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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누가복음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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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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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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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
과부와 재판장 비유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어린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마 19:13-15; 막 10:13-16)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부자 관리(마 19:16-30; 막 10:17-31)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ㄱ)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죽음과 부활을 다시 이르시다(마 20:17-19; 막 10:32-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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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3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33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2020/05/30(토) “누가복음18:1-14” / 작성: 강요섭
본문 누가복음 18장 1-14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질문을 던지는 자들이 원하는 것은 ‘명쾌한 답’입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리뭉실한 답은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17장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의 답은 제자들이 듣기에도 명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만큼 어려운 답은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과 회복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던 그들에게 시간과 장소와 방법도 본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서는 맥이 탁 풀려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격려하십니다.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1-8절)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오늘 본문 1절에 ‘기도’와 ‘낙심’이라는 단어가 나오기에 오늘 본문을 기도에만 국한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8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본문을 확장시켜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도할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메시지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며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비유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와 정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그 당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한 과부가 나옵니다. 이 과부는 원수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을 자주 찾아갑니다. 얼마나 자주 찾아가서 간청했던지 재판장은 질려버렸습니다. 4절에서 5절입니다.
(4-5)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과부는 재판장을 압박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찾아가 간청하는 과부의 모습은 마치 재판장에게 한 여름 밤 찾아온 모기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기가 방에 들어왔을 경우 그 모기가 나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그 무는 행위 자체로는 나를 죽이지 못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기를 잡고 잠을 잡니다. 왜냐하면 그 모기는 밤새도록 나를 물고 가족을 물고 심지어 물린 그 자리는 나를 간지럽게 하여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은 그래서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7절과 8절에 이 비유에 이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과 오만한 재판장을 비교하고 과부와 우리들을 비교하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시겠냐는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재판장보다 더 사랑과 긍휼이 많으시다면 또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가진 의미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큰 의미를 가진 존재라면 우리의 원한을 하나님께 고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겠냐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러 하셨듯이 교회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로 가고 있다면 교회와 성도 개인은 세상에서 갑의 위치가 아니라 을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윽박지르고 힘으로 누르는 위치가 아니라 그럴 수 있음에도 복음을 위해 영혼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버릴 수 있는 ‘스스로 선택한 사회적 을’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그 당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행할 수 없었던 약자의 대표 ‘과부’와도 같은 위치에 노출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교회이기에 말할 수 없고 침묵해야 했고 싸울 수 없었던 억울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가슴에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억울하게 맞고 들어온 아이처럼 하나님 품에 안겨서 엉엉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다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할 때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의 기도에 관심이 없어, 니가 맞을 때 하나님은 무얼하고 계셨니? 왜 전능하신 그분이 너의 고통을 막지 않으셨을까? 그건 널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 만들고 결국 기도의 자리까지 떠나고 신앙의 자리도 떠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고 더 이상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구원의 주로, 재림의 주로 오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방식대로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속이고 싸우고 빼앗으며 세상의 갑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은 신앙인의 표지라 여길 시대가 올 것임을 예수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고통과 억울함을 알고 계실뿐 아니라 그 부르짖는 자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또한 재림의 때에 공의의 주님께서 모든 어그러지고 굽어진 것들을 곧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프로리그 축구경기를 보면 선수들 간에 신경전이 상당합니다. 때로는 어이없는 반칙을 당하기도 하고 또 반칙이 아닌데 심판이 카드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축구선수들은 충동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더 큰 반칙으로 갚아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선수는 억울하지만 참고 또 참습니다. 그러면 심판이 못 봤더라도 요즘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다시 살펴본다던지 그 경기에서 판정이 뒤집혀지지 않아도 그 경기 영상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면서 비열한 행위를 한 선수는 영원히 수치스러운 선수로 기억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을의 자리에서 억울한 순간이 찾아오고 힘으로 갚아주고 싶고 복수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때 이 땅에 재림의 주로 오실 예수님께 심판을 맡기며 주어진 인생의 경기를 최선을 다해 달려가십시다. 그러면 이 경기가 끝나는 날 심판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 각 뿌린 것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9-14절)
