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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42장. ▶기록시기: 알 수 없음. 배경은 ‘족장 시대’임. ▶기록 목적: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아래에 있다는 것과 경건한 욥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 및 참된 신앙의 의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 기록하였다.


욥기 개요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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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42장 / 내용 요약 :: 마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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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42장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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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성경 요약. 18. 욥기 요약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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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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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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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욥기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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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욥기 내용 요약 설교자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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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욥기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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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이해 및 단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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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이해 및 단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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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이해 및 단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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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장별 요약 핵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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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장별 요약 핵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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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장별요약 : 욥기(1-42장)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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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장별요약 : 욥기(1-42장)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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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with the Bible: 욥기 쉽게 읽기^^ 욥기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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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42장 / 내용 요약

욥기 1~42장.

▶저자: 미상. 유대 전승은 ‘욥’

▶기록시기: 알 수 없음. 배경은 ‘족장 시대’임.

▶기록 목적: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아래에 있다는 것과 경건한 욥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 및 참된 신앙의 의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 기록하였다.

1장. 본서의 배경을 이루는 본문은, 재난당하기 이전의 욥의 부요함과 경건한 신앙을 보여 주고, 이어 사탄의 악한 제안 및 그로 인해 욥에게 연거푸 재난이 닥치는 장면이 소개된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다.)

(욥이 자녀와 재산을 잃다.)

2장.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 사탄은 두 번째 시험에서 욥의 전신에 종기가 나게 한다. 그래도 욥은 여전히 여호와 신앙의 정조를 버리지 않는다. 한편, 이 무렵 욥의 소식을 듣고 욥의 세 친구가 문병차 욥을 찾아온다.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러 오다.)

3장. 육체의 고통이 극에 달하자 욥은 입을 열어 자신의 출생을 탄식한다. 또한 지금이라도 죽기를 바라는 처절한 심경을 토로한다.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다.)

4-5장.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첫 번째 공박이다. 세 친구 중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는 인과 응보의 논지를 펼치면서, 참회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을 것을 욥에게 충고한다.

(엘리바스의 첫 번째 말.)

6-7장. 엘리바스 1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욥은 자신은 불의한 존재가 아니므로 자신의 고통은 결코 죄 때문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덧붙여 인생의 허망함을 탄식하는 중에 연약한 인간에게 임하는 고통으로 인해 절규한다.

(욥의 대답.)

8장. 욥을 향한 빌닷의 첫 번째 공박이다. 빌닷은 욥에게 임한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른 것이며, 악한 자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절망에 이른다는 논지를 폄으로써 욥을 공박한다.

(빌닷의 첫 번째 말.)

9-10장. 빌닷의 1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먼저 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인 괴리를 강조한 후에 둘 사이의 중보자를 기대한다. 이어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하나님께 질문하고, 편안한 휴식을 소망한다.

(욥의 대답.)

11장. 욥을 향한 소발의 첫 번째 공박이다. 소발은 이론적인 교리에 근거하여 욥의 고통을 하나님의 징벌 때문으로 보고 있는데, 욥의 회개를 전제로 미래의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소발의 첫 번째 말.)

12-14장. 소발의 1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욥도 역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변론하기를 갈구하고, 덧붙여 인생의 무상함을 피력한다.

(욥의 대답.)

(욥의 기도.)

15장.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두 번째 공박이다. 욥의 자기 변호에 분개한 엘리바스가 전통의 권위에 근거해서 욥의 변론을 매섭게 공박하는 중에 욥의 허물을 책망하고 정죄한다.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

16-17장. 엘리바스의 2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얻지 못한 욥은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중보자를 대망한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고통보다 차라리 죽음을 동경한다.

(욥의 대답.)

18장. 욥을 향한 빌닷의 두 번째 공박이다. 욥의 변론에 감정이 악화된 빌닷은 급기야 욥을 교만한 악인으로 규정하면서 욥을 엄히 나무라며 정죄한다.

(빌닷의 두 번째 말.)

19장. 빌닷의 2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욥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소외당하고 조소당하는 자신의 참담한 상황을 토로한다. 그러한 가운데서 욥은 하늘의 구속자를 대망한다.

(욥의 대답.)

20장. 욥을 향한 소발의 두 번째 공박이다. 계속되는 욥의 변호에 소발 역시 격한 감정으로 악인은 필히 망한다는 종전의 인과 응보론을 펼치면서 강력하게 욥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소발의 두 번째 말.)

21장. 소발의 2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욥은 세상에서 보여지는 바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을 지적하면서,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인과 응보의 논리가 허구임을 지적한다.

(욥의 대답.)

22장.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세 번째 공박이다. 인과 응보론의 잘못을 주장하는 욥의 변론에 대해 엘리바스는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하면서 욥의 회개를 촉구한다.

(엘리바스의 세 번째 말.)

23-24장. 엘리바스의 3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친구들의 공박에 답답함을 느낀 욥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 자기 결백을 호소한다. 그런 후에 욥은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고백한다.

(욥의 대답.)

25장. 욥을 향한 빌닷의 세 번째 공박이다. 빌닷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위대하심에 근거하여, 자기 변호에 열중하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욥의 행위를 비난한다.

(빌닷의 세 번째 말.)

26장. 빌닷의 3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이다. 욥은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빌닷의 주장을 일축한 후에 자신의 신앙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전능하고 광대한 성품과 능력을 고백한다.

(욥의 대답.)

27-28장. 세 친구 모두를 향한 욥의 변론이자, 욥의 1차 독백이다. 욥은 자신의 순전함을 주장하면서 악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계속해서 욥은 지혜의 가치를 노래하면서, 오직 하나님 경외가 지혜의 근본임을 강조한다.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말.)

(지혜와 명철.)

29-31장. 세 친구를 향한 마지막 변론이자, 욥의 2차 독백이다. 먼저 욥은 지난 날의 풍요롭고 의로웠던 과거를 회상한 후에 곧 지금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탄식한다. 그러면서 왜 자신에게 고통이 임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반문한다.

(욥의 마지막 말.)

32장.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엘리후가 개입하여 중재하는 장면이다. 엘리후는 인과 응보론의 세 친구와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는 욥의 허물을 동시에 지적하면서 참 지혜를 주고자 한다.

(엘리후가 화를 내다.)

(엘리후의 말.)

33-37장. 욥을 향한 엘리후의 긴 권면의 말이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 이라는 차원에서 봄으로써 세 친구들보다는 훨씬 발전된 견해를 피력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직면한 불가사의한 고난에 대해 실질적이고 근원적인 답변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말.)

38-41장. 인간의 논리가 한계에 이르자, 마침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 욥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이때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대조함으로써, 누구든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신적 경륜에 회의하고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시다.)

42장.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욥은 자신의 미천한 한계를 깨닫고 참회한다. 이어 욥은 세 친구의 허물에 대해서 중보의 제사를 드린다. 끝으로, 참회한 욥에게 갑절의 축복이 임한다.

(욥의 회개.)

(결론.)

(여호와께서 욥에게 복을 주시다.)

출처 베스트성경 YOU CAN DO IT^^

이민호 성경 요약. 18. 욥기 요약

성경 요약. 18. 욥기 요약

18. 욥기 요약

“욥기”는 구약 성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최고 난제임을 미리 밝혀 둔다. 욥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바로 앞 챕터까지의 구약성서 내용은(창세기~에스더) 유대인들의 역사 이야기이므로 읽으면서 ‘ 아 , 그런 일이 있었구나 ! ’만 알면 되지만, 욥기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욥이라는 한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겪는 내면적인 갈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 깊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언급 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도 욥과 그의 친구 3명이 서로 신학적 토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차원의 용어들로 대화하는데, 그 말 자체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한국말로 번역된 성경이 당연히 “ 성경적 ” 으로 고매한 말을 사용함으로써 , 우리가 욥기를 이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면이 있다 . (욥기의 요약은 구어체 대화식으로 해 볼 예정이다.)

[욥기를 동화처럼 이야기하면 간단하게 요약이 된다]

옛날에 “욥”이라는, 정말로 착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살았던 마을의 리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에게 “ 하나님 ! 저 ” 욥 “ 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진짜 이유를 아시는지요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재물과 복을 누리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그가 가진 재물을 다 없애버리면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걸요 ? 제가 한 번 해봐도 될까요 ?” 라고 하나님께 내기를 하자, 하나님은 ”설마 욥이? 그럴 리가.“ ”그럼, 오케이. 사탄아, 한 번 그렇게 해봐라. 대신 생명을 빼앗지는 말고, 알겠느냐?“ 하나님이 허락하자 사탄은 욥이 가진 전 재산을 없애버리고, ‘욥의 자식들까지’ 싹 다 죽여 버렸습니다. (Oh My God!)

그래도, 욥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자, 사탄이 이번에는 2차로, 욥의 몸(육체)에 진물이 뚝뚝 떨어지게 하는 피부병에 걸리도록 해서 벽돌로 몸을 긁어야 할 정도의 괴로움에 시달리도록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동의를 구한 후에 그렇게 했습니다.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된 ”욥“에게 친분이 있던 옆 마을의 리더 3명이 욥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욥은 처음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하고 오락가락하는 말을 하며, 하나님의 뜻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자기는 죄가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투정했고 , 그 친구들은 욥에게 아마 욥이 무언지 모르지만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시지 않았겠냐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주로 욥기의 내용인데 욥의 내면적 고뇌와 친구들의 충고가 앞뒤가 안 맞는 듯 한 표현을 하며 오락가락 하고 있어서 이 친구들과 욥 사이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요지를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애매한 말만 하고 있는 이 어른들의 토론을 듣고 있던 한 젊은이는 (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 엘리후 ” 라는 젊은이가 갑자기 슬그머니 나옵니다 )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말만 쓸데없이 하지 말고 자기의 직설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며 끼어듭니다. 이 젊은이의 말은 주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그 젊은이의 말을 인터셉트하고 이어받아서 이야기를 해 나갑니다. “ 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 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이어집니다 .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그 3명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진실함이 없다고 책망했습니다. 결국 믿음이 좋은 욥은 다시 축복을 받아서 예전의 재산과 재물을 모두 회복하고 새로운 자식들도 얻어서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았습니다. Happily ever after! 욥기 이야기 끝…

이상이 욥기의 스토리이다. 위의 내용처럼 간단히 “ 죄 없는 욥이 사탄의 시험을 받았지만 꿋꿋이 이겨내며 여호와를 배신하지 않고 섬김으로써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 라고 결론내면 좋겠지만, 그렇게 욥기의 내용이 만만치가 않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욥기에 대한 전반적 의문점을 살펴보고 욥기 요약을 해보고자 한다.

[욥기를 읽으며 궁금함을 유발하는 것들]

1. 욥기에서 왜 하나님은 사탄의 요청을 들어주었는가?

2. 재산이 없어지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처음에 죽은 욥의 자식들은 무슨 죄인가?

3. 욥이 친구들에게 하는 말의 요지는 무엇인가?

4. 친구들 3명이 해준 위로의 말들은 요지가 무엇인가?

5. 엘리후(젊은이)는 갑자기 어디서 등장했고, 누구인가?

6. 왜 욥은 칭찬받고 3인의 친구들은 책망을 받았는가?

7. 가장 중요한 질문: 왜 아무 죄가 없는 욥에게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셨는가?

그냥 쉽게 대답해보자. (자세히 파고들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다)

1. 하나님도 사탄의 말처럼 욥이 재물 때문에 자신을 섬기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2. 욥기는 자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므로 따지지 말고 욥의 입장만 봐라.

3. 나는 하나님께 벌 받을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4. 하나님은 의인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 욥이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5. 하나님의 등장을 알리기 바로 전, 하나님의 사자인 엘리후가 서두를 시작했다.

6.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고, 친구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7. 이건 인간이 알 수 없다. 그냥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가? 뭔가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고 나온 느낌이 든다. 위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욥기 요약을 다 마치고 난 후에 한 번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아무튼 욥기는 누가 언제 썼는지도 알 수 없고,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욥기의 내용에 관해서도 이 글을 쓴 유대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쓴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의 섭리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해 고심해서 만든 문학 작품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말하는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은 아브라함이 활동하던 족장들의 시대이고 , “ 사해 남쪽에 있던 우스 ( 에돔지역 )” 라는 지역의 부족장급 사람인 욥에 대해서 ,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 왕이 지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는데 나도 대략 그 정도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다 . 그냥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 )

욥기 42장을 모두 읽는 동안은 욥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 편의 멋진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내용의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는 이 글을 다 읽은 후에 생각해보는 것이 좀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팁이다. (참고로 한글 성경으로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앞뒤의 의미 파악이 이상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알아두기 바란다) 그럼 시작한다.

[욥기 요약 시작] [온전한 신의 사람이자 마을에서 최대 부자인 욥에게, 사탄의 꾐에 넘어간 하나님이 두 가지 재앙을 내리지만 처음에 욥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다.(1, 2장)]

옛날 “우스”라는 동방 지역에 “욥”이 살았는데,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정직하고 온전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살았고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가진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자 그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였다.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 소 500마리, 암나귀 500마리에 노비도 많이 거느린, 명실상부한 지역 최고의 유지였다. 욥은 항상 자식들을 불러서 정결하게 했고 여호와께 늘 번제를 드리며 자식들이 죄를 범하여 여호와를 욕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여호와 앞에 여호와의 아들들(천사 계급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는 사탄도 있었다. (모든 만물이 여호와의 피조물이므로 사탄도 여호와의 아들 중에 당연히 낄 자격이 있다.) 사탄은 여호와께 자신이 땅을 두루 돌아다녀보고 왔다고 말씀드렸는데 여호와는 “ 그래 ? 그럼 , 나의 종 욥도 보았겠구나 . 욥만큼 온전하고 정직해서 나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 하고 욥을 칭찬한다. 여호와의 칭찬에 사탄은 여호와께 (무엄하게도) 도발적인 내기를 제안한다. “ 여호와여 , 어떻게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여호와를 경외하겠습니까 ? 여호와께서 욥의 집과 그의 재물들에 복을 주셔서 그의 재산이 땅에 넘치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일 뿐입니다 .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을 다 없애버리시면 욥도 아마 여호와를 경멸할 것입니다 . ” 사탄의 제안에, 여호와는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고 사탄에게 그렇게 한 번 해보라고 허락한다.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의 말만 듣고 시험삼아 욥에게 재앙을 내리도록 했던 것이다.)

여호와의 동의를 얻은 사탄은 욥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1. 스바(에티오피아로 추정) 도적들이 소와 나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임.

2.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아마 벼락) 양과 종들을 불살라 버림.

3. 갈대아(이라크) 도적들이 낙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임.

4. 큰 바람이 맏아들 집을 붕괴시켜, 그 속에 함께 있던 자식들 전원 사망.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재앙을 접한 욥은 순간적으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지만(마음 아플 때의 행동)” 곧바로 엎드려 예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가 모태에서 태어날 때 알몸으로 나왔으므로 , 돌아갈 때에도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 . ”

아무튼 결론적으로 욥은 재산을 모두 잃었지만 여호와를 배신하지 않았다. 또다시 여호와와 사탄이 마주한 자리에서, 여호와는 사탄에게 그것 보라며, 네가 까닭 없이 나를 충동질하여 욥에게 재앙을 내렸지만 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또다시 욥을 칭찬한다. 이번에도 사탄은 여호와께 (1차 내기에서 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이 있듯이 , 사람은 그가 가진 재물 정도는 자기의 생명을 ( 보존하기 ) 위해서는 ( 당연히 ) 내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 ( 사탄의 말은 1 차 내기는 욥이 가진 재물만 없앴고 ” 생명 < 욥의 몸에 직접적으로 > 은 “ 유지시켜 주었으므로 욥이 별로 잃은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임 ). 그러나 욥의 뼈와 살에 재앙 (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 ) 을 내리시면 틀림없이 여호와를 욕할 것입니다 . 한 번 해 볼까요 ? ”

(참고 : “가죽을 가죽으로 바꾼다는 말의 의미” = 이해가 어려운데, 이 말은 뒤에 나온 말과 똑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다. (“Skin for Skin!=A man will give all he has for his own life.”) 내가 이해하기로는, “가죽은 가죽으로 바꾼다”를 확장하면 “육체는 육체로 바꾼다”이고 더 확장하면 “생명은 생명으로 바꾼다”가 될 수 있다. 즉 욥은 생명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믿고 있으므로, 욥에게 그 생명을 위협하면(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신체적 고통과 재앙), 욥은 그 생명의 근거라고 믿었던 여호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경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탄의 논리인 것이다.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 아무튼 결론적으로 사탄은 , 1 차 내기에서는 욥에게 죽을 정도의 신체적 재앙 ( 가죽 ) 을 내리지 않았기에 , 가죽 ( 하나님을 경멸하는 태도 ) 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 그러므로 내기 2 차 때엔 , 욥에게 거의 죽을 정도의 신체적 재앙을 내리면 , 욥도 하나님에 대한 경배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여호와를 경멸할 것이라는 제안이다 . 참고 끝.)

2차 내기에서도 여호와는 사탄의 말에 솔깃해서, 욥에게 신체적인 재앙을 내리는 것에 동의하면서 절대 죽이지만은 말라고 말한다. 사탄은 욥에게 온 몸에 심한 피부병의 재앙을 내린다. 그냥 아토피 정도가 아니고 온몸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하루 종일 가려움이 극심해서 벽돌 같은 돌로 박박 긁어야만 하는 심각한 피부병이었다. 욥은 거친 돌로 몸을 긁어대지만 아직까지 여호와를 욕하지는 않는데 , 오히려 욥의 부인이 옆에서 “ 아이구 ,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이 있다고 믿으시는 거예요 ? 그 하나님을 욕하고 그냥 죽어 버리는게 낫겠어요 .” 하고 말한다 . 그 말은 들은 욥은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 하나님이니까 우리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 고통을 주기도 하는 것 ” 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한 듯이 말한다. 이렇게 가정도 풍비박산이 나고 심한 병에 걸린 욥에게 옆 마을들에 살던 친구 3명이 위로(?)의 방문을 한다.

“ 데만의 1 엘리바스 ”, “ 수아의 2 빌닷 ”, “ 나아마의 3 소발 ” 이 그들이다.

(오랫동안 친분이 있어왔던 이 세 사람도 욥과 같은 부족장급의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여호와를 잘 섬기던 리더들이었을 것이다.) 이 세 사람과 욥이 만났을 때, 그들은 함께 괴로워하기는 했지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7일 동안을 함께 괴로워만 했다.)

[침묵을 깬 욥의 첫 발언 : 내가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으면 이런 괴로운 재앙을 안 겪었을 텐데. 내가 태어난 것이 저주스럽네!(3장)]

7일 동안을 괴로워하다가 드디어 욥은 자기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는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 내가 태어난 날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 나를 어머니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 내가 태어나면서 바로 죽었더라면 ,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고 바로 죽었더라면 이런 비참한 꼴을 보거나 당하지 않았을 텐데 ,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결국 나에게 임했네 그려 . 너무나도 괴롭네 . 나의 친구들이여 . ”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1번째 발언 :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계속 하나님께 의탁하게. 지금 자네의 고통은 오히려 유익한 것일 수 있다네.“(4장)]

“욥, 자네는 항상 예전에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강한 마음을 먹고 살라고 충고하며 힘을 주지 않았나. 그런데, 막상 본인이 괴로운 일을 당하자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네. 하나님은 죄 있는 자를 망하게 하시고 죄 없고 정직한 자는 절대 망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며칠 전 밤에 자다가 무서운 환상을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한 형상이 나타나서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다네. 그 음성은, 하나님은 , 하나님 본인 외에는 천사들조차 의롭거나 깨끗하지 못한 것을 아시기에 절대로 믿지 않으시는데 ,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기가 되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련할 뿐 아니라 지혜 없이 죽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네 .”

“이보게 욥, 거룩한 자 중에서 자네가 향할 곳이 어디인가? 자네가 의탁할 곳이 어디인가 말일세. 분노를 내거나 시기하는 것은 미련한 사람을 멸망에 이끌게 할 뿐이라네. 그 미련한 자들(여호와를 의탁하지 않는 자)을 나는 저주한다네. 그들의 자식들은 평안하지 못하고, 항상 빼앗김을 당한다네. 그리고 이걸 기억하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항상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 나는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네.”

“하나님의 섭리는 크고 측량할 수조차 없네. 비를 내리고, 밭에 물을 주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네. 간교하고 사특한 자들의 계획을 다 파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어두운 곳을 방황하도록 만드신다네. 하나님은 당신을 의탁하는 사람들을 그 나쁜 놈들의 손에서 구하신다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게 되는 것이라네.”

“ 그러므로 , ( 오히려 )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위로하시고 , 상처를 주셨다가 낫게 하시는 분이라네 .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는 칼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것일세. 하나님께 의탁하기만 하면 우리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자손도 번성할 것이며, 장수하다가 자연스러운 노환으로 죽은 후에 무덤에 가게 될 것이라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욥 ! 자네의 지금 이 고통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득이 되는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네 . 힘을 내시게 . ”

<참고 : 구구절절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나중에 하나님께 책망을 듣는다. 왜? 결론부터 말한다면, 엘리바스는 진정성이 없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뻔한 지혜의 얘기라는 것을 앵무새처럼 나불거리고만 있다는 것이다.>

[욥의 1-1번째 발언 : 하나님을 의탁하라는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서 동의하네, 그리고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 주게.(6, 7장)] [투정하는 욥 : 하나님은 왜 항상 인간(욥)을 감시하면서 시험하냐고 따지는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욥.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 서술이 뛰어난 부분이고 이런 진정한 고뇌를 하나님이 높이 사신 것 같다.)]

“ 자네 말이 맞네 .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재앙이 너무 커서 , 내가 잠시 이성을 잃고 경솔하게 내가 태어난 것을 저주했네 . 들판의 짐승들도 만일 음식이 풍족하다면 음식을 달라고 울지 않을 것이고, 우리도 만일 소금이 있으면 소금을 달라고 구하지 않을 테지. 나도 만약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 구할 것이 없겠지. 그러니까 나는 이제 하나님께 내가 구할 것을 기도드릴 것이네.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시고 , 내가 사모하는 것을 주시기를 바라네 .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구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어버리신다는 생각도 드는군 .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내가 (그나마)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까지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네.” (여기까지=6장 10절까지는 내용의 흐름이 잘 맞는다.)

(그러나, 6장 11절부터 조금 글의 흐름이 이상해 진다 = 한글로 번역을 너무 어렵게 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 )

“(그러나 지금의 나는 늙고 병들어서) 기력도 없고 바위나 놋쇠처럼 강하지도 못하고 지혜도 떠나간 듯 하고 여호와를 경외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자네들이 나를 좀 불쌍히 여겨주면 좋겠네. 나의 (친)형제들은 이미 떠나가서 의지할 수가 없다네. 그들은 마치 낙타를 이끌고 사막을 다니다가 불어난 시냇물을 발견하고는 잠시 머문 후, 다시 시냇물이 마른 후에는 광야의 사막으로 가서 목이 말라 죽듯이 (나를 버리고 떠나갔네).”

“자네들은 (나의 형제들처럼 나를 떠나지 말고,)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좀 주게. 자네들도 나의 지금 이런 두려운 상황을 보고 있으려니 많이 두렵기는 하겠지. 하지만, 내가 언제, 자네들에게 나를 위해 돈을 달라고 했던가? 아니면 내가 인질로 잡혀있으니 나를 위해 인질 몸값을 지불해 달라고 했던가? 자 , 한 번 말해주게 . 가만히 들을 테니 . 내가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 . 자네들의 솔직한 말들을 고통스럽겠지만 듣고 싶다네 . 자네들이 나에게 책망하는 바를 말해주게. 그러나 그 전에 나의 말을 한 번 들어보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사람들의 삶은 노동자나 노비의 삶과 같을 텐데, 그들은 월급 받는 날이나, 편히 쉴 수 있는 저녁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는가? 나도 세상에서 힘들고 괴로운 여러 달을 보냈는데 나에게는 왜 (안락함이 아닌) 괴로움의 저녁이 부여되었는가? 나는 나의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를 생각하며 밤새 잠을 뒤척이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네. 나의 몸은 구더기들로 득실대고 살가죽은 터지고 진물과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다네. 나의 남은 삶은 얼마 없어 보이는데 시간은 또 매우 빨리 흘러가고 있다네.”

‘ 오 , 여호와여 ! 저의 삶은 짧은 순간의 호흡에 불과하고 제 눈은 앞으로는 희망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저는 곧 죽을 것입니다 . 바람이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듯이 죽어서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다시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얼마 안남은 저의 영혼에 괴로움을 주신 것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항상 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계십니까? 내가 좀 편안하게 지내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은 저에게 항상 꿈이나 환상 속에 나타나셔서 저를 두렵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 삶을 경멸합니다. 저는 영원히 살 생각도 없습니다. 저를 내버려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의 삶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도대체 제가 무엇이길래 항상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주목하시고 시험을 하십니까? 잠시라도 저를 떠나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설령 제가 죄를 지었다손 치더라도 그게 하나님께 무슨 피해라도 됩니까 ? 하나님은 인간들의 감시자인 겁니까 ? 왜 저를 타겟으로 삼으셨습니까 ? 제가 하나님께 짐이라도 됐습니까 ? 왜 저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십니까 ? 저는 곧 죽어서 먼지가 될 몸인데 왜 저에게 이런 끔찍한 형벌을 주시는 겁니까 ?’

[수아 사람 “빌닷”의 1번째 발언 : 욥! 자네 자식들의 사망은 그들의 죄 때문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어야 하나님도 다시 창대하게 해주신다네. (8장)]

“욥! 언제까지 이렇게 자포자기적이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식의 말을 할 것인가? 정신 좀 차리게. 하나님의 심판이 어찌 정의롭지 않겠는가? 자네 자식들의 죽음은 그들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네 . ( 빌닷이 마치 하나님인 양 판단하고 있음 ) 자네가 만일 다시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은 다시 자네를 돌아보시고 다시 형통하게 해주실 것이라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라고 번역된 이 부분은 참고로, 빌닷이 욥에게 위로하면서 해준 말이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하나님이 욥에게 해주신 음성이 아니다.=“ 자네 , 지금은 형편없이 괴롭겠지만 , 나중엔 크게 다시 복을 받을 것이라네 .”)

“자네는 옛 조상 때부터 있던 가르침을 명심하게. 우리의 삶이야 금방 왔다가 금방 가는 것 아닌가? 옛 가르침을 체득하고 있어야 굳게 설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뿌리가 잘 박혀있지 않은 식물은 금방 말라버리는 법이라네. 하나님을 잊은 자가 다 그랬듯이, 금방 말라버리고 소망도 없을 것이라네. 하나님에게 뿌리박고 있지 않은 자들은 쉽게 뽑힐 것이고 하나님도 모른 체 하신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지?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악한 자는 절대로 붙들어 주지 않는다네 . 하나님께 의탁하면 자네의 입에는 웃음이 있을 것이고 자네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워 할 것일세.

