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48 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All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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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증언 | \”그게 성폭행인 줄도 모르고, 멍청한 것들이…\”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순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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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의 충격적인 근황(+아들) < 사건/사고 < 뉴스 < 기사본문 - 살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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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운영했던 박인근 원장과 가족들의 재산 현재 근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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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의 충격적인 근황(+아들) < 사건/사고 < 뉴스 < 기사본문 - 살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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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충격적인 실체..박인근 원장 아들 근황(+위치) :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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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충격적인 실체..박인근 원장 아들 근황(+위치) :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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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 12번째 증언 `호적 등본 떼보니, 아버지가 `박인근`으로…`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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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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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본문

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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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우리 아버지도 인권 있다” 발언 재조명 < 종합 < 연예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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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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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일가 ‘복지 재벌’로 떵떵거리고 산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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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일가 ‘복지 재벌’로 떵떵거리고 산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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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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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악행의 말로’를 추적하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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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악행의 말로’를 추적하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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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의 충격적인 근황(+아들)

‘꼬꼬무 시즌3’ 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며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박인근 원장과 박씨일가에 대해서 재조명이 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위치한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까지 일어난 인권 유린사건으로, 일반인들을 납치하였고, 불법감금은 물론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살인, 암매장, 시신판매 등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긴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 측은 이들을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성폭행 등 끔찍한 학대를 가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암매장을 자행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이 운영된 12년의 기간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에 70%가 노숙자가 아닌 가족과, 멀쩡한 직장이 있는 일반인들이였습니다.

소름돋는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이러한 사건의 주범인 원장 박인근은 대한민국의 사회사업가이자 폭력, 강간, 살인범으로 형제복지원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1930년생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직업군인출신으로 근무하다 장인이 운영하는 부산 형제육아원에 드나들며 사회복지사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박인근 원장은 “장애인은 나를 먹여살리는 상품”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까지 고아, 장애인을 돕는 복지사업은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박 원장은 ‘복지사업으로 돈을 버는’ 방식을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이를 가로채는 수법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기 전에 박원장이 운영하던 ‘형제재단’은 생계급여, 교육급여, 운영비, 인건비 등을 부산시로부터 보조받았습니다. 받은금액만 2007년 9억원, 2008년 9억7000만원, 2009년 9억4000만원, 2010년 10억1000만원, 2011년 11억원 등이었습니다.

이후 세상에 알려지게 되며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박인근은 출소한 이후 법인 이름을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재단 등으로 수차례 바꾸면서 복지사업과 수익사업을 병행했습니다.

박 원장의 최측근에 따르면, 생전에 그는 “축적한 재산을 가족들한테 한 개씩을 다 물려줬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재산은 목욕탕 사업을 하는 데 쓰이거나 호주 골프장을 구입하거나 이런 비용으로 지출이 됐습니다. 박인근의 재산을 은닉하고 재산을 불리는 데 쓰였던 부분입니다.

형제복지원 건물은 이 사건 이후 대부분 폐쇄되고 일부만 다른곳으로 활용 되다가 2001년 건설사에 팔아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습니다.

부지가 매각된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는데,공사중 약 40~50여구 유골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찾을 생각도 안하고 죄다 무연고 처리후 납골시설들에 안치시키고 말았습니다.

해당사건이 언론 시사프로그램들을 통해 재조명이 되자 2014년 뒤늦게서야 부산시에서 형제복지원 법인(느헤미야)를 청산에 착수했으나 1000억원대로 알려진 박인근원장의 재산은 빼돌릴때로 빼돌려서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박인근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나,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했습니다.

이후 형제재단은 박인근의 셋째아들은인 박천광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며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재단)을 물려받았습니다.참고로 박천광은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다 구속되어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천광은 느헤미야 재단 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재산은 제대로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셀프청산이라 불리우는 적자청산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법인 재산이었던 9개 부동산이 감정가 292억보다 낮은 231억에 처분, 당시 법인부채가 272억으로 43억 원가량의 부채를 남긴 채 적자 처분됨에 따라 국고환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박천광이 형제재단을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장남과 차남은 전처의 자식이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인근 일가와 자녀들의 재산, 근황은?

