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장 15-24절 | 달콤한 Qt 김흥규목사의 예수 비유 묵상 29: 큰 잔치의 비유 (누가복음 14:15-24) 최근 답변 5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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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보다 더 달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아침 묵상,〈달콤한 QT〉
김흥규 목사의 예수 비유 묵상 그 29 번째, 큰 잔치의 비유
▶말씀: 누가복음 14:15-24
\”당신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초대’보다 더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보세요\”

▶말씀인도: 김흥규 목사
▶방송 월~금 오전 6:30/ 유튜브 오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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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장 15절-24절 선택을 잘 할 것, 매일성경 새벽기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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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눅 14:15-24) – 유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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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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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QT 김흥규목사의 예수 비유 묵상 29: 큰 잔치의 비유 (누가복음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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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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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장 15절-24절 선택을 잘 할 것, 매일성경 새벽기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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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큰 잔치 자리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지만 그들 모두가 참석을 거절한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나라보다도 다른 것들을 먼저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인생 속에서 어떤 선택이 현명한 선택인지를 성서유니온매일성경 본문을 통하여 묵상하고 새벽기도설교를 준비합니다.

찬송 : 새찬송가 53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성경 : 누가복음 14장 15절-24절

설교 : 선택을 잘 할 것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지도자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던 예수님은, 수종병이 든 사람을 고치시면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 모습에 종교 지도자들은 분노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긍휼”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또 모두가 초대되었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하나님나라에 대한 생각은, 이방인이나 죄인들은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유대인만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던 한 사람, 아마도 바리새인이었을 것인데, 이 사람은 자신이 당연히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며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는 생각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 즉 자신은 복이 있다”라고 자화자찬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오만한 생각과 유대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은 모두 거절하고 초대 받지 않은 사람들만이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초대장을 보내고 계신데, 그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어리석은 유대인들에 대해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나라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나라에 초대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초대에 응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나라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선택을 잘 하여야 합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대답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8절에서 초대 받은 사람들의 대답은 “일치”(미아, μία)되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일치”라는 말은 “하나같이”라는 뜻으로, 초대 받은 모두가 같은 대답으로 거절하였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하며 거절하였습니까? 각자 자신의 일이 우선이기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의 선택은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이들의 선택은 결국 자신들의 인생과 모든 것을 결정 짓는 일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6절과 7절에서는, 이 초대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초청장을 들고 간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잔치의 주인인 임금은 진멸하고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이들은 잔치에 초대한 주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잔치를 통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축하하는 일은 유대인들의 공동체 생활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같은 조상과 같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공동체의 전통을 깨고 자기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이 선택의 결과는, 잔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선순위는, 잔치(데이프논, δεῖπνον, 중요한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내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3. 그러므로 주의 은혜에 감사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사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길과 산울타리를 벗어난 다른 마을에 있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 결과 우리도 구원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인데 참감람나무에 접붙인 바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주의 은혜도 모르고 여전히 우리는 내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나의 즐거움과 만족을 먼저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선택을 지혜롭게 잘 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즐거워 보여도 하나님나라를 먼저 선택해야만 합니다.

4.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구할 때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야만 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 지혜 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오늘 삶을 통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여,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선택은 곧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나 자신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세상보다 하나님나라를 먼저 선택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혜가 부족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바른 선택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세상의 즐거움이 아무리 커 보여도, 내 개인의 일이 아무리 중요해 보여도, 하나님나라의 잔치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나라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합심기도제목

1. 지혜를 주셔서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2. 우리 자녀들이 인생의 성공보다 신앙의 성공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3. 우리 가정이 믿음으로 하나되는 복된 가정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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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눅 14:15-24)

제목: 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

본문: 누가복음 14장 15~24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하신 말씀들 중 하나입니다. 많은 율법교사들, 바리새인들이 초대된 자리에 예수님도 초대되셨고 어색하고 썰렁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 자리에 수종병 든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고 “너희 자식이나 가축이라면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식사자리가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삭막하고 어색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이 때 초대받은 사람들이 와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느낀 사람들은 마음이 찔리고 분개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초대한 사람에게는 “나에게 이득이 될만한 사람만 초대하려고 하지 말고 정말 은혜가 필요한 사람, 자비가 필요한 사람을 초대하여 값없이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받은 사람도, 초대한 사람도 어색하고 썰렁한 분위기에서 딱딱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한 사람이 이렇게 분위기 쇄신에 나섰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 “자자, 어쨌거나 우리가 나중에 참여할 하나님 나라 잔치는 참 대단하겠죠? 그쵸?”이런 식의 농담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웃자고 던진 그의 농담에 진지하게 비유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결론은 “그 좋은 하나님 나라 잔치, 사실 너희는 참석하지 못할 것이다. 초대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초대받은 너희가 스스로 거절하기 때문이다.(24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약속된 유대인이 하나님 나라의 왕인 예수님이 왔을 때 스스로 그 왕을 거절하고 있음을 탄식하며 이 비유로 그들의 상태를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유대인이 얼마나 큰 특권을 받았는지, 그들이 이 특권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또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 나라 잔치의 준비(16)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16)

비유 속에 나오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습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내 잔치”라고 말씀하시는데 결국 이 잔치는 하나님 나라 잔치를 가리킵니다.

