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의 삶 |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상위 36개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증인 의 삶 –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chewathai27.com/you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Chewathai27.com/you/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Charity Baptist Church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312회 및 575197 Like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증인 의 삶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 증인 의 삶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설명

증인 의 삶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증인의 삶

그러므로 증인,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 산다는 것은 생명을 건 삶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 여기를 클릭

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9/19/2021

View: 920

증인의 삶

자신을 십자가 뒤에 가리우고 늘 자신을 낮추고 예수의 이름만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하여간 이 본문 …

+ 여기를 클릭

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1/1/2021

View: 1238

[이영훈 설교] 증인의 삶(눅 24:46-49) – 크리스천투데이

오늘 저는 누가복음 24장 46절로 49절의 말씀을 가지고 “증인의 삶”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0/11/2021

View: 9646

증인의 삶 (행 1:6~11) – 기멀전

이 말은 본래 법률 용어로 ‘듣고 본 내용을 증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이란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7/27/2022

View: 6912

왜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나요? – 묵상노트

(마가복음 16:15) 이것은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말씀이자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사람들의 …

+ 더 읽기

Source: mybiblenotes.tistory.com

Date Published: 9/19/2022

View: 9968

증인의 삶

[목회칼럼] 라이트 하우스 달라스 교회 담임목사 장량그리스도인의 …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의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dalkora.com

Date Published: 7/18/2022

View: 5223

생명의 말씀 – 증인의 행복 (행 1:8) – 광성교회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삶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서 내가 …

+ 여기에 표시

Source: ksch.net

Date Published: 8/16/2021

View: 9718

성령충만을 통해 증인의 삶을 살라! | 갓피플 컨텐츠

증인의 삶 예수님을 따르던 120문도는 성령충만을 경험한 후에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들도 핍박 속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w.godpeople.com

Date Published: 5/2/2021

View: 6068

증인의 삶 > 말씀게시판 | 서울시민교회

서울시민교회 성도들의 이야기 나눔 게시판 입니다. 권면 | 증인의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영상팀 작성일22-06-05 14:35 조회78회 댓글0건. 관련링크.

+ 여기에 보기

Source: seoulshimin.or.kr

Date Published: 8/2/2022

View: 5780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증인 의 삶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증인 의 삶

  • Author: Charity Baptist Church
  • Views: 조회수 312회
  • Likes: 575197 Like
  • Date Published: 2015. 5. 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6JeGTuVREyw

