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시네마 수업의 첫 영화는 ‘The last king of scotland’였다. 제목에 스코틀랜드가 들어가고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백인이시길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웬걸,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에 대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다는 느낌보다는 초조함이 느껴졌지만, 꽤 잘 만든 영화라고 느꼈다.
더 라스트 킹(2006) 포스터
※박스 안의 글은 줄거리를 요약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개리건은 스코틀랜드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답답하게 살아왔는지, 지구본을 돌려서 제일 먼저 나오는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나온 나라는 캐나다. 글쎄, 별로였는지 다시 돌려서 나온 우간다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의료봉사에 큰 뜻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잘 어울려서 사는 와중, 독재자였던 오보테를 쿠데타로 끌어내고 새로 대통령이 된 이디 아민이 연설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간다. 연설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디 아민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사를 찾고, 니콜라스가 간단히 붕대를 감아주고 차에 받혀서 시끄러운 소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디 아민은 당황하다가 그가 스코틀랜드 사람임을 알고 자기도 잉글랜드를 싫어한다며, 굉장히 반가워한다. 이디 아민은 니콜라스를 대통령 주치의 자리에 앉히고(니콜라스는 사실 이디 아민의 셋째 부인에게 마음이 있어서 남게 된다) 굉장히 대우를 해준다. 하지만 이디 아민은 세상 어마어마한 사이코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측근이라 하더라도 죽여버린다. 니콜라스는 그 사실을 잘 못 느끼고 그에게 동조되어서 술집에서 페니실린 수입을 위해 백인과 대화하던 보건복지부 장관을 수상하다며 이디 아민에게 이야기하고, 장관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죽게 된다. 나중에 잉글랜드인에게 그 사실을 듣고, 우간다를 떠나기 위해 이디 아민을 암살하려고 하지만 경호원에 의해 들켜서 실패하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는 흑인 의사 선생님이 백인이기 때문에 당신 말은 믿을 거라며, 가서 실체를 알리라며 니콜라스를 몰래 에어프랑스 인질들과 함께 유럽으로 가도록 도와주고, 본인은 경호원에 의해 죽는다.
참고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니콜라스 개리건은 정말 다행하게도,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의사와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니콜라스 개리건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물론 따지고 따지다 보면 우간다에 들어온 것 때문이겠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너무 처음부터 이디 아민 쪽에 붙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계속 의료봉사를 했다면, 주치의를 받아들였더라도 정말 치료만 하고 아무 조언도 안 했다면, 본인이 공포감을 느꼈을 때 충분히 출국할 수 있었을 텐데.
예전에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파견 나갔었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자연스럽게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의사가 해야 하는 진료의 본질은 치료의 제공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겪었던 안타까웠던 사건 중에 하나가, 치료를 해서 보냈는데 그분이 테러를 일으켜서 새로운 환자들이 들어왔댔다. 그렇지만 테러리스트를 치료를 안 할 순 없다. 테러리스트를 죽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간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간 것이고, 테러리스트도 역시 환자이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 어렵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본인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으로, 옳은 것을 취하고 싶으며 그른 것에 대해서 분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특히 의사는 사회적 위치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굉장히 강하므로 정치적 중립이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개인이면 파급력이 적겠지만, 단체로 행동 시 사회의 흐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봐서, 만약 특정 그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치료 거부를 하게 되면, 그 그룹은 죽게 되고 그들의 사상 자체도 묻혀버리게 될 게 뻔하다. 그 그룹이 궁극적으로 맞는 주장을 했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옳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이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이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내가 어떤 사상을 가져도 치료받을 수 있는 ‘ 신뢰 ‘가 있는 사회이다. 만약 내가 이 주장에 반대하여서 죽게 된다면, 아무리 틀린 것이라도 아무도 들고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은 그 사회적 신뢰를 위해서 인도주의적 가치가 정치적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느낀다.