잔치에는 보통 누가 참석할 수 있습니까? 오직 초청받은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초청 받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잔치는 주인의 호의, 자비, 은혜의 선물입니다.비유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미 초청을 받았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떡을 먹을 것을 기대했던 것처럼 실제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이미 초청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 당시까지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석할 특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셨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애굽의 노예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홍해를 가르고 구출하여 약속의 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출 24:11)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같은 백성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초청을 확인해주셨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좋은 꼴을 먹이고 좋은 우리에 누우며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양의 목자가 될 것이다”(겔 34:14)고 말씀하셨고 선지자 요엘을 통해 너희는 풍족히 먹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고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요엘 2:2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된 특권을 가진 백성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사야서에 분명한 하나님 나라 만찬에 대한 약속(사 25:6-8)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 초청을 잊어버리고 거절하려는 백성에게 끊임없이 이 약속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려거든 내게 돌아오라. 내가 너희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할 것이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초청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54-5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선지자들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 만찬으로의 초청을 확증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 같이 축복 받은, 하나님의 오랜 초청을 받은 특권을 입은,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를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천하에 어떤 민족도 이런 특권을 입은 적이 없었습니다.

2. 하나님 나라 잔치로의 초대(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17)”

잔치가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주인은 종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만찬이 준비되었으니 참여하면 된다고 소식을 알립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땅에 와서 자기 백성에게 하신 말씀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마다 회당마다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눅 10:9, 11 11:20)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 2천년동안 기다려왔던 하나님 나라 만찬이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수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보리떡과 물고기로 먹고 마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외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 7:37)”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마치고 “다 이루었다”를 외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만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율법에 비춰보면 절대로 그 만찬에 참석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의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사람들에게 다 준비가 되었으니 나에게 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오늘 본문과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예복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거룩한 의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정말 가까이 왔으니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라 간다면 그들은 수 천년동안 기다려온 만찬에 드디어 참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그 요청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3. 하나님 나라 잔치의 거절(18-20)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 속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18절)고 말합니다. 당일 만찬을 하기로 한 그 시간에 하나같이 주인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주인의 호의를 멸시하고 우습게보지 않는 한 거절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거절했습니까?

–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다”(18)

–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한다”(19)

– “나는 장가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20)

처음 두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밭을 소유한 사람이 적고 소도 보통 한, 두 겨리(쟁기)였는데 이 두 사람은 밭을 살 정도로 부유하고, 소는 다섯 겨리(10마리)나 있었습니다. 30만평의 밭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사람은 중요한 부동산 계약을 위해 또 한사람은 소를 시험해보려고 잔치를 거절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합당한 이유처럼 보이지만 주인의 잔치를 거절할 만큼 합당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예의 있게 거절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이제 막 장가를 들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막 장가 든 사람은 군대로 내보내지 말고 아무 직무도 맡기지 말며 한가하게 집에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고 하였는데(신 24:5), 아내랑 보내는 시간이 중대하니 만찬은 부득이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합니다.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세 사람이 제시한 이유는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잔치를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약속된 잔치를 당일에 그것도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이유로 거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 사람들이 예의 없고 악하며 주인을 멸시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만찬을 배설한 주인,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눈앞에서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나와 함께 잔치에 참여하자고 초대하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이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너는 요셉과 마리아의 자식 아니냐? 형제자매도 우리가 다 아는데…(눅 4:22)”라며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사랑했습니다. 바리새인, 율법교사로서 사회적으로 누렸던 영향력, 부, 권력, 인간관계(마 19:20)에 대해 자부하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했던 부자청년도 재산이 많으므로 후회하고 돌아갔습니다. 셋째로 자신들이 내세운 자기의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전통과 관습에 따르면 나는 예수가 필요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성전에 올라가 했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자신이 세리와 같지 않은 의인임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기 죄가 드러나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식사 초대 자리에서 수종병 든 사람에 대해 “너희 자식이면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 마음속의 죄책감으로 인해 분노해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예수님을 거절했는지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종합해서 교만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자손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이방인이나 죄인에 대해서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돌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그들 앞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권위 있는 말씀과 이적을 보여주고 계심에도 하찮게 여깁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보다 낮게 여기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그 하나님보다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도 분노하고 교만하게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놀라운 특권들을 2천년동안 이어져 왔던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거절한 것입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바로 너희는!)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24)”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 만찬에 가면 좋겠죠?”라는 농담에 예수님은 “정작 너희가 그 나라를 거절하고 있고 거절하는 그는 내 잔치에 절대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4. 하나님 나라 잔치에 대신 초대된 사람(21-24)

