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 [Jpn Sub] 보이지도 않는 신을 왜 믿는 거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ㅣ연세대 김학철 교수 ㅣ초월, 종교적 인간, 삶의 의미 ㅣ 잘잘법 Ep.7 상위 100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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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신앙을 갖는 걸까요?
나는 어쩌다 믿음을 가지게 된 걸까요?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가요.
쭉 올라갔어요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봐요 그러면
진짜 희한하게 무슨 생각을 하냐면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여기 지표가 얼마지?
어느 경도 위도에 있을까를 이야기하지 않고
갑자기 뜬금없이 “내가 너무 아등바등 살았어” 하고
자기 삶을 성찰하죠?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인간 안에 있는 초월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든 삭제할 수가 없어요.
#초월 #삶의_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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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복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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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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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 장석환 목사

하늘기쁨목회자독서회

대표, 하늘기쁨교회 담임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합리적일까?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밖에 있는 사람에게 합리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믿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합리성은 중요합니다. 합리성이 결여된 신앙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목회자 독서회에서 함께 읽은 책은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팀 켈러 저/두란노 간행)입니다. 한 가지 흠은 팀 켈러의 논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면 반복해서 읽으면 됩니다. 이 책은 믿음에 대한 논리적 변증을 실제적으로 잘 정리하고 설명하는 좋은 책입니다. 각 항목마다 제시된 질문에 자신의 언어로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으면 합니다.

팀 켈러 목사는 뉴욕의 맨해튼에서 목회하면서 젊은 전문 직종 사람들의 지적인 질문에 이성적인 대답을 찾는 과정을 주저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 밖의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하는 7가지 질문에 대해 매우 학적이고 균형감 있으며 귀에 들리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7가지 질문을 보면서 조금은 부럽기도 했습니다. 불신 청년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부러웠고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한국교회도 이제는 인생에 대해 조금 더 관심 갖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그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준비된 목회자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7가지 질문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강력하고 타당해보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 안으로 들어가면 사실 매우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기독교 역사와 철학사에서 이미 탄탄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로 시작된 7가지 질문은 질문만 보면 해답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연구해보면 질문은 빈약하고 대답은 풍부합니다. 그 대답을 찾으면서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위대한지 더욱 깨닫게 되고 자신의 신앙이 더 탄탄해질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과학 세계에서도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주장하는 ‘과학주의’가 마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젊은지구론)이 무너지면 창조신앙이 무너지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오류에서 이제는 헤어나야 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을 믿도록 안내하는 7가지 증거’를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기독교 신앙을 의심하는 대표적인 7가지 질문이 사실은 근거 없는 것임을 제시하였다면 이제 후반부에서는 기독교의 신앙을 받아들여야 하는 충분한 이유 7가지를 논증합니다. 그러한 이유들이 기독교신앙을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100%의 ‘증명’은 되지 못하겠지만(사실 그렇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믿을 수 있는 ‘이유’들을 제시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그렇게 밖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긍정적인 시각으로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기독교 신앙은 믿음으로 안내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 시각은 그냥 툭 던지고 마는 질문이지만 긍정적 시각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현실 너머에 있는 진리, 생각해보지 않은 깊은 사랑, 꿈꾸지 않았던 행복한 세상에 대해 꿈꾸게 합니다.

이 책을 삶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단,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너무 빨리 덮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끝까지 읽고 다시 읽어서 믿음에 대해 확실한 이유과 근거를 가지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 을 믿어야 하는가*이유

우리는 왜 하나님 을 믿어야 하는가*이유

우리가 하나님 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믿의세요 교회다녀 본적있나요 를 외치는 걸까요

      우리를 만드시고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사함 받게 하시고 그분의 무안한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드리자는 소리입니다 왜 그래야 하냐구요?    무슨 소리냐구요 ?     

        

 

하나님은 정말 존재 하시는 건가요..?   

   대답은 YES!



과학적으로 증명을 해보라고 하시는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죠 우주조차 못밝혀 내는게 사람의 한계인걸요..

