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복잡한 느낌과 생각이 들게 만드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음.
우연히 다른 데서 어떤 분이 적극 추천하는 글을 보고 나서 보게 된 것이 <마스크걸>인데 성인인증하면서 봐야 하는 웹툰은 좀 번거로워서 피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이 작품은 한번 보게 된 이후로 거의 놓치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몰입도가 크다는 이야기고, 결국 3부까지 나오는 족족 꼬박꼬박 보고 있거든요. 이 웹툰의 특징으로는 진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인데 그게 가장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거기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좀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면모가 있는 것 같지만 어딘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인간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3부에서 새로 등장한 예춘이는 볼 때마다 참으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스크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들 하나 이상 문제점을 가진 캐릭터들이고 캐릭터들의 설정이 이런 것 또한 작가님이 주제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이긴 한데 특히 예춘이는 하는 짓 때문에 보는 독자들한테 욕을 참 얻어먹는 캐릭터에요. 예춘이는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도 심한 것 같고 왕따도 받는 등 설정만 보면 불쌍하단 생각이 들 법도 한데 하는 짓을 보면 관심종자에 금방 들킬 거짓말을 일삼고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라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타입…
게다가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지내고 있으면서 관심을 모으려고 불행 코스 하고 다니는 거,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지(미모) 앞에서 저러는 거 보면 만화 캐릭터라도 한대 패고 싶어지는 캐릭터이기도 함. 따지고 보면 얘가 이렇게 타인의 관심을 구걸하게 된 이유도 살펴보면 이 작품의 진주인공 모미와 비슷한 루트일 것 같기도 하거든요. 내세울 것 없는 외모 탓에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고 무시당하고만 살았을 거라는 게 추측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작중에서 벌이는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 옹호되거나 실드 쳐지지는 않으니까. 예춘이의 캐릭터성으로만 놓고 보자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찌질한 관종인데 이것이 작중 현지(미모)와 얽히면서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셈.
댓글을 보면 예춘이는 1부의 주오남 여자 버전 같다는 글도 있었는데 왠지 지금 전개대로라면 진짜 주오남의 여자판으로 같은 과정을 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현지(미모)를 친구처럼 생각한 것도 진심인 것 같고 걱정해주는 것도 진심인 것 같아 뿌리까지 글러먹었다고 하기는 그렇고요. 실제로 작중에서 짜증 나고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누군가를 해치거나 피해를 끼치려고 작정했다기보단 애가 (좀 지나치게) 철이 없고 생각이 짧은 데다 다음 일을 생각할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해서인 것 같거든요. 고의로 다른 사람 인생을 망치려 든 게 아니라. 그런데 어떤 의미에선 악의적인 행동보다 멍청하고 생각없는 행동이 피해를 더 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함.
동정하기에는 하는 짓이 못난 게 너무 뚜렷하게 보여서 현실적인 짜증과 혐오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렇다고 마냥 악인으로 몰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며 보는 독자들로부터 불호와 함께 약간이나마 동정의 여지도 불러들일 수 있는 캐릭터… 거기다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정한 캐릭터니까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다 싶더니 바로 다름 아닌 제가 봤던 ‘아Q정전’의 아Q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이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었음. 이 캐릭터들은 개성은 확고하지만 그렇다고 작중의 문제 많은 행각 때문에 사랑해주기는 어려운 캐릭터들인 게 공통점이라.
골룸 같은 경우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혐오와 동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게 묘사를 하면서 막판에 정말 악한 성향을 드러내기도 해서 예춘이랑은 완전히 같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아Q같은 경우는 내세울 것 없고 무시당하는 입장에서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치기 좋아한다는 점을 보면 비슷한 구석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앞으로의 전개에서 예춘이가 주오남과 같은 결말을 맞는다면 완전히 여자 아Q나 다를 바 없어지게 될 테니… 설령 주오남과 같은 결말을 맞지 않더라도 지금 성격에서 반성하거나 성장하는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면 전작에서 보여줬던 모미의 행태를 그 친딸인 현지(미모)보다 먼저 답습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매력적이고 인기 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이런 상반되는 감정을 ‘의도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 그런 복잡한 면모를 작가의 설정 미스나 전개 미스가 아닌 주제 의식을 위해 일관적인 성향을 띠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서운 영화, 스릴러 영화를 잘 보시는 편인가요? 쫄보인 저는 전혀 아닌데요. 이상하게도 ‘이’ 작가님들의 작품은 섬뜩하면서도 계속 보게 만드는 감칠맛이 있어 보게 되더라고요. 바로 웹툰 <마스크걸>, <위대한 방옥숙>, <팔이피플>을 같이 쓰고 그리신 매미/희세 작가님입니다.
