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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 구절 : 시편 50:23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선교는 사명, 후원은 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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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라는 단어의 뜻은 “모든 일” 인데, 이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게 말은 쉽지 고속도로에서 누군가 새치기만 해도 열 받는게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
Source: usk.febc.net
Date Published: 2/29/2021
View: 5323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2018. 11. 18) – 주일예배말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en panti)라고 …
Source: fglpc.com
Date Published: 1/13/2021
View: 3582
하나님의 뜻 3 –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 주일낮 설교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환경이 닥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0/15/2021
View: 2521
데살로니가전서 5:16-18 KRV – Bible.com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4/21/2021
View: 3084
[칼럼] 범사에 감사하라 – 시카고 한국일보 – Korea Times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입술로는 편하게 자주 고백하지만, 실제 삶 속에선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Source: chicagokoreatimes.com
Date Published: 4/25/2021
View: 3556
범사에 감사하라 뜻, 성경구절 어디일까 – Colorful Story
무릇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매우 자주 들어본 말일 겁니다. · 1. 범사에 감사하라 뜻 · 범사는 ‘모든 일’ 또는 ‘평범한 일’을 가리키는 …
Source: donbada.tistory.com
Date Published: 9/11/2022
View: 3463
범사에 감사하라!!
그저 평범하고 아무런 일이 없을 때도 감사하는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뜻을 KJV 성경에서는 “in everything” 즉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게 번역할 …
Source: www.prok.org
Date Published: 1/16/2021
View: 2487
범사에 감사하라 – 뉴스앤조이
나머지 하나, 감사하지 못할 일이 해결되어서 그것부터 감사할 수 있어야 나머지 열 가지 감사할 만한 일에 대하여 제대로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6/19/2021
View: 8401
(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라”의 진짜 의미(上) – 기독일보
항상, 쉬지 말고, 범사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무슨 일에서나 누구와 있더라도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거나, 띄엄띄엄 쉬어가며 …
Source: www.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7/3/2021
View: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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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범사 에 감사 하라
- Author: 클래식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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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2. 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0ia5c_GOvLU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2018. 11. 18) – 주일예배말씀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2018. 11. 18 주일 낮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en panti)라고 하는데 ‘어떤 형편에서든지’, ‘모든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일에만 감사할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크게 감사할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양지에 있을 때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음지에 있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하나도 없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참뜻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부담감이 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한식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시장을 선도해 온 ‘본죽’의 최복이 이사장님은 한국의 IMF 사태로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빚쟁이가 되고, 자신은 그 충격으로 정신 병원에까지 입원을 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 호떡 장사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본죽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 분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시면 베풀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라고 늘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은 기도 중에 자신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말, 즉 언어가 늘 부정적이고 원망, 불평, 독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있습니다.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자신이 말로 뿌린 씨앗을 자신이 거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대로 가면 패망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말을 점검해 보니까 하나님의 언어, 축복의 언어, 성령의 언어, 생명의 언어, 살리는 언어, 긍정의 언어, 감사의 언어가 하나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했고 자신은 아프기 때문에 더더욱 부정적이고, 비뚤어지고, 구부러진 말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말이 비뚤어지고 구부러지면 인생도 비뚤어지고 구부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 말씀은 그분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기도를 하는데 끝을 다 감사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난이 내게 축복으로 바뀔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화가 복이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기도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시고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를 고쳐 주세요. 이렇게 기도문을 적은 노트가 수십 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잘 안 고쳐지더랍니다. 그 분이 얼마나 세게 기도했는가 하면 제 입술을 화저로 지저 주시고, 혀에 재갈을 물려주시고, 성령님이 끄는 말만 할 수 있도록 저 입술을 주장해 주시고, 입술에 파숫꾼을 세워 주소서.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 받을 말, 믿음의 말, 감사의 말, 긍정의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더랍니다.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제 안에 쓴 물이 있는데, 단 물을 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회개는 많이 했지만 제 안에 성경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이 레마로 주신 말씀을 쓰고 묵상하고 외우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새롭게 될 수가 없고, 맨날 이렇게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절박해서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씀을 읽고 레마로 주신 말씀을 쓰고 외우고 입으로 말했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을 믿고 외우고 입술로 고백하자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정신병이 낫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계속 외우고 고백하자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뱐하여 긍정적으로 소생되기 시작했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채워지니까 생각이 바뀌게 되고, 생각이 바뀌니 말이 바뀌게 되고, 말이 바뀌니까 하나님이 그때부터 복을 부어 주시기 시작해서 오늘날 자신이 그렇게 큰 복을 받고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원하시면 아멘!