사람들이 처음부터 성경을 보자마자 하나님 의 애기를 듣자마자 그냥 믿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영조 목사님 새신자 환영영상

무  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이 살고있나요   

나 자신에 관한 잘못된 점 고민거리 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스시죠? 왜 그렇게 하셧나요 그들은 정죄하니 않았나요? 그들이 당신을 사랑합니까 그들에게서 자비와 은혜를 느꼇습니까

여러분에 생각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친구들 보다 자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친구들이 하나님보다 더 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를 만드신 분 보다 더 사랑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당신이 다시 시작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죄 사함을 받아드리고 말이죠 하나님은 당신이 지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내버리고 싶어서 안달 난 분이 아닙니다 당신이 없다면 하나님은 슬피 우실 겁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당신보다 소중한 건 없다고 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사람들이 고통받는가

어째서 일일이 감시하지않고 죄를 짖도록 내버려두는가

 하나님이 있다면 어째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악행들을 저지르는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째서 자유의지 or 고통 or 악행을 허용하시는가 ←클릭

아직도 별에별 생각이 드시나요?

전도서 9장 17절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마음에 변화가 생기셧다면 두손모아 기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모르고 떠나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죄를 내려 놓고 회개합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용서하여 주시옵서서

   

   예수님게서 저의 죄를 대신하여 보혈 흘리시고 죽으심과

  부활하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제 인생의 주님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제 마음 속에 들어 오셔서 제 삷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평생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위 기도는 영접기도 이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고 죄사함을 믿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셧다고 해서 예전처럼 죄짖고 살아도 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외쳐보세요!

   하나님! 하나님에 그 크신사랑 경험하길 원합니다 !!    혹시 하나님을 믿어야 하면 무언가를 해야하기에 두렵나요? 여러분에 의지로 할려고 하지마세요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 외침을 사랑하십니다

이쯤에서 제목을 바꿔야갰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 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떠한 죄를 지었던..

  

   지금도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돌아오라! 내가 너를 사랑하니라



      지금도 여러분에 마음의 문밖에서 기달리고 계십니다..

   이제 마음에 문을 열어주세요 그손으로 다시 하나님을 붙잡아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동일하게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오직 단한분 ..        예수님은 말씀하셧습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회계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셧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예수)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것이니라

곧 빛이(예수)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예수)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예수)을 미워하여 빛(예수)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하나님의말씀) 를 따르는 자는 빛(예수)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한복음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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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리라

​요한복음 14:6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복음의 핵심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복음의 핵심

– “일상, 부활을 살다” 옮긴이의 글을 읽고

“일상, 부활을 살다” 독서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OT 이후에 첫 모임이었는데, 옮긴이의 글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특히 2015년 이후 출판사가 ‘복있는 사람’으로 바뀌면서 옮긴이의 글과 서문이 추가되었는데, 복음이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내다 보니, 제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통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먼저, 이 책을 번역한 권영경 교수님(이후 옮긴이)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분들과 교분이 두터우시고, 실제로 한국 신약학계에서 명망 있는 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제가 접한 유진 피터슨의 글을 탁월하게 번역해주셨습니다. 독자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옮긴이가 이 책에 대해 소개한 글에서 유진피터슨의 책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부활”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 부활을 능력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았고, 이는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 유진 피터슨의 글에서 부활이 능력인 것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능력의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옮긴이가 덧붙인 ‘하나님을 믿는 이유와 복음의 핵심을 소개한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한국어 번역본을 읽을 독자들을 고려한 것이거나,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한국적인 정서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를 보완 혹은 재진술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만이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 이다. 바로 이 생명의 능력이 복음의 핵심이다 .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그 영광스런 능력으로 우리의 죽을 몸 또한 살리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정의했다. (롬 1:16, 고전 1:18,24) (일상, 부활을 살다 p.15 옮긴이의 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장)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코로나 19 상황을 지나면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찰할 지점을 안내해주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에 대한 답이 무엇이냐가 우리의 신앙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옮긴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하나님만이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 생명의 능력을 복음의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제가 읽기에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아주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야 하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처럼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능력의 복음은 사실은 복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결과에 대한 보장만 있을 뿐입니다. 조건부 신앙 같은 공식이 제시되고, 이는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완벽한 공식(‘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날 천국 가는 것이 가장 완벽하다’ 같은..)의 한 예가 됩니다.

