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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o bubo :: [호오즈키의 냉철/귀백] 5mni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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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백] 사랑이라 함은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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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백] 이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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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지로 4 (완결): 무림맹 – 묵성혼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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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졸, 빙의빨로 천마지존 5 – 문지기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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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마!(不要惹我) 7(완결) – 단운(丹雲)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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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건드리지마!(不要惹我) 7(완결) – 단운(丹雲) – Google Sách Updating 에피루스 베스트 무협 소설! 세상이 어찌 되건 난 상관없다. 협이니, 정의니 하는 것! 묻지 마. 골 아프다. 난 그저 내 꼴리는 대로 살고 싶다. 제발…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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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백] 사랑이라 함은 上
[귀백] 사랑이라 함은 上호오즈키의 냉철 중 호오하쿠 소설입니다.
‘백택은 호오즈키 공과 어떤 사이에요?’
참 신경 쓰이는 질문이었다. 그 오니와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하지 않아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왜 하필이면 짙은 밤놀이의 열기가 식어가는 이 시점에?
침대 위에 그 여자는 옷을 다 추스르지도 않은 채 앉아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백택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있었고, 백택은 여자의 무릎에 누운 채 봉긋 솓아 오른 가슴을 한 손으로 주무르며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연한 핑크색의 레이스가 달려 있는 브래지어는 백택이 일부로 귀엽고 여성스러운 속옷을 입고 오라고 주문을 한 것이었다. 원래 오니의 이야기가 나오면 인상이 험악해지는 백택이었지만, 여자에게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샐긋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좋은 사이는 아니지~ 항상 만나면 싸우기만 하는 걸. 지난번에 유곽 앞에서도 싸웠던 거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요. 싸우는데 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았어요.”
“다른 의미?”
“호오즈키 공은 언제나 귀백 당신을 쫓으니까요. 무서울 정도로 섬뜩하게, 집요하게 말이에요.”
“아아… 그 오니가 그렇지 뭐. 보면 바로 죽여 버리려고 하니까~”
귀백의 말에 여자는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부터 남자는 전부 바보 같다는 말은 역시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두 사람은 다른 감정으로 저 행동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자가 귀백의 이마에 있는 눈 주변을 손가락 끝으로 살살 굴려 보았다. 귀여운 사람.
“내일 저녁에 지옥 연회가 있지요? 백택도 참여 하나요?”
“의료진도 필요 없는 평화로운 연회라 예정은 없어.”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잔뜩 이라던데… 저희 유녀들도 많이 참여한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가볼까~ 세이코 쨩도 오는 거지?”
“당신이 참여한다면 기꺼이 가겠어요.”
“좋아~ 내일도 세이코 쨩으로 지명할까봐.”
“내일은…….”
세이코가 하고 싶은 말을 입 안에 머금고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곽에서 지명을 받아 돈을 버는 입장에서 손님에게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언제 그 분과 제대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볼 것이냐고, 그대의 진심이 궁금하다며 물음을 건넬 수가 없었다. 백택은 술에 절어 한창 이어가던 행위까지 마친 직후였기에 꽤나 피곤했던 듯, 세이코의 생각은 하나도 모르는 건지 샐샐 눈웃음을 짓기만 하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 버렸다. 세이코는 가만히 잠에 드는 백택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응시했다.
“내일은 만월이겠어요.”
만월의 밤, 소원을 빌면 달님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옛 이야기가 있지요. 절반 이상으로 차오른 달이 밤하늘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세이코가 눈을 감고는 내일 떠 있을 보름달의 모습을 상상해 그려 보았다. 아, 아름다웠다.
“저는 버림받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소년이 말했다. 소년은 신님과 두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님이 어린 소년에게 대답했다.
“버림을 받다니, 너는 스스로 버틸 줄 아니까 버림을 받지 않는단다.”
신님의 용모는 화려했다. 중국풍의 천을 사용한 전통 의상에 화려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신님은 자비로웠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었다.
“아뇨, 겉으로 버려지는 건 상관없습니다. 신님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버려집니다. 쓸리고, 까져서 아파집니다. 너덜너덜해져서 결국 버림을 받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아, 사랑을 한 적은 있느냐?”
“사랑…… 그게 뭡니까?”
“사랑을 하게 된다면 버림을 받아도 다시 새 살이 돋아난단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지. 내 말은 꽤나 믿을 만 하단다? 분명 너는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될 거야.”
