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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밭에 감추인 보화
날짜 : 2022년 6월 26일
강사 : 2022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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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 천국을 소유할 자격은 누구? – 패스티브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예수님의 비유는 무심코 넘겨도 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는 ‘감추인 보화’처럼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진리가 담겨 …
Source: pasteve.com
Date Published: 3/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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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마 13:34)
예수님은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땅은 무수히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아브라함 때로부터 그 지역은 크고 작은 전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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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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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 “천국은 마치 자기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마 ...
천국을 밭에 감춘 보화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을 하는 것이고, 또 감추인 …
Source: ko-kr.facebook.com
Date Published: 1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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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오해했다. – 브런치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긴 비유도 있지만, 아주 짧은 비유도 있다. 밭에 감추인 보화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3/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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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감추인 보화 – 다음블로그
‘밭에 감추인 보화와 좋은 진주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 그것을 소유하기까지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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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곳이라고 비유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
Source: gp.godpeople.com
Date Published: 1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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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천국과 감추인 보화 – 국민일보
‘보화 비유’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물과 같은데 어떤 사람이 밭에서 그 보물을 발견하고 집에 돌아가서 있는 소유물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서 보물 …
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8/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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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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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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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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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마28:20)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와 하나님 종들과 성도들과 함께 합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이 하나님 교회에 붙어서 어떤 맡은 부분을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주고 역사를 해줍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고 무시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축복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 살면서 죄를 많이 지었겠습니까, 안 지었겠습니까? 많이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 세상을 죄악 된 세상이라 얘기합니다. 이 세상엔 죄가 버글버글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하고 같이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를 짓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든 죄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말씀하시고 성막을 지어놓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성막의 제도와 제사법으로 행하게 하였으니, 그런 구원의 법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해 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나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나와 여러분들도 부족합니다. 부족해서 죄를 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에게, 교회에게 물과 성령의 복음이 있어서 그 물과 성령의 복음의 진리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씻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해주신 물과 성령의 복음을 날마다 들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깨끗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31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단에 가까이 가서 직무를 행하게 될 때 수족을 반드시 씻었다는 것입니다. 손과 발을 반드시 씻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직무를 행하려면 첫째로 하나님이 거룩한 것같이 자기도 거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완벽하게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육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날마다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하나님의 일을 받들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물두멍에 물로써 수족을 씻어서 거룩해진 다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맡긴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나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고자 하고 영적인 일을 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물과 성령의 복음으로 우리의 죄를 없애주신 진리,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주신 진리,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세례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셔서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주신 진리를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써 믿음으로 죄를 씻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깨끗해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교회와 함께 역사하신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날
