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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der Line :: [해준백기] 달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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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Border Line :: [해준백기] 달아요 아이를 데리고 나쁜 짓을 한 것 같잖습니까. 속으로 말을 삼킨 해준이, 멍하니 저를 부르는 백기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파드득, 놀란 백기의 손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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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time :: [해준백기] 반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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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flex time :: [해준백기] 반려 1 해준백기. 1. 철강 1팀의 첫 번째 회식은 무리 없이 마무리되어가는 듯했다. 지금의 5인 체제가 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간 저녁 회식은 한 차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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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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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해준백기] 엘리베이터 당황스러움에 후닥 해준의 뒤를 졸졸 쫒아가지만 평소였으면 느릿한 백기의 걸음에 맞춰 한 템포씩 느리게 걸었을 해준은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지 … 장백기씨 여자 취향에 실망입니다. 평소와 같은 담담하고 딱딱한 말투였지만, 평소보다 한톤 정도 내려가 있고 무언가 짜증이란 감정이 섞여있다는 걸 맹추 같은 눈치를 가진 백기도 이번엔 단번에 깨달았다. 어, 그게 아닌데. 당황스러움에 후닥 해준의 뒤를 졸졸 쫒아가지만 평소였으면 느릿한 백기의 걸음에 맞춰 한 템포씩 느리게 걸었을 해준은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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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 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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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해준 백기 해준백기 딸이 처음으로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카네이션 만들어와서 둘한테 줬는데 둘 다 그거 담날 회사에 차고갈듯 장백기는 전날 카네이션 받고 울었을듯 강해준은 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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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럭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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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드럭스토어 해준은 아침 내내 펼쳐놓았던 서류를 한 데 모아 톡톡 모서리를 책상에 부딪혔다.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된 것을 들자마자 입을 열었다. 장백기 씨. 이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드럭스토어 해준은 아침 내내 펼쳐놓았던 서류를 한 데 모아 톡톡 모서리를 책상에 부딪혔다.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된 것을 들자마자 입을 열었다. 장백기 씨. 이 … 시계는 오전 열 한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금은 무료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는 그렇고 그런 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철강 팀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모니터와 책상 위의 늘어놓은 서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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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토끼 :: [해준백기]트위터 썰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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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정석토끼 :: [해준백기]트위터 썰정리 해준백기로 뱀파이어au로 백기가 뱀파이언데 야근하던 백기가 배가 너무 고파서 이러다 일 치겠다 싶으니 해준이 없을 때 탕비실에서 몰래 비상용 … 해준백기로 뱀파이어au로 백기가 뱀파이언데 야근하던 백기가 배가 너무 고파서 이러다 일 치겠다 싶으니 해준이 없을 때 탕비실에서 몰래 비상용 혈액팩 뜯어서 허겁지겁 쭉쭉 빨다가 해준에게 들키는게 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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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강해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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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소 :: (해준백기)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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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너만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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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time :: [해준백기] 반려 1
반려
해준백기
1.
철강 1팀의 첫 번째 회식은 무리 없이 마무리되어가는 듯했다. 지금의 5인 체제가 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간 저녁 회식은 한 차례도 갖지 못했던 터였다. 그것은 개인주의가 강했던 팀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팀장인 차 과장의 사정 때문이었다. 과장은 몇 년 전 정기검진 결과를 받은 후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신입인 장백기가 입사를 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저녁보다는 점심 회식이 주가 되었고 퇴근 후 사수와 잔을 부딪치는 일은 철강팀에선 마치 다른 나라의 것과 같이 되었다. 장백기가 입사 초반에 팀에 적응하지 못할 때 유독 상사로부터 조언을 받지 못한 것에 못내 힘들어했던 이유도 그랬다.
과장은 고깃집을 나서면서 일이 있어 먼저 가겠다고 하며, 대신 남은 사람들끼리라도 2차를 가라고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강해준은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했으나 상사의 호의를 끝까지 거부하진 못했다. 과장이 돌아가고 난 뒤, 팀의 홍일점인 신다인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고 결과적으론 남자 셋이 남았다.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세 사람은 한적한 종로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이렇게 가긴 아쉬운데 저희끼리라도 2차 갈까요. 주신 카드도 있구요.”
해준은 그러자고 했고 장백기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세 남자는 홍 대리가 잘 안다는 소주집에 가기로 했다. 평일 저녁임에도 가게 내부는 만석에 가까워 가까스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앉기 전 걸려온 전화에 홍 대리가 밖으로 나갔다. 백기는 두툼한 메뉴판을 맞은편의 해준에게 주고 자신은 벽에 걸린 메뉴를 천천히 살폈다.
“이거 어떡하죠.”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온 홍 대리가 난처하게 그들을 돌아보았다. “아내 전화인데 애기가 열이 있어서 병원에 갔다고 하네요.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새신랑이 된 홍승휘 대리는 지난여름에 건강한 아들을 얻었다. 작년엔 결혼 준비로 내내 정신이 없어 보이더니 어째 그때보다도 근래 더 바빠보인다. 백기는 그를 볼 때마다 결혼이라는 것이 상상했던 것처럼 마냥 분홍빛 꿈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을 갓 넘어선 나이에 결혼이란 마냥 아득한 환상과도 같았지만 그는 이미 어머니 주선으로 선도 몇 번 보았다. 백기는 그에게 괜찮으니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 해준을 보았다. 홍 대리보다 한 기수 선임인 그는 미혼이다. 홍 대리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급히 문을 나섰다.
그리하여 남겨진 해준과 백기는 말없이 메뉴판을 읽었다. 해준이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냐고 묻자 백기는 가리는 것은 없고 맥주만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모둠 튀김이 나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대화만이 오갔다. 어째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현하는 건 백기뿐인 듯했다. 해준은 사석에서조차 수다스럽지 않았다. 대화라고 하기 무색하게 백기가 내내 조잘거렸고 해준은 안주를 집어 먹으며 그의 말에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엔 선배가 소개시켜준 여자를 만났는데, 만났을 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거든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했구요. 그런데 꼭 다음 날 연락을 하면 미안하다는 답장이 옵니다.”
“대리님은 어떠십니까? 대리님은 선 자리가 끊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솔직히 원인터 다닌다고 하면 여자 소개해준다는 사람이 줄을 잇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리님은 매너도 좋으실 것 같고, 얼굴도… 잘생기셨고…….
눈이 높으신 건지…….
“저는 남자 좋아합니다.”
“네?”
