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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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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wa 나의 하나뿐인 고양이 – Hắc ám Chi Cá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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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 뿐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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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 뿐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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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ne And Only Cat, 나의 하나뿐인 고양이 by So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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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거녀는 고양이 2(완결) – rororiri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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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내 동거녀는 고양이 2(완결) – rororiri – Google Sách Updating 대세는 냥줍이다! 평범한 대학생 지훈은 종강파티 후 집에 돌아가던 도중 길냥이가 자꾸 따라오는 것을 알게 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지훈은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맡기로 하고 집에 들어오게 허락해주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귀엽고 예쁜 여자애가 방에 있었다! 고양이 소녀와 지훈의 달콤한 러브스토리! 그리고 이루고 싶은 꿈. *** “전에…… 오로라가 보고 싶다고 그랬지?” 지훈이 몸의 방향을 카스미 쪽으로 틀고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팔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손을 같이 잡았다. “응. 오로라 보고 싶어. 내 꿈이야.” 그녀는 여전히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대답했다. 가지런하게 누워 무언가를 동경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마침 원피스도 순백의 색이었기에 더더욱. 지훈이 그 색감 있는 입술을 떼며 여리고 가녀린 천사에게 고백한다. “나도 꿈이 생겼어.” “뭔데?” 그제야 카스미가 몸을 돌려 지훈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뺨은 상기되어 홍조를 띠고 있었다. 명도가 낮은 밤이라 할지라도 알 수 있었다. 카스미의 얼굴은 너무나도 빛이 났으니까. “나도 그 오로라, 보고 싶어. 너랑…… 같이 손잡고.” “주인님…….” 모두가 다 하나같이 사랑은 결과가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첫사랑이 끝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이 그 증거라면서. 결국엔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면서. 만약에, 정말로 만에 하나 나의 끝 사랑이 카스미가 아닐지라도, 모든 게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남자가 나타나 난쟁이의 백설 공주를 데려간다고 할지라도 난쟁이와 함께했던 추억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꿈을 함께하고 싶다. “네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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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거녀는 고양이 2(완결) - rororiri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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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자연사 – 탁수정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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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내 꿈은 자연사 – 탁수정 – Google Sách Updating “싸움을 시작했기에 나는 잘 지내고 있다”‘을’이 되는 데 실패한 우리,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심한 쟤’들을 위한연대와 버텨내기의 TMI(과도한 정보)좋아하는 일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 ‘Lik-it 라이킷’ 여섯 번째 책 『내 꿈은 자연사』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6년 촉발된 #문단_내_성폭력 폭로에 앞장섰고,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미투 활동가 탁수정의 ‘그날’ 이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후에도 좀체 잠잠해지지 않는 삶을 묵묵히 운용해나가는 한 여성의 단단한 내면이 묻어나는 이 이야기는, 성폭력 생존자뿐만 아니라 끝없이 소진되는 삶을 버티는 세대의 고충을 포용한다. 혐오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을 가볍게 무시하고, 빼앗긴 일자리와 가능성 대신에 ‘자연사’를 새로운 목표로 제시하는 그의 낙천은 참신한 충격과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과 지혜롭게 나이 드는 법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한심하게 살아남는 법’의 주창은 터무니없이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지 않는 농담 같은 ‘내 꿈은 자연사’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조리돌림과 신상털이에서 살아남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생존자의 안온한 일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 지독히도 귀중하고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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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자연사 - 탁수정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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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 Google Sá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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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 Google Sách Updating  “만약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나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카를 마르크스 2016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선정20세기는 엉뚱한 ‘마르크스주의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프로메테우스가 아닌 시시포스로, 위대한 인간 ‘카를’을 그리다 “풍부하고 섬세한 설명. 존스의 책은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전이라기보다는 생애사에 가깝다. … 사상가와 그의 교리 사이의 연결 지점을 끊어 내는 존스의 솜씨는 가히 폭탄 처리 전문가의 섬세함에 버금간다.”_타임스 문예 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 “공산주의를 창시한 사상가에 대한 명민한 평전. … 마르크스라는 논쟁적인 아이콘과 그의 사상을 둘러싼 신화를 말끔하게 정리한다.”_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19세기 지성사를 통해 마르크스가 걸어온 여정을 독창적이고 분명하게 서술했다. 깊이 있는 평가와 한눈에 읽히는 흥미진진함이 돋보인다.”