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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생명은 정말 창조되었을까?
그렇다면 창조자는 왜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놓은 걸까?
어쩌면 생명의 탄생은 그냥 우연이 아니었을까?
독단적인 창조론은 영상에서 소개한 5가지의 의문 이외에도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생명이 지적으로 설계되었다면, 지금의 형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생명은창조되었나?
#누가만들었나?
#창조vs진화

[BGM 정보]유튜브 무료음원 _God Fury – Anno Domini Beats, Still Standing – Anno Domini Beats, Turn On – RW Smith, Darkness is Coming – Kevin MacLeod 이(가) 사용되었습니다.

Kevin MacLeod의 Darkness is Coming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가 적용됩니다.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출처: http://incompetech.com/music/royalty-free/index.html?isrc=USUAN1100584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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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경 이 거짓 인 증거

  • Author: 신박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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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7.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0NdWTCcz18

[변증] 성경이 허구인 7가지 이유

네이버의 지식인에 올려진 <성경이 허구인 7가지 이유>를 어느 분이 댓글로 달면서 변증을 요구하였다

이글의 원본은 미국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고 도입부에 후기성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몰몬교의 교리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내용은 어셔가 정리해 놓은 성경의 연대기에 따라 BC 2349년 발생한 노아홍수를 기준으로 대홍수 이전에 있었던 인류의 흔적을 제시하면서 성경을 파괴할 목적으로 작성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는 성경의 정확성을 파괴하면서 후기성도교의 신학에 커다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반박할 수 없는 상식적이면서도 간단한 증거 7가지를 제시하겠다”

아래 도표를 보면 사건이 발생한 연대가 노아홍수가 발생한 2349년보다 200년에서 651년까지 앞서 있다

따라서 노아홍수가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는 성경의 기록은 거짓이다 주장한 내용이다

구분 피라미드 나이테 상형문자 왕조기록 연대(BC) 2550년전 2831년전 3000년전 2649년전 성경 연대차이 -201년 -482년 -651년 -300년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215987684

[변증]

노아 대홍수 발생시기에 대한 성경 연대기 논증

성경의 연대기

구약성경은 두개의 버전이 있다.

첫번째는 맛소라 텍스트로 알려진 히브리어 버전이 있으며, 두번째는 칠십인역으로 알려진 헬라어 버전이 있다.

현재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은 맛소라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맛소라란 AD 500-1100 년 사이에 히브리어성경을 계속 보존시키고 연구하였던 학자들이 편찬한 상경이다.

특히 이 시대 에스라가 성경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창세기 1장~11장까지의 연대기가 특정 시대에 맞추기 위해 조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0인역은 최초의 그리스역 성경으로 유대인들이 타국으로 많이 이주하여 그 당시의 국제언어인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겨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주전 2-3세기 경 번역한 것이다.

한글 개역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은 맛소라 텍스트로부터 번역되었다.

예수님이나 신약성경 저자들은 칠십인역을 인용하였다.

​두 버전에서 내용상으로 차이가 없지만 연대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에서 족장들의 첫 자녀를 낳은 나이에서 약 100년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두 버전을 각각 구약 연대기를 계산하면 맛소라는 기원전 4112년까지 올라가고

칠십인역은 기원전 5313년까지 올라가 두 버전간 1201년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맛소라가 6127년이지만 칠십인역은 7328년이 된다.

​노아홍수도 맛소라는 기원전 2456년이지만 70인역은 3071년이다

필자는 이 내용을 2013년에 작성하여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acoloje/60158251372

그리고 어느 버전이 더 정확한지에 대해 결론을 내렸었다 정황상 첫 자녀를 출생한 나이를 조사하면 홍수전 노아를 제외한 아홉명의 족장의 평균이 182세이다. 홍수후에는 맛소라가 43세(-76%), 칠십인역이 127세(-30%)로 계산된다. 따라서 수명의 감소에 비해서 첫 아이를 출생한 나이가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 맛소라보다 완만한 차이를 보이는 칠십인역이 더 정확하다는 결론을 냈다. ​ 그러므로 노아 홍수 발생시기가 BC 2349년이 아니라 BC 3071년으로 정정하면서 변론할 예정이다. ​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통찰력을 발휘할 대상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인류역사의 흔적이 성경의 기록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수만년전의 구석기, 신석기 시대 유물은 교과서에나 존재하며 실제 발견된 인류의 흔적이나 기록물,건축물은 성경의 연대기와 일치하고 있다 아래 도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대홍수 시기를 기점으로 인류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출현이 수백만년 되었다는데 왜 1만년 이상된 인류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일까! 이런 사실을 보면서 수백년 차이를 가지고 맞네, 틀렸네 하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인류의 흔적과 성경의 연대가 일치하는 사실에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아래에 제시한 기원전에 발생한 사건들의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상 오차를 가질수 밖에 없다

구분 피라미드 나이테 상형문자 왕조기록 연대(BC) 2550년전 2831년전 3000년전 2649년전 맛소라 연대차이 -201년 -482년 -651년 -300년 70인역 연대차이 521년 240년 71년 422년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7가지에 대한 변증을 시작할 것이다

1. 피라미드

피라미드 건축시기를 2550년으로 보고 성경 연대기와 200년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 성경 연대기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노아홍수 후 521년 후에 건축된 것이다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는 왕의 무덤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한명의 왕이 5기의 피라미드를 건축하기도 하여 논란이 많다

피라미드를 건축한 임호텝은 메소포타미에서 건너 온 사람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대 이집트인은 피라미드를 ‘야르’라고 불렀는데 이는 계단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피라미드가 메소포타미아의 바벨탑(지구라트)의 형태로 건축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는 가운데 어떤 의미로든지 대홍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http://blog.naver.com/acoloje/60134603524

2. 나이테

증거로 제시한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산맥의 브리슬콘 소나무는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조사한 결과 이 소나무는 1년에 나이테를 두 번 형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다른 증거로 제시한 무두셀라 나무는 기원전 2831년에 태어났다고 했지만 이 역시 70인역의 성경 연대기보다 240년 후다

캘리포니아의 세쿼이아(Sequoia gigantea) 나무는 사람 이외에는 천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들은 톱을 가지고 세쿼이아를 파괴할 수 있다 벌레들도 산불도 세쿼이아를 괴롭히지 못했다 세쿼이아는 세기를 이어 생존하지만 5000년 이상 된 세쿼이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삼나무들은 죽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자라 온 것으로 보인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세쿼이아 숲에는 죽은 세쿼이아 나무가 없다 인간이 베어내지 않는 한 그 나무들은 죽는다는 증거가 없다

http://blog.naver.com/acoloje/60211057856

3. 탄소 연대

저자는 화석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 탄소 방사성 연대측정을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진화론자들이나 화석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화석의 나이를 탄소로 측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탄소연대 측정법에서 사용하는 C14의 반감기는 5,730년이기 때문에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는 10만년보다 더 오래된 화석은 C14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화석은 수억년 이상 오래 되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0만년 이내의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 측정법을 사용할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화석들의 C14의 양을 측정하면 언제나 진화론자들에게 당황스런결들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진화론자들이 수백만년에서 수억 년 되었다고 여겨지는 화석이나 암석에서 충분한 C14가 측정되기 때문이다.

고생대 석회암, 나무화석,중생대 공룡 뼈를 포함한 모든 화석들, 심지어는 선캄브리아기의 대리암과 흑연까지도 충분한 C14를 함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대도 초기값을 알 수 없으므로 정확한 연대라고 확인할 수 없다

시료화석 알려진 연대 탄소연대측정 장소 신생대 제3기 석탄 2,000만년 3.6만년 스위스 마겐윌 중생대 나무화석 2,300만년 3.4만년 시드니 훅스베리 상부 페름기 석탄 2억 5,000만년 4만년 호주 시드니 그레이트노던심 중생대 쥐라기 나무화석 1억 9,000만년 2.3만년 암모나이트 표준화석

http://blog.naver.com/acoloje/60131428284

4. 이집트 상형문자와 수메리언

증거로 제시한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는 Wikipedia에 따르면 기원전 31세기(BC 3000~BC 3100)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Narmer_Palette

팔레는 상,하 이집트가 통일 된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하 이집트 통일은 기원전 3000년경이다

그러므로 이 또한 노아홍수가 발생한 3071년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신기하게도 나르메르 팔레트에는 6천5백만년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공룡과 비슷한 동물이 그려져 있다

​​

5. 왕조기록

이집트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역사이고 이집트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역사는 약 BC 3,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고대 역사는 대개 거품이 들어 있다

BC 300년경에 마네토에 의해 작성된 <이집트사>의 왕명표에서는 제1왕조의 시작을 BC 5,800년경으로 설정했지만 오늘날의 이집트학에서는 BC 3,000년경으로 수정하고 있다.

왕명표란 발굴된 유적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역대왕 이름의 일람표이다.

마네토의 왕명표 제작은 BC 300년인데 그 당시에 이미 지나간 3000년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3,000년의 왕조 역사도 500년 이상 거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년대를 볼때는 약 500년의 오차를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고왕국 시대를 예를 들면 제3왕종의 마지막 왕은 후니고 제4왕조의 초대왕은 스네푸르로 왕조 교체가 일어난다.

그러나 스네푸르는 후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같은 핏줄에서는 왕조의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동일한 모순은 제2중간기에서 신왕국 시대로 이행하는 제17왕조와 제18왕조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http://blog.naver.com/acoloje/60134520944

6. 캥거루, 여우원숭이, 그리고 에뮤

이 사람이 주장한 내용은 좀 황당하다

노아 방주에서 하선한 동물들이 왜 특정대륙에서만 발견되느냐 하는 내용이다

왜 캥거루는 호주에서만 발견되고 여우 원숭이는 매다카스카에만, 오리 너구리는 서반구에만 발견되느냐?

그러니 성경의 기록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화론으로는 설명이 된다니 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노아방주에 탑승한 동물들은 대부분 암수 한쌍이다

이들이 어디로 이동하였든 이동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닌가?

더구나 대륙이동이나 산맥이 융기하고 바다가 깊어진 것은 기독교에서도 노아홍수후에 일어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성경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104:8)

대격변에 의한 대량의 화석, 높은 산들에 있는 바다생물 화석들의 흔적, 산맥과 골짜기의 모습, 지층의 형성등은 모두 대홍수를 증거하고 있다

오히려 높은 산에서 바다의 흔적이 발견될 때마다 앵무새처럼 과거에 여기가 바다였다고 말하는 것이 식상할 정도다

온통 바다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흔적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인데 차라리 과거에 대홍수가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확률이 높다

7. 석유와 석탄

이 사람의 제목과 달리 석유만 언급하고 있는데 석유가 수십억년동안에 만들어지며

식물성 프랑크톤과 동물성 프랑크톤의 잔유물이 바다밑에 침착하여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압축되어 부식되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석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머어마한 양의 열과 압력과 시간이 요구되며 오직 지질학적 시간만이 석유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짐작컨대 글쓴이는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가 틀림없다

​어마어마한 영의 열이 몇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나 석유는 포르피린이 200℃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200℃이상 고온을 받은 적이 없다

석유의 근원물질은 바다생물이기는 하나 양적으로 많은 것들이 근원물질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석유의 생성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서서히 쌓이는 바다생물들의 사체는 다른 동물들이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오랜세월 쌓여서 석유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대홍수에 의해 급격하게 대규모의 동식물,바다생물들이 한꺼번에 매몰되었을 때 퇴적층에 석유가 생성될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유기화합물인 석유가 수십억년동안 유지될 수 없다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거나 암석층을 조금씩 통과하여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실험실에서는 석유를 단시간에 만들어낸다고 알려져 있다