이 비유에서 원래 초대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거절한 자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자비와 은혜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흘러넘쳤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다른 사람들을 그 만찬에 초대하기 원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21)” 이 사람들은 죄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난과 질병을 죄의 원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찮게 여기고 당연히 하나님 나라 만찬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여긴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 자리를 대신하여 만찬에 초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방인들에 대한 초대가 23절에 나옵니다. 그래도 자리가 다 차지 않자 주인은 더 멀리 나가서 사람을 불러 모으라 명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는 것은 성 밖을 말하고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은 지옥을 불태울 장작이며 은혜 밖의 사람들, 아니 개와 같은 짐승이라고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침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차버린 복을 이제는 이방인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지금 참석한 잔치의 주인에게 초대하려거든 갚을 것이 없는 불쌍한 자를 초대하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그런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가난한 사람, 몸 불편한 사람, 맹인, 저는 자 그들은 사회적으로 구걸하여 살아남는 자로 소유가 거의 없는 그래서 초대받은 것에 대해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 겸손히 은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과거 다윗 왕은 다리를 저는 한 거지, 므비보셋을 궁으로 불러다가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므비보셋은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밭이 있어서, 소가 있어서 같이 먹을 수 없네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는 절하면서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삼하 9:8).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가 너무 귀하고 좋아서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죽은 개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 마음에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하나만 품고 있는 사람, 잔치를 베푸신 왕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는 겸손한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을 보면서 엄청난 특권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하찮은 이유들로 이 복을 스스로 차버릴 수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이 은혜가 들어온 지 2천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롬 11:20-21).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구약의 성경을 보면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을 때 하나님께서 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의 잔치를 계속해서 거절하고 계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거나 말씀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여겨서 혹은 여러분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혹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사랑스럽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서 이 놀라운 특권을 계속 거절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이상 특권이 없다고 하신 경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지만 완곡한 표현으로 변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J.C.라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신과 부도덕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나, 근사하고 그럴듯하면서 완곡하게 표현된 변명들로 인해서는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않으려는 그 어떠한 변명도 인간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언젠가 당신이 만찬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로서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당신이 거절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놀라운 것이었는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위대한 것을 거절하면서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움켜쥐고 있던 것이 얼마나 가치 없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지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토록 슬피 울면서 이를 갈 정도로 억울해하고 좌절하며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오늘 이 초대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눈앞에서 거절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초대에 응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비슷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초청을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오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가자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초청에 바로 응하시겠습니까?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보이시겠습니까? 오늘 이 땅을 떠나도 아무런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14장 15-24절

누가복음 14장 15-24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예수님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사람들은 반쯤 누운 자세로 베풀어준 음식을 먹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끝자리에 앉으라’, ‘갚을 것이 없는 자에게 베풀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함께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불편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큰 잔치의 비유: 거절한 사람들(15-20)

그 중 한 사람이 이 불편한 분위기를 환기해보고자 화제를 전환하며 말했습니다. 대화의 큰 주제인 “잔치”라는 측면에서 벗어나지는 않되, 모두가 듣기 좋아할만한 이야기로 화제를 꺼냈습니다.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던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모두 다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14절에서 언급하신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다”는 말을 받아, 미래에 있을 메시아적 잔치, 곧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을 잔치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이 말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예수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만이 이 잔치에 초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자칭 경건한 유대인들을 이러저리 핑계대고 오지 않는 세 종류의 사람들로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초대하는 방식은 잔치를 베풀기 전에 미리 초대를 청하고, 잔치가 준비되면 다시 초대를 청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리고 초대를 받은 사람은 다시 초대한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이를 갚는 것이 또한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초대를 받은 사람이 초대한 사람에게 다시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아,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서 어긋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잔치를 베풀기 전에 청하는 초대에서 가겠다고 응한 사람이 준비된 잔치 앞에 거절하는 것은 큰 실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큰 잔치를 베푼 사람이 두번에 걸쳐 사람들에게 초대를 청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청하였던 자들에게’라는 것은 첫번째 초대를 의미하고, ‘종을 보내어 이르되’라는 것은 두번째 초대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가겠노라 응했던 사람들에게 잔치가 모두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두번째 초대로 종을 보냈지만, 그 사람들은 초대한 사람에게 실례를 범할 뿐이었습니다.