_『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  ◎ 도서 소개“이보다 마르크스에 대한 더 나은 가이드는 없다.”_이코노미스트19세기 이후 가장 논쟁적인 인물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저작! 마르크스의 사상은 언제든 새로운 해석에 열려 있어야 한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5.5~1883.3)의 생애를 역사가의 시선으로 면밀하게 추적해 위대함과 환상 사이에 서 있는 인간 ‘카를’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19세기는 양립할 수 없는 정치적・경제적・종교적 그리고 지적인 도전들로 가득한 시대였다. 거리는 줄어들고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났으며 기발한 발명품들이 산업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신과 인간, 산업, 혁명, 정치 등과 관련해 미래를 형성하게 될 새로운 관념들이 앞다투어 등장했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이처럼 사상과 물질적 환경이 모든 측면에서 요동치던 시대, 19세기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 시대의 한 축으로 가장 유별나고 매력적인 기여를 한 인물인 카를을 조명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카를이 처한 환경과 그 사상의 발전을 이해하게 하며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리카도, 생시몽, 그리고 여타의 인물들이 제시했던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폭발적인 영향력을 보여 준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어떻게 이들 철학자들의 관념을 바꾸고 그것을 활용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20세기 지구를 뒤흔든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를 십분 이해하게 될 것이다.『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는 2016년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가디언』 등 유력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2016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출간하자마자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모습과 사상을 19세기 풍경을 통해서 “풍부하고 섬세하게” 다룬 새로운 평전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이자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도전적인 서평을 받는 등 마르크스의 이론적 계보를 잇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저작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한국어판에서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번역가이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해제를 실어, 독자가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마르크스 이론을 둘러싼 쟁점들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했다. 프란츠 메링, 이사야 벌린 등 기존 평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상가, 이론가로서 마르크스를 총체적으로 구성한 평전   이 책을 옮긴 홍기빈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분파는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에 대해 저마다의 평전을 내놓았다. 특히 가장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집단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엥겔스, 카우츠키, 플레하노프, 베벨, 메링 등에 의해 마련된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의 모습을 토대로 하여 ‘정통적인’ 마르크스의 상을 제시했다. 이후 1920년대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집단에 반발하는 루카치와 코르시에게서 대안적인 마르크스 해석이 쏟아져 나왔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 사르트르, 앙리 르페브르 등 마르크스 사상의 다양한 측면에 주목해 해석하려는 시도도 끊임없이 등장했다.그 시도 중 하나인 프란츠 메링의 마르크스 전기는 191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출간되어 정통적인 마르크스의 상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메링의 저작에서 마르크스의 인격적 결함과 실수 및 실패는 은폐되거나 모호하게만 제시된다. 마르크스는 오로지 노동계급의 해방과 인류의 진보라는 이상만을 가진 혁명가이자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하여 진정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역사적 영웅으로서 그려진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금 사상가로서 마르크스의 삶을 그 역사적 지성사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펼쳐졌다. 특히 국내에도 번역되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1978)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19세기 유럽 지성사 맥락에서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밝혔다. 또,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1973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매클렐런의 마르크스 전기는 마르크스의 삶과 저작을 시간 순서로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그의 삶과 저작에서 주목해야 할 쟁점들 또한 적절하게 강조하며 서술해 마르크스 전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이 모든 시도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바로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였는가’이다. 이와 더불어 『자본론』의 가치와 위상도 뜨거운 쟁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과 피지배 계층의 해방을 위한 운동 이론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론』의 이론적 엄밀성에 대해 재평가하는 저작들이 출간되었고, 이는 마르크스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모습과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는 인간 마르크스와 그의 이론 및 사상을 치밀하게 엮어 보여 준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마르크스의 개인사와 인간적 면모도 드러내지만, 그보다는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배경과 지성사적 맥락에서 마르크스 저작의 위치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옮긴이의 말처럼 19세기 유럽의 역사와 지성사를 폭넓게 연결시킨 맥락에서 보이는 마르크스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마르스의 ‘환상’을 넘어 진짜 위대함을 보여 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이렇게 방대하게 펼쳐지는 19세기의 지적, 정치적, 경제적 풍경 앞에서 저자의 이력이 궁금해질 법하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1960년대 말 이후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상사를 연구해 온 역사가이다. 특히 19세기 정치 사회 사상의 대가로 『케임브리지 19세기 정치사상사』를 제자인 클레이스와 함께 책임 편집하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 중반부터 198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뉴레프트리뷰』의 편집 위원이었고, 블루멘베르크의 마르크스 전기의 영어판이 나왔던 1972년에는 저자의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하지만 이후 1980년대의 저작에서는 19세기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담론적으로 분석하여 보여 주는 성과를 이루면서 탈구조주의로의 선회를 보이기도 했다. 전 유럽에 걸친 19세기의 지적, 경제적 변화와 그 속에서 흥분하고 좌절하는 한 ‘인간’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는 총 12부로 구성됐다. 