복 받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음의 말, 축복의 말, 절대 긍정의 말,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1. 좋은 일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아니, 좋은 일에 감사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하시겠지만, 좋은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기도로 불치의 병을 고침 받고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것이 생각나지요?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왕하20:12-13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괘씸하게 여겨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하20:16-18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동일한 사건을 역대하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하32:24-26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을 남겨 두고 구원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셨습니다. 이제 가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꼭 들려야 할 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릴리와 사마리아 접경지역에 있는 한 나병환자 촌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10명의 나병환자를 만나십니다. 나병이라는 것은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지고, 코가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죽어가는 병인데 그 당시에는 난치병이요,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나병이 걸리면 가정에서 격리됩니다. 사회에서도 버림받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타가 저주받았다고 인정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레위기14장에 의하면 당시 나병을 판별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제사장이었습니다.
레14: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결국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은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이 나았음을 확인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피고름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가는 길이 다 나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로 그 순간 사마리아 사람 하나는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발 앞에 꿇어 엎드리고 사례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는 조건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으면 돌아와서 감사해야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섭섭해 하시는 것입니다. 감사가 의무도 아니고 치료를 위한 조건도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와서 감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계십니다.
그 아홉이 감사하지 않았으니 문둥병이 재발하리라 말씀하실 예수님도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는 말씀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10명인데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왜 한 사람만 돌아왔느냐? 이것은 바로 우리들을 향하신 책망이기도 합니다.
레나 마리아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입니다. 그는 스웨덴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두 팔이 없었습니다. 다리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 발로 타자도 치고, 한 발로 운전도 하고, 한 발로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그는 장애자 올림픽 수영에서 연속 3년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천사의 목소리 같아서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장애는 오늘이 있게 한 본질적 요소였지, 장애가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레나 마리아의 삶을 태양보다 더 밝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주 귀엽다. 하나님! 이런 자녀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므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종은 울려서 소리가 나야 종입니다. 감사가 없는 곳은 행복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행복해 집니다. 우리는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를 원하셔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곧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합니다. 이 추수기에 맞추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봄에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가을이 되면 그 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는데, 여기에 맞추어 큰 절기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챦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 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적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시사해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을 밝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사가 체질화되고 습관화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또 배우고 연습하고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2. 나쁜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이 이런 다니엘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단6:22-28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더라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살전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일반적으로 고난 가운데 감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믿으시면 아멘. 상황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대가로 감옥에 갔지만 그 길이 그의 꿈을 이루는 첩경이 되어 30살에 마침내 에굽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총리가 된 요셉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창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음을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항상 최상의 것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후12:8-10 이것이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한국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의 이름도 없는 무명의 시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3.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쉬운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정범진이라는 사람은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9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뉴욕에서 최연소 부장검사로 일하다가 최근에는 뉴욕시 형사 법원 판사로 지명되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판사는 매우 존경받는 자리입니다. 그가 쓴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단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다.” 그는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데 2시간동안 사투를 벌일 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절대로 당연시 하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숨 쉬고 있는 공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시는 물,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내 몸의 모든 기능, 하나님이 주신 자녀, 일용할 양식, 어느 것 하나 하나님으로 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날마다 풍성하게 주시니까 우리가 소중한 것을 받고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가 쉽습니다. 당연하게 여길 때는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체스터튼(G. K. Chesterton)이라는 사람의 말에 공감합니다.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려면 이와 같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나쁜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누리는 당연한 것들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환경과 처지에서도 감사한 다니엘의 평생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 3 –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 20190526
하나님의 뜻 3 –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믿음 생활이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환경이 닥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16-18절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아무 일 없으셨습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하루하루를 아무 사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무슨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빌 4:6, 골 4:2)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욥은 동방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자녀도 열 남매였습니다. 종들도 많았고 땅도 넓었습니다. 어느 면을 보아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뜻하지 않는 일들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많은 재산을 다 도둑질당하였습니다. 열 명의 자녀도 함께 잃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그는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을 정도로, 그의 종기는 심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욥을 조롱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욥을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신뢰했습니다.