백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깃집에서 한 병, 아까 치운 게 한 병 그러면 이게 세 병째던가. 지각이 말랑말랑해져 멋대로 모양을 만들 때가 온 모양이었다. 백기는 해준이 해명과도 같은 코멘트를 덧붙여주길 바라며 그의 옆선을 애타게 보았지만, 제 선임은 낮에도 밤에도 두 번 말하는 법이 없었다. ‘튀김 맛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튀긴 것보다 구운 것을 좋아합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기호를 말하듯 남자의 태연함은 꾸밈없이 정직했다. 해준은 제가 잘못 들었길 바라는 후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제 잔에 소주를 따랐다. 쥔 병을 빼앗아서라도 자작을 하지 못하게 하던 후임은 놀람이 쉬이 가시지 않는지 입만 어버버해서 그를 쳐다만 보았다.
백기는 정말로 놀랐다. 놀라서 순간적으로 모든 사고가 굳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장백기. 머리 좀 굴려 봐. 대리님이 무안하시지 않도록, 어색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해보라고!
“대리님은 어… 취향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나온 물음이 이거였다. 취향은 이미 말했잖아 바보야! 아니 그러니까 이상형 같은 거……. 제 선임이 콩떡 같은 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며 백기는 그렇게 물어놓고도 괜스레 틀어막고 싶어진 입에 튀긴 닭똥집을 재빨리 넣었다.
“……열정적이기보다 무언가에 열중해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자신만을 바라보길 원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닙니다. 굳이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자기 일과 커리어에 집중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좋아,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백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제 선임은 언어에 담긴 의중을 생각보다도 더 잘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뜬구름 같은 해준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그가 말한 취향에 단박에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부합하는 가장 비슷한 사람이라면 강해준 본인이려나. 해준이 애매하게 남은 맥주를 백기의 빈 잔에 전부 부었다. 백기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연신 어깨를 움츠리며 술을 받았다.
백기의 주량은 맥주 두 병을 넘지 못했다. 술도 자주 마시면 는다는 말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에 낀 적도 있었지만 귀갓길엔 언제나 만취 상태였다. 술을 못하는 건 집안 내력이었다. 아버지는 약주 한 잔,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는 아예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말술이 필수 소셜스킬인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게다가 차 과장은 술을 권하지도 않았다- 백기는 술을 잘 마시고 싶었다. 낮에는 업무 능력으로 밤에는 분위기까지 잘 맞추는 예쁜 부사수로, 그렇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그 점에선 강해준 대리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백기야, 술을 못하면 아예 마시지 않는 방법도 있어.’ 문득 대학 때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그때 그 선배는 왜 그런 말을 했었지. 아, 아마도 술에 취해 반쯤 정신을 놓고 길거리에서 해롱거렸을 때였지.
“저는 어떻습니까. 남자 눈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서요.”
매력적인 사람일까요? 그렇게 말을 하고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장백기 씨.”
묘하게 가라앉은 해준의 어조에 백기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지금 절 떠보는 겁니까?”
“…….”
‘술 마시는 거, 기분 좋은 거, 다 이해하고 좋은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선배의 말이 이명이 되어 귓가를 떠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잠재적 연애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공적으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매사 조심해야 하죠. 상대가 착각이라도 한다면 곤란하거든요.”
“…….”
“원치 않는 착각은 상대에게 상당한 실례가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내가 그걸 왜 물어봤지.’
하여간에 이 알콜이 문제다. 장백기는 이미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머릿속에서 적절한 대답을 꺼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냥 그 자리에서 혀를 콱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해준은 잔을 한 번 더 비웠다. 백기는 입을 꾹 다물고 테이블만 노려보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장백기 씨는.”
먼저 침묵을 깬 건 그였다. 백기의 아랫입술이 절로 깨물렸다.
“그 정도면 훌륭합니다.”
“예, ……예?”
“보는 눈은 남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대단하거나 특별한 취향을 갖게 되는 건 아닙니다. 보통은,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 남자에게도 많습니다.”
또 어떤 힐난이 쏟아질까 긴장하던 백기에게 돌아온 건 의외의 것이었다.
‘훌륭, 훌륭하다고.’
그것은 분명 칭찬이었다.
“아하하……. 인기라뇨. 번번이 실패만 하는 걸요…….”
“장백기 씨도 곧 좋은 인연 만날 겁니다.”
한껏 누그러진 분위기에 백기는 안도하고 사수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입구를 타고 나오는 맑은 액체는 물흐르듯 투명한 잔을 채웠다. 졸졸 따라진 술처럼 두 사람의 시간 또한 잔잔하게 흘렀다. 해준과 백기는 남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연애사를 풀어냈다. 해준은 직접적인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백기의 고민에 연장자로서 성실히 조언해주었다. 자정이 되기 전, 해준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는 것으로 자리는 파했다.
“슬슬 일어나죠.”
회식 때문에 차를 두고 온 해준은 지하철을 타려는지 백기와 함께 큰길로 나섰다.
“저는 저쪽에서 버스 타고 가겠습니다.”
백기 또한 지하철을 타도 됐지만 밝은 곳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해준은 소주 두 병을 그 자리에서 전부 마신 사람답지 않게 얼굴이 아주 멀쩡했다. 그에 반해 자신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붉게 달아올라 있을 터였다.
“그래요. 내일 봅시다.”
“들어가십쇼.”
백기가 해준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가볍게 한 번 끄덕인 해준이 곧은 자세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백기는 그가 내려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버스 정류장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달아오른 얼굴에 마주하는 바람이 유독 차게 느껴졌다. 백기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해준은 이미 프레임 밖에서 사라진 후였다.
**
「차 과장님께서 점심같이 하자고 하시네요. △△해장국 집입니다. 50분까지 로비로 내려와요.」
뜻하지 않은 배려에 백기는 난처해졌다. 오전부터 메슥거리는 속에 점심을 거를 생각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과장의 호출이다. 지각을 해 혼이 난 이력이 있는지라 몸이 안 좋다고 빠졌다가는 자기관리를 못 하는 사람으로 영영 낙인이 찍힐지도 몰랐다. 백기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나와 있는 뚝배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설상가상으로, 백기는 선지를 먹지 못했다. 뭉쳐있는 붉은 덩어리를 보자 결국 토기가 불쑥 올라온다.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뜬 백기는 들어서자마자 변기를 부여잡았다. 나오는 건 헛구역질뿐이어서 떨리는 손가락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엊저녁 먹은 것들이 전부 쏟아져 나온다. 입을 닦는 세면대 앞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자리에 돌아왔을 때 해준이 돌아온 백기를 흘끔 곁눈질했다. 백기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는 눈치를 보며 맨밥만 깨작이다 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님. 오전에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파일은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고마워요.”
몸을 돌려 자리로 가려는 순간 백기는 해준에 의해 손이 붙들렸다.
“장백기 씨 몸이 안 좋습니까?”
손을 잡힌 백기는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은 채 얼음이 되었다.
