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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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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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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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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 -세잔 Updating https://cafe.naver.com/eunjihwa 서양 문화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사과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세 개의 사과가 있다는 거죠. 첫 번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입니다. 잘 알다시피 아담과 이브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의 열매를 따먹은 뒤 낙원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 때부터 인류 문명의 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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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사과 한 알로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 < 교양 < 문화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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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과를 그린 화가,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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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과를 그린 화가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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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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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바대로 세계에는 3대 사과가 있다. 선악과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이에 대해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현대에 와서는 여기에 스티브 잡스가 창조해낸 브랜드 애플의 사과가 덧붙여져 세계 4대 사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얼핏 다른 건 이해가 가지만 왜 세잔이 포함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현실 속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
다시점으로 본다.
즉 , 앞과 뒤 측면 등의 다양한 시점으로 본다.
그것을 재현해서 그린 이가 바로 폴 세잔이었다.
그리고 이는 입체주의(큐비즘)의 탄생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 큐비즘의 대표 화가와 다를 바 없는 피카소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내가 세잔을 아냐고요? 그는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저/ 북스넛 출판
그러나 원근법에 익숙한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 세잔의 그림은 어딘가 시점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의 고정된 이미지처럼 그림 또한 3차원을 2차원 평면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다시점으로 본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원근법의 기술처럼 소실점에 알맞게 그려진 그림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하여 이 해석과 감상의 차이에서 가령 세잔이나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저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같은 등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세잔이 말했듯 이미 그 본질은 같다.
“자연은 원통, 구, 원뿔로 다루어야 한다.”
영원한 빛 움직이는 색채 인상주의,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저/ 마로니에 북스
즉, 세상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원통, 구, 원뿔을 어떤 시점으로 어떤 색을 써서 어떻게 빛과 어둠을 표현하고 나타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하여 그 다시점, 입체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세잔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모리스 드니의 말처럼 그 3대 사과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선악과의 사과, 뉴턴의 사과, 애플의 사과처럼 세잔의 사과는 특별하다.
그런데 그 모두에게 왜 그 과일이 꼭 ‘사과’여야만 했을까?
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세잔의 사과만큼은 이런 이유였던 듯 보인다.
“세잔의 대부분의 정물화에는 사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과는 그가 제일 좋아했던 과일이었고, 양적인 연구에 적합한 색과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과일이었다. 세잔은 에밀 졸라를 처음 만났을 무렵 그에게 받았던 사과를 기억하고 있었고, 이때부터 사과는 우정의 상징이었다.”
영원한 빛 움직이는 색채 인상주의,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저/ 마로니에 북스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어 단어를 처음 배울 때부터 익숙한 것이 사과였고,
회화를 처음 배울 때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사과였으니 사과만큼 특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땅히 세계 3대 과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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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사과 한 알로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
[인천투데이 문하연 시민기자] 흘러내리는 흰 식탁보와 그 위의 단단해 보이는 과일들. 맨 앞 사과 한 알은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다. 구겨진 식탁보와 어질러진 배경에 그려진 과일임에도 선명하고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병에 새겨진 그림은 주변 과일들과 다채로운 문양의 소파 천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아래로 향하는 흰 식탁보와 위로 솟은 과일 그릇은 대비를 이뤄 균형감이 있고, 오브제의 위치도 단조롭지 않으면서 좌우 구조적으로 잘 배치돼있다.좀 더 들여다보니 뒤편 오렌지가 들어있는 접시와 물병은 시점이 앞쪽인 데 반해 그 앞 사과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원근감도 없어 그림이 평면적이다. 이미 피카소나 브라크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들로 ‘복합’ 시점에 평면적 그림들을 접했기에 이런 그림이 어색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그들 이전에 그려졌다. 그러니 사진 같은 정물화만 봐온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작품은 폴 세잔(1839-1906)이 그린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이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더불어 회자되는 세잔의 사과는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한가. 그리고 세잔은 어떻게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됐을까. 사과 한 알로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공언한 세잔은, 그의 말대로 파리뿐 아니라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세잔의 사과가 여느 정물화와 다른 점을 알려면 우선 그동안 그려진 정물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별한 사과의 탄생
세잔 이전의 정물화는 그 소재 자체의 본질보다는 상징성이 강했다. 예를 들면 세속적 삶이 짧고 덧없음을 나타내는 해골, 유리잔, 책, 깃털 등을 소재로 한 바
니타스 정물화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유리에 비친 대상까지 그대로 묘사하는,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보고 있으면 실물과 너무 똑같아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작품들.
그런 그림들이 정물화로 인정받는 시대에 뜬금없는 그림이 나왔다. 원근감이 무시되고 시점이 중첩된, 하지만 구성과 색채 면에서 매우 단단한 그림이.