“진정한 사랑…….”
소년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는 잘 안 가는 듯, 고개만 갸웃 거릴 뿐이었다. 신이 웃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존재는 너만을 사랑해주고, 너만이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란다. 그 상대가 누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건 확실하단다. 분명 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 그렇습니까. 하지만 만일 그 사랑이 저를 버리면 어찌 됩니까? 그러면 저는 상처를 입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말이야, 사랑을 무서워하면 안 돼. 사랑은 위대하단다. 거대한 태산조차 옮길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랑이지.”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신성하고 위대한 태산까지도 옮길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니, 그렇게나 대단한 것일까? 사랑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 걸까. 내가 정녕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소년의 대답 없는 반복된 의문과 알 수 없는 위축을 느낀 신님이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손끝에 소년의 뿔이 스쳤다.
“무서워하지 마렴. 언제나 당당하게 네 사랑을 손에 쥐려고 달려가면 이루어지기 마련이란다. 하하, 지금 이 말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구나.”
“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조급해하지 말아.”
“네….”
“아주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네게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네 사랑이 너를 버린다면, 네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때는 나를 찾아오렴.”
“신님을… 말입니까?”
“그래. 나를 말이다. 그때는 내게 너의 사랑을 알려주렴. 그리고 손톱을 세워 나를 상처 입히렴. 그 행위가 무엇이든지 네 사랑과 상처는 전부 다 받아 줄 테니. 나도 네 상처를 보듬고 내 사랑을 전부 내어줄테니까 말이야.”
신님이 소년의 뿔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약속을 걸기라도 하는 마냥, 아주 가벼우면서도 짙게 마음이 새겨지는 입맞춤이었다. 소년은 가만히 웃고 있는 신님을 쳐다보았다. 웃는 게 참 아름다운 신님이었다. 또 만날 수 있길. 그렇게 알 수 없는 기약을 한 후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된 소년을 걸음을 돌렸다.
“전 어릴 적, 인간에서 오니가 된지 얼마 안 지났던 그때 신을 한 명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신… 말인가요.”
세이코는 염라청 마루에 앉아 가만히 호오즈키를 응시했다. 호오즈키는 금어초가 잔뜩 피어 있는 금어초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수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이었습니다.”
“자비롭군요.”
“신님은 제게 말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진심 어린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그 사랑이 저를 버려서, 제가 상처를 입게 된다면 어뜩하냐고요.”
“그에 신님은 무어라 대답하셨나요?”
“그때는 내게 너의 사랑을 알려주렴. 그리고 손톱을 세워 나를 상처 입히렴. 그 행위가 무엇이든지 네 사랑과 상처는 전부 다 받아 줄 테니. 나도 네 상처를 보듬고 내 사랑을 전부 내어줄테니까 말이야…… 라고 한 토시도 틀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과 자애로움이 넘치는 신님이시네요.”
“네. 그런데 저는 아직 제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찾아도 제가 사랑하지 못 하는 자리에 있으니 없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렇다는 건…….”
“곧 신님을 찾아 가려고 합니다.”
금어초에 물을 다 주었는지 호오즈키가 물을 잠갔다. 세이코는 가만히 마루에 앉은 채 호오즈키가 하는 행동을 눈으로 쫓았다. 금어초가 물을 많이 먹고 잘 컸는지 활기가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은 신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몇 천 년 전부터, 계속.”
세이코는 이때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신님은, 그리고 호오즈키 공은. 그래서 지금까지. 호오즈키가 물 양동이를 내려놓고 세이코를 쳐다보았다. 세이코가 예쁜 미소를 입가에 띄어 보였다.
“호오즈키 공, 당신은 신님을 사랑하나요?”
“…… 네. 역시 감이 좋으시군요. 제가 사랑하는 상대는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젠 제 사랑과 상처를 그에게 전부 내어 주려고 합니다. 아, 세이코 씨.”
“네?”
호오즈키가 세이코의 옆으로 가 같이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의 입에서 조금은 긴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호오즈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직접 그를 찾아 가면 분명 싸움이 날 게 뻔합니다. 오늘 밤 그에게 지명이 되었다고 하셨죠.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대와 백택 씨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제가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
“으…,”
침대에서 막 일어난 백택이 멍하게 앞을 보았다. 무언가를 본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 아침이네… 응, 아침…… 뭔가 꿈을 꾼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렇게 멍하니 굴러가는 대로 생각을 하다가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어댈 뿐이었다. 아침부터 왜 이런담, 백택이 끙끙대며 바닥을 기어 방문을 밀고 고개를 내밀었다. 방 밖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이 모모타로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저기…… 타오타로 군, 황련탕 좀 끓여줘…….”
