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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3)
영적 마라톤의 세 가지 법칙
Three Principles of Spiritual Race
히브리서 12:1-3
남가주온유한교회 장범원 목사
www.onyou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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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트] 히브리서 12장,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자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자> – 선한목자감리교회 유기성 목사 설교 中. [본문 말씀]. 히브리서 12장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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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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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강해설교말씀]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히 12:1-29)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12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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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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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1-3절 “믿음의 경주” – 목회 아카이브

설교를 시작하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믿음의 경주로 묘사하는 장면을 소개하여 드렸습니다. 빌립보서의 한 구절이었지요. 내가 이미 얻었다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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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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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1-11절 – 좋은친구교회

방금 읽은 성경본문 히브리서 12장은 바로 “훈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엄청난 핍박으로 고통당하고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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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odfriendchurch.com

Date Published: 1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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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큐티설교(히브리서 12장 1-13절) 믿음의 경주를 완주 …

히브리서 12장 1-13절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사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왜 축구의 신인가? 발롱도르 최다 수상 :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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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iic.net

Date Published: 6/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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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영적 매뉴얼 – 양산중앙교회

오늘 읽은 히브리서 12장 말씀은 당시 고난당하는 성도와 교회에게 주시는 영적인 지침서, 매뉴얼입니다. 먼저 1절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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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angsanjungang.or.kr

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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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자!(히 12:1-2)

오늘은 히브리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소망은 주님을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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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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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2장1절-3절 (예수를 바라보자) – 다음블로그

https://youtu.be/iKrz3GfTvVk. <2019년7월7일 설교영상>. 제가 지난 주에 근 십년 만에 대학 동창생을 한 명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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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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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

주께서 주시는 징계 ·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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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9/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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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마라톤의 세 가지 법칙 (히브리서 12:1-3) 남가주온유한교회 온라인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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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트] 히브리서 12장,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자 – 유기성 목사

누가 예수 믿는 우리를 보고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암에 걸린 사람, 삶이 바뀐다. 암입니다고 말하는 것, 그때 그 사람의 마음에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내가 죽음이 가까웠구나.

죽지는 않았는데 죽었다. 그러니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도 달리 보이고, 문제를 만나도 달리 보이고, 돈 명예 성공도 달라 보이고, 이제 다 달리 생각이 된다. 사람들을 볼 때, 다 귀하게 보인다. 싸우고 살 이유가 없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살고 싶어진다. 우리가 암에 걸려서야 만 이것을 깨달으면 난감하다. 우리는 이미 예수를 믿을 때 그와 같이 된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죽음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죽었다. 그것이 예수 믿은 자의 고백이다. 그것을 분명하게 고백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무거운 짐, 얽매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예수님을 분명하게 믿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은 몽골 선교사로 있다가 지금은 인도네시아로 가있다. 그분 마음에 “내 집이 어딜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 집이 어딜까?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몽골 선교사에서 인도네시아로, 마음에 내린 결론은 “아내가 기다리는 곳이 집이다”라는 것이다. 내가 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 아내였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있는 곳”

그렇게 깨달았노라고 적으셨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면 여기서부터 천국의 삶을 산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있다. 우리는 다 그곳에 가게 되고 이 땅 가운데 이뤄지게 된다. 우리는 왜 천국에 가려고 하는가? 천국에는 주 예수가 있으시니까! 그런데 그 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셨다. 주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려는데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왕이 되시면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여기서 사는 삶이 천국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무거운 짐, 얽매인 죄, 다 벗어버리고 거룩한 삶을 달려가듯이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장미에게 장미꽃을 피우라 명령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장미꽃이 피는 것이다. 강아지 보고 짖으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본능이다.

독수리 보고 높이 날라고 할 필요가 있나?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높이 나는 새다. 이것은 생명이다. 어떤 존재든지 그 생명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삶이 따라온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우리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이 생명이 되셨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놀라움을 얻게 된다.

2절,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도 지시고 하나님의 보좌 영광에 앉으셨다. 그 예수님이 우리 생명이시며 우리 왕이시다. 그러니 우리도 십자가 지는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와도 우리는 꿋꿋이 주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시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답답하셔서 하신 말씀이 있으시다.

4절,

4.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 안에 피 흘리기까지 살려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지 못하고 죄를 은근슬쩍 좋아하니까 죄를 못 벗어나는 것이다.