석탄의 형성에 대한 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석탄이 발견된 현재의 자리에서 식물이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습지이론이며 다른 하나의 이론은 석탄의 원래 식물은 자신이 자라던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동해 와 현재 석탄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이론이다. 이를 이동퇴적이론 또는 홍수이론이라고 부른다 또한 현미경으로 보면 석탄의 대부분은 나무기둥이나 줄기 자체라기 보다는 나무껍질(bark)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석탄이 나무 껍질로만 만들어 졌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물론 석탄층 가운데 나무 자체나 나무가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나무 껍데기다. 습지이론에서는 나무껍데기만 이동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습지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은 석탄층의 규모가 수백 km2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지구 지구상 어디에도 이렇게 광범위한 습지가 없을 뿐 아니라 석탄은 현재 지구상에 엄청난 규모와 면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어떻게 나무는 어디가고 껍질만 모아져서 석탄이 만들어 지는가? 그 해답은 노아홍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홍수로 뿌리채 뽑힌 나무들은 물위로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수목들이 서로 엉겨 붙어 거대한 매트처럼 물 위에 떠다녔을 것이다 떠다니던 수많은 나무 껍데기들은 물에 의해 느슨해지고 벗겨져서 밑으로 가라앉았고, 이어 모려오는 저탁류에 의해 갑작스럽게 매몰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탄은 여러 퇴적지층 사이에 끼어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이유도 저탁류가 반복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에 열을 받아 탄화되어 석탄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 많은 나무껍질들을 탄화시킬 만큼의 열과 압력을 일으킬 갑작스런 매몰은 노아홍수의 모델과 잘 맞아 떨어진다 1964년 스팩크먼의 논문에서 석탄이 탄화되는 정도는 시간과는 관계가 없으며 단지 열과 압력의 조건만 주어지면 바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발견되었다 1980년 세인트헬렌스 산에서 화산폭발로 나무들이 뿌리채 뽑히고 이들 중 많은 나무들이 근처의 스피릿 호수로 떠밀려 내려갔다 그 호수에는 자그마치 백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밀려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수에 가 보았을 때 나무들은 여전히 물위에 떠 있었지만 껍데기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껍데기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스피릿 호수 아래로 내려가 보니 놀랍게도 나무에서 분리된 껍데기들이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아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 두께는 1m나 되었다. 이들은 토탄이라고 부르는데 나무 껍데기들이 쌓인 석탄의 초기단계를 말한다.

​https://blog.naver.com/acoloje/221028708775

■ 성경이 거짓 소설책이 아닌 결정적 증거

저는 한국 기독교 중 어느 한 교회(http://cafe.daum.net/Bigchurch)에 소속된 일개 신자일 뿐지만,

저는 하나님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믿을수밖에 없는 여러가지 근거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실제 있었다는 증거를 보셨나요? 아무도 없으실 겁니다.

해리포터 이야기가 소설인 이유는 그 이야기가 실제 있었다는 증거와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 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들은 성경책을 믿을수 없는 소설이야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실텐데,

만약에 정말로 성경속 내용들이 누군가 지어낸 가짜 이야기라면

그 가짜이야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자료들이 있을리가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야기 같은 성경책의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들이 많다는 사실 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러분들을 위하여 큰 희생을 치루신 그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그 오해가 조금은 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이 글에서는 하나님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주장하시는 말씀대로

‘성경은 다른 신화를 표절한 거짓 소설책인가’ 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게시글을 통하여 지금의 여러분들이 품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정도는 풀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S) 몇몇 분들중에 저를 신천지같은 사이비종교인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신천지는 매우 위험한 사이비종교이므로 정말 조심하시라는 차원에서 링크 하나 올려드립니다.

( http://20002scj.blog.me/221473558928 )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없거나 성경은 가짜라는 설명 에 대해서는

근거가 적더라도 ‘일단 믿고’ 들어본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거나 성경이 진짜라는 설명 에 대해서는 ‘일단 거부하고 ‘부정하면서 듣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명확한 사실들을 설명해주는 명 강사가 찾아오더라도

시작부터 ‘저건 거짓말이다’ 라는 색안경을 끼고 듣는다면 거짓을 진실로 믿거나

진실을 거짓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라는 중립적인 시각 에서 이 글을 읽어보신다면

더 올바른 판단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경은 다른 고대 종교와 신화이야기를 짜집기한 소설일 뿐인가?

하나님을 싫어하는 반 기독교인 분들에게 성경이란,

그저 고대 신화들을 짜집기해서 붙여놓은 허구 소설책 따위로 여겨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반 기독교인 분들의 그런 생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성경에 적혀있는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안티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주장하시는 수메르 신화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 말이죠.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성경의 대홍수 이야기와 수메르 신화의 홍수 이야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경이 수메르 신화를 짜집기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수메르 신화가 성경의 대홍수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수 있는 것 이죠.

​A라는 사람이 ” 2018년 러시아 월드컵때 6/27일날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이겼다! ” 라는 내용을

페이스북 ​SNS 메세지에 올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B라는 사람이 다음날 6/28일 A가 적은 내용을 똑같이 SNS에 적어 올렸다고 생각해보죠 .

이때 A가 적은 SNS 메시지가 거짓말이 될수 있을까요?

오히려 B라는 사람이 A의 SNS 메시지가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홍보해주었다 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수메르 신화를 제외하더라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는 대홍수 설화가 있습니다.

지진 설화도 아니고, 화산 설화도 아니고, 운석 설화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대홍수 설화만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대홍수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에 내용들이 조금씩 바뀌었을수는 있겠지만,

전 세계적인 홍수가 실제로 있었다는 핵심적인 사실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홍수 이전에 노아에게 직접 명령해서 건조했던 노아의 방주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 지금도 계속 보존 되어있는 성경속 노아의 방주

​이처럼 성경속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거짓 소설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거는 노아의 방주 1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홍수 이후에 바닷속에 잠긴 해저도시들이 노아의 대홍수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

​■ 노아의 대홍수로 인해 물 속에 잠긴 바다속 해저도시

출처: https://cafe.naver.com/jerusalemofgod/643

만약에 노아의 대홍수가 없다면 저 바다속 해저도시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바다속에 잠겨있는 수많은 해저도시 유적들 이 성경속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었다는 진실을 증거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실존하심과 성경이 정말 사실이었다 라는 사실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경속 노아의 대홍수가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중동 지역 이외에

미국 인디언들의 홍수 설화(https://blog.naver.com/myjaz/146533773)나

카자흐스탄 홍수 설화 (https://blog.naver.com/myjaz/146534411) 나

중국 홍수 신화(http://www.soundofhope.kr/bbs/board_view.php?bbs_code=bbsIdx43#=20935)가

​존재하는 것이며,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홍수 설화가 존재합니다.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679 )

​아래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대홍수 설화가 존재하는 것 은

곧 성경이 거짓 소설책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 하며,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정말로 실존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으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천국의 왕이시며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 하나님이 무엇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일까요?

여러분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서 처참하게 비명지르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지옥에 보내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죽는한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을 구해내고 싶어서,

여러분들을 구하려다가 생긴 그 못자국난 손으로 여러분의 손을 잡고서

저 하늘나라에 데려가서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

그래서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도 내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

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

[ 요한복음 3장 16절 ]​

mars의 진실 찾아 떠나는 세상

#기독교의 기원과 진실

자..기독교는 어떻습니까?

경전이라는 바이블에는 살육 저주 사기 배반이 난무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를 살육했으며 선교라는 명목으로 타문화를 말살시키고,

현재에도 온갖 비리와 날조를 저질르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유독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18세기를 지나면서 근대르네상스 기조에 의하여 인본주의 사상이 강하게 대두되므로

시대조류에 편승하여 교세를 늘리고자 하는 간교한 술책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는 이스라엘 백성외에는 부름을 받지 않았다”며 이방인을 개에 비유한 예수는 감추면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예수를 왜곡하고,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세뇌에 열심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사랑과는 담을 쌓고 생활하는 족속들입니다….

결국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제자들,친족들인 유대인들끼리…..기독교안에서…니들끼리만 사랑하라는 말이라는걸

편협하고 배타적인 교리에 쩔어있는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없어져야 한다는 이유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 목 차 –

★ 성경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 성경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 성경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 예수의 진짜 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동정녀가 아니였다?

1) 페르시아의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종교의 모방?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 성경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라는 부인이 있었다.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2) 아담과 이브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 본 문 –

★ 성경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성경은 B.C 1,500년에서 A.D 100년까지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구약(舊約) 성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고 신약(新約) 성경은 예수(Jesus)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성경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지금의 성경은 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예수의 기록은 마가복음(A.D 60년대), 누가복음(A.D 80년대), 마태복음(A.D 85년대), 요한복음(A.D 100년대)이 전부이다.

12-24세의 예수가 인도, 티벳 등 동양으로 건너가 동양의 진리를 습득했다는 기록은 교회와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내용은 삭제해서 기록했다. 지금과 같은 신약성서는 여러번의 공의회에서 주교와 장로들의 동의를 거쳐 성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그외의 교회의 신성을 모독하거나 교회의 이익을 크게 해친다는 이유로 누락시킨 것은 “외경(外經)”이라하여 구분했다.

복음서는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복음의 네 권을 말하고,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서기 60년경 희랍과 로마인을 상대로 로마에서 씌여진 책이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거나 진압되어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씌여진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기 80년경 희랍인 의사였던 누가(Luke)가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 시자리아(Caesarea)에서 로마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마태복음은 서기 85년경 희랍어로 희랍풍으로 씌여졌지만, 절반 이상이 마가복음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마태는 팔레스타인 출신 피난민인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예수의 제자 마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경 에페수(Ephesus)라는 한 희랍의 도시에서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썼다는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가장 신빙성이 있고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성경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성경의 역사에는 중국이나 한국, 또 다른 대륙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고, 전 지역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유대인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예수(Jesus)의 행적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억압하고 재판했으며, 사람은 환생(還生)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Giodano bruno) 같은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는 이미 오점(汚點)으로 얼룩져 있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이단들을 마녀사냥이란 미명(美名)아래 처형했다. 기독교의 틀을 벗어나면 마녀(魔女)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전성시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중동지역에서부터 이집트까지를 영토로 만들었으며 고대 희랍 지역(유럽)은 차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86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 민족의 메시아로서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이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예수 이 후 로마제국은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만 들어도 잡아 가두고 죽였다.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는 네로(Nero) 황제 때 극에 달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이후의 역사는 반대로 크리스천들의 이방인과 합리적 사상가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로 점철되어 왔다.

성경은 또한 수학, 과학, 철학, 심령학, 고고학, 인류학 등 많은 현대의 학문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6,000년으로 못 박아 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라는 성경의 내용과 서로 모순(矛盾)된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 보다 먼저 인류는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주인 바티칸에서는 수학을 몹시 싫어하여 계산하는 산수(算數)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수학(數學)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고,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라 하여 생각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뉴튼 (Isaac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重力)이라는 자연법칙을 찾아냈을 때에야 겨우 영(零)의 관념을 허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零, zero)을 수학이나 철학의 중요한 인자(因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지하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편, 현대의 신학자들은 세례(洗禮)의 목적에 대해 비관(悲觀)해 하며, 세례의 효과와 결과에 대해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교회에 가서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렸다고 천당에 갈 자격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물 몇 방울을 뿌리지 않았다고 죽은 후 평생 지옥에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신학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미국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크리스천들은 그 사람이 잉태한 요일과 같은 요일에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일요일에 성교를 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성교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 예수의 진짜 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사망 이후 4세기(A.D 300년)까지는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로 알고 생일 잔치를 했다. 서교(西敎), 즉 기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영세를 받게 됨으로써 종교를 바꾼 사람이다. 서기 313년, 그는 기독교(基督敎)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기독교는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신앙의 교리나 의식, 제도, 관습 등을 대부분 모방하거나 그대로 수용하였다.

결국, 예수님의 생일을 페르시아의 지방의 축제일을 모방하여 12월 25일이라고 했고, 서기 353년,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Liverius)는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제도화시켰다. 한편, 태양신을 믿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는 12월 25일은 곧 축제일이자 조로아스터의 생일이었다. 12월 25일은 동지(12월 22일)를 지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 라고 생각했다. 이 날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축제일이었다.

