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34 창업 후기 All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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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본 카페 창업 후기 feat.handd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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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창업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자(안보면 손해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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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창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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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창업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자(안보면 손해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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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창업 후기 모음 알아보자(안보면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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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창업 후기 모음 알아보자(안보면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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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 창업 후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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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 창업 후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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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후기 해시태그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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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절대 차리지 마세요” 실제 창업 후기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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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소액 창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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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창업 현실 후기 1년만에 말아먹은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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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창업 이영상 하나로 종결합니다 | 편의점 창업 후기 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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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창업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자(안보면 손해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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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창업 후기

오늘은 술집 창업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전에,

이런건 어떨까?

1. 술집창업후기

출처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changup&no=29202

원래 디씨도 잘 안하고 오늘 들어와서 눈팅만 하다가

내 이야기도 좀 풀어놓고 싶어서 글 써본다~

간단하게 내소개를 하자면 인서울 2년제 예대 나왔고 뭐 딱히 스펙은 없어.

본론으로 들어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0/2000 에 들어갔고 추가비용 2000, 총 합 5000만원이 들었어.

종목은 주점(바bar)이야

창업비용은 내가 모은돈2000에 아버지께 빌린돈 3000으로 시작했지.

대부분 남의돈, 심지어 가족 돈도 사업할때는 쓰면 안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어차피 실패해도 3000은 회수가 될거라 생각해서 혹여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내돈 2000만 날리면 되는거라 생각했거든,,

물론 막상 날리고 보니 아깝기도하고 내 생각이 어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많은 장사중에서도 바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일단 내가 바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야.

17살때 바를 처음 접한 후로는 창업직전까지 쭉 드나들었지. 이유는 단 하나, 칵테일이 좋아서.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칵테일을 만들어 먹고 있고 시야가 넓어져 위스키 및 그외 수많은 종의 주류들도 접하고 있더라구,,

술에대해선 정말 자신있다 생각했어. 그리고 술장사의 가장 큰 적 주폭들도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아무 문제없었구,,,

추가비용이 2000만원이나 더 들어간것두, 인테리어의 고급화 때문이었어.

뭔가 비싼 주대를 주고 음주를 하는 공간에 어울리도록 하고 싶었거든,

근데 여기서 벌써 NG가 났었던거야 사실은,,,,,

대부분 바에 오는 손님들은 술, 인테리어 등에 전혀 상관없이 바.텐.더.에 더욱 집중하거든,, 물론 알고는 있었지.

근데 이거 진상이 많아도 너무 많아,,, 크게 떠들거나 난동부리는 애들은 없는데 직원들한테 성적인 유희를 일삼는 애들이 너무 많은거야.

게다가 바라는 사업 특성상 하루 8팀 이상을 받아본적이 없어,,,,, 그만큼 손님이 뜸하다는 거지…..

그리고 수지타산이 정말 안나오는 사업중 하나라고 느낀게 술작업을 치지 않고는 본전도 못치는일이 허다했다 이거지…

내 가게는 바 의자14개, 테이블2개로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공간이었어. 첫 창업으로는 부담없는 크기였지.

직원은 평일반3명, 주말반3명이니 어찌됬든 언제 어느날 오던간에 직원은 3명이 있는거였지.

직원시급을 1만원 가정하에 일 지출금액이, 직원3명 X 7시간 or 8시간 = 21만원 or 24만원, 식대 2만원, 월세 4만원, 전기세 1만원

약 30만원가량 나왔어.

그럼 30만원 이상만 팔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지.. 근데 술 원가도 떼야지….

결론은 양주 12년급 두병팔고 맥주 칵테일 존나 팔아도 맨날 허기지는 상황인거야..;…..

게다가 나는 직원들 편에서 가게를 돌렸기 때문에, 음주 강요도 하지않았고 뭐,,, 그래서 손해를 더 봤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사람이 재산이라 생각했거든,,,ㅋㅋ 그런데 그렇게 내 밑에 있던 직원들이 나 뒤통수 때리고 나가고 참

사람에 대해서도 되게 실망을 많이 했어,, 첫 창업 오픈멤버들이라서 정을 많이 준것도 사실이거든,,,,,,

할 말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는데 점점 얘기가 재미없어 지는것 같아 줄이고,

나 석달동안 하루도 안쉬고 정말 열심히 창업전선에 뛰어들어서 발악했었다… 물론 이렇게 자빠라졌지만,,, 좋은경험이었다 생각해

내가 정말 열심히 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하고싶어했던 일을 해보았으니 후회는 물론 1%도 없어! 다만 속만 좀 쓰리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뭐 못적은 말들도 많고,,

어쨌든 여기서 혹여 바(bar)를 창업하려는 형들에게 꼭 조언해주고 싶은게 있어.

0. 바는 하지마, 왠만하면,, 횽이 인맥왕 혹은 진짜 이쁜 여성이 아니라면 더더욱 하지마,,,, 수지타산이 정말 안나와 골이썩어

1. 그래도 하려면 일단 가게자리를 볼때 바(bar)로 망했던 자리를 들어가지는 마! 바(bar)로 망한자리는 왜 망했을까? 생각해보면 답나와.

2. 직원들 너무 믿지말고 적정선에서 관리를 잘해야돼, 풀었다 조았다 …… 직원때문에 25살에 백발될뻔했어…

3. 돈을 벌고싶으면 술작업을 진짜 좆나게 좆빠지게 쳐야돼!! 나 아는형도 바 하는데 그형은 한명한테 최대 5병까지 작업쳐봤댄다,,,

4. 직원들을 노래방 보도아가씨처럼 봐야 맘이 편해, 존나 섹하자 막 팬티벗어서 팔아라는 새끼들이 은근히 많아서, 직원 아끼면 맘 상한다.

5. 직원이랑 손님이랑 눈맞게 하면 안돼, 매출 확 떨어져, 특히 맥주 두세병 시키고 작업 거는새끼들이 있어, 한번 먹어보려고,, 절대안된다 교육해

6. 인맥이 없거나 여햏이 아니라면 외진 곳은 피해서 창업해.

뭐 말하고 보니 다들 아는 사실이기도 한것같거니와 난 여기서 이만 짜질게

다들 건승을 빌어!!

난 취업준비할거야 월 100을 처받아먹어도 비전있는 곳이 낫다고 생각해서,,,

다들 위에서 만나자

2. 술집 창업 후기

출처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changup&no=7696

내 잘났다고 쓰는건 아니고,

내가 그간 했던 노하우 알려주려고, 아마 이글로 다시 창갤은 당분간 안들어올 거 같아.

그간 창갤 글 보면서 도움되는 글은 몇개 못봤거든..

술집, 호프집, 퓨전주점등 차리기 전에 중요한 점 몇가지만 나열하고 갈께.

그냥 배설로 인정해도 돼. 그냥 나의 견해니깐,,

1. 목이 중요해.

목이라면 목지 알지? 어디에 위치되어 있는가 중요해. 하지만 무조건 목좋다고 성공한다는건 아니야

정말 a급입지에 상권 비싼 임대료 주면서 가면 어느정도 기본만 하면, 기본 수익은 나와. 하지만, 웃긴건. 그만큼 주변에 상권이 많아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그렇다고 잘하면 되지 하는 발상은

웃긴 얘기야. 왜냐면 가게가 꽉꽉 차진 않거든. 물론 특정 몇군데 제외하곤 말이야.

왜냐구? 가게에 사람이 많으면 너무 시끄럽지? 그럼 사람들은 들어왔다가도 나가. 옆가게도 있고,

주위에 얼마나 많은 가게가 널려있겠어. 가게 꽉차는게 힘든일이 돼.

물론 앞서 말한대로 기본 수입은 나와. 하지만 대박은 못쳐.

무조건 a급입지라도, 주변에 경쟁 업소 상황을 봐야해. 하지만 술집은 거의 경쟁이 치열하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b급입지중에 경쟁이 비교적 덜한 곳이야. 우리 가게는 자랑은 아니지만.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보낼때가 많아.

솔직히 3분의 2이상만 차도 가게가 너무 시끄러워. 그렇다고 주변에 술집이 없는것도 아닌데.

그 나머지 자리를 꾸역꾸역 채워나가. 왜인지는 밑에 계속 써내려갈께..

이렇게. 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a급입지만 찾기에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떨어져.

투자의 기본은 적게 투자하고 많이 수익을 빼는거라는건 상식일꺼야.

이정도로만 하고, a급만 외치는 예비창업주는 참고 바래.

2. 마케팅과 서비스의 중요성이야.

참고로 나는 국내에 있는 경영학 전공했어.

그래서 그런지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swot분석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을꺼야. 자신의 장단점등을 파악해 봐. 말이 쉽다고?

하지만 꼭 필요해. 어떻게 타겟마케팅을 할껀지 대중 마케팅을 할껀지.

내가 말했잖아. a급입지에서는 마케팅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 하지만 b급이라면 마케팅역할은

배가 되지. 정말 안하고 하고의 차이야. 이건 고객관리를 얼만큼 관리를 잘하냐와, 신규고객을

끌어들일수 있는 두가지로 분류하고 있어. 기존고객에겐 재방문율을 높이고, 신규고객은 새로 잡아야 해. 그래야 항상 가게가 끊임없이 차고 있을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야.

술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가지가, 마케팅과 서비스야.

혹시 여기 횽들 호프집 정말 맛있어서 거기만 가는 곳있어? 물론 있는 횽도 있겠지만,

서비스가 좋다. 분위기가 좋다. 특히 술집은 술이란게 주가 되기에 안주는 선택의 폭이 둘째로

내려가게 돼. 이점을 잘 숙지하기 바래.

나는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승부하겠다. 물론 마인드는 좋아. 위의 두가지를 먼저 만족시키고

음식으로 승부걸기 바래 그럼 더욱더 잘되겠지, 하지만 음식보다 가장 중요한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재방문 유치와 신규고객 재방문화 할 수 있는 시스템화가 필요해.

어떻게 하는지는 공개할수 없어. 왜냐하면 그건 내 밥줄과도 같거든.

그건 자신이 느끼는 바와 공부한 바로 하길 바래..

아까 위에 가게가 시끄러워도 우리가게 차는 건 고객 충성도를 이끌어내기때문이야.

흠 방법이야 많지 , 마일리지제도를 써도 되고, 그치만 손님에게 어필할수 있는 마일리지 제도를 써야해. 이 방법도 나는 얘기 안할께. 왜냐면 내 밥줄이니깐..

아무튼

오픈할때 오픈빨 물론 받았겠지만, 처음에 손님을 끌어들일수 있는 마케팅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처음에 오픈 했을때보다 지금 뜨내기손님과 단골의 조합으로 가게가 더 복잡하게 되었지.

3. 맛과 관련된 부분인데.

특히 주방인력을 두고 쓰려면, 사장이 모든걸 다 할줄 알아야해.

호프집 요리? 퓨전주점 요리?

처음엔 어렵게 보이겠지만 그거 다 쉬워. 일주일이면 마스터해.

곁눈질 하면서 배우고, 익혀둬,

처음에 천사같은 주방인력도 장사가 잘되거나, 힘들면 슬슬 곤조를 부리기 시작해.

월급 올려달라, 이것저것 등등..

그럴땐 바로 잘라버려. 매정하다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알바들이 있기때문에 믿고

내가 주방 들어가서, 새로 주방 인력구할때까지만 주방 보다가, 새로운 주방인력 오면

처음부터 가르치면서 쓰면 곤조도 못부리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해.

그냥 여기 나보다 더 고수들도 있겠지만, 이정도로만 할께.

술을 왜마신다고 생각해? 나는 사는게 재미 없어 마시는 사람이 칠할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술집은 항상 재밌어야 하고, 항상 이벤트를 준비해야 해.

항상 끊임없는 이벤트는 손님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지.

흠 여기 어떻게 보면 도움 될 내용보다는 실전경험이기에 , 창갤러들은 대부분 창업하려는

사람들이니깐 도움 안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주저리 주저리를 도움 될 부분은 캐치하길 바래.

쓰다보니깐 너무 길게 내려왔다.

아무튼 창갤러들 중에 예비 창업하려는 분들 고민 많지? 언제 시작할까? 해도 될까?

그런글 올릴때가 바로 창업을 시작해야 할때야.

당장 질러~ ! 이상 끝이야. 창업해도 안주해 하지만 말고 항상 공부해야하는 거 잊지말고, 이상 끝

ps. 항상 경쟁을 즐겨, 기존에 내 근처에 4개의 술집이 있었는데, 내가 시작한 이후로 내 주변에만 3개가 더 늘었어. 근데 경쟁을 즐기다 보니깐, 2개는 망해 나갔고, 1개는 업종변경하고, 나머지 2군데는 부동산에 내놨다는 소리를 들었어. 조만간 하나 더 들어올거라고 하는데, 아무튼 사회에서 경쟁보다 치열한 곳이, 창업인거 같아.

3. 술집 창업 후기

출처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96812

벌써 3년이 흘렀네요..

17년동안의 회사원 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자영업..

음식 관련한 어떤 지식도 없이

그저 맛있는 집 많이 다니고 소주 좋아한다는 이유로 술집을 시작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

매출 흔들림은 글쎄.. 월별로 10% 내외?

오히려 김영란법 이후 특히 작년 12월은 큰폭의 매출 상승이 있었습니다..

장사가 힘들다는 말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잘난 척 하는 건 아니구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했던 오유에게 그냥 ‘소소한 팁’을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란 걸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저희 가게 매출은 월 4천~5천만원 사이입니다. 이제 목표에 50% 정도 온 것 같은데.. 가게를 하나 더 오픈할 생각이라.. 조만간.. 흐흐흐

매장은 30평, 테이블은 10개정도이며 저녁장사만 하기에 6시부터 10시 정도까지는 엄청 바쁩니다.

저와 와이프 직원 2명 이렇게 총4명이 근무합니다.

저희 4명 모두 음식점이나 술집 관련한 경력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회사원 17년, 와이프는 회사원 8년, 홀 매니저는 재수하다가 군입대 제대 후 바로 합류, 주방보조는 골프장 캐디경력 5년 끝..

ㅋㅋ 정말 엉성한 조합이죠~

창업전에 프랜차이즈를 알아본 느낌은 가맹점가입/인테리어 비용이 비싸면서도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일정매출이 되지 않으면 이익율은 0에 가까워, 3~5억원을 투자하기엔 너무 위험이 컸습니다.

자고로 요식업이라 함은 시설에 있어서 최저의 비용으로 이익을 추구해야 식재료에 투자할 돈이 늘어나며 이익도 커질꺼라는 생각에 프랜차이즈는 포기하고 저 혼자 모든걸 준비했습니다.

투자금액은 인테리어 집기 시설 주방기기까지 총 7천만원 목표!

1. 메뉴 구성

음식점 경영이나 요리 경력 없음.. ㅋㅋ 암담하더군요..

라면밖에 할 줄 모르는데…

뭐 할 수 있나요.. 전국 맛집 돌아다니는 수밖에..

다행히 회사 다닐 때 전국에 지점들이 흩어져 있어서 몇 달 여행 다니 듯 하며 그들이 자주 가는 술집의 특징과 메뉴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메뉴 2가지와 추가메뉴 4가지, 식사 4가지를 선정했습니다..

다음은 주메뉴 요리 연구..

ㅋㅋ 칼질도 못하는 놈이.. ㅋㅋ 아오 힘들었습니다.

3개월 연구하고 먹고 버리고 또 만들고 했습니다.

정말 힘들고 지겨웠습니다.

ㅋㅋ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신 듯.. 어느날 답이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도 한번만 오면 다시 오게 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 다음 작업은 매뉴얼로 모든 걸 정리하는 단계입니다.

주력메뉴 2가지는 저와 와이프 두사람만 아는 절대비밀로 하고,

나머지 모든 메뉴는 레서피를 정리하고 단순화하여 누구든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방장이 속 썩이면 가게가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에, 주방장이 필요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 인테리어

깔끔하고 단순하게 했습니다.

어차피 아는 것도 없기에 그냥 밝게 했습니다..

3. 종업원 관리

처음부터 저희 가게는 시급 1만원으로 시작합니다. 주방보조는 1만2천원부터..

ㅋㅋ 3년전부터 그랬으니.. 주변에서 가게 하시는 사장님들이 미쳤다고 했지만, 제 생각에는 그게 우리 직원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았습니다.

대신 철저하게 교육시킵니다. 기본안주가 굉장히 특별한데 하나하나씩 설명드립니다..

A4 반장 정도 되는 스크립트로 자세히 안내하고 얼마나 소중하게 준비했는지 말씀드립니다..

ㅋㅋ 기본안주인데도..

왜냐하면 소주 2병은 맛있게 드실만한 퀄리티를 가진 것들이거든요. 비싼재료들로..

저희 주메뉴가 4~5만원인것에 비교하면 높은 수준의 기본안주라 생각되게 준비하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철저히 설명하고 밝게 미소 짓고 세세한 것까지 배려하는 ‘접객’이 우리가게의 생명이라 생각했기에 교육과 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직원이 팁을 받으면 반드시 저에게 말해야하고 저는 팁 50%정도 금액의 서비스 안주를 드립니다.

어떤 날은 우리 직원이 혼자 하루에 받은 팁이 7만원이더군요.. ㅋㅋ 푸하하 가게 매출이 1백5십만원인데..

저는 그 직원 엄청 칭찬했습니다~ 정말 잘했다고~

4. 거래처 관리

저희 가게에 납품하는 모든 거래처는 저에게 한두 번 물건을 보낸 후 합격수준이라 생각되면 최소한 100만원 단위의 선급을 보내고 선결제 후납품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단가가 비싼 물건의 경우 500만원 까지 미리 보내기도 합니다..

싱싱한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결제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주고, 저와 오래 거래하고 싶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얼마 지나면 물건값을 스스로 알아서 엄청 싸게 납품합니다..

채소를 사는 마트의 경우에는 매일 갑니다..

살게 없어도 매일 갑니다. 어떤 날은 그냥 건강음료만 사서 결제한 후 매장직원들에게 돌립니다.

저희 가게에 가장 싱싱한 채소가 들어오고, 반품 해야 할 경우 영수증이 없거나 어제 산거라고.. ㅋㅋ 다 바꿔줍니다.. 사람 사는 건 정때문이잖아요~

이상 술집 창업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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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창업 후기 모음 알아보자(안보면 손해)

카페 창업 후기

오늘은 카페 창업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로

해당 글은 모음집이며,

다른 창업 현실도 보고 가시라~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

1. 카페창업후기 – 디시인사이드

혹시 카페 창업하는 분들 혹은 신규 창업하는 사람들이 도움 될까봐 끄적여봄ㅋㅋㅋㅋ

3년 전 처음 원두 제조업 시작했을 때, 자본도 없고, 빽도 없고, 줄도 없어서 거래처 하나 없었을 때

내 원두를 사용하는 조건에 추출, 아트, 전반적인 카페 관리 메뉴얼을 교육 시켜주는 조건으로 거래처를 만들었음

군 제대 후 부터 카페 일만 하다 보니 이쪽에선 잔기술들이 생기더라.

이러한 조건이 있다보니 나랑 거래하는 사장님들은 카페일은 한 번도 안 해본 경력 없는 회사원 출신, 다른 자영업 하던 사장님들이 대부분임 역시 교육의 힘이란..!

이 사장님들과 3년 정도 거래를 쭉 이어가다보니 사업을 1년도 안 돼 접는 분들도 계시고

지금도 많은 매출을 올리며 지내시는 사장님들도 계시니

카페가 없어지는 과정이 보이더라.ㅋㅋㅋ

가장 문제는 뭐든 준비 없이 시작하더라.

준비라는 게 상권, 인테리어, 기기, 재료선정 등이 있는데, 상권은 일단 차리고 보자라는 욕심에 뜬금 없는 곳도 있고,

인테리어는 분명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2천 – 3 천안에 끊을 정도인데 4 – 5천 쓰고

장비도 조사 안하고 딜러나 업체에 대충 부탁해서 2백 후반에 살 머신을 4백에 사기도 하고,

(이건 진짜 놀랬어. 2017년형 훼마e98을 410에삼, 명세서봄)

초반부터 아는 게 없이 시작하지 못하니깐 2-3천은 그냥 날리고 시작하더라.ㅠㅠ

모르니깐 그러지 싶은데 이 정도로 알아보지 않고 준비하나? 싶기도 했음ㅋㅋ

개업 전부터 이렇게 투자가 생각보다 많게 시작하니깐 유지할 자본이 내가 예상했던것 보다 없이 시작하게되는데.

내가 현금으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유지금이 백만원 가지고 있느냐 천만원 이천만원 가지고 있느냐??

이 갭차이 엄청 나더라….!