<팔이피플>은 최근 연재작이라 완결이 나진 않았지만, 세 작품 모두 작가님들만의 특징을 팍팍 느낄 수 있는데요. 작가님들의 작품 세계 특징을 분석해보면 재밌겠다 싶어 오랜만에 웹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마스크걸>, 2015~2018
[작품 소개]
끝내주게 못생기고 끝내주게 몸매 좋은 여자, 김모미
햇수로는 3년간 연재된, 시즌 3짜리의 짧지만은 않은 호흡의 작품인데요. 못생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모미’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성형 후 살인자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시즌 1은 그래도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외모 콤플렉스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소해보려는 모미의 상황이 엽기적으로 그려지는데요. 모미 나름의 노력에도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넷상 반응들과 주변 인물들로 인해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 끝에 모미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성형을 통해 새 이름과 새 얼굴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그렇지만 모미로 인해 외아들을 잃은 김경자의 복수,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얻은 딸 ‘미모(현지)’를 지키기 위한 모미의 행동까지… 타인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사람은 지키려는, 극단적인 가족애를 후반부 이야기 키워드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위대한 방옥숙>, 2019~2020
[작품 소개]
한강 조망권 지키려다가 한국에 시체를 유기한 여자들의 이야기. “내 집 값은 내가 지킨다!”
구두쇠로 악착같이 살아 반지하 살림에서 한강뷰 아파트에서 살게 된 ‘방옥숙’ 여사. 한강뷰를 가리는 희세2지구 재개발로 아파트값이 똥값이 될 것을 걱정한 방옥숙이 노블 골드 캐슬 부녀회 사람들과 집값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번드르르해 보이는 한강뷰 아파트에 살면서도 속을 곪게 만드는 사연들을 가진 부녀회 사람들의 실상과 그들이 아파트값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 <팔이피플>, 2021~연재 중
[작품 소개]
SNS에서 육아용품 파는 평범한 유부녀 박주연,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인 김예희는 팔로워 70만의 셀럽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누리는 중이다. 박주연은 김예희를 미워하는 동시에 집착하고 있는데, 과연 그녀는 김예희의 과거를 폭로하고 셀럽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아직 연재 초반인 작품이라 작품 설명은 [작품 소개]로 대신할게요!
1) 등장인물 중 ‘정상’이 없다.
매미/희세 작가님들의 작품은 등장인물들에 ‘정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작품 속 인물은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는 등 선인과 악인의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데다가, 모두 각자의 욕망대로 행동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인물들이 만화적 과장으로 볼 수 있는 극적인 사건과 환경을 만나며, 일그러진 욕망이 끝까지 치닫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작품이 막장으로 보이거나 기괴하게 비칠 수는 있어도, 등장인물이 입체적이고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명확히 보여서 막장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어요. 작가님들도 이와 관련해 아래와 같은 후기를 남기셨답니다.
저희는 현실에 마냥 착하기만 하거나,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중 인물들의 행동이 과장되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없는 캐릭터로 보이도록 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모미의 경우, 마냥 이 시대의 피해자로만 그려지거나, 혹은 천하의 악녀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점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독자님들에게 정상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습니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했습니다.
나쁜 여자가 좋아!
특히, 작가님들은 “저희는 나쁜 여자에 매료되어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나쁜 여자들을 그리고 싶습니다.”라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마스크걸>의 김모미, <위대한 방옥숙>의 방옥숙, <팔이피플>의 박주연은 동경할 만한 이상적인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주체적인 인물들로 나옵니다.
그러다 보면 캐릭터가 멋대로 움직이기도
사실 애초에 (<마스크걸>의) 시작은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웹툰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가지 결말을 만들어봤었는데요. 심지어 모미와 주오남이 사랑을 시작할 듯 말 듯하게 끝나는 로맨틱한 결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이 진행이 되면서 모미가 저희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더군요. 가장 큰 갈림길은 핸섬스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모미는 핸섬스님을 죽이지 않는 것으로 했었는데, 모미는 거기서 핸섬스님을 죽여버렸습니다.
어차피 이야기는 작가가 쓰는 건데,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 할 겁니다. 그런데 가끔, 주인공이 작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주인공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작가는 그냥 그 주인공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미를 숨 가쁘게 뒤쫓아가다 보니 이러한 결말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려내다 보니, <마스크걸>은 당초 계획하신 것에서 이야기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되고 인상이 깊었던 대목이었습니다. 저도 소설을 조금 써본 입장에서 스토리 얼개를 짜 놓아도 정작 캐릭터를 그 상황 속에 넣고 보면 다르게 움직이기도 하더라고요.