한편,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요르단 서부 도시)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 나사렛이고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 당대에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있지도 않았다. 나사렛이란 마을은 예수가 죽고 800여년이 지난 다음에 생긴 마을이다. 최근에 출간된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책자를 보면, 여러 가지 잘못된 성경의 역사와 모순된 기독교의 진리들이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동정녀가 아니였다?

예수(Jesus)가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많은 처녀들을 두고, 남편(요셉)이 있는 성모 마리아(Maria)를 택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성경의 내용들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가나안, 시리아, 고대 희랍 등의 신화들 중에서 모방해 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고대 신화들을 모방한 것이다. 흰두교의 크리슈나(Krishna)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메소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Zoroaster)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이브의 어머니 소피아(Sophia)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그래서 “예수(Jesus)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 라고 둔갑시켜 놓았다. 고대 신화나 고대 종교를 모방한 것이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제국 당시, 중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하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초창기의 기독교 교부들은 “옛날에는 신화에 지나지 않던 형상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 안에서 되살아난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모방의 근거를 신비로운 표현 속에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성경의 내용이 옛 신화에게서 모방해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 페르시아의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페르시아의 미트라(Mitra)는 12월 25일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해서 일어났다. 미트라가 부활한 날에 미트라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되었다. 미트라(Mitra)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자연히 로마로 전파되었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예수의 동정녀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죽어서 부활하는 신인(神人)의 고대신화가 있는데, 이 신인(神人)은 지역에 따라 미트라(페르시아), 오시리스(이집트), 디오니소스(그리스), 아도니스(시리아), 바쿠스(로마)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 졌다. 오시리스 그리고 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神)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녀(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그들은 세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奇蹟)을 보였으며,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부활절(復活節) 무렵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復活)했다고 한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스스로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종교를 창도(唱導)했다.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크리슈나의 탄생을 지켜봤다고 한다. 크리슈나(Krishna)는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갠지스강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나무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는 그를 죽인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리워졌으며 구세주로 불리워졌다. 그는 흰두교의 삼위일체 가운데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으며, 나환자와 맹인, 귀머거리를 치료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2,600년 전의 크리슈나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의 생명이며, 세상을 떠받치는 자이며, 세상의 길이며, 그 피난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사물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삶을 여러 번 반복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고, 너희들도 삶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삶을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이집트의 호루스(Horus)는 고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神)이며,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호루스(Horus)는 12월 25일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30살 때 세례를 받았고,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했고, 죽은자를 살렸으며, 물위를 걸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무덤에 묻혔고 부활했다. 호루스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메시아로 칭송되었다. 아들로서의 ‘유아(幼兒) 호루스’는 아기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고대(古代)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유대인들이 중요하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래 일요일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 이전 (기원전) 약 600년경에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 (Zoroaster, B.C 628-551)라는 현인(賢人)이 있어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조로아스터는 12월 25일 동정녀(童貞女)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復活)했다. 그가 부활한 날에 페르시아의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 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된다.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생긴 것은 예수 이후 300여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하조직으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본질과 진리의 틀이 완전히 달랐었다.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종교의 모방?

부활절의 축제일은 원래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모두 파간(pagan) 토속종교에서 얻어 온 것이다. 그래서, 그 날짜가 매년 변한다. 파간의 부활절은 3월 21일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지난 후에 첫 월요일을 부활절이라 한다. 토속종교를 크리스천들은 이단이라고 했고, 그들을 파간(Pagan)이라고 했다. 파간은 원래 파구스(pagus, 시골사람)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파간(pagan)의 부활절은 음력 달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월요일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변형하여 일요일로 하였다. 토속종교인들은 월요일을 중시하며 월력(月曆)인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페르시아의 태양신(男神) 종교를 모방하여 일요일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주일을 일요일로 바꿨다. 춘분(春分)부터 부활절이 되는 일요일까지의 기간은 에오스트라 여신(Eostra, 라틴어,땅의 여신)의 배란기로서 임신하는 기간이었다. 가나안 지방에서 입춘(立春)이 되어 비가 오는 때에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이 임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임신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여 성교를 위한 축제를 했던 풍습과 마찬가지인 신앙이다.

또한, 부활절 때 계란에 붉은 색을 칠하는 것이 관례인데, 서양의 전설에서는 계란은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절 때 특히 동구 유럽에서는 계란에 붉은 색을 많이 넣어 아름답게 칠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 사후 약 500년간의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기독교인 (특히 gnosis파)들이 인간의 환생과 윤회설을 자유로이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곧 하나로 똑같다.”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진리 왜곡의 표본이다.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였다. 우선 성경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나 어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이 즐겨쓰는 언어는 인자(人子)이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인자가 말하노니” “진실로 인자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라고 예수는 말하곤 했다. 2세기 중엽부터 로마에서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가 쇠퇴하고, 기독교가 중.상류층까지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후 로마 교회에서는 예수가 인간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동등한가? 라는 논쟁이 일어났고,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분열된 국론을 규합하고,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교리가 필요했다.

서기 313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교회의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서기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처음 사용했고,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제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의 지위를 격상시켜야 하므로 “예수는 하느님과 같다” 라고 일방적으로 의결했다.

그 후, 악의 폭군 “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서기347~395)”는 제 2차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신관(神觀)”을 확정한다. 강력한 로마 제국 건설을 위해 소모적인 종교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론(國論)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로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며, 예수님이 곧 하느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힘의 논리로 사람이 만든 것이며, 사람이 의결해서 확정지어 놓은 것이다. 그런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당연시 하고, 처음부터 삼위일체라는 관념이 있었던 것처럼 여긴다.

★ 성경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기독교의 성경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혹은 절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여러번 고쳐졌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경은 여러 가지 모순(矛盾)들과 잘못된 오류(誤謬)들이 존재한다. 다음은 그 중에서 기록(記錄) 상의 오류만 발췌(拔萃)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첫째, 예수의 탄생시기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누가복음(1-7)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후(after) 6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전(before) 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자간에 예수 탄생 시기가 무려 12년이나 차이가 난다. 누가복음(1-7)에서는 아구스도의 호적령과 인구조사 때, 즉 기원 후(after) 6년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에서는 헤롯 왕(기원전 4년에 죽음)이 죽기 2년 전, 기원 전(before) 6년에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 예수의 탄생장소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집(house)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복음(2:7)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였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라고 하여,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집(house)으로 기술하였으나, 누가복음(2:7)에서는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마굿간의 먹이통)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여인숙)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한 곳에서는 집(house)로 기록하고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록하고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세째, “예수가 마지막 한 말”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 라는 말만 하고 머리를 떨어 뜨렸다라고 기록 하였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록하였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록하여 서로 각각 다르다.

네째, “예수가 처형된 날짜”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처형된 날짜를 “유월절 전날”로 기록하고 있으나, 마가.마태.누가복음에서는 “유월절 다음날”로 기록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다섯째, 예수의 12-24세간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신기할 정도로 공백 상태이다.

여섯째, 예수의 모친이었던 마리아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성경은 예수가 죽은 후 300년이 지난 후에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에 대한 자료와 문서를 모두 수집하려는 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후에도, 성경은 종교 권력자들의 뜻에 따라 여러번 변형되었으므로, 신비로운 거짓말을 보태기도 하고, 절대 권력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용을 삭제하기도 하였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라는 부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의 결혼(結婚)이나 그의 성(性)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랍비(rabbi, 율법사)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랍비 훈련은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결혼 상태에 대해서는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유대인의 풍습을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結婚)은 당연한 사회조건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뿐 아니라, 심지어는 독신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성경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선교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 지방까지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예수 당대의 풍습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 혼자 한 남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는 좋지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사원(寺院)의 여자 따위로 표현해 놓았다. 마가.마태.요한의 세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옆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준 상대도 막달라 마리아였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독특했다.

그런데, 유대인의 풍습은 원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심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여자들도 그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인이면서도 대접받는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존재였다. 특히 성경의 기록에서는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책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에서는 ‘예수(Jesus)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와 결혼해 자식을 두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국내에서 2004년 6월에 번역 출간된 뒤, 20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 정도로 인기가 있는 파격적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vinci)는 예수의 숨겨진 비밀을 지켜 온 시온(Zion)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최후의 만찬(IL Cenacolo)’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분명 예수와 12명의 제자만 등장해야 할 장면에 웬 여자가 등장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제자가 여성으로 그려졌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이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이다. 수염이 없는 갸름한 얼굴, 흰 피부와 긴 머리가 여성의 모습이다. 더욱이 예수(Jesus)는 붉은 겉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는 푸른 겉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전통적인 부부(夫婦)의 의복(衣服) 차림으로 입혀져 있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의 오른쪽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Peter Simon)’이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를 향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손을 마치 칼날처럼 펴서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이를 예수가 자신의 후계자로 마리아를 지명한 데 대해 베드로가 반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이었다. 사도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미소년이었다.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예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의 한 기록인 ‘빌립 복음(Gospel of Philip)’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내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기독교 교회를 세우라고 지시를 내린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다. 베드로는 그 일에 불만을 가졌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인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를 묻어버리기 위해 그녀를 창녀로 덧씌우고, 예수가 그녀와 결혼한 증거를 은폐시켰다.

★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최근에 출간된 기독교에 관한 여러 책자에서는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의 내용들을 심도(深度)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는 요셉(Joseph)이라는 아버지와 마리아(Maria)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나이가 아주 많았고, 마리아(Maria)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요셉은 이미 리디아(Lydia)와 리시아(Lysia)라는 두 딸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홀아비였다. 요셉은 성모 마리아(Maria)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자 6월에 정혼(定婚)했다고 한다. 이 때,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 될 사람은 제사장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정혼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요셉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에 정혼을 하자 마자 곧바로 마리아(Maria)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을 하게 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2세기나 그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유아(幼兒)복음서”는 예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린 예수가 아주 영리했지만 난폭하고 버릇이 없고 신경질이 대단히 심한 어린이였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심기를 건드린 다른 아이를 죽인 일도 있었고, 자기의 가정교사를 죽도록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성(聖)스러움과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의 어린시절이나 혈통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 것이다.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예수가 죽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과 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똑같다는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룡이나 아틀란티스문명, 아즈텍 문명, 고대 4대 문명, 지구와 인류의 역사, 북극과 남극의 유래, 우주와 천체 등의 이야기는 성경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후 들어갔던 무덤은 요셉(Joseph)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의 조작극(造作劇)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한편, 독일의 신학자(神學者)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1951~)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유대민족의 메시아(Messiah)가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는 십자가 부활(復活)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존의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로마의 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네의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로마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리고 원래의 로마 당국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법인데, 예수의 경우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쉽게 내 주었다. 기존 유대인의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예수가 인도와 티벳 및 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민족의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기존 유대인의 세력과 로마 당국은 그들의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를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형태의 것을 부탁했다.

마가복음 15장 44절에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 “로마 형리들이 예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했으니,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묶였을 때 탈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든지 혹은 예수가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하게 죽은 것이다.

이렇게 죽은 혹은 실신 상태의 예수는 미리 준비된 왕릉 같은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고, 마태복음 27장 60절에 의하면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개인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장 49절에 보면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십자가 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이었고 깜짝 쇼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고 동시에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가까운 소수의 몇 명에게만 나타났다. 이 때,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짜 예수가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사람과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예수는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이 보내신 인간 성자(聖子)이며, 천명(天命)을 받으신 분이다. 예수는 어린시절 목수 일을 했고, 아버지 일을 도왔으며,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이 때 인도의 오릿사 지방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명석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님을 만나 인도 유학을 주선한다 (성약성서 21:1-20).

예수는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제자가 되고 4년 동안 수행한다. 다시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배우기 위하여 당시 인도 최고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예수는 유대의 시편과 예언 시를 읽고, 베다경전, 페르시아의 아베스타 경전, 석가 부처님의 지혜를 읽었다. 예수는 인간평등을 주장하다,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 제도를 파괴한다고 해서 인도 승려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네팔로 피신한다.