세잔은 각 소재가 지닌 형태적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중’ 시점을 사용했고, 그림이 3차원 입체가 아닌 2차원적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원근감을 없앴다. 낯선 것에 비난이 일었고, 이어서 새로운 것에 찬사가 쏟아졌다. 똑같게 그리지 않는 세잔의 이런 시도는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세잔은 그리려는 대상을 1000번을 보고, 100번을 그리고, 100번을 고치는 화가다. 그가 자화상을 많이 그리거나 사과나 오렌지, 혹은 레몬과 같이 외피가 단단한 소재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그림을 완성하는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하고 변하지 않아야 하니까.
사과를 눈앞에 두고 바라본다. 며칠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밥을 먹고 다시 보고, 산책하고 돌아와 다시 보며 사과라는 본질을 파악할 때까지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무릇 사과란 이런 것’이라는 학습된 이미지가 아닌 ‘자신이 보고 느끼고 체득한’ 사과를 그린다. 원근이나 시점은 의미가 없다. 사과를 똑같게 그리지 않고 사과를 가장 사과답게 보이게 하는 색채와 각도, 그리고 안정감 있는 구도만이 그에게 중요하다. 극히 ‘주관적 방식’으로. 이렇게 그의 특별한 사과가 탄생했다.
“세잔은 깊이 생각하지 않은 붓질은 단 한 획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하는 절묘한 색채감으로 사물의 본질을 구성하는 색채의 마술사였다.”(에밀 베르나르, 폴 세잔에 대한 회상)
세잔의 암흑기
세잔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모자 상인인 아버지와 점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밑으로 두 누이가 있다. 아버지는 모자로 돈을 벌어 당시 그 지역에 하나뿐이던 은행을 동업으로 인수했다. 덕분에 세잔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가 부르봉 중학교에 입학한 13세 무렵 그곳에서 한 살 아래 에밀 졸라를 만나 우정을 키운다. 두 소년은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동네 뒷산을 산책하고 수영을 하고 책을 읽었다. 그 무렵 세잔은 엑스의 미술학교에서 조제프 지베르니에게 그림을 배운다.
졸라가 18세가 되던 해 파리로 이사했고, 둘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세잔은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엑스의 법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졸라의 제안과 설득에 힘입어 3년 후 화가의 꿈을 안고 파리로 향한다.
1861년, 6개월 동안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에서 그림을 배우며 피사로ㆍ기요맹 등 인상파 화가를 만난다. 하지만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낙방하자 크게 상심해 낙향한다. 엑스로 돌아온 세잔은 아버지의 은행에서 일한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도저히 접을 수 없어 다음해 다시 파리로 간다.
세잔은 10여 년 동안 파리와 엑스를 오가며 그림을 그린다. 국선인 살롱전에 번번이 낙선했고, 외골수적 성격 탓에 동료 화가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이 시기를 세잔의 암흑기라 하며, 당시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주제도 죽음ㆍ강간ㆍ 살인과 같은 것들이었다.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폴 세잔|1895-1900|오르세 미술관.
대수욕도|폴 세잔|1898-1905|필라델피아 미술관.
카미유 피사로를 만나고부터
그의 그림이 변화를 겪은 것은 그보다 아홉 살 연상인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를 만나고부터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피사로는 세잔의 천재성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봤다. 피사로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퐁투아즈로 세잔을 초대했다. 퐁투아즈는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풍경 화가를 위한 소재가 풍부한 곳이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돼있던 세잔은 피사로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예민함과 까다로움을 모두 받아준 피사로에 대해, 세잔은 “피사로는 내게 아버지와 같다. 거의 자비로운 신과 같다”라고 회고했다.
‘자연을 주의 깊고 성실하게 관찰하라’고 강조한 피사로는 세잔의 팔레트에서 어두운 색을 제거하고 3원색(빨강ㆍ노랑ㆍ파랑)과 여기서 파생한 색 사용을 권장하는 동시에 그를 독려했다.
“우리의 친구 세잔은 우리의 기대를 높인다. 나는 괄목할 만한 활력과 힘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을 보아왔다. 바라건대, 그가 오베르에 얼마간 더 머물게 된다면, 그를 성급하게 비난했던 많은 예술가를 놀라게 할 것이다.”