아마도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을 고대하며 ‘나는 인자가 오는 그 날에도 믿음을 지키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대면하는 우리도 속으로 ‘내가 말세에 믿음을 지키는 그 사람일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큰 착각에 빠진 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치 시험범위를 잘못 알고 공부한지도 모른 채 시험에 만점 받을 것이라 기고만장하여 앉아있는 학생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너희가 알고 있는 시험범위가 틀린 것임을 알려주시는 본문이 오늘 두 번째 비유인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는 동일하게 성전에 와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 바리새인의 기도의 형태를 보면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경건합니까? 간구의 기도만 주구장창 드리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의 신앙의 수준은 대단해 보입니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거룩한 삶을 보면 더 대단한 신앙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색’ 곧 속여 빼앗는 일도 없고 불의한 일도 하지 않고 음란한 일도 행하지 않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드립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저쪽 멀찌감치 서서 눈도 못 들고 기도하는 세리가 있습니다. 13절입니다.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차마 소리 내서 자신의 죄를 입술로 고백하지도 못합니다. 로마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돈을 어떻게든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했던 그는 성전에 들어온 것이 발각되면 사람들에게 쫓겨날까 두려워 멀리 서서 가슴만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 무리 속에 있던 바리새인들과 신앙에 열심이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같은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결말을 기다렸을 것이고 또 당시의 여러 신앙적 기준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은 세리처럼 예수님의 눈빛을 피해 어디로 도망갈지 고민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말씀이 예수님으로부터 선포됩니다. 14절입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마치 요즘 나오는 반전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탄성을 질렀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 이야기가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신앙인들이 우러러 보던 계층중 하나가 바로 ‘바리새파’였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갖가지 계명을 만들어 교육하고 지키며 스스로 불경건한 자들과 분리되어 살아가려고 했던 그들의 열심은 실로 보는 이들의 존경을 불러왔습니다. 반대로 세리는 본인의 고백처럼 죄인의 대표이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니 당연히 충격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그 이유를 밝혀 주십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였고 세리는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오늘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 가득 채워진 그릇을 가지고 나아갔고 세리는 빈 그릇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무엇인가 줄 것이 있는지 한 참 그 마음의 그릇을 바라보셨지만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빙자한 자기 자랑과 자기 찬송과 비교우위를 통한 자만을 드러내는 그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푸실 어떤 빈자리도 찾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기도하는 세리의 심령은 가난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빈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텅 빈 그릇을 씻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 그릇은 어떤 그릇인가?’ ‘하나님, 제가 그래도 직분도 맡았고 봉사도 열심히 참여하고 십일조와 헌금도 잘 드립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하나님 자녀 아닙니까?’ 혹시 우리가 자기 의와 열심에 가득차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은혜를 받을만한 빈 공간이 하나도 없는 꽉 찬 그릇은 아닌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빈 그릇으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우리는 아버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요, 행하는 모든 일과 생각이 나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허탄한 것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순간만이 아니라 봉사와 사역의 정점에 서 있는 그 순간에도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멤버라고 사람들이 박수쳐줄 때에도 스스로 생각해도 신앙적인 열정이 충만해 보일지라도 실은 우리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겨우 누더기 같을 뿐임을 기억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는 마음 그것이 빈 그릇입니다.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의 사장이 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남자가 아내의 생일에 편지를 썼습니다. ‘난 바람도 안 피고 집에도 일찍 들어오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줄뿐만이 아니라 당신 친구네 남편같이 가난하지도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씩 소고기를 먹여줄 뿐만이 아니라 생일날 당신을 위해 명품선물까지 준비했소, 나 이정도면 만점짜리 남편 아니요? 당신 나 같은 남자랑 결혼안게 복 인줄 아시오’
같은 날 생일을 맞이한 아내의 친구는 남편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여보, 난 당신을 위해 해준 게 아무것도 없소, 남들처럼 비싼 선물 하나 사주지 못하고 생활비도 넉넉히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생일날 맛있는 고급 음식도 하나 사주지 못하고 기껏 통닭 한 마리에 작은 장미꽃 하나밖에 선물로 주지 못했지만 이런 나를 사랑해주고 함께 해주어 감사하오, 이런 못난 남편이지만 당신만 평생 함께 해주면 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소’ 이 두 남편 중에 어떤 사람이 아내의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과 신앙이 내가 보기에도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질 지라도 오늘 세리처럼 이 한 마디 고백을 드려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고백이 실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된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가운데 살면서 때론 하나님의 자녀로 겪는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나아갈 때에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큰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무거운 짐 같이 부담이 되어 피하고 싶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며 스스로 선택한 을의 자리에서 마음상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하심과 나타나 도우심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겠냐며 같이 먹고 마시며 그들과 같은 삶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라 하지만 오늘도 믿음으로 방주를 지은 노아처럼 묵묵히 주어진 분량의 삶을 살아내며 말씀으로 우리를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길에서도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빈 그릇을 아버지 앞에 내놓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유일한 우리의 소망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단순히 ‘떼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며 다시 한 번 천천히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2. 