현재 박인근의 가족들은 온천, 헬스장, 부동산임대사업과 야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 호주에 골프장이 포함된 대형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에도 호주 골프장을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인근의 재산에는 호주 시드니에 골프장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 박인근은 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골프연습장은 박인근의 셋째 딸과 사위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인근의 자녀와 사위들은 노인요양원·정신과병원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의 첫째 딸은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6년 8월 설립된 신양원은 2008년 8월부터 박인근 원장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다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8월,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박 원장의 큰딸이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신양원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 위치한 대안 위탁 교육기관인 신영중·고등학교와 샘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사인 남편 김 아무개씨도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 딸의 경우 의사인 남편 김씨가 울산에서 정신과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병원은 13층 규모의 빌딩에 들어서 있는데 이 빌딩의 소유주가 김씨였습니다.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씨가 이 빌딩을 매입한 것은 2006년 5월이었는데, 복잡하게 얽혀 있던 채권 관계가 정리돼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것은 2009년 7월 말이었습니다. 형제재단의 대저동 토지 대금 중 일부가 이 빌딩의 상환금으로 쓰였다는 부산시의 특별점검 결과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집니다.

셋째 딸 부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한 레포츠센터를 운영하는 등 해외 부동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넷째 딸은 한동안 실로암의 집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시사저널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기장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실로암의 집 점검 결과’ 문서를 보면 2012년 9월에 실시한 점검에서 ‘법인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를 운영위원회 등을 통한 공개 채용 절차 없이 채용한 점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넷째 딸이 사회복지 관련 전문 지식이나 자격이 없는데 특채로 고용했다가 기장군청의 점검 때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이 인사는 “실로암의 집이 이전하게 되면 넷째 딸이 맡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넷째 딸의 남편은 부산에서 한 사회복지법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 씨로 알려졌습니다. 이 재단은 정신요양원·노인요양원·건강센터·노숙인쉼터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씨의 경우 이 재단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사업의 경우 장인인 박 원장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박인근 일가의 재산들은 상당한 수준이며 그 재산은 고스란히 유지되며 부가 대물림 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이 다시 재조명을 받는 요즘이지만, 정당히 죗값을 한참 더 치러야 마땅할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은 지난 2016년 6월 86세의 나이로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의 가족과 자녀들은 자산들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복지사업, 등을 이어오며 상당한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도 인권을 잃어버린 수많은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형제들] 12번째 증언 ‘호적 등본 떼보니, 아버지가 ‘박인근’으로…’

부모 있는 아이들도 마구잡이 끌려와

박인근 원장 아들로 호적 올리기도

1987년 이슈화, ‘박종철 사건’에 묻혀

보급 안 돼 7년 전 ‘아동 옷’ 입고 퇴소

※편집자주-1987년 봄, 부산 사상구 주례동 백양산 자락. 육중한 담장 너머로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12년 동안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33년이 지나서야, 최근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부산일보>는 ‘살아남은 형제들-형제복지원 절규의 증언’ 영상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자들 기억 속 진실의 조각을 맞춰보려 한다. 33인의 목소리가 모여 33년 전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실체를 밝히는 한 걸음, 수만 명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길…(‘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간추린 이야기>

잊고 싶은 이름, 원수보다 더한 존재가 ‘아버지’라니…

형제복지원에서 벗어난 지 10년. 자동차를 사기 위해 호적 등본을 뗀 강철민(51·가명) 씨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 이름 칸에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이름 석 자가, 자신은 그의 아들로 등록돼 있었다.

강 씨의 친부, 어머니가 재혼한 새 아버지, 그리고 서류상 아버지인 박인근 원장까지. 강 씨에겐 아버지가 3명인 셈이다.

어린 시절, 뿌리에 대한 혼란은 강 씨를 밖으로 돌게 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고향을 떠나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 소년의집에서 생활하다 2년 뒤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이첩됐다.

강 씨는 싸움을 잘한다는 이유로 곧바로 ‘아동소대’ 조장을 맡았다. 이후 7년 내내 아동소대에서 조장으로 생활했다. 아동소대를 거쳐간 원생들 중 ‘하마(물을 많이 먹어서 붙은 별명)’ 조장을 모르는 이는 없다.

소대원 관리를 위해 조장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때리지 않으면 조장들이 ‘총반장’에게 맞았다. 일반 소대원들에겐 ‘중대장’, 간부들은 ‘총반장’이라 불렀다.

강 씨는 자신이 살기 위해 아이들을 때렸지만 뒤에서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밖에서 만났다면 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참상이 담장 밖으로 알려지면서 다같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깥 세상의 부정적인 시선 탓에 ‘형제복지원’이 적힌 옷을 그대로 입을 순 없었다. 사복은 지급되지 않았다. 7년 전 입소 당시 입었던 옷을 찢어서 걸쳤다.

강 씨가 유일하게 내세울 건 ‘주먹’이었다. 체육관에 들어가 복싱을 시작했고, 서울 올림픽을 목표로 삼았다.

