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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O형인 윤여정에게는 역시 O형의 개그본능, 낙천성이 돋보이네요.
윤여정 라이브 포털 – 매력 분석 | 이름을 몰라도 스타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신개념 취향 검색, 마이셀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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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매력도
실제 혈액형 vs 데이터 혈액형
실제 혈액형이 같은 배우
긍부정 언급
재능 분포
언급량 5주간 추이
조영남 나이 노래 딸 고향 윤여정 혈액형 학력 과거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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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영어 가족 미드 혈액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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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지식인
윤여정 영어 가족 미드 혈액형 본문
‘넝굴당’ 윤여정, 유준상 혈액형 B형이라는 말에 ‘실망’ : ZUM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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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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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편집]
출연 작품[편집]
수상 및 후보 목록[편집]
참고 사항[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조영남 나이 윤여정 수상에 바람 피운 사람에게 최고의 한방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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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조영남 자녀 아들 직업 사진 큰아들 둘째아들 (나이•키•학력•고향•혈액형•프로필) 윤여정 프랜시스 맥도먼드 다니엘 칼루야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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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나이 노래 딸 고향 윤여정 혈액형 학력 과거논란
이름
조영남 (趙英男, Jo Young-nam)
출생
1945년 5월 13일(음력 1945년 4월 2일, 75세)
일본령 조선 황해도 평산군
본관
배천 조씨
국적
대한민국
신체
O형
학력
강문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성악과 중퇴
서울대학교 성악과 명예학사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데뷔
1968년 노래 ‘딜라일라’
종교
개신교
가족
동생 성악가 겸 교수 조영수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1963년 말 데뷔해 한국 대중음악과 성악을 가요에 접목시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 사실 본업인 음악 뿐 아니라 작가, 화가, 방송인,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왔다. 솔비나 구혜선, 홍서범 등도 종합 예술인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보다 앞선 조영남이 원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실상은 성희롱이나 각종 사건사고, 그림 대작 등 여러가지 구설수나 계속해서 만들어대는 트러블 메이커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황해도 출신이라 분단의 아픔과 지역감정의 대립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역감정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내포한 ‘화개장터’라는 곡을 불렀다. 참고로 그는 작곡만 했고 작사는 친구인 김한길 전 의원이 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1945년 5월 13일(음력 1945년 4월 2일), 황해도 평산군[5]에서 태어나, 1.4 후퇴의 피난 행렬에 섞여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이주했다.
조영남은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1962년에 한양대학교를 자퇴하였는데, 자퇴의 이유가 재밌다. 2013년 10월에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 조영남은 한양대 성악과 후배 김승일과 함께 출연하여, 한양대를 자퇴한 이유를 설명하며 “2학년이 됐는데 신입생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 예쁜 여자가 들어왔었다. 그 여자가 한양대학교에 오는 걸 매일 몰래 봤다. 걔가 입학한 후로 온 정신은 ‘그 애와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였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내가 사회를 보면서 걔를 의식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약혼자가 있는 여자였다. 학교에서 그 여자와 내가 데이트 한다는 소문이 났고 약혼자가 날 찾아오기까지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조영남은 “학교에 퍼진 소문 때문에 자퇴하게 됐다. 다시 공부해서 서울대에 갔고 그 여자는 파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해서는 한양대 자퇴에 대해 “잘렸다”는 말을 하였다. 즉 이날 방송에서 조영남은 “내가 한양대학교에 다니다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잘린 적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에 출연진들이 “연애를 한다고 학교를 잘리냐?”며 의아해했고, 조영남은 “약혼한 여자와 눈이 맞은 거였다. 그 때는 내가 전액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예쁜 걸 어떻게 하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자퇴서를 냈다. 이후 공부를 해서 다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후 1964년에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하였는데, 1968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대 성악과도 이후 자퇴하였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서울대학교 측에서 조영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서울대학교 자퇴의 이유에 대해 조영남은 2010년 9월 방송된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서울대 음대를 다니던 중 미8군 오디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수입이 좋아 더 이상 학교 다닐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자퇴했다”고 밝혔다. 조영남은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하다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쇼룸에서 팝송을 부르다 성악을 그만두고 상업가수의 벌이가 좋은 것을 이유로 상업가수로 전환, 1968년에 ‘딜라일라’라는 번안곡으로 데뷔한다.
이 딜라일라로 방송에 데뷔했는데,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데뷔하자마자 굉장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본인도 본인 저서나 출연방송에서 본인은 거의 무명 시절은 없었던 편이라 회고하곤 한다. 이후 텔레비전이 지금처럼 절대적인 대중매체가 되기 전 시절이었음에도 TV에 자주 나와 TV를 자주 못 보던 서민들도 가수 조영남을 아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지금 젊은 층은 (조영남의) 히트곡이라고 하면 화개장터 외에는 아는 노래가 없지만, 조영남과 같은 세대거나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윗세대 어르신들의 경우 1970년대 유명하던 대중 클래식 가수였다고(실제로는 번안 스탠다드팝 가수지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유명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대부분 잘 모른다는 것은 팩트다. 어차피 70년대 최고 인기까지는 아니었으니… 그때 진짜 최고는 오히려 나훈아였다. 1980년대에는 조용필이 다 쓸어버렸고, 이후로는 이문세나 변진섭 같은 발라드왕들도 튀어나왔으니, 대중음악매니아가 아니고서야 조영남 노래까지 기억할 메모리는 부족하다. 1970년대 LP로만 음반을 발매하던 시절에 7만 5천 장을 팔았다고 하니 1990년대 기준이면 밀리언셀러 못지 않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 가수인 것.