우리는 지금까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오해했다.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긴 비유도 있지만, 아주 짧은 비유도 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단 한 절의 짧은 비유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일반적으로 이 비유는 바로 이어 나오는 진주를 사는 장사 비유와 쌍둥이 비유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두 비유는 쌍둥이가 아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천국은 보화와 같다’고 했고 두 번째 비유에서 ‘천국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둘은 똑같은 분석 방법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Kistemaker, p.70). 사실 두 비유는 예수님께서 차례로 하셨는지, 아니면 마태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비유를 한곳에 모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비유를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보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 보화가 묻힌 밭을 샀다는 사실이다. 천국을 찾은 사람은 천국을 사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숨겨진 세상을 샀다(Ellul, p.306). 헬무트 틸리케는 ‘그 밭은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였다(Thielicke, p.75). 보화는 은밀한 장소나 귀중할 것을 숨길 만한 특수한 현장에 있지 않았다. 보물은 있을 리 없다고 여기는 밭, 즉 우리 삶의 현실에 있다(김민웅, p.116).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하늘에 있는 줄 생각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는 죽어야 가는 곳으로 먼 미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천국)는 전천년주의자들이 이해하듯, 그리스도 재림 이후 이루어진 평화와 공의의 천년왕국과 같은 것이 아니다(Timmer, p.55).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있다’고 하였다. 농부는 밭을 일구다 암초에 부딪힐 때 “에이 이 망할 놈의 돌”하면서 불평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고통과 아픔과 좌절은 암초 같아 보이지만, 달리 보면 그건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보화일지도 모른다. 헬무트 틸리케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삶의 쟁기가 부딪치는 운명의 딱딱한 덩어리, 우리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번민하는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보화입니다”(Thielicke, p.76).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삶에 어려움은 수없이 많다. 오죽하면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였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뜻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사람은 인생의 암초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암초 속에 숨겨놓은 하나님의 보화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자끄 엘룰은 세상을 피하여 천국을 추구하지 말라고 권면한다(Ellul, p.307). 천국은 이 세상이란 밭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씨앗을 땅에서 제거해서는 안 되며, 누룩을 반죽에서 제거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곳은 이 세상이며, 이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한다. 천국은 세상에서 벗어나므로 얻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으로 들어가, 그곳을 개간해야 한다. 비록 그곳이 우리 땅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꾼은 그 땅을 최선을 다하여 개간한다. 보물은 바로 그때 발견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만 발견하려고 해선 안된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어떤 악조건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자세와 품위를 유지하며 일할 때 그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비유를 오해하는 대부분은 보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치러야 할 희생이나 대가에 강조점을 두는 경우다. 블룸버그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 고귀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Blomberg, p.355). 불트만 역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결단’이 이 비유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하였다 (Bultmann, p.8). 그러나 튀빙겐 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던 에버하르트 융겔은 ‘그건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그러한 보물에 대해 기뻐하는 자는 이미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단은 이미 내려졌다. 발견이 발견자에게 그러한 결단의 수고를 이미 덜어주었다. 발견자의 저 행위는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Jungel, p.214).
융겔은 ‘밭 가는 자가 발견한 보물과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언뜻 보면, 밭 가는 자가 밭을 사기 위하여 자기 전 재산을 파는 모습이 훌륭해 보여, 그것을 강조하기 쉽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밭 가는 자의 대가나 희생을 강조하면, 자칫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를 강조하는 사상으로 오용될 수 있다.
이 비유의 강조점은 밭 가는 자의 희생이나 대가에 있지 않고, 그 밭에 숨겨진 보화의 가치에 있다. 자끄 엘룰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인간의 반응으로 이 비유를 설명하였다. 창조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보화는 인간이다. 하나님에게 인간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얻기 위하여 가장 귀한 것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불하셨다. 하나님은 값진 보화인 인간을 얻으려고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할 뿐임을 알게 된다(Ellul, p.308).
정확히 계산하면 농부의 전 재산을 팔아도 보화를 사기에 충분치 않다. 그건 그 밭을 사는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밭에 숨겨진 보화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밭 가는 자의 희생과 대가는 보화를 얻기에 절대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라는 보화를 얻기 위하여 치러야 할 희생이나 대가나 공로나 선행은 절대 충분하지 않다. 밭 주인은 소작농에게 밭을 사라고 강요한 적이 전혀 없었다.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판 것을 순전히 밭 갈던 소작농의 자발적인 결단이었다.
보화에 비하면 농부의 희생과 대가가 별 볼 일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한 우리의 희생과 선행과 공로는 보잘것없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결코 인간의 공로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분명 있다. 보화(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공로라는 조건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한다고 할 때 그건 자동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존 팀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졌던 가치관,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라고 한다(Timmer, p.55).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세상 나라에서 유지했던 삶의 자세와 우선순위와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어 재조정해야 한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소유 전체를 팔기 위하여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고통을 느끼거나 갈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보화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의 발견은 삶을 완전히 뒤엎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이제 완벽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는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만일 그가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다면, 그가 발견한 보화, 곧 복음,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헬무트 틸리케는 말하였다.
