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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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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발인예배 설교 발인예배 설교 …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 ◇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병석에서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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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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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르호봇 · 안녕하세요. ·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르호봇 · 안녕하세요. ·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례예배 설교 말씀 중에서 발인예배 및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오면 한 번은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원문을 체계적으로 설교하는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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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장례식 설교모음, 임종설교, 발인예배설교, 입관예배설교, 하관예배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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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문] 발인 예배 설교-주님의 재림을 소망함(살전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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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장례 예배 설교문] 발인 예배 설교-주님의 재림을 소망함(살전4:13-17) 하나님께서 이뤄주시므로 부활의 소망, 기쁨의 소망, 영생의 소망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 … 우리가 이 세상에 오면 떠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서 하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 가는 소망을 갖고 죽음이 아니라 시작이 됩니다..엘벧엘은 야곱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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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을 소망함
[목양칼럼] “발인예배 설교문”_2019.6.22 : 희망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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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목양칼럼] “발인예배 설교문”_2019.6.22 : 희망찬교회 그 날은 죽음의 날이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어찌 되는가? 갈 곳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이사’한다. 고인은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목양칼럼] “발인예배 설교문”_2019.6.22 : 희망찬교회 그 날은 죽음의 날이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어찌 되는가? 갈 곳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이사’한다. 고인은 … 발인예배 설교문지난 목요일(20일) 또 한 분을 보냈다. 우리교회 지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매의 모친께서 세상살이 마치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몇 년간 병원생활을 하셨다. 가족들의 수고가 매우 컸다. 경제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는데 이 집은 달랐다. 4남매가 힘을 합쳐 어머니 한 분을 잘 모셨다. 장례예배 인도하며 모두 모두 수고 많았다고 격려하였다. 가족이 모두 개신교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서 임종예배와 발인예배만 교회주관으로 인도했다. 약 25분간 드려진 발인예배 중에 유족과 참석 교인들과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공유한다.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2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오늘은 고인의 장례절차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장례식은 고인이 평생 사셨던 육신의 장막 집을 수습하는 절차다. 고인은 이미 떠났다. 그가 살던 몸을 떠났고 함께 살던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간 살던 육신이란 낡은 집만 남겼다. 그를 기억하고 생각하면 아프지만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가족들이 이 자리에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 숙연해지는 자리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는 세 단락으로 되어 있다. 단락을 시작되는 첫 문장이 동일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인은 땅에 사는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소풍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간다’는 표현도 심오하다.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생명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죽음이다. 시인은 사는 것은 소풍이고 죽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본향이 하늘에 있다고 말했다.흑인영가 중에 널리 불려지는 노래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의 본래 제목은 ‘순례자의 노래’다. 오래된 노래이지만 여전히 불려지는 노래다. 잠시 전에도 함께 불렀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고향을 등지고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불렀을 이 노래 속에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준다. 사는 것은 ‘순례’다. 순례는 목적지가 분명한 나그네 길을 말한다. 만일 목적지가 없다는 사는 것은 ‘방황’이다. 우리가 돌아갈 사모하는 내 아버지 집은 저 영원한 나라에 있다. 죽음은 순례를 마치는 날이다.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소풍 마치고 집에 가는 것이라 했고, 흑인영가는 순례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우리가 이땅에 머무는 동안 살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는 날이 온다. 더 이상 낡은 집에 살 수 없어 떠나야 하는 날이 온다. 그 날은 죽음의 날이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어찌 되는가? 갈 곳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이사’한다. 고인은 이사하셨다. 어디로 이사한지 알기에 재회가 가능하다. 예수라는 길을 따라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이사했다. 머잖아 우리도 이삿짐을 꾸려야 한다. 그곳에 가면 먼저 간 고인을 만날 수 있다. 앞서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한 번도 뵌적이 없지만 늘 곁에 계시는 아버지를 뵈옵게 되리라. 그 아버지 품에 있는 예수라는 아들도 뵈오리라. 고인은 이사가셨다. 한 어머니에게서 4남매가 태어났다. 하나가 넷이 되었다. 하나에서 나왔으니 부디 하나 됨을 이루기 바란다. 이것이 먼저 가신 이를 소중하게 기억하고 빈 자리의 허전함을 채우는 방법이다. 다시 한 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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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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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문] 하관예배 기도와 장례식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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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예배 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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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인예배 ] 엡 2:4-10 I 하늘 가는 밝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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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설교 – mission – 발인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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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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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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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병석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복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주께서 안식으로 데려 갔었습니다. 고인에게는 큰 기쁨의 시간일 것입니다.
천국은 이곳보다 몇 천 배나 더 복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고인은 지금 이 약속의 처소에 계실 것입니다.
천국이란 예수님께서 약속한 처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은 우리가 처할 처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할 곳을 예비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보다 000님을 먼저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수많은 날에 가졌던 고통, 그 마음의 아픔과 육체적 고통이 다
사라졌습니다.
천국은 또한 재회의 처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 모두 천국에 가면 더 이상의 죽음도 이별도 없습니다.
거기서는 영광스러운 교제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운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꼭 도와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를 꼭 만나고 싶거든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천국에는 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필요하지 않게 여겼던 것은 천국에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으로 고통당하고, 또한 불구처럼 불편해서 그 모든 것도 거기서는
다시는 재발되지 않고 다시는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병으로 인해서 우리가 건강도 나쁘면서도 고통스러웠고,
또한 건강한 것 같으면서도 염려스러웠고, 걱정스러웠고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한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하다 했습니다.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소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러한 모든 분야가 충족되기 때문에 부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는 슬픔이 있고 아쉬움이 있지만, 고인에게는 오히려
경사스러운 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죄악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과 같이 우리는 이별의 슬픔, 안타까움의 슬픔도 거기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천국에는 사망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나니…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수 영접하셨지만 천국에서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 . .
그런데 정말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줄거리만 내렸습니다.
천국은 우리들을 남겨두고 떠난 000님의 현재의 집입니다.
000님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예수님께 속하여 천국의 처소를
소유하라고 외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이제 사랑하는 000님께 작별을 고하며
언젠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영원히 빛나고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 예문 2
성경구절 : 이사야 40 : 6-8절
설교제목 :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먼저 성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평강과 소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고 000 님의 발인예배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이란 제목으로 잠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과 모든 삼라만상을 볼 때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으시는 것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모든 창조가 끝났습니다.
