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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세례 요한과 ‘빛’ 예수의 만남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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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과 나사렛 예수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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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과 예수는 어떤 관계인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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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세례 요한과 ‘빛’ 예수의 만남
복음서에는 모두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러 온 자라고 소개합니다.
“선지자 이사야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마가복음 1장 2~3절)
세례 요한은 예수와 이종 사촌 간으로 예수보다 약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는 마지막 예언자라는 별칭처럼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철저히 금욕적이며 초월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삶을 안내하고 준비하였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작품 ‘세례 요한’이라는 그림을 보면 어두운 조명에 오른손 검지만이 밝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라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세례 요한의 삶은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는 삶이며 그 삶은 또 다른 삶을 안내하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유리된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삶은 사람들과 동화되었던 예수의 삶을 나타내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앞길을 예비하기 위한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와 좀 비슷한 삶을 살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입니다. 예수의 앞길을 예비한다면 예수가 살 길을 세례 요한이 미리 보여주고 그 길을 더욱 완벽하게 예수가 살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가 살았던 삶과는 정반대의 길을 살다가 예수의 사역 시작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그는 예수처럼 먹기를 탐하지도 않았고, 세리의 집에서 기숙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인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지도 않았고, 죽은 이를 위해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늘 날카로운 도끼처럼 심판의 말이 쏟아졌고, 독사의 자식들과 아브라함의 자식들을 나누는 최후의 타작 마당이 선포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실 이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오실 이의 삶을 미리 살아서 오실 이가 잘 살도록 먼저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의 길을 안내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그가 삶을 충실히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면서 예수의 삶을 예비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적용해보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떻게 죽었든 그들 모두는 나의 길을 예비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길을 어찌 세례 요한만 예비했겠습니까? 이미 세례 요한보다 앞섰던 수많은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이 예수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아담으로부터 예수의 나심을 알아차립니다. 그렇다면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길을 예비하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만나고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삶을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에디슨은 나를 위해 전구를 개발했고, 세종대왕은 나를 위해 한글을 발명한 것이며, 성경은 나를 위해 쓰인 것입니다. 예수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박정희는 나를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도록 지시했으며, 지하철은 나를 태우기 위해 매일 경적을 울리고, 집 앞에 빵집 아저씨는 나를 위해 매일 신선한 빵을 굽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지는 나를 위해 지어졌고, 저 우주는 나를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고, 해와 달과 별은 나를 위해 그들의 빛을 비춥니다. 즉 모든 만물과 내가 하나 되는 세상 –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험이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에게로 그리고 예수에게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세례 요한의 삶은 ‘소리’로 집결되고 예수의 삶은 ‘빛’으로 결집됩니다. 즉 소리와 빛의 만남입니다. 그것은 누가 좋고 누가 더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소리는 빛을 통해 완성되고 빛은 소리를 통해 보충됩니다. 소리와 빛의 만남. 이것은 가장 이상적이요, 가장 완성적인 형태입니다.
말하고 보지 못하는 세계는 무색(無色)의 세계요, 보고 말하지 못하는 세계는 무언(無言)의 세계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는 자신들에게 없는 무색과 무언을 상대에게 받아들이면서 가장 완전한 삶을 산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눅 7:28)고 했으며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 1:29)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실 이의 삶을 미리 보고 그에게 없는 소리의 삶을 살았던 사람과 먼저 간 이의 삶을 보고 그가 살지 않은 한 사람이 계속 저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시작하는 시
아마도 이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내가
그의 집을 조용히 나섰던 때가 말입니다.
지팡이 하나와 신발 한 켤레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그리며
옷자락을 잡는 수 없는 유혹을 뿌리친 그 사내가 그립습니다.
또 떠남의 시간이 왔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한 젊음을 한 쪽에 간직한 채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사명을 온 몸에 안고
갈릴리 한 사내의 묵묵한 몸짓을 뇌리에 새기며
한 발을 내딛고 싶습니다.