과부의 태도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부족한 마음과 자세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서서 따로 기도한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우위를 통한 교만함이 싹트고 있지는 않았는지 묵상해 봅시다.
4.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
mission200
1/19/2010(화)
누가복음 18장 — (18장은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신 장으로 여겨짐)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묵상 1~8절: 18장은 전체적으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신 장으로 여겨진다. 그 처음으로 불의한 재판관의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은 정말 불의한 자이다. 억울한 과부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여러 차례 호소하였지만 꿈적도 하지 않고 들어 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 여인으로부터 어떤 물질적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여인은 아마도 그 불의한 재판관에게 갖다 줄 작은 뇌물성의 재물도 없었을지 모른다. 정말 안타까운 여인이었지만 그는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가 아닌가 만을 계산하는 불의한 이었을 것이다. 또 이 불의한 재판관은 이 여인 자체를 무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의 신분이나 기타의 환경으로 보아서 이 여인을 도와 주어서 결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의 삶에서 이 여인과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 자체를 무시하고 괄시하는 오만하자 이었을 것이다. 2절과 4절의 후반부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으로 교만한자이었다 (2절, 4절의 상반부). 사람 중의 누구라서 하나님을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구라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음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궤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의지하여 이토록 교만하여졌을까? 그것은 근본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권력이 그를 오만방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권력을 의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인해 축적한 부를 의지하였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권력이나 부로 인하여 그 권력을 주신 자, 부를 허락하신 자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나 부가 오히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여 자신의 영혼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미련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가장 쉬운 예라 할 수 있겠다. 어찌 성경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오늘날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이 오히려 자신을 사망으로 이끄는 수단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과 부의 속성 중의 하나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권력과 부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져서, 하나님이 계셔야 할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아주 흔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권력이 주어질 때, 부가 주어질 때 정말 주님 앞에 바로 서여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사탄의 유혹을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상황임을 바로 깨닫고 더욱 겸손하여 주님만을 바라 보아야 하며, 참으로 근신하며 그 근원이신 주님께만 찬영과 영광을 돌리고, 그 권력과 부를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만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주어진 권력과 부의 축복이 자신의 영혼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끄는 저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정말 이 불쌍한 과부의 청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으나, 이 여인이 지속적으로 요청하므로 귀찮아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편안해지고 싶어서 이 여인의 청을 들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이 여인의 청을 드디어 들어 주지만 그 또한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라는 것이다. 참으로 불의한 자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불의한 자도 반복해서 요청하는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말씀의 핵심은 여기서부터이다. 이렇게 불의한 자라도 반복해서 요청할 때 귀찮아서라도 그 청을 들어준다. 그리고 주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거룩하시고 천지의 주재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오래 참으시겠느냐? 라고 반문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의 간구를 결코 초래 참지 않으신다는 당위성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답을 이어 단정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오늘의 말씀의 첫 번째 핵심이 여기에 있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렇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신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하면 반드시 오래지 않아서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낙담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라고 1절에 전제하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우리는 흔히 조금 구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쉽게 낙심하게 된다. 그리고 불평을 한다. 그리고 의심을 한다. 주님은 나를 잊으셨나? 주님은 나를 버리셨나? 그러다가 주님이 정말 계시는가? 라는 의심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우리들의 나약함을 잘 아시기에 오늘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라고,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믿음이 변치 말아야 함을, 그리고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말라는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씀의 맨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 오늘의 두 번째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이제 우리가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탄식하신 말씀이다. 