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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
베드로전서 2. …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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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베드로전서 2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베드로전서 2장 · 2절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3절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 4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
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8/15/2022
View: 4397
2016/05/23(월) \”베드로전서 2:1-10\”/ 작성: 이동규
본문 베드로전서2장1-10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25/2021
View: 3878
[베드로전서 2장 – 교사용]
베드로전서 2장. 1. 1절의 ‘그러므로’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말이다.
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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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 네이버 블로그
베드로전서 2장. 산 돌과 하나님의 백성.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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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 KLB;ESV –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한 생각과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십시오.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6/17/2021
View: 5071
베드로전서2장1-10절 – 성경묵상 – 설향목
베드로전서2장1-10절 ·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 …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8/12/2022
View: 6463
베드로전서 2:1-10,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찬202장) – 매일성경 …
악독은 남을 해치려는 여러 가지 악한 마음을 가리키며, 기만과 외식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을 …
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9/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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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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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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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
산 돌과 하나님의 백성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ㄱ)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ㄴ)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ㄷ)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2016/05/23(월) \”베드로전서 2:1-10\”/ 작성: 이동규
본문 베드로전서2장1-10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베드로전서에는 그 분량에 비해 ‘그러므로’라는 접속부사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그만큼 서신 전반적으로 앞뒤의 내용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무엇보다 베드로전서는 성도의 삶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역사의 종말을 인생의 기반으로 두고 있는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말씀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베드로 사도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합니다. ‘모든’이란 단어를 무려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부분적으로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모든 마음의 악과 거짓과 그릇된 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기분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고 끝까지 성도로서의 자신의 마음과 삶의 태도와 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곧 갓난아기들이 자신들의 양식이며 즐거움인 젖을 사모하고 바라듯이 성도의 양식이며 존재의 기쁨인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영혼의 배를 불리고 만족을 얻으며 수박 겉 핧기 정도가 아닌 세상의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고, 그 어떤 상황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구원의 진리를 더 깊게 더 풍성하게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3절은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공동번역은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라고 반어법적인 질문을 통해 강조합니다.
4-5절은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 존재의 변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4,5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4절은 먼저 우리에게 주님께로 나아오라고 말씀합니다. 공동번역은 주님께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해하라고 합니다. 곧 주님께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주님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산 돌’은 무슨 의미입니까? ‘산 돌’은 다른 번역본대로 ‘살아있는 돌’, ‘living stone’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산 돌’과 관련해 구약성경 이사야서와 시편 말씀을 인용해 말씀합니다.
6절에서 8절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사도는 ‘산 돌’을 ‘모퉁잇돌’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모퉁잇돌’은 7절 말씀대로 ‘모퉁이의 머릿돌’입니다. 곧 직각으로 꺽여지는 벽과 벽을 잇는 기초석으로 모퉁잇돌이 없이는 벽을 세울 수 없고 집 자체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모퉁잇돌은 집을 짓는데 필수적인 돌인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사도는 ‘산 돌’이 어떤 이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돌’, 그것도 살아있는 ‘산 돌’로 비유한 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주님은 생명을 위한 기초석임을 일깨워 줍니다. 곧 참된 생명은 주님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생명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과 연대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사장의 직무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보의 자리, 소명의 자리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죽은 이후에도 생명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주님 안에서 ‘아멘’이라고 분명하게 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는 자들로서 함께 주안에서 연합과 연대를 지향하고 누군가를 위한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서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리스도에 대한 걸림이 되고, 성령님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항상 말씀을 귀담아 듣고 묵상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9-10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바로 이제는 생명의 빛을 본 자들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에서 성도의 마음을 또 다시 배우고, 말씀에서 성도의 바른 태도를 또 다시 배우며, 말씀에서 성도의 언어를 또 다시 배우며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덕을 언제나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사는 우리의 이유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와 긍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 생명의 빛, 영원의 빛 오늘도 말씀과 성령님으로 또 보게 하시고, 그 빛이 모퉁잇돌이 되고 기반이 되어 오늘도 마음으로 태도로 언어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덕,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버려야 하는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2. ‘산 돌’의 의미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달라진 우리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4. 주의 백성 된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동규)
베드로전서 2장
베드로전서 2장
산 돌과 하나님의 백성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 그러므로~버리고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혤라어 ‘운’은 결과를 유도하는 접속사로 본절이 1:23-25의 결론임을 시사한다. 본절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가 취하여야 할 행동들을 나타낸다. 한편 ‘버리고’는 2절의 ‘사모하라’와 대조되어 믿음으로 갓 태어난 자들이 성숙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생활 태도를 제시한다(슥 3:3,4; 엡 4:22,23; 골 3:8,10; 약 1:21).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버려야 할 악덕들을 ‘모든’을 사용하여 세 범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 모든 악독(파산 카키안) – 이것은 단순한 ‘악의’와는 다른 것으로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모든 악들을 의미한다(행 8:22; 롬 1:18; 엡4:31; 골 3:8, Michaels, Lightfoot, Selwyn, Stibbs, Lenski).