이제 신발을 꽉 매여 신고 지팡이를 힘차게 쥐고
내 십자가라 명령지워진 고난을 등에 지고 묵묵히 한 사내를 따라 갈릴리로 가려 합니다.
더 없이 길게 늘어져야 할 이 살림의 행렬에 당신과 함께 그 분의 나라를 앞당기고 싶습니다.
나를 부르는 한 사내의 몸짓이 계속 떠오릅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는 어떤 관계인가?
머리가 짤린 세례요한
복음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기이하게도 세례요한과 예수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복음서속에서 등장하는 세례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행한다.
일반적으로 안수 세례는 영적 지도자가 밑에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한의 세례는 회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은
마태 3:3, 마태 3:11,누가3:1,마가 1:4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 웠노라 라고 말하며 세례를 행했는데,
신의 아들이며 성육신이라는 예수가 무슨 이유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에 대해서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요한복음 1:15,30
세례 요한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는 빛이 아니다”
요한복음 1: 9
“그는 예수보다 앞서 있지도 않았다”
요한복음 3:30
“예수는 흥해야 하고 그는 쇠해야 한다” 라는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의 세례요한에 대한 구절은 짤막하게 나오는데,
요한복음 만큼은 세례요한과 예수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또한 요한복음은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에 대해 언급한 예수의 말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요한복음 1장21절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세례요한에 대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하는 질문에
아니라고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이러한 기록은
마태복음 17장 10~13절, 마태복음 11장 11~15절
예수가 세례요한을 가르켜 엘리야라고 말한 내용과 상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특이한 진술을 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1절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하는 말을 바리세인들은 들은 줄을 주께
서 아신지라.”
요한도 세례를 주고 있고 예수도 세례를 주고 있는데 예수에게 사람이 더 많이 몰리게 됐다고
바리세인들에게 소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요한복음 1장 40절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라도 요한의 추종자였다가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요한복음 3장
예수와 요한은 서로 각자 독립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요한복음 3장 22~23절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
렘 가까운 애논에세 세례를 주니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분명 세례요한은 자신이 직접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노니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했으면서,
예수를 만난후 계속해서 세례주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세례요한이 예수를 가르켜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이에 요한의 제자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레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
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요단강 저편에 있던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좀더 뜻이 명확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 예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읍
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 가고 있읍니다 하고 말
하였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요한복음 3장 27~ 29절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자는 너희 니라.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오늘날 기독교측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라는 말을 근거로 세례요한
의 겸손함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례요한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세례요한의 말을 살펴보면 ‘신부=예수의 추종자’, ‘신랑=예수’, ‘결혼식을 보고 기뻐하는자=세
례요한’ 이라는 비유를 들고 있다.
기독교적으로 따져보자면 세례요한은 분명히 구경꾼의 사명자가 아닌 직접 그 신부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신부로서 짝이 되지 못하고 ‘신랑의 친구'(=또 다른 선지자)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은 세례요한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지어내거나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
요한복음외에도 마태복음에도 세례요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헤롯의 치부를 트집잡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마태복음 11장 2~3절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
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구절은 참으로 세례요한 답지 않은 말이다.
감옥에 갇혀서 크게 낙담한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당신이 그리스도가 정말 맞는가?”하고 회의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매우 불쾌한 듯이 자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말했고 세례요한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마태복음 11장 6~12절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 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예수는 세례요한을 가르켜 ‘실족한자’, ‘흔들리는 갈대’, ‘천국에서 작은자’, ‘침노하는 자’등으
로 비하를 하고 있다.
요한은 요세푸스의 저술에도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가 에세네 파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
혹시, 세례요한의 종파가 예수의 추종자들의 라이벌이 아니었을까?
