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장 10 절 | 19840624 다른 복음을 피하라, 갈라디아서 1장 6~10절, 옥한흠 목사 상위 75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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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갈라디아서 1장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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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5/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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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1장1절~10절(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갈1:7).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인해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들을 은혜로 부르신 그리스도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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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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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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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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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1-10절 – 성경묵상 – 설향목 – Daum 카페

{ 갈라디아서 1장1-10절 }.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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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6/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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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우리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신 사람만이 참 “성도”입니다. 매일성경큐티 본문을 따라 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의 말씀의 주제를 사도 바울이 전한 바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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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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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좋게 하랴(갈1:10) – 유평교회

본문: 갈라디아서 1장 10절. 설교자: 이병권.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종종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했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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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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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갈라디아서 1장 1-10절)

2021090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갈라디아서 1장 1-10절) … 바울은 눈물, 땀, 피를 흘리며 사역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에는 예수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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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cecc.com

Date Published: 4/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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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복음은 없다 I 갈라디아서 1장 1-10절 I 매일성경 큐티 말씀 …

제목: 다른 복음은 없다 본문: 갈라디아서 1:1-10 <본문> <인사>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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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bspbs.tistory.com

Date Published: 1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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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목) “갈라디아서 1:1-10” / 작성

적어도 할례는 명백히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17장 9~10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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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0/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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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 오늘의말씀_갈라디아서1장10절_2018.2.21

-Galatians 1:10, NIV낭독으로 만나는 말씀한 구절 말씀에서 받은 은혜가 더욱 성경읽기를 사모 … 갓피플 오늘의말씀_갈라디아서1장10절_20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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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p.godpeople.com

Date Published: 1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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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0624 다른 복음을 피하라, 갈라디아서 1장 6~10절,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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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갈라디아서 1 장 10 절

  • Author: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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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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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1장1절~10절(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인해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들을 은혜로 부르신 그리스도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 우리 죄를 대속하려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너무나 쉽게 흔들렸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온갖 미혹을 물리친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바울은 자기의 삶과 그가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보라고 한다(10). 말씀대로 사랑하는 것과,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입맛에 맞는 것만 먹어서 건강을 잃어버린 자녀에게 쓴 약을 먹여야 한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는 것 같아 염려하고 다른 길을 찾지말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가 되자.

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은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한 것을 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만, 거짓 복음은 사람들의 생각과 유전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과 거짓 교사들은 온갖 모습으로 우리의 구원관을 뒤흔들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나아가 바른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거짓 교리를 대적하고 복음의 진리로 무장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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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1-10절

2018년 3월 3일 토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 Hallelujah!

– 오늘은 봄을 기다리는 즐거운 주말이며, 어느 듯 매서운 겨울 동장군이 물러나고 있나 봅니다.

– 모든 만물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힘차게 일어나게 됨과 동시에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도 새봄과 함께 힘차게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 구원의 길은 예수 믿는 믿음의 외길뿐이므로 몸도 마음도 우리의 영혼도 성령의 능력으로 새 봄을 맞이하여 새롭게 힘차게 일어나는 3월의 첫 주말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갈라디아서 1장1-10절 }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제 목 ♥♥♥

☞ 복음에 대한 바울의 변호

♥♥♥본문 이해와 요약 ♥♥♥

☞1장에서는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들에게 바울이 친필로 구원관이 잘못되고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다급하게 인사와 함께본서의 기록 목적을 쓰면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미혹된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 안에 굳게 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 살며시 들어 온 율법주의 교사들에 의하여 갈라디아 교회는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배반했고, 다른 복음을 좇았습니다.

–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것을 믿지 못하여 회의를 품고 주의 복음을 왜곡시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 다만 바울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복음임을 강조했습니다.

– 갈라디아 성도들의 배교 현상의 원인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불완전하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릴 때 생겨난 것입니다.

– 이것을 위해 자신의 사도직과 자신이 전했던 복음이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음을 변증하였습니다.

