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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요한계시록7장_십사만 사천이니(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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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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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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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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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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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말씀] “구원받은 십 사만 사천 성도들의 예배”(계 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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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말씀] 구원받은 십 사만 사천 성도들의 예배”(계 71-17)

제목 구원받은 십 사만 사천 성도들의 예배” (계 7장)

[요한계시록 7장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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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7 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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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7 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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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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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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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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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은 요한계시록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구원받은 큰 무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계7:9-17)

♣명제: 구원의 인친 백성들이 큰 무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목적: 나는 주님의 보혈로 인침 받아 큰 무리에 들어갔는가?

사도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구원의 인침 받는 지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지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사도 요한은 이 일 후에 내가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일 후는 십사만사천 명이 구원의 인을 받은 직후입니다. 이 큰 무리들이 나온 곳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 인침 받은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온 세계 각 나라의 백성들과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큰 무리가 입고 있는 옷은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것은 죄가 씻겨져서 깨끗하게 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악들이 용서함을 받고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른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종려 가지입니다.

히브리어로 종려가지는 תמר(타마르 8558)입니다. 종려나무, 대추야자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혹독하게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학대당하시고 나 때문에 비참하고 천하게 되셔서 모든 피를 흘리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있습니다. 종려가지는 죄악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주님이 들어오신 것은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비참함과 혹독한 학대를 받기 위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기뻐했다는 것은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려나무를 통해서 주님의 고난을 깨닫게 되고 주님의 구원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나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면 나는 죄악 가운데 늘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살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구원받은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쳐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되시는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서 있다가’는 ίστημι(히스테미 2476 동사,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이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완료는 천사들이 이미 과거보다 더 이전에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능동태는 천사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돌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가 아멘입니다. αμην(아멘 281) 진실로, 그러하도다,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 살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아멘으로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찬송입니다. ευλογια(율로기아 2129) 찬양, 축복, 복이라는 뜻입니다. 찬송은 주님을 좋게 이야기하며 칭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복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할 때 영혼 충만한 은혜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광입니다. δοξα(독사 1391) 광채, 영화, 명성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은 생각하다, 주관하다, 라는 어근에서 온 말입니다. 영광은 예수님의 명성과 영화와 빛을 생각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고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감사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존귀입니다. τιμη(티메 5092) 값, 가치, 영예, 존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존경하며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째는 권능입니다. δυναμις(뒤나미스 1411) 힘, 세력, 능력, 역량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권능과 힘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원초적인 힘과 능력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힘과 권능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나는 알지 못하고 당신이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장로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당한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엄청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환난에서 하나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지막 때에 환난의 때가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큰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장로가 말하는 구원받은 큰 무리들도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계 7:15-16)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주님을 위해 순교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서 밤과 낮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섬기매’ λατρευω(라트류오 3000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 섬기다, 봉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현재, 능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형을 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항상 현재로서 지금 당장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많은 섬김이 있어도 현재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의 신앙과 섬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능동은 항상 주님을 섬길 때 수동적인 자세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현재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장막을 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장막을 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혜택은 무엇입니까? 주리지 않는 은혜를 주십니다.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굶주림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영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상하지 못하게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복으로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예수님 때문에 고민하고 고생하고 괴롭힘 당한 자들은 어린양되시는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목자가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화염검으로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생명수 샘으로 생명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양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목자는 양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양이 목마를 때에 물가로 인도하고 굶주릴 때에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이 목자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목자가 되사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게 말씀의 꼴을 주셨고 갈증 나지 않도록 생명의 물로 채워주신 분입니다.

이런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 때문에 고난당한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지키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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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장 강해

계시록 7장

1절- 여섯째 인을 떼자 하늘의 일월성신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땅에 서는 사람들이 바위에게 이르기를 보좌에 앉으신 이의 진노의 낯빛에서 우리 를 가리우라고 부탁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일 후에 요한이 보니 네 천 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았다. 이 네 천사의 하는 일은 땅의 바람을 주관하는 일이다.

구약 외경인 에녹서에 보면 천사들의 임무가 나온다. 비, 눈, 바람 등 기상 과 관련된 일을 각각 맡아 주관한다. 그들은 불을 맡은 천사(계14;18), 물을 맡은 천사(16;15), 그 외 자연계를 맡은 천사들과 더불어 하급의 천사에 속한 다.