욥은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8-10)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던 선교사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본국 교회가 어려워서, 선교비가 한 달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달 동안 보리죽만 먹으면서, 근근히 살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30일 정도 지났습니다. 몸의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본교회에서 선교비도 제대로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안식년으로 귀국한 그는 힘들었던 그때를 간증하였습니다. 간증이 끝난 후, 한 의사가 찾아와, 병에 대하여, 이것저것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선교비가 제대로 왔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 병은 30일 동안, 보리죽을 먹는 처방을 내려야 하는 병입니다.”
선교사님은 의사의 말을 듣고, 정확하게 자기를 관리하여 주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내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애굽 병사들의 추격을 받게 되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1-12)
그후에도, 무슨 일을 만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신, 항상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역대상 23:30절을 보면,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시 30:4)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왜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온 세상에 널린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걷어차 버리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롬 1:21)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우리들은 좋은 일만 만나기를 바라지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과 시련을 만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원망과 불평과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 왔느냐?”면 원망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이 “누구누구 때문이다.”라고, 고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냐?”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의 원인을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사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떠 올려 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원망하는 대신,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언젠가 이 힘든 일도 지나가고, 좋은 날이 있을 줄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유형이십니까?
원망과 불평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다른 사람을 탓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습니까? 좋은 일은 다 자기 덕분이고, 안 좋은 일은 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범사에 감사하십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감사하십니까?
늘 원망하고 불평하면, 원망하고 불평할 일만 생깁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면, 매사에, 감사할 일만 생깁니다.
시편 100:4-5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형편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찬송하십시오. 그리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된 것으로, 여러분에게 차고도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보면, 우리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되어지기를 바라는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안되었으면 하는 일들은 왜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지요. 우리의 생각대로 되어지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을지라도, 그러나 우리가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감사할 것인가?
이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원망입니까? 아니면, 감사입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감사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선택하는 것은 행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신앙의 시금석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비록 단칸방에 살아도,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강남의 백 평 아파트에 살아도, 감사할 줄 모른 사람은 불행합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행복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안과 건강도 찾아옵니다. 늘 노래하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좋은 환경 가운데에서도, 원망과 불평과 불만과 슬픔에 잠깁니다. 신세 한탄, 팔자타령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함을 잊어버린 사람은 인생 전부가 잠든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받았습니다.
받았으니, 당연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받아도,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욥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범죄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욥은 주신 것뿐만 아니라, 가져가신 것까지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욥처럼, 그리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라도,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헬런 켈러는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못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3주 동안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구조된 “에디”라는 사람은 “마시고 싶은 깨끗한 물과 먹고 싶은 밥만 충분히 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불평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삶에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대신 불행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감사한 일이 있어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감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느냐? 불평하는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사는 사람은 감옥에 안 가도, 매일 매일이 감옥생활을 하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감옥 같은 답답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행복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일이 잘 안 풀리고, 속상한 일도 많고, 건강하지도 않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사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을 헤아려 보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모두 다 감사한 것뿐입니다.
이 시간, 호흡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하나님의 집에 올 수 있는 발, 이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독일의 한 우화가 있습니다.
임금이 신하 한 사람에게는 “이 나라의 잡초 종류를 되도록 많이 수집해 오라”고 명령하고, 다른 신하에게는 “되도록 많은 종류의 꽃을 수집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1년 후 돌아와서, 잡초 수집을 맡은 신하는 “임금님, 잡초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온통 잡초로 덮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꽃 수집을 맡은 신하는 “임금님, 우리나라는 전체가 꽃동산입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주위를 둘러볼 때, 온통 잡초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꽃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원망거리, 불평거리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들만 보입니다.
오월은 장미의 계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장미를 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예쁜 꽃잎이 보이십니까? 아니면, 가시가 보이십니까?
골로새서 3:15-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곁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기분이 좋으십니까? 나쁘십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하는 말만 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6-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바넷 깁슨” 박사는 그가 쓴 “행복한 하루”에서 “당신의 마음 속에 감사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사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과 감사는 일치합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행복하면 또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 존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자 해독제이며 방부제다”라고 말했습니다.
본 회퍼는 “우리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별빛에 감사하는 자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는 영원히 지지 않는 은총의 빛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만나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6:10절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게 되면, 사자굴에 던져져서,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감사함으로 기도했습니다.