그 모든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는 아주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나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다 보니,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게 되었고, 책임을 전가하는 죄를 짓게 되고, 점점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롬6:23에 말씀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람을 사망으로 가게 내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망으로 가던 인생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게 하셨고(요 3:16),
죽음에서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마음에 악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지 않고 죄를 짐짓 지어 가는 사람은 풀과 같이 시들고 결국 사망인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왜 지옥에 가야합니까? 말씀을 믿지 않았고,
불순종하므로 죄를 짓게 되고, 죄는 곧 불법이라(요일 3:4)불법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이 지옥의 중한 벌, 영원히 받는 형벌이지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며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무엇입니까?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야고보서 4:14 에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이 아무리 푸르러도 여름 한 철이요. 폭풍 설한이 몰아치면 제각기 낙엽 되어
우수수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사람을 안개에다 비유하고, 풀에다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진대 사람이 무엇으로
그 업을 남겨야 합니까? 명예, 권세, 지위 그 무엇으로 이 세상에 남기고 갑니까?
옛 성인들은 말씀하시기를 “在人名이요 虎在 皮”라 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죽은 뒤에 이름을 남겨서 무엇 할 것이며,
아무리 유명한 지위, 권세가 있었다 해도, 나 죽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 000 님과 같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신대로
우리의 이름, 지위, 명예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초종 목표는 천국입니다.
빌3:14에서 사도 바울은 “표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하신 대로
우리의 푯대는 천국이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비록 풀과 가고 꽃과 같아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든든히 가지고 주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시고 사명감당하시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3
성경구절 : 요 11: 25-27, 35
설교제목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발인예배의 뜻은 한 인생이 흙으로 지음을 받아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예배의식을 말합니다.
고 000성도님만 이런 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여러분 각자가
발인예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창3장에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죄 하기 전에 미리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죄를 짓지 않으면 영원히 살 것인데 죄를 범하면 죄 값으로 너희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때 죄의 결과로 인간들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언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최초에는 죽음이 없던 이 인류에게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와서 사람들은 살다가
수명대로 죽기도 하고, 병들어서 죽게 되고, 혹은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악한 사람도 눈물 흘리고,
좋은 사람도 눈물 흘리고 슬퍼합니다.
이 죽음이 얼마나 악한 사건이지 모든 사람은 자기 가족, 친척,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큰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키
위해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죄악의 문제를,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이겁니다.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되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바로 그분을 믿으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그 예수님이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의 귀한 복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베다니 지역에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분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나사로에게는 여동생이 둘 있었습니다.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오빠가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이 여동생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는냐?” 여동생들은 “예” 저는 믿습니다.
앞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은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명하시므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가지 그림입니다.
고인도 예수님이 오실 때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 부활의 몸으로 우리 모두를 만나
볼 수 있는 축복을 베풀어주신다는 놀라운 복음의 소식입니다.
나는 오늘 감사를 드립니다.
고 000성도는 오랜 세월동안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연세 많은 지경에 예수님을 자기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믿어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이 딸은 죽었습니다 만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고 000성도는 이미 썩어서 흙이 된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또 그날까지 고인의 그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천국에 올라가서 사망이 없고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질병이 없는 영원한 그 천국에서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지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장례식에서는 아이고! 아이고! 통곡도 나오겠지만
그 보다 더 영혼이 구원 받은 기쁨에서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 장례예식은 영결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지요 앞으로 여러분께서 예수님 믿고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 즉시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여러분이 보고 싶다는 그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머님은 비록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그 영혼은 천국에 계십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실 그 날에는 썩은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으로 바라보면서 주님을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께서 확신하시고 마음에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지옥가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 놀랍고도 슬픈 사건을 맞이해서 3남2녀 모든 자손들도 어머님이 누리시던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언제 내가 이 땅을 떠날지라도 여러분께서는 죽는 것이 아니고 그 즉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올라 가셔서 나의 영이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갖게 된다는 것,
이것이 분명히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서 금번 우리 어머님의 죽음이 결코,
결코 헛된지 않도록 이 고귀한 한 영혼의 죽음이 온 우리 집안의 식구들이
구원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시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죄악이라도 그분은 다 용서해 주십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나의 정성을 다해 효도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발인예배를 맞이하면서 우리 예수님 앞에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생전에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용서해 주십시오.
회개하는 열매로 앞으로 저 역시 어머님이 섬기시던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앞으로 3남2녀의 모든 식구들은 한가지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형제우애를 나누는
아름다운 가족이 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제 마음의 결단을 가지면서 예수님 주시는 부활의 소망으로 잘 극복하면서
오늘 사건을 통해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온 유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예문 4
성경구절 : 욥 30:23
설교제목 : 하나님이 지정한 곳
설교자 : 송병철 목사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이 사랑하는 참된 생명을 이 땅에 보내주신
고 000집사님 아름다운 생명의 날을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오늘 마지막 발인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오늘 하루 종일 저들과 함께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은혜가 되어지는 축복의 날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땅위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영원히 살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피조 된 모든 생명체는 영원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마음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즉 영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잉태된 존재라, 영혼이 있기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음이 왔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길 장사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그 순간부터 무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는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어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 지어지는 것은
어느 시점에 우리는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 인생의 길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무리 몸 관리를 잘 한 그러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인간은 죽을 존재라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진시황처럼 불멸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수업시간이 있고, 정치가에겐 마지막 과업이 있고,
설교자에겐 마지막 설교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또 마지막 남은 유언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 모든 생명체가 지정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가시리라고 해서
우리의 죽음이 무엇이냐 모든 생명체는 나중에 지정된 집이 있는데 그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덤으로 가는 것은 우연히 가는 것이 아니라 다 정해진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들은 한번 태어나면 결국은 무덤으로 가게 되어지는 것은 정한
과정인데 이것은 결국은 어쩌다가 불행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야하는 그런 정해진 일입니다.
이 지정된 집이 우리들이 가야할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부인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이 있을 찌라도 이건 엄연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면서 없는 것 같이 세상을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땅을 취하여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쁜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준 말씀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우리의 생애가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할 때
고 000 집사님은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희생을 아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스러운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아까운 그런 한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무슨 계획이 계신지 젊은 나이에 불러 가셨습니다.
