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 12 For Unto Us A Child Is Born Messiah No 12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칸티쿰합창단 4K 5 1 돌비 상위 15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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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or unto us a Child is born Messiah No. 12
Canticum Choir Conductor : Kwangte Su 4K 5.1 Dolby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지휘 번역 서광태 칸티쿰합창단
칸티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소프라노 이윤주 메조 소프라노 김윤희 테너 김기선
바리톤 권용만 쳄발로 주현정 오르간 신나래
2015년 12월 15일 오후 7시 30분 고양아람누리 하이든홀
▶칸티쿰합창단 헨델 메시야 전곡 https://youtu.be/KK1xZ0x2LGs
▶칸티쿰합창단 http://www.canticum.co.kr
▶칸티쿰합창단 유투브 www.youtube.com/canticumchoir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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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구약 성경 곳곳에 선포되고 있는데, 이 이사야서의 말씀 역시 메시아 도래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이 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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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11/20/2021

View: 7762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 9:6-7 > 칼럼

이사야는 신적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는’이라는 시작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한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음을 나타냅니다.이사야는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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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nkwa.org

Date Published: 10/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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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7) – 기멀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7)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숲 속을 산책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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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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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 이한교회

서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사야 예언들. 오늘 본문은 한 아기, 한 아들의 오심에 대해서 말씀한다. 7장 14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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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hanchurch.cafe24.com

Date Published: 10/15/2022

View: 5548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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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4/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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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9:6-7) – 성탄절 메세지 (12/20 …

2015년 12월 20일 성탄주일 연합예배. ✦ 성탄절 메시지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9장 6-7절).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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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7/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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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 Author: CANTICUM CHOIR PHILHARM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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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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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 9:6-7 > 칼럼

본문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 9:6-7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9;6-7절의 메시아 예언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사야는 신적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는’이라는 시작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한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음을 나타냅니다.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미래 사건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한 아기’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인성(人性)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한 인간으로 탄생하실 것을 예언 한 것입니다.그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라고 불릴 것입니다. ‘기묘자’라는 원어(펠레 al,p,])는 ‘놀라우신 분’이라는 뜻으로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나타냅니다. 그의 성육신(成肉身)과 동정녀 탄생, 그의 기적 행하심, 또 그의 부활 등은 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들입니다. 인간으로 오실 메시아는 신적 존재이십니다.‘모사’(요에츠 $[wy~)(조언자)라는 이름은 메시아의 지혜를 나타내며, ‘전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 rw~bg laO~)이라는 이름은 그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특히 ‘영존하시는 아버지’(아비-아드 d[‘ yba)라는 명칭은 그의 영원성, 그의 사랑, 생명의 근원 되심, 아버지와 일체(一體) 되심 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메시아의 신성에 관계됩니다. 메시아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겸비하신 독특하고 놀라운 인격이십니다. ‘평강의 왕’(사르-솰롬 !wl~~`-r`’)이라는 명칭과, “그 어깨에 정사(政事, 다스림)를 메었고,”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아의 사역, 즉 그가 장차 하실 일을 증거합니다. 메시아는 왕 곧 통치자로 오실 것이며, 그의 통치 사역은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는 사역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과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의와 평강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고후 5:18; 롬 5:1), 그것에 근거하여 참 평강을 얻었고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8). 또 그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7).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습니다(살후 3:16).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되면 인류의 불안한 전쟁의 역사가 더 이상 반복되지를 아니하고 완전히 종식이 될 것으로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사9:5-6a). 또한 그리스도가 불완전한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온전히 청산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능력을 이 땅에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政事, 다스리는 일)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奇妙者, 기이하고 신묘한 일을 행하는 사람)라, 모사(謀士, 일을 꾸미거나 계획하는 사람)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永存, 영원히 존재함)하시는 아버지라, 평강(平康, 평안하고 강건함)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justice)와 공의(righteousness)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熱心, 열렬한 마음)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b-7). 이제부터 하나하나씩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사9:5); 적군과 아군이 서로 어울려 어지러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이 모두 벗겨지고 있습니다(사9:6a). 그 대목은 모세가 호렙 산에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시나무 불길 가운데 만나고 있는 장면을 연상하게 해줍니다(출3:1-5).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면 그 땅은 거룩한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선 자는 모두 전쟁을 멈추고 전쟁터로 달려나가는 그 분노의 신발을 벗어야만 합니다.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의미가 바로 “군인들의 피 묻은 겉옷이 불길에 휩싸여서 완전히 태워져 버리는 것”(사9:5b)입니다.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이 훗날 그리스도 예수가 못 박히게 되는 십자가 앞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로마병정들의 채찍에 맞아 그 겉옷이 피에 낭자하게 됩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그 겉옷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서로 가지려고 제비 뽑기를 합니다(마27:35).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피 묻은 겉옷을 처분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끝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군인들의 피가 묻은 겉옷을 하나님이 그 신위적인 능력으로 불살라버림으로써 다시는 전쟁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하는 의미가 다분히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사9:6ab); 반복되는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징조가 임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보통 아기와 똑 같아 보이는 한 아기가 탄생하고 있습니다(사9:6a).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특이합니다. 인류의 긴 역사 가운데 전혀 같은 예를 찾아볼 수가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사9:6b). 그 대목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의 의미는 하나의 깊은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지 아니하면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 곧 그 반목과 질시 그리고 전쟁의 반복을 결코 끝낼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환언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온전히 위임 받아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인류의 죄를 없이하거나 그 악행을 끝장낼 수가 없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사람들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는 이미 자정(自淨, 스스로 정화함)능력을 상실한 채 공멸(共滅, 다 함께 멸망함)의 종말을 향하여 계속 달려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의 어깨에는 정사(政事, 다스리는 일)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奇妙者, 기이하고 신묘한 일을 행하는 사람)라, 모사(謀士, 일을 꾸미거나 계획하는 사람)라”(사9:6c); 보통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브레이크가 없이 낭떠러지로 굴러가고 있는 인류의 전쟁의 역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정사, 기묘자, 모사’라고 하는 세 가지 용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지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 세상임금을 쫓아내고(요12:31)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의 머리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펴는 역사를 시작하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마28:18, 엡1:21-22). 그리스도가 그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의식해야만 합니다. 구태의연하게 권력정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2) 그리스도의 행하심이 기묘하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으로 풀어서 제자와 백성들에게 복음으로 교훈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특히 세상의 지혜 및 전통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주석적 히브리정경풀이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2).