내가 투자한 돈은 큰데 매출은 안 나오고 투자금액 회수가 안 되고,

마음은 급급해지고 불안해지다 손님맞이하는데 웃음도 안 나와.ㅠㅠㅠㅠㅠ

그러다 손님들 돌아서고,

카페라는 사업은 최소 6개월 길게는 1-3년 정도(특히나 개인카페는) 시간이 필요해

입소문도 나고 ‘아 여기가면 좋은 카페가 있어’ 라는 인식이 생기려면,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거야.ㅠㅠ

진짜 안타깝더라. 라마면 뭐해 슬레이어 시네소면 뭐해 미토스원이면 뭐해.

자기 커피 알아주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돈은 없고 좋은 장비 쓰고 싶고 해서 장비 리스로 사고 할부로 사고 대출 받아서 쓰는데

손님들이 알아는 봐주는데 내가 원하는 매출만큼 오르지 않네? 빚은 쌓이고 버티지 못해서 중고장터로 가는 거지.

다른 이유로는 스킬에 대한 문제도 심한데, 스킬이라는 게 커피 추출뿐만 아니라,

여러 음료에 대한 이해도와 여러 주문이 들어올 때 지혜롭게 움직이는 동선 등이 모든 스킬에 포함이 돼.

커피만 잘하면 모든 커피쟁이들이 대박 나고 잘 살겠지 하지만 카페는 커피가 주력이긴 하지만 장사가 본질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야.

그렇다고 커피가 맛없으면 안 되고, 커피는 ‘당연히 맛있어야되.’ 이건 기본이야.

추출이 기본이지만 그것도 못하는 곳도 많고.. 정말 많지..

한 가지 메뉴를 정할 때 기본적으로 3-4가지 그림을 그려보고 5가지 정도의 제품을 비교해보고 테스트 해본 뒤 출시하는데, 대부분의 사장들이 그러한 시도에 쓰이는 재료비도 아까워하는 게 현실임

대기업 프차들 보면 비주얼부터 압도적이잖아. 배너도 예쁘게 잘 만들고, sns 취향 음료도 잘 만들고, 개인카페 사장님들이 이걸 따라가기 진짜 힘들지.

보통 많은 초보 사장님들이 정말 놀랍게도 창업할 때 레시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어디서 받아오는데,

학원, 지인 사장네, 엄마 친구 등 참 레시피 없어서 알바 뽑고 그 친구한테 전에 일하던 곳 달라는 사장님도 봤었음 답도 없더라.

마지막으로 유지 보수 관리 인데.

이거 진짜 안 돼. 갓 오픈한 커피집이 진짜 내취향이고 좋아서 자주 갔는데,

어느 날부터 맛이 심하게 가고 이상해진다? 그럼 원두나 그날 사장의 컨디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유지관리가 안 돼는 것을 먼저 보게 돼.

나는 교육할 때 기본적인 그라인더 청소랑 샤워스크린 청소 꼭 알려드리고

하루에 한번하면 완전 좋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3-4일에 한 번씩은 해주시라고 꼭 말해

원두 셋팅도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는 체크하고 제빙기는 꼭 한 달에 한번 내부청소 하시라고 시범적으로 보여드림. 정수필터교체랑

시간좀 지나고 방문 드리면 까먹으시고 샤워스크린은 커피찌꺼기에 떡져 있어 물 사방팔방으로 튀고 그라인더 내부는 원두 찌꺼기 열 받아서 도넛 형상화 되어 있고 이런 경우가 진짜 많아.

사장님들 입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계가 고장날까봐 무서워서 못하는 사장님들도 꽤 있으셔 그러다 수리기사 부르고 출장비 5-7 만원에 가스켓 6-7천원 하는 거 3만원에 구입하시고 그러다 폐업 처분 및 중고나라행..

이게 개인 카페의 현실이야.

모든 사장님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껏 미팅하고 교육하면서 잘 모르시는 사장님들이 이런 모습이더라고.

학원에서 그랬데 자격증만 있으면 장사하는데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ㅎㅎ

자격증 팔이들 같으니라고..

많은 사장님들이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잘되는 사장님들은 잘 되.

모 네이버 카페에서 불경기네 불경기라 힘드네 징징거리는데 그거 보면 한숨 나오더라.

내 거래처 사장님만 해도 비수기 시작인데 일주일에 꾸준히 15- 20kg 쓰는 사장님들 꽤 많아.

자기들의 문제를 모르고 자존심은 쌔서 받아들이지도 않더라.

아무것도 몰랐던 사장님들이 악착같이 잘 하고 배워서 잘하시는 거 보면 어쩔 땐 소른 돋아.

가끔 거래처 인사차 들리면 신 메뉴라 먹어보라고 하는데 진짜 응용하는 거에 소름돋은적이 한두번 아니었어.

그만큼 카페에 소질 있게 잘하는 사장님들도 많고 아니면 위 내용처럼 흘러가다

오토로 돌리고 자기는 다시 전 직장 들어가고 자기가 하던 가게는 내놓다 안 나가면 보증금만 회수해보고자 무권리로 내놓은 사장님들도 많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가 카페가 좋아 창업할 생각이 있다면,

이상보다는 현실을 조금 더 생각했으면 해.

내가 12시간-14시간 매장을 지키면서 음료 10잔만 팔아도 행복 할 수 있을까.

12시간 이상 일하고 하루 쉬는데 하루매출 6-10만원만 벌어도 행복한가.

그리고 수없이 늘어나는 카페들과 경쟁할 만한 스킬과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가.

이 버는 돈으로 가족들 맥여 살릴 수 있을까 장가는 갈 수 있을까.

요즘 늘어나는 카페들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차갑더라.

모두 잘되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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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인 카페 현실 – 디시

뭐 글보면 카페/커피전문점에 관심잇는 횽,친구들이 많이보여서 글싸질러봄.

본인 20평규모 서울소재 프랜차이즈카페임.

어떤종자들은 프차는 본사에 휘둘려서 볼거없다고하는데 개인업체는(일부제외) 더심함 요건 밑에 싸질를게요.

그냥 딱까발리고 주1일 휴식(랜덤) 기준 아침 10시출근 밤 12시퇴근기본.ㅠㅠㅠㅠ

하루평균매출 30~50만원임

1평짜리 테이크아웃매장아니면 알바는 필히 고용해야한다 ㅜㅜ

15~20평 매장기준 사장+알바1해서 250 (요즘은 주휴수당파동땜에 300줄수도있음 아직은 내가안줌)

평수가 10평늘어날때마다 알바1명 더고용해야댐 ㅜ

사장이 일안할시 일명 오토매장은 직원을 고용해야하므로 직원월급 120잡고 2명 240만원 추가요~!

월세는 우리매장기준 월 250 그나마 유동인구많은곳 번화가 월세는 안드로메다급 ㅋㅋ (34평 천만짜리도있더라)

전기세+수도세 월 60. 누진세때문에 에어콘/히터 풀로돌릴시 100만

재료비 평균 월 300 (100%본사로만 시키면 400쯔음인대 본인은 여기저기서 대량주문해서 300까지줄여놓음)

자!! 카페 운영비 이제 계산해봅시다.

월매출 평 40잡고 x 30일 = 1200만

1200 – 인건비(250) – 재료비(300) – 관리비(60) – 월세(250) …. =340만원!!??

내가 이가게 보5000에 권리 1억에들어왔으니까 .ㅠㅠ

투자대비 2.26% 수익률 나오네?

오오미 ㅠㅠ. 내칭구는이번주말에 늦깍휴가가는데 난 일하네?

이것이 개인이 창업할수잇는 커피전문점의 현실. 다이런건 아니지만 대부분이이럼 ㅋㅋㅋ

(커피업하면 근처 동종업 상황도잘안다오)

내 여동생 친구 언니(-_-) 가 우리가게에서 400m 떨어진곳에 개인커피숍을 냇음.. 매출이 15만도안나온다네욥. ㅋㅋ

요약 : 오토로 돌릴 생각하고있는 쉙키들은 오토바이나사라.

추신 : 세금계산을 안했네욥 🙂 소득세, 부가가치세, 카드수수료 년 500잡음됨 오오미 접자접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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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 창업 후기 – 디시인사이드

저는 서울의 오피스 상권에서 정말이지 작은 IT회사를 경영 하면서 카페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카페 창업은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을 부업 아이템이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잘 안될 경우(현재도 그닥..) 카페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카페 창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면서 평소 친분이 있던 회사 근처의 카페 사장님을 통해 카페 창업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당 카페는 중저가 프랜차이즈 업체였고 50대 정도 되는 남자 사장님께서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평소 본사와의 관계, 대략적인 매출, 투입 금액 등에 대해서 알려주셔서 미리 공부도 할 수 있었지요.

사장님께 많은 조언을 듣고 저도 오피스 상권의 부동산 한 곳을 추천 받아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직접 부동산에 방문을 하니 바로 2곳의 매물을 보여주셨습니다.

1곳은 지식산업센터 건물 1층에 있는 상가였구요.

또 한 곳은 오피스텔 건물 1층에 입주한 상가였습니다.

두 곳을 고민하다 아무래도 오피스텔 건물 1층이 좀 더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고민해보려고 부동산을 나오려는데 부동산 실장님께서 다짜고짜 어떤 프랜차이즈를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해당 지역은 서울에서도 워낙 손꼽히는 오피스 상권이어서 그런 지 부동산에서 이미 여러 카페 프랜차이즈들과 협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저가형 커피 브랜드인 A커피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바로 프랜차이즈 담당자님과 통화를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A커피는 대로변 아니면 힘들 것 같다고 해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중가 커피 업체인 B커피도 관심이 있다고 하니 또 바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역시나 B커피도 대로변 30평형 이상만 취급한다고 해서 아주 잠깐 절망에 빠진 적도 있었지요.

대부분의 잘나가는 업체들이나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브랜드들(예를 들면 전국에 약 600~700개 이상)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나 대로변 아니면 안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ㅠㅠ

정말 개인카페를 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요즘 많이 보이는 브랜드 중에 한 곳인 저가 커피 브랜드 C커피를 가끔 마시던게 생각나서 여쭤봤습니다. 그곳에서는 다행스럽게 저희 매물에 관심이 있다고 하셔서 미팅이 극적으로 성사되었습니다!

그렇게 C커피 담당자님과 미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C커피는 수도권에서 탄생한 브랜드가 아닌 지방에서 탄생한 브랜드라 서울 사람들에게는 아직 익숙한 브랜드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저는 몇 번 마셔본 경험이 있었고, 라떼가 폴 바셋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요! 한 번 일이 풀리니 술술 풀리더라구요.

첫 날 2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 후에 바로 하는 것으로 하고 가계약까지 했습니다.

추석이 낀 시점이라 공사가 좀 늦게 시작이 되었어요. 중간에 다른 곳 오픈과 겹쳐서 본사 인테리어 팀과 조율하는 것도 약간 어려웠습니다. 겨우겨우 오픈을 하게 되었고, 첫 삽을 뜨고 오픈까지 약 3주 정도 걸렸던 것 같네요.

부랴부랴 본사가서 교육 받고 알바생들 4명을 뽑아 오픈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늦가을인 10월 말에 오픈을 했는데 그 때가 이미 비수기로 들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첫 2주 간(2주 동안 오픈 기념으로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팔았습니다.)은 매출이 좀 나오더니 오픈 행사가 끝나자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아 이게 오픈 발이구나” 생각을 했지만, 1주일 지나자 다시 매출이 오르더군요.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매출이 곤두박질 치고 날씨가 좀 풀리면 오르고 그러더라구요.

겨울이 지나 날씨가 완전히 풀리고 매출이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져버렸네요ㅠㅠ

그래서 3월~4월을 거의 매출이 반토막이 나서 고생하다가 5월달 들어 다시 회복새로 버티고 있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좀 따뜻해서 그런지 매출이 점점 좋아지고는 있습니다.

카페를 오픈하고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주변에서 카페 창업 어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풀오토 돌리고 부가 수입을 얻고 싶으면 주말까지 영업 가능한 곳을 찾으라고 하고 싶어요ㅠㅠ

그리고 저가형 카페는 피크 때 정말 바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뻐요.

그래서 지인들이 가끔 오면 돈을 정말 많이 버는 줄 압니다. 근데 막상 한 달 지나서 정산해보면 손에 쥐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주말까지 매출이 꾸준히 나와준다면 매력적이긴 합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오픈하시고 키오스크 2대 정도 굴리고 점심 피크 때 알바생 2명 정도 쓴다면 500정도는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여하튼 저는 전공이 IT이고, 개발을 오래한터라 주위에서 계속 매출 얼마나오냐? 알바비는 얼마나 드냐? 살만하냐? 등등 너무 많은 질문을 하시길래 개인기로 안드로이드 게임을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카페생존기라는 게임인데요. 시간 되시면 한 번씩 해보세요. 카페 창업 준비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게임입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litmussoft.coffee

카페 창업하실 때 주로 사용하시는 유동인구, 시간대 별 매출 데이터, 요일 별 매출 데이터와 저희 매장 6개월 치 매출 데이터를 넣어서 AI로 돌렸구요. 그래서 예상 매출 모델을 만들어서 게임에 적용했습니다.

시간이 없고 혼자 만드는 거라 일단 서울시 6개 상권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돌려볼 수 있도록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바뽑기, 알바한테 업무지시하기(업무지시는 실제 저희 카페에서 알바생들에게 부여했던 업무들을 넣었습니다.) 등등을 넣어서 카페 창업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아무튼

오늘은 카페 창업 후기 리뷰 끝.

요식업 창업 후기

요식업 창업(?)했던 후기. 창업과 사업을 진행하며 느낌 점도, 재밌던 점도 많아 기록 겸 기억할 겸 쓰는 글. 🙂

(기억에 의존한 글이라 오류가 많고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도 다수 있습니다 🙂 )

0. 심영화의 골목식당

요즘 백종원 아저씨가 나오는 SBS의 <골목식당>을 참 재밌게 본다.

독특한 캐릭터의 사장님들이 많이 나오고 엉뚱한 사장님들도 나온다. 간혹 백종원 아저씨가 상황실에 있는 정인선 님, 김성주 아저씨를 부르며 인상을 찡그릴 때는 박장대소 하기도 하고, 가게 사장님들이 백종원 아저씨의 솔루션을 따르지 않으면 보는 내가 더 답답하기도 하다.

매회 등장하는 새로운 사장님들중 간혹 열정은 가득하나 정말로 방법을 잘 몰라 허둥대는 젊은 초보 사장님들도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작년 여름의 내가 떠오르곤 해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한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작년 여름, 한 5~6개월 정도 창업 겸 사업을 했었다.

꽤나 고급스러운 해산물정식과 회, 육회, 튀김 등을 파는 해산물 집이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짜증나고 정말로 힘들었던 하루하루를 보냈다.

직원들 월급에 가게월세에 각종 세금에… 나가는 돈도 너무 많았고 도대체 이 세상에 날 도와주는 사람은 왜 단 한 사람도 없는건지…! 무엇보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빚더미에 앉는다는 심리적 압박에 하루하루 떨었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일련의 과정들에서 배운 것이 참 많아서 느낀 점, 재밌던 점을 공유해보고자 글을 써볼까 한다.

그중 우선 가장 배운 것이 많았던 음식점(요식업) 창업 경험부터… 🙂

1. 작년 여름, 갑자기 찾아온 요식업

작년 여름, 창업과 사업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주도로 것은 아니고 집안의 사고뭉치인 막냇삼촌이 무작정 벌려버린 사업이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 집안에 SOS를 요청했던 것. (참고로 삼촌은 창업경력 20회. 폐업경력 20회로 각 사업체를 채 6개월도 유지를 못 한, 사업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뭐 창업이야 평소에도 하도 하셔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엔 이 곳 저 곳에서 대출을 받아 놓으신 상태였다. 그 규모가 제법 컸기에 자칫 잘못하다간 집안이 흔들릴 수도 있는 수준.

이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외할머니의 주도하에 집안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되었고 해당 회의에서 군대를 다녀와 복학은 안 하고 밥만 축내고 있는 손주 놈을 투입시키자는 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예상했겠지만 해당 안은 모두의 박수와 함께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렇게 목동에서 멀쩡히 다니고 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삼촌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삼촌이 벌여놓은 사업은 거대한 구조를 자랑했다.

1) 공장에서 각종 해산물을 간편식품의 형식으로 가공

2) 온라인쇼핑몰과 오프라인(마트)에 유통하여 일반 소비자들에게서 수익을 창출

3) 그와 동시에 해당 식품들을 벌크형식(업소용)으로 식당에 유통하여 식당 업주들에게서 수익을 창출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공장에 쌓여있는 잉여 해산물을 통해 직접 식당을 운영하여 수익을 창출

분야만 정의해도 식품 가공업, 온라인유통업, 오프라인유통업, 요식업 이렇게 4가지였다.

말도 안 되는 사업 계획이었다. 바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무슨 사업을 이렇게 해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지! 하나도 제대로 못 할 거면서 무슨…아니, 그나저나 사업계획서가 하나도 없어요? 대출은 어떻게 받았어요?”

“조카야 되는 방향으로 해보자. 삼촌 이거 진짜 인생 다 걸었다! ㅜㅜ”

그런데 별수 있나. 이미 엎질러진 물. 모든 계약은 다 끝났다고 했다. 삼촌 명의의 공장과 사무실, 그리고 가게가 있었고 냉동 창고를 꽉 채운 몇 트럭 분량의 수많은 해산물 재고가 쌓여있었다. 이걸 어떻게든 팔아야 했다.

그렇게 1) 공장구축, 2) 음식점창업 및 경영 3) 온라인쇼핑몰 창업 및 운영 4) 오프라인 업체 입점 이렇게 4개 분야를 동시에 진행하는 대책 없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2. 음식점을 창업하자! :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

앞에서 말했다시피 우리의 요식업 사업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현재 공장에 쌓여있는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재고에 맞춰서 음식점 메뉴를 정해야 했다.

거대한 냉동창고를 다시 열어보았다. 그 안은 수많은 파레트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그것들은 공장에서 손질을 끝낸 냉동 복어, 빨간 양념과 간장을 베이스로 한 각종 장(양념게장/간장게장/전복장 등)그리고 각종 횟감 이었다

이 도대체 무슨 조합인지… 이게 다 뭐냐고 묻자 그냥 삼촌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 물량이 정말… 정말 많았다. 평생 내가 두고 먹는다면 죽을 때까지 다 못 먹을 양이었다. 아득했다. 어림잡아 들어간 투자 비용을 산출해보니 억대가 넘는 금액이었다. 황당했다.

황당함은 젖혀두고 현실을 직시했다. 우선 내 눈앞에 있는 이 재고들을 어떻게 해서든 다 팔아 해치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 방법으로 유통과 요식업 두 가지 통로를 이용했는데 유통으로는 온라인 판매와 오프라인 매장 입점. 그리고 요식업 쪽으로는 삼촌이 계약했다던 그 정체불명의 음식점에서 이 재고를 가지고 요리를 해서 팔아치우기로 했다.

(유통을 한 경험도 되게 재미있었는데… 이건 나중에 🙂 )

주어진 재료인 복과 각종 해산물 장, 횟감 등을 가지고 음식점에서 팔 메뉴를 구상했다.

일단 재료에 대해 공부를 하기보다는 원재료의 첫인상을 떠올려보았는데. 복어라는 재료는 꽤나 고급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재료였고 간장과 양념을 기본으로 만든 각종 해산물 장도 마찬가지였다. 회는 말할 것도 없고.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조건이 썩 나쁘진 않았다. 원재료 자체가 저렴한 느낌이 아닌, 고급스러운 재료들이었지만 도매로 물건을 사 와 우리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물건들이었기에 실제 원가는 제법 저렴했다.

음식점 컨셉 자체를 박리다매 스타일의 저렴한 맛집보다는 조금 질 좋은 비싼 가게의 컨셉으로 가도 되겠다 싶었다.

고로 우리의 가게의 컨셉은 복어를 전문으로 하는 해산물 정식 집으로 결정되었다.

복어탕을 메인 메뉴로 두고 양념, 간장게장, 각종 나물 반찬이 포함된 해산물 정식을 제공하는, 가격대가 올라가면 복 튀김, 복 무침 등의 별미가 나오는, 더 올라가면 육회 탕탕이와 각종 신선한 회, 해산물 등을 내주어 술상까지 내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즉, 꽤나 고급 재료였던 복어와 해산물들을 이용해 제법 고급스러운 식사도 가능하고 회와 함께 술도 마실 수 있는 집을 만들자고 계획했다.

3. 상권분석 : 지피지기 백전불패인 시대. 맨땅에 헤딩하면 머리만 아프다.

삼촌은 무턱대고 이미 가게 자리를 정했고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태였다.