「1장 아버지와 아들들: 어정쩡한 프로이센인 되기」와 「2장 법률가, 시인, 연인」에서는 마르크스의 가족사를 보여 준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프랑스혁명이 라인란트 트리어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마르크스 가족에게 미친 영향과 마르크스의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와 어머니 앙리에트의 선택이 마르크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3장 베를린, 다가오는 신들의 황혼」, 「4장 폴리스 다시 세우기: 이성과 기독교 국가의 힘겨루기」에서는 청년 헤겔학파, 마르크스의 박사 논문을 지도한 본 대학의 브루노 바우어 등 청년기를 지나는 마르크스에게 사상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주변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다. 또한 마르크스의 평생 동반자이자 비서라고 할 수 있었던 예니와 함께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을 거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와중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개인의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최대한 그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는지 보여 주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5장 사유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의 동맹: 파리, 1844」, 「6장 브뤼셀에서의 망명 생활: 1845~1848」에서는 마르크스가 본격적으로 프랑스, 벨기에 등을 오가며 프랑스혁명을 이어 전 유럽에 혁명을 일으키고자, 동지들을 찾고 매체를 꾸려 가는 여정을 그린다. ‘공산주의 동맹’, 『프랑스-독일 연보』 등 마르크스의 생애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긴 활동들을 되짚으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핀다. 특히 격동의 1840년대에 자유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라는 모호한 이념들이 어떻게 그 구분선을 확실히 긋게 되는지, 마르크스가 어떻게 헤겔과 단절하고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를 옹호하게 되는지, 그리고 기독교 비판과 국가 비판에 집중하던 마르크스가 어떻게 사회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에 주목하게 되는지를 정치적인 맥락과 지성사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분석한다. 이 장에서 『라인신문』, 『독일 연보』, 『독일-프랑스 연보』, 『전진!』 등 독일과 프랑스에서 빠르게 늘어 가는 사회주의 성향의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어떻게 사상가들이 모이고 흩어지는지를 볼 수 있다.「7장 혁명이 다가올 때: 독일에 관한 문제」, 「8장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들」에서는 1940년대 혁명들을 숨 가쁘게 따라간다. 1848년 2월에는 파리, 3월에는 비엔나와 베를린 등 서유럽과 중부 유럽의 정치권력이 극적으로 붕괴한 것을 보여 주는 혁명적인 시위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저자는 이러한 혁명의 불길이 어떻게 번져 가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역사가의 치밀함을 발휘해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혁명의 과정에서 독일 쾰른에 정착한 마르크스가 한 인간이자 비판적 관찰자로서 어떻게 참여했는지, 마르크스의 저널리즘 활동을 중심으로 조명한다.「9장 런던」에서는 1850년에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마르크스 가족이 어떤 힘든 시기를 보내는지 여러 서신들을 통해 보여 준다. 그 시기에 미국에서 발행하는『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유럽 통신원으로 활동하게 된 과정,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마르크스의 정치적‧사상적 견해를 쫒는다. 「10장 정치경제학 비판」,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에서는 1844년부터 계획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1860년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저작으로 가시화되는 과정과 그 이론적인 배경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마르크스는 이 시기에 국제노동자협회의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당 활동에 열의를 불태웠다. 이러한 국제적 조직에 걸었던 기대가 이론적으로 다소 모순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과정과 제1인터내셔널과의 관계 속에서 카를의 이론이 어떻게 이전과 달라지는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여 준다. 「12장 미래로 돌아가서」에서는 마르크스 만년의 활동을 스케치한다. 이 시기의 마르크스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과 제1인터내셔널에서의 활동에서 멀어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자본론』의 저자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게 되지만 엥겔스가 ‘과학화’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의 생각이 겪는 단절을 마르크스가 남긴 편지와 노트 등을 통해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신화화된 마르크스의 철저한 재구성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프롤로그에서 “19세기 말의 시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 자신과 그가 정치 담론에서 표상된 방식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했기에, “마르크스가 죽은 뒤 그의 성품과 여러 성취에 대해 이야기들이 꾸며지기 이전인 19세기의 환경 속으로 돌아가서 그의 모습을 다시 그려 내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 책을 옮긴 홍기빈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가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가 아닌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 그 자체의 궤적을 잘 드러내고 있고, 특히 마르크스의 만년에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결별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저작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잘 알려져 있듯 마르크스 스스로도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다. 그의 사위 폴 라파르그에게 “만약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왜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 1870년대 중반 이후 엥겔스의 마르크스 사상 ‘대중화’ 작업의 산물이며, 이것이 1880년대의 독일 사회민주당과 1890년대의 제2인터내셔널의 요구에 부합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생겨난 것임을 강조한다. 살아생전의 마르크스가 정치적 영향력도 큰 명성도 얻지 못한 것도 역사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이론이 신비화된 까닭에는 1880년대 들어와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성장과 발맞추어 그 요구에 맞게 엥겔스가 적극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재구성, 혹은 ‘통속화’시킨 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1870년대에 만년의 마르크스가 러시아 ‘미르’와 같은 촌락 공동체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홍기빈은 그러한 전환도 납득할 만한 것이라 말한다. “전체와 개인의 모순이 사라지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통합을 통해 모든 소외가 극복된 사회, 노조의 분파적 이익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갇혀 체제의 일부로 통합되어 가는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단결과 연대의 단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파상적인 팽창에서 벌어지는 온갖 참극을 막아 낼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방파제 등의 요건을 모든 인간 사회에 편재하는 크고 작은 촌락 공동체.” 