예수는 다시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에서 티벳의 수많은 고전(古典)을 공부한다. 그 후 24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페르시아에 들러서 24년 전 자신을 찾아준 마기교 승려인 동방박사 3인을 만났다. 25세가 되어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에 입회한다. 이집트에서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태양계 바깥세계의 비밀, 생사의 문제 등등을 공부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 라는 최고의 법명을 받는다. 그 후 다시 인도로 건너가 승려가 되어 수도생활을 한 후, 29세가 되어 티벳을 거쳐 귀국한다.

유대나라에서 예수는 인간의 절대 신성과 인간 평등과 신의 사랑을 전파한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가 추구한 것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이 때, 예수는 예수와 전혀 적대관계가 없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다. 동시에 유대인의 메시아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예수가 어렸을 때 죽었다. 요셉이 죽은 후 어린 예수를 교육시키고, 예수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준 사람은 아리마태아 요셉(Arimathea Joseph)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묶이어 죽었을 때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왕릉 형태의 무덤에 안치시킨 후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고 예수를 소생시킨 사람도 바로 그였다. 예수의 가족을 피신시켜 끝까지 돌보아 주고 그리스도교의 창설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수가 죽은 후 300년 후에 쓰여진 기독교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원래 유대인으로서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유대인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에 근거를 두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 갑부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영국의 주석과 납광산을 비롯하여 중동지방과 인도지방에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이었고, 로마제국의 무기제작에 필요한 철 자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로마의 상원의원보다 높은 직위도 부여 받았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의 의원이었다.

예수의 사형 언도 이 후, 로마 당국과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가족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이 때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마리아(예수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예수 부인), 예수의 유모 등의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에게 체포되었고, 나중에 부하 직원들에 의해 구출되어 영국에 정착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성당을 짓고 선교사업을 벌였다. 이 때의 그리스도교의 신도들을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할 때, 이미 영국에 나름대로 크리스천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이 서기 196년경에 크리스천이 되기 시작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이 먼저 크리스천화 됐다는 기록이 있다.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아브라함(B.C 2,000년경)은 사라(Sarah)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사라(Sarah)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Abraham)은 이집트 출신의 종(從)인 하갈(Hagar)과 동침하여 이스마엘(Ishmael)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라(Sarah)도 임신하여 이삭(Isaac)을 낳게된다. 그 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가 낳은 이삭이 적자(嫡子)임을 주장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한다.

나중에, 이삭(Isaac)에게서는 “유대족”이 나오고, 이스마엘(Ishmael)에게서는 “아랍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아랍족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로부터 2류 민족으로 취급되었다.

서기 570년경, 마호메트가 나타나서 아랍 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이슬람교(회교)를 창도(唱導)하였다. 마호메트는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박해받는 아랍족의 무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에 대한 아랍 이슬람교의 반목은 계속되었다. 중동(中東)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아브라함(Abraham)의 적자(嫡子) 자손인 유대인과 서자(庶子) 자손인 아랍 민족 간의 분쟁이며, 역사적으로 4,0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유대인의 초창기 민족신은 “엘(El)”이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Mose)”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Jehovah)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호와(Jehovah)는 창세기 첫 장부터 나오지 않고, 출애굽기에서 부터 (구약성서 3:15) 등장한다. 여호와(Jehovah)는 유대민족의 전쟁신이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도록 지시한 자가 바로 여호와이며 (출애굽기21:23-25), 끔찍한 살인을 예사로이 지시하고, 여인을 강제로 탈취하여 동침까지 한다. (민수기 31:25-40). 여호와는 사람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고, 유대민족에게 다른 민족을 침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할 것을 지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신(神)이다. (사무엘기상 15:2-3, 신명기 17:2-5, 19:1, 민수기 15:32-36, 출애굽기 21:20-21, 22:18, 22:20, 레위기 20:27).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구약(舊約)성서, 창세기에서는 “아담(BC 4004년 탄생)이 잠잘 때에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기록은 자연의 이치(天理)를 거역하는 선천(先天)시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낡은 세계관의 전형적인 궤변(詭辯)이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천지만물의 조화 기운과 음양의 조화 기운을 받아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생겨났다고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 갈비뼈가 여자 갈비뼈 보다 숫자가 하나 적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 갈비뼈는 12개씩이다.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유대인 신화』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을 빚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동시에 만들었고, 남자는 아담(Adam), 여자는 릴리스(Lilith)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성교(性交)를 하면서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릴리스는 아담 밑에 깔리지 않겠다며 꼭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라고 대꾸했으나, 릴리스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고 하면서 조물주에게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욕지꺼리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아담은 이 사실을 하느님에게 보고했다. 하느님은 3명의 천사를 보내 릴리스를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돌아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릴리스는 천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귀와 사탄들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유대인 풍속에 릴리스는 밤의 마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릴리스를 포기한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담에게 절대 복종하는 여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담(Adam)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고 “이브(Eve)”라고 하였다. 유대인의 문화에는 이런 신화 때문에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때 이런 남성 우월적인 신화가 마음에 들어서 성경 속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야 한다” 라는 사상을 집어 넣었다.

한편,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합리적 이성과 개인적인 수행 및 참선(參禪)을 중요시 여겼는데,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구약성서 혹은 유대인 신화와는 달리, 『여자는 신(神)을 이해하는 영(靈)을 가졌고, 남자는 신을 이해하는 영(靈)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주어야 하며, 남자는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준 여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성경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서 뱀이 이브(Eve,여자)에게 유혹을 걸어 죄악의 씨를 전염시켰고, 그 후 여자 때문에 이 세상이 오염되고 혼란과 파괴의 아수라(阿修羅)장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왜 여자에게만 모함(母艦)과 누명(陋名)의 화살을 던지는 것일까? 창세기 1, 2장은 제사문서(priest writing)라고 불리우며, 서기 전 400년 전후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모두 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실의(失意)에 잠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왜 해야 하고, 왜 망했는지 대해 스스로 자탄(自歎)하던 때였는데, 이런 심리 상태에서 희생(犧牲)제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여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2장)에 의하면, 태초에 하느님이 인류의 시조 아담(Adam)과 이브(Eve,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였는데,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는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나무가 울창하였으며, 들에는 짐승이 뛰어 놀고, 하늘에는 새가 날았다. 여기에서 강이 발원하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비손. 기혼의 4개 강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하느님이 창조한 것으로 아담에게,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으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에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가르쳤으나, 아담(Adam)은 아내 이브(Eve,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국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과연, 구약성서 창세기(2장)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아담은 그날 죽지 않았고, 아담은 계속 살았다고 한다. 역사적인 자료 의하면, 이런 내용들은 한낱 거짓된 내용에 불과하다.

2) 아담과 이브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B.C 4004년 탄생)과 이브는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기독교의 얘기처럼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서로 모순된다.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지상에 출현했고, 약4만년 전~약1만년 전까지 구석기 문화를 형성하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약 300~400만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고, 약 250~150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으며, 이 때, 구석기의 전기(前期) 문화가 등장했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었다. 약 150~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가 출현했으며, 약 2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네안델탈인, 자바인, 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한다. 약 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현생 인류는 약 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 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 참 고 문 헌 –

성서의 뿌리 (산방, 민희식)

숨겨진 성서 (문학수첩, 윌리스 반스토운)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대원출판, 이리유카바 최)

기독교의 고뇌 (평민사, 우나무노)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국출판,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고려원, 홀거 케르스텐)

성약성서 (대원출판, 리바이 도우링)

신약외경 (성인사, 일본 성서학 연구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아침이슬, 엘마그루버)

예수는 없다 (현암사, 오강남)

강요하는 전도는 ‘이제 그만’ 한국교회 교우님들에게

뉴스앤조이 / 입력 : 2006년 03월 19일 (일) 01:21:15 류상태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한국교회 교우님들이여, 강요하는 전도는 이제 그만 하십시오. 말로 하는 전도도 그만 하십시오. 그냥 삶으로 보여주십시오. 이웃들이 우리 기독교인의 삶을 보고, 기독교가 얼마나 생동적이며 매력적인 종교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주십시오.

혹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우매한 전도를 하는 분이 아직도 계시면 당장 중지해주십시오. 집집마다 방문하여 전도지를 돌리는 전도도 이제는 그만 하십시오. 삶이 따르지 못한 채 말로 하는 전도, 비효율적이고 무모한 물량식 전도는 현대사회에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옵니다.

선교는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작년 대광고 강의석 군에 의해 촉발되었던 ‘학교 종교 자유’ 문제 역시 무모한 강요적 선교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모범 사학으로 자타가 인정했던 대광고는 깨끗하고 투명한 경영,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교사들의 노력으로 명문 사학으로 자리 잡았지만, 교리적 독선과 배타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예식에 참여하도록 강요하여 신념이 다른 수많은 학생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종교재단 사학이 많이 있지만, 특정 종교예식인 예배를 마치 국어·영어· 수학 과목처럼 무모하게 시간표에 넣어서 전체 학생을 강제로 참석하게 하는 학교는 개신교 사학 이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불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계 사학들도 종교예식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표에 넣어 매주 진행하면서 전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무모한 선교 활동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효율적인 면에서도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과거 1970~80년대에는 그런 식의 강압적 선교활동이 기독교인의 수를 늘리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고 안티기독교인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차라리 강 군의 주장을 전폭 받아들여(강 군의 주장은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참석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예배와 성경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되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을 주어, 강요적 요소를 배제하고 내용으로 승부한다면 훨씬 좋은 선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참고로 대광고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기독교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형식적인 틀만 겨우 갖추었을 뿐 실제로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군이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까지는 저 자신도 가해자 입장에 있었기에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을 고발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신 ‘복음의 원형’이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는 강요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척·친구·이웃들을 “어떻게든 예수님을 믿게 하겠다”는, 그래야 그분들을 살리는 것이라는 교리적 사명감에서 벗어나 주십시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느님’이라고 이름 지은 그 하느님은, 우리에게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름이 다르다 하여 실체까지 다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방식, 우리의 신념체계만이 옳다”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무모한 고집에 불과합니다. 그 어리석은 고집으로 옛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의 종교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그 옛날 바리새인들을 그대로 빼닮은 교리주의자들과 ‘성직자’임을 자처하는 전문종교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하느님’ ‘자기들이 만든 예수’를 여러분에게 믿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또한 그 예수만을 전도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무한하심과 자비로우심 풍요로우심을 제한하는 것이며, 다양한 인류문화를 훼손하는 신앙적 범죄행위입니다.

기독교는 가치 있는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이지, ‘유일한 진리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지만, 유대교나 이슬람교·불교 등의 세계종교는 물론이고, 천도교와 대종교·원불교 등의 우리 민족종교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그 하느님의 섭리를 제한하고 가둘 수 있는 ‘인간의 신념체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떤 특정 종교만이 하느님의 뜻을 독점한다는 무모한 고집과 독선은 역사상 무수히 많은 갈등을 만들어냈습니다. 13세기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십자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은 예루살렘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유대인과 이슬람교인들을 “사탄의 종교를 믿는 악의 무리”라 하여 보이는 대로 모두 죽였습니다.