※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판타 돌론 카이 휘포크리세이스 카이 프도누스) – ‘궤휼’의 헬라어 ‘돌론’은 ‘미끼로 끌어들이다’라는 의미의 ‘델로’에서 유래한 단어로 3절의 ‘순전’과 반대되는 ‘속임’을 의미하며, ‘외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크리세이스’는 ‘아래’를 의미하는 전치사 ‘휘포’와 ‘심판’을 나타내는 ‘크리시스’의 합성어로 겉과 속이 다르게 판단하는 죄를 가리킨다. 또한 ‘시기’는 자기 우월감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방해(妨害)하는 죄악을 의미한다.
※ 모든 비방하는 말(파사스카탈랄리아스) – 본문은 복수로 표현되어 남을 향해 무고히 ‘중상 모략’하거나, 악담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죄악은 악의에 찬 마음에서 비롯된다(12절; 롬 1:30; 고후 12:20).
벧전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절은 부정적인 금지 명령을 한 앞절과는 달리 긍정적인 명령문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 갓난 아이들같이 – ‘갓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티겐네타’는 ‘아르티'(‘방금’)와 ‘겐나오'(‘되다’, ‘나다’)의 합성어로 방금 태어난 상태를 묘사해 준다(Lenski, Robertson). 그리고 ‘아이들'(브레페)은 문자적로 ‘아직 출생하지 않은 아이’를 의미하지만(눅 1:41,44) 본문에서는 ‘네피오이'(‘유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눅 2:12). 이 ‘갓난 아이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에 대한 비유로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간절히 찾듯이 그리스도인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마 18:3; 막 10:14,15).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순전하고’의 헬라어 ‘아돌론’은 부정접두어 ‘아’와 ‘유인하다’라는 의미의 ‘돌로스’의합성어로 ‘궤휼'(1절)과 반대되는 거짓이 없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한편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기콘’은 ‘말씀’, ‘이성’, ‘교리’ 등으로 해석되는 ‘로고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혹자는 ‘말씀의 젖’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V, Calvin,Bigg, Caffin, Bengel, Keil, Lenski). (2) 혹자는 ‘사리에 맞는 젖’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SV, Vincent, Hort). 두가지 해석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바로 앞장에서도 ‘말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1:23-35) 본절 후반부에서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수하고 신령한 젖’은 가감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한편 ‘사모하라’의 헬라어 ‘에피포데사테’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상태를 나타낸다(빌 2:26). 베드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말씀을 갈망해야 함을 강조한다(시 119:20, Michaels, Blum,Calvin).
※ 이는 이로 맡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말씀의 젓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칭의 곧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단회적 사건이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성장하는 것은 일생동안 이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성장하고 성숙해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가능해진다(히 5:11-14). 본문의 ‘구원’은 마지막 날에 있게 될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화의 완성(完成)을 시사한다. 이런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속적인 성장으로 나타내 보여야 할 미래의 목표이기도 하다(1:5,9; 고전 3:1-4, Stibbs, Caffin).
벧전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리라 – 본절은 시 34:8의 인용으로 ‘에이'(‘만약’)로 시작되는 조건문이다. ‘인자하심을 맛본다’라는 것은 마치 갓난아이가 젖의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 위해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 그 능력 안에서 성숙해 가야 한다.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 저자는 본문에서 ‘버린’과 ‘택하심을 입은’을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배척당한 진정한 메시야임을 드러낸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는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여야 할 자칭 건축자들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실을 가리킨다(막 8:31; 눅 9:22; 행 4:11).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았다. ‘택하심을 입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크톤’은 ‘인정받다’라는 의미를 가진 ‘도키몬’에서 파생된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존귀함을 받았음을 시사한다(행 2:22-24).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 ‘보배로운’의 헬라어 ‘엔티몬’은 문자적으로 ‘존경을 받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영광을 가리킨다(1:19; 눅 7:2; 14:8; 빌 2:29).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배척 당하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교회의 영원한 기초가 되게 하셨다. ‘산돌’은 실제로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마 21:42), ‘생명수의 반석'(고전 10:4), ‘기초석'(고전 3:11), ‘심판의 돌'(단 2:34)로 비유되었다(Blum, Stibbs, Leighton, Selwyn). 이러한 비유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이신 예수를 비유하는 ‘산 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사실이며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교회의 초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한편 ‘나아와’의 헬라어 ‘프로스 혼 프로세르코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이 예수께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 한 번만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끊임없이 나아와야 함을 강조한다(Robertson, Lenski, Caffin).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는 언제든지 그로 말미암아 신령한 물을 마실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전 10:4,Hort, Bigg, Reicke). 본절은 예수께서 비록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을지라도 메시야로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의 구원의 반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과 같이 되었으니, 신령한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
※ 너희도 산 돌같이 – 베드로는 앞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산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도이 존테스’는 복수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한다(Lenski, Leighton, Robertson).