“손이 차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살을 꾹 누르니 백기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
“체기가 있는 것 같네요. 의무실 가세요.”
**
백기는 손에 쥐고 있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감기 기운이 있던 차에 불편한 자리에서 술까지 마셨으니, 몸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직원들에겐 흔한 증상인지 의무실에서는 그의 안색만 보고도 약을 내주었다. 상태는 오히려 구토한 후 더 악화되었다. 약을 먹었으니 괜찮아지겠지……. 퇴근하기까지는 두어 시간 가량 남았다. 괜찮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탕비실에 들어온 석율이 손을 까딱이며 백기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디 갔다 와? 자리에 없던데.”
“잠깐… 바람 좀요.”
“커피 마실래? 왜 커피 마시러 온 거 아니야?”
“됐습니다.”
믹스 커피를 눈앞에서 흔드는 석율을 향해 고개를 젓고선 백기는 빈 컵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부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분위기에 옆으로 안색을 살피는 게 느껴졌지만 백기는 그런 그를 모른척했다. 백기는 종종 그가 자신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길 내심 바란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도 석율이었지만 -비단 자신뿐일까 싶지만- 절친한 여고생처럼 세심하게 파고드는 건 피곤했다. 지금은 좋은 시점 또한 아니다. 지금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안 갑니까?”
“말 안 해도 갈 거거든요. 장-백기 씨-”
인상 좀 피세요. 눈썹 사이를 꾹 누르고, 석율은 백기가 무어라 반박하기 전에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석율이 떠난 탕비실에서 백기는 멍하니 이마를 문질렀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해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백기는 빈자리를 천천히 훑어보다 이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노트북 뚜껑을 열었다. 당장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뭐라도 손에 잡아야 했다. 의미 없이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다가, 주간 업무 보고서를 열었다. 반쯤 채워진 양식에 자신이 적어야 할 내용을 한 줄씩 채웠다. 모레까지 해도 충분한 일이었으나 닥쳐서 무언가를 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것은 해준도 같았다. 자신이 먼저 해서 넘겨야 사수도 검토할 시간이 넉넉할 것이다. 백기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때 지잉 책상이 울렸다. 석율의 문자였다.
「ㄷㅂ?」
「지금은 안 됩니다.」
「변했어. 배신자.」
뭐가 배신자라는 겁니까?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엄지로 두다다 글씨를 만들어내다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덮었다. 약을 먹으니 요동치던 속은 가라앉았는데 졸음과 두통이 밀려온다. 책상 위로 진동이 몇 번 더 울렸다. 백기가 답장을 안 하니 석율이 메시지를 폭탄으로 보내는 모양이었다. 이 두통은 필히 8할이 한석율 때문일 것이다. 안경 아래로 곧은 눈썹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백기 씨, 의무실 안 갔습니까?”
갑자기 나타난 해준에 백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뇨 다녀왔습니다.”
해준은 들고 온 서류를 옆에 두고 곧장 모니터에 정신을 집중했다. 타닥타닥. 그리고 키가 눌리는 소리뿐이었다. 백기는 해준의 모니터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신이 계속 서 있었음을 자각하고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뭐라고 합니까?”
“에? 예……. 아…, 그……. 체한 것 같다고……. 약 처방 받아왔습니다.”
해준은 다시 말이 없었다. 백기는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제 사수가 대답하길 마냥 기다리다가, 그가 미동도 없자 입을 일자로 한 번 만들고는 자신의 책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업무 마무리됐으면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멍하니 파일을 들여다보던 백기는 해준의 말에 옆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네.”
**
“대리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몸조리 잘해요.”
할 일이 꽤 많아 보이는 사수를 두고 일찍 퇴근하는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해준은 끝내 남은 업무를 백기에게 넘기지 않았고 백기로서는 달리 그것을 억지로 달라고 조를 이유도 없었다. 흔치 않게 찾아오는 사수의 호의는 즐기기로 했다. 해준은 창백한 백기의 얼굴을 훑어본 뒤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백기는 애꿎은 가방 손잡이만 만지작거리다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정없는 얼굴이 다시 백기를 본다. 백기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해준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보겠습니다.” 백기는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온 백기는 문득 사무실로 고개를 돌렸다. 파티션 너머로 반쯤 보이는 사수는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백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딩딩- 경쾌한 알림과 함께 문이 열렸다. 백기는 어쩐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내고 엘리베이터 몸을 실었다.
2014.12.18
[해준백기] 강해준이 돌아왔다
– 강등님( @72percent72)과의 대화에서 시작된 썰 기반입니다
– 오메가버스 / 엠프렉 기반 육아물
– 짧은 단편
– 제목은 유명한 그 예능에서 따온것이 맞습니다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
지금 가도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인데. 구두에 나머지 한쪽 발까지 넣은 백기의 걸음이 좀처럼 현관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런 백기를 배웅하던 해준의 손길이 기어이 그의 어깨를 돌려 현관 밖으로 살짝 부드럽게 밀어냈다.
” 괜찮아. 늦겠다. 얼른 다녀와 ”
금방 올게요. 세 시간. 아니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꺼야. 얼굴만 비추고 곧 올게요. 응?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순간까지도 걱정을 숨기지 못하던 백기를 향해 정말 괜찮다며 어색하게 손까지 흔들어주던 해준의 두 눈에는 서서히 닫혀가는 엘리베이터와 함께 백기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갔다.
” 후우- ”
하지만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짧은 한숨까지는 어쩌지 못한 해준의 뒤로 띠릭- 기계음을 내면서 닫힌 현관문 소리에 흠칫. 자동 반사적으로 아이가 잠들어 있을 작은 방으로 시선을 옮긴 해준이 저 조차도 어색했던 행동에 피식 어이 없는 실소가 샜다. 우리 준우, 엄마 올 때까지 코- 자자.
.. [해준백기] 강해준이 돌아왔다 ..
발소리도 조심조심 숨을 죽이며 문이 밀리는 소리에 아이가 깰까 하는 두근거림으로 조용히 아이 방에 들어온 해준은, 이내 천사같은 모습으로 잠든 준우의 모습에 한 쪽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백기의 어린 시절은 고작 사진으로 본 것이 다였지만, 마치 지금 준우의 모습은 아기 장백기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어쩜 이렇게 제 엄마만 쏙 빼닮아 나왔는지. 어쩌다 한 번씩 나온 배냇짓에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그 눈이 반짝이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제가 아닌 백기를 닮은 것에 대한 서운함은 한 톨도 없이 오히려 감사할 정도였다.