증인의 삶

증인의 삶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장 6-9절) <목회기도> 세상을 바꾸시는 하나님 온 세상을 4월의 푸르름으로 바꾸시고 옷도 바꾸어 입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부활과 영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전하며 살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오늘 교회에 나와 하는 회개기도에 용서하시고 드리는 찬양과 헌신을 받아 주시고 땀흘리는 봉사를 통해 기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예배 드림으로 하나님 만난 기쁨과 삶을 새롭게 하는 변화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육간의 질병이 치료되며 상처 받은 마음이 평안해 지는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지에 외국에 있음으로 교회와 예배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안타까운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예배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도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어느 주일에 누가 설교를 하든지 성경을 설교한다면, 그 설교에는 하나님의 권위와 성령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제가 천사 같이 말 못하고 바울 같이 못해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동안에 여러분은 큰 은혜 받을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활동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이고,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기대했다가 실망했고, 그런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설움 속에 살면서 배고프게 고달프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나타나서 의사도 없는 시대에 병든 자를 고치고, 풍랑을 잔잔케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야말로 살길이 열린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요 6:15). 그 예수가 임금되려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줄 알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옷을 벗어 땅에 깔고 호산나하며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사람들에게 붙잡히더니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범죄자로 십자가 처형을 받은 예수와 가까웠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예수와 한 편이라는 것 자체가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를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베드로가 그랬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어 장사 지낸 예수가 살아났습니다. 부활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놀라고 신났을까요? 기대했던 예수가 비참한 죽음으로 끝난 줄 알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 앞에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예수님이면 틀림없이 된다.’하면서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궁금함을 물었습니다. 6절에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 1:6), “예수님 이제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될 그 때가 이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의 회복됨을 바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의 그들의 소망입니다. ‘메시야 대망사상(Messianinc expectation)’은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게 엉망이어서 무엇하나 기대할 것이 없었던 모든 유대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메시야, 구세주만 오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라 찾기를 소망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눌렸기 때문에 자유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모여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간절하게 소망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엄연히 눈 앞에 메시야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들은 정치적 변혁이 언제나 있을지,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언제쯤일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마지막 때, 그 때, 하나님의 때”를 알고자 할까요? 왜냐하면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잘못되면 사이비나 이단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 일 수도 있습니다. 즉 늘 불만과 원망이 많은 사람은 감사가 없기 때문에 “막연한 미래”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세상 사람들은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런 습성이 있어서인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면서도 “그 때”를 알고 싶어합니다. 여러분, 세상 끝에 관해서는 성경이 분명하게 언급한 것으로 만족하는 것, 더 알려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며 또 바른 신앙태도입니다. 이상한 것 알려고 물어보러 다닐 필요도 없고, 이상한 곳에 갈 필요도 없고, 이상한 책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고, 몰라도 되는 것은 몰라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르고 살라고 모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알려고 할 때 무리가 생기고 이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묻는다고 부모가 모두 그 질문에 답을 합니까? 애들이 몰라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물으면 “너는 몰라도 돼. 이 다음에 알게 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아이들도 너무 지나치게 모든 것을 알려고 하면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합니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언제 죽을지 죽을 날을 안다면 좋으시겠습니까? 좋을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부부간에도 모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모를 건 몰라야 그것이 오히려 더 행복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닙니다 . 성경에도 7절에 예수님께서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얘, 몰라도 돼.”라는 말입니다. ‘알 바 없어. 너희들이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 없어.’라고 하시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알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도 계속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제입니다. 요즘 세상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선언하신 후에 바로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알기 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과 그 때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가면 너희에게 약속된 성령께서 임하게 된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NIV).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삶의 문제 대부분이 해결됩니다. 죄의식과 정신적인 갈등, 긴장과 의심, 두려움 때문에 방황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 문제들은 참된 자유와 평안과 쉼과 확신으로 바뀝니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긴장하며 마음의 불안을 가진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안식과 쉼을 얻습니다. 악한 습관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고 숨어 살며 또 마음이 어두운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면 거기서 해방되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권능”은 영어로 파워(power), 헬라어로 “두나미스(dunamis)”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천둥과 번개를 발하는 하나님의 힘” 이라는 뜻이 있고, 기적을 이루는 힘과 귀신을 내어 쫓는 것 같은 능력 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죄와 사탄의 세력과 육신과 세상을 이길 힘을 갖게 됩니다. 권능을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세계를 따로 보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초막에 살든 궁궐에 살든 어디에 살든 예수 모시면 천국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안팎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임하심이 예수님 앞에 있던 제자들에게만 약속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성령이 내게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의식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평범한 사람이 경찰 옷을 입으면 경찰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남자들이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 ‘옷’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듯 바꾸어 놓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 속에, 생활 속에 ‘성령께서 함께 계시다,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삶의 태도와 의식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 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보면, 낙선한 사람이 자존심 세우느라 목에 힘 주는 것과 당선된 사람이 일을 하기 위해 자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목에 힘을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시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장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고백한다’는 것은 ‘내 안에 약속하신 성령이 들어와 계시다’ 는 말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으면 다 잊어 버리는 것 같지만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신 예수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다시 오실 그분을 믿는다면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witness)”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증인이 되는 것은 되도 좋고, 안 되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부활을 본 사람,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의무입니다. 죽음으로 증거를 말하는 사람 성경에 “증인” 이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로 “재판정에 나가 자기가 보고들은 사실을 말하는 사람” 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이것을 “마르트수(martus)”라고 하여, “죽음으로 증거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 입니다. 즉 자기가 보고들은 사실에 목숨을 걸고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에 재판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서 재판하지만, 예전에는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증인,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 산다는 것은 생명을 건 삶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 믿다 붙잡히면 죽었습니다. 예수 믿다 붙잡히면 짐승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보았고 믿었기 때문에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이 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활이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는 사람같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12-14절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감히 예수 믿는 사람들과 상종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상종’이라는 말은 ‘서로 따르고 의좋게 지낸다’ 는 말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함부로 상종 못했습니다. ‘상종’이라는 말은 영어로 ‘join’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함부로 ‘join’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좀 별나지만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래~ 살려면 저렇게 살아야 돼”라고 칭찬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상종 못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상종 못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보셨습니까? 너무나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상종이 되기 때문에 복음전파가 잘 안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사, 권사, 장로들이 주일날 예배 드리는 시간인 11시쯤에, 예식장에 있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 교회 가야 하는 사람들이 왜 여기에 왔지. 어, 이렇게 와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전도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그 사람이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지금 어디에 있어야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통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칭찬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둥교회의 성도들은 운전할 때 다른 사람들이 기둥교회 성도들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주차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피해 받지 않는 곳에 세워야 합니다. 차를 세워도 주차선 안에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두 대, 세대 세울 수 있는 공간에 이상하게 주차하고 기둥교회 마크를 달고 있으면 복음 전파가 바로 되겠습니까. 저희 집 문에는 기둥교회 교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대부분 붙어 있을 것입니다. 대문에 교패를 붙인 사람들은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서 내놓아야 합니다. 닦아서 내놓아야 그 사람들이 “기둥교회 사람들은 먹어도 깨끗하게 닦아서 내놓는구나.” 하지, 그냥 먹다 남은 단무지에 시커멓게 그냥 내놓는다면 더럽고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적어도 음식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놓는 것은 음식을 갖다 준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비록 돈을 주고 사먹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저는 저 혼자 음식을 시켜 먹어도 설거지를 해서 내놓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평일에 결혼식을 하면 결혼식하기 전에 청소하고, 또 결혼식이 끝나면 청소해야 합니다. 한 번 결혼식을 하려면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두 배, 세배 더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예배실에서 결혼하려면 전등 켜고, 더울 때는 냉방, 추울 때는 난방을 해야 하는데 돈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그래도 열심히 도와주고 일하는데 점심도 안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한다고 교회 뒤에 식당을 예약해 놓고, 봉투 내는 사람에게만 식권을 줍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도와준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서 제게 ‘목사님은 드세요’라고 합니다. 결혼식은 동네 잔치입니다. 지나가는 거지가 와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식은 이왕 하려면 좀 풍요롭고, 넉넉하게 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그들의 삶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부분에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다워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면 감히 그들과 상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믿고 주께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4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 안해도 그들의 생활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이 되는 또 하나는 입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을 입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믿는 것을 증거할 수 없다면 증인이 아닙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했습니다(딤후 4:2). 그런데 우리는 입을 다문 크리스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최효섭 목사님께서 쓰신 책을 보면 평생 설교하시면서 두 가지 설교는 ‘하나마나 한 설교’라고 합니다. 하나는 “돈에 욕심 부리지 말라”는 설교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설교입니다. “이 두 가지는 평생 예수 믿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그래도 해야 하는 설교입니다. 신학자 ‘반하우스’는 현대에 [자폐증 크리스챤](autistic Christian)이 많음을 한탄하였습니다. 자폐증이란 표현하지 않는 증세입니다. 반하우스 박사는 말합니다. “현대 크리스챤들은 듣습니다. 오고 갑니다. 그들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이해하였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자폐증 아이를 가진 부모가 얼마나 슬프고 안타깝습니까. 그와 같이 자폐증 크리스챤을 둔 하나님 아버지도 몹시 슬프고 안타까와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이 되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힘이 듭니다.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힘이 들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상종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잘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골치 아픈 과목을 가르치게 되서, 재미있게 수업하려고 학생들에게 유머 한가지씩을 적어 오라고 했습니다. 그중에 여러분이 아는 얘기이고, 저도 지난 심야기도회 시간에 했던 애기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우습고 더 생각하면 기막히고, 잘 생각하면 은혜가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가 천국입구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니 예수님이 기다리셨다가 “잘 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배고프지. 우리 밥이나 먹고 가자”라고 하시면서 「천국 중국집」으로 데려 가더랍니다. 천국에 중국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뭘 먹을까 하고 메뉴를 찾으려고 보니 메뉴판 없이 「주는 대로 먹는 곳」이 더랍니다. 그런데 먼저 온 김집사가 탕수육을 먹고 있더랍니다. 장로님이 ‘김집사가 탕수육이면 나는 더 좋은 것이겠지. 내가 세상에서 봉사도 잘하고 목사님께도 잘해서 좋은 장로로 일하다 왔는데. 저 사람이 탕수육이면 나는 더 좋은 걸 주시겠지.’라며 생각하고 있는데 짜장면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먹으려고 하다가 장로님이 이제 천국에 들어왔으니 쫓아낼 리는 없을 것 같아서 예수님께 “예수님, 내가 세상에서 봉사도 잘해서 장로가 됐고, 목사님께도 잘했는데. 아니 저 김집사는 탕수육인데 나는 왜 짜장면입니까.”라며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장로야, 그냥 주는 대로 먹기나 해라. 먼저 온 고목사는 짜장면 배달 나갔다.” 배달을 한다고 해도 거기에 가야합니다. 지옥에 가서 사단장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워도… 증인으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외면당해도…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증인된 삶을 살기 원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쓰러지고 넘어지며 이런 저런 고통 속에서 한숨 짓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을 만한 믿음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사람으로 결단하고 그 길을 위하여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가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0년 4월 30일 주일 낮 설교>