요나서 2:9절을 보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여러분! 중세의 한 수도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인상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라는 글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환경상으로 매우 비슷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옥을 지옥으로 만들고 수도원을 천국으로 만드는가? 감옥에서는 불평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수도원에서는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수도원에 있는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면 이 수도원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고, 감옥에 있는 자들이 감사를 발견한다면 그 감옥이 오히려 천국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자,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간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모든 일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는, 말이나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감사는 작은 것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감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감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비록 작아 보인다 할지라도,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리하면, 더 큰 감사거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절)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뜻대로 되든, 내 뜻대로 되지 않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구원의 주님!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주님! 매순간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자비의 주님! 매일 매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축복의 주님!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주님! 기하고 복된 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범사에 감사하라 뜻, 성경구절 어디일까
무릇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매우 자주 들어본 말일 겁니다. 마치 기독교 CCM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만큼이나 자주 들어봤을 법한 내용인데요. 정확히 범사에 감사하라는 무슨 뜻일까요? 오늘은 범사에 감사할 뜻 및 해당 성경구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범사에 감사하라 뜻
범사는 ‘모든 일’ 또는 ‘평범한 일’을 가리키는 명사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일 또는 평범한 일에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라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에 나오는 표현인데요 정확한 성경 구절은 무엇일까요?
2.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 구절
–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7절에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7)
기독교인들에게 삶의 지침과 같은 구절 중에 하나지요. 정작 이것을 삶의 지침처럼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무늬만 기독교인이고 선데이 신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생각해보면 늘 그래 왔던 것 같습니다. 종교가 발생한 그 순간부터 그중에 해당 종교를 진짜 믿는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요? 원래 소수였을 겁니다. 그러니 다수가 교회를 가는 상황에서 사건 사고가 많고 문제가 많은 것이지요. 그 다수 중에 정말 소수만 진정한 신앙인일 테니까요.
아무튼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라는 뜻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3. 평범한 일상에 감사를!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인 루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 일상에 대해 지겨움, 불평, 불만이 매우 많습니다. 연봉이 높아도 불만이고 공무원이라서 직장이 안정적이어도 불만이 있지요. 그러나 지나친 불만은 본인의 마음을 깎아먹게 마련입니다.
본인이 못 가진 것에 대해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우선 본인이 갖고 있는 장점이나 그래도 남보다 나은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 감사하는 게 인생을 길게 볼 때 더 좋습니다.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채워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부족하고 못 가진 것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취업해서 일이 너무 바쁘다고요? 누군가는 취업난에 취업도 못해서 울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에서 장점을 발견하도록 해보세요. 사지가 멀쩡해서 타자를 칠 수 있고, 눈이 잘 보여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고 웹툰도 볼 수 있습니다. 귀가 잘 들려서 누군가 애써 만든 귀한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요.
결핍은 사람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결핍으로 인해 매일 불평, 불만하면서 본인의 인생을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나를 더 사랑해주고 더 아껴주세요.
부족한 것은 인정하고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요?
TIP.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다는 무슨 뜻일까? 신실하다 뜻 (feat. 신실하신 하나님)
마무리
오늘은 범사에 감사하라 뜻과 해당 성경 구절 데살로니가전서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설교를 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너무 쉽게 말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아닌 제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는 스타일의 말을 하다 보니 말씀을 그대로 따라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처지가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처지가 되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에 떠올려 경계로 삼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목회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직분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성경 공부를 하는 중에 어느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이 저에게 “집사님,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알겠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좀 알려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제가 설교 준비할 때마다 저를 깨우쳐 주는 말이 됩니다. 신도들은 전혀 방법을 모르는데 목사들은 그저 말하기 쉽다고 무조건 신도들에게 이리 저리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설교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말은 참 좋은 말인데 과연 어떻게 해야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는가? 이게 실상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범사…. 모든 일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나게 되지요. 연세 드신 분들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모두 다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인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쁜 일, 좋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남이 들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본인에게는 엄청나게 심각한 일, 남이 들어도 심각한 일, 그러한 이야기들을 모두 다 일컬어 범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범사(모든 일)를 분류해 봅시다. 분류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간단하게 감사라는 잣대를 사용해서 ‘감사할 만할 일’과 ‘감사하지 못할 일’로 나누어 봅시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감사할 만한 일’ 많이 있지요. 몸이 건강한 것, 그래도 이 정도로 살 수 있다는 것, 등등 말하자면 너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다. 그렇게 감사할 만한 일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요?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우선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는 인생에 감사하지 못할 일도 더러는 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아직도 쓸 만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을 먼저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어 감사를 하지 못하겠다면 우선 그 힘든 부분을 빼고 다른 것만 감사하십시오. 우리 주변을 보면 얼마나 그러한 일이 많습니까? 그런데도 몇 개의 감사하지 못할 일 때문에 다른 감사할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지날 때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나게 하셨는데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떨어지자 모세에게 원망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어 먹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만나를 내려 주셔서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출 16:35)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자 이제 어떤 불평을 했는가 하면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4~6).”