세례요한 역시 범상치않은 방법으로 태어났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제사장인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천사의 계시를 받고 아이를 잉태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타락한 헤롯일가를 비난하다가 살로메에 의해 은쟁반에 목이 잘려지는 범상
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기독교인들은 잘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예수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 붙이고, 세례요한을 참 메시
아라고 규정한 영지주의 종파가 있었다.
이러한 종파로는 요한파와 만다교가 있었다.
이들종파는 초대교회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만다교는 이라크 남부 및 이란 남서부(후지스탄 지방)에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명칭은 아람어(語)의 방언 만다(manda:靈知)에서 유래하였다.
교리는 지극히 절충적,혼합주의이나 세례,성찬예식 등에는 엄격한 제례(祭禮)가 따른다.
특히 세례는 반드시 흘러가는 물에서만 갖는다.
전통적 분리주의를 견지하며 현재까지 남아 있으나, 근대교육, 생활의 기계화, 교역 등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중세의 근동 여행기에 이미 ‘성 요한의 그리스도자’라는 이름으로 이 교파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세례자 요한을 자기 종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노시스적(的) 유대교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교도의 수는약 2,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경전은 1세기경에 성립된 ‘긴자(보물이라는 뜻)가 대표적인 것이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만다교 Mandaism항목]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행적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나타냈다고 보여진다.
즉 헤롯과 자신의 형제와 이혼한 여자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판했고 이에 괴씸죄에 걸려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이종 6촌지간인가요?
[질문]○ 눅1:36에는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 이유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친척관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육신적 혈통은 유다지파입니다. 비록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상이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마태의 족보는 주님의 부계(요셉)혈통으로, 누가의 족보는 주님의 모계(마리아)혈통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견해가 옳다면 마리아는 유다 지파의 여인입니다! 아무튼, 요셉의 혈통을 따르든 마리아의 혈통을 따르든, 예수님이 유다 지파의 자손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이에 비해 세례 요한은 분명 레위 지파입니다. 눅1:5절에는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혈통이 너무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부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입니다. 역대상에 보면 노년의 다윗이 여러 가지 통치분야를 재정비하여 솔로몬에게 왕위를 인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종교분야도 포함됩니다. 즉, 다윗 당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후손 족장은 16명이고 이다말 후손 족장은 8명이었는데, 다윗은 이들 24가족의 순서(반차)를 정하여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토록 정리하였습니다(대상24장). 10절을 보면 아비야는 24 반차 중의 여덟 번째 제사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대상24:10). 결과적으로 아론→이다말→……→아비야→……→사가랴→세례 요한의 계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 한편,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태생의 처녀들과 결혼해야 했으며 가능하다면 제사장 딸과의 결혼이 권장되었습니다(레21:7-14). 따라서 제사장인 사가랴는 레위지파의 처녀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눅1:5절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론지파임을 확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례 요한의 혈통은 레위(아론)의 후손인 것입니다.
○ 한국의 경우, 가까운 혈족을 친인척(親姻戚)으로 구별합니다. 친척은 부계혈족으로서 보통 8촌까지를 포함하며, 인척은 모계혈족으로서 4촌까지를 그 범위로 합니다. 이 범위를 넘는 혈족은 그냥 ‘일가’(一家)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 이제, 그렇다면 눅1:36절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짐작될 것입니다. 즉, 여기서 “친족”(Relative)이라는 혈족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 36절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네”는 ‘마리아’에 대한 2인칭 대명사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친족” 관계가 성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유다지파)와 엘리사벳(레위지파)은 부계가 확실히 틀리므로 ‘친척’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겠습니다.
– 이제 남은 것은 모계에 의한 ‘인척’의 가능성뿐입니다. 한국의 인척은 4촌 이내로 한정됨을 고려한다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가까운 인척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 두 여인이 이종4촌이 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즉, 마리아의 모친과 엘리사벳의 모친은, 유다지파가 되었든 레위지파가 되었든, 반드시 친자매지간이어야만 합니다.