[이영훈 설교] 증인의 삶(눅 24:46-49)

[이영훈 설교] 증인의 삶(눅 24:46-49)

<말씀 봉독>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6-49)

오늘 저는 누가복음 24장 46절로 49절의 말씀을 가지고 “증인의 삶”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증인의 삶” “증인의 삶”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인정받는 학생이 되기를 원하고, 회사의 직원들은 회사 사장에게 인정받는 직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면 아주 기쁘고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받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느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그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잠깐 뭐가 되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결과는 실패와 절망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 되어서 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복음의 증인될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 가서 복음의 증인될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또 그 내용이 사도행전 처음 부분에도 나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1. 복음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첫째로, 복음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46절에,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성경은 말씀합니다.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 놀라운 구원사역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죄 짓고, 불의하고, 타락한 인생이 스스로 구원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죄 없으신 독생 성자 예수님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게 하셔서 모든 고난을 다 받게 하신 후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으신 것입니다. 그 때 죄와 사망의 권세가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위대한 승리의 부활, 영원한 승리의 부활을 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성령의 법에 인도함을 따라 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성령의 법에 의하여 살아가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신분이 바뀌었어요. 더 이상 죄인으로서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의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죄 의식에 붙잡혀 살지 말고 가슴을 당당히 피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상담을 위해 오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 과거의 절망, 과거의 죄 지은 모습에 대하여 본인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자꾸 그 과거의 상처 때문에 무너지는 절망적인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상담을 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과거를 들추어내고, 절망케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절대로 성령의 역사는 과거를 들추어서 우리를 다시 절망케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이런 과거의 상처와 절망이 다가올 때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흑암의 세력은 떠나갈지어다. 과거의 절망은 물러갈지어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전 것은 이제 나와 상관이 없다. 나는 변화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가슴을 당당히 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더 이상 절망 가운데 붙잡혀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절대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새 사람이 되었어요. 십자가는 영원한 희망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죄의식에 붙잡혀있지 아니하고 변화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질병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질병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미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고 돌아가실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우리 삶 가운데 있는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음의 절망은 물러갈지어다.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지어다. 내 몸을 붙들고 있는 모든 흑암의 세력은 물러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 여러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여러분을 넘어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는 질병과 싸워 이기며 주님 앞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스트레스가 혈압을 오르게 하고, 이 스트레스가 몸에 암도 가져오고, 이 스트레스가 위장병도 가져오고, 이 스트레스가 온 몸에 병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의 병을 먼저 쫓아내야 됩니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도다. 주여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마음이 평안하면 육신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이 건강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기억하십시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나음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이 기쁩니다. 내 몸이 건강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14절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우리에게 아브라함에 복을 주신다고 했어요. 아브라함의 그 형통의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요하신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저주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부요의 은혜가,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근면과 정직과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부요의 복을 주십니다. 절대로 게으른 사람에게 복을 주진 않아요. 우리가 주님 앞에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셔서 많은 사람가운데 높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 삶 자체가 절망입니다. 예수님 모르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또 이 세상에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아도 그는 절망 그 자체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호킹 박사를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한 내용이 나와서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됐습니다. 그는 인터뷰할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천국이나 사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꾸며낸 동화에 불과하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뇌가 깜빡거리는 순간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랬어요. 그리고 인간에 뇌를요 고장난 컴퓨터라 비유하면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고장 난 컴퓨터에 천국이나 사후 세계가 있을 수 없다”