이런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어 그들이 고기를 먹게 해 주셨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민 11:3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감사할 만한 부분을 보지 못하고 불평하는 우리들 인간의 모습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는 이 힘들고 괴로운 종살이에서 언제 벗어나나 했는데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먹을 것을 불평하고, 그것이 채워지니까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불평을 해 대는 것이 실상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 먹을 것 주신 것들 감사할 일이 많은데 감사는 안 하고 오히려 부족한 것만 찾아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 모든 일에 감사하기에 앞서서 우선 감사할 부분을 제대로 보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이 있습니까? 맨 먼저 감사할 일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신기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말씀들이 믿어지는 것일까? 내가 잘 알아서도 아니고 공부를 해서도 아닌데 그것이 믿어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삶으로 돌아와서 어디 감사할 것이 없는가 살펴봅시다. 먹는 것을 살펴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적어도 하루 한 번씩은 새벽 기도회를 마칠 때마다 그런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매일매일 우리가 먹고 살도록 음식을 주시지요? 옛날을 생각해 봅시다. 정말 쌀이 없어서 먹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새는 다이어트 하느라 일부러 굶기도 하지만 그때에는 없어서 먹지 못하였습니다. 시 한 편이 생각이 납니다.
저녁밥을 굶고 나니 첫 아이 갖고 배부른 아내가 가엾고 왠지 무능한 사람 같아 서글퍼졌다.
한 끼 굶자 신앙으로 합의하고 누웠다.
밤 10시쯤 누군가 쌀 한 말과 땔감을 부엌에다 놓고 간다.
늦은 밤, 저녁상 앞에 감사 기도 하다가
우리에게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오니 감사하나이다 하는 대목에서 울었다.
예수 믿는 날부터 수천 번 주기도 외웠으나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활이 어렵고 태산 같은 근심이 있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다. -고훈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누가 그런 것으로 감사를 합니까? 그래서 가장 먼저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우리 마음에 감사를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회복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되기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동독 사람들이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와서 서독 땅에 갖다 버렸답니다. 서독 사람들이 화가 나서 동독 사람들이 버린 그 쓰레기에 자기네 쓰레기까지 보태서 갖다 버릴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오히려 동독 사람들에게 유용할 과일 통조림을 잔뜩 실어다가 한 트럭 쏟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런 쪽지를 한 장 적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놓는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동독 사람들은 쓰레기밖에 가진 것이 없지만 자기들은 풍성한 살림을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는 마음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저절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감사하는 마음이 회복되었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마음속에 있는 감사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그 모든 일의 근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 주십사 하는 요청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축복하셨구나” 하는 감사 기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지금까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범사, 즉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우선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사람의 보기에 감사할 만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나눈 다음에 감사할 만한 일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손가락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그것에 신경이 쓰여 건강한 다른 부분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 가지 감사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한 가지 그렇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불행이 다른 감사하는 마음을 꽉 틀어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차가 막혀 있으면 그 뒤에 있는 차들이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것처럼 감사 못 할 만한 사건이 생기면 그것 때문에 다른 모든 감사가 꽉 막혀 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열 가지 감사할 일에 대하여 감사를 하는 것보다는 실상은 나머지 그렇지 못한 하나가 더 중요합니다. 나머지 하나, 감사하지 못할 일이 해결되어서 그것부터 감사할 수 있어야 나머지 열 가지 감사할 만한 일에 대하여 제대로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꽉 막혀 있는 그 길을 뚫어야만 나머지 감사도 술술 흘러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감사하지 못할 일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 고통을 어떻게 하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난번 글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상대편에 말씀을 듣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듣는 우리가 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은 결코 혼자 소리를 하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들은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결코 하나님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좋기 위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하도록 요구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실 때에 은연중에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하나님 당신의 계획, 의지를 밝히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속에서는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의지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이 감사할 만한 일이 되게끔 일을 처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이 감사할 만한 일이 되도록 하나님이 진행하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인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아이에게 “배고프지, 밥 먹어라!”