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라이프人] ‘임우재 변호인’ 조대진 변호사 “끝까지 ‘문빠’로 남고 싶다”
입력: 2017.11.27 10:09 / 수정: 2017.12.13 15:00
조대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승민에서 진행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TV만 틀면 나오는 변호사’, ‘임우재·이부진 이혼 변호인’, ‘목소리 큰 변호사’.
조대진(38·변시 1회) 변호사를 두고 나오는 수식어들이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근혜 정권의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을 때’도 조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된다”며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말은 단도직입적으로 해야 하는 성격 탓에 방송을 진행하는 MC들도 진땀을 뺄 정도다.
이러한 조 변호사의 가치관은 임우재(49)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과 이부진(47)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에 임 전 고문 측 대리인을 맡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조 변호사는 “저는 ‘이혼 반대 전문 변호사’다”라며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임우재 형님’과 생각을 같이 하기 때문에 돕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전국 로스쿨 대표자협의회 1기 회장을 지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법률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로스쿨 출신 동료들과 공익활동 모임인 ‘위안’을 결성했다. 2013년에는 ‘위안’ 멤버들과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사설 해병대 캠프 유가족을 지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세월호 지원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로스쿨 3학년 재학 당시 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해 위를 거의 전절제 해야 했다. 조 변호사는 “로스쿨 시험을 보는 5일 동안 한 끼도 못 먹고 시험을 봤다. 5일만에 6㎏이 빠져버렸다”며 “변호사가 되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지만, 학생운동 하다가 변호사가 못됐다고 핑계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24일 <더팩트>가 조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위치한 ‘법무법인 승민’의 이름은 아들 ‘승규’와 ‘민규’ 이름의 앞글자를 따왔다. 백성이 이긴다는 의미의 ‘민승(民勝)’을 거꾸로 한 단어이기도 하다. 서초동에서 ‘박근혜 대통령 무죄’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들과 반대 주장을 펼치는 조 변호사를 알아보고 “여기 있다”며 외치고 모여들 때도 있지만, 법률가로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애매모호한 생각을 말하면 안 된다는 가치관엔 변함이 없다.
조 변호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서 퇴임하는 것이다. “팟캐스트 청취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문빠(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라는 별칭을 지어줬다”는 조 변호사는 “아무리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도 잘못하면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조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황혼 이혼 같은 이혼에 대한 문제점과 이혼전문 변호사가 말하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마련됐다. 하지만 조 변호사가 ‘임우재 변호인’으로 유명세를 탄 탓에 최근 임우재 이혼 소송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듣게 됐다.
조대진 변호사는 임우재 전 고문 이혼 소송에 법률 대리인으로 맡게 된 배경에 대해 “좋은 아빠로 기억되게 하고 싶었다”며 “대형 로펌에서 다 고사해서 맡게 됐다”고 말했다. /배정한 기자
다음은 조대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임우재 전 고문 변호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우재 형님’하고는 친한 형동생 사이예요. 제가 S자산운용사 부사장으로 있을 때 우재 형님을 처음 봤어요. 사실 삼성 사위인지도 몰랐어요. 삼성에 관심 없으면 이건희 회장 얼굴만 알지, 사위 얼굴까지 알겠어요. 우재 형님이 처음에는 거리를 많이 두시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니까 삼성 사위라고 밝히셨죠. 그렇게 계속 가깝게 지냈어요. 우재 형님 이혼 전날에도 저랑 같이 있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TV에 보도가 난 거예요. 이혼한다고. 우재 형님한테 연락했더니 전혀 모르고 있었대요.
– 임우재 전 고문을 변호할 때도 사회적인 책임을 갖고 임했나.
저는 솔직히 연차가 안 됐어요. 삼성 소송 관련해서 맡아서 할 정도로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재 형님 도와서 대형 로펌을 컨택하고 다니는 역할로 돕고자 했죠. 그런데 다 고사하더라고요. 못 맡겠다고요. 그래서 우재 형님도 ‘주변에 아는 변호사는 많지만, 믿을 사람이 없으니 네가 도와달라’고 말해서 도와드리게 된 거예요.