2. 능력의 복음

옮긴의 글에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는 (제가 보기에는) 바로 “능력”과 “결과”에 주목하는 점입니다. 능력이나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능력-영향력에 목말라 있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시한다는 말입니다. 돈이나 생산성을 논하는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이나 예술 같은 영역에서 다뤄지는 추상적인 가치들도 수치화되고 가시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얼마나 대단하냐, 성공 가능성 같은 말로 비교하고 더 할지 그만 할지를 구분 짓는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와 기독교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목회자에게서도 능력을 찾거나 스스로 그 능력을 구비하려는데 마음이 있고, 교회 안팎에서 교회 건물의 크기, 성도의 숫자를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헤아리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됩니다. 이런 정서들에 고스란히 노출된 성도들도 자신의 능력, 자신이 속한 집안, 회사, 교회에 관심이 높습니다. 실제로는 개발도상국보다 더 부요하지만 그에 따른 평안 없는 편안한 삶을 살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옮긴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와 복음의 핵심을 무엇으로 제시하는가에 대한 이 글은 유진 피터슨이 책에서 밝히는 영성형성의 개념이 세속화되고 있고, 교회조차도 주변 문화와 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비슷해졌다고 탄식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를 하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매우 시급한 사안에 속한다. 우리 주변의 문화가 영성 형성의 개념을 끊임없이 세속화시키고 있는 상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속하여 살아가고 글을 쓰며 가르치는 무대인 교회조차도 주변 문화와 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비슷해져 버렸기 대문이다. (p.30)

모든 능력은 하나님에게 의존한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능력은 실제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땀 흘려 수고함으로 얻은 땅의 소산, 학업의 결과, 성장은 응당 내 스스로 그 업적을 이룬 것 같아 보여도, 그 일이 그리하도록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제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10년 동안 박사학위를 받고 이제 원하던 학교에 임용이 되었는데 췌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다면 정말 그러합니다. 정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1)는 말씀이 실감 납니다.

하나님을 능력으로 이해하는 신앙의 한계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는 능력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발전하게 합니다. 또한 어쨌거나 살리는 능력, 생명의 능력은 좋은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유를 거기에 두면 우리 삶은 혼란에 빠집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그 안에서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하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의 능력을 왜 베풀어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넘어선 원망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합리주의적 사고는 그 학생이나 부모, 혹은 그와 관련된 누군가의 죄 때문에 징벌하신 게 아닐까 몰아세우고 우리로 절망을 깊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능력의 복음을 구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능력의 바른 이해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옮긴이가 인용한 로마서와 고린도 전서에서 말하는) 그 능력의 본질은 십자가입니다. 세상은 부끄러워하나 우리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되는 십자가입니다. 능력은 남들보다 앞서고 난 뭘 해도 안 죽는 불사의 능력이 아니라, 기꺼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능력,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능력은 능력인데 세상이 주목하는 것과 반대되는 방향으로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능력의 복음을 찾아야 합니다. 얼마나 고통당하지 않느냐의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관점, 아니 온 세상도 아니고 미국과 그 뒤를 따르는 실용주의 합리주의에 매몰된 한국의 관점에서는 그래도 살리는 생명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에 지나치게 목매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이 아닌 무엇이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있을까요?

2. 사랑의 복음

사랑 없는 결혼, 하나님 없는 천국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저는 우리의 복음을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결혼의 참된 이유, 가족의 참된 이유를 사랑에서 찾아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결혼에서 사랑이 아닌 다른 현란한 조건들만 남게 되면, 그 결혼의 가치는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의미로 타락하고 맙니다. 건강이나 외모, 경제력 등이 결혼 조건이 될 때, 결혼 이후에 불의의 사고로 그것들을 상실하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이어나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그저 이 세상에서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좋은 아파트에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맛있는 진귀한 음식들을 잔뜩 먹고 즐겁게 노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며, 그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다른 무엇도 필요 없는, 그 무엇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천국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천국이 아닙니다.