[욥의 2-1번째 발언 :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나는 나의 무죄함에 대해서 기회가 있다면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네. (9장)]

“자네 말이 맞긴 하네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인생인들 의로운 인생이 있겠는가? 전지 전능한 하나님 앞에 어떤 인간인들 하나님과 쟁론하여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혜롭고 힘이 강하시니 산을 옮길만한 힘도 있고, 땅을 움직이게도 하시며,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별, 바다, 물결, 북두성 등 모든 만물을 만들고 기이한 일들을 하시는 분일세. 그 큰 하나님이 나의 앞을 지나가신다 해도 나는 보거나 깨닫지 못한다네. (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 그가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 왜 그런 일을 하시냐고 누가 따져서 물을 수 있겠는가 ? 하물며 라합(이방신 개념)을 섬기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버리시는 위대한 하나님이신데,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왈가왈부를 못할 테지. 아무리 내가 의롭다고 주장할지라도 나는 그저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할 뿐이고, 설령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나는 정말로 나의 음성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을 해 주셨다고는 믿기가 어렵네. 어쨌든 지금은 하나님이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셨고, 내가 숨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채우신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 그러니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의로운 자나 악한 자나 모두 멸망시키시는 분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지 않은가 ? 의인이나 악인이 똑같이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은 누구를 더 비웃겠나? 세상에 악이 판치고, 악인과 의인을 판결하는 재판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만든 것도 모두 여호와 하나님 아니고는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네 . ) 내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여호와 앞에 나서본 들, 여호와는 나를 죄없다고 하지 않으실 것을 내가 아는데 그렇다면 뭣하러 그렇게 고상한 척하며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씻어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실 것 아니냔 말일세. 하나님과 나는 상대가 되지 않고 그 사이에 재판관이 따로 있지도 않으니 나는 단지 하나님께서 잘 굽어 살펴 주시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네. 하지만, 정말로 혹시라도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발언 기회를 주신다면 나는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네 . ‘ 여호와여 ! 저는 본래 그런 악한 자가 아닙니다 . ’하고 말일세. 또, 나는 ‘ 여호와여 나를 정죄하지 마소서 .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 정녕 하나님은 저와 같은 의인을 학대하시고 멸시하셔서 악인이 이 땅에 판치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 주님께선 사람처럼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 어떻게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 주님은 내가 악하지 않은 줄 아시지 않습니까 ? 왜 저 같은 착한 사람에게 이같은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 하고 나는 여호와께 당당히 여쭤볼 것일세.

[나아마 사람 “소발”의 1번째 발언 : 하나님께, 자네가 온전히 의롭게 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은 주장일세.(11장)]

“ 욥 ! 자네 말이 좀 지나친 것 같네 . 어찌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가 ? 자네 말은 , 마치 자네야말로 여호와 앞에 온전히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군그래 .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좀 더 잘 살펴보게. 자네의 말을 들다보니, 자네는 지금 받고 있는 벌보다 하나님께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란 생각마저 드는군. 자네가 대체 무엇이길래 하늘보다 높고 음부(지옥=땅속)보다 깊으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도저히 측량이 불가능한 분이시라네. 하나님은 악한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으시지만 실제로는 다 보고 계신다네 . 자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려야 하네 . 불의로 인해 자네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실 거라네. 그렇게 한다면 자네의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을 것이고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네.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져서 도망갈 곳을 찾지도 못할 것이라네.”

[욥의 3-1번째 발언 :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므로 재앙의 주관자이시기도 하지. 자네들의 말(의인은 상받고 악인은 벌받는다는 뻔한 말)은 모두 위선이고 거짓이라네. 나는 당당하게 하나님께 날 좀 내버려 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12장)]

“뭐라구? 내가 하나님께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구? 소발, 자네야 말로 말이 지나치군. 나도 자네가 알고 있는 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네. 내 말은 현재 나의 처지가 그렇다는 말일세. 의인으로 살았던 내가 지금 이웃에게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지 않았나. 평안한 자들(의롭게 살던 사람들)은 재앙을 멸시하는데 재앙이 임하면 그들이 의로움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네. 왜 하나님은 강도를 잘살게 하시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평안함을 주시는가? 하나님이 이 땅에 창조하신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과 바다의 물고기 , 생물들의 혼 , 사람들의 영이 모두 그의 손에 좌지우지 되고 있고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네 . 입은 맛을 구별하고 귀는 소리를 구별하듯이, 늙은이는 지혜롭고, 오래 사는 사람은 명철이 있다네. 하지만 그 모든 것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부수시면 다시 지을 수 없고 , 사람을 가두시면 풀려날 수도 없지 . 가뭄이 들게도 하고 , 홍수가 나게도 하고 , 모든 것은 그 분의 뜻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 뛰어난 사람을 욕보이게도 하고, 재판장도 어리석게 만들기도 하고, 왕과 제사장 그리고 권력자들을 그들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기도 하고, 충성스런 자나 늙은이의 지식을 빼앗기도 하고, 죽음을 퍼지게도 하고, 백성들을 황량한 사막으로 내쫓아 비틀거리게도 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은 자네들이 알고 있는 만큼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네.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과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뿐일세. 자네들은 지금 나의 상황에 대해서 무조건 내가 의롭지 않은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므로 하나님께 반성하고 의탁하라고만 충고하고 있는데 자네들의 말은 전혀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자네들의 말이야말로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네 . 곰곰이 생각하며 내 말을 잘 들어보게.”

“ 자네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사악함을 말하고 있는 건가 ?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 일부러 )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가 ? 자네들이 하나님을 편애하고 있음을 보여드리려는 건가 ?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을 변호하고 있는 것인가 ? 그런 말들을 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여기시겠는가 ? 자네들이 사람을 속이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은가? 하나님이 자네들을 보신다면 반드시 자네들을 책망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자네들이 하는 말들은 그저 흔한 속담 같은 말이고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은 흙벽일 뿐일세 .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게. 만약 내 말로 인해 나에게 화가 미치게 된다면 나는 당당히 받겠네. 내가 어찌 (신도 아닌데) 내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려고 하는 것 같으니, 나는 당당히 나의 변론을 해야겠네. 만약 내 말 중에 틀린 말이 있거든 자네들이 반박해 주게.” 나는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리겠네.“

‘오, 하나님. 저에게 두 가지를 해주소서.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숨지 않겠나이다. 하나님의 손을 저로부터 거둬주시고 그리고 주님의 공포로 저를 두려움에 떨게 하신 것을 멈춰주소서. 그런 후 저를 부르시면 제가 말씀드릴 것이고 주님께서도 답해 주소서.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제가 지었습니까 ? 저가 행한 죄를 알려주십시오 . 왜 주님께서는 얼굴을 숨기시고 저를 적으로 간주하시는 겁니까 ? 제가 젊었을 때 지었을 죄들을 낱낱이 기록하셔서 날아가는 낙엽 ( 욥 ) 을 고문하시고 , ( 별 쓸모없는 ) 곡식껍질 ( 욥 ) 을 쫓아내듯이 저를 대하시는 겁니까 ? 왜 제 일거수 일투족을 항상 감찰하고 계십니까 ? 전 이제 썩고 낡은 물건이고 좀먹은 옷 정도에 불과한 사람일 뿐입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는 인간이란 생애가 짧고 걱정으로 가득하며 꽃처럼 피었다가 시들고 그림자같이, 머물지 않고 사라집니다. 왜 주님께서는 당신의 눈으로 이렇게 사라질 운명의 하찮은 저를 감찰하시다가 주님 앞으로 불러내서 재판하십니까? 순전하지 않은 것에서는 순전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인간의 날은 정해져 있고 그 이상을 초월해서 살 수 없도록 만드셨지 않습니까? 주님, 제발 그 눈을 돌리셔서 저를 고용된 일꾼처럼 내버려 두시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나무나 식물은 죽은 것 같아도 다시 움을 틔우며 살아나지만 인간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치 사막의 어딘가에 물이 생겼다가 다 말라버리면 끝인 것과 같죠. 인간은 죽어서 잠들면 하늘이 없어질 때까지 깨어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무덤에 숨겨두시고 화가 풀리실 때까지 저를 그냥 내버려두시기를 바라나이다 ! 당신이 저에게 시간을 주시고 그 후에나 저를 다시 기억하시기를 바라나이다 ! 인간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 제가 사는 고통스런 날 동안 , 저는 제가 새롭게 될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 그 때 저를 부르시고 그 때 저는 대답을 하겠습니다 . 그 때 , 새롭게 만들어질 창조물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 그 때에 분명히 당신은 저를 살펴보실 텐데, 그 때에는 저의 죄를 발견하시진 못하실 겁니다. 저의 허물은 묻혀져 없을 것이고 당신께서는 저의 모든 죄를 덮으실 겁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땅이 솟아올라 산을 없애버리고, 있던 바위가 치워지며, 물이 돌을 닳게 해 없애버리고, 물살이 흙을 씻어 내려가듯 저의 희망을 완전히 파괴하시는군요. 주님이 저를 영원토록 강한 힘으로 누르시니 저는 주님을 떠나갑니다. 주님이 저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저를 쫓으십니다. 비록 저의 아들들이 영광을 받아도 저는 알지 못하고 저의 아들들이 낮아져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의 고통만을 느끼고 슬퍼할 뿐입니다. (제발 저를 내버려두시면 좋겠습니다.) (욥의 말의 해석이 좀 어렵다-아무튼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내용이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2번째 발언 :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예로부터 전해오는 지혜의 말을 들어야 하네. (15장)]

“욥, 이사람 정말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만. 여기 있는 우리 세 사람들은 지혜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일세. 자네에게 무익한 말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일세. 참으로 자네의 말은 죄악으로부터 나오는 말이니 간사한 자의 말과 같네. 당장 그 입을 다물게. 자네가 하나님을 가르치려 드는 것인가? 자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창조된 피조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 땅의 산과 들보다도 더 먼저 있었단 말인가? 자네는 왜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여인의 몸에서 난 인간이 어찌 의롭겠는가 ?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고 하늘마저도 부정하다고 보시는데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인간들을 용납이나 하시겠는가 ? 내 말을 잘 들어보게.”

“예전부터 지혜로운 사람들이 전해주는 말일세. 하나님은 축복의 땅을 지혜로운 조상에게 주셨고 절대로 외부인들은 그 땅을 왕래하지 못하게 하셨지. 악인은 평생 고통을 당할 것이고 그가 평안하다고 생각할 때 적의 칼날이 그에게 닥쳐왔네. 그런 악인은 환란과 역경속에서 괴로워할 것이고 스러질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라네. 그가 하나님께 달려들며 악을 행하므로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할 것이고, 포도 열매가 익기도 전에 떨어짐 같고 올리브 꽃이 금방 떨어져 버리는 것 같은 것이라네. 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하고 뇌물을 받는 자는 그의 집이 불에 탈 것이라네. 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는 사람들이라네. 그들처럼 악인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일세 . (하나님께 의탁하게)”

[욥의 2-1번째 발언 : 말로 하는 자네들의 위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되네. 나는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고 호소할 것일세. (16장)]

“이보게 친구들, 나도 자네들처럼 말로 위로하는 것은 더 잘할 수도 있을 걸세. 만약 자네들이 지금 네 처지라면 그렇게 말로만 고상하게 위로받을 수 있겠는가? 말로만 위로하고 치료받는 것이 진실로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말일세.”

“ 오 , 하나님 , 지금 저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을 주셨습니다 .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시고 저를 시들게 하셨습니다 . 주님은 진노하셔서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저에게 이를 갈고 원수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저를 향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모욕하고 뺨을 때리며 저를 적대시합니다. 저를 악인에게 넘기셨습니다. 제가 평안하게 지내는 것 같을 때 , 주님은 제 목을 잡고 꺾으셨고 저를 타겟으로 삼으셨습니다 . 하나님의 궁수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으며 자비함도 없이 저의 심장에 화살을 쐈고 저를 땅에 엎어지게 하셨습니다. 저를 치고 또 치셔서 저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고 제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만 있게 되었습니다.”

“이보게, 아무리 자네들이나 사람들이 나를 조롱한다고 해도 나의 증인은 하늘에 계시다네. 나는 계속 부르짖을 것이고 하나님께 눈물 흘릴 것일세.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호소하듯이 사람을 대신하여 ”그“(갑자기 예수님을 의미하는 듯한 표현이 나옴)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네. 나는 몇 년 만 지나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네.”

‘(시) 나의 기운 쇠하였고 나의 날이 다하여서 나의 무덤 준비 됐네. 나를 조롱 하는 이들 적대감을 보이누나. 오 나의 신이시여 나 위할 자 누구오리까? 나를 이해하는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네. 나를 이해 못한 사람 성공할 리 없겠구나. 보상을 얻기 위해 자기 친구 부인하면, 그들의 자식들은 앞못보는 신세 되네.’

‘(시) 하나님은 나를 삼아 세상의 조롱 삼으셔서. 세상사람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네. 나의 눈은 슬픔으로 어두워져 가고 있고, 나의 몸은 세상속의 그림자일 뿐이로다. 올곧은 사람들은 이 사실에 놀라하고, 죄없는 사람들도 분을 내며 화내지만, 오로지 의로운 자, 자신의 길 걸어가고, 정결한 손 가진 자도 그의 힘을 더해가네.’

“이보게 자네들 말일세, 지금까지의 자네들 말에서 나는 도무지 지혜로운 말이라고는 발견할 수가 없네. 다시 한 번 시도해 주게. 나는 나의 날이 다 지나갔고 나의 계획도 다 사라졌다는 느낌뿐일세. 다만 내 마음의 바램만이 어둠 속에서 빛이 올 것이라 여기며 밤을 낮으로 바꾸고 있다네. 만일 내가 무덤에 들어가길 희망하고, 만일 내가 어둠에 나의 침대를 펼치고, 만일 내가 사망에게 너는 나의 아버지라 말하고, 구더기에게 너는 나의 어머니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나의 희망은 어디에 있겠으며 누가 나를 위해 희망을 보겠는가? 희망도 우리와 함께 사망의 문으로 내려가서 한낱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수아 사람 “빌닷”의 2번째 발언 : 하나님을 모르는 사악한 자는 이 땅에서 완전히 잊혀져 버린다네. (18장)]

“아니 욥! 자네는 도대체 언제 그런 말들을 멈출텐가? 좀 현명해지게. 왜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고 우리의 말들을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하나? 자기를 학대하는 이사람 욥, 자네를 위해서 지구가 버림을 받을 리도 없고, 바위들이 그 자리에서 옮겨질 리도 없네. 사악한 자의 등불은 휙 꺼져버릴 것이고, 천막 안의 빛은 어두워질 것이라네. 그의 발걸음은 느려지고 그는 자기의 꾀에 자기가 걸려버린다네. 그를 잡을 덫이 땅 위의 곳곳에 숨겨져 있고, 함정도 길목 도처에 있지. 질병도 그의 피부를 삼키고 사망이 그의 몸을 먹어버릴 것이라네. 그는 자신의 천막에서 내던져지고 공포의 왕에게도 잡혀간다네. 그가 잡혀간 후에 그의 천막이 불에 타버리고 그는 땅에서 완전히 잊혀질 것이라네. 그는 후손도 없을 것이고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네. 사악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일세.”

[욥의 2-2번째 발언 : 하나님의 재앙만으로도 힘든데 왜 나에게 이렇게 괴로운 말을 하며 괴롭히는가? (19장)]

“자네들이 언제까지 말로 나를 괴롭힐텐가? 나에게 죄가 있다고 자네들이 계속 이야기 하지만 어떻게 그런 죄가 나만 있는 죄란 말인가? 왜 하나님은 내가 어려움 속에 있다고 부르짖어도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시고, 내가 지나갈 수 없도록 앞에 어둠의 장애물을 세워두셨단 말인가? 그는 나의 모든 것을 헐어버리셨고 나에게 분노를 내시며 나를 적으로 간주하신단 말인가? 나의 가족들도 모두 멸해버리고 내 주위의 이웃이나 나의 시종들마저도 나를 다 잊어버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하나님은 이토록 가혹하게 나에게 형벌을 주시는데 자네들마저 나를 위로하지 않고 왜 이렇게 가혹한 말을 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인가? 그래도 나는 믿네 . 나를 증언해줄 사람이 반드시 이 땅위에 서있을 것이므로 비록 내 몸의 피부가 다 곪아터진 후에라도 나는 내 육체 속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네 . 만약 자네들이 고통의 뿌리가 나에게 있어서 나를 어떻게 정죄할 것인가를 말한다면 자네들은 두려워해야 하네. 진실한 분노의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칼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일세.”

[나아마 사람 “소발”의 2번째 발언 : 악인은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네. (20장)]

“이보게, 욥! 자네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군. 어찌 우리를 책망하는가? 나의 슬기로운 말을 다시 들어보게. 인간이 이 땅에 살게 된 이후부터 사악한 자가 승리한 경우는 잠깐의 승리였을 뿐,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더라도 그 자신의 똥처럼 영원히 멸망해 버렸다네. 하룻밤에 꿈처럼 지나가 버렸지. 아무도 그 악인을 다시는 보지 못했고 영원히 사라져 버렸네. 그의 재물은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고, 그의 자식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구걸했다네. 그는 비록 악을 꿀처럼 달다고 여겼으나 그의 배속에 들어가면 독사의 쓸개가 되고 그가 재물을 삼키더라도 모두 토하게 될 것이라네. 그것들로 인해 그는 사망하게 되는 것이라구. 그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리는 사람이고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는 사람이므로 그가 먹는 모든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에게는 큰 재난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네. 이것이 하나님이 악인에게 주는 보상인 것일세.”

[욥의 3-2번째 발언 : 실제로는 악인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은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21장)]

“ 자네들을 책망하듯 말한 것은 미안하네만 , 내 말을 잘 들어보시게 . 나는 지금 자네들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세 . 도대체 왜 악인이 장수하고 권력을 더 갖고 있는가 ? 그들의 후손들도 잘 먹고 잘살지 않은가 말일세 . 그들의 집이 평안하고 두려움도 없고 하나님의 회초리가 그들을 때리지도 않네 . 그들은 좋은 옷에 좋은 집을 지니고 이 세상에 살다가 나중에 평화롭게 무덤으로 가네 . 그들은 하나님의 도를 구하지도 않는데도 그렇게 영화롭게 살다가 생을 마치네 . 그들은 ‘ 뭐하러 우리가 전능자를 섬기며 기도하는가 ’ 하고 오히려 떠들고 다닌다네 . 지혜자나 자네들은 ‘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해 끌려간다 ’ 고 가르치지만 어디 정말로 세상 일이 그리 되던가 ? 자네들의 위로는 헛될 뿐이고 거짓으로 가득찼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네 .”

( 모든 착한 사람들의 고민을 욥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 여기에 대한 엘리바스의 답은 ?)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3번째 발언 : 악인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네.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소리는 하지 말게. (22장)]

“이보게,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한 들 하나님께 유익하겠는가? 아무리 현명한 자라도 자기에게 유익한 행동만을 할 뿐이라네. 인간의 행동은 그게 무엇이던 간에 하나님에게 유익이 되지는 않네. 단지 자기의 유익을 따를 따름이지.”

“ 지금 자네에게 벌을 내리심은 자네가 경건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네의 죄악이 끝이 없이 크기 때문이네 . 아마도 자네가 이유없이 자네 친척들의 안전을 헤쳤거나 가난한 자들로부터 의복을 벗겼거나 ,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않거나 , 가난한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을 것일세 .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들을 멸시했을 것이네 . 그런 것들 때문에 자네 주변에 어려움이 둘러싸고 , 두려움이 자네를 감싸며 , 자네를 어둡게 해서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자네를 덮는 것일세 .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심판하시는 것이네 .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며 , 그런 어둠속에서 심판하실 수 있겠냐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악인이 가려던 길을 따르려고 하는가 ? 제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네 마음에 두길 바라네 .”

[욥의 1-3번째 발언 : 하나님께 나의 살아온 길을 변론하고 싶네. 나는 착하게 살아왔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23,24장)]

“나의 고통은 괴롭기만 하네. 내가 직접 하나님께 나의 말씀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 그를 직접 뵙고 나의 사정을 직접 하나님께 변론할 수 있다면 좋겠네. 그 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본다면 소원이 없겠네. 그런데 내가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분을 뵐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하나님은 내가 살아온 길을 아시고 내가 그를 따르기를 잘 해온 것을 아실 것이네. 나는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고 그의 말씀을 보물처럼 여기고 지내왔다네. 하나님은 홀로 서 계시며 누가 그를 대적하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 같네. 하나님은 계획하고 작정하신 바가 있을 것이고 그대로 이루시겠으나,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때문인 것 같네. 그 어둠이 나의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일 테지. 나도 정말 괴롭네.”

“ 어떤 이들은 남의 양떼를 훔쳐서 자기 것처럼 기르는 짓도 하고 , 못된 짓을 밥먹듯이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많이도 괴롭히는데 , 하나님은 왜 그 때 약한 사람들의 음성을 들어주시지 않는가 ?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맘대로 하시는데 아무도 그가 옳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다면 이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수아 사람 “빌닷”의 3번째 발언 :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의롭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네. (25장)]

“자네가 맞는 말을 했구만. 맞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어찌 인간이 그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거나 의롭지 않다거나를 말할 수 있겠나? 하나님 눈에는 달이나 별도 빛이라고 할 수 없을 텐데 하물며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어떻게 의로움과 악함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욥의 2-3번째 발언 :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네. (26장)]

“빌닷, 자네는 괴로워하는 나에게 그것을 위로라고 하는가? 자네는 자네가 지식이 있다는 것을 잘도 자랑하는군 그래. 자네는 자네의 진심을 말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지식을 가져다가 나에게 충고해주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모습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의 겉모습일 뿐일세.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지식들도 그의 속삭임일 뿐이니 그의 큰 진짜 큰 능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네.”

[욥의 최후 발언 : 저는 계속 의롭게 양심에 따라서 살겠습니다.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처리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27장)]

“ 나의 의로움을 부인하시고 내 삶을 괴롭게 하신 전능한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네 . 그리고 아직 나의 호흡은 끊어지지 않았지 .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절대 나의 입으로 사악한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고 거짓을 말하지도 않을 것일세 . 하지만 자네들이 한 말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옳다고 인정할 수는 없네 . 나는 나의 순수함을 유지할 것이고 ,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나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일세 .” (욥의 결론으로 보면 되겠다!!)

‘오 하나님, 나의 원수는 사악한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시고 그들을 잘라내실 때에 그들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가 받을 재산은 결국 죽음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부유한 상태로 사망했더라도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않으실 것이고 던져내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를 비웃을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이고 악을 멀리함이 명철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28장)

‘은이 나오는 장소가 따로 있고, 금을 제련하고 곳도 따로 있으며 철은 흙속에서 나오고 구리도 캐내는 돌이 따로 있듯이,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은 어둠을 몰아낼 광석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 광석은 사람들이 접하기 힘든 저 멀리에 있습니다. 땅은 음식을 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불에 의해 변합니다. 그 광석에는 온갖 보석이 박혀있고 하늘의 새도 그 광석은 보지 못하고 사자도 그곳에는 접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험한 산과 바위를 파헤쳐서 바위 사이에 길을 만들고 들어가서야 그 근원에 있는 그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발견한 보물들을 밝은 데로 가지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 지혜 (wisdom) 와 명철 (understanding) 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사람들조차 알 수 없으니 도대체 , 지혜와 명철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나옵니까 ? 깊은 물속에도 없고 , 심지어 큰 바다속에도 없으니 아무리 귀한 보석을 주고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 도무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사망과 멸망도 소문으로만 지혜에 대해 들었다고 말합니다 .’

“오직 온 세상을 모두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지혜와 명철이 있는 곳을 아시겠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이고 악을 멀리함이 명철 “ 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나는 하나님이 나를 보살펴주시던 때가 그립고 그때가 다시 오길 바라네. 29장)

“나는 지난 날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시던 때가 다시 오길 바라네. 하나님의 등불이 나의 갈 길을 어둠속에서 밝히셨던 그 때가 나는 그립네. 하나님의 친근한 보살핌이 나의 집을 축복하시고 내가 그 품속에서 지내던 그 때를 말일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우러러보며 존경했었지. 나도 불쌍한 많은 사람들을 도왔었고. 세상에서 말하는 선업을 많이 쌓았던 때였지. 그들도 나를 의지하였고 내가 그들에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알려주곤 하던 때였지.”

(과거에는 나를 보호해 주셨지만 지금 나는 홀로 외롭다네. 30장)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있다네. 내가 도왔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꼬부랑 노인들이 되었고,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 나를 비웃고만 있네. 나도 지금 형편없이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 젊은이들은 계속 나를 비웃기만 하고 나의 괴로움은 더해만 가는데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주님께서는 돌아보지도 않으시네. 하나님은 나를 그저 사람이 으레 가야하는 길인 사망으로 던지실 것을 아네. 내가 괴로움에 울부짖으나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지 않으시네 그려. 내가 복을 바랬더니, 화가 왔고, 내가 밝은 빛을 보려 했으나 어둠이 왔네. 내가 아무리 도움을 부르짖으나 나를 돕는 사람이 없네. 나는 이리의 형제이고, 타조의 벗일 뿐이라네. 지금의 나는 애처롭고 통곡만 있을 뿐이네.”

(31장. 욥이 자신의 무죄에 대해 자기 변론을 함.)

“나는 젊은 여자를 탐하지도 않았고 선하게 살았다네. 모든 것을 다 살피는 하나님께서 공정한 저울에 달아보시면 내가 죄없음을 아실 것이네. 만일 내가 세상의 욕심을 따라서 행한 것이 있다면 나는 천벌을 받아도 좋다고 맹세하네. 난 절대 결백하단 말일세. 내가 이웃의 여인에게 혹시라도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내 아내를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좋네. 나는 노비들에게도 최대한 잘 해 주었고, 가난한 자나 과부나 고아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주었네. 옷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눠주었고. 내가 하나라도 남에게 악한 짓을 했다면 나에게 무슨 재앙이 내리든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일세. 난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선하게 살아왔네.” (사실이겠지만 조금 건방진 느낌이 든다)

[젊은 엘리후의 첫 발언 : 하나님의 참 가르침을 알려드립니다. (32장)]

욥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발언을 마지막으로 쏟아내자, 친구 3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 람 가문의 엘리후 ” 란 젊은이가 더 이상은 못들어 주겠다는 듯 욥을 비난하며 일어선다.

“아니, 욥 아저씨. 더 이상은 들어줄 수가 없네요. 지금 하신 모든 말씀들을 정리해보면, 욥 아저씨가 그럼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말인데,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세 분의 친구분들도 들으세요. 왜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인 욥 아저씨를 탓하기만 하시는 겁니까? 정말 왜들 그러시는 겁니까?”

