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의 삶이 순탄치도 평범하지도 않았고 내 의지와는 달리 그 어떤 운명적인 힘,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끌려 왔던 것이다. 비록 힘이 들고 많은 고난이 따랐지만, 나는 내가 지고 갈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무겁다고 내려놓으면 주님께서 대신 지고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충남 연기군 서면 기룡리의 산기슭 골짜기에 전은혜 원장(73)이 설립한 은혜기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가족과 이웃, 사회에서 소외된 정신질환자, 알콜 중독자, 질병을 가진 노인 1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는 30년간 한결같이 기도원을 지켜온 전은혜 원장이 있다.
“기도원의 모든 환자들이 치료되고, 가정을 꾸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고백하는 그의 ‘사명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령 받고 질병 치료, ‘베드로’의 사명을 받기까지
전은혜 원장의 첫 신앙생활은 고향인 충북 청원에서 시작됐다.
18살 꽃다운 나이 아버지를 여읜 직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을 날을 세던 그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교회였다. ‘죽기 전 교회에 나가 예수님이나 믿어보자’란 생각에 부축을 받아 간 곳은 이웃마을의 산수교회였다.
마침 서울의 여러 목회자들과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인도로 이뤄지던 부흥회에서 그는 뜨겁게 기도하던 중 성령을 받고 병을 치료받는 체험을 하게 됐다.
그는 “하나님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낙망해 돌같이 차갑고 단단해진 내 심령을 병든 몸으로 만들어서 교회로 나를 부르시고 불같은 성령체험으로 영과 육을 강건케 하셨다”며 “나같은 죄인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이후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 열정만으로 신앙생활하던 어느날 그는 산기도 중 정신이상 상태에 빠지게 됐고, 충북지역에서 성령운동을 하던 이름모를 이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전 원장은 “그에게 기도를 받고 나서 평상시처럼 온전한 정신이 됐다”며 “그는 ‘너는 베드로 같은 사명을 받았노라. 너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며 간절히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고 회상했다.
불순종의 삶을 뒤로 하고, 기도원 설립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야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손종의 길을 걸었던 삶은 더욱더 곤고해졌다.
무당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시집살이, 잘못된 인연을 끊고 도망쳤지만 맞딱뜨린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서울 왕십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건강이 악화돼 쓰러지기도 수차례.
결국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끌림으로 그는 1982년 왕십리의 한 허름한 공간에 기도원을 설립하게 됐다. 이곳을 시작으로 4년 후에는 지금의 연기군 서면 기룡리로 기도원을 이전했다.
설립 초기에는 기도하고 예배하기 위해 세운 곳이었지만, 점차 중증 환자, 정신질환자, 알콜 중독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전 원장이 기도해주면서 병이 나은 환자들이 늘어 각지로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족들이 병자를 두고 떠나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오갈 데 없는 그들을 내칠 수는 없었다. 수백 명을 먹이고 입히며 기도원을 꾸려가면서 빚은 쌓여갔지만, 그는 ‘이들을 기도원에 보내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며 순종했다.
기도원 운영의 어려움에도 병원, 요양시설 등 개원
어렵게 운영해오던 기도원이 1995년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이 바뀌면서 수백 명의 환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금지됐다. 환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주소를 찾을 수 없는 사람만 남겨놓고 보니 70여 명이 남았다.
전 원장은 “초창기 충분한 사전계획 없이 사명감 하나로 시작한 기도원 운영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일으켰고, 법과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벽에 부딪힌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남은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는 늦깍이 나이에 쉽지 않은 여건에도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 2003년 동아인재대학에서 선교복지 학위를 취득했다.
또 현재 기도원 외에 의료법인 ‘은혜기독의원’, 노인 장기요양 보호시설인 ‘은혜의집’,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 ‘늘푸른집’을 개원해 환자 복지에 만전을 기했다.
그는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믿고 따라준 봉사자 및 원생들과 무한하신 하나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30년의 목회사역을 회고하며, 그는 지난 10월 73년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 <하나님이 택한 여인>을 출간했다. 어릴 적 가족들의 이야기부터 다양한 성령체험의 간증, 기도원 설립과 미국 간증집회 사역까지 그의 신앙 열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윤화미]
1986년도 은혜한인교회에서 설립한 은혜기도원은 풀러튼에 있는 교회에서 동쪽으로 약 40여 마일 떨어진 코로나 시에 위치해 있다.
은혜기도원은 LA 근방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산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산이 아름답고 나무가 많아서 기도원 입구엔 10여 채의 별장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기도원 입구에 들어서자 좌측 언덕에 자몽(Grapefruit)과 감, 아보카도 등이 가을 햇볕에 익어가고 있었다.
오정상 목사(은혜기도원 원장)와 오준상 전도사(관리 책임자)의 안내를 받으면서 기도원 안에 세워진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과목들과 숲이 우거져서 공기가 좋고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몇 분의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고춧잎을 따 삶아서 건조하고 있었는데 “수양회로 방문한 손님들의 밥상에 오를 반찬이다.”라고 말해 준다. 한국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잠시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젖기도 했다.
김창호 기자
▲은혜기도원은 언제 설립 되었으며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
1986년 5월 30일부터 은혜한인교회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이 기도원은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있으며, 코로나 시 관할이다. LA에서는 한인 기도원 가운데 가장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은혜한인교회에서는 약 40분 거리에 있다. 기도원 크기는 80에이커로 자몽과 감나무가 200여 그루 정도 있는데 자연의 먹을거리가 풍성한 기도원이다.
다른 교회 성도나 은혜한인교회 성도 누구나 사용 가능하며 단체나 개인들이 기도원을 찾아올 때는 1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 기도처나 숙소의 규모는 어떠한가?
개인 숙소는 30여 개가 있고 단체로 묵을 수 있는 곳은 12개동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 처소가 있으며 많은 인원이 모여 행사를 할 수 있는 야외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1인 1박에 2식을 기준으로 개인당 10불이다.
▲기도원 관리는 누가 하는가?
원장 오정상 목사는 한국과 시카고 등지에서 기도원장 생활만 60여 년을 한 기도의 용사이다. 자연과 더불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있다는 오목사, 기도원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오준상 전도사, 각 분야에서 숙달된 분들이 잘 운영해 나가고 있다.
▲기도원 환경에 대해 소개해 달라.
병풍처럼 둘러선 빽빽한 산림을 배경으로 하늘만 보이는 숙소 안에서는 찬양과 기도, 그리고 성경공부 등을 진행한다면 기도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은혜기도원은 은혜한인교회의 자랑이기도 하다.
▲TV, 전화나 스마트폰, 인터넷, 컴퓨터 등을 사용할 수 있나?
전화, 스마트폰, 인터넷, 컴퓨터, TV 등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기들의 사용이 가능하다.
* 연락처
은혜기도원 사무실: (951)277-1188
기도원 담당 백영선 장로: (714)875-2243
주소: Grace Retrea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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