사랑받는 자가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은 본래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의무로 다가올수 없습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 그 사랑 받는 줄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랑을 듣고 경험하기 전에, 율법을 접하고 거룩을 요구받으면 사랑이 왜곡됩니다. 사랑을 머리로만 배우면 알기는 하는데, 그 사랑을 믿는 삶에 깃드는 샬롬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 받은 자가 그 사랑을 소개해주고 직접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잘 알 수 있도록 성경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하지만 그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율법과 복종의 질서를 뽑아내는 자들과 이단들의 훼방이 만만치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기도, 그 사랑에 반응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자격 없는 나, 사랑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나를 사랑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고 믿는 자는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기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 집니다.

사랑의 순종

이 사랑에 관해 조금 더 진술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적인 복종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예배할 일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는 자녀와 친구를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 사랑의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부터 줄곧 기대할 필요 없을 것 같은,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면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니다. 조건적 사랑을 훌쩍 뛰어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듯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참으시고 기다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이다

그렇기에,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나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삶을 삽니다. 사랑하고 있는데 더 사랑하고 싶은 삶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복음입니다.

From the scrapbook of Jessie and Sarah Vawter. Circa 1889-1897. A collection of cards, advertising cards, and images.

3. 복음의 핵심.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은 능력의 복음이 아니라 사랑의 복음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복음의 핵심을 논의할 때, 생명의 능력은 복음의 기초라기보다는 결과,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결과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에게서 넘치는 사랑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어 다스리게 하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부부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사랑의 결과로 생명이 잉태됩니다. 교사나 목사나 어떤 성도라도 사랑이 없이는 단 한 명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옮긴이가 말한 문장에서 시작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복음의 핵심”은 이렇게 수정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바로 이 사랑의 능력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도 그분을 사랑하는 제자,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멸망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이 되지 않으실래요? 여전히 궁핍하고, 여전히 연약하고, 여전히 곤고한 중에 있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와 함께 하는 가족과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삶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런 사랑받고 싶고, 더 받고 싶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적있는 삶, 목적있는 신앙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얼마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죠. (전국의 모든 수험생분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시간과 잠을 아껴가며 공부를 하는 이유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퇴사충동과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도 출근하는 이유는 생계유지와 커리어를 쌓는 등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목적있는 삶을 살듯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도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계신가요? 믿는다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나요? 간혹 어떤 분들은 인간관계 등의 목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시더라구요. 그렇다면 성경이 정의하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우리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

우리의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우리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죄인이며 그 죄의 댓가가 사망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롬6:23). 따라서 영혼의 구원이란 이러한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장 25절 |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며 곧 영생입니다. 영생을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을까요?

영생하는 방법, 하나님의 약속 유월절

요한복음 6장 53-5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이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영생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이라 약속하시고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약속하셨습니다.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머고 마신 사람입니다. 따라서 새언약의 유월절을 지킨 사람이 영생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대로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목적인 영생은 새언약의 유월절을 지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천국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생명만이 있는 곳이기에 언젠가 죽을 존재들은 결코 갈 수 없는 곳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바로 사망도 없고 아픔도 슬픔도 없는 천국이 영생을 얻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영생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새언약의 유월절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새언약의 유월절이 있는 교회라면 어느 교회에 가든 천국에 갈 수 있겠지만 전세계 유일하게 새언약의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 영원한 생명 얻는 새언약 유월절 모든 분들이 지키시길 소망합니다^^

[마태복음 9장]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 마태복음 9장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 신앙으로는 이 세상을 살수가 없습니다. 공기를 보지 못하나 공기가 없으면 단 3분도 살 수 없듯이,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공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잃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삶을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내세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요3:18절에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관문을 통과하는 날, 영원한 고통의 지옥이 아닌, 죽음도 탄식도 없는 영생 복락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중에서 지옥에 부자의 어리석은 후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 지상 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지금 지옥에서 부자의 후회를 할 것입니다. 천국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2. 현세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요일5:4절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비단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개인적인 신념보다는 이웃간의 믿음 즉 신뢰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물며 신념을 앞세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부인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강팍합니까? 죄와 불의가 가득합니다. 사탄이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유혹하는 불 신앙의 요소가 수 없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날마다 승리하고 바로 살려면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3.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받은 축복을 어떻게 낱낱이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건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믿고 받은 축복이 수없이 널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주실 까요? 오늘 본문 마9:1-8절 말씀은 믿음의 중요성과 이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께로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 그 자체를 주님께서는 중요한 믿음으로 인정하십니다. 오늘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중풍 병자와 같이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완전합니다. 주님은 죄짓던 이 모습 이 대로를 부르시고,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 오기만 하면 새로운 생의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에는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믿음은 그릇이요, 축복은 그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주님께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 설교 ‘믿음으로 받는 복’ 중에서