“네, 조금만 기다려요. 어제 또 과음하신 거예요?”
“으응… 우욱, 거북해…….”
“도대체, 이러니까 호오즈키 상이 뭐라고 하죠. 토 달으실 말도 없을 걸요? 계속 이러다가 몸 상해요. 신수가 자기 몸은 챙길 줄 알아야죠!”
“그래서 약초를 잘 알게 된 거지, 괜찮… 우읍,”
“화장실이라도 가세요! 아, 그러고 보니 누가 쓰고 있던,”
모모타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세이코가 나왔다. 세이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한 단장을 하고는 백택과 모모타로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택, 아침마다 이러시나요?”
“읍… 세이코 쨩, 아직 있었구나…….”
“곧 가려고 해요. 청구서는 머리맡에 놓아 놨어요. 그리고 과음은 좋지 않답니다.”
“아아…… 고마워, 세이코 쨩. 아침이라도 먹고, 읍,”
“아니에요, 호의는 너무 감사해요. 다음에 또 지명해주세요. 그럼.”
“잘 가, 나중에 봐….”
“아, 오늘 저녁에 지옥 연회 잊지 마세요, 백택.”
세이코가 백택의 집에서 나와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지옥으로 돌아갔다. 백택은 참 좋은 손님이었다. 과하게 술을 마신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돈을 써주는 거였고, 매번 2차로 행위를 원하기는 하지만 난폭한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청구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무어라 하지 않고 며칠 이내로 확실하게 지불을 해주었다. 유곽 입장에서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대개 유곽에 오는 사람들은 난폭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금이 너무 높으면 자신들이 가장 즐겨 놓고는 신고를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면 바가지로 경찰서에서 출동을 하였고, 문제가 되서 닫는 유곽도 많았다.
백택은 가벼울 뿐이지 매사에 확실하고 친절했다. 가끔 호객꾼이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난동을 부리는 손님들을 한손으로 때려잡아 도움을 준적도 허다했다. 그래, 백택은 여자를 좋아했다. 여자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녀가 위험할 땐 몸을 던져, 항상 웃으면서 구해 주었다. 게다가 이건 확실하지 않지만- 길조의 상징 신수라 그런지 백택이 들르는 유곽마다 장사가 잘 되기 마련이었다.
모두에게 동등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주는 신수. 영원한 삶을 살아가며 공평하게, 누구 하나에게 치우치지 않고 삶 속에 속한 모두를 구원해주는 신수. 이렇게 보자면 도원향에서 여자 놀음이나 하고 있는 백택과 거리가 먼 듯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상 그리 멀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신수가 할 일이라 생각되는 방법과 백택의 방법이 달랐을 뿐, 백택은 얹나 모두를 진심어린 정으로 대하며 사랑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사랑을 속삭여 주었고, 매일매일 웃는 낯으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모두를 향해 사랑을 베푸는 백택은 유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더욱 유곽의 단골손님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신수라고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기 마련이었다. 백택이 유일하게 대놓고 싫다고 말하며 된통 싸우는 그 사람, 백택을 호되게도 때리는 그 사람. 백택도 엄청나게 자존심을 세우며 시비를 거는 그 상대. 이것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실은 마음이 가 있는 게 아닐까. 세이코는 생각했다. 그 사람이 사실 백택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여자의 감과 예상은 꽤나 무서웠다.