저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익 안 따지고 열심히 도와요. 그런데 부담도 있었어요. 우선 제가 삼성 반대편에 섰잖아요. 세기적인 이혼 소송을 맡는다는 게 부담됐어요. 그런데 열심히 한 이유는 딱 하나예요. ‘아빠 임우재’를 나쁘게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장 우재 형님이 돈이 많아서 수임료를 많이 주셨겠나요. 저도 아이가 있지만, 아이가 너무 예뻐요. 저는 ‘아들 바보’인데요. 우재 형님도 똑같아요. 유유상종이라고들 하죠. 재판부가 면접 교섭권으로 아들을 한 달에 한 번만 보게 했잖아요. 저는 아들 한 달에 한 번만 보면 죽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도왔던 거예요.
– 12월 12일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다. 지금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나.
지금은 선임계에 빠져있지만, 다음주에도 만날 예정이에요. 계속 함께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어요. 지금은 우재 형님이 상징성 있는 분들을 선임해 재판을 준비하고 있지만요. 우재 형님은 결과와 상관 없이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저도 아빠고 남편이잖아요. 더군다나 우재 형님은 평범하게 살다가 재벌 속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재벌 옷을 벗고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과정을 두고 여기저기서 ‘다운그레이드 됐다’, ‘인생 종쳤다’, ‘네가 숨 죽이고 살 것이지’ 라고 말하는데, 인격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친한 동생으로서 정말 안타까워요.
저는 늘 사람들을 이혼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남들은 우재 형님이 이혼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작전이라고들 하는데, 아닙니다. 우재 형님은 자식과 가족에 대한 애착이 많은 사람이에요. 우재 형님은 만나면 늘 아들 얘기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아빠들은 아이에게 과자 하나 사주는 것 가지고도 엄마 눈치 보고 야단을 맞는데, 재벌 사위로 오죽했겠습니까. 자기 아들이어도 상왕을 모시는 느낌일 거예요. 정말 어려운 존재였을 겁니다. 자기는 함부로 할 수 없는 회장님과 이부진 사장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낼 수 있는 존재잖아요. 정말 이해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우재 형님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빗겨 나가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들도 정말 안타까울 뿐이에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속은 상하지만, 넘길 수 있겠죠. 그런데 아이는 커가면서 아빠를 만나지 못한다면 오해의 틀 속에서 살 거 아닌가요. 아빠는 나쁜 사람이라면서.
– 이혼을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혼을 극구 말리는 이유가 있나.
사실 변호사로서 이혼 소송을 수임하면 좋죠. 내 가족도, 내 친척도 아닌데요. 그런데 제가 왜 이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냐면, 애들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가 미워하면서 갈라지는 꼴을 겪게 됩니다. 저는 이혼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자식 있냐고 물어봐요. 저는 애기가 있으면 선임하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나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들은 엄마 아빠가 싸우기만 해도 눈치를 봐요. 아이가 두세 살이면 커가면서 엄마와 아빠가 떨어진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살겠지만, 애가 6~7살이면 엄마 아빠가 사이를 알아차리고, 중학생이 됐을 때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겪고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저는 늘 시간을 갖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연애를 한 후 결혼한 이들에겐 ‘연애 시절 좋았던 100가지’를 작성해보라고 하고 돌려보냅니다. 지금 이혼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이 하고 싶으면 돈 안 받고 해줄 테니 돌아가라고 하죠. 지금은 이혼 책을 쓰고 있어요. 일종의 ‘이혼 개설서’인데요, 이혼 개설서는 많은데 저는 이혼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 이혼 소송을 지양하면, 사건 수임에 한계가 있지 않나.
이혼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깨트리는 거잖아요. 이혼 소송은 변호사가 안 도왔으면 좋겠단 생각도 해요. 감정적으로도 여러 사람이 다칩니다. 권리 관계랑 전혀 다른 게 이혼 소송이에요. 권리 관계면 소송해서 졌을 경우 아예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가족끼리 잘 살면 그만인데, 가족은 다 연결돼 있잖아요. 변호사가 어느 정도 역할은 해야겠지만, 변호사가 적극적인 역할로 이혼을 마무리 짓는게 늘 안타까워요.
