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부르짖 으라 | 최덕신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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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는 나를 믿으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이뤄주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니
너의 길을 맡기어라 나를 의지하면 내가 이루리니
소망 가운데 기다리라
아무것도 염려치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리니 네게 평강 있으리
여호와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니
너의 길을 맡기어라 나를 의지하면 내가 이루리니
소망 가운데 기다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으 이루어 주리니
너의 길을 맡기어라 나를 의지하면 내가 이루리니
소망 가운데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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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3:3 KRV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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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7/28/2021

View: 4714

[스크랩]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다음블로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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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16/2022

View: 9879

2010-04-1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정필도목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20100416 본문 / 예레미야 33:2~3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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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ildo.kr

Date Published: 7/26/2022

View: 1722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가사 – 벅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이뤄주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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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ugs.co.kr

Date Published: 2/3/2021

View: 7792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 어느 직물공장에 공장장이 여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지시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이 직물 기계를 지켜보다가 실밥이 얽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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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8/27/2022

View: 6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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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신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최덕신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너는 내게 부르짖 으라

  • Author: J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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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3. 6.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zS9pFn-Nb8

[스크랩]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표준새번역)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한킹)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흠정역)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 주리라.(공동번역)

그러므로 너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의지하여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엄청난 일도 이루어 주겠다. 나는 네가 이제까지 알지도 못하고,

또 전혀 알 수도 없는 큰 일들을 네게 보여주겠다.(현대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제가 즐겨 읽는 성경은 표준 새번역입니다. 위에 똑같은 구절을 번역한 번역본을 비교해 보시기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지대한 영향력을 충실하게 발휘하는 역할을 누가 했는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니까 덮어놓고 부르짖는 기도(?)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강청기도’까지 갑니다. 지금은 아주 ‘일천번제기도’로 까지

장족의 발전을 꾸준하게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시간이 아깝지만 예레미야 33장3절을 찾아 보았습니다.

직접 확인을 해야하였습니다만 정말 시간만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기도를 내용으로 하는 설교가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터리 임에도 그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기도원 홈페이지나 이단 사이비단체의 적극적인 전략으로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기도만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싸이트에서도 아주 가관들입니다.

사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기도가 만병 통치약으로 이미 전락해 버렸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독교 현실 속에서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로부터 무차별 학대와 태러를 당한 성경구절이

이렇게도 많다는것에 한숨만을 쉬었습니다. 무조건 강사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유창한 성경 구절이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하는 것도 실망이지만

그것을 이용해도 맹목적으로 충성만 해대는 교인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질 뿐입니다.

성경 여기 저기서 특정 구절을 끄집어 내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아멘한다는 이 기막힌 현실….

분명 성경에 있지 않느냐? 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거부하는 현상들…

세상 사람들은 전부 아는 것을 교회안에만 들어오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없는 교인들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들…

혹자는 교회안에만 들어 오면 전부가 ‘무뇌’ 상태가 되어서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집단적으로 최면에 걸린듯한 교인들이라고 까지 말하던것이 이해가되는 것을…

이런 사실들을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교회안에 같힌 교인들에게는 전혀 딴세상 이야기가 되고 마는것을…

교회 밖에 사는 사람들은 뻔히 아는 사실들이 교회 안에서만 모르쇄가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 믿음좋은 교인이며 안다고 말하는 자들은 믿음 없는 자가 되고

교회를 분란시키는 안티나 이단으로 몰려서 쫒겨 나가야 하는 현실들…

그 속에서도 보는둥 마는둥 눈치보느라 색깔 바꿔가며 줄서기 하는 군상들…

분명 담임 목사의 불의함을 알고 보면서도 우리 목사님을 지켜야 한다면서

진실을 말하는 교인들의 입을 막고 내 치는 자들…

그들을 선동하고 부추기는 모략군들이 교회의 중직에 앉아서 거룩한척 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주일 강단에서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를 태러하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서로 편을 갈라서 거룩한 기도실방으로 데리고 가서 벌어지는 폭행의 현장들…

그러면서도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고 싸움질 하는 모습들….

이렇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다수의 교인들…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암담하기 까지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으로 무조건 밀어부치는 것입니다.

기도로 무조건 밀어 부치는 것입니다.

특히 ‘부르짖는 기도’ 가 아주 한국의 정서에 딱 들어 맞습니다.

워낙 한이 많은 민족의 정서가 무속신앙과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새로운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사대주의 사상에 세뇌된 정서와 함께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피해 의식속에서의 울분들이…

약할 때는 잠잠하다가도 힘만 생기면 거침없이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얼마나 우리 민초들의 삶이 고통과 억압의 삶이었는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는 어쩌면 민초들의 삶의 유일한 비상구 였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양반과 상놈으로 분리된 암울한 시대 상황속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기독교사상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거기다가 원한과 억울함이 가득한 민초들에게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황당에 돌맹이 올려 놓고 빌거나

정한수 떠나 놓고 목욕제계 하며 치성을 쌓고 하늘을 향하여 빌고 또 빌기를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하였던지…

동지섯달 눈보라 치는 혹한의 추위속에서도 ‘칠거지악’ 을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빌고 빌었던 며느리들의 몸부림들…

신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빌고 빌었던 문화적인 배경속에서 기독교역시 ‘부르짖어 기도하자’ 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이 쉬었었던가….

기도에 대한 오해들이 사실은 신앙을 많이 병들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신자들만의 의무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 같이 변했습니다.

