성경에서 ‘전능자‘란 단어를 찾아보면 전능자란 단어가 모두 48번 나오는데, 성경 66권 가운데 이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놀랍게도 욥기라는 것입니다. ’전능자‘가 성경에 등장하는 48번 가운데 무려 31번이 욥기에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 인생의 고통의 터널을 지나갈 때, 고난의 험준한 길을 만날 때가 바로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 찾아오시는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것입니다. 보릿고개가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때, 우리 선조 어른들의 믿음이 우리보다 훨씬 더 굳건하고 생생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물고기가 몰려오는 것이 아닌 인생의 물고기를 쫓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때라면, 나오미나 욥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지금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를 만날 기회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영안입니다.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살아가다보면 영적으로 충만해졌을지라도 현실은 여전히 실패이고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이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입으로 먼저 선포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셔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요, 우리 삶에서 물고기가 마구 몰려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게 해 주심과 우리 인생의 물고기를 쫓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을 때에 나오미와 욥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기회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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