고 말을 하는 경우에 밥상을 차려 놓고 아이를 부르겠습니까? 아니면 밥은 차려 놓지도 않고, 밥을 할 쌀도 준비하지 않은 채 아이를 부르겠습니까? 물론 요즈음에는 셀프 서비스가 유행이어서 밥 먹으라고 하면 아이가 부엌에 들어가 척척 라면 끓여서 먹는지 모르겠으나 제대로 된 집 같으면 밥상을 차려 놓고 아이를 부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을 하실 때에는 감사의 밥상을 차려 놓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먼저 앞치마를 두르시고 우리에게 감사의 밥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미 그전에 하나님의 귀하신 역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명령하시면서 하나님은 번제에 쓸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20장 22절에 예수님께서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을 받으라.” 분명히 명령입니다. 이때 이미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임재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실 생각도 않는데 성령 받으라, 하신 게 결코 아닙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면서 이미 감사의 밥상을 차려 놓고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리에게 그런 감사의 밥상을 차려 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되, 그냥 되는대로 아들딸을 삼으신 것이 아니라 철저한 목표와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다가오는 일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 속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렵고 싫은,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게 보이는 일조차도 사실은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시기 위하여 우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일들 -인간적으로 볼 때 감사하지 못하게 생각되는 일들-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모세를 택하셨는데 그렇게 작정하셨으면 모세가 조금 나이 들어 세상 분간할 수 있고 말 좀 한다 싶으면 바로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일이지 왜 살인범이 되게 하고 광야로 도망가게 해서 40년간을 광야에서 게르솜아 게르솜아 하면서 세월을 보내게 하십니까? 이게 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모세를 광야 학교에 보내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의 밥상을 차려 주시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또한 친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갈 4:4~7).”
그렇게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계실까요? 세상에서 살아 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시면서 인간의 고달픔이 어떠한 것인가를 몸소 겪으신 분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근심인 줄을 아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 주시면서 결코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 12:28~30).”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일 중에서 감사하지 못할 만한 일들은 무언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지금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런 각도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제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로 감사하지 못할 일까지도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다. 하얀 종이 한 장이 있는데 거기에 실수로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그 종이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졌을 때에 사람들은 그 잉크 자국 때문에 그 종이 전체가 버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 참, 아까운 종이 한 장을 버렸다. 저것을 이제 어디에 쓰나, 잘라서 휴지로나 쓰면 몰라도…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얀 종이 위에 떨어진 잉크 방울이 실수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명한 화가가 그 종이에 떨어뜨렸다고 한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그 종이가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을 할까요? 아니면 무언가 그 위에 멋있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기대를 하겠습니까?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일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의 혼인 잔치에 갔다가 어떤 가난한 아낙이 빌려 입고 온 비단 치마에 음식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얼룩이 져서 울상인 것을 보고 그 부인에게 그 치마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 치마를 받아든 신사임당이 치마의 얼룩진 부분에 몇 번 그림붓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붓이 움직일 때마다 그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울려나왔습니다. 그 치마 위에 아름다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임당은 그 자리에서 얼룩이 진 비단 치마폭에 포도 줄기와 풍성한 포도송이들을 그려 주어 시장에 내다 팔아 빌려 온 치마 값을 갚아 주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이 바로 하나님 앞에 있는 그런 치마폭이요, 종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금 잉크로 얼룩져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멋진 그림으로 그려 내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잉크 자국을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 잉크 자국은 화가가 무언가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싫다고 우리가 화가에게 불평하고 왜 그렇게 그리느냐고 항의한다면 화가는 멋진 그림을 그리려는 계획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감사하지 못할 일 나머지 하나를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일, 즉 범사에 대하여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보십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지금 붓을 들어 멋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라”의 진짜 의미(上)
기독일보