(3) 사람이 도모하는 일은 그대로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의 성사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사람이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성사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그 발걸음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도록 맡겨드려야만 합니다. 과연 그러할 수가 있을까요?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4) 그리스도 예수의 경우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발걸음을 자꾸만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고뇌가 심각합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매어 달립니다. 부디 다른 방법을 강구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방법 외에는 만민구원을 위한 죄 사함의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히시기 직전에 온전히 맡겨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모사는 계획에서부터 그 실행의 방법까지 그리스도가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永存, 영원히 존재함)하시는 아버지라, 평강(平康, 평안하고 강령함)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c); 영이신 하나님의 본체를 인간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인자 예수님이시지만 그 속에는 신성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선재하시며 시공간을 넘어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롬8:37-39). 온전한 평안과 강건함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9-11).

다섯째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사9:7a);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눈에 보이지 아니하게 진행이 되어오던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가 다음과 같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정치에 하나님의 뜻이 더욱 담기게 됩니다. (2)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안과 강건함을 옷 입게 됩니다(요삼1:2). (3) 다윗처럼 왕국을 접수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두렵게 여기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삼상24:6-7, 26:9-12). (4) 그리고 다윗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자신에게 주는 징벌을 달게 받고 새로운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고자 결심을 하는 자들이(삼하12:13-15, 22-23)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히 세우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행2:34-35, 13:22).

끝으로,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justice)와 공의(righteousness)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熱心, 열렬한 마음)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bc). 사람이 주장하고 있는 정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집단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자기의 이익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 해주는 명분을 모두들 정의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집단의 충돌은 그들 집단 사이의 정의의 충돌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과 지혜로써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조정의 지혜가 반드시 요청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지혜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공의의 정신으로 이 세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입니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피조물을 바라보며 평등하게 대하고 주님과 같이 대접하는 나라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가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결단력이 대단하십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사9:7c)고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생, 구원과 내세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셨고 완전한 의를 주셨고 기쁨과 행복을 주셨습니다. 메시아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십니다. 그는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을 가지신 독특하고 놀라우신 인격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가 바로 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참으로 깨닫고 그를 믿고 구원을 얻으셨습니까?