이것은 마르크스가 “진리와 정의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의 꿈 하나만 남겨 두었던 인간, 그 이상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최상의 결과물을 인류에게 남겨 둔 인간”임을 생각한다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1818년 5월 5일에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경계 지역인 라인란트, 그중에서도 대부분 농업 지역이었던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르크스 그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경우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상가이자 이론가, 혁명가로 굳건히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르크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옮긴이의 해석처럼 이 책은 “지금까지 노출된 마르크스의 속살을 종합”하고 저자의 혜안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라는 달팽이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마르크스’라는 민달팽이의 모습을 꼬리에서 두 개의 뿔까지 총체적으로 그려 낸” 평전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위대함’과 ‘환상’ 사이에서 그릇된 우상화와 부당한 비난을 받은 껍질을 벗겨 낸 ‘인간’ 카를 마르크스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그 위대함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봄 직하다. ◎ 책 속에서이 책의 목표는 마르크스가 죽은 뒤 그의 성품과 여러 성취에 대해 이야기들이 꾸며지기 이전인 19세기의 환경 속으로 돌아가서 그의 모습을 다시 그려 내는 것이다. 카를(앞으로 우리는 마르크스를 이렇게 부르겠다)이 태어난 세상은 프랑스혁명, 라인란트를 지배했던 나폴레옹 정부, 반쯤 성취되었다가 금방 철회된 유대인 해방, 그리고 프로이센 절대주의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등이 순식간에 지나간 직후의 세상이었다. 또한 이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가진 아름다움, 바이마르의 극작가들과 시인들의 넘치는 영감, 독일 철학의 힘, 낭만적 연애의 놀라운 세계 등 여러 가지 도피가 시도되었던 세상이었다(비록 대부분 상상 속에서의 도피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카를은 그저 그가 태어난 세상이 빚어낸 피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세상에 자신의 자취를 확실하게 남기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고 있었다. 「프롤로그_만들어진 아이콘 1883~1920」 (55쪽) 카를의 박사 논문과 그에 딸린 노트들을 보면 그가 확신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론’은 이제 ‘실천’에 길을 터 주어야 하지만, ‘철학의 실천은 그 자체가 이론적이다. 이는 개별자들의 현존태를 본질에 비추어 측정하고 특수한 현실을 이념에 비추어 측정하는 비판인 것이다.’ 카를이 생각하기에 ‘이론적 정신이 일단 그 자체로 해방되면 실천적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것이 심리학적 법칙이다. (…) 내적인 자기만족과 충족감은 이미 파괴당한 상태이다. 내면을 비추던 빛은 이제 활활 타는 횃불이 되어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세속이 철학적으로 변하게 되며, 그와 동시에 철학 또한 세속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오로지 자유주의 당파만이 진정한 진보를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개념을 가진 당파이기 때문이다. 반면 실정철학은 단지 형식과 의미가 서로 모순되는 요구들 및 경향성들만 낳을 수 있을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인정하듯이, ‘철학의 무매개적 실현이란 그 가장 깊은 본질에서 여러 모순들로 시달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3장 베를린, 다가오는 신들의 황혼」(180쪽) 1848년 혁명이 남긴 여러 결과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그 영향이 미친 것 중 하나는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들 사이에 더욱 명확한 분리의 선을 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센에서는 이러한 분화가 이미 그보다 4년 일찍인 1843~1844년 기간에 이루어졌다. 그때까지는 『라인 신문』의 주주인 자유주의자들에서 모제스 헤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를 거쳐 아르놀트 루게와 같은 공화주의적 민족주의자까지 모두 ‘운동 진영’이라는 한 덩어리로 여기는 게 가능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칸트와 헤겔의 이상주의와 관념론을 급진화시켜 이에 근거한 의식 개혁을 중심으로 희망을 품고 있었고, 그 무기로 선택된 언론의 자유에 공세의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여러 열망을 담아내는 틀은 행복이나 안녕과 같은 언어가 아니라 자기 결정과 자유 등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국가의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 개인이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이성과 인류의 이성이라는 자연법만을 준수하는’ 국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5장 사유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의 동맹: 파리, 1844」(239쪽) 루게의 회의론에 부딪히자 카를은 자신의 주장을 확장해 나간다. 옛날의 세계가 속물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질서, 즉 ‘사유하는 존재들, 자유로운 인간들, 공화주의자들’의 질서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기 확신’은 먼저 ‘이러한 인민들의 마음속에’ 불꽃으로 피어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그리스인들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기독교 치하에서는 저 창공의 천국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지만, 사람들이 더 고상한 목적을 위해 뭉치는 공동체로, 민주적 국가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감정밖에 없습니다.” 「5장 사유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의 동맹: 파리, 1844」(273쪽)  실레지아에서의 사건들은 독일연방 내에도 마침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등장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아와 독일의 다른 곳들에서도 노동자들의 쟁의들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빈민 문제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는 동시에 ‘노동계급의 안녕’을 위한 자선단체 및 기독교 협회들의 결성을 장려했다. 실레지아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검열 없는 보고서들이 파리에 도착하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를 따라 ‘유적 존재’의 도래를, 그리고 카를을 따라 독일에 임박한 ‘인간적 혁명’을 학수고대하면서 모제스 헤스의 화폐 본질의 분석과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받아들였던 『전진!』의 편집진은 거의 병적일 정도의 희열과 열정에 사로잡혔다. 루게에게 『전진!』에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실패한 뒤로 7월 초부터 편집장은 카를 베르나이스가 맡고 있었다. 그는 실레지아 직조공들의 행위를 위대한 모범으로 찬양했고, 특히 약탈 행위를 벌이는 대신 그 기업의 회계장부를 찢어 버린 점을 찬양했다. “이들이야말로 모종의 전면적 반란을 예고하는 숭고한 선구자들이며, 이는 또한 정치경제학의 그 오래된 쳇바퀴가 계속 돌아가는 한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전진!』의 그다음 호에는 하이네의 시 「가난한 직조공들」이 게재되었고, 이는 훗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가 된다. 이 시는 신, 왕, 조국에 대한 3중의 저주를 담고 있으며, 그 절정 부분의 구절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다. “낡은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짜고 있노라!” 