보이는 교회 건물이 성전이라는 인식이 성역 처럼 신성시 된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성전 건축에 누구라도 건드리면 공적이 되는 한국 기독교만의 불문율…

늘 되풀이되는 성공한 목사의 눈물 어린 성전 건축과 봉헌 예배를 간증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것 처럼 맹종하며 가르치는 교회의 저속한 문화 수준들…

유명 목사의 입에서 조차 일천번제와 십일조와 성수 주일과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랑스러이 말하며 당신들도(개척교회들) 나 처럼 해보라는 듯이 부추기는 모습들…

정말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까?

부르짖어 기도 하지 않아서 망하는 것입니까?

누가 누구에게 부르짖는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이 말씀을 교회 목사의 설교에서 단골 메뉴로 인기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부르짖음만을 강조하다보니까 교회 나온지 얼마안된 초신자들까지도 덩달아서 부르짖는 기도 모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나오는 이들이 전부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성도라고

볼 수는 없는것이 현실이고 보면 더욱 위험 천만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교회 나온 교인들이 가정이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니까 나오는 경우일것입니다.

특별히 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제발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믈겠지요.

아니면 어떤 친교나 사업적인 인맥관리 유지나 영업을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교인숫자가 최소한 2~3백명은 넘어야 하는 교회에 해당할 것이겠습니다만….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와서 듣는 설교의 대부분이 어떤 내용일까요?

인생의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다면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일것입니다.

물론 틀린 설교는 아닙니다만 바른 설교도 아닙니다.

설교는 언제나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지 ‘복음의 진리’만을 전달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고

예수와 나와 어떤 관계인가를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의 실체는 어떤 존재인가를 철저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이란 십자가를 전하면서 그 십자가 앞에 온 인류가 죽음이며 죄악덩어리며 부패한 존재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잇다는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앞에 나온 사람이 스스로에게 절망하도록 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깨어지는 심령으로 어찌할꼬 하는 애통하는 심령과 함께 자기의 벌거벗음과 비참한 것을 보여주고

깨달아서 절망할 수 밖에 없도록 그렇게 낮아지도록 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앞에 전 인생을 맡기는 대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교회에 나가면 무엇부터 듣습니까?

당신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라는 긍정부터 듣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으로 부터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아는가 부터 배웁니다.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의 삶이 능력있게 변하며 성공하며 승리하는 것이라고 배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성공한 모델들을 열거하며 가르칩니다.

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는 그들의 삶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십일조와 주일 성수를 귀하게 지켰다더라

새벽기도 했다더라

록펠러를 보라고 자랑합니다.

십일조를 잘 했더니 록펠러가 큰 부자가 되었다고만 자랑합니다.

록펠러의 뒷 모습은 안보여줍니다.

그가 부를 이루기위하여 얼마나 불의한 방법으로 착취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동기는 문제가 없다는 무서운 누룩이 교회와 신앙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교회 충성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서 자손 대대로 성공하고 잘되었다더라…만이 들려집니다.

죽을 병에 걸렸는데 부르짖었더니 살았다더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바뀌고 은혜를 받는다고 함께 부르짖자 하며 가르칩니다.

일명 주여 삼창 기도입니다. 통성으로 부르 짖어서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자는 기도입니다.

강청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여서 소원을 이룩하자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교회 나오면 기도모임은 연일 불야성을 이룹니다.

한국교회의 기도열풍은 식을 줄 모릅니다.

이정도의 열정과 정성과 믿음이라면 당장에 주님의 나라가 한국교회 위에 내려 올 것만 같습니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모두들 열심으로 부르짖느라 야단들입니다.

목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교인들을 다그칩니다.

목사는 이 부르짖는 것을 이용해서 성전하나 건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인들은 까짓거 성전 건축하는데 동참해서 손해 볼게 뭐가 있는가 하며

댓가성을 바라는 기복주의로 열심히 동참해 줍니다.

이것을 하는대 보탬이 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우리 자식들이 잘 될것이고 사업이 성공 할 것이고 병이 고침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 정성들여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데 하나님이 설마 내 소원 한가지쯤 안들어 주시겠는가 라는 …

생각대로 하면 되고…되고…되고…

부르짖는자들이 성공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들었으면 사람들이 무조건 부르짖자는데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복음이 부르짖어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큰 유익과 은혜와 경험을 체험하는 분들이야 있겠지요.

그러나 사실 은혜나 기적이라는 것들이 부르짖는것 만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간에 세상살이 가운데는 기적같은 일들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기적아니겠어요?

기적을 특이한 종교적인 체험이나 믿음만을 대비시킨다면 지금 교회 안나가거나 예수를 앏지 못하거나

안믿는 사람들은 전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서 부르짖는 기도가 과연 정말인가에 대하여 살펴 보셨습니까?

예레미야가 정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사실입니까?

다시한번 관련 성구를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표준새번역)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한킹)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흠정역)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 주리라.(공동번역)

그러므로 너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의지하여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엄청난 일도 이루어 주겠다. 나는 네가 이제까지 알지도 못하고, 또 전혀 알 수도 없는 큰 일들을 네게 보여주겠다.(현대어)

유독히 한글 개역과 개정판 만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로 번역했습니다만,

다른 번역성경은 나를 부르라 로 되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주님만을 의지하여라고 번역합니다.

사실 개역판 외에는 전부가 공통적으로 주를 부르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부른다는 말은 찾는다 구하다 의지하다 신뢰하다 바라보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잠잠하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 보는 것 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병거를 타고서 쫒아 오고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오늘날 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까?