둘째로, 메시아께서는 특히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참 평안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복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이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하니습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마다 이 평안을 누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를 감사하며 누리며 또 다른 이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공멸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역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분쟁 나아가서 분노의 전쟁을 영원히 그치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적인 개입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는 그때를 앙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시고 인간으로 태어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역사가 달라질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람들마다 제각각인 정의를 다스릴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의 이익과 정의를 옹호하고 있는 선민의 종교 대신에 공의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성탄절]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7)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7)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숲 속을 산책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눈이 내린 전나무 숲 속이었는데, 전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사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받을 때 우리도 전나무와 같이 빛을 발하게 된다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전나무 한 그루를 베어 집에 가져와, 촛불을 달아 우리를 비추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였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 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을 보냅니다. 의미 없는 날로 삼지 말고,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탄생을 기뻐해야 합니다. 한 아기의 탄생은 천군 천사를 동원하는 우주적인 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비록 외모는 보잘 것 없으시나 약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주로 오셨습니다. 가장 평범한 인간으로 오셔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예언을 이루셨지만 사실상 그 분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일합니다. 그 증거가 세상에 오실 때는 힘없는 한 아기로 오셨으나 그가 자라서 하신 사역들을 보면 불치병자들을 말씀으로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풍랑을 잠재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그 한 아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의 예언대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존귀하신 분이 가장 낮아지시고, 부요하신 분이 일부러 가난해지신 날입니다. 성탄이 없었다면 십자가도 부활도 승천도 재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탄으로 말미암아 모든 구속사역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성탄은 바로 나를 위한 날임을 깨닫고 진실로 감사한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려야 합니다. 수천 년 동안 멸시와 천대와 흑암과 고통의 땅이 영광스러운 성지로 변하게 되었다면, 성탄을 맞이하여 그 아기 예수를 스블론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사회와 민족과 교회 안에 임하시게 하는 성탄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에 아기로 오신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다양한 이름을 주신 이유는 메시아의 위대하심을 한 마디로 표현 할 수 없기에 여러 이름으로 말한 것입니다. 한 아기로 오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잔 홈즈(Zan W. Holmes) 목사는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구경한 소감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흑인이었기에 3층 꼭대기의 좁은 방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되자 무대에 악사들이 나타나 각기 악기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년 홈즈는 어리둥절해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하는 거예요? 너무나 시끄러워요.” 그러자 아버지는 “조용히 기다려봐라” 라고 말합니다. 잠시 후 키가 작은 지휘자가 등장합니다. 지휘자는 악사들을 향해 손을 내리 저었습니다. 그 순간 시끄러운 잡음들은 음악이 되고, 분열이 화합이 되고 제 각기 내던 소리는 화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홈즈 목사는 이것이 교회요, 기독교가 지향하는 하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지휘자이신 예수의 통치하심을 따를 때 다른 소리의 악기와 높고 낮은 음들이 웅장한 교향악을 이루는 것입니다. 통치자이신 주께서 우리의 편견과 아집과 교만을 풀어 주실 때, 우리의 차이점은 더 높은 발전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억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각기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악기들이 지휘자의 통치를 받을 때에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고’. 여기의 ‘정사’ 는 히브리어로 ‘미스라’ 로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영어는 ‘Government’ 인데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즉 아기로 오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어깨는 힘을 상징합니다. 표준새번역은 ‘그 분은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 고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통치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음껏 다스리시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아하스 왕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쳐들어오자 아하스는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때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왕이여, 어려운 시기에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앗수르도, 왕도, 시리아도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통치자이시기에 하나님만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계속 예언합니다.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침내 구원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 분이 민족을 다스리고 열방을 통치하며 개인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 분이 오시고 있습니다”.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다스림을 받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의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탄절 전날밤, 욕심 많은 스쿠루지(Scrooge)에게 동업자였던 말리의 유령이 찾아옵니다. 죽어서도 쇠사슬에 묶인 채 고통을 받는 말리의 유령은 스쿠루지에게 착하게 살지 않으면 자기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스쿠루지는 크리스마스의 유령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됩니다. 스쿠루지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성탄절 아침, 마음의 빗장을 풀고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예수의 이름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 소설로 얻은 명성과는 달리 디킨스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소설을 쓴 것입니다. 빚더미 위에서 다섯 번째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니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써서 빚을 청산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빈민가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빈민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구두약통에 상표를 붙이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쓰자. 신기하고 놀라운 기묘자의 이야기를 쓰자. 그래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 기쁨을 줄 수 있는 책을 써서 빈민가에 선물하리라고 생각하고 써 내려간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캐롤’ 입니다. 그 책으로 인해 생의 감격이 생겼습니다. 삶의 권태와 절망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생명력이 움트게 되었습니다. 스쿠루지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면서 기뻐합니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삶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여기의 ‘기묘자’ 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wonderful’ 이라고 번역합니다. 기묘자는 놀라운 기적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의 주님을 만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기로 오신 하나님만이 모든 질병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미움과 시기와 다툼에서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의 이름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주님의 이름이 바로 기묘자입니다. 기묘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지혜자이신 하나님