※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시 69:9;사 56:7; 막 11:17, Blum). 한편 ‘세워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스데’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롬 12:1;15:16; 고전 3:16: 엡 2:21-22; 3:6, Alford, Vincent, Stibbs, Leighton, Selwyn,Mi-chaels).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제사장’의 헬라어 ‘히에라튜마’는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한다(눅 1:8, Hort, Meyer).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caffin, Alford, Selwyn, Reicke).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출 19:6)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롬 12:1;빌2:17; 히 13:15; 계 1:6; 5:10; 20:6, Lightfoot, Calvin, Stibbs).
벧전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사 28:16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잇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경에 기록하였으되 – 베드로는 앞서 진술한 자신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티 페리에케이 엔 그라페’는 문자적으로 ‘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라는 뜻으로 이제까지 논증한 진술 곧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신 것과 그에게 나아가는 자도 누구든지 산 돌인 것이 성경 안에 이미 확증(確證)된 사실임을 시사한다(사 28:16; 롬9:33).
※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 본절은 사 28:16의 인용이다. 모퉁이 돌’에 해당하는 ‘아크로고니아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현관의 돌이라고 주장한다(Jeremias). (2)혹자는 건축물의 현관이나 기초를 닦는데 필요한 돌이라고 주장한다(Grant). (3) 혹자는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되는 돌이라고 주장한다(Lloyd,Calvin, Stibbs). ‘아크로고니아이온’이 ‘가장 높은’이란 의미를 가진 ‘아크로스’와 유대인의 건축 양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요 중심인 ‘모퉁이 돌’을 의미하는 ‘고니아이오스’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아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이것은 ‘모퉁이 돌’이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셔서 교회를 이루심을 시사한다(엡 2:20, Blum,Stibbs, Michaels). 한편 ‘시온에 두노니’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확정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두노니’의 헬라어’티데미’가 본절에서는 현재 능동태로 사용되고 8절에서는 부정과거수동태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역할이 이미 확정되었으며 지금도 수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지위가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8절; 마 21:42,44; 롬 9:33).
※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피스튜온에프 아우토 우 메 카타이스퀸데’는 문자적으로 ‘저를 믿는 자는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의미로 두려움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게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현재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Meyer).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벧전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시 118:22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벧전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사 8:14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여 각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어떤 가치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Wiesinger, Caffin).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 ‘보배이나’의 헬라어 ‘헤 티메’에서 관사 ‘헤’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는 자신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보배가 되심을 시사한다(Blum). 한편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두 가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본문은 시 118:22의 인용이다. ‘버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도키마산’은 문자적으로 ‘거절당한’이란 의미로(고전 9:27,RV)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거부당하신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시 118:22) 예수께서도 친히 그 예언을 확인하셨다(마 21:42;눅 20:17,18).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버렸으나 하나님은 배척당한 예수를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사 28:16을 반영하는 것으로(6절 주석참조;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하나님님에 의해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시사한다(Blum).
(2)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 본문은 사 8:14의 인용이다. ‘부딪히는 돌’은 길가에 있는 불필요한 돌들처럼 보행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방해물을 암시하며 ‘거치는 반석’은 덫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나 덫이 되며 심판의 돌이 된다(Origen, Caffin, Delitzch, Selwyn, Stibbs). 그러나 그리스도 자체가 장애물이나 덫이 되는 것은 아니다.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불신앙함으로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덫이나 장애물’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다(Beare, Blum).