「5장 사유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의 동맹: 파리, 1844」(298~299쪽)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필요 욕구를 충족할 것들을 공급하기 위해 자연에 의존하는 소비자로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카를이 당대의 사회주의에 대해 가했던 가장 중요한 비판의 지점이었다. 그렇기에 1845년 초에 쓰인 그의 이른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은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또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세 번째 테제에 해당되는 바이다.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양육 과정에 대한 유물론의 교의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교육자 스스로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는 또한 카를이 프루동에 반대했던 이유의 한 부분을 설명해 준다. 카를이 보기에 노동문제는 단순히 소비나 임금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야망은 단순히 더 많은 물질적 재화를 획득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산관계 자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6장 브뤼셀에서의 망명 생활: 1845~1848」(352쪽) 독일 사회주의가 태어난 1844년에 희망이 다시 나타났다. 1843년의 언론 탄압 이래로 입헌주의(국가 개혁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는 곧 급격하게 쇠퇴했다. 카를의 에세이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와 『독일-프랑스 연보』에 게재한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은 정치적 개혁에 대한 회의주의를 언명한 영향력 있는 글이었다. 그와 똑같이 중요한 다른 글들도 있었으니, 특히 포이어바흐의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적 테제들」 그리고 모제스 헤스의 에세이 「행동의 철학」은 생각의 초점을 ‘정신의 진보’에서 ‘인간’의 상태와 조건으로 이동시켰다. 헤스의 에세이는 단지 브루노 바우어의 급진적 입헌주의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국가 체제 내에서도 사회주의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로렌츠 폰 슈타인의 보수적 개혁주의 또한 비판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글이었다. 사회주의란 단지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필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한 것이라는 게 헤스의 주장이었다. 나아가 헤스의 에세이 「화폐의 본질에 대하여」에서는 추상화 혹은 양도/소외를 개개인들을 괴롭히는 문제로 보는 포이어바흐의 생각을 더욱 밀고 나가서 양도/소외를 하나의 사회문제로 보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 문제가 종교적 신앙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에서도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7장 혁명이 다가올 때: 독일에 관한 문제」(370~371쪽) 실레지아 사건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한 사회의 상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위치를 다루는 온갖 종류의 급진파 및 사회주의 잡지들이 생겨났다. 『독일시민보』, 『라인 연보』, 『증기선 베스트팔렌호』, 『사회의 거울』 등 일군의 잡지들이 모두 1844년 말에서 1845년 초에 걸쳐 창간되었다. 이 잡지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라인란트 급진주의의 전통을 잇는 가장 중요한 잡지가 『트리어 신문』이었으니, 이는 사회주의 문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때보다 먼저 생겨났던 신문이었다. 1843년 『라인 신문』이 폐간당하고 난 뒤 이 신문은 독일에서 최전선의 저항 잡지가 되었다. 이 신문은 사회주의자 저술가들을 고용했으며 점점 더 많은 지면을 사회문제들의 논의에 할애했다. 특히 재능 있는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를 그륀을 고용했는데, 그는 1848년 혁명 이전의 독일에 적합한 사회주의를 정식화하는 작업에서 곧 카를의 주된 경쟁자로 여겨지게 된다. 「7장 혁명이 다가올 때: 독일에 관한 문제」(372쪽) 브뤼셀 집단과 쾰른의 친구들이 그토록 그를 경모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카를은 독일 급진파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진짜로 정치경제학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면서, 게다가 그것에 대한 급진적 비판까지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1845~1849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그의 저작, 강연, 연설 들에 제시된 그러한 비판은 갈수록 더욱 명확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의 카를은 1844년의 그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겼던 포이어바흐식의 접근법(‘경제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 이해한다)을 버리고 그 대신 정치경제학을 그 자체로 연구하면서 급진적인 독해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1844년에는 프루동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넘어서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비판한 바 있었지만, 1846년 프루동의 『여러 경제적 모순의 시스템』의 도전에 직면하자 카를은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한다. 정치경제학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안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모순과 침묵에 천착하는 대신, 이제 카를은 정치경제학이 발견한 여러 사실에 대해 자신의 지식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7장 혁명이 다가올 때: 독일에 관한 문제」(401쪽) 『공산주의 선언』이라는 문서가 지난 150년 동안 근대성을 규정하는 데 오래도록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847~1849년의 상황으로 볼 때 막상 카를과 그의 집단이 당시에 취했던 정치적 입장은 실로 말도 안 될 정도로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카를과 그의 집단은 바이틀링과의 싸움 이후 ‘원시적인’ 봉기주의에 대한 비난과 저주를 분명한 입장으로 삼았지만, 이는 상황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또한 마찬가지로 그륀 및 그 추종자들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했으므로,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와 결부된 정치 활동에서 발을 빼는 입장 또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7장 혁명이 다가올 때: 독일에 관한 문제」(417쪽) 1848년의 여러 혁명(2월에는 파리, 3월에는 비엔나와 베를린)은 서유럽과 중부 유럽의 정치권력이 실로 극적인 모습으로 붕괴했던 것을 대표하는 사건이었다. 각국 정부는 불시에 뒤통수를 맞은 격으로, 어떤 것들은 무너져 버렸고 어떤 것들은 개혁을 강요받게 되었다. (…) 카를은 이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에서 한 사람의 참가자로서, 또 비판적 관찰자로서 온몸을 던져 뛰어들었다. 1849년 5월 16일 추방 명령서가 발부되기 전까지 13개월간 그는 쾰른에 머물면서 라인란트에서 가장 판매 부수가 높은 급진파 신문인 『신라인 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했을 뿐만 아니라 ‘쾰른 민주주의 협회’의 지도적 인물로 활동했다. 나중에는 또 ‘노동자 협회’의 방향을 지도하는 일에도 참여한다. 5월 19일 그는 쾰른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갔다가 6월 3일경 파리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는 파리를 떠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고, 8월 24일에 런던으로 떠난다. 영국에 도착한 후 그는 혁명의 결산으로 1850년 1월에서 1852년 3월 사이에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두 개의 주요 저작을 집필한다. 