” 깨면 안되는데…. ”
지금 깨면 백기가 올 때까지 진땀 빼는 순간이 지속 될 것을 알기에 말은 그리 하면서도 슬쩍 준우의 곁에 누워 제 손가락 두 마디에도 채 다 채워지지 않는 작은 손을 살짝 간질거리기도 하고 코오- 코오- 내뱉는 아이의 숨에 깃든 옅은 분유 냄새를 맡아보는 해준은 누가 뭐래도 이 아이의, 준우 아빠 강해준의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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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보다는 조금 이른 순간에 찾아 온 아이었다. 백기와 결혼을 약속할 때만 해도 최대한 그가 결혼 생활과 회사 생활을 병행하며 버거워하지 않는 때에 아이도 천천히 갖자고 이야기 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쁘고 향긋함이 가득한 백기가 오롯이 제 사람이 되어 매일 밤 한 공간에, 심지어 한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런 계획이란 애초에 무모한 것이었음을 해준은 결혼 1주일 차에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해준과 결혼까지 했는데 굳이 억제제를 챙겨 먹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던 백기는 해준을 매일 밤 시험에 들게 하기 일쑤였고.
워낙 일이 많은 회사에 늘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서인데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대놓고 챙겨줄 수도 없는 입장이었던 해준은 입덧과 함께 시작 된 각종 임신 징후로 힘겨워 하는 백기를 보며 항상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했지만 그럴때마다 백기와 뱃속의 아이는 세상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환희와 경이로움으로 해준을 웃게 만들었다. 녀석, 나오기만 해봐라. 벼르던 해준은 점차 그렇게, 얼른 나와서 아, 아빠랑, 이라며 어색하기 짝이 없는 태담을 들려주곤 했다.
” 으엥~ ”
“…ㅇ.., 야, 야 인마… ”
” 대리.., 아니 해준 씨. 그렇게 안으면 애기가 불편해요. 자, 이렇게- ”
” 내가 안은거랑.., 다른거야? ”
” 네에?? 큭…, 그럼요 ”
하지만 어디 육아란게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 뭐든 글로 배우고 예습하고 몸으로 부딪혀가며 다시 학습하고 습득하는 것에 능했던 해준에게 한 치 앞을, 아니 한 자락 흐르는 아이의 눈물을 알 수 없는 육아는 그야말로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난해한 일이었고 난항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벌써부터 제 엄마의 향을 아는건지 백기가 잠시라도 아이의 곁에서 멀어지는 때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듯 울어대는 준우 때문에 상황은 더했다. 경험이 없는 것은 백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모성애라는 위대함 때문인지 살이 쪽쪽 빠져가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백기는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준우를 안고 얼르고 도닥였다. 이러려던 것이 아닌데. 계획대로 흘러가지 못한 생활에 해준이 미안함을 가득 담아 백기를 안아 올 때면 백기는 외려 해준에게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해준과 저를 닮은 아이가 제 품에서 웃고 있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지 모르겠다며 백기는 또 한가득 짙게, 향기로워져만 갔다.
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셨던 은사님의 귀국 파티 겸 동문회라고 했었다. 고급스런 봉투에 정갈하게 쓰여진 글자를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 내리던 백기는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준우를 안아들었었다. 왜, 다녀와. 외출한 지 꽤 되었잖아. 하던 해준의 품에서 백기가 고개를 저었다. 준우는 어떡하고요.
” 내가 볼게. 주말이라 나 집에 있잖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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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녀와도 될까요 하고 반문하면서도 설레이는건지 이틀 전부터 뭐 입고 나갈까 고민하는 백기에게 예쁜 셔츠와 그에 맞는 구두도 한 켤레 선물한 해준은 감동 어린 백기의 시선 끝에 진득하게 맞물려온 입술을 느낄때까지만 해도 제 결정에 대해 무조건적인 용기가 있었다. 까짓 그 몇 시간이겠지만 백기에게는 꿀 같은 휴식일 수 있을 터. 오랜만에 제대로 남편 노릇도 좀 하고 이 참에 준우와도 조금 더 친밀한 유대감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 으에엥~!!! ”
” 쉬이.., 우리 준우 차, 착하지.., 뚜.. 뚜욱 ”
…했는데. 한 시간쯤 뒤에 낮잠에서 깬 준우의 울음이 시작된 뒤로 어설프나마 백기가 하던 모양새를 떠올려 준우를 안아 든 해준에게선 식은땀이 주륵 흐르고 있었다. 말 못하는 아이라 본능만 남아서인지 아직 옅지만 분명하게 흘러나오는 알파의 향기는 강력하게 해준을 거부하고 있었다. 내 참, 그래도 내가 네 아빠다, 인마. 붙잡고 이해라도 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백기를 똑 닮은 얼굴이 온통 새빨개지도록 울어대는 준우를 보고 있자니 해준의 마음도 자꾸만 급해져갔다. 기저귀인가. 아니, 기저귀는 멀쩡하니까 아니고. 아, 아 밥! 혹시나 싶어 백기가 일러준 대로 새끼 손가락을 혀 끝에 가져다 대니 작은 입술이 오물오물 잘도 움직인다.
” 으에에엥~!!! 흐엥~!! ”
” 잠깐만, 강준우. 잠깐만. 아빠가 지금 우유 데우고 있잖아 ”
미리 유축 해서 얼려 둔 모유 하나 해동 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이미 손등에 여러차례 확인 해 본 온도이지만 혹시나 싶어 아이의 입에 젖병을 물리는 순간까지도 해준 답지 않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 다 울었어? 인마 배가 고프면 말을, 아…, 아니다. 무슨 소릴하는거야, 그치? ”
정말 배가 많이도 고팠던 모양인지 옅게 흐르던 알파 향도 금세 사그라지고 아직 눈가 끝에 대롱대롱 눈물을 달고서도 꼴깍 꼴깍 잘도 넘어가는 소리가 괜스레 허탈해 준우의 코 끝을 살짝 건드린 해준이 웃었다.
” 강준우. 아빠야. 우리 도담이 언제 이렇게 컸어. 응? ”
백기의 뱃속에 있을 때는 언제 다 자라 세상에 나오려나 싶던 콩알만한 아이가 이제 제법 눈 맞추는 시간도 길어지고 배고프다고 울어댈 줄도 아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한 해준은 준우의 젖병이 다 비워지도록 한참을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멋진 아빠도 좋지만 성실하고 좋은 아빠이고 싶다고. 불러오는 백기의 배를 보며 열 달동안 쉼없이 되뇌었던 그 다짐을 네가 태어나고 나는 과연 얼마나 지켰던건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알면서도 더 노력하는 아빠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순간 울컥한 감정을 애써 누르느라 아무도 듣지 못할 해준의 헛기침이 자꾸만 늘어갔다.