김영하 작가님께서 <살인자의 기억법>의 작가의 말에서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의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마지막 문장은 앞에 써놓은 그 어떤 문장에도 위배되지 않을 문장이어야 한다.”라고 하신 부분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2. 혐오와 연민, 등장인물에게 드는 이중적인 감정
작가님들의 특징이 있다면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호감형으로 그리기보다는, ‘혐오’와 ‘연민’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모두 들게 만든다는 점이었어요. <팔이피플>의 박주연을 예로 들면,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점에선 연민의 감정을 들게 만들지만, 동시에 학교나 SNS에서 거짓 소문을 퍼트리며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자신을 괴롭혔던 김예희를 질투하고 싫어하면서도 동경하고 노예 노릇을 자처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혐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작가님들은 그런 모습들을 작가님 스스로를 돌아보며 담아냈다고 밝히셨어요.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 외면하고 싶어 하는 싫어하는 모습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니, 독자들에게는 혐오와 연민의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해요.
– 매미 작가님: 거의 모든 캐릭터에 작가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제가 싫어하는 저의 모습들을 모든 캐릭터에 조금씩 담았습니다. 나르시시즘, 자기혐오, 이중성, 허영심 같은 점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이야기이고 한 것이죠.
– 희세 작가님: 모미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저희 모습을 봅니다. (중략) 이런 고민이 어떤 상황을 만날 때 어디까지 극적으로 가게 될까 상상해 본 이야기가 마스크걸입니다.
3. 그 외 소소한 특징
작가님들 작품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포인트 컬러가 있다는 점이에요. <마스크걸>에서는 시즌별로 각각 노란색, 주황색, 청록색을 사용했는데요. 시즌 1에서는 노란색을 통해 엽기적인 느낌을, 시즌 2에서는 주황색을 통해 잔혹한 느낌을, 시즌 3에서는 청록색을 통해 슬프지만 희망이 있는 느낌을 주었어요.
<위대한 방옥숙>에서는 파란색과 갈색을 사용했는데요, 파란색은 한강 강물을 상징하고, 갈색은 90년대 아파트 인테리어 특징인 체리 몰딩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팔이피플>은 예외적으로 풀컬러로 연재 중이지만, 인스타그램을 소재로 사용해서 그런지 분홍색이 돋보여요.
이런 포인트 컬러는 단행본 인쇄를 생각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제한적으로 색을 사용하신 것인데, 하다 보니 독특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느끼셔서 두 작품을 모두 이런 식으로 연출하셨다고 합니다.
또, 두 작가님께서 공동 작업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묘미도 있는데요. 글 작가님이 능글맞은 캐릭터로 짰는데, 그림작가님이 좀 더 귀엽게 표현해서 캐릭터 성격을 바꾸게 된다든지, 콘티보다 그림 작가님이 상황을 박력 있게 그려서 <위대한 방옥숙> 속 하준이 재희에게 반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매미/희세 작가님의 작품 특징과 작품별로 짧게 소개를 해보았는데요. 이전 두 작품에서는 모두 살인과 납치가 주된 극적인 사건이었다 보니, <팔이피플>에서는 살인 없이 작품이 전개될지, 아닐지가 저의 주 관전 포인트입니다. 박주연 캐릭터가 과연 어떻게 움직여 줄까요? 🙂
여름은 다 지나가긴 했지만, 섬뜩함을 느끼고 싶은 밤! 매미/희세 작가님의 작품을 정주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Sue
「마스크걸」에서 ‘모미’가 자신의 몸매를 자랑스러워하는 장면. / 네이버웹툰
매미·희세 작가의 만화 「마스크걸」에서 ‘모미’가 가면을 쓰고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장면. / 네이버웹툰
‘외모지상주의’를 다룬 웹툰은 많지만 처럼 섬뜩하면서 현실적으로 다룬 웹툰은 드물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사건의 전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웹툰의 현실성은 주인공이나 사건에서가 아니라 웹툰에서 묘사되는 사회의 모습이나 주변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주인공 캐릭터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현실적인 묘사와 만나 만화의 극적인 요소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낸다.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의 주인공인 ‘모미’는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완벽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던 그녀는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한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섹시한 춤을 추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며 네티즌들의 환호에 도취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나면, 온 세상은 ‘모미’의 외모를 경멸하고 무시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미’가 평면적인 피해자(순전한 피해자) 캐릭터인 건 아니다.