참 이 사람이 세계적인 물리학자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 그가 작년에 쓴 책 위대한 설계라는 책에도 이런 헛소리를 했는데,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현대물리학은 우주 창조에서 신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지 않았다.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그가 무식한 얘기를 할 수 있는가. 보세요 컴퓨터 꺼지면 다 사라진다고 했지만요 컴퓨터가 꺼져도 그 안에 메모리는 다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다 지워버려도 도로 가서 컴퓨터를 가져다 복원 해내갖고 지워버린 것 다 찾아내서 범죄 한 사실을 밝혀내는거 우리가 뉴스를 보고 알고 있잖아요.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이렇게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이러한 절망의 소리밖에 할 수가 없어요. 무에서 유가 만들어 졌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떻게 만들어 질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없는데서 만들어졌다? 이것은 거짓말도 새빨간 거짓말이고 헛소리도 참 큰 헛소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이 죽어도 우리 영은 죽지 않습니다. 죽음이후에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죽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형벌로 떨어지게 될 것이요.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저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 다가도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 안에서 절대희망을 얻는 주님에 자녀가 돼야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 믿기 전에는 세상 학문을 따라 살았지만은 예수님 믿고 나서 모든 것 다 버리고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할렐루야. 십자가에 이 놀라운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과 회개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둘째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과 회개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7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는데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어떠한 우리의 행위나 노력이나 지식이나 우리에 지휘나 우리에 신분이나 우리의 가족 배경을 통해서 예수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믿고 난 다음 우리가 주님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우리의 지은 죄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회개하게되요. 왜?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이 다 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많은 회개를 합니다. 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전에는 내가 죄를 지어도 죄 의식이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마음 가운데에 오시면 내 마음속에 주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회복시켜주시고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게 해주셔서 우리 죄를 보게 해주시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원받는 사건은 믿음하나밖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마음에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주님에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에 일꾼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김광수 교수님이 쓴 [한국기독교인물사]에 1907년 대부흥운동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903년 우리 하디목사님으로 시작한 원산 대부흥회가 1907년 평양 대부흥회를 인도했는데 하디목사님은 의료선교사로 강원도지역에 와서 선교했지만은 늘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선교했기 때문에 열매가 없었어요. 그런데 원산에서 선교사님이 오셔서 기도 할 때에 본인의 교만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로 말미암아 원산에 큰 부흥이 일어났고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150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열흘간 성회를 여는 동안에 그 교회 대표되는 길선주 장로님이 많은 사람 앞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 기록이 이렇게 돼있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그 내용은 친구가 죽으면서 재산을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중 1백 원을 수고비조로 자기가 가졌던 것이다. 그 당시 이것은 굉장히 큰 돈입니다. 길 장로는 ‘나는 하나님을 속였고 그 친구와 그의 부인을 속인 도둑놈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이 돈을 돌려주겠습니다. 나 때문에 온 회중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올시다’라고 눈물로 회개했다. 그러자 회중도 모두 마루바닥을 치면서 회개하기 시작했다.”

대 통곡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를 믿고 있었지만은 성령이 그 마음을 감동 할 때에 그 죄를 낱낱이 보여주시고 통곡하며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밤새 저들이 통곡하며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밤 12시가 지나도록 기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산시켜서 내일 다시 모이자고 가시도록 했는데 집에 가서도 잠이 오지 않아요. 너무나 성령의 은혜가 감동이 되서 그래서 기록에 따르면 아침 동 트기도전에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기도하려고.

그래서 보니까 마당에 벌써 새벽에 동 트기도전에 60~70명이 모여서 서성이고 있어요. 누가 모이라고 한 적도 없고 누가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 것 없었는데 성도들이 너무나 하나님 은혜가운데 흥분되어서 잠을 못자고 교회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서 시작한 것이 우리 한국의 새벽기도입니다. 성령이 감동해서 새벽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에 부흥을 지켜봤던 한 선교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수천 명이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술주정꾼, 도박꾼, 잡신 숭배자들이 새 사람으로 바뀌었다. 학교가 설립되고,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나고, 병원이 설립되고, 금주 금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무속과 우상숭배에서 해방되고,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항할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한국의 소돔’이라고 불렸던 평양은 거룩함으로 불타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변화되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이와 같은 놀라운 회개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다음 우리는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증인된 삶

세 번째 증인된 삶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24장 47절로 48절에,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우리는 복음에 증인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증인이라는 말에 헬라언어는 마르투스인데 이 말 뜻은 순교자입니다. 순교자.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 내놓고 복음을 전했어요. 내가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도 난 후회함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 너무 감사해서 내 목숨 바쳐 이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며 로마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짐승의 밥이 되어 온 몸이 찢겨 죽어가며 또 화영을 당해서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며 그렇게 고난가운데 순교했지만 저들은 그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가운데 주님 앞에 불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죽음의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풀어달라고 그들에게 빌지 않았습니다. 구차하게 빌지 않았습니다. 고문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흘린 순교에 피가 전 세계에 확산되어졌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레미야 20장 9절에, 내가 다시는 야훼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너무나 내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내가 목숨 바쳐 주의 이름을 전하고 주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 영광 나타내기 원합니다.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여러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수에 가보니까요 30만 인구 가운데 10만명이 예수를 믿어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예수를 믿어요. 그분들이 말하기를 이 여수에는 손양원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에 순교의 피가 흘려있어서 순교의 성지기 때문에 이렇게 복음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엑스포를 내년에 치르는데, 엑스포를 치르고 나면 인구가 한 10만명 늘게 되는데 40만 인구가운데 한 20만이 예수를 믿게 될 목표를 세우고 있어요. 그래서 여수 시민에 50%이상은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여수시장이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할렐루야.