백택의 하루는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사람이 길어야 백 년을 살고, 오니가 삼천만년을 산다고 한다면 신수는 한 평생을, 시대가 지나고 지나 모든 시대를 내려다보아도 한참 모자랄 정도로 긴 평생을 살아갔다. 중국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신수는 백악기 때부터, 즉 사람이라는 존재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설이 있었다. 사람마다 체감 상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으로 따지자면 누구에게나 해가 뜨고 달이 지는 24시간이라는 하루는 같았다. 백택은 몇 억년동안 매일 눈을 뜨고 감는 것을 반복했다. 뭐가 그리 좋다고 허구언날 샐샐 웃어 재끼는 눈 아래에, 사실은 허무함과 지겨움이 존재한다는 건 말 안 해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옛날부터 여자와 술의 맛에 길들여져 지금까지도 방탕한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백택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리 긴 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기약 없는 생을 한 평생 살게 된다는 것을 보았을 때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조금이라도 더 즐기면서 보내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사랑으로 매일을 채워 나가고 싶어 했다. 사람은 빨리 죽었다. 나름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은 오래 살아가지만, 백택의 입장에서는 툭하면 죽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자를 불러 할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 길고 긴 밤을 보냈다. 백택은 사람을 좋아했다.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 주었다. 얼마 전 어떤 남자 오니가 여자들을 끼고 유곽에 들어가려는 백택을 붙잡고 말했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신수는 왜 유곽의 여자들만 사랑하는 거냐?’ 잠자리가 사랑의 모든 행위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 백택은 그 말에 멍하니 남자를 쳐다보다가 금세 특유의 색기있는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남자의 목에 팔을 감아 올렸다. 그리고는 눈을 마주치며 간지럽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오늘은 나랑 잘래?’ 그래, 백택은 상대가 여자여도 남자여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단지 외적으로 더 아름답고, 지금 이 신수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맞이할 수 있는 존재가 여자일 뿐이었다. 타인에게 나는 여자가 좋아, 남자는 그냥 있다, 정도랄까. 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는 잘 알고 있었다.
‘백택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세이코가 조금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백택이 눈을 휘어지게 접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 걸.’
백택이 한명에게만 치우쳐서 사랑을 전부 쏟아주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유혹적이면서도 지금 당장 충족하기 쉬운 욕구로 매일을 방탕하게 보낸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분명 병적이었다. 병은 몸을 파고들어 결국 스스로를 아프게 헐뜯기 마련이었다. 잠깐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간 언젠가 몸과 마음이 전부 상해버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세이코는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백택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무슨 책임감일까. 한낱 유녀 주제에, 손님을 상대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만큼 바보 같은 행위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래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호오즈키 공이었다. 호오즈키는 백택이 유일하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상대였다. 그래, 사랑 이외의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도록 도와주는 상대였다. 특정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상대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좋은 게 있다면, 단순히 남자의 싸움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호오즈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호오즈키가 보통 때보다도 더 날카롭게 변하면서 누군가를 쫓는다는 건, 반대의 의미로 좋은 것이었다. 타인과 다르게 백택과 사뭇 다른 접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 백택의 개인적인 감정을 알게 해주는 사람, 그리고 백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평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순간으로 인해 백택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백택, 그대도 자신의 행복이라는 걸 손에 쥘 수 있는 거지요? 자신이 아닌 모두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신수라고 하여도 스스로의 행복 역시 쫓을 수 있는 거지요? 세이코는 마음속으로 백택에게 그리 물었다. 백택은 언제나 싱글싱글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래, 그래서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모른다는 것이지. 미소 속에 숨겨진 공허함을 꿰뚫은 세이코는, 오히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백택이 진정한 사랑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손님의 행복을 빌어주는 건 유녀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중 하나랍니다. 화사하고 행복한 천국의 풍경이 접어들고 어둡고 시린 지옥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이코는 이런 풍경 역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며 천천히 염라전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천천히. 오늘도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편 백택은 세이코가 나간 후 곧장 화장실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변기를 붙잡고 토를 해댔다. 다시는 술을 안 마실 거라고, 중국어로 헛된 약속을 지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맨날 안 마실 거라고 그러지만 종일 과음을 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예쁜 여자들을 보면 술이 아주 그냥 쭉쭉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백택은 한참을 그렇게 토만 해대다가 바닥을 기며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창백하니 말라 있는 시체 같았다.
“앉아요. 약 다 끓였어요.”
“아… 고마워, 타오타로.”
백택은 겨우겨우 의자에 앉아 모모타로가 건네 준 황련탕을 호호 불어 마셨다. 목 넘김이 깔끔하고 향도, 맛도 그리 나쁘지 않은 약이었다. 사실 맛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느껴지는 걸일지도 몰랐다. 빠르게 속이 안정 되는 기분이 드니 이제야 조금은 살 거 같다고, 백택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약을 홀짝이던 중, 아까 전 세이코가 했던 말이 생각 나 모모타로에게 말을 꺼냈다.
“타오타로, 지옥 연회라는 거 열리는데 갈래?”
“지옥 연회? 뭐하는 이벤트예요?”
“다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는 거지 뭐~ 옥졸은 대부분 모일 걸?”