※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문 역시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진술이다.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의 헬라어 ‘프로스코프투신 토 로고 아페이둔테스’는 문자적으로 ‘순종치 않아 말씀에 넘어진’이라는 의미로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순종치 않는 불신앙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에서 ‘이렇게’는 ‘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예정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Hort, Bigg, Caffin,Beare).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7, 8절과는 달리 믿는 자들의 신분적인 특권에 대해 네 가지로 언급한다((Caffin, Calvin).
※ 택하신 족속이요 – 본문은 사 43:20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을 시사한다. ‘족속’의 헬라어 ‘게노스’는 ‘혈통’ 혹은 ‘출생’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나 진정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의 연합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영적 이스라엘’을 나타낸다(1:23; 신7:6-7; 사 44:1-2, Robertson, Blum, Selwyn).
※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 본문은 출19:6의 인용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왕정의 제사장’ 곧 왕에게 속하여 왕을 섬기는 제사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Stibbs). (2) 혹자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롬 5:17,Clement, Bigg, Stibbs, Blim).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이다.
※ 거룩한 나라요 – 본문 또한 출 19:6이 인용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직책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시사한다(blum, Stibbs).
※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본문 출 19:5; 사 43:21; 말 3:17의 인용이다. ‘소유된’의 헬라어 ‘페리포이에신’은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고 획득된 것을 나타낸다(행 20:28; 엡 1:7; 살전 5:10, Robertson, Stibbs).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이다.
※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문은 하나님께서 위의 네 가지 신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신 이유이다.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이전에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사실을(롬 8:29,30; 엡 1:4) 시사한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구원하여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목적은 덕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덕’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스 아레타스’는 ‘찬미’, 혹은 ‘탁월함’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만이 갖는 온갖 종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실제적 행동들을 시사한다(stibbs, Calvin).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0 여러분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분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호 1:6,9,10; 2:23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후의 상태를 비교한다.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이후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롬 9:25,26, Bengel).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부르셨음을 암시한다(Caffin).
※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얻지 못하였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엘래에메노이’에서 ‘엘레에메노이’는 ‘엘레에오'(‘불쌍히 여기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이방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 못했음을 암시한다(Stibbs, Robertson, Caffin). 이와는 반대로 ‘얻은’의 헬라어 ‘엘레에덴테스’는 사건이 종결되었음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 하나님의 긍휼을 오랫동안 얻지 못하던 이전의 상태에서 단회적인 회개 사건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시사한다(Hort, Michaels, Stibbs).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했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복종하던 종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빛 가운데 있어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 사랑하는 자들아 – 이것은 베드로가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 모두 7회나 언급한 애정어린 호칭이다(4:12; 벧후 3:1,8,14,15,17). 이 호칭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용된 호칭이며(롬 12:19; 살전 2:8, Blum, Caffin)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는 간곡한 권면이나 무엇을 환기시킬 때 사용되었다.
※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 ‘나그네’의 헬라어 ‘파로이쿠스’는 일시적으로 거주하여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를 가리키며 ‘행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피데무스’는 거쳐가는 길손으로 정착자가 아닌 자를 나타낸다. 베드로는 이 용어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시민으로 신령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빌 3:20)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나 행인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유한(有限)한 것임을 시사한다(시39:12; 히 11:13, Stibbs, Lenski).
※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육체’의 헬라어 ‘사르키콘’은 단순한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육체에서 비롯된 정욕은 영혼 즉 하나님께서 부여하셔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삶을 어렵게 한다. 본문에서 언급된 ‘육체’와 ‘영혼’은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신분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합당한 영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타락된 악한 본능과 대적하여 싸워야만 한다(롬 6:6; 7:23; 고전 9:27; 갈 5:16,17; 골 3:5, Stibbs, Caffin, Blum, Leighton).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1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 ‘이방인’은 본래 육체적 혈통으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은 비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잡히지 않는 선한 행동을 해야한다. ‘선하게’의 헬라어 ‘칼렌’은 나타나는 행위뿐만 아니라(마 13:8) 그 본성까지 옳은 것을 의미한다(히 13:18).
※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삶 가운데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프튜온테스’는 ‘감시자’를 의미하는 ‘에포스테스’에서 유래한현재 능동태 분사로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함을 시사한다(3:2, Meyer). 한편 ‘권고하시는 날’은 눅 19:44을 반영한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위로와 해방을 주시는 날'(출 3:16; 삼상 2:21), ‘심판과 형벌의 날'(출32:34; 시 58:6)을 의미했다. 이러한 ‘권고하시는 날’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날이라고 주장한다(Kuhl, Calvin, Hunter). (2) 혹자는 마지막 심판날이라고 주장한다(Hart). (3) 혹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는 날이라고 주장한다(Moffatt).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방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方便)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 첫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Lenski, Stibbs, Blum).