” 흐에엥 ”
물론, 지금은 감동보다는 기저귀가 우선이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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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됐다 ”
” 헤엥 ”
” 자식. 뭐가 좋다고 웃어. 큼, 강준우. 아~빠 해봐, 아~빠 ”
” 헤헹 ”
배불리 먹고 기저귀도 뽀송해지니 고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이가 생글생글 조그마한 보조개까지 얼굴에 매달고 해준을 향해 웃었다. 이럴때보면 정말 장백기 미니미가 따로 없다니까. 잠깐 망설이던 해준이 준우의 볼에 쪽쪽 예쁜 뽀뽀를 퍼부었다. 조카들이 줄줄이 태어났어도 포옹 한 번 제대로 해준 적 없던 무뚝뚝한 삼촌이었던 제가 자식 앞에서는 애정표현이 서스럼 없어진다. 아니, 오히려 저를 거부하는 듯 보이던 그 어린 향에 상처까지 받았더랬지. 네가 나를, 엄청 변하게 하는거야. 알아, 강준우? 부드러운 아빠의 농담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꼬물대는 준우의 몸짓에 해준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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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잉~ ”
” 자장 자장. 준우야. 코 자야지. 응? ”
” 흐아아앙~ ”
아무래도 자리가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통화를 하기에도 조금 불편한 자리였는지 겨우 보낸 문자한 통에 실린 백기의 미안한 마음이 가득 느껴져 해준은 차마 언제쯤 올거냐고 묻지는 못했었다. 해준과 눈 맞추며 방긋 웃어대던 게 고작 몇시간 전일 뿐인데. 어둠이 내려 앉은 밤, 잠님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엄마의 부재를 느낀 준우의 칭얼거림이 한층 커지고야 말았다. 안아 달래도 보고 어설프나마 백기가 쓰던 포대기로 업어도 보았지만 잠투정과 함께 늘어가는 준우의 엄마 찾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 음마아~ ”
” 엄마 곧 오실거야. 하아, 아빠도 엄마 보고 싶다, 강준우 ”
옹알이를 겨우 떼는 아이니 엄마라는 발음은 아니었을테지만 어쩐지 그렇게 들린 준우의 발음에 해준이 되도 않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야근으로 늦어지는 밤. 혹시 백기도 이렇게 힘들었을까. 그러고보니 준우가 태어나고 요 몇개월. 침대에서 제대로 잠들어있는 백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늘 쇼파에 잠들어 있거나 준우 방에 함께 누워있는 것을 해준이 안아 옮기곤 했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들을 알게 되는 것만 같아 등에 업은 준우의 무게보다도 아릿해진 해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 음마아~ ”
” 자아. 엄마 향 나지? 준우 좋아하는 엄마 향. 이제 우리 코오, 눈 감자. 응? ”
혹시나 싶어 아이 방이 아닌 부부의 침실에 준우를 뉘이고 백기의 체향이 짙게 섞인 베개를 가까이 가져다 주니 놀랍게도 조금씩 칭얼거림이 잦아들었다. 누가 강해준 아들 아니랄까봐. 장백기가 최고지, 큼. 아마 백기 앞이라면 전혀 해주지 못했을 표현이 오늘따라 왜이리 술술 나오는지. 준우는 알지도 못할 고백들을 두서 없이 늘어놓는 해준의 모습이 많이 지친 모습 속에서도 허탈한 웃음을 동반하고 있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불러본 기억이 전혀 없는 자장가라 어색함은 감출길이 없었지만 아이를 토닥이는 해준의 손길에는 분명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잘 자,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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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떡해. 너무 늦었다 ”
백기의 옷자락에 가을 저녁 바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열기가 서렸다.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주말 저녁이라 차가 막히기까지. 게다가 택시를 타면서부터 해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불안한 마음은 배가 되었었다. 부쩍 잠투정이 늘어가는 시기라 재우는데만도 꽤 오래 걸렸을텐데. 혹시 무슨일이 있는건가 싶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뛰어온 백기였다.
” 해준 씨?.. ”
불꺼진 조용한 집안이 낯설어 겁이 덜컥. 혹, 울다 지친 아이가 열이 올라 병원에라도 간건가 싶어 급하게 방문을 열어보는데,
” … 큭. 세상에. 웬일이야 ”
작은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침실에 백기의 베개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 보고 잠이 든 부자(父子)의 모습에 재촉하던 발걸음도 잊고 한동안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빠의 새끼 손가락을 꼬옥 쥐고 잠든 준우의 모습이라니. 새삼 느껴보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이 올라와 기어이 백기의 눈가를 행복하게 적셨다. 그리고 환하게 웃은 백기가 놓칠새라 카메라로 그 둘을 담았다. 장백기, 너 진짜 결혼 잘했다. 자신에게 보내는 칭찬도 잊지 않은 채.
” 해준 씨… ”
” 으음…, 응? 아, 왔어? ”
” 미안. 힘들었죠. 뭐 좀 먹었어요? ”
백기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자마자 비몽사몽간에도 그를 품에 안은 해준이 큭, 하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배고픈 것도 몰랐네. 제 어깨에 고개를 푸욱 파묻고 웅얼거리며 속삭인 해준에 말에 백기가 화들짝 놀라 해준을 바라보았다.
” 하루종일 하나도 안먹었어요? 세상에. 기다려ㅂ.., ”
” 잠깐만. 좀 이러고 있자, 백기야 ”
얼른 뭐라도 챙겨 주려 몸을 돌리던 백기를 다시 돌려 앉힌 해준이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그를 안았다. 말하지 않아도 하루 내내 힘들었을 그를 알기에. 백기 역시 그의 어깨를 말없이 도닥여주었다. 많이 힘들었어요? 하는 물음에는 도리질을 하는 해준이었지만 숨기지 못한 두 사람의 실소는 어쩔 수 없이 꼬옥 닮아 있었다. 흠, 장백기 향. 좋다. 금세 그의 존재만으로도 온 방안에 퍼지는 향을 느끼던 해준이 미소를 지었다.
” 이래서 준우가 좋아하는가보네 ”
코 끝에 번지는 그의 향긋함 한 자락에 피곤이 모두 풀려버리고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라니.
게다가 부드러운 살결 탓인지 온종일 이대로만 있고 싶은 마음뿐인데. 말 못하는 아이가 제 엄마에게서 느끼는 것은 아마 그의 몇 배는 되겠지. 해준이 달콤한 그 향의 진원을 찾아 백기의 입술을 찾아 들었다. 곧 부드럽게 섞이는 두 혀끝에서 서로의 향이 섞여 그 향기로움을 더해만 갔다. 옆에 잠든 준우의 천사같은 모습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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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먹으면 어떡해요 ”
조용히 부엌으로 나온 두 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따뜻한 스프에 부드러운 계란 샌드위치를 조촐하게 차려 준 백기가 연신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그를 느낀 해준이 조심스레 백기의 뺨을 손으로 쓸었다.