– 그리고 바울은 이스라엘의 으뜸가는 유대인이자 바리새인이었고 행실에 있어서 교회의 박해자였던 자신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후 이방인의 전도자가 되었다고 회심 경위를 밝히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외에 어떠한 교훈도 사단의 유혹임을 깨달아 오직 말씀 중심의 신앙을 소유해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 즉 이신득의의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또한 모든 삶에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감으로써 산제사인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함을 강조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구원의 길은 외길뿐이다.(갈라디아1장7절)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길뿐입니다.

– 7절을 살펴보면“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 이외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 오직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진리요,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외길뿐이라고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 이것은 다원주의(WCC)적인 구원론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입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 이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는 가르침이 잘 못되었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 이외에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도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르심을 입은 사도들 및 다른 제자들이 가르치는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방편이요, 참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은 오직 절대자로서 인생을 구하기로 작정 하시고 멸하시기도 하실 수 있는 절대 주권과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께로서만 유일한 구원의 길, 외길뿐이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속 가치로 종교 연합과 일치라는 면목으로 많은 이단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개신교를 독보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 어떤 이들은 구원이란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설명을 합니다.

– 산의 정상에 오를 때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오르는 구원의 길도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어떤 길로 가든 그 길에서 돌이키거나 낙오하지만 않는다면, 동일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를 특별히 대표적으로 W.C.C 협회와 로마 카톨릭 천주교회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어떤 이들은 구원을 베 짜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그들의 구원이란 마치 넓은 베를 짜는 것과 같아서 한 가지 사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씨실과 날실 같은 수많은 사상과 가르침들이 종합 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만약 모든 사상과 가르침들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겠습니까?

– 왜 굳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무서운 형벌을 친히 받으셨겠습니까?

–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셔도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로 고난을 받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 유일하게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의 피가 있어야 죄에서 사함을 받게 되며 의인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 14: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따라서 모든 사상과 가르침이 구원으로 통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또한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 찬 종이뭉치로 만드는 사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 특별히 유다서의 저자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 유 1:10절에서 “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결코 우리는 이런 이단자들의 달콤한 유혹과 그들의 가르침에 속으면 안 됩니다.

-행 4: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열어 놓으신 외길뿐입니다.

– 모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의 복음만이 구원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른 어떤 가르침과 유혹에서 속으면 영과 육이 함께 망하고 장차 지옥의 길이 예약되는 것입니다.

– 오늘 아침에 성령님께서 “다른 복음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니 지금 내가 믿는 믿음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받기에 합당한 정확 무오한 성경의 말씀을 믿는지 자가진단 해 봅시다.

– 그리고 성령님께서 지금 나의 주변에서 이단 유혹에 빠진 자들이 있다면, 먼저 내가 조심하고 또 잘 권면하고 전문 상담자와 연결을 시켜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관심과 사랑으로 잘 세웁시다.

– 오늘날도 이 세상에는 자기 스스로 내가 구원자라 하며, 또 자칭 재림의 그리스도라고 하여 구원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온갖 거짓 사상들 폄론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주변에 이단들을 조심합시다.

– 마지막 시대에 유혹과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분별력 있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여 오직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 복음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명심합시다.

– 할렐루야!!!

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 우리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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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 우리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찬송 : 새찬송가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성경 : 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

설교 : 우리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 코너에서 차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차가 높을수록 코너에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중심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배들 역시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옆으로 넘어져 침몰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심을 잘 잡아야 유혹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잘 잡아야, 범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과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만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심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만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죄에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삶과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 한다는 말이 교회의 사역자나 중직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역자나 중직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삶과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을 저주하다

성도들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는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바울은,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갈라디아서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6절에서 언급된 “다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믿는 신앙”이 아닌, 할례나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과 같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행 2:21)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같이 쉽게 참 복음인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다른 복음으로 돌아선 성도들을 향하여 “이상히 여긴다”라고 말합니다. ‘이상하게 여긴다'(다우마조, θαυμάζω)는 말은, 매우 놀랍다는 뜻과 함께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8절과 9절을 통하여 바울은 거듭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사는 성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참 복음을 따르는 성도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좋게” 하는 성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모든 성도들이 당연히 걸어가야만 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의 중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모시길 바랍니다.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되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이나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참 복음 위에 굳건히 서 가는 복된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제목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게 하소서. 만민 중에 예수의 복음이 선포되어 구원 받는 이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열방 속에 복음의 평화가 선포되게 하소서.