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모미를 향해 “저 가슴 수술한 거 아니야”라고 쑥덕이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내보이며 절대 성형한 게 아니라고 외치는 등 ‘모미’는 그러한 시선을 그냥 참고 넘기지만은 않는다. 또 그녀는 망상 속에서 회사의 잘생긴 부장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고, 외모가 떨어지는 다른 남성 동료를 비하하고 무시한다. 사무실에서 얼굴이 예쁜 여성 동료 ‘아름’의 뽕브라에 바늘을 꽂는 등 엽기적인 장난을 하기도 한다. 특유의 광기로 일상을 이어오던 ‘모미’의 시간에 타격이 가기 시작한 건 짝사랑하던 부장의 연애를 알면서부터다. 실연의 절망과 술에 취한 어느 날 네티즌들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며 인터넷 방송 중 옷을 완전히 탈의하면서 모미의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에 위기가 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하필 같은 직장 동료인 ‘주오남’이 ‘모미’가 마스크걸임을 알아보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뒷 내용은 생략)파란만장한 시즌1을 마치고 ‘모미’는 시즌2에서 성형을 한 뒤 ‘아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등장한다. 본래 ‘아름’은 시즌1에서 ‘모미’가 짝사랑하던 유부남 부장의 내연녀로, ‘모미’의 사무실 동료였다. ‘아름’은 예쁜 얼굴과 애교 많은 성격으로 남성 직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며, 부장과의 불륜이 발각돼도 떳떳하게 부장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시즌1에서 ‘모미’가 ‘아름’을 질투하는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이 때문에 시즌1의 내용을 ‘아름’과 ‘모미’의 대결구도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모미와 아름의 갈등은 이 작품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이 아니다. ‘모미’를 심각한 갈등상황으로 끊임없이 몰아넣는 건 오히려 ‘주오남’과 같은 남성 캐릭터다. 시즌2에도 유사한 구도로 ‘모미’와 얼굴이 같은 ‘라라’가 등장한다. 둘은 서로 라이벌처럼 싸우고 괴롭히지만, 두 여성 캐릭터의 갈등구도 아래에서 더 심각한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따라서 ‘모미’가 한때 적이었던 ‘아름’, ‘라라’의 이름을 훔쳐 활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흥미로운 건 이 매 시즌마다 클리셰를 차용하면서도 결코 클리셰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전복한다는 데에 있다. 시즌1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질투하는 두 여성의 전형적인 구도(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를 차용했다면, 시즌2에서는 과거를 완전히 세탁하고 새롭게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이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여성을 비하하거나 멸시할 때 자주 인용되는 클리셰다. 주로 이러한 이야기는 갈등상황에서 남성의 책임을 희석하거나 남성을 완전한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효과를 낳곤 한다. 그런데 만은 이러한 클리셰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적여’의 구도 안에서 여성은 늘 감정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과거 세탁’의 스토리에서는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데에 비해 의 주인공 ‘모미’는 감정적이거나 이기적이라는 말로 쉽사리 규정되지 않는 인물이다. ‘모미’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등…. 욕망의 선을 따라가다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 그녀는 순전한 피해자도, 악랄하기만 한 가해자도 아니다. ‘모미’는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고 어떠한 행동도 불사하며 끝끝내 ‘살아남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다. 이러한 ‘모미’의 캐릭터 때문에 작품은 ‘여성 비하’에 손쉽게 빨려들어가지 않는다. 서로를 뒤에서 헐뜯고, 외모를 질투하고, 성형인지 아닌지 캐묻는 조연 여성 캐릭터들도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여성을 비하한다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건 에 뻔한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예쁜 캐릭터나 예쁘지 않은 캐릭터나 뻔하게 행동하지 않고 다 각자의 행동양식을 갖고 있다. 은 만화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조연급 ‘예쁜 여성 캐릭터’ 또는 ‘못생긴 여성 캐릭터’의 고정된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고, 저마다의 캐릭터들에게 욕망을 부여하여 입체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인데, 여성-남성 캐릭터의 이러한 대비를 통해 기존 콘텐츠의 문법을 뒤집어 재현한다.김혜수·하지원 등 대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여성 배역이 많이 없다”고 토로하는 현실 속에서, 웬만한 주연은 모두 여성 캐릭터가 꿰차고 있는 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콘텐츠다. 남성들의, 남성들을 위한, 남성들에 의한 콘텐츠 시장 속에서 이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도 그건 ‘모미’가 살아남는 방식과도 닮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