내 속에 죄에 대한 즐거움이 있을 때는, 죄가 즐겁고 속으로는 그것을 더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너희가 죄에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다고 하시는 이유다. 무슨 산에 올라가서 고행을 하거나 수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었다. “하나님이 다 이뤄놓으신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난 목요일에 저녁 집회가 끝나고 기도의 영이 부어져서 뜨겁게 기도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누군가가 와서 기도해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새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획한 거 다 무너졌어요”

아무리 결심해도 3일에 다 무너진다. 그것은 기도 제목이 아닌 탄식이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도 똑같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하나님 기뻐하는 뜻대로 살아보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것. 결심해도,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그렇게 버티다고 안되면 그 절망감은 말할 수도 없다. 목사 그만둘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그때, 몰랐던 것이 몸부림치는 것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기에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왜 죄인가? 이미 죽은 것이구나.

“나는 죽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하시고, 그렇게 검증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어떻게 기도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중에서도 도무지 안된다고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절망을 주님이 기뻐하신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으면 우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서 절망하니까, 비로소 죽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죽었다고 고백하면 비로소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다.

절망에 빠져서 밤에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할 때, 주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내게 맡기고 자라” 마음은 다 무너졌는데, 이렇게 자도 될까? 그래도 주님께서 너무 분명하게 자라고 하시니, 비로소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더 늦게 무너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늦게 무너지려고 발버둥 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하시는 일.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당뇨병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분들, 매일 운동하시고 혈당 체크하고, 매일 그렇게 한다. 암 걸린 환우들은 음식을 조심하고 마음까지도 조심하고 산다.

우리는 당뇨, 고혈압, 암이 문제가 아니다. 예수 믿으면 짐과 죄에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제 살아계신 주님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이 희미하게 바라보아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따금 바라보아지는 그런 삶이 아니다. 2013년, 송구영신 예배 때, 이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자. 그렇게 선포했다.

남은 인생의 첫날,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분을 온전히 바라보며 살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죄가 즐거웠던 사람인 내가 이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죄는 고통이 되었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이 되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죄가 고통이 되었는데 왜 죄를 짓는가? 벗어진다. 근심 염려가 되지 않는 것, 사람이 두렵지 않는걸, 주님을 바라보니 죄가 고통스러운 것. 완전히 뒤집어진다.

오늘 이 시간 죄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분, 이제 주님께 반응을 하자.

[히브리서 12장 강해설교말씀]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히 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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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12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고 앞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주님을 바라보면서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마지막 날에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혼 구원을 받았으니 영화 구원도 반드시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만을 소망하면서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 (히 1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히 12:1-29

요절: “믿음의 시작이요 또 완성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은 그분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주제: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이시오 완성 자이시며 소망의 완성이시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히브리서 12장을 강해합니다. 히브리서 마지막 3장은 바울의 신학의 뼈대가 되는 믿음, 소망, 사랑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완성이신 예수님, 오늘 12장에서는 믿음의 시작이며 완성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소망으로 현재의 환난을 끝까지 인내하자고 교훈하며, 다음 주일에 살필 히브리서 마지막 장인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랑의 완성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달리기 경주(히 12:1~4)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시작이시요 또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이는 여러분들이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분을 생각하기 때문이라 4 여러분들이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11장에서 살핀 믿음의 선진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살아간 모습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달리기 경주를 할 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달리기 경주자는 가벼운 복장을 하고 경기에 임하듯이 신앙의 경주도 비슷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이란 온갖 종류의 세상 염려들을 가리킵니다. 그것들은 의식주에 대한 염려, 돈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가정에 대한 염려 등을 포함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들은 형제자매들에 대한 미움과 시기, 거짓과 탐욕, 음란 등의 죄악들을 포함합니다. 또 신앙의 경주에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성도의 경건 생활은 하나의 훈련과정이며 거기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절제와 극기와 인내가 상당히 요구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히 10:36).

2절 “믿음의 시작이시요 또 완성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아르케곤 archegon)’이란 믿음을 시작하시는 분(the author)이란 말이며, 또 온전케 하시는 이(텔레이오텐 teleiothen)’라는 원어는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the finisher of our faith)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믿음을 시작시키시고 완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행하신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께서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2:8, “여러분들이 그분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여러분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빌립보서 1:6, “여러분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예수님은 또한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분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그분께서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실 일을 가리킵니다. 1절과 2절에서 주동사는 ‘경주하자’이며 ‘벗어버리고’나 ‘바라보자’는 분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진행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경주는 현재 진행입니다.