모세 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진정하여라.”

주께서 모세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출14:13-16)

처음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워서 주께 부르짖었지만 다시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한 말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진정하여라.”

그러나 오늘 교회 목사의 설교는 어떻게 나옵니까?

모세와 같이 주님의 구원하심을 지켜 봅시다 하고 말하는지요?

우리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주께 부르짖으면 삽니다 하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레미야가 왜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지요?

예레미야 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개역개정판).렘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개역한글판)

예레미야가 여전히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있을 때에, 주께서 그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셨다. (표준새번역)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번역성경이 동일합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부르짖는 자의 조건이 누구냐면

주님의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죄악상과 유다의 타락에 대하여

경고와 심판(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말하자 시위대 뜰에 구금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치 교회 신자들의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통스런 현실로 대비시켜서

적용시켜 버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이것을 그런식으로 덮어놓고 적용시켜서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 있다면 예레미야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면 됩니까?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개역개정)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개역한글)

땅을 지으신 주님,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새번역)

땅을 지으신 주,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표준)

“땅을 만든 나 야훼 가 말한다. 땅을 빚어 든든히 세운 나의 이름은 야훼 다.”( 공동번역)

그곳의 조성자인 주, 그것을 형성하여 견고히 세우는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가 그의 이름이라 .(한글킹)

그것을 만든 자 주, 그것을 조성하고 굳게 세운 자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흠정역)

`나는 온 세계를 창조한 주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내가 모조리 일으켜 놓고 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현대어)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의 구절과 다른 번역의 구절을 읽으면

같은 상황속에서도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욱 가관인 것이 다음 구절입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삯군들입니다.

다시한번 살펴 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이것만을 말하고 적용을 하면 이렇게 되는것입니다.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하는 하나님. 간절함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밀한 일을 아는 자는 누구라는 것입니까? 부르짖는 자들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특별한 자들에게 비밀을 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주가 나오고 사이비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정통 교회라고 하는 교회 안에서조차 부르짖어 기도합시다로만 가르치니까 사이비 이단들이 거기서는 크고 비밀한 것을 듣지 못하고 여기로 와야 우리 교주님이 듣고 깨달은 것을 들을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목사부터 모르니까 교인들도 그 수준 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믿음만을 강조하니까…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지는 것을 불신앙으로 몰아가는 현실 속에서 교인들의 믿음 좋다는 기준은 무조건 아멘파와 아주 성경 말씀을 전혀 볼 수 없는 바보 멍청한 교인들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목사가 맘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까?

크고 비밇한 일이 감춰졌기에 특별한 주의 종만이 알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것에 모두들 속아 버립니다. 그러니까 종말론적인 신자들이 나오고 광신자들이 나오고 당장 끝장나는 것처럼 현실 도피를 하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잘나신 목사님들 아닙니까? 잘나빠진 교리나 신학들을 공부하신 분들께서 ‘부르짖어 응답 받는 방법론’에만 열중하니 교회온 교인들이 정신을 차려서 복음을 듣기도 전에 기복주의신앙과 번영신앙과 긍정의 복만을 잔뜩 세뇌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교회를 향하여 문제를 지적하면 이단 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 되고 오직 교회만 들어와서 등록 교인만 되면 천국행 티켓을 보장하고 무슨 짓을 해도 교회 충성하고 부르짖어 회개하면 용서 받는다는 심리적인 위장된 평안함을 남발하고 당신이 일이 꼬이는 것이 목사 말 안들어서 그런 것이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불신앙 때문이라고 말하는등… 아주 점을 치는 점쟁이 목사들이 수두룩한데도 교단이나 노회는 그저 교세 확장에만 눈이 멀었는지… 관리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정통운운하는 모습들… 교회 분리가 마치 성경적인 것인양 또 화재를 몰고가는 군상들하며…. 청부론을 마치 거룩한 부자 만들어 주는 그럴듯한 논리로 장사해 먹는 달변가들하며… 이런 저런 것들이 혼재된 교회를 보면서도 누구는 완전하냐며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며 교만하지 말자느니 성도들의 눈과 입을 통채로 막으려고 물을 흐리는 지능적인 군상들 하며… 은혜와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면서 정작 바른 복음을 가로 막는 사람들이 자칭 교회를 사랑하는 자라는 인식으로 세뇌를 시키고도 정작 복음의 진리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자를 향하여서 점잖게 충고하며 주의 말씀을 똑 때어다가 은근하게 협박까지 하는 대담함들…. 대놓고 험한 말은 슬쩍 피하면서도 온갖 저주스런 성경 구절을 들이밀면서 자기들의 반대자가 되면 주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리라는 암시를 조장하는 얄팍한 거짓에 능숙한 자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입니까…. 예레미야가 이렇게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같혀서 죽을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의 설교들은 무슨 일만 당하면 부르짖자고 하니…. 그리고 부르짖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를 기다라는 것이며 바라 보라는 것이며 주님만 구하라는 것인데도… 부르짖어서 개인적인 소원을 달성하자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크고 비밀한 일은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 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개역개정)렘33:14,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 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개역한글)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 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새번역)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게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 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표준)

나 야훼 가 선언한다. 장차 내가 약속한 복을 이스라엘 국민과 유다 국민에게 그대로 내릴 날이 온다.