당시 살육당한 사람들의 피가 무릎까지 차올랐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주의 군사들’은 ‘사탄의 자식들’을 증오하고 있었으며, ‘악을 처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기꺼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의 신앙도 존중해야 내가 믿는 종교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당시 이슬람 군대의 총지휘관 ‘술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재정복할 때, “복수를 해야 한다”는 장교들의 건의를 물리치고, 민간인 신분의 기독교인뿐 아니라, 십자군에 참여했던 군인들까지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또한 유색인종, 특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존재’라고 생각했던 백인 기독교도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짐승 죽이듯 살상하여, 백인이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6000만 명에 이르던 인디언들은 그들의 땅을 뺏기고, 종교와 문화도 거의 말살당한 채, 지금은 25만 명 정도만 남아 겨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인류와 역사 앞에 저질러진 범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제대로 알고 있는 기독교인이 우리나라에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십자군전쟁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반인륜적 학살의 원인을 파헤쳐보면, 피부색과 문화적 편견도 한몫을 차지했지만, “하느님은 샘·햄·야벳의 후손이 살고 있던 당시 근동 지방과 유럽에만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두셨다”는, 성서 문자에 매인 독선적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세속적’이며, ‘현상’에 함몰된 슬픈 현실

다행히도 이런 식의 독선과 배타성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들의 신념체계를 냉철하게 돌아보고 반성해온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오늘날 세계 최첨단의 문명을 자랑한다는 미국과 그 영향을 깊이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한국의 주류 개신교 목사들 대부분이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서구 교회는 몰락했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자신을 여전히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라는 건물과 물리적인 모임, 교리적 틀로부터 자유하여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의 내용은 보지 못하고 교회 수와 건물에 몰려드는 사람의 수치로 ‘하느님의 교회’를 제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한국 목회자들의 한심한 수준을 놓고 볼 때, 영성을 강조하는 한국교회가 사실은 ‘영적’이 아니라 매우 ‘세속적’이며, ‘실상’은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 함몰되어 있는 슬픈 현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상을 파괴한다든지,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행위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도 바로 한국교회가 얼마나 유치하고 원시적인 독불장군식 신앙에 머물러 있는지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피해를 입은 이웃종교인들에게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쿠루스테스’라는 괴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침대와 똑같은 키를 가진 사람만 살아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침대에 눕혀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키가 작은 사람은 억지로 늘려 침대 크기에 맞추어 놓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도, ‘프로쿠루스테스’들이 매우 많습니다.

한국교회 교우님들이여, 자신의 신념 체계에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2000년 전의 원시 신앙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주십시오. 혹 아직도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본인은 그렇게 믿더라도 제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갖도록 강요하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폭력적 전도행위는 삼가주십시오.

류상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신학연구원, 전 대광고 교목실장)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

존중 받으려면, 그럴 수 있는 당연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짓은 개차반이면서 남에게 존경을 바란다면 그것만큼 부조리하고 모순된 것도 없을 듯….

@@ 여러 사람들의 댓글모음들 (아고라 종교방에서)

이지상 06-14

참으로 비논리적인 괴독들이 아닐 수 없네. 타종교들을 보고 베낀 주제에 그 종교들이 모두 이단이라 하면, 괴독은 처음부터 이단의 자식으로 시작되는 종교나 마찬가지네. 괴독의 하나님이란 것도 악마숭배에 다를바 없잖아. 논리로도 안 되고, 발생시기로도 안 되고, 내용도 표절이고 도대체 뭘 그리 믿으라고 하는지….그런 괴독의 악마를 믿느니 괴독 이전부터 존재했던 불교의 부처를 믿겠다.

환인천제를 믿겠다. 한웅천황을 믿겠다. 단군을 믿겠다. 우리의 하느님이나 조상을 믿겠다.

조의선인 06-14

이전에 불교내에 폭력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죠. 그게 다 전두환때문입니다.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라는 미명하에 조폭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조폭들을 비롯한 여러 범죄자들이 머리 깎고 중이 되는 편법을 쓴 것이죠

그래서 불교내의 일부 중의 탈을 쓴 조폭들이 속세의 버릇을 못 버리고 나쁜 짓을 일삼는 부패의 원인이 된 것이죠. 그래서 전두환에 의해 벌어진 일련의 영향 이후로 불교내의 쓰레기가 많이 생기게 됐고 그런 부패를 일삼는 쓰레기들을 없애고 정화하자는 차원에서 개혁을 단행하고 지금도 노력하는 중이죠. 돈을 처바른 외제차를 몰고 다니거나 도박을 일삼으며 쇠파이프를 들고 설치는 대부분의 땡초들이 바로 이전 조폭들입니다

전두환 집권시절 불교를 핍박하고 조폭들이 절간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한 결과 불교계를 많이 더럽힌 주제에 지가 갈굼당하니 나중에 백담사로 도망가는 어이없는 상황 정말 웃기는 일…

전두환이가 그렇게 믿던 ㄱㅐ독교는 토사구팽을 밥 먹듯이 하는데 너무나 자비로운 불교계는 핍박받았으면서도 오히려 그 쓰레기마저 감싸다니…..ㅋㅋㅋ

전두환이도 한때 지가 왜 ㄱㅐ독교신자였는지 어이없어 할 것이다. 뭐 전두환이가 벌린 악행이나 ㄱㅐ독의 악행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결과, 원래 유유상종이니.

방우리 06-15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성경은 한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다수가 짜여낸 소설책에 불과하다는 것밖에는 할말이 없네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가치관에 혼란이 올수있는 아주 중요한 글이군요. 암튼 잘 읽고 갑니다.

키다리 06-15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 이제는 목사님도 할말없겠지요 성경을 고쳤든 아니든 우리가 살아가는데 옳바르게 와 우리동네는 비가 많이 왔어 와 우리동네는 안왔는데, 응 하느님이 우릴 보살펴서그런거야 이런말 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슨 종교든 종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늘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사람이니까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 불교는 거짖말을 안�다 부처가 사람이였다고 하지만 가르침을 봐라 얼마나옳은 말씀만 있는지 기독교인이여 비방하지 마라

큐피트 06-16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행하시는일을 어찌 사람생각으로 판단하고 이치에 맞다 안맞다를 따질수 있겠나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고 한치앞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의 생각을 안다고 하면 그신은 믿을 필요가 뭐있나…..

이즈모 06-16

시기,질투하는 괴독의 신이 정말 신일까? 그런 불완전한 존재를 어떻게 믿어. 신을 가장한 악마를 말이야. 사막잡신이 허구헌날 지랄해봐라. 차라리 한웅이나 단군을 믿어 아님 부처를 믿는게 나아.

남의 것을 베낀 주제에, 그 빈약한 이론을 무마하기 위해 무조건 믿음만 강조한다는 것 자제가 자신들의 불완전함만 드러낼 뿐이다. 짝퉁신 아니 악마 같으니라고^^*

Hymn 06-17

맹추야 너는거짖정보만 보았는가 너의판단인가 예수님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야 알려고 노력해보지안고 악마에에게 속거만 있느냐

반드 06-17

Hymn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 위 본문만 봐도 얼마나 진실을 알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거짓된 예수잡신에게 세뇌나 당한 주제에, 맨날 헛된 믿음만 강요하니. 거짓을 왜 자꾸 믿으라고 지랄이야

난 진실을 믿고 싶지. Hymn 너같이 남이 이미 다 만들어놓은 것을 표절하는 도둑놈같은 예수 ㄱㅐ독은 전혀 믿고 싶지 않거든. 거짓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니들 자체가 비논리다.

세상에 시기,질투하고 빈번하게 살해를 밥먹듯이 하는 예수 악마는 알고 싶지 않거든. 질투하는 악마 예수,하나님이라 얼마나 지지리도 못 났으면 그런 열등감에 휩싸일까.

그 자체부터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잖아. 바퀴벌레 짱골라같은 진화가 덜된 미개한 ㄱㅐ독족속들아!

지들이 그렇게 떠드는 ㄱㅐ독성경만 봐도 수간,근친,살해 등 19금의 내용들이 한가득이다. 서북,서남,동북공정으로 억지부리는 짱골라같은 미친 ㄱㅐ독들아!

가을 06-17

기독교 헌혈 1위, 구제 1위, 장기기증 1위 / 안티들의 정체 -> 좌파 또는 불교신자들 / Daum -> 불교 (추천베스트에 안티글들만) -> 기독교 옹호 댓글 삭제 / 선진국 90% 기독교계통 후진국의 90%는 불교와 이슬람 / 불교의 범죄는 지방신문에 기독교 범죄는 TV에 다큐멘타리

아민 06-17

ㄱㅐ독교 돈뜯기 1위, 역사조작 1위, 여신도 성폭행1위, 먹사 땅투기 1위, 여러 사이비 ㄱㅐ독종파 끊임없이 생산>>비논리로 무장한 무뇌무개념탑재의 바퀴벌레들 / Daum -> ㄱㅐ독교 (추천베스트에 안티글들만) -> 불교 및 무신론자 옹호 댓글 삭제 / 인류역사에서 그리스,로마시대와 산업혁명 이후시대만 제외하면 나머지 수천년의 역사를 동양에 지배당해온 ㄱㅐ독교계통의 야만인/ 그 ㄱㅐ독교의 내용들은 전부 아시아,아랍 등의 동양의 종교에서 표절함. 그런 도둑놈 주제에 지가 주인이라고 억지부림/ 불교의 범죄에 비해 너무나 많이 자행되는 ㄱㅐ독교 범죄 -> 자연히 더 많이 알려질 수 밖에. / 불교는 그나마 부패정화운동하려 노력하는데 반해 ㄱㅐ독은 자신의 치부만 가리려 하니…

신유현 06-18

서로 보지못한다고 돈안낸다고 서로 상처주는말로 하지말고 힘든세상 잠시왓다가는 구름같은 짧은시간에 서로 비판하고 험단하기보다 정보를교환하며 이런글 저런글 읽으면서 각자 판단하시되 험한말은 안쓰신다면 다시 한번 들어와 보고 싶네요

사랑하기에보낸다 06-18

중3때부터 교회를 36까지 다니다가 요즘은 교회가기가 겁이나요 … 넘무 돈돈 의문을 가지면 믿음이 약해서 ㅜㅜ 정말지겨워요 이젠

엣센스 06-19

ㄱㅐ독들 정말 웃긴다. 조상신을 믿으면 미신이고 사막잡신 믿으면 신앙이냐? 어차피 예수도 잡귀신에 불과한데 그 사막잡귀신 자체가 미신이자 우상숭배 아니냐. ㄱㅐ독한테 돈뜯기느니 그 돈 가지고 제사나 모시겠다! 아니면 환인천제나 한웅천황 혹은 단군을 모시는게 낫지. 혹은 부처를 모시든가. 이미 독일이나 러시아 학자 등 세계 여러 학자들의 홍산배달문명발견으로 그 논문이나 신문기사,KBS다큐멘타리방송,MBC뉴스 등으로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의 실제존재했던 것이 밝혀지고 있고, 중원의 하나라,은나라 등이 모두 동이족의 국가란 것도 밝혀졌지.

물론 복희씨,신농씨 등 삼황오제 모두가 배달민족이란 것도 여러 사서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고 말야. 최근에는 여러 대학교수 등의 강단학자들도 진실을 밝히려고 식민사관 학자들과 싸우고 있지.

그런데 짱골라들이 역사공정하면서 세계 학자들의 유적조사 일체를 막아 그 진실을 파헤치는데 애로사항이 많지. 불교에서 설파하는 내용도 깨닫는 것이 많고 합리적이라 점점 과학자들의 실증적 연구분석이 이루어지고 있고 말야. 특히 핵물리학이나 천문학 등의 이론 등이 불교진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지. 그런데 ㄱㅐ독은 전혀 아니거든. 위 댓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ㄱㅐ독의 많은 부분이 이미 아시아,중동 등의 동양에서 표절한 주제에 마치 도둑놈인 ㄱㅐ독들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게 웃겨. 그러고 보면 ㄱㅐ독은 이교도의 자식이네. 하여튼 불효막심한 놈이야.

불쌍해서 어쩌나. ㄱㅐ독들. 논리로도 안 돼, 발생시기로도 안 돼, 내용도 표절이야…. 그리고 백인들이 최근에 와서 세계의 주도권을 잡은 것 가지고 ㄱㅐ독교가 선진국의 표상이란 것도 웃겨.

그리스,로마시대와 산업혁명이후의 약250년간의 시기만 제외하면 흰둥이의 서양은 인류역사이래 수천년을 동양에 지배당해 왔거든. 정말 쥐나스러운 놈들~ 짱골라 쥐나가 뭔지는 알지? 쥐나친구 ㄱㅐ독아!