” 너도 잘 챙겨 먹어. 너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얘기 해 줘 ”
어차피 육아휴직이 끝나고 나면 회사로 가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제가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다 말했던 백기였고 사실 그에 대해 해준은 크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오늘에서야 저의 무지함이 얼마나 컸는지를 절실히 깨달은 해준은 새삼 백기가 대단해 보였다. 아직도 이렇게 제 손길 하나에 붉어지는 여리고 어린 사람인데.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 하루 종일 준우를 혼자 돌보는 걸까.
” 내가 더 잘할게 백기야. 물론 그럼에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
” 잘 해주고 있어요 해준 씨. 난 하루에도 몇번씩 나 결혼 참 잘했다고, 아. 오늘도- ”
얼른 제 휴대폰에 저장 된 사진을 꺼내 보여주던 백기가 예쁘게 웃었다. 이거 봐요. 이렇게 든든한 행복이 어디 있어. 어느새 서로에게 기대어 빈틈없이 맞춰진 두 사람의 공간이 작은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저 먹어요. 내일 출근하려면 자야지. 하는 백기의 말에 남은 샌드위치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 때,
” 으에엥~ ”
침실 너머에서 준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 강준우. 아빠 밥 좀 먹자. ”
라고 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던 해준을 보며,
” 큭, ”
백기가 행복하게 웃었다.
강해준이 돌아왔다,
fin.
안녕하세요-
저도 너무 오랜만에 연성이라는 것을 해봅니다.
마음은 아직도 미생뿐인데 생업을 시작하다보니 연성이 쉽지가 않았네요
이렇게 짧은 글도 조금씩 조금씩 쓰고서야 내보일 수 있게 되다니요 ㅠㅠ
그래도 혹시, 잊지 않고 찾아주신 분들 있으시다면 너무 감사드립니다.
자주는 못 올테지만, 말 없이 그만두진 않을게요^^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준백기] 너만 모르게
Note: 미생 해준백기 기반.
PC 혹은 Soundcloud 지원 환경에서 BGM과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다들 이런 내가 낯설다는데, 나는 왜 웃음이 나올까,
백기야, 끝까지 너를 지킬 수 있다면,
.
.
.
너만
모르게
하계 워크샵 일정이 막바지로 접어든다. 신입이 들어온 팀의 사원, 대리급은 모조리 주말을 반납했다. 우린 더 개선할 관계가 없다니까 그러네. 동식의 불만어린 말에 한 마디 보탰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린 이미 사수-부사수 사이의 미묘한 트러블을 개선하고 말고 할 단계를 넘어선 사이였다.
발단은 철없는 듀오 섬유팀의 작품이었다. 철없는 신입 한석율의 인트라넷 폭로전은 윗선까지 일파만파로 퍼졌다. 거기다 안영이를 향한 자원팀 내 차별적 대우에 대해 선 차장이 들고 나서면서 선후배간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사내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 얘기가 마침내 경영지원본부장의 귀까지 전달되었을 때, 인사팀에서는 부랴부랴 사원-대리급의 화합을 다지는 하계 워크샵을 기획했다. 1박 2일로 리조트를 하나 빌려 물놀이도 좀 하고, 같이 간단한 프로젝트도 해결하고, 밤새 술도 한 잔 하며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라는 건전한 의도였으나 한창 데이트를 즐길 주말에 걸친 워크샵이 달가울 리 없었다. 내게도 물론.
한석율과 하성준 사이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물오물 과자를 먹고 있는 연인을 보면 외려 화가 난달까. 내 거야, 손 대지 말라 외치기도 뭐하고, 한창 술 게임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끌고 나오기도 애매하고. 몇 번이나 두 녀석을 쏘아지만 저들은 눈치마저 없다. 결국 텁텁한 기분을 떨치려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찾아 발코니로 나간다. 이미 테라스 한쪽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다. 그 앞에 있는 마른 인영은 아까부터 한숨만 죽죽 쉬며 말끝마다 시발, 시발 욕을 매달던 성준식이다.
“뭘 잘했다고 줄담배를 태워.”
타박하는 목소리로 테라스 맞은 편 의자에 앉자 너냐? 하는 얼굴에는 그늘이 그득하다. 아이씨, 저 소시오패스 새끼 때문에 주말이 이게 뭐냐? 투덜대는 얼굴에 내가 오히려 따지고 싶다. 새꺄, 나도 싫어. 내 장백기가 저렇게 반바지 차림으로 웃으며 동료 어깨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휴, 아주 광고를 하지? 네 눈빛에 저 허여멀건 애가 아주 바싹 타겠다.”
“여기까지 와서 귀중한 시간 축내게 한 장본인이 누군데.”
“그렇게 예쁘냐? 둘 다 첨엔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이 굴더만.”
내 시선이 여전히 방안 한 쪽에 머무르자 쯧, 혀를 찬 준식이 꼴 사납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예쁘다. 예뻐죽겠다. 대답하니 너 연애 처음이지?어? 하고 시비를 걸어온다. 그건 아닌데, 마지막이었음 해. 가벼운 도발에 무겁게 응수하니 준식은 기가 막힌 모양이다. 씨발, 욕을 내뱉은 그가 피우던 담배를 비벼끄고 자리를 뜬다. 강해준, 왜 이렇게 됐냐?
전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마음을 쏟는 것. 자아개념이 생기던 순간부터 스스로 지키려한 제 1 원칙이었다. 그런 노력으로 1이란 숫자에 익숙해졌다. 전교 1등, 공모전 1위, 입사시험 1등, 인센티브 1위, 그리고 혼자됨 같은 것들. 상대는 애정을 우선으로, 나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앞세워 버텨낸 관계에서 연인들은 어김없이 지쳐떠났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강해준은 연인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나 다정한 구석이 전혀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장백기의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회사에서는 평정을 가장하지만 때론 그것조차 쉽지 않다. 결재를 올리고는 초조하게 눈치를 보는 부사수를 흘깃 보며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는다. 그 모습에서 침대 앞에서 반쯤 옷을 벗은 채 안절부절 못하는 장백기를 떠올리는 건 반칙일까. 그동안 성생활에 담백한 편이라 자부했는데 사무실에서 펜을 잘근 무는 입술 끝, 뽑아준 캔커피를 감싸쥐는 손, 탕비실 싱크를 짚고 선 뒷모습, 그리고 지금 조금 취해 안경 너머의 눈동자를 반쯤 덮어버리는 속눈썹. 그런 사소한 것들로 머리를 지끈하게 하고 아래가 뻐근해지게 하는 너. 후우― 한계다. 길게 뱉어낸 담배를 비벼끄고 일어서 장백기에게로 성큼 다가간다.