외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네 천사가 예루살렘이 로마인의 손에 의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불을 지르려 할 때에 다른 천사가 나타나 성전내 의 신성한 물건들을 안전히 숨기기까지 그들의 손을 멈추게 하여 불을 지르 지 못하도록 한다.(ⅡBaruch 6;4-8;1). 대환난 중에도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것이 멈추는 기간이 있을 것을 가리킨다.

이 네 천사는 땅의 네 모퉁이 곧 동서남북의 끝 자락에 서서 바람을 주관 한다. 바람으로 불지 못하게 한다. 땅이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만든다. 바람이 불지 않는 세상은 참으로 힘든 세상이 될 것이다. 곡식이 자 라는데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이고 구름의 이동이 없을 것이다. 빨래가 마르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라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바람의 정지 는 무풍을 만든다. 참으로 답답한 세계가 될게 틀림없다. 아마 더 크고 어려 운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것은 큰 재앙임에 틀림없다.

2~4절- 요한이 또 보았더니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친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고 있다.” 요한이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 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라고 적고 있 다.

인은 문서, 소유물, 노예 등에 보호의 보증으로 치는 것이다. 에베소 1;13 에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는 내용이 나온다. 천지의 대변 동(6;12-17) 이후에 따른 인치심은 소계시록에서는 재림시의 성도들의 소집 에 해당된다(마24;31). 또한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종말적 사건(롬11;1 -12)과도 관련된다.

이 세 가지 기사는 공통되는 것으로 본다. 즉 대환난기를 통과하면서 유대 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그리스도는 예언으로, 바울은 신학적으로 그리 고 요한은 환상으로 계시한 것으로 믿어진다.

5~8절-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인 맞은 자의 수가 각지파에 일만 이천씩 모 두 열두 지파에서 십 사만 사 천명 이었다. 단지파는 빠졌다. 왜 단지파는 빠 졌는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었 다. 요셉의 아들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야곱의 손자들이다. 요셉의 구원행위 와 관련하여 요셉의 두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씩이 되었다. 따라서 실 제는 열 세 지파인 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12지파라고 부른 다. 백성을 계수한 민수기에서는 레위지파를 제외시켰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레위 자손이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에 장정의 숫자를 계수하는 데서는 제외시켰다.

그런데 여기 계시록 7장에서는 시므온 지파 다음에 레위지파가 계수 되었 다. 그리고 단 지파가 제외되었는데 일부러 제외시켰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 다.

혹자는 단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배출될 것이므로 뺐다는 설이 있다. 그 근 거는 창49;16-17이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 다 .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 지게 하리로다” 또 예레미야 8;16절에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 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 유와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이 말씀은 후에 올 악의 화신이 적그리스도 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차 유대 랍비들 간에는 적그 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나올 것으로 믿게 되었다. 히폴라이터스는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같이 적그리스도는 단 지파에서 나오리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지파의 성격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뱀이나 독사처럼 갑 자기 기습하는 공격성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사사기 18장에 그 형태가 나와 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로는 단 지파는 일 찍이 사사 기 시대부터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갔다. 사사기 18장에 나온다. 남북이 갈라 진 후에 앗수르의 혼합정책에 의해 단 지파는 더욱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갔 다. 단 지파는 유다지파와 경계하고 살다가 소멸되면서 소수는 유다지파에 동 화됨으로써 자연히 소멸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단지파는 적그리스도가 나올 지파라고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완전히 없어져 버렸 다 기 보다 그 수가 아주 적어져 12,000명을 계수 하지 못할 정도로 거의 소멸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때문에 레위 지파 를 게수 하고 단지파는 빠졌다고 볼 수 있다.

○ 이 7장의 인 맞은 자의 수 십 사만 사천을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1.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십 사만 사천명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1940년에 이르러 그 숫자가 넘어 버리자, 십 사만 사천 명 이 외에도 구원에 참여할 수 있고, 또 다른 여호와의 증인이 있다고 번복 주장하 기도 한다. 신천지 이단에서는 자기들만이 이 144,000명에 속한다고 강변하 고 있다.

2. 144,000은 12×12×1,000=144,000이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1,000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이스라엘 각지파를 영적으로 해석하여 구원받을 모 든 그리스도인들을 총 망라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144,000은 구원받 을 전 성도라고 해석한다.