또한, 의료진이라고 누군가를 처벌할 ‘권리’는 없다. 결국 의료진이 환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토대로 치료를 받을 환자를 골라낸다는 것은 법 위에 서서 그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법이라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지만 사회가 제대로 흘러가기 위해 만든 약속이므로 범죄자라도, 세상 나쁜 놈이라도, 법에 기대에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니콜라스 개리건은 물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여자 때문에 그랬지…) 하지만 다른 욕망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그가 정치에 강하게 끼어들게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개리건이 불안함을 느꼈을 때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이 잘못인가, 그것은 늘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무지로 인해서 내 무덤을 내가 팠다면 그것을 책임질 자는 본인밖에 없다. 늘 그래서 나도 글 쓰는 게 고민이 된다. 어쨌든 내 가치관은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데 글은 기록에 늘 남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표현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글을 오해하는 사람은 있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해석에 은연중에 잘못되게 흘러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자는 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현 의료계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이것조차도 나의 정치적 발언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몇 년 뒤 졸업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니콜라스 개리건처럼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무작정 뛰어들고, 주변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히 생각해보고, 공부하고,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렇게 경계하면서 살면 대충 중립을 지키면서, 내 가치관도 지키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cf) 요즘 사람들은 ‘난 정치적 중립이야’라고 표현하면서 실제로는 정치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적 중립’과 ‘정치적 무관심’은 다른 말이다. 나는 ‘정치적 무관심’은 ‘이러나저러나~’라는 태도로 국정이 흘러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정치에 관심이 있고 국정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며, 마음으로는 어느 쪽을 지지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행동으로서 표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표면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치적 무관심일 수 있지만, 글쎄, 내 성격상 난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커피 시네마 우간다의 비극 <라스트 킹>_ 그는 왜 악마가 되기를 자청했는가 일콩이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우리에겐 안중에도 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아프리카 우간다 사람들이 그 이름마저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인물이 바로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로 알려진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입니다. 서방 언론들에게 ‘검은 히틀러’라고 불리며 전 세계를 경악시킨 그는 1971년 1월 쿠데타로 집권한 후 8년여의 짧은 통치기간 동안 30만 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했으며 그 방법 또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도살자였죠. 1970년대 우간다를 공포로 몰아넣은 독재자 2006년 개봉한 영화 <라스트 킹(The Last King of Scotland)>은 1971년 1월 25일부터 1979년 4월 13일까지 우간다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재자 이디 아민의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 1925년에서 1928년 사이 북서부 서나일 아루아에서 출생한 이디 아민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문맹이었지만 193cm의 거구에 지역 권투 챔피언까지 지낼 정도로 다부진 육체를 가졌죠. 1970년의 이디 아민. by Archives New Zealand, flicker (CC BY)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출세를 위해 군에 입대한 이디 아민은 버마 전투에 참전했고, 1946년에는 영국 식민지군에 입대해 본격적으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중후반 영국군의 케냐 작전에서 공을 세운 이디 아민은 그 공으로 1961년 우간다 최초의 유색인 장교가 되어 출세가도로 접어들었습니다. 때마침 이듬해 우간다가 독립하고, 젊은 나이에 군의 주요 인사가 되어 권력 중심부에 진입한 이디 아민은 1968년 군 총사령관 자리에 임명되며 우간다 군 통수권자로 올라섰습니다. 이디 아민은 야심과 출세욕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습니다. 정부의 허락 없이 콩고반란군을 몰래 원조한 것이 발각돼 좌천당하자 이디 아민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 끝에 1971년 1월 M. 오보테 대통령이 영국연방수뇌회의 참석 차 싱가포르로 외유를 떠난 틈에 군부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디 아미는 당장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부터 전 세계인이 경악할 만한 경제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우간다화 캠페인’이라 불리는 경제개혁의 골자는 우간다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을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약 5만 명의 아시아인이 빈손으로 우간다에서 쫓겨났으며, 외국인 소유의 기업들은 모두 국영기업으로 바뀌어 이디 아민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민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지지 의사를 밝힌 건 영국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민 정권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이라고 판단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인정 성명을 발표했죠. 그러나 이들이 이디 아민의 진면목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집권 후 이디 아민은 자신의 권력 기반에 해가 될 것으로 간주된 지식인, 장교, 법관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우려했던 대로 이들은 모두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전임 오보테 대통령을 지지했던 마을과 부족은 예외 없이 폐허로 변해버렸고, 그곳 주민들은 모두 특별한 죄도 없이 집단 살해당했습니다. 엽기적인 살인마의 철권통치 이디 아민은 기어이 자신을 추인해 준 이스라엘에게도 배신의 칼날을 겨눴습니다. 산유국 아랍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절실히 느끼게 된 아민은 곧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찬양했고, 우간다에 남아 있던 유대인을 영구 추방했습니다. 이렇듯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국가폭력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디 아민은 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의 도살자로 악명을 날리게 됩니다. 