그러고는 먼저 지정된 곳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고 000 집사님 이 가신 곳은 외로운 곳이 아닙니다
죽음은 흔히들 참 외롭지 않겠느냐고 하는 생각을 우선하게 되는데
우리 믿는 성도가 가는 예비 되어진 그곳은 외로운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정된 그 집은 이로운 곳이 아닙니다. 쓸쓸함도 없고 거기에는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곳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은 그 천국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라 그렇게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제 고 000 집사님은 외롭지 않는 곳으로 가심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먼저 믿으시고,
오늘 발인예배를 통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성도는
외롭지 않는 곳, 아름다운 모든 인생이 가야할 지정된 곳을 가심을 믿으시고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쁜 세월 중에서도 또한 도전을 받는 것은 고인처럼 이웃과 형제를 위해서 헌신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또 우리는 인생이 가야할 그 길을 알고 땅위에 있는
이 유한 된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죽음 이후에는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이 후예 상급이 없다면 고 000집사님이 얼마나 불쌍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먼저 간 남편이 주님 품에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도하시며,
헌신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힘쓰시던 그분이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상급이 없이 그대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저는 전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이 죽은 이 후에는 상급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이 자녀들과 가족들도 믿을 줄 압니다.
어머니의 삶이 헛되지 않은 줄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리고는 상급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 000 집사님의 경우를 보면 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예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힘썼고 또 자녀들을 위해서 항상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많이 쌓았을 줄 압니다.
자녀들도 신앙생활 아름답게 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치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마지막 죽음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듯이
고 000집사님은 주님 앞에서 상을 받는 그 기쁨을 지금은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이별로 마음 아파하지만 그건 누구나 가야할 정한 길이기에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 영혼이 안식을 얻고 상급을 받는 그 날의 사실을
믿을 때에 오히려 한편으로는 눈물이 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져보는 것입니다.
오늘 고인은 상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저는 믿고 여러분들도 믿을 줄 압니다.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닙디다.
참 짧습디다. 너무너무 짧은 것이기에 성경은 말했습니다.
너는 이때에 세상에 취해서 살 것이 아니라 자다가도 깰 때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나 마라톤이라고 했지만, 마라톤 같이 살면은
우리 인생은 한눈 팔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쩜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보면 100m달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눈 팔 수 없는, 숨도 몰아쉬어야 할 시간도 없는..
우리가 인생을 이 세상에 성실하게 살고자 할 때에 그것이 인생의 가치인줄 압니다.
고인은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100m달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열심히 사시다가 가신 분입니다.
많은 사람은 마라톤 하듯이 가다가 한눈도 팔고 산도 바라보면서 쉬어가면서
여유를 가지며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지만 100m 선수는 페이스가 없습니다.
숨을 모두어 쉬어야만 합니다. 그렇듯 열심히 사셨습니다.
고인은 이제 모든 곡식을 맺고 특히 과일을 수확하는 좋은 계절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가셨습니다. 고인은 이 좋은 가을! 곡식이 영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좋은 시기에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고인은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가셨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음을 기억하시고 남아 있는 우리도 이제 영광스러운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한편의 시를 읽겠습니다.
개울물은 바다 가까워 질 무렵에 가장 고요하고
꽃들은 황혼이 질 무렵이 되어질 때 가장 아름답도다.
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때에 가장 아름답게 지져귀고
성도의 삶은 결산하는 때가 가장 고귀하다네
사랑하는 000 집사님! 사랑하는 어머니여 이제 정든 집을 떠나갑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가족 내 친지들이여! 이제 나는 갑니다.
새벽부터 땀 흘려 수고하고 늦은 밤까지 수고하던 내 정든 육신의 집을 떠납니다.
내 친구들이여! 함께 주님을 섬기던 성도들이여! 그대들은 평안히 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지정한 곳으로 가오니 그대들은 평안히 잘 있으시오!
◇ 예문 5
성경구절 : 시 119 : 97-105
설교제목 :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
고 000 집사님의 신앙특징을 제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주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을 하고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생활을 해
오셨다고 제가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일마다 하는 설교 본문을 그 주간에 주어지면 그 주간에 말씀이 길던 짧던
꼭 암송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암송하는 것이 늘 익숙하기 때문에 그 암송이 어렵지 않고 늘 기쁘고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설교 본문 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좋은 성경말씀의 구절들을 일터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암송하고 또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늘 암송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낸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인의 다른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이야기하지 아니하여도 고
인의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암송을 힘들게 하는데 고인은 말씀 안에서 늘 기뻐하며 사셨다는 자체가
고인의 신앙의 단계, 신앙의 성숙도가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표현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묵상하는 자가 받는 복은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만 살펴보고 우리가 고인의 신앙을 본받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을 종일 묵상할 때에 꿀맛보다 더 단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보다 더 하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이고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배가 고플 때 먹던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습니까?
말씀도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서 맛이 틀립니다.
고 000집사님도 말씀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맛있었기 때문에 말씀과 더불어
암송하면서 기쁨을 누렸다고 믿습니다.
고인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 속에서 그의 생애를 보내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 말씀을 묵상할 때에 명철하게 되고 모든 거짓과 악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 . .
그의 생활이 나날이 거룩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시고 그와 같이 살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는 자입니다.
내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우리의 인간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그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고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명철한 단계에 이르렀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적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의 스승들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노인들 경우에는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오셔서 경험도 많고 지혜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으로 얻은 세상지시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 묵상했을 때에 노인들 보다 스승보다
내가 더 지혜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온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다 보니까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고
악의 길에도 서지 아니하고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제가 000 집사님을 볼 때에도 말씀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늘 즐거워하셨고
늘 말씀에 따른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셋째 : 말씀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합니다.
딤후 3 말씀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과 그리고 악의 길에서 떠나
순결한 삶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있어 구원을 가져오게 되고,
구원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면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고인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인은 이러한 신앙으로 인해서 말씀을 통해서 늘 사모하며 바라던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
지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의 품에 안겨서 평안한
안식에 들어가 계십니다.
이제 고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더불어 함께 만나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만나서 두 번 다시 이별이나 헤어짐이 없는 곳,
고통이나 슬픔이 없는 그 좋은 천국생활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족들 가운데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 않는 분들 있으면 고인의 신앙을 본받아서
성경을 암송하는 깊은 차원의 신앙의 자리에까지 들어가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신앙의 단계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을 먹으면 몇 시간 후가 되면 또 갈증이 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몇 시간 후면 또 배가 고픕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황금보화를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우리 인생을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또 황금보화가 우리에게 구원을
안겨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을 때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고인은 일제시대와 6.25시대를 살아 오셨고, 좋지 않은 여건으로 인해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세상의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였지만은
그러나 고인은 주의 말씀에 만족함을 누리고 세상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늘 마음가운데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고인의 유족들은 아버지의 그 신앙!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그 신앙을
본받아서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6
성경구절 : 딤후4:7-8
설교제목 : 나그네의 여정을 마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하곤 합니다.
