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29 성철 스님 유언 The 180 Detailed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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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고백 – 나는 지옥에 간다 // 천추의 한 // 지옥간증
성철스님의 고백 – 나는 지옥에 간다 // 천추의 한 // 지옥간증


‘불신자’ 성철 스님 참회하고 지옥 갔나 : 전체기사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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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 성철 스님 참회하고 지옥 갔나 : 전체기사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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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정말로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을까?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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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정말로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을까?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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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명성교회 – 성철스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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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명성교회 - 성철스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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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성철스님 스스로 지옥간다 했다” < 종교 < 뉴스 < 로고시안 < 기사본문 - 평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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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김장환, “성철스님 스스로 지옥간다 했다” < 종교 < 뉴스 < 로고시안 < 기사본문 - 평화나무 이어 “그런데 성철 스님의 유언은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이 25일 극동방송 운영위원 목요 아침 예배 시간에 설교자로 나서 지옥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철 스님은 말년에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에 한평생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을 남겼다”고 발언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목사는 이날 지옥을 주제로 한 설교 말미에 “예화 하나를 들겠다”면서 “1993년 82세로 작고한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보면 한마디로 대단한 고행을 한 사람이다.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그 이후로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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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 성철 스님 참회하고 지옥 갔나

휴심정

기독교 일부 부흥사, 유언 유아적으로 윤색

초파일 법문 들먹이며 ‘사탄 숭배자’ 비방도

휴심정 개똥소똥방에 ‘부처는 지옥에 있다’는 글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누구 누구의 증언이 있다면서 홈페이지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찾아보기 쉽지않은 근본주의자들이 서울의 명동과 지하철에서 외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견지에서 보면 예수를 믿지않는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간다. 현재 비기독교인뿐 아니라 예수를 들어본 적도 없이 사망한 우리의 조상들도 모두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 부처도 공자도 예외가 아니다.

살아온 삶 참회하며 지옥에 간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성철 스님의 유언을 빌어 ‘성철 스님이 최후의 유언에서 살아온 삶을 참회하며, 자신은 지옥에 간다’고 고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철 스님이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하니/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라/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이여/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이로다.’ (일생 동안 미친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수미산을 덮은 죄업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산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한이 만갈래나 된다/한송이 꽃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일부 기독교 부흥사와 목사들은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내가 80년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고 했다며 유언 내용을 첨삭 윤색해 퍼트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독교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해

언젠가 마음이 열려 종교간 대화에 앞장서는 한 기독교 목사가 종교 세미나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오직 자신이 천국가는 구원을 받기 위해 목매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불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게 ‘불보살들이 지옥에 가는 것’과 ‘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여라)라는 것이었다. 불교에선 곧바로 성불(부처가 됨)할 수 있는데도,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한명도 남김 없이 구제할 때까지 지옥을 떠나지 않겠다고 발원한 지장보살이 있다.

또 선가(禪家)에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과 예수는 커녕 바울과 교리의 틀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기독교에선 이해할 수 없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위대한 점은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현실을 개혁해나가는 것이라면, 불교에서 위대한 점이라면 개인 구원을 넘어서 부처와 조사도 넘어서면서, 모든 중생을 위해 지옥까지도 마다하지않는 보살정신”이라고 평했다.

불교의 약점이 아니라 되레 위대한 점을 부각시켜주는 셈

그러니 위 부흥사들의 주장은 불교의 약점이 아니라 위대한 점을 부각시켜주는 셈이다. 세상적으로 비방을 하려면 실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들어 비판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성철 스님에 대한 세간적 문제를 지적해 비판하려면 가령 △불자들이 출가자를 만나면 수십미터 전부터 큰 절 삼배를 하게 함으로써, 하심(下心)하고, 휴심(休心)해 완고한 틀을 벗고 무아(無我) 무심(無心)의 대해(大海)가 되어야 할 출가자의 아상(我相)과 아만(我慢)만을 산처럼 키워 깨달음과 십만팔천 리 멀어지게 한 죄 △자신은 팔공산 성전암에 10년 동안 숨어 철조망을 쳐놓고 동서양의 수천권의 서적을 탐독해 10년 뒤 해인사 백일법문에서 지적 자양분을 마음껏 발휘해 제반 승려들을 제압하고서도 다른 승려들은 일체 책을 잡지도 못하게 해 보편적 상식과 인문적 소양과 교양도 갖추지 못하게 한 죄 △선 제일주의, 간화선 제일주의의 근본주의적 관점을 내세워 많은 선승들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다름 없는 닫힌 시각을 갖게 하며, 무위도식의 외곬수가 되게 하고, 열린 인격체가 되지 못하게 한 죄 등-이런 죄를 묻는다면 성철 스님이 부추김으로 기세등등하게 안하무인하는 일부 선승들을 야쿠자 보듯 바라보는 상당수 승려들과 불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편은 천국, 네편은 지옥’으로 편가르는, 초등학교 1학년 수준