3절 “이는 여러분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 때문에 또 심지어 때로는 교회 안의 형제들의 흠과 결함 때문에 피곤해지고 낙심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거역하는 죄인들의 악한 행위들을 참으셨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오히려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4절에 “여러분들이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악하고 위선적인 유대 지도자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정죄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로 자라왔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이자 신학자였던 터툴리안(Tertulian, AD 155년~ 240년 경)은 “교회라는 나무는 세 가지 액체를 먹고 자란다. 수고의 땀, 기도의 눈물, 순교의 피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가 존재했고 자라왔습니다.

2. 하나님의 징계하심(히 12:5-13)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여러분들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하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분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이는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분께서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7 여러분들이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께서 아들과 같이 여러분들을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여러분들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여러분들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5-1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징계로 받는 고난을 달게 받고 인내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5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여러분들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하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분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징계하심’이라는 원어(파이데이아 paideia)는 징계함을 포함하여 사람에 대한 전인격적 교육과 훈련을 나타냅니다(엡 6:4, ‘교양’; 딤후 3:16, ‘교육’). 하나님의 징계하심에 대해 성도는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의 책망하심과 징계하심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 합니다.

6-8절에 “이는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분께서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7 여러분들이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께서 아들과 같이 여러분들을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여러분들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주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미워하시는 자들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고 버려두시고 무관심하실 것입니다. 버려두심과 무관심은 징계보다 훨씬 더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은 우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징계하심은 그분께서 우리를 아들과 같이 대하시는 증거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잘못할 때 엄중히 징계하십니다. 좋은 아버지일수록 자녀들에 대해 성실히 징계한다. 그러므로 징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대우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을 바른 교훈과 책망과 징계로 교육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녀가 아닌 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자녀들에 대해서는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사생자이며 참 아들이 아닐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9-10절 “더욱이 우리 육신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는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징계하는 육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공경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공의롭게 징계하시는 하나님, 곧 ‘영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육신의 부모는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징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뜻대로’(카타 토 도쿤 아우토이스 kata to dokou’n autois) 즉 ‘그들에게 선하게 생각되는 대로’ 징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즉 우리로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기 위해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우리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히 생각하고 받으며 성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11-13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여러분들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의(義)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나(롬 3:24), 교육과 훈련과 징계를 통해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또 ‘평안’의 삶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징계를 통해 의롭고 평안한 삶을 누립니다. 모든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후에는 그것으로 단련을 받은 자들에게는 의의 평안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심신으로 연약해져서 손도 늘어지고 무릎도 연약해지고 다리도 절뚝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징계가 참 성도의 표요 자신의 성화에 유익한 것임을 깨닫고 힘을 잃지 말고 일어나 전진해야 합니다.

3. 화평과 거룩함을 좇으라(히 12:14-17)

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성도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는 것입니다. 성도 사이에 원수를 맺는 일은 육신의 죄성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로마서 12:18에서, 바울은 “할 수 있거든 여러분들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화평을 원해도 상대방이 우리를 오해하고 미워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해하려는 경우가 있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악한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 강조하는 것은 거룩함인데 거룩함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4:3, 7). 거룩함(히브리어 카도쉬, 헬라어 하기오스)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이미 달성되었습니다(고전 1:30; 히 10:10, 14). 그러나 이제 법적으로 완성된 이 거룩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서 ‘이것’(남성관계대명사)은 거룩함을 가리킵니다. 거룩한 자만이 주를 볼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8). 에베소서 5: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15-17절 “여러분들은 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②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③ 음행하는 자와 ④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계속 거룩성에 대한 권면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셨지만, 그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표는 회개와 믿음과 순종입니다. 둘째는 ‘쓴 뿌리 any root of bitterness’입니다. 쓴 뿌리란 이단사상이나 도덕적인 악을 조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입니다. 가라지나 누룩 같은 자들입니다. 셋째는 음행하는 자입니다. 음행 곧 성적 부도덕은 인간의 불결과 더러움의 대표적 죄악입니다. 넷째는 망령된 자입니다. ‘망령된 자’라는 원어(베벨로스bevehlos)는 ‘속된 자, 불경건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장자의 특권을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던 에서와 같은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세상 것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교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4. 말씀하시는 분을 거절하지 말라(히 12:18-29)

