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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 『승무』에 얽힌 이야기 – 건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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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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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僧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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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승무-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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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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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 『승무』에 얽힌 이야기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그 세 번째로 ‘~ 하이얀 고깔은~’, ‘나빌레라~’란 싯구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편집자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학창시절 교과서에 수록된 ‘승무’를 처음 접했을 때 아마도 “이게 왜 좋은고? 도무지 뭔 소린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TV에 승무가 나왔던들 채널을 돌려버리고 관심도 없었을 터이니 시가 마음에 다가설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시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지훈(1920-1968) 시인은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을 정도로 불교와는 인연이 깊다. 시인은 ‘시의원리’라는 책에서 승무의 창작과정을 밝힌 바가 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놀랍다. 승무를 시로 만들겠다고 구상한 때는 시인이 19세 때라고 했으며, 구상한 지 11개월, 집필한 지 7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승무를 보았지만 특히 한성준의 춤, 최승희의 춤,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을 사랑했다고 한다. 승무를 보고 넋이 빠져서 시로 만들 생각을 가졌으나 쉽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어느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 화가의 ‘승무도’를 보고 대략의 구도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최승희 무용가의 승무(출저=연낙재)
그 후 글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해서 칠 개월 만에야 완성했다고 하니 ‘승무’가 왜 그의 대표작이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사연을 알고 다시 시를 볼 때는 확실히 일근 자세부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시만 이야기하면 심심하니 조지훈 시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다. 1960년 9월 동아일보에 『문단통합에 앞서야 할 일 –부제- 서정주 씨의 ‘문단 대동단결론’을 읽고』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서정주 시인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의 권력 지향적 행태에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서정주 시인이 친일 활동을 했다가 자유당 시절에는 이승만의 전기를 쓰는 등 권력에 야합하다가 4.19혁명 이후에 강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한편으로 과거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어용문단의 간부들이 돈 받고 협력하는 등의 문단의 타락상을 개혁하고픈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글을 쓰는 서정주의 모습에 크게 분노해서 발표한 글로 보인다.
후에 서정주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조지훈 시인을 좀 고지식한 면이 있고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정주시인과 조지훈 시인은 오래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내막을 모르고 썼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조지훈 시인은 이미 작고한 뒤의 일이라 말이 없다. 서정주는 그 후 5공화국에서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발표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을는지 조지훈의 글에 신빙성을 둘지는 너무도 뻔해 보인다.
불교에 심취했던 조지훈 시인의 아름다운 시 하나를 더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고사(古寺) 1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청록파 시인 (순서 불명확)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지훈 시선집(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다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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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사랑해
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문장 11호, 1939.12)
* 승무 : 인간의 고뇌를 상징하는 춤.
* 나빌레라 : 나비로구나.
* 단순히 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 작품의 서두와 마지막에 되풀이되는 ‘얇은사 하이얀 고갈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는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뜰에 한송이의 나비처럼 어둠을 가르며 움직이는 승려의 모습으로 세속의 세계를 버리고 가없는 고뇌의 바다를 넘어 영혼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한 젊은 여인의 간절한 소망의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참고자료
조지훈 (1920 – 1968) 국문학자 시인 본명은 東卓
이 시는 그의 초기시를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로 ‘승무’라는 춤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극복하려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시적 화자는 어느 깊은 가을밤, 한 젊은 비구니가 달빛 내려 비치는 오동나무 아래서 자신의 세속적 번뇌를 이겨내기 위해 ‘승무’라는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를 첫 행과 마지막 행에 배치하는 수미상관식 구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감추오고’․‘모두오고’․‘감기우고’와 같은 아어형(雅語形) 어휘를 활용하여 운율감을 살리는 한편, ‘나빌레라’․‘파르라니’․‘정작으로’․‘외씨보선’․‘살포시’ 등 맵시 있는 우리말을 조탁하여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전 9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3연의 첫째 단락은 춤추기 직전의 모습으로 화자는 ‘고깔’, ‘깎은 머리’, ‘두 볼’의 순서에 따라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는 역설적 표현에서 춤추는 승려가 홍조(紅潮)띤 젊은 여자라는 것과 그가 세속적인 번뇌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4연의 둘째 단락은 승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배경이 제시된 부분이다. 무대는 황촉불 하나만 켜져 있는 텅 빈 공간이며, 시간은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밤으로 제시됨으로써 고전적 정밀미(靜謐美)를 느끼게 해 준다.
5~8연의 셋째 단락은 춤의 동작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먼저 5연에서는 유장하면서도 급박한 동태미를 나타냄으로써 4연의 정밀미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세속적 번뇌와 갈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7연은 춤추는 모습을 통해 세속적 번뇌를 초극하려는 구도자의 갈망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적 춤 동작을 통해 마침내 그가 도달한 경지가 곧, 이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7연의 ‘번뇌는 별빛이라’라는 구절이다. ‘별빛’은 천상적․초월적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 지상적․세속적 현실 상황을 의미하는 ‘눈물’과는 결코 동일시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라는 불교 원리에 의해 등가적(等價的) 가치를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눈물’과 ‘별빛’의 관계는 ‘진흙’ : ‘연꽃’, ‘범부(凡夫)’ : ‘부처’, ‘고행’ : ‘열반’ 등과 같은 상대적 개념이지만, 주체의 의지에 따라 전자[진흙․범부․고행]에서 후자[연꽃․부처․열반]로 이행할 수 있다는 불교의 원리에 따라 ‘눈물 = 별빛’이라는 비유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8연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춤이므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창인 양하’다는 구절로 표현된 것이다. 9연의 마지막 단락은 춤의 종료이자 시상의 마무리 부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1연의 ‘나비’와 9연의 ‘나비’가 서로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1연의 ‘나비’는 나비처럼 보이는 고깔의 모습을 단순히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지만, 9연의 ‘나비’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모습이므로 ‘애벌레’→‘나비’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불교적 자기 정화(淨化)내지 재생(再生)을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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