구하되 믿음으로 구하라는 것인데 주님은 인자가 다시 오실 그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 안에 주님의 깊은 탄식을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강한 경고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본다. 믿음으로 구할 때에 응답하신다는 것인데 믿음을 볼 수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참 믿음을 잃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온전한 믿음, 신실한 믿음,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완전한 믿음을 주님은 요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다 주신 주님에게 그러한 온전한 믿음을 드려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참으로 깊이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씀이다. 사탄은 거짓 믿음으로 우리가 화장하기를 원한다. 적당히 믿는 거처럼 하면 될 것이라고, 어찌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버릴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이 정도면 적당히 봐주시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게 합리화시키도록 유혹하기를 쉬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수의 크리스천들은 이에 넘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이를 거부한다. 온전하고 순전한 완전한 믿음을 주님께 드려야 함을 선포하고 고백한다.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을 것을 선포한다. 오직 주님만을 나의 주님으로 섬길 것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믿음을 찾으실 때에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겼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은 이런 자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어두운 이 세대를 구하는 참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 주님! 쉬지 말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의 주님 되심을 선포하고, 이 시대와 이 세대를 구하는 참 빛이 되게 하옵소서. 신실하고 완전한 믿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러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을 주께서 아시오니 늘 나와 함께 하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늘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들을 통해서 주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구하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눅 18:1~8)
제목: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본문: 누가복음 18장 1~8절
설교자: 조정의
군대에서 쓰는 말 중에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가 한 달같이 길게 느껴지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말입니다. 모든 고생과 수고가 끝나는 전역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입니다. 흐르지 않는 것처럼 지겹고 고달팠던 세월이 마침내 그날이 오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가 언제 커서 어른이 될까? 많은 수고와 노력을 다하면서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지금 장성한 자녀를 두신 분들, 어떠십니까? 지나온 날들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아이가 언제 커서 이렇게 어른이 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지 참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이루어진 날에는 모든 보상과 기쁨이 따르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는 지치고 낙심할 때가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특히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인생 가운데 낙심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난 시간에 우리가 기다리는 날인 “인자의 날”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고 자기 사람들과 승리를 누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날을 기다리는 지금, 승리한 것 같지 않은 삶이 펼쳐질 때가 참 많습니다. 많은 이유로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자의 날을 기다리며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 비유의 목적(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누가는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이르시되(1절)
가르치는 분은 예수님이고, 가르침의 대상은 “그들”, 바로 22절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제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해주실 것인데, 그 목적은 제자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항상 기도한다”는 말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말씀에 나오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의 의미와 유사합니다. 기도를 쉼 없이 길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나아가고 의지하고 붙들고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기도를 떠받치는 두 기둥은 ‘겸손’과 ‘믿음’입니다. 기도는 ‘겸손’에서 시작합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로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시 10:17). 기도는 또한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전능하고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분께 구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고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신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이 낙심하지 말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낙심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과 함께 승천하실 기약이 차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셨습니다(눅 9:51). 그분은 몇 차례나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22). 인자의 날을 설명하실 때도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7:25). 자신이 곧 죽고 버림 받을 것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왕이라고 생각했고(눅 24:21), 그래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마 20:21).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막 10:28). 그런데 정작 그 주께서 자기들 눈 앞에서 사람들의 손에 심문 당하고, 매 맞고, 죽임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참 낙심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죽음에서 부활하셨지만 40일 후에는 승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실 것입니다(행 1). 예수님은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지만(요 14:18) 그 약속을 붙들고 사는 삶은 참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세상에서 오는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견디는 것은, 절대 만만한 삶이 아닙니다. 낙심하기 쉬운 삶입니다.