영화 <라스트 킹>은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이디 아민을 통해 참혹했던 1970년대 우간다의 현실을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재연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디 아민이지만 영화는 줄곧 스코틀랜드인 의사 니콜라스(제임스 맥어보이)의 시각으로 그려집니다. 영화 속에서 니콜라스는 아버지처럼 스코틀랜드의 평범한 의사생활을 거부하고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아프리카 우간다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의료봉사는 집을 떠나고픈 젊은이의 핑계일 뿐 니콜라스를 사로잡는 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치기를 온통 선행으로만 받아들여주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에 찬 눈빛들이었습니다. 영화 <라스트 킹> 포스터 때마침 오보테를 밀어내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이디 아민(포레스트 휘테커)의 신념에 찬 연설을 접한 니콜라스는 그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끼고 예기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마침내 인연을 맺게 됩니다. 역시 니콜라스에게 호감을 갖게 된 아민은 니콜라스를 자신의 주치의로 임명하겠다고 제안합니다. 독재자가 약속한 안락한 환경을 뿌리칠 수 없었던 니콜라스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곁에 머물기로 결심합니다. 아민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며 최측근으로 활동하게 된 니콜라스는 속을 알 수 없는 독재자의 계속되는 호의에 감동해 그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느끼게 됩니다. 급기야 니콜라스는 아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속에서 그의 영구집권이 우간다 국민들에게도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배반자의 존재를 밀고하기 위해 나서는 니콜라스의 행동은 확신에 찬 신념이었죠. 그러나 이디 아민은 본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악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해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독재자의 처신에 니콜라스는 점점 지쳐갑니다. 급기야 이제껏 누려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만 아민은 한사코 니콜라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검은 히틀러’의 최후 방황하던 니콜라스는 아민에게 버림받은 그의 전 부인 케이(케리 워싱턴)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삭막한 땅에서 상처 입은 두 남녀의 사랑은 독재자의 눈에 띄어선 안 될 불륜일 뿐이죠. 어쩌면 아직 그의 소유일지도 모를 독재자의 여인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버린 백인 니콜라스. 이제 더 이상 이디 아민은 자애로운 지도자가 아니며, 니콜라스의 눈에 비친 그는 살인과 권력에 취한 한낱 미치광이일 뿐이었죠. 아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던 보람도 없이 케이는 질투에 눈이 먼 이디 아민에 의해 결국 처참하게 살해당합니다. 케이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니콜라스의 가슴은 분노로 차오릅니다. 결국 그는 주치의라는 신분을 이용해 이디 아민을 암살하려 시도하지만, 그 계획조차 실패로 끝나고 말죠. 우간다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 그러나 1970년대 이디 아민 집권기에는 피로 얼룩졌다. via pixabay 이제 그의 마지막 선택은 우간다를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니콜라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니콜라스의 탈출계획을 간파하고 있던 아민의 혹독한 고문뿐. 이 장면에서 이디 아민은 지금껏 자애로운 미소 속에 감춰두고 있던 살인마의 본성을 백일하에 드러냅니다. “너는 지금껏 이게 모두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했지? ‘나는 아프리카로 가서 원주민과 어울리는 착한 백인 역할을 할 거야’ 하고 말이야. 하지만 틀렸어. 우리에겐 이게 게임이 아냐, 우리에겐 엄연한 현실이야. 이제 곧 너도 현실을 보게 될 거야. 네 죽음이 네 눈앞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현실이 될 거야.” 우리는 정말 선량한 사람들인가 독재자의 친구였던 니콜라스는 과연 선량한 외국인이었을까요. 극중 니콜라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제3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설령 타인을 돕고 싶은 선의가 있다 해도,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자기만족의 한 형태일 지도 모르는 것이죠. 누군가를 함부로 동정하고, 그 삶에 끼어들어 내 ‘선의’를 강요하는 것 또한 어쩌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지도 모릅니다. 실제 이디 아민은 식민지 모국인 영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이었고, 독립 이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영국과 제국주의자들의 꼭두각시로 쿠데타의 리더를 맡았으며, 광기에 휩싸여 서방과 유대인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을 때는 그들에 의해 가차 없이 ‘악마’로 지목된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역시도 제국주의 역사가 낳은 비극의 희생양은 아니었는지, <라스트 킹>은 담담히 되묻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디 아민은 1976년 자신을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한 뒤 군부의 불만을 잠재우려 1978년 10월 탄자니아를 침공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의 철권정치에 반기를 든 우간민해방전선(UNLF)과 탄자니아군의 반격을 받고 리비아로 망명했다가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2003년 8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이디 아민은 두 번 다시 우간다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콘텐츠 특약 | 연합사보 <카페人> 우간다의 커피산업 by Mighty Travels, flicker (CC BY) 우간다는 케냐, 남수단, 콩고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프리카 중동부의 내륙국가다. 적도상에 걸쳐 있는 지리적 위치와 넓게 분포된 고산지를 이용해 로부스타 경작이 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생산량은 극히 소량이나 국토 동부에서는 품질 좋은 아라비카도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아라비카종은 콩이 크고 평평하며 함수량이 적어 시장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우간다 로부스타종은 모양이 둥글고 맛이 단조로우며 쓴맛이 강한 편이라 주로 아이스커피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우간다 커피는 국가 수출품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환금작물로 커피 재배지는 주로 케냐 국경선 근처의 엘곤((Elgon)산과 부기수(Bugisu)산이 있는 북동 지역, 서쪽의 루웬소리산 근처에 분포되어 있다. 또한 콩고와의 접경 산악지역에서도 우가(Wugar)라고 불리는 중급 아라비카가 생산된다. 우간다 커피는 케냐산 커피와 맛은 비슷하지만 원두의 크기가 더 작고, 은은한 포도주향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간 350만 자루의 커피를 생산하던 우간다 커피산업은 국내 정치의 불안정과 농민들의 이탈로 생산량이 급감했다가 점차 생산량을 회복하기 시작해 현재는 연간 약 250만~270만 자루의 커피가 생산되고 있다. 커피경작은 샘바스(Shambas)라고 불리는 소규모 자영농장에서 주로 이뤄지며 생산량의 대부분이 로부스타에 편중돼 있다. 또한 커피생산량의 거의 전부가 외국으로 수출된다. 1990년까지 커피산업을 독점해왔던 국영커피마케팅위원회(CMB)가 철폐되면서 현재는 각 지역 커피조합이 생산, 가공, 유통 등을 관장하고 있다. 인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