12:18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여러분들은 계속 말씀하시는 자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26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a consuming fire)이심이라

18-21절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서로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와 쓴 뿌리와 음행 하는 자와 속된 자가 없도록 해야 할 이유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너희가 시내산에 이른 것이 아니고 천국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문은 시내산과 천국을 대조합니다. 출애굽기 19:16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시내산에 도달했을 때의 광경을 증거 하기를, “제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붙는 산과 캄캄한 구름과 어두움과 번개와 천둥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친 음성으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짐승이라도 산에 오르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었고 모든 백성은 다 심히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22-24절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대조하여, 신약 성도들은 시내산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으로 나아갑니다. 시내산과 천국은 현저하게 대조됩니다. 시내산은 불과 구름과 어두움과 폭풍이 있는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율법을 선포하셨는데, 그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씻음과 의와 영생과 평강이 있는 곳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이라는 표현은 신약 성도들이 육신적으로 천국에 이미 ‘이르렀다’는 뜻이 아니고 단지 영적으로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4-6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라고 말했고, 골로새서 1:13에서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천국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로, 천국은 ‘시온산’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지 않고, 하늘에 있는 시온산을 의미한다고 봅니다(계 14:1). 둘째로, 천국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표현됩니다. 히브리서 11:10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즉 하나님께서 건축자이시요 만드신 이인, 터가 있는 성을 말합니다. 또 히브리서 11:16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천국은 ‘천만 천사’ 즉 수많은 천사가 있는 곳이라고 표현됩니다. 넷째로, 천국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로 표현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 즉 중생한 자들입니다(롬 8:23; 약 1:18; 계 14:4).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들이며 맏아들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본받을 자들입니다(롬 8:17, 29).

다섯째로, 천국은 ‘만인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내시는 곳이며, 하나님은 만인의 심판자이십니다. 여섯째로, 천국은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 믿어 구원 얻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은 지금 다 천국에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중생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죽을 때 즉시 완전 성화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일곱째로, 천국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이 계시며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가 있는 곳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아벨의 피는 단순히 무죄한 의인의 피이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더 나은 피, 곧 택하신 자들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피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그의 속죄의 피 뿌림을 통해 구원을 얻었습니다.

25-27절 “여러분들은 계속 말씀하시는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신약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보다 더 놀랍고 더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며 더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위엄 중에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도 성령님의 역사로, 목회자들을 통해 계속적으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시내산에서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들에게도 엄한 벌이 내려졌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친 음성을 무시하고 거절하고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더 엄한 벌이 내려집니다. 이전에 땅을 진동시키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늘과 땅이 다 불타 없어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을 말합니다(벧후 3:10-13).

28-29절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a consuming fire)이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치 말고 그 말씀을 믿고 그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구원의 은혜요 천국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모든 죄를 다 고백하고 청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깊이 환영하고 그 앞에 절대적인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지함, 진실함, 긴장감은 은혜를 받은 표시입니다. 그러나 해이함, 무관심, 뻔뻔스러움, 이중적임, 위선적임, 냉냉함, 무감각함, 무감각함 등은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표입니다. 우리는 경외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뜻을 거스르고 그를 업신여기는 자들에 대해 심판의 불로 소멸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자이십니다.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어떤 박해와 고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소망이 되십니다. 징계를 받고 있다고 실망하지 말고 사랑을 받기 때문에 받는 징계로 여기면 참을 수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복음으로 소망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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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중앙교회 : 담임목사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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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자!(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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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1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소망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사는 것도 좋겠지만 부자처럼 구원받지 못하고 호화스럽게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잠시 잠깐이며 너무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내세의 삶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짧은 시간을 투자하여 영원한 내세의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주님만 증거 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이 땅에서는 거지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를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히 영광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육적으로 재물이 부족하여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세를 준비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의 상을 받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실 영광의 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부름의 상을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부름의 상을 좇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자!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히 12:1-2

요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주제: 올해는 오직 믿음을 시작하시며 완성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자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모세는 120세 때 가나안 땅을 바라다보며 모압 평야에서 다음과 같이 축복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A land which the LORD thy God careth for: the eyes of the LORD thy God are always upon it,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even unto the end of the year.” (신 11:12)