우선 크게 한숨을 쉬고, 주소를 받아 네이버 지도에 검색해 보았다.

주소는 인천 남동구 간석동. 장소는 어느 한 대형빌딩 1층이었다.

아무래도 인천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을 잘 모르는 것이 현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지역총소득자료와 부동산 가격 비교 앱(호갱노노), 지역 맘카페 등을 끄적거리며 나름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보았다.

우선 지역을 분석했다. (넓은 범위의 분석)

인천 자체가 소득이 높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가게가 위치한 구월동과 간석동, 관교동은 제법 큰 회사들이 밀집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동네 자체의 소득도 제법 높은 곳이었다.

가게 2분 거리에는 인천시청, 인천광역시의회, 교육청 등이 있는 공공청사단지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KT 청사와 남인천우체국이. 그 인근에는 인천가정법원, 인천지방법원이 있는 법률 단지가 포진해 있었다. 썩 괜찮아 보였다.

그다음으로는 직접 상권을 분석했다. (좁은 범위의 분석)

가게 주변 1km 이내는 직장보다는 주택들이 밀집되어있었다. 그중에서도 제3종(아파트 등 고층 주택), 제2종(다세대주택 혹은 빌라 등 중층 주택) 일반주거지역이 대부분이었기에 유동인구는 꽤나 확보가 된 지역이었고 가게를 직접적으로 둘러쌓고 있는 아파트들은 다른 곳에 비해 제법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특이했던 점은 그 지역이 높은 집값과 편리한 교통, 좋은 직장들 대비 이상하리만큼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이었다는 점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위장해 주변 경쟁업소 사장님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부동산도 들어가 원룸을 구하는 척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변 상인, 주민, 부동산 사장님 등등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외친 이 지역의 문제는 바로 인구분포였다.

이곳은 학원도 많았고 병원도 많았으며 직장도 되게 많았는데 그 덕에 초등학생 아이를 가진 부부도 살고. 서울에서 출퇴근하지만 높은 집값 때문에 현재 이곳에서 거주 중인 가구들도 살고, 이 근방이 직장인 전문직 종사자들도 살고. 서울에 살다가 은퇴 후 인천으로 넘어온 노부부도 사는 등 다양한 인구가 함께 섞여서 사는 지역이었다.

뭐랄까 신촌 하면 대학가, 신림 하면 원룸촌, 판교 하면 신흥부촌, 노량진 하면 고시촌처럼 한 단어로 요약하기에는 불가능한.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장사하기 어려운 유형이었다. 그 탓에 특정 상권이 발달하여있지 않았고 그저 무난한 업종. 카페, 안경원, 고깃집, 중국집, 치킨집, 국밥집, 마트 등… 무난한 상권이 가득했다. 너무나 무미건조한 곳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견카페 같은 젊고 새로운 업소들이 많이 들어왔었으나 모두 쫄딱 망하고 지금의 모양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아예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소득이 높은 동네이지만 인천의 유명한 번화가인 구월1동, 구월3동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는 점이었다.

즉, 전국 평균과 비교해서는 소득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 동네에서만 비교했을 때에는 나름 소득이 높은, 일명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구역. 하지만 번화가와는 거리가 좀 멀어 마땅히 사치를 부릴만한 곳은 없는 곳. 이라는 나름의 분석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큰 핵심은 우리 가게 주변은 이 근방에서 제법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는 점. 기획했던 고급화 전략이 통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슬슬 생겼다.

4. 메뉴 가격 : 고급화 전략을 위한 가격산정

당시 매장은 약 15층 정도 되는 대형 빌딩의 1층 자리였는데 애매한 자리라서 1층이라기보다는 반지하에 가까운 구조였다. 1층이긴 하나 밖에서 봤을 때는 간판만 보이고 가게 내부는 안 보이는 구조. 정말 이상한 구조였다. 그 덕분이었는지 부동산 아저씨는 해당 자리가 3년간 공실이었다고 했다.

사실 3년간 공실일 정도면 안 봐도 뻔했다. 결코 좋은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초보 사장에게는 너무나 큰 위험부담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말 좋은 조건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천하의 건물주도 3년간 월세를 못 받자 애가 탔는지 매우 좋은 조건으로 삼촌을 유혹했다고 했다.

주변 점포의 거의 절반 수준의 월세 가격에 가게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동안에는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게다가 가게 내부는 남는 공간을 개조하여 2층 공간도 확보해 놓아 실평수 약 200평 정도로 무척이나 넓었다. 심지어는 약 50여 대의 무료주차도 가능했다.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었다. 반지하라는 것만 빼면은…

사실 내가 처음부터 가게 위치를 정했더라면 그곳은 계약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반지하 구조 덕분에 온도와 습도 조절이 어려웠고 밖에서 가게를 봤을 때 눈에 확 띄지도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심지어는 부족한 채광까지. 음식점으로서는 너무나 치명적인 단점들이 많았다.

게다가 3년간 공실이었던 곳.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누가 자살을 했거나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던 장소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은 없었다. 삼촌은 누가 그 가게를 채가기라도 할까 봐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고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단점은 극복하고 장점을 살려보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찬찬히 가게를 살펴보았다.

차근차근 둘러보자 이제야 가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소복했고 주방엔 적당한 기름때가 묻어있었지만, 전체적인 관리는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가게 1층에는 창고, 화장실 같은 자투리 공간도 있었고 제법 넓은 주방과 손님들의 사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룸이 있었다. 2층에는 간단한 사무실 겸 직원 휴게실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손님들을 받을 수 있는 룸이 있었다. 식당치고는 꽤나 거대했다. 어지간한 스튜디오, 세트장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에 오랜 시간 카운터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무거운 원목 책상의 위치를 바꿔보려고 있는 힘껏 들어내 보았는데 그 아래에서 오래된 각종 영수증들과 계산용 빌지(계산서)가 나왔다. 각각의 종이에 적힌 상호는 제각각이었지만 주소는 모두 같은 곳이었다.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1층’

바로 이 집이었다. 무거운 원목 카운터 아래에 쌓여있던 영수증들은 이전에 이 장소에서 장사를 하시던 사장님들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활짝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이 영수증들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료였다. 먼지를 툭툭 털어 차곡차곡 모아 분석해봤다. 여러 가게의 영수증이 나왔지만 10개 미만의 데이터는 표본으로 삼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다 제외했고 그렇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던 막걸릿집과 중국집 두 업소의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었다.

우선 막걸릿집의 경우는 점심 장사보다는 저녁 장사~새벽 장사 위주였을 터, 주거지역 특성상 저렴한 메뉴로 승부를 보았다면 얼추 먹혔을 것이라 가정하고 영수증을 분석해나갔다. 실제로 메뉴 하나당 5천 원~1만 원 사이의 저렴한 술집이었고 영수증에 적힌 날짜로 보아 최소 2년 정도 이 장소에서 장사를 했었다. 당시에는 장사도 꽤나 잘 되었던 것 같았다.

그다음은 중국집이었다. 중국집 특성상 배달이 많고 점심, 저녁 장사를 동시에 진행했으리라 가정했다. 주변이 제법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기에 장사 자체는 괜찮았겠다 싶었다. 실제로 영수증을 본 결과 역시나 수입이 괜찮았고 대략 7~8년 전이지만 짜장면이 3천 원이였던 것으로 보아 이 가게 또한 저렴한 가게였으리라 짐작했다. 다만, 현재 빌딩 2층에 있는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집이 창업한 지 꽤나 오래 되었다는 것으로 짐작컨대 2층에 있는 고급스러운 중국집이 들어오면서 경쟁에서 패배한 것 같았다.

즉, 이 장소에서 장사를 했던 이전의 두 가게는 모두 저렴한, 박리다매 컨셉의 가게였다는 것. 하지만 결국 장사를 접었다는 것. 망해서 나갔다는 것만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정보였다.

이제 같은 장소에서 우리 가게를 시작할 차례였다. 전과는 달라야 했다.

박리다매가 아닌 고급컨셉으로 가야만 했다.

메뉴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복어를 기본으로 한 해산물 정식. 거기에 회. 언뜻 봐도 저렴한 메뉴는 아니었기에 원자재에서 오는 고급스러움은 확보를 한 상태였는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가게 자체의 브랜드가 고급스러워서 적당한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 와야 할 수 있는 곳 이여야만 했는데 그렇다면 이 동네에서 고급스러운 이라는 단어가 붙으려면, 품격 있는 분위기를 풍기려면 어떤 가격대가 형성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의 경험을 들춰보았다.

내 경험과 기억으로는 서울의 여의도, 강남 등 번화가와 서울 일반 지역 그리고 인천 일반 지역의 평균 점심값은 대략 2천 원씩의 차이가 있었다. 강남, 신논현의 경우는 점심값으로 9천 원을 서울 일반 상권은 7천 원을, 인천은 5천 원을 점심값으로 주로 지불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적 자료 따위는 아니고 그냥 내 경험에 비춘 일반화였다.

5. 매장 인테리어 및 브랜드 디자인

이 요식업 사업은 프렌차이즈로의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많은 부분에서 신중해야만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신중해야 했던 부분은 전반적인 브랜드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 컨셉이었다. 메뉴나 레시피 같은 내부적인 것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쳐도 인테리어와 브랜드 디자인은 한 번 정해지고 나면 수정이 불가능했기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선 인테리어.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전 주인들이 가게 인테리어를 부수지 않고 온전히 보전해둔 상태로 나갔다는 점이었다. 3년간 주인을 잃은 가게는 뽀얀 먼지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고 보니 원목 디자인으로 인테리어가 제법 고급스럽게 되어 있었다.

심지어 가게 중앙의 기둥은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 있었는데 문어와 생선 모양의 양각이 거대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한 십 년 전 즈음 이곳이 횟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했는데 그때 횟집 사장님이 이러한 인테리어를 한 게 아닐까 추정했다.

행운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월의 흔적들이 좀 묻어나긴 했지만 때야 벗기면 되고 광이야 내면 되었다. 나무에 난 스크래치 정도는 왁스 칠로 지울 수 있었고 손상 정도가 심각한 부분들은 다 들어내고 적당한 우드 시트지로 마감을 하니 통일감도 있고 그럴싸했다.

하지만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테리어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에 전문 업체를 끼고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했다. 관련 지식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직접 인테리어를 진행해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은 대략 한 달. 그 기간 내에 브랜드 디자인을 했다.

우리의 브랜드는 해산물 식당임을 알림과 동시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해야 했고. 이에 바다를 상징하는 청색과 하얀색. 그리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위해 검은색과 금색을 사용했다. 거기에 가게 내부 인테리어도 우드톤에 색온도 낮은 조명으로 맞추니 제법 그럴 듯했다.

그렇게 나름의 CI, BI를 마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세부적인 디자인을 시작했다.

가게 간판부터 시작해서 현수막, 전단지, 명함… 심지어는 가게에서 쓸 냅킨이랑 포장용 비닐봉지까지… 단 하나도 시중에 있는 용품을 사지 않고 직접 다 디자인해 공장에 인쇄를 맡기려는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가게 내에 있는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통일감 있게 디자인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무엇보다 디자인이라 해봤자 군대에서 카드 뉴스나 만들던 것이 다인지라 감각이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참고해보려고 각종 디자인을 모아놓은 사이트들을 뒤적거렸는데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많은지 그때 알았다. 선하나, 점 하나 모든 것이 너무나 조화로웠고 아름다웠다. 디자이너들이 정말 괜히 디자이너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껏 눈을 높인 상태로 다시 나의 디자인을 보니 처참했다. 욕심이 났다. 젊고 세련된. 참신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을 해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이것저것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일주일 정도 포토샵과 씨름을 하던 중. 스스로 의문이 생겼다.

해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참고하고 모방하며 얼추 괜찮은 디자인을 뽑아내긴 했지만, 가독성과 홍보 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지금 철저하게 고객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지 예술을 한답시고 하는 것이 아닌데, 고객이 아닌, 나 스스로 만족할만한 디자인만 고집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대중이 보는 것이었다. 남녀노소 볼 수 있어야 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모두에게 맞춰야만 했다. 결국 글씨도 크게. 캐릭터도 유치하지만 확실하게. 색상 대비도 확실하게. 그렇게 가게 전체는 많이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가독성 좋은 디자인으로 대폭 수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날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6. 기다리던 가게 오픈! : 시작된 손님들의 행렬

약 한 달간의 공사가 끝나고 드디어 가게 개업 날.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식당 문을 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사람이 올까? 우리 가게에 사람이 올 이유가 있을까?’

비장하게 앞치마를 묶고 괜히 거울을 보면서 씨-익 웃어보며 웃어보았다.

조금 못생긴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비장하게. 그리고 조금의 긴장감과 함께 가게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한 20분이 지났을까.

10시 20분쯤이었을 것이다. 첫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

“띠링띠링~”

가게 문에 달아놓은 종이 첫 손님을 환영해주었다.

첫 손님은 노부부였다. 가게 위에 있는 병원에서 아침 일찍 진료를 받고 내려와 아침 겸 점심을 드시러 오셨다고 했다. 태연하게 주문을 받았지만 얼마나 기쁘던지! 계산을 하지 않고 도망가도, 국이 짜다며 화를 내어도, 그 자리에서 상을 엎어도 좋았다. 그 둘은 첫 손님이었으니까. 이제 정말 장사를 하는구나 싶었다.

나를 포함해서 직원들(직원들이라 해봤자 요식업 경험 한 번도 없는 사촌 형 친구들 이었다.)은 첫 주문에 다들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손을 벌벌 떨면서 반찬을 세팅하고 조리를 시작했다.

“김치! 김치가 어딨지?”

“무..물..! 물 드려야지 물!”

“음식 나왔어요…! 어… 잠시만! 뭐가 빠진 것 같은데…? 복어 안 넣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첫 상이 나왔다.

첫 젓가락을 놓았고 첫 물을 따라드렸으며 첫 음식을 놓아드렸다.

그리고 이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중 할머니가 먼저 우리의 음식을 처음으로 드셨다. 모두가 숨죽이며 할머니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 할머니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우리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할머니는 수저를 복어탕에 넣고 휘휘 젓더니 국물을 떠드셨다.

“호로록-”

정말이지 온 우주가 멈춘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일을 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신체의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첫 손님, 할머니의 반응을 느꼈다. 마치 정보요원들이 직원으로 위장해 잠복해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온 우주가 멈춘 그때. 할머니는 (아마도 우리가 다 들으라는 듯) 말씀하셨다.

“음~ 맛있네!”

할머니는 국물과 건더기를 드시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제스쳐를 취하셨다.

후. 다행이다. 너무 기뻤다. 정말이지 너무 기뻐서 가서 감사한다고. 만수무강하시라고 절이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애써 꾹 참으며 무덤덤하게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긴 맛집이니까. 부티가 팍팍 느껴지는 고급집이니까. 맛이 있는 것쯤은 당연한 것이었다. 🙂

그렇게 15분 뒤. 두 손님은 식사를 마치시곤 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첫 결제. 19800원. 우와. 돈을 벌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내가 밖에서 알바를 하면 3시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카드를 슉 긁고 승인을 누르니 영수증이 추르륵 나왔다. 항상 카드를 내미는 입장에서 카드를 받는 입장이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1시간 뒤.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대략 11시 30분부터 손님들이 정말 미친 듯이 몰려왔다. 수나라 100만대군을 마주한 을지문덕 아저씨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정말 말도 안 되게 사람들이 몰렸다.

가게 안은 물론이고 가게 밖에까지 긴 줄이 서 있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주문을 받으라고 소리쳤고 가게 안은 소위 말하는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런데 딱 30분 후. 행복한 꿈은 악몽으로 바뀌고 말았다. 보통의 경우 손님이 몰리면 매출로 직결되기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되었지만 문제는 나는 베테랑 사장이 아닌, 요식업 경력 1시간의 완전 초보 사장이었다는 점이었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손님들은 정말 미친 듯이 들어오는데 주방에선 음식이 안 나왔다. 한 번에 100명 가까운 손님이 올 줄 예상 못 했기에 주방에서도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주방에서도 마음이 급해 음식을 대충 만들어 내보냈다.

초보 사장에, 초보 주방에, 초보 서빙. 게다가 밖에서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리 없었다. 그렇게 나온 음식들은 내가 봐도 형편없었다. 이걸 돈 받고 팔아야 하나 싶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차라리 그거라도 받은 사람은 다행이었다. 갑자기 주방에서 준비된 밥이 다 떨어져 새로 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분명 아침에 한 솥으로 밥을 만들었는데 그건 다 어디 갔느냐 물었더니 주방 사람들은 자기는 모르겠다며 밥이 다 사라졌다고 했다. 정말이지 공황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밥을 못 받은 손님들이 식당 안에 30명은 되었다.

정말이지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 군대에서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천사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생전 처음 듣는 욕설을 퍼부었다. 사실 억울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바쁜 점심시간을 쪼개서 새로 오픈한 가게에 밥을 먹으러 왔는데 45분째 기본메뉴 하나가 안 나오고 있으면 나라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 와중에 계산해달라는 손님, 포장해달라는 손님, 계산은 또 현금이랑 카드, 인천e음카드를 섞어서 하겠다는 손님, 포장은 2중 포장에 아이스팩을 넣어달라는 손님. 그리고 저 뒤에서 소리치던 50여 명의 손님들.

그렇다. 그렇게 가게는 점차 브레이크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빠르게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띠리리링!! 애앵!!!애앵!!”

귀를 찢을 듯한 소리였다. 불은 안났고, 어디선가 잘못 울린 것 같은데. 빨리 저 소리를 멈춰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소리가 적당히 작아야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고 그럴 텐데 소리 자체가 너무 커서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였다.

귀를 틀어막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가게 밖 복도에서 불이 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가게 밖에서 보니 우리 가게 냉장고 뒤편에서 화재경보기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 저기 화재경보기가 있었어?”

정말 황당했다. 냉장고 뒤에 있어서 손은 안 닿지, 손이 닿는다 해도 끄는 방법도 모르지, 너무나 난감했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밖에는 10여 명이 줄을 서 있고 안에는 100여 명의 손님이 가득 찬 가게는 50분간 밥도 안 나오고 포장도 제대로 못 해주고 포스기 사용법도 모르는 초보 사장이 애먼 포스기 회사에 전화해서 사용법을 물어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이렌이 미친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폭동을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가게 유리를 깨부수고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차라리 화재경보기만 작동한 게 아니라 진짜 불이 나서 스프링클러라도 시원하게 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손님들을 한 번에 내쫓을 수 있었으니까.

그날 압력밥솥은 단 1분도 쉴 수 없었다. 압력밥솥이 살려달라는 듯 칙칙폭폭 우렁찬 소리를 내며 증기를 내뿜었다. 내 속도 압력밥솥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감한 첫날 카드 매출은 4백만 원. 혼이 나가서 현금은 셀 수도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돈이었는데 보기만해도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운이 좋았던 탓이었을까. 첫날, 이튿날, 셋째날… 계속해서 손님들이 정말 발 디딤틀 없이 꽉꽉 들어찼다. 백종원 아저씨의 골목식당을 보면서 가게를 오픈한다면 꼭 3~5시에는 브레이크타임을 걸자 라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브레이크 타임은커녕 매장을 열자마자 쉬는 시간 없이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가게를 마감해야 할 때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북적거리고 나가질 않아서 오늘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해야 손님들이 나가는 수준이었다.

왜 그렇게 사람이 몰렸을까. 아마 맛이 있어서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추측하건데 3년간 공실이었던 그 큰 공간에, 꽤나 크고 밝은, 전과 다른 고급스러운 음식점이 들어오니 너도나도 한 번씩 호기심에 왔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사할 때 외벽에 붙여놓은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따로 홍보는 안했던 상황이었기에 그냥 흔히 말하는 ‘오픈빨’ 이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뭐랄까. 매장 안에서 전쟁영화 10편을 동시에 틀어놓은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라 다녔다.

그렇게 순 엉터리로 장사를 지속하니 당연하게도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테이블 간격이 생각보다 좁기도 했고 너무 넓기도 하였으며 손님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였다. 매장 온도가 춥기도 했고 덥기도 했으며 음식이 짜기도 하였고 싱겁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손님들의 불만이었다.

손님들은 때로는 종갓집 시어머니 같기도, 막 태어난 갓난아기 같기도 했다. 어느 때는 시어머니 모드로 마구 욕을 퍼붓다가도 갑자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가로 변신해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때를 쓰곤 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정말이지 주저앉아 울기 직전이었다.

장담하는데 누군가 전쟁통 같던 식당 중앙에서 나를 꼭 안아줬으면 그 사람을 부여잡고 대성통곡 했을 것이다.