(18-20)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이러저리 핑계를 대는 이 세 사람의 변명은 모두 그럴듯한 것들이었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밭을 샀다고 말하며, 이해를 구했습니다. 즉 경제적인 이유였습니다. 밭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그 밭이 어떤 곳인지를 점검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밭의 가치가 맞는지를 따져 구입을 해야 했습니다. 이 점검의 과정을 마침으로써 비로소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문화에 따라, 이 사람은 이 사안을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핑계를 댄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 즉 다섯 쌍의 소를 샀기 때문에, 시험을 해봐야 한다는 것, 즉 생업으로 인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겨릿소로 이뤄진 소는 농사를 위한 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소 다른 사람들보다는 다섯 배가 넘는 밭을 소유했던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대농장의 주인, 곧 부자였습니다. 소 역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지를 시험함으로써 거래가 완전히 성사되는 것이 당시의 문화였기 때문에, 그는 다른 무슨 일보다 빨리 이 거래를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을 근거로 볼 때, 결혼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여러가지 중대한 의무들로부터 면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변명들은 그런대로 가치가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용인이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큰 잔치가 전쟁과 같이 그 기한을 알 수 없이 긴 기간동안 열리는 것도 아니었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잔치에 참여한 이후로 돌아와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을 성실히 임해도 늦지 않는 일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거절은 신실하게 큰 잔치를 준비하는 초대자를 기만하는 행동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큰 잔치의 초대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맥락상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어떤 한 사람의 말에 따라 나온 예수님의 비유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용무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요구보다 앞세우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더 많은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마시기 위해 분주합니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을 채우기 위해, 더 나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바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분주하게 하고 바쁘게 하는 이유들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먹는다고 한들, 우리는 허기져 있고, 아무리 좋은 것을 마신다한들, 우리는 목말라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움켜 쥔다한들, 우리는 부족하고, 아무리 자신을 뽐낸다 한들 우리는 허무하고, 아무리 더 나은 것을 누린다한들, 우리는 공허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잔치의 큰 특징은 바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 곧 부족한 것이 없는 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부족한 것이 없이 준비된 이 잔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먹지 못하고, 더 좋은 것을 마시지 못하더라도 배부를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하고, 더 돋보이지 못하고, 더 나은 것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잔치는 부족한 것이 없는 잔치이기 때문에 우리 삶이 이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에 치여, 초청된 행복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자족하지 못하는 우리 일상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큰 잔치의 비유: 참여한 사람들(21-24)

종은 처음에는 응하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초청을 거절했음을 주인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자신을 기만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준비한 잔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초청한 사람들에게 맞는 일정으로 잔치를 늦출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진행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결정을 내리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그는 준비된대로 잔치를 그대로 진행할 것으로 결정했고 종들에게 명하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 몸 불편한 사람들, 소경, 그리고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이들은 13절에서 언급된 사람들, 곧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버림받은 유대인들이었고, 유대 사회 안에서 소외되어 있어, 아무 때나 부르기만 하면 올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저 기뻐하고 감사할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인의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명령을 따라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서 버림받은 유대인들을 모았지만, 그들로는 준비된 잔치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주인이 준비한 잔치의 규모는 꽤나 컸기 때문입니다. 이 잔치의 규모에 대해 마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주인은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았습니다. 소 한마리를 잡으면, 먹을 수 있는 살코기와 내장이 대략적으로 300kg정도 된다고 합니다. 1인분을 200g이라고 가정한다면, 소 한마리로 약 1,500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소를 복수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 2마리 이상의 소를 잡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최소 3,000명은 참여할 수 있는 잔치였고, 소 뿐 아니라, 살진 짐승을 잡았다고 하는데, 이 짐승 역시 복수이니, 이 잔치의 규모는 실로 대단했던 것이었습니다.