“어르신들의 말씀에 건방지게 참견하는 것 같아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지만 제 말씀 좀 한 번 들어보세요. 예전부터 있는 말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명철함을 알게 해주는 것은 사람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숨결인 ”영“입니다. 그러므로 어른이라고 더 지혜롭다거나 정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릴 테니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시고, 저의 말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친구분들은 한 번 대답해 보세요 . 왜 아저씨들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우기시면서 , 무조건적으로 ,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이 판단하신다는 말씀만을 강조하시고 , 괴로워하는 욥 아저씨에게 제대로 된 답변은 하나도 하시지 못하는 겁니까 ? 맞지요? 제가 계속 이야기해도 되겠지요?”

“저는 누구에게 치우침도 없고 아부할 이유도 없는 사람이니 (만약 제가 하나님을 위한 아첨같은 것을 한다면) 하나님이 이 순간 저를 데려 가셔도 좋습니다.”

(33장)

“욥 아저씨도, 잘 들어보세요.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이고 제가 아는 것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저를 만드셨고 전능자의 호흡이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도 욥 아저씨와 같은 똑같은 피조물이지요. 자 그럼. 아까 하시던 말씀을 제 앞에서 한 번 진술해 보세요.”

“ 분명 , 아저씨는 아저씨가 절대로 잘못한 적이 없고 완전히 깨끗하며 죄로부터 전혀 멀게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아저씨의 잘못을 찾아내시고 아저씨를 하나님의 적으로 삼으셔서 발에 수갑을 채우시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고 하셨죠 ? ”

“아저씨의 잘못된 점은 바로 그 점입니다. 불멸이신 하나님은 한 낱 죽어 없어질 운명의 인간들보다 크고 위대하십니다. 어떻게 크신 하나님이 일일이 사람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그분에 대해서 불평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말씀해 주시는데, 알아차리는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지요. 밤에 잠자리에 사람이 누웠을 때 , 하나님은 꿈이나 , 밤의 환상으로나 , 사람들의 귀를 여시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주십니다 . 악한 행실을 버리고 교만을 버리게 하려고 하심이지요 . 악한 행실을 하거나 교만하면 그 사람의 혼은 구덩이에 떨어지고 , 생명은 칼에 맞아 멸망하게 되므로 , 그것을 막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

“욥 아저씨처럼 몸의 뼈에 끊임없는 고통의 징계를 받아 죽음의 구덩이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그 때 한 천사(예수님 같은 분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가 아저씨의 정당함을 입증한다면 하나님은 그 천사를 대속물로 여기시고 아저씨 같은 사람을 사망의 구덩이에 빠지게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 때 아저씨의 육체는 어린아이 피부처럼 순결하게 다시 새로워지고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아저씨는 남들에게 가서 외치게 되겠죠. ”나는 죄를 지었으나 제가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셔서 생명의 빛을 즐기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즉 , 하나님이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고 구원해주는 일을 2 회나 3 회나 계속 반복하시는 것은 사람이 사망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 제 말이 틀립니까 ? 제 말이 틀리다면 말씀해주시고 맞다고 생각하시면 제 말을 더 들어 보세요.“

(34장)

“지혜로운 어르신들이시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하듯이 어르신들의 귀가 저의 말씀을 잘 구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한번 무엇이 ”선함“인지 무엇인 ”옳음“인지 말씀해 줘보시죠. 욥 아저씨 먼저요.”

(욥) : “이보게 엘리후! 나는 정말 순수하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의 정의로움을 부인하셨네. 그리고 내가 정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하셨고, 내가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살은 내 몸에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네. 이러셔도 되는 건가?”

(엘리후) : “아직도 아저씨는 정신을 못 차리셨군요? 아저씨는 계속 악인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행동하듯이 말씀을 하시네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되겠냐고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지금. 아저씨는 현명하시니까 제 말을 잘 이해하시리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악“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전능자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정의롭지 않은 것을 행하는 분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아저씨가 그렇게 정의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왕들에게도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말하거나 ”사악한 놈들“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분이 아니고 그의 주관으로만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감찰하시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숨을 곳이 없는 것이지요. 아저씨는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계셔요.”

(35장)

“아저씨는 하나님보다 더 아저씨가 올바르다고 주장하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봤자 아저씨에게 아무 이득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데요.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하늘을 보시고 구름을 봐 보세요. 아저씨가 범죄 하든 안하든 하나님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저씨가 아무리 의롭다한들 하나님에게 그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지요? 아저씨가 악하고 의로운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 하나님께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학대를 받는다면 그 학대를 가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부르짖는 것이지요. 왜 하나님에게 자비를 구합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악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들이 울부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런 울부짖음은 돌아보시지도 않으십니다. 욥 아저씨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말을 막 하시는 것 같아요.”

(36장)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아무도 경멸하지 않으시고, 그의 목표가 단호하시고, 사악한 자를 살려두지 않으시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는 그의 의를 행사하시며, 특히 의로운 자들로부터는 눈을 떼지 않으시고 왕들과 함께 그 의로운 자들을 영원히 존귀하게 하시며 만일 그들이 고통에 얽매이게 되면 , 그들에게 그들의 악행에 대해 알려주셔서 교만함을 알게 하시고 ,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들어서 뉘우치게 하신 후 , 돌이키게 하시므로 만일 그가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의해 지식 없이 죽게 만드십니다 . 경건하지 않은 자는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도 도움을 구하지 않고 젊어서 죽을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욥 아저씨를 아끼시기 때문에 환난에서 이끌어 내고 좁지 않은 넓고 편안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던 것입니다 . 그런데 지금 아저씨는 사악한 마음에 이끌려서 범죄하려고 하고 있으니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분노하지 마시고 악인의 길을 따르지 마세요 . 하나님의 그 큰 뜻을 사람은 알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 (엘리후의 진단과 처방)

(37장)

“하나님의 번개와 천둥같은 음성을 한 번 들어보세요. 명하여 눈을 내리게도 하시고, 큰 비와 적은 비도 내리게 하시면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임을 알고 일을 멈추겠지요. 물론 짐승들은 숨을 테지만요. 하나님의 입김은 얼음을 얼게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게도 하며 구름을 모이게도 하고 번개로 그 구름을 흩어지게도 하십니다. 욥 아저씨!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아 보세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아저씨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 중에서 자기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들은 무시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등장하여 발언한다. 짜짠! : 나 여호와가 하는 일을 도저히 인간들은 생각할 수도, 또 맡아서 할 수도 없느니라! (38장, 39장) ]

엘리후의 발언이 끝나고 하나님의 음성이 폭풍 속에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다른 세 친구와 엘리후도 들었을 것이다. 아마.)

“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나의 계획을 가로막는 자가 바로 너 욥이더냐 ? 네 이놈 욥아 ! 너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와서 내가 묻는 말에 한 번 대답해 보거라 . (네가 나에게 변론하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했으므로 쉽게 할 수 있겠지? 요노옴~.)

“내가 이 땅의 기초를 만들고 측량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더냐? 누가 측량하는 법을 정했는지, 누가 계획에 따라 이 땅을 계측하고 주춧돌을 놓았는지 알고는 있느냐? 그 주춧돌 위에 누가 모퉁잇돌을 놓았는지. 새벽별들이 기뻐 노래하고 천사들이 즐거움에 소리를 지를 때를 너는 알고나 있느냐? 바다물이 처음으로 터져 나왔을 때, 그 물을 바다에 가둬둔 것 등 세상 만물을 창조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바다 속의 깊은 곳까지 가보았더냐? 깊은 흑암의 문을 본 적이 있더냐? 네가 빛을 제 갈 길로 가게하고 어둠도 어둠이 거주할 곳으로 가게 할 수 있느냐? 누가 홍수와, 우레와, 번개와, 비와, 풀과, 이슬과, 얼음과, 서리와, 달과, 별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었더냐? 네가 그런 것의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더냐? 지혜라는 것도 도대체 누가 준 것이더냐? 누가 하늘에 있는 구름의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다더냐? 사자나 까마귀 같은 동물이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 네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나 있다더냐?”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39장에서도 주욱 열거한다. 반복이므로 생략.>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

(40장)

“욥, 이놈아. 네가 나 여호와 앞에서 네 자신을 변론하고 싶다고 계속 얘기하지 않았더냐? 자, 한 번,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해 보거라.”

(욥) : “하나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미천하오니 제가 무엇을 말씀드리겠습니까? 제 입을 막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제 입을 막고 싶은 부끄러움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주님의 그 크신 뜻을 헤아리지 못한 제가 무슨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호와는 폭풍 속에서 다시 말씀하신다.

“욥아, 너는 당당하게 내가 묻는 것에 대해 대답해 보거라. 너는 나 하나님의 심판을 업신여기는 게 아니더냐? 어떻게 네가 네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면서 나 여호와를 불의하다고 주장하느냐? 네가 하나님이냐? 네가 나처럼 우렁차게 천둥소리라도 낼 수 있느냐?” (아마,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반성중인 욥에게, 하나님은 말을 이어간다. 용서하는 톤으로 바뀐다.)

“좋다. 이제부터 너는 영광과 존귀함으로 꾸미고 명예와 장엄함으로 옷을 갈아입어라. 너의 끓는 분노를 이젠 가라앉히고 모든 교만한 자들을 낮추는 일에 힘쓰도록 해라. 모든 교만한 이들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고 그들을 티끌 속에 함께 묻어버려서 그들의 얼굴을 가리도록 해라.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 여호와도 너의 올바른 손이 너를 구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이니라.”

“자, 내가 인간들을 창조한 것과 같이, 나 여호와가 직접 창조한, 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 베헤못 “(= 하마 ?= 코끼리 ?) 을 한 번 보아라. 허리에서 강력한 힘이 나오고, 근육의 힘은 배의 힘줄에서 나오며, 그의 꼬리는 커다란 통나무 같고, 넓적다리 근육은 촘촘히 짜여진 밧줄 같으며, 그의 뼈는 청동으로 만든 파이프 같고, 그의 갈비뼈는 쇠파이프와도 같도다. 내가 만든 작품들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만, 그것을 만든 이 (=나 여호와)는 칼을 들고 그놈에게 접근할 수 있노라(=쉽게 죽일 수 있다?). 언덕의 모든 풀은 그(베헤못)를 위해 음식을 생산하고, 야생의 동물들은 그의 곁에서 뛰어놀고 있노라. 그놈은 연꽃잎 아래에 눕고, 갈대 습지에도 머무르며, 홍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요단강물이 그를 덮쳐도 절대 놀라지 않는데, 감히 어떤 인간이 그 ”하마“에게 다가가 사로잡거나 코에 갈고리를 꿸 수 있겠는가?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니라)”

(41장=리바이어던(“악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많다))

“욥아, 네가 낚시 후크(고리)로 리바이어던을 낚을 수 있겠느냐? 끈으로 그 혀를 못 움직이게 묶어 내릴 수 있겠느냐? 그 놈의 코를 네가 꿸 수 있겠느냐? 혹은 네가 아가미에 후크로 뚫어서 묶을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떻게 그 놈을 잘 구슬려서 너를 섬기게 할 수 있다더냐? 어떻게 그 놈을 애완견처럼 가둬 두고, 소녀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더냐? 어찌 장사꾼들이 그 놈을 포획해서 물건으로 교역할 생각이나 하겠느냐? 네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머리를 관통시킬 수 있겠느냐? 그 머리에 손을 한 번 대 본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라. 그 놈을 잡으려는 소망은 헛된 것이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힘에 압도될 것이니라. 그런 짐승에게조차 대항 못할 인간들이 어찌 하물며 나를 대하겠느냐? 그 어느 누가 나에게, 내가 하는 역사에 대해서 감히 왈가왈부하겠느냐? 이 세상은 모두 다 내가 만들었고, 다 내 소유물일 뿐이니라.”

“누구도 “그것(=리바이어던)”의 가죽을 벗길 수 없고, “그것”의 입은 억지로 열 수도 없으며, 그것의 이빨은 무섭고 날카로우니라. 그의 등가죽은 꽉 당겨서 촘촘히 꿰매놓은 것처럼 짱짱하고, 그 사이로는 바람도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노라. 그것이 재채기를 할 때는 광채가 나오고, 그의 눈은 새벽빛 같으니라. 그 입에서는 불을 뿜어대고, 그의 코에서는 연기를 내뿜고 있노라. 그것의 목덜미에는 강함이 있고, 그놈의 앞에 (사람들이) 서게 되면, 절망감만 느낄 뿐이노라. 그 육체의 겹쳐진 부분은 꽉 짜여져서 탄탄하고 가슴은 바위처럼 단단하도다. 그것이 일어서면 아무리 강한 자들이라도 두려움에 떨게 된다. 칼도 꽂히지 않고 창이나 화살도 절대 그것의 피부를 뚫지 못한다. 그것에게는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고 굵은 창도 썩은 갈대 같게 느껴질 뿐이다. 또 리바이어던의 배 쪽에는 대패 같은 토기조각들이 매달려있어서 그것이 지나간 자리는 대패로 땅을 밀어버린 듯 흔적을 남기는 도다. 그것은 바다에서 큰 거품을 일으켜 바다가 끓는 듯 보이게 만들고, 무적인 짐승의 대명사로 지음을 받았느니라. 세상의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의 위에 있는 왕이니라. (사람은 정말 나약한 존재일 뿐이노라. 그 리바이어던조차 꺾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냐?)“

[마지막 결론(42장)]

욥이 하나님께 대답한다.

“하나님이여! 저는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심을 알겠나이다. 하나님의 계획으로는 못하실 일이 없음도 알겠나이다. 저에게 물으셨지요? ”참지식“도 없이 하나님의 행하는 바를 가리는 자가 도대체 누구냐고요? 저는, (무례하게도 저의 지식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이자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주제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분명히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전에는 제가 귀로만 당신을 들었지만 , 이제는 저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나이다 . 이제 저는 (이전의) 저를 경멸하고 (이런 재앙속의 먼지와 재속에서 저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크신 뜻을 몰랐던 저를 용서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욥의 회개를 들은 여호와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신다 .

“엘리바스야! 너와 네 두 명의 친구들은, 나 여호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욥이 나에 대해 의롭게 말하는 것처럼, 고백하지 못했노라. 나는 이것에 분노하노라. 이제 소 7마리와 양 7마리를 욥에게 가져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제단에 바쳐라. 나의 종 욥이 너희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나는 욥의 기도를 받을 것이며, 너희를 정죄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이에 친구 세 명은 하나님이 명한대로 시행했고, 욥은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으며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받으셨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 후에, 여호와는 욥을 이전에 주었던 소유보다 두 배나 더 주셨다. 욥을 떠났던 형제와 자매들과 욥을 이전에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욥의 집에 와서 음식을 같이 먹었고, 욥이 겪었던 모든 재앙들에 대해서도 위로해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금반지와 은반지를 욥에게 주었다. 하나님은 욥의 마지막 삶을 이전의 삶보다 더 풍성하게 축복해주셨는데 재물은 두 배로 주셨고, 자식들은 처음처럼 10명을 다시 낳도록 해 주셨다. 양 14,000마리, 낙타 6,000마리, 소 1,000마리, 당나귀 1,000마리를 주셨고,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주셨다. 3명 딸들의 이름은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이었는데, 그녀들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미녀가 되었고, 아버지 욥은 그녀들에게도 땅을 유산으로 주었으며, 그 후 욥은 140년을 더 편안히 살았고, 아들 손자 4대를 보며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욥기 요약 끝]

드디어 욥기의 요약이 끝났다. 너무 길고 어려웠다 에휴~. 짧게 복습해본다.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더 많지만….

<<< 결론적으로 , 이 글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잣대로는 절대로 잴 수 없다는 것이다 . ” 와 “ 재앙을 당하더라도 , 그 재앙을 악하게 산 것에 대한 형벌로 받아들이지 말고 더 나은 축복을 받기 위한 반성의 계기 ( 시험 ) 로 삼고 하나님께 계속 의지하며 이겨내면서 양심에 귀기울이고 살아야 한다 .” 이 두 가지를 요지로 볼 수 있겠다. 복습 : 정말로 아무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해 온 욥이 자신에게 갑자기, 악인에게나 닥쳐야 할 재앙이 찾아오자 하나님을 섬겨온 것에 대해 약간의 회의감을 느끼고 억울해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깊이 탐구해가면서 조금은 건방지게 하나님에게 자신은 절대로 죄를 지은 적이 없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저 옛날부터 알고 있던 얕은 지식(지혜)만으로, 하나님은 단순히 착하게 살면 복을 주시고 나쁘게 살면 재앙을 주시는 분이라고 욥을 다그치며 욥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아니겠냐고 욥과 논쟁을 벌이는데 결국에는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욥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아 주고, 욥의 친구들에게는 얕은 지식 말고 욥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지혜) 이해하면서(명철) 섬기라고 충고하는 이야기가 욥의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욥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얼핏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가만히 읽다보면, 약간 신약의 바리새인들처럼 너무 율법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도 그 부분의 잘못을 지적하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담겨진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욥의 고뇌는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봤음직한 이야기일 것이다. 욥기를 읽어 본 나의 결론은, “모든 판단은 지금 내가 생각할 필요가 없고, 나는 지금 현재 여기에서 가능한 양심에 따라 착하게 사는 것이 좋겠다” 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착하게 삽시다 ! (그렇게 살면 복을 받나? 아니면 못 받나? 하는 문제는 우리가 판단할 몫이 아니다.) 욥기의 긴 이야기는 성경 요약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다음 시편부터는 내용도 난해하지 않고, 일종의 복음 성가집 같은 것이므로 아주 간단하게 엑기스만 빼서 요약하려 한다. 알기 쉬운 성경 요약 by 이민호

< 욥기 서 론 >

1. 주제

욥기의 이야기는 욥의 신앙을 칭찬해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사탄은 욥의 진실한 신앙을 부인하고 그의 신앙이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 시험해 볼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욥의 신앙이 진실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나가서

재물과 가족, 건강과 친구 등을 동원해서 욥의 신앙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욥은 그 모든 시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굳게 지킨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은 사단의 시험을 통해서 욥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드셨고,

그 후에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이러한 욥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다.

1) 왜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

2) 정의는 과연 승리하는가?

3)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삶과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

4) 사탄은 어떠한 존재인가?

5) 부조리로 가득 차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는가?

6)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는 어떠한 것인가?

2. 저자: 욥 (아래 제시된 성경 구절을 통해서 욥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자!)

1) 일부 학자들은 욥이 실제로 살았던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겔 14:14-20, 약 5:11)을 읽어보고 그가 과연 실제로 살았던 인물인지 대답해 보자.

2) 욥의 고향은 어디였는가?(1:1,3,19).

이 도시는 팔레스틴 동북쪽 다마스커스와 유브라데 강 사이 사막 근처에 있는 도시였다.

3) 욥은 언제 살았던 사람인가?(주전 약 2000년- 바벨탑 건축과 아브라함 시대 사이 -)

이러한 사실은 욥기에 아브라함 이후의 사건과, 율법과 제사, 그리고 성전에 대한 언급이 없고, 가장이 가정의 제사장인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1:5).

4) 그는 경제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1:3,10)

그는 대도시에서 큰 집을 소유하고 살았다(1:4, 29:7).

5) 그는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윤리적인 삶은 어떠했는가?(29:7,25)

그는 도시의 존경받는 지도자이며 재판관이었고,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6)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1:1, 5:8, 겔 14:14-20, 약 5:11).

그는 여호와 앞에 의인이었다.

3. 등장인물 – 아래의 등장 인물은 어떤 사람이며 그들의 기본 주장은 무엇인가?

1) 엘리바스 (이름의 뜻-하나님은 좋은 분이다):

* 현자가 많이 나타나는 에돔의 데만 출신(2;1).

* 세 친구의 대변인이며 논리적이고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

* 진지하면서도 지혜로운 왕족 출신. 온건한 신비주의자.

<엘리바스의 주장>

하나님은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며 인간의 고난은 스스로 자처한다. 인과응보의 교리(4:7-9, 5:8-11)

2) 빌닷 (이름의 뜻-논쟁의 아들):

* 유브라데스 강 근처의 슈아 출신.

* 확고한 전통주의자(8:3-6, 8-10).

* 엘리바스보다 훨씬 더 논쟁적임.

<빌닷의 주장> 하나님은 절대로 정의를 왜곡하지 않으신다(8:3).

3) 소발 (이름의 뜻-억세다, 털이 많다)

* 북 아라비아의 나마 출신(2:11).

* 세 친구 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음.

* 교리주의자이며 도덕주의자.

* 권위주의적 경건주의자(11:6, 13-18).

<소발의 주장>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악을 아신다(11:11).

4) 엘리후 (이름의 뜻-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 아라비아 시리아의 부스 출신.

* 네 명중에 가장 나이가 적음.

* 욥의 친한 친구는 아닌 것으로 보임.

<엘리후의 주장>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의로운 자를 더욱 성화시키신다(33:24).

라. 내용 개요

문제제기 발단과 전개 절정 결말 욥의 경건과 신앙 사단의

시험 욥의독백 대화 1 대화 2 대화 3 엘리후의 답변 여호와의 질문 회개와 축복 1:1 1:5 1:6 2:10 3장 4-14장 15-21장 22-31장 32-37장 38-41장 42장

1. 서막(1:1-5)

1-1. 욥의 인품(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1)

욥은 우스 사람이었다. 우스가 어디였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우스가 사해 남동쪽의 에돔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다메섹 남쪽 바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우스를 북 아라비아의 에돔 동쪽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위치가 어디였든지 간에 우스는 사막 가까이에 있었으며(1:19),

농사와 목축을 하기에 기름진 땅이었고(1:3,14, 42:12), 팔레스틴 외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욥은 순전(“탐”: perfect-완전-)하고 정직했다.

완전하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볼 때에 온전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욥이 죄를 범하지 않은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죄를 범했을 때에 제사를 통해서 즉시 속죄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았다.

정직하다(“야사르”)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똑바로 살았다는 것을 말한다.

욥은 외식이나 이중적인 인격을 가지지 않은 진실된 사람이었다.

욥기의 저자는 욥이 이러한 인품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멀리 할 수 있었다.”

(예)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은 성도들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 욥의 가정(2,4-5)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2)…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4)….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5)

욥은 가정적으로 유복했다. 그에게는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었다(2).

족장 시대에는 가족이 많은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했다. 그의 자녀들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자주 모였으며 서로 화목하고 즐겁게 살았다(4). 이것은 욥의 가족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화목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욥은 그의 가정을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흠이 없도록 인도하기 위해 힘썼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욥의 가족에 그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화를 주셨다.

욥은 자녀들이 생일 잔치를 하고 난 후에 항상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가 번제를 드린 것은 그들이 잔치 중에 마음이 들떠서 하나님을 배반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5). 이와 같이 욥은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리는 종종 개인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만

그의 가정(아내, 또는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욥은 자신 뿐 아니라 가정도 바르게 인도하였다. 자신을 다스리고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축복 때문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 없이 자신과 가정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욥과 그 가정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

1-3. 욥의 재산(3)

“그 소유물은 양이 7000이요 약대가 3000이요 소가 500겨리요

암나귀가 500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3)

욥은 가축(양, 약대, 소, 나귀)이 많았으며 이러한 많은 가축들과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많은 종을 소유하고 있었다. 욥의 당시에는 주로 가축과 땅, 그리고 노예의 규모로 재산을 평가했으며 욥은 이 모든 것에 풍족했다.

더구나 그는 부자이면서도

재물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등지는 일이 없었으며,

이 모든 재산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했다(1:21).

그는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재산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기 보다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관대하게 사용했다(4;1-4, 29:12-17, 31:16-32 참고). 이러한 사실은 욥이 개인과 가정을 올바르게 세웠을 분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청지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욥은 개인적으로 볼 때에 도덕적 신앙적으로 온전했고 가정적으로 볼 때에도 온전했으며, 경제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온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욥기의 저자는 욥이 “동방에서 가장 큰 자”였다고 말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큰 자(위대한 자)는 물질만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신앙과 윤리, 그리고 가정과 경제적인 모든 여건을 고려해 볼 때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온전한 자였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재물이나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욥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이 모든 영역을 온전하게 다스리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시 127:1 참조).

<적용 질문>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음 네가 기준에서 적합한 사람인지 살펴보자.

1) 온전, 2) 정직, 3) 하나님을 두려워함, 4) 악에서 떠남.

우리가 이 기준에서 부족한 부분이 어느 것인가? 우리들도 이러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2. 우리는 가정을 하나님 앞에서 화목하게 하고 온전하게 다스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우리 가정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3.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욥과 비교해 볼 때에 무엇이 부족한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자.

2. 천국과 지옥의 대결(1:6-2:10)

-소유냐 신앙이냐?-

<참고: "욥기에 나타난 세 가지 대결">

1) 천국과 지옥의 대결(1:6-2;10)

2) 욥과 친구들과의 대결(2:11-37:24)

3) 여호와와 욥의 대결(38-42장)

2-1. 1차 시험(1:6-22)

2-2-1. 하늘에서의 회의(6-12)

욥기의 장면은 천상 회의로 바뀐다.

어느 날 하늘에서 천사들이(하나님의 아들들) 그들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 있었고,

사단도 그들 중에 있었다(6). 이 장면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우주를 다스리시되 사단도 그 주권 아래서 통제를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다.

사단은 땅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녀 왔다고 대답했다(7).

이 장면은 사단이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그가 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내 종 욥을 주의해서 보았느냐 ?”고 물으셨다.

물론 사단은 욥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자기의 종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고 칭찬하셨다(8).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이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경건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을 사단 앞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그러나 사단은 욥의 신앙의 순수성을 부정했다. 그는 하나님께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라고 항의했다(9).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지켜주시고, 그가 하는 일마다 축복해서 그의 소유물이 온 땅에 퍼지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10). 사단은 인간의 경건은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인간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때문에 행하는 외식적인 행동이라고 도전했다. 사단은 자기 말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사단은 만일 하나님께서 욥의 소유물을 치시면 욥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11).

사단은 이와 같이 이유 없이 인간을 고소하고 비난하는 일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사단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단에게 욥의 소유물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의 몸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하셨다(12).

이러한 사실은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단까지도 이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면 과연 욥의 신앙이 이기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는가?

다음 내용은 이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말해준다.

2-2-2. 사단의 시험(13-19)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칠 기회를 보고 있었다. 마침내 사단의 공격은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며 만찬을 들고 있을 때에 시작되었다(13). 사단의 공격은 두 차례에 걸친 사람의 공격과 자연의 재난으로 이루어 졌다. 갑자기 욥의 하인 하나가 급히 달려와서 스바 사람이 와서 소와 나귀를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는 모든 종들이 죽고 자기만 살아 남았다고 보고하였다(14-15). 스바인은 남서 아라비아의 시바, 또는 상부 아라비아의 드단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온 사람이었을 것이다(창 10:7, 25:3 참조). 그 종이 보고하고 있을 그때에 또 한 종이 달려와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모든 양과 종을 태워버렸다”고 보고하였다(16). 이 불은 아마도 번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왕상 18:38 참고). 그리고 계속해서 종이 달려와서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이루어 공격하여 욥의 모든 약대를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고 보고하였고(17), 그 뒤를 이어 달려온 종은 “욥의 10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만찬을 들다가 바람에 집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는 보고를 하였다(18-19). 당시의 갈대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흉악한 사람들로서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아마 스바인이 남쪽에서 왔다면 이 갈대아인은 북쪽에서 왔을 것이다. 욥의 맏아들의 집 네 모퉁이를 친 바람은 사막을 가로질러 세차게 몰아치는 폭풍이나 회오리바람이었을 것이다.