7. 사람을 뽑자 : 인연이 될 뻔했던 수많은 사람들

가게를 열고 일주일 정도는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사촌 형의 친구들과 함께 버티며 가게를 운영했지만 더는 무리였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직원들이 하나둘 픽픽 쓰러져나갔고 나도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피곤한 나날을 보내며 잔뜩 쌓인 설거지를 하고 있던 와중, 가게 구석에 틀어놓은 티비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사장님~ 애쓰지 말고 알바 쓰세요! 알바는 알바답게! 알바천국!”

가수 전소미 님이 나를 쳐다보며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 답은 알바였다. 고스펙 고학력 백수 380만 시대. 고교생 대학진학률 70프로. 한국전쟁 이후 불어닥친 교육 열풍 덕분에 제법 쓸 만한 인재가 발에 치이는 이 나라 대한민국 아니던가.

잔뜩 쌓여있던 설거짓거리를 내팽개치고 사람을 뽑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다.

우선 대략적인 식당 인건비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 식당들의 인건비 시세를 파악했다.

당시에는 멋모르고 알바를 뽑기보다는 모두 정규직 직원으로 선발할 계획을 세웠던 터라 풀타임 근무할 직원들의 인건비를 알아봤는데 주변 식당 직원들의 인건비 시세는 내 예상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 당시 정부에서 정한 최저월급은 대략 180만 원. 그마저도 수습이다 교육 기간이다 라는 등의 이유로 최저시급도 안 주는 가게들이 많았기에 우리 가게 직원들의 급여는 한 달 230만 원이면 적당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실제로 알아본 식당 직원 인건비 시세는 보통 월 300만 원이 기본이었고 그 중엔 450만 원까지 주는 곳도 더러 있었다.

예상보다 높은 인건비에 당황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는 그럭저럭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식당은 일반적인 직장과 달리 휴일이 없으며 근무시간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였다. 게다가 뜨거운 불, 기름과 싸우고 수많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어야 함은 물론이며 온종일 앉아 있지도 못하는 근무조건 이었다. 사장이 아닌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식당에서 일한다는 것은 제법 혹독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건 직원들의 사정이었고 나는 당시 직원들을 약 10명 정도 채용해야 하는 사정이었는데 10명의 인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될 경우 한 달 매출 중 절반가량을 인건비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안이 필요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게 근처 전봇대에 붙어있는 인력사무소 업체들의 전화번호가 보였다. 무작정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그들은 하나같이 외국인노동자를 추천했다. 한 달 내내 일을 시켜도 월 200만원이면 사람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옳거니. 솔깃했다. 우리 가게는 서빙을 제외하면 한 5~6명 정도는 외국인으로 채용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쪽 업체에서도 제법 반가워했다.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들 모두를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면접을 희망하는 외국인 구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게는 이태원을 방불케 하는 외국인 밀집도를 자랑했다. 우선 그들 모두를 2층에 몰아넣고 한 사람 한 사람 면접을 진행했다.

본인은 30살이라 했지만, 언뜻 봐도 20살 같던 중국인 유학생부터 건장한 체격의 태국인 아저씨.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던 네팔 아줌마, 온 코를 찌르는 독한 향수 냄새의 모로코 아가씨 등등.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중국인 유학생은 자신은 중국어를 잘하는 것이 장점이라며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고 태국인 아저씨는 자신은 힘이 정말로 세다며 가게에 있는 화분들을 번쩍번쩍 들었다. 네팔 아줌마는 본인 나라에 자식이 13명이라며 밥하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하더니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네팔어로 아이들 자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국적 불문의 한 청년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생선 알레르기가 있으니 참고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던 빼어난 미모를 가진 20대 모로코 아가씨였는데 그녀는 깊게 가슴골이 파인 빨간 드레스를 입고 면접을 보러왔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놀랍도록 당돌했다.

그녀는 문을 빼꼼 열어 나를 쳐다보더니 들어와도 되냐 물었고 나는 흔쾌히 이리로 들어오라 했다.

이윽고 문이 활짝 열렸고 그녀의 하이힐 굽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그런데 이상했다. 내 맞은편으로 향해야 할 하이힐 소리는 내 옆자리에서 멈췄다.

나를 마주 보고 앉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보통의 면접은 구인자와 구직자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했지만, 그것은 나의 고정관념이라 생각했다.

지금 이곳은 세계 각국의 구직자가 몇 안 되는 일자리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기업 아니던가. 그리고 난 이 기업의 사장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픈마인드로 마음을 고쳐 잡고 그녀와 눈을 맞춘 뒤 면접을 진행했다.

그렇게 면접을 시작하고 약 10초 후.

그녀는 갑자기 내 오른팔을 꼭 잡고는 본인의 가슴을 냅다 비볐다.

처음에는 내 오른팔에 무슨 미지근한 왕문어 대가리 같은 게 걸리적거리나 해서 쳐다봤는데 세상에. 그것은 진짜 그녀의 가슴이었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가슴을 내 팔에 비비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다리는 점점 내 허벅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당돌한 그녀를 상대하며 글로벌기업의 경영자와 같은 오픈된 마인드를 장착하고자 했지만, 그녀의 글로벌한 면접방식은 토종 한국인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이른 방식이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게 구석으로 도망가며 그녀에게 나는 아직 당신의 구인구직 방식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어필했다. 절반쯤 울먹거리면서.

그러자 그녀는 알았다는 제스처와 함께 호탕하게 웃었고 나에게 손 키스를 날리며 찐한 윙크를 하고는 가게를 나갔다.

정말이지 어떠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앞으로의 각오 따위는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인상적인 지원자였다. (농담이다) 아직도 온몸의 말초신경이 내 오른팔에 집중되었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건 농담 아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과 면접을 보고 조건을 맞춰봤지만 모두 하나같이 큰 결격사유가 있었다. 한국어로 소통이 전혀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야 중학교에서 갈고닦은 중학생 수준 회화 실력이 있었으니 바디랭기지로 디스? 디스? 오케이? 하면서 소통을 한다 쳐도 다른 직원들은 그러지 못했고 앞으로 새로 뽑을 사람들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언어장벽의 문제로 고용은 포기해야만 했다. (사실 다들 취업비자도 없는 불법 체류자 신분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고용했다가는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걸려 가게 문 닫을 뻔했었다.)

외국인 채용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인으로 눈을 돌렸지만, 도저히 한국인 직원을 구할 엄두가 안 났다. 이 가게가 작은 식당도 아니고 꽤나 큰 식당이기에 업무량이 제법 많아 월 4백 정도는 줘야 구해질 것 같았는데 당시는 가게 초반이라 한 달 수입이 얼마일지도 예측이 어려웠고 아무리 장사가 잘된다 가정해도 인건비로 그만큼의 지출할 여유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의 식당에서 그러하듯. 알바생을 구하기로 했다.

가게 오픈할 때 도와주는 사람 1명, 점심시간 알바 4~5명, 중간시간 장사를 도와줄 사람 1명, 저녁 시간 알바 4~5명, 마감 도와줄 알바 1명 정도. 요일도 휴일/평일로 구분하는 등 최대한 짜임새 있게 시간표를 구성하여 알바를 구인했다.

최저임금은 국가에서 정한 ‘최저’라고 생각하고 최소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인정하리라는 나름의 신념하에 시급을 책정했다. 기본시급 1만 원에 이것저것 수당을 포함해서 계산하니 대략 1만2천 원 정도의 시급이 계산되었다. 속으로 우와… 시급 엄청 높다… 생각하다가도 한 시간에 만 원이면 사람을 살 수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엑셀 파일을 짜서 시급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얼추 합리적인 인건비 금액이 나왔다. 이 정도 인건비면 지출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알바천국과 알바본에 구인글을 올렸다.

나름 정성스럽게 구인글을 올렸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사람을 구인해본 경험이 있기에 구인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툭툭 조건만 제시한 다른 곳과 다르게 어떤 점이 좋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 단점은 어떤 점이 있는지 상세히 적었다. 몇 개의 훌륭한 스타트업과 몇 개의 엉망진창이었던 큰 회사들을 겪으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구인글을 공들여 작성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에 80개가 넘는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 또한 많은 사람을 면접 보면 좋은 사람을 구인할 확률이 높으니 그들 모두를 가게로 불렀다.

다시 가게는 면접을 보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수많은 절박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 17살의 어린 나이지만 조리 특성화고를 다녀서 학교 끝나고 와서 일을 하겠다는 여고생부터 건설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 회사에서 잘리는 바람에 일자리가 절박하다는 30대 남성. 아이가 다 커서 이제 일을 좀 하고 싶다던 50대 주부 등등 역시나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했다.

그 와중 한 가지 재미있던 점은 가벼운 마음으로 단순히 알바를 구하러 온 10대, 20대를 제외하면 구직자의 대부분은 30대~ 50대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레파토리가 비슷했다. 20대엔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성공했지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었고 아이가 대충 커갈 무렵부터 (약 10세)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 했는데 이미 전 직장에선 해고당한 지 오래라 돌아갈 수도 없고, 관련 업계는 이미 그때 당시와 너무나 달라져 있기에 진입이 불가능하더라. 결국 마땅한 직업이 없어서 집에서 아이를 볼 때 하던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닦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왔다고 했다.

사무직이었던 전 직장에서도 채용을 진행했을 때 30대 여성들이 한결같이 말했던 지원동기와 같았다. 경력단절. 그리고 지금 이 식당에서도 다들 너무 똑같은 패턴이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다들 어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한결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고 가슴이 답답했다. 면접장에 30대~50대 여성이 들어오면 어느새 지원 동기는 의미가 없었다. 10명 중 10명 모두가 경력단절 이야기를 했다.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였다. 그들과 면접을 진행할 때는 가게를 이끌어 나갈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생각하곤 했다.

대책이 없을까? 식당 구석에서 면접을 보고 있는 나 같은 가방끈 짧은 사람도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정말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는데 윗사람들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우수한 여성들이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단순노동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멀쩡히 대학 잘 나와서 배울 만큼 배운, 제법 똑똑한 이 사람들이 왜 다들 단순노동으로 몰릴까. 다른 사람 이야기도 아니고 나의 엄마, 나의 여동생, 나의 미래 아내 그리고 딸의 문제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국가적 육아 시스템을 확립해야 하나? 국공립유치원을 증가시켜야 하나? 노인들에게 요양보호사를 붙여주듯 아이들에게도 베이비시터를 붙여줘야 하나? 그럼 요양보호사처럼 베이비시터의 공신력 강화를 위해 시험제도를 실행해야 할까? 공공기관의 시간제 근로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할까? 매 순간 면접자들이 가져온 자기소개서 위에 모나미 볼펜으로 대안들을 휘갈기곤 했으나 사실 그게 전부이고 한계였다. 나는 그저 밥집 사장이었다.

채용을 진행하며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곤 했으나 일개 밥집 사장인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나는 짧은 시간 안에 쓸 만한 인재를 채용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선입견, 일반화를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체구가 작네. 힘쓰기 어렵겠다.. 거르고…’

‘이 사람은 화장이 진하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면… 주방에서 험한 일 하기 어렵겠다… 거르고’

‘이 사람은 인상이 왜 이래? 너무 험악한데?. 거르고…’

‘얘는 무슨 문신이 이렇게 많아… 좀 놀았나? 거르고’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면접 볼 사람은 많으니 사람을 일반화하고 쉽게 판단했다.

이 세상에 차별과 위선이 끊이질 않는다고 말하지만, 막상 나 또한 쓰레기 같은 세상에 일조하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한 명씩 걸러 나갔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은 건 갓 군대를 전역해 말을 잘 듣는 건장한 20대 남성, 피부가 하얗고 예쁘장한 외모의 20대 초반 여성, 그리고 주방에서 일할 힘 좋고 억척스러운 40대 아줌마만 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뽑힌 사람들을 보며 확신했다. 나 또한 이 사회를 쓰레기 같이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렇다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시간은 없었고 확률싸움이었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20대 남성이 20대 여성보다 힘이 셀 확률이 높았고 손님들은 40대 남성보다는 20대 여성이 서빙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낄 확률이 높았고 주방에서는 40대 여성이 10대 학생보다 잘할 확률이 높았다.

직원 10명 남짓한 곳의 작은 가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채용은 가게 매상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때 나는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좇는 사람이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깊은 차별, 선입견이 나 같은 놈한테서 시작한다는 생각에 괴로웠지만, 솔직히 별로 오래가지는 않았다. 너무 바빠서 그런 걸 자책할 시간도 없었다. 아니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가게 한쪽 티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연예인들이, 연예인 아이들이 초호화 생활을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비리 전과가 있어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어도. 성폭행 전과가 있어도, 심지어 살인 전과가 있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세상 같았다. 저쪽 세상은 유토피아 같은 곳. 이쪽 세상은 개돼지들끼리 먹고살자고 아웅다웅 하고 있는 꼴인 것만 같았다.

정말 개돼지들끼리 아웅다웅 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중에 제법 못된 개돼지에 포함되리라 생각했다.

수많은 이력서가 가게 한쪽에 꾸겨져있었다.

인연이 될 뻔한 사람들의 희미한 흔적이었다.

9. 다수자 보고서: majority report(손님들 이야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하루 이틀 버티고 나니 30일째부터는 가게 업무를 눈감고도 할 수 있었다. 한 번에 100인분의 설거지쯤은 일도 아니었고 고등어 50마리, 돈가스 50인분 정도는 한 번에 튀길 수 있었다. 각종 신용카드와 인천e음카드, 삼성페이, 현금이 섞여 날라 와도 침착하게 계산을 마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오늘 육회가 싱싱하다는 등의 뻔한 이유를 대며 더 비싼 메뉴를 주문시키도록 유도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다.

슬슬 요식업에 재미를 붙여간 것이다.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아저씨들에겐 애교를 떨면서 2만 원짜리 메뉴를 시키도록 유도했고 가족들이 다 같이 온 테이블에서는 철저하게 부인 위주로 소통하며 비싼 메뉴를 유도했다.

점점 약아졌다. 테이블에 몇 명이 있던 결정권자는 단 한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지갑을 열 자. 과연 누구인가.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오면 10초 이내에 그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이 테이블의 물주는 누구지?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저 사람 같은데… 어디보자.. 나이는 몇 살… 성별은… 외모는… 지금 현재 상태는… 기분이 좋나? 나쁜가? 자존심을 살짝 긁어볼까? 아니면 무조건 갑으로 대우해줄까? 어떤 전략이 먹힐까?’

빠른 시간 내에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소통방법을 찾는 과정이 하루에도 몇 십, 몇 백번씩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나를 휘감았다가 빠져나갔다. 밀물과 썰물이 갯벌에 물길을 남기듯, 그들도 나에게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나에게 남긴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물론 나의 매우 주관적이고 선입견이 가득하며 성급하게 일반화된 경험이다.)

아저씨들.

배나온 40~50대 아저씨들은 권위적인 사람이 많았다.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하고 제법 고집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대부분 외로워했다. 돈은 제법 많지만 마땅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번 돈도 다 마누라한테 뺏겨서 돈도 없는 것 같은 사람이 대부분 이었지만…ㅜ)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술 취해 하는 별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었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이야기, 마누리가 바가지를 긁는다는 이야기, 딸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 자신의 대학시절 이야기 등등…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 식은땀을 흘린 일이 있었는데 바로 정치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나는 뉴스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항상 우리 가게 한편에 있는 TV에는 뉴스채널을 틀어놓았었는데 마침 그때 TV에서 대통령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패스트트랙이… 선거법이… 최저임금이… 다양한 시사평론가들과 정치연구소 대표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시국에 대한 진단을 했고 하나같이 현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때 한 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쉬며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그 아저씨는 나에게 물었다.

“자네는 문재인이를 어떻게 봐?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

아저씨의 눈은 술에 잔뜩 취해 잔뜩 풀려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붉어진 얼굴로 그가 띄고 있는 그 게슴츠레한 눈빛은 자신의 주장이 맞음을 확인시켜달라는 은근한 눈빛임을.

식탁위에 널브러져 있는 지갑 속 그의 명함을 빠르게 곁눈질했다. ‘ㅇㅇ건설. 대표 ㅇㅇㅇ’ 추측컨대 그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중소건설사의 대표였다. 그리고 건설업의 특성상 그가 급여를 주는 직원들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은 것이라 추측했다. 빠르지만 다방면으로, 얕지만 넓은 고민을 3초간 끝맺었다. 나는 내뱉었다.

“…문재인이요? 그거 맨날 북한타령만 하지 않습니까? 최저임금도 엄청나게 올리고… 경제가 다 죽는 게 보입니다! 손님들도 요즘 없어요! 재앙이죠 재앙!”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소주잔을 강하게 내려놨다. ‘쨍그랑!’ 이윽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나를 흘겨보았다.

긴장되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쌍욕이 날아오면 눈을 질끈 감아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침묵이 유지되던 그 때, 느닷없이 그는 웃었다. 그것도 매우 호탕하게 웃었다. 씨익 웃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그치?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뭘 좀 아는구만! 껄껄!” 그러더니 그는 대뜸 지갑을 꺼내 나에게 팁을 주었다. 2만원이었다. 처음 받아본 팁이었다.

그 이후에도 아저씨들은 나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늘여놓았다. 자신의 사업 이야기, 어릴 적 이야기, 여자 이야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지만 절대 선은 넘지 않았고 알고 있는 것이 없음을, 못 배운 놈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그들을 힘껏 추켜 세워주었다. 교훈을 줘서 고맙다고, 역시 대단하다고 해줬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나를 썩 좋아라했다.

그들 대부분은 가슴속 깊이 인정욕구가 내제되어 있었다. 물론 칭찬과 인정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배나온 4,50대 아저씨. 그들은 유독 칭찬과 인정에 약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대할 때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잔뜩 술에 취해 별 영양가 없이 내뱉는 그들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비싼 메뉴 주문을 유도한 뒤 얼큰하게 취하면 대리운전을 불러 만족스럽게 귀가시켜주는 일련의 과정에 능숙해져갔다. 덩달아 팁도 쏠쏠하게 챙겼다. 2만원으로 시작한 팁은 나중에는 10만원까지 늘었다. 늘어나는 액수만큼 점차 나도 능청맞아지고 있었다.

아줌마들.

아저씨들과의 소통의 핵심이 ‘인정’이었다면 아줌마들과의 소통의 핵심은 ‘공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칭찬할 점을 찾아 인정해주고 치켜세워줘야 했던 아저씨들과 달리 아줌마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추임새 정도를 넣으며 공감하는 척 하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더 쉬운 부류였다.

하지만 쉬운 난이도와 달리 그녀들의 씀씀이는 그렇지 않았다. 40~50대 아줌마들. 그녀들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여러 측면에서.

40~50대 아줌마들은 육아가 얼추 끝났거나 자녀들이 고3, 재수생 무렵의 시기로 접어들어 얼추 여유가 생기는, 인생의 후반전을 슬슬 준비하는 나이들이었다.

화려한 옷과 선글라스, 세월을 감추기 위한 진한 화장과 파마,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명품가방을 들고 온 아줌마들은 항상 룸을 찾았다. 본인들의 사생활이 존중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구석자리는 아닌, 화장실, 주방과는 거리가 먼 적당한 자리를 원했다.

그녀들이 우르르 룸을 잡고 들어오면 왁자지껄한 수다와 함께 농익은 농담이 흘러나왔다. 그 분위기에 내가 서빙이라도 하러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젊은 영계가 왔다며 좋아라했다.

아줌마들의 모임에는 항상 리더와 행동대장이 있었다. 리더는 테이블 가장 안쪽에 앉아있었고 행동대장들은 식기류를 세팅하고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항상 테이블 가장 끝에 앉아있었다.

행동대장들은 항상 쾌활했다. 호탕하게 웃고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특징이었다. 당연하게도 어떤 메뉴를 주문할 것인지, 오늘 얼마를 쓸 것인지,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지는 그녀가 정하는 것이었다.

행동대장들은 내가 당신을 제법 신경써야하는 고객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듯 주문을 하며 주문을 받는 나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곤 했다.

딱히 헬스를 했다거나 운동을 좋아해서 흔히 말하는 ‘말벅지’라거나 근육이 많아서 몸이 딴딴하지는 않았지만 젊고 하얗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들은 나의 엉덩이를 제법 좋아라했다.

사실 기분이 막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기에 능글맞게 웃으며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을 빡 주고 웃곤 했다. 그러면 항상 어김없이 행동대장들은 내 엉덩이를 콱 쥐며 외쳤다.

“오케이! 여기서 가장 비싼 걸로!”

아줌마들은 주로 8명씩 무리를 지어서 오곤 했다.