버림받은 유대인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던 이 잔치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초대됩니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버림받은 유대인을 넘어, 길과 산울타리 가에서 서성이는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초대의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의 중심에서 이방인을, 선민주의의 중심에서 구원의 보편성을 외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강권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아낭카조’는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시키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는 약한 의미로, ‘강하게 촉구하다’, ‘설득하다’라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벌어지는 잔치들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잔치가 벌어진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몫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까지 초대함으로써 잔치가 채워지게 되면서, 주인은 처음에 청했던 사람들에게 엄중히 선언합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의 비유에서 전에 초대를 거절했던 사람들은 율법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상실한 채, 조상들이 전수해주는 율법적인 행위를 가지고 자신들이 의롭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하던 바리새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늦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당시에 유대사회로부터 소외되었던 가난한 사람들이나 장애인, 그리고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 안으로 초대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호의로 베풀어진 은혜, 그 은혜로 초대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 초대에 응함으로 이 잔치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도리어 자신에게 공로가 있다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이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거져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신분과 가진 것, 상황 등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잔치를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는 상관 없이,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삶을 의탁하는 사람들이 잔치 안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은혜로 참여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섬겼던 자신의 공로는 무색하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잔치에 참여하게 된 은혜보다 공로는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을 향한 가장 신앙적인 삶인 것처럼 포장되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가장 불신앙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우리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고,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이나 봉사를 감당하고 있어, 매우 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베풀어진 은혜로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망각하고, 또한 은혜로 우리가 직분과 봉사를 감당할 수 있음을 잊고 있었다면 우리가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불신앙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든 일상이 하나님께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의 일상이 부족한 것이 하나 없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 이러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할 때, 설령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험산준령 같고, 빈들에 홀로 선 것과 같다할지라도, 우리가 삶에서 먹고 마심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잔치자리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아직도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거리와 골목, 길과 산울타리 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여호와께로 잇대어 사는 우리의 담담한 삶의 여정을 보면서 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흠모하여 인도되는 징검다리로 세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우리들에게 호의로 베풀어진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호의를 권리라고 착각하며, 이 잔치에서 접시 하나 나르는 정도의 공로를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베풀어진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잔치임을 깨달아 살아가게 하시고, 아직도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담담한 삶의 여정이 도전이 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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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토) \”누가복음 14:15-24\” / 작성:김광욱

누가복음 14장 15-24절

찬송가 310장(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탁월했습니다. 비유로 가르치실 때는 항상 주변의 사물이나 시대 문화나 풍습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시므로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러 가셨습니다. 이 때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수종병은 체내에 조직액이나 임파액이 과다 분비되어 몸이 붓는 병입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병든 자라도 안식일에는 치료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때에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비난성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들의 정곡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칠 때뿐만 아니라 난처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사물이나 시대 문화나 생활 양식을 적용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라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의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단언적이면서 교훈적인 반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하여 아무도 ‘아니오’라고 말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러한 반문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했던 점은 안식일이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병을 고치는 선한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물, 소 등을 소재로 한 생활양식을 적용한 가르침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또 한번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와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교만한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는 ‘큰 잔치’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잔치 비유를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안식일에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생활 양식에 적용하신 것처럼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잔치 풍습에 적용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대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만찬에 참여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14장 7절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택할 정도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규모도 어느 정도 되었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 당시 풍습으로는 만찬의 식탁의 모양은 우리글 ‘디귿’자 형태였는데 가장 높은 사람이 중앙에 앉았으며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은 서열의 사람이 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보다는 규모가 작은 식사자리에서 높은 자리를 다투는 모습을 보시고 그 즉시 비유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을 때 미리 상석에 앉지 말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항상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대접을 요구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 후 식사를 하시다가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서 식사하는 자가 복된 자라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큰 잔치’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준하는 식사자리에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현장에 맞는 비유를 통하여 탁월한 주님의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오늘날과 비슷하게도, 잔치를 하게 되면 먼저 초대할 사람을 일차적으로 결정하고 그런 후 사람을 보내어 초청에 응할지 여부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야지만 잔치에서 준비할 식사량을 예상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큰 행사로 이루어지는 만찬은 초대권이 배부되며 초청에 응한 사람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의 관습은 일차적으로 초청장 배부와 초청에 응한 사람의 수를 파악을 한 후에 잔치 준비가 완료되면 다시 한번 사람을 보내어 잔치를 알립니다. 일차 초청을 수락한 후 이차 초청에 불응하는 것은 당시 관습으로 상당한 결례에 해당됩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사태를 초래합니다. 이차 초청 불응은 곧 상대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본문의 비유와 유사한 마태복음 22장에는 나오는 비유를 보면 임금이 초청에 불응한 사람들에게 군대를 보내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처럼 일차 초청에 응한 사람이 이차 초청에 불응하는 것은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큰 결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초청에 불응한 사람이 3명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밭을 산 사람이고 두 번째는 소 다섯 겨리 즉, 소 열 마리를 산 사람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장가를 간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차 초청에 불응한 이유가 불가피할 정도의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밭을 구입하여 밭에 나가는 것, 소 다섯 겨리를 구입하여 시험하는 것, 장가가서 신혼초인 것이 당시 관습상으로 잔치 초대자가 이해할만한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불응으로 주인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종을 시켜 시내의 거리와 골목,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아무 사람이나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선택받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이란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유대인들이며 다른 사람들이란 이방인을 뜻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자신감과 교만에 찬 교인들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큰 잔치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특히 본문에 등장하는 종은 단수로 표현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초청에 불응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거부함으로 비극을 맞이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시대에 적용해 보면 밭을 산 사람은 땅을 구입한 사람이나 생업을 위한 사업장을 개업한 사람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소를 구입한 사람은 생업과 사업에 필요한 차나 기기와 같은 재화를 획득한 사람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보다는 현재 자신의 재물과 쾌락이 더 우선에 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교인들도 새집, 새차, 부동산 구입 또는 결혼 등과 같은 집안 행사가 교회보다 우선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과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계속적인 은혜를 거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큰 결례입니다. 이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는 죄가 됩니다.