“이만 들어가죠.”
갑작스레 뒤에서부터 몸을 받치는 통에 당황스러웠는지 너는 눈을 데굴 굴린다. 아, 그런 짓은 내 앞에서만 하면 좋겠는데……. 어디서부터 교육을 지켜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혀 더욱 불안한 내 연인.
“강 대리, 이런 자리에서까지 후배 하드 트레이닝 시키는 건 너무하다. 백기 씨, 들어가 쉬어.”
급격하게 굳어진 내 표정과 말투가 후배에게 부담을 주는 거라 생각했는지 직속후배도 없으면서 따라온 황현이 옆에서 한 마디 한다. 풋― 소주잔을 들이키다 의미심장하게 비웃는 준식의 비아냥을 뒤로 하고 백기의 한 팔을 붙잡은 한석율의 손을 쳐낸다. 준식아, 넌 네 부사수 손버릇이나 좀 고쳐줬음 좋겠다.
엉, 잘 자! 우린 늦게 들어갈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손을 붕붕 흔드는 동식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복도로 장백기를 끌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야 반나절만에 사적인 말을 나누는 것이다.
“몇 호였죠?”
“303호요.”
“우리가 침대방을 씁시다.”
네? 놀랐는지 번쩍 뜨이는 눈동자와 귀 끝부터 서서히 달아오르는 얼굴과 수줍은 눈빛. 이제야 뭘 할지 알아챈 겁니까? 귀에 속삭이니 간지러운지 품에 안겨 바르르 떨어댄다. 그 솔직한 반응에 당장이라도 키스하고 싶은데 ‘3층 입니다.’ 눈치없는 엘리베이터 목소리가 먼저였다.
▼ ▲ ▼ ▲
‘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밖으로 낚아채 벽에 밀어붙이곤 귀 끝에, 눈꺼풀 위에, 코 끝에 키스한다. 아, 대리님… 띵- 띵- 세 개의 엘리베이터가 저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알릴 때마다 경고음처럼 들리는지 시선을 마구 흔들어대는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입술이 닿으려하자 팔로 내 가슴을 슬쩍 민다. 한쪽 눈썹을 치켜든 채 시선을 주자 저, 드-들어가서 해요…, 하는 너는 꼭 처음 나와 몸을 마주할 때 같다. 강해준, 어쩌다 이렇게 장백기 생각뿐이지? 분명 먼저 좋아한 건 저 쪽인데 이렇게까지 애닳아하는 상황은 좀 억울하다. 싫은데요? 괜히 오기를 부리자 귀여운 연인은 입술을 비죽이더니 촉, 하고 제 입에 살짝 닿았다 떨어진다. 제발요…. 살짝 물기가 서린 투정. 아, 장백기. 기어코 이성을 지탱하던 회로를 녹여놓는군.
급하게 303호 카드키를 열고 들어가 문이 닿히기도 전에 입술을 집어삼킨다. 몸이 먼저 맞붙은 탓에 엉망으로 꼬인 걸음은 우당탕 소리를 냈지만, 이미 그런 것들엔 관심이 없다. 급하게 불이 붙은 탓에 제대로 호흡도 하지 못하는 장백기의 헐렁한 면 반팔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었다. 흐윽, 싸늘한 곳에 마악 들어선 것처럼 몸을 떠는 너의 작은 전율. 옆구리부터 이어지는 짜릿한 곡선을 지나 판판한 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아래를 맞부딪힌다. 작게 앗, 하는 탄성을 내며 허리를 벽 쪽으로 뺀 네가 슬쩍 눈을 내려 아래쪽의 사정을 본다. 성기가 일어서는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포츠팬츠를 발견했는지 시선을 올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안 그래도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이 이제 홧홧할 정도다. 일부러 무릎으로 다리 사이를 자극하며 시선을 맞부딪히자 거의 울 것 같이 변하는 백기에게 속삭인다.
“이제 브레이크는 없습니다, 장백기 씨.”
거의 안아들다시피 침대가 있는 방으로 밀어넣고 문을 잠궜다. 딸깍, 하는 소리에 입이 마르는지 침을 삼키는 겁 많은 연인을 달래기 위해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상의를 벗긴다. 희고 탄탄하고 묘하게 굴곡진 몸을 밀어 침대에 부드럽게 눕히고 내려다본다. 고개를 숙여 이미 내 손장난으로 불긋해진 자국들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배꼽을 지나 그 아래의 치골로 입술을 가져다대자 턱밑의 숨결이 불안정해진다. 반바지의 버클을 끌러 지퍼를 반만 내리고 드로즈 밴드 주변에 키스를 퍼부었다. 제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입술을 떼고 올려다보며 웃자 백기가 입을 달싹인다.
“키스해주세요.”
그럼요, 누구 분부신데. 고개를 끌어당기자 웃는 얼굴이 예쁘다. 내 연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요망해졌을까. 처음엔 밭은 숨을 뱉어내느라, 나중엔 음절로 단위로 끊어내는 통에 내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못하던 장백기는 이제 키스를 요구할 줄 아는 여유도 갖췄다. 으응― 콧소릴 내는 것마저 너무 내 취향이라 위험한 장백기. 야살스러운 몸짓과 자극적인 소리가 내 이성을 아무렇게나 뒤섞어놓는 통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그의 몸 위에 올라타 탈의하고 있었다. 내 몸을 정면으로 보는 그의 눈에는 경탄 비슷한 것이 섞여있어 이미 빳빳하게 선 아래가 꿈틀거리며 고개를 쳐든다.
“다 당신 거야, 장백기.”
백기의 하얀 손에 손을 겹쳐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과 배의 근육이 짜신 선들을 지나 드로즈 아랫부분까지 주욱 쓸어내리자 아래에서 허리를 움찔거린다. 으응, 대…리님… 빨리― 액셀레이터 작동을 요구하는 연인의 요구에 나는 핸들을 쥐듯 반바지 위로 백기의 엉덩이를 움켜쥔다. 실컷 원을 그리다 걸리적거리는 반바지와 드로즈를 한 번에 내리고 그 덕에 숨김없이 드러난 다리를 한 쪽씩 어깨 위로 걸친다. 늘 처음인 양 일렁이는 눈을 바라보며 드로즈를 내리자 갑갑했다는 듯 튀어나오는 페니스에 걸쳐진 몸이 떠는 것이 느껴진다. 떨지 말라는 뜻으로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쓸어주자 팔목을 잡아챈다. 뭐하는 겁니까, 묻기도 전에 내 손가락을 핥짝이며 유혹하듯 눈을 감는 장백기. 얼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달라는 재촉의 제스쳐에 허, 하고 기가 찬 웃음이 튀어나온다. 안 그래도 이쪽에 잠재력이 뛰어난 애한테 너무 잘 가르친 셈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임계치를 넘어선 자극을 줄 수 있는지 알 정도로.