벧전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3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 ‘제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세이’는 본래 ‘토대’나 ‘창조물’을 의미한다(막 13:19; 롬 1:25;고후 5:17; 골 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제정한 법과 질서에 대해 ‘크티세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제도들조차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암시하며(롬 6:1),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 윤리 생활을 사회 제도 내에서 충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시사한다(Meyer, Calvin). 그러나 인간이 세운 제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주를 위하여’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Bigg, Clark, Hoffmann). 본문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에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해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 ‘위에 있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휘페레콘티’는 ‘위에 서다'(휘페레코)의 능동태분사로 ‘보다 높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왕’은 신적 왕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통치자’ 곧 당시의 로마 황제를 나타낸다(롬 3:1,Stibbs, caffin). 베드로는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나 왕이 잔악한 폭군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복종해야 한다고 권면한다(요 19:11).
벧전2: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4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총독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하려고, 왕이 보낸 이들입니다.
※ 본문은 롬 13:3,4을 반영한 것으로 위정자들의 임무를 나타낸다. 위정자나 혹은 통치자의 역할은 악행하는 자를 징계하고 처벌하며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포상하는 것이다. ‘그의 보낸’의 헬라어 ‘디 아우투 펨포메노이스’는 문자적으로 ‘그를 통하여 보내어진’을 의미한다. 여기서 대명사 ‘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 Hort, Robertson). (2) 혹자는 로마 황제가 속주들을 다스리기 위해 총독들을 파송한 것을 근거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ffin, Bigg, Clark).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방백들은 범법자를 처벌하고 선행자를 포장(褒獎)하라는 황제의 뜻을 수행할 책임을 갖고 있는 지방총독이나 식민지 총독들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그들은 황제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방백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는 통치자라고도 할 수 있다(롬 13:1-7).
벧전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5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어리석은 사람들’의 헬라어 ‘텐 톤 아프로논’는 이성이 없을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을 의미하는데(고전 15:36) 본절에서는 위정자나 혹은 비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또한 ‘무식한’에 해당하는 ‘아그노시안’은 단순히 지식이 결핍된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배우거나 수용하기를 거절하는 것을 나타낸다(고전 15:34).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선행을 행하고 위정자들이나 법에 순복함으로 이방인 곧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잡히지 않아야 한다(12절, Stibbs, Caffin,Leighton).
벧전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6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
※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 ‘자유하나’의 헬라어 ‘호스 엘류데로이’는 문장 구조상 독립 주격구문으로 앞절의 ‘선행으로’에 연결된다(Alford).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자유를 방종이 아닌 합법적인 권위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내야 한다. 한편 ‘악’은 온갖 종류의 ‘악덕’을 의미한다(12,14절).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소유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오용하여 악덕을 행하는 구실을 삼거나 혹은 방종하는 구실을 삼아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 자유를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와 사단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이다(요 8:32,36; 롬 6:15; 갈 5:13). 그러한 자유를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에 자유를 사용하는 죄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롬 6:16-23).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언급한 방백이나 법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외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로 순복해야 한다(Stibbs).
벧전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7 모든 사람을 존경하며, 신도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경하십시오.
※ 뭇 사람을 공경하며 – ‘공경하며’의 헬라어 ‘티메사테’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강조성을 띤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Caffin, Blum,Stibbs).
※ 형제를 사랑하며 – ‘사랑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파테’는 ‘아가파오'(‘사랑하다’)의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된 자들을 계속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자들의 지속적인 우애를 가리킨다(1:22; 3:8; 4:8; 5:14, Stibbs, Caffin, Selwyn).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 ‘두려워하며'(포베이스데)와 ‘공경하라'(티마테)는 모두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행동의 지속성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중해야 하나 하나님과 왕을 섬기는 자세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왕을 존중하고 순복한다 할지라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멸할 수 없는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마 10:28). 따라서 하나님과 왕에 대한 태도는 상충(相衝)될 수 없으며 왕을 공경하는 것은 형제 사랑이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Alford, Blum).
그리스도의 고난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8 하인 여러분,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
※ 사환들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케타이’는 문자적으로 ‘집의 것’이라는 의미로 ‘가정에 소속된 하인’을 나타낸다(눅 16:13; 행 10:17; 롬14:4, Robertson, Caffin).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신분이 천한 ‘종'(둘로스)과는 다른 의미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종속된 자들을 가리킨다(엡6:5-7; 골 3:22-25; 딤전 6:1; 딛 2:9).