하지만 성철 스님의 유언은 이런 세간적 시비를 넘어선 초세간적인 정신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편은 천국, 네편은 지옥’으로 편가르는, 초등학교 1학년 땅따먹기 수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일부 기독교 부흥사는 성철 스님의 초파일 법문을 들어 성철 스님이 ‘사탄 숭배자’라고도 비방하고 있다. 성철 스님의 ‘부처님오신날’ 법어 가운데 ‘사탄이여 당신도 부처입니다. 당신을 존경하고, 예배드립니다. 어서오세요’라는 내용을 두고서다. 그 법문 또한 약점이 아니라 해탈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룰 당시 끝까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붉은 악마’ 대신 ‘백의천사’란 이름으로 바꿔야한다며 떼쓰던 극소수의 근본주의기독교인 외 대다수는 이미 그런 정신세계를 경험한 바 있다. 악마니 사탄이니 손가락질하며 저주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해탈돼, 전국 방방곡곡에서 네 종교, 내 종교, 네 지역, 네 지역, 빈부귀천을 따지지않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천국을 연출하지 않았던가.

선사의 법문은 터부와 고정관념과 편견의 동굴을 막은 바윗돌을 단칼에 쳐부수어 해방시키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정신 세계의 파옥(감옥을 깨부수고 나옴)은 타종교보다 한국 기독교에서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장로교 한 뿌리에서만도 백 개가 넘는 교단 난립해 서로 저주

한국엔 장로교 한 뿌리에서만도 백개 넘는 교단이 나와 난립해 있다. 그들이 다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마다 자신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기야말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다고 여기고, 상대를 사이비니 이단이니 사탄으로 저주한다.

그러니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하나님과 예수님 중의 어느 분이 진짜 하나님이고, 진짜 예수님인가. 모두가 자신이 고집하고 주장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내려놓기 전까지 한 분이신 그 분이 어찌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

선(禪)에서 부처와 조사를 죽이는 살불살조도 내가 고집하고 내 마음대로 그린 부처와 조사를 죽이는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과 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크리스찬이 진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내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사는 극락에 집착하는 이의 극락에 대한 착을 베어내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집착으로 묶여 있으면 그 지옥착을 베어내는 것이다. 마귀도 자처하고, 지옥도 들어가고, 부처조차 단칼에 베어버리면서 그 고정관념을 180도, 360도 돌리며 깨부수고 해탈케 하는 것이다.

이분법적 편견으로부터 해방돼 5천만 동포도 하나같이 ‘귀염둥이 악마’(붉은악마)가 되어 춤을 취고 뛰었는데, 부처와 성철이 어찌 지옥에 들어가 함께 춤추지 못할 것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email protected]

성철 스님은 정말로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을까?

오늘 기독교방송에서 서울의 유명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께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시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분은 성철 스님의 고백을 존중한다고 하셨다. 그 고백은 다름 아닌 그렇게 수양을 많이 하고도 유언으로 남긴 말씀에서 자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속였다는 자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책이 1998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로 이 책의 내용은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아마 수도 없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내가 들은 것만도 수차례이고, 요즘도 아주 가끔씩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난감했다. “그게 아닌데…”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게 사실일까? 정말로 성철 스님이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나셨을까? 저자인 류범상 목사님은 성철 스님의 다음과 같은 말을 문제 삼고 있다.

“내 말에 속지 말라,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여!” (1983년 하안거 결제에서의 말씀)

“한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다.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 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성철 스님의 열반송)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부처님입니다!”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