“그 사람이 그 보물을 발견한 후에 모든 것은 변하였습니다. 그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안목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새로운 마음뿐만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 숨은 보화를 발견합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생활을 우리의 삶 전부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삶에 붙어 있는 부차적인 종교적 부가물로 여긴다면,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Thielicke, pp.81-83)
틸리케는 현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전부임을 깨닫지 못하고 ‘약간의 하나님’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자끄 엘룰은 일부 교회의 전도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이 비유를 통하여 지적하였다. 일부 교회는 계속해서 지옥과 영벌을 전파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소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다. 예수 믿는 자신들은 천국 가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모두 지옥 간다는 메시지다. 매우 도전적이고 공격적이며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이 비유가 가르치는 방식과 정반대이다. 심판에 관한 설교는 성령과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경고로서 교회 안에서만, 가르쳐야 한다. 그건 그리스도인만이 마지막 심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Ellul, p.310).
아직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옥과 영벌을 전하는 것은 파괴적인 자살행위다. 이것은 회개하라는 요청일 수 없고, 사람들의 두려움과 연약함을 이용할 뿐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Ellul, p.311)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보물이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은 복음이지 저주나 심판이나 정죄나 판단이 아니다. 우리는 보화를 발견한 자로서, 언제나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아가 이 보물을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Blomberg L. Craig, Interpreting the Parables(비유해석학), 김지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 1996.
Bultmann Rudolf,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신약성서신학), 허혁 옮김, 성광문화사, 1983.
Ellul Jacques, On Freedom, Love, and Power(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 전의우 옮김, 비아토르, 2017
Jüngel Ebehard. Paulus und Jesus :Eine Untersuchung zur Präzisierung der Frage nach dem Ursprung der Christologie(바울과 예수), 허혁 옮김, 이화여대 출판부, 1990.
Kistemaker Simon, The Parables of Jesus(예수님의 비유), 김근수, 최갑종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Thielicke Helmut, ‘그리스도와 삶의 의미’(Christ and the meaning of Life), 이계준 옮김,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83년
Timmer John, The Kingdom Equation(하나님 나라 방정식), 류호준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김민웅,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가지 비유와 깨우치는 사람 이야기, 기독교사상 2010. 8, 114-121(8pages), 대한기독교서회
https://youtu.be/am59mq2sGqw
밭에 감추인 보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과 삶
성경본문;마13:44-46절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주로 유대인들을 향한 천국비유입니다. 반면에 좋은 진주비유는 이방인들을 향한 천국비유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좋은 진주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 그것을 소유하기까지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신앙에는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과 더불어 값진 희생도 따라야 함을 일깨워 주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천국은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천국의 가치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칠푼이가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큰 금 덩어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땅 속에 깊이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금 덩어리가 묻혀 있지 않음. 칠푼이백.” 그 마을에 사는 팔푼이가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몰래 그것을 파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또 써 붙여 놓았습니다. “나는 절대로 금 덩어리를 훔쳐가지 않았음. 팔푼이백.” 나중에 칠푼이가 와 보니까 금 덩어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속이 상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구야! 누가 내 금 덩어리 훔쳐갔어? 팔푼이 한 사람만 빼놓고 모두 다 나와!”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본문 44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이 비유의 역사적 배경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가 숨겼는지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리할 수 있는 것은 고대 팔레스타인에서는 잦은 전쟁으로 보화를 집보다는 종종 밭에 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땅속에 묻어두는 일이 곧 은행에 맡기는 것만큼 안전했습니다. 원래 유대민족은 수많은 전란에 시달린 민족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난을 갈 때는 값진 물건들을 대개 땅속에 파묻어 두고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난 갔던 주인이 때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그 보화는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가 농부들이 밭을 갈 때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밭의 주인이 아니라 소작인이거나 고용인이었을 것입니다. 소작인이나 고용인이 발견했을 때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보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그 밭을 소유할 때 합법적으로 그 보화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입니까? 첫째, 천국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입니다. 셋째, 천국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천국은 마치 공짜로 주어진다는 생각이 유행합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그런 생각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천국이 은혜로 주어지는 이유는 그 값이 너무나 비싸서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그 값을 치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그 가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정말 좋은 것은 댓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정말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최고의 댓가를 치를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천국은 너무나 가치가 있어서 그 댓가를 지불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진 것을 다 팔아 댓가를 지불하는 자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 천국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댓가로 지불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 농부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에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합니까?