우선 눈앞에 있는 이익만 계산해보아도 인당 2~3만원씩, 2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각자가 자신의 지인을 데려올, 혹은 이 모임이 다시 이 가게를 방문할 경우, 아니면 어디선가 입소문을 내주어 제 3자가 가게를 찾아오는 경우 등의 기대수익까지 생각한다면 아줌마들은 정말로 중요한 고객이었다.

내 엉덩이와 허벅지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음에 감사하며 꾹 참았다.

아저씨들은 술을 마신 후 말의 크기가 커졌다면 아줌마들은 말의 양이 많아졌다.

8명 정도가 있는 방에 서빙을 하러 들어가면 꼭 나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몇 살이며 어디에 살며 지금은 무슨 상태인지 등.

짧은 호구조사가 끝나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남편 욕, 자식 이야기, 기타 식구들 이야기 정도였는데 술을 적당히 마시고 취기가 올라오면 어김없이 농염한 농담을 하곤 했다.

국에 들어있는 미더덕을 보며 남편이 요즘 부실하다느니, 반찬으로 나온 청양고추를 보며 이건 꽤 실하다느니. 장어꼬리가 남자 정력에 좋다느니. 그러고는 어김없이 내 두 허벅지 사이로 짙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스윽 넣고는 했다.

사실 기분이 나쁘진 않았기에 딱히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던가,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저 배시시 웃어주며 그녀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추임새 정도를 넣으며 공감한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가끔 눈을 마주치며 고개도 끄덕여주면 더욱 좋았다. 위로와 공감 그리고 미소를 싫어하는 아줌마들은 없었다. 아줌마들은 그런 나를.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며 리액션까지 해주는 젊은 남자를 제법 좋아라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주면 아줌마들은 돈을 걷었다. 8명이서 5만원씩. 40만원. 팁이라며 가져가라 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힘들면 자신의 가게로 와도 좋다고 간혹 명함도 주곤 했다.

30분에 40만원. 시급으로 따지면 80만원이었다. 와우. 엄청났다. 짜릿했다.

스스로 호스트바 선수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생각보다 연상녀에게 먹히는 외모인 것이라며, 여심을 사로잡는 양기가 가득한 것이라며, 아줌마 한정 옴므파탈 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돈을 꼬깃꼬깃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아줌마들을 보내고, 아줌마들이 팁으로 준 돈으로 치킨을 사먹고는 가게에 홀로 남아 뉴스를 틀어놓고 공허한 시간을 맞이했다. 갑자기 크나큰 자괴감이 밀려왔다. 괜히 지난날의 실패한 연애들이 떠올랐다.

흑흑… 너무 오래전 일들이라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기도 하고. 별이 예쁘다던가, 보고 싶어서 전화 했다던가, 손이 살짝 부딪히면 괜히 부끄러워한다던가하는 오그라드는 순간을 보내며 하하호호 제법 풋풋한 사랑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뽀글머리 아줌마들한테 엉덩이나 주물주물 당하면서 실실 쪼개는 신세라니 흑흑… 자괴감이 마치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손에는 치킨을 먹고 남은 38만원이 있었다.

제법 처량한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졸부들.

남녀노소를 떠나 공통적으로 가장 힘든 부류는 바로 졸부들이었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진상이었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독한 향수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에게서는 항상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들은 구형 에쿠스, 구형 제네시스, 구형 체어맨 혹은 EQ900와 같은 오래된 고급차 혹은 신형 하,허,호 대형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항상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마치 공작새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지만 아무 쓸모없는, 손으로 뽑으면 힘없이 뽑히는 날개를 활짝 펼치듯. 그들도 그러했다.

시뻘건 입술문신, 짱구 같은 눈썹문신, 시커먼 아이라인, 화려하고 큰 액세서리, 귀가 찢어질 듯 무거워 보이는 귀걸이, 반짝이며 노란 빛을 뽐내던 금목걸이와 두꺼운 금반지, 새하얀 백구두, 은빛 메탈시계, 일수가방처럼 보이는 클러치백, 짝퉁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는 톰브라운 가디건.

화려하지만 아무 실속 없는. 내면의 아름다움보단 외적인 아름다움과 과시에 집중하는 그들이 가게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한숨부터 나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들은 외적인 면에 비해 그다지 비싼 메뉴를 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컴플레인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있었다.

반말은 기본, 청결관리 지적부터 직원들의 태도, 음식의 맛, 가게의 온도 심지어는 인테리어까지. 때로는 나물이 짜다며, 회가 왜 이렇게 얇냐며, 사장이 나와 직접 사과하라며 자신이 아는 모든 잡지식을 동원해 논거를 대가며 가게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마치 소형견이 불안에 떨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러운 성깔과 함께 으르렁 거리듯, 졸부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무시해야한다고, 그냥 미안하다고 넘어가야한다고 최면을 걸어 그 상황을 모면하곤 했지만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휘감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인신공격이라도 받으면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언행이 가슴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다.

차라리 그런 말을 듣는 것 보다는 나를 흠씬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혀가 주는 상처는 꽤나 아팠다.

정말이지 칼에 베인 듯 오래오래 아렸다.

직장인들.

요식업을 하며 가장 환영할 상대는 역시 직장인들이었다.

그것도 점심에 정장을 입고 거래처와 함께 오는 직장인들은 내 기준 가장 최고의 고객. 요즘 말로 원픽이였다.

첫 번째로 그들은 수를 맞춰 몰려다녔다.

손님들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 바쁜 점심시간. 그 와중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며 혼밥을 하는 손님은 제법 골치 아픈 유형이었는데 직장인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4명이면 4명. 8명이면 8명. 많게는 20명 정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가게에 있는 테이블을 꽉꽉 채워줬다. 그리고는 음식이 나오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빨리 먹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빨리 회사에 들어가 낮잠을 자기 위해, 상사와 있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고자, 부장님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등 각자의 사정은 달랐지만 대부분 뜨거운 국이 식기도 전에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서둘러 나가곤 했다.

두 번째로 그들은 항상 막내 직원을 데리고 다녔다.

그들이 데려오는 막내 직원들은 항상 식당의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본인들이 도맡아서 하곤 했다. 자신들의 일행이 수가 몇 명인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등을 문을 열자마자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재빠르게 물티슈로 테이블을 싹 한번 닦고는 8명의 수저 저분 및 음료 세팅을 끝내곤 했다. 주문도 벨을 누르기 보다는 직접 나에게 와서 조용히 주문했고 혹여나 음식이 맛이 없거나 머리카락 같은 것이 들어가 있으면 크게 소란을 피우기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그릇에 그것을 조용히 훔쳐내곤 했다.

그들은 자신이 모시고 온 상사의 비위를 100퍼센트 맞춰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하루 일과의 절반인 점심시간. 그 중요한 시간에 상사의 감정이 상하면 그 감정은 오롯이 오후 업무시간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혹여나 오후에 중요한 회의 혹은 중요한 기획안의 결재를 넣어야 하는 날이라면 더더욱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우리의 부장님들은 항상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식탁에서 수저 세팅이 다 되어있는 채로 후르룩 쩝쩝 먹는 뜨끈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그렇게 먹는 밥은 맛이 없을 리 없었다. 덕분에 직장인 무리의 우리 가게 만족도는 꽤나 높았다. 정확히는 부장님들의 만족도였겠지만.

세 번째로 그들의 지갑엔 법인카드가 있었다.

열댓 명의 직원들이 맛있게 밥을 먹고 나면 항상 부장님들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큰 목소리로 외치곤 했다.

“다들 맛있게 먹었나? 오늘은 내가 산다!”

그러면 직원들은 대충 알겠다는 눈치로 형식적인 박수를 치곤했다.

“부장님 최고!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계산대 앞에서 부장님은 카드지갑을 열고는 무언가를 찾는 척 괜히 뒤적거리다가 신발 끈을 괜스레 고쳐 매다가 다시 박하사탕을 찾곤 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렇게 직원들이 가게를 빠져나간 후에야 부장님은 다시 카드지갑을 열어 카드를 내게 건네주곤 하였는데 그들의 카드에는 항상 비슷한 레터링이 박혀있었다.

‘ㅇㅇ테크’, ‘ㅇㅇ모바일’, ‘ㅇㅇ비즈니스’

법인카드였다.

그렇게 부장님이 자신만만하게 개인카드로 계산하는 척하며 계산을 하고 나면 그 영수증은 제법 예쁘장하고 화장이 가장 진한 여자 경리직원이 가져가곤 했다.

수많은 회사의 점심식사가 그러했다.

아무튼 위 이유 외에도 측면에서 회사원들은 정말로 좋은 고객이었다. 매상도 올려주고 불평불만 하나 없는 최고의 고객이니만큼 나는 그들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에어컨이 잘 드는 좋은 자리에 예약석 푯말을 놓아 다른 이들이 앉지 못하게 한 후 직장인 무리가 오면 슬쩍 치운 후 그들을 그 자리로 안내하곤 했다.

우리가 그들은 좋은 고객으로 생각하듯 그들도 우리를 좋은 식당으로 생각했다. 특히나 각 회사의 영업사원들이 우리 식당을 애용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그 지역에는 고만고만한 음식점밖에 없었고 거래처와 이야기를 나누고 접대할 만한 분위기의 집으로는 우리 가게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고가였고 해산물이라는 고급 이미지가 있었기도 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룸이 있는 가게가 우리 가게뿐이었기에 룸 안에서 이런저런 사업 이야기를 하기에 제법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2대8 머리를 왁스와 스프레이로 고정한 은갈치 영업맨들은 우리 가게를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업무 특성상 하루에 3~4번 가게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중고차 딜러로 보이는 한 30대 남성이었는데 차를 팔러온 사람들과 점심을 각각 두 끼, 점심을 거른 고객과 함께 3시경 한 끼, 저녁에 차를 계약하러 온 고객들과 각각 두 끼. 접대를 해야 하는 중고차 수출상인과 밤늦은 술 접대. 이런 식으로 하루에 우리 가게를 6번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는 매번 웃는 얼굴로 처음 먹는 음식인 것처럼 우리 음식을 거래처 사람과 함께하곤 했는데 저녁쯤에는 한계가 왔는지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 구토를 해서 속을 게워내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제법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나와 그들의 상호 신뢰가 쌓여 그들이 가진 법인카드로 거래처와 밥을 먹은 것처럼 결제하고 본인 가족들 줄 용도로 음식을 포장해 가져가기도 했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 영업직의 특권이기도 했고 그들의 ‘소확횡’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회사를 뛰쳐나갈 것 같아 보였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 페이백 등등 회사도 다 알면서 넘어가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인들.

노인들은 극명했다. 정확히 극과 극으로 2가지로 나뉘곤 했는데 정말 젠틀한 부류가 있던 반면 도저히 품격이라고는 찾기 힘든 부류로 극명하게 갈렸다. 애매한 사람은 잘 없었는데 아마도 추측건대 젊은 날의 사소한 태도의 차이가 세월이 쌓이고 쌓여 극과 극으로 나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듯 노인들은 그렇게 극과 극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가게 문을 열고 테이블로 향하는 걸음걸이만 보아도 얼추 파악이 되었다. 등산복과 캡모자, 게걸스럽게 떠들면서 걸어오는 모습에 선글라스를 낀 노인들은 대부분 높은 확률로 쉽지 않은 유형이었다. 적은 소득 탓에 항상 가장 저렴한 메뉴를 주문하고는 가게에 4~5시간씩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계속해서 무상의 서비스를 요구했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발생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 ~~장이야~”

통장, 이장, 반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등등… 쥐똥만한 이 나라에 뭔 놈의 ‘장’이 이렇게 많은지. 게다가 그들은 휴지, 젓가락, 수저, 접시, 비닐 등 각종 집기를 훔쳐 가곤 해 경제적으로도 가게에 피해를 주곤 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로 되돌아갔다.

그에 반해 젠틀한 유형의 노인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꾸밀 줄 알고 겸손했다. 또한 청결했고 품위가 있었으며 예의가 발랐다. 자신을 낮춰 상대를 먼저 존중하면 그 존중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말 그대로 온몸에 기품이 흘렀다.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허세는 하나 없었다. 항상 밥을 깔끔히 먹었고 불필요한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식은 하지 않았다. 주로 소식을 했고 자신이 먹을 만큼만 따로 덜어 먹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식사 중에는 수저가 접시에 닿아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일 하나 없이 조용하게, 묵묵하게 음식의 맛과 향에 집중하며 먹곤 했다. 몸짓, 행동, 동작, 생각 모든 것 하나하나에 기품이 흘러넘쳤다. 작고 사소한 습관이 쌓여 저런 아우라, 존경과 존중의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게에 있던 노인들과 전쟁을 치르고 나면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2~3시 즈음 마지막 노인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 가게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문 앞을 서성거리며 가게에서 버린 폐지가 없나 살피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항상 땅을 보며 걷다가 돈이 될 만한 폐지가 있으면 폐지를 집어 들고 구멍 뚫린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오수로 폐지를 적셔 무게를 살짝 늘린 후 자신의 리어카에 실어 가곤 했다.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그녀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항상 거친 숨을 몰아쉬곤 했다. 나는 딱히 그녀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게에서 나온 제법 많은 양의 폐지를 들고 가기 쉽게 테이프로 칭칭 묶어놓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가끔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이나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에는 문득 그녀가 눈에 밟히곤 했지만.

환자들.

앞서 말했듯 우리 가게는 15층 정도의 큰 규모 빌딩 1층에 있었는데 그 빌딩은 병원이 꽤나 많이 입점해 있었다.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노인 병원, 한방병원까지 다양한 병원과 다양한 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환자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찾았다. 허리와 발이 불편해 휠체어 탄 손님들도 있었고 손발이 잘려 극심한 우울증으로 식사로 나온 회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보험사기 나이롱 환자들도 오곤 했는데 택시기사, 배달대행 기사 출신인 그들이 어떻게 보험사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일반인에게 합의금을 뜯어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쏠쏠한 재미 중 하나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환자 손님으로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말도 어눌하고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성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는 가게 앞 흡연구역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다가 카운터를 보던 나와 눈이 맞으면 머뭇머뭇 가게 안으로 들어오곤 했는데 특이했던 점은 항상 혼자서 10만 원어치 식사를 주문했었다.

시간도 항상 점심, 저녁 피크타임이 아닌 오후 3~4시쯤인 손님이 없을 때 오곤 했는데 그 시간대에는 매장이 한산하기도 하고 주문 금액도 금액인지라 마치 오마카세처럼 그에게 1대1 전담 마크 서비스를 해주었다.

주문부터 조리, 서빙까지 직접 서비스함은 물론이고 휠체어를 탄 그를 위해 전용 좌석을 마련해주었다. 요리가 나오고 식사를 할 때면 옆에서 술도 따라주고 생선의 가시를 발라주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무슨 내뱉은 말을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했다. 그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단어를 띄엄띄엄 큰 손짓과 함께 어눌하게 구사하는 수준이었는데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바쁜 나를 앉혀두고 항상 주저리주저리 장황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잘 나가던 청년 시절의 이야기, 자신을 버린 자식들에 대한 원망, 병원에서 쌀쌀맞게 구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미움, 그래도 나름 잘해준다는 수간호사에 대한 고마움까지. 그는 다양한 주제로 긴 시간 동안 나에게 말을 쏟아냈다. 마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토해내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울다가 즐거워하다 이내 다시 슬퍼하곤 했다.

물론 나는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며 그가 웃으면 따라 웃고 눈물을 흘리면 휴지를 뽑아주고 그럴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노인은 일주일에 2~3번씩 꼭 우리 가게를 찾아왔다. 물론 매번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소주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놓을 뿐이었다. 특히 비싼 회는 손도 대지 않아 아까운 마음에 그가 가게를 떠나면 늦은 점심으로 직원들과 함께 그 회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가한 시간대에 와서 홀로 매출도 두둑하게 올려주고 거기에 식사는 다 남기고 가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좀 귀찮긴 해도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손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주문한 10만 원 어치의 음식을 만들던 중 느닷없는 단체 손님이 몰려왔다. 아줌마들이었다. 아줌마들은 큰 소리로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게는 아비규환이 되었고 그는 시끄러운 가게 속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직원도 그 누구도 그가 식사를 하는지 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그가 주문한 10만원짜리 풀코스 요리를 그의 앞에 내던지듯 내려놓고는 아줌마들의 주문공격을 쳐내기 바빴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가게를 둘러보니 그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10만 원짜리 식사는 방금 나온 것처럼 손 하나 대지 않은 상태였고 소주 한 병만이 비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주잔 밑에는 현금 10만원이 깔려 있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는 가게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그는 밥이 맛있어서, 23살 따위가 만든 어설픈 식사나 먹으려 세상 여유롭게 돈을 쓴 것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와 말할 수 있는 시간, 정확히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돈으로 산 것이었다.

외로웠을 것이다. 제법 좋은 병원에서 간병인들이 24시간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주며 좋은 음식을 대령했겠지만 아무도 본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삶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가 떠난 뒤 가끔 그가 마지막으로 가게에 찾았던 CCTV를 보곤 했다. 북적이는 가게 속에 홀로 남겨진 그는 나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의기소침하고 작아 보였다.

주제넘지만 노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다.

돈, 명예, 집, 병원, 가정부, 노인 정책, 국민연금 등 그런 것은 사실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그런 물질적인 재화가 아닌, 본인에게 얼마 남지 않아 너무나 소중한 재화인 시간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말동무가 있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10. 아는 것은 힘이다. 모르면 당한다.

그렇게 가게를 운영한 지 딱 한 달.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찾아왔다. 갑자기 어제 이곳에서 먹은 음식을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나 났다며 아줌마 세 명이 찾아온 것이었다.

찾아온 시간은 점심시간 피크였던 12시 20분. 매장 안에는 손님들이 미친 듯 바글바글했고 테이블 호출 벨들이 한 시가 멀다하고 띵동띵동 소리를 지르고 있던, 주방에서는 칙칙폭폭 밥솥이 뜨겁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홀에서는 음식이 짜다 싱겁다 차다 뜨겁다는 등의 각종 컴플레인이 사정없이 쏟아지던 그 와중이었다.

“사장 나오라고 그래!”

“이거 어쩔 거야!”

뽀글머리 파마를 한 아줌마 3명이서 소리를 질렀다.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던 그녀들은 몸 안에 두드러기가 잔뜩 피어올랐다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겉옷, 가디건, 반팔… 그렇게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던 옷은 어느새 민소매 티만 남았고 그녀들은 잔뜩 살이 오른 가슴골을 보여주며 가슴에 난 두드러기가 보이냐며 난리를 쳤다. 더 나아가 사타구니에도 두드러기가 났다며 바지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다가는 정말이지 속옷까지 다 벗을 기세였다.

“어우, 어우, 어머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알겠으니까 옷 입으세요.”

그러자 그녀들은 마치 불붙은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사장 나오라고!”

“보험은 가입되어있어?”

“주방 확인해볼게! 들어간다!”

그리곤 갑자기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어머!!! 이거 성추행이야! 당신! 뭐야!”

그녀의 볼품없이 축 늘어진 가슴이 출렁거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손님들은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고 주방에서는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으며 서빙도 꼬여서 다른 메뉴가 배송되고 있었다. 칙칙폭폭, 띵동땡동, 왁자지껄, 우왕좌왕. 그리고 가게 한구석에서는 뽀글머리 아줌마 셋이 주섬주섬 바지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인생에서 가장 긴 10분이었다.

그 아줌마들은 병원 진단서와 영수증, 전화번호를 던지고 사라졌고 나는 혼이 나간 채로 그들이 던진 종이 쪼가리를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환자가 갑자기 두드러기를 호소. 어제 먹은 해산물로 인해 두드러기가 난 것으로 의심됨’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내가 잘못 읽고 있는 것인지, 이걸 진단서라고 썼다고? 마치 초등학생이 병원 놀이를 할 때와 같은 진단서였다. 도대체 의사로서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 어떤 의학적 근거로 이러한 의심을 했는지 전혀 적혀있지 않고 그저 환자의 입장만을 1줄로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너무나 억울하고 격분해 당장 해당 병원을 찾아가 따지려 했다. 진단서 모퉁이에 적힌 병원의 이름은 ‘ㅇㅇ한방병원’.

하, 도대체 왜 이 쎄한 느낌은 항상 틀리지가 않는지.

물어물어 해당 병원의 소재를 파악해보니 해당 병원은 나이롱 환자들이 가득한 이른바 ‘모텔형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별도의 치료행위 없이 환자의 숙식만을 제공하는 행태로서 보험사기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곳이었다.

깊은 고민을 해보았다. 과연 내가 이 병원에 가서 따진다 한들 바뀌는 것이 있을까? 더 냉철히 생각해 보았다. 아니, 따질 수나 있을까? 나이롱 병원이라 한들 상대는 국가고시를 통과한 한의사였다. 아무리 요즘 사회에서 한의사를 한무당이라며 비하하고 무시한다고 하나 나보다 몇천, 몇만 배의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강한 무력감만이 나를 감싸 안아줄 뿐이었다.