우리의 자리가 영원불변 예약되었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의 비유에도 나오듯이 주인은 모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21절에 나오는 시내의 거리와 골목은 성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23절에 나오는 길과 산울타리 가는 성 밖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는 이방인을 포함한 만백성이 초청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밭, 소, 결혼과 같은 재산과 쾌락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가지 못하게 함과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 저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감을 통해 우리는 가난함과 질병이 부와 쾌락보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걸림돌이 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응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차 초청에 불응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깨달으며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누가복음 14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시다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1)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끝자리에 앉으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2)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2)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2)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2)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큰 잔치 비유(마 22:1-10) 15 함께 2)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4:15~24] 하나님 나라의 잔치

[누가복음 14:15~24] 하나님 나라의 잔치

날짜: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본문: 누가복음 14장 15절 ~ 24절

영적 상태: 평안, 감사, 갈급함

시작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새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필요를 채워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주심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날마다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입히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더욱 더 풍성히 누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깨닫고, 그 말씀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1. Lectio Divina(거룩한 읽기)-3번

<새번역>

15 함께 먹고 있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께 말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잔치 시간이 되어, 그는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보아야 하겠소.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고 말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내가 장가를 들어서, 아내를 맞이하였소. 그러니 가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1 그 종이 돌아와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주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더러 말하기를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다.

22 그렇게 한 뒤에 종이 말하였다. ‘주인님, 분부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23 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본문은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할 것인지 비유로 가르친다. 초대자가 자신의 사회적 수준에 적합한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우선시함으로써 결국 식사 초청을 거부한다. 주인은 가난하고 아프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 마을 공동체에 포함될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한다(21~24).

단락구분

15~20절 식사 초청을 거절당하는 초대자

21~24절 주변부의 사람들을 초대하는 주인

배경이해

일반적으로 큰 잔치의 비유(14~16~24)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설명하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많은 해석자들은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초대하셨고 그들의 거부로 이방인들 또는 교회를 초대하신 흐름을 담는 내용으로 비유를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비유의 내용과 다를 뿐 아니라 1~14절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첫째, 비유는 구원 역사의 순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비유에서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그 다음 단계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초대하고 길과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구원 역사에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즉 구약에서도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초대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후속 조치로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고려하신 것이 아니다. 둘째, 비유는 이스라엘과 교회(또는 이방인)의 구도가 아니라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구도로 전개된다. 셋째, 비유는 12~13절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예수님은 초대자에게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3절)고 명령하셨고, 비유의 주인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초대한다(21절).

2. 본문 묵상하기

본문의 구조(흐름 문장/본문의 명제)

* 흐름 문장

1. 예수님과 음식을 먹던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먹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답하십니다.(15v)

2.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밭을 사서, 어떤 이는 소를 사서, 어떤 이는 장가 들어소 못 오겠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들은 전에 잔치에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애써 잔치를 준비한 주인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 잔치 초대장을 받고도 거절한 유대 사람들입니다.(16~20v)

3. 예수님은 그들이 거절한 하나님 나라 잔치를 가난한 사람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 보지 못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대신 채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1~24v)

* 본문의 정리: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를 받았던 이들은 거절하고,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이 빈자리를 채웁니다. 거절한 이들을 위한 잔치는 다시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 본문의 명제: 너희는 주님의 초대에 응하고,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메시지

명제: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곧 열릴 것입니다.

Keyword: What should we do for the party?