3. 한정적이지만 대환난기간 동안에 구원받을 유대인들의 숫자로 국한해서 해석한다. 유다지파가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그리스도가 이 유다지파에서 나 왔기 때문으로 본다. 유다 지파는 구원의 행위에서 언제나 앞장을 서 왔다. 마지막 때의 유대인의 구원받은 수로 해석하는 근거는 첫째로, 구원이 유대인 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하셨으므로 저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셔서 수 천 대까지 사랑해 주신다.

따라서 마지막 대환난기 때, 회개하고 돌아올 유대인들이 있는데 바로 이들 의 숫자가 144,000명이 될 것이다. 물론 문자적으로 꼭 144,000명 만일지, 아니면 더 될지, 상징적인 숫자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이는 비밀에 속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예언하셨고, 바울사도도 로마서에서 마지막 때에 넘어졌 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임을 예언해 주고 있다. 또 구약의 선지서 등에서는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에 유대인인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임 을 여러 곳에서 예언해 주고 있다. 제자들도 예수님 승천 시 < 이스라엘의 회 복이 언제입니까? > 하고 물었다. 그것은 제자들의 큰 관심사였다. 이 이스라 엘이 천년왕국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은 명확하다.

필자 는 왜 하나님께서 대환난기간 동안에 인을 치시는가? 그 이유와 동기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일까? 하고 연구 하여 왔 다. 그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 역사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레스타인 땅에 인 맞 은 자로서 유대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은 성도들에게는 구원사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이 지상에 이스라엘 왕국 곧 메시야의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 는 것이다. 주님이 지상에 재림하시려면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것인데, 나라 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첫째는 영토이고 두 번째는 주권이고 세 번째는 백성이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주님이 이 가 나안 땅에 재림하시기 위해서는 이 땅에 주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바라면서 핍박과 환난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사탄에게 왜 내 백성을 학대하느냐고 항의하고 책망하면서 재림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백성 이 하나도 없으면 사탄이 <여기는 내 땅이요. 당신의 백성은 한 명도 없소> 하면 할 말이 없어져 버린다. 따라서 재림의 명분과 구실을 얻기 위해서는 유 대인 인 맞은 수가 반드시 일정 숫자가 존재해야만 한다. 또한 이 것은 일 찍 이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맺은 계약에도 들어 있었던 내용이다. 이 언약 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대인 인 맞은 자들이 믿음을 지키면 서 메시야의 강림을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유대인 인 맞은 자는 메시야 왕국건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나라로 말하면 건국요원들 이 다.

따라서 전 구원받을 기독교인들의 총수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단지 역사의 특정기간 곧 대환난기간 동안에 필요한 유대인들의 인 맞은 자로 문 자적으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옳은 줄 안다. 필자 가 대환난기의 숫자로 국한시켜 보는 이유는 또 9절 이하에 보충 설명이 주어진다.

9~14절- 인을 치는 일 후에 요한이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 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외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 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말하기를 “아멘 찬송 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로다 아멘” 하였다.

한 천사가 나와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바람을 붙잡은 천사 를 잠시 중지시켰다. 이마에 인을 치고 다른 장면이 보이는데 거기에 엄청난 숫자가 보인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잡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찬양을 드린다. 대개의 주석가들이 이 그림을 천상의 그림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무리들이 흰 옷을 입었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었다. 이 종려 가지는 기쁨 을 표시하는 것이다. 환영할 때 태극기를 들고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무리들이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찬양과 영광을 드린다.

13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요한에게 묻기를 < 이 흰 옷 입은 자들 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요한이 대답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 다> 대답하였다. 이 장로가 <이는 큰 환난 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 중에도 유대인 인 맞은 자 외 에 구원받을 많은 무리가 각 나라와 방언과 백성 중에 엄청나게 많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대환난 중에도 유대인 인 맞은 자들 말고도 이방인 기독교인들 가운데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구원 얻을 무리가 별도로 존재한 다. 유대인 인 맞은 자의 숫자는 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무리는 셀 수가 없다고 함으로 더 많은 무리임에 틀림없다.

15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절에 저 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가운에 상하지 아니할 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어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한다. 해나 뜨거운 기운은 사막지방에 부는 열대풍 시록크로서 열 기에 사람이 죽는 그런 바람이다.