순교의 피를 흘린 도시기 때문에 그 도시에 이와 같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교의 피가 전 세계 곳곳에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순교에 피가 뿌려진 곳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주의 종들이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짧은 기독교역사가운데 천이백만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 복된 제사장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증인된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 내 증인이 되리라 우리가 증인된 삶을 우리가 감당하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내가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주여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위해서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4. 성령의 능력

마지막 네 번째로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 보니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복음에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능력 받게 되려면 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라. 그래서 저들이 승천하신 후에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성령이 임하는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저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저들이 권능을 받아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서 복음을 전할 때에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안수 할 때에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물 붙듯이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사람들이 나아가서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증인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인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붙잡힌바 되어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에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도 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문제도 해결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병도 고침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승리에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셔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를 다녀갔던 우리 토미테니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그분 [하나님당신을 갈망합니다]이런 책을 썼는데요. 삼대 목사님 가정에 태어났어요. 그런데 이 토미테니 목사님 열여섯 살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서 10년 동안 국내에서, 그 다음부터는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말씀을 전하는데 늘 성령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어요. 어느 날 친구 목사가 설교해달라고 초청을 해서 이제 그 교회 설교하러 갔는데 호텔에 앉아서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했습니다. 막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령의 감동이 임했어요.

너무나 주님은혜 충만해서. 그래서 기도해서 기도하면서 성전에 갔더니 이미 성전에 성령께서 운행하고 계세요. 찬양인도자들이 막 울며 찬양 부르고 말씀을 전하는데 성도들이 막 통곡하고 회개하고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교회가 뒤집어지고 주일아침예배가 그날 새벽 1시까지 계속됐어요. 얼마나 성령이 강하게 임했던지 저들이 기도하고 부르짖고 성령받고 그래서 연속 한 달이 넘게 부흥회를 했어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놀라웠던 부흥의 역사를 그의 책에 기록하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이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십시오. 여의도순복은교회가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성령 충만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 조용기 목사님처럼 성령 충만을 강조하신 목사님이 한국역사 가운데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옵소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권능을 받아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병든자가 고침 받고 믿지 않은 영혼이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성령의 사람으로 한 평생 승리에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2011. 5. 22. 주일설교

증인의 삶 (행 1:6~11)

성경은 신.구약 66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주로 신약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중요하지만, 이처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출판사에서 발행한 성경책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것과 구별해서 아예 붉은 색으로 인쇄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버릴 게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진리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욱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 ” 이런 표현이 붙어 있는 말씀들입니다.(요5:24 등)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남긴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해 보면 끝으로 갈수록 비중 있는 말씀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직전에 하신 말씀,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 등이 특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 직전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 즉 유언인 셈입니다. 사람이 헤어질 때 혹은 죽을 때 남기는 유언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정말 중요한 한 마디를 남기고 가는 겁니다. 일개 인간이 남기는 유언도 이렇듯 중요하다면 예수님의 유언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심지어 암송하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자신을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저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 전임 사역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이 말씀의 수신자 위치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즉시입니다. 물론 불을 붙였을 때에는 작은 불꽃이라 희미할지 몰라도 나름대로 빛을 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도 이 말씀을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되고, 영원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오늘 말씀이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시면 승천 직전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하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실망에 빠져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 그들이 예수님 부활 후 다시 모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6절 보면,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새 이스라엘, 다시 말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절~8절입니다. “ …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

그리고 그 직후 하늘나라로 승천하십니다. 멍하니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두 천사가 확인해 줍니다. 11절.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그 날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마28:18~20 등과 더불어 예수님의 유언적 말씀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흔히 이 말씀을 뭐라고 지칭합니까? 지상명령(至上命令) 혹은 대명령(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겉으로 볼 때만 축복으로 보이는 말씀만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씀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니, 이런 말씀을 더욱 더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축복된 신앙생활, 영광스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요구하는 바 증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1] 증인의 삶의 의미

‘증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 말은 본래 법률 용어로 ‘듣고 본 내용을 증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이란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지옥 갈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과 천국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예를 들어 대형 참사가 발생되었을 때 사망자와 실종자 틈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사람들의 명단이 뜰 때 그 이름을 보고 가족들이 어떻게 합니까? 만세를 부르며 야단입니다.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는 것은 이보다 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을 가리켜 ‘복음’(Good News)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동시에 특권입니다.

[2] 증인의 삶의 당위성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게 왜 당연합니까? 왜 필수적입니까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① 복음 증거가 구원의 방법이기 때문 :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무슨 말씀하셨나요? 요19:30 “다 이루었다!” 이 말은 본래 상업 용얼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죄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속죄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실제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기 위해서는 전파되어야 합니다.