나그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그러기에 나그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안식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도 이 세상은 나그네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혼의 여행이 마치는 날 돌아갈 하나님의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을 천국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묻는 질문에
“내 나그네의 인생길이 130년이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하고 告白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기에 험악한 세월이요 외로움과 슬픔의 세월입니다.
세상의 안락함이 나그네 인생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인생의 안식처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이나 명예가 결코 그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건강하여 조금 더 사는 자나 조금 덜 사는 자나 역시 인생은 험한 나그네인생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가야만 합니다
정든 육신과 성도들과 영원히 떨어져서 이별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고 000 님에게는 이제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을 사모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의 죽음은 외로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망과 즐거움과 희락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온 참 본향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려 가는 것이니 그러합니다.
정든 가정을 떠난 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제 나그네의 괴로운 세월을 뒤로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셨으니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23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고 000 님의 세상을 살 동안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인도하신 주님께서 천국천사들과 더불어 000님의 영혼을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했음을 믿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居할 곳이 많도다.”
그러므로 먼저 가신 000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귀하고 복된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제 이 길을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믿음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0님은 참으로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열심히 예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매주 씩씩한 걸음으로 주님 전을 찾아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본을 따라 어머니를 모셨던 000집사님,
역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도 교사로 믿음의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 잘 믿는 것이 000님의 유언이요 바램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바라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000님께서는 선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셨습니다.
험한 인생의 나그네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며 모든 이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신의 헤어짐으로 슬퍼하는 유족들을 바라봅니다.
무슨 말로나 방법으로도 위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우리들임을 깨닫게도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유족들에게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를
기쁨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목자로 모신 가정이 되셔서 천국에서 다시 살 소망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문 7
성경구절 : 요 14:1-6 시 90:10
설교제목 나를 찾아줄 부모가 있는가?
고 000 성도님 발인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일전 고 000성도님은 우리들과 똑같이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던
이 귀한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지금 이곳에 말없이 누워 계십니다.
천하만물이 일생이 끝나면 다 제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물은 바다로 가고 꽃은 시들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죽음이라는 똑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어느 사람은 사망이라 하여 애통하고, 절통하고 방성대곡을 합니다.
세상 것을 다 잃은 것이 억울하고 원통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못간 것이 애통하고 원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을 가르켜 소천 이라 합니다.
즉 하늘에서 불렀다. 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별의 아쉬움이나 아픔은 있어도 잠시 먼저 가신 분과
헤어져 사는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큰 만큼 후일에 만남의 기쁨도 클 것입니다.
먼저 가신 어머니는 천국에서 사시고 남편 되시는 분과 자녀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시다가 영혼이 구원받아서 다음에 천국에서 어머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찬송을 불러드리며 보내드려야 합니다.
육신은 지금 이 자리 우리 보는 앞에 누워 계십니다.
영혼은 벌써 천국에 도착해서 온유하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소천 이일 전에 천국에서 “흰 옷 입은 이가 왔다”고 반겨주는 환상을 보았답니다.
우리 성도님은 비록 짧은 믿음의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믿음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영안도 밝으셨고 심령이 깨끗하셨습니다. 또한 마음이 온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환상을 보신 것입니다.
천국가신 것을 믿으셔도 됩니다. 확신하셔도 됩니다.
만약에 주님이 고인에게 딸아 네 소원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어머니는 어떤 대답을 하실까요?
자식들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살게 해 주세요. 부자되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남편 건강하고 예수님 잘 믿게 해주시고, 자식들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 같이 살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는 두 주먹 불끈쥐고 크게 부르짖으며 태어납니다.
세상부귀영화 명예권세 한번 잡아 보겠다고 . .. .
그러나 이 세상 떠날 때는 두 손펴고 아무것도 못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집도 돈도 명예권세도 못가지고 갑니다.
저 세상에 가져갈 수도 없고 필요치도 아니한 것들입니다.
갈 때의 울음은 크고 씩씩한 울음이 아닙니다. 인생 살아보니 별것 아니더라
서글픈 눈물이요 이별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초상집에 가서 지혜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 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내 인생 지나온 삶이 이렇게 빨랐는데
남은 세월은 얼마나 빠를까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얼마 안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과연 제일 값어치 있는 삶일까?
인생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정말 바른 삶인가? 고민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못 깨달으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못 깨달으면 다른데서 깨닫기가 힘듭니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년 살다가 가는데 그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가지면 캄캄한 어두움이 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이가 밖에서 놀다가 밤이 와도 부모가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거기는 빛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는 나를 보호해줄 부모님이 계시고 들어가서 편히 쉴 방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부모가 와서 찾아가는데 고아는 부모가 없습니다.
해가 넘어가도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찾아줄 사람도 들어갈 집도,
갈 곳도 없습니다. 캄캄한 방은 춥고, 어두운데서 그냥 보내야 합니다.
그 방은 추위와 무서움 배고픔과 외로움 고통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어두운 밤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지옥에 영벌의 그 방은 어떻하겠습니까?
이런 낭패를 안 보려면 이 땅에서 예수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요한 복음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니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계신 저와 여러분 누구에게나 어두운 밤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이 왔을 때 여러분을 찾아줄 부모가 계십니까?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네에게는 결코 무서운 밤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예문 8
성경구절 : 약4:13-17
설교제목 :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설교자 : 강정일 목사1. .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이 타락한 이후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체 여관 같은 이 땅에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 입니다.
사람이 땅에 나그네로 올 때는 순서 있게 왔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이 시간장례 하는 이 엄숙한 자리에 서신 여러분!
땅위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이 튼튼해도 풀처럼 시드는 날이 언제 올런지 모르고
우리의 영광이 아무리 찬란해도 “꽃처럼 떨어지는 날이”올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무리 치밀하고 지혜로와도
“안개처럼 사라지는”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라고 합니다.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는 자기만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체 미래를 향하여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나님 없이 돈벌이 계획을 세우고 물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인생들의 자랑, 다 허탄한 것이며 또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꿈에도 교만하거나 욕심에 눈이 어둡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15)
2.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
고인께서는 1911년에 출생하여 향년87세로 운명하셨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므로 (히9:27)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이후의 삶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부활)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아는 사실은 고인의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앞에서 장례예배를 드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아내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은 교회의 집사로서 천국의 소망 중에 살다가
2년 만에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늘 마음깊이 남편 위해 기도했으며,
딸들과 사위들도 기도했으며 믿는 친척들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2) 본인께서 생전에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린 적이 있었고
교회에 스스로 찾아 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분이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에 저의 인도로 예배드릴 때
우리의 가슴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기독교 장례식을 진행하게 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인 줄을 믿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부르시면 내일이라도 가게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준비 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자신의 남은 여생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섞어질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 마귀 편에 서지를 말고,
속히 하나님 편에 서서 인생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잘 감당합시다.!