욥은 재난을 보고하기 위해 달려온 네 명의 종들과 아내를 제외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게 되는 대참변을 당했다.

사단은 욥의 신앙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방법을 사용해서 욥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 사단의 말대로 욥은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욕하였을까?

2-2-3. 욥의 태도-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이 입증됨(20-22)

욥은 그 소식을 듣고 일어나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으며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였다(20).

그가 겉옷을 찢고 머리를 삭발한 것은 그의 모든 소유와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것에 대한 놀람과 슬픔의 표시였다. 그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놀람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오히려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그는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모태에서 나올 때에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후에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다”(21).

이렇게 그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단의 재난 속에서도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22). 그가 극한 재난 속에서도 시험에 빠지지 않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보다 물질과 가족을 더 사랑했다면

그는 그것을 잃었을 때에 사단의 말처럼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유보다 그것을 주시고 취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소유를 잃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욥의 신앙은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순수한 신앙이었다.

결국 이렇게 하여 사단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신앙과 욥의 신앙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말해보자.

2. 의인을 향한 사단의 비난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누가 잘되면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가 부모를 잘 만나거나 돈이 많거나 머리가 좋아서 그랬다고 하면서 그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러한 비난이 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3. 우리는 모든 자녀와 모든 소유를 한꺼번에 잃을 때에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우리가 나타낼 태도와 욥의 태도를 비교하고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지 이야기해 보자.

2-2. 2차 시험(2:1-10)

2-2-1. 하늘에서의 회의(1-6).

한 차례의 시험이 지나간 후에 하늘에서 또 다시 회의가 열렸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보고하였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서 끼여 있었다(1). 여호와께서는 이 번에도 사단에게 “어디에서 왔느냐 ?” 고 물으셨다. 사단은 첫 번째와 같이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를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2).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또 다시 욥의 온전함과 정직성, 그리고 그의 신앙과 올바른 삶에 대해서 칭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욥을 비방하고 나로 하여금 그를 치게 했지만 욥은 끝까지 신앙을 신실하게 지켰다”고 자랑하셨다(3).

그러나 사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욥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이 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4). 그래서 사단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그를 칠 것을 제안한다. 사단은 만일 “하나님께서 욥의 육체와 뼈를 치시면 욥이 하나님께 욕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5). 사단의 비난은 인간의 신앙은 순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보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 받기 위해 서 드리는 예배는 철저하게 사단적인 예배라는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예배는 무엇을 받기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말을 들으시고 다시 사단에게 욥의 몸을 해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의 생명만은 해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욥이 건강을 잃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2-2. 사단의 공격(7-8)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은 또 다시 자기의 권한 내에서 가장 극악한 방법으로 욥을 공격하였다.

사단의 공격으로 인해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되었다(7).

그러면 욥이 걸린 병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애굽에 내려졌던 독종(출 9:8)이나 히스기야가 걸린 병(왕하 20:7)을 “악창”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병이 천연두나 상피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의사들에 의하면 이 병의 증상을 보아 이 병은 “딱지나 비늘이 생기는 “천포창”이라고 주장한다. 이사들은 이 병의 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병의 증상은 염증과 고통을 수반하는 종기가 생기며 그 종기에 벌레가 생기고 가려우며, 피부를 상하게 하고 악창이 퍼지며, 입에서 냄새가 나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식욕이 저하되고 체중이 감퇴되며 기력을 상실하게 한다” (Roy. B. Zuck, <욥기>, 전광규 역, 두란노, p. 26).

이제 욥은 병으로 인해 마을 밖에 있는 쓰레기나 오물을 태우는 곳에서 재위에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가려운 피부를 긁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8). 한 때 가장 큰 부자요 재판관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욥은 한 순간에 거지와 병자가 되어 거지들과 함께 성문 밖에서 고통을 덜기 위해 재와 기와로 몸을 긁어대는 절망적인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다.

2-2-3. 욥의 아내의 저주(9)

사단은 욥을 이와 같이 처참하게 만든 후에

욥의 아내를 통해서 순전을 지키고 있는 욥을 공격하였다.

사단은 욥에게 그를 이렇게 만든 하나님이 과연 정당한 하나님이냐? 고 묻고 있었다.

사단은 욥이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사단은 욥의 아내를 통해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을 하게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사단의 간교한 유혹이

광야에서 40일을 굶은 주님을 향해서도 던져진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에 주님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기셨다.

그때에 육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주님을 향해 던진 사단의 말은 얼마나 교활하고 사악한 것이었는가? 그러나 한 편 우리는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 욥의 아내가 던진 말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말과 생각이 사단의 공격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의 아내의 말을 보면서 우리가 극한 상황 속에 빠졌을 때에

사단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4. 욥의 태도(10)

그러나 욥은 이러한 아내의 말을 듣고도 그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

욥은 아내가 하는 말이 어리석은(나발: 영적으로 무지하거나 분별력이 없음)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책망했다.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으니 재앙 또한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10).

욥은 축복이나 재앙(‘라아’: 악, 재난) 모두 다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임을 인정했다.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 역시 정당한 것이다.

욥은 재앙을 당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재앙에 대해서 순복할 수 있었다. 욥의 신앙은 이렇게 온전했다. 이렇게 해서 사단은 극악한 방법으로 두 번이나 욥을 공격했지만 결국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가?

2. 만일 우리가 자녀와 재물을 잃고 건강까지 잃는 일을 당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찬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왜 우리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을 때에 말로나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해야만 하는가?

4. 예수님을 유혹한 일, 욥을 유혹한 일을 비교해 보고 이러한 유혹이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를 이야기해 보자.

– 다음 주 계속

1. 친구들의 방문(2:11-3:26)

1-1. 친구들의 동정(2:11-13)

이제 욥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는 어떤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 나면 그것을 이겨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침묵하기도 하고,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일이 잘 풀려 가는 사람들 주변에 많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당할 때에는 진정한 친구만이 그를 찾아준다.

욥이 부유할 때에는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욥이 고난에 처했을 때에 그를 찾아 온 사람은 세 사람뿐이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방문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욥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11).

그 친구들의 이름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었다.

우리는 데만이 에돔 족의 한 종족이며 수아가 미디안의 형제 부족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에 대해서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친구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엘리후였다.

그가 이전부터 욥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우연히 욥과 그 친구들의 논쟁을 듣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집을 떠나 욥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몰골이 흉하게 된 욥을 보고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러한 욥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큰 소리로 울고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렸다(12).

그들은 욥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해 7일 동안 말없이 욥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욥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심한 것을 보고 그에게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13).

큰 재난에 빠진 친구를 위로할 때에 말보다 침묵이 더 좋을 때가 있다.

1-2. 욥의 탄식(3:1-26)

말없이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 표시를 하기가 쉬운 법이다.

욥은 그 동안 자기 곁에서 고통을 같이 해준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욥은 마음이 열려서 그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욥의 탄식은 세 가지였다.

1) 자기가 태어난 날에 대한 탄식(1-10),

2) 자기가 태어날 때에 죽지 않은 것을 탄식함(11-19).

3)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을 탄식함(20-26).

a. 욥은 자기의 생일(태어난 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없었고 모친이 사내아이를 임신했다고 했던 밤이 없었으며, 그 날이 캄캄하여 하나님께서 위에서 그 날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빛도 그 날을 비취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암(음부)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내 것이라 말하고(죽어서 태어남), 그 날에 구름이 덮여 낮이 캄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혀 해와 달의 수에 들지않고(그날이 없었다면) 그 밤이 적막하며, 그 밤에 (아이를 낳았다고 외치는)즐거운 소리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을 저주할 수 있는 하나님, 곧 큰 악어(악한 영)를 움직일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서 그 밤을 저주하시고, 그 밤에 새벽별들이 어두워지고, 그 밤이 빛을 원해도 얻지못하고 동이 트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의 문을 닫지 않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셔서 내 눈으로 이 환난을 보게 한단 말인가?”(1-10)

b. 욥은 심한 고통으로 인해 차라리 사산했기를 바란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죽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고 모친의 젖을 빨게 하였던가?

만일 내가 그 때에 죽었다면 이제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라. 자기를 위해 무덤을 만든 세상의 왕들과 위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금과 은을 가지고 자기 집에 채운 관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와 같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것이며,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죽은 아이들)과 같았으리라.

거기는 악한 자가 그 욕심을 그치고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들이 다함께 평안히 있어서 감독자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같고, 종이 그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곳이로다!”(11-19)

욥은 낙태된 아이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왜냐하면 무덤에서는 악한 자가 욕심을 버리고 힘들게 살던 사람도 평강을 얻기 때문이다. 무덤에서는 세상과 달리 갇힌 자들이 함께 모여 살고 더 이상 감독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 곳은 작은 자나 큰 자가 모두 신분이 같으며 종이 그 상전으로부터 해방된다. 욥은 이와 같이 죽음의 세계를 모든 신분과 고통이 없어진 안식의 세계로 보았다. 그러므로 극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는 죽음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c. 욥은 계속해서 죽기를 갈망한다.(20-26).

“어찌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빛(생명)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던고? 이런 자는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가 없도다.

나는 땅을 파고 숨긴 보물을 찾는 것보다 죽기를 더 원하니, 죽음을 얻게되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라! 하나님의 공격에 둘려싸여 갈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 빛(생명)을 주셨는고?

나는 먹기도 전에 신음을 하고,

내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마치 물처럼 쏟아져 나오는구나!

내가 두려워하던 일(재난)이 내게 미쳤고, 내가 무서워하던 일(질병)이 내 몸에 미쳤도다.

이제 내게는 평강도 없고 안식도 없으며 오직 고난만이 있을 따름이라!”(20-26)

욥은 혼자 있을 때에는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소유와 재산을 잃었을 때에도 신앙을 지켰고,

건강을 잃고 그의 아내가 그를 공격할 때에도 순전을 굳게 지키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다.

이때에 사단이 욥을 넘어뜨리기 위해 보낸 것은 그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를 방문하지만

사단은 교묘히 그들을 이용해서 욥의 신앙을 공격하고 있었다.

욥은 자기와 입장이 같은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었다.

욥은 별 볼일 없는 친구들이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자신만 일방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상대적인 결핍을 느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는 신앙을 지키기가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만이 지나치게 고난을 당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이것은 그 날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유산을 받은 부자들이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을 볼 때에 느끼는 분노와도 같은 것이다.

이제 욥은 상대적인 결핍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죽기를 원해도 죽기 않고 고통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어쩌면 간교한 사단은 이것을 노리고 친구들을 욥에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욥이 친구와의 수평 관계에 시선을 맞추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에서 그의 시선을 놓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욥의 모습을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보다 더 쉬운 환경에서도 너무나 자주 세상을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남이 잘될 때에는 그를 가까이 하다가 그가 어려워지면 멀리 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고 있는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나를 찾아줄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2. 우리의 생일과 사는 날들을 감사하지 못하고 차라리 저주하고 싶은 때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때가 언제이며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보고 욥의 처지와 고백과 비교해 보자.

3.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익과 해를 줄 수 있다.

* 유익 1)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둔다.

2)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정결해 진다. 3) 하나님을 찾는다.

* 단점-인생을 비관하다가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

< 친구들과의 논쟁 > (4:1-31:10)

욥이 일 주일간의 침묵을 깨고

번민의 부르짖음을 외친 후에

그의 세 친구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욥이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고서

그의 경솔한 발언에 대해 바로 잡아주어야 할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세 번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친구들이 말한 후에 욥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세 친구의 관점은

모두 의인이 상을 받고 악인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

따라서 그들은 욥이 강퍅한 죄인이며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은 그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A. 첫 번째 논쟁(4:1-14:22)

1-1. 엘리바스(4-5장)

* 욥에 대한 비난(4:1-6)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였다.

그는 욥에게 “누가 말을 하면 네게 염증이 나겠느냐?” 고 하였다. 엘리바스는 그 동안 욥이 다른 사람을 충고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욥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가 되었다고 충고하였다. 엘리바스는 혹시 누가 말을 해서 욥에게 염증이 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엘리바스는 욥이 이전에 말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고, 손이 늘어진 자(낙심한 자)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넘어져 가는 자를 붙들어 주고 낙심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엘리바스는 그러나 이제 정작 욥에게 고난이 오게 되자

욥은 자기 말대로 하지 않고 불안해하며 답답해하며 놀라고 있다고 비난한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이며,

너의 소망은 행위를 완전케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행위를 온전케 하라고 원하고 있다.

* 그의 주장(4:7-5:7)

<고통에 대한 그의 논리>(7-11)

그는 욥에게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이며 정직한 자가 끊어진 일이 어디 있느냐? 고 도전한다.

그는 자기 생각에는 악으로 밭을 갈고 독을 씨처럼 뿌리는 자(죄를 행하는 자)는 악을 거두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사자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치시면

그 소리가 사라지고,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먹을 것이 없어 죽고, 새끼들이 흩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한 때 사자와 같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의 죄로 이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할 말을 잃고 그의 세력이 사라지고 자녀들을 잃은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었다(4:7-11).

<환상을 통한 계시>(12-21)

엘리바스는 신비주의 자이거나 적어도 영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자였다.

그는 자기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기가 본 환상에 대해서 말한다.

그가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근거로 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밤에 한 이상을 보았는데

그 이상 중에 한 영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

엘리바스는 그 영이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롭지 못하고 사람이 창조주보다 성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욥이 자기는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신다고 한 말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본 영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믿지 않으시며 그가 부리는 사자라도 미련하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흙으로 만든 집에 살며 흙을 터로 삼고 하루살이에게도 눌려 죽을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비천하겠는가?

사람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하루아침에) 죽어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장막 줄을 뽑을 때에(생명을 거둘 때에) 그들이 죽나니 이같이 사람은 지혜가 없도다.” 엘리바스는 욥이 집을 잃고 재 가운데 앉아서 하루살이 같은 사람에게도 눌려 죽을 신세가 된 것을 비난했다.

그는 욥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지혜 없음과 죄로 인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4:12-21).

* 욥에 대한 그의 충고(5:1-16)

엘리바스는 욥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부르짖음은

죄인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일으킨 미련한 분노이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시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엘리바스는 미련한 자가 뿌리박은 것을 (형통한 것) 보고 당장에 저주하였다.

그러자 그의 자녀들에게 평안이 사라지고 성문에서 압제를 당하나 구해 주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모두 다 빼앗기고 그 재산을 노리는 올무가 기다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악한 자이기 때문에

저주로 인해 집과 재산과 자녀를 잃고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그는 재앙과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은 죄에서 난다고 주장하였다(5:1-7).

무자비하게 욥을 공격한 엘리바스는 이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는 자기가 욥과 같은 환경에 있었다면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고 그의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들어 안전한 곳에 두신다(은혜와 자비의 하나님).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악한 계교를 멸하시며 그의 뜻이 상사되지 못하게 하신다(공의의 하나님).

그러므로 악인들은 대낮에도 어두운 밤과 같이 더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곤비한 자를 강한 악인들의 무기와 세력으로부터 구해주시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게 소망이 있으며, 불의한 자들은 스스로 할 말을 잃게 될 것이다(8-16).

* 하나님의 축복을 상기시킴(5:17-27)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말한 후에

하나님께 경책을 받는 자가 복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경책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지금 욥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의 경책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아프게 하시다가(징계) 싸매 주시고(회복과 위로),

상하게 하시다가(징계) 그 손으로 고치신다고(회복과 위로)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욥이 그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6가지 환난에서 그를 구원하시고, 7가지 환난 속에서도 재앙이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기근과 전쟁 때에도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사람의 비난과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자연이 그를 해치지 않고, 다시 집을 짓고 평안히 살게 될 것이며,

재산을 회복하고 자녀들이 다시 많아질 것이며,

기한이 되어 추수한 단과 같이 장수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엘리바스는 이와 같이 말한 후에 그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니

욥은 이 말을 듣고 그에게 유익한 말로 받으라고 충고했다.

< 적용 질문 >

1. 말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혀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남을 가르치면서 정작 나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2. 죄를 지은 자가 망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는 것은 죄인에게 바로 심판이 내리지 않고 때때로 의인도 고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인이 받는 고난은 선한 목적 때문에 받는 것이다.

3. 어려움과 환난을 당한 사람을 정죄하고 그들을 비난하며 회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인지 이야기 해 보라.

4. 우리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근거해서 판단하는가? 성경을 근거로 판단하는가?

1-2. 욥의 대답(6-7장)

* 욥의 변명(6:1-7)

욥은 자신이 당하는 분한(분노)와 재앙을

저울에 달면 바다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는 큰 진노와 재앙으로 인해 자기가 경솔한 말을 했다고 고백한다.

욥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독화살에 와서 박혔고 두려움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들 나귀와 소가 꼴이 있으면 울지 않듯이

욥도 재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다.

욥은 싱거운 음식과 계란의 흰자위에 소금을 쳐야 맛이 있듯이

자기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고통에 대한 욥의 절망(6:8-13)

욥은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거두어 주실 것을 요청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시면 그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기는 돌이나 놋쇠가 아니므로

기력이 다해서 더 이상 기다릴 힘도 없다고 말한다.

욥은 이제 그의 안에는

그를 돕는 힘은 아무 것도 남아 잇지 않으나 지혜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친구들에 대한 욥의 실망(6:14-23)

욥은 친구들이

지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포기한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욥을 신실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

그들은 욥에게 있어서

우기나 눈이 올 때에 넘쳐흐르다가

가장 필요할 때에 물이 말라버리는 개울물과 같았다.

얼음이 광야에서 녹으면 모래를 검은색으로 만들다가 금방 더위에 말라 없어진다.

친구들의 신의는 이렇게 쉽게 말라버린 얼음물과 같았다.

욥은 친구들의 신의가 사람을 속이는 신기루와 같다고 말한다.

광야를 지나던 나그네들과 데마와 스바에서 온 행상들은 신기루를 보고

오아시스 인줄 알고 쫓아가다가 물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광야에서 엎드러진다(14-20).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한 고난을 보고 욥을 돕다가

자기들도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고난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욥은 자기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 세 친구에 대한 욥의 탄원(6:24-30)

욥은 만일 친구들 욥의 허물을 드러내어 가르쳐 주면 자신은 잠잠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한 말이

옳은 말이었다면 욥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마치 도움 받을 자가 없는 고아를 제비 뽑고(부당한 이익을 취함),

친구도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요청한다.

그는 친구들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자신은 그들에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죄인으로 몰은 일을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는 자신은 의로움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자신에게도 자신이 선한지 악한 지를 분별할 정도의 분별력은 있다고 주장한다(21-30).

* 하나님께 대한 불평(7:1-21)

<욥의 불행한 형태>(7:1-5)

욥은 인생(에노스: 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네 가지로 비유하였다.

1) 군복무(차바: 본문에는 이 말이 전쟁이라고 번약됨)를 마치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군인,

2) 힘든 노동을 하는 품꾼,

3) 뜨거운 태양 밑에서 일하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는 종,

4) 삯이 지불되기를 기다리는 품꾼.

욥은 이들과 같이

고난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여러 달 째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인해 밤마다 고통으로 인해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밤새 몸을 뒤척였다.

그의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옷처럼 입혀 있었고,

그의 피부는 아물었다가 다시 터지기를 반복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기도>(7:6-21)

그의 날은 마치 소망 없이 빠르게(베틀의 북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 생명이 숨 한 번 쉬는 것과 같음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잠시 후 자기가 죽으면

친구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그를 치시면 그는 구름이 사라짐 같이 없어져 다시는 음부에서 올라오지 못할 것이며,

집에서도 그를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1-10).

그러므로 욥은 이제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원망하겠다고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다 괴물인 용(티아맛: 바알과 싸워 진 바다 괴물)으로 취급하고 자기를 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잠이 들 면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에 들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꿈에서도 놀라고 두렵게 하신다고 원망한다.

이제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

그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관심을 갖고 징계하며 시험하느냐? 고 불평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마치 죄수를 지키는 간수 같이

침 삼키는 순간도 그를 놓지 않고 지키고 서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이 주님께 무슨 해가 되기에

자기를 공격할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만드시느냐? 고 호소한다.

그는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형벌을 제하지 않느냐고 호소한다.

그는 자기가 죽어서 흙에 누우면 주께서 찾아도 더 이상 땅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한다(11-21).

<적용 질문>

1. 욥이 고통 중에 죽음을 바라본 태도(6:8-13)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1) 그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했다.

2) 그는 세상에 오래 있기 보다 죽기를 원했다.

3) 그는 비록 죽음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소망이 있었다.

2. 우리는 친구들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인가?

그들이 어려울 때에 요긴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물 없는 시내와 같이 친구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그들을 속이고 있는가?

3. 욥이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자(7:1-5).

1) 인생은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를 원하는 군인과 같다.

2) 인생은 힘든 노동을 하는 품꾼가 같다.

3) 인생은 뜨거운 태양 밑에서 일하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는 종과 같다.

4) 인생은 삯이 지불되기를 기다리는 품꾼과 같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들이

인생의 의미와 사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에 깊이 이야기해 보자.

4.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2-1. 빌닷(8장)

욥이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비난을 하게 되자

이 번에는 수아 사람 빌닷이 그를 반박하고 나섰다.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을 비난하였으나(5:17),

빌닷은 욥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을 비난하였다 (8:3).

*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욥의 변호(8:1-7)

빌닷은 욥에게 “네가 언제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 고 책망하고 나섰다.

그는 욥의 말이 마치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전능하신 이가 공의를 굽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다고 주장하였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전능하신 이에게 빌며(은혜 베풀기를 애원하며),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아보시고

그의 의로운 집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욥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그의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창대 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 빌닷의 증언(8-19)

<역사에서 인용한 빌닷의 증언>(8-10)

빌닷은 과거의 전통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욥에게 옛 선조들에게 묻고 열조들이 이미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산 날이 짧기 때문에 지식에 한계가 있으며,

얼마 살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인용한 빌닷의 예증>(11-19)

그는 왕골은 진펄에서 나고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외식하는 자(속이 빈 왕골과 갈대)는 죄(물)가 있는 곳에 기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왕골과 갈대는 푸르러서 벨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풀보다 먼저 시든다.

빌닷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의 길이 이와 같으며,

사악하고 왜곡된 자의 소망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빌닷은 악인들이 신뢰하는 것은 거미 줄 같이 되어 끊어져 버리고,

그 집은 오래 보존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빌닷은 식물이 햇빛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을 뻗어가며,

그 뿌리가 돌 가운데로 들어가도 그 자리에서 뽑히면 그 자리는 그 식물을 다시 기억하지 못하며,

그 후에 그 곳에는 다른 풀이 돋아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한 때 번성했지만

그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빙자한 것이다.

빌닷은 만일 욥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에게 징계가 임하고,

그가 죽은 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의 소유를 다른 사람이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빌닷이 제시한 한 가닥 소망(20-22)

빌닷은 다시 한 번 욥에게 회개할 것을 권한다.

빌닷은 하나님은 순전한 자를 버리지 않고 악한 자를 버리시는 분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만일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입에 웃음과 즐거운 소리로 채우시고

그를 미워하는 자를 부끄러움을 당하게하시며,

그를 미워하는 자의 집이 없어지게 될 것(죽거나 사라짐)이라고 충고하였다.

<적용 질문>

1. 처음보다 나중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2) 전능 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3) 그 행실을 정결하게 하고, 4) 정직하게 행동해야 한다(8:5-7).

2. 우리는 남을 판단할 때에 전통을 가지고 무조건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전통에 맞지 않아”,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해오지 않은 일이야!” 라고 비판하는 것)

3. 속이 빈 왕골과 지조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신앙인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 지에 대해서 말해보라(8:11-19).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2-2. 욥의 대답(9-10장)

* 빌닷에 대한 대답(9장)

<하나님의 두려운 권능>(9;1-13)

욥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다는 빌닷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소송을 제기함)하려 하면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강하시기 때문에 그를 거역하고서 형통할 사람은 없다.

욥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다.

하나님은 산을 옮기실 수 있으며, 지진을 일으키고, 해와 별들을 덮어버리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천막을 치듯이 공중에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폭풍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별자리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우리 앞으로 지나가도 우리는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은 강하시기에 그가 하시는 일을 아무도 반대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면 돌이키지 않고, 라합(사단)을 돕는 원수들조차 그 앞에 굴복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독단적인 권능>(9;14-24)

욥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대답도 변론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의로워도 대답하지 못하고 심판하실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해도

자기는 자기 때문에 기도에 응답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는 폭풍과 같은 재난으로 그를 치셨고, 그의 상처를 많게 하시며,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고 괴로움으로 몸에 가득하게 채우셨다고 한탄한다.

하나님은 힘이 강하시고 그 심판도 준엄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욥은 자기가 의롭고 순전해도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공평치 못함을 인해 항거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순전한 자나 악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 멸망시킨다고 항의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재앙이 내려 덮칠 때에 그가 받는 고난을 비웃으신다고 원망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악인의 손에 붙이고 공의로 재판하는 자를 두지 않으셨다고 항의한다.

<욥의 실망>(9:25-35)

욥은 자기의 일생이 체부(달리는 사람)와 빠른 배,

그리고 먹이를 잡으려는 독수리 같이 빨리 지나가지만 자기는 복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욥은 자기가 원통함을 잊고 얼굴을 바꾸어 즐거운 모양을 하려해도

그 마음에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은 바로 자기를 정죄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죄 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씻어도

주님께서 그를 다시 개천에 빠지게 하실 것이라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주 앉아 재판할 수도 없고, 판결할 자도 없다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친 막대기를 거두시고 두렵게 하지만 않았다면

하나님께 나가서 두려움없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은 자기에게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원망한다.

* 욥의 절망(10장)

<하나님께 대한 욥의 해명 요구>(1-7)

욥은 영혼이 살기에 너무 힘이 들어 하나님께 원통함을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정죄만 하지말고

무슨 이유로 그를 송사는 지를 가르쳐 달라고 간구한다.

욥은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맞선다.

1) 하나님께서 자기 손으로 지으신 인간을 학대하고 멸시하면서 즐거움을 느끼십니까?

2) 하나님께서 인간과 같은 눈을 가지고 인간의 죄를 추궁하십니까?

3) 하나님이 사는 날이 짧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묻는 것입니까?