“그런 이벤트는 당연히 가야죠! 채비 해놓을게요. 따로 약초를 챙길 필요는 없죠?”
“응. 편하게 가면 돼~”
사실 무언가 찜찜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왜 그렇게까지 오라고 강조를 하는 건지. 역시나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이코 쨩이 그렇게 오라는 뉘앙스를 풍기니 안 갈 수도 없고… 뭐, 밥도 먹고 술도 잔뜩 있다는데 가서 놀기나 할까! 백택은 모모타로처럼 채비는커녕 의자에 앉아 편하게 뒤에 기대고 앉아 따뜻한 약을 홀짝였다. 편한 느낌이 딱 좋았다.
[귀백] 이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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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다. 늘 옷깃이며 머리두건에 가려져 있는 그 새하얀 목덜미를 본 것은. 짝이 있는 것들에게는 당연하게 반려의 이름이 새겨진 지도 오랜 날이었다. 우습게도 일정 시간 동안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쇠약해진다. 그것이 제 일이 될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오즈키는 쇠약해지는 일이 없었다. 조금 무력감과 가까운 피로함을 자주 느꼈을 뿐.
자신과 같은 신대의 인물들은 다수 환생을 했음으로 호오즈키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돌연변이나 다름 없다. 백택에게 새겨진 그 이름, 몸의 한 곳에 새겨진 뜻도 알 수 없는 그 글자를 보자 속에서 시커먼 불꽃이 일렁거렸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지 못했다. 죽여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신수, 반려가 없어도 생이 허락되는 그 신수에게 반려가 정해져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호오즈키는 제 심장이 뛰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우격다짐이나 다름없었다. 제 몸에는 어느 이름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진심으로 아쉬운 적은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반드시 같은 이름이 새겨지란 법도 없었다. 도대체 어떤 법칙인지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월노가 이어주는 붉은 실 마냥 엉켜있는 인연의 타래들.
호오즈키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온통 붉었다. 흰 옷도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바닥은 시커멓다. 꿈틀, 벌레가 움직이는 거 마냥 몸을 움직이던 백택은 곧 고르게 숨을 내뱉는다. 여전히 가게 안은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단백질이 타는 그 냄새, 호오즈키에게는 지독하게 익숙한 냄새였다. 알 수 없는 그 글자들을 백택의 목 뒤에서 보는 순간 충동을 참지 못했다. 목을 틀어쥐고 그대로 생살을 씹었으며 늘 들고다니는 담뱃대의 담뱃재로 살을 지졌다. 피와 살이 타는 냄새가 남아있는 연유였다.
너 진짜… 적당히 해라?
이유는 안 묻는 겁니까.
너한테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진 않아서.
정신을 막 차린 것인지 여전히 바닥에 누운 채로 호오즈키를 올려다 보는 백택의 눈은 무구하다. 순진한 척을 하는 저 눈알을 후벼파버릴까, 호오즈키는 잠시 고민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리고 또 빌어먹게도 저 신수에게 질척질척한 욕망을 품었다. 연정이라는 이름의 욕망. 하얀 몸을 전부 짓씹어 삼켜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 그런 호오즈키의 심정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백택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호오즈키가 담뱃불로 지진 목 뒷덜미를 매만진다.
너 정말 의미없는 짓을 좋아하네. 그런다고 그게 없어질 거 같아?
손끝이 따갑다. 상처는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호오즈키의 행동으로 인해 알았다. 영원에 반려는 필요없다 여겼기에 죽지 않는 몸을 핑계로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호오즈키가 발견하고 걸핏하면 물어뜯고 불로 지져대는 것이다. 고통은 늘 한박자 늦게 따라온다. 차가운 낯으로 제 뒷덜미를 노려보는 오니에게 백택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은 채로 웃어 보였다. 의미 없는 짓이다. 이것도 저것도.
백택에겐 상처가 남지 않고 호오즈키에게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로 언약을 맺은 이들은, 백년가약을 맹세한 이들은 서로의 몸에 새겨진 이름이 다르다면 그것을 지우고 서로의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원수같은 사이의 귀신과 신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게.
백택이 웃는 이유를 아는 호오즈키는 다시금 백택의 목 뒤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글자를 노려보았다. 스스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백택은 이름이 새겨지는 것에도 스스로 볼 생각도 찾을 생각도 안했던 것이다.