유족들을 위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고인의 유족 친척여러분은 서로 대화로 말미암아 피차 용서하고
형제 우애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다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앞서간 믿음의 선친들을 만나 칭찬과 상급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예문 9
성경구절 : 욥기 14: 9
설교제목 : 최후의 희망 .
설교자 : 유상규 목사
우리의 인간의 삶이란 지극히 미미하고 참으로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게 피는 꽃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청청할 것만 같이 보이던 풀도
얼마간의 시간이 자나가면 시들어서 흉물이 되어지고 아무도 거들떱지 않는 것으로
되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도 꽃과 같고 이슬과 같은데 우리 인생의 삶은 결국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된 인생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생의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지를 우리는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은 자기의 지휘관이 지휘하는대로 움직여 주어야
나라가 든든하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들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참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복된 삶을 살수가 있으며,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언젠가는 부르실 텐데 먼저 가신 000권찰님을 생각 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 동시에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부활의 종교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는 죽어도 새로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살아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귀한 사실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 이겁니다.
타 종교들은 사람이 무언가 신을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무언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산에나 바다에 가서 뭐 이상한 돌만 보아도 거기에
섬기고 절을 하고 빌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온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러한 종교, 신이 인간에게
강림하신 종교, 그래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도성인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종교가 바로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져 있는 종교이며 누구든지 믿으면
그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님께서 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000 권찰님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날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저희보다 먼저 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같이 예수 안에 사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화 함께 데리러 오시리라” 살전 4:14절에 말씀했습니다.
언젠가는 믿음의 사람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데 영원한 그 곳에
우리가 다 갈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동안에 오랜 시간동안에 살면서 인간의 미운 정 고운 정 이 들기도 하고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유가족들이 이제 고인의 시신을 출상을 하게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은
그러나 그 나라에서 또 만날 그 날을 우리는 기약하게 됩니다
우리는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우리가 더욱더 마음과 뜻을 같이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잘 걷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그 뜻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우리 000 권사님을 다시는 눈물이 없는 그곳으로 데려가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인간의 정을 생각하니 섭섭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참으로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몸이 불편하여 부축을 받으면서도 교회에 출석 잘하였던 그 모습을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 모습도 기억하게 되어집니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지만 눈물과 고통과 쓰라림이 없는
영원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제는 건강하게 편한히 쉼을 얻고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 유가족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이 그 모습을 다시 생각하면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서 그 나라에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볼 그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 우리의 인간의 슬픔과 석별의 정을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귀한 유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다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사후에 그 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믿고 믿음의 온전한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이 후에 있을 모든 절차를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문 10
성경구절 : 벧전 3:17-19
설교제목: 새로운 삶의 시작 ….
설교자 : 최성광 목사
하루는 참새와 하루살이가 숲 속에서 놀다가 해가 석양에 기울어질 무렵에
참새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해가 벌써 기울어졌으니 내일 다시 만나서 놀자.
그렇게 말할 때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참새에게 내일이 무엇이냐?
내게는 내일이 없다.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우리 인생에게는 내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루 하루가 하루살이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생명 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가 생명 있을 때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통해서”성도의 죽음은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나 영혼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거룩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체가 변해서 액체가 되듯이 액체가 변해서 기체가 되듯이
죽음은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변화 받는 순간입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계의 삶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땅에서의 고난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바로 죽음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 특히 거룩한 성도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나그네의 길을 청산하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출발하는
순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 5: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향살이의 생활이 아무리 넉넉해도 정신적으로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버지 집은 영원한 반석이 있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만족함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완전하고 풍성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서의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고000성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말고 그의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마음껏 기뻐하고 축복하는
이 순간이 되어야 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나그네 삶을 점이라고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뜬구름 잡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으로 살다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흙의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압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날 고통도 없고 한숨도 없고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낙원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을 육에서부터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로
받아들임을 우리가 바라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생활 가운데서 종말론적인
삶을 예비하면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한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랑하는 딸을 맞이하여서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이 땅에 남은 모든 형제자매들과 특별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성껏 몸과 마음을 다해 효를 다하므로
사랑하는 이 가정이 모든 후손들이 복되고 번성해서 믿음의 계보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이어지는 은혜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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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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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장례예배 설교 말씀 중에서 발인예배 및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오면 한 번은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가 육체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부활의 날을 소망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발인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집이 있다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라
고후 5: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땅에 있는 장막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땅의 집이나 영원한 집은 영혼이 거주하는 집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영혼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육체의 장막에 있게 되고 사람의 영혼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오늘 고인이 된 분은 그동안 세상에서 육체의 장막집에 거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이제는 그 장막집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으로 이사를 가신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은 그리 좋은 집이 못 되는 곳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은 육체의 장막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찬송과 영광과 기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세상은 눈물과 한숨과 죽음의 골짜기요 억울하고 고달픈 생활이지만 이제 고인이 가신 곳에는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행복을 안겨주는 곳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민이 되어서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으되 죽음도 이깁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어라 하신 예수님! 예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영원한 집을 예비하여 주셨으니… 이제 고 ○ ○ ○ 집사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년수가 다 되어 아버지 계신 영원한 집으로 가셨습니다. 애통하는 유가족과 일가친척 친지들과 여기에 둘러선 교우들에게 위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그날 우리 모두 즐겁게 만날 수 있게 하옵시고 이 땅에 남은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한층 더 간절하게 사모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앞으로 남은 장례 절차를 성령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흑암의 세력 일체 틈타지 못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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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설교모음, 임종설교, 발인예배설교, 입관예배설교, 하관예배설교
장례식에 대한 설교 모음 / 임종 /발인 /입관 / 하관 /
죽음이 문밖에서 있을 때
(살전 4 : 13-18) 165.168.289
임종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엄숙하고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므로 조금도 낙심할 필요가 없이 조용히 그리고 확신 가운데 서서 그것을 맞이해야 한다.
1, 가장 위대한 순간.
어떤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중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어 낙심천만한 가운데 있고 또한 그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악을 쓰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1 하지만. 믿는 우리는 복된 생애를 다 청산하고 천국에 간다는 확신으로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면서 주님의 영접을 받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2. 새 생활의 출발.
믿는 자의 임종은 임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삶의 새로운 전기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증 때 부를 찬송과 기도로 언제나 연습하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3. 마귀 권세를 물리치 때 .
