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30 주일 설교 원고 The 158 Detailed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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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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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 주일설교-설교원고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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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0일 주일 설교 원고 / 흡족한 것, 부족한 것, 힘써야 할 것 –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크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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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0일 주일 설교 원고 / 흡족한 것, 부족한 것, 힘써야 할 것

성경 : 베드로후서 1 : 1 -11

제목 : 흡족한 것, 부족한 것, 힘써야 할 것

9.20

정신의학에서 “ 다중인격 장애 ”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천사와 같다가 갑자기 악마로 돌변하는 정신적인 질환을 말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격이 돌변하는 이유는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채우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알코올이나 도박, 게임 등을 통해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토니워”란 사람이 “욕구, 새로운 종교”란 책을 썼는데, “사람이 종교를 찾는 것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여러 종교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기독교도 타종교처럼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계속적으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씀한 흡족한 것, 부족한 것, 힘써야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흡족하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3절)“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신적인 능력”을 주셨습니다.(시8:5)“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제비는 100년 전이나 지금 똑같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무궁무진한 재능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없는 것만 생각합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고 불평합니다. 사실 우리가 없는 것도 많지만,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 것에 새삼 놀랄 것입니다. 정말 이미 주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낸 통계 자료를 보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물건이 무려 3500가지나 된다고 보고 했습니다. 제가 현재 가진 것을 대략 계산해도 10.000 가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책 만해도 3000권이 넘으며, 옷만 해도 수 백 개가 넘고, 넥타이도 30개, 성경책만 해도 20권이 넘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등 수많은 은혜로운 찬송 시를 남긴“ 화니 제인 클로스 비”여사는 생후 8개월부터 95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무려 8천여 곡이나 되는 많은 찬송 시를 남겼습니다.

그녀가 작시한 곡 가운데 “길”에 대한 가사가 아주 많습니다. 비록 그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확신은 가진 것이나 소유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나에게 없고, 모자라는 것은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없는 것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확신의 문제입니다. 지금 나에게 부족하고, 없는 것을 소유함으로 채우려고 하지말고, 확신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배고픈 자를 먹이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채워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 참 생명이 있고, 참 소망이 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존 메가스”가 출판한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교회가 갖추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조직과 시설, 사람도 많아야 하고, 재정도 넉넉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어린 아기가 엄마만으로 만족하듯, 건강한 부부가 한 아내와 남편만으로 만족하듯,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한 분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할 때 모든 것을 가진 교회입니다. 성도가 한 분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할 때 모든 것을 소유한 성도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다윗은(시23:1)“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흡족한 상태는 모든 것을 소유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흡족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씀하신 반면, 베드로는 7가지 믿음의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1:5-7)“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너희가 더욱 힘써”란 “부족하기에 채워야 한다.”란 뜻입니다. 우리가 먼저 채워야 할 것은 “덕”입니다. “덕”은 “바른 인격, 도덕적인 탁월성”을 가리킵니다. 크리스천들이 천박하고 욕을 먹는 이유는 믿음에 덕을 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덕”을 회복해야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중인격자로, 이기적인 자로, 거부감과 혐오감을 주는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멘만 있지 덕을 갖추는 일에 지나치게 소홀하고 무책임했기에 이렇게 된 겁니다.

두 번째로 부족한 것은 “지식”입니다 . 맹목적인 신앙은 믿음이 아니고 미신일 뿐입니다. 미신은 믿음의 대상을 알 필요도 없고 그저 정성만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 그냥 믿으라고 한 곳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절제”입니다 .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절제는 자동차 브레이크에 해당됩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절제”란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희생적이어야 하지만, 자기에게는 무섭도록 인색하고 절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네 번째 “인내”입니다. 인내는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는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예배”로 나타나는 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여섯 째, 일곱 째 성품은 “형제 우애와 사랑”입니다. 더불어 살다보면 불편한 자가 없겠습니까? 우리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살수 없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마음을 맞추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인간관계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롬12: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여기 “체”란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체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고 하였는데, “서로 조화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 잘난 척하면, 조화가 깨집니다. 서로 마음을 낮추고, 지혜 있는 척 않아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듯이, 인간관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9절)“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부족한 것을 채우지 않으면, 소경일 뿐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

(10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부르심과 택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과 택하셨다는 확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11절)“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넉넉히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엡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9)“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3:11)“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갈1:15)“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쩌다 세상에 태어났거나, 혹 실수로 스페인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이며,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부족하다” “그리스도 외에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만으로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립니다. 심지어 만족스러운 교회를 찾지 못해 1년을 떠도는 교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소위 “백화점식 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듯, 교회도 백화점과 같이 유치원, 기도원, 서점, 묘지, 양로원, 병원, 학교, 심지어 노래방, 카페, 영화관까지 갖추어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는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란 말은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을 누리고 있습니까?”