내가 다윗 의 정통 왕손을 일으켜 줄 그 날, 그 때가 온다. 그는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 것이다.(공동번역)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나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약속한 좋은 일을 행하리라. 내가 그 날들, 그리고 그 때에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 자라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심판과 의를 실행하리라.(한킹)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에 약속한 선한 일을 이행하리라. 그 날들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 그가 그 땅에서 공의와 의를 집행하리라.(흠정역) [약속한 대로 지키시는 주님] 여호와께서 더욱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약속한 일을 그대로 성취할 그날이 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사람을 뽑아 세우겠다. 그러면 그가 다윗의 이름을 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그는 내가 준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면서 내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지상에서 법과 정의를 실현하는 의로운 통치자가 될 것이다.(현대어) 이상으로 알 수 있듯이, 크고 비밀한 일이란 예레미야의 전한 예언처럼 이스라엘과 유다가 바벨론에 함락되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고, 그 기한이 70년이나 길기에 모두가 이젠 끝장이 난것 이라고 할 그 때에도 기약이이르면 포로된 백성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사로잡혔던 백성들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결코 이스라엘과 유다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움이나 부르짖음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함과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슨 특별한 능력자나 목사나 영성가들에게만이 부르짖어 기도잘하는 은사자에게 만이 보여주는 계시라고 거짓말들을 하는 자들때문에 아주 속이 탑니다. 타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안수 받은 정통교단 소속 교회 목사들에게서도 아마 부르짖자는 설교는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안믿겨지면 구글 검색을 통해서 렘33:3절 성구를 확인해 보시기바랍니다. 거의 똑같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살교를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그나마 읽어보고 수긍을 한 글이 이글이었습니다만… http://www.hnara.com/blog/board.php?board=cross&category=16&command=body&no=388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 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표준) 자, 보십시오. 이 말씀이 크고 비밀한 일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미래에 오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신 크고 비밀한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사도 역시 하나님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이미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사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온 세계에 다 알려졌습니다. 더 이상 감추인 비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이비나 삯군들이 자기들만이 그 비밀을 알수 있다고 헛소리들을 합니다.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비밀을 자기들만이 풀 수 있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을 말씀앞에 나가지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방해를 한것 때문입니다. 오로지 교회에서 만든 온갖 프로그램 적응 시키느라 바쁩니다. 씨잘대기도 없는 온갖 잡다한 의식과 규범들을 만들고 계발해서 무슨 운동이니 공부니 모임이니 세미나니 해가면서 교인들이 바빠서 곤죽이 되도록 정신 못차리게 부려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교인들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신학교도 동일한 구조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아는것보다는 교회사속에 명멸했던 신학자들의 괘상한 논문과 서적을 부지런히 읽고 레포트 작성하느라 시간 다 보냅니다. 오히려 신학교 입학하기 전보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모범적으로 교회 출석, 소위 성수 주일 잘하는 분들역시 성경을 차분하게 읽으실 분들 별로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교회 자주 못나오는 분들이 오히려 공연한 죄의식 때문에 집이나 개인적인 시간을 이용해서 성경을 읽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또 새 힘을 얻어서 교회에 다시 열심으로 나아갑니다. 가서 교인들과 말씀을 통해 얻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어느새 교회안에서 눈치를 받는 이상한 교인으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말씀과 다르더라 하고 말하였는데… 목사님의 눈밖에 나고 공공연하게 의심하는 불신앙 교인으로 찍히고 잘못 된 영을 받았다느니 하며 노골적으로 교회안에서 왕따가 되어가는 분위기가 연출이 되면… 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나가던지 아니면 침묵하는 바보로 자신을 숨기는 것이 되고… 다시 말씀을 읽고나면 분명하게 잘못된 것들이 보여지면… 이제는 교회가 점점 멀어지는것이 되고… 그래도 교회라는 그동안의 익숙함과 교회만이 주님이 계신 곳이라는 세뇌상태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고… 이런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자포자기한 상태가되어서 소가 푸줏간에 끌려 가듯이 그렇게 다가오는 주일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상담실을 노크해도 들리는 답변이라는게… 교회에서 사람을 보면 실망하니 하나님만 보라고 하는 답변들 밖에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 보라느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교회를 옮겨서라도 교회를 떠나면 안된다느니…. 다른 교회 목사의 답변도 별 수 없지요. 뭐가 문제일것 같습니까? 복음이 없어서그런 것입니다. 교회에 원래부터 복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말 하면 곡괭이 들고 달려올 교인들 엄청 많겠지만…. 교회에 복음이 없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복음이 교회안에 충만하였더라면…. 누구나 그안에 들어가는 자에게 생명의 복음이 심겨지게 되고… 복음 안에서 영원한 자유함을 알고 누릴 것인데…. 이 복음이 없으니까 복음을 듣지 못한 기갈 때문에… 부르짖고 기도하며 온갖 교회 일과 행사에 충성해 보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교회는 그것을 아는양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그램 수입해오고 다양한 서비스 문화를 만들고 드라마틱한 쇼를 연출도 해가면서 세상의 온갖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혼과 육적 본질을 만족시키려고 발버둥을 치니…. 거기다가 무슨 십자가의 복음을 말할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세상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교인들에게는 그것 마져도 시시하니까… 그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이고… 세상에서도 가난한 교인들에게는 그나마 교회에서나마 그러한 문화를 접할 수있다는 묘한 행복감을… 그것이 복음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양 세뇌당한 이들이…. 복음을 들으면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는 이 현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교회는 부르짖음을 강조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계속 재미를 보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이 말씀이 과연 당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이렇게 자꾸만 부정적인 글을 쓸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복음을 말하면…눈에 들보를 먼저 빼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느혜미야가 개혁을 시작할 때에,도비아가 자연스럽게 방해를 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는 길을 도비아처럼 흔들고 물타기를 하면서 은근하게 협박과 공갈을 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 본인이 아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은 본인도 모르게 이용을 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진정 복음을 아는 자라면 알아듣고 화답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안에서의 형제들이 속속 들어나기를 소망하면서…. 2009/08/10.ⓒ사랑그리고편지.