by 코이네자료실

당신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이유

삶의 지혜와 사랑이 샘솟는 쉼터

청계 방주 교회

“당신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이유”

알고계시죠? 당신이 세상을 사는동안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죽음뒤에 천국과지옥에 대한 선택은 절대로 당신의 자유로 결정할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는?

첫째:당신도 결국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하고 사망이라는 죽음을 언젠가는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당신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천국이냐 지옥이냐 갈림길에 서기 때문입니다.

셋째:이때 예수 믿지않으면 당신은 틀림없이 지옥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성령님으로 임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십시요

넷째:그러나 당신이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되어 천국으로가서 영생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1.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죽고 난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고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져지게 되고(요한게시록 20:15 참조),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고, 죽은 사람은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로마서 6: 23 참조)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구원이 필요하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실히 살고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 8- 9)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롬10: 1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석가, 공자, 마호메트, 문선명이가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도 다 죽어서 무덤에 있고, 앞으로 무덤으로 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죄에 빠진 인간은 도덕, 과학, 철학, 종교 등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오직 길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4. 예수님을 믿으면 참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게 종노릇 하던 신분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로마서 6: 6 참조)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라디아서 5:1)고 말씀하셨고, 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 3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율법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은 몸이 되었습니다.

4. 예수님 안에 참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도적”은 마귀를 의미하고, “내가”는 예수님을 의미하며 “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풍성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5.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사랑과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한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하는 말이 “왜 변변치 못하게 행동해서 거기 빠졌는가?”하고 꾸짖기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유교는 윤리적으로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잘못을 전제적으로 경책만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하는 말이 이편으로 나무 가지를 붙잡고 저편으로 돌 뿌리를 딛고 올라오라고 다만 동정의 뜻을 표하며 나오는 방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입니다. 자력으로 구원 얻는 지식을 제시하여 줄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이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책망하거나 물에서 나오는 지식을 전할 여지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물속에 들어가서 죽어 가는 자를 끌고 나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새 옷을 입히고 그 사람의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공자나 석가처럼 이론만을 가르치지 않고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여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주십니다. 어떤 종교이든 사랑과 자비를 말로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익(無益)합니다.

밥이나, 옷이나, 돈이나, 몸을 주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랑은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누가 나를 대신 죽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거기에는 조건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그 큰사랑 때문입니다.

공자도 석가모니도 모하메드도 맹자도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들의 도덕적인 가르침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책임지고 대신 죽어 준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죽어 주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속죄의 죽음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린도전서 13장 1절)

예수님은 위대한 교육자이십니다. 그 분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으시며,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본을 보이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신 분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기독교만이 참 진리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태초에 여호와께서 무에서 스스로 의지를 가지사 나타나신 이후. 세상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뱀으로 화신한 사탄에 의해 타락한 이후 인간들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에덴동산과는 달리 이 세상은 평화롭지가 못했습니다. 항상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해일이 오기도 하며 폭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이 세상에 퍼진 인간들은 그것을 보고 “아, 태양의 신이시여!” “아, 번개의 신이시여!” “아, 비의 신이시여.” “바다의 신이시여. 대지의 신이시여.”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게 빌기 시작했지요. 물론 거기에는 세상의 지배자인 사탄의 입김이 많았지만요. 어찌 되었든 세상은 더러워졌고. 여호와께서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배성들을 택하셔서 훗날 구원의 메시아가 세상에 탄생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구약성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세상에 많은 진리와 구원을 퍼뜨리셨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어 음부로 내려가신 후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이 구원의 씨앗을 퍼뜨렸죠.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우리가 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느냐?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호메트도, 석가모니도 자신을 구원의 열쇠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마호메트는 알라(여호와의 중동식 발음)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이슬람의 세력권을 하나로 통합시켰죠. 석가모니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평생 공부하다가 마지막에 “세상은 無” 라는 말과 함께 입적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스스로를 구원의 열쇠라고 장담하셨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사기꾼이라면. 그리고 그 제자들 또한 사기꾼이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은닉하고는 예수님을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고 했다면. 그 제자들이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서 죽었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요한 또한 처형당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과 이들이 사기꾼이었다면 이들이 목숨을 걸고 성경을 쓰고. 목숨을 걸고 신앙을 고백하고. 목숨을 걸고 교회를 세웠을까요?