호오즈키로서도 처음 보는 글자이니 백택의 목 뒤에 떠오른 글자는 백택과 같은 신수이거나 인류최초의 망자인 염라대왕이나 알 수 있는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호오즈키는 그 글자가 뜻하는 바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름이 새겨진 곳을 짓씹어버리고 불로 지져 백택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름이 찢길 때의 고통은 어지간한 백택 조차도 의식을 놓게 만들 정도의 통증이기에 더했다.
없어지진 않아도,
너도 어차피 변이종이잖아. 아님 너만 없어서 그래?
호오즈키의 말을 끊어먹은 백택의 목소리는 비웃는 기색이 한가득인 목소리였다. 그렇다. 인간과 오니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 호오즈키였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여겨 염라대왕과 저승의 높은 분들이 꽤 분주하게 알아보았으나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반려 없이 존재하는 오니. 그런 오니를 보며 백택이 웃었다.
차라리 네게 이름이 떠오를 것이지.
어차피 당신도 그 이름의 주인을 찾진 않을 거잖습니까.
그렇지. 내 이름이 새겨진 이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태연한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어딘가에서, 또 언젠가는 백택의 이름이 새겨진 이가 태어날 지도 모른다. 그 전에 저 신수를 제 것으로 하고 싶었다.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새겨지는 그 이름 위에 제 이름을 덧대보기도 지칠 만큼 해 보았었다. 경이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는 백택은 그를 모조리 지워버렸지만.
야.
뭡니까.
네가 하도 그래서 그러는데 대체 누구 이름인데?
하?
누구길래 그렇게 죽을둥 살둥 자꾸 이름을 뜯어내냐고.
모릅니다.
뭐?
모르는 글자입니다.
네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네. 써볼래??
백택은 제가 내뱉은 말을 곧 후회했다. 어지간히도 호오즈키에게 시달렸던지라 궁금증이 인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는 일이다.
호오즈키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백택의 목 뒤에 새겨진 글자를 말 그대로 그려보였다. 알지 못하는 문자니 쓴다는 것은 말에 어폐가 있다. 그리고 호오즈키가 그린 문자를 본 순간 백택의 얼굴이 굳었다. 늘 짓씹히고 지져진 이름. 이름과 호오즈키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야 만다.
너 아직 이름이 안 새겨졌다고 했지. 씹지말고 이름 좀 만져볼래??
뭣하러 그런 짓을 합니까.
어차피 또 뜯을 거지? 그러기전에 한 번만 만져보라고.
뜬끔없는 소리에 황당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서 내뱉자 백택도 마찬가지로 다시금 거한 한숨을 내쉬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눈앞에 목도한 사람 같았다. 한참을 호오즈키가 그려준 문자를 보고 있던 백택은 어딘가에서 붓을 꺼내와 그 이름 위에 새로운 글자를 적는다. 호오즈키에게 제게 새겨진 이름을 만져보라고 한 연유였다.
이 글자, 지금식으로 쓰면 이거려나.
쓱, 쓱, 글자 위로 글자가 겹쳐진다. 떠오른 글자는 丁였다. 그리고 뒤이어 쓰여진 글자는 누구보다도 호오즈키에게 익숙한 문자열이었다.
…제대로 헛짓 했네. 오니.
…당신 말을 제가 어떻게 신용합니까. 그리고…
어이없음을 숨기지 않은 채로 내뱉는 백택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숨어있었다. 문자열을 노려보는 호오즈키의 시선에는 불신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 글자의 해석을 백택이 작정하고 속인다면 호오즈키로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호오즈키의 불신어린 시선에 백택은 여전히 어이없는 감정을 담은 시선으로 호오즈키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름 만져보라고. 멍청아.
의미가 있습니까?
하라면 좀 해! 나도 싫거든?? 난 너 진짜 끔찍하게 싫단 말이야.
하!
백택의 말에 호오즈키의 손이 목으로 향했다. 목을 조르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손가락 끝이 새겨진 이름 위로 닿는다. 그 손의 온기에 백택은 제 몸이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것만 같은 열기를 느꼈다. 이로 짓씹을 때는 느껴본 적 없었던 그러한 열기였다. 그 열기에 백택은 소릴 내어 웃는다. 허탈한 것도 같고, 우스워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웃음소리였다. 호오즈키가 아무리 제 목을 졸라와도 백택은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멍청이.
닿은 손길에 몸이 끓어오른다는 것, 그건 곧 제 반려가 제 목을 조르는 손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 우스워 백택은 끝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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