절친 에밀 졸라와 결별과 작품 몰두
세잔은 피사로 옆에서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줄곧 작업했다. 그 결과 명작 ‘목매단 사람의 집’이 탄생했다. 1874년에 열린 제1회 인상주의전에 세잔은 이 작품을 포함해 세 점을 출품한다.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세잔의 작품 ‘모던 올랭피아’의 급진성에 몇몇 회원들은 그의 참여를 반대했지만, 피사로는 그를 참여시킨다. 이에 분개한 마네는 자신의 작품을 철수시킨다. 마네는 세잔을 “모종삽으로 그림을 그리는 미장이”로 비하했고, 평단과 대중은 그를 조롱했다. 한 평론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 착란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광인으로 세잔을 묘사했다.
이 전시에 참여한 에밀 졸라는 침묵했다. 그조차도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졸라는 그의 차기 소설 ‘작품’에서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를 성(性)적으로 자신 없고, 성격은 괴팍하고 결국 실패한 화가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로 묘사했고, 세잔은 이를 자신이라고 받아들였다. 세잔은 오랜 시간 졸라와 나눈 비밀대화가 우롱당한 것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그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작품’을 막 받았네. 친히 한 권을 보내주다니 정말 친절하군.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저자께 추억의 증표로 감사하다고 전해주게나. 또한, 과거를 생각해서 그에게 그의 손을 꼭 붙잡아도 좋은지 여쭤봐 주게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의 폴 세잔.”
40여 년 우정은 이렇게 끝이 났고, 사람들과 더 멀어진 세잔은 그림 속으로 침잠한다. 이 시기에 아버지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아 돈 걱정 없이 작품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최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가 판매되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었던 ‘카드놀이를하는 사람들’ 연작을 그렸고, 많은 정물화와 초상화도 그렸다. 그의 그림이 만국 박람회에 전시됐고, 56세라는 늦은 때에 첫 전시회도 열었다. 이 시기에 상징주의화가 모리스 드니는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중략)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라며 ‘세잔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작품을 헌정했다.
세잔은 고향 엑스로 돌아와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곳에 작업실을 만들고 평생 걸작이자 추상미술의 길을 열어준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나는 자연에서 원통ㆍ구ㆍ원추를 봅니다. 적절히 배치된 사물의 면과 선은 구심점을 향해 움직입니다.”
세잔에 관한 책이 출간됐고, 그를 보기 위해 엑상프로방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의 방문이 기뻤지만, 인간관계가 서툰 세잔에게는 이들을 맞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색채의 해방, 원근과 시점 파괴
세잔의 마지막 연작 주제인 ‘목욕하는 사람들(대수욕도)’. 남녀 버전이 따로 있는데, 여자 버전 그림에 7년 넘게 공을 들였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통일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인지 모를 투박한 인물과 무엇을 하는지 불분명한 행동은 특정되지 않은 불멸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들은 예술적 목적을 위해 재창조된 추상적 존재들이다.
1906년,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소나기를 흠뻑 맞아 폐렴에 걸려 사망한다.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곧바로 모티브를 가져와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렸다. 피카소는 세잔을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 칭했고, 마티즈는 그를 회화의 신이라 불렀다.
세잔은 다양한 색채를 실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색채의 해방을 이끌었다. 이는 색채 중심인 야수파에 영향을 끼쳤고, 원근과 시점 파괴는 큐비즘을 탄생시켰다. 더 나아가 말년의 작품들은 추상의 형태를 띠었는데, 이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몬드리안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그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됐다.
[참고 서적]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세잔(마리아 테레사 베네데티 지음, 조재룡 옮김, 마로니에 북스)
세잔(도서출판 재원, 편집위원-정금희, 조명식, 쥬세페 고아)
폴 세잔(올리케 베스크 말로르니 지음, 박미연 옮김, 마로니에 북스)
※ 문하연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좋아해 전시를 보고 연계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미술사 강의를 찾아듣고 공부한 지 8년이 됐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평생 사과를 그린 화가, 폴 세잔
KOMSCO CULTURE_그림보고 화가 읽기 ⑦
평생 사과를 그린 화가, 폴 세잔
인류 역사를 바꾼 유명한 ‘사과’들이 있다. 이브의 사과부터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그리고 잡스의 애플까지. 다른 건 몰라도 세잔의 사과는 언뜻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화가가 그린 사과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말이다. 폴 세잔(Paul Cezanne)은 일찌감치 사과에 대한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며 무려 40년동안 사과를 그렸고, 결국 미술의 역사를 바꿨다. 미술사는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부른다. 세잔은 왜 하필 사과를 선택한 걸까? 평범해 보이는 그의 사과 그림은 도대체 왜 위대한 걸까?