연전에 필리핀 군도 밀림에서 일본군 장교가 발견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전쟁 중인 줄 알고 산 속에서 숨어 지냈던 겁니다. 그가 패잔병의 모습으로 고생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전쟁을 끝났지만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속죄를 완전히 이루어 놓았어도 각 개인이 구원받고 영생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위해서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객관적인 구원’을 이루신 겁니다. 그것을 개개인이 ‘주관적인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복음 증거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증거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롬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②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 :

우리는 무엇보다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내가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복음을 증거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분이 누굴까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 …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은 나에게 복음을 증거해 준 전도자입니다. 나를 위해 눈물 흘려 기도했고, 전도했고, 양육했던 분들의 노고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처럼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효도가 당연한 인간의 도리인 것처럼 복음 증거는 성도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3] 증인의 삶의 구체적 방법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봅니다.

① 전도와 선교 :

8절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다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가까운 동일 문화권입니다. 그 범위 내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켜 ‘전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와 땅끝은 언어, 문화, 관습 등이 다른 타문화권입니다. 이처럼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선교’라 지칭합니다. 국내에서도 특수한 환경이나 문화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는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군 선교’ 등이 그런 예입니다.

② 입술의 증거 :

복음 증거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직접 입술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만나서 보고 느낀 대로, 체험한 대로 증거하면 됩니다.

③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나의 주장을 펴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8절 “ …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 ” 성령님이 복음 증거의 주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됩니다.

난치병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병상에서 고통 받던 중 복음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까 여전히 속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출석하지도 못하고, 전도와 봉사 등의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과 성도들이 심방을 왔습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알게 된 목사님이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자매님,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밖에 나가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죠. 하지만 자매님의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음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대신 기도하십시오. 병상에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 예배도 드리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마을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교회에 나옵니다. 한편 소녀는 부쩍 교회 상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누가 새로 교회 나왔는지 캐묻습니다. 수개월 후 안타깝게도 소녀는 회복되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베개 밑에서 56명의 명단이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 앞에 붉은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녀는 병상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씩 응답되어 마을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다른 어느 사람을 통해 복음이 증거됐겠지만, 소녀의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께서 배후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④ 인격과 삶, 사랑과 섬김을 통한 감화 :

가까운 사람일수록 복음을 증거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입술의 증거보다 행동의 증거가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로서 본이 되는 모습 보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베풀고 섬기고 사랑을 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열어야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의 노력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성령님이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증거 :

복음은 항상 증거되어야 합니다. 딤후4:2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도가 참 어렵습니다. 전도의 시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 똑똑해지고(?) 심령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증거해야 합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 증거는 시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상대방의 인생도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바로 지금이 복음을 증거할 때입니다.

구 소련 스탈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시베리아의 한 수용소에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용소에 ‘보리스 콘펠드’라는 유대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수용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건강 진단이지만 사실은 의사의 권위를 빌려 모든 사람을 강제 노동현장으로 내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에 걸린 사람을 건강하다고 허위 진단하면서 양심의 갈등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중환자로부터 복음을 듣게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평안한 모습으로 오히려 자기에게 질문하는 것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는 겁니다. 결국 그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자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담대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를 만나 진단하다가 암환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동 현장으로 보내지 않고 정성을 다해 치료해 줍니다. 그 젊은이는 묻습니다. “선생님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실 어떻게 저를 이렇게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질문 앞에 의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바로 그날 밤 그 의사는 수용소 간수에 의해 처형됩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젊은이 역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솔제니친입니다. 만일 그날 밤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솔제니친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⑥ 순교를 통한 증거 :

하나님은 때때로 순교의 방법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게 하십니다. 순교는 역설적으로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복음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목숨 바쳐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것 은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8절에 나오는 ‘증인’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말튀스’인데 이 단어가 나중에 영어의 순교자 (martyr)라는 단어로 굳어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다가 수없이 순교했습니다. 당시는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순교를 감수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공산권이나 모슬렘권에 많은 순교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1년에 전 세계에 15만 명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붙잡혀 죽지 않아도 오지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 목숨을 바치는 분들까지 합치면 순교자의 수는 더욱 많아집니다.

지난 2월 1일 아프리카 부르기나 파소에서 사역하던 허태준 선교사(불어권 선교회 소속)가 미전도 종족 정탐을 다녀오다 차량 전복 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며칠 전 차드 선교여행 중 우리 교회 양승훈 선교사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기가 막힌 일입니다. 차드에서 단기 사역을 마치고 파리에 나와 1박을 하는 동안 비보를 들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차드에서는 그렇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데, 왜 그 선교사는 하나님이 데려가셨는지! 그 선교사는 38세의 젊은이요, 다재다능한 분입니다. 불어도 잘 하고, 찬양도 잘 하고, 기도도 뜨겁게 하고, 성격도 상냥하고, …. 얼마나 아까운지! 사모님과 어린 딸, 태중의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조금은 하나님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목사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 현지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선교사와 현지 교회가 하나 되어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묘소도 크게 조성해 주고 … 유족들도 위로받고, 불신 가족도 돌아오고, 파송 교회도 더욱 선교에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를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국교회도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의 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오묘하게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십니다. 그래서 주님 재림 이전까지 모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4] 증인의 삶의 축복과 영광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흘려듣지 마십시오. 증인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특권입니다. 증인의 삶을 살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눅15:7 참조) 그리고 내가 증인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내 일을 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도 승리합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빛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 것은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간 삶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에서 늘 하는 일이지만 1대 1 구원 운동을 펼칩니다. 한 영혼을 품고 주님께 인도하는 이 일에 모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일’입니다. ‘교회 일’만이 아닙니다. ‘내 집 일’입니다. 부디 이 말씀 새기시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서 승리하시고 저 천국의 영광을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왜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나요?