1700년 영국의 작곡가 헨델(George. F. Handel) 은 뛰어나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주회마다 실패합니다. 그가 56세가 되었을 때 결국 두 손을 들고 맙니다. 몸은 오른 쪽이 마비될 만큼 건강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빚더미 위에 앉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음악을 포기하려고 할 때 ‘제닌스’ 라는 신실한 신앙을 가진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내가 주는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작곡을 해보게나. 이 책의 주인이 자네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일세”. 헨델은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평안을 찾기 시작했고 말씀에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그리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주제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24일간 침식을 잊고 하늘의 영광만 바라보면서 작곡에 몰두한 결과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바로 헨델의 ‘메시아(Messiah)’ 입니다. 메시아의 첫머리 곡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1)” 로 시작됩니다. 메시아는 아기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결국 승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모사는 영어로 ‘counselor’ 로서 ‘상담자’ 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야아쯔’ 인데 “지혜로 가득 차 있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진정한 상담자는 지혜로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분만이 문제의 해답이고 길이 되십니다. 폴 틸리히의 말입니다. “인간 세계가 문제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해답이시다.” 해답이신 예수가 함께 계시는 동안은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을 때 제자들은 아무 걱정 없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풍랑이 일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질병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둥병자도 소경도 앉은뱅이도 한편 손 마른 사람도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도 예수님과 만나면 해답을 얻었습니다. 문제해결을 받았습니다. 모사이신 지혜로 충만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해답을 얻은 것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모든 인생의 해답이 되십니다. 바로 그 아기로 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기로 오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여 복된 성탄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 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원문보기

개역한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 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원문보기

공동번역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원문보기

새번역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원문보기

현대인의성경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다. 그가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니 그 이름은 ‘위대한 스승’,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하리라. 원문보기

新共同譯 ダビデ の 王座とその 王國に 權威は 增し /平和は 絶えることがない. 王國は 正義と 惠みの 業によって /今もそしてとこしえに, 立てられ 支えられる. 万軍の 主の 熱意がこれを 成し 遂げる. 원문보기

NIV For to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will be on his shoulders.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원문보기

KJV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원문보기

NASB For a child will be born to us, a son will be given to us; And the government will rest on His shoulders; And His nam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ternal Father, Prince of Peace. 원문보기

新改譯 ひとりのみどりごが, 私たちのために 生まれる. ひとりの 男の 子が, 私たちに 與えられる. 主權はその 肩にあり, その 名は「不思議な 助言者, 力ある 神, 永遠の 父, 平和の 君 」と 呼ばれる. 원문보기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9:6-7)

2015년 12월 20일 성탄주일 연합예배

✦ 성탄절 메시지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9장 6-7절)

[ 들어가는 말 ]

매년 성탄절을 맞이할 시기는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때입니다. 이때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마음속에 기쁨도 있고 후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계획들을 세웠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잘 안 됐기에 후회가 남습니다. 세계를 보아도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테러와 전쟁과 기근과 질병의 소식들은 더 많아지고, 세계 경제 상황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다가올 앞날을 생각하면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는 계절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미리 예언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1,500년 동안 40여 명의 다른 저자들이 끊임없이 “구원자가 오신다. 메시야가 구원하러 오신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무려 700년 전(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그것을 자세히 선포했습니다.

1.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 (6 절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6절)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즉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아기는 누구를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습니까? 바로 ‘우리를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사실 모든 문구에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을 넣어야 그 뜻이 맞습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를 위하여 심판하러 오십니다.’

6절에서는 또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 손에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선물은 값을 치르거나 그것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받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풍성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를 위해 태어난 한 아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한 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입니까?

1)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이 말은 ‘놀라우신 조언자요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힘든 것들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선뜻 하지를 못합니다. 괜히 말했다가 소문이 퍼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로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인데도, 쉬쉬 하며 자기 속마음을 나누지를 않다가 결국 속으로 곪아서 썩어 버리고 문제가 오히려 뻥 터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교회로 같이 모여서 예배하고, 새벽에 함께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목장으로 모여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주님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탄도 능력이 많아서 만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능은 아닙니다. 하지만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전능하신 그분께로 나아올 때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3)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영존’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뜻도 되고, 동시에 공간적으로 어디에나 다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럼 영원히 계시고 어디에나 계시면서 무엇을 하십니까? 아버지의 역할을 하십니다. 아버지의 주된 역할은 자녀를 불쌍히 여기며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4) “평강의 왕이라”

또한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불안한 세상에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마음에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찾아올까요? 우리 안에 주님의 평화가 없어서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참된 평화를 받고 누리면 되는데, 자꾸 다른 데서 평화를 찾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TV나 비디오를 봅니다. 아니면 막 먹거나, 잠을 자거나,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때뿐이지, 그 후에는 마음이 계속 불안하고 염려가 되며 여전히 두려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염려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면 바로 그때는 주님께 나아갈 때라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염려가 된다고 다른 데로 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먼저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다른 어떤 것을 하기 전에 먼저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 나아갈 때 진정한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님을 찾아 나온다고 해서 상황이 바뀐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열심히 나아가도 상황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뀌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상황은 똑같은데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됩니다.