그러나 욥은 분명히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악하지 않은 줄 알고 있는 것과

주의 손에서 자기를 구할 자가 없다는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욥이 하나님께 상기시킴>(8-12)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만드실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자기를 멸하려고 하느냐고 항의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티끌을 뭉치듯이 자신을 만들고 이제는 다시 티끌로 돌려보내려고 한다고 소리쳤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엉긴 젖(치즈)와 같이 얽고

그 위에 가죽과 살을 입히고 뼈와 힘줄로 덮어서 생명과 은혜를 주신 후에 그의 영혼을 지켜 주셨다.

욥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그 마음이 변덕스럽게 변해서 욥을 멸하려 하느냐? 고 항의한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비난>(13-17)

욥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에게 고통을 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죄를 지을 때에 용서하지 않고 악할 때에 노를 발하신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계속해서 고통과 환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록 자기가 의롭다고 해도 자기는 머리를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욥은 자기가 머리를 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사자 같이 신적인 능력으로 여러 증인들을 불러서 자기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요청>(18-22)

욥은 하나님께 이렇게 하려면 왜 자신을 태에서 나오게 하셨냐고 항의한다.

욥은 자기가 차라리 죽어서 태어났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는 자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로 내버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가 죽어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기 전에

자기를 고통에서 풀어 달라고 간구한다(14-22).

<적용 질문>

1. 악한 인생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이 되어도 그것이 나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기도 응답은 나의 의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9:16 참조).

2. 우리는 살면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원망해 본 적은 없는가? 이러한 원망은 왜 위험한 것인가?

3. 인생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욥의 비유(9:25-26 참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자

(체부(달리는 사람), 빠른 배,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

그리고 이런 빠른 인생을 살 때에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우리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

4. 하나님은 우리 전후좌우에서 활동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11).

우리는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야 한다.

5. 우리는 우리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고백할 때에 우리는 교만해 질 수 없으며,

우리 육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앙은 심한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3-1. 소발: 적용된 원리(11장)

소발은 욥이 무고하다는 주장과

하나님이 세상을 부당하게 다스린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한다.

소발은 친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욥에 대하여 무례하게 공격한다 .

* 욥의 말에 대한 그의 비난(1-6)

소발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욥이 의로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욥이 자랑할 때에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를 부끄럽게 만들 것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욥이 스스로 정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그를 빈정거리면서 욥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소발은 무자비하게도 욥이 당한 벌이 오히려 그가 지은 죄에 비해 가볍다고 비난한다.

*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소발의 찬양(7-12)

소발은 하나님께서는 하늘보다 높으시고 음부보다 깊으시며

그 도량이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측량하지 못하고, 전능하신 분을 알 수도 없다.

소발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두시면 아무도 그를 놓아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소발은 하나님께서는 헛된 사람을 아시기 때문에

악한 일에 상관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한다.

소발은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어서 그 출생함이 들 나귀와 같다고 말한다.

소발은 지금 욥을 지각없는 들 나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 욥의 회개를 요청함(13-19)

소발은 욥에게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해 손을 들며 그 손에 있는 죄악과 불의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욥의 흠을 제하시고 그에게 안전과 확신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얼굴을 들고 굳게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환난이 지나가며 환난을 잊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할 때에 그의 생애는 대낮보다 밝게 되고, 어두움 중에 있더라도 아침 같이 되며, 소망과 안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많은 사람이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기운이 떨어져서 죽기를 소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소발은 욥이 만일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가 이런 악인과 같이 멸망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인가? 적게 하는 편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많이 하기 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2).

2. 하나님은 헛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모두 아신다.

하나님은 악한 일에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신다(11).

3. 하나님을 순종하는 방법(12-14).

1) 마음을 바로 할 것.

2)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 것.

3) 지은 죄를 버리고 바로 행할 것.

4. 죄를 버리고 순종하는 자는 평강을 누린다(15-20).

1) 지나간 날의 고통의 일을 잊게 된다.

2) 앞날에 대해서 두려워 할 것이 없게 된다.

3) 주위(환경)에 대해서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4) 마음 속에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3-2. 욥의 대답(12-14장)

* 친구들에 대한 욥의 거부(12:1-13:19)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반박>(12:1-12)

소발은 욥을 들 나귀에 비유했다.

그러자 욥은

“너희만 사람이라고 떠드니 너희가 없어지면 세상의 지혜도 사라지겠구나?” 라고 비난한다.

욥은 자기도 총명이 있어서 그가 한 말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기가

친구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불의한 자들은 평안하여(욥의 세 친구와 같은)

재앙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나 의인인 욥에게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서 악인은 풍성하게 하시고

강도의 집을 형통케 하시며 하나님을 진노케 한 자들을 평안히 살게 하셨다고 불평했다(1-6).

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소발이 말한 것)은

공중의 새와 땅과 바다의 고기와 같은 피조물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욥은 이러한 피조물들조차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이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혼과 인생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욥은 입이 식물의 맛을 분별하는 것과 같이

자기 귀로 참된 말과 거짓 말(친구들의 잘못된 변론을)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욥은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으나 세 친구들은 지혜가 없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해서 말하지만 자기는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욥의 설명>(12:13-25)

욥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번영 뿐 아니라 심지어 전 세계도 뒤엎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지혜와 권능, 모략과 명철을 가지셨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시고 인간이 세운 것을 헐고, 사람을 가두시고 가뭄과 홍수를 일으키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물을 주지 않으면 땅이 마르고 물을 주시면 홍수가 일어난다. 욥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 하에 있다고 말한다. 능력과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하나님께 속해있다. 하나님은 모사와 재판장, 열왕, 제사장들, 권력자와 충성된 자, 늙은 자와 방백들, 그리고 강한 자들의 콧대를 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사가 벌거벗겨 끌려가게 하시며,

재판장을 어리석게 만드시고 열왕을 겸손하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고 충성된 자의 말을 없애며 늙은 자의 자식을 빼앗고 방백들을 멸시하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만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의 군주시며 그들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의 총명을 빼앗고 그들을 정신 적인 혼돈(물 없는 거친 들)으로 유리하게 하시며, 더듬고 비틀거리게 하심으로 그들을 미련하게 하실 수도 있다.

<세 친구에 대한 욥의 요구>(13:1-19)

욥은 자기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보고 듣고 통달하였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아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으며 자기가 그들만 못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욥은 세 친구와 말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했다 .

욥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아무 소용없는 의사와 같은 세 친구들에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지혜라고 권한다.

욥은 그들이 입을 닫고 차라리 욥의 변론에 귀를 기울이라고 부탁한다.

욥은 세 친구가 하나님을 위해 불의와 거짓을 지어 말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욥은 친구들이 하는 변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그들이 하는 격언이 마치 재와 같이 쓸데없고,

흙으로 만든 성과 같아서 아무도 보호할 수 없는 나약한 것이라고 하였다(1-12).

욥은 친구들에게 잠잠히 있고 자기를 그대로 두어 말하게 하라고 부탁한다.

욥은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자기가 그 결과를 받겠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실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소망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위를 진술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곡한 자(위선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욥은 자기는 이러한 위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고 싶어한다.

욥은 자기가 의롭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한다.

욥은 자기와 변론할 자가 있으면 자기는 잠잠할 것이라고 말한다(13-19).

<욥이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아룀>(13:20-28)

욥은 하나님께서 피고인인 자기를 협박하지(두렵게 하고 놀라게 함) 말고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인의 자격으로 만나자고 말한다. 욥은 자기에게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말할 기회를 주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에 대답해 달라고 요청한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서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을 듣고도 욥의 죄를 지적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욥은 왜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시고 그를 대적으로 여기느냐? 고 항의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쓰러져 무기력하게 된 자기(날리는 낙엽, 마른 검불)를 놀라게 하고 추격하는 일을 원망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왜 그를 대적하고 고통을 주시며 어렸을 때에 지은 죄 값을 받게 하고, 그가 하는 일을 제한하느냐고 불평한다. 이제 욥은 자기가 하나님의 매로 인해 썩은 물건과 좀먹은 옷같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고 하소연한다(20-28).

* 욥의 절망(14장)

<인생의 짧음>(1-6)

욥은 사람의 사는 날이 짧고 괴로움으로 가득하며

꽃 같이 쉽게 사라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히 가고있다고 말한다.

욥은 이런 하찮은 인간을 왜 하나님께서 살피고 심문하느냐? 고 원망한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더러운 것이어서 그로부터 깨끗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날과 달수를 정하고 그 날 동안만 살게 하셨으니

이제 자기를 죽여서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품꾼이 하루 일을 마치듯이 자기의 생명도 끝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음의 무익함>(7-12)

욥은 나무는 죽어도 소망이 있지만 인생은 죽으면 소망이 없다고 말한다.

나무는 찍혀도 다시 움이 돋고 연한 가지가 나며, 그 부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 속에서 죽어도 물 냄새를 맡고 다시 움이 돋고 가지가 나서 새로 심은 나무처럼 된다고 말한다.

욥은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어 다시 찾을 수가 없으며,

마치 증발되어 없어진 물같이 사라져서, 하늘이 없어질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한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 주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자기를 음부에 두시고

기한을 정하셨다가 후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욥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겠냐고 묻는다.

그는 그가 당하는 모든 고난이 끝나는 날을 복역 기간을 마치고 전역할 날짜를 기다리는 군인과 같이 기다린다고 말한다. 욥은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면 그가 대답할 것이며 주님께서 자기 손으로 지은 인간을 아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욥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의 죄를 낱낱이 헤아리셨으며, 그 허물을 주머니에 봉해두고 그의 죄악을 싸매어 두셨다.

<소망이 끊어짐>(18-22)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소망을 완전히 끊어버렸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마치 산이 무너져 내리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져 굴러 떨어진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흐르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닳게 하고 홍수가 땅에 있는 모든 티끌을 쓸어버린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인간을 치시고 그의 생명을 취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창백하게 하고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에서 떠나게 하신다.

죽은 부모는 아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깨닫지 못하고, 비천해져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는 무덤에 누워 벌레들이 그 살을 갉아먹기 때문에 아파하고 홀로 외톨이가 되어 슬퍼할 뿐이다.

<적용 문제>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욥이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에 대해서 설명한 것을 묵상해보고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야기 해보자(12:13-25 참조).

1) 하나님이 헐면 세울 자가 없다(14).

2) 비를 오게 하고 그치게 하신다(15).

3) 모사와 재판장을 어리석게 만든다(16).

4) 왕, 제사장, 권력 있는 자를 넘어뜨리신다(18-19).

5) 충성된 자가 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함. 늙은 자가 지혜가 없어짐, 남을 멸시하던 자들이 멸시를 당하게 됨(20-21).

6) 나라들을 강대하게도 하시고 멸망하게도 하심(23).

7) 왕들의 총명을 빼앗고 헤메게 만드심(24-25).

2. 죄 없는 자를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재와 같이 쓸모 없는 교훈이고, 금방 무너질 토성을 지키는 것과 같다(13;12 참조).

3. 욥은 살 소망이 끊어진 때에도 구원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진실된 자만이 그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13:15-16 참고).

이와같이 의로운 자는 살 소망이 끊어질 때에도 소망을 잃지않는다.

4. 욥은 하나님께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13:23).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죄를 안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욥과 같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해 달라고 진지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5. 욥은 우리가 죄인이며 의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묘사하였는가?(14:4 참조)

욥의 이러한 발언은 우리 안에 근본적으로 뿌리 박혀 있는 원죄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전적으로 부패해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6. 죽음에 대한 욥의 견해를 읽어보고

그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해보자 (14:10-22).

그리고 이 견해가 성경 적인지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와 비교해 보자.

– 다음 주 계속 –

* 욥과 친구들의 두 번째 논쟁(15-21장) *

두 번째 논쟁에서도

엘리바스, 빌닷, 그리고 소발은

“고난은 죄로 말미암는다”는 그들의 이론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대화에서 친구들은

욥에 대해 첫 번째 대화보다 더 적대적이며 무자비한 태도로 공격하고 있다.

첫 번째 대화와 두 번째 대화가 다른 점은 욥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부분이 없는 점이다.

이 논쟁자들은 잿더미 위에 앉은 욥을 향해서 “악한 자에게 찾아드는 위험”(엘리바스-15장), “악한 자를 노리는 올무들”(빌닷-18장), 그리고 “악한 자가 누리는 부요의 짧음”(소발-20장)에 대해서 연설하고 있다.

1-1.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15장)

첫 번째 발언에서 엘리바스는 예의와 공손함을 갖추고 욥을 대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가족을 잃고 낙담하고 있는 욥을 향해

그가 연장자를 존경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지독한 죄인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나 그는 욥을 오해했다. 욥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 욥의 그릇된 태도를 질책함(15:1-16)

그는 욥이 헛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욥이 지혜자가 아닌 것이 틀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욥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

(이 바람은 뜨거워서 농작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주었다)과 같은

무익한 말을 그 품(마음)에 채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욥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말로 변론하며,

하나님 경외하지 않고 묵상(기도)하기를 그쳤다고 공격하였다.

그는 욥을 정죄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욥이 외식자와 같이 자기는 의롭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는 욥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공격하였다.

“네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나서 창조 시에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느냐?”

“네가 알고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알지 못하겠느냐?”

“우리들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며 네 부친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그는 욥이 친구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욥이 고난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여 마음과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스스로 정결하다고 하는 욥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공격하였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도 믿지 않으시며 하나님은 하늘도 부정하게 생각하시는 데,

어찌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은 악을 행하기를 물을 마시듯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존재여서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 악한 자의 운명을 상기시킴(15:17-35)

그는 욥을 향해 자기가 할 말(과거에 본 것)을 들으라고 요구한다.

그는 자기가 하려는 말은 지혜로운 자들이 그 조상에게 받아서 숨기지 않고 전해 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하려는 말은 다른 민족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민족 전통의 지혜였다.

이 말은 이방인들과 교류하고 이방인들이 왕래하기 이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받은 것이었다.

엘리바스는 전통적인 지혜를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악인은 일평생 동안 고통(고통으로 몸부림침)을 당하며,

강포자(공포에 떨게 하는 자)는 잠시 정해진 기간 동안만 활동할 뿐이다”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죄인에게 닥칠 6가지의 고통을 열거한다.

1) 다른 사람을 놀라게 했던 강포자의 귀에는 놀라운 소리(재난의 소식)가 들릴 것이다.

2)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할 것이다.

3)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지 못한다(죽을 것이다).

4) 칼날의 기다림이 된다(폭력의 희생물이 된다).

5) 그는 떠돌아다니며 음식을 구하고 자기가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6) 환난과 고통이 그를 쳐서 넘어뜨릴 것이다.

그는 악인들이 이러한 고통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스스로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하게 행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엘리바스는 또 다시 악인이 받을 재난 10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악한 자는 목을 굳게 하고 두꺼운 방패를 들고 적을 치려고 달려가는 군인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다(교만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음).

1) 사악한 부자는 멸망하여 유령 도시, 버려진 집, 그리고 돌무더기에서 살게 될 것이다.

2) 모든 재산을 잃는다. 3) 흑암이 그를 덮칠 것이다. 4) 하나님의 뜨거운 진노의 입김에 소멸될 것이다. 5) 허망한 것을 얻게 될 것이다. 6)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7) 열매 없는 포도나무와 죽어 가는 감람나무처럼 일찍 죽고 풍요와 안전을 바라지 못할 것이다. 8) 자녀가 없게 될 것이다. 9) 악인은 뇌물을 좋아해서 뇌물을 준 사람은 잘 해주고 뇌물을 주지 않은 사람은 학대한다. 이러한 악인의 집은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 10) 사악한 자들은 악한 생각을 임신하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엘리바스가 이러한 일을 설명하는 것은 욥이 당한 재난들이 그가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욥은 친구에게 이러한 극심한 정죄를 받고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노인의 지혜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할 수는 없다(무조건 우리는 그 동안 전통적으로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너는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함).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노인의 지혜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심한고통을 인해 마음과 말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보자.

3. 우리는 악인이 잠시 번성하지만 결국 그는 멸망할 것임을 믿는가? 악인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이며(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하게 행하며 전능하신 분을 배반했기 때문)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

4. 본문에 나열된 악인에게 돌아올 고통을 살펴보고 나와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지 살펴보고, 그들이 왜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자.

1-2.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두 번째 대답(16-17장)

* 욥의 혐오(16:1-5)

욥은 그 친구들의 말이 자기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력히 항변한다.

그는 그들과 처지를 바꾸는 경우에 오히려 그들을 효과적으로 위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욥은 그들이 하는 말은 자기도 이미 들은 말이며 새로운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친구들은 모두 다 자기를 번뇌하게 만드는 “거짓 위로 자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욥의 고통을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고통을 더 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욥을 위로해 주고 그 말을 경청해주기 보다 쓸데없는 말과 논쟁을 늘어놓았다.

욥은 “도대체 너희가 왜 나를 공격하느냐?” 고 따졌다.

욥은 입장을 바꾸어 만일 친구들이 자기 입장에 놓인다면

자기도 이런 말을 하고 그들을 조롱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욥은 만일 자기가 위로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자기는 분명히 말로 친구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그들의 근심을 덜어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욥의 탄식(16:6-17)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입을 다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말을 해도 근심이 풀리지 않는데 잠잠하면 그 고통을 해결하겠느냐? 고 비난하였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곤고하게 만드시고

그의 사람들(자녀와 종들)을 죽이셨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고통으로 인해 마르고 야윈 자기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죄인으로 여기고 치신 증거라고 주장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진노하고 자기를 찢고 소리치며 자기를 향해 이를 갈고 그의 대적이 되어 그를 노려보고 있다고 부르짖는다. 그는 설상가상으로 무리들(사람들)도 그를 향해 입을 벌려 조롱하며 멸시하며 뺨을 치고 함께 모여 그를 대적한다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넘겨주시고 악인의 손에 던졌다고 말하였다. 욥은 자기가 평안히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꺾으시고 짐승처럼 그의 목을 잡아 던지시며 그를 부러뜨렸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궁사가 되어 자기를 활을 쏘는 연습 상대로 삼고 화살을 쏘아 인정사정 없이 그 허리를 뚫고 그의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어 자기를 꺾은 후에 또 꺾으려고 달려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공격을 받은 욥은 슬픔을 인해 베옷을 입었으며, 패배한 짐승이 뿔을 땅에 묻듯이 자기의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의 얼굴은 울음으로 붉어졌고 고통으로 인해 그의 눈꺼풀에는 그늘이 졌다. 그러나 욥은 엘리바스가 주장한대로 자기가 포학하거나 잔인한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그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주장하였다.

* 욥의 갈망(16;18-17:5)

욥은 땅에게 억울하게 흘린 자기 피(고통)를 가리지 말고, 정의를 위한 그의 부르짖음이 잊혀지지 않게 하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중에도 욥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에 그의 증인(싸헤드)과 중재자(멜리츠: 통역자. 해석자, 교사)가 있다고 고백한다. 욥의 친구들이 그를 조롱하지만 욥은 하늘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의 중재자(변호인)에게 자기를 위해 변론(야카: 논쟁하다, 법정에서 토론하다)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과 자기 친구들이 자기를 공격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구와 자기 사이를 중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가 죽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더 급한 마음으로 변호인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욥은 이제 그의 힘이 다했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며 그를 매장할 무덤이 준비되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 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친구뿐이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치지 않겠다고 하는 보증물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그의 보주(계약을 확증하는 자)가 되어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하나님밖에는 이 계약을 위해 손을 칠 자(계약을 확증할 자)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욥은 하나님께서 친구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도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욥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무고한 자기 친구를 죄인으로 몰아 붙이는 자의 자녀들이 눈이 멀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 진퇴양난의 욥(17:6-16)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이야기 거리(웃음거리)로 삼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는데 이는 가장 모욕적이고 멸시하는 행동이다. 이로 인해 욥은 근심(카아스: 흥분, 분노)이 더욱 깊어져서 눈물로 인해 그의 눈이 희미해졌고 그의 몸은 사라지는 그림자 같이 쇠약해졌다. 욥은 정직한 자와 죄가 없는 자들은 모두 다 욥이 이러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놀라고 사곡한 자(불경한 자; 친구들)를 보고 분을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욥은 의인(욥)은 더욱 더 그 길을 독실하게 하고 손이 깨끗한 자(욥)는 점점 더 힘을 얻게 될 것(자신의 의에 대해서 확신하게 됨)이라고 생각한다. 욥은 세 친구에게 자기의 잘못을 찾으러 다시 오라고 빈정댄다. 욥은 그들 중에 참다운 지혜자가 없기 때문에 그의 잘못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욥의 친구들은 욥이 회개하고 소망을 갖기를 원했지만 욥이 살날은 다 지나갔고 그가 마음에 경영하고 소원하는 것은 다 끊어졌다고 선언한다. 소발은 밤과 같은 현실 속에서 욥에게 낮과 빛(회복의 희망)이 가까이 있다고 말했지만, 욥은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은 어둠 속에 있는 무덤뿐이며, 그가 바라는 유일한 일은 구더기에 의해 그의 육체가 썩어지는 것뿐이라고 부르짖었다. 욥은 소발을 향해 자기가 무덤에서 흑암을 아비로 삼고 구더기를 어미와 자매로 삼고 지낼 것인데 이제 자기에게 소망이 어디 있겠느냐? 고 비하였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인가? 말로 고난에 바진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지혜가 왜 필요한가?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

2. 욥은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욥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덯게 공격하고 있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를 묵상해 보고 그의 생각이 옳은 지 그른지 이야기 해보자. 1) 하나님은 먹이를 잡으려는 야수처럼 자기를 공격하셨다. 2) 하나님은 궁사처럼 자기를 과녁으로 삼고 활 쏘는 연습을 하셨다. 3) 하나님은 힘센 용사처럼 자기에게 달려들어 자기 목을 꺾고 부러뜨렸다.

3. 우리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고 이웃과 나 사이에 누군가 내 대신 사정을 말해 줄 중보자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 주셨는 지 같이 이야기 해보자. 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만이 중보자가 될 수 있는가?

4.. 우리는 죽을 때가 되어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를 비난할 때에도 끝까지 그 길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하고 그 손을 죄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가하는가?

2-1. 빌닷의 두 번째 말(18장)

빌닷은 그의 연장자가 말했던 말 중에서 많은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악인들이 올무에 빠질 것이며, 재난을 겪고, 병에 걸리며, 평안과 재산과 명예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빌닷은 욥을 악인이라고 말하고 그에게 이러한 악인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 욥에 대한 비난(18:1-4)

빌닷은 욥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언제까지 할 말을 찾을 것이냐?” “너는 깨달은 후에 나와 대화하라. 그러면 우리가 네 말에 대답할 것이다.” 빌닷은 욥이 자기들을 지각없는 짐승이나 부정한 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욥을 “분노하여 스스로 찢는 자”라고 불렀다(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 해롭게 하는 일이다). 그는 욥이 분노한다고 해도 땅이나 바위(하나님의 견고한 정의)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악인의 운명에 대한 빌닷의 묘사(18:5-21)

빌닷은 욥을 염두에 두고 악인에게 닥칠 불행에 대해 무자비하게 말한다. 그는 악인의 빛(총명, 생명, 행복)이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무지, 죽음, 불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악인의 집에 있는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에 있던 등불도 꺼질 것이라고 말한다(가정의 행복이 사라짐). 그는 악인의 육체는 쇠약해지고, 자기가 베푼 꾀에 자기가 빠질 것이며, 악인의 발은 그물에 걸리고(제 발로 멸망 속으로 들어감), 자기가 친 올무에 걸리며, 악인의 발뒤꿈치는 창애(함정)에 빠지고 그 몸은 올가미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사냥꾼(심판자, 하나님)이 악인을 잡기 위해 줄을 땅에 숨기고 그를 빠뜨리려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빌닷은 함정이란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악인(욥)이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는 악인에게는 항상 무서운 일이 일어나서 그를 놀라게 하고(마음에 평안이 없음), 기근으로 인해 힘이 약해지고, 재앙이 그를 잡으려고 그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12).

빌닷은 “사망의 장자”(가장 극심한 질병: 욥의 피부병)가 그의 육체를 먹을 것이며, 악인은 자기가 의지하던 집(의식주)을 잃고 두려움의 왕(죽음)에게 사로잡힐 것이며, 악인의 집은 다른 사람이 살게 된다. 악인은 1) 그 집이 (소돔처럼) 유황불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2) 뿌리(후손)과 자심이 멸망하여 아무도 그를 기념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대가 세상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3) 광명에서 흑암으로 몰려들어가며(영광스러웠으나 수치스럽게 됨), 4) 세상에서 추방되고, 5) 아들도 손자도 없이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이 당하는 이러한 일들을 보고 6) 앞으로 살게 될 사람들과 같은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게 될 것이다. 빌닷은 불의한 자(욥),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욥)의 집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빌닷은 욥을 불의한 자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 간주하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와 그의 집을 저주했던 것이다(13-21).

<적용 질문>

1. 당신은 악인이 사냥꾼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드는 짐승과 같다는 빌닷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인이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진 사례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함께 이야기 해 보자. (예)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한 장대에 죽음. 다니엘을 죽이려고 모함한 자들이 사자들의 밥이 됨.

2,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보다 자기의 의식주와 재물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빌닷은 이러한 사람들은 그가 의뢰하던 집에서 뽑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3. 우리는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의 집에 의로운 자들이 살게 되는 일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감이 나누어 보자.

4. 우리는 악을 행하다가 그 후손이 끊어져서 가문을 잇지 못하게 된 경우와 후손이 있어도 수치스런 가문으로 남게 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일에 대해서 함께 토론해 보자.

2-2. 빌닷에 대한 욥의 두 번째 대답(19장)

이 장에서 욥은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최선책을 찾아낸다. 그는 고발자들의 악의와 하나님의 악의,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의 악의를 슬퍼한 후에 그가 틀림없이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 혐의가 풀릴 것이라는 새로운 영적인 차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

* 친구들에 대한 비난(1-6)

빌닷의 말을 들은 욥은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 고 하면서 역정을 냈다. 욥은 친구들이 자기를 열 번이나 꾸짖고 학대하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고 화를 냈다. 욥은 정말로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해도 그것은 자기 문제이지 그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욥은 친구들이 자기 앞에서 스스로 자랑하며(기세 당당해 하며) 자기의 죄를 증명할 수는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이렇게 굴욕을 당하는 것은 (자기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난한다.