우리 사람들의 가장 큰 소원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임이 틀림없다. 더 나아가서 눈물이 없기를 바란다. 이래야만 행복한 삶이다. 하나님과 어린 양 이 이러한 세계로 성도들을 초청하고 계신다. 오직 이 것은 믿음으로 만이 가 능하다. 다만 한 가지 핍박과 환난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난의 역경이 있다. 이것은 믿음으로 견디어 내야한다. 여기 소망 중에 바라보는 것은 인내의 믿 음이 요청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내의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144,000명에 대하여

계7:1 – 17

144,000명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독교의 구원받은 전 성도를 가리킨다라는 설과 유대인 12지파의 수라는 설이다.

1. 전 기독교의 구원받은 수라는 설에 관하여

가. 실증적으로

천사가 내게 와서 구원의 표지로 인을 친 체험이 있는 성도가 실재하는가? 없다. 목사들 중에도 하나님의 천사가 내게 오서 내게 하나님의 인을 쳤다고 고백하는 분이 있는가? 과문하지만 아직 들어 본 일이 없다.

나. 역사적으로

기독교 이 천년 역사 동안에 이런 고백을 한 교부나 신학자나 목사가 없다

그런 저작이나 기록물을 본 적이 없다.

다. 신학적으로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구원의 요건으로 천사의 인침을 받 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책도 정통교회에서는 없다.

라. 성경적으로

①계7:9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 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② 계7:14 –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 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 였느니라

③(계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

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④(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을 받았으니

⑤(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⑥(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 에게서 남이니라

⑦(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

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⑧(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

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⑨ 마4:1 – 7에서 주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면서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씀 을 줄곧 사용하신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144,000명의 기독교의 전 시대의 구원받은 총수를 가리킨다는 설은 타당하지 않다. 신학적 방법론으로서 인간의 지성 곧 인간의 지혜로운 해석의 한 틀일 뿐이다. 성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다. 오히려 이단과 사이비의 주장에 빌미를 제공하는 공간을 열어 주고 말았 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3. 144,000명의 정체성

메시야 왕국건설의 필수 요원 이다. 적그리스도가 666으로 인치기 전에 유 대인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종들을 미리 선택하여 천사가 하나 님의 소유 곧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인쳐 둘 필요성 때문에 대환난 기간 중에 인을 쳐서 메시야 왕국 건설에 이바지하게 만든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스라엘 12지파를 기록한 성경구절

○책명: 창세기(49:3 – 28)

나오는 지파: 르우벤,시므온,유다,잇사갈,스불론,므낫세,에브라임,베냐민,단, 아 셀,갓,납달리.(12)

○책명: 민수기(1:4 – 46)

나오는 지파: 르우벤,시므온,유다,잇사갈,스불론,므낫세,에브라임,베냐민,단, 아 셀,갓,납달리.(12)

별도로 계수:레위(1)

○ 민수기(26:2 – ) 르우벤,시므온,갓, 유다,잇사갈,스불론,므낫세,에브라임,베 냐민 단, 아셀, 납달리, (12)

별도로 계수:레위(1)

○책명: 신명기(33장)

나오는 지파: 르우벤,유다, 레위,베냐민,(요셉) 에브라림, 므낫세,스불론,잇사 갈, 갓, 단, 납달리 아셀.(12지파)

빠진 지파: 시므온

○책명: 계시록(7장)

유다,르우벤, 갓, 아셀,납달리,므낫세,시므온,레위,잇사갈, 스불론,요셉, 베냐 민.(12지파)

빠진 지파: 단(1)

○책명: 에스겔(48장)

십사만 사천 명의 정체

제7과, 십사만 사천 명의 정체

시작하는 이야기

한 소년이 걷다가 땅바닥에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은 급히 그것을 줍고는 몹시도 기뻐하였다. “이건 내 것이다.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 소년은 재미가 나서 그때부터 땅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뒤로 소년은 어디를 가든 머리를 숙인 채 눈을 크게 뜨고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찾으며 걷게 되었다. 소년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땅의 것에 있었다. 그렇게 평생 동안 땅만 보고 걸어서 드디어 1페니 동전 262개, 5센트 동전 48개, 10센트 은화 19개, 25센트 동전 16개, 50센트 은화 2개 그리고 1달러 지폐 두 장까지 총 13달러 92센트를 땅에서 주웠다.