바울은 여러 번 낙심하지 말 것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예수님은 아버지께 올라가시면서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지키십니다. “낙심하다”의 또 다른 의미는 “연약해지다”입니다. 바울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합니다(롬 8:26).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주셨을 때 제자들은 겉사람이 낡아지고(고후 4:16),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고후 4:8),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850명의 거짓 선지자와 싸워 이긴 엘리야가 다음날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낙심하여 죽기를 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낙심하고 맙니다(왕상 18-19장).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 그것을 보게 하는 힘이 ‘믿음’입니다(히 11:1).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힘을 얻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바로 ‘기도’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기도를 통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격적으로 비유를 설명하기 앞서 질문을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을 따르는 길이 많은 수고와 고통과 핍박이 있는 길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바라보는 기준이나 평가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언젠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보상하실 것이라 믿으십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흘린 모든 눈물, 억울한 일들, 원수에 대한 원한들, 주께서 모두 풀어주실 것이라 믿으십니까?
가끔 우리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주를 위한 열정을 품었던 사람들이 그 열정이 식어서 많이 방황하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를 그냥 다니기만 하고, 주변에서 맴돌고,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열정적으로 섬기기보다는 나그네처럼 떠돌며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사람을 문제 있는 성도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들이 낙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에 불어 닥친 큰 위기로 하나님께 실망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힘을 잃어버렸거나, 그분이 오시는 날까지 기다리기 지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8절). 그분이 오시는 날 온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인데, 그 때까지 그것을 믿고 기다리며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처럼 연약한 사람인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이 비유를 통해 권면하십니다. 얼마나 강력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지 비유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 비유의 내용(2-5): 과부와 재판장
비유는 “어떤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에는 사는 두 인물이 비유의 주인공입니다. 2절에 “한 재판장”이 나옵니다. 그가 유대인인지 이방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2절)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묘사할 때 가장 최악의 표현이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특히 그가 하는 일 때문에 이는 더 심각한 평가입니다. 재판장의 생명은 공정함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재판장은 마땅히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의를 베푸는 자입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 왕이 재판관을 세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대하 19:6-7). 그런데 이 재판장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의함, 치우침, 뇌물을 받는 것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재판장이 쉽게 범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재판장은 사람도 무시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판결의 대상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악한 재판장입니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판결을 내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재판장을 당시에 강도 재판관이라고 불렀습니다(바클레이, 305). 재판을 통해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 같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6절에 그를 한 마디로 “불의한 재판장”이라고 부르십니다.
또 다른 인물은 3절에 등장합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과부는 사회적인 약자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없다는 것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고,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나서 부당하게 재산을 빼앗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았고 특히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는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것을 보면(눅 20:47),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포함하여 불특정 다수로부터 많은 원한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과부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 갔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악한 재판장이 그 요구를 들어줄리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과부를 보호할 것을 요구하시지만(신 24:21; 딤전 5:3),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아닙니까? 딱한 과부의 사정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지만 그는 사람을 무시하는 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그는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얼마 동안”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귀에 들리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들었지만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과부는 자기 청원이 날마다 무시되는 것을 보며 지치고 낙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지친 것은 과부 쪽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장이 하루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보통 악한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악한지 잘 모르는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도 무시하고 사람도 무시하는 불한당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도 이 과부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5절)
재판장은 과부 때문에 자기 명성에 금이 갈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한을 풀어주지 않아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번거롭고 귀찮았습니다. 자꾸 찾아오는 과부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 뻔했습니다.