삶의 중심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상의 것을 중심에 담은 사람은 세상 속으로만 나아가지만, 하늘의 것을 중심에 담은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의 중심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신 사람만이 참 “성도”입니다.

매일성경큐티 본문을 따라 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의 말씀의 주제를 사도 바울이 전한 바와 같이 “우리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결정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새벽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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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좋게 하랴(갈1:10)

제목: 누구에게 좋게 하랴

본문: 갈라디아서 1장 10절

설교자: 이병권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종종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했던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저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들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바라는 것들, 갖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할 때 저는 아이들의 말을 다 들어줄 수 없고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저마다 불만을 가지기도 하고 서로를 비교하면서 공정하지 못함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요구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아이들을 모두 똑같이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이 다른 아이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은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만 경험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우리가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자원에 한계가 있기에, 시간적인 한계가 있고 물질적인 한계가 있기에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며 모두에게 똑같이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바라는 것과 기대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해서 다 대응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움직인다면, 삶의 바람직한 목표와 방향과 관계없이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면 내 삶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중심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오늘의 제목입니다. “누구에게 좋게 하랴” 이 질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이 사람에게 좋게 할까 아니면 저 사람에게 좋게 할까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힘 있는 사람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니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람들을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서 ‘누구에게’라는 것은 사람들 중에 누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이 둘 중에 내가 무엇을 더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사람이냐 하나님이냐’이 둘 중에 내가 하려는 결정이 누구를 위함이고 누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하는 행동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누구에게 좋게 하랴”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목으로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였습니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햄릿의 유명한 대사를 따라한 것입니다. 원래 대사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입니다.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햄릿처럼 우리가 믿는 자로서 살아가면서 계속 마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계속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며, 계속 우리에게 유혹이 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을 뒤로하고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람을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내가 이런 결정을 하려고 하는 것,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이 누구를 위함이며 누구를 생각함이며 누구를 두려워함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있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고민은 없어지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전히 고민이 되고 때로는 더 고민하게 됩니다. 때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평안으로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어떨 때는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 크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질문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계속되는 갈등이며 끊이지 않는 고민이며 멈추지 않는 유혹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어떤 면에서 위로가 되는 사실은 이러한 고민이 지금 우리들만의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했고 어떤 사람들은 넘어지기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구에게 좋게 하랴” 라는 질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답하고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 말씀을 버렸습니다.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고 진멸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했고 끝까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며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바리새인들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이후에는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했을 때 그 결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택하면 내가 더 손해를 보거나 내가 더 수고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것은 그 반대입니다. 보다 실제적이고 당장 그 결과가 피부에 와 닿고 훨씬 더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좋게 하랴”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뭔가 좋은 일을 할 때 누군가가 봤으면 좋겠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작은 칭찬이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없으면 좀 서운하기도 하고 한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괜한 수고를 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리가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때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 삶에 있어서 기준이 될 수 있는 행동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사람이냐 하나님이냐’라는 선택에 대해서 “누구에게 좋게 하랴”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교훈을 마음에 새김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고민할 때마다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난 본문을 잠깐 생각해보면 바울은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저주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거짓을 따르는 자에 대해서 엄하게 꾸짖은 것입니다. 책망에 이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오해하지 않도록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3절부터 바울이 자신의 간증을 시작하는데 오늘 본문은 바울의 책망과 바울의 간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사람에게서 기쁨을 얻고 사람의 주목을 받으려고 했다면 갈라디아 교회에게 이런 책망의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책망이 다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편지를 쓰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받을 때, 혹은 책망을 들을 때, 그것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니까, 안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뢰하는 사이나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겁니다. ‘왜 나한데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책망한 것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런 의도가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당당하게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고민이 되고 유혹이 되고 또 어려워하는 문제를 두고 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자신 있게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알면, 우리도 그 원리를 따라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을 때 사람을 두려워함으로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일 때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 그 동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이 편지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바울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에 대한 동기와 하나님에 대한 동기를 대조하면서 자신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혹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정을 바라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항상 하나님이 우선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사도 바울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쉬웠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역시도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고 싶은 유혹과 사람에게서 오는 압박이나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위해 살지 않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 때 그에 따른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생이다’ 라고 했을 때 내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이라는 신분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학생으로서 합당한 일과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분명해집니다. 학생이기에 맞는 일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빠다 혹은 나는 엄마다’ 라고 했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안다면 아빠로서 혹은 엄마로서 해야 할 일과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부모로서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믿는 사람이다’ 라고 했을 때는 어떨까요? 이것은 우리가 가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늘 앞에 있어야 할 수식어입니다. 나는 믿는 아빠이고, 나는 믿는 학생이고, 나는 믿는 직장인이고, 나는 믿는 아내이고, 나는 믿는 할아버지, 믿는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내가 누구인지 바르게 이해하고 또 내가 누구인지 기억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들 중에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