류범상 목사님은 이 말들을 근거로 성철 스님이 사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했느니, 죽어 가면서 결국 천추의 한을 안고 지옥으로 갔느니 하는 말을 서슴지 않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그건 류범상 목사님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학승이요 선승이셨던 성철 스님이 그런 의도로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불가의 가르침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어도 그런 막무가내 해석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대단한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학승이시면서도 선승(禪僧)이셨다. 당대의 선불교 학자들과 나란히 토론하시면서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대해서 설파하실 정도로 탄탄한 이론적 바탕을 이루신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장좌불와, 면벽 수도 등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수행의 고난으로 다듬으신 분이셨다. 성철 스님의 이러한 모습들은 그분의 시봉 스님이 저술하신 성철 스님 시봉기에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성철 스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불가의 가르침 중에는 ‘분별지'(分別智)를 넘어서라는 가르침이 있다. 분별지란 너와 나의 다름, 이것과 저것의 다름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을 말한다. 불가에서는 이 분별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참다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의 법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 연기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없으며, 서로 간에 무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다 이 연기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기법에 비추어 볼 때 남과 나의 다름이 아무것도 아니며,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결국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물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타인에게도 무한한 자비심을 느낄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나의 업보와 타인의 업보가 만나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만들어 내고, 내 전생과 타인의 전생이 얽히고 얽혀서 현세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누가 누구를 탓하고,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서로서로 자신의 업을 감당하고, 그 악업을 끊기 위해서 노력하고, 참다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인 것이다.

심지어 불가에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부처를 미워하고 저주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무엇이든 집착하는 것은 다 미망이고 허상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실체,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어떤 절대적인 가르침이나 권위가 되었든, 그것에 붙들리는 순간, 허상에 빠진다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

부처마저 넘어서야 하고, 부처마저 집착의 대상이 아닌데, 성철 스님이 자신의 가르침인들 소중하게 생각했겠는가? 자신을 거짓말장이로 표현하고, 자기의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다고 한 그 말, 한 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다는 그 말은 자신의 말과 가르침을 심지어는 성철이라는 인간 자체를 존경할 것도, 절대화할 것도 없다는 철저한 자기 비움의 말씀인 것이다. 그분은 살아생전에 생불이라는 존경을 받았지만, 그걸 그분이 기뻐하고 즐겼겠는가?

성철 스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 중에 누구든지 성철 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3천 배인지 1천 배인지 절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했다. 왜 그랬겠는가? 숭배를 받고 싶어서? 아무나 만나 주지 않기 위해서? 아닐 것이다. 성철이라는 유명세를 타는 스님을 찾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3천 배든 1천 배를 하면서 성철을 만나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자기 속에 있는 부처를 스스로 만나서 깨우치라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도 자신의 모든 저술을 다 불태우라고 유언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를 절판하라고도 하셨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유언도 성철 스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것 가지고 스스로가 회개했다느니, 사탄을 숭배했다느니 하는 것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말미에 있는 신문 기사 스크랩을 보면 성철 스님이 사탄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 좀 더 자세하게 실려 있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탄과 부처는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 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이 법어에서도 성철 스님은 분별지의 허망함을 설파하고 계신다. 부연하자면, 결국 이 말씀은 ‘무엇이 사탄인가? 무엇이 부처인가? 무엇이 악한 생각인가? 무엇이 선한 생각인가? 그것도 다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아닌가? 이 사람이 볼 때는 악한 행위가 저 사람이 볼 때는 선한 행위가 되기도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누겠는가?’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불가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불가의 맥락에서 보고 이해를 해야지,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성경 말씀 중에 어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하신 선생님이여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선하신 이는 한 분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하셨는데(눅 18:18), 불가의 누군가가 이 말을 트집 잡아서 예수님은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하셨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건 성경의 문맥에 맞지 않고, 당시의 어법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의 말씀들도 불가의 맥락에서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성철스님 유언] 성철스님의 마지막 말,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류범삼 지음.

<도서출판 [삶과 꿈]- 왜 성철 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류범삼지음)

(성철스님의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 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철스님의 열.반.송.

근거 (조선일보 1993.11.15 15면), 동아일보(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은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됨) 하고자

1934년 23세 때에 부모, 형제, 처자 다 버리고 출가, 입산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한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초인적인 극기수행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임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참으로 세계 불교사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극기수행과 용맹정진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자기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됨)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의 선법의 법통인 “깨우침은 점진적으로 된다.” 는

『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깨우침은 단번에 된다.”고『돈오돈수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은 불교사상 보기 힘든 학승중의 학승이다.

그는 불교의 교의학을 거의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현대학문인 서양철학이나 심리학이나 종교학이나 물리학 등도 널리 섭렵하였으며,

또한 영어,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도 효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성철스님은 불교사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보배요,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온 불자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자들은 그를 “우리 곁에 왔던 부처” 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철스님은 말년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 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가 말년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 왜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퇴옹당 성철 큰 스님

①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스님의 말)

1993년 11월 4일 처음 출가한 그 방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다

그러나 큰 스님은 삼십 년 남짓 한결 같이 다니던 가야산 포행 길을 언제부터인지 힘겨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도 한 자락 가사 밑에 어느덧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 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말에 속지 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 . . . ? ”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1993년 9월에 당신의 저서인 ‘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 선종의 종지를 담은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완간되는 것을 보고나서

두 달 만인 그 해 11월 4일 아침에 성철 큰 스님은 열반하였습니다.