출처 : 사랑 그리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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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20100416본문 / 예레미야 33:2~3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그대로 이루어지는 응답을 받는 것도 축복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그러므로 기도하면서 기도제목 하나하나가 이루어지는 것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주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마치 깜깜함 속에서 헤매다가 갑자기 환히 보이는 듯한 깨달음이 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에는 겨울에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앉아서 온 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고 잤습니다.잠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기도하다가 우는 소리가 나니까 어머니는 제가 너무 배가 고프고,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날마다 울고 잔다고 생각하셨습니다.저는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에 기도제목은 우리 가족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과 중학교에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기도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때 응답 받았습니다.그리고 중학교에 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학교에 합격되었는데, 입학금이 없었습니다. 납기 마감이 가까워올수록 속이 타들어가고 너무 걱정이 되니까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나중에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비가 있어서 입학금을 내는 것도 축복이지만, 입학금도 받고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는 것이 더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여러분, 꼭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얼마 동안이라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 기도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될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초등학생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한 것이 평생의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그 당시에 저의 심령은 물댄 동산과 같았습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보면,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넘치고 행복하고 아무 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없고, 중학교에 갈 길이 막막했지만, 걱정되지 않았습니다.마음에 평강이 있고, 걱정되지 않는 것은 이미 응답받은 증거입니다. 해결된 증거입니다. 그러나 자꾸 걱정되는 것은 아직 기도가 모자라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입니다.결혼하려고 하는데 불안하다면, 아직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에 취직하려고 하는데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아직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마음에 평강이 있고, 걱정되지 않는다면, 이미 하나님께서 해결해놓으셨다는 사인입니다.그 당시에 저는 가정도 어렵고, 중학교 입학시험도 치기 전인데, 마음에 평강이 있고,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으면서 기도했는데,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으니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이 평안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은혜를 받은 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이렇게 물댄 동산 같아지기를 축원합니다.그 때 저에게 따라온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쁨이 넘치고, 마음에 행복이 넘쳐서 머리가 아주 총명해졌습니다. 머리가 얼마나 맑은지, 공부한 것이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면 백점이었고, 공부하는 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은혜 충만한 가운데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잘되는 것은 은혜를 받아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응답받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더 크고 가장 귀한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아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 참으로 행복한 것이 제일 잘된 것입니다.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기도생활 자체가 행복해집니다. 기도생활이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이 항상 기대되고, 마치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러 가는 사람의 심정과 같습니다. 기도 시간이 기대되고,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은 또 어떤 은혜를 주시고, 어떤 깨달음을 주실까? 어떤 말씀을 주실까?’라고 하면서 기대가 됩니다.기도하다가 은혜 받아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면, 하루 종일 기도하고 싶습니다. 밥 먹는 것도 미루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이때 귀중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저는 그런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다가 천국에 가면 제일 좋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를 많이 하면 예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겠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전도를 하니까 기쁨이 더 충만하고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큰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민족 복음화에 대한 꿈을 어린 나이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서 이 나라, 이 백성을 구원하리라는 일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을 세운 저에게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장학금을 받게 하시고, 대학교도 장학금을 받고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어렸을 때 기도하다가 은혜 받고 깨달은 것이 바로 제 일생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은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 것, 하나님의 비밀스런 계획을 깨닫는 것,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는 것, 가장 좋은 길이 어느 길인가를 깨닫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지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제가 중학생이 된 후에 깨달은 것은 신앙생활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말자.둘째,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하자.셋째, 하루에 성경은 한 장 이상씩 읽자.이 세 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결심한 대로 지키는 중에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학비는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매일 교통비가 있어야 전차를 타든지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다보면 학용품도 사야하니까 아침마다 손을 벌려야 합니다. 어려운 가정에서 얼마나 힘듭니까?그런데 하나님께서 중학교 2학년 때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데, 한 택시회사 사장님을 우리 교회의 아저씨를 통해서 소개받았습니다. 그 분이 저를 보자마자 좋아하시면서 자기의 양아들 삼겠다고 하셨습니다.그분께서 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셔서 교복과 운동화를 사주시고, 문방구에 데려가셔서 필요한 대로 다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친아버지라도 그렇게 잘해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때 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이신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보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그리고 저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가를 스스로 시험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서 열 가지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써놓고,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그리고 들어오는 대로 체크했습니다. 얼마 있으니 모두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임을 체험했습니다.중학교 3학년 때는 “아버지, 저는 평생 주님만 위해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데 유익하고, 그 공부가 꼭 필요하다면 합격만 시키지 마시고, 학비까지 모두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 교만하고 타락하고 예수를 잘 안 믿고 주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제발 제 길을 막아주십시오. 주님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고등학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이런 기도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100% 다 이루어집니다.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어주시기 때문에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다음에는 의심하려고 해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을 때는 미리 받고 얻은 줄로 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간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똑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그냥 들으시겠습니까?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에 벌써 장학생이 되어서 미리 돈이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대학 2년간의 학비까지 낼 수 있는 정도로 넘치게 주셨습니다.그래서 양복도 해 입고, 시계도 사고, 구두도 사고, 책도 사고, 모두 사고도 돈이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요.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큰 믿음의 기도인지 아십니까? 왜 어리석게 자꾸 이루어달라는 기도만 합니까? 이루어지고 망하는 길, 이루어져서 더 잘못될 수도 있는데, 왜 욕심을 따라서 기도합니까? 