※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 ‘두려워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는 존경심을 가지고 경외하는 마음을 의미한다(17절).이는 형벌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환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들의 권위를 중시해야 함을 시사한다(엡 6:5, Lenski, Stibbs, Robertson). 한편 ‘순복하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탓소메노이’는 ‘휘포탓소'(‘순종하다’)의 현재 중간태 분사로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주인에 대해 순종해야 함을 시사한다(3:1; 롬 12:16, Robertson, Michaels).
※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러하라 – 사환들의 순종은 주인의 인격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과 ‘까다로운 자들’에는 관사 ‘토이스’가 연결되어 주인들의 인격을 암시한다. 여기서 ‘관용하고’의 헬라어 ‘에피에이케신’은 ‘양보한다’는 의미를 가진 ‘에이코’에서 파생된 말로 법같이 엄하지 않고 쉽게 용서하는 마음을 의미하며 ‘까다로운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스콜리오이스’는 ‘마음이 뒤틀린 자’란 의미로 성품이 온당치 못해 하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Alford, Robertson. Leighton). 사환들은 주인의 인격을 불순종의 변명거리로 삼지 말고 주인의 인격이 어떠하든지간에 순복해야 한다.
벧전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마5:11
19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 본절은 사환들이 까다로운 주인을 만나 부당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를 나타낸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는 인간의 행동이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하는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Caffin, Bigg). 사환들은 까다로운 주인에게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주인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 한편 ‘이는 아름다우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가르카리스’는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AV) 혹은 ‘이러한 것은 인정받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마 5:10-12에 대한 반영으로 종이 주인의 부당한 처사를 당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으면 그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은혜받을 증서가 됨을 시사한다(Caffin, Stibbs, Selwyn, Blum).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마5:10
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죄가 있어’의 헬라어 ‘하마르타논테스’와 ‘매를 맞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콜라피조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그 죄의 결과로 반복되는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생활 곧 사환들 자신에게 과오가 있어서 주인에게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본문은 19절에 대한 확대 해석이다. 고난을 받음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죄의 결과라면 수치스러운 것이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은혜로 받을 가치가 있다(Caffin, Moffatt).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1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호티’는 본절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참아야 하는 이유임을 시사한다.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 ‘부르심’은 본래 구원에 초대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암시한다(롬 8:28-30, Blum, Hort).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다(엡 4:1; 빌 3:12-14).
※ 그리스도도~하셨느니라 –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연결시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 너희를 위하여 – ‘위하여’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당하신 것으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순수하게 타인을 향한 목적에서 행동하셨음을 암시한다(요 10:11. Stibbs, Michaels).
※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고난을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속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난의 참된 본보기를 제시하시고 따라오도록 하셨다(마 20:28; 26:28; 눅 24:25-27,44-47, Bengel, stibbs, Blum,Leighton).
벧전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 “그는 죄를 지은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 베드로는 사 53:9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누죄하심에도 불구하고 고난당하심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께서 애매히 고난받는 자의 참된 모범이 되심을 확증하고 있다(마 26:60; 요 18:38; 19:4,6). ‘궤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돌로스’는 ‘거짓’을 뜻하는 것으로 당시 종들이 많이 저지른 죄악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고난받는 종들과는 달리 거짓이 없으실 뿐만 아니라 죄가 없으신 무흠하신 존재이셨다(Caffin, Stibbs, Leighton).
벧전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3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본절은 사 53:7을 암시하는 것으로 베드로가 친히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마 26:64).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법정에서 아무런 죄 없이 우리를 대신하여 심문과 고난을 당하시는 가운데서도 위협하거나 욕하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셨다.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의 헬라어 ‘우크 안텔로이도레이’와 ‘위협하지 아니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페일레이는 모두 미완료 시제로 그리스도께서 시종일관 죄를 타인에게 돌리지 않는 습관적 태도를 나타내 보이셨음을 시사한다(Robertson, Michaels).