스타가 되어 돈을 벌고 좀 먹고 살 만해진 뒤엔 본인이 한때의 굶주림에 상업가수로 전향한 것을 후회했는지 동생인 조영수가 성악가가 되길 원하자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고 한다.
윤여정과 결혼
1971년, 군생활 도중 알게 된 배우 윤여정과 결혼한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화집회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휘한 후 빌리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수로 돌아오면서 활동도 왕성했지만, 집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끝내는 윤여정과도 갈라섰다. 스스로도 윤여정과 갈라섰을 때를 매우 반성하지만, 진심으로 윤여정을 위한다면 윤여정의 ‘ㅇ’조차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사실 조영남은 옛날부터 악명높은 바람둥이였는데, 결혼하고도 그 버릇을 통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돈도 한 푼도 벌지 않았다. 오죽하면 쌀독에 쌀이 없던 날이 있던 날보다 많았다고 했을 정도다. 그래도 윤여정은 결혼생활동안 조영남에게 헌신적이었고, 7~80년대 미국에서 두부 구하기가 어렵던 시절 두부를 좋아하던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무릎팍도사 윤여정 편을 보면 알듯이 윤여정에게는 이게 엄청난 트라우마다.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조영남의 ‘ㅈ’조차도 꺼내지 않았으며, 그 기세등등한 강호동과 유세윤도 몸 둘 바를 모른 채 진행을 했을 정도. 물론, 조영남 본인도 직접 “그녀가 입을 열었다면 조영남이란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당했을 것”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 그래놓고는 나중에는 윤여정이 못생겨서 같이 잘 수 없다는 초특급 망언을 했다. 일단 당신부터 거울이나 보쇼!
지금이야 양원경처럼 결혼 생활 내내 개막장 짓거리를 저질렀다거나, 송종국처럼 불륜(간통)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등의 예들처럼 어마무시한 사고를 친 것이 아닌 이상, (이혼에 대한) 인식은 제대로 잡혀서 이혼하고도 누구든 응원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저때 이혼이라는 건 여자 연예인들에게 있어서는 마약 복용 같은 수위 높은 사고를 저지른 후 브라운관에 복귀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동급으로 여겨졌을 만큼 사회에서 매장당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아 현정아, 내 때는 예수재림이었어! 조영남과 이혼을 했던 윤여정 역시 그 때문에 매장당할 뻔했지만, 본인과 가까웠던 김수현 덕분에 생활연기인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재기에 성공했다. 이러니까 조영남의 ‘ㅈ’만 들어도 경기할 만큼 증오하는 것은 당연지사. 윤여정에게는 당장 지우고 싶은 악몽이 바로 그 때다. 그런데도 조영남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를 “첫번째 결혼시절”이라고 말한다. 온갖 쓰레기짓을 다 하고 살았으니 잘도 편했겠지! 윤여정, 그리고 아들과 함께 지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과 함께 당시 세 가족이 함께 찍었던 사진을 이용하여 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조영남은 이혼 후에도 정신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과 엽색 행각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자주 여성지에 이름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은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자유 연애, 결혼 제도에 대한 실험이라며 되도 않는 변명을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그냥 쓰레기 같은 할배. 이 사람 이상의 개막장은 임택근 정도가 있다. 조영남이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로부터, 특히 중장년층 어르신들에게 평판이 극도로 나쁜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한테 이미지가 좋냐면 그것도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금껏 계속 방송에 잘도 나왔었는지 아이러니할 따름.
가수 은퇴 후 활동
이혼 후에는 방송에 인생을 올인하여 체험 삶의 현장으로 대표되는 체험 다큐 형태의 방송을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 2016년 5월 23일까지 MBC 표준FM의 오후4시 ~ 오후6시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시대> DJ를 맡았다.
보조 MC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는데 미국에서 MC로 성공한 자니 윤을 불러와서 그를 메인 MC로 한 ‘자니윤 쇼’에 조영남이 보조MC를 맡았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 잘맞아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수 쪽은 공식적인 은퇴 앨범을 낸 만큼 폐업 상태이나 프로그램의 PD들이 찾아와 사정을 하면 한두 곡 정도는 불러준다. ‘화개장터’ 는 자기 스스로도 쪽팔려서 안 부르는 편. 결국 데뷔곡인 ‘딜라일라’를 우려먹고 있다.[16] 하지만 은퇴했으니 개런티는 공짜나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안 받고 있다.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자 재산가이다. 그가 살고 있는 청담동 고급 빌라는 연예인이 살고 있는 집 중 제일 비싸다고 하며, 공시지가만 50억 원 이상, 실거래가는 100억 원이 훨씬 넘는다고… 사실 그 고급 빌라는 조영남이 아주 오래 전 구입한 것으로, 구입 당시에는 그리 고가가 아니었으나 재건축만 2번을 거듭하다보니 주변 시세와 맞물려 건물 가격이 폭등한 것. 게다가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팔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일화가 있다. 실제로 정말 작정하고 돈을 모았으면 지금의 재산 따위 푼돈으로 여길 정도로 엄청난 갑부가 되었겠지만 전술한 바람기를 바탕으로 한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들한테 돈을 거의 뿌리다시피 하면서 재산을 홀라당 까먹기가 일상다반사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기가 좋아서 돈을 엄청 잘 벌어서 저런 재산가가 된 것이다. 특히 재건축을 거듭할때마다 그 집을 팔라는 요구는 있었는데, 본인은 그 집 자체가 좋아서 그걸 지키고 싶어 안 팔았다고 한다.