그러나 그는 땅만 보고 살다가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말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무지개, 가을 서리에 붉게 물든 나뭇잎들, 푸른 하늘과 그곳을 지나는 새하얀 구름들, 빛나는 태양, 사람들의 미소. 무엇보다도 그는 영원하고도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쳤다. 특별히 이 마지막 세상에서 땅만 보고 살면 무서운 일밖에 없다. 눈을 우러러 하늘의 영원한 보좌를 바라보고 살자.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 제7장을 시작하며…

제7장에서는 다시 하늘의 광경이 나타난다.

제6장은 여섯째 인 시대에 일어날 사건으로 끝났고 일곱째 인은 8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제7장은 그 사이에 삽입된 것이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의 독특한 문장 스타일이다.

무서운 대쟁투의 장면들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요한계시록은 자주 하늘을 열어 하늘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세상의 역사가 아무리 포학하고 성도들에게 힘든 것일지라도 그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대쟁투의 무서운 계시에 놀란 우리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을 144,000 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44,000명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들은 실제 수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수인지, 144,000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들인지도 우리들의 흥미를 돋운다.

> 네 천사

1. 여섯째 인으로 일어난 사건 후에 요한이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여기서 땅의 사방은 온 세상을 말하며 예언 해석에서 바람은 나라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이나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렘 25:31; 단7:2), 바람을 붙잡는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잡고 있는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때로는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나타나 하나님의 명령을 수 행하기도 하지만(창 18:2; 단 10:13),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14장의 공중을 나는 세 천사나 18장의 “다른 천사”는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어떤 강력한 복음 전파의 운동이나 하나님의 지상 백성들의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람을 잡고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맞을 때까지 지상에서 악의 세력을 저지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들 혹은 복음 전파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난을 억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이다. 그러나 이 바람을 놓는 순간 마침내 네 천사가 놓이고 사단의 악한 계획들과 “인간의 감정의 거센 바람이 저지되는 것이 그칠 때,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솟구쳐나올 것이다. 온 세계는 옛날 예루살렘을 휩쓸었던 것보다 더 무서운 파멸에 싸일 것이다”(각시대의 대쟁투, 614).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 분다는 것은 그 재앙의 범위가 전 세계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나무에 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성경 해석에서 수목은 하나님의 백성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 된다.

2. 다른 천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이 절에서는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 외에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난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는 권세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파송된 천사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치는 일을 인간에게 맡기시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천사가 온 방향이 해 돋는 곳이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 나라에는 이 성경절을 근거로 자기가 한국에 태어난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20여 명이 넘는다. 그들에 의하면 해 돋는 곳은 한국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라는 것이다. 해 돋는 곳이 과연 한국인가? 성경에서 해 돋는 곳이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특수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고, 그냥 해가 솟아오르는 동쪽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민 2:3, 3:38; 신 4:41; 수1:15, 12:1, 19:27; 시 50:1; 사 41:25, 45:6; 말 1:11).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다. 침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기를“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었다고 하였다(눅 1:78~79). 동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이기도 하다(마 24:27). .

그러므로 인치는 천사가 해 돋는 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동편으로부터 왔다는 말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사가 동편에서만 올 필요는 없으므로, 인치는 천사들은 하늘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파견을 받았거나 혹은 동쪽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천사로 해석하는 방법이 성경적이다. 다른 천사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의 멸망을 지연시키고 있는 네 천사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칠 때까지 전 세계적인 재앙을 붙들고 있으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먼 옛날부터 인은 오늘날의 도장이나 서명처럼 많이 사용했다. 인은 소유주를 나타냈고, 문서의 작성자를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상자나 궤나 무덤 등에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함부로 열어보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하였다. 옛날 왕들의 인은 그 안에 이름, 통치권, 통치 구역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하 나님의 이름과 통치권, 통치 구역들이 명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인은 어디에 나와 있을까?

하나님의 인, 즉 그의 권위의 표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나와 있다. 네 번째 계명에는 여호와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이며 영토는 하늘과 땅과 바다, 즉 우주 전체이고, 만물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스릴 권리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겔 20;12, 20) 삼았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소유라는 하나님 의 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단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오해하고 거룩히 지킬 수 없도록 전력을 기울여 노력해 왔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식일과 주일 제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십계명에까지 포함시켜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셨지만 오늘날 안식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 하겠다.