두 종류의 삶의 양식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소유하는 삶이 있고,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삶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려 합니다. 원함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를 따라 사는 삶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난여름, 교회당 주변에 주차할 공간이 많아 참 좋았습니다. 여러 공간이 남아 있는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주차는 한 곳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볼펜 한 두 개면 족합니다. 배우자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원함을 따라 살려고 할 때는 열 사람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내가 원하는 것을 쫓아 사는 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것으로 흡족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 주신 놀라운 사실을 세상 끝날 까지 붙잡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에벤에셀선교단John

신년주일예배 설교원고 – 마음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시편 37:4)

여러분,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사람의 마음은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우리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조차 반항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하나님이 임하는 곳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 마음을 쓰레기 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소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마음에 불평으로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불의를 행하는 자를 시기하거나 불평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이 정복당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풀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나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진정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우리가 시기할 가치도 없는 자들입니다.

요1: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무슨 너의 짐을 정말 져주느냐? 네 짐은 네가 짊어져라. 하나님은 안도와 주신다”고 속여서 우리로 하여금 짐을 짊어지게 만들어 밤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번민하고, 고통하고, 발버둥치게 만듭니다.

또한 주변사람을 이용하여 “이번에는 너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이번에는 네가 낭패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훼방하고 있다”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하여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어 낙심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온갖 거짓말과 협박을 하여 불안과 공포에 떨고 절망의 바다에 빠져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사실 어려울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굉장히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천길만길 떨어지며 마음에 낙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가?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 믿고 주일날 예배도 잘 드리고 십일조도 드리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잘 했는데 왜 내게 이런 고통이 다가오느냐?”고 원망과 탄식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짧게 보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멀리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일일이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벧전5: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대적을 안 하면 안 물러갑니다.

단호하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명령하여 쫓아내야 됩니다. 마귀는 세상의 먼지와 티끌과 같습니다.

아무리 내가 깨끗하게 몸을 털고 다녀도 먼지와 티끌은 묻는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억압하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길을 빼앗고, 믿음과 용기를 빼앗고, 희망을 빼앗고, 혹은 단잠을 빼앗고, 건강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약4:7절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마귀에게 이용당할 신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담대히 예수 이름으로 마귀의 훼방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마귀를 향하여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명령하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은 옳은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사랑과 정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이 드러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100% 정의이며, 100% 사랑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이 내게 부어져야 그 은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성실을 기대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성실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축복, 능력, 은사를 기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찾았습니까?

돈보다 하나님이 더 기쁘다면,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십니다.

시23:4절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41: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고, 시55: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고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짐꾼들이 주인의 짐을 맡아서 집까지 갖다 준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맡아서 걸머지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빌4:6-7절에서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만 따라가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바라보면, 우리가 짐을 맡길 수가 있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막11: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맡기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 근심 가운데 80%는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당한 많은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했지만, 지나고 보면 거의 80%는 그 모든 것들이 다가오지 않은 것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걱정을 하고 근심하고 염려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러분, 세상을 덮은 캄캄한 밤이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올 때,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아침은 순간에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 역사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 우리의 피부, 우리의 키, 우리의 재산, 우리의 지식, 우리의 지위와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입니다.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마음을 쓰레기 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3. 하나님 앞에 잠잠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마음대로 행하는 주재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동등하게 어깨에 힘주고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자기의 주재권을 내려놓으니까 하나님이 작전계획”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작전지시대로 “여리고성을 여섯 바퀴 돌고 일곱 바퀴째 고함을 치라”고 했을 때, 여리고성은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인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11:28-30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뭡니까?

십자가입니다.

멍에는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서 소나 나귀의 머리에 씌운 막대기인데, 예수님은 우리 짐을 지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 고통, 죽음을 다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오셔서 우리 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우리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마음에 불평하기를 그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합시다.

마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참고 기다립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이나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께 집중합시다.