은퇴 이후에는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그리는 게 화투 그림을 크게 확대한 그림이다. 아무튼 이 화가 타이틀로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고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에서 미학 칼럼니스트 기믹으로 출연도 했다. 하지만 괜히 조영남이 아닌지라 사건사고 문서에서 설명하듯 큰 사건을 또 일으켰다. 이런저런 안 좋은 행각들이 크게 알려진 뒤론, 그의 취급은 거의 범죄자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면, 품위있는 행동을 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려준 인물.
가창력에 관하여
목소리가 아주 빼어나다. 과거부터 그는 쩌렁쩌렁한 성량과 정확한 음정, 박자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윤여정도 인정한다는 조영남 노래실력
준수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우렁찬 발성이 그의 가창력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창법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대중음악의 장점을 접목한 보컬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조영남은 노래가 아닌 그냥 하는 말을 들어봐도 목소리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즉석에서 편곡이나 애드립을 하는데, 공연 직전에 갑자기 곡을 바꿀 일이 생기면 자기가 평소에 외우는 다른 곡의 악보를 급하게 자기 손으로 써서 밴드에게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음악적 감각이 약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애드립으로 노래 도중 엇박이나 음을 바꾸는 기교를 보여주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이탈할랑 말랑 하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성악 공부로 인해 코드 진행, 멜로디와 화성에 대한 이해가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부분인데, 실제로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많은 가수들도 콘서트 같은 공연에서 기교를 부리다가 조절을 못 해서 아예 음정이나 리듬이 3~4단계씩 확 빗나가 버리는 사례도 많다. 음이탈은 덤이고… 반대로 조영남이랑 비슷한 또래의 연예인들이 특별손님의 형식으로 조영남 공연에 출연해 조영남 모창을 위해 고의로 엇박을 넣었다가 마무리까지 박자를 못잡고 날려버리기도 했다. 조영남 식의 창법이 결코 쉬운 게 아닌 것이다. 조영남이 그 나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음감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소싯적부터 그는 트로트 가수들의 가창력을 비판하기를 좋아했는데, 가창력에 있어서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 중론. 스탠더드 팝이 유행이었던 시절, 조영남은 미군들이 좋아할 만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꼽혔고 당시 미군들에게 American Voice로 선호받던 가수였다. ‘딜라일라’를 비롯한 번안곡이나 팝송 역시 성악을 베이스로 한 쩌렁쩌렁한 성량으로 힘차게 소화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톰 존스라고 불리웠고 실제로도 그에 손색이 없는 수준. 지금도 조영남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7080세대의 어르신들은 “조영남이가 노래 하나는 참 멋지게 불렀지.” 라는 식으로 왕년의 조영남을 팝과 클래식에 뛰어났던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유로 그가 진행하는 디너쇼는 아직까지 티켓파워가 있다.
이 덕에 매우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성악의 길을 그만 두고 대중가수로서의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미군 부대에서 한 달간 벌어 들이는 수입이 당시 한 학기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 수준이었고, 당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지만 예술인들이 어지간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 때였는데 본인의 수입은 당대 최고 수준이였기에, 가진 자의 여유로 동생들에게 많이 베풀어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조영남을 많이들 따랐다고 한다. 당시에는 미 8군 부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다른 그 어떤 무대보다도 높은 수입을 보장해줄 때였는데, 그 중에서도 조영남은 미군들로부터 가장 미국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 인물이었으니 당연지사.
하지만 이미 스탠더드 팝의 시대는 끝났고 성악 특유의 톤을 진정성이 없다거나 작위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현재의 풍토이기에 그런 점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나올 만하다. 예능용 멘션이긴 했지만, 본인도 자신의 창법이 대다수의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세련된 대중가요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래 조영남의 가창력 기반은 현란한 기교나 힘조절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고 뚝심있게 음을 질러서 울리는 방식으로 감정의 흐름을 관객석 끝까지 온전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조영남은 순수하게 타고난 힘을 앞세운, 그야말로 뜨겁고 우렁찬 노래로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악톤의 스탠다드 팝이라는 장르로 큰 인기를 얻은 원천이었다. 이처럼 성악톤을 이용하는 방식 자체는 힘있는 발성을 기본으로 해야 감동이 커지는데, 현재 나이가 든 조영남은 젊을 때보다야 확실히 힘이 약해져 그만의 노래맛이 떨어진 감이 있다. 사실 이건 음악적 재능과는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다. 혹시나 조영남이 운동과 식이조절로 벌크업을 하고 힘을 키워서 젊었을 때의 파워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렇게까지 죽어라 노력하지는 않았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조영남이라는 인물이 일생에 걸쳐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있지만, 가수라는 본업의 실력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사람인 것도 사실이기에 연예계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면 적당하다. 본인도 자신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자부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는 한다. 조영남의 작곡 능력은 평범한 편이다. 길옥윤 등의 당시 작곡가들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당한 적도 있고 본인도 곡은 쓰는데 영 생각만큼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할 정도. 음악적으로도 번안곡 가수의 한계점 역시 많은 부분에서 보인다. 애초에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자기 노래가 아닌 남의 노래를 그대로 가져다가 가사만 한국어로 바꾼 것이다. 다만, 불멸의 히트곡 화개장터가 있으니 작곡가로서 완전히 꽝은 아니고 대한민국의 인기가수로서 체면치레 정도는 한 셈.