국가대표 선발 최종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시합 전날 술을 많이 마셨고, 결국 링에 오르지 못했다. 꿈은 사라졌다.

이후 어둠의 세계로 빠졌다. 업소를 돌며 삥을 뜯어 생활했다. 교도소도 들락날락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마지막 출소를 했다. 서울에서 경호원 생활을 하다 지금은 사촌형이 운영하는 건설사에서 일하고 있다.

1990년대 사촌형으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아파트 건설 공사를 맡아달라는 제안. 주례동 산 18번지. 형제복지원이 있던 자리였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땅을 파면 무엇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강 씨는 사촌형을 설득했고, 따낸 입찰권을 포기했다.

한종선, 최승우, 김대우… 형제복지원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정부 진상조사까지 이끌어낸 동생들이다.

강 씨는 그저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앞장서서 그 일을 해주고 있는 동생들이 고맙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3명인 채로 살아야 했던 시절.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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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지에 3명이 된 아버지

내가 등본 뗄 일 있어가지고. 차 사려고요. 1997년인가. 이때 등본을 떼보니까…

주소는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형제복지원 주소)로 돼 있고… ‘부(父).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

형제복지원에 있던 부모 애들 보면 대충 다 그랬어요. 아버지가 ‘박’. 박인근…

공무원들은 후처와 결혼해 살아도 호적을 못 올렸다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호적이 없이 살았거든요. 계속. 그때 제가 이름도 몰랐었고요.

엄마가 재혼을 했어요. 그 아버지 성함이 ‘박’ 씨였거든요. 제 원 호적은 ‘강’ 씨인데.

이리로 가면 치이고… 집에 있으면 강 씨 아버지 오면 열받고요. 이리로 오면 이번엔 박 씨 아닙니까. 그러니깐 나는 어차피 이 세상에 나올 사람도 아닌데… 라고 생각했죠.

제가 아버지를 96년도에 찾았거든요? 강 씨 아버지를요.

(2004년에) 돈 1000만 원을 주고 그 당시 호적을 다 바꿨는데. 바꿀 때 참 허무하더라고요. 내가 원 이름 놔두고 아무도 모르게 살다가…

기분이 안 좋지요. 왜냐면, 나도 내 부모가 있는데 왜 이 사람(박인근)이 내 아버지가 돼야 되는지.

(형제복지원에서) 보낸 세월도 서글프지만. 잊고 싶은데 자꾸 나온다 아닙니까… 박인근… 박인근… 이름 석 자가… 이 갈리지요.

만약에 내 입장 같았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부모는 한 명입니다. 그런데 ‘부’가 세 명이에요.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세월… 그거 어떻게 할 건데요. 이거는 보상문제가 아니거든요.

그 어린 나이에 엄마하고 부모하고 손 잡고 학교도 가고 싶은데. 가지도 못하고… 갇혀가지고 있고… 그 세월 다… 누가 보상해줄 건데요.

■ 맞는데 이유는 없어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서울로 간 거예요. (서울)소년의집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넘어왔거든요. 나이가 차다 보니까 이첩된 거죠.

제가 싸움을 잘해서 처음부터 조장이었거든요. 조장 같으면… 상당한 파워예요.

나머지 아이들은 좀 비참했다고 봐야죠. 저 같은 사람(간부)은 상관 없는데 일반 애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거 못하고 부모 손도 못 잡고. 그런 애들 많다 아닙니까.

아무 이유 없이 온 애들이 많아요… 이유 없이… 가다가 학교 가다가 잡혀온 애들도 많고.

밑에 애들은 힘이 없으니까. 만약 소대장이 때리라고 하면 때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우리가 안 맞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패도… 참 돌아서서 많이 울어요 나도. 왜냐면 나도 저만한 애들… 동생도 있을 거고…

관리 치고는 너무 빡세게 했죠.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니까. 마음이 안 편하지요. 티이틀만 그거(조장)인데 마음은 안 그렇지요.

7년을 (조장) 했습니다. 제가 마지막 형제복지원 폐쇄될 때까지 있었거든요.

(최)승우나 (한)종선이 같은 경우는 다 내 밑에 있었거든요. (김)대우(*’살아남은 형제들’ 02번째 증언자)도 있었어요.

저도 많이 맞았죠.(간부들 중에서도) 총반장이 있거든요.

(간부들은 중대장을 ‘총반장’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네. 기합 받다가 맞아가지고 여기 찢어졌거든요 여기.

(총반장한테 맞아서?)

예. 맞아도 피나도… 내가 살려고 하면 애들한테 가서 혼내고.