트윗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연말은 감사의 계절인데도 올해는 유독 힘든 일이 많아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무슨 일에서나 누구와 있더라도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거나, 띄엄띄엄 쉬어가며 행하거나, 한참 중지했다가 다시 그래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기다 범사에는 모든 고난도 포함되므로 고난의 이유를 몰라도 나아가 새로운 고난들이 겹쳐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고 실제로 지금껏 성공했던 해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분명히 신자가 고난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며 의심 원망 불평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므로 열심히 노력해도 잘 되지 않으니 신앙적인 딜레마에 빠집니다. 간혹 당장에 감사가 안 되어도 의지적으로 감사하려고 노력했더니 아주 바람직한 모습으로 끝났고 점차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다는 간증들을 합니다. 추측컨대 몇 번 그럴 수 있었다는 뜻이지 범사에 항상 그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아니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감사로 올해를 마감할 수 있도록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문맥상의 정확한 의미 이런 딜레마에 빠지는 까닭이 신자의 소망이나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그 원인은 계속 강조하듯이 성경을 읽을 때 한두 구절만 따로 떼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습성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 잘못을 범하는데 첫째, 앞뒤 문맥의 흐름을 살피지 않고 둘째, 그 짧은 문장의 정확한 뜻조차 따지지 않습니다. 먼저 앞뒤 문맥에서 놓치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신자 개인의 개별적 삶에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서가 개인에게 보내는 것 몇 개 빼고는 대체로 그렇지만 데살로니가 전서에선 유달리 ‘형제들아’라는 호칭을 계속 반복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도 12절에서 ‘형제들아’라고 시작해서 18절에도 ‘너희를 향한’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공동체를 향해 복음 안에서 올바른 신앙을 유지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도록 격려 권면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바울 서신서를 포함해 신약성경 중에 가장 먼저 AD 51년경에 저작한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자기들 세대 안에 임박했다고 성도는 물론 사도들까지 오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서신 후 약 6개월 뒤에 기록한 데살로니가후서에는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3:11)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텐데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이단적인 풍조마저 교회 안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저작한 목적 중에는 재림에 대한 성도들의 관심과 오해에 관해 해답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죽음 이후 약 20년이 되어가므로 신자들 중에 이미 죽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자기들 당대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신자들 사이에 제기되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해 바울은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4:13)고 변증을시작합니다. 알지 못함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중부정으로 표현했으니까 너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 진리는 주님이 재림하면 예수 안에 자는 자도 함께 데리고 오시고(14절), 주님 강림하실 때 살아있는 자가 앞서지 못하며(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니까(16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와 시기에 관해선 쓸 것이 없다고 즉,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가르쳐 줄 것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다시 깨우쳐주었습니다.(5:1)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도적 같이 아무 예고 없이 홀연히 강림하시니까 신자들은 그 때까지 믿음으로 깨어 근신만 하면 된다고 권면했습니다.(5:2-10) 무엇보다 신자는 이미 빛의 아들이 되어서 어둠을 벗어나 빛 속에 있으니 언제 재림해도 아무 염려할 것 없다고 격려했습니다.(5:4,5)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신자가 죽으나 사나 항상 함께 살게 하려고 하신 것이므로 신자들은 피차 이런 믿음과 소망으로 서로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라고 권했습니다.(9,10절) 부활에 관한 의문에 대답을 하고 재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권면한 후에 11절에 다시 ‘형제들아’라고 불렀습니다. 그 앞 10절에서 서로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라는 계명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귀히 여기고 화목하며 약하고 힘든 자들을 붙들어주고 오래 참으며 모든 사람을 항상 선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12-22절) 이런 방안들 중에 상기 본문이 속해있습니다. 그 방안을 다 설명한 후에 다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3절)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계명은 기본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교회공동체에서 성도들끼리 서로에게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시기가 자기들 당대라고 믿는다면 마땅히 순전한 믿음을 유지해야할 것이므로 모든 악은 버리라고 명한 것입니다.(22절) 그 전에 성도들끼리 “악을 악으로 갚으면서”(15절) 또 범사에 하나님께 원망만 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마지막 구원의 완성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초대교회는 소유를 팔아 나누며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공동생활을 했는데(행2:44-45) 이처럼 주님이 곧 오신다고 오해한 탓도 있습니다. 그러다 스데반 순교 사건으로 유대인들로부터 큰 핍박이 임해 신자들이 흩어져 버렸습니다.(행8:1) 또 글라우디오 황제 때는 큰 흉년이 들어서(행11:28) 더 이상 공산적인 공동체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당대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아무리 종말이 임박해도 사람들로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만들 수 있는 공산주의는 당신의 뜻이 아님을 알게 해주려는 섭리였던 것입니다. (계속) 2021/12/5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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