클래식에 대한 조예는 깊을지 모르나 대중가요에 대한 이해는 몹시 부족해서, 싱어로만 살기에는 본인의 재능이 아깝고 싱어송라이터를 겸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로, 세시봉 등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뉴 웨이브’ 의 한 축 내지는 아이콘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나마도 김민기, 송창식이라는 뛰어난 송라이터들 때문에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것. 김민기와 송창식, (그리고 평가는 이들에게 살짝 못미치지만) 양희은 등이 세시봉의 한계였던 번안곡, 포크에 한정된 음악성,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뛰어난 음악세계를 이루어 내는 데 성공했음을 고려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노래 잘하는 가수’에서 멈춘 셈이다.
트리비아
과거에 에버랜드의 시설 중 하나인 지구마을의 노래도 조영남이 불렀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 해당 곡은 윤석중이 작사, 김규환이 작곡했다고 나온다. 아마 행사 때 부르거나 했던 게 와전된 듯 한데 에버컴티에서 한 회원이 지구마을 개장당시 나눠줬던 지구마을 LP판을 보면 작사는 윤석중,작곡은 김규환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가수로는 조영남이 참여했다고 표기되어 있어 사실이다.
보통 가수들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에서 그 가수의 유명한 노래를 불러주는 게 관례인데, 조영남은 이것 때문에 난감하다고 토크쇼에서 말한 바 있다. 즉,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부를 노래는 보나마나 공전절후의 히트곡인 ‘화개장터’일 텐데 가사부터가 ‘구경한번 와보세요’ 로 장례식 분위기 완전 엎어놓을 노래이다 보니… 더 웃긴 건 그보다 더한 가수도 있을 뻔했었다는 사실. 바로 즐거운 잔칫날(잔치잔치 벌렸네~ 로 시작하는 그 노래)로 유명한 블루벨스 중창단 이야기다. 2001년 원로가수 고운봉 장례식에 왔던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이 장례식장에서 했던 말. 그래서 이후 조영남은 자신의 장례식 때 불러달라는 곡을 직접 만들었다… 는데 사실 ‘모란동백’은 조영남이 만든 노래가 아니다. 원래 있던 곡을 리메이크한 것. 그런데 놀러와에서는 자기가 만들었다고 개드립을 쳤다. 근데 꼭 자기가 만들었다고 한 것이 아니라 뉘앙스가 “나 죽으면 이거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른 노래임” 으로 들리기는 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최 진사댁 셋째 딸인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당한 적이 있으며 마라톤 대회에서 같이 달린 사람들은 이게 몰래카메라인지 알고 쉬엄쉬엄 달렸을 때 자기 혼자만 죽어라 뛰었다. 응원하던 다른 연예인들(동기 및 코미디언들)이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조영남 이름을 불렀는데 그 플래카드 앞에는 ‘필승’이란 격려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그 플래카드들을 뒤집자 ‘완전히 돌았군!’ 같은 말들로 반전을 보여줬으며 물론 시청자들만 보게 만들었다. 경규옹 정의구현.
결승선을 통과하여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면서 ‘몰래카메라에 속으셨습니다~’ 현수막이 내걸렸는데 본인은 숨이 가뻐서 헥헥거리느라 그걸 보지도 못했고 이경규와 다른 사람들이 저거 보라고 한 다음에야 그걸 보더니만 정말로 열 터져서 이경규 등짝을 때리면서 “야… 난 죽어라 달렸어!”라며 열 터지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몇년 뒤 제대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조영남 몰래카메라.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에선 이주일과 함께 나왔는데, 둘 다 타이즈를 입고 타이즈 안에 커다란 포탄을 넣고선 사타구니 쪽이 묵직하게 축 늘어진 것을 보여주며 웃기기도 했다. 이주일이 생전에 유일하게 외모로 우위(?)를 점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극장식당에 출연해 그의 얼굴을 본 어린아이가 울자 이주일이 한 촌철살인 멘트는 압권. 자세한 것은 이주일 문서로…
또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조영남 노래를 코미디 뮤직 비디오로 만든 것에서 도시로 온 시골 총각을 연기했는데 서울 와서 구두닦이로 일하는데 어느 꼬마아이가 운동화 닦아달라고 발을 내밀자 어이없다는 듯이 보다가 구두약 묻은 손으로 아이 볼을 꼬집는다. 그러다가 이를 본 아이 아빠가 화내면서 구두약을 조영남 얼굴에 된통 칠하는 보복을 당했으며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최병서 및 배일집 같은 코미디언들과 코미디 연기도 한 바 있다.
위에도 잠깐씩 얘기가 나왔지만, 책을 여러 권 냈고, 잡지에 신변잡기에 가까운 칼럼을 장기 기고하기도 했다. 글재주도 준수해서 맛깔스럽게 잘 쓰는 편이다. 글 내용 중 검증되지 않은 내용, 자기 자랑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당연하지만 저건 칼럼이 절대 아니다. 군대 시절 조영남은 육군본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를 했다. 근데 웃긴건 자기 대학교 동창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본인의 중대장으로 있는 바람에 되려 꿀이란 꿀은 죄다 빨고 편하게 군복무를 하다 왔다고.
진짜 의외의 사실인데 건설안전 노래를 불렀다.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아주 지겹도록 듣는 노래 중 하나이다. 무재해 깃발 아래 산업안전 생활하여… 이 인간은 존재 자체가 코메디다. 2014년에 당시 26년 만에 신곡 통일바보를 발표했다. 일본에 조영남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인물로 콘도 마사히코가 있는데, 이 사람도 조영남이 데뷔한 지 1년이 되는 해에 태어났다.