2.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7 절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7절)

오늘 본문은 헨델의 <메시야>의 “할렐루야 코러스” 가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6절에도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도 주님이 우리의 통치자이시며, 우리를 다스리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다스리는 것을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영어로는 “The government will be on his shoulders.”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 주님은 자신의 어깨에 정권과 통치를 멘 기이하고 놀라운 왕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의 왕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독재를 하거나 권력을 잘못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독재를 해도 백성들을 괴롭게 만들고, 능력이 없어도 고통을 당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나라에서는 누가 어깨에 무거운 짐을 메고 일해야 합니까? 낮은 사람들입니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어깨 위에 짐을 짊어지고 일해야 합니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배자들을 위해 땀 흘리며 섬겨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왕이라도, 백성이 왕을 자기 어깨 위에 짊어지고 섬기는 것이 세상의 통치 방식입니다. 아래에서 위를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태어난 아기, 우리에게 주어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세상 왕국의 통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높으신 주님께서 오히려 낮고 천한 우리를 짊어지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낮은 자인 우리가 주님을 섬겨야 마땅한데도, 오히려 높으신 그분이 우리를 섬겨주십니다.

주님의 통치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분의 어깨에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분의 통치권이 그의 발밑에 있어서 우리가 그분 아래 기어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의 어깨 위에 있어서 우리를 어깨에 짊어지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선포한 이 말씀의 핵심을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 20:25-27, 새번역)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든 목장이든 개인의 만남이든, 크리스천들이 만나는 모임이라면 그 구조는 삼각형이 아니라 역삼각형의 모양이어야만 합니다. 세상에서는 밑에 있는 다수가 위에 있는 소수를 섬기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와 정반대로 높은 사람일수록 낮은 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역삼각형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마 20:28, 새번역)

예수님께서는 그냥 ‘내가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고 하시면 될 것을, 왜 굳이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까? 이것은 <새로운 삶> 공부에 나오는 핵심 내용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구원과 섬김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섬김 속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겨보기 전에는 구원이 진짜로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주신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예수 믿었으니 천국에 간다’고도 합니다. 구원이라는 개념을 그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거기서 끝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는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잘 안 되고 신앙이 잘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은혜를 받은 게 없이 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건 없는데 밖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고갈됩니다. 그래서 나오는 현상은 불평, 불만, 원망, 서운함, 섭섭함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속에 교회에 대해, 목회자에 대해, 다른 성도에 대해 불평, 불만, 원망, 서운함, 섭섭함이 생기십니까? 그러면 받지는 않고 내보내기만 해서 고갈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할 일은 은혜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열심히 하기 전에 먼저 은혜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 성장이 안 되는 두 번째 원인은 더욱 심각합니다. 그것은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생기는 현상은 주로 무관심과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럴 때 누가 어렵다고 하면 ‘어, 어려운가 보다’ 하고 끝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말든, 그저 나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제목도 전부 자기와 자기 가족이 잘되는 것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크리스천이 되면 영적으로 늘 비어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전혀 닮지 못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꼽으라면 아마도 요한복음 3장 16절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여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gave”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주신 최고의 기부자(The Ultimate Giver)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생명을 주기까지 섬기신 것처럼 생명을 다해 자신을 내어주면서 섬겨보지 않으면 주님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분을 닮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섬겨보지 않으면 생명을 주신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섬기지 않는 사람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섬김 속에 놀라운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웃을 섬길 때 거기에는 시련이 있고, 절망이 있고, 배신이 있고, 그러다 보면 힘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괴로워하며 분이 나서 밤을 지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내도 배우고 사랑도 배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섬기신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씩 깨달아지면서 점점 더 그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의 삶입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왕이신 분이 오히려 밑에서 우리를 어깨에 메어 올리고 섬겨주셨습니다. 그런 섬김을 통해 구원해주러 오셨습니다. 섬김과 구원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한 아기로, 한 아들로 오신 이유입니다. 섬김과 구원, 그것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랑의 섬김을 통하여 구원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이 성탄의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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