– 그렇다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간신히 인척관계가 성립되므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는 있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 한편, 학자들은 ‘친족’ 또는 ‘친척’으로 번역된 헬라어 ‘수게네스’가 ‘피붙이, 혈육’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촌수인 이종4촌을 넘는 관계까지 ‘피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친족”이라는 단어를 유대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을 경우입니다. 유대민족은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되었으므로 당연히 단일민족이며(물론 이방민족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막연히 “친족”이라 부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롬9:3, 11:14, 갈1:16 참조). 그러나 치밀한 누가의 성격상, 이처럼 모호한 의미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 또 눅1:39절 이후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모습은, 유대민족이라는 의미를 넘어, 상당히 가까운 친인척 관계인 듯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어떤 학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살던 곳은 약 150㎞ 정도의 거리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가까운 이웃 동네든 150㎞ 떨어진 먼 동네든, 이전부터 서로 왕래하며 잘 알고 지내던 사이 같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생판 모르는 집에서 3개월을 머물 수는 없습니다.
– 따라서 가까운 친인척 관계가 아닌데도 막연히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에서 “친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 참고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4촌이다.”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예 : 마크 부캐넌 목사 / 보이지 않는 것에 눈뜨다 / 규장 / p.139), 나름대로 전승 내지 신학 자료에 근거한 주장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주장에는 치명적 난점이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4촌(친4촌/이종4촌/고종4촌/외4촌 등) 이내의 혈족이 되기 위한 조건은 하나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모(요셉/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부모(사가랴/엘리사벳) 중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친형제/친자매/친오누이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살펴본 대로, 성경은 이들 4명 중에서 요셉/사가랴/엘리사벳의 지파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친형제자매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만 마리아는 조금 불분명합니다. 저는 앞에서 마리아가 유다지파일 것으로 추정했었습니다(학자들이 누가복음의 족보를 마리아 계보로 보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입니다). 제 추정이 틀려서, 마리아가 레위지파라면(엘리사벳의 친동생),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이종4촌이 됩니다.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다른 분들이 설명하는 누가복음의 족보(마리아 계보=마리아도 유다지파에 속한다는 것)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4촌설”을 강력히 반대합니다.
○ 좀더 살펴보고 싶으나 유대인의 족보와 신학 자료에 대한 지식이 제한되는 평신도에게는 벅찬 일인 듯 싶습니다. 따라서 아쉽지만,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이종4촌일 것이라는 추정을 제기하되, 추정에 대한 정확한 논거는 미해결의 의문으로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 물론, 주님은 성령님에 의해 잉태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하나님 본체이심으로), 세례 요한과의 육신적 친인척 관계를 일일이 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문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번 생각해 본 것입니다.
☞ 의문 :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정말 이종 6촌지간인가요?
[답변]이 문제 또한 성경에 기록된 범위 이상을 넘어서 답변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 문제는 상호 연관되는 성경 기록이 거의 없어서 깊이 추정해 보기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아주 간단하게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눅1:36의 ‘친족’이라는 헬라어 ‘슁게네스’는 피를 나눈 친척을 뜻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몇 촌을 규정한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심지어 동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어 역본에는 ‘cousin’, ‘kindswoman’ ‘relative’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님께서 추정한대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몇 달이나 기거한 것으로 보아 비교적 가까운 친척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친척이 되는가에 대해선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지적하신대로 분명히 레위 지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마리아가 레위 지파인지, 유다 지파인지 성경이 확실히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느 지파 사람인가?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와 누가 두 복음서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두 족보의 명단이 서로 일치하나 다윗부터 요셉까지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외에는 모든 이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가계에 근거하여 기록되었다는 의견을 일부 학자들이 제시했습니다. 마태 복음은 요셉의 가계를 따라 기록한 것이 분명하지만 누가 복음이 모계 중심의 족보라는 것은 확정된 이론이 아닙니다.