만일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거짓이라면 이들은 성경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일 썼다고 하더라도 로마 정권이 이들을 심문할 때 이들은 “나와 예수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내용은 진실이기에 이들은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라고 하고 처형당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주로 한 신이며 질투의 신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 배달민족을 택하셨다면 지금쯤 다른 나라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한국을 위주로 한 신이며 질투의 신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중국에 가면 공자의 무덤이 있고, 인도에 가면 석가의 무덤이 있고,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산 종교가 있고, 죽은 종교가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종교가 있고, 주지 못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교주가 살아 있는 종교가 있고, 교주가 죽은 종교가 있습니다.

교주의 무덤이 없는 종교가 있고, 무덤이 있는 종교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 종교란 생명이 있는 종교를 말하고 생명이 있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어제는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존재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풍랑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권세를 쥔 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살리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1:3)

우리가 전도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물이나, 컴퓨터, 시계 등이 저절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설계자가 있고 반드시 만든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나, 컴퓨터나 시계보다 더 질서 있고 정밀한 것이 우주입니다. 이 우주가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창조자가 없이 저절로 우연히 생길 수는 없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 친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늘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며 견지되는 것이니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케플러는 그 친구에게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게 해주고자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계의 모형을 실제 크기의 축소 비율에 맞게 만들어 아름다운 색을 칠하고 별들이 빛을 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하여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매우 감탄을 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나?” “아무도 만들지 않았네. 자기 힘으로 생겨나서 자기 힘으로 도는 것일세” “뭐야? 어서 말해봐. 어떻게 만든 사람이 없이 절로 만들어지고 돈단 말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잖나?” “이 친구야!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장난감도 만들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거대한 우주 만물이 창조주가 없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있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공기나 전파나 양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2. 조상 제사 때문에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 때문에 교회를 안다닌다고 하니 요즘 세상에 정말 대단합니다. 살아 계신 자기 부모도 모시지 않으려는데 돌아가신 분의 생신까지 기억하고 예의을 갖추겠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조상 제사의 의미는 고인의 은덕을 기리고 남아 있는 가족이나 형제들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의식은 기독교에서도 행하고 있습니다. 추도 예배라는 의식도 가지고 있으며, 성경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할 것에 대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엡6:2, 출20:12, 잠4:1)

3. 모든 종교는 다 같기 때문에 또는 불교나, 유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안 믿겠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타종교가 다른 네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부처는 한 번도 자신을 신이라고 한 적이 없으며 사실 그는 불가지론자였습니다. 모하메드 역시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은 단지 “알라”라는 신의 예언자라고 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당신은 신”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펄쩍 뛰었을 것입니다. 공자는 미래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그가 신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그는 단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모하메드, 부처, 공자 어느 누구도 인간의 죄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책으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세 번째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부활하지 못했고, 그들의 추종자들도 그들이 살아났다는 주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언젠가 이스탄불에서 모하메드의 잘려진 손가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몸이 각 부분은 불쌍하게도 그렇게 지중해 각 지방에 조각 조작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의 조각난 몸을 다시 모아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독특하십니다.