대지와 소지

1. 먼저, 주님의 초대를 전해야 합니다.

a. 주님께서 개최하는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을 들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말고, 초대해야 함

b.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초대장을 들고 나아가 전하는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함

2. 둘째로, 기꺼이 초대에 응하는 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a. 많은 이들이 자기와 세상의 것들이 우선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자, 그 자리를 소외된 자들, 사회적 약자들로 가득 채우게 함

b.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거절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기꺼이 초대에 응할 사람들을 찾아야 함

3. 마지막으로,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a. 주인은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다는 종의 말에 큰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당신의 집을 채우게 하라고 말함

b. 우리는 주님의 집을 초대 받은 사람들로 가득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 함

3. 기도하기

오늘의 기도어구: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에 수많은 이들을 초대하시고, 세상의 것들을 뒤로 한 채 우선적으로 그 잔치에 참여하길 바라시며, 주님의 집을 가득 채우길 바라시는 예수님

⇒ 오늘 본문에서 만난 예수님은 주님의 집에서 개최되는 큰 잔치에 수많은 이들을 초대하시고, 그 잔치 참여를 우선으로 생각하길 바라시면서, 주님의 집으로 가득 채우길 바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① 주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초대장을 들고 나가서 많은 이들에게 초대장을 전하고, 초대에 응할 수 있도록 선포하고, 그들을 주님의 인도하는 주님의 성실한 종으로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하여 주시길…

②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늘 책임져 주시길, 특별히 아버지가 온전히 회복되고 평안 가운데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아버지를 간호하는 어머님도 지켜 주시고, 건강하게 생활해 나가실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길, 믿지 않는 가족들이 하루속히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길…

③ 3월부터 본격적인 홈스쿨링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동안 더 잘 준비가 되게 하여 주시고, 모든 필요들을 갖춰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아이와 함께 즐겁고 재미난 홈스쿨링을 만들어 가고, 아이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르게 세워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④ 춘천우리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 위에 특별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지역 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부흥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성도님들의 가정과 직장, 사업 위에 놀라운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길, 그리고 청소년부 지체들과 청년대학부 지체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삶을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길…

⑤ GBT 선생님들과 그분들의 사역을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고, 그분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들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길, 병환 중에 계시는 선생님들을 고쳐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놀라운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길, 그리고 본부 사역 가운데도 함께하여 주셔서 선생님들을 잘 지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사역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게 되길…

⑥ ACTS를 기억하여 주시고, 늘 건강하고, 흔들림 없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훈련 센터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길, 새롭게 시작되는 2021년 1학기도 주님께서 늘 동행하여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셔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바로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길…

⑦ 우리가 섬기던 캄바의 영혼들을 기억하여 주시길,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이 풍성히 뿌려지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날이 속히 올 수 있게 되길, 그리고 그 땅에도 하나님의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게 하여 주시길, 그리고 배타적인 그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수 있게 되길…

⑧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고, 늘 동행하여 주시고, 이 땅의 온전한 통치자가 되어 주시길, 그리고 놀라운 은혜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선교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고, 열방 속에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4. 실천하기 /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주님의 초대장을 들고 나아가야 하는 종으로서 주님께서 베푸실 그 큰 잔치를 설명하고, 더 많은 이들이 그 초대에 응할 수 있도록 삶으로, 말로, 행동으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자!!!

–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보다 하나님의 그 초대가 우선이 되고,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하기 위해 다른 것들도 내려놓고 달려갈 수 있도록, 그 초대가 갖는 중요성과 그 값진 의미들을 더 잘 전하도록 하자!!!

– 주님의 집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지금도 기다려 주시고, 더 많은 이들을 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초대장을 전하게 하시는 그분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도록 하자!!!

5. 침묵하기(침묵한 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분심의 마음이 생길 때 기도 어구를 사용)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의 의미들을 되새길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전하게 하신 그 초대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그 초대에 응하고, 주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며 기뻐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의 집을 가득 채우게 하시기 위해 지금도 기다려 주시고, 더 많은 이들을 보내 참여하게 하시고, 지금도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을 늘 마음 깊이 새기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함께하여 주시고, 수업도 잘 감당하고, 본부 사역도 열심히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생명의 삶QT) 누가복음 14장 15-24절 은혜로 누리는 천국잔치

하늘꿈묵상

(눅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눅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눅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눅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눅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눅 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은혜로 누리는 천국 잔치

누가복음 14장 15-24절

감사는 기적을 창조한다고 한다.

오늘도 감사로 시작하셔서 기적을 경험하는 천국의 기쁨이 가득 차 넘치시기를 축복한다.

*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먹는 사람 중 하나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했다.