※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자에게 부탁하시며 – 본문에는 목적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목적어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한다(Bigg, Caffin, Robertson). (2) 혹자는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눅 23:34, Alford). (3) 혹자는 주님에 관해 열리고 있는 재판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Vincent, Hart, Bengel). 세가지 견해 중 첫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부탁하시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디두’가 미완료 시제로 계속적인 위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눅 23:46에서도 주님의 죽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Stibbs).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을 대신하여 수많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 침묵하시고 도리어 모든 일을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께 자기 자신과 모든 결과를 맡기셨다(Bengel, Selwyn, Blum).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4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친히~그 몸으로’의 헬라어 ‘호스 아우토스~엔 토 소마티’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관계대명사 ‘호스’와 강조적 재귀 대명사 ‘아우토스’가 연결되어 자발적인 의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편 ‘담당하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넹켄’은 ‘제단에 희생 제물을 두다’는 의미를 가진 ‘아나페로’의 부정과거로 그리스도께서 속죄제물이 되신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죄인에 대하여는 제물을 대신하였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공의를 만족시켰다(사 53:12; 골 2:14;히 9:28, Kuhl, Bigg).
※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상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이유이다. ‘죄’의 헬라어 ‘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는 복수로,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디카이오쉬네’는 단수로 표현되어 죄인이 갖는 죄의 속성과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법정적인 측면을 나타낸다(롬 6:1-23; 갈 2:20).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동참하여 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본문은 사 53:5의 인용이다. ‘채찍’의 헬라어 ‘몰로피’는 본래 매질로 말미암은 자국이나 흔적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사 53:5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음을 드러냄으로(Lumby)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범을 바라보면서 순종하고 인내해야 함을 강조한다(Caffin, Leighton, Calvin).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5 전에는 여러분이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이,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 본문은 사 53:6의 인용으로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원받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길을 인식치 못하고 습관적인 방황에 빠져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Blum, Leighton).
※ 이제는 너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베드로는 상반절의 ‘전에’와 본문의 ‘이제'(뉜)를 대비시켜 구원받기 이전의 죄의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던 영적 죽음의 상태와 생명을 얻은 현재의 상태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목자’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었으며(시 23:1; 사40:11; 겔 34:23) 신약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자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마 25:32; 요 10:14; ; 13:20). 또한 ‘감독’은 ‘목자’와 거의 같은 의미로 목자의 기능적인 면, 곧 돌보고 감찰하는 면을 나타낸다(행 20:28).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죄인으로서 죄의 종노릇을 하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리스도에게 그 영혼을 보호받는다(4:19; 겔34:23, Bengel, Bigg, Leighton).
베드로전서2장1-10절
2018년 5월 14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 Hallelujah!
– 어제는 어버이 감사주일을 은혜롭게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잘 보내셨지요?
– 이제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주님과 동행하여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우리가 가끔 뜻하지 않는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감사하며 슬기롭게 잘 해결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 절대로 당황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으로 복음의 증인되어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베드로전서2장1-10절 }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제 목 ♥♥♥
☞ 성도들의 의무에 대해 권면하심
♥♥♥본문 이해와 요약 ♥♥♥
☞ 2장에서는 베드로는 성도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일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중생한 성도들이 주님의 소유 된 백성으로서 실천해야 할 성도의 의무에 관해 계속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영적 갓난아이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 갓난아이인 성도가 말씀의 신령한 젖을 먹고 성장 하면서 점차 과거의 죄악 된 행위를 버리게 되는 과정을 ‘성화’라고 하며, 성도는 이 성화의 과정을 통해 세워지는 성전이며 택함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 성도는 이방인들로부터 행실의 비방을 받지 말아야 하며, 성도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 특히 종들은 고용주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불문하고 참아 인내하며, 주님을 본받아 선을 행하고 고용주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 그리고 국가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 권세와 질서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신적인 섭리에 따라 세워진 국가는 상선징벌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유지하는 사역을 대행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 성도는 반드시 믿음의 행실과 의무를 다하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구원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직분과 사명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성도들은 이 세상의 부도덕에 오염되지 않도록 힘쓰며, 아름다운 언행을 유지하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 그리고 사회 제도와 신분을 초월해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함으로써 그 속에서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으며, 주의 종들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 누구든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할 때 망각하는 그 사람은 반드시 다른 길로 가게 되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 나라가 단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성도들의 목적이 될 수는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백성임을 알고 불의와 죄악이 만연되어 있는 이 세상 삶에서 우리의 믿음과 선한 행위로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부르신 목적을 알면 사명자로 산다. (베드로전서2장9절)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성도는 누구나 이미 택함 받아서 한없는 축복을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명자입니다.
– 9절을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택하신 족속’,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 이를 더 간략히 말하면, 주님을 영접함으로 인해 우리의 신분이 거룩한 성도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역겹게 만드는 고약한 죄악의 냄새만이 깊게 배어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왕 또 성결하고 거룩한 제사장이 된 신분이므로 놀라운 은혜이며 가장 큰 복을 받았습니다.