> 십사만 사천 명의 신원

3. 인맞은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4~8).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의 수는 십사만 사천 명인데 열두 지파 중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 인을 맞았다고 되어있다. 인을 받을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의 수인지 혹은 상징수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먼저 십사만 사천 명이 문자적으로 실제의 수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십사만 사천은 특별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살아서 갖가지 재앙을 다 견딘 사람들이며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계 14:4)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밖에 알 수 없는 노래가 있으며 하늘에서 특별한 계급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 명을 실제적 수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로, 구원받을 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구원의 성격에 어긋나는 일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지 그 수를 제한하신 일이 없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하나님 편에서 수를 제한하실 이유가 없다. 만일 각 지파에서 정확히 12,000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구원이 너무나 기계적이 되고 숫자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12지파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12,000명씩의 순수한 혈통이 남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셋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만일 실제 수라면 요한계시록 7장의 많은 부분을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해석해야 하며 실제로 이마에 인을 받는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넷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적 수라고 믿으면 현재 살아 있는 지구의 인구에 비해 그 수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 제한된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 수라고 보는 개인이나 그룹은 십사만 사천이란 수를 상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십사만 사천 명을 특별히 부활한 무리인 하늘 반열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기타 기성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십사만 사천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의 모임에 들어와야 구원이 있고 십사만 사천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적으로 그렇게 제한된 수이며 특별한 무리라면 하늘에는 십사만 사천으로서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계급이 형성될 것이다.

반면에 십사만 사천을 상징적인 수라고 해석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 우선 요한계시록 자체가 상징으로 풀어야 할 상징과 상징적 숫자로 가득 찬 책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 각 지파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지상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나온 144,000이란 숫자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44,000을 (3×4)2×103으로 보고 있다.

즉 3은 삼위 일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동서남북 4방위에 근거한 땅과 우주의 수인데 이 두 수를 곱한 12는 성경에서 완전수이다. 따라서 12의 제곱인 144는 최상의 완전수를 의미하며 거기에 충만을 나타내는 10의 세제곱을 곱하여 144,000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만일 십사만 사천 명을 상징적인 수라고 보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즉 영적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성도들로부터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완전하고 충만한 수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셀 수 없는 무리

4. 요한이 본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누구인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요한은 보좌 앞에 서 있는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승리와 구원의 표상인 종려가지를 들고 있었으며 큰 소리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을 올리고 있었다.

이 큰 무리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십사만 사천 명과 같은 무리인가 아니면 다른 무리인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쟁이 있어왔지만 성경을 근거로 몇 가지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바로 직전에 “십사만 사천”이라고 들은 “셀 수 있는 ”인맞은 무리를 바로 다음 장면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다른 무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십사만 사천 명”은 재림 직전에 살아서 하나님의 인을 맞고 재림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십사만 사천 명”을 포함하여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체적인 무리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의 수냐 혹은 상징이냐 또는 “십사만 사천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같으냐 다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십사만 사천 명”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알 수 없는 “십사만 사천”같은 문제로 자기의 해석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5. 누가 그 노래에 화답했으며 그 노래의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계 7:11~12).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보좌 앞에서 부르는 장엄한 찬송에 모든 천사들도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찬송한다. 찬송은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난다.

> 흰 옷을 입은 큰 무리

6. 흰 옷 입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요한은 흰 옷을 입은 무수한 무리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장로 중의 하나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요한에게 확실히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흰 옷 입은 자”들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왔다.

둘째로, 그들은 그들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서 희게 한 사람들이다. 큰 환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을 십사만 사천과 같은 사람들로 생각한다면 십사만 사천이 살아서 구원을 얻을 사람들이니만큼, 이 환난은 다니엘이 말한 바 재림 직전에 있을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단 12:1)이나 마지막 7재앙(계 15장~16장) 같은 극심한 환난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흰 옷을 입은 무수한 무리를 “창세로부터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로 생각하면 이 환난도 각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했던 환난을 말할 것이다. 이 죄악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환난이었으며 때로는 목숨을 바쳐야 되는 핍박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흰 옷이란 성경에서 의로움과 순결의 상징이며 승리의 상징이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린양의 피로 씻는다는 표현은 적절한 것이다.

7. 그들은 하늘에서 어떻게 사는가?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 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5~17).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섬길 특권을 누린다.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가 그들을 그렇게 높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하여 장막을 치시고 그들을 한낮의 뜨거움과 목마름으로부터 구한다. 저희는 다시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고 뜨거운 것들이 그들을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굶주림과 갈증과 뜨거운 태양 때문에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영원히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가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슬픔과 눈물은 영원히 끝난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각시대의 대쟁투,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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