성추행 논란
2011년 9월 21일 방영된 빅 브라더스에서 게스트로 소녀시대가 나왔는데, 멤버들을 포옹하는 과정에서 유독 태연만 강하게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는 논란이 퍼지기도 했다. 소덕들 분노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이차만 3배나 나는 후배 여가수를 상대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만, 프로그램 자체가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주목도가 높지 못했는지 이후 별다른 해명이나 추가 논란도 없이 잊혀졌다. 2013년에는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집에 방문한 서유리가 “친분을 통해서 작품을 더 싸게 살 수도 있느냐?”라는 말에 내 여자친구나 애인이 되면 가능하다라는 말이나 장모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며 추파를 던졌다. (포옹하는 사진도 있다) 허나 서유리가 당시 지금에 비하면 낮은 인지도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큰 논란이 되지는 않은 듯 하다.
2014년 4월엔 연예가중계 촬영차 리포터 자격으로 집에 찾아온 레인보우의 멤버 김지숙에게 결혼하자며 치근덕대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뒤늦게 지숙의 나이를 알고 했던 말을 취소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촬영분을 보면 결혼 얘기에 표정이 굳으면서 슬슬 피하는 지숙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달 후에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 출연하여 해명을 했으나, 그게 그거라는 핀잔 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2015년 10월 16일 방영된 나를 돌아봐에서는 이번엔 제시에게 1년 전 김지숙에게 했던 망언을 하였다[8]. 당연히 이를 접한 이들은 또 다시 조영남을 거세게 비난하였으며, 또한 제시의 생방송 무대인데 가사도 제대로 안 외워오고 직전에 말을 자꾸만 바꾸는 모습에도 아무리 본인이 선배라 해도 무례하다며 비판했다. 또 바로 옆에 탈의실이 있다는 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에서 바지 지퍼를 풀고 윗옷을 다 벗기도 했는데, 그곳에 제시와 여성 백댄서, 카메라가 있었다. 2015년 11월 20일 방영된 나를 돌아봐에서 가면을 쓴 여성에게 ‘이혼한 남자가 어떠냐’는 큰 실례가 되는 질문을 했다. 결국 그는 김수미와 함께 26회 (2016년 1월 22일 방송분) 를 끝으로 같이 하차했다.
2016년 1월에 방영된 나를 돌아봐에서는 이번엔 트와이스의 쯔위가 방송소감으로 즐거웠어요라는 말을 한국어 미숙으로 인해 지겨웠어요라고 잘못 말하자 모두가 빵 터지고 잭슨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틈을 타 입 쩍쩍 벌리고 웃으며 끌어안으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 때 이런 조영남의 흑심을 캐치한 경규옹은 당황하는 척 하면서 조영남을 제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끝까지 테이블에서 불쑥 기어나와 분위기 타려다가 쯔위가 “즐거웠어요!”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면서 실패했다. 이때도 즐거웠다는 말을 꺼내기 전 조영남을 마주본 쯔위가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청자들은 ‘다 된 개그 컷에 조영남 뿌리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참고로 조영남과 쯔위의 나이차는 6년이 빠진 환갑이며, 조영남이 환갑 때 쯔위는 고작 유치원생이었다는 뜻이다.
입양딸 성추행 논란
잡지 신동아에 실렸던 인터뷰 중에 입양한 딸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당 인터뷰; 이 인터뷰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발언은 다음과 같다:
“엄청 사정해야 한 번 보여줄까 말깐데 증~ 말 예뻐. 환상적이라구. 그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걸 브래지어 속에 꼭꼭 숨기고 다녀야 하다니… 참 여자들은 이상해. 한참 예쁠 땐 절대 안 보여주다 늙어서는 언제 그랬나 싶게 간수들을 안 하잖아. 이거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아냐”
결국 몇 번을 사정해서 봤다는 것인데, 이 기사가 실렸을 때 입양한 딸은 15살이었다.
앨범
정규 앨범
1 《내사랑 딜라일라》
발매일 : 1970년
편곡:김인배
딜라일라 (조영남)
빗줄기의 리듬 (이시스터즈)
쌘프라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꼿고 (조영남)
사랑의 기쁨 (한상일)
Come See About Me (Little Sisters)
밤비나 밤비나 (최양숙)
Am I That Easy To Forget (조영남)
Yesterday (조영남)
어쩌면 좋을까요 (박연숙)
사랑하는 마음 (최양숙)
사랑은 기차를 타고 (케리부룩)
2 《趙英男 2집》
발매일 : 1972년 12월 5일
옛생각
이일병과 이쁜이
보리밭
떠나는 마음
오솔길
꿈은 사라지고 (안다성, 시온성 합창단 1958)
딜라일라
고향의 푸른잔디
선구자
웨딩드레스 (한상일 1969)
세노야 (양희은 1971)
눈물젖은 두만강(김정구 1938)
3 《사랑이란》
발매일 : 1978년 8월 27일
살사랑이란
난 너를 사랑해
제비
아베마리아 (Ave Maria)
바위고개
안녕
사랑이란
슈우베르트의 세레나데
내 생에 단 한번만
사랑의 기쁨 (Piacer D`Amor)
4 《趙英男 4집》
발매일 : 1979년 10월 30일
삽다리
아들
참사랑
사랑의 바람
제비
잊어야 해
인생
안녕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성가)
산이슬 (건전가요)
5 《趙英男 5집》
발매일 : 1982년 3월 30일
점이
누가 이 여인에게
님이시여
제비
여름은 가고
겨울에 떠난 여인
여보
모정은 가득히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남궁옥분 1988)
미련
사랑 (찬송가)
전우가 남긴 한마디(허성희 1978)
6 《趙英男 6집》
발매일 : 1982년
이별
서울
고향의 푸른잔디
선구자
내 생에 단 한번만
옛생각
그 얼굴에 햇살을(문정선 1972,이용복 1972)
등대지기
눈물젖은 두만강
제비
너
보리밭
이일병과 이쁜이
떠나는 마음
내집에 가고 싶네
오솔길
꿈은 사라지고
아! 대한민국(정수라, 장계현 1983)
7 《`86 Asia Singer》
발매일 : 1985년
지금
비둘기
이길수 있어요
운전기사의 노래
밀알 하나가
너는 예뻐
철없는 아내(차도균 1967(?))