우리교회 표어는 “말씀 위에 든든히 서 가는 교회”로 정하고 초대교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서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 위에 성장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And the word of God increased;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흥왕 하여 갔습니다(행 12:24, 19:20)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는 자라며 성숙하며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더욱 애독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의지하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집니다. 소망이 더욱 빛이 납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더욱 의지합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위태할수록 우리 주님만 더욱 의지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예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오직 의지할 분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찬송 543장(통 342장) “Trusting Jesus”은 미국인 에드가 페이지 스타이츠(1836~1921)가 작사한 것을 무디와의 동역자인 아이라 데이빗 생키(1840~1908)가 1876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이 찬송가의 가사는 스타이스가 작시한 것으로 어떤 신문에 실렸는데 어떤 사람이 이 가사를 신문에서 오려 무디에게 보냈고 이를 본 무디는 매우 감동하여, 음악 동역자인 생키에게 작곡을 부탁하였답니다. 이 찬송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선험적 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상실한 때에도 자기 존재의 궁극적 원천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욥의 필사적인 저항을 보는 듯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 욥보다 큰 시련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모진 시험을 참으며 승리했습니다. 그는 구속주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그러기에 욥은 수많은 성도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2. 성령께서 내 마음 밝히 비춰주시니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3. 밝을 때에 노래와 어둘 때에 기도로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4. 생명 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뿐일세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며 올해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오직 예수님!

히브리서 12장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의 신앙 경주를 시작합니다. 먼저 천국에 가신 성도들과 천국 천사들이 응원석에서 열심히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경주자가 그러해야 하듯이 우리도 이 경주에서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1)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야 합니다. 제일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출발점(starting point)으로 나와야 합니다.

(2)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짐을 지고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이 경주를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송구영신예배드릴 때 흔히 하듯이 묵은해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나 한 해를 시작하면서 회개로 시작해 봅시다. 유대인들은 한 해가 시작되는 창조절(로쉬 하사나 Rosh Ha-Shanah)로부터 40일 전이 바로 티샤-베아브(Tisha-beAv) 즉 아브월 9일 (예루살렘 멸망일)로 지킵니다. 이 40일 동안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를 읽으며 성전의 멸망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하며 금식하며 통곡하며 철저하게 회개하며 새해를 준비합니다. 회개를 많이 할수록 새해맞이를 가볍게 합니다. 회개가 적을수록 새해를 어렵게 시작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3) 인내로서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합시다. 모든 경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로 훈련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며 인내로 끝까지 경주를 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태권도 도장에서 태권 자세를 하며 인내(Patience)라며 운동을 연습합니다. 극기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라톤을 비롯한 모든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인내가 부족하면 경기를 쉽게 포기하며 자신에게 지고 맙니다. 히 12:2에서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시며 참으실 때 부활의 영광에 이르시게 됨을 보여주셨습니다.

작년을 돌아볼 때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일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인내가 부족해서 쉽게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실패하지 않도록 인내로 승리합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편 40:1)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5)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권하라” (딤후 4:1-2)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6)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0-11)

히브리서 12:2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시작하신 분(믿음의 주 the author of faith)이시며 믿음을 완성케 하시는 분(온전케 하시는 분 the finisher of our faith)이십니다. 롬 1:17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할 때 바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의 시작도 예수님이시며, 과정도 예수님이시며, 목표와 열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입니다. 여기서 이 예수님을 바라보자 (look unto)의 뜻은

(1) 생각하라 consider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2) 바라다 look for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사 8: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3) 앙모하다 look unto

사 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they look not unto the Holy One of Israel, neither seek the LORD! ”

사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Look unto me.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미가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I will look unto the LORD;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4) 바라보다 look upon

슥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나를 바라보고 they shall look upon me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Behold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5) 기다리다 look for: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wewe look for the Saviour, the Lord Jesus Christ”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and not to me only, but unto all them also that love his appearing.”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looking for the mercy.”