애들은 맞으면 ‘왜 맞지?’ 이렇게 생각하지요. 그게 이유 없이 맞는 거예요. 누구 한 사람이 잘못하면 한 사람 때문에 애들 다 맞는 거예요.

진짜 오갈 데 없는 애들이 왔으면 이해를 해요. 다 부모 있는 애들인데. 하루 아침에 애가 없어지면 부모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도 애 있으면 똑같은 심정일 거고. 만약 그 사람들의 자식이 (거기) 있다고 하면 아마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빽 없고 아무 것도 없다 보니까 그냥 무조건 끌려가야 되고… 맞아야 되고…

■ 맞아서 실려나간 뒤 사라진 아이들

(형제복지원 안에서 뭐라고 불리셨어요?)

‘하마’라고 불렸죠. 하마라고 했어요. 물을 많이 먹어가지고.

저기 ‘까마귀'(김대우) 있잖아요. 승우 재우… 재우는 죽었지요. 최승우(*’살아남은 형제들’ 03번째 증언자) 동생(재우)이 죽었거든요.

저 아이(김대우) 형이 김경우(*’살아남은 형제들’ 07번째 증언자)예요. 형제간도 많이 있었어요. 그때 거기.

‘사건’은 좀 많지요. 사람이 맞아서 정신이 혼미… 혼수상태가 온다 아닙니까. 우리는 어디 갔는지 몰라요.

일단 의무실에 가긴 가는데. 근데 얘가 가면 안 돌아와요. 과연 그 애가 어디 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경우가) 많지요. 상당히. 수십 건 수백 건 되겠죠. 아마도요.

조장들은 서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물어볼 수도 있고. “오늘은 무슨 일 없었냐” 그렇게 물어보면 “우리 소대에서 누가 오늘 나갔는데 애가 안 돌아오더라”.

그러면 집에 갔는가? 이상하거든요?

(박인근 원장을) 내가 한 여섯 번 봤을 거예요. 교회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가지고. 우리가 다 짓고 난 다음에 이용복 가수가 와가지고. 혹시 아실 겁니다. 장애인 가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 외부인한테 알리는 거지요. 사실은 그게 아닌데. 일단 보여주기 식이죠.

(박인근 원장은) 혼자 오는 게 아니고 경호처럼 여러 명이 주변에 딱 붙습니다. 혹시 해코지할까 봐.

애들은 이제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앙심’밖에 없거든요. ‘내가 점마(박인근) 때문에 왜 여기 왔지?’. ‘내 부모가 있고 다 있는데’.

■ 사라진 올림픽 출전 꿈

식사는 영 안 좋다고 봐야죠. 밖에서 따지면 ‘최하’ 있잖아요. ‘최하’보다 더 심한 거예요. 사람이 먹을 것이 아니지요.

일종의 뭐 ‘짬밥’이라 보면 되지요. ‘짬밥’. 그거 버리긴 아깝고. 안 먹으면 애들 배고프다 아닙니까. 그럼 먹어야 돼요. 그걸 먹어야 살지요.

(형제복지원 안에 학교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예. ‘개금분교’가 있었어요. 모든 게 통제되니까 내가 가서 배운들 뭐 하겠습니까. 인생 포기한 상태지요.

그해에 아마 ‘박종철’ 사건 났을 거예요. 그때 다 묻혔거든요. 이 형제복지원(사건)이 싹 다 묻힌 거예요. 그때 언론에서 막 왔다가 그냥 다 올라가 버렸어요. 전부 다.

원생들 전부 퇴소 조치가 내려지면서 며칠 걸려서 나왔지요… 하루 만에 다 나온 게 아니고요

내가 들어갔을 때 그 옷이 있을 거 아닙니까. 7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옷이 작아요. 그걸 그대로 입고 나오는 거예요.

안에서 입던 추리닝은 뒤에 ‘형제복지원’ 글자가 적혀 있어서. 사람들 시선이 안 좋기 때문에…

(입소 당시 옷이) 작으면 옆에 째거든요. 째서 이렇게 좀 벌려요. 옷을 갖다가.

형제복지원 나오고 철길 건너면 외부로 나가거든요. 가게나 슈퍼 가서… 남는 옷 달라 해가지고. 그건 일종의 ‘구걸’이지요

혹시 오광수 씨 알지요? 복싱 선수. 그 사람하고 내가 88년 서울 올림픽 나가려고. 복싱 선수 하다가 내가 최종전에서 떨어졌거든요.

(최종전 경기) 전날 선배랑 술 먹고. 그래서 경기를 못 나갔지요. 배운 거라곤 뭐 싸움박질밖에 없으니까. 운동을 해서 올림픽 나가려고 했다가 못 나갔고요.