내세에 대한 소망이 불투명해질 때 마귀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그를 의지하는 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여서도 오히려 초연해 지며, 마귀의 권세를물리치고, 숭리와기쁨과구속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71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쳐야 한다.
죽음은 약속된 하나님 나라 입성이므로 엄숙하고 확신있게 맞이해야 한다.
사망율 이기는 능력
(고전 15 : 55-57) 152,222.289
인간에게 죽음이란 달갑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것은 우리의 공동체 안에 찾아와 마음을 한껏 흔들어 놓곤 한다. 그러면 이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 죽음의 본질 .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증오하는데. 그러면 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인류 최대의 원수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믿는 자에게 이 죽음은 더 이상 원수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이것은 평안한 안식의 길로 인도하는 앞잡이가 될 뿐이다.
2 . 죽음을 이기는 힘 .
이것은, “우리 주 라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을 맛보셨지만. 죽음이 그를 억류할 수 없자.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음이 와도 당황하거나 떨지않고 담담히 그것을 기다리며 환영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로버트 눈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나는 가노라, 저 영광의 세계로, 죄여, 이제는 안녕, 죽음이여,
이제는 안녕”이라고 외쳤다. 실로 죽음을 정복한 자만이 이 땅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도의 부활이므로 사망을 이기는 것이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
(시23:3-6) 444,453,476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정황 가운데서도 언제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그는 항상 우리를 푸른 목장. 잔잔한 시냈가로 인도하신다.
1, 사망의 음침한 곯짜기에서 보호하신다.
이 성도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각기에서도 능히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도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은 어떠한 원수 마귀외 권세도 물리칠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인도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신다. 그의 인도와 보호는 잠시 잠깐 동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3,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
이 땅에 사는 나그네는 잠시 잠깐 거하다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돈이 많아 좋은 집을 소유했다 해도 그 집은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그것은 임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집은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집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다.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임종-4)
(빌1:20-24) 231.471.474
바울은 네로의 죄수가 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그 모든 고퉁도 다 이기며 승리하였다.
1, 죽음은 현세의 모든 악을 제거해 준다.
세상에 얽매인 자들은 많은 갈등과 시련을 당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세상의 유행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있는 보화를 사랑하며 이것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에 주어진 삶을 값있게 살다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도 오히려 유익한 것이 된다.
2, 죽음은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 땅 위에는 언제나 슬픔과 고통의 한숨 소리가 그칠날이 없다. 음산한 거문고의 소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그러나 죽음 저 너머 저쪽 나라에 가면 밤도 없고 어둠도 없고 죄도 없다.
3, 죽음은 그리스도의 존전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여 영광스런 낙원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를 믿는 성도는 현세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다 당하였지만 장차 낙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오히려 찬송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자녀는 부름을 받아 갈곳이 천ㄱ국이므로 엄숙하고 조용하게 감사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두 종류의 집 (입관-1)
(고후 5 : 1-10) 272,541,545
신자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장차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자이다. 그래서 이 땅 위의 집과 하나님 나라의 집 즉 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1, 장막집 .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이 땅의 삶이 ‘장막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장막집은 야외에 다 치는 천막집을 가리킨다. 이것은 언제든지 이동하기 쉽게 만든 간이 집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거두기 쉽게 지은 집이므로 내구성이 전혀 없다. 우리가 학위에 소유하고 있는 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이것은 역시 장막집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이것은 모두 없어지고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영원한 집 .
이 땅 위의 장막집과 반대되는 집은 곧 영원한 집이다. 그것은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인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덧입게 하는 것이다. 고인은 한평생을 살면서 이 하늘 나라에 있는 집을 사모하고 열망했다. 그는 이제 그토록 사모하던 집을 가기 위해 이 장막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잠시 후면 그는 그곳을 가기 위해 조용히 관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거주할 영원한 집이 있음을 확신하자.
성도는 약속된 천국의 집이 있으므로 사모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자는 자의 복 (입관-2)
(살전 4 : 13-18) 165,291,545
본문에 자는 자리는 표현이 세 번, 쓱은 자라는 표현이 한번 나오는데, 특히 주 안에서 잠자는 자의 누릴 복락에 대해 강조되고 있다.
1, 영원히 깨는 복
주 안에서 자는 자만이 영원히 깨는 복락에 참여할 수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 영화에 심취해 있을지라도 주님을 모르면 영원히 어두움 가운데 헤메일 것이며 사망과 흑암이 지배하는 곳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영원허 깨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부촬에 침메하는 복.
본문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성도는 예수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는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될 것이다.
3, 위로힘을 받게 되는 복.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망 없는 다른 이아 같이 슬퍼하지 않게”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영광과 안위를 보기 때문에 멸망당할 자와 같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늘 고인의 영광을 마응 속에 그려보며 우리 또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도의 죽음은 영원히 사는 부딸의 복이므로 큰 위로와 소망을 갖게한다.
그리스도의 인의 죽음 (입관-3)
(롬 14 ; 7-9) 293.531,534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하여 살아야 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선포하였다.
1. 이웃을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면 거기에 따르는 회생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내해야만 한다. 성령에서는 사도들에게 역사하셔서 굻주린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하기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여행을 하게 하셨다.
2, 그리스도를 섬기는 앎.
그리스도인외 목적은 그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생활에서 분만 아니라 공적인 생활에서도 밝히 표명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닙의 영광을 가리기도 한다.
3. 죽을을 예비한 삶.
신자의 삶은 죽음을 잘 예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고인된 OOO 성도는 죽음을 잘 예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살았을 때 이웃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초지일관하였다. 이제 그는 펀안히 예비된 천국의 복락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이웃과 주님을 섬기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성도가 얻을 안식 (입관-4)
(시7 : 13-17) 222,225,476
성도가 이 땅 위의 삶을 살 때 믿음을 지키고 충성된 삶을 살므로쌔 받는 복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본문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1,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하나님의 장막 속에 있는 성도는 펀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 가운대서 방황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안식의 장악을 두르심으로서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신다. 여기에서 성도는 영원한 안7과 위로를 얻게 된다.
2, 그들의 목자장이 되신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의 대 목자장이 되선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 강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공급하신다. 고윽ㅂㅂ하신다. 이 EKd 위에 있는 지도자는 한결같이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주님만은 의로우시고 완전하셔서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고통ㅇ의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와 안위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구분 안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다.
현생의 삶을 사는 성도는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 치고 흔들리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다. 피러나 이러한 삶 속떼서도 고인은 믿음을 지키고 천국의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충성,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고인이 누릴 천국의 영광과 안위는 지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길이 살겠네 (발인-1)
고전 IS : 50-58 f 221,289.364
고인은 그동안 고통도 많았고 수고도 많았던 이 세상의 삶이었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락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1, 발인식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환송의이다.