모두다 즐겁게
바우고개
마지막 편지(여의성 1969(?))
지금
아! 대한민국
8 《한강》
발매일 : 1988년
한강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Welcome To Seoul Korea
이대로가 좋아요
아리랑
화개장터
사랑했기에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1976)
그건 너
비는 내리고
온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
9 《조영남 `91》
발매일 : 1991년 6월 30일
도시여 안녕
서시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지금
낙엽은 지는데
겸손은 힘들어
그대 따르리
화개장터
제비
딜라일라
10 《`94 조영남》
발매일 : 1994년 1월 1일
카루소
만남
그대 그리고 나
사랑의 미로(태원 1976, 최진희 1983)
사랑이여
서시
떠나가는 배
김군에 관한 추억
바위고개
고향생각
11 《밀레니엄 앨범》
발매일 : 1999년 9월 1일
에루화
고독한 계절
뉴 밀레니엄
청산은 나를 보고
지금
만남(노사연 1989)
제비
낙엽은 지는데
도시여 안녕
사랑이여
사랑의 미로(최진희 1984)
화개장터
그대 그리고 나(소리새 1988)
선구자
기다리는 마음
내 고향 충청도
12 《은퇴의 노래》
발매일 : 2001년 4월 28일
은퇴의 노래
우리사랑
모란동백(이제하 1991)
딸이야기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언약
金君
비는 내리고
솔로의 노래
여기는 대한민국
제비
한강
그대 그리고 나 (Bonus Track)
13 《남자 조영남 노래 그리고 인생》
발매일 : 2010년 12월 2일
나는 신의 뜻을 알고 싶다
참으로 꿈만 같아라
사랑의 이중창
간절대박
눈동자
파리 공원의 아침
무반주 발라드
정주고 내가 우네(박일남 1966)
어허라 사랑(주현미 2005(?))
외롭지 않으려면
사막의 전갈
나도 이젠 네가 싫다
출연작
2020년 SBS 교양 프로그램《궁금한 이야기 Y》- 게스트
2015년 KBS 예능 프로그램《나를 돌아봐》- 진행
2013년 TV조선 예능 프로그램《낭만논객》- 진행
2013년 KBS 특집 프로그램《스타 베이비시티 날 보러 와요》- 진행
2013년 KBS 예능 프로그램《이야기쇼 두드림》- 진행
2011년 KBS 예능 프로그램《빅 브라더스》- 진행
2011년 KBS 교양 프로그램《명작 스캔들》- 진행
2010년 KBS 특집 프로그램《조영남과 친구들》 – 진행
1999년, 2000년 KBS 예능 프로그램《가족오락관》- 게스트
2000년 KBS 교양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진행
2000년 KBS 교양 프로그램《조영남이 만난 사람》- 진행
1998년 KBS 교양 프로그램《조영남, 황현정의 이야기 콘서트》- 진행
1997년 KBS 교양 프로그램《밤의이야기쇼》- 진행
1996년 KBS 교양 프로그램《TV는 사랑을 싣고》- 게스트
1993년 SBS 교양 프로그램《투맨 쇼》- 진행
1993년 KBS 교양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진행
1993년 KBS 예능 프로그램《조영남쇼》 – 진행
1992년 KBS 예능 프로그램《생방송 토요스페셜》- 진행
1989년 KBS 예능 프로그램《자니윤 쇼》- 진행
1979년 TBC 예능 프로그램《조영남 TV스페셜》- 진행
드라마 출연작
2016년 KBS 1TV 다문화 특집 드라마 《반짝반짝 작은 별》 – 이태원 초등학교 교장 역
1987년 MBC 8.15 특집 드라마《한힌샘》- 독립신문 인쇄공 역
라디오 진행작
2006년 ~ 2016년 MBC 표준FM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진행
1973년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 – 진행
기타 활동
1997년 한국화랑미술제 이목화랑 초대전 (예술의 전당)
1996년 서울대 음악대 동문회 명예회원
1991년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광고
2011년 SK텔레콤 T store (With. 아이유)
1997년 부광약품 타코나
1993년 SK바이오팜 기넥신 (With. 남궁원, 현미, 손숙
1993년 대웅제약 우루사 에프 (With. 백일섭)
1989년 JW중외제약 스로링
1988년 우성식품 블루 다이아몬드
1988년 빙그레 엑설런트
1983년 농심 뿅뿅 컵면
1979년 ~ 1982년 한독 브론치쿰 (With. 김상순)
1976년 해태Htb 써니텐
저서
2012년 《그녀 패티 김 – 열정 그 자체 패티김의 노래와 삶》
2011년 《쎄시봉 시대 – 쎄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
2010년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 내가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던 시 해설서》
2009년 《천하제일의 잡놈 조영남의 수다》
2007년 《조영남의 사랑과 예술이야기》
2007년 《어느날 사랑이》
2007년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2005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2004년 《강철이 집 어데고》
2003년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2003년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2002년 《조영남씬 천재예요》
2000년 《예수의 샅바를 잡다》
1995년 《놀멘 놀멘2》
1994년 《조아저씨 이야기》
1994년 《놀멘 놀멘1》
1993년 《삽다리를 아시나요》
1993년 《넌 노래를 부르지마》
1993년 《조영남의 양심학》
1988년 《한국 청년이 본 예수》
수상 경력
2003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 (체험 삶의 현장)
2011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2010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MC 부문 최우수상
‘넝굴당’ 윤여정, 유준상 혈액형 B형이라는 말에 ‘실망’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윤여정이 유준상의 혈액형을 물어보고는 실망했다.24일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테리강(유준상 분)의 택배 안에서 아들 귀남의 스웨터를 발견한 엄청애(윤여정 분)가 테리강을 자신의 아들로 의심했다.방장수(장용 분)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엄청애는 테리강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결국 테리강의 집에 찾아갔다.문을 연 차윤희(김남주 분)에게 엄청애는 “미안한데 혹시 남편 혈액형이 어떻게 되냐”고 다짜고짜 물었고 차윤희는 잠시 당황했지만 “B형이에요, 그런데 혈액형은 왜요?”라고 물었다.이에 엄청애는 급 실망하며 “그럴리가 없는데, A형이나 O형 아니에요?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그런데”라고 혼잣말을 했고 차윤희는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요?”라고 의아해했다.집으로 돌아온 엄청애는 드러누워 “어떻게 된게 이놈의 기억력은 늙지도 않냐”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허탈해했다.