*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다 하시면서 천국잔치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오늘도 자격없는 나에게 상을 차려주시는 내 잔이 넘치게 하시는 은혜가 매일 새롭게 부어지기를 축복한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로 누리는 천국 잔치는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함께 나눌 수 있다.

1. 천국 잔치에 우선순위를 둘 때 누릴 수 있다.

1) 18절 처음에 초청 받았던 사람들은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

2) 밭을 사서, 소를 사서, 장가 들어서 핑계를 댄 것이다.

3)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핑계였다.

*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 들었던 것은 그 전에 이미 다 끝낸 일이지 잔치에 못갈 정도로 급한 것이 아니었다.

* 잔치에 관심이 없고, 우선 순위를 두지 않고, 땅에 것에 소망을 가진 자들이었던 것이다.

*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천국 잔치를 재현하는 자리이다.

* 우선 순위를 주님에게 두고, 예배에 두어서 천국 잔치의 기쁨이 충만하게 경험되길 축복한다.

2. 천국 잔치에 즉각 순종할 때 누릴 수 있다.

1) 21절 집 주인이 잔치에 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노하여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게 한다.

2)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했다.

3) 이 사람들에게는 자격 없는 자를 잔치에 불러 주신 것이 은혜인 것이다.

*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은 바로 자격 없는 우리들을 말한 것이다.

* 자격 없는 자를 불러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즉각 순종해서 천국 잔치의 기쁨이 충만하게 경험되길 축복한다.

3. 천국 잔치에 강권하여 전할 때에 누릴 수 있다.

1) 22절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했다.

2) 23절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셨다.

3) 우리도 하나님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을 때 “강권함”을 받아서 복음의 빚진자 된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천국 잔치에 강권하여 데려다가 주님의 집을 채우는 전해야 되는 사명이 있다.

* 강권하다는 것은 “사람들을 데려오되 자유의지에 맡기지 말고 재촉해서 내 집을 채우라”는 명령인 것이다.

*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사명에 순종해서 천국 잔치의 기쁨이 충만하게 경험되길 축복한다.

* 천국 잔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즉각 순종하고 강권해서 천국 잔치의 기쁨이 나와 내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에 가득차 넘치기를 축복한다.

https://youtu.be/TwjCbDUqomA

누가복음 14장 15-24절 말씀 묵상 [이정애 사모]

눅14:15-24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처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뒤로 하고 내 일을 우선하며 살았던 것을 많이 회개했습니다. 본문에 천국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일이 우선이기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17-20절). 내 일을 중요시하고 살다가 저들처럼 주님의 잔치 초청을 거부하고 있지 않는 지 두렵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리로다” 찬양하며 기도할 때는 주님만 따르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적으로 내 중심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도 세상의 일에 매여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심코 사양하지 않도록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세상향락에 한 눈팔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핑계를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 복음뉴스(BogEumNews.Com)

누가복음 14장 15~24절 2월 21일 월요일

14장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앞 절에서 부자들을 식사자리에 초대하지 말고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 맹이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갚을 길 없는 그들 대신에 하나님이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하나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으신 주님이 오늘의 비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잔치할 시각에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어 “오십시오. 잔치 준비가 끝났습니다.”라고 전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청함 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합니다. 모두 참석하지 못할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하며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다 준비된 후에 거절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그들이 거절 이유로 제기한 것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중요한 이유도 아닙니다. 이는 그 주인을 가볍게 여긴 행동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며 종들에게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들, 맹인,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 자리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길이나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잔치 자리를 채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에 초대하였던 자들은 한 사람도 자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그 식사 자리에서 주신 가르침입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종들은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처음 초대받았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거절한 이들은 예수님이 앞서서 언급했던 ‘부한 이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부한 이웃’은 현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복음을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무리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것처럼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 나라의 출세와 성공을 더 즐기려는 욕망이 더 강한 사람들이었음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행위 속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크게 노하셔서 당신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더불어 나중에 잔치자리에 참석하게 된 가난한 자들, 몸이 불편한 이들은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응하며 주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적극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길이나 산울타리 건너에서 강권하여 데려온 사람들은 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거나 아마 이방인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들도 애초에 아예 자격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보내 잔치에 참석하라고 권유해도 ‘우리 같은 자가 어떻게 참석할 수 있겠느냐’며 거절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강권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잔치를 마음껏 맛보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비유는 애초에 잔치자리에 주역으로 초대되었던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잔치 참석하기를 거부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유대의 낮은 자들과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가 전해질 것이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 속 어느 자리에 속해 있을까요? 바라기는 두 번째, 세 번째 초청받아 은혜로 잔치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거기에 깊은 감사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잔치의 즐거움을 늘 맛보는 축복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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