CCTV를 돌려보았다. CCTV속 아줌마들은 가게로 들어와 CCTV를 하나둘 쳐다보고는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증거 수집용인지 자신들의 추억 남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도 열심히 찍으며 상하기 쉬운 해산물과 나물 위주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는 각자 카드로 계산 후 영수증을 가져갔으며 가게 명함도 핸드백 안에 소중히 넣는 모습이었다.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CCTV위치를 파악했던 점, 두드러기를 피부과가 아닌 한의원에서 진단받은 점, 일반인들은 알기 힘든 음식물배상책임보험을 운운하며 따진 점 등을 보아 보험사기가 의심되었지만 별수 없었다. 또다시 찾아와 인터넷에 올린다며, 언론에 뿌리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탓에 결국 원하는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할 수밖에 없었다. 의학적, 법률적 지식이 없어 당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억울했던 기억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 이 문장을 지어낸 프랜시스 베이컨 아저씨는 돌아가신 지 400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의 말은 그렇게 또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11. 마케팅 시작 : 맛집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슬슬 장사가 잘되니 주변에서 프랜차이즈를 내고 싶다는 의뢰가 하나둘 들어왔다.

그 근방에서는 가장 깔끔한 고급 음식점이었고 정말 매일 매일이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으니 사업아이템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조건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터. 게다가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20대 꼬마 실장이 운영하고 있으니 50대 아저씨들이 퇴직금을 모아서 창업하면 오토로 돌리기에 딱 적합해 보였을 것이다.

프랜차이즈를 하는 것은 좋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광고에 투자해 조금 더 가게의 몸값을 높인 후 협상하는 전략이 더욱 큰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오픈빨도 슬슬 떨어지기도 했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사이에 손님들이 뜸해지기 시작했기에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을 이용해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연구해보았다.

연령층.

현재 가게의 주 고객층은 4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절대다수였다. 대략 80프로 이상. 메뉴 자체가 젊은 층에는 인기 없는 메뉴였고 가장 싼 메뉴가 1만원을 넘어가는 고가의 정책을 펼쳤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다. 현재 오는 고객층을 타겟으로 광고정책을 펼칠 것인가 혹은 20~30대의 새로운 고객층의 유입을 꾀할 것인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뻔했다. 해당 지역의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될 문제였다. 그래서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그리고 각 구청과 동사무소들의 관련 자료를 뒤져 가게 근처의 인구분포를 조사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 근방의 20~30대는 대부분 서울에서 자취를 하러 떠나있었고 무엇보다 소득이 적었다. 인구 비율로 보나 소득으로 보나 40~50대가 압도적이었다.

오프라인 그리고 네이버.

인구 분포를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한 SNS홍보는 염두에 두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는 오프라인 홍보와 레거시 미디어에 속하는 네이버라는 플랫폼을 통해 광고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가게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과 타겟 손님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을 지나는 버스 노선에 지면 광고를 눈여겨보았다. 서울과 대비해 지하철이 발전하지 않은 도시인 인천은 제법 버스 사용률이 높았고 실제로 많은 손님들, 특히 아줌마들 계모임 같은 경우 버스를 타고 우리 가게로 오는 경우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버스정류장에 있는 광고는 뒷면이 LED로 되어 있었기에 일몰 후에는 더더욱 효과적인 광고가 가능한 점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비용이 가장 매력적이었는데 그 당시 인천 기준 버스에 붙이는 광고는 월 10만 원, 버스 정류장에 설치하는 광고 또한 월 10만 원으로 광고비가 생각보다 저렴했다. 해당 광고를 통해 한 달에 10명 이상의 손님을 유치한다면 대략적인 광고비를 회수할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버스 광고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피드백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버스 광고를 하기는 했는데 과연 이 버스가 고장 나지 않고 인천 시내를 잘 누비고 있는지, 혹은 차고지에서 정비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박혀있는지, 버스 전광판이 오염돼서 내 광고를 가리고 있는지는 않은지, 무엇보다 도대체 몇 명이나 이 광고를 보고 가게를 찾아오는지 파악이 어려웠다. 매출이 늘긴 늘었는데 도대체 이게 광고 때문인지 다른 요인이 있는지 분석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곤란했다. 효과적으로 홍보예산을 편성할 수 없었다. 가시적인 성과,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적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네이버라는 플랫폼이었다. 네이버는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40~50대에 압도적인 이용률을 자랑하는 플랫폼이었다. 오히려 20~30대는 크롬, 구글, 카카오, 다음의 이용량이 많아 네이버의 이탈률이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즉, 딱히 네이버는 더 이상 젊은 플랫폼이 아니었다.

그런데 네이버 본사를 통한 광고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마치 대기업처럼 우리 가게 이름을 치면 검색어 하단에 우리 가게를 홍보하는 한 뼘짜리 광고를 넣고 싶었는데 대략 월 400만 원 정도의 광고비가 소요되었다. 물론 검색어를 선점하는 것에만 이 정도 기본요금이 드는 것이고 실제로는 홍보영상 제작, 블로그 제작, 홈페이지 제작 등 부가적인 비용이 계속해서 들어가는 구조였다.

또한 사용자가 우리 가게를 검색 및 클릭할 때마다 계속해서 요금이 불어나는 구조였다. 대략 구축에만 2천만 원, 유지비로 한 달 5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구축이야 어찌어찌 한다고 쳐도 유지비로 직원 두 명 정도의 인건비를 부담할 수는 없었다. 이 돈이면 그냥 홍보 담당 직원 2명을 채용하는 것이 나았다.

도저히 네이버와 직접 거래는 어려웠고 네이버를 간접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간접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말은 거창하지 그냥 블로그 기자단, 맘 카페 홍보단들을 이용해서 네이버에 우리 가게 상호를 치면 가짜 후기가 돌아다니도록 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업계 단가를 파괴하는 상도덕 없는 사이트, 크몽을 이용했다.

크몽의 단가는 놀랍도록 저렴했고 말이 안 되는 제안으로 가득했다. 30만 원만 주면 SNS 맛집으로 만들어 준다느니 50만 원이면 맛집 프로그램에 섭외를 넣어주겠다느니 하는 믿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한번 속는다는 심정으로 10만 원짜리, 가장 적은 금액을 투자해 ‘네이버 맛집’ 옵션을 선택해 주문을 넣었다. 가게 사진과 장점들을 나열한 글을 적어주면 그걸 토대로 3일 안에 가게를 해당 지역 맛집으로 만들어 준다는 상품이었다. 10만 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버려도 아깝지 않겠다 싶은 심정으로 주문을 넣고 가게 사진과 글을 업체에 전송했다.

그리고 이틀 뒤부터인가. 조용하던 가게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블로그 보고 전화했는데 가게 위치가 어디냐, 단체예약이 가능하냐, 주차는 되냐 등 10분에 한 통씩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바쁜 점심시간엔 전화를 받지 못할 수준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렇게 전화를 주나 했더니 네이버에 우리 가게가 ‘인천 간석동 맛집’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간석동 맛집, 인천 맛집 등으로 검색하면 블로그, 카페 등에 가장 위에 랭크되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작성한 글들이 마치 누군가의 리뷰로 위장한 것이었다.

물이 잔뜩 들어왔다. 이때다 싶어 노를 힘차게 저었다.

구글, 다음, 네이버 지도에 우리 가게 위치를 등록하고 전화번호와 주차장, 근처 대중교통, 와이파이, 화장실, 메뉴판 등 상세 정보를 입력했다. 그러자 다음 날에는 우리 가게 상호나 인천 맛집, 간장게장 맛집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우리 가게 정보가 더욱 상세하게 사용자의 모니터를 장식했다. 가게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 지도에서의 우리 가게 위치가 나오고 그 밑으로는 블로그와 맘카페들의 찬양, 간증 후기가 이어졌다. 제법 그럴 듯했고 가고 싶어 보였다. 단돈 10만 원과 조금의 부지런함으로 만든 결과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부터 매장 전화는 어서 전화를 받으라는 손님들의 아우성을 대변하듯 미친 듯이 울려대며 자신의 위엄을 강조했다. 웃음이 만개했다. 거대한 화이트보드로 만들어 놓은 예약판은 예약을 표시해 놓은 포스트잇 때문에 자신 본연의 하얀색을 잃어갈 지경이었다.

네이버 검색 및 지도를 통해 가게에 전화를 건 고객들의 경우 전화를 받기 전 “네이버 예약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라는 식의 문구가 통화 직전 들려오곤 했는데 그 비율이 전체 전화의 70% 가까이 차지했던 것을 경험하니 새삼 대한민국에서 네이버라는 플랫폼이 얼마나 영향력이 높은가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중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입김이 센 언론사가 어디냐고 한다면 조선일보도 중앙일보도 동아일보도 아닌, 단연코 네이버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단지.

버스 광고, 온라인 광고 모두 적당히 재미를 봤지만 가장 재미를 보지 못했던 광고 방식이 있었는데 바로 전단지였다. 전단지는 디자인, 인쇄, 배포 모든 과정에서 가장 번거롭고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투자해야 했던 광고방식이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가게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썩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전단지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고 버스도 잘 타지 않는 노년층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방법이었다. 전단지 디자인 정도는 내가 직접 할 수 있었고 출력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면 얼마 비싸지 않았다. 배포도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아파트 우편함에 꽃아 넣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큰 오판이었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가게 한구석에서 쭈그려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전단지 디자인을 잡고 사진을 찍어 넣고 문구를 정하니 꼬박 하루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가장 저렴한 인쇄 업체를 찾아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하루, 업체와 디자인 규격을 맞춰가며 파일을 왔다 갔다 하는데 하루, 인쇄 및 배송에 4일. 그리고 배포에 7일. 이것저것 하니 대략 2주 동안 전단지 때문에 시간을 뺏긴 셈이 되었다.

배포도 순조롭지 못했다. 가게 주변의 대부분의 아파트는 신축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비밀번호가 있었고 그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아저씨들은 한 손에는 전단지를 들고 전기킥보드를 타고 씽씽 달리는 나를 전혀 반가워해주지 않았다. 아파트 비밀번호를 모르니 입주민 중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틈을 틈타 도둑처럼 아파트 안에 들어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경비아저씨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신고할 거에요!”

사실 불법은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관련법을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단지 몇 만장을 헬기에서 공중 살포하는 방식이 아닌 이상에야 딱히 이러한 나의 행위를 처벌할 규정은 없었다. 그래봤자 경범죄처벌법 정도. 그것 또한 누군가 걸고넘어져도 5만 원 정도의 벌금이 다였다. 더 나아가 내가 직접 신고를 해 보았더니 경찰과 구청은 서로에게 단속을 떠넘기기 바빴다. 정확하게는 단속은 해당 구청에서 담당하고 있었지만, 공무원들은 너무나 바빠 이런 잡다한 일을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적당히 웃다가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홍대, 건대, 신촌, 신림 등 번화가의 밤거리를 거닐다 보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헐벗은 여성의 몸이 출력된 유흥업소의 명함, 전단지 등을 뿌리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다 믿는 구석이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었다. 단속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나 몰라라, 그 쓰레기는 새벽이 찾아오면 오롯이 환경미화원분들의 몫이 되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다시금 확인했다.

12. 찾아가는 서비스 배달.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역시나 아는 것은 힘이고 생각과 고찰은 곧 매출로 이어졌다. 마케팅을 공부하니 매출로 이어진 경험은 또 다른 배움과 매출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이제 주 수익원이 아닌 부 수익원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음식점에선 부수입이라 해봤자 뭐 두 가지였다. 포장 혹은 배달. 그 당시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등 다양한 배달 플랫폼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시간을 쪼개 배달사업에 대한 연구를 해보았다.

배달의 민족 사장님몰은 정말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질 높은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고 백종원 아저씨가 운영하던 더본코리아도 백종원 대표의 수준 높은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가게 구석에서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백종원 아저씨의 경험담, 시행착오, 30년의 노하우 등이 몽땅 담긴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었고 배달의 민족 사장님몰에선 수많은 젊은 사장님들의 새로운 시각과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해당 강의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달구역을 설정하는 법, 포장 용기별 장단점, 배달대행업체 선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가장 큰 고민은 수요를 예측하는 일이었다. 중국집, 야식집 같이 배달이 주 수입원인 경우에는 오토바이를 직접 구매해 담당 직원을 채용하곤 했는데 우리집은 주로 회를 배달할 예정이었기에 수요 예측이 쉽지 않았다.

배달구역을 설정해 보았다.

가게를 중심으로 2.5km 정도의 부채꼴을 그어 보았다. (가게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 묶어서 배송할 때 효과적인 배송이 어렵기에 일부러 부채꼴로 배달구역을 설정했다.) 부채꼴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니 2가지의 후보군이 있었는데 하나는 회사가 밀집한 상업지역, 또 다른 하나는 주택이 밀집한 주거지역이 있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배달 구역을 상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으로 설정했는데 그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상업지역으로 배달지역을 설정할 경우 배달 주문이 점심시간에 몰릴 것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가게의 점심시간은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매일 매일이 전쟁통이었고 주방은 그 어마어마한 물량을 쳐내는 것에 버거워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배달물량까지 생산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두 번째로는 점심 메뉴로는 복어탕이 우리 메뉴의 주메뉴였는데 뜨거운 액체로 이루어진 해당 음식의 특성상 배달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방수 포장도 쉽지 않았고 가다가 엎어지거나 묶음 배달 특성상 다 식어서 배송된다면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유형의 메뉴였다.

그리하여 배달 타겟은 주거지역으로 잡고 주로 저녁 시간대. 메뉴는 회를 공략하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퇴근하시고 온 가족이 야식으로 회를 먹고 싶은데 나가기는 귀찮을 때, 오래간만에 기분 좀 내고 싶을 때 시켜 먹는 정도를 타겟으로 잡고 배달사업을 시작했다. 하루에 10건만 나가도 7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제법 쏠쏠한 부수입이었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배달 플랫폼에 입점을 해야 했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잇츠, 배달통, 카카오톡 배달하기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가 있었고 그들 모두를 비교분석 하고 큰 하자가 없으면 모두 입점할 계획이 있었기에 본사에 연락해 담당자들을 가게로 불렀다. 그렇게 각 회사의 담당자들이 가게에 모여 각자 플랫폼의 장점을 주구장창 나열했다.

플랫폼별 비교분석의 핵심은 수수료와 사용자 규모였다.

배달통의 경우는 타 플랫폼 대비 중간 정도의 수수료를 요구했지만, 사용자 규모가 의미 없을 정도의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요기요는 사용자층을 적당히 확보하고 있었지만,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음식 판매 가격의 약 16퍼센트 정도를 요구했었는데 즉, 1만 원짜리 메뉴를 팔면 2천 원은 배달료로, 1천 6백 원은 수수료로 나가는 셈이었다. 그럼 벌써 4천 원을 소비하는 셈이었고 여기에 포장용기 가격, 인건비, 원재료가격, 카드 수수료 등을 합치면 적자였다. 무료로 광고를 해준다는 정말 큰 이점이 있었지만 너무나 높은 수수료의 벽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가장 탁월하고 합리적인 플랫폼은 배달의 민족이었다. 광고비용으로 월 9만 원을 지불하면 되었고 수수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타사 대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진행한 브랜드 마케팅, 다양한 이벤트 등으로 인해 충성고객층이 두텁다는 것도 큰 강점이었다.

그렇게 배달통과 요기요를 제외한 다양한 플랫폼에 입점을 진행했고 배달의 민족을 주력 플랫폼으로 앞세워 배달사업을 시작했다.

배달플랫폼에 입점을 완료하고 그다음 단계로는 배달대행 업체를 선정해야 했다. 배달플랫폼과 마찬가지로 배달대행 플랫폼도 정말이지 다양한 업체와 옵션이 존재했는데 그 당시 대형 업체로는 생각대로, 부릉, 바로고, 푸드플라이가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띵동, 부탁해 등의 소규모 업체가 업계 후발주자로 열심히 따라잡고 있었다.

배달대행을 선택하는 것도 일단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는데,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배달기사가 확실하게 확보되어 있는가가 문제였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요와 공급이듯 배달대행의 세계에서도 수요와 공급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주변 배달양의 공급. 즉, 처리해야 할 배달업무의 양에 대비해 그 물량을 처리해주는 배달기사의 수가 현저히 적으면 공급과잉 현상이 일어나 어느새 배달기사들이 갑이 되기 일쑤였다. 잘못하면 내 돈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제발 일을 해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고객님의 식사가 제대로 배달될 리 없었다.

두 번째로 근처에 센터가 위치해 있어 책임소지를 가려야 할 분쟁이 발생할 경우 달려가 따질 수 있어야 했다.

물론 배달대행의 본사는 대부분 서울 강남에 있고 지역 센터는 그저 택시 아저씨들 조합 사무실처럼 전화기 하나 달랑 있는 수준의 큰 의미 없는 공간이었지만 최소한 고객의 음식에 배달대행 기사가 손을 댄다면 한걸음에 찾아가 으름장이라도 놓을 수 있어야 했다.

세 번째로 사용하는 오토바이의 기종이 중요했다.

배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속도와 품질의 문제였다. 가게를 출발한 음식이 손님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식지 않고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며 최대한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달대행 업체가 사용하는 오토바이 기종은 제법 중요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데 경차로 왔다 올 때와 에쿠스 리무진으로 왔다 올 때 뒷자리에 타고 있는 사람의 피로도가 다르고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덕분에 스쿠터를 공부했다. 주변 오토바이 집에 찾아가 오토바이를 빌려 직접 시승도 해보고 바이크 동호회에 가입해 여러 조언을 들었다.

배달대행에서 주로 사용하는 스쿠터 기종으로는 혼다 PCX, 혼다 벤리, 야마하 NMAX가 있었는데 세 기종의 차이는 제법 명확했다. 야마하 NMAX는 ABS브레이크가 장착되어있어 오토바이가 엎어지는 등 대형사고의 확률은 낮았지만 엔진에서 잔진동이 올라온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껏 예쁘게 전시해놓은 회들이 엉망진창이 될 것만 같았다.

혼다 벤리는 작은 차체로 차들 사이와 골목길 주행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앞뒤 모두 드럼브레이크를 사용하고 브레이크 성능이 좋지 않았다. 신호를 무시하고 미친 듯 주행하는 배달대행 오토바이에게 좋지 못한 브레이크 성능은 치명적이라 생각했다. 그런 오토바이에 고객에게 전달될 음식을 맡길 순 없었다.

남은 것은 혼다 PCX기종이였다. 해당 기종은 세 모델 중에서 가장 승차감이 우수한 모델이었고 속도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물론 ABS브레이크가 장착되어있지 않아 불안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앞뒤 브레이크가 동시에 잡히는 CBS가 장착되어 있어 충분히 단점을 커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과 배달기사의 수가 충분하고 근처에 센터가 있으며 혼다PCX를 주력기종으로 사용하고 있는 업체인 부릉을 주 배달대행 업체로 정했다.

생각보다 판단하는 데에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래서였을까, 배달사업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고 제법 쏠쏠한 부수입으로 자리를 잡아 제법 두둑한 용돈벌이정도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13. 폭삭 망한 추석 : 블루오션 혹은 수요의 부재

계절은 어느덧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향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내리쬐던 햇볕의 위용이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내 뒷덜미를 살랑살랑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8월 달력을 찢고 9월 달력을 보았다. 대한민국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찾아오고 있었다.

단순히 생각했다. 미디어, 홍보 분야에서는 이맘때쯤 항상 추석맞이 콘텐츠를 준비해야 했기에 ‘추석=사람이 몰리는 날’ 정도로 머릿속에 인식이 되어 있었다. 즉, 추석특수를 노리고 추석에 한몫을 단단히 챙기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우선 추석 연휴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급여를 150% 올려줬다. 해당 조건을 통해 최대한 기존인력들을 확보한 후 부족한 인력은 아르바이트생을 구인해 메꾸었다. 또한, 평소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집기와 그릇, 주방용품 등을 대폭 주문했다. 꽤나 큰 출혈이었지만 추석특수로 인해 다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절 특성상 온 가족이 함께 가게에 찾을 것이기에 최소 주문 단가가 높을 것이고 더 나아가 가족들과 함께이니만큼 대부분 값비싼 메뉴를 주문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게 주변 부동산을 둘러보았다. 주변엔 넓은 평수의 아파트들이 빼곡히 위치해 있었다. 분명 이 동네로 온 가족들이 모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추석 전날, 신선하고 비싼 식재료를 양껏 주문한 뒤 내일부터 시작 될 추석 특수를 누리리라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추석 연휴 시작.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 근방에 문을 연 음식점은 우리 가게가 유일했다. 추석맞이 특수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이지 단 한팀도 오지 않았다. 주방에서는 신선한 재료들이 썩어가고 있었고 10명의 직원들은 가게 구석에 앉아 내 눈치를 보며 휴대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재료비, 인건비, 전기세, 수도세 등등 숨만 쉬어도 돈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추석 동안만 일하기로 한 알바생은 너무나 신나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었다. 그리곤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추석 끝나고도 저 일 해도 되나요?”