이렇게 온전히 예수님만 바라보며 출발하고 예수님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리면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아플 때 안아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이전에 이화여대생들이 채플시간에 즐겨 부른 찬송이 394장(통 449장)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 뿐일세

(후렴)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2.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 일어도 예수나의 힘되니 겁낼 것 없네

3.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하신 주 능력 나를 붙드네

예전 찬송가에서 후렴은 “예수 내 친구 오직 내 사랑”으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좋은 친구로 오직 내 사랑이라며 친근감을 가지고 이 찬송을 애송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믿을 만한 친구가 되시며 언제든지 가까이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분이십니다. 내 영혼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다음 복음송가는 대학시절부터 즐겨 부르는 곡입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조용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이 찬송을 부르면 마음의 평화가 넘쳐납니다. 함께 불러봅시다.(혹 찬양을 모르시는 분은 YouTube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Kathryn Kuhlman Choir)

“내 영혼의 구세주 내 예수 내 구주 내 영혼의 구세주 주는 나의 구세주

예수 예수 예수 예수 내 영혼의 구세주 주는 나의 구세주

He’s the Saviour of my soul. my Jesus, my Jesus!

He’s the Saviour of my soul(2X). Jesus, Jesus, Jesus, Jesus!

He’s the Saviour of my soul(2X).

– 1965 Kathryn Kuhlman Foundation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5, 11) 아멘

호 13: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께서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 12:2하). 우리의 신앙의 경주의 목표는 하늘나라 상급(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경주를 하는 자가 기억할 것은 히브리서 12장 3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올해는 성경말씀을 통해 바른 길로 가며, 그릇 행할 때 책망받고, 우리의 길을 교정하며, 의로 교육을 받도록 합시다. 성경을 애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주일설교말씀] 보혈의 능력으로(요일 1:1-10)

[창세기 3장 히브리어 강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 하와(창 3: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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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2장1절-3절 (예수를 바라보자)