그러니까 뭐 있습니까. 밖에 나가서 이제… ‘어둠의 세계’에서 굴렀지요.

깡패 생활도 하고. 배운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 ‘주례동 산 18번지’ 그곳엔…

생활은 어차피 가게 가서 좀 뺏들고. 업소 가서 유흥업소 가서 좀 뺏들고.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했다 아닙니까. 선포한 그해에 제가 (교도소) 들어가서 7년 살고요. 30대 40대 이때는 그런 생활을 많이 했지요.

마지막에 나온 게 2002년 그때 월드컵 보고 나왔거든요. (교도소) 안에서. 나와서 이제 경호팀에 좀 있다가. 경호원 생활 좀 하고요.

부산 온 지는… 2011년도에 왔으니까요. 11년도에 이 업을 시작했거든요. 건설쪽…

‘주례동 산 18번지’ 여기를 저희가 공사를 하려다가… 입찰했다가 제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사촌) 형이 대표이사를 보니까…

“이거는 포기를 하자” “내가 집 못 짓는다”

(아파트 짓는 거 말씀이시죠?)

예. 그걸 제가 알기 때문에… 파면 뭐가 나온다는 걸 알 거 아닙니까. 거기에 내가 솔직히 있었고. 그렇게 고생 다 했는데… 거기 누가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못 짓죠.

나는 경호원 할 때도 국회의원 경호해주라 하면 절대 안 하거든요. 가서 맞든가 말든가. 우리는 이만큼 고생해가지고 컸는데. 지는 앉아서 가만 있잖아요 월급만 받고.

제가 김형오 씨하고는 한 4년인가 같이 근무했거든요. 국회의장요. 하다 보니 이제 열이 살살 받더라고요. ‘내가 뭐 때문에 해줘야 되지?’

내가 승우하고 종선이 보고 이랬습니다. “나는 돈 다 싫고… 너희가 한 건 잘했다” “잘했고 이걸 알린 거에 대해선 고맙다”.

내가 만약에 형제원 안 가고 밖에 있었으면 아마 더 잘됐을지 모르죠.

지금은 좀 마음 편한 게. 어차피 드러난 거… 그것만 해도 만족하죠.

이대진 기자 djrhee@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대진 기자 [email protected]

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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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는 형제지옥원에 대해 파헤쳐 봅니다.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입니다.

1975~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으로 영화 ‘도가니’의 실존이야기 이자 한국판 아우슈비츠 사건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4,300여 명의 일반인을 납치하여 감금한 후 상해치사와 고문과 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납치된 여성의 경우에는 미성년자 소녀까지 성폭행과 성고문을 통해 노예로 만들어서 강제노동에 투입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6년간 51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형제복지원원장 박인권

형제복지원을 지배하던 독재자 박인권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고아장사를 통해 수 많은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의 재산은 대략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513명 살해가 발각된 이후에도 형제복지원은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3년 2월에 “느헤미야” 로 법인명을 변경하며 법의 제한사항 없이 박인근과 그의 가족들에 의해 멀쩡히 경영해 왔습니다.

온천, 헬스장, 부동산임대사업과 야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 호주에 골프장이 포함된 대형 스포츠센터 등 그 재산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1987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이 형제복지원과 관련에 수사에 착수했으며 징역 15년에 벌금 6억 8천 1백 78만원을 구형했으나 계속되는 재판에서 징역 4년, 징역3년 그리고 1989년 특수감금을 무죄로 판단 최종 벌금없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박인근의 사회사업가로서의 공과에 대한 평가 등 정상을 참작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박인근은 2016년 6월 27일 사망하였고 이미 공소시효도 지나서 어떠한 처벌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최근 수많은 시사고발프로에서 형제복지원사건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박인근의 숨겨진 재산환수 때문 입니다.

2014년 뒤늦게서야 부산시에서 형제복지원 법인(느헤미야)를 청산에 착수했으나 1000억원대로 알려진 박인근원장의 재산은 빼돌릴때로 빼돌려서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박인근의 아들은 재단 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재산은 제대로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셀프청산이라 불리우는 적자청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이 법인 청산과정에서 감정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로 적자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습니다.

느헤미야 법인 재산이었던 9개 부동산이 감정가 292억보다 낮은 231억에 처분, 당시 법인부채가 272억으로 43억 원가량의 부채를 남긴 채 적자 처분됨에 따라 국고환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잔여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함께 박인근 원장 일가의 호주 골프장, 일부 은닉 재산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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