네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본성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혹시 나폴레옹이 유배당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는 동안 성경을 공부하면서 그때 그가 말한 것을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나폴레옹은 말기를 “혹 성경을 겉으로 훑어보기만 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다른 종교의 창시자 사이의 유사점을 보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그런 유사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다른 창시자들과의 차이점은 무한한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말이고 사실입니다.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하고도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4. 종교를 바꾸면 우환이 오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귀신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신중의 신이므로 우환을 겁낼 것 없고, 하나님은 위대한 분이셔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여러분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5. 나중에 믿겠다고 합니다.

한국 전쟁 후, 전쟁 포로들이 손을 들고 선택했습니다. 그 때 바로 선택한 사람은 남한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고, 잘못 선택한 사람은 북쪽에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천국 혼인잔치도 문을 닫을 때가 있습니다. 때와 시기를 놓치면 크게 후회하거나 통곡하게 됩니다.

6. 시간이 없어서 교회를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십니까? 돼지가 먹는 것 가지고 고민하는 것 보았습니까? 나의 인생의 최대 관심이 무엇입니까? 고작 먹고 사는 것으로 고민하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오십시오. 당신의 삶이 풍요롭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7. 기독교인들의 부도덕성과 위선 때문에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부끄러운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두 명의 깡패 학생이 있다고 학교 전체를 깡패학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무 한 두 그루가 썩었다고 나무가 있는 숲 전체를 썩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완전한 교회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아서 등록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등록처에 가서 “나는 완전한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이 교회가 완전한 것을 발견하고 등록하려고 합니다.” 라고 하자 등록처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이 등록한 이 순간부터 우리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아니므로 당신의 등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남의 눈 속의 티끌을 보지 말고, 내 눈 속의 들보부터 빼야 하지 않을까요?

8. 술, 담배 때문에 교회를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술, 담배는 좋으니까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달라집니다. 과거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보리개떡이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어도 안 먹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알게 되면 저절로 술과 담배는 멀어지게 됩니다.

9. 기독교는 너무 독선적이기 때문에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결국에는 다 하나님에게로, 천국으로 갈 것이다. 오직 기독교만 하나님께로, 천국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주장이다.”라는 말은 있을 수도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금하시고 끔찍이 싫어하시고, 하나님께서 가장 무섭고 크나큰 반역죄라고 규정하신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믿는 종교의 길이 결국은 같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며 같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시무시한 반역대죄이며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죄악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께로 올 수 있다거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지옥 불못으로 떨어져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 ” 두려워하는 자들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간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라고 엄하고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계명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 길이 같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거나 같은 천국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해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의 길은 하나님의 길과 같은 길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 가는 길이 완전히 반대가 되듯이 영원한 반대의 길입니다.

왕이 반역죄를 지으면 사형을 시키겠다고 경고를 했는데 그 왕에게 반역죄를 지어 왕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면서 “나의 반역죄가 결국 왕과 하나가 되는 길이다. 결국 왕과 같이 궁전에 사는 길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생각은 정신병적인 모순의 말입니다.

왕이 엄금한 반역죄, 왕에게 잡히면 죽을 반란죄를 짓고 있으면서 ‘결국은 이 반역은 나와 왕이 같이 궁전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반란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반역자가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이 엄금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교회를 부수고 불태우는 자들의 종교가 같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고 같은 천국에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을 욕하고 헐뜯고 반대하고 미워하고 감옥에 넣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이유가 기독교인들이 너무 편협하고 독선적이기 때문에 핍박하고 죽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이유는 자기들이 믿는 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교의 신봉자들이 구한말에 기독교인들을 수없이 죽인 이유는 단지 자기들이 신봉하는 유교의 조상신에 대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므로 유교 역시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기독교인들을 죽일 정도로 자기들의 신앙만이 옳다고 여긴 편협하고 독선적인 종교입니다. 불교를 믿는 가문에 기독교인 며느리가 시집을 가면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핍박하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은 불교인들 역시 자신들의 종교가 옳다고 여기고 기독교를 믿으면 3재가 끼여 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탄, 티벳, 스리랑카등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의 산골 오지 불교 부족에서 전도를 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불교 부족마을 사람중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 가문에서 추방되기도 한답니다. 그렇다면 불교도 역시 독선적이고 편협한 종교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국가에서는 기독교를 믿으면 사형입니다. 이것은 이슬람교 역시 편협하고 독선적인 종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나라들에서는 이슬람교에 대한 포교의 자유가 있는데 이슬람교 나라에서는 기독교를 전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니 이슬람교가 기독교보다 더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V 의 연속극에 교회 예배장면이나 목사님 설교 장면이 나오면 방송국에 그것을 항의하는 타종교인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극에 불교의 스님이 나오고, 불상 앞에 예불을 하는 장면이 밥 먹듯이 단골로 나와도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별로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신원그룹이 TV 광고에 ‘주일은 쉽니다’라는 문구를 쓸려고 했는데 방송위원회에서 타종교인의 비판을 고려해서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은 쉽니다’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핸드폰 선전 등 TV 광고들을 보면 노인스님 어린 동자 스님 골고루 다 나옵니다. 그래도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하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방송국 PD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훨씬 너그럽고 점잖다.’ 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TV 연속극이나 광고 하나만 보더라도 볼 때 기독교인들이 더 편협한가 아니면 다른 종교인들이 더 편협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교나 불교나 이슬람교가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 종교를 비판하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종교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어떠한 종교이든 간에 본질적으로 자신들의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종교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이고 편협한 면을 다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만이 유독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구원관에 있어서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 때문에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독선이나 편협의 차원이 아니라 확신의 차원입니다.