우선 이스라엘 사회는 한번도 모계 사회가 된 적이 없어서 완전히 여자들 중심의 족보는 기록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가계를 중심으로 기록했다는 의미는 마리아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고 그의 아버지는, 또 그의 아버지는 식으로 따져서 적어 올라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올라가서는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의 선조와, 마리아의 아버지의 선조가 한 아버지 밑에서 난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가 아르라함부터 다윗까지는 동일하고 그 이후부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요셉의 선조와 마리아의 선조는 다윗의 자식들로 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이론에 따르면 요셉의 선조는 솔로몬(마태복음의 다윗의 아들)이며, 반면에 마리아의 선조는 나단(누가복음의 다윗의 아들)으로 그때부터 나뉘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 견해의 가장 큰 문제는 다윗의 후손으로 두 족보에 중복되어 나타나는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동명이인으로 치부하기는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두 족보가 동일하게 이 둘을 부자 관계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명이인 같은 우연의 일치는 한 명이면 모르지만, 두 명이 그것도 족보의 순서까지 같이 나타날 리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스룹바벨이든 스알디엘이는 예수님의 모계와 부계의 선조가 합쳐지면 그 이후로는 족보가 같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가 진정으로 그 족보를 마리아의 가계 중심으로 기록하려 했다면 그 치밀한 성격에 최소한 눅3:23에 마리아의 이름을 요셉과 함께 병기했어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라고 기록하는 대신에,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마리아의 부친은 헬리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라고 표현했어야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말이라도 삽입했어야 함에도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누가와 마태의 족보의 차이점을 또 다른 학자들의 주장처럼 계대 결혼의 자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타당할 수 있습니다. 계대 결혼은 아시는 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고 남편이 죽은 미망인은 그 형제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음으로써 대를 이어가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법률상 그 아들은 전 남편의 아들로도 기록될 수 있었고 혹은 그 남편의 형제의 아들로도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는 요셉을 헬리의 아들이라고 말하지만 마태는 야곱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를 계대 결혼 제도에 근거해 보면 헬리와 야곱은 형제 간이었고 헬리가 무자한 채 죽자 야곱이 헬리의 아내와 결혼하여 요셉을 낳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학자들의 견해는 단지 추론에 불과할 뿐 확정적인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 족보 상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확정적 견해는 하나 뿐입니다. 마태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누가는 이방인도 구원하는 모든 죄인의 구세주 예수님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친척인가?
마리아가 유다 지파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또 다른 근거는 부모로 부터 상속을 받고 딸만 있는 집안의 이스라엘의 처녀들은 자기 지파의 남자들에게만 시집가야 하는 제도 때문입니다.(민35:8) 그러나 마리아가 혹시 그런 경우에 해당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마리아가 어느 지파였든 자기 집안에 상속을 받은 아들 형제가 따로 있었다면 유다를 포함한 어느 지파에게도 시집갈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마리아가 레위 지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위 지파의 경우에는 다른 지파와의 결혼이 완전히 자유롭게 허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레위 지파만은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레위 지파는 계대 결혼으로, 혹은 아들이 없고 딸만 상속자가 되어도 기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파로 넘어갈 기업 자체가 없습니다.
즉 마리아가 어느 지파가 되었든지 간에 지파간의 결혼이 가능하므로 엘리사벳과의 친족이 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따라서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이 문제는 성경이 기록한 것 이상으로 추정할 수는 없기에 저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래 두 가지 뿐입니다.
첫째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친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리아 자신이 레위 지파이든지, 엘리사벳의 선조 중에 누군가가 유다 지파인 마리아의 선조와 결혼을 했다면 그렇게 됩니다. 마리아가 어느 지파인지는 모르지만 친척은 분명 친척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친척은 친척이되 그 촌수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친족 “슁게네스”란 단어는 사촌간 뿐만 아니라 아주 먼 친척 간에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이종 사촌인가 육촌인가도 아무도 모릅니다. 전승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성경을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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