1.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에 그 농부는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좋은 진주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무척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마13:44) 땅속에 묻혀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의 비밀입니다. 농부의 표정을 보십시오. “기뻐하여 돌아가서” 기쁨이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한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그 밭이 비싸다고 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밭을 기꺼이 사는 것입니다. 그 밭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팔아서 그 밭을 삽니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은 자에게 주님은 100배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면, 상인이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감격하겠는가? 그런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있기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 믿는 것으로 목 베임을 당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핍박과 고난을 당하여도, 감옥에 들어가도 기뻐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고, 가정에서 출교를 당하면서까지도 샘솟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 오는 감격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쁨이 넘치고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릅니다. 사죄의 기쁨, 구원의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를 믿는 후에 이런 기쁨을 얻지 못하였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농부의 심정을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소유한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보화를 발견한 그 농부의 소박하고 단순한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기뻐서 죽은 세 명의 시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의사가 다른 시신은 얼굴이 찡지러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세명의 시신을 활짝 웃고 죽은 것이 하도 이상해서 담당 간호사에게 묻었습니다. 왜 이 세사람의 시신은 이렇게 웃고 죽었습니까? 묻자 첫번째 시신은 10억원짜리 복권이 당선되어 너무 기뻐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두번째 시신은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하다가 심장 마비로 죽었습니다. 세번째 시신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아니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왜 시신이 웃고 있습니까? 사진 찍는 줄 알고 웃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고, 믿음으로 모세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처럼 기쁨이 넘치고 감격스럽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신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기쁨을 잃었다. 유머를 잃었다는 것은 곧 신앙의 본질을 잃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큰 비밀을 간직한 자들입니다.
농부의 모습을 보세요. 그 이웃 사람들이 농부의 이 기쁨을 알았을까요? 보기에도 허름한 밭을 구입하기 위하여 자기 전 소유를 팔아 사는 것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절대 이해 못합니다. 그들은 그 안에 보화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래요. 남들이 편히 쉬는 주일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를, 새벽마다 잠을 설치고 주님의 전에 와서 기도하는 이유를 알겠습니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물질까지 드리는 이유를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계산이 안 되고 바보처럼 보일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기쁨의 근원을 잘 모릅니다. 형편없는 땅을 붙잡고 기뻐하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기쁨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그 안에 소유한 자는 가난해도 부끄러워하거나 비굴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자들 또한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 그보다 수백 수천 배 가치가 있는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이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보화가 든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욕망은 대상이었던 물질, 성공, 명예, 자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입니다. 내 안에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 것들 때문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 것들로 싸우지 않습니다. 오직 기쁨으로 삽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자였던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임종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빙 둘러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성 프랜시스가 어린 아이와 같이 고함을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다못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 프랜시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도 창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숙한 순간에 좀 더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서 성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책을 떨었지. 미안하네. 그러나 내가 이제 곧 천국에 가서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만나 뵌다는 사실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기뻐서 그 감격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2. 그 농부는 그 밭에 감추인 보화에 생각과 관심과 열정을 집중하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농부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밤낮으로 생각하며, 열정을 집중합니다. 아침에서 그 밭에 가고, 한 낮에도 그 밭을 가고, 저녁 먹은 후에도 혹시해서 그 밭을 찾아갑니다. 농부의 마음속에는 24시간 그 보화에 있습니다. 이것은 보화의 가치를 알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황금을 발견하면 눈이 뒤집힌다고 합니다. 그 황금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긴다고 합니다.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그 마음속에는 그 황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황금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 재능, 시간을 전부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국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까? 천국이신 예수님의 가치를 알고 있으면 자나 깨나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의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나 죽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처럼 가치가 있습니다. 그 보물은 수천년간 땅에 감추어져 있는 금화처럼 오늘날 가치로 값을 매기기 어려운 가치있는 보물입니다. 