기독교의 교인들이 그런 교리를 꾸며내어 그러한 주장을 한다면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들이 믿는 성경에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고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대로 믿는 것일 뿐이며 또한 믿는 것을 그대로 전도할 때 말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고 “그래 어느 신 어느 종교를 믿어도 좋은 것이지.”라고 관용하시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로 규정하고 무서운 지옥형벌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이 유대교도들에게 돌로 맞아 죽기 전에 “유대교를 믿어도 구원이 있는데 왜 하필 나를 믿을려고 하니? 괜히 나를 믿다가 유대교인들로부터 죽임당하지 말고 유대교를 믿겠다고 해라. 모든 종교는 다 똑같느니라.”라고 하시지 않고 천국보좌에서 일어나셔서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에게 순교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대교를 믿든지 어느 종교를 믿든지 다 좋다. 그러니 내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한 뒤에는 굳이 나를 믿을 필요없이 너희들이 아무 종교나 선택하여 믿어라. 너희들이 나를 믿든지 아니면 다른 종교의 신이나 교조들을 믿든지 나중에는 모두 다 천국으로 오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지 않으시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비판을 하려거든 기독교인들을 비판하지 말고 기독교인들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친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삿대질하며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욕을 하든지, 아니면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욕을 하며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비판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하여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무서운 신성모독죄이기 때문에 지옥형벌을 피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종교의 교조를 믿어야 극락이나 좋은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 보다 덜 독선적이고 덜 편협하고 더 마음이 넓고 더 관용이 많고 더 아량이 많고 더 너그러워서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유교, 불교, 이슬람교의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모습 하나만 보아도 그들 종교가 결코 기독교보다 더 관용과 아량이 많고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은 독선적인가 아닌가, 편협한가 아닌가, 너그러운가 아닌가, 아량이 많은가 아닌가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하여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욕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욕을 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인들에게 그것을 가르친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직접 욕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무서운 신성모독죄이며 반역대죄이므로 지옥형벌을 피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것은 독선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라기보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기독교 2000년 역사상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은 후의 세계에 관한 진리의 확신 때문에 순교를 했습니다. 현대에도 이슬람국가, 불교국가, 공산국가등 기독교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나라들에서 매년 30만 명의 순교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독선이나 편협의 차원이 아니라 확신하느냐 확신이 없느냐의 차원입니다.

기독교역사상 수많은 순교자들이 기꺼이 순교한 이유는 그들이 독선적이거나 편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많은 전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전도하는 이유도 그들이 독선적이고 편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편협하거나 독선적이라고 비판만 하기 전에, 다른 종교인들은 “우리 종교를 믿어야 좋은데 갑니다.”라고 자신있게 전도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왜 유독 기독교인들만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시는 하나님과 오직 한 분이신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을 당신의 개인의 구원자로 믿고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을 택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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