마지막 표현 “나를 괴롭게 하리라”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내 눈 밑을 때리리라”입니다. 눈을 멍들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부는 정말이지 불의한 재판장이 눈을 얻어맞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낄 정도로 집요하게 찾아와서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6절에서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한 말을 잘 생각하고 여기서 교훈을 얻으라는 말입니다(6절)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3. 비유의 교훈(7-8): 하나님을 믿으라
“하물며”라는 이 단어는 오늘 본문의 핵심 부사(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두고 앞뒤의 인물을 비교 합니다. 앞에 있는 불의한 재판장과 뒤에 나올 인물을 비교하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장과 비교되는 대상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완전히 다른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명기 10장 17-18절에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하나님은 ‘전능하신 재판장’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 심판을 받고, 마귀도 그 앞에서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판결을 굽히지 않으시며 뇌물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자하신 재판장’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비유 속 그 악한 재판장도 과부의 끈질긴 요구를 들어주는데, 하물며 그 재판장과 차원이 다른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한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겠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우리말 성경에 따르면 “오랫동안 모른 체하며 내버려 두시겠느냐?”입니다. 악한 재판장이 과부의 요청을 얼마 동안 듣지 않은 것처럼 너희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 오래 지체하겠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나님은 자기의 택하신 자들, 그리스도 앞에 있는 제자들과 그들을 통해 주를 믿게 된 우리 모두의 부르짖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억울한 일들, 우리가 흘리는 눈물, 우리가 견디고 있는 핍박과 고난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속히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인자의 날) 모든 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라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고 밤낮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구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이 불의한 재판장인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마치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통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 무감각한 것처럼, 우리를 받는 핍박에 관심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매정하고 사랑 없고 불의하고 능력 없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악하고 불한당 같은 재판장도 과부의 끈질긴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너희의 반복적인 기도를 기쁨으로 들으시겠느냐?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잊지 말라.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때론 의심스럽습니다. 믿었다가도 믿음이 휘청거릴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심한 질병에 걸립니다. 주를 위한 선택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되돌아옵니다. 빛과 소금처럼 살면서 오히려 고통스러운 핍박이 찾아옵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악한 이들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주를 믿는 우리에게 온갖 억울하고 눈물 나는 일들이 생깁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신 말씀을 붙들고 있지만(롬 8:28),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래도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까요?
어느 날 여러분의 집에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배가 고플 때마다 밥을 줄 때까지 소리 지르고, 울고, 짜증내고,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신경질을 부립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사람이 자기는 돈을 하나도 벌어오지 않으면서 내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힘들게 번 돈을 그냥 달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사고, 입고, 즐기기 위해 돈을 계속 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게 당연한 것처럼 요구합니다.
학교에 들어갈 때도, 직장에 취업해도, 심지어 결혼을 하여 독립된 가정을 꾸려도 언제나 이 사람은 나에게 의존적입니다. 시험 때 먹는 것을 챙겨달라고 요구하고, 시간에 맞춰 깨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 빨래를 다 맡아서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아기를 낳아도 내가 봐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맡깁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자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묘사하니 참 악한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항상 불효자처럼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집에 태어난 순간부터 자식은 부모의 기쁨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에게 흘러내려 갑니다. 해준 것이 특별히 없어도 부모는 항상 자식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해주고 싶어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울어도 좋아. 얼마든지 짜증내고 신경질 부려도 좋아.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해 줄게. 만일 눈이 필요하면 눈도 주고 심장이 필요하면 심장도 줄 수 있다. 네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살면서 이것 하나만 기억하렴. 네가 어디에 있는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을 저질렀든 아빠와 엄마는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네 편이 되어 줄 거야. 네가 진정으로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무슨 일이 있든지 나를 믿어라.’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지금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제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려는 예수님이 직접 묻고 계십니다. 나를 봐라. 내 아버지가 너희를 위해 어떠한 사랑을 보여주셨는지 보라(요일 3:1). 이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느냐? 자기 하나 뿐인 독자를 내주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것을 믿을 수 없겠느냐?
여러분 우리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 가운데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방황하고 맴도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보상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믿으십니까? 그 아버지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항상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마지막 질문이 제 마음에 크게 울려 퍼집니다. 마치 우리에게 대답을 듣기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여러분 이렇게 대답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네,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제가 어떠한 상황에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오소서. 내 사랑하는 주님이여”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생명의 삶QT) 누가복음 18장 1-8절 낙심하지 않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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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눅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눅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눅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눅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2022년 3월 1일 화요일 5분 말씀묵상
낙심하지 않는 기도
누가복음 18장 1-8절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 말씀은 감사한 마음이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감사한 마음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이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넉넉하게 받아 누리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한다.