이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성공인줄 알고, 취직을 위해 기도하든, 결혼을 위해 기도하든, 학교를 위해 기도하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며, 이것이 유익하다면 이루어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막아달라고 하는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등학교 1학년 때는 여동생의 중학교 학비가 없어서 큰일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늘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주실 때가 되었는데요.”교회 가서 기도하고 집에 가니까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학부형 한 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 하나가 있는데,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하루에 두 시간씩 과외공부를 시켜줄 수 없느냐고 하셨습니다.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굉장히 부잣집이었습니다. 남편도 없고, 아들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들과 밥도 먹고, 공부하고 나오는데, 봉투를 주셨습니다. 여동생의 학비가 600원이었을 때인데, 학비를 세 번 내고도 남는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과외 첫 날 바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 믿습니다.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간증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어려움이 왔을 때에는 특별 기도를 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기 전, 다니엘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습니까.다니엘 9장 1~3절에 보면,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특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은 평소에도 늘 기도했지만, 특별히 기도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여러분, 평소에도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특별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도 주시고,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특별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왔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하려고 하시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도해보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저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지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특별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마다 간증거리가 생기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별 기도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큰 간증 거리가 없어도 평소에 계속해서 기도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 됩니다.첫째, 경건생활에 아주 유익합니다.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기도생활은 우리를 경건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면, 경건생활하기에 유익합니다.그런데 기도생활이 빠져버리면, 경건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둘째, 평소에 계속해서 기도생활을 하다보면 은혜를 받을 기회가 많아집니다.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은혜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규칙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항상 은혜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날은 교회에 가서 앉자마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시고, 눈물이 쏟아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을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셋째, 내가 지금 기도하고 있는 기도제목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과외로 받는 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어떤 기도제목을 정해놓고, 그것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데,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축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축복을 주십니다. 간증거리가 얼마나 많아지는지 모릅니다.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여러분, 고생하고 있습니까? 근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분도 아니고, 우리가 자꾸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 아닙니다. 더 큰 계획과 축복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혹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육체에 병이 생긴 분이 계십니까? 회개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싸매 주실 것입니다.욥기 5장 17~21절에 보면,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죄 가운데 살다가 병들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치료해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어떤 기도는 응답이 늦기는 해도 반드시 해결됩니다. 저는 가난 문제를 놓고 정말 많이 기도한 사람입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더욱 가난하게 하시고,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후일에 깨닫고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첫째,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방탕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셋 째, 더욱 기도를 많이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은혜를 받을수록, 믿음이 자라날수록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과 시험을 허락하셔서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는 더 어렵고, 고등학교 때는 더 어렵고, 대학교 때는 더 어려워서 극한 상황에 이를 정도였습니다.시편 56편 8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기도했습니다.이 말씀을 보면 기도분량이 차야 응답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냥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게 해서 분량만 채우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사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를 작품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작품이 빨리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만지시고 계십니다.아브라함이 75세 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며 네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런데 25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될 때까지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결국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그런데 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25년이나 기도하게 하셨느냐 하면, 귀한 자손을 주시려고 하니까 25년 동안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여러분 중에 아이를 낳지 못해서 낙심하고 있는 분들은 낙심하지 마시고 “아버지, 얼마나 좋은 아들, 딸을 주시려고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십니까?”라고 기도하십시오. 25년 동안 기도해서 낳은 아들이 이삭입니다.창세기 25장 20~26절에 보면 이삭은 두 아들을 낳느라고 20년이 걸렸습니다. 40세에 결혼해서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울 수 있는 자손을 얻으려면, 그만큼 기도하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그만큼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기도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계획하거나 무질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입니다.우리 교회에서는 결혼한 지 15년 만에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은 불임수술을 하고, 아이들도 다 키운 후인데,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니까 40대에 뒤늦게 기적적으로 임신되었습니다. 잘 키워서 얼마나 복덩어리가 되고, 그 가정에 복이 되는지요.그런 가정이 몇 가정이 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준비시키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작품을 지금 이루시고 계신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금방 이루어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리라고 하셨으면, 매년 쌍둥이들로 낳아야 빠른 시일 안에 손자를 보고, 증손자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렸어도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때를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언제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여러분이 기도하다가 응답 받았어도, 그것이 금방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언제인지 때를 말씀하지 않으셨을 경우에는 미루어지면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는데, 때가 이르면 사인을 주십니다.그래서 저는 응답받았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응답받았어도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주시면 그때 선언해버립니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한 가지를 조심하시고,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3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10장 12~14절에 보면,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이미 있었는데, 다니엘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오는데 가로막는 것이 있어서 21일 만에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그때까지 끈기 있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해 오로지 기도에 힘썼을 때에도 열흘 동안 기도하게 하시고, 오순절이 되었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을 때, 나아만이 일곱 번까지 목욕하고 나올 때에 비로소 다 나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순종하는가 하지 않는가 보십니다. 