바울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갈림길에서 만약 자신이 사람을 선택했다면 사람을 위한 길을 갔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하나님을 택했다는 말입니다. 지금 바울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가정해서 분명한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A라면 당연한 결과로 B가 나온다. 그런데 결과가 B가 아니기에 당연히 A가 아니다’는 말입니다. 어떤 나무에서 감이 열렸으면 그 나무는 사과나무가 아니다. 는 말입니다. 감이 열렸으니 당연히 감나무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그 선택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명령을 따릅니다. 종에게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은 주인입니다. 주인의 인정이 우선이고 주인의 기쁨이 우선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옵션일 뿐입니다.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사람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은 무조건 책망 받을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혹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키거나 하나님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거나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사람에게도 참된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마땅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우리 삶에서 주님의 자리를 없애버리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 삶에 최우선 순위에 제일 앞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좋게 하랴” 는 질문으로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나의 삶의 목표와 방향과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점검한 결과가 ‘하나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될 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살피고 다시 ‘하나님’이 되도록 돌이키기를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내가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 신분에 맞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절대로 바울의 목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이 기뻐하시는 일을 알고 그 일을 위해 수고합니다. 종은 주인이 명한 것을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합니다. 그것이 종의 마땅한 본분이며 종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섬기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나는 정말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나는 지금 누구의 종인지, 누구에게 관심을 두며,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 누구의 칭찬을 바라고 있는지, 누구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지, 정말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그것으로 나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하고 사람들을 의식한 나머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람들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종은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바라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은혜를 나누십시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우리 마음을 아시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아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우리의 수고를 모두 아십니다. 아무도 모른다 할지라도 아무도 몰라준다 할지라도 주님이 모두 아십니다. 주님이 모두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계속해서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고민될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 좋게 하랴” 여러분은 누구에게 좋게 하시겠습니까?

2021090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갈라디아서 1장 1-10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갈라디아’라는 이름은 지명입니다. 오늘날 지도를 보면 터키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으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바울은 눈물, 땀, 피를 흘리며 사역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고, 기적처럼 교회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 하나 예수를 모르던 복음의 불모지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도 바울은 뒤통수를 크게 한 데 얻어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가져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 있는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가르쳐 준 복음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며 성도들에게 다른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틀렸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충분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면, 율법이 명시한 안식일, 초하루, 유월절과 같은 절기들도 지켜야 하며,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다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며, 남자들의 경우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할례란 쉽게 설명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처럼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변질된 가르침인 ‘다른 복음’이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거짓 형제들은 바울의 사도권마져도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사도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처럼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반박하고, 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갈라디아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대부분이 새롭게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들이었는데,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만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까지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부인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반박한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리됨을 논증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혼란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를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더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제일 먼저 바울은 이 편지를 시작하며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이야기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이 편지 맨 처음에 다른 그 무엇보다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만일 사도가 아니라면, 이후에 그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들이 권위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사도가 된 것이 사람들이 그를 사도로 뽑아 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사도로 파송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사도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혼란에 빠진 갈라디아서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