https://youtu.be/iKrz3GfTvVk

<2019년7월7일 설교영상>

제가 지난 주에 근 십년 만에 대학 동창생을 한 명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다 보니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그 친구 딸이 서원이와 동갑이었는데 취업은 했나도 물어봤습니다. 딸이 그림을 아주 잘 그려서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하는 말이 취직은 잘 하는데 일 년을 못 다닌다는 거예요.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졸자의 첫 직장 근속 기간이 일 년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이직을 생각한다는 직장인이 54퍼센트나 됐습니다. 직장 분위기나 월급이나 적성 등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요즘 세대들은 한 길을 우직하게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에 쉽게 권태를 느끼잖아요? 성도들이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성경은 한번도 이 믿음을 지키는 게 쉽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게 인내가 필요한 경주라고 합니다. 평생을 믿다 보니 때로 피로감을 느끼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신을 받을 성도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3절을 보면 그들이 피곤하고 낙심해 있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히브리교인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신 오늘 말씀이 종종 믿음의 삶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힘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1. 우리 믿음의 경주에는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삶을 인내로 감당하고 저 끝에 도달했을 때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정말 우리가 듣고 믿어 온 영원한 세상이 있을까요? 우리가 구주로 믿은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가 우리를 알고 따뜻하게 영접해 주실까요?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오늘 성경은 증인들을 불러 세웁니다.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이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들의 명단이 바로 앞 11장에 나옵니다. 성시교독에서 읽은 부분이죠.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믿음을 본받아 열심히 달려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피곤하고 낙심한 성도들에겐 열정적인 신앙으로 앞서가는 사람들을 봐도 반응할 여력이 없습니다. 지금 겨우 믿음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데 오히려 부담스러움을 느낍니다.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증인들이 무엇을 증거하며 살다 죽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증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죠. 증인이 나오면 범인이 누군지를 알 수 있잖아요?사람들은 증인의 말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가장 확실한 증인은 뭐니뭐니 해도 CCTV죠. 우리 믿음의 여정에서 낙담될 때 이미 이 경주를 다 마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또 잘 달려가는 믿음의 길을 계속 가는데도 증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증인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도성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인들은 그것을 위해 실제로 바뀐 인생을 살았습니다. 도시개발 문건을 훔쳐 본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시골에 무조건 투자하잖아요?돈이 없으면 꿔서라도 더 많이 땅을 사고 집을 사놓습니다. 사람은 사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 사실인지는 주변 사람들이 압니다. 더 나은 본향이 있다는 것을 진짜 믿는지는 실제 생활이 증거하는 것이죠. 11장의 증인들은 우리에게 그걸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 중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땅에서 부르셔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며 그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정작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집 지을 땅 한 평을 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땅 부자가 될 수 있을 만큼 거부였잖아요?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씨, 예수님을 통해 주신다는 축복의 땅이 지구상의 한 구역이라고 오해할까봐 평생 땅을 안 사고 남의 땅에서 장막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약속받은 것은 더 나은 본향,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복된 천국임을 증언하기 위해서인 것이죠. 심지어 에녹 같은 사람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지 않고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성경은 그가 이 땅에서 없어졌다고 하죠. 분명히 간절히 사모하던 본향이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박해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목적지를 잃지 않으려면 이렇게 성경을 펴고 곳곳에서 외치는 증인들의 말을 매일 들어야 합니다. 11장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사람이 무언가 믿어진다면 그것이 실제로 있다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믿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증인들의 믿음을 통해 우리 신앙의 종착지에서 만날 영원한 본향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미 바라는 것이 진짜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있다 치고 현실을 희생을 할 만큼 아둔한 사람들입니까?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 천국이 실제하기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의 경주가 확실한 천국을 향한 것임을 항상 기억하고 끝까지 경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모든 경기에는 낙오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경고합니다. 조상들 때 애굽을 빠져 나왔지만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경주를 감당하고 증인이 된 사람들처럼, 포기하고 세상을 전부로 선택한 사람들도 경종을 울리는 증인이 되는 것이죠. 늘 피곤해지기 쉬운 무릎을 강하게 하고 이 경주를 잘 달려 영광의 목적지에 이를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곳을 가리키는 증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이 힘든 믿음의 경주를 잘 하려면 항상 힘써야 할 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경주도 이 땅의 경기들과 같습니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것을 버리고 경기력을 향상 시킬 훈련은 계속합니다. 선수들에게 멘탈 훈련은 특히 중요하죠. 한번 실수하고 마음이 무너지면 경기를 완전 망치기 때문입니다. 류현0 선수가 이번 시즌에 잘 던지다가 지난번 콜로라도전에서 무려 칠 점을 내 주고 내려온 날이 있습니다. 제가 다 안타깝더군요. 그런데 류선수 강점은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흔들리지 않는 멘탈입니다. 류선수가 이런 강한 멘탈을 한화에서 뛸 때 갖게 되었다들 합니다. 그때 아무리 잘 던져도 답이 없는 수비수들 때문에 항상 패전 투수가 되었다고 하죠. 류선수의 답은 동료들이 못 잡으면 내가 잘 던지면 된다며 더 혹독한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동료들의 실수가 나오고 점수를 내줘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 갑이 된 것입니다. 결국 받쳐주지 않는 환경이 멘탈 훈련의 일등 공신이었던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되었다면 무수히 낙담시키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게 분명합니다. 호날두는 지금도 하루에 윗몸일으키기를 삼천개씩 한다고 합니다. 부상 없이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 머물고 싶기 때문이랍니다.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도 당연히 영적 근육을 단련하는 기도와 말씀 같은 훈련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사도는 특히 신경써서 다루지 않으면 경주를 힘들게 하는 치명적인 문제를 지목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믿음의 삶에 하중을 더하는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자기의 복음사역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고 고린도성도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우리 마음을 무겁게 눌러 경주를 더디게 하는 것은 염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생활의 염려가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고 네 가지 밭의 비유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있다면 그것은 염려입니다. 염려가 생기면 걸음이 무겁습니다. 사소한 염려조차도 충분히 우리 믿음을 끌어내릴 만큼 강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 것을 아예 명령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기가 막히게 지난 주 다 우리가 염려했던 것들이죠. 