뭔가 이상했다. 오판이었다. 바글바글하던 가게는 추석연휴가 되자마자 마치 귀신에 쓰인 듯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나마 몇 개 있던 예약도 다 노쇼로 끝났다.

처참했다. 처음 겪는 오판이었다.

남들이 쉴 때 나는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블루오션이라 생각했던 추석은 사실 블루오션이 아니라 수요가 아예 없는 날이었던 것이었다. 옆집 중국집도, 윗집 쭈꾸미집도, 심지어 건너편 사거리 앞 편의점도 문을 닫았다. 남들이 쉬는 날은 이유가 있던 것이다. 젊은 패기로 날뛰어봤자 경험자들의 연륜과 이미 형성된 시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안하는 사업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획기적인, 모두가 NO를 외칠 때 YES를 외치는 등의 사업은 거진 실패하는 법이었다. 세상에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자신의 가족조차 살해할 정도로 정말이지 돈에 미친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내가 생각한 블루오션은 과연 블루오션이 맞을까, 돈에 미친 그들이 도대체 왜 이 사업에 진출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함을 깨달았다.

지금 내가 생각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50살 먹은 똥배 나온 아저씨들이 30년 전에 이미 생각하고 실행해 옮긴 후 실패까지 맛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다. 블루오션은 블루오션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레드오션도 그 나름대로 레드오션인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함께 이것은 블루오션! 대박! 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면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이 과연 공급의 부재인지 혹은 수요의 부재인지.

다시 묻고 또 물어보자. 블루오션, 확실한가?

14. 자만. 그리고 타협.

추석 장사는 망쳤지만 그렇다고 가게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게는 손님들로 붐볐다.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오전에 출근해서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뒤이어 직원들이 들어와 가게를 싹 닦아주었다. 공장에서 손질된 재료가 도착하면 공장 직원이 직접 냉장고에까지 넣어주었다. 술과 음료도 마찬가지, 담당 거래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술을 가게 안에까지 들고 오면 직원들이 빈 냉장고를 채워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밥을 먹은 후 카드를 들이밀었다. 잠깐 바쁜 정신을 차려보면 엄청난 양의 영수증 뭉치가 카운터에 쌓여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창업을 한다며, 학자금을 번다며 각종 공모전에 나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우스워 보였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자만은 결국 욕심으로 자랐고 욕심은 타협을 낳았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부터 바꿔나가기로 했다. 원가절감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가게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최고급 커피를 제공했다. 카페에서나 쓸법한 전문 로스팅 기계를 가져다 놓고 그 안에는 최고급 커피 원두를 가득 채워놓았다. 원두의 가격은 무려 1kg당 7만 원. 보통 저가형 원두가 1kg에 7천 원 정도 하는 것에 비하면 무려 10배나 비싼 원두를 비치했던 것이었다.

기계 안에 원두 1kg를 넣어두면 약 100잔 정도를 추출해낼 수 있었는데 전기세, 수도세, 종이컵 비용, 시럽 등을 합치니 대략 한 잔에 천 원꼴의 원가가 나왔다. 서비스치고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지만 모든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비싼 원두를 탈탈 털어 넣었다.

카페를 가서도 항상 아이스티 따위의 달곰한 음료를 시키는 나였기에 커피 맛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쓴 커피 그리고 조금 덜 쓴 커피로 나뉘는 나의 커피 철학은 상당히 무식했다. 하지만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줌마들은 커피를 마시곤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커피 맛이 왜 이렇게 좋냐고 비법을 묻곤 했다.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이었을 줄이야. 커피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한 아줌마들의 모임이 급증했다.

아줌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가게에 방문했다. 가장 좋은 방에서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가장 저렴한 메뉴를 시켰다. 아침을 먹었다는 핑계로 8명이서 3인분만 주문하곤 했다. 거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줌마들은 원가 천원에 육박하는 우리 가게의 자랑. 최고급 커피를 계속해서 뽑아먹기 시작했다. 한잔, 두잔, 세잔… 그들의 수다는 5시간 동안 이어졌고 어느새 인당 다섯 잔의 커피를 마셨다. 5곱하기 8은 40. 40곱하기 1000은 4만 원이었다. 3만 원짜리 식사를 계산하고 4만 원짜리 커피를 내줬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한국. 코리아. 만만치 않은 곳.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코를 베어가는 것을 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지켜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한 달, 커피값만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커피값이 많이 나온 것은 상관이 없었으나 소수가 서비스를 독점하는 행태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를 했고 나름의 명분 있는 원가절감이 시작되었다.

G마켓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한 싸구려 베트남산 원두를 잔뜩 주문했다. 그 후 값비싼 원두와 적당히 섞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아주 천천히. 첫날에는 1%, 둘째 날에는 3%… 그 누가 보아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싸구려 원두의 비중을 늘려나갔고 이윽고 한 달째 즈음에는 과감하게 베트남산 싸구려 원두를 100% 사용하게 되었다. 마치 유사휘발유를 제조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다행히도 손님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원두는 바뀌었지만 으리으리하게 생긴 커피기계는 그대로였기에 미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여전히 커피가 너무나 맛있다며 극찬을 했고 아줌마들은 이 식당에 온 이상 본전을 뽑아야 한다며 계속해서 커피를 들이 부었다. 벌컥벌컥.

그렇게 성공적으로 커피의 원가절감에 성공했다. 한 달에 100만 원 이었던 지출이 1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앉아서 90만 원을 벌었다는 생각에 제법 신이 났다.

부끄럽지만 그다음으로는 음식에 손을 댔다. 국산 고춧가루를 중국산으로 바꾸고 국산 돼지고기를 뉴질랜드, 독일산 돼지고기로 바꿨다. 복어국의 국물을 내는 재료를 싱싱한 채소에서 MSG 가루로 바꿨고 튀김에 들어가는 밀가루를 고급 밀가루에서 저가형 밀가루로 바꿨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의 원가를 줄이기 위해 고객 몰래 노력하듯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럴 때마다 손님과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계속되었다.

중국산 고춧가루, MSG 덩어리 국물, 수입산 고기, 그리고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싸구려 식재료들의 향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메뉴판에 붙어 있는 사진과 똑같은 음식이 나왔다. 손님들은 여전히 끊이질 않았고 모두가 맛있다며 칭찬을 하고 가게 밖을 나섰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사장 면전에 맛이 변했다고 따질 수 있었을까 싶다. 분명히 맛이 흔들렸을 것이다. 손님들 입맛은 너무나도 정확하다. 기가 막히게 알아맞혔을 것이다. 가게를 나가면서는 다시는 이 가게에 오지 않겠다고, 초심을 잃었다며 흠씬 욕을 했을 것이다.

분명 뒤통수가 제법 따가웠을 터인데 당시에는 돈에 취해 눈치 채지 못했다.

식당이 잘되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오는 유혹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 대가는 2~3달 뒤 즈음, 자신이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망각할 때 즈음에 크게 돌아온다.

15.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그래서 얼마를 벌었는가?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이자 어쩌면 가장 궁금한 이야기,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돈 이야기를 하려니 민망하기도 하고 자랑같이 들릴 수 있지만 맹세하건대 나는 가게에서 나오는 수익 중 단돈 10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휴지, 물티슈, 집게, 부탄가스 등 자잘한 집기들을 살 때 정신이 없어 나의 사비를 털어 구매하곤 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450만 원 정도 손해를 보았고 그저 손님들이 가끔 던져주는 팁을 챙긴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러기에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 한다.

가게를 오픈하고 약 20일간 7천만 원을 벌었다. 일수로 따지면 한 달을 꽉 채운 것이 아니고 20일 정도였기에 한 달로 환산하면 대략 월 1억 정도였던 셈이고 사실 온라인, 오프라인 판매 및 유통 등 여러 가지 부수입이 더 있었기에 정확하게는 1억 5천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다.

하루에 5백만 원! 한 달이면 1억 5천! 우와!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돈이었다. 그렇게 몇 주간은 돈 걱정 없이 살았다, 정확히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지 않았다. 지출이 얼마든 지금 내 통장에 월 1억씩 꽃히고 있는데 여기서 지출이 있어봤자 얼마나 티가 날까?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큰 오판이었다. 매월 1일로 정해놓은 정산 시즌이 도래하자 통장은 급속도로 홀쭉해졌다.

우선 건물주에게 월세를 입금했다. 5백만 원. 떡두꺼비 인상을 가졌던 건물주는 그렇게 어떠한 노동 없이 5백만 원을 벌었다. 역시 불로소득이 최고다. 하느님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구나 생각했지만 나는 한 달에 1억 5천만 원을 벌어들인 상태였다. 5백만 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입금했다.

그리고 나서 전기, 수도, 가스, 관리비 등의 공과금을 계산했다. 약 3백만 원. 조금 많이 나왔다 생각했지만, 여름이라 에어컨을 온종일 틀어놨기에 가능한 수치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기타 잡비용. 직원들 식사 및 가게 물티슈, 걸레, 앞치마, 유니폼, 급하게 산 일회용품 등을 합하니 3백만 원이 나왔다. 이 역시 쿨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인건비가 만만치 않았다. 최저시급에 주휴수당 및 이것저것 수당을 더하면 아르바이트생들의 시급이 대략 1만 원이 조금 넘어갔는데 그것은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고 주방 이모들과 매니저들은 더욱 높은 금액을 책정해서 급여를 지급해야 했다. 휴일이 없는 요식업 특성상 인건비가 제법 많이 나갔고 게다가 우리 가게는 평수가 넓었기 때문에 타 가게에 비해 1.5배의 직원 수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인건비 또한 엄청났다. 그렇게 인건비로만 약 5천만 원이 빠져나갔다. 제법 많은 금액에 놀라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또 두드려보았지만 틀림없었다. 얼굴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산을 넘으니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바로 식자재비용. 즉, 원가. 앞서 말했듯 우리 가게는 메뉴 특성상 식재료비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보통 요식업의 식재료비 평균이 매출 대비 30%~40%정도를 기록하는 반면에 우리 가게의 식재료비는 약 50%로 지나치게 높은 편에 속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금액을 산출하니 대략 7천만 원. 어느덧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머리를 싸맨 채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었다. 이리 더하고 저리 빼봐도 7천만 원 이었다.

통장에는 어느덧 1억5천 중 2천만 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돈으로 각종 세금과 카드회사에 지불할 수수료, 인테리어 대금, 광고료. 포장용기 비용 내 월급, 실제 사장인 삼촌을 위한 이윤과 다음 달을 위한 가게의 예비비까지 챙겨야 했다. 빠듯했다.

결국 내 월급은커녕 진짜 사장인 삼촌의 이윤도 넉넉하게 챙기지 못했다. 만약 내가 진짜로 이 가게를 먹고살기 위해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한 달 월급이 0원인 셈이었다. 하루 16시간씩 죽어라 일만 했는데 결국 남은 건 홀쭉해진 내 통장과 그리 볼록하지 않은 가게 통장이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싶었다. 재미난 소꿉놀이를 한 셈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마치 썰물과 밀물처럼 돈은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물 빠진 해수욕장에서 촉촉한 모래들을 보며 이곳까지 물이 차올랐었구나 지레짐작하듯, 돈도 마찬가지였다. 31일의 통장잔고를 보며 이렇게나 많이 벌었었구나 지레짐작 할 뿐이었다.

돈이 다 빠져나간 통장에는 마치 바닷물이 갯벌에 바닷길을 만들어 내듯 돈이 왔다간 흔적만이 요란하게 남아있었다.

16. 심영화의 골목식당 : 절망 편

지금까지는 심영화의 골목식당, 희망 편 이었다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끝없는 절망의 연속, 심영화의 골목식당, 절망 편이다.

요식업을 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사실 나중에는 원가 체계와 인건비 등 로스를 최대한 줄여 이윤도 톡톡히 챙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식업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사실 모두 다 적으라면 수도 없이 적을 수 있지만 몇 가지 핵심 내용만 요약해서 짧게 정리해볼까 한다.

기본기의 부재.

나는 태어나서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집에서 라면이나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끓일 수 있을까 이것저것 넣어본 것이 전부였고 더군다나 일식류는 비싸서 잘 먹지도 않았기에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분야였다.

더군다나 요식업은 생각도 못한 산업영역이었다. 식당에 가면 그저 가장 싸고 양이 많은 메뉴를 골라 허겁지겁 먹고 나오기 바빴지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서빙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사장은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 하물며 매일 계산하는 포스기조차도 어떤 브랜드가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 몰랐다. 그저 사장님이 꼽으라면 꼽고 긁으라면 긁을 뿐이었다.

요식업을 시작하자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기본이 흔들리는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냉장고를 정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주방 동선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싱크대를 몇cm 위치에 둬야 직원들이 허리가 아프지 않고 설거지를 할 수 있을지, 각자에게 어떤 역할을 분담하고 배분해줘야 하는지 등등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내가 판단을 하는 상황에서 우유부단하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고민조차 할 수 없을 수준의 지적능력을 갖췄으니 직원들은 차선택으로 자신들이 각자 판단을 내렸고 결국 가게 내부는 신호등이 고장 난 퇴근시간 사거리처럼 서로 뒤엉키고 부딪치기 일쑤였다. 사장으로서 경광봉을 들고 하나하나 교통정리를 해 나아가야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다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그다음은 음식에 대한 문제였다. 사실 이것도 위의 기본이 흔들렸던 문제와 비슷한데 조금 성격이 다르다.

설명하자면 모든 회사는 내부 살림과 바깥일이 나뉘는데 대부분 그것을 경영지원부서와 사업부서로 나눈다. 인사, 회계, 정보시스템, 기획, 커뮤니케이션 등의 회사라는 하나의 사회를 유지, 보수하는 부서와 영업, 판매, 유통, 컨텐츠 제작, 제품설계, 생산 등 실질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소비자를 만나는 부서가 나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식업은 어떨까, 내부 살림은 아까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교통정리, 업무분장 등의 업무가 있을 것이고 바깥일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요리. 즉, 음식이었다.

고객 응대와 동선 정리, 회계 등의 일은 시간이 지나며 해결이 되었다. 밤을 새서 고민하고 관련 서적을 뒤져가면서 공부하니 한 두 달이면 얼추 그럴 듯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재료와 음식이었다. 물론 매일같이 음식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나름 실습도 해 보았지만 결국 눈속임이고 그럴듯하게 보여주기만 할 뿐이었다. 재료의 본질, 요리의 본질은 이렇게 어설프게 해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었다. 주변 또래 중 요리만 10년 넘게 연구한 또래들이 있는데 그들이 보면 정말로 콧방귀를 뀔 모습이었다.

칼은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생선 손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염도는 몇 퍼센트여야 하는지, 맛있어 보이는 데코레이션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아니 그 전에 ‘맛있다’라는 개념은 도대체 무엇인지… 요식업은 절대 쉬운 분야가 아니었다.

특히나 우리 가게는 해산물을 메인 요리로 선보이는 가게였다. 국, 탕과 같은 가열하는 요리는 최소한 식중독의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았다. 회, 육회 등의 요리에는 항상 식중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산물 손질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식중독균을 예방하고 제거하는 법 따위는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무책임하게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매일 먹고 즐기는 음식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제법 어려웠다.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나는 그 어떤 것 중 하나라도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저 꾹꾹 눌러놓은 채 어영부영 넘어갔다. 그렇게 머릿속에는 답변 하지 못하는 질문거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미원, 다시다 같은 화학조미료만 냅다 넣어 칼칼하게 혹은 짜고 자극적이게 만든 음식을 만들어 내놓을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제법 먹을 만했지만.

휴식의 부재.

2018년 7월 2일. 대한민국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되었다. 주 7일에서 주 6일, 주 6일에서 주 5일, 그리고 주 52시간까지. 정부는 부단하게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썼다.

노동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수많은 기성세대들은 걱정과 우려를 보냈다.

“아니, 도대체 그러면 회사는 다 망하라는 말인가?”

“세상에나, 주 5일 근무? 나라가 망하려나 보네.”

하지만 정부는 꿋꿋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고 법을 바꿨다. 정부는 도대체 왜 대중들의 반대, 정확히 말하자면 지지율의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국민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썼을까.

노동시간과 행복도는 생각보다 큰 상관관계가 있었다.

평소 스스로를 일중독이라 생각했고 일을 할 때 희열과 만족감을 느낀 터인지라 노동시간과 행복도의 상관관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자지 않는 이상 항상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곤 했고 일요일 오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폴더 정리라도 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다. 나는 그것을 일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깨작거리는 그것은 일이 아니었다.

가게를 열고 진정한 일이 시작되었다.

나에 대한 투자는 전혀 없이 오롯이 소비만 하는 일은 꽤나 고됐다. 바닥을 쓸고 닦고 테이블을 닦았다. 증기로 제대로 앞이 보이지도 않는 뜨거운 주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수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며 감정을 소비했다. 오후에는 납품받는 무거운 냉동 식자재들을 날랐고 공장에 방문해 이것저것 사무업무를 보았다. 그리고 저녁 11시에 가게를 마무리하면 이것저것 청소 후 12시 즈음에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8시가 되면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짓을 몇 달 동안 했다.

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닌 연속성이었다. 노동의 강도야 사실 별 문제 아니었다. 더한 환경에서 더한 일도 해보았기에 그만하고 싶다라던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쉬지 않고 연속된다는 점이었다. 마치 휴대폰을 끄지 않고 1년 내내 켜놓는 꼴이었다. 다양한 생각과 고찰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것은 초기화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걱정거리를 가져왔다. 가게에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고 끊임없이 해결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자고 일어나도 똑같은 내일이 펼쳐진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탈출구 없는 미로 속을 맴도는 느낌이었다.

짜증이 가득해졌고 곧 그것은 얼굴에 묻어났다.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손님들의 황당한 컴플레인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사람과의 소통을 꺼리게 되었다. 더욱 어처구니없던 것은 지금 내 상태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사실에 또 짜증이 났던 점이었다. 짜증을 내는 나의 모습을 보곤 한심해 다시 짜증이 나는 짜증의 무한동력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나 대신 일해줄 매니저를 구인할 수도 없었다. 식당 매니저를 구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금액이 요구되었고 구인 후에도 인수인계해야 할 상황이 제법 많았다. 구인을 계획하고 면접을 보고 다시 교육하기까지. 도저히 그 일련의 과정을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때의 나는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돈 이였는데 어느새 돈을 보면 신경질이 나곤 했다. 그렇게 바라던 손님이었는데 어느새 손님들이 몰려오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무언가 이상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나 많은 요식업.

대한민국의 자영업 비율은 세계 5위 수준이다. 25%로 전 국민의 4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인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비율이 높은 나라로는 경제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 터키, 멕시코, 칠레 등이 있고 일본, 미국이 각각 10%와 6%인 것을 감안하면 높아도 너무 높은 수치다.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수많은 간판이 나를 휘감는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어찌나 간판이 많은지, 그리고 그 간판의 대부분은 요식업 간판이다. 돼지, 소, 닭 캐릭터가 붙어있는 간판이 휘황찬란하게 거리를 수놓는다.

지나친 공급과잉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누구나 사업자등록을 하기만 하면 음식점을 창업할 수 있다. 요리 관련 자격증이나 제대로 된 위생교육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몇 가지 강의만 온라인으로 대충 틀어놓으면 끝이다. 그러니 길거리에는 음식점이 넘친다. 넘치다 못해 발에 채일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요식업이라는 거대한 사업 자체가 침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맛과 품질, 가격보다는 좋은 위치를 선점해 밥그릇 나눠 먹기 싸움이 되어버렸고 서로 간의 치킨게임이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거기에 환경규제, 최저시급 인상, 제조원가 인상, 플랫폼 독점, 높은 세율, 인구 감소 등은 점점 더 요식업 사장님들을 옥죄고 있었다.

나 홀로 사장님들은 늘고 직원들의 일자리는 줄고 있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3년 이내에 폐업하기 일쑤였다. 뉴스를 틀면 경제가 어렵다, 소비심리가 위축된다는 뉴스만 흘러나왔다.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건너편 가게에서는 뚝딱뚝딱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추락하는 주식을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손절할까? 아니면 버틸까? 버티면 올라갈까? 혹은 끝도 없이 추락하지는 않을까?