일곱 번 완전히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그때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그러나 급할 때에는 빨리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조지 뮬러의 같은 경우는 고아들에게 아침밥을 먹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빈 접시를 나누어주고,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빵 공장에서 불이 나서 빵을 트럭에 싣고 와서 빵을 가져다주게 되었습니다.그의 전기를 보니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필요할 때 채워주셨습니다.그 당시 영국의 교회가 너무 침체하고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조지 뮬러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결심을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잠자는 교회가 깨어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모두 응답해주셨습니다. 조지 뮬러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의 때가 축복의 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13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감옥생활하는 고생을 했습니다만,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를 총리로 만드시는 과정이었습니다.다윗은 약 19년 동안 사울에게 시달렸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시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다윗은 기도생활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영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가난 속에서 가난문제가 해결되게 하지 않으시고, 더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를 작품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고난의 때에 깨어 기도하면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기간이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큰 그릇이 준비되는 기간입니다.욥기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기간을 길게 하신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금으로 작품을 만드는 기간입니다. 시시한 작품이 아니라, 정금으로 왕관을 만드시는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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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 > 설교자료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어느 직물공장에 공장장이 여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지시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이 직물 기계를 지켜보다가 실밥이 얽히면 즉시 내게 보고하세요.” 어떤 직원이 야근을 하다가 피곤했던지 잠시 졸았습니다. 졸다가 깨어 보니 실타래가 엉켜서 엉망인 것입니다. 즉시 공장장에게 보고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최선을 다해봤습니다. 그러나 실타래가 더 엉키게 되었고 결국은 기계가 정지해 버렸습니다. 여직원은 이제 어쩔 수 없이 공장장에게 달려가서 사실을 말했습니다. 공장장이 놀라 달려와서 여직원을 호통 쳤습니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실타래가 엉키면 나에게 즉시 보고하라고 했잖아!” 여직원은 말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풀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장장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실타래가 얽혀있으면 즉시 나한테 보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의 실타래가 이리저리 휘감기고 얽혀 있을 때 우리 인생의 길이 막막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공장장 되시는 하나님 앞에 보고해야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힘으로 그 실타래를 풀려고 하면 점점 더 휘감겨서 엉망이 되고 나중에는 구제불능 회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 상태가 되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회복하십니다.오늘 성경 2절에 보니까 여호와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라고 말하고 있고, 여호와는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 인생의 문제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보고 하는 것입니다. 보고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그것을 주님은 기뻐하고 계십니다.여러분 오늘 성경에 보니까? 남 왕국 유다의 모습이 헝클어진 실타래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죄악으로 얼룩져있습니다. 병들었습니다. 부패했습니다. 어둠이 짖게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오늘 성경 5절에 보면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 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성이 꼼짝없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멸망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라. 바벨론을 보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죄악을 징개하고자 내가 바벨론을 일으키고 갈대아 인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일부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결사항쟁을 하면서 바벨론에 대항을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매국노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힐기야가 시위대 뜰 감옥에 예레미야를 가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여러분 우리 인간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인생도 내가 이끌어 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올수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그래서 깊은 믿음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서게 된 것, 내가 오늘 이런 축복된 가정을 이루게 된 것, 내가 아름다운 사업을 만들게 된 것, 돌아보면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 앞에 내 문제를 맡기는 것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시편 50편에 보니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확실한 응답을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겠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보니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아니하시며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실행치 않으시랴.”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말씀하신 것을 지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구하면 거기에 응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심하기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 기도할지라도 의심으로 구하면 아무것도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진정 내게 믿음으로 나와 구할 때 산을 들어 바다에 옮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거짓이 없으시고 불의가 없으십니다. 한 찜질방에서 이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핸드폰을 받지를 않는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는 한 아저씨가 짜증난 듯이 핸드폰을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상대방에서 “아빠! 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응 그래 말해봐”라고 했습니다. “아빠! 나 핸드폰을 땅에 떨어 드렸는데 새로 사야겠어.” “그래 새로 사야지. 사주지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빠 MP3도 바꿔주면 안돼?” “그래 그것도 새로 사!” “아빠 나 노트북도 새로 샀으면 좋겠어?”“그래 그것도 바꿔줄께!” “아빠 고마워”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아저씨가 “혹시 핸드폰 주인 누구인지 아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핸드폰이 아닌 것입니다. 사달라고 하는 것 까지 것 내 아들도 아닌데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공수표고 공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게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가 네게 분명히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도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오는데 홍해를 건넌 3일 만에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물이 쓰서 먹을 수 없는 물입니다. 그 물을 먹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합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출 15장 22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세의 눈을 밝게 하시고 그에게 한 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뭇가지를 물속에 넣었더니 그 쓴물이 단물이 된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우리는 사사기의 삼손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머리가 긴 나실인 입니다. 힘이 장사입니다. 나귀턱뼈 하나로 일천 명의 블레셋 사람을 물리친 장사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기생 들릴라의 깨임에 빠져서 그 무릎에 누워 있다가 유혹에 넘어가서 비밀을 말하게 되고 머리를 깎이고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두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되었습니다. 큰 공회당에 그를 묶어 놓고 연자 맷돌을 돌리게 하고 블레셋사람들의 놀이 감이 되게 했습니다. 삼손은 그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한번만 힘을 주셔서 내가 이들을 무찌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가 부르짖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가 붙들고 있던 그 기둥을 큰 힘으로 허물어뜨립니다. 공회당이 허물어지게 되고 그 공회당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 깔려 죽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그곳에서 죽였습니다.부르짖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절박한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생명을 건 기도입니다. 눈물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대군의 공격을 받아서 어려움을 당할 때 적장으로 받은 편지,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서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는데 그 밤에 매복군을 보내셔서 185,000명의 앗수르 군을 다 시체가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후에 히스기야가 범죄해서 중한 병이 들어 곧 죽게 되었는데 그가 자기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벽을 향하여 눈물로 통곡하여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부르짖는 기도는 확실한 기도요, 마음이 담긴 기도요, 간절한 기도입니다. 