어떤 사람은 제게 이혼 소송이 노다지인데, 왜 포기하느냐고도 물어요. 사실 가족이 결혼하는 수만큼 이혼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에 엄청 큰 시장이기도 해요. 저는 정말 소송이 불가피할 경우 잘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상처주고 상처 받는 방식으로 끝나는 건 원치 않아요.
조대진 변호사는 이혼 소송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돌려보내곤 한다. 스스로를 ‘이혼 반대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배정한 기자
– 요즘 황혼 이혼도 굉장히 많다. 졸혼으로 마무리 짓는 방식도 있다고 한다. ‘이혼 반대 변호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졸혼은 서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법률적으로 의지하지 않도록 분리시키는 거예요. 저는 졸혼도 조심스럽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성년이 돼도 관계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부모하고 애착이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많아요. 두 사람이 편하자고 졸혼을 하고, 이를 권장하면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어요. 졸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가족 관계에서 해방된다는 건데, 아버님이 다른 할머니를 만나도 이의 제기 안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유교 문화인 한국에서 유쾌한 부분은 아니거든요. 저는 그래서 졸혼도 반대합니다. 제일 좋은 건 가족이란 형태를 이끌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살면 상관 없겠지만, 결혼 했으면 책임을 지고,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겠죠. 도저히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면 그때 이혼을 고려하더라도.
– 이혼 할 때 재산 분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특히 적은 재산을 분할하는 경우랑 많은 재산 분할하는 경우랑 변호할 때 차이가 있나.
재산 분할은 사실상 돈을 갖고 싶으니까 하는 것인데요, 이혼 소송은 다른 민사 소송하고 다른 건 상대가 정말 밉다는 거예요. 이혼 소송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변호사님, 제가 저 인간하고 이혼하는데 저 인간이 이혼하고도 잘 살지 못하도록 있는 것도 다 빼앗고 망쳐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100만 원도 주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서 금액이 크든 작든 서로 재산을 양보하지 않으면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천억 원을 가진 사람이나 1조 원을 가진 사람이나 다 똑같아요.
-황혼 이혼 때도 재산 분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나.
황혼 이혼은 재산 분할에 대해선 ‘쿨(Cool)’ 합니다. 먼저 연금은 이혼할 때 반으로 가져올 수 있게 돼서 상관이 없어요. 황혼 이혼을 원하는 분들은 돈이 욕심 나서 이혼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면 돈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양보하죠. 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서라도 자유 얻고 싶으면 양보하거든요.
-젊은 부부보다 돈에 대해서 자유로운 부분이 있겠다.
자유로운 부분이 있죠. 젊었을 때는 미래와 관련된 형상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실탄을 갖고 싶어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현재의 삶을 질적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거나 거처할 때만 있고 월 생활비만 있으면 상관 없다고들 해요. ‘내가 집이 세 채인데 왜 너가 두 채 가지나’라고 따지지 않아요. 한 채 가지고 행복하게 산다면 좋다는 마인드예요. 젊은 부부요? 한 채도 반으로 가르자고 하죠. (웃음)
-본인의 생각이 분명한 것 같다.
저는 소신이 ‘너무’ 있어요. 사실 변호사마다 캐릭터가 있는데요. ‘이것도 있지만, 저것도 있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변호사를 찾아온 분들은 분명한 답을 원합니다.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는 답을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저는 이혼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건 이혼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요, 소송에서 질 것 같으면 ‘진다’고 말해요. 그리고 ‘이거 다른 변호사 찾아가서 이기면 선임료 드릴게요. 헛돈 쓰지 마시고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도 죽어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제가 해드릴게요. 그런데 돈 쓰면서 변호사 선임하지 마십시오’라고 얘기합니다. 아닌 건 아닌 거거든요. 제 대답을 들으면 속 시원해 하시죠.
-방송에 많이 출연한다. 요즘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도 어렵고, 젊은 변호사일 수록 더 힘들다고 하는데 방송 출연이 사건 수임에 도움이 되나.