– 이제는 세상을 향한 생명의 빛과 살맛을 잃은 자들에게 소금처럼 맛을 더러내는 도구로 우리가 택함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부르신 목적과 사명에 있어서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택하여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설명입니다.
– 그래서 지금 내가 많은 사람 중에 택함 받은 것은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한’ 사명자인 것입니다.
– 여기서 ‘선전하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어떤 사실을 밖으로 드러내어 ‘보고하다’, ‘발표하다’라는 뜻을 기본적인 의미로 하며, ‘감춰져 있던 어떤 사건의 진상이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도록 공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하는 나는 이전까지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과장하거나 꾸며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본래의 의미와 보내신 자의 진정한 의도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알려야 하는 사명자인 것입니다.
– 그래서 지금 내가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 세상나라에 속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도구와 나팔로 택함 받았다면 이 땅에 이념 논리에 끌리거나 흔들지 말아야 합니다.
–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서 조금도 가감 없이 말과 행동으로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어떤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이에 대해 잘못 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하는 그 놀라운 사명 앞에 현재의 보수와 진보 그리고 여와 야에 휘말려서 복음의 본질을 벗어나서 세상 정치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변질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 평신도가 아닌 직분을 가진 목회자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이런 정치판에서 복음 대신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온당한지는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봅시다.
-딤후 2:15절에서 “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특정한 직분을 받은 분들 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래서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나 신앙 연수가 오랜 사람만이 이런 사명을 가진 것으로 착각합니다.
– 섭섭하지만, 이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사명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 또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거룩한 일을 하겠어요.’, ‘조금 더 배운 다음에 그렇게 하죠!’ 라고 겸손한 척 대답을 미루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이런 분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사명자를 부르시는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아니요!(No!)’ 라고 대답하고 “저는 싫습니다.” 라는 것과 같습니다.
– 이것은 절대로 겸손한 태도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과 택하심에 자신이 거절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성령님께서 나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 해 보고 새롭게 결단합시다.
– 성도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어 모두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 행 1:8절에서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주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나 이제 막 주님을 영접한 사람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의 덕을 선전해야 하는 직분 자들임을 명심합시다.
–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순간부터 위대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딤후 4:2절에서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지금 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의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것임을 확신하여 복음전하는 힘과 능력 달라고 기도 하면서 찾아 갑시다.
– 그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기도하고 성령님의 지시에 손해가 되고 고통이 되어도 겸손히 순종 해 봅시다.
– 성도 된 나는 이미 복을 받은 자이기에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고, 이 사명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는 삶에 충성하기로 결정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베드로전서 2:1-10,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찬202장) – 매일성경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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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새찬송가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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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1-10, 개역개정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1-10, 쉬운성경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1. 도입
거듭난 성도들도 하나님의 신령한 젖 곧 신령한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만 합니다. 어린 아이는 자라가야만 하는데, 어린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부모님의 걱정이 될 뿐입니다. 몸과 마음이 자라가듯, 성숙과 성장을 해야만 합니다.
영적으로도 건강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만 합니다.
2. 본문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2절과 같이 말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개역개정)
(1)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자라가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자라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버려야만 할 것들이 있는데, 베드로는 1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2:1, 개역개정)
악독은 남을 해치려는 여러 가지 악한 마음을 가리키며, 기만과 외식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시기와 비방하는 말은 이유 없이 남을 깎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악한 것들을 피해야만 합니다.
(2) 피해야 할 것이 있지만 또한 성도들이 갈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말한 순전하고 신령한 젖입니다. 마음에 악한 것들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신령한 양식인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온통 자신만을 생각하고 세상의 즐거움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사랑에만 관심이 있고 주님께서 주신 사랑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모합니다.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장성한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에까지 자라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4:20을 통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조언을 합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개역개정)
3. 결론
우리의 입술에 악한 말과 비난하는 말과 시기하는 말과 속이는 말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장성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주의 말씀을 우리 입술에 담고 살아갑시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우리의 영이 자라며 우리의 삶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했던 시편 1편의 저자와 같이, 주의 말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복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도 영적으로 장성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악한 생각, 비난의 말,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말씀대로 사랑하고 말씀으로 성장해 나가는 오늘의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의 말씀만을 묵상하며 사랑하게 인도하여 주시고, 말씀 속에서 복을 누리는 삶이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기도제목
1.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모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일군이 되게 하옵소서.
2. 우리 교회의 제직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옵소서. 장성한 주의 일군이 되게 축복하옵소서.
3. 환우들과 어르신들을 지키시고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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