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방장수(장용 분)가 유준상이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파이낸셜뉴스 스타엔 [email protected]정다은 기자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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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1947년 6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1967년 동양방송 《미스터 곰》에서 주요 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강변 살자》, 《박마리아》 등에 출연했고, 문화방송으로 이적 후 《장희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크린에 데뷔하여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연예계 복귀 이후 주요 출연작으로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내가 사는 이유》,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와 영화 《바람난 가족》, 《꽃피는 봄이 오면》, 《하하하》, 《하녀》, 《돈의 맛》,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등이 있다.
임상수, 홍상수, 이재용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윤식당》, 《윤스테이》 등으로도 이름을 알리기도 했으며, 2021년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여우조연상[2],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활동 [ 편집 ]
1970~1990년대: 초기 경력 및 스타덤에 오르다 [ 편집 ]
윤여정은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던 1966년 연극 배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하였고, 동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험에 응시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도전한 결과였다고 한다.[3]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등록금을 위해 당시 김동건 선생님의 프로그램을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었다. 그때 나를 보고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하더라. 떨어지면 붙여준다고 보라고했다. ” — 스포츠경향 2016년 5월 27일자 기사[4] 중
활동 무대를 MBC로 옮겨 1971년 사극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을 맡아 표독스럽게 연기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하였고, 유니크한 이목구비의 윤여정의 등장은 영화판에서 신선한 센세이션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시골에서 상경한 하녀 명자 역을 맡아 식모살이하는 서울 중산층 가정의 유부남에게 겁탈당하고 강제 유산까지 한 후 광기를 부리게 되는 인물을 연기해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제4회 시체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5]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의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1972년 김수현 작가의 MBC 《새엄마》 최고 인기를 자랑하면서 연예계 흥행보증수표로 거듭났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전성기때인 1974년 27세 나이로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며 배우 생활을 쉬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 생활을 했다.이후 1987년 결혼 13년 만에 조영남과 이혼한 뒤 슬하의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했다.[6] 2021년 초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혼 직후 윤여정은 공립학교에 보낸 두 아이를 키우려 최저 시급 2.75달러를 받으며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3]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서 윤여정은 이혼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 돈 벌기 위해 단역도, 보조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 — 주간동아 2021년 2월 7일자 기사[7] 중
한때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윤여정은 MBC 《전원일기》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다시 시작한 연기 생활은 혹독했다. 극 중 밥 먹는 장면을 연기하던 그녀에게 일용엄니 역의 김수미는 “여기서는 그렇게 밥을 끼적끼적 먹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는데, 이 말이 연기 인생의 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윤여정은 이후 밤을 새워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연기 연습을 했다.[7] 이후 스타 방송작가 김수현이 각본을 쓴 1985년 영화 《에미》에서 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인신매매 단원을 한 명씩 처단하는 중년 여인 역을 연기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3]
1984년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MBC 《베스트셀러극장-고깔》로 연예계 복귀를 하였다. 윤여정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화려한 재복귀, 이런 떠들썩한 말은 싫다. 주부로만 묻혀 있어 모두들 잊었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할 뿐이다”라고 복귀 소감을 알렸다.[4]
1990년대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간이역》,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등 작품에서 주어진 역할은 주로 주인공의 엄마, 이모 또는 고모 등이였으나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했다. 하지만 복귀에도 대중들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았는데, 당시만해도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던 탓에 윤여정은 2009년 영화 《여배우들》에서 “이혼했을 당시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3]
윤여정은 또한 1997년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를 시작으로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거짓말》(1998),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유행가가 되리》(2005),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디어 마이 프렌즈》(2016)에 출연했다.