변호사들이 방송에 출연을 많이 하는데, 출연한다고 다 도움이 되는 거 같진 않아요. 저같은 경우는 캐릭터가 확실하잖아요. 패널이 몇 명이 나오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제 얘기를 합니다. 그런 부분이 방송이 비춰지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재판 과정에서도 소신 있게 할 것 같다고 생각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실제 제 성격이기도 하고요.
조대진 변호사는 방송에서 거침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는 이미지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말할 것 같으면 방송에 나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배정한 기자
-TV에서도 소신 있게 할 말 다 하는 이미지다. 전략인가?
전략 아닙니다. 제가 한참 세게 말할 때 탄핵 정국이었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을 때였어요. 앵커들도 제가 멘트하면 당황했어요. 주변에서 ‘탄핵 안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저는 탄핵시키려는 게 아니라 법률가로 봤을 때 탄핵요건 충분하다고 판단돼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박근혜란 사람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요. 일부는 대통령 끌어내려는 거 일조하는 사람처럼 보겠지만,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에요.
저희가 탄핵을 안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모의고사를 치지 않았습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재판부의 마인드를 봤습니다. 부정부패와 관련해서 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별도로 정치적 탄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본시험을 치면서 모의고사에 답안이 나와있기 때문에 답이 명확하다고 말했어요. 방송에서 앵커가 ‘헌법재판소 결론 어떻게 날 거 같냐’고 해서 ‘8:0’이라고 했습니다.
-불안한 것도 있었나.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할 거면 안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서까지 방송 오래할 생각 없습니다. 방송국에서 저를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말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친박은 저를 엄청 싫어해요. 이 앞에서 집회를 하잖아요. 지나가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저를 보면 ‘여기 있다’ 하면서 몰려들기도 해요. (웃음)
–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18개다. 형량이 어떻게 될 거라 보는가.
저는 검찰이 기소한 부분에 대해서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봐요. 사실 청와대 압수수색 했으면 객관적 증거들이 더 나왔을 텐데, 검찰은 주변 정황 증거만으로도 기소를 했어요. 지금까지 18개 혐의로 기소된 것 다 빼더라도 국정원 특수활동비 만으로도 실형 가능성 높다고 봅니다. 그런 것만 봐도 보수가 책임 없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이번 ‘한화 김동선’ 사건은 어떻게 보나. 변호사를 때린 것을 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분개했지만, 로펌 김앤장은 용서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김앤장에게 ‘너네에게 일감을 주니까 항복한 거 아니냐’고들 하는데요, 어느 정도 사실적 측면도 있다고 봐요. 일감을 주는 대기업과 척져서 좋을 거 없으니까요. 하지만 변호사로서 이의제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충분했는데, 너무 자본시장 논리로 머슴과 주인처럼 숙이고 들어간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개인변호사라도 참았을까요? 절대 안 참았을 거예요. 또 당사자는 불만이 있어도 로펌에 말을 못했겠죠. 머리채 잡히는데 좋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대한변협이 변호사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분개한 것에 같은 생각입니다. 대한변협은 변호사들의 인권을 소중하게 지켜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자기 인권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겠나요? 힘에 의해 참았는지 진짜 용서한 건지 모르겠지만 부당한 부분들을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의뢰한 것도 ‘세상이 이래요’ 하면서 넘어갈 수 있잖아요.
-조 변호사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고 싶다.
제 고향은 전라도인데, 학교는 영남대를 나왔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학교예요. 거기서 영남대 로스쿨 학생회장을 했고, 전국 1기 총학생회장을 했어요. 그리고나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 캠프로 들어간 거예요. 그때 일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뭘 목표로 하지 않아요. 다만 현재에 충실하고 제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 열심히 돕는 게 버릇이에요. 방송도 스타가 되겠단 생각보다 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하는 것 뿐입니다. 애매모호하게 말해서 방송 연장하는 건 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캐릭터 잡는 건 성격에도 맞지 않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소신 있게 살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을 도울 일이 있으면 어느 방식으로라도 돕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주 미력하게나마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해요. 이젠 정권 끝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로 퇴임하는 거 보고 싶어요. 노무현 대통령님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셔서 서민과 가깝게 계셨듯이 문 대통령도 계속 좋은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호위무사처럼 있을 거예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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