그리고 2절에 나아가서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기록합니다. 2절을 봅시다. “(갈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바울은 아마도 그의 동역자들로 추정되는 형제들과 더불어 갈라디아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발송했다고 기록했습니다. 2절에 ‘여러 교회들’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갈라디아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이 편지를 회람 즉 돌려가며 읽을 것을 염두해 두고 편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절에는 편지의 발신자, 2절에는 편지의 수신자가 기록되어 있는 셈이죠. 그 후 3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향해 축복의 인사말을 건냅니다. 3절입니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말은 바울의 시그네쳐와도 같습니다. 신약성경은 총 27권인데, 그 중에 바울이 쓴 책이 총 13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가 미상으로 되어 있는 히브리서도 바울이 썼다고 주장하며 바울이 쓴 책이 총 14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원어 헬라어 성경을 읽어보면 히브리서는 바울이 다른 책에서 사용하던 문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울이 쓴 책이 총 13 권이라고 말합니다. 이 13권 중 3권은 목회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입니다. 13권 중 4권은 ‘감옥에 갇힌 바울이 쓴 편지다’라고 해서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책들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리고 이제 13권 중 나머지 6권은 바울이 각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그리고 마지막이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이 각각의 지역에 자리잡은 교회들을 대상으로 쓴 6권의 책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인사말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시그네처 인사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바울의 저작이 아닐까 하고 몇몇 사람들이 추측하는 히브리서에는 이런 인사도 없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향해 비는 축복 바로 ‘은혜’와 ‘평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진 선물인 ‘은혜’,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삶의 만족을 느끼는 영혼의 평온한 상태인 ‘평강’이 갈라디아 교회 위에 함께하기를 축복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축복의 인사를 건낸 후, 곧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4-5절입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메시지입니다. 1-5절까지는 편지의 서론입니다. 편지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수신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인사말을 전하고 예수님을 찬양을 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자, 이제 그럼 편지의 본론 부분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은 팬을 가지고 ‘다른 복음’(different gospel)이란 표현을 찾아 밑줄이나 동그라미를 한 번 쳐보십시오. 이 표현이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6, 7, 8, 9절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4번이나 반복되어 있는 것이죠. 성경에서 핵심 메시지를 찾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반복되는 표현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다른 복음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갈라디아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의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거짓 형제들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유대교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주시는 복음을 버리고,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매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바울의 감정은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이 전파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7절 말씀을 봅시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따라서 거짓 교사들이 전파해 준 가르침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이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참된 복음을 그들이 거짓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8-9절을 봅시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계시 해 주심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가르친 복음 외에 다른 복음, 즉 변질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9절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무려 2번이나 연속해서 강조해서 경고했습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얼마나 강도가 센 언어입니까? 아이를 벤 아내가 유산하고,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인 나보다 먼저 죽고, 내 손으로 하는 일마다 망하고, 평생토록 고통 가운데 살아가다가 죽을 때까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쓰라린 아픔 속에서 죽는 것과 같이 참혹한 모습이 바로 저주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저주를 받을 만큼 악한 행위입니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만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예수의 공로 외에 자신의 공로를 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나의 죄를 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죽음이 나의 모든 죄를 씻기에 불충분하기에 내가 구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 선행이나, 구제나 봉사활동이나, 헌금을 통해서 지푸라기만큼이라도 나의 공로를 얹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헛되다고 말하며 그의 십자가 죽음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바울이 전해준 것과 같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누구든지, 누구든지, 그 존재가 천상의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은 이방인들 입장에서 보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고,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안식일 규례와 같은 절기 규례를 따르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적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와 같이 말한 이유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나,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파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이 복음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오라지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위해서 이 복음을 전파해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전해준 그 복음이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의 십자가 공로 위에 지푸라기 만큼이라도 나의 공로를 얹으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저주 받을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이처럼 값없이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으신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날마다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를 섬기며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I 갈라디아서 1장 1-10절 I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제목: 다른 복음은 없다

본문: 갈라디아서 1:1-10

<본문>

<인사>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다른 복음은 없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해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갈라디아’는 소아시아 남부의 로마의 행정 구역을 지칭하기도 하며, 소아시아 중앙에서 북쪽에 거주하는 갈라디아 출신 민족이 살던 지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나바와 함께 했던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소아시아의 남쪽 행정구역인 갈라디아 지역 곧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와 같은 곳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이 도시들을 방문하여 교회를 굳게 세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 사도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기 이전인 약 AD 48-49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이 가르친 복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복음’에 대해 경계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같은 ‘사도’라는 사실을 변호합니다. 사도로서 바울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곧 바울이 전한 복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직접 부르신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습니다(행 1:21-22).