천국은 그런 가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100살을 살지 못하고 다 죽습니다. 영생에 비교하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눈깜짝하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입니다. 천국의 영원한 삶은 세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다 모아놓은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팔레스틴 땅의 베들레헴이라는 곳의 허름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겠습니까? 이 메세야를 만나려고 하면 잃어버린 동전을 찾듯이 등불을 밝히고 빗자루로 샅샅이 뒤지는 것과 같은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동방박사는 메시야의 별을 찾아 수년을 헤맨 끝에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 성경이나 뒤적거리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나오리라”고 알아 맞혔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헤롯의 무리는 메시야를 경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나사렛 예수가 너무도 연한 순같고, 흠모할 것이 젼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신의 생각과 열정과 온 몸을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전부라고 믿는다면 나의 주, 나의 구세주,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믿는다면 나의 모든 인생과 시간과 재능과 열정을 그 분에게 집중해야 하지 않습니까? 에수님에게 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이고 참된 보화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천국을 얻게 하셨고, 영생을 얻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충만하십니다. 예수라면 비웃고 코웃음 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스도 안에 큰 보물이 있음을 알고, 내 전 생애를 걸고 전부를 걸고 그 보물을 사고 기뻐하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내 안에 풍성한 생명이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사렛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기 부인과 수고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7-9, 12)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달려간다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물이기에 사자 굴로 들어가면서도 찬양했고, 교수대 위에 올라가면서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화이기에 그 주님을 위해 고문당하면서도 놓임 받기를 원치 않았고, 조롱당하고, 채찍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기도 했고, 창과 칼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양과 염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산과 들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과 땅굴 속에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가장 귀중한 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편안하게 믿으려고 하며, 믿음의 댓가를 지불하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가까운 이슬람 교도를 한번 보세요. 그들은 라마단이라 하여 한달 내내 금식을 합니다. 하루에 다섯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헌신은 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습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한다면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손양원목사처럼, 주기철목사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땅을 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3. 그 농부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도록 헌신하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아무도 모르게 다시 깊숙이 묻었습니다. 그러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보화를 위해서는 ‘밭도 같이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은 무엇일까요? 밭은 보화 즉, 예수 그리스도가 숨겨진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밭은 교회입니다. “나는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아니다”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맞지만 하나는 틀린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예수님은 원하지만 그 사람은 아니다”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모두 반쪽자리 천국입니다. 그 사람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 사람도 사야 합니다. 그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그 보화를 얻기 위해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그 사람이 왜 전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겠습니까? 바로 밭의 참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보화가 감추어진 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밭을 사기만 하면 감추어진 엄청난 보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추인 보화란 천국을 말합니다. 우리가 천국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곳인지를 안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있어서, 이 땅에서 귀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이든지 버리고. 그 보화를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만큼 천국은 귀하고 좋은 것이며, 중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너무나도 기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속에 소유한 사람은 세상적인 것, 시시한 것 때문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속에 소유한 사람은 그까짓 세상적인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한 후에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그물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태는 세리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으니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샀어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 진주 하나로, 그 보화 하나로, 모든 것을 만족하였습니다. 이 보화, 이 진주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한 후에 자신의 모든 것 다 팔았고, 목숨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행20“24절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그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지불해야 합니다. 바울은 율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보화를 발견하고 나서 자기 과거의 모든 소유를 팔아치웠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그 보화를 소유하기 위해서 과거에 세상적으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팔아치웠습니다. 배설물처럼 여겨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기쁨으로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고 보화를 차지했듯이, 우리도 늘 삶 속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천국의 기쁨속에 살아가며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곳이라고 비유하셨을까요?