가끔 침묵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있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분들은 늘 그렇게 비아냥거립니다. “하나님이 무슨 귀가 먹었냐? 저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하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침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보니까 다 졸더라.” 그러는 것입니다. 눈감고 침묵으로 기도하면 졸기가 쉽습니다. 어느 기도이든 하나님은 다 좋아하십니다. 때로는 음밀한 골방에 들어가 묵상으로 기도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하나님은 너희가 부르짖어 기도하라 내가 응답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어떠한 일을 약속하십니까?첫째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여러분의 인생의 미래를 보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아름다운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은 고통과 재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을 때 여러분의 인생에 아름다운 계획들이 준비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보면 희망과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소망과 평강을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는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은 위대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사셨지만 지금과 같이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더 놀랍고 위대한 삶에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를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손을 뿌리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무디 목사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흥강사이신 무디 목사님이 어린 딸과 함께 공원에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눈이 와서 길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야! 미끄러워서 아빠 손잡고 가야된다.”고 무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녜요. 나 혼자 갈수 있어요.”하고 혼자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울었습니다. “예야!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빠 손을 잡으라고 했잖아.” 그때서야 아빠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입니다.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필요 없습니다. 도움 같은 것은 다 필요 없어요.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어요.”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여러분 다 알 것입니다. 감기만 걸려도 이불 덥고 꼼작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병 하나 걸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임종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탄탄대로가 열려 있는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부도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누가 당신의 내일을 보장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평안할 때 기도하시고 위기와 절망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두 번째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입니다.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라.” 이 말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이 있고,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가 나를 치료해줘야 합니다. 여러분 병원에 간다고 의사가 다 치료를 할 수가 있습니까? 다 할 수 없습니다. 치료할 수 없는 병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만군의 의사가 되십니다.출애굽기 15장 20절에 “나 여호와는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을 치료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치료하십니다. 한 도성을 치료하시고, 한 민족을 치료 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병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로 죄악으로 분열과 미움과 시기로 병들어 있습니다. 깊은 암 덩이 같은 중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치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 도성을 치료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깨어진 인생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열된 마음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한마음을 치료하시고 이민족을 치료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세 번째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오늘 본문 7절, 8절에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다시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며”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전의 그들의 모습으로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회복입니다. 과거의 영광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깨어진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쫒고 유혹을 쫒아가다가 하나님의 형상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죄악의 노예가 되었고 방탕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육신이 깨어지게 되고 우리의 사업과 직장도 때로는 참으로 참혹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여러분의 가정이 회복되고, 민족이 회복되고, 여러분의 심령이 회복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민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회복되어야 합니다.우리 한국교회는 2007년을 특별한 해로 정하고 있습니다. 1907년 1월 14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들이 기도할 때 길선주 목사님이 1월 14일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그곳에 성령의 강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 2의 성령강림사건입니다. 그 폭발적인 힘이 혼 세상에 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3.1운동이 일어나고 유관순 같은 위대한 인물이 배출되게 됩니다. 그 밑바닥에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 100주년이 되는 올해 2007년에 한국교회 새로운 부흥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흥의 파도가 몰려오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내일부터 시작하는 신년 새벽 집회에 여러분이 새벽을 깨우시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그때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될 것이고 한국 도성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을 보십시오. 세계에서 우리가 1,2위하는 것이 많습니다. 자살률이 1~2위입니다. 낙태율이 1위입니다. 술집이 많고, 부정부패가 많고, 안 좋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 어두운 도성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부흥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16세기 종교 개혁자 존 녹스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영국의 여왕 메리 여왕은 캐톨릭 교도이었습니다. 개신교도들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개신교도들을 죽였기 때문에 피의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개신교도들과 존 녹스를 죽일 것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존 녹스는 하나님 앞에 피를 토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개신교도들을 지켜달라고,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메리여왕이 이유를 알지 못하는 중병에 걸려서 회복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 녹스 한명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의 힘보다 더 강하다.” 그렇습니다. 한사람의 기도가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이 민족을 회복시키고 이 땅을 다시 부흥케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 선교할 때 배를 타고 중국을 가고 있는데 바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돛단배는 바람이 있어야 가는 것입니다. 선장이 “선교사님 도저히 갈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가야할 목적지로 뱃머리를 돌리십시오.”라고 허드슨 테일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배의 지하로 내려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할 수 있는데 바람이 없어서 배가 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바람을 보내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에 선장이 달려와서 선실에 문을 두드리면서 “선교사님 그만 기도하세요. 태풍이 몰려와요.” 라고 소리쳤습니다.여러분 하나님은 한사람의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것은 엘리야만의 일이 아닙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만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미 그런 능력이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기도 절박한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눈물의 기도입니다.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시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마지막 절에 보면“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여러분의 이름이 열방 앞에서 기쁜 이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영신교회의 이름이 열방 앞에서 영광스러운 이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찬송과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십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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