예수님은 요14: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고 기도응답은 예수님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새해의 첫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여러분에 마음의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일예배설교원고] 책읽는교회 전은숙목사 | 마태복음 6:24-34 비범하게 은밀하게

설교본문: 마태복음 6,24-34

설교제목: 비범하게 은밀하게

설교일시: 2022년 5월 8일

1. 구제, 기도, 금식

지난 주에 나누었던 5장을 잠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복된 사람들, 땅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으로 세상을 떠 받치는 사람들, 이들은 ‘더 나은 의’로 초대받았습니다. 이들의 삶은 값싼은혜를 거절하고 새로운 질서 아래서 그 비범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 속에 녹아지나 그 맛을 지켜내고, 천국의 빛이 아닌 어둠을 향하는 빛으로 존재합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을 뛰어넘고, 세상과 동행하나 세상을 능가하는 이들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 부릅니다. 그런데 땅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는 이들의 비범성, 이 가시적(可視的) 특성은 오늘의 본문 6장 전체에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양극은 하나로 완성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즉 제자도의 이중적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관하듯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6장을 크게 2개의 단락으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1-18절까지, 19-34절까지. 전반부는 세 가지의 종교적 관행에 대하여, 후반부는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질문합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종교적 관행 즉 유대인들에게 전통적으로 중요한 종교적 경건은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으로 집약됩니다. 이 세 가지는 구약성경에서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경건생활입니다. 주요경건 3가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기도와 금식보다 구제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데 조금 인상적입니다. 외경으로 분류되어 있는 토빗(12,8-9)서에는 ‘자비는 죽음에서 구제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장수하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구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매우 중요한 경건생활의 일부였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경건의 대표 선두주자인 바리새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였습니다. 기도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는 오래된 전통입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다니엘이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함(단 6,10)’으로 인하여 사자굴 속에 던져진 이야기는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일화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외출중에도 기도시간이 되면 그 자리에서 기도합니다. 기도에 대해 다루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의 주문처럼 외우는 ‘주기도’입니다. 기도의 본질이요 모범이 되는 주기도에 대해서는 이미 책 한권의 분량만큼 수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기회를 잡아 저희도 다루고자 합니다만 오늘은 뛰어넘겠습니다.

세 번째는 금식입니다. 이 역시 민족의 역사와 같이한 전통입니다. 국가적인 재난앞에서, 때론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위해, 특별하고 간절한 기원이 있을때 금식하였습니다. 특히 신구약 중간시대라 일컫는 암흑시기에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표식으로 공식화되었고, 종교적 신념을 대변하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는 목요일과 시내산에서 내려온 월요일에 금식을 많이 하였다 합니다.

2. 충돌, 드러남과 은밀함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 이 세가지 종교적 관행은 유대인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의무처럼, 공적인 봉사처럼 자리를 잡았고 어언간(於焉間)에 힘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 세 가지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바로 앞선 5장의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동일한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상을 이미 받았다’, ’은밀하게 하라’, ‘하나님이 갚으시리라’. 이 네 가지의 말씀이 구제와 기도, 금식의 이야기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라 하실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은밀하게 하라!’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 합니다. 보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이면서도 은밀한 것!,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일상적이나 비범한 것, 보여지나 은밀한 것,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비범성을 단계별로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아마도 가장 고난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드러남과 숨겨짐, 누구에게 드러나고 누구에게 숨겨져야 할까? 무엇이 드러나고 무엇이 숨겨져야 하는 것일까? 5장과 6장의 심각한 충돌은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돌리려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본회퍼는 이렇게 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고 자신에게는 감추어져야 한다. 너는 네 자신의 선행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나를 따르라) 세상에게는 빛으로 드러나야 하나 자신에게는 은밀해야 한다. 착한 행실, 제자도가 가져야 할 역설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기가 행한 일들을 스스로 주목해서는 안되며, 예수를 따르는 자는 자신의 의로움 속에 숨겨져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으로 비추는 우리의 드러남에 그 누구보다도 주목하는 이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행보에 세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종교적 경건조차 ‘사람에게 보이려고’하는 것이 우리의 속내입니다. 우리가 행한 ‘의로움’으로 인하여 사람에게 영광을 받지 못하면, 아무도 몰라주면, 속에서 상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본성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른손은 구제하는 손이요 왼손은 기록하는 손이라 했고, 오른손의 작은 움직임도 포착하여 온 몸이 알도록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얄팍한 습성입니다. 때문에 드러남과 은밀함이 가장 먼저 충돌하는 곳은 우리 자신이고, 하나님의 더 나은 의와 보상받고자하는 우리의 의 사이에는 언제나 전운이 감돌게 됩니다.

본회퍼의 고백입니다 ‘만약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육체와 벌이는 마음의 끝없는 온갖 투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스스로 벌이는 이러한 치열한 저항이 없이는, 은밀함이 수반되는 비범성이 아니고는, 땅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모든 착한 행실에는, 하나님은 빠져버린 종교행위만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이라 경고합니다.