* 하나님께 대한 원망(19:7-12)

욥은 자기가 폭력을 당하면서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신다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자기를 대적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셨다(하는 일마다 실패함). 2) 그의 길을 어둡게 하셨다(소망이 없음). 3) 면류관(영광, 지위)을 거두셨다. 4) 건물을 헐 듯 헐어버렸다(그 동안 쌓은 것을 한 순간에 무너뜨림). 5) 나무 뽑듯이 그의 소망을 뽑아버렸다(절망). 6) 진노하셨다. 7) 원수처럼 여기신다. 8) (성을 정복하기 위해 성을 포위하고 성벽을 향해 길을 닦으며 성을 둘러 진을 친 군대처럼) 욥을 공격하셨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정죄하고 공격하는 일을 이해할 수 수 없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영혼과 육체가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 고독으로 인한 고통(13-22)

욥의 비탄은 고독으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제들을 멀리 떠나게 하여 자기는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의 친척은 그를 버리고 가까운 친구도 그를 잊었다. 그의 집에 거하는 자(손님들)와 계집종들조차 그를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대했다. 이로 인해 욥은 자기가 사람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욥이 자기의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기에 이제는 그들에게 부탁을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냄새나는 그의 입김을 그의 아내도 싫어하며 그의 동포들도 그를 꺼리고 있다. 어린 아이들도 그를 업신여기고 그가 일어나면 그를 조롱했다. 그의 가까운 친구들이 그를 미워하고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돌이켜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다. 욥은 자기의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으며 그에게 남은 살이란 잇꺼풀 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 절망 중에 찾은 소망(19:23-29)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 떨어졌던 욥의 영혼은 곧 이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가 고통으로 인해 난파된 채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나 그는 장차 자기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절망 속에서 주시는 성령의 은혜이다. 욥은 친구들에게 하나님께 매를 맞은 친구를 공격하려고 하지말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친구들마저 하나님과 같이 자기를 핍박하는 것을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자기의 살을 먹고 나서도 아직도 부족해서 더 공격하려고 하느냐? 고 질책한다.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책에 기록되기를 소원한다.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철 필과 연(놋으로 된 정)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지기를 소원한다. 욥은 이 일이 기록되어 미래 세대들에게 알려져서 그가 정직했다는 사실을 밝혀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알기에 분명히 자기의 구속자(고엘: 팔려서 종이 된 자(종)를 돈을 대신 내주고 해방 시켜 주는 사람)가 살아 계시며, 그가 후일에 자기를 변호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욥은 자기를 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하지만 후일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무죄를 변호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기가 죽어서 육체가 썩은 후에 육체 밖(또는 육체 없이)에서 자기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우리 말 성경은 육체 밖에서라고 번역되었으나 원래 말은 “육체 안에서”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죽은 후에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욥은 그가 죽은 후에 친히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를 낮선 사람(대적) 취급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무죄를 증거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욥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되자 그는 마음이 초급해졌다. 마음이 초급해졌다는 말은 원래 “신장이 쇠약해졌다”는 말이다. 욥은 죽음 후에 하나님을 뵙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생각할 때에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욥은 친구들이 계속해서 자기를 치기 위해 노력하고 욥이 당한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칼로 치실 것(징계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욥은 죄 없는 자기를 향해 분노하는 친구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형벌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고난 중에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며,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계속해서 고난이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가? 우리는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내가 데리고 있던 사원들까지 나를 외면하고 나에게 침을 뱉으며, 온 몸은 병이 들어 사형 선교를 받았을 때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이야기 해 보자. (예) 부도가 나서 도망칠 때나 문둥병이 걸려서 격리되어 살아야 할 때 등.

3. 욥은 내세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그의 마음을 두고 살지 않았으며(13-22), 미래 세대들을 향해서 자기의 순결을 주장할 만큼 정결한 삶을 살았다(23-24). 이것은 그가 내세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욥의 신앙과 삶과 우리의 신앙과 삶을 비교해 보자.

4. 우리는 죽은 후에 부활한 몸으로 우리 죄 값을 지불해 주신 구속 자를 볼 것을 믿는가? 우리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대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욥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과 우리의 신앙을 비교해서 이야기 해보자.

3-1. 소발의 세 번째 말(20장)

욥의 친구의 이 여섯 번째 발언은 모든 비난 중에서도 가장 신랄하다. 격노하고 감정이 상한 소발은 욥의 부가 사라진 것은 그가 가난한 자를 착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욥에게 호된 비난을 퍼붓는다.

* 소발의 분노(1-3)

소발은 욥이 하는 말을 들을 때에 마음이 급해져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빌닷은 욥이 자기를 공격하는 말(친구들이 지혜가 없다고 한 말)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서 계속해서 지혜로운 대답이 떠오르고 있다고 말하였다.

* 악인의 번영이 덧없음(4-11)

욥은 자가가 친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발은 이에 대해 옛적부터 악인(욥)의 승리는 잠시요 사악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일 뿐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욥이 하늘에 닿고 구름에 닿을 정도로 교만해졌으나 결국 그는 자기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그는 욥이 사라지게 되면 후세 사람들은 꿈이나 밤의 환상 같이 그를 잊어버릴 것이며,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소발은 장차 욥이 멸망하여 그와 그가 살던 집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며, 욥의 자녀들이 가난한 자에게 구걸하고, 그들이 얻은 재물은 다시 자기 손으로 돌려주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그는 욥과 같은 악인은 그 기골이 청년같이 강해도 순식간에 쇠약해져서 흙에 눕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 악인의 몰락(12-19)

소발은 악인이 범죄로 얻은 재물을 단 음식처럼 혀 밑에 감추고 즐기나, 그 음식은 창자 속에서 독사의 쓸개(쓴 음식)로 변해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악인이 불법으로 모은 재물은 독사의 쓸개 같이 그에게 비통한 결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악인이 (불법으로)재물을 삼키나 하나님께서는 그 재물을 다시 토하게 하시고(변상하게 하심), 악인은 독사의 독과 뱀의 혀(죄 값)로 인해 죽게될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그는 악인은 번영을 상징하는 꿀과 엉긴 젖(응고된 우유: 일종의 요구르트로 중동의 진미였다)이 흐르는 강(기름진 땅)을 보지 못하고, 수고해서 얻은 것을 다시 되돌려주게 되며, 장사해서 얻은 재물을 써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악인들이 이러한 징계를 받는 것은 그들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으며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20-29)

소발은 악인이 항상 더 많은 재물을 원하나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악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먹어버리기 때문에 그의 형통함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악인이 풍족함을 누릴 때에도 재난을 당하게 되고, 모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악인이 식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맹렬한 진노를 비같이 쏟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악인이 철 병거를 피하면 놋 활이 그를 쏘아 꿰뚫을 것이며, 악인이 몸에 박힌 화살을 빼어낼 때에 빛나는 화살촉이 그의 쓸개에서 나와서 매우 두려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악인은 두려움과 캄캄함을 맛보게 될 것이며, 하늘로부터 난 불이 그의 집에 남은 것 모든 것을 살라버릴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그는 하늘이 악인의 숨은 죄를 드러내고, 땅이 일어나 그를 쳐서 그의 집과 재산이 망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날에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모든 일이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한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악인의 자랑과 승리가 그리고 즐거움이 잠시 뿐이며 잠시 후에 그가 멸망할 것임을 믿는가?(5)

2. 소발이 주장하는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주의 깊게 읽어보고(20-29) 악인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한 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보자.

3. 우리는 악인들이 죄를 단 음식처럼 즐기지만 결국 그것은 그들을 파멸로 인도하는 슬개처럼 쓴 음식이 될 것을 믿는가? 이러한 사례가 있다면 서로 이야기 해보자.

4. 소발은 악인들이 위와 같은 징계를 받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였는가?(19)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멸망하였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3-2. 소발에 대한 욥의 두 번째 대답(21장)

이 답변에서 욥은 악인의 멸망에 대한 세 사람의 견해를 비난한다. 소발은 다른 발언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하나님께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의 욥의 발언은 주로 소발이 한 발언에 대해 반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침묵을 요청함(1-6)

욥은 친구들에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자기 말을 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기가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그 후에 다시 자기를 조롱하라고 한다. 욥은 자기의 원망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것이기에 그의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욥은 자기 몸이 친구들이 볼 때에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릴 정도로 상했다고 한탄한다. 그는 자기는 자기가 당한 일을 기억하기만 해도 마음이 답답하고 두려워진다고 고백하였다.

* 악인의 번영(7-16)

욥의 친구들은 악인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욥은 이생에서 항상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사후의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공의롭게 심판될 것이지만). 욥은 친구들에게 악인이 망하는 것이 진리라면 어찌하여 세상에서 악인이 장수하며 그 세력이 강하고 그 자손들이 굳게 서서 살아가고 있느냐? 고 항의한다. 욥은 악인의 집은 두려움도 없이 평안히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매도 그 위에 임하지 않고 그 가축들도 틀림없이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욥은 악인의 자녀들이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수가 더 많으며, 그들은 춤추며 소고와 수금을 타고 노래하고 피리를 불며 편안하게 살다가 죽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악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도를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담대하게 입을 열어 전능자가 누군데 우리가 그를 섬기고, 그에게 기도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고 비웃고 있다. 또한 욥은 악인들이 누리는 복은 그들이 얻은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의 말과 같이 자기가 이러한 악인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악인의 죽음(17-26)

욥은 친구들의 말대로 악인이 재앙을 당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고 묻는다. 그는 악인의 등불이 꺼지고(죽음) 재앙이 임하며 하나님이 그들을 공격하여 곤고케 하신 일과 그들이 바람 에 나는 낙엽과 폭풍에 날려 가는 겨같이 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고 따진다. 그는 친구들이 죄인의 심판이 그 자녀에게 미친다고 한 말에 대해서 비난한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는 자기가 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욥은 자기가 지은 죄 값을 스스로 당해야 죄인이 그가 지은 죄 값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욥은 죄인이 형벌을 받지 않으면 그가 죽고 나서 그 후손이 벌을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항의한다. 욥은 이러한 악인들은 항상 망한다는 친구들의 견해를 반대한다. 그는 하나님은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임의로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넘쳐서 평안하게 살게 하시고, 그 그릇에는 우유가 가득하고 건강하게 하시나, 어떤 사람은 죽도록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복을 맛보지 못하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죽으면 똑같이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인다. 욥은 반드시 사람의 운명이 그의 삶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번영을 누리던 악인의 죽음(27-34)

욥은 친구들의 생각과 그들이 자기를 해치려는 악한 꾀도 알고 있었다. 욥은 친구들이 죄인이 잘된 경우가 어디 있느냐? 고 묻고 싶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기의 말을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악인은 멸망을 기다리고 진노의 날을 맞기 위해 끌려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욥은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온 세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들어보면 악인이 죽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욥은 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재난을 당하지 않고 평안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하는 일을 책망하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징계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에도 평안히 죽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무덤으로 메어가고 수많은 종들을 세워 그 무덤을 지킨다. 이러한 악인은 죽어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묻혀서 전망을 즐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좆고 있다. 그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욥은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받고 멸망한다는 친구들의 말은 헛된 위로와 거짓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시 73편)을 읽고 시편 기자가 느꼈던 질문과 욥의 가진 질문이 어떻게 같은 지 이야기 해보자. 시편 기자는 이 의문을 언제 어떻게 해서 해결할 수 있었는가?

2. 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연기된다고 생각하는가? 다음에 말한 이유(알버트 반스의 견해)를 참고하고 이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지 생각해보자.

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덕을 보여 주기 위함.

2)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악한 지를 참으면서 보여 주심.

3) 악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어서 심판 때에 불평하지 못하게 함.

4) 하나님의 자비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 위함.

5) 악인들을 회개치 않는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심.

3. 당신은 왜 한 사람은 평안히 살고 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며, 왜 이 둘이 죽은 다음에 이 두 육체는 똑같은 모양으로 썩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4. 당신은 사람이 지은 죄는 자지가 담당하고 그 자손에게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욥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19-21)

5. 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가?

– 다음 주 계속

* 욥과 친구들의 세 번째 논쟁(22-31장) *

첫 번째 대화에서 욥을 방문한 친구들은 그가 당하는 고난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두 번째 대화에서 그들은 욥을 정죄하고 모욕하며 악인이 당할 무서운 운명을 강조했으나 회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세 번째 논쟁을 통해서 특정 죄목을 들어 욥을 고소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다시 한번 욥에게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욥은 세 차례에 걸친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그 공격에 대해서 고뇌에 찬 대답을 하고 있다.

1-1. 엘리바스의 세 번째 말(22장)

*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을 비난함(1-3)

엘리바스는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유익하게 할 수 있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스스로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롭다고 주장하나 그것이 전능 자에게 무슨 기쁨이 되고, 네 행위가 온전하다 하여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1-3)

* 욥을 정죄함(4-11)

엘리바스는 욥이 지극히 악한 자이기 때문에 그가 받을 형벌에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네가 하나님께서 무죄한 너를 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를 책망하고 심문하신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네 악이 크기 때문이다. (네가 당하는 중한 고난을 보니) 네 죄악이 매우 큰 것이 분명하다. 너는 아무 이유 없이 형제의 물건을 볼모 잡았고(잔인함), 헐벗은 자의 옷을 벗겼으며(당시에는 돈을 빌린 자가 겉옷을 담보로 벗어 주었는데 이 옷은 가난한 자가 밤에 덮고 자는 이불이었다. 그러므로 이 옷은 저녁까지 돌려주어야 했다. 엘리바스는 욥이 이 옷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지 않았으며, 굶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지 않았다고 고발한다(극단적인 개인주의). 너는 권세가 있고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존귀한 자가 되어 그 안에서 살았다. 그러나 너는 그 풍족한 중에서도 구걸하러 온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냈고(불의한 청지기), 아무도 도울 자가 없는 불쌍한 고아의 팔을 무자비하게 꺾어버렸다(잔인함).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올무가 너를 둘러 있고, 갑자기 두려움이 너에게 덮쳤으며, 어두움이 너를 소경으로 만들었고, 홍수(큰 환난)가 너를 덮어버렸구나!”(4-11)

* 욥에 대한 영적 도전(12-20)

엘리바스는 욥이 옛 적에 악인들이 행하던 길을 따르고 있다고 비난한다.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신다. 너는 눈을 들어서 별이 얼마나 높은지 바라보라. 너는 감히 하나님이 무엇을 알 수 있으며 흑암 중에서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느냐? 고하고, 또한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알지 못하고 저 하늘 너머에만 계신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가 하는 말은 마치 노아 홍수 때의 악인들이 하던 말과 비슷하다. 그 때에도 악인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모두 물 속에 빠져 죽었다.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집에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어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전능자가 자기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축복도 주지 못하고 심판하지도 못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나는(엘리바스) 이러한 행악 자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고 그 때에 의인들이 이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 없는 사람들이 악인들을 보고 비웃으며 우리 대적이 끊어지고 그 남은 것은 불에 탔다고 외치게 될 것이다.”(12-20)

* 회개를 간청하는 엘리바스(21-30)

엘리바스는 마지막으로 욥에게 회개를 요청한다.

“너는 (회개하고)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를 회복하라. 그리하면 다시 복이 네게 임할 것이다. 내가 청하노니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하나님의 교훈을 받으라). 네가 만일 전능 자에게 돌아가고(하나님께 돌아가라),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한다면(죄를 떠나라) 너는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에 버리라(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을 버리라).”

엘리바스는 욥이 회개했을 때에 주어질 축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하면 전능하신 분이 네 보배가 되고 네게 귀한 은이 되실 것이다(하나님이 그의 보배가 되어 주심). 그리고 이로 인해서 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뻐하여(하나님을 기뻐하게 됨) 하나님을 향해 네 얼굴을 들게 될 것이다(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들게됨). 그때에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겠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다(기도가 열리고 기도 응답을 받음). 너는 기도 응답을 받고 네 서원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서원을 갚게 됨). 네가 경영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형통할 것이며, 네 앞길이 환하게 비취리라(형통과 번영). 너는 낮아질 때에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멸시와 천대에서 높여주심). (하나님은 네가 회개하고 정결하면) 네 중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며 이로 인해 죄가 있는 자들까지도 구원해 주실 것이다.”(중보 기도를 들어주심)(21-30)

<적용 질문>

1. 우리는 심한 고난 속에서 끝까지 자기가 선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1-3) 그 생각과 엘리바스의 말을 비교해 보자.

2. 욥을 정죄하는 엘리바스의 말을 읽고 우리는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한 적이 없는 지 반성해 보자. 그리고 이렇게 대한 것이 생각나면 회개하자(4-11).

1) 잔인함

2) 무자비함

3) 극단적인 개인주의

4) 재물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지 않음.

3. 노아의 홍수 때에 악인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할 수 없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지 못한다고 비웃으면서 계속해서 죄를 저질렀다(12-20).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 보고 우리의 행위를 온전하게 하자.

4.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1)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둘 것.

2)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 갈 것.

3) 죄를 떠날 것.

4)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버릴 것.

5.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축복을 주신다(21-30).

1) 하나님이 그의 보배가 되어 주심.

2) 그가 하나님을 기뻐하게 됨

3) 그의 기도가 열리며 기도 응답을 받음

4) 서원한 것을 이행하게 됨

5) 그가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됨

6) 멸시와 천대받던 자리에서 높아짐

7)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인들을 구원해 주심

1-2.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세 번째 대답(23-24장)

욥은 엘리바스의 주장을 무시하면서도 다음 두 가지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본다(자기가 경험한 불의와 다른 사람들이 겪은 불의). 욥은 그의 사건을 하나님께 제기하기 원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만날 수 없고 불공정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계신다. 이러한 침묵을 수반한 하나님의 불공평이 욥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 하나님께 대한 열망을 호소함(23:1-9)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쉬아흐: 근심하며 깊이 생각함)하니, 이는 내가 받는 재앙이 너무 커서 탄식만으로 그 재앙을 표현할 수 없음이라.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으랴? 내가 만일 그곳을 알 수 있다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 내 사정을 호소할 수 있으련만! 그리하면 내가 내 입에 변명할 말을 가득 채우고 하나님께 내 사정을 진언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듣고 모든 시비를 가릴 수 있을 텐데 ! 하나님은 크신 권능을 가지셨고 자비하시므로 연약한 나와 다투시지 않고 오히려 내 말을 들어 주실 것이라.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한 자가 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으므로 내가 부당한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그러나 (답답한 일은) 내가 앞으로 가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라 ! 그가 내 왼 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가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켜도 뵈올 수 없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1-9)

* 자신의 무죄 선언(23:10-17)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하나님을 뒤 따라 가듯이 그 뜻을 순종함),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말씀대로 삶),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더 귀중하게 여겼도다(말씀을 사랑함).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으시니 누가 능히 그 뜻을 돌이킬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마음에 하기로 작정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행하시니, 그러므로 그가 나를 위해 정하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나로 두렵게 하시니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않으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라(죽지 않게 하시고 계속해서 어둠의 재난을 만나게 하셨다)(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함)(13-17).

* 어찌하여 극악한 죄인들의 심판이 시행되지 않는고 !(24:1-25)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기를 정해놓으셨건만 어찌하여 하나님을 아는(경건한) 사람들은 그 날(심판이 시행되는 날)을 볼 수 없단 말이냐 !(왜 악인들에게 심판이 신속하게 시행되지 않는가?)”(1)

욥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의한 일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어떤 사람은 남의 땅의 경계를 강제로 옮겨서 자기 땅을 넓히며 남의 양을 탈취하여 기르고 고아의 나귀를 빼앗으며 길로 내어쫓나니(약한 자를 억압함), 이런 자들로 인해 세상에 가난한 자들이 모두 다 숨어버렸다. (악한 권력자들로 인해 쫓겨난) 연약한 사람들은 거친 땅에 사는 들 나귀같이 이리 저리 다니며 양식을 구하고, 거친 광야만이 그들의 자녀를 위해 식물을 내어주는구나. 그들은 밭에 나가서 남이 심은 곡식(악인이 거두고 남은 것)을 추수하고,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고 있도다. 그들은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새우고, 추위에 덮을 것이 없어 산중에서 소나기에 몸이 젖으며, 몸을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잠을 자고 있도다.”(2-8)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로 잡는구나. 이로 인해 가난한 자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굶주린 채로 곡식 단을 메고 있다. 그들은 악인의 집에서 기름을 짜고 있고 목이 말라서 괴로워하면서 악인의 술 틀을 밟는구나. 인구가 많은 성중(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악인에게 상처를 입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어이하여 하나님은 그 불의를 징계하지 않는단 말이냐 !”(10-12)

“빛(또는 진리)을 배반하는 사람들의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빛(진리)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 길에 머물기도 싫어한다. 살인자들은 새벽(아직 어두울 때)에 일어나서 (새벽부터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죽인다. 그들은 밤이 되면 도둑이 되어 남의 물건을 훔친다. 그리고 간음하는 자들은 저물기만을 기다렸다가 날이 저물게 되면 얼굴을 변장하고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음란한 행동을 하는 도다. 밤에 집을 터는 자들은 낮에는 문을 닫고 살기에 빛을 알지 못하도다. 이러한 살인자, 도둑, 간음 자들은 모두 다 어두움을 빛으로 알고 빛을 어두움으로 여기고 있는 자들이라.”(13-17)

욥의 세 친구들이 악인들이 반드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악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곧 망하게 됨) 그의 산업은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를 추수하기 위해서 포도원 길을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라.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적은 물)을 사라지게 하듯이 죽음이 범죄자들의 생명을 그치게 하리라. 그들이 죽게되면 태(어머니)도 그를 잊을 것이며 구더기가 그 몸을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는 다시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그가 행한 불의는 나무처럼 꺾여버릴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련한 여인을 학대하고 남편을 잃은 과부들을 학대하는 악한 자들이다.”(18-21)

그러나 욥은 실제로 친구들의 말과는 달리 악인들이 심판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권능으로 이런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나니 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들도 일어나 살고 있도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호위하사 평안케 하시니 하나님의 눈(은혜)이 악인들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악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높아지며, 벌을 받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다가 죽는다. 그들의 죽음은 마치 곡식 이삭이 다 익어서 베임을 받는 것과 같다. 그들은 충분히 살만큼 살다가 때가 되어 평안한 죽음을 죽는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누가 능히 내 말에 대해서 비난할 수 있단 말이냐?”(22-25)

<적용 질문>

1. 우리는 죄 없이 고난을 받으나 오래 동안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 어떤 생각을 하게되는가? 우리의 생각과 욥의 탄식을 비교해 보자(1-9).

2. 우리는 고난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 하신 후에 정금 같이 나오게 될 것임을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제 순종 할 수 있는가?(10-17 참조)

3.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들(악인이 심판 받지 않는 일)을 볼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24:1-12)

1) 가난한 자들이 권세 있는 자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방황함.

2) 가난한 자들이 압제자로 인해 입을 옷이 없어 고난을 당함.

3) 가난한 자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함.

4) 도시의 세력가들에 의해 약한 자들이 수난을 당함

4. 살인, 간음, 도둑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하나님(빛) 앞에서 살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5. 우리는 악인들이 심판받지 않고 평안히 살다가 죽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2-1. 빌닷의 세 번째 말(25장)

빌닷은 욥의 장황한 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빌닷의 짧은 연설은 그가 욥에게 대답할 말이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빌닷은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정결함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 설명한다.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신 분으로서 지극히 높으신 곳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다(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공격하고 악을 묵인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빌닷은 하나님은 다툼이 아니라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군대(천사들)는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 없으며, 아무도 하나님의 빛(태양, 은혜) 앞에서 숨을 자가 없도다(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살 자가 없다).”(1-3)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고 할 수 있으며, 여인에게서 난(죽을 수밖에 없는)자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눈에는 달도 밝지 않게 보이고 별도 정결하지 않게 여기는데 어떻게 감히 벌레와 구더기 같은 사람이 정결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3-6)

<적용 문제>

1.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욥의 친구들의 실패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때에 이러한 일들을 행하고 있지 않는 지 살펴보자.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1) 욥을 동정하는 발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

2) 욥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3) 감정적,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욥의 호소를 무시했다.

4) 너무 많이 말을 했으며 욥(피상담자)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

5) 공격적이고 논쟁적이었다.

6) 욥을 격려하기 보다 흠을 잡기에 바빴다.

7) 자기들이 욥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8) 욥의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관점을 완고히 주장했다.

9) 욥의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10) 욥이 슬픔과 좌절을 표시한다는 이유로 그를 질책하고 정죄했다.

2.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신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를 계산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군대는 너무 많아서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4. 욥을 비난하는 친구들의 발언 뒤에는 사단이 욥을 넘어뜨리려는 간교한 꾀가 숨겨져 있었다. 욥은 혼자 있을 때는 그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다. 그러나 친구들이 정죄하는 말을 듣고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2-2. 욥의 대답(26-28장)

빌닷의 세 번째 발언이 이 책에서 제일 짧은 발언이었다면(25장), 이에 대한 욥의 대답(26-31장)은 이 책에서 가장 긴 부분으로 되어 있다.

*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욥의 묘사(26장)

앞에서 빌닷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빌닷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욥은 빌닷의 말은 고통 받는 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을 내었느냐? 뉘 신이 네게서 나왔단 말이냐?(1-4).

욥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빌닷보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

“음령(르파임: 죽은 영웅들, 거인들)들도 큰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이는 하나님 앞에는 무덤(또는 사후의 세계)도 드러나고 멸망의 웅덩이(무덤)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북편 공간에 별들을 펴놓으시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땅을 달아놓으셨다(공중에 땅이 달려 있다는 말은 최근에야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그러나 욥은 이미 수 천년 전에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않게 하신다(욥은 하나님께서 비를 구름으로 보관하고 필요할 때 내려 주심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구름은 수많은 물(비)을 보관하는 저수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자기 보좌를 가리우시고 우산 같이 그 위에 치기도 하시는구나(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사람들에게 숨기신다). 하나님께서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고(‘후크’: 원을 그리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낮과 밤을 정하셨다(하나님은 지구의 동반부와 서반부를 중심으로 낮과 밤이 교차되게 하신다. 수평선이 원형이라는 사실은 최근에야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번개) 하늘 기둥(우주의 중심, 또는 높은 산들)이 떨며 놀라도다(뇌성과 지진). 그는 권능으로 바다에 폭풍과 물결을 일으키시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라합(바다 신, 악의 세력들)을 쳐서 깨뜨리신다. 그는 그 신(바람)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흐렸던 하늘을 맑게 하시며) 그 손으로 날랜 뱀(바다 신, 악령)을 찔러 무찌르신다(악의 영들도 무찌르신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나님께 들은 것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뿐이라. 그 큰 능력의 우뢰를 누가 능히 측량할 수 있으랴!”(11-14).

* 악인의 운명에 대한 욥의 묘사(27장)

욥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자기의 무죄를 호소하였다.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이제 맹세하나이다. 나의 생명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고 하나님의 기운은 내 코에 있나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내 입과 혀로 불의와 악한 꾀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내 친구들이 한 말을 옳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내 순전함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앓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나는 평생 동안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1-6).

욥은 악인은 자기가 아니라, 오히려 무고한 자를 죄인으로 몬 친구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니라) 나의 대적과 나를 치는 자들이 악인과 불의한 자(아왈: 공정하지 못한 사람)가 되기를 원하노라. 악하게 재물을 번 자는 잠시 유익을 얻지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거두시면 그 재물은 아무 유익도 없으리라.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그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상시에 전능 자를 기뻐하지 않았으며 기도하지 않다가 어려울 때만 기도하는 외식 자들이기 때문이다(7-10).

욥은 다음과 같이 악인(친구들?)을 저주한다.