“다른 남자 앞에서 이러면, 기필코 둘 다 죽여놓을 겁니다.”
복수를 하듯 백기의 페니스를 쥐었다놓으며 으르렁대자 손가락을 맛있게 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제 모르겠군. 걸쳐있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콘돔 비닐을 물어뜯고 물리지 않은 한 손으로 씌운다. 타액으로 젖은 손가락 두 개를 한꺼번에 엉덩이골 사이에 꾹 누르자 헐떡이는 몸에 황홀한 기대가 감돈다. 읏, ㅇ흐흣! …그리고 그 기대는 한 번도 나를 등진 적이 없지. 거친 손가락 운동만으로도 앞이 부푸는 백기를 보며 슬쩍 웃는다.손가락이 세 개째 늘어나고 안을 휘적이다 척추신경이 반응하는 지점을 지나자 그는 도리질을 치며 애원한다. 흐윽―손… 말, 고오. 말고? 되묻자 대리님 거… 넣어주세요. 눈시울을 붉힌 채 말하는 통에 여유를 잃었다. 손을 빼낸 후, 차갑고 끈적이는 질감이 닿자 움찔하는 백기의 몸에 단번에 들어간다.
아앗, 흐- 우는 것 같은 신음을 뱉던 백기가 손을 맞잡아온다. 선단 끝까지 밀어넣자 끝내 목울음을 삼킨다. 널 아프게 할 의도는 없어. 땀으로 미끄러진 안경을 벗기고 잡은 손등에 연신 입을 맞춰주자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장백기는 마치 성녀를 연상시키는 저런 청순한 얼굴을 하곤, 무릎을 굽혀 내가 잔뜩 달아오른 몸에 더 가까이 가도록 부추긴다. 아래가 꽉 맞물리는 느낌에 찡그렸던 얼굴이 그 동작 하나에 유연한 웃음으로 뒤바뀐다. 나를 이렇게 애처럼 만드는 것이 네 살 어린 남자라는 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슬쩍 허리를 움직이자 으응― 하고 매달려오는 통에 정신은 통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 순간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인생의 제 1 원칙인 전념을 온통 장백기에게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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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으로 만족하기엔 자극이 역치를 한참 넘어섰다. 아래에서는 욕정이 가라앉지 않고 기승을 부렸고, 가슴 안으로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애정을 밖으로 꺼내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터였다. 결국, 세 번 정도 콘돔을 바꿔끼며 내 취향이 아닌 곳이 없는 몸을 구석구석 쥐고 예뻐했다. 고통과 쾌락의 아찔한 선을 넘나들며 목이 쉴 정도로 녹초가 된 백기의 귀에 몇 번이나 사랑한다 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정신이 든 건 습관처럼 5시에 홀로 깨었을 때였다. 더운 것도 모르고 꼭 끌어안은 채 잠든 백기에게 눈길을 주다가 일어서 바닥을 내딛었다. 그제야 방 안 가득한 교합의 흔적과 살냄새들, 엉망으로 벗어제낀 옷가지들이 눈으로, 코로 느껴진다. 옷가지를 치워놓다가 둘 다 갈아입을 옷이 거실 한 쪽에 밀어놓은 캐리어에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브리프만 대강 걸친 채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성큼성큼 걸어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방문으로 들어오려다 부엌 테이블의 인영에 놀라 떨어뜨리고 만다. 물을 마시고 있는 동식이다. 쿠웅, 하는 작은 소리와 동식의 아이쿠, 깜짝아! 하는 감탄사가 동시에 들린다. 혹여 옆방에서 깨지 않을까 주의시키자 동식이 피식 웃는다.
“괜찮아. 장그래 지금 씻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둘 다.” “몰라서 묻냐?”
숙취가 심해서- 같은 모범 대답을 기대했건만, 더 이상 첨언하지 않는 동식의 지긋한 눈빛에 머리가 딱딱 아파온다. 저야 괜찮지만, 겨우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장백기가 걱정이다.
“다 들었군.” “다 들켰네, 가 맞지 않겠어?”
물컵에 알로에 음료를 가득 따른 동식이 잔을 내밀지만 마실 기분이 아니다. 맥주를 마시듯 한 컵 시원하게 들이킨 동식이 어깨를 팡팡 두드린다. 그냥 잘된 거라 생각해. 우리도 어디까지 모르는 척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끄럽게 해대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킥킥대는 얼굴에 고맙다고 해야할지, 평소처럼 틱틱대야 할 지 몰라 빈 잔에 삼다수를 채운다. 이로써 성준식만 알던 비밀연애가 영업 3팀까지 오픈된 걸 알게 됐고, 가만….
“또 누가 알아?” “다 알아, 새꺄. 일찍도 묻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하다. (곰 같은) 하성준도? 하니 고개를 끄덕, (항상 안쓰러운 눈으로 백기를 보던) 안영이 씨도 알아? 다시 고개를 끄덕. 시발, 한석율 그 새끼도? 걔가 젤 먼저 알아챈 것 같던데? 머리를 감싸쥐자 동식이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널 봐. 모르는 게 이상한 거야. 널 그렇게 만든 게 장백기일 거라곤 아무도 상상 못했지만, 걔 덕분에 강해준의 솔직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게 다들 재밌는 거지.”
다들 한통 속으로 모르는 척 하는 덴 그런 이유가 있었다. 내가 좀 이상하긴 했지, 그래도 말야….
“다 좋은데, 우리 애는 모르게 해.” “어쭈, 우리 애…? 짝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나참.”
너 진짜 우리한테 밥 거하게 쏴야 해, 어? 아주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 기세인 동식에게 한참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약속을 받아냈다. 들어온 방에서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우리 애, 장백기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상하지? 우리가 사랑하는 걸 여기저기서 안다는데, 다들 내 변화를 비웃는데 나는 왜 기분이 좋을까. 네가 준비될 때까지 난 모두의 입을 다물릴 준비가 되어있다. 쉿, 너만 모르게.
너만 모르게, 끝 .
Comments: Thanks to 짙님(@SteelGay) 덕분에 제 티스토리에 처음으로 달달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짝짝)
침대방 쓰려고 백기 끌고 심각한 분위기 연출하는 강댈님은 은근히 귀엽지 말입니다. 모두가 아는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 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대리즈한테 온갖 셔틀 좀 당하실 팔불출 대리님ㅎㅎ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라며,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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