(행 1:21-22)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배웠을 것이므로, 바울의 가르침보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이 더 권위 있고, 따라서 바울의 가르침보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사람에게서 기원한 것이나 사람들을 통해 임명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도로 임명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 예수님께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사도로 임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갈 1:1).

(행 9:5-6, 15)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 곧 주 안에서 하나 된 안디옥 교회의 동역자들과 함께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바울의 인사말은 갈라디아 교회 역시 ‘형제’이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공동체이므로 하나의 가르침을 받고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가장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갈 1:2-3).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전했던 복음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선포하며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내시기 위한 일이었으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평안을 누리는데 필요한 모든 대가를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던 우리를 건져내셔서 성령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새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기를 작정하시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세세토록 영원히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갈 1:4-5).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렇게 신속하게 떠나서 다른 복음을 따를 수 있느냐고 책망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 사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들었을 때 기쁨으로 그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경솔하게 그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가르침을 따르려는 것을 바울 사도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복음은 없고, 다만 어떤 사람들이 갈라디아 교회를 흔들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 유대인이 되는 절차를 거쳐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지만, 바울 사도는 할례와 율법이 없어도 된다는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오직 전한 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이나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바울이 이전에 갈라디아 교회에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경고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전에도 이렇게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만약 누구든지 그들이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다시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며, 만약 지금까지 자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갈 1:6-10).

<메시지>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의 행위와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과 저주를 대신 받으신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만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이라도 더 해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어떤 것을 통해 더 나은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행하신 구속사역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비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 사도가 강하게 책망하고 엄중하게 경고했던 것처럼, 다른 복음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몇 가지 종교적인 행위나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를 마치 구원의 조건이나, 교회 공동체가 되는 조건인 것처럼 가르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2016/01/28(목) “갈라디아서 1:1-10” / 작성: 김대인