“내말에 속지마라” 는 말을 던져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큰 스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선 잘하라 !” 그 한 말씀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 어깨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처음 출가한 그 방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니,

행운유수行雲遊水의 사문의 길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랍 59년, 세수 82세로 큰 스님은 열반 게송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마침내 생사를 벗어나 적멸에 든 큰 스님은 입적한 지 이레째 날

평생을 주석한 해인사 퇴설당을 떠나서 일주문 밖에 마련된 연화대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퇴설당 위로는 일시에 새떼가 날고, 다비 장에서는 때늦은 낙엽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스님 떠나던 그 날도 그러더니,

백련암 뒷산 하늘에서는 마치 불꽃이 타 오르는 듯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는 드물게 보는 방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이 넘게 걸린 다비는 일백여 과에 이르는 영롱한 사리를 남겼습니다.

다비식에서 사십구재에 이르는 동안 큰 스님의 떠남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뭇 대중의 발길은

해인사 앞뜰을 가득 메우며 끊일 줄 몰랐습니다.

②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요. (성철스님의 글)

조선일보 – 1987.4.23 7면

경향신문 – 1987.4.23 9면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빛총서 1] – 서울사시연 1994년 p.56-59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 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 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 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 악이 융화상통 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위 글에 당황한 불교 측에서는 사탄이 아닌 적불을 성철이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기 바쁘다.

사탄이 아닌 적불이었다면 왜 굳이 ‘적불’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박식하신 분이

‘사탄’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겠는가?

악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악마도 적불인가?

도대체 그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그는 평생 자기 자신도 속아서 거짓말을 최상의 진리인 줄 알고 한 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무서운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뿐인가!

속고 속이고 한없이 이어질 것이니,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는 임종을 앞에 두고 어느 날 푸른 산에 걸려 있는 곧 떨어질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가야 할아비의 불지옥을 생각하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지도자들은 순진한 불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철스님의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회유하고 호도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 겸손을 나타낸 것이란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과연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평생 그가 주장하고 가르친 것은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불교에 귀의했고, 그리고 펴생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살았다.

그러므로 그의 평생의 모든 화두와 법어와 교설과 주장은 그것에 대한 설명이요, 해설이요, 논증이다. 다만 살을 붙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가 거짓말이라는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평생에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는

회한과 통탄의 고백과 토로는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고 했건, 의식하지 못하고 했건

그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불교의 중요한 교리와 주장이 거짓말인가?

물론 불교의 삶의 교훈은 옳은 것이 많다.

그러나 사실인즉 불교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주장과 교리는 유감스럽게도 거짓말이다.

그것들이 왜 거짓말인가는 앞으로 제3부에서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인류공통적인 체험법칙을 통해서, 인간 속에 있는 내적 증거를 통해서 검증,

확인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교는 수양이다, 선행이다 하는 근사한 포장으로 위장한 고차원적인 유사진리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것이 최상의 진리인 줄 감쪽같이 속는다.

그러나 진리의 빛으로 정확하게 조명해 보면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진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전래되는 종교문화와 그 역사로 인해 올바른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된 전통신앙을 진리인 줄 잘못 알고 그대로 답습하며 붙들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사람이 애초에 어떤 길에 발을 들여놓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상에 길은 많고, 길마다 진리라고 근사하게 위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 12)

그러므로 성철스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만일 그와 같은 수행자가 애초에 참 진리의 길, 곧 생명의 길에 발을 들여놓고

평생에 그런 노력과 수고를 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하는 가치 있는 삶 속에

그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소망가운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평생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으니,

이 무슨 비극인가!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이사야 44: 15) – 지금부터 2700년 전 기사 –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 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 4-8) – 지금부터 3000년전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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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이 운명 전 지은 깨달음 ‘시’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에 속이고 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 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려 잎에 야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 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 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 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달이 높이 솟았네.

위의 시는 성철의 운명 전 시사저널 김당 기자가 취재해 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성철스님이 운명 전 영계를 직접보고 그리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섬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잘 묘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극락 간다는 말은 원래 성경 시편 43편 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라”하였다.

극락은 천국의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자들이 가는 곳이며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스님이 영계 속에서 직접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

좋은 씨와 맑은 물” 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

acesuh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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