로켓배송의 유혹.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장에서 떡볶이집을 하는 할머니가 새벽부터 시장에서 양파, 떡, 파, 고추장 등을 직접 사서 장사에 필요한 재료를 마련하고 하던데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해산물은 공장에서 납품받았고 고기는 근처 정육점에서 납품받았다. 쌀을 비롯한 기타 식자재는 식자재마트를 통해 납품받았고 술을 비롯한 음료는 주류업체에서 납품받았다. 너무나 편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게 앞에 다양한 식재료가 쌓여있었다. 쿠팡의 로켓배송 따위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나의 시간도 아끼고 노동력도 아낄 수 있었다. 물론 직접 새벽 경매장에 들러 물건을 사 오는 것보단 적잖이 비쌌지만, 나의 시간에 투자하는 비용이라 생각하며 별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적어도 메인 메뉴는 내가 직접 경매장에 가서 사야 한다는 사실을.

서글서글하게 웃던 납품업체 사장님들은 어느새 하나씩 질 나쁜 식재료를 하나둘 섞어서 넘겨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수이겠거니 웃어넘겼지만 갈수록 그 빈도가 높아졌다. 박스 외각에는 품질 좋은 식재료들이 가득했지만, 그 안을 보니 다 썩은 식재료가 들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개선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나는 납품업체 사장님들이 아니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 종일 가게에 박혀 장사만 해도 24시간을 오롯이 다 투자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찾아 떠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납품을 해주는 업체 중 하나라도 나에게 납품을 거절하면 큰일이었다.

그렇게 갑을 빼앗겼다. 유혹을 참지 못해 생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원가율.

앞서 말했든 우리 가게의 원가율은 지나치게 높았다. 다른 음식점의 원가율이 30~40%인 것을 감안하면 50% 정도의 우리 음식점의 원가는 너무나도 높았다. 커피가게의 평균 원가율은 10%, 삼겹살집의 평균 원가율이 20% 남짓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높은 수치였다. 보통 고급 일식집의 원가율이 타 요식업 대비 높긴 하다만 50%는 너무 높은 수치였다.

원가율을 줄이려면 납품이 아닌 내가 직접 저렴하고 품질 좋은 재료를 찾아다녀야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은 내가 하고 돈은 납품업체 사장님들이 벌고 있었다.

사회와의 단절.

온종일 가게에 있다 보면 사람이 바보가 되었다.

뉴스에서는 조국이 어쩌구, 청문회가 어쩌구, 정부 정책이 어쩌구, 실업률이 어쩌구 하고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테이블 끝에 묻어있는 고춧가루가 짜증 나고 카드 인식이 잘 안 되는 포스기에 열 받고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동네 바보 아저씨가 싫었다.

사회와 완전하게 단절이 되었다. 조그만 가게에서 떠날 수 없었다. 돈을 벌어도 쓸 시간이 없고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그저 조그마한 TV와 스마트폰 액정만이 나와 사회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될 뿐이었다. 가끔 걸려오는 반가운 사람의 전화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셀 수 없이 쌓여있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일일이 답장할 힘이 없어 999+인 채로 내버려 두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배움은 사치일 뿐이었다. 발전 없는 삶이 지속되었다.

프랜차이즈 사업 경험의 부재.

사업이 커지고 이제 프랜차이즈의 영역으로 거듭나야 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가맹주들을 교육하고 관리해야 하는 진짜 경영의 업무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린 나에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 하나 망하는 것쯤이야 크게 상관없었지만 프렌차이즈를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나 때문에 모두가 함께 망할 수 있었다. 가맹주를 원하는 분들은 모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분들이었다. 나 같은 일개 비전문가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뻔히 예상됐던 경기침체.

문재인 정부 취임 후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요식업에 그 타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요식업 신용카드 사용액이 작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고 소비자심리지수 또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당시 경제부총리를 교체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 정부에서는 경제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시도를 감행했으나 이 나라에서 단군 이래로 보수 정권이건 진보 정권이건 국가가 나서 경제를 성장시킨 적이 있었는가. 이명박 정권의 낙수효과, 박근혜 정권의 경제민주화,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모두 탁월한 성공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이 기세라면 향후 몇 년간 경제가 나아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17.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나의 한계를 느끼고 나서부터 매 순간 가게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중 정말 이 사업을 그만해야겠다고 느낀 결정적 순간은 내 스스로가 무너지고 있음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장사를 마치고 운전을 하며 서울로 향하던 새벽 2시. 그날도 어김없이 손님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난 후였다. 수많은 진상들이 왔다 갔고 제법 상처받는 말들을 들었다. 거래처는 말썽이었고 직원들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라디오뉴스를 들으면 내가 아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바보가 되었음에 제법 좌절한 날이었다.

“부앙-!”, “끼-익!!”

“억!…으으으…”

정신을 차려보니 보닛 앞에는 주황색 차가 환한 라이트를 밝힌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택시가 중앙선을 무시하고 역주행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깻잎 한 장 차이로 사고는 면했으나 급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목과 가슴엔 적잖은 통증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주변을 살펴보니 도로에는 스키드마크가 선명했다. 타이어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멈춘 흔적이었다. 평소라면 그저 홀로 흠씬 욕을 하고 갔을 텐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분풀이할 상대가 필요했다. 마침 잘 걸렸다 싶었다.

택시 운전석으로 향해 안을 살폈다. 깡마른 중년의 남성이 타고 있었다. 아저씨라 하기에는 조금 늙었고 할아버지라 하기에는 조금 젊은 수준이었다. 파란 와이셔츠에 하얀 장갑과 선글라스. 전형적인 택시 기사의 모습이었다.

“사과 안 합니까?”

나는 택시기사를 향해 제법 위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했다.

“뭐 이 새끼야, 적당히 피해 가면 되지. 차 빼!”

아앗, 역시 상대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무사고 경력 30년 배지와 택시공제조합을 뒤에 끼고 있는 택시기사는 도로 위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그렇게 대판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고를 낼 뻔했으면 사과를 하라는 나와 머리에 피도 안마른놈이 어디서 버릇없게 그러냐는 논리가 팽팽히 맞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니는 애미애비도 없냐?”

“그래! 나 고아다 이 새끼야! 니는 머리털 빠지면서 개념도 같이 빠졌냐?”

“나는 운전경력 37년째이고 인천에서 넘버 원이야 이 새끼야! 넌 뭐야!”

“운전 37년쯤 하고 인천 넘버원이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차 주황색으로 칠하면 중앙선 넘어도 괜찮냐 이 새끼야? 같이 경찰서 가서 확인해볼까?”

그렇게 머리의 피는 안 말랐지만 사과를 원하는 운전경력 3년 차 고아와 머리털과 함께 개념이 날아 가버린 운전경력 37년차 인천택시 넘버원의 싸움은 점차 커졌다.

그런데 그때, 택시기사가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물론 그가 진짜 때리려고 그런 제스쳐를 취했다기보다는 본인도 화가 난 마음에 한 번 강하게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갑작스러운 멱살잡이는 나에게 제법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멱살을 풀기 위해 있는 힘껏 그를 밀쳤다. 그러자 그는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갓 군대를 전역한 20대 남성이 다 늙어 빼빼 마른 60대 택시기사를 넘어트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마치 초등학생을 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자 좀 전의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택시기사는 바닥에 나뒹군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겁먹은 눈빛이었다. 그는 바닥을 기며 뒤로 물러섰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했다. 흥분해서 보이지 않던 주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울리는 자동차 크락션 소리와 날 보고 있는 주변 행인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양쪽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반짝이던 간판 네온사인들.

‘아, 내가 사람을 때렸구나!’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황급히 차에 탔다. 그리고 허겁지겁 그곳을 벗어나 도망치듯 서울로 향했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신고했으면 어쩌지?’, ‘어디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블랙박스에 찍혔을까? 주변 CCTV는?’, ‘아니, 그나저나 내가 왜 그랬지?’

너무나 부끄럽고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택시기사도 누군가의 가장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만약 내 아버지가 내 또래 놈한테 그런 꼴을 당했으면 기분이 어땠을까. 괴로웠다.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알고 있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제법 살도 빠지고 이발한 지 오래된 머리는 덥수룩해 눈을 덮고 있었다.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없었다. 조급하고 답답해했다. 무너지고 있었다.

“에이,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그만하자!”

18. 반년간의 소꿉놀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가게와 공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사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 사업모델을 통 채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좋은 조건에 처분했다.

늦봄에 시작해 무더운 여름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다. 가게를 처분하고 마지막 출근.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에게 재미난 경험을 주었던 지금 생각하면 반년간의 소꿉놀이는 그렇게 끝났다.

반년간 적잖이 큰 규모의 소꿉놀이를 하며 요식업에 대해서 많은 고찰을 할 수 있었다.

1. 요식업은 엄청 어렵다. 길거리에 있는 수많은 간판들. 그 안에 숨어있는 수많은 희노애락, 드라마, 고통은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사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것은 틀림없다. 기본만 잘 지킨다면 생각보다 손쉽게 자리 잡을 수 있다.

3. 1~2년 정도 아이템을 정해서 폭넓은 분석과 치열한 학습을 수반한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

백종원 아저씨가 나오는 SBS의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수많은 기이한 사장님들이 등장하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보여주곤 하지만 백종원 아저씨의 솔루션은 대부분 비슷하다.

원재료 좋은 거 쓰고, 손님응대 잘하고, 청결을 유지하자.

즉, 뭘 팔든 간에 상식적인 선에서 기본에 충실 하라는 의미다.

19. 마치며.

반년간의 요식업을 마치니 모든 요식업종 종사자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도 딱히 그렇진 않았지만 이제는 더더욱 식당에 가면 군말 없이 주는 대로 먹는다. 종업원이 불친절해도, 식사가 형편없어도, 물이 미지근해도, 밥이 다 식어도 그냥 꾸역꾸역 입에 털어 넣고는 그릇과 수저저분, 남은 음식물을 정리하고 나온다.

그와 동시에 가끔은 직업병이 도지기도 하는데, 맘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면 이곳은 몇 평인지, 부동산 시세는 어떻게 되는지, 직원은 몇 명이고 동선은 어떻게 짜여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을지 등의 생각에 푹 빠지곤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은 하루하루 전쟁을 치른다. 음식이 맛이 없다며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주변 가게에서 견제가 들어온다. 납품 사장님들은 원물에 장난을 치고, 구청에서는 갑자기 위생단속을 나온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끝나면 내일도 어김없이 기약 없는 손님들을 기다린다. 매출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곳저곳 돈 나갈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자녀 학원비, 부모님 용돈, 은행대출 이자, 직원들 월급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뭐 어찌되었든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너무나 좋은 경험을 했다.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사람도 많이 배웠다. 의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돈 주고도 못살 훌륭한 경험을 선물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0. 기타 주저리주저리

– 요식업을 했던 이야기 외에도 동시에 진행했던 공장설립이랑 인터넷쇼핑몰 제작 및 운영 이야기도 꽤나 풀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도 나중에 적어보고 싶다.

– 경험과 준비가 중요하다. 사실 준비가 되어 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 새벽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쌓은 요리 관련 상식이 얄팍하게나마 있었고 운전면허도 따놓아서 운전도 할 수 있었다. 좋은 기회를 준 가족, 그 기회를 써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은 과거의 나한테 감사하다.

– 잘 안 되는 식당은 이유가 없을지 몰라도 잘 되는 곳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 이혼 싱글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한 30대 여성은 알바만 5개를 한다고 했다. 정부에서 각종 지원금을 받아야 해 소득이 잡히면 안 된다며 급여를 현금으로 지급받고 싶다 요청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그렇게 했다. 물론 가게의 지출이 잡히지 않아 그만큼 내가 내야할 세금은 많아졌지만…번거로운 회계는 덤.

– 내 팔에 대뜸 가슴을 비비던 모로코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며 저 사람이 한국인 ‘사장님’들에게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을 배웠는지 상상하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이곳은 사랑하는 나의 나라 대한민국.

– 당시 붐이었던 요식업 프랜차이즈는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연안식당, 두 번째는 명륜진사갈비였다. 브랜드 이미지는 연안식당을, 사업 전반구조는 명륜진사갈비를 많이 참고했다. 홈페이지 제작부터 프렌차이즈 설계, 원가, 마진율, 마케팅, 이슈메이킹 등등 명륜진사갈비라는 브랜드는 프렌차이즈계의 모범생이었다. 물론 백종원 아저씨의 더본코리아도 이것저것 뒤져봤는데 역시나 보석 같은 정보가 많이 있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최근 중개플랫폼 ‘배달의 민족’이 소상공인의 적처럼 언론에서 묘사되곤 하는데 조금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배달의 민족은 분명 소비자와 생산자를 효율적으로 이어줘 생각지도 못한 이윤을 창출해주는 좋은 서비스였다. 또한 소상공인을 위한 다양한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상생 측면에서의 사회적 책임도 제법 성실히 수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사장님들을 위해 50여 개의 포장용기 샘플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서비스까지! 배달의 민족은 적어도 나에겐 최고의 서비스였다. 큰 힘이 되었고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멍청한 정부의 각종 정책보다도 기업의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은 제법 신선했다. 실제로 배달의 민족은 소상공인이 살아야 자신들이 같이 살아남는 구조라 생각한다. 절대로 소상공인을 말려 죽이는 플랫폼은 아니다. 다만 마치 프랜차이즈 위의 프랜차이즈, 빨대에 빨대를 꽃은 구조라 보기에는 썩 아름다운 구조는 아니다.

– 대부분의 식당 관련 신고는 주변 업주들이 한다. 간판 등 안전신고부터 미성년자 음주, 환경법 위반, 위생신고, 주정차신고까지 대부분의 신고는 경쟁업체에서 이뤄진다. 일반인들이 관련 법을 알고 담당 부서를 찾아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 그걸 알기에 구청에서도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영업 정지등의 처벌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 어지간히 심한 위반이 아닌 이상 구두 경고로 그친다. 반대로 말하면 주변에 조금이라도 단속에 걸린 식당이 있다면, 특히나 그게 위생 관련이라면… 🙂

– 단속이라 하면 마치 “암행어사 출두요!” 하며 단속요원들이 등장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저 멀리서부터 구청 로고가 크게 적힌 차가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이 주소가 맞는지 헤매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댄다. 그리곤 차에서 내린 후 한 손에는 서류파일,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역시가 큰 구청로고가 적힌 조끼를 입고 언뜻 봐도 공무원 같은 사람이 가게로 천천히 걸어온다. 그 시간만 대략 10분이다. 어지간한 문제는 그 시간 내에 해결이 가능하고 최후의 수단에는 가게 영업이 끝났다며 문을 닫고 쥐죽은 듯 있으면 그만이다.

– 뉴스에 나오는 불시검문은 극히 일부분이다. 뉴스에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이슈가 되고 흔치 않은 풍경이라 뉴스에 나오는 것이다.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위생점검…’ 따위의 뉴스는 해당구청 대변인실과 언론사가 협업해서 하는 일종의 쇼, 국정홍보에 불과하다.

– 무전취식. 하루는 어떤 할아버지가 홀로 식사를 하시고는 현금을 내밀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현금과 유사하게 만든 유흥업소의 전단지였다. 처음에는 이 할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속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 할아버지. 행동이 수상했다. 상습범임을 직감하고 슬금슬금 도망가려는 것을 꽉 잡은 채로 경찰에 신고했다. 뒤이어 도착한 경찰관은 그 노인을 보자마자 최근 주변에서 자주 이러는 노인네라며 잡아갔다. 물론 손해배상이나 사후연락은 없었다. (설거지라도 하시고 가시지 흑흑…)

– 처음 본 나에게 반말을 뱉는 사람들은 99% 확률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소중한 사람, 미래를 약속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식당가서 종업원한테 어떻게 하는지 꼭 유심히 볼 것이다. 반말을 하는지, 하대하지는 않는지… 결국 자신을 아무리 숨겨도 사소한 것에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은 다 드러난다.

– 어느 날은 힘들게 일하고 가게 밖에서 쓰레기더미에 파묻혀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걷다가 나를 보고는 딸에게 말했다. “아이고~ 저 아저씨 얼마나 힘드시겠니~ 야 김민서! 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저거 보이지?” 쎄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나는 민서와 눈이 마주쳤고 아줌마가 말한 그 아저씨가 나임을 알아차렸다. 민서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저 아저씨 다 듣잖아.” 민서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는지, 그 아줌마가 왕년에 공부를 잘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말 한마디에 각자의 인격과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구나. 생각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 공장에 냉동탑차가 있었는데 수동이었다. 요즘은 트럭도 대부분 오토인데 특이하게도 해당 차량은 수동이였다. 나는 2종 보통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터라 트럭을 못 몰아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냉동식품을 운송할 때는 꼭 냉동탑차가 필요했는데 내가 냉동탑차를 운전 못하니 식자재가 있는 공장에서 식당을 오갈 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뒷좌석을 때버린 화물용 레이에다가 얼음을 가득 싣고 공장에서 식당으로 식자재를 옮기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경험과 준비는 정말로 중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 사람의 관상은 대부분 맞다. 관상이라기 보단 인상이려나. 보통 농담으로 말하는 40살 넘으면 본인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성급한 일반화일수 있지만 얼추 맞았다.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대강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온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사람의 인성과 성품은 얼굴에 고스란히 녹아져있었다.

– 자다가도 음식점의 호출벨 (띵-동) 소리가 들리는 환청이 들렸다. 자다가도 호다닥 깨어난 적이 부지기수. 불면증에 시달렸다. 나중에는 수면제라도 먹고 푹 잠들고 싶었다.

– 경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나는 경험주의자다. 타인에게 크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최대한 모든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 이명박 아저씨가 항상 하던 “내가 이거 해봐서 아는데~”라는 멘트는 개그 소재로 사용되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법 근사한 멘트였다.

– 요식업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참고할만한 자료가 많다. 의외로 정부에서 많은 통계자료와 팁을 제공한다. 정부에서는 항상 소상공인에게 외친다. “제발 망하지 마세요. 소상공인님들아! 성공해서 직원들도 좀 고용해서 취업률 좀 올려주세요!” 그러나 소상공인의 대부분은 그런 외침을 뒤로하고 무작정 창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90프로가 나 홀로 가게를 힘겹게 운영하다5년을 못 버티고 망한다. 돈은 돈대로 쓰고 일은 일대로 하는데 남는 게 없다. 끊임없는 악순환이다.

메모해두면 좋다. ‘The외식’, ‘소상공인상권분석시스템’. ‘FIS 식품산업통계정보’, ‘한국외식산업연구원’, ‘한국외식업중앙회’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사이트들이다.

– 어릴 적 읽은 동화와 현실은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절대 선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이 매너 있고 교양 있고 선했다. 선행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를 머금고 자란다.

– 프랜차이즈는 석박사 놈들이 머리를 싸매고 작정하고 만든 사업체다. 맛, 편의시설, 서비스 등 일반 음식점과 비교가 어려울 수준의 압도적인 차이를 가진 경우가 많다. 요식업의 불모지 한국에서조차 잘 되는 이유가 있다.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굳이 모험하지 말고 프렌차이즈를 가도록 하자. 지역 맛집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음식점보다 옆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파는 더블불고기 버거가 더 맛있을 확률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프로에 가깝다.

– 신선한 재료 쓰고 인터넷에 나오는 요리법만 참고해도 맛없다는 소리 안 듣는다. 그런 기본조차 못하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제이미올리버, 고든램지 등 세계적인 쉐프들의 친절한 강의를 방구석에서 유튜브만 틀어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사실 뭐 인터넷에 흔히 나오는 진상손님들이 하던 행동. 아기 똥 귀저기를 버리고 간다던가, 음식물을 다 짓이겨 놓고 바닥에 흘리고 간다던가, 주문했던 메뉴를 다시 이것저것 바꾼다던가, 뭘 넣어달라 뭐를 빼달라 까다롭게 주문한다던가 하는 행위들을 모두 겪어봤는데 막상 별로 힘들지 않았다. 정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의 시선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그 시선. 나를 하대하는 시선, 무시하는 말투. 이런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를 무시하는 일련의 행위가 내 마음을 곪게 만들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고되기보다는 그날 나를 보던 그 눈빛들이 떠올라서 잠이 오지 않았다. 흘겨보던 눈빛, 무시하는 말투, 툭툭 내뱉는 말, 메뉴판을 휙 던진다던지 반말을 한다든지 성희롱을 한다든지… 나 스스로도 많이 반성했다. 혹시 내가 예전에 식당에 가면 무의식적으로 직원들을 하대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았다. 역지사지, 참 좋은 말이다.

– 이렇게 또 돈벌이할만한 얄팍한 재주가 하나 생겼다. 굶어 죽을 확률이 소폭 감소했다.

– 뭐 먹고 살지. 오늘도 고민만 가득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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