사도들도 서신서에서 역시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 염려되는 것들을 주께 맡기는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우리를 사랑으로 돌봐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제도 안에서 사는 우리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오래 생각하면 반드시 염려에 빠집니다. 노후엔 어떻게 살지?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려나가지?언제 내 집을 장만하지? 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 데 다음 일감이 없으면 어떡하지? 온 종일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만 바라본다면 반드시 염려가 들어오고 염려는 우리를 무겁게 짓눌러 믿음이 쇠약해지게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헤쳐 나갈 상황이 더 어렵게 되는 것이죠. 염려와 믿음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죄는 일단 너무나 쉽게 우리를 얽어 맨다는 것입니다. 어느 틈에 마음과 말과 행동에 착 달라 붙어 믿음의 경주를 방해합니다. 죄가 우리를 얽어매면 믿음의 걸음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합니다. 죄가 있는 동안은 경주는 사실 올스톱되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 하는 신앙생활은 사실 믿음의 진보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상태이고 그냥 산 것입니다. 그게 믿음의 원리입니다. 죄와 하나님은 함께 하실 수 없기에 성령께서 죄를 지닌 성도들을 도와주고 축복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죄든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인지는 말씀과 성령이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과 성령이 비춰주지 않으시면 세상에서 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뭐가 문제인지 조차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문제를 지적하시고 내가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우리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옳다고 해서 다 지키지 않잖아요? 죄와 세속의 흡인력은 너무 강력해서 잠시 말씀을 듣고 제대로 해보자고 용기를 얻어도 의욕이 금방 사그러들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염려하지 않으려 해도 내일이 여전히 걱정되는 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3. 그래서 이 무거운 짐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고 믿음의 길을 잘 달려 가려면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항상) 바라보자 ‘항상, 계속해서’를 넣어서 읽는 게 더 정확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믿음의 길을 달려 갈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시는지 알고 때에 맞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두 가지 지식을 갖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입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고 부끄러운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성정을 가지신 예수님이 벌거벗겨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고 여섯시간의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비참하고 수치스런 형벌을 견디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너를 구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감수하시겠다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게 예수님께 가장 큰 기쁨이시라는 거예요. 누구에게 그런 사랑 받아보셨어요? 히브리서는 그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심을 강조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속죄 받기 위해 대표로 제물의 피를 들고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제물이 되어 그 피를 들고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원리를 1장에서 10장에 걸쳐, 방대한 구약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히브리서 기자가 입증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전체를 읽다가 울었습니다. 구약성경 구석 구석에,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예수님께서 그 자취를 미리 남겨 놓으시고 구원의 길을 치밀하게 준비하신 그 사랑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유일한 대제사장, 중보자는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것저것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들어주십사하고 같이 중보기도 하신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조건은 단 하나면 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은 죄에 대한 중보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그 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이죠. 또 매일 짓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히지 않도록 그 피로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얽어매기 쉬운 매일의 죄는 진지한 신자들에겐 무거운 짐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은 자기 죄성으로 인해 낙담하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남의 죄성으로 인해 시험에 듭니다. 성령이 양심을 비춰주시면 내가 지은 죄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주님의 피가 실시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성찬식이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잖아요? 우리를 얽어매고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아무리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라 해도 우리 손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복된 상태가 끊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중보하심을 믿고 주님께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모든 염려와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기에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하루 중에도 가슴이 철렁할 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해 나가야 되지’ 이런 말을 속으로 수없이 되 뇌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꾸면 되잖아요? ‘예수님, 이걸 어떡하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죠?’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 짐을 대신 지신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반드시 우리의 문제와 짐을 맡으시고 해결되기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내 스스로에게 묻던 것을 예수님께 묻는 것이 생각보다 잘 안됩니다. 항상 이것을 잊지 마시고 예수님께 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가 피곤하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왜 히브리교인들은 피곤하고 낙심했을까요?특히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죄인들의 거역함을 참으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겠죠. 그때나 지금이나 본성이 동일한 죄인들이니 서로를 거역하고 피곤하게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우리를 거칠게 거역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말 피곤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이때도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이 육체의 힘으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려고 부단히 애써 본 사람은 압니다. 그게 안되서 나중엔 차라리 상종을 안 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으로 인해 지칠 때, 예수님을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예수님은 내가 수없이 주님을 거역하고 외면할 때도 나를 참아주셨습니다. 사람으로 인해 눈물나고 한숨이 날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우리를 위로하시고 만져주십니다. 그 힘으로만 우리는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낙심과 원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죄도, 염려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출발점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임을 늘 기억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경을 펼치면 수백, 수천의 증인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저기에 우리가 장차 누릴 영광스런 천국이 있소. 믿음의 무릎이 약해질 때, 죄가 발목을 잡을 때, 사람으로 인해 낙심되고, 영적 피로감에 빠질 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으로 능히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또 오늘 성찬식에 참여할 때 예수님의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고 하나님 앞에 더욱 복된 성도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주께서 주시는 징계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ㄱ)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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