본문 갈라디아서 1:1-10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갈라디아는 아시아와 갑바도기아 지역 사이에 위치한 지금의 터키 중부 지방을 말합니다. 갈라디아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유는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 중 모두 들려 전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 대상은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 이고니온(Iconium), 루스드라(Lystra), 더베(Derbe) 등을 중심으로 한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들은 사도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도 세운 교회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바울은 이 갈라디아 지방에서 유대인들의 핍박과 돌에 맞는 고초까지 경험하면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이방인 회심자와 제자들을 세운 교회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고난 받으면서 얻은 사역의 첫 열매와도 같고, 첫 사랑과 같은 교회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게 생각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상당한 갈라디아 교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갈라디아 교회를 세운 바울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음에도 ‘다른 복음’을 접하고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이 다시 한 번 복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내용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접한 ‘다른 복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는 부족하거나, 아니면 그 믿음이 아예 필요 없고 구약의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여 스스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의 복음이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 이외에도 할례를 비롯한 율법적 종교의식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첫째, 당시 할례는 최소한 유대인들의 박해를 모면할 수 있는 안전장치였으며, 가시적으로 아브라함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표지였습니다. 둘째,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더욱 완전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구원을 받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존재해왔습니다. 셋째, 할례는 구약의 계명들을 완성시키려고 취하는 하나의 단계처럼 여겨졌습니다. 적어도 할례는 명백히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17장 9~10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복음에 할례가 더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지금 믿고 있는 신앙에 할례만 더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수용한 것을 두고 크게 상심하였고, 화를 내며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해준 복음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복음의 본질과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과의 구원 관계에서 철저히 하나님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순전한 은혜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가 포함되니 이제는 자신들의 공로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의 불완전하다 생각하며 할례를 더한 것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뛰어넘어 은혜와 사랑으로 율법 아래의 우리를 속량하시고 자녀 삼으신 것인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이 전한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규정하며, 앞으로는 철저히 배척해야할 신앙으로 다시 교육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바울은 먼저 갈라디아서 편지 서두에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변론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서신의 서두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울의 사도됨에 대한 소개는 갈라디아서에서 아주 특별히 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갈라디아교회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을 신뢰하지 않도록 선동하며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 의심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제자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제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하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 사실 그 사도성에 의심이 갈만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역하는 기간 동안 늘 자신을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사도성을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사도냐 사도가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도직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을 위함입니다. 복음은 진리의 문제이기에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이단들, 유대교, 다른 이방종교 가운데서 정체성을 지녀야하기에 매우 강경한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직함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을 수호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4~5절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주님께서 다 이루셨고 완성하셨습니다. 인간의 공로나 의지는 전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자유를 누린 것 이외에는 출애굽을 위해서 한 일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우리의 어떠한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이룬 것이요 우리는 어떤 공로 없이 그 구원의 자유함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크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본문 6~7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지금 바울이 세운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은 사이비나 이단종교가 아닙니다. 같은 초대교회 교인들입니다. 이들이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인지, 율법주의로 물든 그리스도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들은 바울이 세운 교회들을 다니며, 바울의 자격을 의심하도록 만들었고,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함께 참 믿음의 본질을 세워나가야 할 사람들이 믿음의 본질 앞에서 서로 다른 주장과 견해로 서로를 부정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입니다. 바울의 분노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함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의 본질을 율법으로 훼손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복음에만 머무르지 말고 율법규정과 할례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바울은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자유는 참 매력적인 단어입니다만 또한 매우 위험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방종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로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광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이요 고통이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수많은 우상과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옛 노예생활이 차라리 나았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합니다. 자유가 방종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 됨을 기쁨으로 누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 안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안에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자유가 방종이 된 갈라디아 교회는 다시 종이 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과 함께 율법을 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구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되어버렸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의 행위가 들어가야만 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과 율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문제로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다른 복음’으로 인해 자유로운 자녀의 삶이 아닌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짊어진 종교 행위에 허덕이기도 하고, 의무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거나, 마지못해 희생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헌금을 하지 않거나,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복음과 율법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지 말고 헌금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좋으나, 두려움과 마지못함으로 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내가 복음에 사로잡히면 나의 내면은 물론 외면까지 모두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복음이 없으면 영적인 기쁨은 사라지고 오직 종교적 행위만 남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의 변질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복음이 주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할수록 우리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마치 세례요한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질문했던 세리, 군인, 무리들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모든 질문에 하나님은 짧지 않으신 강하신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끌어안으실 것입니다. 그 사랑만이 우리를 고치시며 회복시키실 것이기에 우리는 종교적 행위자가 아니라 참된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자유하는 복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주님.

헤어 나오지 못하던 죄악의 구덩이에서 건져 올려주셔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새 옷을 입혀주시고, 새 사람으로 인정하사 자녀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치시고 싸매시는 사랑의 손길이 우리의 내면만이 아니라 외면까지도 회복하심을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이 시간 나의 모든 인생, 계획, 생각을 주님께 드립니다. 사람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종교인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게 복음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의 내용을 나의 말로 정리해봅시다.(4~5절)

2. 갈라디아 교인들은 ‘다른 복음’을 접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은 어떤 복음이며, 갈라디아 교회가 그 복음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다른 복음’과 같이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지금 나에게 있는 영적인 질문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하나님 앞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묵상해봅시다.

(작성: 김대인)

갓피플 오늘의말씀_갈라디아서1장10절_2018.2.2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_갈라디아서1:10

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Galatians 1:10, NIV

낭독으로 만나는 말씀

한 구절 말씀에서 받은 은혜가 더욱 성경읽기를 사모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하며 오늘의 말씀이 담긴 성경 전체를 전문 성우가 입체 낭독한 영상을 나눕니다. 더 깊어지는 은혜로 충만해지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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