예수님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비유로 말씀하시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계속 간청할때에 재판장이 마지못해 들어준다.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신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낙심하지 않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함께 나눌 수 있다.
1. 끈질긴 기도
1) 3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 불의 한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자주 그에게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2) 5절 불의한 재판장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원한을 풀어지리라 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3)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래참으시겠느냐 하셨다.
* 성도는 불의하고 차가운 세상속에서 온갖 고난을 경험한다.
* 그러나 성도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끈질기게 간구해야 할 것이다.
2. 간청하는 기도
1) 3절 한 과부의 기도의 제목은 “원한을 풀어주소서” 라는 간청의 기도였다.
2) 4절 불의한 재판관도 나를 번거롭게 하니 “원한을 풀어주리라” 했다.
3)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시며 간청하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 7절 간청함이 있었기에 “밤낮 부르짖는”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 8절 기도의 간청함으로 나아갈 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시며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하셨다.
3. 믿음의 기도
1)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응답의 시간과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2) 8절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며 한탄하신다.
3)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끈질기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 우리의 기도가 당장은 거절당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믿음 가지고 더욱더 간절히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축복한다.
* 끈질긴 기도, 간청하는 기도, 믿음의 기도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 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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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본문 및 주석 정리, 불의한 재판관, 바리새인과 새리, 어린아이처럼, 주의죽음과부활, 여리고 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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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개역개정성경 본문 및 주석
한 여인과 재판관에 대한 비유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2절 :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대부분의 일들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일들을 유대인들에게 위임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율법과 관련된 재판관이 아니라 로마인 재판관 혹은 율법과 상관 없는 세속적인 재판관이었을 것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부패한 권력을 상징합니다.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3절 :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과부였습니다. 그녀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면서 공동체의 도움을 받던 여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자주 과부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2:37 ; 4:25-26 ; 7:12 ; 20:47 ; 21:2-3 ; 행 6:1-7 ; 9:39 및 41).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 아마도 이 과부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재판관에서 자신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5절 : 이 비유의 교훈점은 과부의 끈기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재판관도 과부의 끊임없는 요청에 결국 해결을 해 주었던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7절,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 하나님은 불의와 핍박으로 가득 찬 곳에서도 자신의 성도들의 기도와 억울함을 반드시 해결해 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도들의 복수를 대신 해 주실 것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8절,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과연 예수님을 찾는 이들이 남아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앙의 박해와 고난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열정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절대로 잃지 말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한 비유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1-12절, 하나님이여… 감사하나이다 : 이러한 기도의 어조는 바리새인이 가진 문제점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이라는 말을 단 두 구절에서 다섯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나는 토색하지 않고 나는 불의하지도 않으며 나는 간음하지 않았고 나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태도는 하나님이 오히려 자신의 율법 준수한 행동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을 얕보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모습을 보이며,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3절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한 회개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4절 :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대조를 통하여,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 중에 겸손한 자를 오히려 높이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다(마 19:13-15, 막 10:13-16)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5절,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무 바쁘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만져 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바라며 아이들과 나아온 사람들을 꾸짖고 돌려 보내려 하였습니다.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6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사랑이 부족함을 보시고, 두 가지 교훈을 하십니다. 첫째, 모든 사람,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도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둘째,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들이 믿음 가운데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는 점을 가르쳐 주십니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부유하고 젊은 한 관리(마 19:16-26, 막 10:17-27)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절,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 11절과 12절에 나타난 바리새인과 같이, 이 관리도 자신이 지금껏 의롭게 살았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교만한 자세를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절,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 이 말씀은 관리로서 일반 백성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눅 12:33-34)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예수님의 테스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관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시고 계십니다(마 6:19-21). 관리가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지켜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받기 위한 특별한 율법이나 계명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관리가 섬기는 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시고자 하셨을 뿐입니다. 관리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돈임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부자였습니다.