“내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너희에게 가르치고 전능 자의 뜻을 숨기지 않고 말하리라. 너희가 이것을 모두 다 보고서도 어찌하여 헛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되었는고? 악인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받을 분깃(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받을 보응)은 이러하도다. 악인의 자손은 번성하나 칼에 맞아 죽을 것이며, 그 후손들은 굶주리고, 겨우 살아 남은 자도 염병으로 죽어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은 울 수도 없게 되리라. 악인은 부정축재로 은을 티끌같이 쌓아놓고 좋은 옷을 수없이 준비하지만 그 옷은 의인이 입고, 그 은은 죄 없는 사람들이 나눌 것이다. 악인의 집은 속이 빈 누에고치 집(좀의 집)처럼 텅 비게 될 것이며, 상직군의 초막(농부가 곡식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집)처럼 불안하게 될 것이라. 악인은 비록 많은 재물을 가지고 죽으나 그 조상의 묘에 묻히지 못하고, 그 재물은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지리라. 두려움이 흐르는 물같이 그의 뒤를 쫓을 것이며, 사나운 폭풍이 밤에 휘몰아쳐서 그의 모든 재산을 날려 버리리라. 하나님께서 그를 아끼지 않고 활로 쏠 때에 그가 피하려하나 피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결국 사람들의 박수와 비웃음 속에서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11-22).”

*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욥의 토론(28장)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욥의 삶 가운데서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신 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욥은 이 장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알 수 없다고 선언한다. 욥은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다는 것과 죽음과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욥은 먼저 인간이 귀한 보석을 어떻게 찾아내는 지에 대해서 묘사한다.

“은은 나는 광산이 있고 용광로에 연단 하는 금도 그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어내고 동은 돌을 녹여서 얻는다. 사람들은 지하의 암흑 속에서 갱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광석을 구한다. 그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지하 속으로 줄을 달고 내려간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람들과 격리되어 흔들리며 내려간다. 땅 위에는 식물이 나지만 그 밑에 있는 지하에는 광석을 캐기 위해 뒤집어엎어져서 온통 불로 뒤집어 놓은 돌 투성이가 되었다. 이러한 돌 가운데는 남보석이 있고 사금이 있지만 이러한 돌들이 있는 길은 솔개나 매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지하 속 길은 위엄 있는 짐승이나 사나운 사자도 지나가 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보석을 찾기 위해 단단한 바위를 깨뜨릴 때에는 산의 뿌리가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리고 돌 가운데 구멍을 파고 그 속에서 각종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그 보물이 있는 곳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고 돌 속에 숨겨진 보석들을 밝은 세상으로 가져온다”(1-11).

욥은 보석과는 달리 지혜는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란 말이냐? 지혜와 명철의 가치를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이러한 것은 사람 사는 땅에서 얻을 수가 없다. 깊은 물 속에서도 찾을 수가 없고 바다에서도 찾을 수가 없도다. 지혜와 명철은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주어도 그 값을 지불할 수 없다. 지혜와 명철의 가치는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보다도 비싸며, 황금이나 유리, 그리고 황금 장식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 지혜와 명철은 산호나 수정과 홍보석보다도 더 귀하며, 구스의 황옥과 순금으로도 그 값을 지불할 수 없다(12-19).

마침내 욥은 마침내 지혜를 하나님 안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지혜는 모든 생물이나 공중의 새도 볼 수 없다. 지혜는 멸망이나 사망도 소문만 듣고 그것이 어디 있는 지는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혜의 길을 깨달으시며 그것이 있는 곳을 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어디에나 계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감찰하시고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바람의 가볍고 무거움을 정하신다. 그리고 물의 무게를 달아보고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해 길을 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지혜를 보시고 그것을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고 연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고 가르쳐 주셨다(20-28). 욥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욥의 친구들의 말처럼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 참된 지혜를 발견한 사람임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참다운 지혜(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적용 질문>

1. 욥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땅을 공간에 매달고 물을 구름에 싸시며 수면이 거대한 원형이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말을 들으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2. 우리는 욥이 극한 고난 중에서도 죽기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교훈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사후에라도 반드시 악인이 심판 받을 것임을 믿는가?

3. 보석을 찾기 위해 광부들이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는가? 우리가 지혜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석을 찾는 광부들의 노력과 비교해서 말해보자.

4.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정한 지혜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이 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욥의 최종적 대답(29-31장)

이 끝맺는 장에서 욥은 하나님께 홀로 이야기하는데, 그는 마치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펴는 변호사와 같다. 그는 고통 받기 전인(과거)의 영광을 말하고(29장), 현재의 비참함을 묘사한 후에(30장), 자기의 무죄에 대해 마지막 맹세를 하고 있다(31장).

* 욥의 과거의 영광(29장)

“내가 이전 달(병이 걸리기 전)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있던 때)처럼 다시 회복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 그 때는 하나님의 등불(하나님의 은혜)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내가 그 광명(은총)을 힘입어 흑암(고난) 중에 행하였도다. 내가 건강하던 날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 그 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고(집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림), 전능자가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내 자녀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뻐터가 내 발자취를 씻기고, 반석이 나를 위해 기름 시내를 흘렸도다(매우 풍요로웠다). 그 때에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재판관으로 사회적인 지위를 누림, 당시는 성문에서 재판을 열었다), 내 자리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도다. 나를 보고 소년들은 숨으며(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음) 노인들은 일어나 섰고(노인들도 그를 존경함), 방백들도 말을 참고 그 손으로 입을 가렸고, 귀인들도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천장에 붙었었다(그들은 입을 닫고 욥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그때에는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다(그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에게 감사하며 축복했다)”(1-11).

욥은 자기가 사회적으로 높이 존경받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울 자 없는 고아를 구했기 때문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내게 복을 빌었고, 과부의 마음이 나를 인해 기뻐 노래하였도다. 그 때에 나는 의를 옷처럼 입었고 공의를 도포와 면류관 같이 입고 머리에 썼도다(항상 의롭게 행동했다). 나는 소경의 눈이 되어 주었으며, 절뚝발이의 발도 되어주었고, 빈궁한 자의 아비가 되어 주었으며, 생소한 자(그 지방에 낯선 자)를 도와 소송에서 승리하게 해주었고, 불의한 자의 어금니(연약한 자를 삼키려고 하는 압제자)를 꺾고 그 이 사이에서 겁탈한 물건을 빼어내었도다(무고히 압제 당하는 자를 도와줌)”(12-17).

욥은 과거에 자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낙관하였다.

“나는 내 가족이 보는 앞에서 늙어서 평안히 죽게 될 것이며(선종: 선하게 끝을 맺음), 나는 모래 알 같이 많은 날을 살게 될 것이라. 나는 뿌리가 물로 뻗어 나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할 것이며, 나는 가지가 밤새도록 이슬에 젖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점점 더 영광스럽게 될 것이며, 내 활은 내 손으로 날마다 더 강해 질 것이다”(18-20).

욥은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이웃에게 이슬과 비와 같은 은혜를 베풀었다.

“무리는 내 말을 들으며 나의 가르침을 잠잠히 기다렸고, 내가 말한 후에 그들은 말을 하지 못했나니 이는 내 말이 그들에게 이슬 같은 은혜가 되었기 때문이라. 그들은 마치 나를 비같이 기다렸고,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입을 벌렸구나. 어려움을 당하나 도울 자가 없을 때에 내가 함소하고(미소를 짓고) 그들을 동정하니 그들이 내 위로를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받았도다. 나는 그들의 길을 택하였고(갈 길을 인도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마치 왕이 군중 속에 사는 것 같았으며, 우는 자를 위로하는 자(상담자)와도 같았도다”(21-25).

<적용 질문>

1. 욥이 이렇게 선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3-5, 19 참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 설명해 보자.

2. 욥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도 같았다. 그의 선행은 어떠했으며 우리는 그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지 말해보자.

* 욥의 현재의 어두움(30장)

욥은 자신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천한 사람들에게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그들의 아비는 나의 보기에 나의 양 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두지 못할 자로다(행위가 극도로 타락 한 자임). 이들의 아비는 수척하여 무엇을 이룰만한 힘을 잃은 자니 이런 힘이 내게 무슨 힘이 되겠는가? 그들은 궁핍과 기근으로 쇠약해졌고 광야에서 나는 풀뿌리와 그 뿌리에 묻은 흙을 먹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해초의 일종)을 꺾으며, 대싸리(로뎀나무) 뿌리를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무리들은 그들이 나타나면 마치 도적을 만난 것 같이 소리 질러 그들을 내쫓는구나.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어두컴컴한 골짜기와 흙구덩이, 그리고 바위 구멍(굴)에서 나귀처럼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로서 비천한 신분을 가진 자기 고향에서 쫓겨난 자들이로다”(1-8).

욥은 자기가 이런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향해 노래부르며 조롱하고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되 얼굴에 침까지 뱉고 있으니,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줄을 늘어뜨리듯이 나를 무기력하고 고통을 당하게 하시므로 무리들이 내 앞에서 굴레 벗은 말처럼 함부로 대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라.”(9-11).

욥은 비천한 자들이 군사처럼 자기를 공격하여 심한 두려움 속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그 낮은 무리(할 수 없는 무리)가 내 우편에서 일어나 내 발을 밀어 넘어뜨리고 나를 대적하는구나. 그들은 나를 멸망시킬 길을 쌓고있으며, 도울 자 없는 자들도 내 길을 헐고 있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 도다. 그들은 마치 성을 파괴하고 몰려 들어오는 군사같이 달려들어 나를 놀라게 하였도다. 내 영광을 바람 같이 몰아버리니 내 부요는 구름 같이 사라져버렸구나 !”(12-15).

욥은 이제 육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다시 언급한다.

“이제 나는 환난 속에 빠져 두려움으로 인해 간담이 녹고 있다.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므로 내 몸에 고통이 그칠 때가 없도다. 영광스럽던 내 옷은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인해 추해졌으며 내 병든 살에 달라 붙어버렸다. 하나님은 나를 진흙 가운데에 던지시고 티끌과 재에 앉아 있는 신세가 되도록 만드셨으며, 내가 주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않으시고 서서 부르짖어도 구경만 하시는구나. 주께서 돌이켜 나를 잔인하게 다루시고 무력으로 박해하시니, 나는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는 검불 같이 되어 정처 없이 날아다니며 소멸되고 있도다. 나는 주께서 나를 죽게 하신 후에 모든 생물을 위해 정한 집(무덤)으로 끌어가실 줄을 아나이다.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은혜를 구하기 위해 손을 들지 않겠으며, 극한 재앙을 만날 때에 도움을 위해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내가 전에 고난 당하는 자를 위해 같이 울지 않았습니까? 내가 전에 빈궁한 자를 위해 그들과 함께 근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축복 대신 저주가 빛 대신 흑암이 나에게 찾아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내 마음은 어지러워서 더 이상 쉬지 못하며 환난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나는 햇볕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타서 살이 검어졌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구하기 위해 부르짖고 있나이다. 나는 이제 이리의 형제가 되고 타조의 벗이 되었나이다. 내 가죽은 검어져서 몸에서 떨어지고 내 뼈는 타는 열기로 인해 타버렸습니다. 주여 ! 이제 내 수금(마음)은 슬퍼 부르짖으며, 내 피리(음성)는 애통하여 울고 있나이다 !”(16-31)

<적용 질문>

1. 자기보다 나이 어린 자(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에게 조롱을 받을 때의 심정에 대해 말해보라.

2. 무고하게 얼굴에 침을 뱉는 조롱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이때에 심정이 어떠할지 말해보자.

3. 사경을 헤메는 중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 있는가?

* 자신의 무죄에 대한 욥의 맹세(31장)

욥은 고난 중에 다시 한 번 친구들의 비난과는 달리 자기가 무죄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

“나는 음란한 마음으로 처녀를 주목하지 않기로 내 눈과 언약을 맺었도다. 만일 내가 음란한 마음으로 처녀를 주목하여 바라본다면 위에 계시며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지 않겠는가?(7계명 지킴)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찾아오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재앙이 찾아오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나의 길을 감찰하시며 나의 걸음까지 다 세고 계신다. 언제 내가 허영에 빠져 헛된 일을 하였으며 내 발이 거짓된 일을 행하기 위해 달려갔는가? 만일 내가 이런 일을 행했다면 하나님의 공평한 판단에 의해서 나의 모든 행위가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도다(9 계명 지킴). 내가 언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길을 떠나 눈에 보이는 물건을 보고 탐심을 품었으며, 뇌물을 받고 내 손에 더러운 것을 묻혔는가? 만일 내가 이렇게 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고 내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당연하도다(10계명을 지킴). 언제 내가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는가? 만일 내가 이렇게 했다면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러한 죄는 중한 죄라. 재판장에게 벌을 받을 죄악이며, 사르는 불과 같아서 내 소산을 뿌리까지 모두 태워 버릴 것이다(7, 10계명을 지킴)”(1-12).

“내가 언제 남종이나 여종이 내게 자기 견해를 말할 때에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는가? 내가 만일 그들의 사정을 멸시했다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나를 심문할 때에 나는 할 말을 잃게 될 것이라. 왜냐하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그도 만들었으며,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 지음 받은 한 형제이기 때문이라(인권 존중). 내가 언제 가난한 자가 도움을 구할 때에 그것을 주지 않았으며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는가? 내가 언제 나만 혼자 음식을 먹고 고아를 먹이지 않았는가? 나는 젊을 때부터 고아에게 아버지처럼 대해주었고, 태어나서부터 과부를 인도해 주었다. 내가 옷이 없어 죽게된 사람이나 빈궁한 자가 덮을 것이 없을 때에 내 양털로 그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으므로 그들이 나를 위해 축복을 빌었구나(가난한 자들을 돌아봄). 내가 언제 재판할 때에 내 후원자와 힘을 합해서 고아를 억울하게 하였는가? 만일 내가 이런 일을 했다면 내 어깨가 어깨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부러지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하나님의 재앙과 위엄을 인해 감히 이러한 일들을 행할 수 없었다(공정한 재판)”(13-23).

“내가 언제 하나님을 버리고 금을 내 소망과 피난처로 생각하였는가? 내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보다 그것을 기뻐하였는가? 내가 언제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갈이 밝게 운행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은밀하게 유혹되어 그것들을 섬겼는가?(손에 입을 맞추는 것은 우상 숭배의 방법이다) 이러한 일들은 재판장에게 형벌을 받을 죄악이며 따라서 내가 이런 일을 했다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지은 것이다(1-2 계명 지킴)”(24-28).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가 멸망했을 때에 그것을 보고 기뻐하고 그가 재앙을 당한 것을 보고 그 앞에서 내 힘을 자랑하였는가? 나는 원수들이 재앙을 당할 때에 그들이 망하기를 구하는 기도를 내 입으로 결코 한 적이 없다(원수 사랑). 나는 내 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인의 고기로 배불리 먹였으며, 나그네를 길에서 유숙하게 하지 않았고 길가는 행인에게도 문을 열어 주었다(나그네 대접). 내가 언제 대중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내 죄를 숨기려고 외출하지 않은 적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내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았던가?(죄를 숨기지 않음)”(29-34).

욥은 이제 지금까지 자기가 말한 것이 사실임을 선언하고 나서 그의 말을 그친다.

“누구든지 나의 변론을 들으라.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나에게 대답하시기를 원하노라. 나의 대적이 쓴 소송장이 나에게 있으면 내가 어깨에 매기도 하고, 면류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고(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내 걸음의 수를 그에게 고하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하였으리라(그를 귀하게 대접했을 것이다). 언제 내 토지가 부르짖어 나를 책망하며 그 이랑이 일시에 울었던가? 언제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산물을 먹고, 그 소유주로 생명을 잃게 하였는가? 만일 내가 이렇게 했다면 밀 대신에 찔레가 나고, 보리 대신에 잡풀이 나는 것이 당연하도다(남의 재산에도 피해를 입힌 적이 없다)”(35-40).

<적용 질문>

1. 욥의 완전한 생활을 자신의 생활과 비교해 보라. 욥의 고백 속에 나오는 “내가…”란 부분에 자기의 이름을 넣고 이 고백을 다시 한 번 반복해 보자.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은 어느 것이며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자.

2. 다음과 같은 항목을 가지고 욥과 나의 생활을 비교해 보자.

1)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는가?(우상, 물질)

2) 성적으로 순결하며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않았는가?

3) 이웃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이 침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4)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 등)을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가?

5) 남의 물건에 해를 입힌 적은 없는가?

6) 함께 힘을 합쳐서 이웃을 해치기 위해 거짓 증거를 한 적은 없는가?

7) 이웃의 물건을 탐낸 적은 없는가?

8) 원수가 곤경에 처했을 때에 기뻐하지 않았는가?

9)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지 않고 이것을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 다음 주 계속 –

” ” 구경하던 젊은 지혜자(엘리후)가 입을 열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죄 때문에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욥의 회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하나님의 부당성에 항의했다. 욥이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게되자, 마침내 욥의 친구들은 욥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한다. 논쟁이 교착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섰다. 그는 바로 젊지만 지혜로운 엘리후였다. 그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면서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논쟁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달리 욥이 당한 곤경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엘리후가 한 네 가지 발언(32-37장)은 욥기가 쓰여지고 나서 후대에 다시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엘리후는 욥기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2) 엘리후의 발언과 문체는 욥기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다.

3) 엘리후의 견해는 이 책의 논쟁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4) 욥이 엘리후의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1) 엘리후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진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았다.

2) 엘리후가 다른 사람들과 문체가 다른 것은 그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줄 뿐이다.

– 하나님이란 말을 많이 사용함-욥-17, 엘리바스-8, 빌닷-6, 소발-2, 엘리후-19

– 아람어를 많이 사용함

3) 엘리후는 세 친구와 견해가 달랐다. 세 친구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엘리후는 반대로 욥이 고통으로 인해 죄를 짓고 있다(교만)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해 고난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33:17,28,30,36:16). 그리고 엘리후는 하나님께 불평하는 욥의 잘못된 태도를 고발하고(33:13, 34:17),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제안한다.

4) 욥이 엘리후에게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의 말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욥은 그의 발언을 통해서 자기의 죄와 교만한 태도를 돌이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후의 이야기는 욥과 세 친구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후의 이야기로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정리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등장하는 것은 문맥상 자연스럽고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1. 엘리후의 첫 번째 발언(32-33장)

1-1. 엘리후에 대한 소개(32:1-5)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이 그치게 되자 엘리후가 등장한다. 그는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었다. 아마도 바라겔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부스(창 22:20)의 후손인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부스의 형인 우스는 후에 욥의 고향인 “우스 땅”(욥 1;1)이란 이름을 낳게 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를 향해 노를 발했다. 왜냐하면 욥이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친구들은 능히 대답핮는 못했지만 욥을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나이가 어려서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을 따라 연장자들의 논쟁에 끼여들 수 없었기 때문에 잠잠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으나 세 친구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마침내 분노를 터뜨린다.

1-2. 엘리후의 자기 소개(32:6-22)

엘리후는 자신이 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였기에 그 동안 참고 감히 의견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오래 살고 경험이 많은 분이 입을 열어서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성령)이 있고, 전능 자께서 사람들에게 총명을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롭고 공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하려 하니 내 말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내 견해를 여러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6-9)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의 무능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고 당신들이 (욥에게)적당한 말을 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가 당신들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니 당신들 가운데 욥이 인정할 수 있도록 답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욥을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욥을 이길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왜냐하면 나도 욥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방법은 당신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욥이 나에게 공격하지 않았으니 나도 욥을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10-14).

엘리후는 자기가 욥에게 대답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친구들이 놀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니 이는 그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말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이제 내가 어찌 더 기다릴 수 있겠는가? 나도 내 본분(책임)을 따라 욥의 말에 대답하고 나도 내 뜻을 보이리니, 이는 내 입에 말이 가득하여 내 심령이 말하기를 재촉하고 있음이로다. 이로 인해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와 발효되어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와 같이 할 말로 가득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해야 시원할 것이라. 나도 내 입을 열어 대답할 것이라.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으니, 이는 내가 아첨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사람에게 아첨하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속히 취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로다(15-22).

<적용 질문>

1. 엘리후는 나이가 어렸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욥과 무고히 남을 정죄하는 것을 친구들을 보고 분노했다. 우리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가?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있는가?

2. 지혜와 총명은 나이에 관계없이 성령과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에게도 계시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이 시간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

3. 우리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가?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3. 욥에 대한 엘리후의 첫 번째 대답(33장)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욥에게 자기의 말을 들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듣고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을 하도다.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정직하게 말하리라(정직과 진실성).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셨도다(그의 말이 성령에 영감 되었음을 의미함).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듣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기 때문이로다. 나는 내 위엄으로 당신을 두렵게 할 수 없고 내 권세로도 당신을 누를 수 없음을 알고 있다”(엘리후는 자기도 욥과 같은 처지에 있으며,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욥에게 충고할만한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의 진리만을 전하려 했다)(1-7).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그 동안 욥이 한 말을 요약하고 있다.

“진실로 당신이 내가 듣는 중에 말하였고 나는 당신의 말소리를 들었나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칠 틈을 찾으시고, 나를 적으로 간주하시고 내 발을 착고에 채우며 내 모든 길을 감시하는구나.”(8-11)

엘리후는 이 말(욥이 한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대답하겠습니다. 이 말에 대해 당신은 의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에게 고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고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십니까?”(12-13)

“하나님은 이미 여러 번 반복하여 사람들에게 자기의 뜻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자기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을 잘 때나 꿈을 통해서 환상 중에 서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을 치듯이(분명하게) 사람들에게 자기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꾀를 버리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신 것은 사람의 영혼이 (죄악과 파멸의)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고, 그 생명이 칼에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구원).”(14-18)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질병으로 징계하실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징계를 받은 사람은 병상에 누워 뼈가 쑤시며 (식욕을 잃고)음식과 별미를 먹지 못하며, 그의 피부는 말라 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혹자는 이 천사가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한다-박윤선) 그 병자의 해석자(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그 병자와 동행하며 그를 회개하게 만들고 옳은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구덩이(죽음)에 빠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미 대속물(예수 그리스도)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다시 피부가 회복되고 어린 아이보다 부드러워져서 소년의 때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나은 후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사람들 앞에서 그 의를 다시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내가 전에 범죄하여 진리를 비 진리와 바꾸었으나 내게 아무 유익이 없었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건져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셨으니 이로 인해 나는 이제 빛을 보게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은혜로 대해 주시는 것은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들고, 생명의 빛을 그에게 비추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19-30)

“그러므로 욥이시여 귀를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듣고 잠잠하시오. 내가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내 말에 대해서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해 보십시오. 내가 그 말을 듣고 당신을 의롭게 만들 것입니다. 자 이제 내 말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러나 대답할 말이 없다면 계속해서 내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혜를 가지고 당신을 가르칠 것입니다.”(31-33)

<적용 질문>

1.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해 줄 때에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충고하는가?

2. 하나님은 만물의 왕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따지고 있지는 않는가?

3.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한 뜻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17)

4.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보고 자기의 노래와 비교해 보라(27-28).

2. 엘리후의 두 번째 발언(34장)

엘리후는 욥이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의 두 번째 발언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하는 욥의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하나님의 의를 변호함).

“나의 존경하는 지혜 자들이여 내 말을 듣고, 지식 있는 자들이여(연장자들)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입이 음식의 맛이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듯이 우리의 귀도 말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옳은 것을 택하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 함께 알아봅시다”(1-4).

엘리후는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욥 당신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의롭지만 하나님께서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지만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며, 나는 허물이 없지만 내 상처가 낫지 않는구나.’ 감히 누가 이러한 불경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거룩하신)하나님을 물 마시듯 훼방하고 악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동행하면서(이것은 엘리후가 욥을 잘못 이해하였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 아무 유익도 없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담대하게 내뱉고 있도다(5-9).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에 대해서 변호하고 있다.

“그러므로 총명한 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하나님은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 하신 분은 결코 불의를 행치 않으시고, 사람이 행한 일을 따라 갚되 그 행위대로 갚아주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하신 분은 공의를 굽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땅과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므로 아무도 그 분을 공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시기 때문에 신과 호흡을 거두시면 한 순간에 모든 생명과 사람들이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늘도 이 생명들을 유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총명이 있다면 내 말을 듣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공의를 미워하는 자라면 어찌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욥이시여 당신은 어찌하여 공의롭고 전능하신 분을 고소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왕까지도 인간 폐물로 취급하시며 귀족들도 악하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왕족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부자라도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해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밤중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시면) 순식간에 죽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은 떨면서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어서 세력 있는 자들까지도 손을 대지 않고도 멸망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10-20)”

엘리후는 악인이 당할 징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고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기(모든 것을 아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자들은 어둠이나 그늘에 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권세 자들도 조사할 필요도 없이 꺾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익숙하게 아시기에 밤중에 악인들을 엎어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말씀을 어김). 이러한 악한 자들로 인해 가난한 자들의 호소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있고, 무고히 환난 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할 때에 누가 감히 하나님을 그릇 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진노하여 사람에게 그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국가도 개인과 같이 공의로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가 권세를 잡고 백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21-30).”

엘리후는 다시 한 번 욥이 한 말을 들어 그를 공격한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어떤 악을 행했는지 가르쳐 주면 범죄하기를 그치겠다고 말했다(6;24, 7:20-21, 10:2, 13:23 등). 엘리후는 이러한 발언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향해 자기 뜻대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짓(주제 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엘리후는 욥을 향해서 주권자인 하나님께서 인간인 욥의 욕에 따라 행동해야 되겠느냐:? 고 판단해 보라고 한다.

엘리후는 총명한 자와 자기 말을 듣는 지혜 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도다”. 엘리후는 욥의 대답이 악인과 같은 것을 보고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했다. 엘리후는 욥이 자기가 지은 죄 위에 교만과 패역한 죄를 더하고, 친구들 앞에서 손뼉을 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31-37)

<적용 질문>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은 만물을 선으로 대해 주신다).

2.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공개적으로 치시는 이유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하고 있지 않는가?

3.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모든 행위를 알기에 그릇 판단할 수 없다. 하나님은 조사할 필요도 없이 악을 심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권세 잡은 자라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쉽게 심판할 수 있다).

4. 우리는 욥처럼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고 요구한 적은 없는가?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죄인지 엘리후의 말을 토대로 이야기 해보자.

3. 엘리후의 세 번째 발언(35장)

엘리후는 세 번째 발언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무죄함에 대해 보상해 주지 않는다” 고 외치는 욥의 고발에 대해 대답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변호한다. 엘리후의 대답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지고하신 분이므로 사람의 유죄나 무죄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2) 하나님께서 욥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그의 교만함 때문이다.

엘리후는 의를 행하는 것이 범죄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욥의)말을 비난한다.