리드건 06-19

맞아 미친 ㄱㅐ독들이 다시 짖기 시작했네

이승현 06-19

실제 지나인들이 인정하는 역사는 한나라와 송나라,명나라 밖에 인정 안 하잖아. 최근에 역사공정 시작하면서 전에는 이민족의 왕조들이라고 무시하던 역사를 지네들 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거지

그 이민족들이 과연 누구일까…치우천황을 위시하여 삼황오제,공자,맹자 등 춘추전국시대,칭기즈칸도 지네 조상의 역사라 우기는 놈들이 그들의 역사관의 맹점은 시간의 연계성이 없다는 거지. 살다살다 영토가 곧 역사라는 미친 소리는 처 들어본다. 역사는 그 민족들의 것이지. 그 민족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토의 변화가 생길 뿐이지..

그러니 지나25사들의 여러 곳에 그것을 증명해주잖아. 물론 짱골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한나라,송나라,명나라들조차 그 사실들을 다 없앨 수는 없어 군데군데 숨기거나 조작질만 해두잖아

그리고 누군가 “10세기의 고려가 수, 당, 금, 몽고 족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안했다고 말했는데 웃기는 소리. 근세고려의 서희와 거란의 요나라가 협상할 때도 요나라는 자신들이 고구려의 한 지류라고 밝혔지

결과적으로는 협상이 잘 마무리되어 강동6주도 얻었고 말야. 그럼 북위,유연 등의 배달갈래 선비족과 금,청 등의 배달갈래 여진족, 원의 배달갈래 몽골 등이 쥐나 짱골라를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든?

그리고 그 당시의 노예계층인 쥐나 짱골라들이 선비족과 여진족,몽골족 등을 자신들의 동족이라고 지랄하든. 오히려 노예 짱골라주제에 지들의 상전인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멀리 했지.

그럼 짱골라가 배달갈래 흉노,선비,돌궐,거란,여진,몽골,숙신,예맥 등과 가깝겠냐? 아니면 우리가 그들과 가깝겠냐

서북,서남,동북공정하는 짱골라가 무척이나 합리적으로 보이나 보지? 억지를 마구 부리는 짱골라들이 진실로 맞다고 생각하니? 아주 개지랄을 한다

상쥬 06-19

정말 웃긴다. 짱골라가 우리보다 역사가 깊단다. 정말 웃기네. 짱골라들이 자기들 조상이라 우기는 치우천황이나 복희씨,신농씨,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가 배달민족인데 뭔 개소리인지

그리고 짱골라들의 4000년전의 황하문명보다 6000년전의 홍산배달문명이 먼저라는 것 모르냐? 그리고 홍산배달문명을 발견한 것도 독일이나 러시아학자들이란 것도 ㅋㅋㅋ 정말 웃긴다

짱골라들이 왜 세계 여러 학자들의 유적방문조사 자체를 막는건데… 왜 역사공정하는 것인데.. KBS역사스페셜에서도 홍산배달문명을 다루는 것 나도 봤다

그리고 중앙일보,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사의 기사도 봤고. 정말 웃긴다. 홍산배달문명에 대한 논문은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리고 한웅배달국이나 단군조선국이나, 상(은)나라 등의 동이족의 국가가 짱골라의 한나라보다 훨씬 먼저 건국된 나라들인데 뭔 개소리인지….

졸본부여(고구려)의 건국이 진시황의 진나라보다 5,6년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도 진나라의 뒤에 세워진 유방의 한나라보다 먼저잖아(-_-)

쥐나 사서에도 졸본부여(고구려)역사 900년이라 나오고 광개토태왕비의 비기에도 그렇게 되어 있잖아. 그런데도 식민사관학자들이나 괴독들은 고구려가 신라보다 늦게 건국한 700년역사라 우기니

아다루 06-19

그 사료적 가치를 세계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로 청대(淸代) 건륭(乾隆)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叢書)로 무려 7만9000여권에 달해 선진(先秦)시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청나라 역사서 <사고전서>에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네요

이전 중원대륙에 퍼져있는 모든 역사서들 7만9000여권을 모아 편찬한 청나라 역사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사고전서>의 원전들인 모든 역사서를 부정한다는 말과 같네

하기사 글을 읽을 의지도 없고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논리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힘들겠네요

천인합 06-19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가 짱골라지. 그 다음이 쪽바리가 되려나….어쨌든 배달일파 쪽 바리가, 짱골라를 제외한, 몽골이나 한반도,만주,연해주,쥐나북부 등의 많은 형제 배달민족들을 아울렸으면 배달의 연방이 아시아를 지배했을지도 모르지. 짱골라를 죽이는 것은 당연하고도 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쪽바리는 같은 형제 배달민 족들을 수탈하고 종군위안부,생체실험 등을 자행하고 마니 스스로 정당성을 말아먹고 말지. 배달중심세계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지. 만약 쪽바리들이 인화로 형제 배달민족들을 아우려 했다면 굳이 역사공작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배달민족들이 하나로 되는 순간 배달국이나 고조선,몽골의 원,고구려,백제,발해,거란의 요, 여진의 금,후금 등 배달과 그 수많은 자랑스러운 갈래왕조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쓰레기 한나라,송나라,명나라의 짱골라 세 왕조들을 제외한, 모든 배달과 그 갈래왕조의 조상,역사,발명,업적 모든 것이 다시 배달의 품으로 돌릴 수 있었단 말이다

한 마디로 죽 쒀서 개(짱골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버둥쳐봐라. 우안네스,소나무 이 짱골라 쉐이들. 10000년의 역사동안 한나라,송나라,명나라 다 합쳐봤자 1000년이 채 되려나…

나머지 9000년의 역사가 배달국과 그 갈래왕조들의 업적이다. 얼마나 못 났으면 남의 조상,업적,역사 등을 훔치가려고 지랄이냐? 징기스칸도 짱골라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로다

민재식 06-19

맨날 남이 이룩하면 그 밑에서 노예생활하다 주워먹기 바쁜 땅거지같은 새끼들 아주 개지랄을 떠네. 이만 니들 바퀴벌레의 집인 변소로 들어가라. 니들 몸에 나는 구린내 에 머리가 어질하다 {-_-}

맨날 언론통제하고 야후나 구글에도 협박하더만. 티벳,위구르를 비롯해 수천만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짱골라들! 진화가 덜된 해충 바퀴벌레같은 하루살이야

거두리 06-19

현재 몽골내각이 한국에게 연방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 그들은 몽골내의 유적들을 한국학자들에게 개방하고 공동연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2002월드컵이후로 터키와 한국이 서로에 대해 교류확대를 원하고 있다는 것, 한-몽골국가연합에 관한 신문기사와 정황들에 관한 사이트주소도 나와있으니 보고나 말하라는 것. 식민사관학자들이나 괴독같은 이들이 있으니 북한을 잊어버리고 조선족도 잊고, 까레이스키도 잊고 나중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코딱지만한 나라를 지방색을 들먹여 또 나누어지기를 바라겠지. 만주나 연해주,하북성,산동성 등 옛 고토회복은 커녕 끝내 한민족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만 바라나 보지…

tripleh 06-21

글쓴님은 성경을 읽은게 아니군요; 전혀 성경에 대한 반박이 아닌데 ;

히어로 06-22

날조된 성경구절을 읊어야만 ㄱㅐ독에 대해 아는 것인가? 정말 웃기는 말이네. 그리고 쓰레기 ㄱㅐ독의 성경 또한 4세기이후 멋대로 조작됐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 대부분이 중동,아시아 등 동양의 종교에서 표절한 것이잖아. 그러니 tripleh 너는 중동,아시아 등의 원전을 읊어야 진정한 성경을 읽은 것이 되는 거야. ㄱㅐ독의 책이 아닌 표절성경의 원전을 말이야. 논리적으로 반박을 못 하니 그런 식으로라도 자위할 수 밖에. 불쌍한 ㄱㅐ독들…

woo2038 06-22

기독교는 없어져야한다 빨리 없어져야 한다

bluesky 06-22

예수는 인간으로 살아 왔고 사후 사람들에 의해서 신격화 되었다. 신격화 시켜야만 돈도 벌구 명예도 얻구 사랑도 욕구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쓰레기 같은 개 독들 때문에 포장되었다.불쌍한 예수!

본 블로그의 /종교/면에 있는 [ 불교TV 특집대담 – 리차드기어, 현각을 만나다 ], [ MBC 뉴스후, “먹사님 우리 먹사님” ],

[ ‘뉴스후’, 국내 최초 ‘갑부 종교인’ 비리 밝힌다 ], [ 뉴스후, 세금 안 내도 되는 사람들 2 ],

[ ‘기독이 말하는 노스님의 괴철학’이란 억지를 보고 ], [ 불교의 우주론과 현대물리학-현각스님 ], [ KBS 스페셜, 禪 이야기 3부작 ],

[ 기독교의 행적과 나아갈 길 ], [ 크리스마스의 비밀과 동지 ], [ [스크랩] 祝) 음란 세계 선수권 단체전 우승 한국 목사들 ],

[ 이순신은 사탄… ], [ 파룬궁 ‘미디어제국’ 건설해 쥐나에 도전 ], [ 중세의 잔혹한 고문과 그 도구들 ]을

보다 자세한 것은 [ 몇 가지 추려본 간략한 게시물 목록들 ]을 참조하세요.

성경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무어라 해도, 바로 성경의 내용이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곧 거짓이 없는 진리의 주장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위에서,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모든 성경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이 주장하는 바의 모든 내용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던지, 아님,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른지 상관없이 그것은 다 진실임을 인정하는 것임니다.

믿지 못하는 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당히 비논리적이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얘기하는 내용이 90%가 이루어지고 사실임이 밝혀졌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 나머지 10%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인에게 있어, 성경이 무오하며, 절대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근거가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성경이 얘기하는 창조의 사건,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을 둘러싼 국가들과의 이야기,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 아들 예수를 통한 성취, 그리고, 그의 교회의 시작과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의 이야기와 더 이상 악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의 메시지.. 이것들을 우리가 왜 믿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성경을 믿음으로써 내 삶이 변화 받았기에, 나는 그것이 진리이다 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적혀졌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무궁무진 합니다. 저도, 성경을 통해, 삶이 변화됐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된 삶 자체가 성경의 모든 내용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좀 약할 것입니다. 변화된 삶이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이고, 무신론자들도 얼마든지 다른 책들을 통해, 가치관과, 삶의 질이 변화했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은 성경의 진실됨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고 합니다. 신앙심있는 대답이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변론이 되지는 못합니다. 무엇을 믿는 다는 것이 곧 그것이 진실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라는 것과, 믿음을 타당성있게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벧전 3:15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셋째, 저는 이런 변론을 자주 강단에서 듣곤 했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실되다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이 그런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우리가 왜 성경이 진실됨을 믿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3:16

(딤후 3: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물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됨을 믿고, 그 안에서 서로 진리됨을 강조하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성경이 진리됨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성경이 스스로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 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순환 논증의 오류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이것도 그렇게 적합하지 못합니다.

넷째, 성경의 진실성으로 성경의 고유성과 내적 일관성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의 66권의 책들이 다른 저자들과 다른 시대에 쓰여졌고, 심지어 다른 언어로 쓰여졌지만, 고대 어떤 문서나, 문건보다도 그 안의 주제와 소재, 방향, 해답은 놀랍게도 매우 일관적입니다. 40명의 다른 작가들이 2000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적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묶음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하나님의 법도와 계획,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 그리고, 그분의 깊은 마음까지 일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책은 이것들을 다른 색깔들로 매우 독특하게 개성있게 대하고 있지만, 하나의 목소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일관성이라 하면, 내용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보존성에서도 매우 일관적입니다. 매우 오래된 고대 문서라 수천세기에 걸쳐 다시 적어지고 손으로 복사 되어 왔지만, 방대한 양의 문서들이 현재까지 발견되었고, 그 오랜 세월동안 그 문서들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 비평가들은 적어도 성경이라는 문건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인정하진 않아도, 고대의 문학서 중에서 아주 고유함을 인정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정확히 그 내용이 전술되었음을 인정합니다.