세잔은 1839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꾼 모험심 강한 소년이었지만 고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사생아라는 정체성 때문에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으나, 곧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인정받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20대 중반부터 살롱전에 계속 출품했지만 늘 보기 좋게 떨어졌다. 18년의 도전 끝에 43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롱전dmf 통과했고, 56세때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 이듬해인 1896년엔 인상파 동료들과 결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후원자도 없었지만 세잔은 끝까지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르는 후배 화가들이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실패한 화가’이자 ‘예리하지 못한 눈을 가진 시골 화가’라는 자괴감 속에 살았다.
사과는 완벽한 모델
세잔은 자신의 부족함을 관찰 노력으로 채우고자 했다. 그가 사과를 그림의 주제로 선택한 건 쉽게 썩지 않아 오래 관찰할 수 있고, 구하기도 쉽고,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도 말 한마디 않는 조용하고 완벽한 모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초상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백 번도 넘게 불러 사과처럼 앉아있게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의 첫 개인전을 열어주었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를 그릴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모델을 서던 볼라르가 실수로 잠이 들자, 세잔은 화가 나서 호통쳤다. “인마! 자세가 엉망이 됐잖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사과가 움직여?” 결국 볼라르의 초상화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한번은 다른 모델이 몸을 돌려 크게 웃자 화를 벌컥 내며 붓을 내팽개치고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동료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는 생기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델들에게 웃고, 말하고 움직일 것을 권했다. 모델의 기분이나 개성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해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세잔은 모델에게 표정도 움직임도 없이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하니 모델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까탈스러운 화가의 요구를 완벽하게 들어줄 모델은 사과밖에 없었다. 세잔이 40년 동안이나 사과를 그리고 또 그린 이유다.
사과와 오렌지, 1899년경 Paul Cezanne, Apples and Oranges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다
세잔이 60세에 그린 ‘사과와 오렌지’는 그의 말년 대표작이자 사과 정물화 중 가장 유명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한 화면 안에 다양한 시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물을 한 각도에서 본 것이 아니라 위, 앞, 옆에서 각각 본 시점을 한 화면 안에 그려 넣었다. 높이 솟은 중앙의 과일 그릇과 쏟아질 것 같은 불안한 왼쪽의 과일 접시, 오른쪽 물병 주변의 과일들 모두 시점이 다르다. 각각 다른 각도에서 바라봤지만 정물들은 나름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배치돼 있다. 복잡한 문양의 소파와 천, 그 위에 놓인 심하게 구겨진 흰색 천, 하얀 접시와 꽃무늬 물병도 사과와의 조화를 위해 화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림 속 주인공인 사과들은 먹을 순 없지만 단단하고 매력적이다. “나는 순간의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다”는 고백처럼 세잔은 사과가 가진 모든 빛깔, 형태, 변화를 한 화면 안에 진실되고 조화롭게 담고자 했다. 그것이 사과의 본질이자 진짜 모습이라 믿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자연에서 원통, 구, 그리고 원뿔을 본다”고 주장했다.
자연을 기하학적 형태로 재해석한 세잔의 눈은 사실 이전까지 그 어떤 예술가도 갖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상을 단순화하고 여러 각도에서 본 사물을 한 화면 안에 재구성하는 그의 시도 역시 서양미술의 오랜 규범과 전통을 깨는 것이었다. 카메라처럼 한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원근법대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이렇게 복수 시점으로 단순화해서 그린 그림은 당시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이해는 커녕 조롱의 대상이 됐다.
대수욕도,1898~1905년 The Large Bathers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세잔은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을 반복적으로 그리곤 했는데, 말년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연작을 제작했다. 사과 정물화처럼 과감하게 단순화한 인물과 풍경을 한 화면 안에 조화롭게 배치한 그림이었다. 그중 가장 큰 그림이자 죽기 전까지 7년을 매달렸던 ‘대수욕도’(1898~1905)는 입체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그림을 본 파블로 피카소는 2년 후 최초의 입체파 그림인 ‘아비뇽의 아가씨’를 탄생시켰다.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이끌었던 조르주 브라크 역시 “세잔의 작품을 발견하자 모든 것이 뒤집혔다.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며 세잔의 예술을 칭송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평생의 라이벌이었지만 입을 모아 말한다.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후대 화가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화가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아닐까. 스스로는 실패한 화가로 평생 자괴감을 안고 살았지만, 미술사는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부른다. 사과라는 일상의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세잔. 그만의 예리한 눈과 오랜 관찰의 성실함은 현대미술을 향한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 문의 열쇠가 바로 사과였던 것이다. 세잔의 사과는 그래서 위대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런던 소더비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미술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과 기업체, 미술관에서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문화공감>에 출연 중이며, 동아일보 칼럼 <이은화의 미술시간>을 연재 중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자연미술관을 걷다』 등 13권을 저서를 출간했다.
사보 『화폐와 행복』 1+2월호(2021년) 52-52p 게재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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