“당신은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를 지킨 내가) 죄를 지은 자보다 유익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당신은 이 말이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1-3)

엘리후는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과 당신과 함께 있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눈을 높이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시고, 높이 펼쳐진 궁창을 바라보십시오(하나님의 높으심과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고 크신 데) 당신이 범죄 하는 일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당신이 죄로 세상을 가득 채운 일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의롭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리고 하나님이 당신 손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행한 악과 의로운 행동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나 해롭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4-8)

엘리후는 인간이 교만도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학대를 받고 세력 있는 자에게 압제 당할 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환난 중에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 사람들로 하여금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고난을 찬송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사람들을 (환난을 통해서)짐승보다 더 낫도록 교육하시며, 공중의 새들보다 더 지혜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르짖어도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결코 헛된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전능하신 분은 헛된 자의 기도를 돌아보지 않으시도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불의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어떻게 응답해 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 동안 계속해서 죄 없는 나는 고난을 당하나 이 고난에서 도와주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은 무죄 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일의 시비를 가려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니 나는 하나님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행하는 악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 죄를 보고 진노로 징계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니, 당신은 참으로 헛된 입을 열어 무지한 말을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9-16)

<적용 질문>

1. 우리는 내가 의를 행했는 데 악을 행한 사람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일은 없는가? 이러한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지 이야기 해 보자.

2.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보다 얼마나 높으신 분인 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3.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헛된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고난 중에도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연단을 통해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4. 엘리후의 네 번째 발언(36-37장)

엘리후는 두 번째 발언(34장)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변호했고, 세 번째 발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35장)에 대해서 변호했다. 이제 그는 마지막 발언을 통하여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언급하고 있다. 그는 1) 사람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36:1-26), 2) 자연을 다스리시는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자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36:27-37:24).

4-1.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함(36:1-26)

엘리후는 먼저 사람을 다스리시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능력을 변호한다. 그는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발언이 진실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당신들은 나를 잠시동안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하나님의 일에 불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들에게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먼 옛날로부터 지식을 얻어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거 할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지식을 갖춘 자(엘리후 자신)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1-4)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악인과 의인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공정하다고 말한다(5-12).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아무도 멸시하지 않고, 그 지식이 끝이 없어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시고, 그 눈은 의인을 주목하시며,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혀 주시고 존귀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혹시라도 의인이 (죄를 짓고)사슬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히게 되면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일과 허물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교만한 행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해 주시며 그들을 향해 죄악에서 떠나 돌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면 그들은 다시 형통하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이나, 거역하면 칼에 망하고 무지한 자와 함께 죽게 될 것입니다.”(8-12)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타내는 반응을 묘사한다.

“마음이 사곡한 자들(하넾: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외식하는 자들)은 (계속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의 속박(고난)을 당해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젊어서 죽고 그 생명은 남자 창기와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자가 고통으로 인해 쓰러질 즈음에 그들을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들의 귀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13-15)

엘리후는 고난에 대한 그릇된 욥의 태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욥 당신을 곤고한 곳에서 이끌어 내어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기 때문에 ( 고난을 받을 때에 순종하였더라면) 당신은 지금 상에 살진 것을 차리고 그것을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악인이 받아야 할 형벌이 가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가 당신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분을 내어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일을 대적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당신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려 한다면) 아무리 대속물로도 당신을 구속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교만하게 부르짖고 당신 자신을 의지하는 일이 어찌 고난에서 당신을 구원하는 일에 유익이 되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밤, 곧 인생이 자기 장소에서 제거되는 때(죽는 때)를 사모하지 말며, 삼가 조심하여 악한 일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당신은 환난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베풀어 큰 일을 행하시고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의 길에 대해서 항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은 이제 (하나님께 원망하기를 그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깊게 우러러 보고 있으며, 먼 곳에서도 그 분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하시므로 우리가 그 분을 알 수 없으며, 그가 사시는 햇수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16-26)

<적용 질문>

1. 하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때에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2.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성도들을 바르게 세우신다. 이러한 간증이 있으면 말해보자.

3.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이야기 해 보자(8-15).

4.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왜 불평을 그치고 하나님의 일을 찬송해야 하는가?

5.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며 연구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4-2. 자연에 대한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36:27-37:24)

이제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자연에 대한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는 먼저 가을 비바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한다(36:27-33).

“하나님께서는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것을 안개와 구름 형태로 만들어 비를 만드시고, 그것이 공중에서 사람 위에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과 우뢰와 번개를 통해서 사람들을 심판하기도 하고, 곡식을 잘되게 하여 풍년이 들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손에 빛을 감추어 두셨다가 그것을 명하여 명중시킬 표적을 맞추게 하십니다(번개). (이러한 번개는) 의로운 자들에게는 풍년을 약속해주지만,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27-33)

엘리후는 계속해서 겨울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로 인해(번개와 우뢰소리) 내 마음이 떨며 내 집에서 숨는구나.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 보라. 하나님은 그 소리를 온 천하에 울려 퍼지게 하시고, 번개 빛을 땅 끝까지 미치게 하시며, 우뢰를 발하여 위엄 있는 소리를 내게 하시고, 그 음성이 들릴 때마다 번개 빛이 온 세상을 비취도록 하시도다. 하나님은 기이하게 울리는 소리를 내시고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게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땅에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큰비나 눈을 내려 사람들이 일을 하지 못하게(손을 봉하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손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이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방에 있는 밀실에서 광풍이 불게 하시고, 북방에서는 찬바람이 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심으로 얼음이 얼고 물이 얼음이 되어 물의 넓이가 줄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습기를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이 나는 구름을 공중에 널리 펴시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온 세계에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름이 가는 대로 두루 다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름을 오게 하여 징벌을 주기도 하시고, 토지에 비를 주기도 하시며,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도 합니다.”(37:1-13)

엘리후는 계속해서 여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을 한다.(37:14-18)

“욥이시여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연구해 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구름이 번개 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구름이 평평하게 뜨는지, 그리고 지혜가 온전하신 분이 하신 기묘한 일을 아십니까? 당신은 남풍으로 인해 땅이 고요할 때에 당신의 의복이 따뜻해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당신이 능히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이 견고한 하늘을 펼칠 수 있단 말입니까?”(14-18)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욥이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참으로 지혜롭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지혜가 어두워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어찌 창조주를 향해서 말하고 싶은 말(하나님을 비평하는 말)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그렇게 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노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때는 구름에 가려 하늘의 빛을 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면 구름이 사라지고 하늘이 다시 맑아집니다. 그러면 다시 북방 하늘에서 금과 같은 해 빛이 나와 사람들에게 비추어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이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베풀기를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분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자를 돌아보지 않는 분이십니다(19-24).”

<적용 질문>

1. 비와 번개, 그리고 우뢰를 통해 가을에 풍년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심판도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우리는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 얼음을 얼게 하시고 구름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3. 우리는 여름에 비가 올 때에 번개가 치며, 기온이 따뜻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게 되며, 파란 하늘에 머리 위에 펼쳐지고 하늘에 구름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4. 우리는 구름으로 해를 가리웠다가 다시 찬란한 햇빛이 비취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이러한 모든 일을 묵상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으며,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 다음 주 계속 * 하나님과 욥의 대화 (38-42:6) *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던 욥의 호소가 이루어졌다. 그 동안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 고난에 대해 말씀해 주실 것과 중재인(변호인, 또는 조정자)이 나서서 대신 말해 주기를 원했다(9:33, 13:22, 16:19-20 등).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욥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욥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만물에 대해서 욥에게 70개가 넘는 질문을 던졌으나 욥은 그 질문에 하나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질문은 별자리에서 진흙에까지, 그리고 금수에서 새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 욥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해주시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자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대답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믿음을 가지고 신뢰할 수 있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인간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실 욥은 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과 고난에 대해서 변론할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고난의 문제를 설명할 필요가 없으셨다.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표시였기 때문에 욥은 다시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욥에게 이러한 많은 질문을 던지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물에 대해 세밀한 관심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만물에 대해서 이렇게 세밀한 관심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어찌 인생에 대해서도 관심과 선한 계획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인간은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두 부분(38:1-40:2과 40:6-41:34)으로 나뉘어 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끝날 때마다 욥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데, 첫 부분에서는 욥의 겸손한 응답이 나오고(40:3-5), 두 번째 부분에서는 욥의 회개의 응답이 나온다(42:1-6).

1-1. 첫 번째 여호와의 말씀(38-39장)

가. 서론(28:1-3)

엘리후의 말에 대하여 욥과 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폭풍(‘쓰아라’: 거센 바람을 동반하는 비바람) 속에서 임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욥에게 대답할 것을 요청하셨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하나님이 불공평하다)을 했다. 이러한 욥의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밝혀 주기 보다 오히려 혼란을 일으켰다.) 너는 대장부(강한 남자)처럼 허리를 단단히 매고 내가 이제부터 너에게 묻는 것을 대답할 태세를 갖추라.”(욥은 앞에서 여러 번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고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 무생물계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38:4-38)

하나님께서는 우주론과 해양학, 기상학,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통해 욥이 하나님의 섭리를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를 물으신다. 하나님은 반어법을 사용해서 효과적으로 욥의 무지함을 지적하신다(“너는 말할찌니라”, “네가 아느냐?”).

* 땅에 대한 질문(4-21)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만일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은 일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나에게 대답할지니라(욥은 창조 때에 없었기 때문에 창조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누가 그 땅을 측량하였으며 측량 줄을 그 위에 놓았는지 네가 알고 있느냐? 땅의 기초는 무엇 위에 놓았으며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즐겁게 소리쳤느니라.”(4-8)

“바닷물이 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그 문을 닫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을 가지고 그 의복을 삼고 어둠을 가지고 그의 강보를 삼았느니라. 그리고 바닷물의 경계를 정하고 문과 빗장을 만든 후에 ‘너는 여기까지만 넘치고 이 경계를 넘어가지 말라. 네 교만한 물결은 여기에서 출지니라’ 고 명했도다(하나님은 무서운 바다를 갓난아이 다루듯이 쉽게 다루신다). 네가 나던 날부터 네가 새벽에게 자기 위치(새벽이 될 시간)를 가르쳐 그 시간에 땅 끝을 비취게 하고 (어둠 속에서 죄를 짓던)악인들을 쫓아내게 만들었느냐? 새벽빛이 비취면 땅은 마치 도장을 찍은 진흙과 같이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모든 만물은 빛을 받아 각양 각생의 옷을 입고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빛은 악인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그들이 모여 밤새 도모하던 일(높이 든 팔)을 무산시키고 있다. 네가 바다 물이 솟아오르는 샘의 근원에 가보았으며, 바다 깊은 곳을 다니며 조사해 보았느냐? 너에게 죽음의 문이 열렸느냐? 네가 죽음의 그늘이 내려진 문들을 본 적이 있느냐?”(9-17)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느냐 모두 알 수 있거든 대답해 볼지니라. 빛과 어둠이 가는 길이 어디이며 그가 사는 곳은 어디란 말이냐?(어떻게 낮과 밤이 교차되는지 도대체 네가 아느냐?) 네가 빛과 어둠을 그 경계선까지 인도할 수 있느냐? 네가 빛과 어둠이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아마 네가 알 것이라. 왜냐하면 너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는 욥이 산 날이 적어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말씀하신다)(18-21).”

* 하늘에 대한 질문(22-30)

“네가 눈 창고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싸움의 날을 위해 이것을 저장해두었노라(하나님께서는 우박을 징계와 전쟁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빛이 어느 길을 통해서 땅에 분배되고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져 불게 되느냐? 누가 폭우가 내리도록 길을 예비하고 우뢰와 번개가 칠 수 있도록 길을 내었느냐? 사람이 살지 않는 땅과 광야에 비를 내리게 하여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적시고 그 곳에 연한 풀이 나게 하느니라.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어느 여인의 태에서 났으며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22-30)

* 별과 구름에 대한 질문(31-38)

네가 묘성(봄에 나타나는 별 자리로 일곱 별이 한 무리를 이룸)을 매어 한 무리가 되게 할 수 있느냐? 네가 삼성(초겨울에 나타나는 별 자리)이 한 무리를 이룬 것을 풀을 수 있느냐? 네가 열 두 궁성(별자리 이름)을 때를 따라 이끌 수 있으며, 북두성(일곱 개의 별들로 된 별자리)을 길을 안내할 수 있느냐? 네가 하늘의 규칙을 아느냐? 네가 하늘로 그들의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할 수 있느냐? 네 목소리를 구름 위에 올려서 큰물들이 너를 덮게 할 수 있느냐? 네가 번개를 보낼 수 있느냐? 네가 번개로 가라고 명령할 때에 그것들이 네게 “내가 여기 있습니나” 라고 대답하겠느냐? 누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지혜를 넣었느냐? 누가 마음 속에 총명을 주었단 말이냐? 누가 지혜를 가지고 구름의 수를 셀 수 있느냐? 누가 하늘의 주전자에 물을 담아 땅에 쏟고 티끌을 진흙으로 만들고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31-38)

<적용 질문>

1. 우리는 이 우주와 지구의 기초가 놓고 그 무게를 재고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묵상할 때에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찬송가 40장, 78장의 가사를 묵상해 보자)

2. 우리는 바다의 신비와 빛과 어둠을 구분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솜씨를 생각할 때에 어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끼게 되는가?

3. 우리는 눈과 우박, 그리고 번개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한 번 번개가 치려면 하늘에 약 1,000톤의 물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무수한 각양 각색의 별들이 제 자리를 도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4.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지혜와 총명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다. 동물계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38:39-30)

여기에서는 여섯 종류의 짐승과 다섯 종류의 새, 그리고 한 가지 곤충 등 12가지 생물이 언급하고 있는 데, 모두 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과 섭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물의 왕인 사자로 시작해서 새들의 왕인 독수리로 끝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동물들을 통해서 욥의 무능력과 무지함을 드러내신다.

* 사자와 까마귀(38:39-41)

“네가 사자들이 굴에 엎드리고 삼림에 주워서 기다릴 때에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고 젊은 사자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느냐?(인간은 이러한 짐승의 먹이를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들에게 먹이를 제공하신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이러한 미물도 먹여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먹여 주시는 것이 당연하다)”(39-41)

* 산 염소와 암사슴(39:1-4)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 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이 되는지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들은 몸을 굽히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벗어버리고 그 새끼는 강해져서 빈들에서 양육되다가 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산 염소와 사슴은 인간에 의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고 양육되며 어미를 떠나 스스로 생계를 유지한다)(1-4).”

* 들나귀와 들소(39:5-12)

“누가 들 나귀를 들에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로 그 집을 삼고(들에서 살게 하고), 짠 땅(아마 사해 부근)으로 그의 거처를 삼았느니라. 들 나귀는 사람들이 길들일 수 없어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초장으로 된 산을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풀을 찾느니라.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할 수 있느냐? 네가 수고하는 것을 그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할 수 있겠느냐?(하나님께서는 이미 처음 짐승을 만드실 때부터 길들일 수 있는 가축과 길들일 수 없는 야생 동물을 구별해서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위반할 수 없다.”(5-12)

* 타조와 말(39:13-25)

타조는 즐겁게 그 날개를 치지만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풀지 못한다(타조에게 있어서 날개는 자랑거리지만 암탉과 같이 그 날개로 자기 알을 품지는 않는다). 타조는 알을 낳으면 그것을 품지 않고 땅에 버려 두어 모래에서 뜨거워지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발에 밟혀 깨어지거나 들짐승의 발에 밟힐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타조는 이와 같이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자기 새끼에게 무정하여 자기가 낳은 알이 다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타조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타조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조는 그 몸을 들어 달려갈 때에는 말과 기수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어찌 사람이 이렇게 특이한 동물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13-18).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말이 울 때에는 위엄 있는 콧소리가 두렵기까지 하다. 그것이 앞발로 땅을 긁어대고 힘이 있음을 기뻐하여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이하되,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칼을 맞아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위에는 화살 통과 빛나는 작은 창과 큰 창이 소리내며 부딪치고 땅을 삼킬 듯이 맹렬하게 분을 내고 나팔 소리를 들으면 멈추지 않고 나팔 소리가 나는 대로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군대 장관의 호령과 큰 소리로 명령하는 것을 듣는다(하나님께서는 말에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과 힘을 주셨다).”(19-25)

* 매와 독수리(39:26-30)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인한 것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 때문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보기 때문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육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있느니라.(짐승에게 이런 지혜와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26-30)

라. 하나님의 도전과 욥의 대답(40:1-5)

욥은 그 동안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에 대하여 변론하겠다고 여러 번 언급했었다.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신 후에 욥(변론하려는 자)에게 네가 능히 전능 자와 다툴 수 있겠느냐? 고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하는 욥에게 이 질문에 대답해보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당연히 욥은 자기의 지혜로 전능자와 변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미천한 제가 무엇이라고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내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입니다. 내가 한 두 번 말하였으니 다시는 더하지도 않겠고 대답하지도 않겠습니다”(4-5)

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질문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미천한 지(가볍고 아무 것도 아님)를 처절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욥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지한 말을 많이 했는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무지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무지한 말로 여러 번 반복해서(한 두 번) 말한 것을 회개하며 다시는 말을 더하거나 대답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 적용 질문 >

1.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1) 많은 사자와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심.

2) 산 염소와 사슴이 새끼를 낳고 양육 받고 나가서 스스로 살게 하심.

3) 들짐승이 사람들에게 길들여지지 않게 하심.

4) 타조를 무정하게 하고 빨리 달릴 힘을 주심.

5) 말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을 주심.

6) 독수리에게 지혜와 멀리 보는 눈을 주심.

2. 우리는 감히 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욥이 대답한 말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 이야기 해보자.

3.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고 지혜로운 척 하지는 않는 지 반성해 보자.

2. 두 번째 여호와의 말씀(40:6-41:34)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과 같이 이번 말씀도 도전과 책망,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첫 번째 발언은 무생물계와 생물계의 창조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오직 두 동물에게만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이 발언에는 첫 번째와는 달리 도전과 책망으로 끝맺는 말이 없다.

가. 욥에 대한 하나님의 도전과 질책(40:6-14)

여호와께서는 또 다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처사(욥이 당하는 환난)가 공평치 않다고 말하며 그것을 무효로 돌리려고 하느냐? 네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를 불의 하다고 말하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팔(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뇌성: 권능)를 내겠느냐? 너는 (하나님처럼)위엄과 존귀로 너를 장식하고 영광과 영예로 옷을 입으라(심판자로서의 위엄과 영광을 갖추라). 너는 (하나님처럼)너의 넘치는 노를 쏟되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고 악인을 그 집에서 밟아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어두운 곳에 둘지니라. 만일 네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네 오른 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그러나 분명히 욥에게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6-14)

나. 두 짐승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40:15-41:34)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12 동물을 포함하여 자연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셨으나 두 번째 말씀에서는 두 짐승에게만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짐승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진술하심으로 욥의 보잘 것 없음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하신다. 이 두 짐승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어왔다. 몇 몇 학자들은 이 짐승이 가공의 신화적인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짐승을 “볼찌어다”(40:15)라고 하셨고, 이 짐승을 내가 지었다고 말씀하신다(40;15). 그러므로 이 짐승은 실제 존재하는 짐승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짐승들은 세상의 교만과 악한 요소를 상징한다. 근동에서 악어는 그의 폭력과 물을 동요시키는 행위로 인해 악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애굽 왕은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악어를 죽이는 예식을 가진다. 이것은 애굽 왕이 악과 혼돈의 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서 욥이 이러한 짐승들을 제어할 힘이 없음을 보여주신다(40:10-14 참고). 그가 악을 상징하는 짐승도 이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악한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이 불의 하다고 항거할 수 있단 말인가?

* 하마(15-24)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원어에는 단지 ‘큰 짐승’이라고 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짐승을 코끼리, 또는 하마라고 말하기도 한다)를 볼지니라.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욥도 하마와 같은 피조물이다). 그 힘(strength)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force)은 배의 힘줄(근육)에 있으며, 그 꼬리는 백향목과 같이 달려있고 그 넓적 다리 힘줄은 서로 연결되었으며, 그 뼈는 놋으로 된 관 같고 그 갈비뼈는 철과 같으니, 이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에게 칼(이빨)을 주었느니라. 모든 들짐승이 뛰어 노는 산들은 그것을 위해 식물을 내느니라. 그것이 연 아래에 눕고 갈대 밭 은밀한 곳과 연못 속에 누우니, 연 나무가 자기의 그늘로 그를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둘렀도다. 하수가 넘친다 해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이 불어 그 입에 닿을지라도 그것이 태연자약하니(여유 있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모습), 그것이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그것을 잡을 수 있으며,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15-24)

* 악어(41장)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결박할 수 있겠느냐?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해서 간구 하겠으며 공손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사람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들이 사람에게 순종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짐승들도 잔인하게 되고 사람에게도 포학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것이 어찌 너와 계약을 맺고 영원히 네 종이 되겠느냐?(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듯이 이 짐승도 언약을 파기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포학하게 대한다.)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 것 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너의 소녀들을 위해 (애완용처럼)그것을 매어둘 수 있겠느냐? 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을 상품으로 삼아 상인들 가운데서 나눌 수 있겠느냐?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창이나 작살로 그 가죽을 뚫지 못함)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보라. 그와 싸울 일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너는 다시는 그 몸에 손을 대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을 잡으려는 소망은 헛된 소망이라. 그것이 그 소망을 눈앞에서 던져 버리지 않겠느냐? 그것은 너무 잔인하고 사나와서 아무도 그를 자극할 수 없도다. 이러한 짐승 하나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전능 자인 나를 당할 수 있겠느냐? 사나운 악어는 인간에게 찾아오는 심한 고난과도 같다. 악어 하나 잡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인간에게 찾아오는 심한 고난을 주관할 수 있겠는가?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1-11)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누가 그 얼굴의 문(입)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악어는 이빨이 60개가 있다). 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결된 것이 마치 봉해버린 것과 같고, 그 비늘이 연결되어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갈 수가 없도다(악어 가죽은 창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악어가 물 위에 내놓은 눈빛은 새벽에 동이 틀 때 비취는 빛과 같다).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튀며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가 타는 것 같도다(사나운 기세와 살기를 내뿜음).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힘이 그 목에 있으니 두려움이 그 앞에서 춤을 춘다. 그 살은 여러 겹으로 연결되어 몸에 견고하게 붙어 있으므로 그 몸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마음은 돌과 같이 단단하여 마치 맷돌 아래짝과 같이 단단하다(힘이 있어서 마음이 교만함). 용사도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정신을 잃게된다. 칼로 쳐도 소용이 없고 창과 작살로도 그 가죽을 뚫을 수 없구나. 그것이 철을 초개(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화살로도 그것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며, 물매 돌도 그것에게는 겨와 같도다. 그것은 몽둥이도 낙엽 같이 보고 창을 던져도 우습게 여기며 그 배 아래는 질그릇 조각 같으니, 그가 지나가면 진흙 위에 타작 기계같이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것은 깊은 물을 물이 끓는 것같이 요동하게 만들고 바다를 기름가마 솥처럼 만든다. 그가 지나갈 때면 물방울로 인해 그 뒤에 빛이 나는 길이 생기니 사람이 보기에 바닷물이 흰머리같이 되는구나. 땅 위에는 이와 같은 것이 없나니 이는 처음부터 그것이 두려움 없이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이러한 이유로 악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애굽 왕, 열강, 또는 사단)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12-34)

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두 번째 대답(42:1-6)

이 모든 말을 들은 욥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

“제가 알기에는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며, 하나님의 뜻은 취소되는 법이 없나이다. 지식 없는 말(자기의 무죄를 내세우면서 자기가 받는 고난이 부당하다고 한 말)로 이치(counsel)를 가리운 자가 누구입니까?(바로 저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해하기에 너무도 놀라운(wonderful) 일들을 말하였고, 제가 알 수도 없는 것을 말했습니다. 주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가 주께 말하고 묻겠사오니 저는 깨닫게(알게) 하옵소서. 제가 전에는 주께 대해 귀로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는 저의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제가 나를 멸시하고 티끌과 재 위에 앉아 스스로 회개하나이다”(1-6)

<적용 문제>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짐승(또는 악을 상징하는 짐승)조차 상대하거나 잡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2. 강하게 지음 받은 것(재물이나 권세가 많은 자)은 교만하기 쉽다. 우리는 오히려 연약하게 지어 주신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욥이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은

1) 그가 부요할 때보다 고난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과, 2)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신앙은 귀로 듣는 신앙인가? 아니면 눈으로 보는 신앙인가?

4. 욥의 회개의 내용을 살펴보고 우리가 진실된 회개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서로 이야기 해보자.

1)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전능자, 주권자).

2) 자신의 무지한 말을 회개함.

3)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부족함을 고백함.

4)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함.

5) 고난을 통해서 더욱 깊어진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 드림.

* 결말: 회복(42:7-17) *

이 부분은 머리말과 같이 시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제 욥의 영화와 가정을 회복시키기에 앞서 세 비판자를 향해 말씀하신다.

1. 세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함(7-10(상))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신 후에 세 친구를 대표하여 데만 사람(가장 연장 자) 엘리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친구들에게 노를 발하나니 이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한 말이 내 종 욥의 말과 같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7)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 고난을 당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변호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변론한 말은 욥의 말과는 달리 옳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무지한 말로 욥을 괴롭혀서 욥으로 하여금 입으로 실수하게 만드는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속죄 제물과 번제물을 가지고 욥에게 가서 욥의 기도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너희를 위해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해 번제를 드리게 하라.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 기도를 기쁘게 받고 너희의 미련한 행위대로 너희에게 보응하지 않을 것이라. 이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한 말이 내 종 욥의 말과 같이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8-10)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가지고 욥에게 가서 중보 기도를 부탁했다. 욥은 기꺼이 자기를 모욕한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세 친구들의 죄를 씻어 주셨으며, 동시에 욥을 친구들 앞에서 높여주심으로 욥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 한 후에 그의 곤경을 돌아보시고 그를 회복시켜 주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가서 형제들과 화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화목한 사람들의 제물을 받아 주신다.

2. 말년에 받은 축복(10(하)-17)

여호와께서 욥을 받아주심에 다라 그는 말년에 형통하게 되었다. 멀어졌던 그의 형제, 자매, 친척도 회복되었고 그의 재산도 갑절이나 생겼으며, 자녀도 다시 낳게 되었고 140년을 더 살며 장수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 형제, 자매, 친지와의 관계 회복(11)

“욥이 회복된 후에 그 소식을 듣고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그를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해 슬퍼하고 위로하며 각각 금 한 조각과 금 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나. 재상의 회복(10(하), 12)

욥이 받은 축복은 그가 처음에 받은 것의 갑절이나 되었다. 그의 소유는 양이 7,000마리에서 14,000마리가 되었으며, 약대가 3,000마리에서 6,000마리가 되었고, 소가 500겨리에서 1,000겨리가 되었으며, 암나귀가 500마리에서 1,000겨리가 되었다.

다. 자녀(13, 15)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다. 그가 낳은 첫째 딸은 여미마(낮)라고불렀고, 둘째 딸은 긋시야(기쁨을 상징하는 향나무 이름)라고 불렀으며 셋째 딸은 게렌합북(눈을 화장하는 검은 페인트 통)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들은 모두 다 아름다움과 축복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딸들을 전국에서 가장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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