다섯째, 성경의 사실성을 외적인 증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고학은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지명과 장소들의 사실성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에서 기적으로 무너진 여리고성이 한때는 허무맹랑한 신화라고 그랬지만, 20세기 들어, 여리고 성을 찾았고 그곳이 성경에 언급된 사실에 가깝게 무너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가나안 땅의 성들도 너무 오래전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학자들이 그랬지만, 고대 문건에서, 무역상들이 이용했던 길에 있던 성들의 이름으로 언급됨으로 실제로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나오는 왕들의 실제 존재성도, 계속 밝혀지는 고고학적 유물로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은 성경의 주장이 사실임을 어느정도 뒷받침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고학이 모든 것을 다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바벨탑을 찾아낸 것도 아니고, 노아의 방주를 찾아 낸 것도 아닙니다. (물론, 찾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학계에서는 인정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고학 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무리가 있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확실하지 않는 잣대를 가지고, 무엇이 확실하다라고 밝혀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섯번째, 우리는 성경이 진실되다라고 성경의 성취 되어진 예언을 통해 믿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예언들 중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 쓰여질 때에는 저자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지만 후세대에 사실로 일어난 일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 같은 곳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세계정세를 그리고 있는데, 특히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제국의 성립을 여러가지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읽었으면 알 수 없었겠지만, 후대사람들은 예언이 성취되고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내용들입니다.

또한 선지서들 중에는 앞으로 일어날, 핵전쟁이나, 미생물전, 세계 정보화,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세계통합, 인간의 기계화, 미사일전 등, 과거에 살았으면 알 수 없었을 내용들이지만 현재에 들어 가능하게 된 것들이 많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아도 과거에 쓰여진 성경의 내용들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라는 것은 그것이 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에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영역이지만, 성경안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어 그것들이 미래를 예측했고 앞으로도 예측할 것이다라고 하는 논증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바이블 코드 라는 부제로 찾아 보시면 됩니다.)

이것들을 모든 합치면, 과거의 어떤 책들보다도 성경은 더 진실되고 믿을 만하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로 손색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것들로 성경이 100% 진실임을 밝히기는 여전히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엇이 진실임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입증하냐, 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삼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어떠한 것이 100% 참이냐 결정할 수 있냐 이것이 쉬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면, 그것은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인데, 하나의 절대적 기준을 검증되지 않은 다른 기준으로 참이다 말하는 것은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담 성경이 진실임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성경의 전체 적인 내용을 진실로 받아 들일때, 우리의 세계관이 논리적으로 성립이 된다.

매우 주관적인 해석같아 보이지만, 사실 매우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창세기에서 나타났듯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했습니다. 신약의 창세기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을 보면, 말씀이 하나님이셨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로고스, 곧 말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고, 논리라고도 해석이 되는 이 단어는 바로, 우리 세계관의 유일한 기준점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하는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있고, 의미가 있으며, 소통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계의 창조 바탕에 말씀, 논리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로고스, 논리의 범주 안에서 진행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법칙을 가지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일관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하나님을 통해 인간들과 세계 역사속에 펼쳐지는 성경의 내용들은 모든 것들의 가장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점의 의미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의 구축점으로 이 성경이 손색이 없고, 그것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성경이 100% 진실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가 과거의 형태로 계속 진행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곧 예수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시작과 나중이라.

우리는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근본 바탕의 의미에서). 갑자기 세상이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그것을 의미있게 하는 부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부정하고 긍정하는 것, 어떤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할려고 하는 이 모든 수고도, 로고스라는 바탕이 있기에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의미있는 자유는 오로지, 로고스, 창조주, 그리스도 예수,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의 은혜와 공의의 세상안에서만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법정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 제9계명과 사법권력 남용(이병주)

지상의 심판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중략) 셋째는, 사법 권력으로 지상의 심판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당당한 사법권 행사를 하지 않고 정치적 권력, 경제적 권력, 언론 권력의 눈치를 보는 간신 노릇을 하면서 가해자를 숨겨주고 피해자를 농락하는 ‘심판권의 왜곡(歪曲)’입니다. 이것은 최근 장자연, 버닝썬, 김학의 사태에서 나타나는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의 양상입니다.(본문 중)

이병주(변호사, 기독법률가회)

“We all lie.”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의 주제가입니다. We all lie.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살면서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짓말은 나쁩니다. 그러나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것일까요? 저는 5공화국 시절 대학교 1학년 때, 종로에 데모를 하러 갔다가 현장에서 전경에 붙잡혀 경찰서에서 이틀을 자고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유치장에 있었던, 강직하기로 유명한 어느 대학의 2학년 학생 한 사람이, ‘나는 비겁하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데모하러 나왔다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요? 저는 비겁하게 “종로서적에 친구랑 책 사러 나왔다가 억울하게 붙잡혔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경찰들이 그 말을 잘 믿어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틀 후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지만, 거짓말이 항상 나쁜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자기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진실)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자가 사실대로 고백하지 않고 그 죄를 뻔뻔하게 부인하는 권리를 헌법이 보장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같은 헌법 조항의 앞부분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 고문금지의 원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권력을 가진 간신들이 끌려온 충신들에게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고는 인두로 사람의 살을 막 지지지요? 그러면 죄가 없는 사람들도 고통을 못 이겨서 역모를 저질렀다고 거짓 자백을 하고는, 처벌받아 죽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페인 종교재판소를 비롯해서 수천 년 간 모든 문명의 ‘자백주의’ 형사제도는 진실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문과 폭력을 양산했습니다. 그래서 근대 민주주의는 ‘증거주의’ 형사제도를 채택하면서 자백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사람에게 자기의 죄에 대해서 부인하고 거짓말을 할 권리를 보장한 것입니다.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 사법적 불의를 낳고, 거짓말을 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사법적 불의를 억제한다’는 대단한 역설입니다. 그러나 이 원칙에는 세상의 심판권자들,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고통과 피눈물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죄와 벌, 타인을 심판하는 자들의 거짓말

법정에서 선서하고 거짓 증언을 한 사람들은 위증죄로 처벌받습니다. 세상에서 거짓말로 이웃(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들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 사람들을 처벌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심판권을 가진 자, 경찰과 검찰과 법관과 정부의 권력자들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서 바울 사도는 세상의 심판 권세를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칼’이라고 말하며 그 권력의 칼에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은 기독교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을 넘어 ‘권력자의 바이블’로 칭송을 받습니다. 성경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상의 심판권자들은 아주 뿌듯합니다. 하늘의 심판권을 위임받은 지상의 심판권자, 하나님의 심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의 심판은 눈에 보이고, 하나님은 어느 죄나 우리가 예배 때 눈만 감으면 쉽게 용서하시지만 세상의 권력자들은 결코 우리의 죄를 눈감고 용서해 주는 일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지상의 심판권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심판권자보다 더 힘이 센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상의 심판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적인 권력의 힘에 취하여 그 권력을 휘둘러 죄 없는 자의 죄를 만들어내고 죄 있는 자의 죄를 사하여 주는 ‘심판권의 남용(濫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세력의 국정농단에서 보았습니다. 지상의 인간이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착각한 사례입니다. 둘째는, 당파적이고 집단적인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집단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공격하고 왜곡하고 제거하려는 ‘심판권의 오용(誤用)’입니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 다수자와 소수자의 건강한 공존을 부정하고 상대 세력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제거를 추구하는 정치적 극단주의와 그 극단주의에 편승하거나 주도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셋째는, 사법 권력으로 지상의 심판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당당한 사법권 행사를 하지 않고 정치적 권력, 경제적 권력, 언론 권력의 눈치를 보는 간신 노릇을 하면서 가해자를 숨겨주고 피해자를 농락하는 ‘심판권의 왜곡(歪曲)’입니다. 이것은 최근 장자연, 버닝썬, 김학의 사태에서 나타나는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의 양상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 마음대로 지상의 심판자가 되어 전당포 여주인을 살해했다가, 스스로 그 죄책감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지상에서 ‘심판을 받는’ 평민들은 죄를 지으면 벌 받는 것을 무서워하고 벌벌 떱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권력을 위임받아 ‘심판을 하는’ 권력자들은 죄를 지어도 벌 받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뻔뻔해 집니다. 자기 자신이 지상의 심판권자이니, 지상에서는 자기를 심판할 자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버닝썬 사태, 장자연 사태나 김학의 사태 등에서 권력이나 언론의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경찰이나 검찰의 사법 권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비굴한 간신 노릇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상의 심판권자들의 거짓말에 대한, 지상에서 심판받는 자들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인간의 본성상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헌법은 거짓말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경찰과 검찰과 법원과 언론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이것을 원용하여 ‘우리도 본성상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으니, 좀 봐 달라’고 핑계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의 헌법과 법률은 사람이 ‘자기에 대하여’ 거짓말(거짓 증거)하는 것을 허용하지만, 성경의 십계명과 법 제도의 원칙은 사람이 ‘이웃에 대하여’ 거짓말(거짓 증거)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일반인들도 세상에서 처리되지 않는 벌에 대해서는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절규를 하지요. 기독교인들은 사람에 의한 지상의 심판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하늘의 심판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데에만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다 묻지 않고 그냥 무조건 용서만 해주시는 분이라는, 하나님은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의 법정은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세상의 재판은 무섭지만 하나님의 재판에는 이미 면죄부를 받아놓았으니 전혀 두렵지 않다는 잘못된 확신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사실상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지상의 법정에서나 하나님의 법정에서나 유효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이나 형사사법제도의 취지 때문에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는 것’, 무고한 이웃을 처벌받게 하거나 피해자의 억울함을 가중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법으로나 세상의 법으로나 허용되지 않습니다. 지상의 권력자들은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석에 앉아 심판대에 선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선과 악, 죄와 벌을 판단하는 일에서 하나님 같은 힘을 행사합니다. 이 사람들은 쉽게, 남은 심판하면서 자신은 심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는 알면서 자기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은 벌하면서 자기는 벌 받지 않으려는, 죄와 권력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세상의 법정’을 다스리는 지상의 심판권자들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죄와 벌에 대해서 증언하는 ‘하나님 법정의 증인’들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권력자가 무고한 자를 벌 받게 하는 거짓심판도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웃에 대한 거짓증언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요, 세상의 권력자가 피해자의 피눈물을 외면한 거짓심판도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웃에 대한 거짓증언으로 그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탄핵 등 최근의 역사에서 위의 첫째 유형, 즉, 최고 권력을 가진 지상의 심판권자들이 행한 ‘심판권의 남용’에 대해서, 시민의 힘과 민주주의 법제도를 다 동원하여 심판을 내린 놀라운 경험이 있습니다. 지상의 법정에서는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고 하늘의 법정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절망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우리들 인생의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는, ‘아, 하나님이 지상의 신원(伸寃)을 내세로 미루지 않고 현세에서 풀어주시는 때도 있구나’하는 위안을 주며 믿음을 더 강하게 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법 권력의 최고봉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과 재판 또한 지상의 심판권자가 지상에서 심판받을 수도 있다는,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세상의 법과 권력은 모두 악이라는 비난은 지나치게 절망적이고 일방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과 권력을 무조건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적 죄를 눈감고 세상의 악을 조장하는 일입니다. 힘없는 사람의 죄보다 힘 있는 사람의 죄가 더 큰 이유는, 힘없는 사람은 자기를 해칠 뿐이지만, 힘이 큰 사람은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고 거짓 심판하여 이웃을 해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We all lie. 연약한 우리는 자기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웃에 대하여 거짓으로 증거하고 거짓으로 심판하지 않아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습니다. 무고한 자를 해치는 거짓 증거와 억울한 피해자를 외면하는 거짓 심판들은 모두 하나님의 법정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지상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 타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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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6, 신 5:20)

출애굽기 20:16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쉐케르’는 ‘거짓 맹세, 속임, 허위, 사기’라는 뜻이며(출 5:9, 레 19:12, 렘 5:31, 20:6, 29:9), ‘샤베’는 ‘텅 빔, 근거 없음, 무가치,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욥 15:31, 시 31:6, 41:6, 사 1:13, 말 3:14).