반응형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소중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떠났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키려고 애쓸 것입니다. 꼭 이러한 유언같은 당부가 아니어도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행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또 그가 굳이 우리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이라도 그를 위한 일이라며 기꺼이 기쁨으로 행할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라.”(마가복음 16:15) 이것은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말씀이자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사람들의 영원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에 전해져야 합니다. 또 듣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복된소식이 되는 것이기에 반드시 먼저 들은 자는 전해야만 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것을 전하는 것은 먼저 들은 자의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것을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디모데전서 2:4).

우리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간직하여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요한복음 14:21)

•기도:

나의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매일매일 주님께 순종하길 원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 “내 말보다 나의 행함에 더 의지하십시오.”- D.L. 무디/ More depends on my walk than talk.- Dwight L. Moody

💕 이전 글: 152 증언이란 무엇인가요?

💕 이후 글: 154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을 말해야 하나요?

728×90

반응형

LIST

증인의 삶

[목회칼럼] 라이트 하우스 달라스 교회 담임목사 장량

그리스도인의 신앙 핵심은 부활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업적을 기리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명상하고 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각색하고 수정하고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드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의 업적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 주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산 자를 대하는 태도와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 아버지가 이 요리를 참 좋아하셨지~하며 옛 추억을 떠 올리는 것과 아버지와 함께 그 좋아하시는 요리를 함께 먹는 것은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고, 그 능력이 다르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부탁하신 명령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죽은 예수, 사라진 예수가 아닌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의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

내가 어떻게 주님을 더 잘 증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날마다 우리 삶에 던져져야 하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으로 전달 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그냥 유명한 그 분 정도로 전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은 너무나도 들 떠 있었다. 그들의 변치 않는 관심사는 주님의 왕국이 언제, 어떻게 임하는가였다. 부활 전에는 불확실했던 것들이 예수님의 부활 후에는 더욱 더 분명해졌기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주님의 때가 이제 되었습니까?

그럴 때 주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때에 대해서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어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참 스승 되신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작은 선생이다. 선생의 가르침이 잘 전달되려면 그 선생의 삶이 인정 받아야하고 존경 받아야 하고 신뢰가 가야 한다.

아무리 큰 메세지를 외쳐도 그 메신저의 삶이 수준이 안 되면 그 메세지 가치도 떨어진다. 제자들의 가르침은 능력이 있었다. 또한 제자들의 삶 역시 능력이 있었다. 메세지와 삶이 능력 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참 된 증인으로 설 수 있었다.

주님의 때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언제 오실지는 당연히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 하셨기에 그것을 계산하고 또, 안 되는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오시나, 언제 오시나, 어디로 오시나? 열심히 공부해봤자 우리는 모른다. 모르는 것에 너무 열심을 내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때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 음란과 쾌락의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판을 치는 이 시대,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문화의 인기가 올라가고, 서로와 서로가 반목하고 싫어하는 시대, 이 시대는 분명히 말세다. 여러가지 자연 재해들과 또한 코로나 19를 마주하는 우리는 당연히 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는가? 그 때가 더 다가 온다고 느껴질 때 너희가 더 힘 써야 하는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날짜를 계산하고 어떻게 더 빨리 오실 수 있는지, 어떻게 더 드라마틱하게 그 분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하여 더 고민하고 그 삶을 살도록 더 열심으로 노력하는 것이었다.

벌써 말세를 외치고 적 그리스도를 거론하고 여러가지 말세의 현상을 지적한지가 너무나도 오래 되지 않았는가? 그런 교회들의 외침에 비해 정작 주님이 부탁하셨던 삶,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우리는 얼만큼 노력했는가? 우리가 정말로 붙들고 노력해야 하는 삶은 참 된 증인으로서의 삶이다.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문제다. 종말의 시대에 진짜 종말의 징조는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 예수를 믿으나 그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는 자, 나의 구세주 예수를 어떻게 증거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

나는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장량

라이트 하우스 달라스 교회

담임목사

증인의 행복 (행 1:8)

2014. 4.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14)

본문 : 행 1:8

제목 : 중인의 행복.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기에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는 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이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되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어느 정도로 실천하고 사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평가하는 평가기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셨는데 이 말씀에 자신을 한번 비추어보고 스스로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연 교회에만 왔다가 갔다가 한 사람인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증인이라고 하면 앞서서 살펴본 대로 고난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난의 삶을 살았고 순교로서 그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말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증인으로서의 삶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복을 받는다, 좋은 것을 준다, 행복해진다. 라고 해도 신앙생활을 하기 싫어하는데 고난을 받아라, 순교를 해라고 하면 기꺼이 따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시대처럼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하여야만 증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 안에서 당당하게 멋있게 사는 것도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내게 불행을 가져오고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런 느낌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삶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서 내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증인이 될 때 내가 누구편인지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증인이 되리라”라고 할 때 그 앞에 “내”가 붙어서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내” 즉 예수님의 편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재판을 할 때 증인은 원고 측 증인이 되거나 피고 측 증인이 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원고 측에 서서 원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거나 피고 측에 서서 피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편인가를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방청객으로 있을 것이 아니라 확실히 한 편이 되어서 그 사람에게 유리하게 증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판결해야 하는 최고의 재판정에서 증인으로 서 있습니다.