이 저작들은 혁명 기간 동안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을 ‘계급투쟁’이라는 그의 새로운 역사적 개념에 비추어 해석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그가 1852년 3월 『브뤼메르 18일』을 쓰는 동안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계급투쟁의 여러 형태’가 ‘생산 발전의 역사적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확신은 혁명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 그의 정치적 활동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그가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또 역사가로서 내리는 여러 판단들 또한 지배하게 된다. 그러한 확신이 과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관찰과 일치하는지는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에 비추어 평가해 보아야만 할 일이다. 「8장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들」(434쪽) ‘노동자 협회’가 꼽은 우선적인 과제들은 ‘동맹’이 품고 있었던 독일 혁명의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를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은 1848년의 독일이 1789년의 프랑스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먼저 ‘부르주아적’ 혹은 ‘자유주의적’ 단계가 나타날 것이며, 이때에는 유산계급과 민중 세력 모두가 ‘봉건적’ 사회관계들을 뒤집어엎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두 번째’의 급진 혁명이 따라올 것이며, 이를 이끄는 것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 프티부르주아지, 소농 들’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1792~1793년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혁명이 이렇게 급진적 단계로 들어서는 계기는 전쟁일 것이다. 카를과 그의 동맹자들이 모두 포젠 공국에서의 폴란드인들의 지위 문제에서나 실레지아의 소수 독일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나 항상 호전론자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입장을 취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8장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들」(447쪽) 브뤼셀 시절 이래로 카를의 정치적 저작들은 갈수록 일관성이 떨어져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원인은 그가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사회주의 혁명, 즉 현실에 진행 중인 혁명과 그다음에 이어질 혁명이라는 두 마리의 말을 동시에 올라타려고 시도하는 데 있었다. 6월 봉기를 다룬 그의 에세이는 그러한 모순적 태도를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 글은 카를 그륀 및 여타 사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해 내놓을 만한 모든 반론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글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성년 남성 보편 선거권에 기초한 민주적 공화국에 의해 분쇄된다면, 만약 민주주의가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사회주의자들이 공화국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이유가 있는가? 카를은 ‘이런 건 나약한 겁쟁이들이나 하는 질문’이라고 호통을 치고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은 대답이 만족스러운 것은 전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최상의 형태의 국가란 이러한 모순들이 공개적 투쟁의 단계에 도달하며 또 그 과정에서 그 모순들이 해소되는 국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내놓은 논리는, 민주주의 정치는 계급투쟁이 끝장을 보도록 펼쳐질 수 있는 전투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갈등이 평화적・합리적으로 해결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에 있었다. 「8장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들」(461쪽) 비록 『신라인 신문』이 1848년 상황에서 아주 튀어 보이는 신랄한 형태의 급진주의 목소리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지만, 당시의 현실 상황 전개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따라서 그 저널리즘의 질 또한) 그 교조적인 논조, 그리고 정치에 대한 환원주의적 생각 때문에 뻔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신문이 취하고 있었던 입장은 정치 스펙트럼의 한쪽 극단이었기에 1848년 후반부의 전반적인 상황 전개에 큰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 주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나마 정치 상황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에 한정해 본다고 해도, 그 실제의 효과는 실로 애매한 것이었다. 이 신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하나의 통일 전선을 확고히 한다는 목적을 어렵게만 만들었다. 하지만 프로이센 지배와 그것을 떠받치는 군사적 점령에 대해 라인란트 지역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었던 진심 어린 적대감을 또렷이 대변하는 역할을 할 때에는 라인란트 사람들의 정서를 강력하고도 비타협적으로 표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8장 19세기 중반의 여러 혁명들」(492~493쪽) 혁명의 결과 런던에 정착하게 된 카를은 1850~1851년에 그의 경제학 연구를 재개하며 다시 리카도의 저작을 찾아본다. 그는 이제 리카도의 가치 개념을 사용하면 부에 대한 부르주아적 척도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 (이를 그는 점차 ‘자본’ 혹은 ‘가치 형태’라고 부르게 된다)가 어떻게 해서 생산력을 무섭게 증대시켜 나가는지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미 그는 생산력 발전의 힘과 중심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던바, 이러한 생각은 그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1847년에는 ‘계급적 반목 시스템’, 특히 ‘축적된 노동과 직접적 노동’(자본과 노동) 사이의 반목 시스템이 ‘생산력’ 발전을 추동해 온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까지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바로 볼 때, 그때까지만 해도 카를의 사유에서 생산력은 그 역할이 비교적 대수롭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불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1850년대 초가 되면 달라진다. 그는 세계적 호황과 번영의 회복으로 인해 그 힘과 역동성으로 유럽 혁명의 씨앗이 말라 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이 생산력 증대의 순환적 성격에 희망을 걸게 되었다. 증기기관과 기계적 공장 시스템과 결부된 근대적 산업은 그 발전이 아주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과잉생산의 사태가 한바탕 훑고 지나가는 일은 반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순식간에 실업 사태가 새로이 나타나고, 노동자들의 운동도 다시 출현하게 될 것이며, 혁명도 되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10장 정치경제학 비판」(624~625쪽) 카를이 1840년대 중반 자신의 접근법을 처음으로 정식화했을 때 그것이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르주아 경제의 힘과 역동성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급진파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패배 혹은 불확실성의 순간에 들어서고 있을 때에 카를이 등장한 것이었다. 