1. 제 9계명의 해석

제 9계명은 거짓을 배격하고 ‘진실의 존엄함’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가 이웃에게 끼치는 해악(害惡)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 줍니다. 특별히 제 9계명은 사회적으로 가장 힘없는 약자들(가난한 자, 자객, 과부, 고아)이 그 거짓말 때문에 매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공동체 내에서 그들을 각별히 보호하게 해 주는, 극진한 사랑의 계명입니다

(1) “말”과 “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의 혀를 통해 그 입술의 열매인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사 43:21). “입술의 열매”란, 곧 하나님께 바치는 찬미의 제사입니다(히 13:15). 하나님께서는 찬송가운데 거하십니다(시 22:3). 찬송은 수송아지로 드리는 제사보다 나은, 자기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시 9:30-31, 롬 12:1). 반면에 신구약 성경에서는 사람의 세 치 혓바닥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고 심각한가를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를 낸 것입니다(전 7:29). 혀를 잘못 쓰면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지옥 불이 됩니다(약 3:6). 말에 실수가 없다면 온전한 사람입니다(약 3:2). 말이란 포도주와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을 오래 두고 익히면 익힐수록 좋은 법입니다. 조급하게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이웃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교회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2) “거짓 증거”

“거짓”(lie, untruth)은 일반적으로 ‘사실과 어긋나게 말하거나 사실처럼 꾸밈’이란 뜻입니다. 남을 속이기 위하여,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거짓의 반대말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 뜻을 갖는 사실(fact), 혹은 ‘거짓되지 않고 참된’이란 뜻을 갖는 진실(truth)입니다. “증거”는 히브리어 ‘에드’로, ‘목격자, 증인, 증거’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법률적인 용어로, 법정에 서서 진술하는 증언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거짓 증거”는 법정과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죄를 가리고 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사 5:23).

① 모든 거짓의 아비, ‘중상자 마귀’

중상(slandering)은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킴’ 혹은 ‘남에 대하여 좋지 못한 말을 만들어 그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중상은 마귀의 짓입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인데, 그 뜻은 ‘고소자, 비난을 많이 하는 자, 거짓되이 비방하는 자, 입이 험한 자’라는 뜻입니다(참고-욥 1:9-11, 2:4-5, 계 12:10下). 예수께서도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중상하는 것은 혀로 짓는 살인죄와 같습니다. 뒤에서 남의 흉을 보거나 남의 잘못을 본인이 없을 때 말로 그 명예를 해(害)치는 것은 모두 중상에 해당합니다. 혀로 놀리는 말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거스틴은 ‘혀가 칼보다 더 큰 상처를 입힌다’라고 말했습니다. 짐승들은 사람이 길들이지만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고, 걷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약 3:7-8).

② 거짓 증거를 물리치는 비결

모든 거짓말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진실(眞實), 곧 정직입니다. 정직은 모든 도덕의 중심이요, 다른 모든 덕의 기본입니다. 잠언 11:3에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정직한 사람은 바르게 살아 앞길이 열리지만 사기꾼은 속임수를 쓰다가 제 꾀에 넘어진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요, 하나님만이 참되십니다(시 116:11, 롬 3:4). 사람은 미련하여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도 그 거짓말에 스스로 속아 넘어갑니다(잠 26:27-28).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자기 꾀에 배부르는 것이니, 자기에게 해만 끼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잠 1:31).

2. 제 9계명의 세부 율법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 20:16, 신 5:20)라는 제 9계명은 출애굽기 22:21-27, 23:1-3, 6-9과 신명기 24:8-25:4에서 확장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1) 거짓 증거 금지 규정(출 22:21-27, 23:1-3, 6-9)

①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출 22:21-27, 23:9)

거짓 증거를 금하는 제 9계명은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어 무시당하기 쉬운 사람들이 합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② 거짓 증거를 금하는 규정(출 23:1-3, 참고-레19:16)

율법에서는 거짓 증거가 살인과 관계될 때, 이는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못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신 17:6-7). 사실이 아닌 거짓말로 해치려는 상대방과 그 주변사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이간질을 할 경우, 결국 불공평한 판단을 받은 그 이웃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라(출 23:1)

“허망한 풍설”은 히브리어로 ‘셰마 샤베’이며, ‘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유언비어)이라는 뜻입니다. 진실이 아닌 허망한 풍설을 여기저기 전파함으로 여론을 형성하여,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생명과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악행입니다.

㉡ 악인과 연합하지 말라(출 23:1)

이것은 ‘악한 자에게 너희 손을 건네지 말라’(do not join your hand with a wicked man)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죄 있는 편에 합세하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출 23:1)

‘무함’(誣陷: 속일 무, 빠질 함)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날조하여 상대방에게 억울한 죄를 씌우고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 23:2)

대세(大勢)에 휩쓸려 좇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악을 행하는 다수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자를 따라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不正當)한 증거를 하지 말라(출 23:2)

많은 사람 앞에서 군중 심리에 휩쓸려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봇은 이세벨이 조작한 거짓 증거로 모함을 받아, 군중 심리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왕상 21:1-16).

㉥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출 23:3, 6)

법정에서는 빈부와 관계없이 공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편벽(偏僻: 치우칠 편, 치우칠 벽)은 ‘한쪽으로 치우쳐 공평하지 못함’이라는 뜻이며, 두호(斗護: 말 두, 보호할 호)는 ‘남을 두둔하여 보호함’이라는 뜻입니다. 재판관이 재판할 때, 가난하고 힘 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유리 혹은 불리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

뇌물을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합니다(출 23:8). 하나님께서는 뇌물에 의해 움직이시거나 뇌물에 넘어가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신 10:17, 대하 19:7, 참고-욥 34:19, 행 10:34, 롬 2:11, 갈 2:6, 엡 6:9).

(2) 약자 보호에 관한 규정(신 24:8-25:4)

① 문둥병에 관한 네 가지의 각별한 명령(신 24:8-9)

거짓말에 관한 세부 율법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문둥병에 관한 규례가 언급되었습니다. 문둥병은 레위기에서 길게 다루어졌는데(13-14장, 총 116절), 신명기에는 단 두 구절에서 네 가지의 각별한 명령만 있을 뿐입니다(신 24:8-9). ‘문둥병에 관해서 매우 잘 지키도록 조심하라’는 첫 명령에 이어(신 24:8上), 그것을 위해서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힘써 빠짐없이 실천하라’라는 두 번째 명령(신 24:8中), 그리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주의하여 행하라’라는 세 번째 명령입니다(신 24:8下). 마지막으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지니라”라고 덧붙였습니다(신 24:9, 참고-민 12:1-16). 문둥병에 관한 것이 아주 중요하므로 그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된 원인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원인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했기 때문입니다(민 12:1-2, 8). 비방(誹謗: 비방할 비, 헐뜯을 방)은 ‘자신의 탐욕을 이루려고 시기가 가득하여 남을 깎아 내리고 욕하는 것’입니다. 비방의 내용은 모두 사실과 전혀 무관하거나 과장되게 부풀린 ‘거짓말’입니다(신 22:14-17, 눅 5:30, 행 13:45, 벧전 2:12).

② 가난한 자들의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신 24:10-15)

삶의 현장에서 무시 당하기 쉬운 가난한 자들에게 이웃 사랑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따라 의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불의한 자로 낙인 찍혀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자를 아끼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규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사정과 기도를 멸시치 않으십니다(시 102:17).

㉠ 가난한 자의 호소를 통해 축복을 받는 자

돈을 빌려 준 사람(채권자)이 돈을 빌린 사람(채무자)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서 전집물(담보물)을 취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신 24:10-11). 특히 가난한 자일 경우, 그 전집물로 옷을 취하되 낮동안은 가질 수 있으나, 해 질 때에 돌려주라고 규정하였습니다(신 24:12-13). 겉옷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운 밤에 덮고 자는 이불로도 사용되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기 때문입니다.

㉡ 가난한 자의 호소를 통해 저주를 받는 자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의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끌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습니다(신 24:14-15). 만일 빈궁한 품꾼이 사모하는 품삯을 받지 못하므로 여호와께 호소하면, 그 죄가 품삯을 주지 않은 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가 뒤따릅니다(신 24:15下, 참고-신 15:9)

③ 객(나그네)과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는 규정(신 24:17-22)

나그네는 자기 몫으로 주어진 땅도, 집도, 법적 권리도 없으므로, 어디를 가든지 무시 당하거나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는 아버지와 남편을 잃어버려 생계를 보장받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결코 압제받는 일이 없도록, 출애굽기 22:21에서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도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거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서 속량받은 백성’임을 기억하라는 당부였습니다(신 24:18, 22).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시 68:5, 146:9).

3. 거짓 증거에 대한 개념의 복음적 확대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18-19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거짓 증거”를 언급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거짓 증거’의 개념이 보다 확대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4에서는 하나님을 아노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일서 4:20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그러므로 거짓 증거를 하는 자는 마귀를 따르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택하신 자들이 ‘거짓’에 미혹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3-24).

4. 제 9계명을 범한 자의 최후

(1)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 ‘게하시’

게하시는 ‘계시의 골짜기, 환상의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사에 의해 문둥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다시 돌아와 예물 받기를 청하자 엘리사는 맹세하고 받지 않았으며, 다시 강권하였으나 끝까지 사양하였습니다(왕하 5:15-16). 그러나 나아만의 뒤를 좇아가, ‘우리 주인이 나를 보내면서,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왔으니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고 하셨다’라고 거짓말 하였습니다(왕하 5:21-22). 그러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었으며, 게하시는 그것을 취하여 집에 감추고 엘리사에게 돌아왔습니다(왕하 5:23-24).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는 엘리사의 물음에 게하시가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왕하 5:25)라고 답하자, 이에 엘리사가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왕하 5:26)라고 추궁하였습니다. 여기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는 현대인의 성경에서 “내가 영으로 그곳에 있었던 것을 너는 깨닫지 못했느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라고 책망한 후,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자 그 몸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습니다(왕하 5:27). 거짓말은 자신과 가족들을 순식간에 망하게 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9:22下)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임수를 쓰다가는 자기 꾀에 넘어지고 결국 망합니다.

(2) 아나니아와 삽비라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바치자(행 4:36-37),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은혜를 받아서 소유를 팔아 헌금을 하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행 5:1). 그런데 다 바치기로 약속했지만 아까운 마음이 들어, 부부가 한 마음으로 돈 일부를 감추었습니다(행 5:2). 남편 아나니아가 땅 값 얼마를 사도들에게 가져가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자마자,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4下)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고,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행 5:5). 아나니아를 장사한 후 3시간쯤 지나 그 아내 삽비라가 남편이 죽어 장사된 줄도 모르고 들어왔을 때, 베드로가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라고 하자, 삽비라가 “예, 이뿐이로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행 5:7-8). 이에 베드로가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행 5:9)라고 말하자, 삽비라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행 5:10上). 이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드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행 5:1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은 저들의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 하는 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큰 죄를 지속 끝까지 속이다가, 갑자가 급살(急煞: 갑자기 닥치는 재앙과 불운)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5. 제 9계명의 구속사적 교훈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제 9계명을 범하는 것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자는 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창 3:3, 참고-창 2:16-17). 뱀도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3에서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간계”는 헬라어 ‘파누르기아’로 ‘간사함, 거짓 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라고 물으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창 3:12). 여기에서 아담은 범죄의 일차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이차적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범죄의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고서도 하와를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에덴 동산에서의 온갖 거짓말이 인류를 사망의 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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