김활난 박사는 죽으면서 내 죽는 장례식은 환송의 의식이 되게 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라고 믿음의 찬송을 불렀다.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도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이 찬송을 힘
있게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발인식은 경건해야만 한다.
오늘 고인은 장지고 향하여 거기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거룩하고 경건해야 한다. 유족들은 혈육의 정으로는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겠지만 그 고인이 얻을 영윈한 생명의 면류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오히려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
다. 왜냐하면 천국이 파속됐기 때문이다
3 . 발인식은 소망을 주어야 한다 .
발인식에 참여한 모든 조객은 고인의 발인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땅의 생은 유한하여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지만 그러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의 영원한 생의 시작이다.
우리가 장차 갈 그곳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다.
축복과 기쁨이 언제나 넘치는 그곳이다.
죽음 저 너머의 삶 (발인-2)
(욥 14 : 13-17) f 168,791,545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답변을 얻을 수 있다.
1 . 철학적인 논증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껏들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만족을 주기 위해 그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다.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그것이 모든 인류들 가운데 실제적으
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인간 이성과 자연의 빗이 내세에 대한 실제성을 증거해주고 있지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확실허 볼수 없고 다만 회미하게 볼 뿐이다. 이것은 주로 인간의 전적타락에 의해. 고 실체는 볼 수 없고 또 보려고 해도 다른 것으로 비취는데 근거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겠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 : 25).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내세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인간이 죽는 것을 볼 때 죄인이나 예수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는다. 다만 영생의 질이 다를 뿐이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벌을 받으면서 영생하는 것이요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세계에서 기쁨의 영생을 얻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발인-3)
(신 12:9-10) f 232.292,541
우리는 안식을 기대하기 쉬우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것에서 만족을 기대하기가 립다. 하지만 요단강 저펀, 천상에 영원한 가나찬이 있다.
1, 여기에는 진정한 만족이 없다
여기에 있는 인생들은 모든 면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진토에 앉은 거지도, 백만장자도, 평민도, 주권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며 보다 더 나은 것을 얻고자 분주하게 허등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이 땅에는 참 만족이 없다.
2, 이 땅은 멸망되어가고 있다.
전능자께서는 목적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이 끝났을 때 보다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새 창조를 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지구는 불에 타 없어지고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갈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분명히 여기가 될 수 없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3, 하나님은 천국에 살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세상적인 즐거움에 도취되어 제멋대로 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신다. 우리는 분명히 여기가 아니라 천국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삶은 보다 고상해지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고인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하려 하고 있다. 우리들도 고인과 같이 천국으로 떳떳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열정 (발인-4)
(시91 : 16) f 220,221.543
불안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사는 인생이지만. 이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그것을 향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엄다.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인간과 인간의 행하는 일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음을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썰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시간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발버등치며 애써 노력해 보지만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어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으로서 시간 세계에 오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3,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불안한 인생을 사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현생에 급급함으로 이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더욱 불안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계상황의 지배를 받고있는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영원하신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된다.
죄를 깨달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사모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흙 속에 잠들 무렵 (하관-1)
(고전 10 : 1-4) 188,226,291
하나님은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빛어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생동안을 흙과 더붙어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흙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
1, 슬픔의 시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은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2, 부활을 기약함.
주를 믿는 신자으 죽음이 복된 이유는 부활의 새 아침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죽는다’는 표현은 ‘잠잔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온당하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고야 말지만, 신자는 육신의 죽음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영원한 생명세계로의 전이
신자의 죽음은 삶의 종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로 들어가는 첫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청산할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간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라고 찬송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일이지만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감사하자.
축복된 죽음 (하관-3)
(계14:13) f 233.289.474
고인은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된 삶을 실아왔다.
1, 모든 수고플 그쳤다
인간은 이 땅에 올 때 수고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난 이후 인간의 수고에는 고통이 뒤따랐고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은 언제나 기쁨과 찬송이 있는 곳이다. 성도는 그곳에서 모든 수고를 다 바치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때지나간 고통을 꿈에 본듯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2, 안식을 한다.
이 땅에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돈이 많아 세상을 즐기며 산다 해도 마음의 초조와 불안과 고통은 그칠 날이 얼다. 하지만 성도가 그곳에서 얻게될 안식은 가장 완전한 안식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때문에 성도의 현실의 삶은 영원한 안식의 처소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3, 축복된 삶을 산다.
성도의 죽음이 귀한 것은 이 죽음의 현장에 많은 화환이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 아니요 조객이 많이 모여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성도가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주 안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이야말로 저주가 아닌 복된 죽음이며 피 이후 천국에서 새로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다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감으로 축복인 것이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하관-4)
(약 4 : 13-17) 294,531,532
인간은 변화무쌍한 세상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으토 인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또 어떤 때는 인생이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1, 안개와 같은 인생.
안개는 잠깐 있다가 아침 해가 돋을 때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이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와 같다. 천년만년 살고 지는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이다.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
2, 인생의 목적
인생이 안개와 같다 할지라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을때 그 인생은 야름다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목적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같은 거룩한 목적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때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3, 인생의 의무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진 영혼은 이 땅에서 거룩한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섬기며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고 OOO 성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과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도가 되자.
안개와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를 영접한 자는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것이다
영생에 대한 열정 (하관-4)
(고후 5 : 4-7) 225,540,544
모든 인생들은 태어나서 각각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미리 알 수가 없으며, 두려움이 깔린 산골짜기의 길을 추측할 수가 없다.
1, 하나의 길.
이 세상에서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각자가 상이하지만 마침내는 모두가 하나의 길에 귀착된다. 빈부귀천 동서고금 장유노소 모두가 이 한 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다. 이 길은 바로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이 죽음이라는 길이다. 이 길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순도 없다.
2, 영생의 길 .
인생이 거부 할수 없는 죽음이라 해도, 죽음 이후의 영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사모할 때, 죽음이 그의 원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영생의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 길은 간절히 믿음으로 사모하는 자에게 주
어진다.
3,사모하는 자의 열정
미지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들이 지만 영생을 사모하고 그것을 위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 생애가 아름답고 귀하다. 그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영생에 초점을 두고 살기 때문에. 다소 손해가 있을지라도 이를 즐겁게 감내하여 찬양 부르며 전진해 나간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의 근원
『삼상 20 : 1-3] f 289,290.292
모든 인생들은 나민은 이 땅 위에 천년 만년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위에 임한다.