차티스트운동은 쇠퇴하고 있었고, 최초의 사회주의 시스템들(오언주의, 푸리에주의, 이카리아주의 등)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유럽에서나 미국에서나 협동 정신에 입각한 공동체라는 좀 더 원대한 유토피아의 전망들이 실패하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나 명백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결코 아니었다.1850년대가 끝날 무렵 새로운 정치 운동이 나타났고, 그 속에서 1840년대의 급진파 및 사회주의 사상이 좀 더 온건하고 현실적인 형태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협동의 이상은 새롭게 정식화되어 노동조합주의가 확산되었고, 노동조합을 위한 좀 더 안정적인 법적 기초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자유주의자들과 급진파 또한 개혁적 성향의 참정권 운동으로 서로 협조하기 시작했고, 1830년대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던 여성주의 운동 또한 쇄신의 증후를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카를의 초기 저작과 텍스트에 비교했을 때 『강요』에 노동계급 운동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카를은 이러한 노동계급 운동들을 무시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이다. 「10장 정치경제학 비판」(651~652쪽) 카를의 희망은 ‘우리 당을 위해 과학적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강요』에서와 마찬가지로 출간된 책에서도 카를의 주된 야심은 1840년대의 그의 주적이었던 프루동에 대해 또 한 방의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는 바이데마이어에게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지금 프랑스에서 유행하고 있는 프루동식 사회주의를 철저히 부수어 그 주춧돌까지 뽑아내 버렸다네.” 마찬가지로 1859년 말 엥겔스에게 그 책의 서평을 쓰라고 설득하면서(엥겔스는 상당히 꺼려했다), 카를은 엥겔스에게 ‘이 책이 프루동주의를 가지에서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 버린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10장 정치경제학 비판」(665쪽) 1848년의 여러 혁명이 모두 실패하고 1850년대에 들어 반동 세력의 승리가 유럽 대륙 전역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 후인 1860년대에 들어오면 민주주의의 희망이 되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현실적 성과물들을 얻어 내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1862~1863년의 기간 동안 독립적인 노동자 운동이 발전했고, 프랑스에서는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보나파르트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세 가지 흐름의 발전이 특히 중요했고, 이 흐름들이 없었다면 국제노동자협회IWMA, 즉 제1인터내셔널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며, 그것이 현실에 가져왔던 충격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공화주의적인 초국가적 연대였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 부르봉 왕가,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전제정에 맞서 이탈리아, 폴란드, 그 밖의 지역에서 벌어진 감동적이고 영웅적인 민족 투쟁에 사람들이 자기를 동일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두 번째의 똑같이 중요한 흐름은 노예제 폐지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늘어났다는 점으로, 이 때문에 마침내 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의 남북전쟁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남북전쟁으로 미국 남부의 면화 수입이 끊어져 ‘면화 기근’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랭커셔의 면화 산업 노동자 다수가 실업을 겪게 되었음에도 노동자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의 대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유산계급의 많은 이가 노동자들 또한 마땅히 참정권을 위시한 모든 시민권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결국 1867년의 정치 개혁 운동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들 어떤 것도 세 번째의 근본적인 흐름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큰 충격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이 역량을 확장하고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03~704쪽) 카를이 제1인터내셔널에 참여하던 당시 그의 정치적 관점은 사실상 세간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1860년대에 새로운 정치가 나타나는 데 거의 혹은 전혀 역할을 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스스로가 명확하게 설명한 바 있듯이, 그가 노동계급의 상태를 부각시키고 ‘국제노동자협회’의 여러 목적을 정식화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거의 우연이었다. 카를은 ‘원리 원칙과 임시 규칙의 선언문’을 작성하도록 위임된 하부 위원회의 일원으로 임명되었었다. 그 ‘선언문’의 잠정적인 초안은 오언주의자 공장주인 존 웨스턴이 작성했고, 임시 규칙은 마치니의 비서였던 루이지 볼프 ‘소령’이 작성했다.(…) 카를 스스로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이 초안문에 대해 ‘부드럽게 항의’했고 그 결과 초안문은 더 손을 보도록 하부 위원회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르 뤼베즈의 선언문에 표출된 ‘정서’만큼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훈령이 붙어 있었다. 이틀 후인 10월 20일에 카를의 집에서 하부 위원회가 열렸으며, 이 회의는 새벽 1시까지 계속되었지만 40개의 규칙들 중 다시 정식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한 개에 불과했다. 크레머는 폐회를 선언하면서 10월 27일에 있을 하부 위원회에서는 새로이 정식화된 문서에 모두가 합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제 카를은 그 ‘문서’를 꼼꼼히 다시 살펴보도록 ‘물려받게’ 되었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47~748쪽) 카를이 제1인터내셔널에 내놓은 가장 큰 기여는 186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의 언어를 정식화한 데 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언어는 ‘협회’의 목적을 정의하는 데에서나 노동자들의 상태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단하는 데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1863~1867년)는 또한 카를이 『자본론』 1권의 집필을 완결 짓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제1인터내셔널의 ‘출범 선언문’과 ‘규칙들’을 공표하는 과정은 그가 당시 작업하던 『자본론』 1권에서 내놓은 분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양자의 근접성을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를의 혁명 이론에 대한 20세기의 표준적인 독해를 해체해야만 한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52쪽) 1860년대에 카를이 혁명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관념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에 그 초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1867년의 『자본론』 1권의 서문에서 영국에서만큼은 ‘혁명의 과정’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거기에서 제시되고 있는 혁명적 변혁의 상은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이라든가 겨울 궁전의 습격과 같은 극적인 사건들로서의 혁명이 아니었다. 성공적인 혁명이란 곧 시민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거나 혹은 이미 벌어져 있는 여러 변화를 정치적으로 재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54쪽) 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는 당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것이 1860년대에 카를이 생각했던 바와 얼마나 달랐는지는 감추어지고 말았다. 