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4-25절,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 부유한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재물에 의지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가 훨씬 쉽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재물을 통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고자 함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부유함이 곧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6-27절,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반드시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 마음의 변화는 재물이나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마음의 변화를 입게 됩니다(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께서 헌신에 대해 보상하길 것이다(마 19:27-29, 막 10:28-30)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8절,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 베드로는 관리들과 비교하여 볼 때, 제자들이 큰 희생을 하였고,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29-30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고 헌신하며 따른 희생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충분히 보상 받게 될 것이라고 확인을 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헌신을 통하여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눅 9: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와 눅 17: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의 원칙을 잘 지켰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들에는 현재와 미래의 시대에 대한 명확한 시간적인 구분이 존재합니다. 현재와 함께 미래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제자들에게는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미래에는 관리가 질문했던 것과 같이 제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다(마 20:17-19, 막 10:32-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1절 : 비록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을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게 되시는 내용들은 누가복음 24장에도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2-33절 : 예수님의 재판 받으심,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모든 사건이 순서대로 예언이 됩니다.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4절,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가 고통을 당하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메시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전세계 위에 높이 올릴 인물이길 바랬던 유대인들에게는, 약속된 메시아가 끔찍한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감취었으므로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시기 전까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디매오를 고쳐 주시다(마 20:29-34, 막 10:46-52)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5절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계셨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27.5km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8절 : 이 구절은 매우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은, 앞을 보는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맹인이 예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능력이 있으심을 믿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43절 : 하나님께서 행하신 자비롭고 은혜로운 역사하심은,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 뿐만 아니라 이장면을 목격한 사람들까지도 찬양하게 만듭니다.
NKJV STUDY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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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믿음의 기도 / 누가복음 18장 1-14절 /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제목: 참된 믿음의 기도
본문: 누가복음 18:1-14
<과부와 재판장 비유>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가 다시 오셔서 심판과 구원을 행하실 때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에는 한 도시의 재판장이 등장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억압받는 자를 변호하고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한 과부가 있습니다. 과부는 고아와 함께 힘없고 억압받는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당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과부는 부당한 일을 당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고 자주 그 도시의 재판장에게 나아가 일을 바로잡고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재판장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이 과부를 무시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게 할 것이니 그 과부의 일을 해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눅 18:1-5).
예수님은 이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을 대조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는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우시며 선하신 분이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코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속히 오실 것이며 하나님은 억울하게 핍박과 고난을 당했던 하나님의 백성의 의로움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백성들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눅 18:6-8).
공의로우시고 선하시며,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믿음의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비유를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경건한 부류로 여겨졌던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죄인으로 여겨지던 세리였습니다(눅 18:9-10).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억지로 돈을 요구하거거나 불의를 행하거나 간음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고, 자신의 옆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으로 인해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또 일주일에 두 번씩 물도 먹지 않고 금식하고 철저히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자신의 의로움의 근거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제단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멀리 떨어져서 기도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였지만 세리는 자신의 죄로 인한 수치심에 눈을 들지도 못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가슴을 치는 행동을 하며 기도합니다. 가슴을 치는 것은 장례식 때 여성들이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서 남성들에게는 드문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죄인 그 자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눅 18:11-13).
예수님은 두 사람의 기도를 소개한 뒤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가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13-14).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주님의 교회는 어둡고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의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항상 교회와 함께 하시고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참된 믿음을 지켰던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며 불의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은 엄정합니다. 우리의 행동 뿐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행한 종교행위를 늘어놓고, 다른 사람이 지었지만 자신이 짓지 않은 죄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으려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것을 기준으로 죄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철저히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신에게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사람, 오직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구원의 길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을 구하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인해 죄를 용서받고 의인으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참된 겸손의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비교하는 신앙은 우리를 끝없는 교만과 열등감에 빠뜨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바르게 깨달아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 가난하고 낮은 자의 마음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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