한편은 사탄과 그의 뒤를 따르는 악한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은 아무런 힘도 없이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세력들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세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분야들을 다 장악을 하고 있어서 자기들의 주장이 정말로 옳은 것처럼 여기고 삽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참으로 비참한 세력들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배반자들이고

그렇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게 되고 죽은 후에 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해서 큰소리를 치고 살아보지만 홀로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절망적인 삶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다른 한편은 예수님을 따르는 선한 무리들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구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힘이 없는 분 같고 별 볼일이 없는 분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재판장이시고 이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실 만왕의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예수님을 피고로 삼아서 정죄를 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만 우리 예수님이 피고나 되고 정죄나 받을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예수님 편에 서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그 나라를 상속받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편에서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서로 증인이 되려고 싸워야 할 일이고

서로 증인이 되려고 경쟁을 해야 되는 너무나 귀한 자리가 이 증인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지 않아도 예수님의 복음은 세계만방까지 퍼질 것이며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편이 되어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증인이 될 때 내가 하는 말이 진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증인은 자기가 보고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진실 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보았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르게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너무나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것저것 잡다한 것은 많이 아는데 몰라도 되는 것들은 여기저기서 주어 들어서 많이 아는데 정작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것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고 아는 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길을 알면서도 자신이 거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바르게 간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정말로 자랑할 것은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설교하지 않고 잡다한 지식만 전하는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설교를 수천 번 들었다고 해도 진리를 말해주지 않는 설교는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도 많이 들어서 듣기는 좀 식상해도 그래도 시간 시간마다 복음을 듣고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니까 대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끔 설교를 보고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야 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시간 시간마다 이렇게 주옥같은 복음의 말씀으로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설교는 2천여 사람들이 들어와서 듣거나 읽은 것을 보면서 그래도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는 진리로 복음의 증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끔은 돈을 받고 위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거짓말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달리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 중에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거짓말로 예언을 한 거짓선지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고 괜찮다 복 받는다고 거짓말로 축복을 해 주고 돈을 받는 나쁜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치지 않고 괜찮다고만 설교를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그 형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평안을 외칩니다.

요즘 교회들을 보면 평안과 행복을 엄청 강조합니다.

평안교회, 참평안교회, 큰평안교회, 행복한교회, 복된교회, 이런 이름들을 참 좋아합니다.

회개를 외치는 교회,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 고난을 당하는 교회, 순교하는 교회 이런 이름은 없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 다 잘될 것 같고 모두가 다 행복해질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잘되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거짓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설교가 정말인줄 알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이 세상의 행복과 십자가의 복음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좀 더 잘살기 위해서 세상에서 좀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을 내팽개치고 불의와 타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진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진리를 알아도 욕심 때문에 진리를 팔아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를 행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인으로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알고 바르게 말한 이 증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된 행복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증인이 될 때 나의 삶은 멋진 삶이 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은 말로만 증언을 하면 되지만 복음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말보다 그 삶으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증인의 삶을 산다고 할 때 그의 삶은 진정한 삶이고 멋있고 보람되고 참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죄를 범하고 악한 사람이 되어서 악을 행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증인으로서의 삶은 진리를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을 가면서 사는 삶이기 때문에 진정한 인생의 길이요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죄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아서 죄를 행하면서 삽니다.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구조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다가는 밥도 못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알게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에 너무나 많이 노출이 되어서 사는 삶 자체가 불법이요 죄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생각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바르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나쁜 친구 만나가지고 친구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하다가 보니 죄 가운데서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웃을 잘못 만나서 어쩌다가 죄의 소굴에 들어와서 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죄인 줄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마음이 약해서 육신이 연약해서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삽니다.

가끔은 죄악 된 생각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유혹을 하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증인을 서야 하는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죄를 다스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빛과 소금으로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사람들입니다.

맛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맛이 나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부패하고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내 앞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세상에서 장님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도 빛을 비추어서 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때 정말로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가르쳐 주는 것은 보람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고 너무나 보람된 일입니다.

나를 통하여 장님이 눈을 뜨고 진리를 보고 바른 길로 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다 희망을 잃고, 사는 맛을 잃고 삽니다.

뭔가를 먹어도 맛이 없고 아무리 재미있는 일을 해도 잠깐일 뿐입니다.

진정한 재미는 영원한 소망을 주는 일일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재미있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다 부패해져서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정말로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의 환경들도 오염되어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오염이 되어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오염된 세상에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알고 바르게 살면 이 세상이 썩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 하게 될 것입니다.

증인은 하나님나라로 국적을 옮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국적을 옮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살기가 좋아져서 역이민으로 다시 귀국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살 때는 미국에 이민을 가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아무나 비자가 나오고 이민을 허락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심사가 엄청 까다로워서 웬만한 사람들은 다 불합격을 당했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갔다, 그러면 대부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국적을 하나님나라로 옮기는 것을 미국 이민에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비자는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될 때 우리의 시민권은 이미 하나님나라에 가 있는 것입니다.

증인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이 된 사람입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부활로 연결이 되어서 우리의 몸도 신비한 몸이 되어서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인이 됨으로서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해서 대출 몇 가지만 살펴보았습니다.

증인은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하고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증인이 되고 고난을 당하고 순교까지 당하려고 하는 것은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이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증인으로 사는 것도 고난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죄를 지배하고 빛과 소금으로서의 보람된 역할을 감당하고 하나님나라로 국적을 이동시키고 영원한 생명과 연결시키는 너무나 복되고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증인이 됨으로서 나는 확실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증인이 됨으로서 내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진리 위에 확실히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증인이 됨으로서 정말로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셔서 이런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증인 의 삶

다음은 Bing에서 증인 의 삶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 정동수
  • 사랑침례교회
  • 킹제임스
  • 흠정역성경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YouTube에서 증인 의 삶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증인의 삶 (David W. Daniels)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 증인 의 삶,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