3. 염려, 그리고 그의 나라와 의

숨겨짐과 드러남, 그리고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는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8절과 32절의 내용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드러남과 은밀함이 충돌하고 하나님의 의와 우리의 의가 충돌하는 것은 우리의 염려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25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염려’라는 단어 입니다. 무려 6번 등장합니다.

염려(μεριμνάω 메림나오)라는 헬라어 단어는 두려움이 포함된 걱정을 말합니다. 인간은 염려에 의해 요동합니다. 흔들립니다. 특히 본문의 염려는 미래와 관련된 자기 염려를 가리킵니다. 불투명한 미래, 우리의 손으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내일, 그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늘 염려하게 됩니다. 내일에게서 해방받으려 염려하지만,염려는 항상 내일을 향하여 있기에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 염려는 우리의 종교적 경건을 부추기기도 하고, 이 염려는 우리의 선한 행실에 대하여 보상받으려 합니다.

19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에 두지 말라 하셨는데, 여기서 보물은 24절 재물과 다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말씀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마치고 있지만, 사실 이 행간은 아주 넓습니다. 24절의 재물(μαμωνᾶς, 마모나스)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재산 재물이라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물질적인 특성을 가진 세상적 재물로서 흔히 돈으로 번역됩니다. 오늘의 주제가 아니라서 일단 넘어가구요,

19절의 보물은 24절의 재물이 아닌 앞에 있는 선행 즉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받고 있습니다. 이 보물(θησαυρός, 데사우로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저축된 것을 뜻하는 데 유대인들은 착한 행실이 보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화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한다 믿었습니다. 마태는 그 보화를 하나님 앞에 쌓으라 합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라는 선행을 땅에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보화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향하여 있음을 드러냅니다.

보물이든 재물이든 모두 내일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의 염려위에 쌓아 올려지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는 순간 우리는 안심하고, 우리의 재물이 눈앞에 쌓여지는 만큼 우리는 안정감을 갖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니 재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염려에 매인 우리의 마음이 땅에 쌓아놓은 보화에 머물고 있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내일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언제나 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6장의 말씀은, 너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를 주목하라 합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알고 있으니 믿지 않으려는, 알고 있으나 이런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믿을때 우리의 모든 염려는 깨어지며,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요동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착한 행실에 은밀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거억할 때 우리는 오늘 여기,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알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 촉구합니다. 어떻게 이리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께만 매여 있을때 가능합니다. 단순한 마음, 하나의 마음으로 오직 예수만 바라볼 때 우리는 내일에 대하여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의 비범성은 은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내 손에 꽉 틀어진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이양할 때, 이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살아가게 됩니다.

4. ‘함께’가지 않는 길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바라보는 내가 갚아주리라.’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의 말씀을 종결하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갚으심, 하나님의 드러내심을 신뢰하는 것, 이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됩니다.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저항을 감내하고, 세상의 즉각적이고 얄팍한 가벼운 보상 그 값싼 은혜를 과감하게 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의로움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기대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기에 은밀함으로 더욱 비범해지는 제자도입니다.

제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의로움이 함께가지 않은 길입니다.제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경건이 함께가지 않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의 요구가 함께가지 않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염려가 함께가지 않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만 매여가는 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어 사는 인생입니다.

게르하르트 테르스테겐(Gehard Tersteegen, 1691-1769)의 노래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나그네처럼 살리라.

자유롭게, 알몸으로, 빈손으로

많이 모으고 쌓고 거래하는 것은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따름이니

많은 것을 바라는 자는 지고 가다 쓰러지리니,

우리는 버리고 가리라

작은 일에 만족하며, 꼭 필요한 것만을 사용하리라.

기도하겠습니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을 위하는 우리의 염려는 늘 끊임이 없습니다. 부르심을 따르는 우리의 착한 행실조차 땅에 쌓으며 안전함을 구하고 싶고, 결핍과 포기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말하나 우리의 마음은 온통 재물에 쏟으며 우리의 미래를 확보하고 싶습니다. 그러할지라도 한 자의 키도 자라게 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미래가 가진 불확실함에 요동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짐을 모두 주께 맡길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비범하나 은밀하게 하시고,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재난과 폭력과 궁핍과 질병의 곤고함에서, 오늘도 탄식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립니다. 주의 손으로 도우시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옵소서. 그리스도에게 매인 자들로 인하여 세상이 살 맛을 갖게 하시고 어둠이 힘을 잃어버리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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