천국 하면, 꼭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 한번쯤 들어본 ‘천국은 마치’라는 찬양인데요.
왜 예수님은 비유로 천국을 설명하신 걸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천국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규삼 목사의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들의 행복’에서 정리했습니다.
천국의 비유를 깨닫는 순간, 하나님나라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고 하네요. 그 나라가 실재가 되는 그런 일상을 사모하게 되네요:)
비유로 설명된 하나님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가 되어 복된 인생을 풍성히 누리고 세상에 전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 사람들의 무지함 때문입니다
– 난해한 진리를 쉽게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커다란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 마13:44-46
밭에 감춰친 보화의 비유와 진주 장사의 비유의 공통점은 첫째, 모두 자신의 일터에서 하나님나라라는 보화를 발견했다는 점이고, 둘째,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보화를 소유했다는 점입니다.
나의 일상, 늘 일하는 자리, 나의 일터속에 하나님나라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면 나의 일터는 내가 생산성의 노예로 전락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자리가 됩니다.
하지만 머뭇거리면 하나님나라가 역동적으로 임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전심전력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나라가 역동적으로 임하는 영향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엄청난 발견 이후 하나님나라라는 보물을 완전히 소유하기까지 누리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보물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유 사이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라는 보물은 얼마의 돈을 갖고 있는지는 관계 없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는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절대적인 우선순위라는 뜻입니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부활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라면, 진주 장사의 비유는 예수님이 ‘나’라는 진주를 발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값으로 나를 사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를 귀한 진주로 보셨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구속 사역에 동참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이 일에 참여하는 우리의 모습을 미리 보시고 귀한 진주로 찾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통치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나라에 헌신한 인생은 행복합니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 장사의 비유는 전체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나라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역동성과 임재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가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이땅에 이루어 놓으신 업적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심으로 이 땅에는 하나님나라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내용 발췌 =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들의 행복
여러분에게 천국은 어떤 곳인가요?
[오늘의 설교] 천국과 감추인 보화
‘보화 비유’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물과 같은데 어떤 사람이 밭에서 그 보물을 발견하고 집에 돌아가서 있는 소유물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서 보물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화 비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첫째, 천국은 땅속의 보화처럼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의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11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여기 감춰진 보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동시에 천국을 가리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비밀’입니다.
구원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에 잘 감추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구속의 사건으로 시작하여 그 구원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Gospel)’입니다. 감추어진 복음의 보화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둘째,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넘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마 13:44) 땅속에 묻혀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의 비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 믿는 것으로 목 베임을 당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요즘은 천국을 소유하기엔 너무 세상이 좋고, 세상 속에서 살기엔 꺼림칙하게 만듭니다. 이같이 환경에 의해 움직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A W 토저(Tozer)는 ‘주변적 그리스도인(Circumferential Christian)’이라고 했습니다. 이 ‘주변적 그리스도인’은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늘 중간에서 재기 때문입니다.
여기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너무 기뻐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 것들 때문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 것들로 싸우지 않습니다. 오직 기쁨으로 삽니다.
셋째,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지불합니다.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다시 깊숙이 묻었습니다. 그러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보화를 위해서는 ‘밭도 같이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은 무엇일까요? 밭은 보화 즉, 예수 그리스도가 숨겨진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밭은 교회입니다. “나는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아니다”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맞지만 하나는 틀린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예수님은 원하지만 그 사람은 아니다”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모두 반쪽자리 천국입니다. 그 사람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 사람도 사야 합니다. 어떤 분은 “나는 예수님만 믿고,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세상을 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보화는 고상한 기도원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보화는 자기의 소유 전부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장찬영 목사(美 디트로이트 한인연합감리교회)
키워드에 대한 정보 밭 에 감 추인 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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