당이야말로 혁명의 효과적 도구라는 카를의 믿음은 그 이전 15년간의 상황 전개 속에서 잠식되고 말았다. 또 차티스트운동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그의 희망도 결국은 허사가 되고 말았으며, 망명 상태에서도 그 자신의 ‘당’을 보존하고자 했던 노력은 독일에서 라살레와 슈바이처가 지휘하는 ‘정부의 사회주의’(카를이 붙인 이름이다)가 출현하면서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1860년대에 걸쳐 카를은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행동을 단결 통일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1869년 카를은 하노버에서 라살레파의 한 금속 노동자 대표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정당은 어떤 것이든 노동자 대중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일시적일 뿐이며,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노동자 대중에게 영원한 최면 효과를 가집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당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또 자본의 권력에 맞서는 요새가 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라고.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자본에 맞서는 투쟁이 그의 눈앞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59~760쪽) 카를의 접근법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영국인들의 접근이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하는 이슈들에서 그러했다. 그 결과 카를은 갈수록 ‘국제노동자협회’와 자신을 열성적으로 동일시하게 되었다. 1865년 초 카를은 이제 스스로를 전체 평의회의 일부라고 부르면서 쿠겔만 박사에게 이렇게 통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 보편적 선거권 문제를 선동하고 있다네.” 거의 같은 시기에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새로운 ‘개혁 연맹’의 설립을 이야기하면서 ‘그 전체의 지도권은 우리의 손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국제노동자협회’의 위대한 성취는 ‘개혁 연맹’ 내부에 유럽 정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종류의 운동을 창출해 놓았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개혁 연맹’은 우리의 작품일세. … 거기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우리 전체 평의회의 성원들일세.… 우리는 노동계급을 그릇되게 이끌고자 하는 중간계급의 모든 시도를 좌절시켰다네. … 만약 우리가 영국 노동계급의 정치 운동을 다시 힘차게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우리의 ‘국제노동자협회’는 아무런 법석도 떨지 않으면서도 유럽 노동계급을 위해서 다른 그 어떤 방식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야. 그리고 이 일이 성공할 전망은 아주 밝다네.” 「11장 『자본론』, 사회민주주의, 인터내셔널」(762~763쪽) 1870년대에 걸쳐 카를은 『자본론』의 저자로 명성을 꾸준히 쌓아 갔다. 자본이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에 기초하고 있다는 주장은 상업 사회의 변호론자들이 강조하는 교환의 평등성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임노동자들의 착취와 불평등의 증가와 함께 가는 것임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론』은 눈에 생생히 그려지면서도 냉철한 분석으로 공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여 주었고, 여러 다른 산업마다 노동자들이 처한 끔찍한 상태의 그림도 제시했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문서 근거를 훌륭히 갖춘 설명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제 현존하는 지배적 경제 상태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 더는 도덕적 비난이나 유토피아적 사변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게 된 것으로 보였다.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은 이제 경제학적 분석과 역사적 예측에 기초한 것이 되었다. 「12장 미래로 돌아가서」(878쪽) 1870년대에 들어서게 되면 카를은 한편으로는 자본 분석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낡아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의 정치라고 여겨지는 것을 주장하는 이라는 악명도 얻게 되며, 이 두 가지의 평판이 불편하게 공존하게 된다. 그가 나중에 여러 번 해명을 했음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제1인터내셔널의 ‘괴수’이며 파리코뮌을 선동한 자라는 명성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카를은 그러한 명성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헨리 힌드먼은 1880년대가 되어서도 “마르크스는 영국의 대중들에게는 사실상 미지의 인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알려진 바가 있었다면 이는 오직 위험하고, 심지어 결사적인 혁명주의자로 ‘인터내셔널’을 조직하여 저 끔찍한 파리코뮌을 야기한 원인의 하나를 제공한 인물로서만 알려져 있었다. 점잖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모두 파리코뮌에 대해서 소름끼치도록 혐오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12장 미래로 돌아가서」(879쪽) 그렇다면 1880년대와 그 이후 ‘마르크스주의’라고 알려지게 되는 것에 있어서 카를 자신의 이론은 어느 만큼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 1867년 이후 카를과 엥겔스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는 주장은 어느 만큼이나 진실일까? 물론 카를은 실질적인 기여를 했지만, 이는 그저 이 새로운 교리가 기초하고 있는 여러 원천의 하나에 불과했다. 1867년은 물론, 심지어 1859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도 카를은 그 이전보다 인간에 대해 훨씬 더 결정론적인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는 1873년에 나온 독일어판 『자본론』 2판의 후기에서는 어느 논평자가 내놓은 중요한 이론적 명제들을 그게 바로 자신의 입장이라고 기꺼이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더욱 강화하는 듯 보였다. 「12장 미래로 돌아가서」(899쪽) 카를이 옛날의 촌락 공동체가 내구성과 ‘생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새로이 초점을 두게 된 데에서 나타나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 하나는 그가 파리에 체재하던 기간인 1843년과 1844년에 그토록 웅변적으로 상세히 논했던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을 다시 언명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카를에 대한 많은 논평가는 그의 이러한 관념은 ‘청년 마르크스’의 치기 어린 초기작으로서 별로 반갑지 않은 것으로 무시해 버리지만, 카를은 그러한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단지 1844년의 파리 저작들에서 1867년의 『자본론』 1권의 출간 시점까지 20년 동안 사실상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 기간 동안 카를의 초점은 사적 소유와 교환 관계의 지배 아래에서 인간들의 상호작용이 갖게 되는 소외된 성격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카를이 1844년에 주장했던 것처럼 일단 사적 소유가 나타나서 인간관계들이 거꾸로 뒤집히고 나면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오직 소외된 형태로만 표현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거꾸로 사적 소유가 나타나기 이전 시대에 있었던 고대의 여러 형태의 공동체에서는 인간 본성의 진정한 성격이 소외를 겪기 이전의 자발적 형태로서 표출되어 있을 터였다. 카를의 후기 저작과 1844년의 노트 모두가 인간 본성과 인간의 여러 속성들에 대해 더 많은 숫자의 비교적 직설적인 명제들을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12장 미래로 돌아가서」(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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