1, 죽음의 때 .
인간의 죽음의 때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오늘 건강하게 집을 나갔던 자가 저녁에는 시체가 되어 병원영안실로 직행하는 예가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옛날 다욋이 체험했던 한 예이기도 하다. 그는 위기일발의 순간순간을 살면서 항상 죽음을 직감하였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 인생의 생애이다.
2. 죽음의 정의 .
인간은 죽음을 육체적인 생명의 종지로만 생각하지만 성경은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즉 겉육체적인 죽음, 건영흔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죽음, 길 구원받지 못한 자의 생애. 이로 보건데 인간의 죽음은 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멸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로의 삶의 변이를 뜻한다.
3,. 죽음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
죽음은 빈부귀천 동서고금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생들에게 임하는 가장 공굉한 손넘이기도 하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간은 죽음을 잘 예비하여야 한다. 실아 생전에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그 분 뜻대로 행하므로 복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의 때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자.
바울의 인생관 (입광-1)
딤후 4 : 6-8 231,402,544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잠깐의 생애를 살다가 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언겐가는 모두다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울의 생애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과거의 생애 .
바울은 인생을 투쟁하는 전쟁터로 보았다. 그는 을바른 인생. 후회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했다. 싸움이란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생의 정욕. 육신의 정욕.세상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우리의한펑생을 괴롭게 하다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
2, 현재의 생애
바울은 지상 사역을 부7런씻 다 필하였다고,갈 준비를 온전히 갖추었노라고 확신했다. 이와같이 고백자 확신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도 과연 숨을거둘 때 이와같은 아름다운 확신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에 처할 줄로 알고 가난 속에서 자족할줄 알며 오직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살았던 바울이다.
3, 미래의 생애 .
바울은 죽음을 예상하고서,”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딘로’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미래에 받을 상급을 사모함으로 죽음에서도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싸왔으며 복음을 위해 생애를 다바쳤다. 그리고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위한 준비 (임종-2)
사 38 : 1-3 f 294,295,296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두지 않고 공평하게 임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어김얼이 숨김없이 조금도 오차 없이 사람의 생명을 잇아간다. 이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은 그가 생전에 행했던 그대로 심판을 받는다.
1, 우리는 죽은 자의 영흔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장례예식의 목적은 죽은 자의 상태를 진척시키기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어느 곳에도 엄다. 우리는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영흔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하지 그들이 이미 죽은 이후에 기도 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2, 유족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
장례식의 중요한 목적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게하기 위함에 있다. 비록 장례식이 우리 영혼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자의 죽은 시신을 짐숭과 같이 아무렇게나 매장할 수는 없다. 장메식 의 또 하나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합에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기 립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 재리에 빼앗겼던 마음을 영원한 것들로 되돌아 오게 함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들의 행진 (입관-1)
욥 30 : 23 225.467,532
욥은 극한적인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가 떠나갔다. 소유도 모두 떠나 갔고 종들도 떠나갔다. 절친한 친구들은 그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몰아 붙였다.
1,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은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위대한 조성자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히9 : 27) 그러므로 인간이 죽어 묻히는 무덤이야 말로 인간 본연의 처소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가장 공평한 장소인 것이다.
2, 죽음은 심각한 것을 깨닫게 힌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고서 자신의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 · 우리는 시간을 영원처림 생각하거나 영원을 시간처럼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목격하고서 이를 시정하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스숭이요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3,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도록 고무시킨다.
임박한 죽음을 의식하는 자는 영생을 사모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에게 매 순간 순간은 가치있고 보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죽을때 영혼을 생각하게 하고 영생을 사모하게 하신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죽음은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므로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것이다.
영원히 멸한 사망 (발인-1)
(사 25 : 8) 290.532,544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위에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인간 최대의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숭리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승리 .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 속에 넣은 후 군병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더 이상 그 착고에 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사망에서 부활을 맛보게 하셨다.
2, 사람의 공포를 물리친 승리 .
사망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그의 영과 혼과 감정에까지 스며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공포의 도가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 면류관으로 말미암은 승리 .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림으로 그 숭리를 온전하게 확증시킬 수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숭리로 사탄을 멸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땅위에 살고 있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아래서 믿음으로 길를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촬로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었으딜로 사망을 두려워 말자.
인생에 대한 평가 (발인-2)
(시 90 : 9-10) 289.297.536
인생은 원래가 가치있는 존재이며 가치있는 사역을 하다가 전능자를 만나 뵈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어야 할 자이다.
1, 인간 연수에 의한 평가
오늘 본문은 인생이 살았던 연수게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지상에 태어났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70, 80의 생애를 살다가 죽어야만 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과 어린이 시절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연수의 길고 짧7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2, 행위에 의한 평가
인간의 생명은 연수에 의해 평가되기 보다 그 행위에 의해 평가된다고 봄이 더 합당하다.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이전에 여러 해 걸리던 것을 짧은 시간에 깨끗이 해결 지어 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목표로 그 영광을 기대하떠 살아야 한다.
3, 내세 준비에 의한 귐가.
현재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옮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승리 (하관-1)
(고전 15 : 57-58) f 384,396,397
사망의 세력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1, 죽음에서의 승리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에 대해 숭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위협 앞에 수 없이 처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부촬의 신앙으로 인해 담대히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도 이와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죽음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
현 세상에서는 부귀 영화의 척도에 따라 인간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누릴 자들은 그러한 승리로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이다. 승리하신 아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므로 영원한 승리를 얻은 것이다.
3, 승리 연율 자들의 자세 .
우리는 멸망 당할 자들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무쌍한 풍조에 쉽사리 혼들리거나 놀라지 않는다. 우리는 소심하고 두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부활세계를 바라봄으로 힘과 용기를 공급받아야 하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확신하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한 하나텀의 백성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잠 (하관-2)
(시127 : 2) f 418,464.474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모든 샘애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
1, 하나님외 사랑하시는 자들.
하나님은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있던 자들을 당신의 피값으로 구속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자녀이면 그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충의 대상이될 수 있다. 그들은 장차 하늘의 신령한 유업에 참여자가 된다. 그들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위에 있는 것들을 위하여 살고 있다.
2,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사들은 물론 육적인 필요도 채워주신다. 그는 그들에게 잠. 안식 만족을 주신다. 그가 공급하시는 만족은 모든 선한 것에 충만히 역사하고. 또 창세 전에 택하시고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3,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심 .
현세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옳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잠깐이므로 자랑할 것 없는 약한 존재로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천국시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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