2000~2010년대: 계속 된 연기, 바람난 가족과 하녀 [ 편집 ]
2000년대에 넘어와서도 윤여정은 드라마《꼭지》, 《비단향꽃무》,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열아홉 순정》,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여러 편의 작품에서 할머니 역부터 요부 역까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은 열연을 펼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방송국에서 붙박이로 일하던 그녀는 임상수 감독의 2003년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18년 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컴백했다. 윤여정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편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시어머니 홍병한 역을 연기,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화려한 복귀를 이뤄냈다. 당초 이 역할은 출연 제의를 받은 여러 배우들이 손사래를 쳤던 역할이었다고 한다.[3] 제작을 맡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중년 여성 이미지가 역할에 맞아 출연 제안을 했는데, 쿨하게 ‘집 인테리어 해야 해서 돈이 필요하다’면서 역할을 맡아줬다”고 말했다.[3]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었으며,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 출연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2년 연속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는 쾌거를 이뤘다.
《바람난 가족》 성공 이후 텔레비전보다 영화 쪽 활동이 잦아졌으며, 그 중에서도 홍상수 감독과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크고 작은 역할들로 출연하며, 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4), 2007년 영화 《오래된 정원》(2007),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에 출연했다.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지명 소식에 임상수 감독은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했다.
“ ‘미나리’ 촬영을 시작하기 전 대본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거절할 만한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게 대우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니까요. 그 나이에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함께 하셨고 이런 결과를 맞이하신 건, 그분이 몸보다 마음이 젊은 분이어서겠죠. ” — 연합뉴스 2021년 3월 16일자 기사[8] 중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2005년 출연한 KBS2 《창사특집극 – 유행가가 되리》는 상하이 국제TV페스티벌에서 TV드라마부문 매그놀리아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9]
2010년에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인 동명 영화를 50년 만에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원작에 없던 나이 든 하녀 역을 연기한 윤여정은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아시안 필름 어워드 등 국내 시상식 외에도 다수의 해외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10] 이 작품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임상수 감독은 “윤여정은 조연이 아니라 전도연과 함께 주연으로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8]
2012년 윤여정은 2월부터 9월 초까지 방영된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21세기 며느리 (김남주)과 팽팽한 고부갈등을 펼치는 밉지 않은 20세기 시어머니 엄청애 역으로 호평을 받았고, 이 작품은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폭풍 공감을 이끌어내며 ‘시월드 신드롬’을 일으켰다. 동년 MBC 《더킹2Hearts》에선 선대왕 이명의 아내로 왕실 최초 평민출신 왕비 방영선 역을 맡아 상반된 열연을 펼쳤다. 또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윤여정은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 역을 연기해 2년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5월 26일 칸에 위치한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스크리닝이 진행되어 영화에서 공연한 백윤식, 김강우, 김효진,임상수 감독과 레드카펫을 밟았다.[11]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윤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윤여정은 나이 들면서 역할이 더 넓어지는 국내 유일의 배우. 할머니의 역할과 요부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다. ” — 한국일보 2021년 3월 17일자 기사[3] 중
2013년에는 송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가족》에서 나이 값 못하는 삼 남매의 어머니 역할 연기했고,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선 교육계 자문으로 참여했던 재판에서 인상적이었던 마선생(고현정)을 영입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도하는 교장선생님 용현자 역을 연기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꼭지》(2000)로 호흡을 맞춘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헌신하는 어머니 장소심 역할을 연기했다.[12]
2016년 12월 7일, 2016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윤여정.
2016년 윤여정은 데뷔 50주년을 맞이하였다.[13][14]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일평생을 일가친척들 뒷바라지하느라 결국은 싱글 처녀 꼰대가 된 화끈한 성격을 지닌 65세의 모태솔로 오충남 역을 연기, 매사에 이성적인 연애관과 타고난 입담을 선보였다.[15] 동년에 세 편의 영화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산나물 처녀》에 출연했다. 특히 《죽여주는 여자》에서 그녀는 주인공 소영 역을 맡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춘사영화상, 들꽃영화상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었고, 부일영화상과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대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1971년 《화녀》 이후 45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이기에 더욱 의미를 더했다.[16][17] 《계춘할망》으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2017년 윤여정은 대중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 표창을 받았다.[18]
윤여정은 또한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에 출연해 쿨한 입담과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중견 여배우 중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2020년대: 미나리, 제2의 전성기 [ 편집 ]
2020년 윤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과거의 기억에 갇힌 노모 순자 역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19] 같은 해 출연한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기도 했다.[20]
이듬해인 2021년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딸 모니카(한예리)의 요청을 받고 간 딸 부부가 새로 정착한 시골 마을 아칸소에서 어린 손주들을 위해 희망을 찾아가는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했다. ‘전형적 할머니’ 틀 깬 독창적 연기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 전역의 시상식에서 30여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21][22] 4월 5일 미국 배우 조합상(SAG)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23][24] 또한 윤여정은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과 미국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영국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었다.[25] 윤여정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마치고 2021년 3월 15일 밤 귀국했고, 다음날인 3월 16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전했다.[26]
2021년 4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과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배우로서 후보 지명과 수상 모두 최초이다.[27].
출연 작품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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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및 후보 목록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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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편집 ]
윤여정의 8살 아래 여동생 윤여순은 LG그룹의 첫 여성 임원이다.[28][29]
각주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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